O₂, 산소, 원자 번호 8, 화학 산소족에 속하는 비금속 원소, 공기의 주성분이면서 맛과 빛깔과 냄새가 없는 물질. 호흡과 동식물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체라는 사전적 의미의 산소. 강원도 홍천에 산소길이 있다. O₂길. 마스크 때문에 마음껏 숨 쉴 수 없어 미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수타사 산소길이 떠올랐다.‘그래 이번에는 산소길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홍천의 수타사 산소길은 1~4코스로 총 4개 코스가 있다. 수타사 산소길을 걷는다고 하면 대부분 1코스를 말하는데, 수타사 주차장에 주차하면서부터 걷기가 시작된다. 인근에 오토캠핑장까지 있어 주말 여행지로도 손색없다. 공작산 생태숲 산소길 코스는 3.8km로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수타사-공작산 생태숲-귀소(출렁다리)-용담-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이다. 걷기에 따라 1~2시간 정도 걸리지만, 수타사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고 숲길을 걷다가 쉬다가 느긋하게 숲멍도 한다면 3시간도 금방이다. 참 여유롭게 돌아보는 산소길 트레킹이다.
눈을 들어보니 해발 887m의 공작산이 날개를 펼친 듯 에워쌌다. 깊은 골짜기 위로 봉우리들이 겹겹이 솟은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공작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다. 그 산 아래 수타사 가는 길이 반기듯 쭉 뻗어 있다. 산소길 초입에 천년 고찰 수타사의 품격을 거친다는 것, 시작부터 차분히 숨 고르기를 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는 우적산 일월사(日月寺)였다가 공작산으로 옮기면서 수타사(水墮寺)로, 다시 새 한자인 수타사(壽陀寺)로 바뀌었다. 수타사 옆의 용담에 매년 승려들이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잦아 목숨 ‘수’(壽)로 바꾸었다고 한다. 예스러움이 물씬 전해지는 절의 분위기가 꾸밈없이 단아하다. 옛 모습을 품고 있는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에서도 위엄을 보여준다. 한나절 푹 퍼질러 앉아 목탁 소리 들으며 쉬면 좋을 깊은 산속 절이다.
수타사를 나오면 바로 공작산 생태숲이다. 생태숲 자리는 예전 수타사에서 경작하던 논이었는데, 이제는 동식물의 서식 환경을 보호하고 다양한 생태체험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생태연못 탐방로로 온통 연잎으로 뒤덮인 연밭이다. 그 사이로 놓인 부드러운 곡선의 데크 위를 걷는 이들의 풍경이 그림 같다.
산소길은 대부분 흙길이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깊은 숲속이다. 오래된 홍우당 부도가 숲길 옆으로 자연스럽게 나란하다. 부도는 부처나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다. 그 길을 지나면 정말 빽빽한 숲속이다. 폭도 좁아서 나란히 걷기보다는 홀로 걷기 좋으니 숲을 자연스럽게 즐기면 된다. 막상 숲에 들어서면 마치 밀림에 온 듯 오래된 숲속 풍경에 놀란다. 얼기설기 나무줄기가 양쪽으로 서로 얽혀 고개를 숙여 지나가야 하고, 빼곡한 나무 사이로 하늘이 빼꼼히 보이는 것 또한 깊은 산중에 파묻혔음이 느껴진다. 걷기 좋은 완만한 오솔길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 순간 새와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자연 속에 내가 있다. 짙은 풀 냄새가 나를 둘러싸고, 비로소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 초록이 가장 초록다운 숲이다. 싱그러움이 가슴속 가득 찬다. 역시 산소길이다.
수타사의 산소길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홍천 읍내로 장 보러 가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다가 쉬어 가라고 쉼터가 있지만 힘들 것 없으니 그냥 계속 천천히 걷게 된다. 신봉마을을 반환점 삼아 돌며 시골 마을의 평온함도 얻는다. 수타사 계곡이 흐르는 출렁다리 소 구간에서 물소리 들으며 멍하니 쉬면 된다. ‘’은 소나 말 등의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여물통인 구유를 뜻하는 강원도 방언이다. 계곡이 마치 구유처럼 생겼다 해서 소라 불린다.
나무가 바람에 사사삭 흔들리는 나즈막한 소리,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숲 내음, 흙 내음, 초록의 색감만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 한참을 걸었어도 가뿐하다. 후텁지근하고 끈적이던 더위도 잊었다. 숲이 깊어 햇빛도 저만치에 있다. 산소길에선 다만 마음껏 숨 쉬고 청량한 산속의 운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초록을 실컷 눈에 담았다. 천천히 한숨 돌리며 용담에 다다르니 계곡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줄을 이어놓았다. 바위와 물의 깊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부터 용이 승천했다는 용담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메워져 평범한 소(沼)의 모습이다.
운동화를 툭툭 털며 산소길을 내려가다 옆길로 고개를 돌려보니 산림치유쉼터의 숲속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야말로 신선놀음 중이시다.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 숲속에 쉼터와 명상 공간이 마련되어 시원하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모습이다. 어딜 보아도 산소 뿜뿜. 보는 사람 마음도 시원하다.
홍천의 자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홍천을 다녀보면 무궁화 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마을길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무궁화공원, 무궁화테마파크, 무궁화수목원, 체험관 등 온통 무궁화 꽃 도시다. 이는 홍천군이 우리나라 무궁화 메카로 선정되어 무궁화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조성됐기 때문이다. 무궁화 명소인 홍천의 무궁화수목원을 찾았을 때는 꽃이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궁화수목원은 국내 최초로 무궁화를 테마로 조성한 공립수목원으로,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각 테마별로 남궁억 광장, 무궁화 조형물, 품종원, 미로원과 16개의 주재원을 비롯한 숲속 산책로, 숲속 도서관 등 즐길거리가 마련돼 있다. 특히 무궁화가 한창 피어나는 8월에는 ‘나라꽃 무궁화 홍천 축제’가 열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수목원 입구에 길게 이어지는 280m 산책로 끄트머리에 위치한 무궁화(Rose of Sharon)의 집이 연출하는 풍경이 시선을 끈다. Rose of Sharon. 서양 사람들은 무궁화를 이렇게 부른다. 샤론의 장미는 성스럽고 선택받은 곳에서 피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꽃이 우리 민족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희망의 빛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설명이다.
무궁화의 집을 둘러싼 푸른 들판엔 코스모스가 자라고 있었다. 무궁화와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난 들판의 풍경은 홍천의 핫플레이스 예약이다. 현재 야간 경관 조명으로 은하수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연출되어, 데이트 커플들이 찾아오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곳이다.
홍총떡과 올챙이국수
홍천의 맛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저렴하면서 맛도 좋은 서민 음식 홍천메밀총떡(홍총떡)은 시장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홍천의 메밀로 만든 반죽을 얇게 부쳐서 준비한 소를 넣고 드르르 만 홍총떡은 홍천의 대표 향토음식이다. 구수하고 개운한 김치나 무채 양념의 순한맛과 매운맛, 강원도 제철 나물이나 시래기를 넣은 나물맛으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홍천중앙시장에 가면 총대를 닮아 총떡이라는 홍총떡과 메밀전, 올챙이국수 등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또 한 군데, 전직 청와대 셰프가 운영한다는 음식점에서 명태회막국수와 낙지만두도 먹어볼 만하다.
홍천 여행
수타사 산소길 :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덕치리 5-3
교통 : 수도권 기준 자동차로 약 두 시간. 대중교통-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홍천종합버스터미널까지 약 한 시간 반 소요
홍총떡 : 홍천중앙시장 및 홍천 각 관광단지에서 판매. 홍천 오일장 1, 6일. 장날 아니어도 홍총떡은 영업 중
옛사람들은 유장한 강이기도, 깊은 계곡이기도,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폭포이기도, 때론 굽이치는 파도이기도 한, 그 물을 보면서도 그 뿌리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즉 “물을 보는 데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봐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는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만사의 근본을 깨치려 애썼다지요. 깊어가는 가을 수천만 년 동안 강물에 쓸려 반들반들한 돌 위에 배 깔고 턱 괸 채 날로 짙푸르러지는 한탄강을 보며,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 강의 시원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과 함경남도 안변 사이 해발 590m의 추가령에서 발원한 한탄강. 현무암 평원이 갈라지며 만들어진 수십 m 높이의 협곡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데 총연장 140km 가운데 60km를 북녘에서 흐릅니다. 이어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연천 일대 80km를 굽이친 뒤 임진강과 합류합니다. 깎아지른 주상절리와 검은 현무암, 짙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한탄강에 가을이 오면 우리의 가을꽃들이 피어나 그 어떤 문인화도 흉내 내지 못할 무위자연의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포천구절초, 산국, 개미취, 패랭이꽃, 투구꽃, 서덜취, 용담, 배초향, 미역취, 고마리, 가시여뀌, 강부추 등등.
특히 한반도 내륙의 유일한 ‘화산하천’으로 유난히 계곡이 깊고 휘돌아가는 곡선이 날카로운 한탄강에는 현무암뿐 아니라 유연하고 부드러운 화강암 바위가 많기로 유명한데, 억겁의 세월 이리저리 휘도는 물살에 마모되고 둥글어진 거대한 화강암 바위 틈새마다 해마다 4월 새로 돋았다가 11월이면 스러지는 가냘픈 풀꽃이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강변에서 자란다고 강부추라 불리는 여러해살이풀인데, 불과 달포 전만 해도 장맛비와 폭우에 전초가 잠겼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내닫는 급류에 수없이 이리저리 휩쓸렸을 텐데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보랏빛 꽃을 화사하게 피우니 참으로 대견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는산부추에서 한라부추까지 국내에서 자라는 27개 부추속 식물의 하나인데, 파 뿌리 모양의 비늘줄기를 땅속에 묻고 그 위로 쇠젓가락 정도 굵기의 꽃대를 20~50cm가량 곧추세운 뒤 9~10월 그 끝에 탁구공 모양의 자주색, 또는 드물게 흰색 꽃을 피웁니다. 이른바 산형 꽃차례라 불리는 둥근 꽃차례에는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80개까지 꽃이 달립니다. 잎은 길이 10~40cm, 폭은 꽃대처럼 가늘어 2㎜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2~5개가 돌려나는 잎의 단면이 원통형이거나 뒷면이 다소 눌린 형태이며, 속은 비었으며 잎줄기는 없습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나오는 설명의 전부다. 2003년 최혁재 충북대학교 교수 등이 한탄강 강변에서 자라는 종이 지금까지 중국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Allium longistylum Baker로서, 기존에 명명했던 실부추나 한라부추와는 뚜렷이 구별된다며 강부추란 국명을 신청하는 논문을 발표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강부추는 이후 강원도 화천 북한강과 경기도 파주 임진강 주변은 물론, 충북 등지에서도 생육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호인들이 강부추를 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은 강원도 철원의 직탕폭포와 송대소 등 한탄강 일대 명승지다.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동네 책방을 되살려낸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책 산업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이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을 설계하며 자연스럽게 “책방이나 내볼까?” 했던 말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우리 동네 책방들을 찾아 소개한다.
블로그에 소개된 사진만 언뜻 보면 강원도 깊은 산속 같다. 어라? 주소를 보니 용인이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약 45분), 양지에서 하차한 후, 택시를 이용(10여 분)하니 금세 도착이다.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용담저수지 건너편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만 벗어나도 이렇게 깊은 숲을 만날 수 있다.
‘생각을 담는 집’의 주인장은 임후남 씨다. 오랫동안 잡지의 인터뷰어로 이름을 떨쳤던 기자 겸 작가다. 2008년부터 1인 출판사 ‘생각을 담는 집’을 운영하다 2018년 용인 원삼면에서 동네 책방을 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카페에서 커피도 내리고 차도 우려낸다. 북스테이를 이용하는 투숙객들에게 조식을 근사하게 차려내는 호텔리어 역할까지 1인 5역을 해낸다.
어떻게 산속에서 책방을 열 생각을 했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됐는데 아무 일 안 하고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은퇴 후에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시골에서 매일 의미 없이 사는 건 체질상 맞지 않았다. 일도 하고 시골생활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북카페를 해보자”는 의견에 서로 동의했다.
결정을 한 뒤에는 사방팔방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고생했다. 열망이 강해서였는지 우리가 딱 원하는 공간을 찾게 됐다. 이 집은 원래의 건축주가 황토벽돌로 지은 4층 건물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 사용하기에는 방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단절돼 핸드폰도 끄고 TV도 안 보고 책 읽으며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북스테이까지 운영하게 됐다.
마침 그 무렵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근교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거나 휴식을 취하는 트렌드가 생겨나면서 북캉스(책+바캉스) 혹은 북스테이(책+숙박)란 말이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해 더 힘을 얻었다.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족의 행복도가 높아진 게 무엇보다 만족스럽다.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신간서적 소개를 담당할 만큼 책을 좋아하고 누구보다 많이 읽었다. 저쪽 서가에는 그동안 내가 읽어온 3000여 권의 책들이 있다. 북카페를 하면서 서재까지 갖게 된 셈이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손님들 중에 내 손때가 묻은 책들을 펼쳐 읽으면서 감개무량해하는 이도 많다. 어느 날은 책 속에 붙여놨던 포스트잇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지?
다양하다. 자녀와 함께 오는 젊은 부부가 많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맘껏 책을 고르고 구입한 후 산속 의자에 앉아 해거름을 보며 독서를 한다. 잠깐 책을 놓고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밤에는 반딧불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젊은 엄마들의 만족도가 높다.
최근에는 노부부가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 내가 ‘시골책방입니다’란 책을 얼마 전에 출간했는데 그 책을 보고 이곳이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책방지기 추천으로 문화 분야의 책 10여 권을 구입하고 방에 올라가시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재미있게 잘 읽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곤 또 10여 권을 구입했다. 이럴 때 제일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낀다. 내가 추천한 책을 읽고 인정하는 거니까…. 이런 게 동네책방의 매력 아닐까 싶다.
이 책방만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동네 책방을 찾는 분들은 정말 책을 좋아하고 문화 관련 모임에도 열성적이다. 그러다 보니 찾아오시는 분들의 수준이 매우 높다. 그분들이 만족할 만한 책을 추천한다는 것이 내게는 새로운 도전 같다. 그래서 책도 더 열심히 많이 읽는다. 신간을 추천하기도 하고 내 인생의 책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동네 책방을 즐겨 찾는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책방지기의 북큐레이션이 아닐까 싶다.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는 작가와의 대화다. 그림책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하는 분이 많다. 시 창작교실, 에세이 창작반, 책과 함께하는 서점 음악회 등 소소하게 준비한 프로그램도 있다. 북클럽 회원들에게 초청장도 보내고 홍보도 한다. 참, 얼마 전엔 모닥불 피워놓고 모닥불 시낭송회를 했는데 호응이 좋았다. 생각보다 어린 자녀들이 더 집중하면서 참여하더라. 부모, 자녀들 모두 만족해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 나 이 말 꼭 하고 싶다. 나이 들어 할머니가 돼도 우리 책방에 오면 신간을 추천해줄 수 있는 그런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 늙어서도 책을 놓지 않고 꾸준히 책과 함께 지내는 삶이 최고의 행복 아닐까 싶다.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동네 책방인 것 같다. 돋보기 쓴 할머니가 권해주는 신간… 뭔가 그림이 멋있지 않나?
남과 북으로 땅이 갈리고 길이 막힌 지 오래. ‘분단 50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0년을 넘어섰습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식물 분야에서도 각종 도감에 나오는 엄연한 ‘우리 꽃’들이 갈수록 이름조차 생소해지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집니다. 노랑만병초니 두메양귀비, 구름범의귀, 개감채, 홍월귤, 두메자운, 비로용담, 화살곰취, 구름꽃다지, 두메분취, 구름국화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에서 자라는 각종 북방계 식물들이 그들입니다. 이 중 노랑만병초와 홍월귤, 비로용담 등 몇몇은 설악산과 한라산 등 극히 제한된 곳에서 극소수의 개체를 근근이 보존하고 있지만, 대개는 남한 지역에서의 자생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백두산과 연변 지역은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꽃’들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물론 내 나라 내 길이 아닌, 남의 땅을 통해 ‘우리 꽃’을 만나러 가야 하는 현실이 불편하고 불만스럽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다시 만나 힘차게 끌어안아야 할 ‘우리 꽃’이 거기에 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카메라에 담아 널리 알립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두산과 그 일대의 ‘우리 꽃’을 만날 수 있는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9월이면 눈이 내리고 이듬해 5월 말이 되어야 새싹이 움트면서 6~8월 3개월 동안 모든 꽃이 피었다 집니다. 그 짧은 기간 천지 주변은 희고 붉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천상의 화원으로 변모합니다. 그 많은 고산식물 가운데에서 오늘 소개하는 꽃은 남한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가솔송입니다. 그렇다고 북녘 맨 끝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라 왠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그런 꽃이 아닙니다. 백두산의 대표 야생화 중 하나인 건 분명하지만, 그 아래 함남 검덕산과 차일봉 일대를 거쳐 평남 맹산·영원·대흥군에 이르기까지 해발 1000m 이상 북녘의 고산 초원 지대에 폭넓게 분포합니다.
6월 중순 백두산, 자작나무와 사스래나무 군락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수목 한계선 위로 들쭉나무, 월귤,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콩버들, 좀참꽃, 가솔송, 시로미, 백산차 등 풀처럼 키 작은 나무들이 나타납니다. 그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무수한 꽃송이를 레드 카펫 깔듯 눈앞에 펼쳐놓는 가솔송. 작은 항아리 모양의 꽃만으로도 깜찍하기 이를 데 없는데, 눈부신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채 이슬을 머금은 진홍색 가솔송 꽃들의 반짝거림이란….
가는 잎이 솔잎을 닮아 그 이름을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솔송은 매송(梅松) 또는 송모취(松毛翠)라고도 불리는데, 항아리 모양에 뾰족한 입까지 꽃을 가만 살펴보면 잘 구워진 매병(梅甁)의 미니어처와 똑 닮았습니다. 키 작은 나무여서 다 자라야 높이 10~25cm에 불과합니다. 줄기 밑 부분에서부터 옆으로 누우면서 많은 가지가 갈라집니다. 좁고 긴 잎은 빽빽이 나는데, 잎의 뒷면 가운데에 흰색의 털이 있습니다. 꽃은 6~8월 묵은 가지 끝에 2~6개씩 달려 땅을 보고 핍니다. 개개 꽃의 크기는 7~8mm에 불과하지만, 전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 보입니다. 우리나라 외에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합니다.
용담(龍膽)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 중 하나입니다. 보통 논두렁이나 저수지 인근에서 만나곤 합니다. 여러해살이풀이기 때문에 난 자리를 기억해두면 계속 즐길 수 있습니다. 용담의 꽃말은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입니다. 복효근 시인은 이 꽃말을 제목으로 한 시에서 헌신적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꽃피는 일이/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꽃은 피어 무엇하리//당신이 기쁨에 넘쳐/온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중략) 그렇게 나는/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Tip
용담은 색연필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재료인 철펜을 많이 써서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잎 안쪽에 점이 많은 것이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점의 색이 아주 흰색이 아니기 때문에 스카이블루나 퍼플 컬러를 연하게 색칠한 뒤 점의 위치를 고려하여 굵은 철펜으로 지그시 눌러 자국을 내고 그 위에 다시 어두운 톤을 채색합니다. 얇은 꽃잎의 표현을 위해서 블랜딩 펜으로 색을 칠하듯 블렌딩하면 비교적 쉽게 얄팍한 꽃잎이 만들어집니다. 꽃의 아랫부분은 레드바이올렛과 퍼플, 그린 톤을 섞어 칠합니다. 이파리 채색에서도 마찬가지로 명암의 강약을 통해 하이라이트의 위치를 강조합니다. 그다음 단계로 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명암과 컬러의 변화에 따라 더 어두운 그린, 옐로, 블루 등의 색들을 더하며 채색합니다.
이해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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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실내환경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과 신구대학교식물원 보태니컬아트 전문가 과정의 겸임교수이며 한국 보태니컬 아트 작가협회(KSBA)와 보태니컬아트 아카데미 ‘련’의 대표다. 영국 보태니컬 아트 작가협회(Society of Botanical Artist)의 Annual Exhibition 2017에 참가하는 등 국내외 각종 전시에서 활동 중이다.
수은주가 40℃까지 치솟는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8월 4일부터 5박 6일간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그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백두산 탐방의 목적은 단 하나. 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 등에 등재된 엄연한 ‘우리 꽃’이지만 자생지인 북한 지역에는 갈 수가 없어 만나지 못하는 야생화들을,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하는 백두산에서라도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언젠가 북녘 땅에 직접 가서 반갑게 만나야 할 우리 꽃을 마음에 담아놓고 기억하는 것이,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백두산에서 가장 가깝다는 연길(延吉)공항 기온은 서울보다는 다소 낮았지만 역시 36℃ 정도여서 뜨거운 열기가 한반도에 못지않았습니다. 도심을 벗어나자 곧 들녘에 노란색 마타리가 줄지어 핀 게 우리 산이나 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으로 한 발 들어서자 ‘북부 지방에 다소 생산되나 중·남부 지방에서는 별로 볼 수 없다’는 방풍과 ‘서흥(황해도), 회령(함경도) 및 경성(함경도) 근처에서 자란다’는 실쑥을 비롯해 원지, 절국대, 금혼초, 좁은잎사위질빵, 황금 등 남한에서는 멸종됐거나 드물게 자라는 북방계 식물들이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동행한 탐사대원들이 처음 대면하는 우리 꽃에 환호성을 지릅니다.
날이 바뀌어 백두산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서울과 진배없던 날씨가 서서히 바뀌더니 먹구름이 끼고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새벽녘부터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 백두산 정상까지의 셔틀버스 운행은 끊겼다는 소식. 일단 중간 지점인 왕지(王池)까지 가서 주변을 돌아보며 추이를 보기로 합니다. 해발 1400m 지점인 왕지 일대에는 참취와 민박쥐나물, 도깨비엉겅퀴, 분홍바늘꽃, 조밥나물, 각시취, 그리고 여러 종의 산형과 식물 등이 가득 피어나 ‘야생화 초원’이란 명성을 뽐냅니다. 서너 시간을 보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후 2시, 악천후로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다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대신 다음 날 새벽 2시 재도전을 약속합니다.
“아무리 일기가 불순한 고산이라 해도 설마 한여름에 1박 2일간이나 비가 오겠느냐”고 큰소리쳤지만, 잠을 설치며 애태운 보람도 없이 다음 날에도 빗줄기는 긋질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탐사대를 태운 차량이 일단 정상 바로 밑까지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새벽 3시 20분,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1432개 계단을 올라 2750m 서(西)백두 정상에 섭니다. 비는 쏟아졌지만 서서히 날은 밝아, 최정상 능선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흰색과 연한 분홍색을 띤 바위구절초 행렬입니다. 그 곁에 실타래 모양의 흰 꽃을 곧추세운 산오이풀의 풀빛 군락이 펼쳐집니다.
‘단 5분만이라도 열렸으면….’ 오전 6시 무렵까지 2시간 반 넘게 빗속에서 기다렸으나 끝내 안개는 걷히지 않습니다. 내려오는 길 계단 옆에 산용담이 서너 송이 보이더니, 9부 능선 아래로 내려서자 가파른 초지에 삐죽삐죽 돋아난 산용담의 미색 꽃봉오리와 비로용담의 보랏빛 꽃봉오리가 빼곡합니다. 그 곁에 검게 익어가는 들쭉나무 열매와 꽃이 진 두메분취, 돌꽃, 가지돌꽃, 구름범의귀, 좀참꽃 등이 나란히 엎드려 백두산에는 8월 초순 이미 가을이 닥쳤고, 눈이 펄펄 쏟아져 켜켜이 쌓이는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려줍니다.
바위구절초를 에워싼 안개 너머 짙푸른 천지를 보지 못한 그 큰 아쉬움은 유령란과 쌍잎난초, 큰송이풀, 대송이풀, 왕별꽃, 실별꽃 등 남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북방계 식물들이 있어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특히 ‘부전고원에서부터 백두산 지역까지 북부 지역 침엽수림 밑에서 자란다’는 유령란은 만나기도 어렵고 개화기를 맞추기도 쉽지 않다는데, 만개한 개체를 여럿 만났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리처드 포티가 “낯선 환영을 본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고 말한 바 있듯,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유령처럼 사라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말입니다. 콩팥 모양의 잎을 마주 단 쌍잎난초 또한 백두산 지역 침엽수림에서만 자란다는데, 다행히 스러지기 직전의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