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멀지도 않다. 알고 보면 생각난 김에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DMZ가 인접해 있고, 겸재 정선의 화폭에 담긴 폭포가 지금도 쏟아져 내린다. 아득한 옛날 후고구려의 궁예 이야기와 임꺽정의 무대였던 지역임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먼 곳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거리다. 다가갈수록 북녘을 눈앞에 둔 철원평야는 황금 들녘이다. 절벽에 매달린 한탄강 협곡의 주상절리길은 스릴 넘치게 아찔하다. 전쟁을 대비하고 군부대 포사격 훈련장이었던 땅엔 백만 송이가 넘는 평화의 꽃을 피워 올렸다. 이 땅의 최북단 철원의 풍성한 가을이 마냥 아름답다.
마음을 두드리는 평원의 가을
가을을 마음에 담기에 이 땅의 드넓은 평야만 한 곳이 있을까. 누렇게 물든 대자연과 넓은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철원 소이산은 다른 지역보다 가을이 먼저 시작된다. 새벽부터 분주히 달려서 도착한 소이산 주변으로 운무가 가득하다.
소이산은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금방 오를 것 같은 높이지만 제법 가파르다. 20여 분 숨차게 오른 소이산 전망대는 본래 군부대 주둔지였던 곳이다. 지금은 오르막 길목의 평화마루공원에서 공원과 지질 명소를 안내한다. 오래전의 미군 막사와 초소는 녹슨 채 허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근처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인 봉수대오름길로 이어지는 코스도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자마자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에 비로소 가을을 흠뻑 맞는다. 황금빛 너른 들녘의 놀라운 풍광이 전망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산야는 거대하다. 무한한 대지와 하늘, 철원 북쪽의 평강고원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다.
철원평야에 오름처럼 우뚝 솟은 소이산은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는 봉수대가 위치했던 곳이다. 철원의 역사와 함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 너머엔 비무장지대가 있다. 맑은 날에는 북한 주민들의 움직임도 보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DMZ 건너편 철의 삼각지대를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분단이란 현실이 만들어낸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최북단 철원은 가을이 일찍 찾아와 추수도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 9월 초부터 시작해 10월이 되면 조생종 벼들은 일찌감치 수확을 끝낸다. 이미 추수를 한 논과 벼가 익은 상태에 따라 논마다 채도 대비가 다양하다. 끝없이 넓은 패턴의 선과 면의 들판은 한 편의 작품 같다.
철원평야에서 생산되는 오대쌀은 우리에게 유명하다. 무엇보다 용암 대지와 현무암의 풍화로 비옥한 토양을 자랑한다. 청정환경에서 생산되는 쌀의 질과 밥맛을 결정하는 천혜의 기후 조건 또한 으뜸이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패하고 철원평야를 빼앗겨 김일성이 슬퍼했다는 게 괜한 얘기가 아닌 듯하다. 철원오대쌀은 지역 특산물로 국내 최초로 브랜드화한 이름이다.
소이산을 내려오는 길 양쪽으로 아침 이슬을 매달고 있는 가을 들꽃들이 예쁘다. 깊은 산속에서 피어나 유난히 색감이 선명하고 맑다. 쾌청한 숲길에서 절로 힐링된다. 소이산을 내려오니 막 운행이 시작된 모노레일이 지나가고 있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편치 않은 교통 약자라면 소이산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된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왕복 1.8km 거리다.
주변에 노동당사가 있어 가볼 만하다.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였으나 이후 전쟁의 크나큰 상흔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다.
평화의 꽃을 피워 올리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이 이슬뿐일까. 소이산 전망대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철원 고석정 꽃밭에선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강원도 북단에 이토록 넓은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니, 꽃 따라 봄가을로 여행 올 만하다. 입구에서부터 짙은 빨강과 다홍, 노랑으로 화려한 융단처럼 펼쳐진다. 꽃 이름이 촛불맨드라미다. 바로 옆으로 고향 마을에서 본 듯한 백일홍이 제각각의 색깔로 꽃밭 가득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마음껏 즐기는 꽃마당이다.
꽃밭 넓이가 자그마치 23만 1000㎡라고 한다. 축구장 서른 개가 넘는 규모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도 한참 걸린다. 맨드라미를 시작으로 백일홍, 천일홍, 메밀꽃, 해바라기, 장미, 코스모스, 가우라, 버베나, 핑크뮬리, 댑싸리, 억새 등 종류별로 가을꽃이 활짝 피어 눈부시다. 봄 시즌에는 노란 유채꽃이나 수레국화, 안개초 등이 피어난다. 꽃길을 걷다 보면 때론 연못이 나타나고 넓은 잔디광장이 나온다. 어린 왕자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와 풍차가 볼거리를 더하는데, 일몰 풍경과 꽃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편안하게 꽃구경을 하고 싶다면 꽃밭을 한 바퀴 도는 깡통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고석정 꽃밭은 애초에 군부대 포병 훈련장이었다. 과거 Y진지라 불리던 곳이 철원 지역의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변신했다. 포성이 울리던 허허벌판에 평화의 꽃을 피워 올렸다. 철원이 안보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무한히 넓은 꽃밭에서 계절별로 꽃의 물결을 볼 수 있다.
수직 벼랑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주상절리
철원의 주상절리는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위치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분출한 마그마가 서서히 식으면서 현무암이 되었고,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협곡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바위들이 수직의 벼랑을 이룬 비경을 그동안은 배를 타고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찔한 절벽에 선반처럼 매단 3.6km의 잔도(棧道)가 마련되었다. 일명 한탄강 하늘길로 불리는 잔도 덕분에 빼어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까이에서 생생히 만날 수 있다.
트레킹의 출발점은 두 군데다. 순담 게이트와 드르니마을 게이트가 있는데 대부분 순담매표소에서 출발한다. 참고로 드르니는 애초에 양지바른 마을에서 유래되었는데, 궁예가 고려 왕건으로부터 피신할 때 ‘들른’ 마을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전한다. 철원 여행을 하다 보면 유난히 궁예와 연관된 명칭을 자주 본다. ‘말등소’라는 소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길 때 빠졌던 소(沼)로, 말이 너무 힘들어 똥을 쌌다 하여 말똥소라고도 한다. 트레킹을 마치고 시작점으로 다시 갈 경우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현재는 주말에만 운행한다.
잔도는 걷기에 따라 다르지만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나라에 잔도가 몇 군데 있지만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는 그 절정이다. 한탄강 협곡 절벽 20~30m 높이 벼랑길에 매달린 잔도를 걸으면서 깎아지른 수직 절벽의 위용에 놀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반원형 전망대는 아찔함의 최고점이다.
틈틈이 쉼터가 나타나니 잠깐씩 쉬면서 절경에 잠겨봐도 좋다. 쪽빛소쉼터, 맷돌랑쉼터, 돌단풍쉼터, 드르니쉼터 등 이름도 예쁘다. 자주 나타나는 13개의 출렁다리마다 지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김새와 위치 등에 따라 돌개구멍교, 한여울교, 선돌교, 수평절리교, 단층교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잔도 위를 걷다 보면 신나고 짜릿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간이 허공을 걷듯 공포감이 드는 구간도 지나야 하고, 가파른 계단을 몇 번씩 만나게 된다. 나중에는 기진맥진할 수도 있으니 적당한 체력 조절이 필요하다. 감동과 스릴, 억겁이 빚어낸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철원 주상절리길이다.
비극적인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찾아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 여행).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주제로 하는 국내 다크 투어 코스를 소개한다. 현충일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소개된 코스를 따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항쟁의 역사: 일제강점기
코스① 남산 국치의 길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코스②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다.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전쟁의 역사: 한국전쟁
코스① 피란수도 부산 유산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
*하루에 9곳을 전부 들리기 보다는 시간을 오래 두고 다닐 것을 권한다.
코스② DMZ 평화의 길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B 코스
*현재 고성 B 코스는 안전 문제로 한시적 중단 상태다.
【여행 전 확인!】
다크 투어 예절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되,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기
-큰 목소리로 떠들거나 사진 촬영 등 집중하는 분위기를 흩뜨리지 않기
-누군가에게는 생활 터전이므로, 현지 문화와 규범을 존중하기
다크 투어리즘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전 세계적인 핵심 테마는 전쟁과 항쟁(식민지)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아직 생소한 개념인 다크 투어리즘을 어떻게 계획하고 즐길지 모르겠다면, 위의 두 역사를 중심으로 명소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PART1. 항쟁의 역사 : 일제강점기
[1] 남산 국치의 길
남산은 낭만적인 야경이 돋보이는 명소로 유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 통치를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당시의 상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 바로 ‘남산 국치의 길’이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도착하면 ‘거꾸로 세운 동상’이 눈에 띈다. 과거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인정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설치했다. 해방 후 당시의 치욕스러움을 기억하고자 사라진 동상의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어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향해 노기신사와 경성신사 터를 둘러본 뒤에는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 한양공원을 찾는다. 1910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곳으로, 당시 공원 입구에 세웠던 비석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남산을 향해 걷다 보면 옛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일부가 나온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조성한 신사로, 해방 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며 현재 우리가 아는 남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한때 연인과의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로 남산을 찾았다면, 한 번쯤 이러한 역사를 한발 한발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
[코스]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니 이 점 참고하자. 반대 방향으로 돌아봐도 괜찮다.
[2]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하 서대문형무소)은 일제강점기 시절 4만여 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곳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철거 논의도 이뤄졌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기능하기 위해 현재의 역사관 형태로 복원됐다. 서대문형무소 하면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관이 상징적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따스한 봄볕 아래 그림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외관과 비교해 내부는 삭막하고 음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독방과 고문실, 시구문 등을 복원해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히 드러냈다. 당시의 수형기록표나 사진들을 보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모진 세월이 전해져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서대문형무소는 올 한 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시민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방문 당시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이끈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외교’를 주제로 강의가 열렸다. 이날 소개된 독립운동가는 황기환, 이희경, 나용균이었다. 강의에 참여한 한 시민은 “김구나 윤봉길처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처음엔 생소했다. 세 분의 역사를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고,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의를 준비한 김철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는 “과거 서대문형무소는 인왕산, 안산, 무악재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 수감자들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 현저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 방문객들이 등산을 겸해 오시기도 한다. 아울러 실제 수감자들의 후손이나 가족들이 오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임을 꾸려 자체적으로 투어를 즐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교훈여행(다크 투어리즘의 우리말)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분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신념을 느껴보셨으면 한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신 후에는 근처의 독립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등도 찾아도 좋겠다”고 조언했다.
[코스]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로,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PART2. 전쟁의 역사 : 한국전쟁
[1] 피란수도 부산 소막마을
지난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확정됐다. 현재 부산시는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지속 연구와 관리에 힘쓰고 있다. 부산에는 유독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이 눈에 띄는데, 이 또한 피란기의 흔적이다. 한국전쟁 후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몰려든 피란민들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높은 언덕까지 판잣집을 지어 올렸던 것이다.
선별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총 9곳으로, 그중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도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2018,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 지정)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소를 수출하기 위한 검역소와 소막사가 있었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형태의 집들로 변모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한국의 근대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산물인 셈이다.
[코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이다. 하루에 몽땅 급하게 둘러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피란민들의 삶을 음미하며 살펴보길 바란다.
[2] DMZ 평화의 길
시간을 두고 여러 날에 걸쳐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한다면, ‘DMZ 평화의 길’을 추천한다. 도보 여행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테마 코스 중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통일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조성한 길이다.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꼬박 1년 뒤인 2019년 4월 27일 강원도 고성 구간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이로써 일반 시민들도 DMZ(비무장지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철원, 파주, 양구 등 구간이 속속 개방되며 현재 총 11개 코스가 마련됐다. 전 구간 예약탐방제(두루누비 사이트 이용)로 운영되며, 올해는 대체로 4월 하순부터 예약을 시작해 11월 전후로 마감될 예정이다.(여름 혹서기 및 장마 기간 임시중단)
[코스]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코스, 고성 B코스 *현재 고성B코스는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Interview]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어두운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길”
최근 유행인 ‘다크 투어리즘’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해온 이가 있다. 2017년 출간 도서 ‘다크투어’의 저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다. 서울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곳곳을 여행하다 다크 투어리즘에 눈을 떴다. 현재 그는 역사문화 여행 모임 ‘컬처클럽’을 7년째 운영 중이다. 모임을 통해 국내외를 누비며 직접 도보여행 길도 발굴한다. 저서에 소개된 '대한 제국의 길', '서대문의 길', '용산의 길' 등도 직접 개발한 다크 투어리즘 루트다. 그런 김 대표를 통해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봤다.
Q. 중장년들에게 다크 투어리즘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역사가가 됩니다. 각자 역사의 증인이고, 역사평론가가 되며, 아마추어 역사가가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든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역사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관광을 하면 화려한 곳, 훌륭한 곳, 멋진 곳을 가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하죠. 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과거의 어두운 곳을 찾아 역사의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dark tour)도 필요합니다. 이런 곳에서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역사의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실패에서 얻는 교훈, 재발방지 다짐을 하게 되는 거죠.
Q. 다크 투어리즘 현장에서 유념해야 할 에티켓이 있을까요?
A.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면 자신의 단견으로 이해해버리거나 현지에서 가볍게 말하기 쉽니다. 즉 공부가 필요하죠.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도 만날 수 있는데 역사를 모르면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겸허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큰 목소리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Q. 해외와 비교해 국내 다크 투어리즘이 지니는 특징이 있나요?
A. 예전에는 한국에서 다크 투어리즘 장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가면 안내판이 없고, 유적, 유물이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았지요. 근래에는 다크 투어리즘 관련 문화 유적을 많이 발굴하고, 기념관, 유적지, 친절한 안내판, 간단한 표지석 등을 두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현재는 외국과 수준이 비슷해졌습니다. 다만 몇몇 장소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어둡게 만들어져 있어 과도한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Q.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A. 다크 투어를 할 때에는 진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열 군데, 스무 군데 리스트를 만들어 많이 다녀왔다한들 큰 의미는 없습니다. 현장을 제대로 알려는 호기심, 진정성이 바탕이지요. 다크 투어리즘이 좋다고 너무 연달아 가는 것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너무 몰입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여행지와 섞어서 다니길 권합니다.
※ 자료 제공 및 도움말 한국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김주영, 그는 청송의 기적이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장터에 둘 수 없다며 결연히 거처를 옮겼지만, 주영의 어머니는 장터 한복판에 아들을 뒀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학교 부근에 묶어두었지만, 주영의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 온종일 장터를 맴돌아도 그냥 내버려뒀다. 그리하여 맹자는 당대에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작가가 되지 못했고, 주영은 장터를 샅샅이 뒤진 덕에 대한민국 최고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쯤 되면 맹모삼천지교가 무색하다. 적어도 주영에겐. 그러기에 기적이라는 것이다. 장터와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그는 지금도 돌아다니는 중이다.
청송의 기적, 보부상 문학을 낳다
“보이는 것은 머리 위 하늘과 사방의 산뿐이었죠. 마치 항아리 속에 갇혀서 세상을 보는 것 같았어요. 하루에 한두 번 완행버스가 다녔는데 버스 안의 사람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차창 밖으로 던져주는 사과 껍질을 받아먹으며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사는 걸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넋 놓고 바라보았지요. 그러다 장이 서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는 거죠. 왁자지껄 흥정에, 욕설에, 국밥에, 막걸리에…. 장날엔 학교는 뒷전이고 장터에 눌어붙어 있었지요. 제게는 장터가 학교였어요.”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청송의 첩첩산중 외딴 마을. 1939년생인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도 그런 가난이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도시락 한 번 못 싸 다녔을 뿐 아니라 교과서도 없이 잡기장 하나 들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저 바퀴벌레처럼 왔다 갔다’ 했다. 푸른 소나무의 고장, 그래서 ‘청송’이지만 정작 그는 푸른 소나무를 그려본 적이 없다. 늘 흰 소나무를 그렸다. 왜냐하면 크레파스를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정사정해서 친구들한테 빌릴 수 있는 색은 오색 중에서 제일 안 쓰는 흰색이었으니까.
그는 지금도 옥수수, 감자는 먹지 않는다. 수제비, 칼국수도 질리고 물렸다. 그의 소설 ‘잘 가요, 엄마’에는 반죽부터 썰기까지 칼국수 만드는 과정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어머니가 칼국수 만드는 걸 하도 많이 봐서 그렇단다. 그가 시인이 되겠다고 하자 모친 왈 “지금까지 굶은 것으로도 한이 덜 찼냐?”였다니. 그래서 그랬을까,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나온 그는 시 빼고는 다 쓰는 작가다. 운문 말고 산문은 소설부터 동화까지 가리지 않고 쓴다.
감수성 예민한 산골 소년의 외로움과 소외감, 육체적 허기와 정서적 따돌림을 운명처럼 보듬으며 그를 키운 8할은 장터였다. 소년 주영은 작가로서의 토양이 되어준 장터 속으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고, 성년이 되어서는 팔도의 장터를 마당마냥 누볐다. 길 위에서 먹고, 길 위에서 자고, 길 위에서 글을 썼다. 그에게는 길을 가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동일한 일이며, 길 위의 삶이 그의 인생의 메타포가 되었다.
“결혼해서도 한 달에 집에 가는 날이 열흘이나 됐을까요? 습관이 돼서 일 없이 여관에서 잠을 잘 때도 있었지요. 하하.”
토속어 풍미 짙은 ‘객주’와 객주문학관
2013년, 34년 만에 대망의 10권으로 완간된 ‘객주’는 장돌뱅이들의 행로를 따라 저잣거리를 치열하게 답사하며 1878~1885년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애환과 시대상을 담은 소설이다.
그는 보부상 작가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합친 말이다. 보상은 보자기나 걸망에 걸머지는 봇짐장수를, 부상은 등이나 지게에 지고 다니는 등짐장수를 가리킨다. 1979년 6월부터 5년간 총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한 ‘객주’는 김주영이 대학 노트를 봇짐으로 걸머지고, 카메라를 등짐에 진 채 ‘팔고 다닌 물건’이다. ‘객주’를 쓰기 위해 보부상의 발자취를 따라 200개에 달하는 시골 장터를 누볐다. 글은 길에서 써서 길에서 송고했다. 분량을 줄이려고 펜촉을 뒤집어 최대한 작은 글씨로 썼다. 말 그대로 깨알 같은 크기로 대학 노트 한 쪽에 200자 원고지 35매를 빼곡이 채웠다.
“처음에는 장터를 묘사하는 중편소설 정도를 써보고 싶었는데 남쪽 땅끝에서 휴전선 턱밑까지 전국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다 보니 그만 대하소설이 되어버렸어요. 보부상에 대한 자료도 없고, 역사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어서 어디 가서 물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지요. 조선 후기 상업사에 관한 논문만 100편 쯤 읽고 관련 서적도 200권 넘게 읽었지요.”
‘객주’의 작품 가치는 조선 천지의 토속어가 총망라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빛난다. 방방곡곡 장터와 산골을 누비며 옛말을 수집하고, 여기에 작가적 상상력과 고증이 버무려져 독특한 풍미의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객주’에는 중노미(음식점, 여관 따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남자), 지청구(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는 말), 반거충이(무엇을 배우다가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 매나니(무슨 일을 할 때 아무 도구도 가지지 아니하고 맨손뿐인 것), 복장거리(마음이 쓰리고 아프도록 걱정스럽거나 성가신 일), 새물내(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 등 국어사전에도 미처 오르지 못한 토속어들이 활어처럼 튀어 오른다.
그가 주축이 되었던 보리회(대구 경북 출신의 문인 모임, 보리문둥이란 뜻)에서 함께 활동한 언론인이자 소설가 이상우 씨는 김 작가에 대해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성정을 가졌죠. 술도 엄청나게 좋아해서 마셨다 하면 같은 회원이었던 이문열, 김원일 등과 함께 2, 3일간 쉬지 않고 마셨어요. 기질이 그렇다 보니 일생을 걸고 끈덕지게 민속 언어를 발굴, 수집하고 다닐 수 있었을 겁니다. 걸어 다니는 민속 언어 사전이라고 할 만큼 탁월하고 독보적인 존재입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2014년, 고향 청송에 그의 문학 세계를 오롯이 보여주는 3층 규모의 객주문학관이 개관했다. 전국의 50여 개 문학관 가운데 객주문학관은 알찬 전시실과 옹골진 자료를 갖춘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향이 그에게, 그가 고향에게 가장 잘한 일이다. 객주문학관은 그에게 또 다른 장터다. 여느 문학관과 달리 작가가 관람객들을 직접 맞이하고, 함께 어울려 떠들썩하게 대화 마당을 펼친다. 어릴 때는 벗어나고만 싶었던 고향이 이제는 그의 가장 친근한 벗이 된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저의 작가적 영혼을 낳고 길러준 곳이니까요.” 문학관과 함께 그의 생가 및 주막, 전통시장 등을 복원하여 보부상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 마을도 조성되어 있다.
어머니, 아 어머니!
김주영의 작품은 ‘객주’를 비롯해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멸치’, ‘빈집’, ‘아라리 난장’ 등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다. 1971년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200여 권에 달하는 작품으로 유주현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그의 작가적 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가난, 외톨이, 떠돌이, 약자 의식 등을 들 수 있겠으나, 가장 밑바닥에는 어머니가 원형처럼 자리하고 있다. 김주영 문학의 원천이라 할.
“참 고생 많이 하셨지요. 아니 고생하셨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혹독하고 가혹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당시에는 흠이라 할 재혼까지 하셨지만 여전히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지요. 96세에 돌아가신 후 호적 정리를 하다 보니 두 번의 혼인 모두 신고가 되어 있지 않더라고요. 가족 내의 위치조차 없었던 분이니 그 한평생의 신산함이 어떠셨겠어요? 글도 읽지 못하고 숫자도 구분 못 하신 분이었어요. 저는 70 평생 어머니를 봐왔지만 정작 어머니를 몰랐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유독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앞서 언급한 ‘잘 가요, 엄마’는 불효한 자신의 참회록이라고. 한 달이면 쓸 수 있는 분량임에도 일 년 반이나 걸려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어머니를 소환해내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의미일 터. 그의 가장 큰 불효는 너무 늦게 어머니를 발견했다는 것이니, 어머니를 등장시킨 소설은 어느새 가족소설로, 가족소설은 성장소설로 잇대어졌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행위는 거짓이 개입되지 않은 반성문 같은 거예요. 말하자면 자기 인생의 변형이 소설인 거죠. 특히 성장소설은 비록 좁고 제한적인 경험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유년 시절의 내밀한 시선으로 더듬어나간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거지요. 서로 미워하는 아버지와 외삼촌 사이에서 집 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 ‘멸치’는 저의 대표적 성장소설입니다.”
소설은 작가의 감수성을 타고 흐른다. 그는 삶에서 감수성을 잃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나이 들면 몸도 뻣뻣해지고, 가슴도 뻣뻣해지고, 감수성도 무뎌지죠. 홍시처럼 말랑하던 살결이 딱딱하게 굳는 것과 같고, 기름 떨어진 차와 같아요. 차에 기름이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가잖아요. 감수성을 유지하려면 연애를 해야 해요. 반드시 이성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나무 한 그루를 봐도 애정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사랑이 뭡니까. 애틋하고 뿌듯한 감정 아닙니까. 연애를 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그 감정을 품는 것이니, 많이 보고 많이 느낄 수 있어야 글이 나옵니다.”
그래서일까. 객주문학관에는 소설 도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평생 그가 모은 소설이 빼곡이 서가를 메우며 방문객들의 메마른 감수성을 적셔주고, 동료 문인들의 마르지 않는 감수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저는 단편소설을 한 편 써도 반드시 배경이 되는 곳을 직접 가봅니다. 1987년에 나온 ‘쇠둘레를 찾아서’를 쓸 때도 배경이 된 철원을 세 번이나 갔지요. 그 고장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말씨는 어떠한지 철저히 조사하고 답사합니다. 제게 문학은 사실을 기초로 하여 상상력의 집을 짓는 것이니까요. 31세에 데뷔해 83세인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글을 썼어요. 제가 쓴 글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죠. 그만큼 많이 다녔다는 뜻도 되지요. 요즘은 그간 쓴 제 작품 모으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설 한두 편을 더 쓰고 남은 시간은 제 삶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는 작가 인생 50여 년을 결산하며 지난 5월, 신작 장편소설 ‘광덕산 딱새 죽이기’를 냈다. 2017년에 출간한 ‘뜻밖의 생’ 이후 4년 만이다. 시간에 곰삭아 웅숭깊은 성찰의 샘에서 길어 올린 신작은, 전통을 지키며 자연과 함께 삶을 일궈나가는 한 마을에 문명과 자본이 밀어닥치면서 마찰과 갈등을 빚는 내용이다. 김 작가 특유의 입체적인 인물 설정과 입심 가득한 해학적 문장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울고 싶을 땐 오히려 웃는 남자
그에게 문학은 길이요, 생명이다. 그의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문학을 길 위에서 떠돌며 만났기에.
“보부상이 그랬듯 우리 모두는 뜨내기이자 떠돌이로 오늘이란 시간을 살아갑니다. 떠도는 인생은 세파에 시달리며 때론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지요. 제가 80세에 쓴 ‘뜻밖의 생’은 바보가 주인공이에요. 바보는 이리 치이고 저리 당하지만 긍정심을 잃지 않지요.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수용하는 절대 긍정성, 산다는 건 결국 그런 거지요.”
한 시대를 오롯이 관통해온 대작가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표상은 어떨까.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내면과 관계는 피폐한 세대를 향한 따스하지만 따끔한 일침이 있을까.
“저는 영락없는 외톨이에 철저한 약자였어요. 그러나 그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내면적 힘도 동시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제게는 글이 그 힘이었지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동력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너무 쉽게 좌절하고 스스로를 내던져버리지만 않는다면. 돈이라는 것도 그래요. 돈은 매우 중요하지만, 돈보다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10가지라면, 저는 20가지쯤 나열할 수 있어요.”
노령의 작가에게는 강인한 삶의 신념이 있다. 모든 고통과 아픔에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 그것이다. 고통, 아픔, 슬픔, 사랑도 모두 내 것이니 비빔밥처럼 한데 섞어 견디고 인내하는 것. 그는 글을 통해 인생의 파고를 넘었지만, 누구에게나 잠재된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그는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울고 싶을 땐 오히려 웃는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잘 웃는다. 80 평생 울고 싶은 날이 더 많았다는 뜻이리라.
외출이나 퇴근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 순간,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이 발목을 잡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떠나기엔 체력과 힘에 부쳐서,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등등.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외출이나 퇴근 후 지친 시니어의 몸과 마음을 달래줄, 집에서도 여행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매일 보는 창밖 풍경 지겹다면, 윈도우 스왑(window swap)
‘윈도우 스왑’(window swap)은 지구촌 곳곳에 사는 누군가의 창문 밖 풍경을 약 5~10분간 영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사이트다. 지난해 여름 개설된 이 사이트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 부부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지인이 매일 보는 창밖 풍경이 지겹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듣고 고안해냈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 메인 페이지 내 ‘세계 어딘가에서 새 창 열기’ 버튼을 누르면 랜덤으로 세계 곳곳의 창문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창을 새로고침하거나 버튼을 누르면 다른 나라, 새로운 지역의 창밖을 감상할 수 있다. 컴퓨터나 모바일 둘 다 접속할 수 있으며, 큰 화면에 띄워놓고 소리까지 켠다면 더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세계 각지의 창문 밖 풍경은 사이트 전용 이메일로 보내진 영상들로 채워진다. 영상 좌측 상단에 보낸 이의 이름이 나와 있고, 우측 상단에는 나라와 영상 위치가 소개된다.
미국과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서 보낸 해질녘 노을이 비치는 바닷가, 불 켜진 도심의 야경, 정원에서 낮잠을 자는 반려동물,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영상이 코로나19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시원한 계곡과 기차 소리 그립다면…한국관광공사 힐링사운드 여행 ASMR
화면 보는 것조차 지친다면 눈을 감고 귀를 활짝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서는 힐링 귀캉스를 위한 여행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는 흠뻑 노는 물놀이 여행, 맑고 푸른 산 여행, 체험이 있는 로컬 여행 등 세 종류 12가지의 소리로 구성돼 있다. 거제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의 파도 소리, 평창 월정사의 은은한 풍경 소리, 삼척 하이원추추파크의 폐역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소리, 남해 상상양떼목장의 양떼 우는 소리 등 클릭 한 번으로 산과 바다, 초원과 계곡을 오갈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양한 여행지의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편하게 힐링하고픈 시니어에게 안성맞춤이다.
여름의 막바지인 지금 이 순간 겨울의 정취가 그리울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ASMR 콘텐츠도 있다. ‘겨울을 느껴봐! 힐링사운드 여행’에서는 철원 한탄강에 부는 매서운 강바람 소리, 충주 목계솔밭에서 모닥불 타는 소리, 포천 산정호수에서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얼음 스케이트 타는 소리 등 시니어의 향수를 자극할 다양한 소리가 준비돼 있다. 컴퓨터와 모바일 둘 다 접속할 수 있다. 편하게 누워 그리운 곳의 소리를 ASMR로 즐겨보자.
대세는 우주여행? 방구석에서 떠나는 우주여행 ‘Space Videos’
색다른 힐링여행을 원한다면 아예 지구 밖으로 떠나보자. 직접 떠나는 우주여행은 아직 요원하지만 유튜브 채널 ‘우주영상(Space Videos)’과 함께라면 우주여행을 떠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1200여 개의 우주 동영상을 보유한 이 채널에서는 우주정거장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한 지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송출하는 실시간 영상을 24시간 내내 끊김 없이 제공한다.
이 외에도 알프스 산맥, 안데스 산지 등 세계 각지의 고원지대를 우주에서 바라본 모습, 초고화질로 즐기는 극지방의 오로라, 날짜별로 달라지는 달의 모습을 담은 영상 등 다양한 영상이 업로드 돼 있다.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시니어라면 현재 우주정거장이 지구의 어느 곳을 지나고 있는지, 검은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감상하는 재미에 빠질 수 있다. 어두운 방안에서 영상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실제로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강원 철원군 화지리 화지마을 할머니들의 따뜻한 시선을 그림으로 담아낸 전시 ‘화지마을 이야기꽃’이 20일부터 31일까지 12일 동안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갤러리움에서 열린다.
‘화지마을 이야기꽃’은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 없는 평균 나이 67세 할머니들이 세월의 연륜과 지혜만으로 꽃피운 그림들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는 이종선, 김순옥, 박정례, 이진숙, 이금재, 박정희 할머니 등 총 6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철원군에서 추진하는 ‘피어나는 화지마을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 화지마을 재생센터에서 열린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수업에 참여했다. 그동안 살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표현할 기회가 없었던 6명의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화려한 그림 재료와 물감을 만졌고, 어색한 기색도 잠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선과 색으로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그 결과 매주 놀라운 그림이 쏟아졌다. 그림 그리기 수업의 강사로 참여한 배미정 작가는 수업을 진행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통찰력과 솔직한 표현력에 감탄해 SNS에 사진을 올렸다. 해당 사진들은 예술 관계자 등 평단의 눈길을 끌었고, 총 68점의 그림이 마침내 헤이리갤러리움에 작품으로 걸리게 되었다.
여섯 작가의 정겹고 따뜻한 그림은 오늘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찰해야 하는지 색다른 관점으로 제시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로하스 연천이라고도 불린다. DMZ가 인접한 청정지역답게 때묻지 않은 가을 햇살이 바삭하다. 그 햇살에 덮인 자연은 렌즈에 필터를 한 겹 더 씌운 듯 깊이 있다. 연천은 구석기부터 고구려시대까지의 성(城)을 비롯한 유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순수한 자연을 누리며 오랜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가능하다. 경기 북부 연천의 가을 들녘, 마음이 풍성해지는 외출이다.
연천 지역에서 고구려 문화유산 흔적은 일상의 풍경이다. 자동차를 타고 연천의 들길을 달리다 보면 나지막한 민둥산처럼 보이는 성이 나타난다.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이다. 연천을 대표하는 고구려 문화유적이다. 임진강변의 높은 절벽 위에 흙을 쌓아 다지고 돌을 높이 올려 성벽을 이룬 천혜의 요새로서 지금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주상절리, 적의 방어기지이자 물자 이동의 상업적 지역이었던 고랑포구, 한탄강과 장진천이 만나는 은대리성의 숲 등 연천은 민통선과 가까운 전방 도시이지만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함께하는 호로고루성
꽃철마다 붐비는 곳이 있듯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물결을 이룬 해바라기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온다. 호로고루성은 독특한 이름만으로도 솔깃한데 언제부터인가 고구려 성벽 아래 펼쳐진 해바라기 밭으로 사람들이 찾아든다. 이제는 북새통의 절정기가 지나고 한가하다. 이미 노란 꽃잎을 떨구고 씨를 내민 해바라기 밭 건너편으로 우뚝 솟아오른 호로고루성, 그 주변으로 한가롭게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린다.
성 위에 올라서 보면 낮게 흐르는 임진강과 연천의 산천이 따스한 가을볕에 덮여 있다. 흙과 돌을 이용해 토성과 석성의 이점을 결합한 축성술이 돋보이는 호로고루는 그 옛날 개성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연천과 개성 간의 거리는 30km 정도. 강 건너편의 개성이 보일 듯 말 듯하다. 든든한 주상절리를 믿고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은 물이 깊지 않아서 예로부터 육상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강을 옆에 둔 호로고루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바라기 밭이 계절을 물씬 전한다. *사적 제467호
고랑포구의 추억
연천은 산을 돌아 들길과 강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호로고루성 들판을 건너 바로 근처의 고랑포구는 한국전쟁 이전엔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다. 전쟁 이후 그 명성은 사라졌지만 지난해 '고랑포구 역사공원'을 개관하면서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역사관 실내엔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의 옛 풍경을 재현해놓았고 체험실과 첨단의 콘텐츠를 설치 전시해서 찾아드는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역사공원 앞마당에 들어서면 ‘레클리스’(Reckless)란 이름의 군마 동상이 눈길을 끈다. 그 앞으로 멀리 임진강변의 고랑포구를 바라보며 강물 따라 흘러간 역사를 그려본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무덤
고랑포구 역사관에 왔으니 바로 옆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 경순왕릉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경주나 개성 어디쯤에 있을 듯한 신라의 왕 무덤이 연천에? 하면서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위탁하고 개성에서 여생을 마친 후 경주로 운구되는 중 고려 조정에서 “왕의 구(軀)는 백 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여 이곳 고랑포리 언덕에 장례를 모셨다고 한다. 민란이 염려되어 임진강도 못 건너고 연천에 머물게 된 비운의 왕릉이다. 경순왕릉은 소박하고 석물의 배치나 종류도 간소하다. 조선시대의 여느 왕릉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두른 산이 있어 제법 위엄 있다. 잠시 넓은 잔디밭과 숲 그늘을 거닐어본다. 역사 저편의 사연을 안고 연천 땅에 묻힌 경순왕의 고뇌를 경건하게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입구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다.
고려 왕조의 역사가 깃든 숭의전(崇義殿)을 아시나요
고려 왕조의 위패가 봉안된 숭의전, 입구의 태조 왕건이 마셨다는 약수터 어수정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홍살문을 지나 5분쯤 천천히 길을 오른다. 마치 오래된 옛 길을 걷는 듯하다. 그 숲길에 간간이 밤이나 도토리가 툭툭 떨어져 떼구루루 구른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고려의 부흥을 이끈 옛 고려 왕조를 향한 충절이 깃든 곳으로 태조 왕건의 위패와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입구의 담장과 기와에서 자라는 푸른 이끼가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고려 왕실을 지켜준 550년 수령의 느티나무 숲 절벽 아래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우거진 숲 사이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사 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힐링 숲, 그 아래 고즈넉하게 흐르는 임진강, 온통 정적만 감도는 경내 한쪽에서는 보도자료 영상을 촬영하는 팀이 보이기도 한다. 고요한 태곳적 숲의 사적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가을볕에 마음이 여유롭다. *평화누리길 1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언덕 강벽 위의 옛 진루, 사적 제468호 당포성
숭의전을 내려와 5분쯤 달리면 삼각형 절벽의 땅 위에 쌓은 당포성이 가을바람 속에 있다. 마치 호로고루성과 쌍둥이 성인 듯 흡사하다. 성의 생김새나 임진강을 옆에 두고 있는 주변 지형도 비슷하다. 나루 위에는 동벽과 전망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당개나루로 불렸다는 옛 포구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시대의 성(城)이 연천에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주상절리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진 주상절리라는 자연적 성벽 위로 흙과 돌로 쌓아 올려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것이다. 성 위로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오롯하게 서 있다. 역사의 한 장면인 듯 바라보았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아름다움, 주상절리
멀리서 바라만 봐도 주상절리를 품은 임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평화롭기만 하다. 화산활동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아 생겨난 기하학적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 그곳엔 긴 시간의 이야기가 켜켜이 스미어 있을 것이다. 천년 요새였던 그 강가에 강태공 한 명 세월을 낚으며 앉아 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은 마냥 다디달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듯 잡초와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주상절리 둑방길도 한적하다.
휴전선과 가까운 민통선 북방지역답게 연천은 철원, 포천 등과 함께 흔히들 말하는 군 전방지역이다. 그 들길과 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삼엄한 전방 군부대를 군데군데 지나치게 된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은 철조망 철책 따라 줄지어 걷는 군부대 장병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이 땅 최북단의 군부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씩씩한 아들들을 한참 바라봤다. 고마운 청춘들.
DMZ와 인접해 있는 연천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임진강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풍부한 수자원과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한 생물 자원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구역이다. 또한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석기인들의 생활 흔적이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세계 고고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인정하는 지역이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 한탄강 하류에 위치한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재인폭포(才人瀑布)의 장관도 빠뜨릴 수 없다.
연천의 하루, 심신이 편안하다. 그 옛날 우리의 오천년 시간 속에서 고구려가 써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어낸 시간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연천의 시골 인심 한 보따리를 차에 실었다. 민통선 청정지역답게 맑은 물,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각종 채소와 과일 등 다양한 농산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그 들녘엔 지금 가을이 풍성하다.
◇영화처럼 맛보기
기왕 연천에 갔으면 북쪽으로 조금 더 달려 군부대 앞의 망향비빔국수를 맛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이 국숫집은 연천에서 군생활을 했던 병사들이라면 거의가 다녀간 집이다. 그런 추억 때문에 일부러 먼 길 달려가 먹는 국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 '강철비'에서 대한민국 외교안보수석과 북한 최정예 요원으로 분한 배우 곽도원과 정우성이 국수를 후루룩 맛있게 먹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국수 위에 올린 상추 한 잎은 '망향의 시그니처'로 불린다.
옛사람들은 유장한 강이기도, 깊은 계곡이기도,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폭포이기도, 때론 굽이치는 파도이기도 한, 그 물을 보면서도 그 뿌리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즉 “물을 보는 데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봐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는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만사의 근본을 깨치려 애썼다지요. 깊어가는 가을 수천만 년 동안 강물에 쓸려 반들반들한 돌 위에 배 깔고 턱 괸 채 날로 짙푸르러지는 한탄강을 보며,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 강의 시원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과 함경남도 안변 사이 해발 590m의 추가령에서 발원한 한탄강. 현무암 평원이 갈라지며 만들어진 수십 m 높이의 협곡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데 총연장 140km 가운데 60km를 북녘에서 흐릅니다. 이어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연천 일대 80km를 굽이친 뒤 임진강과 합류합니다. 깎아지른 주상절리와 검은 현무암, 짙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한탄강에 가을이 오면 우리의 가을꽃들이 피어나 그 어떤 문인화도 흉내 내지 못할 무위자연의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포천구절초, 산국, 개미취, 패랭이꽃, 투구꽃, 서덜취, 용담, 배초향, 미역취, 고마리, 가시여뀌, 강부추 등등.
특히 한반도 내륙의 유일한 ‘화산하천’으로 유난히 계곡이 깊고 휘돌아가는 곡선이 날카로운 한탄강에는 현무암뿐 아니라 유연하고 부드러운 화강암 바위가 많기로 유명한데, 억겁의 세월 이리저리 휘도는 물살에 마모되고 둥글어진 거대한 화강암 바위 틈새마다 해마다 4월 새로 돋았다가 11월이면 스러지는 가냘픈 풀꽃이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강변에서 자란다고 강부추라 불리는 여러해살이풀인데, 불과 달포 전만 해도 장맛비와 폭우에 전초가 잠겼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내닫는 급류에 수없이 이리저리 휩쓸렸을 텐데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보랏빛 꽃을 화사하게 피우니 참으로 대견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는산부추에서 한라부추까지 국내에서 자라는 27개 부추속 식물의 하나인데, 파 뿌리 모양의 비늘줄기를 땅속에 묻고 그 위로 쇠젓가락 정도 굵기의 꽃대를 20~50cm가량 곧추세운 뒤 9~10월 그 끝에 탁구공 모양의 자주색, 또는 드물게 흰색 꽃을 피웁니다. 이른바 산형 꽃차례라 불리는 둥근 꽃차례에는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80개까지 꽃이 달립니다. 잎은 길이 10~40cm, 폭은 꽃대처럼 가늘어 2㎜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2~5개가 돌려나는 잎의 단면이 원통형이거나 뒷면이 다소 눌린 형태이며, 속은 비었으며 잎줄기는 없습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나오는 설명의 전부다. 2003년 최혁재 충북대학교 교수 등이 한탄강 강변에서 자라는 종이 지금까지 중국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Allium longistylum Baker로서, 기존에 명명했던 실부추나 한라부추와는 뚜렷이 구별된다며 강부추란 국명을 신청하는 논문을 발표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강부추는 이후 강원도 화천 북한강과 경기도 파주 임진강 주변은 물론, 충북 등지에서도 생육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호인들이 강부추를 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은 강원도 철원의 직탕폭포와 송대소 등 한탄강 일대 명승지다.
겨우내 기다려 딱 하룻밤 품에 안겼던 하얀 세상, 그 하얀 산에서 내려오자 그리워지기 시작해 지난 열흘간 몸살을 앓았다.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하나?’
겨울이 멀어져 갈수록 크고 따스하게 밀려드는 그리움, 마음의 고향 설산이 그려내는 ‘산 그리메’였다. 기어코 다시 배낭을 꾸려 흥얼거리며 그곳으로 갔다.
열흘 만에 가는 길은 변함 없는데 눈은 다 없어졌다. 녀석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땅속으로 숨었나? 아무리 살펴도 차창 밖 산 속엔 눈이 없다.
도성고개(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와 일동면 사직리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이어지는 고개)를 올라 강씨봉(가평군 북면 적목리)을 거쳐 청계산까지로 그려두었던 당초의 산행계획을 포기했다. 눈이 없다면··· 아쉬움이나 달래고자 회목현을 생각하며 광덕고개를 찾았으나 새벽까지 내린 비가 이곳엔 진눈깨비였는지 도로 차단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눈 산행을 포기하기로 하고 방향을 돌려 사창리를 거쳐 도마치 고개로 올라, 그야말로 눈요기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지나가는 몇 개의 사이클 라이딩 팀을 만났다. 오늘도 젊은이들이 광덕고개, 그리고 사창리에서 도마치 넘어 가평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힘든 코스를 라이딩한다. “파이팅!” 응원을 보낸다.
도마치 도로 정상에 오르니 엄청난 광경이 선물처럼 펼쳐졌다. 남쪽을 바라보는 내게 등(북면)을 내어주는 산.
너무 멋지다. 아, 하얀 산! 열흘 동안 생각하던 하얀 산이 거기 있었다. 왼쪽 화악산(1468m), 가운데 명지산(1267m), 오른쪽 국망봉(1168m)이 하얀 이불을 걷지 않고 누워있다. “야호!” 눈이 그친 능선에는 순백의 영혼이 춤춘다. 소담스럽게 내린 눈을 이고 불그레 석양이 물드는 산길을 걷는 마음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설화가 가득 핀 등산로를 따라 걷는 기분은 삭막한 잿빛 겨울 산행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용소폭포에서 무주채폭포를 거쳐 러셀은 커녕 길 흔적도 없는 국망봉 오름길엔 낡은 표지 리본만이 길을 겨우 이어준다. 비록 이정표는 2.7㎞이었으나 걸으면서 다음 발 디딤이 손에 닿을 만큼의 급경사와 무릎을 덮는 눈 사면을 두 시간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거리를 세 시간을 올라 정상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정상의 조망은 지난번 도마봉보다 더 좋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가르는 화악산과 독립 능선 명지산 줄기를 제외하면 한북정맥 최고봉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힘이 없다. 대기가 좀 더 깨끗했더라면 지난번 일몰만큼 멋진 연출이 있었을 텐데···.
텐트를 펼치고 360도 지형, 특히 휴전선 너머 평강고원 그리고 빛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젊음을 사르던 철원평야를 바라보며 기억의 파편들을 불러 모으는 여유를 즐기는데 또 한 사람 백패커(주로 백팩에 등산 장비나 식량을 넣고 다니며 자유롭게 산야를 거니는 사람)가 올라온다.
그가 “조용히 쉬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지나온 봉우리로 다시 갈게요.” 하면서 주춤한다. 고운 마음씨를 가진 40대 후반의 사나이다. “젊은이와 함께하면 나로선 더 좋을 것 같네요. 괜찮다면 옆에 자리를 잡으세요!” 오히려 내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렇게 우리는 술잔을 곁들여 산을 이야기하며 함께 밤을 건넜다.
일출을 안개 속에서 만나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드는 특별한 아침을 맞았다. 한결 따뜻해진 3월의 첫날 행복 가득한 여유를 즐기며 패킹과 뒷정리를 한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다른 내림 길을 밟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니 조심하라고 그는 주의를 줬지만, 눈이 많아 오히려 쉽게 거리가 줄어들었다. 겨울을 풀어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경쾌한 리듬을 타고 들린다.
“정령님 또 올게요! 어쩜 여름이 오기 전에 찾아뵐게요!“
산의 맑은 영혼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각 지하철역에서 자기 고장을 소개하고 특산품을 알리는 광고ㆍ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의 지하철을 순회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광고 실태를 조사해 보았다. 서울역, 충무로역, 동대문역, 신도림역, 영등포역, 낙성대역 등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광고가 많이 눈에 띄었다.
서울역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다니는 역으로 서울 교통의 중심지인 만큼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집중적으로 광고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전광역시는 광역시 단위로 광고를 하고 있다. 4차 혁명 특별시로 대전에 투자를 요청하는 광고와 2022년 세계지방조직연합회(UCLG) 행사가 대전에서 열린다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경상북도 영주시는 영주 사과, 영주 한우, 풍기 인삼 등 ‘영주 3홍’을 중점적으로 광고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는 경산 대추와 경산시 남산면 반곡지릉의 사진찍기 명소 등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는 영천시 별빛촌 장터의 소고기, 포도, 포도주를 광고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는 울진군 관내 죽변항 수산물 축제를 소개하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는 진주 시간여행을 추천하면서 수목원, 진양호 노을, 유등 마당, 진주냉면 등을 광고하고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걷고 싶은 곳 양산 통도사와 무풍 한송길을 소개하고 있다.
충무로역은 서울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다니는 역으로 여기는 특별하게 비디오 영상으로 광고 한다. 경기도 평택시 농특산물 통합브랜드와 대여주상복합아파트를 광고하고 있다.
신도림역은 서울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다니는 역으로 경기도 연천군이 연천 쌀과 연천 율무를 소개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는 수안보 여행을 광고하면서 수안보 온천이 일본 온천보다 좋다고 홍보하고 있다.
동대문역은 서울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다니는 역으로 강원도 철원군에서는 한탄강 얼음트래킹을 소개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는 수안보 온천에 대하여 신도림역과 함께 동대문역에서도 광고하고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자기 지역의 무공해 쌀과 맛이 좋다는 고구마를 소개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는 나무에서 뽑아내는 풍기 인견을 동양대학교와 풍기인견명품화 사업단이 공동으로 광고하고 있다.
경상북도 귀어귀촌지원센타에서는 경북 동해바다를 광고하고 있다.
영등포역은 지하철 1호선과 새마을호와 KTX가 다니는 역이다. 영등포역에는 제주도 에서만 광고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청정 제주를 상징하는 제주도의 맑은 바다를 홍보하고 있다.
낙성대역은 서울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단일 노선인데도 지자체들이 광고를 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 축협에서는 국가 명품이라는 횡성 한우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경상북도 귀어귀촌지원센터는 동대문역과 함께 낙성대역에서도 경북 동해 물고기를 홍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