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5년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든 입주할 수 있는 분양형 실버타운을 다시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경로당에 식사를 지원하고 요양병원 간병 지원을 제도화하는 등 노인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대비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22번째 민생토론회를 열고 노인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대비할 관련 정책을 밝혔다.
분양형 실버타운 재도입과 장기임대주택 도입
정부는 지난 2015년 폐지됐던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을 다시 도입한다. 현재 노인복지주택은 임대만 가능하지만, 이후 노인복지법 개정 등을 통해 인구 감소지역 89곳에 한해 분양도 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또한 기존에 있던 ‘독립된 생활이 가능한 자’라는 자격 요건을 폐지해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든 입소할 수 있게 된다.
주택연금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기존에는 실버타운에 입주하면 주택연금을 받을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예외를 허용한다.
위탁 운영 요건도 완화한다. 기존에는 노인복지주택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야 위탁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요건을 없애 앞으로는 호텔, 요식업체, 보험사, 리츠사, 장기요양기관 등 여러 기관이 운영할 수 있게 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이 고령자를 위해 공급하고 있는 ‘고령자복지주택’은 기존 연간 1000가구에서 3000가구 규모로 확대한다. 리모델링형, 민간제안형 등을 신설해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추첨제를 일부 도입해 중산층도 입주할 수 있도록 한다.
국토부는 고령자 대상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실버스테이’를 시범사업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고령친화적으로 설계하고 복지관 등 공동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 특례 등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신도시를 개발한다면 택지의 일정 비율을 노인 주거 지역 부지로 제공해 어르신 친화 주택 공급도 늘릴 방침이다.
요양병원 간병 지원 제도화와 치매 주치의 도입
이달부터는 요양병원 간병 지원 시범사업이 진행된다. 이를 바탕으로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제도화할 계획이다.
간병인 관리·운영에 관한 표준 지침과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간병 서비스 시장 질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 기관 관리 기준 마련 및 등록제 도입도 추진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대상자는 올해 230만 명에서 2027년 400만 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또한 ‘재택 의료센터’를 현재 95개에서 2027년 250개로 늘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재택 의료 활성화를 유도한다. 중증환자의 방문 진료 본인 부담금도 현행 약 3만 8000원에서 절반 수준인 1만 9000원까지 낮출 예정이다.
어르신들이 집에서도 장기 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중증 환자의 ‘재가 요양급여’도 늘린다. 중증도 1등급 기준 189만 원에서 207만 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요양·목욕·간호 등 방문서비스를 한 곳에서 제공하는 통합재가기관도 현재 75개에서 1400개로 늘린다.
올해 7월에는 퇴원 환자들이 집에서 간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재택간호통합센터’를 도입한다.
같은 달 ‘치매 관리주치의’ 시범사업도 시행한다. 치매부터 건강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치매 어르신 실종 예방을 위한 휴대용 신원확인 시스템도 운영한다.
더불어 치매 어르신이 집과 같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유니트 케어’ 시범사업도 올해 하반기 시행할 예정이다.
경로당 식사 제공부터 노인 건강까지
생활 속 어르신 지원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경로당은 6만 8223개로 이 중 42%가 평균 주3.6일의 식사를 제공한다. 정부는 경로당·경로 식당 지원으로 올해부터 식사 제공 횟수를 늘려 최종적으로 매일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조리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경로당 4만 개에 대해서는 시설 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안전관리자도 배치한다.
이 외에 아파트나 일반 거주지의 남는 공간을 활용해 본인이 부담하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 등 유인 정책을 통해 식사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노인 안전을 위해서는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올해 상반기 전체 독거노인으로 확대하고, 2025년부터는 노인 학대 신고 의무 직군을 12개에서 18개로 늘린다.
어르신 건강을 위한 생활 여건 조성에도 나선다. ‘시니어 친화형 국민체육센터’를 확대하고, 파크골프 활성화, 어르신 생활체육지도사 배치 지원 사업, 어르신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어르신 맞춤형 운동 정보 홍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정부가 치매환자에게 환자가 선택한 ‘치매 관리 주치의’가 체계적인 치료·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치매관리주치의(가칭) 시범사업 추진계획안을 발표했다.
‘치매관리주치의(가칭) 시범사업’은 치매환자가 시범사업에 참여한 치매 치료·관리에 전문성이 있는 의사를 선택해 체계적으로 치료·관리 받고, 만성질환 등 다른 건강문제도 통합적으로 관리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시범사업 추진계획에서는 치매 치료·관리를 위한 환자별 맞춤형 계획 수립, 심층 교육과 상담 제공 등 치매환자 치료관리에 중요한 서비스들을 각각 건강보험 수가 행위로 규정하여 환자 여건 등에 맞게 적절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했다. 치매 관리 주치의 서비스에 대한 본인부담률은 20%로 적용되나, 중증 치매환자에 대해서는 산정특례를 적용하여 10%가 적용된다.
치매 관리 주치의는 치매환자에 대해 포괄평가 및 치료·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에 대한 심층 교육·상담, 추가 비대면 관리, 방문진료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필요시 치매안심센터 등 지역사회 의료복지 자원을 연계, 활용하는 등 지역사회 치매 치료관리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치매환자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라 빠르게 증가 중이며, 치료가 어렵고 돌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 등에게 큰 고통과 부담을 초래하고, 이는 전체 사회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복지부는 “무엇보다 발병 초기 경증 상태에서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중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번 정부 차원의 치매 관리 주치의 제도 도입은 치매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관리의 시작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올해 내 ‘치매관리주치의(가칭) 시범사업 추진 세부계획’을 마련하여 사업 참여 공모를 실시하고, 시범사업 교육, 요양급여 청구 전산시스템 구축 등 준비를 마친 후, 내년 7월부터 치매 관리 주치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범사업 1년 차(2024년)에는 20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며, 의료기관(의사) 및 환자의 참여 정도 등을 감안하여 2년 차(2025년)에는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재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위한 ‘자생 엔젤박스’ 100개(1000만 원 상당)를 기부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날 전달식에는 우인 인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 임경임 만월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비롯한 양 기관의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자생 엔젤박스는 위생용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복지 사각지대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건강 키트로서 박스당 1명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여성용 위생용품이 담겨 있다. 이날 기부된 100개의 자생 엔젤박스는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지역 내 여성 청소년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전달식 이후 인천자생한방병원과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은 건강 증진을 위한 업무 협약식도 진행했다. 협약에 따라 인천자생한방병원은 만월종합사회복지관의 한방 주치의로서 복지관을 찾는 청소년 및 노인들에게 척추·관절 질환 정보를 제공하고 실질적인 치료에도 앞장설 방침이다. 또한 양 기관은 적극적인 상호 협력을 통해 앞으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함께 펼치기로 했다.
우인 인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추워진 날씨로 건강 관리가 어려워지는 요즘,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과 노인에 관한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앞으로 만월종합사회복지관과의 지속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 공헌 활동의 선순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자생한방병원은 보건복지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으로부터 3주기 연속 인증을 받은 인천 지역 유일한 한방 척추 전문병원으로, 목·허리디스크, 퇴행성 관절염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 치료를 위해 한·양방 협진 및 통합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 가정 청소년을 위한 희망 드림 장학금 전달, 지체 장애인 의료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의료사업 수익의 사회 환원과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에 앞장서고 있다.
“손에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어머니는 딸 앞으로 암보험, 실비보험 등 보험만 4개를 들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의 딸은 유방암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했지만 결국 말기 환자가 됐다. 주치의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모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고, 모녀가 함께 살 집 장만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태껏 죽도록 일만 한 딸이었다. 그리고 딸은 오래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
집 근처 병원을 마다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을 찾아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담당 교수는 신이었고, 병원은 신전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녀는 살아남기 위한 갖은 고생 외엔 딱히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삶이었기에 딸의 암진단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었다. 그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고, 임상시험 치료까지 참여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척추까지 퍼져 딸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다. 그러자 주치의는 치료 중단과 함께 퇴원을 요구했다. 대신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모녀는 떠밀리다시피 퇴원을 했다. 딸은 평생 일해 장만한 그 오래된 아파트에서 눈을 감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열과 함께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아 놀란 어머니는 119를 불렀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려 하자 딸은 서울의 대형병원 환자라며 당장 그곳으로 가달라고 졸랐다. 응급실에는 4일을 머물렀다. 각종 검사가 다시 진행됐고, 요로감염이라며 항생제 처방과 함께 퇴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너무 놀란 어머니는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했고 담당 교수는 끝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대신 젊은 전공의는 왜 호스피스를 가지 않냐 재촉했다. 단 한 번도 거부나 주저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그 병원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모녀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달리던 택시 차창 밖으로 다른 병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도저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나 입원을 부탁할 요량으로 택시를 돌려 무작정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고 때마침 병실도 하나 비어 있어서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그 날의 상황을 나중에 모녀는 신의 인도라고 말했다.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가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일일이 그곳의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이름을 거론하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내게 풀어냈다. 그곳에서 2주가량을 쉰 후 딸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그곳 호스피스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안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집 근처 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집에서도 통증 조절과 영양수액 등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렇게 이 모녀는 내게 연결됐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은 딸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딸이 평생을 바쳐 장만한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딸이 우수사원이 되어 받은 상패를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왜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다음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버린 서울의 대형병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용기 있게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일찍 안내했으면 증오가 덜 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를 제안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들조차 이제 모두 원망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상심과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녀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웠다. 우리 호스피스팀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두 모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호텔에서의 추억 여행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그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친척들 가운데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는 그 집이 너무 싫어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대형병원과 담당 교수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서 놓지 않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암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실이 없어 대형병원 옆에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수일에서 수주 간 머물다 가는 고시원 같은 환자방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암환자로 호황을 누리며 수도권에 큰 규모의 분원들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환자 중에 완치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말기환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암센터를 키우고 분원도 새로 건립하면서 그 말기환자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에는 왜 그리 야박한 것일까? 지금도 암환우 카페에 들어가면 말기진단 후 쫓겨나듯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서러움 담긴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갑자기 다큐멘터리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69세의 말기위암환자다. 그는 선거에서 평생 지지했던 여당 대신 처음으로 야당에게 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 환자에게 따뜻하길”
병원과 의사들은 수술도 함암치료도 하지 않는 말기암환자들에게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만성 콩팥병은 3개월 이상 콩팥에 손상이 있거나 콩팥 기능이 저하된 상태의 질환을 말한다. 6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9%를 차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장 기능이 저하되며, 고령자의 대표적인 만성 질환인 고혈압, 당뇨병 등이 신장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에 대한 궁금증을 김소연·권순효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신장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콩팥에는 사구체라는 혈액 여과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며 걸러진 노폐물은 소변으로 배출된다. 만성 콩팥병(만성 신부전증)은 콩팥이 여러 이유로 지속적으로 손상을 받아서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을 말한다. 주요 원인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이 꼽힌다. 고혈압으로 혈관이 손상되면 콩팥에 이상이 생기며, 당뇨병으로 혈액 속에 당이 많으면 신장 조직에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성 콩팥병은 ‘많고 비싼 병’으로 통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17년 20만 3978명에서 2021년 27만 7252명으로 5년 새 36% 증가했다. 국내 성인 7명 중 1명은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만성 콩팥병 진료 환자 수 및 진료비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849만 원이었다. 진료비가 높은 이유는 ‘투석’과 관련 있다.
만성 콩팥병은 진행 상태에 따라 1~5기로 구분한다. 초기 1~2기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물 치료와 철저한 관리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사구체 여과율 60% 미만의 3기에 이르러야 증상이 나타나는 편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단계인 5기는 ‘말기 신부전’이라고 하며, 투석 치료나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 시기에는 5년 생존율도 약 61.5%로 떨어지는데, 이는 일부 암의 5년 생존율보다 더 낮은 수치다. 이에 따라 조기 발견이 중요하며, 건강한 습관으로 병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
Q. 부종과 같이 뒤늦게 나타나는 만성 콩팥병의 증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자신이 당뇨 환자라면 만성 콩팥병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A.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지만,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피곤함, 집중력 저하, 식욕부진, 수면장애, 발목 부종, 야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신이 붓는 증상은 신장과 심장, 간 등의 질환이 있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당뇨병 환자 3~4명 중 1명에게 만성 콩팥병이 생기고, 말기 신부전 환자 2명 중 1명은 당뇨병이 원인일 정도로 당뇨병 환자와 신장 합병증은 관련이 깊습니다. 적절한 식이·운동·약물요법을 통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해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정기적인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로 신장 합병증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형 당뇨가 있는 사람은 최소 1년에 한 번씩 소변 알부민뇨 검사와 혈액에서 추정하는 사구체여과율 검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Q. 5기 환자의 경우 5년 사망률이 암보다 높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위험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5기 말기 신부전 환자들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은 심혈관 질환입니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는 당뇨, 고혈압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심혈관 질환 위험인자인 요독증, 혈관 석회화, 대사성 산증을 가지고 있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10~30배 높습니다.
Q. 신장이식 수술은 위험성과 부작용이 잇따를 것 같습니다. 현재 의료진이 이식 수술을 권장하는지, 반대로 지양하는지 추세가 궁금합니다.
A.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는 신장이식이나 투석 같은 신 대체요법을 시행합니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신장이식을 받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장이식이 투석에 비해 장점이 많습니다. 거의 정상 신장 기능을 가지게 되어 투석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는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으며, 조혈 호르몬, 활성화 비타민 같은 호르몬이 만들어집니다. 투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거의 정상적인 식사와 생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식할 신장을 제공받기가 쉽지 않으며, 수술에 대한 정신적・육체적・경제적 부담이 있습니다. 또한 이식 후 거부반응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이로 인해 감염이나 암 같은 면역억제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식을 준비하기에 앞서 이식의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신장 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데, 이 상태에서 물을 과다하게 마시면 혈액량, 체액량이 늘어 폐부종이나 부종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무조건 수분 섭취를 제한하면 오히려 탈수로 인한 신장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만성 콩팥병 단계와 소변량 등을 살펴보고 주치의와 상의해 적정 수분 섭취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을 예방하기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만성 콩팥병의 원인이 되는 당뇨, 고혈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활 습관 개선과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혈당 및 혈압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배는 반드시 끊고 술은 하루에 한두 잔 이하로 줄이는 것을 독려합니다. 더불어 만성 콩팥병 환자는 충분한 열량과 적당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며, 염분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또한 포타슘(칼륨)과 인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다만 이와 같은 식이요법은 증상 악화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질환 자체를 고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둬야겠습니다.
이필모(49)는 결혼과 함께 배우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5년 전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슬하에 둔 그는 작품 속에서도 아버지 역할을 연이어 연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덧 ‘중년 배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이필모는 이 변화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배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필모는 하반기 방송 예정인 JTBC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 출연한다. 인터뷰 당시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었던 그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이번에 새롭게 보여줄 모습을 묻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점이 아닐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극 중 주인공 로운의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는 이필모. 재벌 캐릭터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2021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연모’ 이후 두 번째로 아버지 연기를 펼친다. ‘연모’에서는 이휘(박은빈 역)의 아버지 혜종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이게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감정이 들어요. 이제 주인공이 아니고 아버지가 되어 조력자 역을 맡게 된 것이니까요. 물론 모든 역할이 중요하고, 이전과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중년 배우가 됐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전과는 다른 제 나이에 맞는 새로운 연기를 하게 되겠죠. 중년의 로맨스 연기를 할 수도 있겠고요.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배우 인생이 기대됩니다.”
데뷔 25주년 필모그래피
1998년 영화 ‘쉬리’로 데뷔한 이필모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는 타고난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노력형 배우다”라고 자평했다. 중학생 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저는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나마 중학생 때 키가 178cm였으니, 키가 크다는 게 특징인 정도였죠. 별다른 꿈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홍콩 누아르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전문 용어로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것을 그때 느낀 거죠. 그리고 그날부터 제 꿈은 배우가 됐습니다.”
이필모는 데뷔 후 연극에 주로 출연했던 터라 인지도가 낮았다. 대중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를 무명 시절로 여겼다. 노력해도 빛이 나지 않는 무명 시절. 많이 힘들었지만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이필모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다”면서 빛을 볼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2006년 KBS 2TV ‘아줌마가 간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아침드라마였지만 시청률이 2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어 그는 2009년 KBS 2TV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하게 된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4.2%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이필모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극 중 솔약국집 둘째 아들이자 소아과 의사 송대풍 역을 연기했다. 이필모의 능청스럽고 유쾌한 연기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딱 그 시절 나올 수 있는 청춘의 모습이었다.
“배우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창 방영 중일 때예요. ‘솔약국집 아들들’은 54부작인데, 30~40회가 방영 중일 때 가장 행복했어요. 가장 바쁠 시기이기도 한데, 대중의 반응이 느껴지니까 힘이 나는 거죠. 그런데 40회가 넘어가면 그 행복한 순간도 끝나요. 마지막이 다가오니까 아쉬워지는 거죠.”
‘솔약국집 아들들’ 외에도 이필모의 가슴에 오래 남은 작품들이 있다. 가장 먼저 그는 MBC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다. 극 중 악역 차수혁을 연기한 이필모는 캐릭터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아직까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MBC ‘가화만사성’에서 뇌종양 환자 연기를 펼친 것, tvN ‘응급남녀’에서 냉철한 의사 연기를 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셋째 계획 가진 필연 커플
이필모에게 작품 선정 기준을 묻자 “불러주시면 감사하고 가리지 않는다”는 겸손한 답을 했다. 특히 가장이 된 현재 그는 가족을 위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이필모는 2019년 인테리어 전문가 서수연 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첫째 담호는 2019년, 둘째 도호는 2022년에 각각 태어났다.
“아침에 까치가 입에다 뭔가를 물어서 둥지의 새끼들한테 갖다주는 모습을 보고,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새끼 새들을 위해 알아서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을 통해 많이 성숙해지거든요.”
이필모와 서수연 씨는 ‘필연 커플’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2018년 TV조선 ‘연애의 맛’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부부로 발전했다. 첫 만남부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그들을 향해 대중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부부의 근황에 대해 이필모는 “아내의 장점은 털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내한테 늘 고마워요. 담호, 도호를 예쁘게 낳아주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죠. 저희 부부도 여느 부부와 똑같아요. 가끔 싸울 때도 있죠. 저는 오히려 부부가 안 싸우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을 수는 없죠. 한두 가지만 맞아도 잘 맞는 것이고, 나머지 여덟 가지는 맞추면서 사는 거예요.”
필연 커플의 2세인 담호와 도호 역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필모는 두 아들의 장래에 대해 “연예인은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힘든 연예인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연예인은 아버지가 이미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또한 이필모는 셋째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내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부분이라고. 그는 “옛날부터 아이가 셋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삼 남매로 자라서 그런지 둘은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딸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특별한 이유를 전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애들이 방에서 뛰어나와 아빠를 반겨주는 것이 저의 로망이에요. 사실 예전에 여자아이 옷을 사놓은 게 있습니다. 최근 딸을 갖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는데요.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을 정말 밥 먹듯이 다녔어요. 병원에서 제일 많이 본 장면이 무엇이냐면, 중년 여성이 아버지를 케어하는 모습이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늙고 병들었을 때 딸아이가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담호, 도호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딸아이를 갖고 싶은 욕심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죠.”
모친상, 건강의 중요성 깨달아
부모가 되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닮아간다고 하지 않나. 이필모의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그는 “현재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요양병원에 계신다”라고 말했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이필모는 부모님의 케어를 담당했다.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닌 것도,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의 주치의·간병인과 소통하는 것도 모두 그다. 지난 3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차마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23일에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4일 후 아버지가 골절상을 입으셨어요. 아버지는 현재 거동을 못 하시고, 귀가 거의 안 들리는 정도예요. 치매 증상도 있으시고요. 아버지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말하지 못했죠.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간병인분이 ‘혹시 3월 초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순간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버지를 뵈러 가니까 이제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필모의 어머니는 쓰러진 후 3개월간 병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힐링이 필요할 때 찾는 제주도에서 어머니를 보내는 시간도 가졌지만, 아직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터뷰 당시 이필모는 영정 사진으로 쓰인 어머니 사진을 기자에게 공개하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난해 서울장미축제에서 그가 직접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어머니는 유난히도 밝게 웃고 계신다.
“장미축제에 같이 갔을 때 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좋은 곳에 많이 못 모시고 다니고, 못 해드린 게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파요. 어머니는 자식만을 위해 살았는데 말이죠. 어머니는 우리나라 격동기를 이끈 분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위해 뭘 했다는 게 아니라 모든 힘듦을 묵묵히 견뎌내고, 자식을 잘 키워내셨으니까요. 어머니 덕분에 배우 이필모도 있는 것 같아요.”
이필모는 어머니를 보내고 ‘건강’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가족이 무탈하고 건강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운동한다. 건강을 유지해 오래 일하며, 아버지로서 역할도 다하고 싶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이필모는 “색다른 향기를 내뿜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연기 참 잘했던 배우로 기억해줬으면”이라고 말했다.
“누구라도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어요. 어려움과 힘듦의 정도 차이가 있는 거겠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이겨내면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저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을 위해 이겨낼 거예요.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갖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예약된 시간에 병원을 갔는데 한참 흘러서야 진료를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통증에 부랴부랴 응급실을 찾아도,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마냥 기다리는 처지일 때도 있다.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이 아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기에, 당연한 듯 참게 된다. 그러나 이 당연한 기다림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칼럼 한 편을 보내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당연함이 강자의 일방적인 생각이거나, 약자가 수긍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공감이 아닌 폭력이 된다. 우리는 종종 상대와 내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당연함도 착각일 수 있다. 특히 병원에서 의사들은 환자와 같은 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배가 망가져 침몰하면 환자는 물속에 잠기더라도, 병원과 의사는 안전하다.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이 정한 원칙을 진심으로 당연하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치유라는 약속을 믿기 위해 그저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정신과 교수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10년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간병 보호자로 살았다. 그 경험을 담은 책 ‘케어(The Soul of Care)’에서 그는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이란 공간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 존재이고, 당연하게 요구되는 그 기다림은 자신들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한 말기 암 환자의 웃음
60대 중반 여성 말기 위암 환자가 있다. 완치라는 희망으로 병원이 요구하는 그 모든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50대를 병원에서 보냈다. 10여 년 동안 셀 수 없는 검사를 했고, 위를 모두 잘라냈고, 힘든 항암 주사도 견뎠다. 하지만 병은 멈추지 않고 몸의 다른 장기로 번져갔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던 당연함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됐다. 기적과 같은 가능성을 얘기하며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하자는 의사의 제안을 처음으로 거절했다. 마지막까지 치료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환자의 당연한 도리를 거부한 순간, 담당의사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 했고 동시에 그를 위한 시간과 공간은 병원에서 사라졌다. 병원이란 곳은 고통의 크기보다 치료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그 당연함을 말기 환자가 되어서야 새롭게 알게 됐다.
호스피스를 권유받았지만 병원에 이골이 난 그는 그냥 집에서 지냈고, 이내 복수로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병원을 찾게 됐다. 복수 천자라는 것이 간단한 시술인 줄 알았지만 과정은 항암 주사를 맞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미리 혈액검사를 하고, 오래 기다려 짧은 외래진료 후에 주치의의 복수 천자 처방이 떨어지면, 다시 영상의학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 초음파 검사로 주삿바늘로 찌를 부위에 표식을 받고, 주사실로 가서 누워있으면 한참 뒤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와서 배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지 8시간 만에 첫 복수 한 방울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진 후 집에 돌아와 탈진으로 이틀을 드러누운 후에야 그와 남편은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호스피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10년 넘은 세월을 함께 했던 병원과 작별했다. 그가 호스피스 신청을 위해 우리 병원에 들고 온 진료의뢰서에는 위암과 다발성 전이 외에도 처음 들어보는 ‘병원 공포증’이라는 소견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만큼 병원이라면 그는 진저리를 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그가 호스피스를 찾은 진짜 이유는 어디선가 호스피스에 가면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복수 천자를 위한 것 외엔 입원치료는 물론 그 어떤 주삿바늘이 몸에 닿는 것도 거부했기에 호스피스팀이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로 연결됐다.
나는 가정형 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배를 휴대용 초음파로 간단히 살핀 후 바로 복수 천자를 시작했다. 1시간 동안 무려 4ℓ 정도 되는 복수가 빠져나오자 그는 ‘허파에 바람 든 사람’마냥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웃음소리를 냈다. 병원에서 반나절을 허비해야 받을 수 있는 이 간단한 시술을 내 집 내 침대에서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씁쓸한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의 복수 증가 속도가 빨라 최소 주 2회 복수 천자를 해야 하는데, 인력은 부족하고 방문할 환자는 많고, 그의 집은 너무 멀어 규칙적으로 주 2회 방문이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 그의 거동이 자유롭고, 남편은 은퇴 후 여유가 많으니 주 2회 내 진료실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신 나는 그에게 그동안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해주겠다 약속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가장 한가한 시간에 맞춰 그는 내 진료실로 방문했고, 나는 즉시 비어있는 옆 진료실에서 복수 천자를 시행했다. 모든 것들은 사전에 준비해뒀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복수 천자가 이뤄졌다. 1시간 안에 4~5ℓ의 복수가 빠져나가면 그는 날 듯한 가벼운 몸이 되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체중이 38㎏ 남짓인 그에게 4~5㎏의 복수를 배에 담고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는지 그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꼬박꼬박 방문했다.
원칙의 당연함이 아닌 ‘배려’가 필요한 때
그렇게 석 달이 흘러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고,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그는 조금씩 수척해져 갔다. 그만큼 월요일과 목요일의 만남도 익숙해졌고, 병원 공포증이 있다는 그는 언제부턴가 이 두 번의 외출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는 복수 천자를 시행하기 전 늘 습관처럼 애원하듯 뱃속에 있는 복수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최대한 뽑아달라고 했다. 마치 복수를 증오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수척함이 맘에 걸려 병원에 온 김에 영양제 주사나 알부민 주사라도 맞고 가라고 부탁해도 그는 말없이 씨익 웃으며 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 나는 또 어김없이 주사라도 맞고 가라는 부탁을 거절당한 후, 왜 그렇게 약이나 주사는 거부하고 복수에 대해 집착하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이제 몇 개월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처음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불러주진 않고, 갑자기 배가 산처럼 커지더라고요. 이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누워있는 게 제일 편해요. 선생님, 조금 더 지나면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럽고 힘든 때가 오겠죠? 사실 요즘 그런 걸 느껴요.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태를 겪어야 할 텐데, 과연 이게 언제 끝나는 걸까요? 그걸 빠짐없이 다 겪어야 하느님이 불러줄까요? 그냥 어디가 더 망가지더라도 상관없어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보내고 싶어요.”
또 한 달이 흘렀다. 난 가끔 복수배액관을 심는 시술이나, 알부민 주사를 슬며시 권유했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늘 똑같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복수를 뽑아달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봄의 문턱에서 꽃샘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그는 매우 힘들어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알 수 없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모든 뼈마디와 뼛속까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전에 받아놓은 마약진통제가 있지만 그전부터 자신은 그 약이 전혀 듣질 않기에 애초에 진통제를 챙겨 먹을 생각은 포기하고 그냥 견디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그의 태도에 속상해 오래 살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아픈 걸 참지 말라며 타박했다. 그리고선 다른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제발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그는 광대가 더 도드라진 수척해진 얼굴에 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 아프지 않고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견딜 수 없게 아픈 게 반갑기도 했어요.”
난 아픈 게 반갑다는 그의 궤변에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더 나빠진 거잖아요.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워졌어요. 이제야 하늘이 나를 불러주는 것 같아요.”
나는 차마 그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년간 그가 매일 겪었을 고통과 죽음을 향해가는 고독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기에 그는 더 나빠진 몸이 오히려 반갑다고 하는 걸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만나러 1주일에 두 번 병원에 오는 게 제 유일한 외출이고 즐거움이에요. 세상에는 저한테 친절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 병원에 올 때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쉽고 편하게 이뤄지니 너무 신기해서 지난 10년 동안 쌓였던 화가 다 풀리는 것 같아요. 몸은 아파도 잠도 잘 자고 마음은 너무 편해요.”
10년 동안 참았다는 말이 서글펐다. 우린 그동안 병원의 규칙과 절차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믿었기에 환자들도 기꺼이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공감대 위에 의료진과 환자는 수평적인 눈맞춤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매우 달랐다. 우리는 직업이었지만, 환자는 자기 삶 전체를 짊어지고 우리가 당연하다 그어 놓은 그 선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고 또 참으면서 말이다. 더 이상 목숨에 연연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할 수 있게 된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외치는 당연함의 본질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다. 한 가지 깨달음은, 세상에는 모두가 지켜야 하는 당연함이 존재하지만 그 당연함을 넘어서는 친절을 우리는 배려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원칙의 당연함보다 배려의 당연함이 지금까지 세상의 질서를 지켜 온 진짜 버팀목은 아니었을까?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2009년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에서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그가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제를 사회, 역사, 철학, 의학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펴냈다. 현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임상조교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
노사발전재단 서울지사(이하 ‘재단’)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남부지사(이하 ‘인력공단’)가 27일 중소기업의 근로자 직업능력개발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채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의 주요 내용은 △기업지원사업 수행을 위한 협업에 관한 사항 △직업능력개발사업 및 장년고용창출지원, 생애경력설계에 관한 사항 △주요 사업에 대한 홍보 협업 및 인프라 활용 △ESG 경영 및 동반성장 지원 방안 협업 △일자리 컨설팅, 능력평가, 숙련기술 분야 직종별 전문가 등 인적자원 활용에 관한 사항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인재 확보에 대한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업지원사업의 통합컨설팅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협약이 이뤄졌다. 서울서부중장년내일센터는 중소기업의 구인·구직 미스매칭을 해소하고자 일자리 컨설팅을 통해 중장년 적합 일자리를 발굴하고, 적합한 구직자들의 안정적인 신규 일자리 안착을 위한 직무역량강화교육지원과 채용행사를 통해 인재 확보를 지원한다.
인력공단은 올해 처음 추진된 ‘능력개발전담주치의’를 통해 중소기업의 업무환경을 파악해, 기업 맞춤형 HRD 제도 도입을 돕는다. 체계적현장훈련(S-OJT), 일학습병행 등 기업 내 필요한 직무교육을 정부지원제도와 연계해 정부지원금을 제공하는 한편, 근로자 전문성 강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꾀한다.
이번 협약을 바탕으로 ‘찾아가는 G밸리 기업맞춤 원 스톱(One-stop) 서비스’를 통해 중소기업들은 서울 금천구 소재 재단 서울지사에 방문, 일자리 컨설팅과 근로자 능력개발 컨설팅을 한 자리에서 받을 수 있게 된다.
앞서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이달 20일 시범운영을 실시했다. 3개 중소기업에서 사내 HRD제도 및 일자리 관련 컨설팅을 받은 후 사업 참여를 결정한 바 있다. 현장에 방문한 기업 담당자는 “정부지원사업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 우리 기업에 맞는 제도가 무엇인지 와닿지 않았는데, 상담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재단 측은 이번 시범운영 결과를 보완해 내달 16~17일 노사발전재단에서 운영하는 청춘문화공간에서 매월 2회씩 ‘채용부터 교육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통합컨설팅 DAY’를 운영할 예정이다.
홍제희 노사발전재단 서울지사장은 “금번 업무협약을 통해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해소하고 특히 중장년 인적자원을 기업에서 관심을 갖고 활용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유관기관과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여 중장년 일자리 창출과 안정적인 고용유지를 위해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권기목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남부지사장은 “기업이 원하는 정보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유관기관 간 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협약이 좋은 시작이 되리라 본다. 이러한 고객중심 협업모델이 확산 될 수 있게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의료진 입장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기치 못한 합병증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다. 게다가 지칠 대로 지친 가족까지 상대하는 일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비유될 정도다. 그런데 병원이 아닌 말기 환자의 집을 직접 찾아가 치료하는 의사들이 있다. 바로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에 참여하는 ‘마지막 주치의’다. 인천성모병원에서 만난 서민석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이 환자의 마지막 주치의는 나다. 늘 이런 마음가짐으로 다녔죠. 다른 의료진이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고 판단한 상태에서, 나는 이 환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한집 한집 찾아다녔어요.”
서 교수는 2016년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의 시범사업이 진행될 때 참여한 의사 중 한 명이다. 5년간의 시범사업 내내 인천 지역 환자를 찾아다녔고, 매년 100곳 이상의 가정을 방문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서 교수의 활약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장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병원이 참여 기피
가정형 호스피스는 초고령사회로 초고속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다. 임종이 가까워진 암 환자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가정에서 돌볼 수 있도록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자원봉사자 등이 각 가정을 방문한다. 집에서 치료하거나 임종하기를 바라는 고령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필요로 하지만 운영하기는 가장 어려운 제도로 꼽힌다. 바로 의사 부족 때문이다.
가정형 호스피스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하루에 네다섯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동선을 잘 계산해도 물리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가정의학과 평균 환자 수는 주당 312명. 주 6일로 계산해도 하루에 52명을 진료하는 셈이다. 모시기 힘든 몸값 높은 의사를 데려다가 일반적인 진료의 10% 환자만 치료하는 제도를 병원 측이 좋아할 리가 없다. 때문에 전국에서 이 제도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37개소뿐이다. 대부분 종교병원이나 공공병원이고, ‘알 만한’ 유명 대학병원들은 쏙 빠져 있다.
“처음 시범사업이 시작됐을 때 모든 언론이 주목했어요. 주치의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풍경이 이색적이었을 테고, 정부도 제도 홍보에 집중했으니까요. 그러다 환자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병원 수 때문에 항의가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난감해했죠. 의사를 확보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결국 방문한다는 것은 외래 진료나 병동 환자의 진료 시간을 빼야 하는데, 호스피스 전담 인력이 충분한 의료기관이 아니라면 어려운 부분이 있죠. 방문을 통해 발생하는 의료수가(진료비)도 낮게 책정되어 있어 병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워요. 수가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고, 결국 봉사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암 환자를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은 대략 의사 방문 시 6300원, 간호사는 4200원, 사회복지사는 2500원이다.
병원 밖을 나서 환자의 집을 찾아다니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더운 여름이나 한겨울엔 한두 곳만 돌아도 녹초가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서 교수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모습이었다고.
“실제로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면 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아요. 의사가 직접 찾아와 병원에서만 가능했던 치료를 해주니 좋아할 수밖에요.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또 의료적인 처치 이외에도 사회복지사님이 장기요양서비스와의 연계라든가 장례식장 등 임종 전에 준비해야 하는 다양한 부분을 안내해드리기도 하고, 신부님이 같이 가셔서 미사를 드리기도 하고, 음악·마술요법 선생님이 함께 가기도 하니 만족도가 매우 높죠.”
남의 집도 내 집처럼 편안해져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환자들이 임종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한 달. 죽음과 가까운 환자만 상대하는 일은 의료진 입장에서도 감정적으로 지치는 일이다. 실제로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들은 병원 측에서 제공하는 심리 관리 프로그램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신적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어땠을까?
“의료진 입장에선 ‘소진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다행히 저는 성격적으로 우울감이 심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어요. ‘마지막 주치의’로서 임종하는 과정까지 최선을 다해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임종 이별이라는 것이 슬픈 과정이지만,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도왔다고 생각하면 막 지치지는 않아요.”
서 교수의 이런 성품은 가정의학과를 전문과목으로 선택한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전문적으로 하나의 질환만 파고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결국 의사가 대하는 것은 질병이 아닌 환자이니, 환자의 여러 문제를 두루 배워서 이야기 나누며 치료하는 것이 내게 맞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간병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당연히 살림에는 소홀해지고, 집 안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의료진의 방문, 그것도 대학병원 교수라는 의사가 방문한다면 환자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당연히 긴장을 하세요. 저는 그냥 환자를 보러 간 것이기 때문에 집 안의 환경이 어떻든, 지저분해도 상관없는데 환자나 보호자분들이 너무 조심스러워하세요. 청소를 해야 하나, 대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세요. 하지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편히 대하시면 돼요. 저도 그냥 방바닥에 털썩 앉아 일부러 더 제 집처럼 행동해요. 처음에는 쭈뼛대기도 했는데, 제가 편히 행동해야 가족들의 마음도 안정되더라고요.”
아직은 병원 임종 많아
사회가 고도화되고 가정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가족을 돌보고 임종을 맞이하는 과정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정형 호스피스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서 교수는 임종 때까지 집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단다.
“대가족이 많았던 과거에는 가정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자원이 풍부했죠. 충분히 집에서 간병할 수 있었고, 가정에서 임종하면 장례까지 치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녀들이 경제활동에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나이 많은 환자의 배우자가 돌보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병원으로 오시죠. 집에서 임종까지 바라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막상 그날이 가까워지면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어려움이나 다른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병원행을 선택하게 되죠. 집에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보다가 입원을 하는 겁니다. 애초에 가정형 호스피스는 가정에서 임종까지 맞이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사업을 막상 진행해보니 집에 계시고 싶은 만큼 계실 수 있게 돕고 이후 임종은 병원에서 맞이하는 형태로라도 가정형 호스피스로서 의미는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국내 베이비붐 세대는 기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600만 명에서 8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어느 쪽이더라도 대단한 숫자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요양 서비스가 필요할 15~20년 후에 대해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요양시설 등 기반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정이나 마을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나 일부 질환에 대해 가정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도 이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가정형 호스피스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그 미래를 서 교수는 “의원급이 활발히 참여하는 형태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각 병원마다 코로나19 치료 병상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있어요. 바로 호스피스 병동이에요. 병동이 사라지면서 당연히 이용하는 환자 수도 통계상 감소했는데, 줄지 않은 분야가 있었어요. 바로 가정형 호스피스 이용자죠. 게다가 앞으로는 노인 인구가 더욱 증가하니까 이 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들도 늘어날 겁니다. 네 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대상 질환도 만성질환이나 치매 등으로 확대가 예상되고요. 이런 질환은 임종까지 기간이 긴 만큼 가정형 호스피스를 받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겁니다. 물론 지금 담당기관에서 이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고, 해외 사례처럼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연계해서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사업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결국 임종까지 돌봐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하시고요. 대만이 이와 비슷한 모델입니다. 호스피스 이용률이 58.7%에 달해요.”
우리나라 호스피스 대상자 중 서비스 이용률은 20% 정도다.
서 교수는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래도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는 존재 의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초기에 만난 환자분인데, 유방암이 뇌에 전이돼 뇌압 조절이 안 되어 정기적으로 뇌척수액을 빼내야 했어요. 뇌압이 올라가면 의식이 떨어지고 호흡도 억제되니까요. 병원에선 퇴원을 말리는데 환자는 집에서 지내길 너무나 원했어요. 다행히 저희에게 의뢰가 와서 의료진이 방문해 도와드렸습니다. 하필 병원에서 가장 먼 송도 지역이어서 하루를 그 환자만을 위해 써야 하는 상황이었죠. 뇌압 조절만 해드리면 다른 증상이나 통증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서, 군대 간 아들이 제대하는 것까지 보고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었어요. 한 사람으로서 존엄을 지키면서 평소 지내던 곳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고 가족이 지켜보는 상태에서 임종을 맞이하셨죠.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은 639조 원 규모다. 이 가운데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의 내년 예산은 총 34조 9923억 원으로 올해보다 1조 5797억 원 줄어든다. 고용부는 특히 고령자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 공공일자리를 축소하고 민간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고령화사회의 대안으로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사업이다. 노인 일자리 유형에는 공공형, 사회 서비스형, 민간형 사업이 있다. 이 가운데 공공형 노인 일자리가 대폭 축소된다.
노인 일자리의 대부분은 사실상 공공형 일자리다. 올해 노인 일자리 84만 5000개 가운데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60만 8000개였다. 내년에는 54만 7000개로 줄이기로 했다. 약 6만 개 정도의 일자리를 줄이는 셈이다.
공공형 일자리는 환경정비, 교통안전 보조, 금연구역 지킴이 등 공익활동을 주로 한다. 평균적으로 월 30시간 일하고 임금 27만 원을 받는다. 생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저임금의 단순 노무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신 정부는 생산성이 높은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를 3만 8000개 늘리기로 했다. 민간형 일자리에는 시장형 사업단, 취업 알선형, 시니어 인턴십, 고령화 친화 기업이 속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해 노인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노인 일자리의 절대적인 규모는 크게 변화가 없다”며 “다만, 직접적인 단순 노무형 일자리는 소폭 줄이고, 민간형 일자리는 조금 더 늘어나는 흐름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부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 일자리 확충에도 불구하고 전체 노인 일자리는 결국 2만 3천 개 감소한다. 노인 일자리는 경제활동을 통한 수익 창출 목적도 있지만 고령화사회에 노인들을 사회에 참여시키려는 복지 성격도 강하다. 때문에 노인 일자리 축소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대안은 기업에 대한 고용 지원 확대다. 고용부는 고령자 신규채용과 정년 이후 계속 고용 기업에 대해 고용장려금을 늘린다. 내년 고령자고용지원금 예산안은 558억 원(5만 3000명)으로 올해 54억 원(6000명)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고령자계속고용장려금도 올해 108억 원(3000명)에서 내년 268억 원(8만 2000명)으로 160억 원 증가했다.
더불어 고용부는 첨단산업 분야에 예산 4163억 원을 편성, 약 3만 6000만 명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폴리텍 등 특성화 대학을 활용해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등 관련 학과를 25개 신설(350억 원)하고, 일학습병행센터를 10곳 신규 구축(112억 원)했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산업구조에 대응해 중소기업을 위한 직업훈련카드를 1억 5000만 개 신설(357억 원)하고, 능력개발주치의가 상주하는 15개 센터도 71억 원을 들여 신규 설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