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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양다경 대신 신양다경을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바야흐로 봄이다. 지난 3일이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이었다.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과 함께 사립(四立)으로 꼽히는 날이다. 옛날엔 한 해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풍속이 있었지만, 지금은 입춘축(立春祝)만 붙이는 정도로 의미가 왜소해졌다.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입춘축은 춘축(春祝) 입춘서(立春書) 입춘방(立春榜) 춘방(春榜)이라고도 부른다. 붙이는 위치에 따라 문구는 약간 다르지만, 가장 흔한 것은 역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올해에도 입춘 며칠 전부터 이 문구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았다. ‘입춘대길’이라는 문구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돼 일본 중국으로 번졌다는 설이 있다. 이 말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건 선조실록 26년 계사(1593) 12월 16일이다. “정원(政院, 승정원)이 아뢰기를 ‘오늘이 바로 입춘인데 아직 일이 안정되지 못해 춘첩자(春帖子)를 지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立春大吉‘ 네 글자를 정성스럽게 써서 행궁(行宮)의 안팎에 붙이는 게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할 만하면 하도록 하라’ 했다.”[政院啓曰 今日是立春 而時未事定 春帖子不爲製進矣 精書立春大吉四字 帖於行宮內外宜當 傳曰 可爲則爲之] 나라가 망해가는 임진왜란 와중에 입춘이고 뭐고 흥이 날 리가 있나. 입춘을 축하하는 시를 새로 지을 여력도, 정신도 없으니 알기 쉽게 이 넉 자를 써서 임시 거소의 안팎에 붙이자는 이야기였다. 선조의 대답도 심드렁하기만 하다. 난 모르겠으니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거 아닌가. 입춘대길은 이렇게 임시변통으로 만들어졌는데, 뜻밖의 대히트를 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조선 후기의 문신 조명채(曺命采, 1700~1763)가 종사관으로 일본을 다녀와서 쓴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의 1748년(영조 24) 6월 9일 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연로 촌가에서 우리나라처럼 ‘입춘대길(立春大吉)’ 넉 자를 써서 붙인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보니 눈이 새로워진다.” 이게 입춘대길의 일본수출로 해석되는 사료인 것 같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立(설 립)과 建(세울 건), 春(봄 춘)과 陽(볕 양)이 잘 어우러지는 대구(對句)다. 건양다경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중국에서 온 건 아닌 것 같다. 건양은 1896년부터 1897년 8월까지 사용된 조선시대 최초의 연호다.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고, 이때부터 태양력과 함께 건양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이듬해 8월 14일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바꾸어 8월 17일부터 사용했다. 고종은 황제가 됐다. 이렇게 건양은 겨우 1년 8개월 가까이 사용된 국호였다. 좋은 뜻 같기도 하지만 좁게 말하면 양력을 도입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도 건양다경이 입춘대길과 함께 고전처럼 오래 전승돼온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잘 어울리는 대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구는 농담거리로 회자되기도 한다. 어떤 호사가는 ‘입춘대길’에 대해 “봄에 남자의 물건이 서면 집안이나 부부에게 크게 길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건양다경’도 같은 맥락에서 남성의 양물을 세운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다경(多慶), 즉 자손이 번창하고 집안에 경사가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건양다경이 출전이 모호하거나 망국의 연호인 게 분명하거나 성적 농담거리까지 된다면 굳이 그 말을 계속 쓸 필요가 있을까. 지난해 내가 소속된 서예단체 겸수회(兼修會)의 공부시간에 이미 이런 의문이 제기됐다. 입춘대길은 그대로 두고, 건양다경만 바꾼다면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후보로 나온 게 초양(初陽)다경, 맹양(孟陽)다경, 가양(佳陽)다경, 시양(始陽)다경, 청양(靑陽)다경 등이다. 이중 청양은 청(靑)이 계절상으로 봄, 방위로는 동방을 가리키는 색깔이라는 점에서 만든 말이다. 하지만 가장 알기 좋고 발음도 쉬워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은 것은 신양(新陽)다경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새롭고 신선한 햇볕이 천지사방에 고루 퍼지는 입춘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겨울의 어둠과 추위에서 벗어나 새로 출발하는 생명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성적 농담의 대상이 되는 말 대신 이걸 쓰기로 하자. 신양은 음력 11월을 달리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신춘(新春)과 같은 의미이다. 신(新)에는 처음이면서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2021-02-1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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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하다 죽어야 되지?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20년간 국내외 문화재를 펜화로 그려낸 김영택 화백이 전시회 1주일 전인 1월 13일 76세로 타계했다.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1월 20일 시작된 ‘김영택 펜화전’은 주인공 없이 2월 15일까지 열린다. 전시에는 고인의 펜화 작품 40여 점과 함께 펜촉 등의 유품이 출품됐다. 나는 개막 다음 날 찾아가 펜촉을 사포로 갈아서 0.03㎜ 굵기로 수십만 번 세밀한 점과 선을 그어온 열정과 섬세함을 잘 감상했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화업 30년을 결산하는 전시에 공을 들인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펜화와 함께한 삶 자체가 축복이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시에는 ‘질사모’ 회원들과 함께 갔다. 질사모는 불세출의 테너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질리를 사랑하는…”이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발음만 듣고 철학도 모임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질사모’는 음악으로 시작됐지만 문학 미술 등 문예 전반에 대한 애호와 감상,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인 단체다. 하여간 질사모 단톡방에 그의 죽음을 알리자 여러 반응이 올라왔다. “화가들은 자기 전시회 기간에 영면하는 걸 큰 복으로 알았다지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서예가는 붓 잡고 선종하시고요.” 이건 서예가는 아니지만 붓 잡고 끼적거리는 나 들으라고 한 말이다. “저는 임종처를 벌써 정해두긴 했는데 어떻게 될는지….” 죽는 장소까지 정해두었다니 어딘지 자못 궁금했다. “불교에서는 강의 도중 쓰러지는 걸 학문열반(學問涅槃)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뭐. 내가 “그러면 언론인은 어떻게 해야 된대유?”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신문을 읽다가 가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신문 읽다가 신문을 쥐고 가고 싶다”고 한 분이 있다는 것이다. 신문기자(교열)이면서 소설가 수필가였던 민기(閔幾, 1925~2018) 씨의 말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 법하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가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 중 무대에서 쓰러지고, 미술가가 화폭에 마지막 붓질을 하다 숨을 거두고, 시인이 독자들 앞에서 시 낭송을 하다 떠나가는 건 그런대로 폼 나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신문 읽다가 가는 건 신문기자 아니라도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않나? 아무래도 좀 없어 보인다. 방송기자가 방송 중 마이크 앞에서 죽는 것과는 질과 결이 다른 것 같다. 그러면 의사가 수술 중 죽는 건 어때? 안 좋지. 환자한테 큰일 나지. 판사가 재판 중에 죽는 건? 장사꾼이 흥정 중에 죽는 건? 목사가 침 튀기며 설교하다가 죽는 건? 수사관이 피의자 심문 중에 죽는 건? 선생님이 화가 나 학생을 훈계하다가 죽는 건? 요리사가 신나게 칼질을 하다가 죽는 건?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 중에는 자위하던 중 화산재가 덮쳐 죽은 남자도 있던데 그런 건? 아무래도 신문기자는 책상에 앉아 뭔가 쓰다가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근데 무슨 글을 쓰지? 자신의 삶에 대해 쓰는 게 좋겠지. 선비들 중에는 묘비나 묘표(墓表), 묘지명(墓誌銘)을 미리 써놓은 사람이 많다. 생전에 만든 자기 무덤을 수장(壽藏) 또는 생분(生墳)이라 하고, 무덤에 묻을 묘지명을 살아 있을 때 쓴 것을 생지(生誌)라고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문집에 실을 ‘집중본’(集中本)과 무덤에 묻을 ‘광중본’(壙中本) 등 두 가지 자찬(自撰) 묘지명을 남겼다. 광중본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기세를 폈지만/하늘은 그로써 너를 곱게 다듬었으니/잘 거두어 속에 갖추어 두면/장차 아득하게 멀리까지 들려 올리리라”로 끝난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주자학을 비판하며 경전과 노자 장자를 재해석했던 분답게 자신의 묘표를 이렇게 썼다. “차라리 외로이 살면서 세상에 구차하게 부합하지 않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 사람답게 살면서 남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걸로 옳다’고 하는 자에겐 끝내 머리 숙이지 않겠으며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고 여겼다.” 우리나라 언론인 중에도 자신의 사망기사를 써놓은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런데, 공개된 기사를 읽어보니 산에 가서 실종되는 내용인 데다 너무 소설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사망기사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더 지났으니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범 사례는 미국 칼럼니스트 아트 버크월드(Art Buchwald, 1925~2007)다. 2007년 1월 18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는 “안녕하세요? 아트 버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라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1982년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칼럼(주로 정치풍자)은 전 세계 500여 개 신문에 실릴 정도로 평가가 좋았다. ‘워싱턴의 휴머니스트’로도 불려온 그는 40년 넘게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 계층을 풍자한 칼럼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의 글을 실으면 신문의 품격이 높아진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는 당뇨병이 악화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도 신장투석을 거부한 채 워싱턴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체로 소개했다. 그런 칼럼니스트가 마지막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본인의 사망 소식을 알린 것이다. 글은 해학과 풍자가 넘쳤지만 그는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만큼 불우했고 어머니는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살았다. 우울증이 심해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잘 이겨냈다. 한 인터뷰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잘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요?”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고 유머의 힘을 잘 아는 게 언론인 아닐까. 가만있어도 나이 한 살 더 먹는 설날을 앞두고 이렇게 죽는 이야기를 한 건 좀 거시기하지만, 아트 버크월드 같은 해학과 여유를 갖게 되기를 나도 바라고 있다.
- 2021-01-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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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소도, 반품도 가능한 입양?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이야기입니다. 손자가 넷이나 되는 미국 시카고의 한인부부에게 어느 날 손녀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둘인 큰딸 크리스틴이 딸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했을 때 부부는 반대했답니다.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전업주부도 아니고 노상 출장 다녀 주말에나 귀가하는데 꼭 입양을 해야겠느냐는 거지요. 피붙이도 아닌 아이를 친손자처럼 사랑해줄 자신도 없었답니다. 그러나 큰딸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실망했다”며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이 한사코 핏줄을 따지고 입양을 꺼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엄마마저’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게 너무 놀랍고 실망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크리스틴은 남편 조(미국인)와 함께 한국에 가서 아홉 달 된 아기를 안고 돌아와 자기 동생과 같게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참 예쁘고 귀여웠습니다. 그런데 사흘쯤 지났을 때 전혀 듣지를 못하는 선천적 청각장애아인 걸 알게 됐습니다. 가족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놀란 홀트아동복지회는 거듭 사과하면서 “파양 권한이 있으니 원하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크리스틴은 한 달 내내 울며 생각하더니 “입양한 날부터 내 자식인데 귀머거리라고 포기할 수는 없다”며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너무 사랑해서 보낼 수 없다는 말에 모두가 참 많이 울었답니다. 크리스틴은 “이 아이에게 엄마,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한국 사람인 우리 집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위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큰돈이 드는 수술을 받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치료 받아야 했습니다. 또 매일 재활센터에 데리고 다녀야 하고, 장애아를 키우는 교육도 받아야 하는 등 아이에게 하루 종일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위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한창 일하는 나이 마흔 살에 회사 부사장직을 포기했습니다. 사직서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사실이겠지요. 저는 앞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서 잘 듣는 걸 배울 것입니다. 제가 가능하다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It has been said that I am not the strongest listener in the group! While this may have been true, I can assure you that through deafness I am learning to listen in ways I never thought possible.) 입양을 결정하면서 크리스틴은 부모에게 긴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엄마, 누가 우리만큼 엘리자베스에게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설령 있다 해도 우리도 절대 뒤지지 않는, 최고로 좋은 부모라고 자신해요. 엘리자베스가 자라서 우리가 엘리자베스 때문에 행복했던 것처럼 자기도 우리를 만나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것은 미국의 내 블로그 이웃이 2008년의 일이라면서 19일에 되살려 올린 글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글을 다시 올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의 하루 전 신년회견 발언 때문입니다. “입양 자체는 위축시키지 않고 활성화해나가면서 입양 아동 보호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 입양 부모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하거나 여전히 입양하려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 경우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 귀가 의심스러운 발언이었습니다. 생후 16개월 된 아기 정인이는 입양된 후 양모의 학대와 폭력으로 끝내 목숨을 잃었지요. 그런 사건의 재발 방지책을 묻자 대통령이 한 대답입니다. 발언이 알려지자 충격과 실망, 분노를 담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입양하려는 아이가 공산품인가요?”, “입양이 무슨 홈쇼핑이냐.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개와 고양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이런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등등. 지금 국민들은 정인이 사건으로 큰 내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로 고통스럽게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 때문에 슬퍼하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황당한 발언은 처음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방명록에 쓰거나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사고로 다친 병사를 만나 “짜장면이 먹고 싶은가”라고 물은 일도 있었습니다. 왜 말을 그렇게 한 것일까요? 신년회견을 앞두고 네 번이나 리허설을 했다던데, 당연히 나올 걸로 예상되는 질문이었을 텐데. 일부의 지적대로 ‘공감능력의 결여’ 탓일까요? 대통령은 기자들을 자주 만나지도 않지만 회견을 할 때마다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그 말을 받아서 “대통령도 반품이나 취소를 해야겠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말은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서툴러집니다. 귀는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언론과 담을 쌓고 살거나 아랫사람의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살다 보면 본의도 아니고 고의도 아니지만 실언도 허언도 아닌 망언이 나오게 됩니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왜 굳이 입양을 해서 어린 생명을 앗아갔을까요? 잊고 싶기도 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정인이의 모습이 자꾸만 되살아납니다. 선의를 가장하고, 입양 사실을 자랑하면서, 시시덕거리면서 살던 양부모의 영상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말은 쓸어 담을 수도 없고, 반품도 취소도 안 되지만, 그래도 대통령님, 어디 다시 한번 대답을 해보세요.
- 2021-01-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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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형, 댓글이 왜 이래?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의 충격이 크다. 지난 6일(현지시간)의 폭거로 건물과 각종 시설물이 파손된 것은 물론 경찰과 시위대 여러 명이 숨졌다. 민주주의의 본바탕인 미국이 어쩌다 이리 됐나, 흥, 미국도 별수 없구나, 우리나라도 이런 일은 없는데, 트럼프는 정말 나쁜 X이야…. 이런 말이 들리고 있다. 그런데 그날 밤 한국계 이민 2세인 앤디 김(39) 민주당 하원의원(뉴저지)이 난장판이 된 의사당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널리 알려졌다. 김 의원은 경찰관이 쓰레기봉투에 피자 박스 등을 넣는 걸 보고 “나도 (봉투를) 하나 달라”고 해 함께 청소를 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누구든 좋아하는 게 망가지면 고치고 싶지 않겠나”라며 “정말 가슴이 아팠고 그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뉴저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시카고대를 나와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뉴저지 3번구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2020년 재선에 성공했다. 중국계 미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다. 고아였던 아버지 김정한 씨는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공학 박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누나 모니카 김은 예일대 졸업 후 뉴욕대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앤디 김의 행동이 알려진 이후 그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에는 미국인들의 칭찬 댓글이 쇄도·답지·폭주하고 있다. “고마워요 앤디! 당신은 자랑스러운 공직자야”, “폭풍 속에 빛나는 등불 중 하나”, “우리는 정말 당신 같은 지도자가 더 필요해요”, “대통령 출마를 기대하겠음”, “청소하는 모습 보고 눈물 났어요. 미국인들은 갈라졌지만 앤디 김 같은 애국자들이 희망을 주고 있네요”, “내가 두 번 다 당신을 찍은 게 자랑스러워”, “뉴저지의 자랑”, “이 울적한 주간의 한 줄기 햇빛”….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영 딴판이다. 기사를 보고 삐딱선을 타거나 왼새끼를 꼬는 댓글꾼이 많다. “저게 의원의 의무인가?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무슨 쇼인가. 저런 것에 속지 말아야 개돼지 소리 안 듣는다”, “미국에서 저런 싸구려 쇼를 하면서 언론에 보도돼 나오면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겠나? 가수는 노래로 자존감을 나타내고, 연방 하원의원이면 지역주민에게 한 몸 바쳐 봉사하면 그뿐인데 청소나 할 거면 그냥 청소원으로 취업하는 게 낫지 않겠냐?”, “우연히 찍힌 사진이 아닌데 뭐~”, “저런 짓 하는 놈이나 저런 거 찾아서 찍어 올리는 기레기나… 기레기야, 미국은 한국이 아니다.” 그가 민주당이라서 더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일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확인하게 될 줄이야. “미국이든 한국이든 민주당은 그저 쇼통밖에 할 줄 모르는구나”, “생쇼가 피에 흐르는가? 문제는 진정성이다”, “이미 청소되고 걸레질까지 된 바닥에 빈 물병 놓고 사진 찍은 것. 이건 누가 봐도 쇼다”, “미 의사당에는 전용 청소원들이 있다. 지역 유권자들은 의회에 가서 청소나 거들라고 선출한 게 아니다. 청소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일을 뺏는 무경우한 몰상식적인 짓이다. 그 시간 도서관으로 가든지 숙소로 돌아가 의정활동에 관한 책이라도 보라!” 어떤 신문은 맨 처음 보도를 할 때 앤디 김이 민주당이라는 걸 표기하지 않았다(설마 의도적인 걸까? 실수로 빠뜨린 거겠지?). 댓글을 유심히 비교해서 읽어 보니 민주당임을 밝힌 신문보다 반감이 확실히 적었다. 그런데 하루 뒤엔가 인터넷에 새로 뜬 그 신문의 기사에는 민주당이 표기돼 있었다. 그러자 반감과 비판이 높아지고 왜 기사를 또 실었느냐, 앤디 김을 띄워주려고 그러느냐는 댓글이 붙었다. 앤디 김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나라에 민주라고 떠드는 것들 중에 이러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저런 인재가 한국에 많아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권위주의에 절어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국계지만 우리 정서가 없는 미국인이지요. 그래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다음 댓글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럴까? “왜 요즘 사람들은 멋진 일을 해도 비뚜로만 보는지 뭐가 그렇게 마음이 꼬였을까?” 다음 댓글이 이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저 자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근데, 요즘 한국인 중 보이는 곳에서만 남들 안 하는 언행으로 튀어보려는 얕은 모습이 눈에 띈다. 평소에도 법을 지키고, 선하고, 예의 바르고, 사기 안 치고, 거짓말 안 하고, 쇼 안 하는 진솔한 인간이면 금상첨화라 본다. 현 정권을 보고 하는 말이다.” 최근에 본 인터넷 유머에 이런 게 있었다. 일본은 욕할 때 “죽어~!”라고 해서 인구가 줄고, 미국은 “Fuck”이라고 욕을 해서 인구가 늘고, 한국은 “개새끼”라고 욕을 해서 사람들이 개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그런 걸까? 테스형, 도대체 댓글이 왜 이래?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갈수록 더 삐딱해지고 못돼가는 거유? 테스형 혼자서 풀기 어려운 문제일라나? 그러면 어디 다른 형들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세. 네스형(디오게네스, 아낙시메네스), 데스형(파르미데스), 라스형(아낙사고라스, 프로타고라스, 피타고라스), 레스형(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엠페도클레스), 로스형(에피쿠로스, 아낙시만드로스), 토스형(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어디 한번 다 나와서 말씀 좀 해보시구려. ‘스’ 자가 안 들어가는 형님들은 나중에 부르기로 할 테니 좀 지둘리시고.
- 2021-01-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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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초성 위인열전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어린이 여러분, 우리나라 위인 알아맞혀 보세요. ㅇㅅㅅ은? 이순신, ㄱㅈㅎ은? 김정희, ㅈㅇㅇ은? 정약용…, 한글 자음 초성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퀴즈를 주고받으면 재미있어. 초성놀이는 활용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 애정을 담아 건네는 농담이나 군색한 처지의 변명에도 효과적이잖아. 어떤 남자가 짝사랑하는 여자한티서 이런 문자를 받았대. “ㅊㄲㅃㅇㅇㅅㅅㄱㄱㅍㅌㄷㅈㅌㅂㅎㅅㅅㅇㅅㅊㅊㅈㅍㅋㅇㅍㄲㅈ.” 드디어 내 맘을 받아들였구나 싶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뜻을 알 수 있어야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니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였대. 한동안 유행하던 패스트푸드사의 CM송 가사였다는군. ㅋㅋㅋ. 이걸 죽여, 살려? 2020년을 보내면서 나도 그 여자 본받아 초성 위인열전을 만들려 함. 근데 뛰어나고 훌륭한 위인(偉人)이 아니라 일 저지른 위인(爲人), 즉 장본인들이여. 선정기준은 많아. 아시타비(我是他非) 금시작시(今是昨是)라고 난 항상 옳고 넌 틀렸다는 자, 손 뒤집어 구름 만들고 손 엎어 비를 만드는 번운복우(飜雲覆雨, 두보의 시에 나오는 말)의 사기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이건 정경심 교수 재판부가 한 말) 위인, 공개념도 없이 공직을 맡고 있거나 탐내는 가짜, 불량품 재고 창고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 다리를 뻗으면 누울 자리가 생긴다는 신념과 지조로 세상을 사는 얌체, 품위는 개뿔, 뭐든 마구 써대거나 내뱉는 막말 양아치, 아무리 뜯어봐도 한마디로 왕싸가지…. 이렇게 기준이 많지만 사실은 내 맘대로여. 내가 경멸·타기하는 자들. 남녀 불문, 여야 불문에 안주 불문이여.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한 건디, 매국노 이완용은 ㅇㅇㅇ이더군. 그러니까 “응응응” 하다가 나라를 팔아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듦. 아무리 초성만이라도 사람은 이름을 닮는 게 아닐까. 아니야. 나는 알다시피 ㅇㅊㅅ인디 그러면 내가 서울시장 나온다는 안철수여, 축구선수 이천수여? 다 안 맞잖아. 하여간 가나다의 역순, 다나가 순으로 한번 위인들 열병(閱兵)을 해볼까. 여기 실명이 등장하는 분들께는 한사코 죄송·미안하지만 대의를 위해 한번 눈감아주셨으면 함. △ㅎㅇㅎ=현재 국회의원이여. 똑같은 ㅎㅇㅎ 초성자에 개그맨 황연희가 있지. 요즘은 활동이 뜸하지만 잘 웃기고 재치가 좋아. 근데 이 의원님은 다른 방식으로 웃기고 있음. △ㅎㅈㅍ=빨간색을 디게 좋아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주특기. “이 사람과 한 번 틀어지면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기억력도 좋고 집요해. 누가 이 사람과 맞서면 ‘안 싸우는 게 상책’이라고 말린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더라. △ㅊㅁㅇ=단연 2020년의 대스타. 정호승의 시처럼 ‘산산조각’이 난 꼴이 되긴 했지만, 이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인기가 대단해. 앞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가 뭘 칭칭 감아댈 덩굴인지 알 수 없어. △ㅊㄱㅇ=없는 일을 있게 만드는 달인. 재판 받다가 다른 일정 있다고 조퇴를 시도할 만큼 국사에 충실한 사람, 최경원 전 법무부장관, 최기영 전 과기부장관도 ㅊㄱㅇ인디, 이 사람도 나중에 장관 되는 거 아녀? △ㅈㄱ=이름이 외자인 사람은 노출되기 쉽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 선생도 ㅈㄱ이긴 하지만 내가 뽑은 위선자와 달리 이분들은 학문 연구와 직언으로 유명했어. △ㅇㅎㅊ=50년 집권론을 부르짖은 사람이야. ㅇㅎㅊ 중에 유명한 사람은 이환천이라는 시인인데, 시가 재미있고 촌철살인이여. 다음은 그의 작품 ‘문제’.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다음이/뭔지아니?/답은‘하야’” 이건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쓴 거지만 지금도 착용감이 좋아. △ㅇㅈㅁ=싸움닭같이 전후사방 안 싸우는 사람이 없어. 참 바빠. 신경림의 시에 ‘목계장터’라는 게 있는디, 이곳은 牧溪(목계)지만 나는 木鷄(목계)라는 장터에 보내주고 싶어. 이 목계가 뭔지 궁금하면 찾아보셔. 아니 검색하지 말고 사색부터 해보셔. △ㅇㅇㄱ=불량품 창고가 우리나라 도처에 있다는 걸 잘 알려준 사람. 이걸 다 빨리빨리 처분해야 하는디 참 걱정이야, 그치? ㅇㅇㄱ ㅇㄴ, 이게 뭐어게? “어이가 없네”야. 하는 짓이 정말 어이가 없어. △ㅇㅁㅎ=와인의 아름다운 향기를 잘 아는 국회의원. 할머니들한테 참 유명한 사람. 이름을 일본어로 읽으면 미카인데, 원래 일본에서 온 이름인지 우리 고유의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어. 프로골퍼에도 ㅇㅁㅎ이 있지. △ㅇㅅㅁ=이세민? 당 태종의 이름도 아니고 영세민과도 무관해. 검찰의 은행계좌 추적 정보에 일가견이 있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해박, 아니 각박한 사람이여. 나는 해박(該博)을 각박(刻薄)으로 읽곤 하거든. 아는 게 많으니 곡학아세, 사기 치기도 유리하겠지. △ㅅㅎㅇ=목포는 항구라는 걸 잘 아는 전직 국회의원. 남동생이 죽었을 때 어디까지나 침착 냉정을 잃지 않는 차분함이 참 인상적이었어. 내 한국일보 입사 동기에 손홍익(孫鴻翼)이 있었는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지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도 잘 있겠지? △ㅂㅊㅎ=국토는 좀 아는디 교통은 몰라. 모르는 거 또 있어. 너무 바빠서 자동차 압류되는 것도 모르고 세금도 못 냈지. 야당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된 스물여섯 번째 장관님. 못사는 사람이 미쳤다고 장관하려 하겠어? 혼자 다 해요. △ㄱㅇㅁ=초성만 같을 뿐 사실은 두 사람이여.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회의원 되려다 실패했어.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 개그맨 강유미는 인터뷰 잘하던데, 이 두 사람은 입만 열면 시끄러워져. △ㄱㅇㅈ=머리는 감고 사나? 난 화가 수필가 미술사학자였던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의 글을 좋아하고 한문학자인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를 잘 알지만, ㄱㅇㅈ이라는 초성이 참 아까워. 왜곡과 억지로 언론인 행세를 하니, 에구 쯧쯧. △ㄱㄴㄱ=ㅈㄱ, ㅊㅁㅇ의 똘마니라지? 똘마니는 서럽지만 더 빛을 볼 날이 있을 거야. 똘마니니까 짧게 쓰자. 이 밖에 ㄱㅌㄴ, ㅈㅊㄹ, ㄱㄷㄱ, ㄴㅇㅁ, ㅇㅇㅈ, 이런 정계 인사들과 ㅇㅅㅇ, ㅅㅈㅊ, ㅈㅎㅇ, ㅈㅈㅇ, ㅂㅇㅈ, 이렇게 장래가 촉망되는 검사들이 제제다사(濟濟多士)야. 인물이 너무 많아 다 못 쓰겠음. 천자문에 나오는 대로 ‘준예밀물 다사식녕(俊乂密勿 多士寔寧)’, 재주와 덕이 뛰어난 사람들이 힘써 일하고 많은 인재가 있어 나라가 편안한 상황 아니겠어? 근데 어떤 기자가 쓰기를 “내 평생 검사(檢事) 이름을 이렇게 많이 알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지? 장·차관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데 평생 검사랑 맞닥뜨릴 일 없는 사람들이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여러 명의 이름을 알게 되다니. 초성만 써놓고 봉게 나도 누가 누군지 정말 헷갈린다. 그나저나 이놈의 컴퓨터는 왜 한글 자음만 치면 무조건 영어 알파벳으로 돌아가지? 한글이 알파벳의 종속 문자냐? 글쓰기 불편해서라도 내년엔 이런 거 좀 안 썼으면 정말 좋겠구나야.
- 2020-12-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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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웠던 딸꾹질 20시간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지난주 동네 의원에서 폐렴 2차 예방접종을 받았다. 작년에 이어 1년 만인데, 왜 그런지 이번엔 저녁때부터 접종 부위가 붓고 몹시 아팠다. 밤새 한잠도 못 자고 몸살을 끙끙 앓았다. 다음 날 의원에 다시 찾아가 엉덩이에 주사를 이쪽저쪽 두 방이나 맞았다. 엎드리지도 않고 선 채로 바지만 까 내리고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 놓는 사람만 있으면 될 텐데 웬일인지 간호사 두 명이 자기들끼리 잡담하며 내 빈약한 엉덩이를 다 구경했다. 의사는 미안해서 그런지, 첫날 접종을 잘못해서 그런지 이번엔 돈도 받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백신을 앞장서 맞은 수간호사가 방송 인터뷰 도중 실신하는 일도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종종 실신하곤 했다는데, 나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으니 다행인 거지. 별말 없이 주사를 맞게 한 의사는 약도 처방해주어 하루 세 번 식후에 약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딸꾹질이 시작돼 멎지를 않았다. 좀 나아지나 싶어서 어렵사리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내 말을 들으니 내가 잠을 자면서도 계속 딸꾹거렸다고 한다. 참 재주도 좋지. 딸꾹질을 하면서 어떻게 그리 잘 수가 있어? 하여튼 몸살기는 없어졌는데, 아랫배까지 출렁거리는 이놈의 딸꾹질을 어떻게 하나. 나는 늘 하던 방식대로 숨을 참아보았다. 옛 문헌에는 딸꾹질하는 사람에게 “뭘 훔쳐 먹었느냐?” 하고 소리치면 딸꾹질이 멎는다고 돼 있다. 예전에 어른들이 흔히 써먹던 수법이다. 그러나 내가 나더러 소리를 질러봐야 웃기는 일이 되고 말 테지. 아내에게 갑자기 등을 치게도 해보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혀를 내밀고 뭐라고 글씨를 쓰면 멎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혀를 내놓고 ‘임철순 나쁜 놈’ 이렇게 써보았다.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마침 집에 한방 요법으로 손가락 안쪽을 찌르는 전자침법, 사혈침법 책자가 있어 그것도 그대로 해보았지만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하나마나였다. 딸꾹질을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소리 내어 책을 읽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신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이 1757년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딸꾹질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편지를 보고 숙식에 별일이 없고 독서에서 맛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것이 바로 너에게 바라던 것이다. 어떤 위안이 이만하겠느냐. 다만 딸꾹질로 고생한다고 했는데 이는 먹은 음식이 다 내려가기 전에 독서를 해서 생기는 것으로 다른 치료법이 없다. 그저 식사 후 천천히 걸으며 속이 편안해진 뒤에 느리게 읽다 보면 한참 지나 저절로 나을 것이다.” 독서를 하다 보니 딸꾹질이 생긴다고? 아들을 너무도 좋게 봐주는 거 아니야? 글씨를 좀 더 정성들여 쓰라는 잔소리도 잊지는 않았더라만, 아버지란 그저 아들이 책 읽는 것만 좋아하기 마련인가보다. 원래 부모에게 보기 좋은 건 아이들의 밥 먹는 입이고, 듣기 좋은 건 병에서 물 쏟아지듯 아이들이 글을 좔좔 읽어대는 소리라지? 그나저나 저녁 약속을 어떻게 하지? 원래 연말은 술꾼들이 즐겁고 바쁜 대목인데, 금년엔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약속도 별로 없고 있다가도 취소되는 판에 번개 모임 하나가 모처럼 생겼는데. 몸도 약해진 판에 괜히 나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쩌지? 몸살이야 나았다 치고, 사람들 만나서 딸꾹질을 해대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불참한다고 카톡 단톡방에 알렸다. 그랬더니 의사인 친구가 내가 먹는 약에 항히스타민제가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게 딸꾹질을 일으키는 성분일 수 있다는 거였다. 약봉지를 살펴보니 과연 그런 약제가 있었다. 그래서 약은 더 이상 먹지 않고 딸꾹질 봉쇄에 전심전력 성심성의를 다 기울였다. 그리하여 밤 11시 넘어 나는 결국 끝내 드디어 마침내 딸꾹질을 잡았다. 어떻게 했느냐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음, 힘을 주면서 크게, 오래 숨을 참았다. 근데 이때의 “음”은 위 동그라미를 너덧 개쯤 그려야 할 정도의 소리다. 생각해보니 내가 딸꾹질에 시달린 시간은 20시간쯤 되는 것 같다. 이런 정도는 기네스도 뭣도 안 되는 기록이지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던가?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은 내 몸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이걸 깨달아 배운 것이다. 다만, 혀에 글씨를 쓰면 어떤 효과와 작용이 있기에 그런 요법을 고안해 낸 건지 그것은 지금도 궁금하다.
- 2020-12-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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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작시(今是昨是) 추미애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중국 동진(東晋)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대(宋代) 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부터 1600여 년 전 인물인데, 하지 않은 말이 뭐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노래한 시인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그의 시는 후세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평담은 평범하면서 담담하고 평이하면서 담백하다는 뜻이다. 도연명과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시가 너무 쉽다고 깔보기도 했다지만 시든 서예든 음악이든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최고 경지는 평담과 천진이 아닐까.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도 “시는 평이하고 담백하게 하는 데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연명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벼슬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쓴 산문시 ‘귀거래사’(歸去來辭)다. “돌아가리라. 전원이 바야흐로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라고 시작된다. 이 시 이후 귀거래는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정착됐다. 귀거래사는 전문 334자 모두가 보석같이 빛나지만, 그중에서도 서두 부분의 다음 몇 줄이 특히 유명하다(이치수 번역).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悟已往之不諫] 앞으로의 일은 바른길 좇을 수 있음을 알았다네[知來者之可追] 실로 길을 잘못 들었으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으며[實迷塗其未遠]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覺今是而昨非] 마지막 줄을 요약한 금시작비(今是昨非)는 그 뒤 삶의 반성과 전환, 깨달음과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성어가 됐다. “책을 보다 지난날이 잘못됨을 깨닫고, 술잔 잡고 지금이 옳음을 아네[觀書悟昨非 把酒知今是]”. 이것은 명나라 말기에 장호(張灝)라는 사람이 옛 경전의 좋은 글귀를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서 엮은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 1629년)’에 나오는 시다. 여기에 실린 건 아니지만 앞부분이 “나를 성찰하니 어제가 그른 줄 깨닫겠네[省己悟昨非]”라고 돼 있는 시도 있다. 둘 다 출전은 몰라도 도연명의 시에서 유래된 표현임은 분명하다. 조선조의 문신 이광진(李光軫, 1513~1566), 임의백(任義伯, 1605~1667) 같은 분들은 당호를 금시당(今是堂)으로 짓기도 했다. 이광진의 별서(別墅)였던 밀양의 금시당은 수령 400여 년을 헤아리는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또 2015년 제6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도 제목의 뿌리는 도연명이다. 그런데 이 ‘금시작비’는 전에 저지른 일을 덮어 변명하는 변절의 둔사(遁辭)로 쓰이거나 내 잘못을 제쳐두고 남을 비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정치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금시작비(今是昨非)의 자세와 어긋난다”고 한 말에 뱀의 독이 묻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냈다고 정홍원 국무총리를 호되게 닦달하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추 장관은 “정부를 공격한다든지 정권을 흔드는 것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고 미화돼선 안 된다”는 말도 했는데, 그에게는 모든 일이 금시작비가 아니라 금시작시(今是昨是)인 것 같다. 1주일 후 추 장관은 “(윤 총장이) 대권후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등극했으니 차라리 (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는 말도 했다.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대권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게 좋지만, 등극은 아예 맞지도 않는 표현이다. 등극(登極)이란 문자 그대로 더 오를 곳이 없는 상태, 임금이나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이런 정도의 문자 지식과 언어 실력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허균(許筠)의 아버지 허엽(許曄, 1517~1580)은 동·서인이 대립할 때 김효원(金孝元, 1542~1590)과 함께 동인의 영수가 됐던 사람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그에 대해 “자신은 선을 좋아한다고 했으나 시비가 분명치 못하고 사람을 취하는 데에도 착오가 많았다”고 썼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차라리 학식이 없었다면 착한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추 장관을 보며 이런 이야기도 생각했다.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거백옥(蘧伯玉)은 공자가 그 행실을 칭찬했던 사람이다. 겉은 관대하지만 속은 강직한 성품으로, 잘못을 고치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 그가 “나이 50에 49년의 잘못을 알게 됐다[行年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고 했다는 말이 나온다. 줄여서 오십세지비(五十歲知非)라고 하는데, 도연명이 이 말에서 금시작비를 생산해냈는지 모르겠다. 정조 임금도 이 말을 본받아 “나이 50이 다 돼서야 재위 24년 동안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또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묘비명에 “나이 90에 89년의 허물을 알겠구나[年九十而知八十九非]”라는 말을 삽입한 바 있다. 추 장관은 김 전 총리를 당연히 좋아하지 않을 텐데, 아직 일흔도 안 된 1958년생이니 앞으로도 작비(昨非)를 저지르다가 금시(今是)를 깨닫게 될 시간은 충분하다 하겠다. 그런데 추 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 같다. 그가 금시작비라는 말을 되뇌면서, 가슴을 치면서, 귀거래사를 읊으면서 드디어는 어디론가 평담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2020-12-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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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어라 불현듯, 달맞이꽃!”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지난주에 ‘소리 좀 내지 말고 살아라’라는 글을 썼더니 여러 사람이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단톡방에 “내가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실은 말수가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님”이라고 주장했다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양”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쭝얼쭝얼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디”라고 버티다 “목소리가 큰 건 인정하셔야지”라는 핀잔을 받았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판소리와 가야금을 하는 여성이 내 블로그에 올린 댓글이다. 첫 번째 댓글은 이랬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귀(내 귀는 소라껍질)’라는 시를 읽고 실제로 소라껍질을 귀에 대보았을 때, ‘솨아--(쏴아가 아님)’ 소리를 듣고 ‘아! 정말!’ 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바닷소리에 섞여 아련히 바다의 향기까지 나는 듯했습니다.” 장 콕토(1889~1963)의 그 시 ‘Mon oreille’(내 귀)는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닷소리를 그리워한다”라고 돼 있다. ‘껍질’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하지 않은 물질,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을 말한다. 그러니까 소라껍데기라고 써야 맞는데, 국립국어원은 조개의 경우 예외적으로 ‘조개껍질’과 ‘조개껍데기’를 모두 쓸 수 있다고 하니 진짜 헷갈린다. 소라껍질이라고 쓴 건 운율상 그런 거 같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따지지 말자. 원래 이런 거 쓰려고 한 글이 아니니까. 그 여성의 두 번째 댓글이 감동적이다. “순수한 자연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기압의 차이로 생기는 바람이나 조수 간만의 차이로 생기는 파도 소리, 이런 거 말고요. 오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내는 자연의 소리를. 꽃이 피는 순간을 본 적이 있나요? 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고 시절, 친한 친구 집 대문간에 한 무더기의 달맞이꽃이 있었습니다. 요즘 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달맞이꽃이 아니고, 키도 크고 꽃대도 꽃송이도 큰 튼실한 달맞이꽃 한 무더기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숨을 한번 고르고 계속 읽는다. “초저녁 7시에서 8시쯤 달이 올라올 무렵 달맞이꽃 옆에 서 있으면, 여기저기서 퍽! 퍽! 퍽! 하는 작은 소리가 나면서 달맞이꽃 꽃송이가 한순간에 벌어졌습니다. 오므려져 있던 달맞이꽃 봉오리가 퍽! 소리를 내면서 순간 꽃송이가 활짝 벌어지는 것입니다. 한 송이가 소리를 내며 피어나면 시샘하듯이 여기저기서 퍽! 퍽! 퍽! 하는 작은 소리가 나면서 꽃송이가 벌어지는데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그때, ‘아! 그래서 달맞이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이 떠오를 때 달맞이꽃이 피어나니까요. 다른 꽃들은 소리 없이 서서히 벌어지는데, 제가 아는 한 오직 달맞이꽃만이 순간에 벌어지면서 피어납니다. 그 순간을 위해서 달맞이꽃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했을까요? 온 힘을 다해 모든 에너지를 모아 한꺼번에 확! 뿜어냈을 테니 말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동영상을 찍어놓았을 텐데….”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 “소리를 주제로 쓴 글을 읽으니 아름다웠던 옛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젠 다시 볼 수도 듣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피는 소리.’ 전에도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번씩 한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라서. 며칠 전 그 친구와도 전화로 달맞이꽃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그 소리를 수없이 많이 들었답니다. 혹시 그런 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마지막 문장이 나를 찔렀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없다. 신문사 선배로부터 이런 이야기는 들었다. 대학교 몇 학년 때인가 캠핑을 가서 저녁을 차리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고 한다. 웬일인가 하고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노란 달맞이꽃이 환하게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 황홀한 장면에 친구들은 다들 넋을 잃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고 한다. ‘불현듯’이라는 말은 그런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불현듯’은 원래 ‘불을 켠 듯’인데, 불을 켜면 갑자기 환해지듯이 어떤 일이나 생각이 느닷없이 일어날 때 쓰는 말 아닌가. 불현듯 주위가 불 현 듯해진 것이다.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부른 ‘달맞이꽃’(지웅 작사 김희갑 작곡, 1972)의 가사가 이 꽃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달맞이꽃은 첫해에는 원줄기 없이 자라다가 겨울을 지내고 다음 해에 줄기를 만들어 곧추 자라 꽃피는 두해살이풀이다. 꽃은 여름에 잎겨드랑이에 한 개씩 밤에 피어 다음 날 아침에 진다. 월견초(月見草)라고도 부르는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이다. 그런데 정원에 화초로 심는 분홍달맞이꽃과 황금달맞이꽃은 낮에 꽃이 피어 낮달맞이꽃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렇게 달맞이꽃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남에게 내놓을 만한 나만의 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아무리 기억을 헤집고 머릿속의 주머니를 뒤져도 달맞이꽃처럼 멋진 건 없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기거했던 사랑방에 어느 날 밤 혼자 앉아서 들었던 뒷산의 솔바람소리, 그것은 깊고 아득하면서도 무서웠다. 부엉이소리까지 얹히면 더 그랬다. 그리고 계룡산 기슭의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들었던 밤 늑대 울음소리, 그 아기 울음 같던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사람은 중학교 국어시간에 ‘나를 슬프게 하는 소리’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할 때, 한밤중 성주산 고개를 허위허위 올라가는 트럭의 숨 가쁜 비명을 글로 써 선생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달콤하면서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소리보다 듣기 싫은 소리를 더 잘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슬펐던 소리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지난주 쓴 글에 듣기 싫은 소리로 개소리도 언급했지만, 사실은 ‘개띠 법무부 장관의 개소리’라고 쓰려다가 그냥 개소리라고만 썼다. 앞으로 나도 달맞이꽃이 피는 소리,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아이의 이가 새로 나는 소리, 서산에 걸린 해가 모든 이들에게 인사하는 소리, 술이나 벼가 익는 소리, 가을 깊은 밤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이런 걸 들으면 좋겠다고 소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 2020-11-2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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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시 할아버지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정확히 30년 전인 1990년 10월, 나는 미 국무부의 ‘국제교류 연수 프로그램’(IVP, International Visitor Program)에 초청을 받아 한 달간 미국을 여행했다. IVP는 각국 사람들을 초청해 돌아보게 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영어가 서투른 나 같은 사람에게는 통역안내인을 붙여주고 매일 얼마씩 용돈(per diem)도 준다. 그때 나는 ‘미국의 교육’을 살펴보기로 여행 주제를 정하고, 땅을 딱 반 갈라 북쪽만 돌았다. IVP는 워싱턴에서 1주일간 국무부 의회 등 여러 군데를 방문(이건 필수)하고 나서 자유여행을 하게 돼 있다. 땅덩어리가 크니 나머지 3주 동안 욕심내지 말자고 그리 한 건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짓이었다. 미국 남부를 돌아볼 기회는 그 뒤 한 번도 없었으니까. 워싱턴 일정을 마친 뒤 나는 뉴욕, 보스턴을 거쳐 일리노이주의 프리포트(Freeport)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보스턴에 이어 두 번째 민박을 했다. 거기서 만난 분이 유리시(Urish) 할아버지다. 보험회사 부사장이었던 그는 명랑 쾌활하고 남을 잘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이틀 묵는 동안 느슨하지 않고 즐겁게 나를 성심성의껏 안내해주었다. 그는 내 이름을 듣자마자 “아 찰스! 앞으로 널 찰스라 부르겠어”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미국 와서 젊은 아가씨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이 주책아!)라고 했더니 자기 회사에 데리고 가서는 “여기 이 한국에서 온 찰스라는 청년이 젊은 아가씨들을 찾고 있다”며 이 방 저 방 떠들고 다녔다. 여직원들이 “나 젊은데”, “나도 젊은데?”라며 들이대 나는 거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유리시 부부, 통역안내인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어떠냐?”라고 묻기에 “맛이 별로다”(이 주책아!)라고 해서 그들 부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솔직한 게 좋은 줄 알고 그랬던 건데, 옆에 앉아 있던 통역안내인은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도 유리시 할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를 따뜻하게 배려했다. 그 지역의 전직 하원의원(상원의원이었나?)을 만날 때, 나는 “미국 하원의원(상원의원이었나?)의 절반은 도둑놈이다”라는 미국 어느 신문의 보도를 거론했다(이 주책아!).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항의하자 그 신문은 “미국 하원의원(상원의원?)의 절반은 도둑놈이 아니다”라고 정정했다. 말하자면 정정을 하지 않은 건데, 통역안내인이 “그들은 도둑놈이 아니다”라고 정정했다고 옮기기에 잘못된 통역이라고 알려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리시 할아버지는 말뜻을 알아듣고 배꼽을 쥐며 크게 웃었다. 나는 신이 나서 미국 정치가 어떻고 한국 의회제도는 어떻고 하고 떠들어댔다(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하니까 얼마든지!). 코리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던 그 의원은 내내 떨떠름한 표정인 채 “한국 의회도 양원제냐?”, 이런 걸 나에게 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유리시 할아버지는 내게 엄지를 치켜 올리며 “Charles, I’m proud of you!(찰스,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했다. 자기 조카가 장한 일을 한 것처럼 즐거워하면서. 그는 매일 3마일씩 걷는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1마일이 1.6km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핼러윈이 다가오는 무렵이어서인지 유리시 할아버지는 나를 차에 태워 호박 등을 파는 농산물 시장에도 데려갔다. 미국 사회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집의 넓은 지하실을 혼자서 쓰는 동안 나는 화장실 변기에 남은 미제 똥도 보았다. 그때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 중 한 대목을 생각했다. 그 소설에 열차를 탄 미국인들이 철로에 남긴 똥을 주워 맛보다가 ‘고바또’(고씨+세퍼드)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 나온다. 미제 똥이 궁금해서 그랬던 거다. 유리시 할아버지는 유대계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대의 ‘유’ 자에다 ‘영광의 탈출’(Exodus)의 작가 레온 유리스라는 이름이 유리시와 겹쳐져 유대계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때 그는 거의 일흔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니 지금은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다. 내가 두고두고 미안한 건 귀국한 뒤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 것이다. 유리시 할아버지는 두 번인가 편지를 보내 “Charles, what’s new?”라며 소식을 물었는데, 나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찰스 왕세자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이유는 사실 한 가지, 영어로 작문을 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이 한심한 멍청이, 주책아!). 그 편지는 지금 찾기도 어렵다. 미국 여행에 관한 기록이나 문서도 버리진 않았지만, 어디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그분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유머, 관용과 배려, 이웃에 대한 관심과 선의, 인류 번영에 대한 신뢰 이런 것들이었다. 9·11테러를 겪은 데다 트럼프라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이후의 미국과 미국인은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30년 전에 미국, 미국인의 좋은 점을 알게 해주었으니 IVP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 가이후 도시키 전 일본 총리, 이런 사람들도 젊어서 IVP 여행을 경험하고 미국을 호평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이 제도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나 10여 년 전부터 여행기간이 3주로 줄어들었다. 한 달씩 시간을 내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조정했다고 한다. 사실 한 달간 직장과 가정을 비우고 자기가 정한 주제 아래 마음대로 원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미국인들도 수도 워싱턴에 가보지 못하고 평생을 마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시인 최승자(崔勝子)가 어느 시에선가 “10월의 자유는 아름다웠다”라고 썼던 거 같은데, 그 10월은 아름답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 10월은 미안하고 빚진 기분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 2020-10-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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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을 잡고 노닐다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나는 서예에 입문한 지 8년이 넘었다. 그런데 덧없고 가뭇없고 하염없다. 붓을 잡기 전에는 내가 그래도 좀 쓸 줄 알았더니 도무지 나아지는 게 없고, 지금 서예에 기울이는 열성과 공부시간은 시작 때보다 훨씬 못하다. 이틀 전 서예모임 겸수회(兼修會)가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하는 겸수회 소풍은 일반 단체의 나들이와 다르다. 그 계절에 맞는 시문을 선정한 다음 지필묵을 준비해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한 글자씩 써서 글을 완성하는 게 주 행사다. 이번 가을엔 단풍을 노래한 연산군(1476~1506)의 한시와, ‘가을’이라는 한글 가곡이 선정됐다. 연산군의 시는 이렇다. “단풍잎 서리에 취해 요란히도 곱고/ 국화는 이슬 젖어 향기가 난만하네/ 천지조화의 말없는 공 알고 싶으면/가을 산에 올라 그 경치 보면 되리”[楓葉醉霜濃亂艶 菊花含露爛繁香 欲知造化功成默 須上秋山賞景光] 연산군의 시를 쓴다는 데 놀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진지하고 즐겁게 참여했다. 이렇게 함께 글씨를 쓰다 보니 내가 참 엉터리라는 걸 다시 알게 됐다. 스스로 한심 두심 세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붓의 소풍’은 나들이를 통해 우의를 도모하면서 각자의 자세와 내공을 점검하는 의미를 갖는데, 남들 앞에서 붓 잡고 글씨를 쓰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초창기에 덜덜 떨었던 나는 지금도 남들이 보는 데서 글씨를 쓰는 게 영 어색하고 서투르다. 나는 모든 서예 단체가 이런 형식의 소풍을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 서예 스승인 하석 박원규 선생님의 창안이었다. 글을 고르는 것, 지필묵을 준비하는 것, 막내부터 역순으로 글씨를 쓰는 것, 그리고 끝난 뒤 식사와 산책으로 마무리하는 전 과정이 소풍이면서 학습이다. 노는 듯하지만 간단없이 이어지는 공부인 것이다.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벼루가 들어가는 말로는 세연례(洗硯禮)가 있는데, 글을 짓거나 책을 읽는 모임을 마칠 때 베푸는 잔치를 뜻하는 거라서 의미가 좀 다르다. 선비들이 글을 지으며 노니는 만남과 풍류의 모임을 아회(雅會)라고 하니 필아회(筆雅會) 또는 묵아회(墨雅會)라고 불러볼까. 붓을 모아 시문을 완성하니 합필(合筆)아회라고 해볼까. 그러나 찾아보니 합필은 여러 필의 토지를 합쳐 한 필로 만든다는 말이었다. 합필이 안 되면 거꾸로 필합(筆合)은 어때? 필합아회, 발음하기 쉽지 않다. 붓잔치, 즉 필연(筆宴)은 어떨까. 춘필연 추필연 식으로 쓰면? 그것도 좀 어색한 것 같다. 그러면 기초로 돌아가 그냥 알기 쉽게 필묵회(筆墨會)? 이렇게 이름을 궁리하느라 자료를 찾다가 영조~순조 연간의 문신 권상신(權常愼, 1759~1824)의 소풍 이야기를 읽게 됐다. 그는 1784년 3월(물론 음력) 어느 날 벗들에게 남산 꽃놀이를 제안한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 제1조, 제2조 형식의 ‘남고춘약’(南皐春約, 남산 봄나들이 조약)을 정했다. 빗속에 노니는 것은 꽃을 씻어주니 세화역(洗花役), 안개 속에 노니는 것은 꽃에 윤기를 더해주니 윤화역(潤花役), 바람이 불면 꽃이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것이니 호화역(護花役)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 날씨 핑계 대지 말고 놀러 가자는 것이다. 꽃을 꺾으면 벌주, 잘 걷는다고 혼자만 가도 벌주, 규정시간이 지났는데 글을 못 짓고 끙끙거려도 벌주, 술잔을 잡고 가만있어도 벌주다. 재미있는 건 술이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다. 도저히 못 마시겠으면 술을 꽃 아래에 부으면서 머리를 조아려 “삼가 꽃의 신이시여. 주량을 살피소서. 주량이 정말 적어 술을 땅에 붓습니다” 하고 고해야 한다. 권상신의 소풍 규약은 봄나들이,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진달래꽃이 필 때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가을에 국화 필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음력 9월이며 음력 9월의 별칭은 국추(菊秋), 국월(菊月)이다. 가을은 곧 국화다. 계절은 23일 상강, 25일 중양절(음력 9월 9일)로 이어진다. 가을은 깊어지고 깊어져 어느덧 저물려 하고 있다. “푸른 물가 한두 잎 낙엽이 지고/ 들리느니 개울물 소리뿐이네/ 타다 못해 지는 잎 내 어이하리.” 그날 우리가 함께 쓴 한글 시는 내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전범중)이 짓고 음악 선생님(박일환)이 작곡한 노래다. 50여 년 전에 배웠지만 여전히 새롭다. 이렇게 함께 어울려 글씨를 쓴 다음 즐겁게 점심을 먹고 우리 동연(同硯, 서예를 함께 배우는 동료 학우)들은 한강변을 거닐었다.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햇살이 반갑고 바람이 시원했다. 한강변에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붓을 가지고 놀았지만, 사실은 그날도 붓이 날 가지고 놀았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언제나 붓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아니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건지. 강변을 거닐며 싱거운 소리를 연발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계속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소풍을 대체 뭐라고 해야 되지? 좋은 이름이 없나? 누가 좀 멋지고 적확한 말을 찾아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후사할 텐데(후사=일이 다 끝난 뒤 고맙다고 말로 때우는 것).
- 2020-10-21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