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스크 쓰고 등산해보기
-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이 지켜야 할 행동지침 중 첫 번째가 마스크 쓰기다. 이제는 밥 먹을 때와 잘 때 말고는 마스크와 한 몸이다. 야외 테니스장이나 축구장 등 체육시설은 전면 폐쇄되었다. 한강 둔치에 나가 보면 답답함을 피해 나온 시민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고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단속의 호루라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면역력 증강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이제는 답답함을 피해 갈 곳은 산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마스크 쓰기는 지켜져야 한다. 등산길에서 2m 이내에 사람이 없으면 잠시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는 다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게 등산로에서의 행동지침이다. 보건당국의 지침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면서 북한산의 한 봉우리인 족두리봉(321m)을 셋이서 등산하기로 했다. 지하철역 ‘불광역’에서 오르는 코스와 ‘독바위’역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는데 경사가 다소 완만한 ‘독바위역’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주말의 가을 하늘은 맑고 쾌청했고 기온도 산행하기에 아주 적절했다. 서울 시내의 등산로는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상가나 아파트촌을 지나야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든다. 초행길 등산객은 바로 여기서 길을 헤매게 된다. 오늘도 족두리봉 진입로를 몇 번이나 물어서 겨우 찾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전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오는 사람은 있어도 마스크를 잊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등산로는 제대로 정비되어 있었다. 계단이 필요한 곳은 계단이 있었고 미끄럽고 경사가 심한 곳은 잡고 올라갈 난간이 설치돼 있었다. 이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토요일인데도 난간 설치를 하는 분들이 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등산객이 많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이력이 나서 그런지 아주 잘 오르신다. 용불용설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신체는 단련하고 쓰면 쓸수록 근육도 생기고 민첩해진다. 어르신이 그걸 몸소 증명하신다. 마스크를 쓰고 산행을 하니 숨쉬기가 불편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마스크를 벗어본다. 그 얇은 천이 공기구멍을 이토록 막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문득 과거 생각이 났다. 겨울에 마라톤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출발 전 영하의 날씨이면 주최 측에서 얇은 비닐 포대를 한 장씩 준다. 그 비닐이 찬바람을 상상 이상으로 막아준다. 출발해서 어느 정도 달리면 몸에서 서서히 열이 난다. 추위를 견딜 만하면 불편했던 비닐 포대는 벗어던지고 달린다. 마스크도 그렇다. 숨이 찰 때 마스크를 쓰는 것과 벗는 것의 차이는 컸다. 산행 중간중간 경치가 좋은 곳에서 인증숏도 하고 경치도 담았다. 이 중 잘 찍어서 호평받은 사진은 카톡방에 올려 공유를 한다. 시니어 친구들은 어디를 가든 인증 사진을 꼭 찍으라고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추억거리가 되고 서로 만나면 이야깃거리도 된다는 거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필름이 필요 없는 휴대폰 카메라는 인화 비용도 없고 편리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족두리봉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난간도 없어 손을 짚으며 올라야 해서 위험하다. 여러 사람이 실족사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위험하다는 경고판만 붙어 있다. 자신 있는 사람만 올라 쾌감을 느껴보라는 의미일 거라고 좋게 해석해본다. 마스크를 쓰고 산행을 해보니 평소보다 숨은 더 차지만 그래도 해볼 만했다. 정상을 오르고 나서 조심조심 하산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해장국집에 들렀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출입자 명부를 적어야 한다. 이름은 빼고 거주지 주소와 전화번호만 적으면 된다. 정부의 지시는 같을 텐데 음식점마다 대응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소규모 업소는 출입자의 체온을 재지도 않고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는다. 손님이 싫어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일손이 딸리는 것도 한 이유다. 손님들이 솔선해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차단하려는 정부 의지에 공감하고 따라야 한다.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마스크 없이 숨 한번 편하게 들이마시고 싶다.
- 2020-09-23 09:33
-
- 보폭이 닮은 친구와 산에 오르다
- "산에 가자" 오랜만에 전화한 동갑내기 친구가 대뜸 산에 가자고 한다. 정년까지 일하겠다는 당찬 그녀. 코로나19로 장기간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떠올랐지만 서로 바쁘기 전에는 자주 산행을 하던 친구라 단칼에 거절이 어렵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조심조심 다녀오자고 마음을 굳힌다. 그녀와 나는 걸을 때 보폭이 비슷하다. 빠르거나 더디지 않으니 산길에서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편이다. 오랜만에 산에서 먹는 밥맛은 또 얼마나 좋을까? 쳐져있던 마음이 한껏 부풀어 들뜬 맘으로 집을 나선다. 불광역 2 번 출구에서 장미공원 방향으로 걷다보면 북한산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코스다. 시작부터 가파른 만큼 재미도 있다. 맘이 통했는지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족두리봉으로 향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진분홍 꽃들이 길 양 쪽에 마주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길에 진달래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 놀랍다. 겨울이 멈칫대는 사이 몰래 온 봄이 족두리봉과 연결된 좁은 오솔길 사이에서 노닐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 누런 흙먼지가 날린다. 중턱쯤 오르다 마스크를 벗었다. 때마침 능선을 타고 넘어오던 바람이 맑은 공기를 훅 몰아준다. 누구랄 것 없이 크게 숨을 들이킨다. "와아! 너무 좋다~" 산 중턱에서 마시는 공기는 집에서 마실 때와 확실히 다르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혹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생각해선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족두리봉 너른 바위를 등지고 앉아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바짝 말라 건조한 하늘 아래 봉긋봉긋 솟은 아파트와 빌딩, 사이사이 납작납작 엎드린 다가구 주택들. 탁한 느낌인데 신기하게 하늘은 푸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후다닥 챙긴 밥과 조금씩 덜어내 온 반찬이 꿀맛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마주하니 마음도 여유롭다. 사는 게 뭐라고 그리 아옹다옹 하냐고 즐겁게 살자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이 텅 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 손질해온 딸기를 입에 넣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시간이 갈수록 그립다고. "그렇구나… 그렇겠지…."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끄덕끄덕 고갯짓이라 슬프다. 족두리봉을 끼고돌아 향로봉으로 향했다. 진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나무 사이사이마다 만개했다. 사진을 찍어 확인해보니 수분이 모자라 꽃잎이 바짝 말랐다. '멀리선 아름답게만 보이더니 너도 애쓰는 중이었구나' 하긴, 사람도 그렇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한 걸음 가까이 들어가 보면 걱정과 근심이 있다. 사람이나 꽃이나 서로 적당한 거리에 있을 때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달콤한 행복을 떠올리다 습기라곤 없는 진달래꽃을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본다. 텁텁한 꽃 향이 입안에 퍼진다. 기분이 좋다. 나란히 걷는 친구의 입에도 넣어준다. 몇 해 전, 혼자 배낭을 메고 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난 날은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다. 비를 피하느라 바위 아래 멈췄다 내려오는 길에 따먹었던 젖은 아카시아 꽃잎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 후로 산에서 꽃을 보면 입안에 넣고 씹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처럼 먹어도 되는 진달래, 아카시아가 대부분이지만. 그녀의 수다가 줄었다. 진분홍 꽃잎을 오물오물 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오늘 같은 날은 아카시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씹을수록 달콤한 그 꽃. 아카시아 꽃을 씹으며 행복하던 그 느낌이 그립다. 그녀와 함께 오물오물 달콤한 행복을 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음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지. 아카시아 꽃 필 무렵 산에 가자고 해야겠다.
- 2020-04-08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