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오금로에 위치한 책 복합문화공간 ‘서울책보고’에서 특별전시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이 열린다.
10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은 문학과지성사, 창비, 민음사 등 출판사들이 펴낸 시집 가운데 서울책보고가 보유한 200여 권의 절판 시집을 전시·판매한다. 교육시집과 영화시집, 대학교 시 동아리에서 내놓은 동인지 등도 만날 수 있다.
서울책보고 참여 헌책방이 선별한 초판 시집과 시인 사인본 모음 코너도 마련된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창비 시선’, ‘민음사 오늘의 시인 총서’, ‘세계사 시인선’ 등에서 출간한 1970~2000년대 초판본이 전시·판매될 예정이다. 김광규, 나희덕 등 시인의 사인본도 접할 수 있다.
절판 시집 구매자에게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시인 김명순·윤동주·랭보·에밀리 디킨슨 등의 띠지와 레트로 종이봉투를 증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책보고 홈페이지나 공식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서울책보고는 유휴공간이었던 신천유수지 내 물류창고를 서울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새롭게 조성한 책 문화공간이다. 2019년 3월 27일 개관 이후 3년 동안 400회 이상의 다양한 책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과서전(展):슬기로운 생활’, ‘잡지전(展):지나간 시간을 엿보다’, ‘7080 추억의 만화전(展)’, ‘근현대 여성 작가전(展)’ 등 공공 헌책방이 할 수 있는 특별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서울책보고가 헌책과 헌책 문화를 통해 시대의 흔적과 추억을 시민과 공유하는 특별기획전시는 계속 이어진다.
15년 넘게 파킨슨을 앓았지만, 왕복 네 시간 사무실을 오갈 정도로 건강했던 남편. 그러던 남편이 85세 되던 해, 갑작스러운 병고로 쓰러지며 4개월여를 병상에 누워 지냈다. 당시 아내 유선진 씨의 나이 80세. 병원에만 갇혀 사는 남편에게 다시 일상을 선사하고자 그녀는 의사의 만류에도 재가 간병을 택했다. 그렇게 남편을 돌본지 어느덧 5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남편은 아흔이 넘었고, 아내도 여든 중반이 됐다. 혹자는 인생의 황혼기에 병 수발드는 아내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 어느 때보다 현재의 부부생활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다. 비로소 ‘진짜 부부’가 되어 사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는 유선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평 반의 행복’을 펴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온라인상에 제 글이 몇 편 올라가 있었어요. 여고 동문 카페랑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 등등. 그런 글이 공유되다가 지금 출판사 사장님 눈에 들어온 거죠. 제 글이 마음에 드셨는지 이렇게 노부부의 생활을 책으로 엮었으면 한다고 제안하더군요. 저는 원래 수필을 써왔던 사람인데, 그 글은 남편하고 사는 일상을 틈틈이 적어놓은 거였거든요. 해서 정통 수필도 아니고, 어디 발표하려고 준비한 것도 아니라 문학성이 부족하다 느껴 출간을 주저하긴 했어요. 그런데 100세시대다 보니 저처럼 배우자를 수발하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감사하게도 책을 읽은 분들이 도움이 됐다고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한 평 반의 행복’이라는 책 제목의 의미가 궁금한데요.
우리 부부는 한 30년 가까이, 정말 오랜 세월 각방을 썼었어요. 한 사람은 야행성, 또 한 사람은 아침형이라 도저히 패턴이 맞이 않았거든요. 그러다 남편이 85세 되던 해에 쓰러졌는데, 계속 병상에 있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의사와 자식의 반대를 무릅쓰고 억지로 남편을 집으로 데려왔어요. 그에게 삶을 주고 싶었거든요. 당시 우연히 엄청 큰 침대가 생겼죠. 그 침대 사이즈가 바로 한 평 반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한 침대를 쓰게 됐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가장 행복했으리라 생각해요. 지난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잠 한번 편이 못 자본 사람인데, 이제야 비로소 잠을 아주 편하게 자거든요. 하루에 18시간 이상을 자기도 할 정도로요. 그런 의미에서 한 평 반의 침대가 그에겐 참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제목을 그리 지었습니다.
책에서 그렇게 결혼 생활 53년 만에 ‘완전 일체의 부부가 되었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내가 나를 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산다는 것. 즉, 이제야 내가 남편을 살아요. 그와 똑같이 괴롭고, 똑같이 감사하고, 똑같이 즐겁고, 매사를 한 사람인 것처럼 나를 그에게 일치시키게 되었으니까요. 간호를 하면서 보니 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사람이더군요. 그전까지는 몰랐던 감정이죠. 그런 점에서 ‘완전 일체의 부부가 되었다’고 표현했어요. 신혼 때는 각자 자기 의견이 강하고 생성이 뚜렷해서 아무리 좋아도 그런 부부 일체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아주 어린 아이처럼 되어버려서, 다른 의견을 가질 것도 없어요. 제가 거기에 맞추면 되니까요. 그러니 갈등도 없고 마찰도 없고, 사실 집안에서 잘 걸어 다니고 밥 씹어 넘기는 것만 해도 다행이니, 별다른 기대도 없어요. 젊은 시절에 그런 걸 감사할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땐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일이 감사한 요즘입니다.
재가 환자인 남편을 수발한 지 5년이 넘었는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요?
저도 천사가 아니거늘 힘들 때야 있죠. 아무래도 인지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고요. 사실 크게 힘든 점은 없는데, 남편이 퇴원하고 한동안은 식사 시간이 참 곤혹스러웠어요. 제가 간호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바로 세끼 식사였거든요. 나름 섭생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식사하러 나오는 과정에서 참 속을 썩였어요. 그때가 가장 힘들어서, 식사 시간만 잘 지켜주면 다른 건 바랄 게 없다 싶을 정도였죠.
반대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요?
그냥 다 전체적으로 함께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즐거워요. 무엇보다 남편이 엄청 행복해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예전에는 못 봤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을 때가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참 즐겁고 행복한데, 저희 아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요. 환자가 상태가 좋다고 해서 기분 좋아지고, 아프다 해서 기분 나빠지고 하지 말라는 거죠. 그저 이만큼이라도 나아져서 일상을 함께하고, 그동안 잘못했던 것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 하더군요. 그 말을 잘 새기고 보니 현재가 감사하고, 또 즐거운 일 천지더라고요. 사실 저는 남편에겐 아주 나쁜 아내였거든요. 아들의 조언처럼 고약하게 굴었던 지난 세월을 만회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참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남편과의 여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지요?
남편도 아흔이 넘었고, 인지력도 거의 없다 보니 앞으로 함께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이 한 인간으로 태어나 보내는 인생의 마지막인 순간인 거잖아요. 지금 나하고 보내는 일상을, 이 삶을 간직하고 떠나게 될 텐데, 모쪼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 ‘이 세상이라는 게 참 좋고 따뜻한 것이구나’라는 걸 마음에 품고 갔으면 해요. 그게 제 소망입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늘 웃는 얼굴로 남편을 맞이하고, 내 자신이 먼저 즐겁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남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이 제게도 충만한 삶이고요.
2021년 한 해 바람이 있다면요?
올해 1년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에 기도할 때마다 ‘오늘만 같게 하소서’라고 빌어요. 더 낫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늘만 같길 바라는 거죠.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겐 그게 가장 어려운 바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어떤 물리적인 상황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 마음이 오늘만 같길 바란다는 의미도 있어요. 하늘이 주시는 대로, 어떤 위기가 오든지 욕심 없이 감사하며 같은 마음으로 살았으면 해요. 남편도 이제 거의 노환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헛된 바람 같은 건 가지면 안 되거든요. 가능한 한 병원 신세 안 지고, 저하고 이렇게 오늘처럼 평안한 삶을 살다가 떠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유선진 저자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동초등학교, 경기여중·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부문에서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2002년에 발표한 첫 수필집 ‘섬이 말한다’가 같은 해 한국문예진흥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2009년 산문집 ‘사람, 참 따뜻하다’, 2014년 수필선집 ‘쓴맛 단맛’, 2020년 어르신 이야기책 ‘그와 내가 있는 삽화’, ‘내 사랑 엄지’, ‘딸’을 출간했다.
2021 상장 기업 업종 지도 (박찬일 저·에프엔미디어)
2100여 개 주식 종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마인드맵 형식으로 소개한다. 새로 주목해야 할 5가지 테마와 25개 대표 업종을 정리해 주식 시장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다.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마르타 자라스카 저·어크로스)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과학 저널리스트 마르타 자라스카가 600여 건의 논문 분석과 50여 명의 전문가 인터뷰,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노화와 장수에 관한 궁금증을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꼭두각시 조종사 (요슈타인 가아더 저·현대문학)
노년에 접어드는 언어학자가 한 여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편지로 쓴 서간체 소설이다. 인생의 황혼기에서도 소속감을 찾는 주인공을 통해 외로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평 반의 행복 (유선진 저·지성사)
어느 80대 노부부의 인생 회고록. 2015년 갑자기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틈틈이 적은 글을 산문집으로 엮었다. 남편을 향한 미안함과 사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김인선 저·나무연필)
1950년에 태어나 한 여성과 함께 독일에 사는 70대 여성의 일대기. 48년간 겪은 타지 생활 경험부터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황헌 저·시공사)
와인을 사랑하는 언론인 출신 저자가 와인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한다. 와인의 뿌리부터 포도 품종, 라벨 문화의 기원까지 와인에 대한 지식을 다방면으로 제공한다.
# 펭수, 디 오리지널 (EBS · 한국교육방송공사)
‘자이언트 펭TV’ 제작진과의 협력으로, 3개월에 걸쳐 제작한 펭수 화보 매거진. 지난 1년 간 펭수의 활동 하이라이트와 인터뷰를 비롯해 펭클럽 인증 모의고사, 팬아트 모음, 펭수의 은밀한 사생활 화보, 미발표 자작시 등이 담겨 있다.
# 서울 아파트 지도 (이재범 저 · 리더스북)
저자가 서울 25개구 전역에서 발품을 팔아가며 직접 분석하고 엄선한 ‘돈 되는 구축 아파트’ 272곳을 소개한다. 교통부터 학군, 실거주 환경, 가격 변동, 재건축 이슈, 향후 전망 등 구축 아파트의 단지별 정보를 상세히 수록했다.
#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저 · 후마니타스)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간 일했던 60세 퇴직자가 생계를 위해 시급 노동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쓰기 시작한 노동일지. 아파트, 빌딩, 버스터미널을 전전하며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부, 배차원으로 살아 온 3년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알베르토 사보이아 저 · 인플루엔셜(주))
구글 최초 엔지니어링 디렉터이자 혁신 전문가인 저자가 탁월한 아이디어를 설계하는 최적의 방법론을 제안한다. 저렴하고 쉽고 빠르게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8가지 프리토타입 기법과 이를 통한 활용 전략 등을 아우른다.
# 오늘, 나를 위한 꽃을 (오유미 저 · 위즈덤하우스)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는 물론 드라마, 전시 등에서 독보적인 꽃 장식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플로리스트 오유미의 꽃 에세이. 다채로운 꽃 사진과 서정적인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슴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선사한다.
# 소설 보다: 봄 2020 (김혜진 외 공저 · 문학과지성사)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다. 이번 봄에는 김혜진의 ‘3구역, 1구역’,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와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 팬데믹 (홍윤철 저 · 포르체)
세계보건기구 WHO는 날로 심각해지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팬데믹’을 선언했다. WHO 정책자문위원이자 서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인 저자가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정리한 팬데믹 시대의 생존 해법을 제시한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4월, 이달에 읽기 좋은 신간들을 소개한다.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오경아 저ㆍ궁리
10여 년 동안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저자가 정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펴낸 가드닝 안내서다. 정원 가꾸기에 노하우가 없는 초보자도 도전해볼 만한 쉽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계절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저자의 스테디셀러인 ‘정원의 발견’(2013)의 실천편이라 할 수 있다. ‘정원의 발견’이 정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원론적으로 알리는 책이라면,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은 본격적으로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펴낸 책이다. 목차를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로 나뉘어 있다. 달마다 정원을 빛나게 할 식물들을 비롯해 그달의 정원노트와 동서양 정원사들에게 전해오는 오래된 정원의 지혜 등을 담았다. 정원을 가꾸는 데 필요한 준비물부터 식물별 가드닝 노하우, 나무 심기와 옮기기, 잡초 없애기, 가지치기, 씨앗 거두기, 뿌리 나누기 등 다양한 정보를 삽화와 함께 보여준다.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식물과 정원 그림들은 정원 일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보는 것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더불어 정원이 없는 도시인들도 실내정원을 손쉽게 꾸밀 수 있도록 ‘손바닥 가드닝 노트’도 마련했다.
신들이 노는 정원 미야시타 나츠 저ㆍ책세상
세 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 불리는 곳 ‘도무라우시’에 가족을 이끌고 산촌유학을 떠난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더불어 살며 꿈만 같았던 1년간의 기록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들려준다.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저ㆍ김영사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온 자연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첫 번째 에세이. 치열했던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른 저자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 ‘밥 먹는 것’과 ‘숨 쉬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요리 철학 탄생 배경을 이야기한다.
박치기 사랑 양귀자 저ㆍ지성사
노년의 책 읽기 권리를 찾기 위해 기획된 ‘어르신 이야기책’ 시리즈의 신간이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김상윤 박사의 자문을 받아 선정된 글을 노안으로도 읽을 수 있는 활자 크기로 보여준다. 양귀자의 1993년 발표작 ‘박치기 사랑’이 그림치료 활동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재탄생했다.
스마트 워라밸 가재산, 장동익 저ㆍ당신의서재
1주 52시간 근무시간 단축 시대를 맞아, 기업을 위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단지 복지후생뿐만이 아닌 따뜻함과 엄격함이 동시에 존재해야 개인과 회사가 동반 성장하는 지속 경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재준
안네 소피 무터(Anne Sophie Mutter, 1963~ )의 바이올린 독주회 맨 앞자리에 김영태 시인과 나란히 앉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k.304를 들었다. 41개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한 단조의 선율은, 봄밤을 깊은 심연의 사색에 잠기게 하였다.
연주가 끝나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휘적휘적 걸으며 잠시 하늘을 보았다. 아련한 산사나무 꽃향기 사이로 멜로디의 여운이 눈물 되어 흘렀다. 긴 계단을 내려와 차도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부군을 사별한 안네의 망부곡 같았어요. 검은 의상은 상복일 테지요.”
스스로를 ‘풀먼지 같은 존재, 어눌한 말주변’에 빗대어 초개눌인(草芥訥人)이라 자호(自號)한 분이 김영태(1936~2007) 시인이다. 비교적 작은 키에 작은 손으로 평생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김환기 화백(1913~1974)의 훈도를 받았고, 재학 중 박남수 시인(1918~1994)의 추천을 거쳐 ‘사상계’잡지에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7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소묘집, 시론집, 산문집, 무용평론집 등 70여 권의 저작물은 가히 초인적인 문화 활동이란 말 이외에 더 무슨 수사가 필요할까.
일찍이 독일문화원에서의 첫 전시를 비롯해 7~8회 회화전도 열었으나 그림 수집의 인연은 아주 늦게 찾아왔다. 그의 화풍은 독특해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프랑스산 판화지에 철필과 몽당붓을 짙은 먹이나 검은빛 잉크에 찍어 윤곽의 선을 구획하고, 유화용 까칠한 붓으로 면을 마감하는데, 서예의 갈필(渴筆)같이 선묘(線描)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림의 기초 단계인 스케치 실력이 상당하지 않고서는 강철 같은 선(線)을 뽑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07년 이른 봄 초개 선생 댁에서 ‘토슈즈 끈을 매고 있는 헤르미아’를 만났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멘델스존이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으로 작곡했고, 이를 무용으로 공연한 발레리나의 포즈를 형상화한 빼어난 작품이다. 물 흐르듯 먹의 농담이 한 송이 꽃으로 살아 있다.
드로잉(drawing)을 선인들은 화골(畵骨)이라 일컬었다. 그리기의 단단한 뼈대가 곧 선긋기에 있음을 강조함이다. 유화나 짙은 수채화 등은 물감을 덧칠하여 잘못 그린 선들을 감출 수 있으나, 연필, 목탄, 먹, 파스텔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는 게 매력이다. 초개 선생의 그림 속에는 일절 꾸밈이 없다. 색칠의 남용도 없다. 탄탄한 구성과 간결한 선들의 얽힘이 화면 가득 흐른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2)의 피아노곡을 즐겨 듣고, 모차르트 음반을 많이 소장하였다.
2007년 7월 운명하기 전까지 화랑가를 산책하고 음악회, 무용 공연장을 찾았다. 생전에 그가 즐겨 앉았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가열 123번 좌석은 그를 추모하는 예인들에 의해 ‘초개눌인 석’으로 명명 헌정되었다.
문학과지성사는 1978년부터 문학과지성 시인선(詩人選) 시리즈로 시집을 475권째 발간해 오고 있는데, 표지에는 시인의 얼굴을 컷으로 표현하는 게 특징이 다. 이 컷은 2007년 김영태 선생이 작고하기 전까지는 김영태, 이제하 두 분이 그렸으나 이후는 이제하 선생이 혼자 그리고 있다. 컷을 그리기 전에 시집의 원고를 읽고, 시인들이 제공한 얼굴 사진을 보고 컷을 그리는데, 선이 잘 풀려 나올 때는 불과 몇 분 만에, 안 풀릴 때는 수주일이 걸린다는 말을 두 분에게서 들었다.
이제하(1937~ )는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평론가의 그 어느 장르에서도 건필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다. 자작곡의 노래에 기타반주로 음반도 취입한 바 있다. 홍익대 조소과에서 미술공부를 하였으나 중도에 독창적인 창작의 길로 전환하였다. 경남 마산에서 고교시절인 1956년 ‘새벗’잡지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학도의 선망이 되었고,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고교 시절에는 김상옥(1920~2004), 김춘수(1922~2004), 김남조(1927~ ) 같은 시인들에게 국어수업을 받았음을 자부하기도 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광화사’등의 소설로 이상문학상등을 수상하였다. 1955년 제작된 영화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서 따온 마리안느 카페를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평창동에서 시작된 카페가, 대학로로 옮겨와 시인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음악과 커피 와인 향 속에서 예술을 토론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성악가, 대중가수, 국악인들은 주저 없이 절창을 부르고 있다. 그의 문체는 회화적이고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평가 받는다. 그의 그림 속에는 시혼(詩魂)의 알레고리가 녹아 있다.
마리안느를 드나들며 몇 점의 그림을 수집하던 중, 2008년 인사동 전시회에서 ‘말과 소년’ 드로잉을 구입하였다. 파스텔로 단숨에 그린 원숙한 드로잉이다. 늠름한 말이 실내 어느 공간에 들어와 있고, 소년이 말을 다독이고 있다. 한 여인이 옆에 앉아 있다.
이제하는 ‘도시에서 태어나야 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 혹은 그 긴장하는 접점으로 말[馬]을 실내로 끌어들인 야생의 한 이미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하 그림 속의 말은 자연과 야성의 모티브가 된다. 자연을 거스를 수 없으나 쉽게 동화되지도 못하는 인간들의 고뇌와 갈등을 오묘한 색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1998년에는 김영태, 이제하 2인 드로잉전이 열려 한자리에서 개성 강한 두 예술인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는 당나라 대시인 왕유의 시를 보고 시중유화(詩中有畵)요, 화중유시(畵中有詩)라 하였다. 김영태, 이제하 두 예술인의 문장 속에는 격조 높은 그림이 보이고, 그림 속에서는 시와 음악이 흐른다. 이들의 고양(高揚)된 예술세계는 우리의 혼탁한 일상을 정화시킨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글 박찬일 로칸다 몽로(夢路) 셰프
텔레비전을 틀면 요리사가 나오고, 백종원이 요리를 한다.
요리사를 넘어 ‘셰프테이너’라는 말이 나오고, 광고까지 점령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와 백종원이 나오는 여러 프로그램이 요리사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요리사가 대중 매체의 총아가 된 셈이다(심지어 글 쓰고 작은 식당하는 내게도 출연 섭외가 빗발쳐서, 거절하느라 진땀을 뺀다). 백종원은 이른바 전문 셰프들과 다른 길을 걸어서 오히려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전문 요리사들이 엔터테이너로서의 재질을 뽐내면서 ‘특별한’ 요리들로 눈 호강을 시켜주는 반면, 백씨는 누구나 먹는 평범한 요리들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 이름이 ‘집밥 백선생’이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는 갑자기 뜬 스타가 아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요리 책을 내고 자신의 브랜드를 여럿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가 뜨고나서 그동안 펴냈던 책도 같이 뜨고 있다. 여담이지만, 별 어려움 없이 몇 해 전에 그의 책을 펴낸 출판사들이 대박을 맞았다. 그가 이렇게 뜰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자 요리 시대 개막
원래 대중매체의 요리는 여자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궁중요리 전문가 황혜성 선생과 그 딸들인 한복려, 한복선 등은 물론이고 왕준련, 한정혜, 나중에는 이종애선생 등이 텔레비전과 여성지 요리 면을 담당했다.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여성잡지들이 창간되고, 텔레비전에서도 ‘오늘의 요리’ 같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요리는 현모양처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고,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낸 후, 저녁이 되기 전에 여자들의 요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이후 이 프로그램들은 아침 시간으로 옮겨 더욱 번창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아내들도 집에서 요리로 국가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주부클럽이니 대한부인회의 입김이 커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마이카 시대가 개막되고,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요리 선생보다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데 더 열을 올렸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그 맛집의 요리를 담당하는 ‘셰프’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른바 ‘글로벌시대’를 맞아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셰프들이 대중 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바로 에드워드 권 등이 그 시대의 인물이다.
요리 선생 중에 남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독특한 목소리의 이정섭, 쉬운 한식 요리로 인기를 끌었던 김하진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남자 요리 시대’의 개막을 알린다기보다는 성적 역할이 배제된, 그저 여자 요리 시대의 보조였다. 이정섭 선생의 ‘여성적인 캐릭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제 진짜 남자들의 요리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한다. 남자들이 집에서 요리를 한다. 백종원 등이 그 희망(?)을 북돋웠다. 주 5일 근무, 핵가족의 심화가 이를 부추겼다. 쉬는 날이 늘어나니 남자들이 집에서 무언가를 하게 되었고, 요리도 그 선택지의 하나가 되었다. 서양남자들처럼 작업실을 갖고 무언가를 만들거나 잔디를 깎으며 주말에 아이들과 야구를 할 수 없는 한국 남자들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아파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들 유모차를 끌거나 마트에 가거나 요리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가족의 심화도 영향을 끼쳤다. 부모를 모시지 않고 사는 남자들은 부담없이 부엌에서 앞치마를 둘렀다. 요리 잘하는 남자들을 조망하는 여러 담론도 생성되었다. 요리가 단순히 먹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 등장했다. 요리 잘하는 남자들이 섹시하다는 그 지긋지긋한 섹시 수사도 등장했다.
이제 남자들은 멋지게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성적 매력을 풍겨야 하고, 집에 가서는 오븐부터 켜서 특별요리를 만들어야 하고, 자신의 블로그는 제대로 된 맛집 리뷰를 실어야 하며, 요리사 친구도 하나 사귀어야 하며(프랑스식, 한식, 일식 등 장르별로 하나씩 있으면 더 좋고), 영양사처럼 칼로리 계산도 해야 한다. 사실, 요섹남(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은 결국 남자들이나 여자들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서 소비하는 걸 좋아하는 대중매체가 먼저 떠들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이제 무엇이든 다 잘하면서 요리도 잘하기를 바라는 대상이 된 것이라면 무리한 주장일까.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담론이 생성되면서 남자들도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부담이 노출되었다. 그런데 요리 자체의 흥미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만들어지고 있다. 누군가 내게 “요리의 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지체없이 대꾸한다. “한 시간 안에 어떤 일의 결말이 생기고,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재료를 준비하고, 그것을 요리해서 어떤 놀라운 결과가 나오는 데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나. 게다가 그 비용도 싸며, 결과물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바로 먹어서 미각을 충족시키며 혈당도 올려주기 때문이다. 역사 이전에 원래 남자들은 사냥을 했고, 여자들이 요리했다. 그 후에는 직업적인 선택으로 남자들이 요리를 했으며, 요리를 베푸는 것도 남자들의 권력에 봉사했다(여전히 오래된 가문의 제사에서 제수 장만은 반드시 남자들이 하는 것은 확실한 그 증거다). 이제는 남자들이 흥미와 스스로의 요구로 요리를 한다. 예를 들어, 가루로 된 어떤 물질(밀가루)이 물리(부푸는 것). 화학(겉이 익어서 구수해지는 것), 생물(이스트의 작용)의 통합적인 반응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남자들의 놀이로서 엄청난 반응을 얻어낸다. 바로 빵 만들기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특히 중년 남자들이 요리에 빠지는 것은 더욱 주목할 현상이다. 가부장적인 세대인 그들이 접시를 만지고 불을 다루는 것은 신기할 정도다. 아마도, 이것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인 듯도 하다. 100세 시대 중년 남자들은 이제 놀이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길고, 사회적 활동기는 짧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삶의 질을 바꾸는 중년 남자들의 열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 박찬일 필자는 서교동 ‘로칸다 몽로(夢路)’ 셰프이면서 문학과지성사 편집장이다.
‘글 쓰는 셰프’ 박찬일 편집장은 요리사이자 음식에 관한 칼럼을 쓴다. 훤칠한 외모를 하고도, 그는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쓴다. 저자로 이름을 올린 책도 20여 권에 달한다. 그의 글에는 항상 음식과 문화, 역사, 정치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다.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