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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 된 은둔형 외톨이, “한국도 남의 일 아냐”
- 오랜 기간 자신만의 공간 속에 살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이들을 둘러싼 문제는 점차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형됐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부모까지 대상을 확대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청년층에 한정된 실태조사와 지원사업만 진행 중이다. 일본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한국형 은둔’을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어로 히키코모리, 한국어로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하지 않는 기간이 최소 3개월 이상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학업이나 취업 등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며 △방 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더불어 우울증, 대인공포, 조현병 등 정신장애는 은둔 생활이 길어지면서 따라오는 결과 중 하나일 뿐, 원인이 아니어야 한다.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숨게 만드는 사회 이들은 왜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야만 했을까? 원인을 단숨에 짚기란 쉽지 않다. 은둔의 시작 시기와 계기를 비롯해 각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과 회복 가능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가 한데 얽혀 유형화하기 어려운 것이 오히려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화돼 진학 실패, 가족과의 갈등, 지속되는 취업난, 경직된 대인관계 등이 맞물린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은둔형 외톨이를 단순히 ‘개인 사정’으로 치부해왔다. 가족, 학교,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그사이 흘러버린 27년의 세월 동안 은둔형 외톨이는 더욱 많아졌고, 장기적으로 은둔 생활을 지속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중장년이 됐다. 최근에는 ‘8050 문제’(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까지 우려되면서 노년의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원래는 ‘7040 문제’라고 불렀지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진화한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은둔 자녀와 동반 자살을 감행하거나, 반대로 자녀가 부모를 폭행해서 숨져도 연금 수급을 위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명확히 마주해야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할 만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발굴하고 사회로 복귀시킬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대응책이 없다 보니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세심한 지원을 하기도 어렵다. 동굴 속에 있던 은둔형 외톨이가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상담을 시도해도 의지가 약해서, 철이 없어서 등의 비난을 받고 되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국내 은둔형 외톨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본의 지원책을 참고하면서도 한국만의 고유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문화 때문이다.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은 “열심히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삶의 방식이 변했다”며 “생산을 강요하고,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는 편견은 접어둬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또 “이혼, 사별, 은퇴 등으로 40대 이후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은둔과 관련한 지원을 점차 전 세대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와 상담할 때는 다각화된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관련 상담 전문가를 육성하고, 관련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 “은둔형 외톨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간혹 폭발적인 분노를 표현하고 주먹을 휘둘러요. 조급한 마음에 문을 없애버리거나 방 밖으로 끌어내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돼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망가졌던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물론 전문가가 돕는 게 가장 좋죠. ‘나랑 대화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랑 통화해볼래?’ 하면서 전문기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자신을 살리고 싶어서라도 연락하더라고요.”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 ▶ “한 명의 은둔 생활로 다른 가족도 함께 위축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계속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내면을 치유하도록 북돋아줘야 해요. 그들도 더 힘들지 않기 위해 덜 힘든 방법을 택한 거니까요. 병을 치료하듯 은둔의 그늘은 한 번에 없어지지 않아요. 다시 어떤 계기로 은둔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차츰차츰 나아질 겁니다.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가족 모두가 성장하는 시기가 올 겁니다.”
- 2023-10-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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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은둔형 외톨이
- 일본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집에 틀어박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사회 문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국제 학술어로 정착된 ‘히키코모리’와 우리말로 풀어쓴 ‘은둔형 외톨이’라는 두 용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히키코모리’에 관한 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해 이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관심도 큽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입니다. 일본 총무청은 1990년에 ‘청소년백서’를 발표해 청소년의 장기 등교거부와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히키코모리’를 청소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일본 내각부(內閣府)가 발표한 보고는 40~64세의 중고년(中高年) ‘히키코모리’가 추정치로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에 발표한 15~39세의 청소년 ‘히키코모리’ 추정수 약 54만 명을 합치면 115만 명이나 돼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문제인 나라들 ‘히키코모리’ 문제를 20여 년 연구해온 일본 쓰쿠바(筑波)대학교 사이토 타마키(齊藤環) 교수는 정부 당국의 추정수의 약 2배인 200만 명 이상이 ‘히키코모리’ 해당자이며 이 중 반 이상이 중고년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여러 권의 책도 낸 사이토 교수에 의하면, 일본 다음으로 ‘히키코모리’가 인구비례로 한국에 많고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유교문화국으로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들에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동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 이 문제가 많다고 말한 사이토 교수는, 서구문화의 나라에서 이 문제가 비교적 적은 것은 성인이 되면 독립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히키코모리’가 비교적 많은데 일본, 한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 나라의 공통점은 청년이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또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히키코모리’ 수가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홈리스(homeless) 수는 가장 적어 정부 통계에서도 5000명 미만이고, 개인주의가 우선하는 영국에는 26만 명, 미국에는 100만 명 이상의 홈리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히키코모리’ 문제는 가족주의 대 개인주의 구도에서 관찰해야 하며 젊은이의 거처가 ‘집 안이냐 노상(路上)이냐’의 차이에서 문제 해결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는 생활환경이 나빠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인 데 비해 ‘히키코모리’는 주거환경이 좋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을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특히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봄에 나흘 간격으로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76세의 전직 농수산성 차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평화스럽던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매스컴의 대대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교양 있는 아버지가 ‘히키코모리’ 아들이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흘 전 ‘히키코모리’의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해 타인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동정을 샀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아이도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강박감에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전직 정부 고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전 오사카(大阪) 시장이며 인권변호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씨도 트위터에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나흘 전에 일어난 일은 51세의 ‘히키코모리’가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습격해 두 사람을 죽이고 10여 명의 다른 아이와 보호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히키코모리’ 반 이상이 중고년 이처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이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중고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8050’이라는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즉 “80대의 노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키코모리’의 일반적 정의는 ‘집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단절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이 발달한 오늘날, 이 낡은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사이토 교수는 말합니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 씨는 잡지 ‘분게이 주(文藝春秋)’에 쓴 글에서 일부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매년 3500명 이상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히키코모리’는 결코 범죄예비군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히키코모리’ 중 인터넷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거나, 소설이나 음악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 있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8050’ 문제에 약간의 희망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금 사이토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범죄사건이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들의 대량 고독사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2030년쯤 일본이 ‘히키코모리’ 장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5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 수만 명이 연금 수급자가 될 것인데, 수많은 사람이 연금 수급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이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통계청 추산이라면서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 인구수가 약 31만 명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심각한 ‘히키코모리’ 실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타산의석(他山의石)’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황경춘 칼럼니스트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 2019-12-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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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크바움 유형종 대표 인터뷰-오페라 키드(kid)의 생애, 확률과 통계적 사고가 만들다
- 수만 가지의 수를 내다보고 절대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사는 알파고형 인간을 만났다. 계획적이면서도 일정하다. 돌다리는 두드려볼 생각 없이 잘 닦여진 길을 선택해왔다는 사람. 수학이나 과학자를 만나러 갔더라면 대충 짐작이라도 했을 텐데. 그의 직업은 음악 칼럼니스트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 무지크바움 대표이자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劉亨鐘·56)을 만났다. 인생역전 드라마만 재밌다는 편견은 접으시고, 유형종 대표의 기막힌 인생설계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라. 클래식 놀이터 주인장 유형종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놀이터(?) 무지크바움의 주인장인 유형종 대표. 그는 클래식 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예술을 강의하는 강연자로서 삶을 살아간다. 압구정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무지크바움에서는 요일마다 오페라, 클래식, 발레 감상 동호회 모임을 비롯해 음악과 관련한 각종 강연이 이뤄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찾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늘 유형종 대표와 눈을 맞추고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직업 특성 때문일까? 유형종 대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활발할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만나서 한다는 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좀 폐쇄적이죠. 그런데 여기는 클래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좋아요. 욕심 같은 거 별로 없어요. 그저 저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데 그 원천이 음악? 클래식인 거죠.”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택하다 유형종 대표는 주로 오페라와 발레 등 서양 예술의 결정체와도 같은 분야를 전문으로 글을 쓴다. 역사적으로 사교계와도 친밀한 예술이 오페라와 발레 아닌가. 그런데 그가 클래식 음악에 눈뜬 이유가 기가 막히게 남다르다. “제가 남들 하는 걸 안 해요(웃음). 가령 카카오톡도 안 합니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 영어공부한다며 팝송을 듣더라고요. 저는 그때 팝송이랑 대중가요 대신 클래식 음악만 듣겠다고 결정했죠.” 마침 집에는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클래식 음반들이 여러 장 있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지휘한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e‵me)과 베르디의 아이다(Aida)였다. “그거 말고 몇 장 더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토스카니니’라고 적혀진 음반들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게 제 인생 첫 음반인 거죠. 중학교 들어가서 오페라 음반을 사기 시작하면서 ‘내 취미는 음악이야!’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집 안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유형종 대표는 다행히 네 살 터울의 동생과 죽이 잘 맞았다. “동생이 동아일보 유윤종 기자입니다. 음악이나 문화 쪽으로 저보다 유명할걸요? 둘이 집에서 뭐했냐면 클래식 음악 모음집 15곡을 쭉 듣고 난 다음에 점수를 매겨요. 그러고는 둘이 합산해서 종합 1위를 뽑는 거죠. 그리고 한 달 있다가 또 해요. 순위가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게 우리 형제의 놀이였습니다.” 클래식 음악만큼 발레의 매력에도 빠져버렸다. 1984년 빈 국립 발레단(오스트리아)과 내한한 러시아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의 춤사위를 보는 순간 마치 신이 춤추는 것 같았다. 남자가 무슨 발레냐고 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팝송이 싫어요. 뮤지컬도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와 발레를 감상하고 이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사는 게 재밌습니다.” 내 인생의 원동력은 확률과 통계 클래식을 듣고 오페라를 감상하는 취미는 끝이 없었다. 잠시나마 꿈꿨던 음악대 진학을 접고 상경대를 선택했다.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저는 체력도 약하고 성공할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죠. 나는 튼튼하지 않으니 애호가로 사는 게 더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는 삐져서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웃음).” 음대 포기의 이유에 맏이라는 가정 안에서 위치도 작용했다. 역사학도 좋았지만 맏이면 당연히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상경대 진학을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도전 한 번 안 해보고 너무 빨리 포기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저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수를 좋아했죠. 경영학에도 회계학이 있는데 그것도 재밌었고요. 회사에서도 기획 재무 쪽 일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미적분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확률과 통계는 아주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 모든 생활 전반이 확률 통계적 사고로 돌아갑니다. 성악을 선택하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유형종 대표는 음악대학에서 음악사 수업 외에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화성악 청강을 해봤다. 그런데 음대생의 영역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고 한다. “음대생이 전공하는 영역은 음악 애호가로서 확률과 통계적으로 좇아갈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저는 예술가 기질은 없어요.” 무모한 짓은 안 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유형종 대표. 굉장히 좋아 보여도 무엇을 희생해야 한다면 하지 않았다. 목적지향, 확률통계. 이런 것을 고려해서 원칙을 세우고 의사결정하는 것이 습관화됐다고 말한다. “대신 재미가 없죠.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냉소적이라더군요.” 취미가 인생의 큰 그림이 되다 경영학과에 들어간 뒤 공부보다는 음악감상 동아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는 클래식을 듣는 음악감상 동아리의 규모가 꽤 컸습니다. 지금과 비교도 안 됩니다. 동아리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했기 때문에 DJ 활동을 의무적으로 했어요. 감상실에서 트는 곡목을 칠판에다 적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물론 감상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절반이 숙면에 들기는 했지만 감상실 운영으로 동아리를 유지했다. 가을에 열리는 교내 합창대회는 음악감상에 방해돼 싫었다. “합창 시즌만 끝나면 속속 커플들이 탄생했어요. 헤어지면 커플이 동시에 탈퇴를 하니까 동아리 모습이 말이 아니었죠. 연애금지령도 있었는데 저는 철저히 그 법칙을 따랐습니다(웃음).” 대단한 모험을 즐기지 않고 확률과 통계를 바탕으로 살아왔다는 유형종 대표. 그는 대학생활 이후에도 나름 순탄했다고 말한다. 1987년 첫 직장인 대우증권에 입사해 2006년 한국신용보증보험의 임원으로 2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는 영락없는 금융인의 모습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칼럼니스트로서의 이중생활도 멋지게 즐겼다. “졸업 후에 동호회 후배들이 창립기념일 문집을 만들 때 저에게 의뢰하기에 글을 쓰게 됐고, 1995년부터 잡지에 정식으로 음악 칼럼을 쓰기 시작했어요. 음악감상 동아리 후배인 의 기자가 저를 칼럼니스트로 추천했어요. 그때부터 음악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얻게 됐습니다.” 금융업계에서 대리, 과장으로 승진하는 동안 업무와 야근으로 음악회는 꿈도 못 꿨다. 대신 음반을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매달 밀려오는 잡지사 음악 칼럼을 쓰는 작업도 일상의 큰 업무(?)였다. “금융회사는 아침 8시가 되면 일을 시작해요. 저는 6시 반에 출근을 했어요. 부서장님이 저더러 부지런하다고 칭찬하셨는데 오해죠. 저는 글을 쓰기 위해 회사에 빨리 간 것이잖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월간지에 기고를 하고 짬짬이 공연 프로그램 글도 썼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제가 하는 다른 일에 대해 사장님이 알게 되셨어요.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요. 임원이 그런 일 하는 것을 몰라서 언짢으셨을 겁니다.” 진짜 인생의 문을 열다 유형종 대표는 2003년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느꼈다. 회사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딱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었다. “회사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확률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다른 회사로 가느냐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즐거움을 희생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해설가로 살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었지만 좀 더 밀도 있는 공부를 하며 강의자료를 준비했다. 연재하던 글을 모아 은퇴 시기에 맞춰 단행본 출간을 계획했다. 결국 2006년 9월 은퇴, 12월 1권과 2권(시공사) 출간. 꽤 멋진 은퇴 작전이 성공했다. 20년 남짓의 넥타이 삶을 청산하고 난 유형종 대표는 무지크바움에서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칼럼을 쓰고 외부 강의를 하면서 여전히 음악에 파묻혀 살고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일곱인 유형종 대표는 스스로 2년 전까지가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음악 칼럼니스트라고는 하지만 글 써서 먹고살겠어요(웃음)? 제 공간인 무지크바움에서 동호회나 강좌를 열고 외부 강의도 다니고요. 그런데 제 나이가 이제 기업체 특강 강사로는 좀 많아요. 왜냐하면 기업체 사장이 저랑 나이가 같거나 어리거든요. 물론 저도 이제 돈을 열심히, 많이 벌 생각은 없어요. 생업은 55세까지 충분히 했다고 봐요.” 이런 날을 생각해서 20년 직장생활을 했다. 먹고사는 데 당장 큰 문제는 없다. 벌어놓은 돈도 있으니 즐기면서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 “마음은 천국이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니까. 대신 제가 일정을 짜놓고 많은 일들을 정해야 하니까 좀 바쁘죠. 마음은 천국, 몸은 지옥? 앞으로도 10년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10년은 골골거리면서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웃음).”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최근 귀찮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슈베르트에 관한 글을 쓰게 됐다고. 예술서 100권, 문학서 100권, 사상서 100권 총 300권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 한 대형 출판사에서 유형종 대표에게 제안을 해왔다. 아직 정해진 바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제부터 자료조사를 새로 해야죠. 그런데 사실 쓰겠다고 한 이유가 딴 게 아닙니다. 제 동생도 쓰기로 했더군요. 괜찮은 필자를 출판사에서 저자로 섭외했던데 내가 안 쓰면 소외될 거 같아서 할 수 없이 쓰는 거거든요(웃음).” 그래도 적잖은 사명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보았다. “불명예는 막아야죠(웃음). 적어도 대한민국 예술 필자 100명 중에 끼지 못한다는 소리는 들으면 안 되잖아요. 불타오를 정도는 아니고 약오름?” 말은 이렇게 해도 어떤 주제로 쓸지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 너무 어렵게 않게 슈베르트에 대해 사람들이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책을 쓰게 될 것 같단다. 유형종 대표는 어떤 것을 평가하고 논하는 평론가의 삶을 구하지 않는다고. “칼럼니스트로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은 갖되 너무 깊숙이 관여하지는 않아요. 관객으로서 내 시선을 내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 공연장 사장 할래? 그러면 전 아마 안 할 거예요. 사람 임명하고 관리하는 거 하기 싫어요. 육체는 힘들지만 영혼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싶어요.” 인터뷰하는 동안 그가 20년 금융 전문가에서 음악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는 원래부터 직장생활 20년 하고 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니 지금이 제1인생이죠. 제1의 인생을 위해 기반을 마련하고 돈을 번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처음부터 그의 시작은 음악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느낌이다. 평생 제1의 인생을 위해 살아온 집념과 고집이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기대해본다.
- 2017-09-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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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⑥]日 꿈의 라이프 위협하는 6가지 강적 퇴치법
- ‘인생 90년’의 시대를 맞이한 장수사회 일본, 10월 13일 간행된 경제시사지 [프레지던트(President)](통권 884호)는 특집 ‘부자 노후 빈곤 노후, 당신은 어느 쪽?’을 기획해 정년 후 꿈의 라이프를 위협하는 6가지 강적을 정리하면서 그 퇴치법을 소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후의 불안감을 없애는 전문가의 조언을 포함해 그 해소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연금 감액 수입 대비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일본의 소득대체율은 일본 정부가 설정한 표준세대의 경우 평균 수입 월 34만8000엔 가운데 62.7%를 차지한다. 연급 지급은 21만8000엔이다. 이것이 전문가가 추정한 재정 검증의 결과, 최악의 경우 2015년에는 50% 수준인 약 17만 엔으로, 나아가 2072년 35% 수준인 약 12만 엔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됐다. 닛세기초연구소의 주임연구원 나카시마 쿠니오(中嶋邦夫)씨는 “연금 감액에 대응하는 법은 ①절약하기 ②계속 일하기 ③돈 모으기의 세 가지 선택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절약은 어렵고 저축이 없으면 일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하는 것에 저항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30년 후에는 인구의 약 40%가 65세 이상이 된다. 국민의 40%가 일하지 않으면 나라가 꾸려지지 않기에 고령자라도 일하는 게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잡지는 최악의 경우로 연금 삭감률을 후생연급 22%, 기초연급(국민연금) 60%로 내다보면서 기초연금만 수령하는 자영업자와 후생연금 및 기업연금을 수령하는 회사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생겨나 ‘세대간 격차’만이 아닌 ‘세대대 격차’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연금감액을 전제로 한 충분한 저축액은 얼마일까? 파이낸셜플래너 고야 요이치(小屋洋一)씨는 “3000만 엔 정도는 준비해 뒀으면 한다”고 조언하면서 “연금생활자는 평균 매년 70만 엔 정도 지출 초과로 퇴직 후 25년을 지낸다고 가정한다면 합계 1750만 엔이 필요하며, 연금지급액이 20% 줄어들 것을 가정한다면 1000만 엔이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경단련(경제인단체연합) 소속의 대기업은 평균 2000만 엔의 퇴직금이 나오지만, 중소기업은 평균 1000만 엔 정도로 그중에는 지급하지 않는 기업도 있기에 집이 없고 개호를 받는 경우 더 추가 비용이 발생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민간의 연금상품과 저축으로 미리 노후에 대한 만전의 준비가 필요하겠다. 둘째, 팔리지 않는 집 일본 총무성의 2013년 주택 및 토지통계조사에 따르면 국내 총주택수 6063만호 가운데 13.5%가 빈집이라고 한다. 부동산 컨설턴트 나가시마 오사무(長嶋修)씨는 “고령자가 돌아가시면 빈집으로 방치되고, 젊은 사람들은 신축 맨션에 살려는 구도이다. 게다가 현재 일본의 주택소유율은 약 60%이지만, 집 구입 의향이 저하돼 앞으로 더욱 떨어질 거로 예상된다”고 밝히면서 “확실하게 가격 상승이 예측되는 부동산과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경우는 제외하고 팔린다면 지금 당장 파는 게 좋다. 향후 20년 일본의 주택가격은 매년 2%씩 하락된다는 계산도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올해 8월부터 실행된 ‘개정 도시재생 특별조치법’의 이른바 ‘콤팩트시티정책’에 따른 우대조치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의 물건을 노려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콤팩트시티란 시가지의 공동화 현상을 해소해 범위를 작게 유지하면서 걸어다닐 수 있는 범위의 생활권에 커뮤니티를 재생해 살기 편안한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한다. 또한 현재 지은 지 20~25년이 넘으면 가치가 제로로 평가받고 있지만, 내년부터 바뀌는 중고주택에 대한 건물평가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건축 햇수는 같아도 건물의 질과 노화 정도 등에 따라 자산 가치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산 가치가 평가받는 시대가 온다고 밝혔다. 셋째, 의료비 부담 증가 올 4월부터 70~74세 고령자의 의료비 자기 부담률이 10%에서 20%로 올랐는데, 현재 국민이 병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에 지불한 의료비(국민의료비)는 연간 약 40조 엔으로 그 가운데 반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자 의료비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자료에 따르면 20세에서 59세까지는 자기부담과 보험료 합계가 의료비보다 적어 흑자이지만, 60세부터는 의료비가 늘어나 적자이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는 국내총생산(GDP)이 성장률을 앞질러 공적비용 부담은 2025년에 현재보다 10조 엔 이상 늘어나 25조 엔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현역 세대의 세금이 고령자 의료비를 대신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건강보험제도의 상황도 심각해 국민건강보험은 2012년도 3000억 엔 남짓 적자를 냈다. 건강보험조합 연합회에 따르면 일반 기업의 회사원이 가입한 건강보험조합도 1419개 중 67%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파이낸셜 플래너 나이토 마유미(內藤眞弓)씨는 “민간의료보험은 의료비 부담이 아무리 무거워져도 입원 등의 계약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의 공적 의료보험 보장이 잘돼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의료비만으로 사용될 돈이 150만 엔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 보험에 납입할 돈을 저축으로 돌려 노후를 준비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일본에서는 국민개보험제도 가운데 ‘고액요양비제도’가 있어 보험 내라면 아무리 고도의 의료를 이용해도 의료비 10만 엔 정도를 지불하면 되기에 의료비가 수백 만엔에 달하는 경우는 없다. 넷째, 간병 비용 증가 일본의 간병보험제도는 2015년에 개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베이비붐세대가 후기 고령자가 되는 2025년을 목표연도로 한다. 현재의 정책 방향성인 ‘의료에서 간병으로(자립지원)’와 ‘시설에서 주택으로’가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간병 초점은 ‘어떠한 간병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거기에 얼마나 비용이 들까’로 옮겨지고 있느냐다. 공적시설의 특별 양호노인홈에 입주할 경우 매달 9만6000 엔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설도 부족하고 희망자도 많아 대기해야 한다. 민간시설의 경우는 도쿄를 예로 월 14만8000 엔에 식사비 등 비용을 포함하면 매달 부담액은 20만 엔 정도. 재택 간병의 경우에도 6만 5000 엔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는데, 금전적 비용만이 아니라 간병 때문에 가족이 구속되는 비용도 상당하다. 간병시설 이용자가 보통 입주 후 평균 7년 정도 산다고 보는데, 따라서 재택 간병의 경우도 같은 정도의 기간을 상정하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가는 자신의 힘으로 배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나 변기에 이동하는 정도의 근력은 재활 운동을 하면 되돌아온다며 고령자가 퇴원하면 가족들이 밥상 옆에서 식사를 돌보려고 하는데 과보호로 인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돼 갈수록 쇠약해진다고 덧붙였다. 각종 간병시설에서도 재활운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같은 비용이 든다면 1일 서비스라도 재활운동을 중시하는 시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다섯째, 무직 자식 일본에서는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하는 히키코모리, 전혀 일하려는 의사가 없는 니트족(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자식을 둔 가족이 늘고 있다. 니트의 고령화에 따른 가계의 경제적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2014년도 학교 기본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등교’를 이유로 30일 이상 장기 결석한 초등·중학생은 약 12만 명으로 전년도보다 약7000 명이나 증가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이 그대로 은둔형 외톨이로 이어지고,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프리타(아르바이트로 평생 생계를 이어가려는 사람을 일컬음)와 파견노동자, 그리고 가사돕기도 잠재적 무직이라고 하겠다. 전문가는 부모가 자신의 사망 후 구체적인 자식의 생존 계획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 자식 나이 40세가 포인트라고 지적한다. 자식이 젊을수록 계획이 장기에 걸쳐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 금액도 커지고 현실감도 점점 옅어지는데, 향 후 자식이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연금만큼은 체납하지 않고 꼬박꼬박 내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다만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사망할 경우 연금수입이 줄어들기에 1명분의 생활비가 높아지고 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부모 사망 후 자식이 혼자 생활하기쉬운 주택 확보를 강조했는데, 넓은 집은 광열비와 유지비, 세금 등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24시간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작은 중고 맨션을 고르되 단독주택이라면 건평수를 줄이고 남은 토지를 팔거나 주차장으로 빌려준다든지 월세용 주택으로 재건축해 수입원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 여섯째, 정년연장 및 재고용 일본에서는 2013년 4월 ‘개정고령자고용안정법’이 실시돼 기업에 대해 희망하는 사원 전원을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시켰다. 이 법률은 노령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에 맞춰 고용 연령의 상한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인정한 조치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약14만 개 회사 가운데 65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은 66.5%로 종업원 301명 이상의 대기업은 48.9%에 머물렀다. 나아가 정년 폐지를 선택한 기업은 2.6%, 70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도 전체의 18.2%에 지나지 않았다. 법률 내 ‘계속고용제도의 도입’의 실상을 보더라도 주3일 근무, 두 사람이 한 명분의 업무를 담당 등의 근무형태를 합리적인 재량 범위로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어 정년 후 일의 내용이 크게 변화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후생노동성의 조사에서도 정년 후 22.3%는 계속고용을 희망하지 않았고, 1.2%는 희망했지만 조건이 안 맞아 계속 고용되지 않았다. 경영인사 컨설턴트 에노모토 마사카즈(榎本雅一) 씨는 재고용은 보너스도 없고 연수입도 40%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라며, 정년의 연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고용으로 연수입이 큰 대기업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삭감액이 커서 60% 정도 줄어드는 회사도 드물지 않다고 밝혔다. 급료의 변화뿐만 아니라 많은 부하를 거느렸던 관리직이 위탁 형태로 재고용돼 계약직으로 신입사원과 같은 마찬가지로 대우받으며 상사가 된 아랫사람의 꼼꼼한 지시를 받아야 한다며 꾹 참고 버틸 것인지 때려치우고 그만 둘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또 인간관계와 든든한 파벌로 출세해 온 ‘회사 인간’보다는 업무를 통해 전문성을 익혀온 ‘일하는 인간’이 회사 내외에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기에 기술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 환영받는다며 명확하게 정년 후 플랜이 있는 사람을 빼고 가능하면 회사에 꽉 달라붙는 것이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이밖에도 정년 연장, 재고용 이외에도 독립해 현역시대의 전문성을 확대시킨 인사, 회계, 영업, 판로 개척, 경영 조언 등을 대행하거나 하청받는 ‘확대고용’의 형태도 제안했다. 끝으로 “경험이 없는 곳에 도전해도 성공은 어렵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 정년을 경험 리셋이 아닌 일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확대고용’을 생각해 봐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 2014-12-04 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