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자작나무숲' 원종호 관장 인터뷰
“요즘 정원들을 보면 다 똑같아요. 그리고 너무 철저히 관리되어 빈틈이 없어요. 그게 너무 소름 돋아요. 그런 정원들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곧 지루함을 느끼죠.”
자연은 스스로 ‘자(自)’와 그럴 ‘연(然)’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그 단어에 맞게끔 자연은 스스로 그리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저 보조 역할만 해야 하는 법. 그러나 사람이 주가 되고 자연이 억지로 끼어들면 식상해진다.
원종호 관장은 작년에 독일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 oich) 미술관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곳은 완전한 자연이었다. 간판도, 안내사항도 보이지 않았고 한참을 가서야 전시장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점의 작품을 전시한 건물에는 전기 시설도 관리인도 없었다. 게다가 어떤 길로 들어서든 미술관을 가려면 멀리 돌아서 가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공간은 들어가는 순간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죠. 내가 볼 때는 그게 완벽한 정원이에요. 딱히 길이 아닌데도 마음대로 걸어가 보고. 미술관 자작나무숲에는 안내 지도도 없고 표시판도 없는데, 왜 없냐며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일상에서 맨날 지시받으며 살다가 여기까지 와서 지시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러한 콘셉트를 못 읽는 거죠.”
원 관장은 숲을 가꾼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신념이 있었다. 물론 지난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그도 경영자로서 부침(?)을 겪어야 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입장료를 2000원을 받았다. 그랬더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오더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7000원으로 올렸고, 1만 원을 거쳐 지금은 2만 원이다. 낮지 않은 가격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비싼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입장료가 어떻게 보면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바로미터라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이상해져가고 있어요. 공기도 나빠지고 사람들 생각도 혼란스럽고. 가끔씩 아이들이 오는데 길이 아닌 이상한 곳으로 가곤 하는 거예요.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따라 길을 가는 거죠. 그러니 자연의 길은 없는 거고 길이 뭔지 모르는 거예요.”
원 관장은 이러한 세태를 ‘섭리를 모르게 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어떤 부모님께서는 일부러 아이들을 여기로 보낸다고 해요. 저와 여기 정원을 보며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고집스럽게 만든 정원이 때로는 작은 쉼과 여유를 주는구나’ 혹은 ‘저렇게 사는 분도 있구나’ 하면서 하나의 메시지라도 얻고 가면 좋겠어요.”
이 여름이 지나면 핸드폰, TV 없이 쉬고 싶을 때 묵상에 잠긴 가을의 자작나무를 보러 다시 발길을 돌려야겠다.
세상사 뜻대로 안 될 때가 많다. 가끔씩 일상에서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자 발길 닿는 곳에서 머리를 식히고 싶어진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감성의 정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이 그리워 그 마음에 이끌려 자연 속에 어우러진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한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자연 그대로를 품고 있었다. 엄마 품처럼 보드라운 정원 그 자체가 갤러리였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는 자작나무 꽃말이다.
“10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씩은 꼭 여길 와요, 오면 가기 싫어져요. 무엇보다도 자작나무를 보러 오는데, 겨울 자작나무는 희끗희끗 속살이 보여 좋고요. 봄에는 반짝반짝 초록별이 떠서 좋아요, 가을에는 찬란한 색상의 자작나무가 어찌나 이쁜지 몰라요. 자작나무 단풍은 너무 고와요.”
김해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은숙 씨는 친구 은미숙 씨와 스튜디오 갤러리에서 오미자차를 마시며 자작나무에 취해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작나무 향내와 뜻밖의 아늑함.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정원으로 자연스레 발길이 향한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에 위치한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한 사람의 의지가 이룰 수 있는 어떤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다가온다. 산 중턱 언덕 숲 3만3000㎡에 이르는 커다란 정원에 두 개의 실내미술관과 자작나무숲, 스튜디오 갤러리, 숲속의 집(게스트하우스)이 있는 이곳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8년 동안 손수 심고 가꾼 자작나무
이 자작나무숲의 주인인 원종호 관장(66)은 서양미술을 전공했다. 과거 그는 내면을 찾아 세계 곳곳을 방황하는 여행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여정을 멈추게 만든 곳이 백두산이었다. 백두산에 조성된 자작나무숲에 도착했을 때, 순백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방랑벽을 멈추는 대신 고향 땅에 자작나무숲을 가꾸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작나무숲 조성은 그렇게 1991년부터 시작됐다. 원 관장은 우선 산림청에서 폐기하는 1만2000그루의 작은 나무를 구해 심었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위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는북방계 식물. 강원도 횡성은 자작나무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환경이 아니었다. 결국 자신에게 맞지 않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많이 죽었다. 그래도 겨우 살아남은 자작나무들을 포기하지 않고 그는 1000그루를 더 구입해 심었고 500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싱그러움으로 반짝거리며 숨쉰다
원 관장이 자작나무숲을 미술관으로 개장한 것은 2004년이다. 두 개의 전시장 중 제1전시장에는 원 관장의 개인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고 제2전시장에는 외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서재를 공유 공간 ‘스튜디오 갤러리’로 변경하여,다양한 문화 예술 서적과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바리스타인 원 관장의 아내 김호선 씨가 직접 원두를 볶아 로스팅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로도 활용하고 있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움으로 연결된 커다란 공간 그 자체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직접 손품을 들여 숲을 다듬는 원 관장의 철학이 반영된 곳이기도 하다. 그가 숲을 만들 때 고수하는 원칙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의 추구다. 그래서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자라난 풀과 나무들의 제거 여부도 자작나무숲 공간의 전체적인 자연스러움을 기준으로 선별된다. 이 과정을 통해 길은 발길을 따라 나게 됐고 나무는 건축과 어우러졌으며 순백의 자작나무숲은 보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는 여백으로서 자리하게 됐다. 그런 노력과 수십 년이라는 세월은 마침내 사람과 숲이 자연의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공간으로 깃들었다.
깨달음의 향기에 취하다
원 관장은 매표소 안에서 “세상이 이상해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명에 길들여져 자연을 모르게 된 사람들이 보이는 이상한 행동들과 이상해져가는 세상이 세상을 더욱 각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자연스러우면서도 특별한 정원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실 정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손이 자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나 원 관장은 그러한 정원의 원초적 속성에 저항하듯 ‘그 어디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한없이 자연과 가까운 정원’을 일궜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철학은 아마도 그가 품었던 도전의식이 가시화된 답일 것이다. 그 답은 성공적인 듯하다. 편안함에 하루 종일 머물고 싶고 가만히 걸으며 삶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미술관 자작나무숲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