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모델, 중년 전용 패션 플랫폼 등장. 중장년의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저씨, 아줌마 패션을 지양하고 젊은 감각을 추구한다. 그러나 아직 ‘옷 잘 입는 시니어’는 일부에 불과하다. 옷 잘 입는 시니어를 응원하며, F/W 패션 트렌드와 함께 스타일링 꿀팁을 알아봤다.
“MZ 패션, 비켜줄래?” 배우 김희선이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묻는다. 4050 여성 패션 플랫폼 ‘퀸잇’의 광고 속 한 장면이다. 2020년 9월 출시된 퀸잇은 1300개 이상의 입점 브랜드를 확보했으며, 누적 다운로드 540만을 달성했다.
더불어 ‘지그재그’의 성공 이후 카카오스타일이 내놓은 ‘포스티’, ‘모라니크’, ‘푸미’ 등이 4050 여성을 대상으로 한 패션 플랫폼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중년 남성 패션 플랫폼으로는 ‘애슬러’와 ‘댄블’이 있다.
2030세대, MZ세대의 대표 패션 플랫폼으로 통하는 ‘무신사’도 중년 패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X세대(1965~1979년생)를 대상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레이지 나잇’을 론칭했다. 이와 같은 추세는 패션 업계에서 중장년층 소비자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백화점이나 아웃렛에 쇼핑 가기 어려워지자 중장년층도 온라인으로 옷을 구입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들은 온라인 시장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이와 함께 드러난 사실은 패션에 대한 관심과 옷 잘 입고 싶다는 열의가 높다는 점이다. 시니어의 패션에 대해 임승희 인덕대학교 방송뷰티학과 교수(스타일 매니지먼트 서비스 라뽐므 대표), 조정윤 세종대학교 미래교육원 패션학 전공 교수, 이윤진 인하공업전문대학 패션디자인학과 교수와 자세히 얘기를 나눠봤다.
중장년 패션, 왜 젊어졌나?
중년기는 신체적·생리적·심리적 변화 등의 내적 환경과 가족·직업·사회생활 등의 외적 환경 등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다. 특히 노화로 인해 체중이 늘거나 줄어드는 변화를 겪게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손쉽게 접근가능하면서 큰 변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 ‘패션 스타일링’이다. 중년층에 접어들면 패션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승희 교수는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년기의 ‘가꿈’은 더욱 중요해졌고, 시니어 패션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노년층을 60대라고 생각했다. 100세 시대인 현재는 노년층을 70·80대로 본다. 현재의 50대는 나이 든 세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안티에이징도 잘하고 자기 관리도 잘해서 젊은 시절의 몸매를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일명 아줌마, 아저씨 패션이 안 어울리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녀들 옷이 어울리게 되면서 부모와 자녀가 옷을 같이 입는 가정이 많아졌다.”
젊어진 시니어의 패션 경향은 ‘에이지리스’(Ageless)라고 할 수 있다. 에이지리스는 어떠한 선택에서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패션에서 연령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을 표현한다. 임 교수는 “많은 의류 브랜드가 타깃을 시니어층으로 높였다. 50·60대 시니어는 소재 중심의 퀄리티 좋고 가격대 높은 의상을 구입하고자 하기 때문에 브랜드에서 선호하는 소비자층이다”라면서 “보통 브랜드에서 40·50대를 타깃으로 한다고 해도 주 고객층은 50·60대다. MZ세대 의류 브랜드는 10·20대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30·40대 고객층이 패션 업계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러니까 현재의 50·60대는 과거의 30·40대 옷까지 입는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패션이 젊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해외 브랜드 유입도 에이지리스 현상 확산에 기여했다고 본다. 그는 “외국 시니어들은 ‘나는 그동안 고생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누리면서 살겠다’면서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해외 브랜드는 시니어가 선호하는 의상을 잘 안다. 그런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자, 국내의 중장년층은 많이 놀랐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컬러, 디자인이 가득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장년층의 지갑이 열렸고, 패션도 점점 세련되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시니어 모델의 등장 또한 중장년 패션을 짊어지게 했다. 시니어 모델은 말 그대로 모델 활동을 하는 시니어를 말한다. 은퇴 후 제2의 직업으로 60대에 시니어 모델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현재는 40대도 시니어 모델에 도전한다. SNS의 발달로 옷 잘 입는 시니어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전문적인 교육과 대회 등을 통해 시니어 모델이 많이 양성되는 추세다.
조정윤 교수는 “시니어 모델은 젊고 늘씬한 사람만 모델을 할 수 있다는 고전적인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중장년층도 얼마든지 패셔너블할 수 있고,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시니어 모델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대중에게 더욱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중장년층의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본다”고 짚었다.
올드머니 룩에 주목하라
임승희 교수와 조정윤 교수는 중장년이 주목해야 할 F/W 시즌 패션 트렌드에 대해 ‘올드머니(Old Money) 룩’을 꼽았다. ‘금수저 룩’으로도 불린다. 미국·유럽 등 서구 상류층이 승마·요트 등을 즐길 때 입었던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지향한다. 명품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디자인 대신 고급스러운 소재 의상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정윤 교수는 “시니어 패션이라고 하면 여성은 꽃무늬 패턴, 남성은 체크무늬 옷이나 등산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올드머니 룩은 색이 단조로운 것이 특징이다. 현재 패션 트렌드는 미니멀과 자연스러움 추구다. 컬러는 흰색과 검은색이 기본이고, 갈색, 회색 톤 의상도 많다. 또한 로고 플레이를 최소화하고, 좋은 소재와 짜임새로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명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옷 자체가 아닌 자신이 고급스러움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올드머니 룩의 또 다른 특징은 ‘여유 있는 핏’이다. 일상에서도 활동하기 편한 패션이기 때문에 여유가 느껴지는 낙낙한 핏을 선호한다. 올봄까지만 해도 Y2K(2000년대) 패션의 유행으로 크롭트 기장의 타이트한 상의와 와이드 핏 바지가 유행이었다. 이제 상의는 여유 있고 하의는 타이트해졌다. 임승희 교수는 “일자바지가 유행인데 올드머니 룩을 표현하려면 여유 있는 핏이라는 포인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신발 또한 기존의 스니커즈가 아닌 굽 높은 뾰족구두를 신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배우 윤여정은 올드머니 룩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가 2021년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당시 보여준 블랙 드레스 패션은 아직까지 회자된다. 임승희 교수는 “윤여정 선생님은 체구가 작다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모노톤의 미니멀 의상을 선호한다. 또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패션을 찾아본 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윤진 교수는 F/W 시즌 패션 트렌드에 대해 ‘지속 가능한 패션’을 꼽았다. 이 교수는 “‘시즌리스’(Seasonless)를 넘어 ‘타임리스’(Timeless)의 시대”라고 표현하며 “시즌리스는 계절 구분 없이 의복을 착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개념이 확장되어 현재의 지속 가능한 패션까지 넓혀진 것이 타임리스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유행과 관계없이 오래 착용할 수 있으면서도, 친환경 공정무역의 윤리를 담은 패션 제품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타임리스 패션에는 조건이 있다. 니트, 티셔츠, 데님 등 기본 아이템들을 한 번 구매해서 다양한 용도로 오랫동안 활용하려면 디자인이나 디테일보다는 소재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타임리스 패션을 소화하면 환경도 살리고 스스로 의식 있는 소비를 한다는 자부심도 들 수 있다. 중장년층의 패션이 더욱 유연해지고 멋짐의 아우라가 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임승희 교수는 ‘옷 잘 입는 시니어’가 되기 위해선 ‘많이 보고, 많이 입어보라’고 조언했다. 20년 넘게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임 교수가 실제로 느낀 옷 잘 입는 연예인들의 비결이다. “연예인이라고 처음부터 옷을 잘 입는 것은 아니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 옷을 많이 입어보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스타일리시한 시니어가 되고 싶다면, 먼저 백화점을 방문해 각 브랜드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주목해 보세요. 올해 그 브랜드가 주력으로 밀고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트렌드를 알 수 있어요. 눈으로 본 뒤에는 직접 입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품관, 스파 브랜드 매장 등을 찾아서 옷을 피팅해보세요. 많이 입어봐야 옷의 차이를 알고,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패션의 세계를 많이 경험해보고 자신한테 맞는 스타일을 꼭 찾길 바랍니다.”
여행, 사진, 시낭송… 프로급 취미로 쌓은 내공
배우 양미경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덕대학교로 갔다. 배우이자 교수인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몇 번의 약속시간과 장소를 조정해가며 어렵게 만났다. 게다가 그녀는 인터뷰를 싫어해서 8년 만에 처음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이봉규로서는 행운을 잡은 것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8년 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배우는 시크릿(secret)이 있어야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양미경은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사진 촬영은 미리 드라마 촬영 장소에서 따로 해두었지만 연예인들이 인터뷰할 때는 대체로 화장을 하고 세련된 의상을 입기 마련인데 그녀는 마치 방금 운동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온 사람 같았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짐작이 갔다. 바쁘기도 해서 그렇지만 양미경은 촬영 때만 화장을 하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화장을 안 하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녀는 “평상시 내가 소중하니까 피부도 아끼고 화장하는 시간도 아낀다”고 대답하면서 “사극을 하다 보면 가체(加髢)가 무겁고 장시간 정수리 부분을 눌러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할 때는 원형탈모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부연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지금도 TV조선의 주말 사극인 ‘대군-사랑을 그리다’를 한참 찍고 있기에 무거운 가체와 의상, 그리고 분장에 몸이 얼마나 피로할까? 특히 ‘대군’에서도 대비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장식이 더 많고 가체도 더 무거울 것으로 짐작된다.
‘대군’에서 양미경이 맡은 대비 심 씨는 왕자들의 모후로서 조용하고 덕이 있다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궐내 각 처소에 정보원을 심어 치열한 내전 정치를 하는 전략가의 면모가 감춰져 있다.
양미경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가 대비 역할에 딱 어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깊숙이 숨겨진 그녀의 눈빛에서 나오는 내공은 후덕함으로 포장된 정치 9단의 대비 심 씨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대군’은 5월 초에 끝날 예정인데 양미경의 종편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
양미경은 1983년 KBS 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했고 이후 2년간 단역에 출연하다가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 조연을 맡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단아한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사극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3년 한류 열풍을 일으킨 ‘대장금’에선 장금의 스승인 한 상궁으로 열연해서 그해 연기대상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다. 이후 ‘왕과 나’, ‘해를 품은 달’ 등 사극에서 내공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사극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시간의 숨결을 느낀다”면서 시적 표현을 하는 양미경의 단아한 모습이 야구모자와 트레이닝복을 뚫고 나올 기세다.
양미경은 그래서 사극이 좋고, 사극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현재는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작 출연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배우와 교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럼 배우를 하죠!”라고 말하는 그녀. 양미경은 배우로서도 교수로서도 완벽한 프로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련한 연구에 열중한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예술의 성지를 찾는다. 특히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고향에서 그의 대표작 ‘갈매기’를 공연할 때를 잊지 못한다. 체호프의 고향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인 문학으로 격상시킨 체호프가 살았기 때문에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체호프는 ‘멜리호보’에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양미경이 좋아하는 ‘갈매기’를 비롯해 ‘나의 인생’, ‘사할린 섬’, ‘6호실’, ‘사랑에 대하여’ 등이 바로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의 성지가 됐다. 예술가들의 얘기와 여행 얘기로 잔뜩 신이 난 양미경은 화제를 프랑스로 또 금방 옮긴다.
그녀는 화가 고흐를 특히 좋아해서 고흐 마을을 꼭 간다고 말하며 표정이 금방 상기된다. 파리에서 약간 떨어진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Sur-Oise)는 고흐가 18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흐가 인생 말기에 살았던 자그마한 마을이다.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여관(Auberge-Ravoux)’도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고흐는 이곳 2층에서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파
그녀는 예술의 성지뿐만 아니라 자연이 아름다운 아프리카, 몽골, 인도 등도 여행한다. 배우와 교수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여행도 자주 한다. 얼마 전 입춘에 속초와 설악산을 다녀온 그녀는 눈 덮인 산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안 할 거냐?”고 따져 물었더니 “배우 안 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어진 게 감사하긴 하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지만 평생 배우로 살아왔기에 다소 민망한 듯 “남은 인생 배우활동을 충실하게 할 것이다. 배우는 죽을 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봉규는 “교수보다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배우가 좋지만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것 같았다. 흑백 필름을 구입해 직접 인화를 할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다. 그녀가 배우로서 감성을 유지해나가는 배경에는 이 같은 취미생활이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 하나의 프로급 취미생활 시낭송
이같은 연기에 도움이 되는 프로급 취미생활은 또 있다. 바로 시낭송이다. 멋모르고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해서 즐긴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서예전에서 양미경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이해인 수녀의 시 ‘우정일기’와 ‘차를 마셔요, 우리’를 낭송했다. 2006년에는 시낭송을 포함한 음악앨범도 냈다.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그대에게 가는 길, 양미경입니다’에서 소개한 곡 중 신승훈이 노래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주제가를 비롯해서, 자신이 특히 좋아했던 남자 가수들의 발라드 13곡과 직접 낭송한 3편의 시를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일본에서 먼저 발매되었는데 초기에 수입 물량이 품절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녀는 이 같은 음반 작업을 국내외 팬서비스 차원에서 했음을 밝힌 적이 있다.
그녀는 앨범 작업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작가와 프로듀서와 함께 좋은 음악을 선곡하면서 방송을 했지만, 무언가 한 가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사랑하는 팬들과 조용히 지지해준 국내의 30대와 40대 팬들을 위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쁜 와중에도 팬들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지극정성이다. 인터뷰 도중 교수 라운지에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왔다. 단아하고 내공 깊은 양미경과 여행, 예술 등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중이라 그의 노래가 마치 우리를 위한 BGM(background music)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격조 있는 대화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열중하느라 저만큼 떨어진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를 의식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더니. “나 여기 있어~” 한다. 양미경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대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비비안 리)이 튀어나온 듯했다. 이봉규는 애슐리(레슬리 하워드)로 양미경과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레트 버틀러(클라크 케이블)로 돌아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