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키덜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키덜트(Kidult)는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아이와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뜻한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년의 키덜트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서 주류로 떠오른 중년 키덜트의 파급력과 그 이유를 짚어봤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네버랜드 신드롬’을 언급했다. 네버랜드는 피터팬과 친구들이 늙지 않고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곳이다.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이 많아지는 트렌드를 ‘네버랜드 신드롬’이라고 표현했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더 이상 나이 들고 싶어 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네버랜드 신드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리턴(Return) 유형이다. 배우 한소희가 착용해 3000원짜리 공주 세트가 돌풍을 일으킨 것, 포켓몬 빵 품절 대란 등을 이 유형의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키덜트는 리턴 유형에 속한다.
네버랜드 신드롬의 두 번째 유형은 스테이(Stay)로, 나이 듦을 거부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유형의 사람은 동안 외모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승진을 마다하면서까지 현 상태에 머물고자 한다. 세 번째로는 아이들처럼 쉽고 재밌고 명랑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플레이(Play) 유형이 있다.
고령화 시대와 키덜트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 6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키덜트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은 주력 세력이다.
키덜트가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근본적인 이유는 전 세계가 빠르게 늙어간다는 데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회가 유년화되고 있다. ‘이 나이 때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나이 개념이 흐려지고 있다.
키덜트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장난감, 만화책, 만화영화 등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소비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런 키덜트를 향한 시선은 몇 년 전만 해도 부정적이었다. 유치한 취향을 가진 철없는 어른으로 봤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피터팬 증후군’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키덜트를 향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의 장막이 걷히자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시대가 됐다. 이로 인해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키덜트가 늘어났고, 소비 시장 또한 커졌다. 자녀와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기는 키덜트 부모도 많아졌다. 드론, 무선조종 자동차, 레고 등을 가족이 함께 즐기며 유대감을 쌓는다.
키덜트가 급증한 두 번째 원인으로 미래 불안감이 거론된다. 키덜트는 불안한 미래와 힘든 현실로 인해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에 젖으며 위안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실내 활동이 증가하면서 장난감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유명한 장난감 회사 해즈브로는 2019년 47억 2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64억 2000만 달러로 순수입이 증가했다. 동기간 바비 인형 회사 마텔의 순매출은 45억 달러에서 54억 6000만 달러로 늘었다.
문화 발전과 중장년 키덜트의 성장
현재 시장을 주름잡는 키덜트의 중심에는 중장년층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스타워즈, 포켓몬 등을 보유한 장난감 회사 재즈웨어스의 제러미 파다워 최고브랜드책임자는 CNBC에서 “1970~80년대에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장난감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 시기에 팬덤을 경험한 세대가 현재 30~40대에 접어들었다. 이 사람들이 키덜트의 시작이 됐다”라고 말했다.
현재 상영 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가 흥행하는 것을 봐도 중장년층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새해 첫 100만 영화다. 1990년대 만화 ‘슬램덩크’를 즐겨 본 중장년층이 오래 간직한 팬심을 드러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오덕사’(오리엔탈 덕후 사관학교)를 운영 중인 라이너는 게임에 주목해 말했다. 그는 “중장년층을 1980년대생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생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다. 게임을 하기 위한 용도로 컴퓨터를 구매할 정도였다”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게임을 취미로 이어가는 것이다. 중장년층은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도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종합하면, 세상은 나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젊어지고 있다. 나이보다 젊게 사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됐다. 앞으로 키덜트는 더욱 많아질 것이며, 개인과 사회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개인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로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창구가 된다. 시장 및 사회는 키덜트로 인해 활기와 역동성을 잃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덕사’ 교장 선생님, 라이너
“중장년 키덜트여,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유튜버 라이너는 채널 ‘오덕사’(오리엔탈 덕후 사관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맡고 있다. 오덕사는 만화·애니메이션·게임을 심도 있게 분석해 소개하는 채널이다. 채널의 주요 연령층은 30·40대다.
“10·20대부터 40대 중반까지, 오덕사 구독자분들의 연령층은 다양합니다. 그중 30·40대가 제일 많은데요. 중장년층은 아무래도 추억의 만화,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좋아하시더라고요. ‘기생수’, ‘에반게리온’을 소개했을 때 반응이 특히 뜨거웠죠.”
스스로 키덜트라고 말하는 라이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 만든 채널이 바로 오덕사다. 라이너는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다. 만화방, 비디오방을 전전하는 것을 넘어 해적판 비디오를 구하러 용산을 찾아가곤 했다고.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었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게임도 좋아했고, 영화와 소설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았죠.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문화의 힘이 되게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문화와 예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문화생활은 라이너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중 그의 인생작은 무엇일까. 라이너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꼽았다. 마크로스는 거대한 우주선인데, 지구가 멸망하면서 마크로스에 탄 사람들이 마지막 인류가 된다. 그들은 외계인 젠크라디와 싸움을 벌인다.
“외계인 젠크라디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어요. 바로 문화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인류는 머리를 쓰죠. 마크로스 안에 당대의 아이돌 가수 린 민메이가 있었는데, 우주 콘서트를 펼치죠. 음악을 듣고 젠크라디들은 붕괴됩니다. 거기서 ‘컬처 쇼크’(문화 충격)라는 말이 처음 나왔어요. 제 영화 유튜브 채널 이름도 ‘라이너의 컬쳐 쇼크’죠. 1980년대에 그런 스토리가 나왔다니,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덕사에서 다루는 콘텐츠 중 게임의 비중은 적지만, 라이너는 여전히 게임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는 수중에 돈이 없어서 게임을 즐기지 못했는데, 현재는 시간이 없어서 게임을 못 한다고.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커서 게임 패키지를 삽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 상상으로만 게임을 하고 진열장에 넣어두죠. 그렇게 쌓인 게임이 한가득이에요.”
라이너는 키덜트인 자신의 취미 활동에 대한 장점을 늘어놓았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특별한 장비 없이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취미 활동이다. 또 누구를 상처 입히거나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건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키덜트로 살 것이라는 라이너는 동년배 중장년층에게 자신처럼 ‘덕후’가 될 것을 추천했다.
“중장년층에게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고 해서,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나쁜 짓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렸을 때나 하던 유치한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숨은 명작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취미 활동을 당당하게 즐기면서 ‘원더풀’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인파와 소음이 들끓는 서울에서 조용한 휴식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편리와 매력도 많지만, 불편과 불안도 많은 게 도회다. 충분히 감정 이입할 만한 여가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점에 앉아 소주병을 쓰러뜨리는 걸로 위안을 삼는 게 고작이다. 대도시에 산다는 건 사실 부담스럽다. 뭐 좀 재미있는 곳이 없을까? 기대어 쉴 만한 언덕이 없을까? 이런 자문을 할 때 떠오르는 게 미술관이다. 수족관에 갇혀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붕어처럼 따분한 일상에 재미와 생기를 부여하는 게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노원구 중계동 중계근린공원에 있다. 공원 안에 있어 초록을 입은 미술관이다. 초록의 향연까진 아니지만 공원 녹지에서 흘러나온 초록 물이 밴 양, 외관 곳곳이 풀빛으로 청신하다. 이 미술관은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반면 문화 인프라가 빈약한 서울 동북권의 건조한 공기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예술을 만나라고, 미술과 교제하라고, 그렇게 해서 지루한 일상에 고소한 양념 같은 별미를 가미하라고 개관했다.
미술관 건립 때엔 숙고가 많았다. 공원 한편에 정해진 부지에다 어떤 형태의 건축물을 지어 공원과 좋은 관계를 맺을지 고민했던 것. 수목들 늘어선 공원 풍경과 겉도는 형상의 미술관 건립만큼은 삼가야 했다. 그러잖아도 작은 공원의 면적만 축소시키는 역효과를 불러들일 수 있어서였다. 주민들의 쉼터인 기존 공원의 가치를 해치지 않을 아이디어 고안이 필요했다. 즉 독립된 개체가 아닌 공원의 일부로 녹아드는 건축이 요구됐던 거다. 이렇게 해서 동산 형태의 독특한 미술관 건물이 출현했다.
사실 북서울미술관은 특이한 생김새로 일단 한몫을 한다. 보고 또 보고. 시선이 저절로 간다. 무심코 지나치기 힘든 형상이다. 원래 여기에 있었던 언덕을 파고 들어간 묘한 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애초 평지였던 지형에 상자를 중첩한 형태의 건물을 짓는 한편, 인위적으로 언덕을 만들어 외벽을 빙 둘렀다. 무감동한 수직 벽과 창이 있을 자리에 솜씨 좋게 언덕을 구현했다. 언덕엔 잔디를 심어 녹지대를 연출했다. 계단을 설치한 여러 갈래의 동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언덕길은 자연스럽게 공원 산책로와 이어진다. 딱히 미술관에 볼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미술관을 공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공원은 미술관을 통해, 미술관은 공원을 통해 상호 증식한다.
서울시는 2013년 ‘건축상 대상’을 북서울미술관에 주었다. 수준 높은 디자인과 시공 완성도를 인정해서였다. 설계자는 건축가 한종률. 그는 ‘과거의 흔적과 미래가 공존하는 건물을, 자연 친화적 건축을 설계해 왠지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건축을 기술적 영역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얘기도 했다. 창의력과 사회에 대한 윤리를 갖춘 장인정신의 산물로 보라 했다. 말하자면 공공성을 지닌 예술 장르의 하나로 건축을 보는 눈을 주문한 셈이다.
미술 작품은 빤한 생각과 진부한 감상으로는 나올 수 없다. 뛰어난 작가의 세계관과 상상력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보이지 않는 걸 보여주고, 넘어설 수 없는 걸 넘어서는 게 미술이다. 창작으로 세상의 허구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게 작가다. 그들의 작품은 그래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다. 또는 한계를 초월해 비상하는 우주선처럼 전위적이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 건물은 어딘가 좀 다르면 다를수록 구색이 맞는다. 세상의 배후에 관한 뉴스를 탑재하고 지상에 착륙한 소행성. 또는 감각의 제국. 미술관을 이렇게 읽으면 과한 공상일까. 아무려나, 미술관 건물은 밋밋하지 않을수록 미덕이다. 북서울미술관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을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하려면
미술관 로비로 들어선다. 널찍한 공간이라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다소 휑하지만 조도를 낮춘 조명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일부 벽면의 창과 천창으로는 자연광이 들이친다. 하얀 칠을 입힌 벽과 층계 등 구조물들이 지닌 면과 선이 다양하게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기하학적 디자인 효과엔 방점을 찍을 만하다. 전시실은 1, 2층과 지하에 있다.
걸음을 옮겨 지하 1층에 있는 어린이갤러리로 내려간다. 이곳은 3개 층을 수직으로 개방해 천장 높이가 무려 17m다. 북서울미술관은 아이들을 중시한다. 아이들의 본성과 눈높이에 맞으면서 품격마저 구비한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인간인 아동들에게 미술 체험 기회를 부여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봐서다. 이번 가을, 어린이갤러리에선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열렸다. 백남준, 이우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서도호는 두 딸과 함께 점토로 만든 ‘아트랜드’를 선보였다. 관람객으로 온 아이들은 이 ‘아트랜드’를 기반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아트랜드를 집단 창작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신비하고 복잡한 생태계를 저마다의 솜씨를 발휘해 하나하나 조형했다. 전시 기간이 끝날 쯤엔 귀엽고 아름다운 대형 설치 작품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신바람 났으리라. 관람객이자 공동 창작자로서 설치 작업에 나서는 일이 흔할까 보냐. 점토를 조몰락거려 미술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고 올라오는 꽃처럼 활짝 피어난 건 상상력이었을 테다. 빙의와도 같은 도취의 순간도 경유했겠지. 어린이 특유의 선입견 없는 자유분방으로 즉흥과 충동과 날것의 감정을 표출하며 즐겼을 것이다. 이 아이들 속에서 훗날 피카소가 나올 수도 있다. 사람은 어쩌면 태어날 때 이미 예술가다. 성장하면서, 속세의 일원으로 각질을 두르면서 예술을 잃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술 체험이 필요하다. 자유의지와 상상력의 보유 기간을 늘려 삶을 조금이나마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할 수 있어서다.
미술관에서 누리는 휴식은 즐겁다. 싱겁고 머쓱한 일상에 의미와 재미를 붙여준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점을 비트는, 가령 전복과 파격을 담은 콘텐츠에 관객은 흥미와 동요를 느낀다. 미술관들은 이를 고려해 전시기획에 나선다.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특별한 전람회가 많다. 2017년부터 매년 개최한 ‘유휴공간 프로젝트’ 역시 인상적이다.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하는 관습을 깨는 프로젝트다. 지하주차장 외진 벽면, 물품보관함 작은 창문, 카페 주방 등 뜻밖의 장소에 작품을 숨기듯 슬쩍 갖다놓았다. 무대와 배경을 뒤바꿨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걷어냈다. 삶에 도입해볼 만한 역설적 상황에 흥미가 동한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백기영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북서울미술관은 미술을 좋아하는 주민들에게 보다 풍성한 향유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미술을 낯설어하는 이들에겐? 미술관에 접근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제시해 포용한다. 이를테면 미술관에 큰 관심 없는 시니어들을 유도하기 위해 ‘청춘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영화를 상영한 것. 영화 관람 후 자연스럽게 미술 전람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백기영 운영부장의 얘기는 이렇다.
“‘청춘극장’의 인기가 꽤 높았다. 한 해에 1만 명 이상이 영화를 관람했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영화 관람과 미술 전시회 감상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다.”
젊은 층 관람에는 어떤 경향이 있나?
“과거보다 진지하게 관람하며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미술관 체류 시간이 길어졌고, 미리 전시 작가 정보를 찾아 사전지식을 지닌 채 작품과 만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우 긍정적인 추세 변화라 본다.”
그간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주요 전시회를 꼽는다면?
“2019년에 열린 ‘한국 근현대 명화전’을 꼽을 수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 30여 명의 작품을 전시해 성황을 이루었다.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심혈을 기울인 전시회였다. 최고의 예산을 투입했으며, 3년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갖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화 관람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한 전시회였다.”
북서울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에 딸린 미술관 중 하나로 2013년에 개관했다. 아직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클로드 모네, 윌리엄 터너, 제임스 터렐 등 거장 43인의 작품 다수를 보여준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의 성황은 물론, 양질의 기획전을 꾸준히 펼쳐 거둔 성과다.
어린이들이 공동 창작자로 참여한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인상적이다. 어린이 미술 교육 콘텐츠를 가동하는 미술관은 많다. 그런데 ‘아트랜드’전은 새롭다.
“기존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분히 소비적이고 획일적이다. ‘아트랜드’전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부여했다. 미술관은 화가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곳이라고만 알았던 아이들에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스펙터클과 기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전체를 상상하며 코끼리를 만들어내는 식의 조형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발현된 창의성과 상상력이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서도호 작가에게도 이런 유형의 이벤트는 처음이라지?
“새로운 시도였고 성과는 커서 서도호 작가에게도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미술관으로서도 어린이 프로그램 기획의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더 있다. 해외 미술관에서 ‘아트랜드’전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아마도 이게 확산될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든 설치 작품은 이제 어떻게 되나? 수장고로 들어가나?
“우리 미술관에 영구 소장하면 좋겠지. 그러나 영구적인 재료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고민 중이다. 안전한 소장이 가능한 특정 장소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7월, 우주여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7월 11일 오전 7시 40분에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7월 20일 오전 6시 12분에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달과 화성 탐사용 우주선 ‘스타십’을 개발해 그 뒤를 쫓고 있다. 앞다투어 우주로 떠나는 나이 든 ‘회장님’들은 로망으로 존재하던 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달에 발을 딛는 우주인을 보며 상상만 했던 우주여행, 국내에서도 정말 가능한 걸까?
시니어가 우주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제각기 다양하다.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는 “기후 변화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지구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인류의 미래가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주가 어떤지 직접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는 “영화처럼 몸이 둥둥 뜨는 무중력 상태에서 파란 지구를 내려다볼 걸 상상하면 짜릿하고 흥분된다”며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아 꿈만 꾸고 있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첫 번째로 신청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한국인이 우주여행을 다녀온 사례는 없지만, 비슷한 사건은 있었다. 2008년 4월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이야기다. 2006년 진행된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는 당시 큰 이슈였다.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우주에서 태우고 싶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손자 손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당시 예순일곱의 나이로 최고령 도전자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사회에 울림을 주었다. 이외에도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 카레이서 황진우 등의 명사가 도전해 더욱 화제를 모았지만, 우주행 티켓을 거머쥔 주인공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의 이소연 박사였다.
이 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9박 10일간 머무르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 씨는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직업 우주인으로, 그녀의 여정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민간 우주여행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1호 우주인 탄생’이라는 경사를 지켜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누구나 우주를 여행할 수 있기를 꿈꿨다.
실제로 이소연 씨의 귀환 직후 인터뷰는 시청률 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 기준 17.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국민적 관심을 인식한 듯 국내 한 관광사는 유사 우주관광 상품을 내놓았다. 2008년 판매된 ‘우주에서 살아남기-우주항공 체험과 러시아 일주 6일’이 그것이다. 관광객들은 직접 우주로 떠나는 대신, 러시아 여행 중에 모스크바의 가가린 우주훈련센터를 방문했다.
로켓보다 열기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실제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우주여행 티켓을 팔며 분위기가 달아오른 모양새지만 우리나라에선 13년 전의 유사 우주 관광상품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기술로는 짧게 보면 10년, 길게는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릴 적 상상하던 ‘달나라로 떠나는 수학여행’은 정말로 요원하기만 한 걸까.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춘 어떠한 기업이 나타나 우주여행만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한 10년 안으로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주여행 산업 진출을 꿈꾸는 국내 기업이 있냐고 묻자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의 방산·항공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며, 아직 우주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단계라서 우주여행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을 논의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본부장은 “기술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돈”이라고 콕 집어 지적했다. 우주여행에 필요한 발사체를 제작하고, 우주정거장처럼 궤도를 도는 우주호텔을 건설하는 일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우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수백억 원 수준이다 보니 일상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로켓 대신 열기구를 도입할 경우 시니어에게도 희망이 있다. 열기구를 이용하면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에서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나 체력 단련을 거치지 않아도 우주와 비슷한 환경에서 푸른 별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스타트업 ‘스페이스퍼스펙티브’(Space Perspective)는 특수 제작될 열기구 ‘스페이스십넵튠’(Spaceship Neptune)을 이용한 관광상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열기구의 강점은 로켓보다 천천히 상승해 탑승자가 버텨야 하는 중력가속도로 인한 압력이 비교적 낮다는 데 있다. 즉 탑승자의 신체 조건이 완화된다. 현재 우주행 티켓을 판매 중인 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용 로켓에 탑승하려면 2~3G를 버텨야 한다. 2~3G는 급회전을 하거나 추락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안형준 연구위원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건강한 분이라면 탑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시니어들이 ‘열기구 우주여행’을 노려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엔 국내에서도 우주여행을 성공해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허환일 충남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수요가 있다면, 외국 기업이 제작한 발사체를 타고 국내 기업이 우주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가능할 수 있다”며 “아주 빠르면 10년 후에도 일반인의 우주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니 우주여행을 꿈꾼다면 지금부터 체크리스트를 챙겨 준비해보자. 꿈꾸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고,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올 테니까.
우주비행사 시험을 통과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우주선을 탈 수 없었던 80대 여성이 꿈을 이루게 됐다. 아마존 이사회 의장인 제프 베이조스가 ‘명예승객’으로 82세인 월리 펑크를 초대한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탐사기업 블루오리진은 미국에서 1일(현지 시간) “월리 펑크가 이달 20일 명예 승객의 자격으로 우주 탐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펑크는 서부 텍사스의 사막에서 발사될 블루오리진의 우주관광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우주여행을 떠난다. 펑크와 함께 우주여행을 떠나는 동승자에는 베이조스와 그의 남동생 마크 베이조스, 2800만 달러(약 318억 원)를 내고 선정된 승객이다. 이들은 11분간 ‘우주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고도 100km 상공까지 올랐다가 무중력 상태를 4분 간 체험하고 다시 텍사스로 돌아온다.
조종사 출신인 펑크는 1960년대에 우주비행사 시험을 통과해 미국 최초 유인위성 발사 계획인 ‘머큐리 여성’ 13명 중 한 명이었다. 미연방항공청(FAA)의 첫 여성 감사관,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첫 여성 항공안전 수사관을 지내기도 했다.
펑크는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여성을 우주로 보내려는 ‘우먼 인 스페이스(Women in Space)’ 계획이 돌연 취소됐다.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단은 전투기 조종 경력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는 남자에게만 허락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펑크는 60년 만에 우주비행에 대한 꿈을 이루게 됐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펑크만큼 이 기회를 오래 기다린 사람은 없다”며 “이제 때가 됐다. 승무원이 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펑크는 마침내 우주에 갈 기회를 얻게 돼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동영상에서 “나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사랑할 것이다. 기다릴 수가 없다”고 기대에 부푼 반응을 보였다.
펑크는 우주여행에 나선 최고령자라는 기록도 얻게 됐다. 지금까지 최고령 우주비행 기록 보유자는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77세에 탑승한 남성 존 글렌이다. 그는 이 비행 후 여성도 우주비행을 한다는 것에 코웃음을 쳤다고 전해진다.
여성인 펑크가 공교롭게도 그의 기록을 깨게 됐다. 펑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그들은 ‘너는 여자라서 이걸 못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원한다면 할 수 있다. 남들이 못했던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과거를 회고했다. 펑크의 사연을 보도한 AP통신은 이를 “우주적 반전”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SF 영화 ‘승리호’가 화제를 모으면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주 영화는 시공간의 초월성이 선사하는 공포감과 끝을 알 수 없는 신비로움, 자연에 대한 압도감 등으로 마니아층이 탄탄한 장르 중 하나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1위를 달리고 있는 ‘승리호’를 비롯해 함께 비교하며 즐길만한 우주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승리호 (SPACE SWEEPERS, 2020)
SF 장르 불모지인 한국에서 우주 영화는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컸다. ‘승리호’는 그 편견을 깬 국내 최초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다. 승리호는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우주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살아가는 승리호 선원들이 엄청난 돈벌이 수단인 ‘도로시’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반적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이곳의 선원들은 ‘캡틴 마블’이나 ‘제다이’처럼 엄청난 힘을 가진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능력은 없고 갚아야 할 빚만 산더미라 세계 평화보다는 돈이 먼저인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한국인 특유의 악바리 정신과 근면성실함으로 우주에서 먹고사는 모습은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함을 선사한다. 된장찌개부터 화투까지 한국적인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소품도 관람 포인트다. 무엇보다 SF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그래픽과 사운드는 앞으로 개봉할 ‘K-SF’ 영화들에 더욱 기대감을 높인다. 태극기가 그려진 낡은 우주선이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된 말로 ‘국뽕’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마션 (The Martian, 2015)
‘승리호’에서는 4명의 선원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마션’의 ‘마크’(맷 데이먼)는 혼자다. ‘마션’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대 아레스3가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나 탐사대원 마크와 교신이 끊기면서 시작된다. 탐사대는 마크가 파편을 맞고 사망했다고 판단해 그를 두고 복귀하지만, 기적적으로 생존한 마크는 물, 불, 산소도 없는 화성에 홀로 고립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며칠도 버티지 못할 상황이다. 하지만 마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주 비행사인 동시에 식물학자인 그는 자신의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로켓 연료의 수소로 물을 만드는가 하면, 화성의 토양에 지구의 흙을 섞어 감자의 싹을 틔워낸다. 그렇게 무려 1년이 넘는 시간을 감자로 버티면서 구조대를 기다린다. 그야말로 극한의 환경이지만, 마크는 흥겨운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절망적인 하루를 씩씩하게 버텨나간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마크의 무사 기원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 고난 속에서도 긍정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작품이다.
3. 패신저스(Passengers, 2016)
우주에서 꽃피우는 로맨스는 어떤 모습일까. 재난 영화보다 SF 로맨스 장르를 선호한다면 위의 두 영화 보다 ‘패신저스’가 취향에 맞을 수 있다. 패신저스는 120년 후 개척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우주선 아발론 호에서 동면중인 ‘짐’(크리스 프랫)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에서 깨어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5000여 명이 잠들어 있는 우주선에서 혼자 90년 일찍 깨어난 짐은 새 행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져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때, 우연히 수면캡슐에서 동면중인 미모의 여주인공 ‘오로라’(제니퍼 로렌스)를 발견하고, 홀린 듯이 그녀를 깨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가까워질 무렵, 평화롭던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고, 탑승객 전원은 위기에 처한다. ‘우주판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패신저스’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속도감 넘치는 전투나 액션보다는 우주선에 고립된 설정을 통해 고독과 외로움, 사랑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근원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을 탐사하는 휴머니즘 드라마에 가깝다.
즐기는 취미가 있는가. 부자들의 좀 더 특별해 보이는 그것, 혹은 돈이 없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럭셔리 취미생활을 엿봤다.
브리지 게임에 빠진 슈퍼리치
한국 사람에게 가장 있기 있는 게임이 화투라면 외국에서는 트럼프 카드로 즐기는 브리지 게임(이하 브리지)이 인기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130여 개국 4000만 명이 이 게임에 열광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지적인 두뇌 게임’이라는 찬사가 따라다니는데, 그 명성만큼이나 이 사교 게임을 즐기는 부호와 사회 지도자도 많다. 당장 부자의 대명사로 꼽히는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이름이 나온다. 두 사람이 함께 브리지를 즐기는 모습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이 게임을 소위 광적으로 즐긴다는 소문이 나면서 브리지는 세계 최고 부자의 놀이로 인식됐다. 워런 버핏은 “브리지를 잘하는 사람 3명만 있으면 교도소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빠져 있다. 버핏과 게이츠는 브리지의 장점 등을 알리며 미국의 중·고교 학생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두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시니어 세대 치매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브리지 하면 인도네시아 최고의 갑부 마이클 밤방 하르토노도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인도네시아 최고 부자 50인’에 11년 동안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인물. 하르토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에 브리지를 넣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당시 79세의 고령에 선수로 참가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중국의 덩샤오핑 전 주석은 마오쩌둥 집권 당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며 금지했던 브리지를 숨어서까지 했을 정도로 즐겼다. 이 열성적인 정치지도자로 인해 아시아권에서 중국이 브리지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가 됐다. 이외에도 미국의 아이젠하워, 케네디 대통령,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 등이 즐겼으며, 조훈현 9단도 브리지 게임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를 품는 슈퍼리치 3인방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회장은 2000년 항공우주회사 블루오리진(Blue Origin)을 설립했다. 테슬라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2년 후인 2002년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를 만들었다. ‘괴짜 CEO’로 알려진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도 2004년 민간 우주탐사기업 버진갤럭틱(Virgin Galactic)을 설립해 우주여행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는 10억 달러(약 1조1825억 원) 이상의 개인 자금을 우주 사업에 투자했다.
버진갤럭틱의 경우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가 되면서 우주여행 사업이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고 투자가 가능한 분야임을 입증했다. 2000년대 초반 이들이 민간 우주항공사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저게 과연 가능한 발상인가’ 하며 젊은 부호의 허세로 여겼다. 하지만 장난처럼 보였던 도전은 취미에 머물지 않았고 정부산업의 축으로 보던 우주 분야의 문을 열었다.
이들 중 후발주자인 버진갤러틱은 두 회사를 제치고 2018년 12월 민간기업 최초로 탑승객을 태운 우주선의 대기권 밖 여행을 성공시켰다. 성공이 있기까지 각종 사고와 실패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주여행의 꿈에 꾸준히 다가선 결과다. 특히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민간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한 인류 최초의 여행자로서 원대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해왔다. 지난 1월 8일에는 비행기 모양의 차세대 유인 우주선 ‘버진 스페이스십 유니티’를 공개하며 차근차근 우주 정복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버진갤럭틱은 1인당 약 2억8000만 원을 내면 우주비행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저스틴 팀버레이크, 레이디 가가 등 유명 인물을 포함, 700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관광객 우주 방문 프로그램인 로켓 시스템 ‘뉴셰퍼드’를 개발해온 블루오리진은 현재까지 11차례의 시험 비행을 마쳤는데, 6명까지 탑승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귀를 자극하고 마음을 열다
남자들이 특히 빠지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자동차와 카메라 그리고 오디오다. 이들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 수천만 원을 쏟아 붓는 일이 어렵지 않게 벌어지기도 한다. 오디오필, 오디오파일 혹은 스테레오파일 등 오디오 애호가를 지칭하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전 세계에 하이파이(Hi-Fi), 하이엔드(High-End) 오디오라 부르는 고음질 음향을 추구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꼭 슈퍼리치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디오 마니아로 소개된 이는 많지만 심취해온 구력(?)으로 봤을 때 공정곤 전 효성물산 부회장 이름이 가장 눈에 띈다. 그는 고가의 오디오 장비로 음악 감상실을 꾸며왔다. 스피커의 경우 1987년 생산된 골드문트사의 아폴로그. 이탈리아 유명 미술가 클라우디오 로타 로리아가 디자인해 세계 최초로 뉴욕 MoMA에 전시됐다. 이 제품의 25주년 특별 한정판 가격은 6억5000만 원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고교 시절 오디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대학 때부터 빠져 살았다”고 말했다. 레코드판이 많을 때는 1000장이 넘을 정도였다고.
오일머니 축구 구단주, 이것이 돈의 맛
2006년, 군부 쿠데타로 태국 정치권력으로부터 추출됐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2007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시티(맨시티)를 인수한 적이 있다. 그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자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하 만수르)이 3000억 원에 샀다는 것.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성적을 보이던 맨시티를 사는 데 들어간 비용 자체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만수르는 “진정한 부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말로 인수에 관한 언급을 대신했다. 사람들은 중동 부자가 인수한 맨시티가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촉각을 세웠다.
그 후 12년 동안 맨시티의 분위기는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2011-2012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우승과 준우승을 오가며 고공행진 중이다. 만수르의 전폭적인 투자와 선수영입과 육성은 우승이 멀게만 느껴졌던 맨시티에게 기회를 제공한 셈. 2018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만수르가 맨시티에 퍼부은 돈만 2조1000억 원이다. 그 뒤 2년의 시간이 더 흘렀으니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을 것이다. 그는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소속 선수들에 대한 지원, 차원이 다른 팬 서비스, 유소년 축구클럽 후원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갔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가 선수들 몸값을 조사했을 때 맨시티가 가장 값비싼 선수들을 보유한 구단으로 나타난 바 있다. 맨시티 선수들 몸값 합산가는 10억1400만 유로(약 1조3350억 원). 특히 몸값으로 10억 유로를 넘긴 구단은 맨시티가 EPL 역사 이래 처음이다. 만수르가 맨시티 하나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지난해 말 만수르는 인도의 축구팀 뭄바이시티FC을 인수했다. 만수르가 운영하는 시티풋볼그룹(CFG)은 이 축구팀의 지분 65%를 인수했다. CFG는 맨시티를 비롯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뉴욕시티FC, 호주 A리그 멜버른하트FC,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등을 소유하고 있다. 뭄바이시티FC는 만수르의 8번째 축구팀이다.
슈퍼리치의 특징 다섯 가지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미래 부자의 이웃: 부자가 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쓴 작가인 사라 스텐리 팔라우의 연구를 통해, 미국의 600여 명 부자들이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5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바로 독서, 운동, SNS 활동, 잠, 일이다. 그러면서 부자들은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루든 한 주든 한 달이든 평균적으로 고르게 시간을 할애한다고 강조했다. 취미도 잠도 운동도 성공에 있어 모두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특히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 점에 주목하면서 워런 버핏의 경우 하루의 80%를 책 읽는 시간으로 쓴다고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도 책읽기를 강조하며 책을 통해 다른 문화와 역사와 기술, 신념을 쌓아갈 수 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특히 운동 습관은 일반인들에 비해 철저했다. 일주일에 6시간 가까이 운동을 하는데 애플의 공동 창업자 팀 쿡은 매일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피트니스센터로 향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 안나 윈투어 역시 아침 5시 45분에 일어나 테니스로 몸을 푼다고.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도 아침에 주로 테니스를 치는데 서핑보드, 수영, 자전거 등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슈퍼리치의 취미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히브리어 책 읽기
•피터 틸(페이팔 창업자) 체스 두기 (국가대표 출신)
•래리 앨리슨(오라클 CEO) 요트 타기(그의 팀은 아메리카스컵 대회에서 우승을 거뒀다)
•데이비드 록펠러(미국의 전 은행가, 사업가) 딱정벌레 수집(록펠러가 최초로 발견한 딱정벌레에는 그의 이름이 학명으로 붙었다)
•구본무(전 LG그룹 회장) 새 관찰(살아생전 집무실에 망원경이 있었고, 조류도감도도 발간하고 새 사랑 사이트도 있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어쩌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일본 영화의 고전인 '라쇼몽'에서 똑같은 사건을 등장인물 4인이 모두 다르게 기억하는 설정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았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진실이라는 것이 진정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이런 진실과 허구와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최고의 프랑스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감독은 의외로 일본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1세기 일본의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정상급 감독이다. 좀도둑으로 이루어진 유사 가족 이야기인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도 감독이 천착하는 가족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는 전설적인 대배우인 파비안느(까뜨리느 드뇌브)가 회고록을 출판하고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침 딸 뤼미르(줄리에트 리노슈)가 가족과 함께 출판기념을 위해 엄마를 방문한다. 그러나 회고록을 밤새 읽은 뤼미르는 회고록에 진실이 단 한 줄도 없다며 엄마에게 쏘아붙인다. 평생을 함께한 매니저 뤼크도 자신에 대한 언급 없는 회고록에 실망하여 집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서로 엇갈린 기억들이 교차하며 진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든다. 매니저가 떠나자 얼결에 뤼미르가 엄마의 매니저 노릇을 하며 엄마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SF 영화 촬영을 옆에서 보게 된다. 이 ‘내 어머니의 추억’은 특별한 병으로 최소 7년은 우주선에 있어야만 하는 어머니와 딸을 그린다. 그런데 우주선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춰 늙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감독은 이 극 중 극을 통해 그들 내면에 웅크린 왜곡을 암시한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파비안느와 딸 뤼미르는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생긴 오해를 풀어간다. 그렇다고 여느 신파극처럼 감정의 선을 자극하지 않는다. 파비안느는 여전히 나쁜 엄마, 나쁜 친구가 될지라도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낫다는 캐릭터를 고수한다. 모든 세상살이를 연극으로 생각하는 그녀에게 딸은 뤼크에게 사과하는 대사를 써준다. 그러니까 파비안느는 진정성마저 연기로 생각한다.
극 중 극인 ‘내 어머니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딸로 분장한 파비안느가 젊은 엄마에게 ‘엄마 딸로 살아서 기뻐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녀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뤼미르와 화해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연기 순간에 담아내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대목에선 화해의 진실성에 대해 무엇이 진심인지 관객들도 어리둥절해진다. 파비안느에겐 연기도 진실의 일부였다.
감독에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듯싶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오히려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어낸다. 뤼미르가 뤼크에게 사과하는 대사를 엄마에게 써주듯이 딸과 화해를 권하는 현 남편 자크가 적절한 대사를 일러주며, 뤼미르는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손녀에게 대사를 가르친다. 그들은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허구적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허구와 진실이 뒤섞여 존재하는 것이 영화뿐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살지 않는가. 이런 뒤엉킴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파비안느 가족처럼 허구로 짓는 진심의 집 덕분에 우리가 삶을 이해할 수 있다면 허구로 가득한 영화야말로 삶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최적의 장치가 아닐까?
젊은 시절 찰랑찰랑 빛나던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고 빠지다 급기야 둥근 우주선처럼 두피가 드러나 보이는 순간, 나이 듦의 헛헛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누구나 좀 더 볼륨 있고 세련된 머리모양을 하고 싶기 마련. 생각은 있는데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 세대를 위해 잠시나마 체험을 해보았다. 가발 한번 써보시렵니까?
“가발 체험해보시겠습니까?”
신윤주 동년기자는 나이가 들면서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같고 힘없이 내려앉아 보이는 느낌이 싫다고 했다. 비교적 머리숱이 많아 고민이 없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빈모도 신경 쓰이고 잘못 자른 앞머리도 마음에 안 들던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가발업체가 그렇듯 하이모레이디도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대표 전화번호를 통해 가까운 지점을 소개받고 예약시간을 조율 한 뒤, 안내받은 곳에 가서 전문 상담사에게 머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된다. 어울렸던 머리 스타일이나, 원하는 스타일 등을 말하면 된다. 이 시간을 통해 상담사는 탈모 정도와 탈모 부위를 진단하고 고객은 부분 가발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전체 가발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한다. 염색이나 파마로 인해 피부가 민감해졌거나 두피 트러블과 탈모가 있는 사람, 혹은 항암 환자도 이용한다. 이외에 미용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부분 가발을 사용한다. 이용자가 착용하는 횟수에 따라서 탈착식이 있고 고정식이 있다. 이미 나와 있는 기성 가발과 맞춤형 가발에 대한 설명도 이때 들을 수 있다.
기성 가발과 맞춤 가발의 장·단점
가발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매장에 들어오는 방문자는 당장이라도 착용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기성 제품은 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단점은 이미 제작된 가발에 이용자가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가발 길이에 맞춰 머리를 자르고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게 스타일링을 해야 한다. 맞춤 가발은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100% 맞출 수 있으나 문제는 5주의 제작기간이다. 하이모의 경우 3D 스캐너 시스템을 이용해 이용자의 머리 모양을 스캔하고 빈모나 탈모 부위 등의 정보도 감안해서 정교한 맞춤 제작을 하고 있다.
어떤 가발이 잘 어울릴까?
신윤주 동년기자는 상담을 통해 정수리 부분 가발과 함께 전체 가발은 살짝 긴 단발을 요청했다. 가발을 썼을 때는 무조건 쓴 듯 안 쓴 듯 자신의 머리 같아야 한다. 티내면서 가발을 쓰고 싶은 여성들이 있을까 싶다.
신윤주 동년기자는 한 6개월 전에 새치 염색을 했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정수리 부분에 흰머리가 확연히 드러나고 또한 힘없이 머리가 눌려 있는 상황. 3가지 모양의 가발을 착용해봤다. 첫 번째는 정수리 부분을 정교하게 감싸서 고정한 부분 가발이다. 두 번째도 부분 가발인데 머리 전체를 가릴 만큼 꽤 넓은 형으로 숱이 많아 보이고 얼굴도 가름해 보인다. 마지막은 상담 때 착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긴 단발머리. 요즘 가발은 인모(人毛)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인조모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인모와 인조모의 구분이 어렵다. 하이모는 형상기억모발인 넥사트모를 사용한다. 이는 내열성이 강하고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어 스타일을 관리하기가 편하다. 세탁해도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웨이브가 풀리지 않는다.
형태에 따라 부착 원리에 따라
구분하는 가발의 종류
부분 가발 고민이 되는 부위에만 부착하는 방식으로 작은 것도 있고, 머리를 많이 가려주는 형태도 있다. 가리는 부분이 크건 작건 겉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이 나오게 쓰는 가발은 다 부분 가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체 가발 자신의 머리카락이 밖으로 보이지 않게 쓰는 가발. 원형 탈모, 항암 환자가 사용한다. 혹은 염색 알레르기가 있거나 두피가 약해서 파마를 못한다거나, 약해진 모발 건강을 위해 전체 가발을 쓰기도 한다.
탈착식 가발 가발 안에 고정할 수 있는 핀이 있어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다.
고정식 가발 인체에 무해한 접착제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밀어서 부착하는 가발이다. 개인차에 따라 10일 길게는 20일에 한 번 관리한다.
가발을 머리 감듯 샴푸할 수 있다?
가발은 매일 세탁할 필요 없다. 머리에 기름이 생기기 마련이니 상황에 따라서 실크를 다루듯 조물조물 손빨래하면 된다. 가발 전용 샴푸와 건조망이 따로 있다. 두피에 직접 접착한 고정식 가발의 경우는 매일 머리를 감듯 해도 된다. 드라이로 잘만 말려주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보통 10일에서 길게는 20일까지도 부착이 가능하다. 두피에 가발을 붙인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관리하면 된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며칠에 한 번’ 이런 기준은 없다.
가발을 쓰면 머리카락이 빠진다?
이에 관해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가발을 쓴 풍성했던 모습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오는 심리적 스트레스로 보는 견해가 있다. 통풍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는데 최근 나오는 가발은 통기성 연구로 해결책을 찾아 사계절 써도 답답하지 않다고 한다. 가격은 부분 가발 40만 원 선에서 맞춤 가발 200만 원 선까지 다양하다. 기성 가발의 경우 130만 원에서 180만 원 선이다. 가격만으로 보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술력은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고난도의 작업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아니다. 잘만 관리하면 오랫동안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다.
“젊어졌고, 자신감이 생겼고, 더 편안했습니다”
[가발 착용 소감] 신윤주 동년기자
2019년 11월 8일 아침, 가발 전문점 하이모레이디 종로 지점을 방문했다. 젊어서도 나는 머리카락이 좀 가늘고 힘이 없는 편이었다. 숱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다행히 봐줄 만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대에서 60대가 훌쩍 되니 가는 머리카락은 더 가늘어지고 힘도 더 없어졌다. TV에서 탤런트 박정수가 가발을 착용한 모습을 보면서 궁금하던 차에 가발 착용 체험 기회가 와 내심 반가웠다. 가게 문을 들어서니 은은하고 밝은 조명 사이로 수백 개의 가발이 저마다의 모습을 선보이며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다 예뻤다. 풍성하고 윤기 있는 가발들.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매니저와 상담하면서 가발 종류와 쓰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3D 스캐너로 두상을 측정했다. 잠시 뒤 거울이 있는 1인 전용 방에서 내게 맞는 가발을 착용해봤다. 두 개의 부분 가발도 다 마음에 들고 자연스러웠다. 마지막에 써본 전체 가발은 품위 있고 우아한 느낌의 젊은 모습으로 깜짝 변신했다. 가발을 쓰면 염색을 안 해도 되니 머릿결도 좋아질 것 같다. 나이가 10년 아래로 훅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 가발을 벗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도 올라가고 더욱더 당당하게 외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에 맞는 보톡스 같다고나 할까?
하루 동안 여수를 알차게 여행하고 싶다면, 오동도를 중심으로 한 해양공원 일대를 둘러보길 권한다. 동백숲이 그윽한 오동도와 스릴 넘치는 해상케이블카, 항구 정취가 가득한 종포해양공원, 여수 밤바다를 즐길 수 있는 빅오쇼와 낭만포차 등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걷는 내내 여수의 비췻빛 바다가 펼쳐지는 이 코스를 소개한다.
걷기 코스
여수엑스포역▶ 여수엑스포박람회장▶ 여수엑스포해양공원▶ 아쿠아플라넷 여수▶ 오동도▶ 해상케이블카(지산공원- 돌산공원 왕복)▶ 하멜등대▶ 종포해양공원▶ 이순신광장▶ 여수수산시장▶ 차량 이동▶ 여수엑스포역
여수 여행의 관문 여수엑스포해양공원
여수엑스포역을 나오면 길 건너 맞은편에 여수세계박람회장이 있다. 박람회장 주 통로인 디지털갤러리를 통과해 박람회장으로 입장한다. 디지털갤러리는 터널형 둥근 천장에 초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한 공간이다. 거대한 범고래와 해양 생물들이 스크린 속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갤러리를 지나면 여수엑스포해양공원으로 이어진다. 우주선처럼 생긴 은빛 초대형 전시관들이 둘러섰다. 2012년 박람회가 끝난 뒤 일부 전시관만 운영 중이다. 대형 나무인형 ‘연안이’가 반기는 한국주제관에서는 상설 전시가 이뤄진다. 엑스포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빅오쇼, 아쿠아플라넷 여수, 스카이타워는 건재하다. 이 시설물 옆에 스카이플라이, 범퍼카, 카트레이싱 같은 레저 시설을 추가해 엑스포해양공원으로 재개장한 것이다.
여수의 자랑인 빅오(Big-O)는 높이 47m의 커다란 O형 조형물이다. 빅오 둘레에 분수 노즐을 설치해 워터스크린을 만들고, 홀로그램과 레이저를 쏘아 3차원 입체 영상을 선보인다. 레이저 외에 화염, 분수, 안개 등 다양한 보조장치가 총동원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빅오 근처 좌석에서는 화염의 열기와 분수와 안개의 물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치 4D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빅오 안에 여수 소녀 ‘하나’가 등장해 오염되고 파괴된 바다를 되살리자는 원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쿠아리스트의 환상적인 수중 공연
빅오 옆에 있는 원통형 스카이타워는 폐시멘트 저장고를 재활용해 만든 전망대다. 높이 60여m에 달하는 전망대에 오르면 엑스포해양공원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외벽에 설치된,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도 특별한 볼거리다. 여수엑스포역에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1일 5회 뱃고동 음색을 내며 연주한다. 낮에는 볼품이 없으나 밤에는 무지갯빛 조명을 밝히고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내며 환상적인 자태를 뽐낸다.
빅오쇼 앞을 지나 그늘막 아래로 걷다 보면 아쿠아플라넷 여수에 도착한다. 이곳의 360° 돔 수조와 초대형 메인 수조 안에 약 280여 종, 3000여 마리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다. 물고기 떼가 돔 수조를 오가며 관람객 머리 위를 지나 발밑으로 사라지는 풍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관람 포인트는 각종 공연을 챙겨보는 것이다. 메인 수조에서 펼쳐지는 수중발레와 탭댄스, 마술, 물고기의 식사시간이 매우 흥미롭다. 식탐 많은 가오리들이 아쿠아리스트를 에워싸고 작은 입으로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스릴만점 여수해상케이블카와 사랑의 섬 오동도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오동도 입구가 나온다. 오동잎을 닮았다는 오동도는 육지와 약 768m의 방파제로 연결돼 있다. 방파제를 걷거나 동백열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오동도에는 동백나무 약 3000여 그루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화살 재료로 사용했다는 시누대를 비롯해 약 194종의 희귀 수목이 산다.
길 양옆에 늘어선 동백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뻗어 천연 터널을 이뤘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오동도 정상의 등대 전망대와 해안절벽 속 용굴을 들르게 된다. 여수 사람들은 오동도를 ‘사랑의 섬’이라 부른다.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즐겨 찾기 때문이라고.
오동도에 많이 피는 동백꽃은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녔다. 사랑 고백하려면 왠지 오동도에 와야 할 것 같다. 오동도에서 나와 여수 여행 필수 코스가 된 해상케이블카에 탑승하기로 한다. 오동도 입구에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지산공원 케이블카 탑승장에 오른다. 케이블카는 바닥이 강화유리로 된 크리스털 캐빈과 일반 캐빈 두 종류가 있다. 성인 왕복 기준 7000원 차이가 나는데 날이 좋다면 크리스털 캐빈을 추천한다. 바닥이 투명해서 거북선대교와 하멜등대, 종포해양공원이 발밑으로 지나갈 때면 오금이 저린다. 탑승시간은 편도 13분이다. 돌산공원에 도착해 여수의 푸른 바다와 해안을 만끽하고 지산공원으로 되돌아온다.
여수와 하멜의 인연
지산공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터널 안으로 진입한다. 터널을 통과해 하멜등대가 있는 종포마을로 향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10분 정도 걸으면 하멜등대에 도착한다. 항구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곳을 여수 사람들은 ‘쫑포’라 부른다. 종포에 하멜등대가 있는 이유는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제주에서 표류하다가 14년 동안 억류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제주도, 강진, 여수에서 부역하다가 1666년 여수에서 탈출에 성공, 일본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멜이 조선에 억류됐던 생활을 기록한 보고서가 바로 ‘하멜표류기’다. 이 보고서는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이런 인연으로 하멜 일행이 부역했던 장소가 종포와 가까워 하멜전시관을 짓고, 전시관 앞 등대는 하멜등대라 이름 붙였다.
종포마을에서 이순신광장까지는 해양공원으로 연결돼 있다. 해안산책로 길이는 700m 정도 된다. 낚시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등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미항 여수의 맛과 멋
해질녘이면 이 길에 낭만포차들이 모여들고, 거리공연이 펼쳐진다. 낭만포차는 저녁 7시부터 동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대표 메뉴는 삼합이다. 전복, 낙지, 새우, 주꾸미 등의 해산물과 채소를 고추장 양념에 볶아 먹는다. 수많은 이가 바닷가 낭만포차에서 삼합에 ‘여수밤바다’ 소주를 마시며 낭만을 만끽한다.
낭만포차거리에서 조금 더 걸으면 이순신광장이 나온다. 광장의 랜드마크인 이순신동상과 거북선이 마주보고 서 있다. 이순신동상 뒤로는 여수 유일의 국보이자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진남관이 있는데 2020년까지 보수 공사를 한단다. 광장 옆으로는 좌수영음식문화거리가 이어진다. 돌게장, 꽃게장, 서대회 등 여수 향토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다. 흔한 백반을 주문해도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미식가라면 여름 제철을 맞은 하모회와 하모샤브샤브를 먹어줘야 한다.
좌수영음식문화거리와 이웃한 수산시장은 여수 대표 시장이다. 여객선터미널과 이웃해 오가는 인파로 분주하다. 건어물 상점가를 지나면 활어회센터와 돌게장, 갓김치를 파는 상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여수를 떠나기 전, 이곳에서 싱싱한 활어회도 맛보고 장도 보면 좋겠다. 갓김치와 게장은 매장에서 택배로 부쳐주니 두 손 가볍게 귀가할 수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고향민속식당
여수에 오면 한 끼는 돌게장백반을 먹는다. 세계엑스포박람회장 정문 근처에 있는 고향민속식당은 여수 도착 후나 출발 전에 들러 식사하기 좋다. 주민들이 추천하는 곳이라 믿음이 간다. 돌게장백반을 주문하면 밑반찬이 한 상 가득이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두 종류가 나와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짜지 않은 간장게장은 밥도둑이 따로 없다. 게장은 1회 리필해준다. 여수시 동문로 129, 평일 08:00~21:30 주말 08:00~22:00.
여수동백빵
여수 특산물인 동백을 소재로 만든 빵이다. 모든 빵은 저당, 무방부제로 만든다. 동백꽃 모양의 빵은 예뻐서 먹기 아깝다. 동백화과자, 동백만주, 동백양갱 등의 메뉴가 있으며 세트를 구성해 선물상자에 담아 팔기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포슬포슬한 대두앙금에 찹쌀피를 얇게 두른 동백화과자다. 여수시 중앙로 66-1, 10:00~21:00.
중앙게장백반
이순신광장 옆 좌수영음식문화거리 입구에 있는 게장백반집이다. 돌게장, 꽃게장 모두 파는데, 꽃게장이 단연 인기라고 한다. 돌게는 크기가 작아 살이 적은 게 흠이다. 이 식당의 꽃게장은 살이 꽉 찬 큰 꽃게를 사용해 흡족하다. 주방에서 꽃게 다리를 먹기 편하게 손질해준다. 게 육수로 끓인 된장찌개도 별미이고, 막걸리 식초를 넣어 요리한 서대회무침도 맛깔나다. 여수시 중앙로 72-30, 평일 07:30~22:00 주말 07:30~20:00.
걷기 Tip
여수시티투어 야경코스
여수 야경을 편하게 구경하고 싶다면 야경시티투어버스를 강력 추천한다. 야경시티투어버스는 매일 밤 운행한다. 1967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중화학공업단지인 국가산업단지 야경과 오동도 야간분수,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투어가 끝나면 낭만포차가 있는 종포해양공원 앞에 내려준다. 소요시간은 약 두 시간. 여수엑스포역 맞은편 도롯가에서 탑승한다. 탑승시간 19:30 요금 어른 9000원, 예약 홈페이지에 예약, 잔여석이 있으면 현장 매표 가능.
어느새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파트 뒤편 개울에 꽁꽁 얼었던 얼음과 눈도 녹아서 조금 깊은 여울에는 콸콸 소리를 내며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되풀이되는 자연의 변화가 신비스러워 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날씨도 풀렸고 오랜만에 삼총사 친구가 만나 영화 한 편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동안 비싼 값 주고 영화를 보다가 시니어 할인을 받게 되어 신났었다.
그런데 지난번 영화표를 살 때만 해도 4000원이었는데 지난 2월부터 가격이 올라 오늘 5000원이라고 한다.
친구가 미리 검색해 온 대로 외국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티켓팅 했다.
이 작품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13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고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을 받은 영화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 TV에 나오는 배우가 필자 나이 정도는 돼야 알 수 있을 만한 옛날 스타인데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셜리 템플과 제임스 캐그니, 베티 데이비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영화가 인기 있던 이유로는 옛 유명배우들과 옛 음악이 흘러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해 추억을 되살아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작품으로 성인 동화라는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내용은 좀 기괴하고 잔혹하다. 1960년대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었던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과 극심한 인종차별이 있던 시대에 미국 항공우주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가 주인공이다.
그의 곁에는 수다스럽지만 믿음직한 동료 젤다와 서로를 보살펴주는 가난한 이웃집 화가 자일스가 있다.
어느 날 실험실 청소를 하던 중 온몸에 비늘이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묶여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무서워하고 피하겠지만, 늘 혼자였던 엘라이자는 신비스러운 그의 모습에 점점 다가가 마음을 연다.
실은 너무나 외로웠던 엘라이자가 자신보다 더 외롭고 고통을 당하는 대상을 보고 위로해 줄 수 있음에 기뻤던 것 같다.
이 괴생명체는 물고기지만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우주선에 태울 수 있는지의 실험을 하려고 아마존에서 잡아 왔다.
실험실의 보안책임자는 이 생명체를 묶어놓고 강압적으로 대하며 해부와 실험을 통해 직위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몰래 실험실에 숨어든 엘라이자는 그와 교감을 나누고 의사소통을 한다. 실험실의 박사는 둘의 행동에서 괴생명체가 지적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해부를 반대하지만, 어느 날 실험할 날이 정해지니 엘라이자와 친구들, 박사는 힘을 합쳐 그를 탈출시켜 집 목욕탕에 숨겨준다.
그러면서 더욱 가까워진 그들은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염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뿌리고 돌보지만 괴생명체는 비늘이 벗겨지는 등 상태가 나빠져 비가 오는 날 바다에 놓아주기로 한다.
신기하게도 그가 가난한 화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대머리였던 그의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고 상처도 그가 만지면 사라지는 등의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비가 오는 날 강 수위가 높아져서 그를 보내기 위해 부두에 갔는데 나쁜 보안책임자가 따라와 총을 쏘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잠시 후 괴생명체는 총 맞은 상처가 없어지며 일어나 쓰러진 엘라이자를 안고 바다에 뛰어든다.
물속에서 그의 입맞춤에 엘라이자는 숨을 쉬게 되며 아름다운 바닷속 영상으로 이야기가 끝나니 전체적으로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신기한 능력으로 그들의 사랑을 키워 행복하게 살았을까? 보는 사람의 몫을 정해 준 영화이다. 외로운 엘라이자와 외로운 생명체가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어른 동화 한 편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