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떤 여성 개그맨이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었다. 그땐 그저 우스갯소리로 여겨지던 이 말이 요즘 와서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전혀 흔들리지 않을 듯이 공고하게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 것처럼 보이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 이윤택, 고은으로 시작한 미투 태풍이 김기덕, 오달수, 조민기, 조재현 등 영화계를 거쳐 어느덧 정치 거물 안희정까지 다다랐다.
지금 알려진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받는 충격이 이미 엄청나게 큰 상태지만, 중요한 건 이 바람이 아직 시작인지 끝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미 불길한 예언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 바람에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변명은커녕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이 바람이 한때 지나가는 계절풍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사가 전개되는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답보 상태인 듯이 보이는 역사의 흐름이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 변화의 동력을 얻는다. 처음에는 우연인 듯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으로 등장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필연의 태풍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미투 운동도 미국 등지에서 그저 몇몇 바람둥이들의 스캔들로 끝나며 살랑살랑 불던 미풍처럼 잦아들겠지 했었는데 어느새 대한민국에 상륙하면서 태풍이 된 것이다.
이쯤에서 지금 눈앞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문명사적 변화의 힌트는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이 현상은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동안 낯선 이에게 당한 성폭행을 제외한 가까운 사이에 벌어진 성 관련 범죄는 대부분 쉬쉬하거나, 혹은 불거져 나오더라도 피해자인 여성이 꽃뱀으로 몰리는 등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본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덮이기 일쑤였다.
어떤 이는 이런 변화를 오랜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물로 본다. 하긴 남녀 사이의 위상이 과거보다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젊은이들 간에는 남자와 여자가 거의 동등한 듯 보인다. 또 다른 시각은 한국인의 유별난 기질에서 찾기도 한다. 일본 모 신문의 한국특파원 여기자는 이런 미투 현상이 일본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며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 사태의 본질을 유심히 살펴보면 남녀 간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의 문제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벌어진 현상의 공통점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상하관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미투 현상은 몇몇 용감한 여성들에 의해 공고하던 권력의 허상이 깨져나갔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어떤 학자가 언급했듯이 이른바 ‘포스트 가부장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머나먼 과거 파충류의 뇌로부터 시작해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그 뇌들이 모두 함께 잔류해 있단다. 다시 말하면 우리 뇌에는 본능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 시대의 뇌, 그리고 유인원의 뇌 위에 현생인류의 특징인 전두엽이 발달한 상태가 모두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포유류나 유인원은 대개 권력을 쟁취한 우두머리가 모든 암컷을 소유한다. 어쩌면 무수한 폭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그마한 권력에 취하여 주변의 여성들을 암컷들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은 현생인류로 진화하지 못한 포유류, 기껏해야 유인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수컷이었다는 이야기다.
영하 15℃의 강한 한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던 어느 겨울날 저녁, 대학로로 연극 한 편을 보러 갔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꽃할배로 유명한 이순재, 신구 선생이 더블 캐스팅된 작품이다.
필자가 보러 간 날은 신구 선생이 열연을 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호통을 치는 광고로 매력을 발산하던 신구 선생. 고집불통 앙리 할아버지 역에 매우 잘 어울려 보였다.
상대역인 상큼 발랄한 젊은이 역은 탤런트 박소담이 맡았다.
TV 드라마에서 봤던 이미지 그대로 매우 귀여운 모습이었다.
작품에는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더블 캐스팅이니 8명의 배우가 출연하고 있는 셈인데 필자가 보러 간 날은 신구, 박소담, 이도엽, 김은희 배우의 연기가 펼쳐졌다.
대학로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다. 오늘의 연극은 대명 문화공장에서 한다는데 대학로로 연극 좀 보러 다녔던 필자에게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약도대로 찾아가 보니 잘 아는 수현재 건물이다. 이 공연장은 배우 조재현 씨가 직접 지은 건물인데 건축비 일부를 대명그룹에서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개관 후 5년간 ‘수현재 씨어터’라는 이름 대신 DCF 대명문화공장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규모가 매우 큰 이 공연장은 현재 1관과 2관은 대명에 임대한 상태이고 3관인 수현재 씨어터는 조재현 씨가 운영하고 있다 한다. 연극이 공연된 대명 문화공장 1관 비발디 파크홀은 아담하고 관람하기에 매우 좋았다.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친밀감이 드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좌석의 경사도가 있어 앞사람에 가려 무대가 보이지 않는 일이 없어 편안했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와 상큼하고 발랄한 여대생 콘스탄스가 서로의 인생에서 특별한 존재가 돼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은퇴한 회계사인 앙리는 아내를 잃은 후 혼자 살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아내가 아끼던 피아노를 거실 중앙에 놓고 매일 쓸고 닦으며 지내는 게 고작이고 아들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게 일상이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의 집 방 하나를 월세 놓겠다는 광고를 낸다. 겉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 약이라도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속으로는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는 고집불통 아버지의 변화를 원하는 아들이다.
발랄한 여대생 콘스탄스는 싼 월세의 이 방을 놓치고 싶지 않다. 자신의 거처에 무단 침입한 듯한 젊은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앙리 할아버지는 월세를 줄 테니 자기 아들을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빌미로 탐탁지 않은 며느리를 쫓아낼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방이 절실히 필요했던 콘스탄스는 그러기로 하고 앙리 할아버지와 한집에 살게 되는데 유쾌한 퍼포먼스가 매우 재미있게 진행된다. 아들 폴 역을 맡은 이도엽 배우의 훤칠하게 잘생긴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실수를 하는 연기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40대 불임부부로 의욕 없는 나날을 보내던 폴은 콘스탄스의 유혹에 넘어가는 듯했지만 아내의 임신 소식에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삶이란 성공이나 실패로 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짧은 인생 속에서 성공과 실패의 선을 굳이 그어보라고 한다면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결국 그거였다고 말하는 앙리 할아버지. 그의 모습이 묵직한 무게로 다가왔다.
아들 내외를 축하하며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앙리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는 관객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또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는 콘스탄스를 응원하며 자신이 죽더라도 콘스탄스의 대학 학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남은 생을 살아가던 앙리 할아버지가 궁극에 깨달은 건 부와 명예도, 자신을 위한 자존심도 아닌 사랑이었다는 말이 가슴을 울렸다. 고집불통 앙리 할아버지와 콘스탄스가 서로에게 다가가며 이해하는 과정은 삶에 있어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훈훈한 마음을 한가득 품을 수 있었던 멋진 연극이었다.
글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뮤지션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연기자로서 최고의 찬사가 쏟아진다. 방송 진행자로서 수많은 고정 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8월 출간한 에세이집 를 비롯한 에세이와 소설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바로 우리 시대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뮤지션인 김창완이다.
김창완은 자신의 창작과 예술 활동의 원동력은 책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직접 쓰기도 하지만 김창완만큼 책을 많이 읽는 연예인은 드물다. 김창완은 책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그런 그의 가슴에 강렬하게 울림을 남긴 책은 어떤 책일까.
“치열하게 사는 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고 예술적인 삶에선 필수적이다.” 바로 미술 평론가 마이클 키멜만의 을 관통하는 주제다. 걸작은 고흐나 피카소만 남기는 것이 아니고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미술사처럼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예술은 우리 자신이 생활 속에서 발견하고 창조하고 또 재창조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열정을 쏟아붓고, 진심을 쏟으면 아름다운 걸작”이라는 의미를 잘 담은 것이 이다. 김창완은 을 보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하고, 뮤지션으로서 활동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권한다.
김창완처럼 다른 스타들도 가슴에 평생 간직하는 책이 있다. 스타들이 감동하고 인생의 좌표로 삼는 책이 있다. 스타들을 움직인 책은 무엇일까.
하루에도 연예계에는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상황에서 최불암은 50여 년을 한결같이 빛을 발산하는 현재 진행형의 큰 스타다. 그가 연기를 통해 내뿜는 빛을 보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은 용기를 얻고, 좌절에 빠진 사람은 위안을 받으며, 절망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단순한 연기자를 넘어 삶의 좌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 아버지’ 최불암에게도 삶의 이정표 같은 책이 있다. 바로 일본 소설가 고미카와 준페이의 이다. 징병으로 끌려가 참전한 저자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의 절절함을 전하는 한편 전쟁의 비인간성을 질타한 이 소설이 왜 최불암의 마음속에 각인된 책으로 남았을까.
최불암은 “책 한 권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을 읽으면서 절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읽었는데 감전된 듯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에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 사랑을 지키는 순수함이 있고 양심이 있고 인간이 있다. 그리고 남성의 자존심을 강하게 느꼈다. 얼마나 이 책에 감동했는지 나는 가지(소설 속 남자 주인공)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힘은 위대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라는 2004년 KBS 연기대상 수상소감으로 많은 이에게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 고두심. 그녀 앞에 조건반사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어머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고두심을 떠올릴 때 ‘어머니’라는 단어를 조건반사적으로 연상한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식을 위해 살아온 이 땅의 어머니를 연기했기 때문이리라.
“모르겠어요. 운명이고 숙명인가 봐요. 처녀 때도 어머니역을 했으니까 말이에요. 많은 모습의 어머니가 있는데 제가 맡은 캐릭터는 강인한 어머니의 성격이 강해요”라고 말하는 고두심은 수기공모에 응모한 김인숙 씨를 비롯한 일반 여성들이 자신들의 어머니에 관해 쓴 수필을 모아 책으로 펴낸 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 책에는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교사에게 맞고 온 아이를 보고 학교에 가 “아이가 숙제를 안 해왔거나 공부시간에 장난을 쳐서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 겁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 것이니 절 혼내 주십시오. 제 손바닥을 때려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어머니 등 평범하지만 위대한 우리 주위 어머니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고두심은 제주 해녀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자식들을 지켜 주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자식들에게 어떤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지를 마음으로 알게 해 준 책이 라고 했다.
평범한 한 남자가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그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흡인력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그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흔히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가 화면 속으로, 스크린 속으로, 무대 속으로 들어간다. 평범함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에 강력한 파문을 일으킨다. 엄청난 흡인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그의 비범함은 깊은 수렁이 되어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에게 빠져들게 한다. 배우 조재현이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마저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실 속 인물로 인식하게 하는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 조재현을 움직인 책은 바로 가출과 반항을 일삼던 사춘기 시절 누나가 선물한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이다. “은 내게 반항하는 마음을 다스려 주었고 감성과 사랑에 대해 폭을 넓혀 준 책이다. 그리고 정서적인 연기를 펼치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인간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준 책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조재현은 ‘첫사랑’에서 드러난 인물들의 심리나 감성, 그리고 행동들은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을 때 연기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안녕하십니까. 남희석입니다. 요새 저보고 자꾸 변했다고 하시는데 제가 우유입니까? 변하게!” 한동안 남희석에게 전화하면 이 소리가 흘러나와 웃음을 짓곤 한 적이 있다. 한때 최고 MC로 군림했던 남희석은 요즘에도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최고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줬지만 늘 시청자의 시선의 중앙에 서 있는 MC다. TV에 나오는 코미디언 이주일이 너무 좋아 개그맨의 꿈을 안고 열한 살 때 고향 충남 보령을 떠나 서울행 기차를 탔던 남희석은 대본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프로그램 진행으로 스타 MC가 됐다.
프로그램과 진행, 그리고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구분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잘 알려진 남희석은 대상과 현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한 힘을 준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과 이 의미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과 , 이 두 권의 책은 단순한 용어 정리가 아닌 하나의 트렌드나 현상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한 책입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인데 지나치기 쉬운 이면의 의미를 알기 쉽고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한국문화와 세계문화에 관한 책도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여섯 살 때 레스토랑에서 가수였던 아버지(이대현, ‘먼지가 되어’ 작곡자이자 가수)의 공연을 본 적 있어요. 인기가 높지 않았던 아버지 공연에 관객들의 차가운 반응을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그때부터 가수가 되려고 했어요. 저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추구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해요. 그런데 무명이셨던 아버지의 공연이 외면 받는 게 슬펐어요. 그때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요. 이제는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라 대중에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연예인이 되는 것으로 꿈이 바뀌었지만요.” 독특한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소화력과 자신만의 향기가 배어나는 연기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뛰어난 가창력과 작곡실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이하나다.
이하나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어도 여전히 신인 때 보였던 담백한 마음과 연기를 향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계속 던지는 태도도 버리지 않고 있다. 인기에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인기를 초연하게 바라보는 이하나의 자세는 다른 연예인과 큰 차이점이다. 이하나의 이 같은 태도는 그녀가 좋아하는 책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는 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의 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코엘료의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해요. 나는 어디에 와 있고 나는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요. 나이가 어려서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못 했지만 코엘료 책을 보면서 삶의 지향점을 생각하고 현재의 나를 반성해요. 그리고 실패와 성공이 순식간에 이뤄지고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평점심을 찾게 해주는 것이 코엘료의 예요. 이 책을 보면서 좌절했을 때 용기를 얻었고 인기를 얻었을 땐 저를 돌아봤지요.” 이 말을 들으면서 코엘료가 그의 책에서 펼쳤던 “내 속의 헛된 바람들 속에서 길을 잃지 말라”는 잠언적 메시지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이하나를 읽을 수 있다. 스타들은 이처럼 자신의 삶과 인생, 예술적 활동에 영향을 준 책들을 가슴에 아름다운 화인(火印)으로 새겨 놓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예술 활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눈이 큰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동양계에서는 일본 배우들 중에 눈이 큰 사람이 가끔 있을 정도이다. 서양 배우들은 오드리 헵번부터 앤 해서웨이 등 눈이 큰 여배우가 많아서 눈이 작은 배우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눈이 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성형 덕분에 눈이 커진 경우도 있겠으나 성형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눈을 크게 뜨다보면 눈이 크게 보이는 것이다.
마치 수리부엉이 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과거에는 크게 놀라거나 할 때만 그런 표정이 나왔었다.
삼성동 SM 타운에 갔을 때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관객들을 똑바로 봐야하고 사진에 잘 나오려니 눈을 동그랗게 떠야 사진에 예쁘게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어릴 때부터 연예인들을 우상으로 삼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수 있다. 요즘 셀카 등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을 일이 많으니 사진 찍을 때 보면 일부러 눈을 크게 뜨는 사람이 많다.
사실 우리 어릴 때는 눈을 크게 뜨면 윗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다소곳이 약간 아래를 보는 시선이어야 무난했다. 순종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당당해 보인다.
아이 콘택트라고 사람이 눈과 눈이 마주 봤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자신이 없을 때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을 회피한다. 아직도 눈을 똑바로 마주 보라고 하면 수줍어한다. 라틴댄스를 출 때는 아이 콘택트가 필수이다. 그래야 파트너와의 교감과 파트너의 리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틴댄스 서수들은 대부분 눈을 똑바로 뜨고 대한다.
우리나라 배우로는 남자로는 조재현, 여자는 한혜진 등이 대표적으로 눈을 크게 뜬 배우들이다. 조재현의 경우는 연기는 잘 하는데 어딘지 부담스럽다. 한혜진의 경우는 여자라서 그런지 얼굴 윤곽이 선명해 보인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눈이 마주치면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또는 전철 안에서라도 남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얼른 피하는 것이 요령이다. 안 그랬다가는 “왜 쳐다보느냐?”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시니어들이 한창 젊을 때 유행하던 포크 송으로 ‘눈이 큰 아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내 마음에 슬픔어린 추억 있었지, 청바지를 즐겨 입던 눈이 큰 아이”로 시작되는 가사인데 은은한 슬픔의 추억을 노래한 곡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애창되었던 ‘긴 머리 소녀’와 함께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를 표현해서 더 사랑 받았던 것 같다.
38.8%라는 근래 보기 힘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KBS 드라마 흥행 일등공신은 수많은 여성 시청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 남자 주연 송중기다. 올해 들어 한국영화 중 97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16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주연은 강동원 황정민, 두 남자 배우였다. 10년 넘게 방송되면서 예능 최강자로 군림하는 MBC 은 유재석 박명수 등 6명의 남자 멤버들이 이끌고 있다. 의 조승우와 의 김준수는 출연 작품마다 매회 티켓매진 기록을 수립하는 뮤지컬계의 최고 흥행 파워 스타다.
최근 들어 드라마, 영화, 예능, 뮤지컬에서 남자 스타 주도의 흥행이 대중문화의 강력한 트렌드로 떠올랐다. 최근 원톱 남자 주연 혹은 남-남 투톱 주연의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여성 스타들이 주연으로 전면에 나선 작품들은 시청자와 관객의 외면을 받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남자 스타 전유물로 전락한 지 오래돼 여성 멤버들이 주축이 된 여성 예능 프로그램은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남자 스타의 티켓파워가 강력해 조승우나 김준수의 뮤지컬의 회당 출연료는 2000만~3000만원 선으로 여자 스타의 출연료를 압도한다.
영화계에선 근래 들어 남자 원톱 혹은 투톱 주연의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1~3년 사이에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선 을 비롯해 황정민의 , 최민식의 , 류승룡의 , 황정민 유아인의 등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남자 원톱 혹은 투톱 주연의 영화였다. 그리고 600만~9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황정민의 , 이병헌의 , 황정민 강동원의 , 송강호 이정재의 , 유아인 송강호의 , 하정우 한석규의 , 김수현의 등 모두 남자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다.
반면 여자 스타들이 전면에 나선 영화들은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다. 2014년 상영돼 866만 명이 관람한 손예진 주연의 , 86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심은경 주연의 등 극소수의 작품을 빼놓고는 최근 여자 주연을 내세운 영화들은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도 여자 주연으로 눈길을 끈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고 있다. 마지막 기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는 한효주와 천우희, 두 명의 여자 스타가 주연으로 전면에 나서 개봉 전 기대를 모았지만 5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흥행 참패를 맛봤다.
CGV가 지난 1월 열린 ‘2016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발표한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남자 스타 영화 흥행 파워 판도를 잘 보여준다. 흥행 파워를 의미하는 ‘믿고 보는 배우’를 묻는 조사에서 40.1%의 지지를 얻은 황정민이 1위를, 28.2%의 강동원이 2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송강호, 하정우, 최민식 유아인 이병헌 순이었고 10위 안에 포함된 여자 스타는 10위를 차지한 전지현이 유일했다.
전통적으로 여자 스타들의 흥행 파워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드라마에서도 최근 들어 남자 스타들의 시청률 상승 주도력이 크게 상승했다. 시청률은 높지만 화제성에서 떨어지는 홈드라마를 주로 방송하는 일일드라마나 주말극의 경우, 여자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화제성과 신드롬 진원지 역할을 하는 주중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사극에선 남자 스타들의 흥행 파워가 여자 스타들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해 20%대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화제가 됐던 SBS 는 남자 주연으로 나서 연기대상까지 거머쥔 주원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올해 들어 주중 드라마로 첫 20%를 기록한 SBS 미니시리즈 역시 남자 주연을 맡은 유승호가 흥행 일등공신이었다. 시청률 40%에 육박한 는 남자 주연 송중기가 인기 견인차였다. 시청자의 좋은 평가 속에 12~17%로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로 지난 3월 22일 막을 내린 도 유아인 김명민 등 남자 주연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대하사극 역시 정통 드라마로 11~14%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데에는 타이틀롤을 맡은 송일국의 힘이 컸다.
3월 28일 시작된 KBS , MBC , SBS 등 세 방송사의 새 월화 드라마들도 각각 박신양, 강지환, 장근석 등 남자 스타를 전면에 내세워 시청자 눈길 잡기 경쟁을 펼치고 있다. 또한, 4월 20일부터 방송된 SBS 는 지성의 원맨쇼라고 할 만큼 원톱 주연 지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4월 27일부터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KBS 드라마 역시 천정명 조재현 두 남자 주연의 활약이 눈에 띈다.
물론 주말극이나 일일극에선 여자 주연들의 활약이 여전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성 주연의 전유물이라는 주말극과 일일극에서도 남자 주연의 흥행 파워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 역시 남자 스타 천하다. MBC , KBS , tvN , jTBC 등 근래 들어 남자 멤버들이 활약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육아를 비롯한 관찰 예능, 쿡방과 먹방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면서 여자 예능 프로그램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남자 예능 프로그램의 득세 속에 4월 8일부터 여성 예능을 표방하며 시청자와 만나는 KBS 는 시청률이 3~5%로 기대 이하 성적을 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MC도 남자 스타들이 독식하고 있다. KBS SBS jTBC 의 유재석, MBC SBS jTBC 의 김구라, KBS SBS jTBC 의 강호동을 비롯해 이경규 이휘재 전현무 김성주 등 남자 예능 스타들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MC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반면 메인 MC로 나선 여자 예능 스타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MBC 의 김성주, 의 성시경 유세윤 백지영, KBS 의 신동엽, SBS 의 이휘재 성시경, 의 전현무 등 백지영을 제외한 방송 3사 음악 예능의 MC들이 모두 남자 스타들이다.
KBS 등 방송 3사 연예대상 수상자 판도는 남녀 예능 스타의 흥행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1회 신동엽 부터 2015년 14회 이휘재까지 KBS 연예대상에서 여자 대상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MBC는 2000년 1회 박경림 이후 2015년 15회까지 여자 대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SBS는 2009년 3회 연예대상에서 유재석 이효리가 공동 수상한 이후 남자 스타들이 대상을 독차지했다.
최근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2000억원대(2015년 기준) 시장규모를 보이는 뮤지컬 분야에서도 남자 스타의 흥행 견인 트렌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월 1일부터 6월 5일까지 공연한 은 조승우 조정석 윤도현 변요한 등이 인기를 견인했고 이중 조승우는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며 한국 최고 뮤지컬 흥행 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등 출연작마다 흥행 대박을 터트린 김준수를 비롯해 홍광호, 한지상, 유준상, 정성화 등 남자 스타들이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며 뮤지컬 흥행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영화와 예능, 드라마, 뮤지컬 등 대중문화에서 남자 스타들이 대중문화 흥행을 이끄는 트렌드를 구축한 것은 대중문화의 주도적 소비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뮤지컬의 강력한 수용자인 젊은 여성 관객과 시청자가 주로 남자 스타의 작품들을 왕성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화나 예능프로그램, 드라마, 뮤지컬에 출연한 남자 스타들을 왕성하게 소비하고 강력한 팬덤을 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화제와 관심을 촉발하는 ‘홍보전령사’ 역할까지 해 남자 스타의 흥행 파워를 상승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투자자나 제작자, 방송사들이 여자 스타의 작품이나 프로그램은 외면하는 대신 경쟁적으로 남자 스타 위주의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대중문화의 남자 스타 흥행 독식을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남자 스타들의 흥행 주도력이 높아지면서 남자 주연을 내세운 작품들은 장르, 내용, 소재면에서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오고 진화를 거듭해 시청자나 관객들이 선택의 폭이 많다. 이에 비해 여자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은 매우 적어 대중의 선택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을 뿐더러 작품의 스펙트럼도 좁아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 김성수 문화평론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500만 관객 동원에 육박(1월 20일 현재 누적 관객수 475만명)한 것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더욱 현실감있고 설득력이 있다.
수현재 씨어터에서 장기 공연 중인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연출 김낙형)’는 30대, 40대를 지나 60대에 이르러서까지 꽃다발을 사 들고 아내의 무덤에 오는 남펀이 주인공이다. 민들레 꽃이 흐드러지게 핀 무덤가에서 그는 웃고, 울고, 소리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관객과 죽은 아내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내는, 둘 사이의 소통 단절을 이미지로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 한다. 서로 자신의 감정을 대사로 털어놓지만 묘하게 미끄러지는 대화를 보며 관객들이 놀라는 것은 그것이 거의 모든 부부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무덤에 기대어 한 번만 안아달라고 말하는 노년의 남편을 보며, 그 남편을 안아주고 싶어 가슴 아파하는 아내를 보며, 관객들은 지금 당장은 너무나 쉬운 소통이 잃고 나면 그토록 소중한 것임을 발견하고 서로를 다시 한 번 쳐다보게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대화가 필요한 부부뿐 아니라 뭔가를 조금씩 포기한 것처럼 느끼는 모든 커플에게 유용한 선물이기도 하다.
극장을 가득 메운 중년의 관객들은 함께 늙어가는 배우 조재현, 이광기, 임호를 통해서 스스로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이 연극은 거울이 된다. 거울 앞에서 조금 눈물 흘리면 또 어떠랴. 신파라는 낙인은 때론 울고 싶은 사람들에겐 브랜드로 여겨지기도 한다.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일시: 2014.12.12. ~ 2015.03.01.
장소: 수현재씨어터
출연: 조재현, 이광기, 임호, 이한위, 김상규, 황영희, 이지현 등
제작: ㈜수현재컴퍼니
세월을 머금은 배우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중년부터 황혼까지, 연기의 참맛을 드러낼 배우들이 봄맞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신구(78), 손숙(70), 유인촌(63), 조재현(49) 배종옥(50) 등이 그 대표적 예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 신구와 연극계 원로 손숙이 뭉쳤다. 지난해 초연 이후 호평이 이어졌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3월 2일~30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가 앙코르 공연을 연 것이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로 분하는 신구는 부쩍 노쇠한 얼굴과 흰머리로 등장한다. 거친 호흡과 손끝의 떨림, 내뱉는 숨소리와 함께 촉촉이 젖어 있는 듯 흐린 초점을 한 신구의 눈은 관객의 감정을 빨아들인다. 그의 아내 홍매를 연기하는 손숙은 아픈 남편 옆에서 무심한 듯 살뜰히 수발을 들며 감정선을 쉼 없이 오르내린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부모 자식 간의 사건과 가족의 기억이 맞물리는 지점을 섬세하게 풀어나가며 깊은 울림을 준다. 신구는 “작가가 대본을 워낙 정교하게 써서 따라가느라 애를 썼다”며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환자의 증상을 조사하고 작가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며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간성혼수에 대해) 찾아보고 표현할 것이 있으면 더욱 표현하고자 한다”고 열의를 내비쳤다.
배종옥(50), 조재현(49), 정은표(48), 박철민(48)이 출연해 드러내는 50대 중년 남녀의 사랑은 무엇일까. 위트를 잃지 않는 가운데,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이 작품은 바로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3월 1일~4월 27일, 서울 수현재씨어터)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대학 교수인 정민과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 연옥은 목요일마다 비겁함, 역사, 죽음에 대해 토론한다.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50대 두 남녀는 사랑과 이별, 갈등과 화해, 애정과 증오를 표출해, 미묘한 남녀 갈등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재현은 인기 행진을 이어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50대뿐 아니라, 젊은층부터 70대 노인 관객까지 많이 찾아와 놀랐다”며 “더 폭넓은 세대를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창작극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누적 관객수 5만명을 돌파했다.
무대로 돌아온 전 문화부 장관 유인촌 역시 눈길을 끈다. 그는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을 전하는 ‘톨스토이의 홀스또메르’(2월 28일~3월 30일, 서울 CGV신한카드아트홀)를 택했다. 변종인 얼룩빼기 말로 태어난 홀스또메르는 진면목을 알아본 세르홉스키 공작(김명수, 서태화)에 의해 촉망 받는 경주마로 거듭난다. 늙고 병들자, 마시장에 팔리고 거세까지 당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홀스또메르의 입을 빌려 희로애락 속 인생의 화두를 던진다. 수많은 공연을 거쳐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주로 해오던 이경미(53), 김선경(46)은 홀스또메르의 첫 사랑 암말 바조프리하 역과 세르홉스키 공작의 연인 그리고 그를 배신하고 달아나는 여인 마치에 역, 그리고 마리 역까지 1인 3역을 소화한다. 이들은 장면 사이사이 쉴 틈 없이 등장한다. 젊은 앙상블 배우들과 함께 속속 종횡무진하는 이들 중년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관객들은 한결같이 연륜과 진정성이 담겨 있는 중견, 원로 연기자들의 연극은 대사 한마디, 작은 표정 변화 하나도 오롯이 관객의 가슴에 전달돼 감동을 많이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