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떠나는 감성 여행, 전북 진안

입력 2025-10-20 07:00

[명소 답사기] 용담호 환경조각공원을 지나 마이산으로

새벽길을 달린다. 멈춤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만이 어둠을 가른다. 도시의 소음 따윈 저 멀리 사라지고, 정적 속에서 서늘한 공기가 숨을 쉬듯 흐른다. 차창을 스치는 짙푸르고 어두운 새벽 풍경 속으로 지난밤의 잔향이 흩어지는 중이다. 그 길 끝에 전북 진안고원의 푸른 새벽이 열리고 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용담호의 새벽

수면 위로 나지막이 피어오르는 용담호의 물안개는 아직 어둠과 섞여 있다.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진안의 용담댐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다목적댐이다. 이 지역권의 생활용수 해결을 목적으로 건설된 용담호는 진안군의 1개 읍과 5개 면을 수몰시켜 만든 거대한 산중 호수다.

용담댐은 지역민들에게 살아갈 물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댐이 담고 있는 엄청난 물의 양 덕분에 계절마다 이색 풍경이 펼쳐진다. 기온과 담수량에 따라 달라지는 물안개의 풍경 사이로 날마다 신비로운 자연을 만난다. 주변에 시설물도 별로 들어서지 않아 도심에서 뚝 떨어진 자연 속에 푹 파묻혀보는 기분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교량으로 연계된 댐 일주 도로가 일품이다. 약 61km에 이르는 호반 도로의 구간마다 독특한 풍경을 지녔다. 호수 위의 수많은 다리를 지나다 보면 계절의 정취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은데 오래 걷는 게 쉽지 않거나 등산처럼 힘든 건 내키지 않는다면, 진안으로 훌쩍 달려가 볼 만하다. 바람을 가르며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용담호반을 지나는 친환경 라이딩은 멋진 선택이다. 천혜의 자연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 물길 따라 담백하고 서정적인 시간이 된다. 호남의 지붕이라 일컫는 진안고원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섬진강이 되고 금강이 됐다. 자연스러운 물길이 아름다운 진안이다.



용담댐 상류에 자리 잡은 주천생태공원은 자연 친화적이어서 날씨에 따라 신비로운 일출을 볼 수 있는 포인트다. 걷는 길마다 테마가 있다. 군데군데 피어난 붉은 꽃무릇이 예쁘다. 넓은 생태공원과 용담호 주변의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부스스 아침을 깨우며 맞아준다. 이윽고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햇살과 데칼코마니를 이룬 반영이 물안개와 어우러져 숨을 멈춘 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영화 속의 어느 호숫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다. 매시간 매 순간이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이 땅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누려본다. 한낮 기온과는 달리 찬 새벽공기마저 상쾌하다.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더니 물속의 작은 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의 방향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고, 호수의 담수량에 따라 물안개의 풍성함이 달라진다. 물안개는 우리에게 그 아스라함을 오랫동안 보여주지 않는다. 금방 사라지는 자욱한 물안개 속으로 호수의 잔물결에 새벽빛이 반짝반짝 튕겨나간다. 푸른 하늘과 아침 햇살을 담은 맑은 호수 저편으로 가을 색감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산책길의 쉼터, 용담호 환경조각공원

용담호에서 마주한 물안개의 아침 의식을 마치고 호수 언덕 위로 오른다. 제방을 따라 느긋하게 걷다 보면 타일을 이용해 표현한 벽화 작품들이 이어진다. 분주하게 움직였던 이른 아침 물안개의 여운을 즐기며 차분한 휴식을 겸한 여유를 가져볼 시간이다. 제방 위에서 풍경화를 바라보듯 푸른 하늘과 잔잔하게 빛나는 용담 호수를 내려다보며 쉼을 얻는다.

호수 위편으로는 너른 광장이다. 이 지역 작가들과 협업해 조성한 용담호 환경조각공원이 펼쳐진다. 바로 옆의 물문화관은 전시 작품과 영상으로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열린 체험 공간이다. 환경조각공원은 일상 속 폐품을 재활용해 만든 조각 작품들을 전시한 자연 속의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자연과 환경, 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자유롭게 전시돼 있다. 스토리가 담긴 환경 작품을 통해 예술과 환경적 메시지를 동시에 전한다. 광장 아래엔 생태공원과 담수호가 있다. 잔잔한 자연 속에서 200여 점의 조형물을 감상하는 일은 멋지다. 한가로이 걸으며 현대사회의 환경파괴와 인간소외에 따른 마음가짐도 짚어보는 기회가 된다.



순박한 자연에서 쉼, 섬바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용담 섬바위는 용담호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용담댐 하류 강가에 섬처럼 솟아 있다. 막상 들어서면 고즈넉한 첫인상이 편안하다. 웅장한 섬바위를 마주 바라보고 있으면 아늑하고 차분해진다. 금강이 흐르는 캠핑장 섬바위는 몇 년 전 가수 이효리를 비롯한 핑클 멤버들이 ‘캠핑클럽’이라는 타이틀로 캠핑을 즐기며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다. 이곳 용담 섬바위가 그들의 첫 정박지였다. 요정들이 살 것 같은 비현실적인 자연이라는 그들의 말처럼 천년송을 품은 10m 높이의 섬바위가 물속에서 고고하다. 물가의 수초들은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고 바람에 살랑인다. 가히 물멍 명당이다. 누구라도 하루 종일 이 속에 푹 파묻히고 싶을 듯하다. 잠깐 바라보고 가려다 자동차 트렁크의 캠핑 의자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옆으로는 숲속 산책로가 있다.



마이산, 신비함 속으로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馬耳山)은 약 1억 년 전의 퇴적층이 쌓인 호수 바닥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났다. 이때 동과 서로 생겨난 신비로운 봉우리가 숫마이봉과 암마이봉으로 불린다.

봉우리의 바위 면을 눈여겨보면 작은 벌집 동굴과 움푹한 구멍들이 보인다.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생겨난 타포니 현상은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지형이라고 한다.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군데군데 나무들이 자라고 산 중턱 바위틈에는 약수가 흐르는 신비한 산이다. 마이산은 철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다. 사양저수지 언덕에 서면 두 개의 봉우리가 물속에 담긴 반영을 볼 수 있다.

마이산에서 기이한 돌탑을 거느린 탑사를 빠뜨릴 수 없다. 조선 말기의 기인 이갑용 처사가 쌓았다는 설이 전해지는 80여 기의 돌무지 탑이다. 긴 세월 심한 기후변화나 비바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껏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탑사에서 300m 정도 숨차게 걸어 오르면 마이산 안뜰의 절집 은수사가 터를 잡고 있다. 고려시대 장수였던 이성계가 조선 왕조의 꿈을 꾸며 백일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은수사는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은처럼 맑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가을을 초대, 부귀면 메타세쿼이아길

옛 지방 도로 모래재길이기도 한 진안의 부귀 메타세쿼이아길은 1.5km 정도 구간이다. 도로 양옆의 산책로에 들어서면 울창한 숲에 들어온 기분이다. 오래된 나무에서 특유의 향기가 뿜어져 나와 산림욕장의 힐링을 맛본다. 흔히 쭉 뻗은 직선의 가로수길과는 달리 살짝 높낮이가 있어 여유롭게 돌아가는 곡선의 모양새가 이 길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런 풍경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CF에서 종종 보게 되는 길이다. 진안의 메타세쿼이아길이 환영하듯 멋지게 가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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