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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여행 소환, 비엔나와 모차르트
- 최근 방영하는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 중 ‘꽃보다 할배 리턴즈’(tvN)를 시청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김용건 등 원로 배우들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순으로 동유럽을 돌아보는 여정으로 꾸며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빈)의 경우엔 나 또한 두 번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워낙 좋아하는 도시이기에, TV를 통해 다시 추억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첫 비엔나 여행은 40대 후반 프랑스, 이태리 등 유레일패스 기차여행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도시 인스부르크와 함께였다. ‘비엔나 숲속의 왈츠’와 ‘모차르트’ 우습게도 ‘비엔나커피’ 정도를 머리에 그리며 떠났는데, 영어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이해가 덜 되어 답답했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합스부르크의 영광을 안은 중세 서양 문화의 현장인 비엔나 구시가지 풍경은 마치 심봉사가 광명 찾듯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문외한으로 갔던 첫 번째 비엔나 여행에서의 아쉬움은 이후 미술사, 클래식 음악, 유럽 역사, 인문학을 가까이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었다.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여 2011년 60세 언저리에 다시 한번 비엔나를 찾았다. 두 번째 여행은 독일, 체코 프라하, 비엔나, 잘츠부르크를 포함하는 동유럽의 여정이었다. 18세기 비엔나는 화려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음악의 도시로도 잘 알려졌다. 18세기 고전파 음악가 3인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회자하는데, 특히 잘츠부르크와 비엔나에는 모차르트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덕분에 현재 두 도시의 관광 수익은 지역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후세인들은 평생 빈곤 속에 살다 죽음을 맞이한 그의 삶을 몹시 안타깝게 여긴다. 고건축물이 가득한 구시가지 가운데 비엔나의 상징인 슈테판 대성당이 있다. 1100년대 건축 이후, 수차례에 걸쳐 개축되며 세계적인 유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성당의 이름인 ‘슈테판’은 성경 속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하이든과 베토벤이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던 성당이기도 하다. 모차르트는 슈테판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던 화려한 결혼식과 시신이 없는 가장 슬픈 장례식의 주인공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았듯 모차르트는 ‘레퀴엠’(진혼곡)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비명횡사하여 끝내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죽음에는 너무나 많은 가설이 따르지만, 당시 열악한 교통수단으로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순회 연주를 다니며 이름 모를 풍토병에 시달렸고, 성인이 되어서도 폐결핵 등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을 경험해야만 쓸 수 있는 곡 ‘레퀴엠’을 작곡하면서 실제로 죽음의 경지까지 자신을 몰입시켰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세기의 음악천재는 그렇게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모차르트가 말년에 병마와 빈곤 속에 시달리며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 중 하나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온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TV와 함께 떠난 나의 세 번째 비엔나 여행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다.
- 2018-08-2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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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 속 나만의 납량특집
- 기온이 비현실적으로 올라가니 세상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모든 사물이 흐느적거리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이 이해될 지경이다. 문득 카뮈가 겪었던 모로코의 더위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렇게 얼굴을 찡그렸던 건 바로 그 황야의 불쾌지수 때문이었으리라. 어디를 간다는 것도 엄두가 나질 않고 집에 있자니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켤 수 없다. 저잣거리에서 들리는 소문은 온통 흉흉하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남쪽 바다는 바닷물 온도마저 30도를 넘어 양식 중이던 물고기가 떼로 죽어 나간다는 소식이다. 예전에는 이런 때가 되면 TV에서 납량특집도 많이 하더니만 요즘은 그것도 뜸하다. 하기야 사는 현실이 하루하루 납량특집이니 흥도 안 나리라. 그나마 요즘 마음속 납량특집 삼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나영석 PD가 만드는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이 프로가 처음 시작한 때부터 등장하는 할배들에게 감정 이입해가며 즐기다 보니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에 방영되는 베를린, 체코, 오스트리아 편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완연히 느껴진다. 할배들의 기력이 여전만 못함이 드러나 마음이 짠하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갖가지 연출되지 않은 모습과 행동들로 멀게만 느껴지던 배우들의 삶이 우리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드라마로 형성됐던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극 중 역할 때문이겠지만, 매우 날카롭고 깐깐해 보였던 박근형이 의외로 로맨티시스트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순재 할배는 ‘직진순재’라는 별명처럼 여행 초기 일행을 벗어나 항상 돌출행동을 하여 시청자들을 걱정시켰지만, 그것이 끊임없는 지적인 호기심 때문임이 밝혀지면서 나이를 잊고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던 초기의 활달함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체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행을 배려하는 마음이 원숙해진 이유도 있으리라. 가장 변화가 많은 문제가 있는 캐릭터는 바로 백일섭이다. 초기에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불편한 몸 때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불편함이 심해져 시청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한다. 두 번의 수술로 불어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그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과장 행동이 안쓰럽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무엇보다 김용건의 등장이다. 배우로서 몰랐던 그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드러나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그의 끊임없는 유머와 농담은 자칫 지루해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여행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울러 그의 시선은 드라마의 균형을 잡듯이 조용한 신구와 소외된 백일섭을 부축하고 견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윤활유로서 유머의 가치를 입증한다. 여행 파트너로 우리 식구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선택했다. 프로가 방영되는 한 시간 반 동안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잘츠부르크의 풍광과 볼프강 호수, 그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장소를 할배들과 함께 다니느라 더위를 잊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우리 할배와 한번 다녀와야지.’ 나만의 즐거운 납량특집이었다.
- 2018-08-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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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속 작은 마을 같았던 ‘울릉공’
- 필자에게 기차여행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여행이라 늘 마음만 먹다가 말곤 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아 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특이하게도 국내에서는 거의 해보지 못하는 기차여행을 해외여행 중에 하곤 했다. 뮌헨에서 잘츠부르크로, 프랑크부르크에서 로맨틱가도로, 또 파리에서도 그랬고,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일본에서는 북해도나 하코다테에서도 그랬고, 교토나 고베 등 숱한 기차여행을 해외에서 많이 한 셈이다. 시드니 여행에서도 두 번 정도의 기차여행을 했다. 그중 동화 속 작은 마을 같은 울릉공(Wollongong)을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해서 시드니 센트럴 역으로 갔다. 아침 찬바람에 한기가 온몸으로 엄습했다. 그곳은 8월 중순이어도 아직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울릉공 역으로 향하는 시티레일은 남쪽으로 80Km 정도 달려서 약 두 시간쯤 걸리는데 차창 밖의 겨울 풍경이 우리나라의 늦가을의 풍경이었다. 차분하고 맑았다. 차츰 울릉공이라는 안내 글자와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기차가 역에 멈추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에 당연히 울릉공이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따라 내렸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니 젊은 아이들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그제야 우리 부부는 그 버스가 울릉공대학 스쿨버스였음을 알게 됐다. 한 정거장 먼저 내린 것이다. “어쩌지?” 하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후덕해 보이는 아줌마 운전기사가 내려오더니 우리에게 자기네 스쿨버스에 타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에서 하차해 그린색 셔틀버스를 이용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젊은 대학생들로 가득 찬 울릉공대학 스쿨버스 덕분에 우리는 목적지인 울릉공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여행 장면이다. 그날 울릉공으로 들어섰을 때 멀리 있는 등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넓고 화려하진 않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해변이었다. 휴식을 위해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해서, 행복한 대화를 위해서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갈매기가 사람과 같이 놀아주는 곳, 낮은 파도가 마음을 위로하는 곳, 바람이 좋아서 맑은 날에는 행글라이딩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시드니의 명물인 오페라하우스의 화려함이나 거대한 하버브리지만큼 대단하지는 않아도 여행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정감 있는 곳이 바로 울릉공이다. 요즘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도 찾기 시작했다 한다. 해안가를 거닐다 보니 바닷가의 그들과 동지의식이 절로 생겼다.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 시간을 온전하게 누렸다. 그런 시간들을 다시 누리기는 어렵겠지만, 가끔삶이 고단하거나 숨이 차오를 때 가끔씩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울릉공에서의 하루는 값진 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문득 호주 여행의 잔잔했던 그날이 떠오른 것은 가라앉은 계절 탓일 수도 있다. 그 바닷가의 반짝거리던 햇살만큼 따뜻했던 울릉공역 카페의 커피 한 잔이 그리워지는 초가을 아침이다.
- 2017-09-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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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감] 삶꾼 무애의 이야기
- 명지대 바둑학과는 처음부터 독립된 학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체육학과 내의 바둑지도학 전공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립된 학과나 다름없었으며 곧바로 바둑학과로 독립하였다. 이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에 대해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바둑계에서도 큰 관심을 표명하였다. 과연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정수현 교수는 신입생 선발요강과 학과과정을 정하고 신입생을 뽑아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교수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들을 별 무리 없이 잘 처리해나가 교수라는 별명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필자는 가능한 한 외국유학생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였고 이를 위해 외국유학생의 장학금 상한선이 등록금의 70%이던 것을 100%로 상향조정하도록 했다. 2001년에는 과 주도로 명지대학교에서 제1회 국제 바둑학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제2회 대회는 2년 후 해외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둑학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2003년 4월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동년 6월에는 한국바둑학회가 창립되어 필자가 초대 회장을 맡게 되었다. 마침 그 해는 에르미타주 박물관(겨울궁전), 예카테리나 궁전 등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창건 3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 기념으로 제47회 유럽바둑대회가 7월 19일부터 8월 1일까지 그곳에서 열렸다. 한국바둑학회는 제 2회 국제 바둑학 학술대회를 그곳에서 7월 26~27일 양일간 개최하였다. 필자는 한국바둑학회 회장 자격으로 집사람과 함께 참가했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바둑대회가 진행되던 약 2주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근교는 물론 모스크바까지 샅샅이 구경할 수 있었다. 귀국길에 우리 일행은 바둑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과 함께 버스를 대절하여 바둑클럽이 있는 유럽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그들과 교류전을 가지는 한편 관광도 즐기는 바둑관광여행을 했다. 먼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갔다가 하이델베르크와 낭만가도를 거쳐 스위스의 취리히, 인터라켄과 융프라우를 관광한 후 다시 독일의 뮌헨으로 갔다. 그곳에서 오스트리아의 빈과 잘츠부르크, 체코의 프라하를 거쳐 베를린으로 갔다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갔다. 우리 일행은 이상기온으로 인한 더위 때문에 무척 고생했다. 파리에서는 룩셈부르크를 거쳐 로렐라이를 구경하고 라인크루즈를 타기도 하며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귀국길에 올랐다. 필자의 할아버지께서는 일제 때 말단 공무원을 하시면서 노상 일본사람들과 다투시는 바람에 진급을 하지 못하고 만년 주사노릇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바둑에 열심이셨던 이유는 다른 다툼에서는 편파적으로 일본사람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라도 바둑의 승부에는 깨끗이 승복하기 때문에 바둑으로 일본사람들을 혼내주기 위해서였다고 하셨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는 조남철 국수의 자서전에서도 읽은 기억이 있다. 여하튼 할아버지의 기력은 5급(현 아마 초단) 정도로 당시에는 군(郡)에서 1, 2위를 다투는 고수였다고 한다. 바둑을 두실 때에는 할머니께서 밥상을 차려놓고 아무리 부르셔도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국을 몇 번씩 다시 덥히다가 하도 화가 나셔서 빗자루로 대야 밑바닥을 두드리며 불이야! 하고 소리치자 바둑판만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고 나오시는 바람에 손발을 다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아버지께서도 바둑이 당시로는 무척 세셔서 3급(현 아마 3단) 정도였고 집에서 할아버지와 두 점 치수로 종종 바둑을 두시는 바람에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바둑과는 상당히 친밀한 편이었다.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58년이었다. 그 해 여름방학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필자를 데리고 나가시면서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두시는 분은 조남철 국수이지만 장국원이라는 분도 만만치 않다는 것, 세계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시는 분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고 계신 오청원(우 칭위엔)이라는 분으로 살아 있는 기성으로 존경받고 계시다는 등, 국내외 바둑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도착한 곳은 조남철 국수가 운영하시던 명동의 송원기원이었다. 그곳에서 조 국수를 비롯하여 몇몇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난 후 바둑을 구경하며 담소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바둑판과 바둑돌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오셔서 바둑에 대한 기초를 설명해 주셨다. 마침 당시 학교에서도 공책에 바둑판을 그리고 ○, Ⅹ로 바둑을 두는 것이 유행이어서 이때부터 바둑이 늘기 시작해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7급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 한일대학생 바둑대회 대표로 활약했고 최근까지도 각종 대회에서 선수로 활약한 바 있는 강1급 최훈 군을 비롯하여 과 정원 40명 중 약 10명 가까이가 1, 2급의 강자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지내다 보니 대학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할 때쯤은 필자도 약한 1급 정도는 되었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 중에서도 4명 정도가 바둑을 무척 좋아했고 실력도 비슷했다. 이들과 자주 만나 바둑을 둔 덕분에 기력이 점점 더 늘게 되어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쯤은 보통 1급(현 아마 5단)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1980년에 열린 제1회 대한토목학회 바둑대회 A조에서 준우승, 그 다음해에 열린 제2회 대회에서는 우승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전국 토목공학과 교수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 2015-05-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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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 마지막회 여행후기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여행후기 무릎관절이 아파 이번 여행에 동참하지 못한 아내는 여행 떠나기 전,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번 비엔나 여행후로, 가정에 평화와 기쁨이 듬뿍하기를 바랍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이번 해외여행, 아들과 딸과 사위와 며느리들의 사랑 많이 받고, 많이 웃고, 건강히 잘 다녀 오세요.” 아내의 기도 덕분인지, 여행이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잊을 수 없는 값진 추억을 같이 한 사위와 아들 내외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중에 딸과 아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여행 내내 식사전후, 외출 시, 귀가 시 기도를 내가 선창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도 내심 좀 불안했었나 보다. 사실 아들내외와 사위내외와의 본격적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살아온 인생과 경험이 다른 여럿이 모여 같이 여행을 하게 되니, 제일 나이 많은 나로서는 좀 걱정도 되었었다. 하여튼 무사히 잘 끝났으니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특히 잘츠부르크에 11번이나 방문했다는 사위는 노련한 외교관답게 시종일관 활달하고 밝은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여행 중 음식점에선 음식과 함께 주류포함 음료를 먼저 주문해야 했다. 그래서 맥주, 와인 등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평소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탓인지 몰라도, 술도 좀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저녁때마다 와인파티를 하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술 탓도 있고 옆에 잔소리하는 아내가 없어서인지 평소 별로 말이 없는 내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마 말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날그날의 즐거운 추억들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그 모든 추억을 소중히 보존하기 위해 출발부터 도착까지 사진작가 노릇을 충실히 한 며느리도 고맙고, 무엇보다도 척하면 삼천리라고 모든 것을 주관하며 미리미리 세심하게 준비하고 지극정성으로 환대를 해준 사위 부부에게 정말로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호강여행하고 돌아왔다.
- 2014-07-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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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④할스타트와 시골 카페의 추억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산과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인 호수마을 할스타트 잘츠부르크 근교에 있는 호수지역이며,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었다. 투명한 호수와 푸른 산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신선한 공기와 자연을 느끼며 몇 시간을 걸어보았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여기저기 한국말이 들리며 단체로 온 한국관광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호수마을은 평화로운 분위기로, 좁고 가파른 지형에 맞춰 오밀조밀 들어선 집들이 만드는 풍경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중앙 광장이 있고, 광장을 둘러싸고 꽃으로 창을 단장한 세모지붕 집들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었다. 민박이나 펜션이 많은 것 같았다. 골목을 따라 집집마다 투박한 쪽문, 담장을 채색한 작은 장식들이 눈길을 끌었다. 좀 높은 곳에 위치한 가톨릭교회는 꽃과 장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공동묘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중앙광장과 교회 등 여기저기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마침 마라톤이 있다고 교통통제도 했는데,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져 즐겁게 뛰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 거리, 성당, 강가, 호반, 고속도로와 스키산장 그리고 시골카페의 추억 내가 방문했던 성당에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가족묘지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예배와 참배를 같이 할 수 있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내가 그 옛날 전축을 처음 장만했을 때 구입한 첫 레코드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강」이었다. 이번 여행 중 딸 부부와 같이 비엔나시(市) 다뉴브강가의 한 식당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식사하며 문득 옛날 생각에 젖기도 했다. 밤엔 좀 추울 정도로 서늘한 느낌인데, 거리의 옥외카페에 앉아 맥주마시며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잘츠부르크 가는 길에 해발고도 1,133m에 위치한 스키산장에서 이틀 밤을 머물렀다. 영하에 가까운 바깥온도로 좀 춥긴 했지만, 5월에 눈이 오는 것도 구경했다. 고지대에서 보이는 오스트리아 스키리조트의 멋진 전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여기저기 스키장이 있고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많이 보였다. 잘츠부르크에서 비엔나로 돌아가는 중 시골카페에 잠깐 들렸다. 마침 일요일이었으므로 성당미사 끝내고 모인 노인들이 삼삼오오 카드놀이를 즐기며 담소하는 모습이 참으로 한가롭고 느긋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호수도 여러 군데 들렀다.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로 가는 도중의 몬드호수, 할스타트 호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촬영지인 트랩 일가 집 앞 호수, 비엔나로 돌아오면서 들른 에벤제 호수 등은 모두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에벤제 호반 시골 성당건물의 너무도 아름다운 경치는 지금도 깊은 인상이 남아있다. 비엔나로 돌아오는 중 호숫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한 폭의 그림 같은 성당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 일행의 탄성을 들은 사위가 차를 그곳으로 돌렸다. 어떻게 그런 곳에 성당을 지을 수 있었을까? 호반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성당이었다. 머물고 싶었던 우리들은 성당 구내의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이 솜씨를 자랑하는 점심 식사도 즐겼다. 이번 여행 중 우리들은 대개 여러 음식을 주문해 나눠먹으면서 다양한 음식의 맛을 즐겼다. 그러나 현지인들 경우 나눠먹는 것을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사위 말처럼 음식 맛은 시골이나 도심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음식 맛의 지역격차 없는 평준화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 2014-06-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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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③잘츠부르크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잘츠부르크 7시간의 시차 탓인지 한국에서의 감기기운이 남은 탓인지 약간 피로를 느끼는 가운데 잘츠부르크 관광을 했다. 게다가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렸다. 좀 추웠다. 감기가 재발될까 걱정도 되었는데, 딸이 사위 잠바를 가져와 입혀줘 그런대로 따뜻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한가롭게 전기버스가 오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고향이다. 거리의 악사도 눈에 띄었고, 음악제를 소개하는 게시물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 음악도 여기저기에서 들렸던 것 같다. 먼저 들린 곳이 모차르트 박물관인데, 그가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삶과 시대적 배경, 가족 족보와 그 상세한 설명, 주고받았던 편지,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방과 침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등의 악기와 자필 악보 등 각종 자료가 전시되고 있었다. 음악가 모차르트의 위대성을 생각한다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모차르트 가족들이 남긴 자료는 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있었는데, 가이드 설명을 들어보니, 귀족들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교 해설하고 있었다. 예컨대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왕족과 귀족들의 집은 높은 천정인데 반해, 모차르트의 집은 낮은 천정이라는 것. 단지 집 자체를 통해서도 그가 부유하고 행복한 삶은 누렸던 게 아니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차르트 박물관 앞의 거리는 잘츠부르크의 번화가로 기념품 상점과 카페, 식당 등이 많이 있었다. 간판들이 참 예뻤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는지, 비가 오는데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거리의 중국 음식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중국인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시끄럽다고는 하지만, 단체관광객인 중국인들도 정말 시끄러웠다. 잘츠부르크는 중세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는 대성당은 1000년의 역사를 넘어선다고 한다. 중세의 풍치 속을 걷다보니 내가 마치 중세를 살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잘츠부르크는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그 영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미라벨 정원, 묘지 공원, 주인공 트랩 일가족의 집과 집 앞 호수가 지금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아직도 인기가 있는지,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 버스도 눈에 띄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미라벨 정원에 갔을 때도 오전처럼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렸다. 신발은 이미 속까지 물에 다 젖어 좀 처량한 기분이었지만, 여러 가지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된 미라벨 정원과 분수를 보며 감탄과 함께 즐거워했던 것 같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이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강에 놓여있는 다리에 걸려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열쇠들이었다. 왜 저렇게 엄청나게 많은 열쇠가 걸려있을까? 연인들이 소원을 비는 사랑의 열쇠라고 한다. 아마도 잘츠부르크를 방문했던 여행객들이 그들 나름대로 약속을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보고 싶은 마음가짐이지 않았을까?
- 2014-06-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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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②비엔나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비엔나에 살고 있는 딸부부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은 영어로 비엔나(Viena)라고 한다. 유엔기구의 외교관인 사위와 딸이 사는 집은 비엔나 도심지역에 있었다. 움직이는데 지극히 편리했다. 지하철 3개 노선과 귀엽게 생긴 전차를 바로 집 앞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백년 되었다는 6층 건물의 상층부 2개 층에 살고 있었다. 건물의 겉은 역사 유적 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지만, 내부는 냉난방이 가동되는 최신식 인테리어였다. 6층은 널찍한 거주 공간, 옥상공간을 포함한 7층은 파티 등 여러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모임장소였다. 사위와 딸은 지극히 세심하고 정성스런 스케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사위가 준비한 스케줄은 처음엔 강행군, 뒤에 편안한 쉼이 있는 계획표였다. 많은 손님을 접하며 경험해 얻은 노하우 같았다. 첫 3일 동안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와 호반지역, 스키산장 그 다음 이틀은 체코 프라하 방문, 그 다음에 딸집에서 편안히 머물며 비엔나 일원을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다. 짧은 기간에 비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너무도 많지만, 특히 딸집에서의 편안함과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 그리고 2박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 비엔나 일원 최근 국제기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 1위로 비엔나가 뽑혔다고 한다. 경제ㆍ환경ㆍ교육ㆍ인프라ㆍ안전 등의 모든 요소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2위는 스위스 취리히, 3위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라고 들었다. 정말로 청정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고 맑고 푸른 하루를 마음껏 구경 할 수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자리들이 두루 다 보일 정도였다. 수돗물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다 먹고 있었다. 상수원이 오스트리아 남부의 청정 수역이라고 한다.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왕궁,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광지가 시내중심에 모여 있어 거의 도보나 지하철, 전철로 명소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느긋하고 우호적이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전, 도심(성당 등)과 유명한 음악가 동상이 몰려있는 음악공원(마침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오페라「카르멘」관람, 다뉴브강변의 분위기 있는 저녁식사, 경치가 아름다운 드넓은 골프장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도 했다. 지하철도 여러 번 타 보았는데, 편도1회에 2유로 10센트였고 우리나라와 같은 환승서비스는 없었다. 검표과정이 없이 그냥 타는데, 가끔 행해지는 조사에서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벌금이 100유로라고 한다. 또 한국에선 많이 들었던 ‘비엔나 커피’, ‘비엔나 소세지’란 용어가 정작 비엔나에는 없다고 한다. 전통적인 비엔나 스타일로는 커피에 우유를 섞어 혼합한 ‘멜랑쉐 커피’가 있다고 한다. ◇ 쉔부른 궁전 도심의 슈테판 대성당과 함께 비엔나 관광의 양대 핵심이다. 이 궁전은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 유명한 마리 앙투와네트가 결혼 전 15세까지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총 1400실이 넘는 방 중에서 39실만 공개하고 있었다. 특히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방이 기억에 남는다. 공개된 방의 설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한 바퀴 돌고나서 궁전 건물을 나서니 푸르디 푸른 널따란 왕궁 정원이 나왔다. 반듯반듯하게 정리 정돈된 정원과 분수, 조각상들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전경이었다. ◇ 성 슈테판 대성당 비엔나의 상징이자 영혼인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수많은 랜드마크 중 단연 첫째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137m 높이의 웅장한 첨탑이 그 자태를 자랑한다. 343개의 계단을 오르면 발코니에서 비엔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가까이 사는 딸집도 보였다. 성당 안 곳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사원 앞 광장에서는 관광마차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데, 성당 안에 있는 지하무덤은 성직자들이 아닌 역대 왕과 왕비들이 석관에 넣어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거리에 해당하는 케른트너 거리 비엔나 도심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 케른트너 거리인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슈테판 성당에 이르는 약 600m의 대로이다. 비엔나 최대의 번화가이자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노천 카페와 쇼핑센터,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쇼핑과 휴식이 함께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보행자 천국의 거리로 거리 악사, 행위예술가 등의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회 티켓을 광고하는 사람들도 많아 음악의 도시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 있었다. 관광안내소가 있어 비엔나의 커다란 지도를 얻어 여기저기를 확인하며 돌아다닐 수 있어 도심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 오페라「카르멘」관람 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집시여인 카르멘을 둘러싼 3각 애정관계를 묘사하면서, 마지막에는 카르멘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몇몇 곡은 귀에 익은 곡도 있었다. 만석인데, 입석도 많이 보였다. 음악도시답게 유학온 음악도들이 싼값에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입석을 배려한다고 한다. ◇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 딸과 며느리가 쇼핑하는 사이에, 사위의 벤츠차를 타고 간곳이 비엔나 남쪽의 골프장이었다. 캐디도 없이 혼자 또는 몇몇이 골프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에 취했는지 기분이 편안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 2014-06-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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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악사중주 ‘노부스 콰르텟’, 인천서 연주회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차세대 솔리스트 현악 연주자들로 구성된 노부스콰르텟이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작품을 그들만의 음악적 해석으로 들려준다. 22일 오후 7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연주회 ‘더 레이트 콰르텟(The Late Quartets)’에서다. 새롭고 신선하다는 뜻의 라틴어 ‘노부스’를 이름으로 삼은 현악사중주팀 노부스 콰르텟은 바이올린 김재영, 김영욱, 비올라 이승원, 첼로 문웅휘 등 4명의 솔리스트로 구성돼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을 졸업한 이들은 2011년부터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과 하리올프 슐리히티히의 지도로 실내악 최고연주자 과정을 함께 수학하고 있다. 2007년 창단 이후 2008년 일본 오사카 콩쿠르, 2009년 리옹 콩쿠르에서 각각 3위를 차지하며 그 실력과 가능성을 입증한데 이어 2012년에는 독일 ARD 국제 콩쿠르 준우승,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현악사중주 부문 3위와 청중상을 수상, 세계무대에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들은 특히 지난 2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제11회 국제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현악사중주 부문 1위를 달성한 계기로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 짐멘아우어(Impresariat Simmenauer)의 전속 연주자로 활동, 유럽에서 더욱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며 지명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2년만에 열리는 이번 연주회에서는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와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작품을 통해 무게감 있고 깊이 있는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A late Quartet(마지막 현악사중주)’를 연상시키는 이번 주제는 말 그대로 현악사중주의 정수라 불리울 만한 두 거장의 후기 작품을 다룬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일컬어지는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중 12번, 그리고 극악한 난이도로 국내에서 거의 연주된 기록이 없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15번을 한 무대에서 수준 높은 앙상블로 연주한다. 현악사중주의 정수를 맛보게 하는 동시에 우리 실내악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심장한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석 2만원. 문의 (032)420-2000 경기일보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 2014-03-19 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