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살면서 한 번쯤 봤을 퀼트 제품. 퀼트는 ‘이불이나 쿠션 등에 누비질을 해 무늬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퀼트마을 협동조합’의 대표이자 업계에서 대모로 통하는 김은주 씨는 “퀼트는 천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30년 넘게 바늘을 손에서 놓아본 적 없을 정도로 그는 퀼트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김은주 씨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녹아 있는 퀼트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다. 20년 넘는 기간 퀼트 교육도 진행해 전국에 그를 거쳐간 제자가 3000여 명에 이를 정도다. 그러한 가운데 김은주 씨는 교육 이상으로 흐름에 발맞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제자들과 뜻을 모아 2015년 사회적경제기업 ‘퀼트마을 협동조합’(이하 ‘퀼트마을’)을 열었다.
현재 7명의 조합원 개개인은 각자의 지역에서 숍을 운영하면서 협동조합 활동도 펼치고 있다. 시간이 쌓이면서 성장 중인 가운데, 올해 서울시 보람일자리 ‘소상공인 온라인 홍보마케팅 사업단’의 도움을 받아 퀼트마을은 더욱 날개를 달았다.
“퀼트 숍을 운영하려면 최소 10년의 경력이 필요해요. 그 제자들을 불러서 ‘우리 완제품 판매를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대부분 퀼트 숍에서 교육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 산업이 발전하려면 완제품 판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야 많은 사람이 퀼트를 알게 되고, 우리가 할 일도 많아지는 거죠. 가장 큰 문제는 완제품을 얼마에 파느냐였는데, 3년의 연구로 합리적인 가격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홍보마케팅 효과 톡톡
어느 날 김은주 씨는 서초구 사회적경제 통합지원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소상공인 온라인 홍보마케팅 사업단’이 있는데 도움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김은주 씨는 도움이 될 부분이 분명히 있고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 사업 지원을 받기로 했다.
“퀼트 제품은 온라인 판매가 어려워요. 하늘 아래 똑같은 퀼트 제품은 없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하죠. 그리고 퀼트 제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하거든요. 온라인 홍보로 알려졌으면 한 부분은 퀼트마을에서 완제품을 판매한다는 점이었어요. 국내에서 퀼트 완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거든요. 그 사실만 알려져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소상공인 온라인 홍보마케팅 사업단은 소상공업체 및 사회적경제기업을 대상으로 온라인 플랫폼 구축 및 홍보 콘텐츠 제작 지원을 통해 경영 활성화 증진에 기여하는 사회공헌 일자리다. 퀼트마을 홍보는 김현숙, 최은영 활동가가 맡았다. 활동 기간은 4월부터 12월까지(기존 계획에서 한 달 연장)로, 그들은 자신의 SNS인 블로그에 매달 퀼트마을 관련 포스팅을 게재했다.
“가방, 모자, 방석 등 매달 다룰 아이템을 다 정해놓았어요. 예를 들어 설명하면, 10월 아이템은 배낭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활동가분들이 오시는데, 그날 제가 만든 배낭을 하나하나 설명해드렸어요. 사진 촬영도 진행하고요. 다른 지역에 있는 조합원분들의 배낭 사진도 제공해드렸습니다. 그러면 활동가분들이 글과 사진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주시죠. 두 분께서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해주셨어요. 주말 행사에 와주신 적도 있고, 지방에서 하는 행사는 홍보 글을 선뜻 써주셨죠. 그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조합원들은 퀼트 작업을 하느라 홍보할 시간이 없는데, 그 시간을 활동가들이 채워준 셈이다. 김은주 씨는 블로그 홍보 이후 손님도 늘고 매출도 상승했다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블로그 글은 없어지는 게 아니고 계속 남아 있지 않나. 계속해서 입소문이 나고 홍보 효과가 더 좋아질 것 같다”면서 퀼트마을에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김은주 씨의 첫 번째 목표는 퀼트마을에서 완제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이 더 널리 알려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제품과 작품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품은 가방, 지갑 등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죠. 작품은 한계가 없어요. 벽걸이가 될 수도 있고, 카펫이나 이불로 쓸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사용처를 개발해달라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던 김은주 씨는 미대 진학을 원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접고 교사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결혼 후 육아를 하면서 일을 그만둔 그는 그제야 자신이 좋아하는 바느질을 취미로 하게 됐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접한 퀼트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김은주 씨는 “재밌으니까 오랜 시간 하는 거다. 평생 바늘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늙어도 마음은 똑같아’ 하시던 말의 의미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또 현재의 50~60대는 과거의 인식과 달리 젊고 열정이 넘치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재밌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취미 생활을 즐기다 보면 직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우잖아요. 특히 제자들이 퀼트 작가, 선생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많이 느껴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장년이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고려할 때 ‘취미’는 큰 영향을 끼친다.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을 말한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을 즐기다 연계된 직업을 갖게 되면, 당신도 ‘덕업일치’(德業一致,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은 무료한 삶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한 취미가 일로 발전한다면 취미를 즐기는 동시에 건강도 챙기고, 직업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다. 일석사조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취미를 발전시켜 일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덕업일치’와 함께 ‘하비프러너’(Hobbypreneur)가 언급된다. ‘취미’를 뜻하는 하비(Hobby)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러너(Preneur)의 합성어다. 취미를 발전시켜 창업하고 수익을 창출한 사람을 일컫는다. 디지털 시대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온라인 플랫폼 판매자 등이 많아지면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중장년이 직업으로 발전시킬 취미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봤다.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친자연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취미를 소개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수입 창출을 목적으로 취미를 갖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직업 상담가는 “사실 취미를 일로 연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구직 시 취미는 플러스 알파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요리하는 게 좋아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 학교 급식실에 취업할 때 도움이 된다”면서 “중장년분들을 보면 평생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은퇴 후 마음 편히 노는 법을 모른다. 취미 생활을 즐기다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축복할 경우지만, 일을 할 목적으로 취미를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고 당부를 전했다.
사부작사부작 취미 살리기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으로 불린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67잔으로 세계 2위에 이른다. 전 세대에서 관심이 높지만, 중장년층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다. 중장년 세대에게 커피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들은 다방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마셨고, 식후 입가심이 되어주는 믹스커피를 좋아했으며, 카페가 많아지고 난 현재는 원두커피를 즐기고 있다.
원두커피의 맛을 알게 되면서 중장년층을 포함한 전 세대는 커피 만드는 법에 관심을 두게 됐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에서 홈 카페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자,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바리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커피 만드는 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집에서 가까운 바리스타 교육기관 또는 학원을 찾아가면 된다. 국민내일배움카드(고용노동부에서 훈련비를 지원해주는 제도. 1인당 최대 5년간 300만~5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를 활용하면 무료로 교육받을 수도 있다. 교육을 수료한 후에는 민간형 자격증인 바리스타 자격증을 어렵지 않게 취득 가능하다.
커피 만드는 법을 알면, 시니어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어 수입을 거둘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 일자리 가운데 민간형 사업의 주력 분야는 카페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 공급과 수요 모두 많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취업이 유리하다. 카페 창업도 가능하다. 내가 만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 떨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셈이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적 소양을 살려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개그맨 김현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제2의 삶을 사는 중이다. 워낙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 지휘를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그는 이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그는 악보를 통째로 외워 지휘한다고 한다.
김현철과 같이 클래식을 사랑하는 중장년이 많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악기 연주를 배우고 아마추어 활동을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김윤경은 유튜브 채널 ‘김윤경의 소소한 클래식’을 통해 클래식 음악 강의를 하고, 아마추어들의 연주 활동을 지원한다. 김윤경의 사례 역시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은 취미를 살린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소한 취미도 잘 살리면 소득이 생긴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시니어 작가가 될 수 있다. 작가가 되기에 늦은 나이란 없기 때문이다. 중앙지와 지방지, 종교지 등 13개 신문의 ‘2023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보면, 전체 당선자 96명 중 40대 이상이 38명이었다.(40대 12명, 50대 이상 26명)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는 68세의 노수옥 씨로 그는 ‘광남일보’ 시 부문에 당선됐다.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 아니어도 온라인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창구가 많이 형성돼 있다. 블로그 마케팅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작가가 되고 책도 낼 수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글짓기 대회도 많은 상황이다. 본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역시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열어 시니어 작가를 응원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취미 살리기
나이가 들수록 초록초록한 풍경의 자연이 좋아진다. 자연을 느끼며 가벼운 산책이라도 운동을 하면 심신이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2017년 영국 요크대학교 환경연구소 연구팀은 ‘녹지 공간이 노인의 정신적 웰빙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단순히 걷기부터 등산, 트레킹까지, 숲에서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직업과 연결될 수 있다. 숲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알고 보면 무궁무진하다. 2018년 당시 김재현 산림청장은 ‘숲에서 일하는 100가지 방법’ 안내서를 내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취미 기반 직업은 ‘숲해설가’다. 자신이 좋아하는 숲을 거닐면서 소득도 벌 수 있다. 자연휴양림, 수목원, 도시 숲 등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설하고 체험 활동을 돕는 일을 한다. 산림교육 전문가 양성기관에서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평가를 거쳐 산림청장으로부터 자격을 부여받는다.
2020년 한국갤럽이 추적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등산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등산은 부동의 1위였다. 등산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등산을 가장 즐기는 세대는 중장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을 즐기는 중장년이라면 ‘산악전문지도사’를 업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산악전문지도사는 산악 안전사고 예방 및 대응, 전문 등반(암·빙벽 등반) 안내, 안전한 산행 가이드 등 올바른 산행 문화를 선도하는 전문 인력을 말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에서 민간 자격을 발급하며, 2019년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숲과 관련된 직업이라고 해서 꼭 활동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목공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목공예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다. 목공예 제작 및 판매 업체,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할 수 있고, 개인 공방을 운영할 수도 있다.
◇걷기 취미 살려 걷기 강사 된 박미애 씨
“살기 위해 걷기 시작, 행복 전파하고파”
“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하루에 10㎞를 걸어요.”
일상에서 매일 하는 걷기는 취미를 넘어 직업이 될 수 있다. 걷기 전문가가 되면 소득 창출이 가능하다. 부산에 사는 걷기 강사 박미애(62) 씨는 이 사실을 몸소 입증한다.
박미애 씨는 한국걷기 그랜드슬램을 3회나 달성했다. 한국걷기 그랜드슬램 워커는 1년 내에 장거리 대회 4개, 총 521㎞를 완보한 자를 말한다. 박미애 씨는 “중학생 때부터 걷기는 내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걷기는 힐링’이라는 사실은 결혼 후에 깨달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요. 시어머니는 대장암, 시아버지는 치매에 걸리셨어요. 매일 간호하며 사는 삶이 너무 팍팍했죠. 또 공부를 잘해서 외고에 3년 장학생으로 진학한 아들이 갑자기 일반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정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걸었습니다. 한참 걷고 나면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죠.”
본격적으로 걷기 전문가가 된 것은 2017년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에서 주최한 ‘해안누리길 종주 대회’에 참여, 8일간 160㎞ 종주에 성공했다. 걷기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과 같이 걸으면서 박미애 씨는 ‘나도 잘 걷는 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모임 ‘청춘 도다리’ 강연을 시작으로 여러 군데에서 강연하면서 박미애 씨는 걷기 강사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면서 걷기 지도사 자격증 1·2급도 취득했다. 민간 자격증으로, 2급은 16시간 교육을 통해 쉽게 취득할 수 있다. 경력이 있어야 자격이 되는 1급은 전문성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박미애 씨는 강사로 일하면서 걷기의 기쁨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에 그는 2020년 동서대학교 미래커리어대학 시니어운동처방학과에 진학했다.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박미애 학생은 학교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걷기에 관심이 많고 실천하고 있는 시니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들 충분히 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강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인체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봐도 건강 문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걷기 강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걷기 학교 설립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미애 씨는 걷기가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해준다며, “걷기가 나를 살리고, 우리 가족도 살렸다”고 표현했다.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동생에게 박미애 씨는 100㎞를 걷게 했다고. 걷기의 긍정적인 효과를 느낀 동생은 건강을 되찾은 현재도 매일 10㎞씩 걷는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박미애 씨의 남편이 척수 손상으로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박미애 씨는 남편을 간호하면서도 매일 걸었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걷기’라는 취미가 불러온 긍정적인 나비 효과에 그는 오늘도 행복을 느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굉장히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걷기 덕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나이 들면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삶을 응원합니다!”
물의 흐름을 따라 일렁이는 형형색색의 수초들, 그리고 그 사이로 유영하는 물고기. 일상의 많은 자극을 잠시 멀리하고 수족관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취향대로 돌과 유목, 다양한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다. 여행도 운동도 즐거움이 잠시뿐이라면, 실내에서 꾸준히 즐길 취미로 ‘아쿠아스케이핑’은 어떨까?
수경 예술, 아쿠아스케이프는 Aqua(수중)와 Landscape(풍경)의 합성어로 이를 제작하는 행위를 아쿠아스케이핑(Aquascaping)이라 부른다. 다소 비주류적인 취미였지만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멍’(물을 멍하니 바라본다는 뜻의 신조어)으로 마음의 안정을 노리거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실내에서 즐길 취미를 찾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도 올해 수산 양식, 수산업 경영 분야 등 아쿠아스케이프에 대한 기초 지식과 실무 능력을 익힐 수 있는 내용의 교과서를 개발할 정도다.
AGA, IAPLC, KIAC 등 아쿠아스케이프 수조를 예술적 조형물로 심사하는 국제 대회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대회에서는 수조를 촬영한 사진을 출품하면 심사위원들이 기술력, 독창성, 분위기, 장기 유지 가능성 등을 종합해 심사한다.
스무 해 동안의 ‘덕질’
수경 예술의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원하는 크기의 수조를 준비하고, 이물질을 제거한 후 바닥재를 깔고 각종 장식을 배치한다. 그 후 나무에 수초를 끈으로 엮는다. 여과기 및 기타 장비를 설치하고 물을 넣은 후 2주 정도 지나 수초가 자리 잡으면 물고기를 투입한다.
일반적인 수족관의 경우 어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중했다면, 수경 예술은 수초가 중심이 된다. 수중 식물의 ‘서식 환경’이 더 강조된 형태다. 다양한 자연 소재를 통한 조형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어류가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독특한 작업이다.
박기민 작가는 수초, 돌, 유목 등을 활용해 수조의 환경을 아름답게 제작하는 사람, 아쿠아스케이퍼다. 2018년 KAC(한국아쿠아스케이핑 콘테스트, 현 KIAC) 특별상, 2019년 KAC 2위와 KAPS(한국관상어산업박람회) 수초 디스플레이 부문 은상을 거머쥐었다. 수경 예술 쪽에서는 꽤 알려진 전문가다. 이 분야에서 굵직한 이력을 가진 그도 처음엔 물고기 몇 마리 키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전주에서 식당을 하셨어요. 3m짜리 어항이 두 개 있었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레 물고기에 관심이 갔어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물고기를 키웠죠. 물고기만 있으니 텅 빈 어항이 허전해 보여서 어떻게 꾸밀까 찾아보다 아쿠아스케이프라는 걸 알게 됐어요. 벌써 20년 정도 됐네요.”
관상어에 대한 관심이 그 주변으로 퍼져 수조의 구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 작가가 ‘물생활’(물고기를 키우는 취미를 뜻하는 신조어)을 시작할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아쿠아스케이프 교육 과정이 없었다. 대신 수경 예술의 기반이 마련된 일본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그는 일본에 출장 갈 때마다 틈틈이 수족관이나 수족관용품 숍을 찾아다니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일본에는 수족관용품 브랜드 ADA(아쿠아 디자인 아마노)가 있었어요. 창립자는 다카시 아마노인데, 자연 풍경 사진작가였죠. 사진을 위해 우연히 물속에 카메라를 넣었던 게 ‘물생활’의 시작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물속 풍경을 조금 더 아름답게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ADA가 수초와 물고기가 최적의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조명, 흙, 비료, 여과 시스템 등 다양한 재료를 개발했고, 각종 대회도 개최하면서 기반을 많이 닦아뒀어요.”
박 작가가 꼽는 수경 예술의 매력은 무수히 많다. 편한 시간 일부만 투자해도 아름다운 수조를 유지할 수 있고, 어떤 자연환경을 조성할지 고민하는 재미도 있다. 여기에 예쁜 관상어까지. 이들이 번식하면 얻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배설물이나 알레르기, 소음, 산책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삶의 원동력이 된 물생활
이 때문인지 박 작가의 물 사랑은 취미를 넘어 더욱 짙어졌다. 결국 마흔네 살이 되던 해, 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수족관용품과 관상어를 취급하는 ‘아쿠아리스모’를 창업했다. “40대 중반인 데다 원래 직업과는 다른 분야라 새로운 도전이 망설여졌어요. 아내도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죠. 한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치열하게 임했어요.”
취미가 직업이 된 후, 그는 소재의 구도와 배치에 대한 기본기를 다시 닦기 위해 건축학도 시절 전공 책을 펼쳤다. 관상어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회 출품을 위해 사진 공부도 했다. 생물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전문가라도 모든 종류를 골고루 잘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마다 좋아하는 수질이 다르고 남들과 같은 제품으로 세팅하더라도 지역마다 수질에 차이가 있으므로 미생물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수초가 만족할 수 있는 신비의 비료는 없으므로 수초들을 하나씩 관찰하면서 특정 영양분 결핍에 따른 증세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쿠아스케이핑이 취미라면 키우고 싶은 물고기의 특성만 알아두면 되지만, 직업으로 하다 보니 연구할 게 많아요. 다양한 수초와 물고기를 한 번에 관리하다 보니 종류에 따라 맞춰야 할 물의 온도나 수질이 조금씩 달라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물고기들이 아프면 어떤 원인으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수산 생명 질병학도 공부했어요.”
반지하에서 시작한 ‘아쿠아리스모’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어느새 번듯한 2층짜리 건물에 입주했다. 박 작가는 현재 전국 각지 물생활 입문자들의 지표가 돼주고 있다. “관상어를 키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수경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순간이 오죠. 20년 전 저처럼요.”
이 작업에 적응하고 나면 한 단계씩, 막연히 품어왔던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면 된다. 이때 필요한 건 기다림과 인내다. 2주 정도 지나야 수초가 자리 잡고, 물속 생태계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수경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기다림 또한 취미를 향유하는 과정일 터. 기다림의 미학을 진정으로 느낄 순간이다.
초보 아쿠아스케이퍼를 위한 Tip
1 수조 조경을 시작할 때 소일바닥재, 조명, 이산화탄소 발생기, 여과기가 필요하다. 영양분이 함유된 소일바닥재와 조명, 이산화탄소 발생기는 수초의 성장을 돕는다. 여과기는 물의 흐름을 만들어 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한다.
2 사육할 물고기의 종류와 원하는 수조의 스타일을 미리 생각해두면 좋다. 생물의 유형에 따라 수조의 크기, 수조 내의 수질 상태, 필요한 장비와 식물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3 수조를 세팅한 후 수초가 뿌리를 내릴 때까지 2주 정도 기다리는 것이 좋다. 물고기를 성급하게 넣으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분진이 떠오른다. 수조 속 생태 환경이 천천히 안정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4 초보자라면 구피나 네온테트라를 추천한다. 구피는 단색과 줄무늬 등 종류도 다양하고 수질에도 크게 민감하지 않다. 네온테트라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과 잘 어울려 살기 때문에 여러 종을 함께 키우고 싶을 때 적합하다.
5 물고기가 예쁘다고 먹이를 여러 번 주는 경우가 있는데, 남은 사료가 물속에서 부패하면 암모니아가 과도하게 발생해 물고기가 죽을 수 있다.
6 관상어는 환절기 온도 변화에 따라 외부 기생충이 달라붙는 백점병을 흔히 겪는다. 물 온도를 28℃ 정도로 올려주고, 메틸렌블루 성분의 약품을 사용해 개선할 수 있다.
7 환수는 필수다. 육안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을 2분의 1 정도 남기는 부분 환수를 추천한다. pH와 물속 박테리아를 조절하며 건강한 수조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창업을 꿈꾸는 중년에게 수수료나 광고비 등의 비용 부담을 지우는 온라인 플랫폼은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잘 활용한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인생 2막을 여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낯선 분야에서 길을 마련한 온라인 플랫폼 ‘선배님’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사업 분야를 구상하고 사업장을 열어 판매를 시작한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다. 다수의 중년이 창업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창업할 때 온라인 플랫폼을 빼놓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전자상거래 매출을 강하게 끌어올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오프라인 소비자들은 온라인 커머스에 상당수 흡수됐기 때문이다.
‘흡수’는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6조 9023억 원으로 2020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7% 증가했다. 이제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구매하던 겨울 외투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고, 마트나 슈퍼마켓 대신 새벽배송을 약속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장을 본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온라인 쇼핑 추이를 조사한 결과 50대는 이용률이 31.2%에서 60.2%로, 60대는 12.7%에서 60.2%로 증가했다. 5060의 월평균 구매 빈도도 1.8회에서 4회로 늘었다.
사업을 준비하거나, 온라인 판매처를 마련하고자 하는 입장에선 이미 많은 회원이 모여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에 진입한 중년들은 잇달아 고배를 마신다. 비싼 광고비와 수수료, 오를 기미가 안 보이는 매출 그래프를 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의 성공 사례로 매체에 소개된 네이버스토어 ‘미라클 5.5’ 운영자 엄형섭 씨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단 하되, 길게 보자
강원도 원주시에서 5.5평짜리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그는 강원도경제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국내 유수의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했다. 그러나 기존 업체들에 밀려 생각만큼 노출이 되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는 검색 광고를 신청하고 블로그 마케팅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출마저 폭락했다. 그는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기로 마음먹었다.
라이브 커머스는 생방송을 의미하는 라이브 스트리밍(Live Streaming)과 상거래(Commerce)가 합쳐진 단어다.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새로운 상거래 방식이다. 그는 촬영, 물건 구성, 방송 구상 등 방송 제작 및 라이브 방송을 송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작업을 직접 했다. 방송 제작을 외부에 의뢰할 경우 드는 비용도 만만찮아서다.
그는 100일 동안 100회 방송을 꾸준히 진행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초반 방송들은 다시 보기 힘들 만큼 어색했지만 점차 방송 스킬이 늘었다. 시청자 수도 늘어났고, 방송을 켜면 항상 시청해주는 고정 시청자들도 생겼다. 무엇보다 매출이 눈에 띄게 뛰었다. 한 시간 방송 내내 아예 팔리지 않거나 한개 겨우 팔리는 수준이었으나 방송 횟수가 10회를 넘어가자 오프라인 매출을 앞지르는 정도가 됐다.
엄 씨는 온라인과 영상 매체가 낯설더라도 우선 도전해보라고 추천했다. 고통스럽겠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즐기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방법은 단연 소통이다. 직접 만나 판매자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확인받을 수 없는 온라인 쇼핑의 특성상, 효과적으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판매자가 성공하기 마련이다. 텍스트보다는 음성이, 음성보다는 영상이 좋다. 온라인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고 댓글과 후기를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그 사이에 텀이 생기기 때문에 라이브 방송이 단연 유리하다.
김성진 한국스마트미디어협회 상임이사 역시 “길게 보기를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온라인 플랫폼 스토어도 사업이기 때문에 한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승부 보려 하지 말고 호흡을 길게 잡아야 한다. 동네 치킨 가게를 열면 매출이 오르고 단골이 생기는 시기가 단계적으로 오듯, 온라인 플랫폼에 낸 상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어떻게 팔지는 온라인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콘셉트, 잘 팔릴 것 같은 물건을 찾아 나서기 쉽지만 그보다 더 중시해야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판매자 개인의 취향이다.
좋아하는 걸 팔아라
엄 씨의 경우는 취미가 직업이 된 사례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좋아했던 커피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연구해나갔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으니 힘들기보다 즐거웠다고 한다. 이전에는 훨씬 돈을 잘 벌었지만 행복하지 못했고 괴롭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하면서도 행복하다. 무엇보다 전문성을 갖춰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 매출 상승이라는 결과까지 얻어냈다. 좋아하는 분야다 보니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지난하지 않은 덕분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제9회 GTI국제무역·투자박람회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하고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진행된 기념 쇼핑 라이브 방송에서는 4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전자상거래 기반 취·창업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는 김 상임이사는 사업 분야로 평소 관심사를 고려해보라고 조언했다. 만들어진 온라인 상점에 제품을 올릴 때도 전문성이 보일 수 있도록 제품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이는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하는 작업이지만, 온라인 상점으로 성공한 판매자들은 공통적으로 거친 과정이기도 하다. 직접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오프라인 상점과 달리 온라인 상점은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과 경로가 한정돼 있다. 한정된 경로에서 전문성을 드러내 신뢰를 쌓는 방법은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고르면 된다.
소통하고 벤치마킹하라
온라인 사업자들이 갖는 고민의 결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많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을지, 지금 하는 방식이 맞는 건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불안해하기도 한다.
온라인 플랫폼 측은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이에 판매자들을 위한 강의를 주기적으로 열거나, 온라인 스토어 운영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이 담긴 칼럼을 게재해 참고할 수 있게 한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카카오톡 스토어는 판매자 인터뷰 ‘셀터뷰’를 공개한다. 특색 있는 상점과 판매자의 운영 노하우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셀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다른 판매자의 상점을 참고하라는 조언이다. 지역에서 오프라인 판매를 기반으로 온라인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안옥남’ 스토어 판매자는 “다른 스토어의 성공 사례를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기본적인 상품 관리나 상점 운영 등 전반적인 내용 외에도 상점을 어떻게 운영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스토어 ‘혜자마트’ 판매자 역시 “잘하고 있는 스토어를 벤치마킹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잘하고 있는 스토어의 장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적용해야 성공적으로 상점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클래스에서 운영하는 코칭 프로그램에서도 벤치마킹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기관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듣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온라인이나 컴퓨터 활용법이 낯선 이들을 위한 컴퓨터 기본 활용법, 라이브 커머스를 노리는 이들을 위한 영상 촬영, 온라인 플랫폼 입점부터 도매처에서 제품을 사 판매하기까지 전 과정을 실습해볼 수 있는 강의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물론 강의의 내용과 수준은 개인별 상태와 편차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강의 수강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강의에서 만난 다른 온라인 상점 판매자들과 커뮤니티를 생성할 수 있어서다.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과 경기도 디지털배움터 사업 등 여러 기관과 취·창업 교육을 진행해온 김 상임이사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고민, 같은 처지에 놓인 온라인 상점 판매자들이 수업을 함께 듣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기도 쉽다.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주면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 온라인 플랫폼 판매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는 수강자들만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사전 미션을 제공한다. 기본적인 설정조차 어려워하는 초보 판매자들이 충분히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김 상임이사는 “같은 온라인 스토어라도 취급하는 물건이 다르고 분야가 다르면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은퇴한 시니어의 가장 큰 자산은 시간이다. 시간 부자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많아도 일상이 무료하다면 고통의 순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수도 축복이 아니고 재앙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면 여가를 즐기는 삶으로 바꿔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취미활동을 들 수 있다. 취미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는 손쉽게 취미를 계발하는 방법으로 ‘덧칠하기(Micro Adventure)’를 권하고 싶다. ‘덧칠하기’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일상의 습관이나 관심 가진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등산이 취미였던 분이 산삼을 연구해 산을 즐기면서 산삼을 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수채화를 그렸다. 그 경험을 살려 60세에 사진을 배움으로써 평생 취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과 관련한 영역을 확대해 하루를 25시로 산다. 과거의 경험에 덧칠을 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용돈도 벌고 사회공헌도 하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삶을 즐긴다.
사진은 취미라기보다 일상생활로 바뀌어가고 있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취미보다 돈이 적게 들면서 새로운 직업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특히 돈이 드는 취미에서 돈이 되는 취미를 계발할 필요가 있는 시니어에 꼭 맞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돈이 많이 들기도 한다. 장비 구매와 사진 촬영지 여행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늘 휴대하는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찍을 수 있고 일상에서 사진 소재를 찾을 수도 있어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훌륭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저렴한 카메라(일반인이 손쉽게 살 수 있는 보급기로 렌즈 포함 50만원 주고 산 중고품을 지금도 쓴다)를 사용하고 요즘엔 스마트폰을 주로 이용한다. 전시회용 작품을 만들거나 취미활동용으로 부족함이 없다. 사진 재능기부와 사진 기술을 전수하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장애인 시설이나 양로원 등에서 사진 촬영 봉사를 하고 실버대학 등에서 어르신들에게 사진 지도를 하며 보람을 느낀다. 사진 촬영이 필요한 곳이면 발걸음을 아끼지 않는다. 혹자는 필자에게 “돈도 안 되는 일 그렇게 힘들여 봉사하느냐?”고 하지만 재능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취미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공인 사진작가가 된 필자는 이제 사진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이 됐다. 또한 취미활동이 바탕이 되어 KBS1
을 비롯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SBS 라디오에 출연하며 방송인이 되었다. 동년기자 선임과 명예기자도 사진이 근간이었고 글을 쓰면서 원고료도 받는다.
, , 등 사진과 관련한 책 세 권도 출간했다. 또한 사진 취미생활을 통한 여가생활의 본보기가 되면서 여가설계 강사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강사료를 받는다. 취미에 머무르기만 하면 성장이 없다. 어떠한 취미를 선택하더라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도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도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다. 당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 좋은 사진을 글에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고양시 일산동구청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사진교실에 참가하게 됐다. 60세의 늦깎이였고 카메라 장비는 소형 카메라 하나였다. 촬영 경험도 많지 않았다. 고급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동호인들을 볼 때 주눅이 들기도 했으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형편에 맞는 카메라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듯 공인 사진작가가 되어보자는 욕심이 생겨 사진을 배운 지 3개월 후부터 공모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잘될 리가 없었다. 28번의 도전 중 절반을 낙선하고 15번 수상해 사진작가 인증을 받았다. 그 후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사진을 배운 지 3년이 되던 2013년에 대한민국사진대전(국전)에 입선하고 부산일보 전국사진대전에서도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많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공모전 출품으로 얻어지는 점수가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사진작가 명함도 만들 수 있다. 사진 전문가가 되면 다양한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전시회를 열어 작품 판매도 할 수 있다. 향후 작품에 대한 가치도 높일 수 있다. 사진 갤러리를 중심으로 하거나 프로필 사진과 가족사진을 촬영해주는 카페 운영, 사진관 운영, 사진 여행단 운영을 할 수 있다. 수요가 많은 사진 강사로 데뷔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자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필자는 사진작가 인증에 그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사진을 배운 지 벌써 8년째에 접어들었고 찍은 사진도 50만 장에 이른다. 사진을 찍다가 파파라치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강화도 군부대 옆에서 석양을 촬영하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선택한 취미생활을 오래 할 수 있고 제2의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남이 권유하는 취미나 유행하는 취미를 선택하면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분야에 집착하기보다는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취미가 좋다.
어린 시절에 즐겨 했으나 생업으로 미뤄뒀던 취미를 끄집어내 덧칠하면 평생 취미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모험가 제임스 후퍼가 제안한 ‘덧칠하기’다.
필자는 은퇴 후에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꿈을 덧칠해 사진으로 바꾼 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3년 정도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 몰입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필자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사진 기술과 취미생활 계발을 선도할 ‘청학빛그림학교’를 꿈꾸고 있다.
은퇴하면 고생은 끝나고 안락한 행복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를 어떻게 하면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구석에 두고 실현하지 못한 글쓰기에 대한 꿈이 되살아났다. ‘문학소년의 꿈’이었다.
은퇴하자마자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 관악 기자학교였다. 기사작성의 실전교육을 마친 후 몇 군데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고 기자가 되었다. 밤새워 글을 쓰면서 블로그 활동도 했다. 세상과 대화하는 또 다른 길이 열렸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수년 동안 몇몇 신문과 블로그에 썼던 글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도 오프라인 기사가 몇 차례 실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아내와 아들이 ‘애독자’가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가족은 평소 상대방의 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아내의 말처럼 실력도 문제이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다. 문학도 아들에게도 독후감을 요구했으나 대답하지 않고 눈길을 피했다. 척하면 삼천리. 배워야 한다.
관악문화원 문학반을 찾았다. ‘맛보기 강의 들어보고 수강 신청하라’는 안내가 재미있었다. 아담한 강의실에서 몇십 명이 모여 오순도순 토론도 하며 문학수업이 진행되었다. 10년 넘도록 계속 이어져온 문학창작교실이란다. 매주 화요일 오후 저명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강의가 진행되었다. 여기에 수강생의 창작 시와 수필 낭독, 토론이 끝나면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바로 여기야!’ 무릎을 탁 쳤다. 이후 글쓰기에 코를 박았다.
박수진 지도교수는 저명 시인이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주옥같은 시와 동요가 여러 편 실렸다. 강의 전반에는 지도교수가 품격 높은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진행한다. 지도교수는 왕성한 창작활동과 재능기부를 하면서 매주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 열정적인 강의를 했다. 주입식이 아닌 토론이 곁들인 강의였다. 매번 예정시간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강의 때마다 수강생들은 시나 수필을 써와서 강의에 참가한다. 강의 후반부에서는 습작품 첨삭지도가 토론식으로 이루어진다. 작성자가 먼저 낭독하고 참가자들이 자유토론으로 의견을 말한다. 수강생들이 진땀 흘리는 시간이다. 남의 작품을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다가 자기 작품을 발표할 때는 어린아이가 된다.
한 줌의 작품은 이리 찢기고 저리 벗겨진다. 앞과 뒤를 바꾸고 넘어진 가지를 자르고 나면 모양새가 갖춰진 한 편의 작품이 재탄생한다. 작품이 새로 태어나는 눈부신 과정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감동하며 박수를 친다. 살아 있는 문학 공부다.
단기가 아니고 연중 계속 이어지는 수업이 이곳의 특징이다. 마치 학교에 다니는 기분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 문우들을 사귀었다. 화려한 전직의 은퇴자와 문학에 관심 있는 가정주부가 많다. 이분들은 오랜 기간 문학반에서 수강하면서 현재 시인,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도 몇 번씩 한 프로들의 ‘심화 과정’이다. 수업이 끝나면 가끔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환담을 나눈다. 걸쭉한 인생 이야기는 훌륭한 글쓰기 소재가 된다.
관악문화원 문학아카데미 회원의 동인지 출판 준비가 한창이다. 모두가 두툼한 동인지에 작품과 이름을 올릴 것이다. 연말에는 합동으로 시를 낭송하고 수필을 발표한다. 젊은 시절 줄줄이 외었던 시 구절 하나 온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글을 쓰면서 그 기억을 되살린다.
우리 에 ‘기사’를 올리고 블로그에는 ‘작품’을 올린다. 신문기사가 감정을 섞지 않는 주지적인 글이라면, 문학은 주정적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배우면서 쓰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두 분야의 글쓰기는 동전의 양면 같다. 보는 관점만 다를 뿐이다. 양쪽을 어우를 수 있어 즐겁다.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살아온 삶 ‘70년 체험’ 이야기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손주를 돌보면서 옛 조상들의 삶을 생각한다. 이제 ‘30년‘ 삶에 대해 고민한다.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관악문화원 문학아카데미 동호회 안내
위치 관악문화원 관악산 입구 주차장 바로 위
전화번호 02-885-5975, 878-1931
강의와 토론 매주 화요일 오후 3시 반부터 2시간
개설 과정 문학반 외 서예반, 무용반 등 40여 개
수강료 3개월분 6만원, 연중 강의 계속
‘도슨트(docent)’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작품을 관람객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전시 해설자다.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게 해주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 미술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도슨트는 ‘지킴이 역할’도 함께한다. ‘지킴이’란 전시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미술관에 따라서 전시 해설과 지킴이 역할을 구분 없이 함께하는 곳도 있고, 철저히 분리된 곳도 있다.
‘도슨트’에 도전하다
시니어가 되면 젊었을 때 하던 일들은 웬만하면 정리하고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려는 사람이 많다. 대신 용돈 정도만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원한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즐길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들 만한 취미를 찾기 위해, 여러 교육기관에서 이것저것 배워보지만 잘할 수 있고, 재미도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본인에게 꼭 맞는 취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도 그랬다.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에서 여러 교육을 받아보다가 겨우 만난 것이 ‘도슨트’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가능
전시품을 수집하고 기획해야 하는 큐레이터는 전문지식이 많아야 하지만, 도슨트는 전문지식이 없어도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교육 과정을 거쳐 도슨트로 활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에는 정기적으로 도슨트를 선발해서 교육을 시키고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비용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도 무료다. 그러므로 도슨트 입문에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원 정보를 알 수 있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하고, 실력과 경력을 쌓은 후 원한다면, 자연스럽게 급료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현재 유일하게 교육을 시켜 자원봉사가 아닌 급료를 받고 일할 수 있도록 취업 알선을 해주는 곳이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다.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니어 도슨트로서 취업을 했을 때의 마음가짐, 서양미술사, 한국사, 설명할 원고작성,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와 관람객들을 대하는 자세 등을 가르친다. 필자도 이곳에서 교육과정을 마친 후, 취업 알선을 해줘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관람객과 공감대 형성이 요령
작품을 전시할 때는 항상 작품 설명을 써둔다. 그런데도 읽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관람객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설명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얘기해주면 즐거워하면서 다른 관람객한테도 꼭 설명해줄 것을 부탁까지 한다. 다른 관람객도 본인처럼 안 읽고 가면, 이렇게 좋은 내용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시니어가 설명을 해주니까 젊은 사람이 설명해주는 것보다 이해가 잘되고 더 크게 감동된다고, 고맙다고, 기뻐하며 갈 때면, 필자도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 실제로 관람객들도 필자가 설명하는 것을 볼 때면 참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면서 그들도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람객도 행복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필자도 행복하고, 이렇게 관람객과 도슨트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면서 보람이기도 하다.
도슨트 활동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
도슨트를 하기 전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관람객들과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필자의 삶의 가장 큰 변화다.
시니어가 하면 시너지 효과 더 좋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 부족한 다양하고 소중한 경험들을 시니어는 갖고 있다.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아둔 경험들을 녹여내 도슨트 활동에 덧입힌다면 관람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이 만족스러워하는 도슨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관람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보다 시니어가 해야 시너지 효과를 더 낼 수 있고, 시니어에게 특히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 취미를 찾지 못한 시니어에게 ‘도슨트 활동’을 취미로 삼아볼 것을 적극 권하고 싶다.
도슨트 Tip
첫째, 설명할 때 긴장하면 관람객과 소통이 안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 또는
가족과 이야기하듯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둘째, 작품 설명은 핵심만 몇 개 골라서 설명한 후 흥미를 끌 수 있고 의미 있는 소재
중에서 작가나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때 세대별로 공감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춘다.
셋째, 시간 배정이 중요하다. 설명은 풀타임의 80%만 하고, 나머지는 질문을 받는다.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30분이 넘어가면 지루해한다.
넷째, 과도한 복장과 구두, 액세서리, 헤어스타일은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된다.
전시 작품보다 시선이 집중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관람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편안한 복장을 한다.
늙음 뒤엔 결국 병과 죽음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의 애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살아갈 길은 있다는 뉴스는 비 오듯 쏟아진다. 비곗살처럼 둔하게 누적되는 나이테에 서린, 쓸모 있는 경험과 요령을 살려 잘 부릴 경우, 회춘과 안락을 구가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삶의 후반전, 그 인생 2막을 열어 내딛는 발걸음의 방향에 달려 있다.
이 풍진 세상의 사이즈는 간장종지 같은 게 아니고 바다처럼 크넓다. 타성과 습성에 안주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전혀 새로운 삶의 파노라마 속으로 족히 여행하거나 방랑할 수 있으며, 그럴 때라야 세월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부질없이 낭비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대전에서 학원을 경영하며 분주하게 살았던 진연순(57)씨 부부는 귀촌으로 인생 2막의 첫발을 내딛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의 시골마을이다.
진씨네 집을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은 매우 준수하고 청결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너른 살림채와 푸르른 농장 그 어느 구석 한 곳에서도 먼지나 잡풀을 찾아보기 힘들다. 난장판에 가깝도록 사물들을 널브러뜨린 채 살아가는 나에게는 거의 충격적인 풍경이다. 비지땀을 흘려 밤낮없이 근로를 하고, 청소를 하고, 미화작업을 하고서야 직성이 풀리게 되어 있는 성향의 부부가 사는 집임을 단박에 알게 한다. 사실 이 부부는 바지런하기가 헤집어놓은 개미굴 속의 병정개미와도 같다. 근면과 성실로 지상에 태어난 자의 사명을 다하길 습관처럼 거듭해 도시에서의 학원사업을 번듯하게 꾸려왔다. 그러다가 6년 전에 다 정리하고 후다닥 시골에 입장했다. 시골의 무엇이 이 부부를 호명했을까? 진연순씨에게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남편이나 저나,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선 스트레스나 피로를 덜 느끼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그래서 10여 년 전에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농토를 구입해 주말농장으로 활용했어요. 서둘러 귀촌하는 대신 미리미리 준비를 했던 거예요. 저희 슬하엔 남매가 있는데요, 이 녀석들이 커 독립을 한 시점에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비로소 이곳으로 완전한 이주를 했어요. 시골 정착이 비교적 순조로웠던 건 그렇게 나름의 준비기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수강생이 수백 명에 달했다죠? 멀쩡하게 잘 운영되던 학원을 정리하기 아깝진 않았어요?”
“사실 결혼하면서부터 부부가 함께 공들여 키워온 입시학원이라 애착도 있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여러모로 힘에 부치더라고요. 제가 전공인 수학을 강의하며 운영했는데요, 아이들은 나이 든 아줌마 강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입시철이면 피를 말리는 긴장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두통으로 늘 시달렸죠. 귀촌을 하고 나서는 그런 게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어요.”
“저는 말이죠, 수학여행은 좋아했지만 수학은 참 싫었어요(웃음). 인생을 과목에 비유한다면, 수학 선생님이었던 당신의 인생은 어떤 과목을 닮았다고 보시죠?”
“흠. 도덕? 제가 원래 어떤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도덕적인 성격이에요. 모범생이라고 할까? 덕분에 큰 굴곡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어요. 자유분방이라는 걸 용납하기 힘들었고요. 그런데 시골에 와서는 제가 천연염색에 푹 빠져 삽니다. 염색이라는 게 공예의 한 분야이고, 이른바 ‘끼’라는 게 요구된다는 걸 자주 실감하는데요, 그러고 보면 저에게도 뭔가 숨은 끼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웃음).”
“남편은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아내는 천연염색을 하고, 매우 이상적인 배합으로 보여요. 처음부터 그러자는 발상을 했을까?”
“아녜요. 제가 일찍부터 천연염색에 취미가 있긴 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남편의 농사 역시 처음엔 깨끗한 먹거리를 길러 식구들 건강이나 챙기는 정도의 소소한 수준에 불과했죠. 그런데 일이 커졌습니다.”
천연염색은 색채의 향연을 즐기는 일
취미는 삶에 재미와 흥미를 보태준다. 권태롭거나 지겨운 일상에 생기를 부여한다. 지나친 탐닉으로 허영과 낭비의 골짜기로 빠질 수도 있는 게 취미생활이다. 진연순씨의 취미는 썩 근사한 방향으로 비약했다. 대전에 살 때부터 틈틈이 천연염색 공부를 해왔던 그녀는 시골에 살며 한결 더 진도를 냈다. 재미가 있어서였다. 그게 하나의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는 효과를 자아낼 줄은 자신조차 미처 몰랐다지. 취미로 사귀었던 천연염색이 어느덧 직업으로 진화한 거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이 기꺼운 변동! 이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인생을 만족스러운 쪽으로 끌고 가는 행운아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귀촌 초기에 저는 골방 하나를 놀이터 삼아 혼자 천연염색이나 즐기며 지냈어요. 당시엔 사실 시골생활이 외롭고 힘들었거든요. 그걸 견디게 해준 게 염색이었어요. 남편은 이 마을이 고향입니다. 낙향한 셈이죠. 마을의 많은 주민들이 남편의 친척이나 친지, 선후배들이에요. 그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농사일도 거들고, 수많은 단체에도 가입하고. 아무튼 남편은 밖으로만 나돌았어요. 저는 외톨이처럼 그저 집에 틀어박혀 염색작업에 간신히 마음을 붙이고 지냈어요. 그러면서 서서히 실력이랄까, 솜씨랄까, 그런 게 늘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붙으면서 염색작업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블로그를 본 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염색 체험학습 의뢰를 해왔습니다. 그게 직업화의 신호탄이었죠.”
“단기간에 널리 알려지고, 순조롭게 자리 잡힌 건가요? 천연염색을 직업으로 삼아 체험장을 운영하는 귀농인들이 가끔 있지만 시원치 않다고들 해요.”
“제가 운이 좋은 걸까요? 빠르게 자리가 잡혔어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학교와 청소년 단체, 가족, 성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강을 해요. 시설도 점차적으로 늘렸어요. 실내외 교육장은 물론, 전래놀이 체험장, 잔디구장, 염료식물 재배장 같은 걸 구비했죠.”
“천연염색의 매력은 뭐죠?”
“순수하게 자연에서 얻어온 식물 재료들로 색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자연물에서 갖가지 신비한 색들이 나온다는 게 마음을 사로잡아요. 나뭇잎에서는 그냥 연둣빛만 나올 것 같지만 노란색이나 빨간색도 나옵니다. 쪽풀에서는 가슴 시린 파란색이 나와요. 마치 마법처럼 신기해요. 매염제를 사용하면 더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요. 염색으로 수입까지 발생한다는 점도 매력!”
“금상첨화?”
“일거양득!(웃음)”
‘라온뜰 농촌문화체험농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진씨 부부의 거처에 말이다. 진씨가 천연염색으로 자신의 취향과 희망을 일구듯이, 남편 박용규(59)씨는 아로니아 농장에 심혈을 기울인다. 귀촌 즉시 사업이라는 걸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단다. 이왕 시골에 살 거라면 유유자적까지는 아니라도 골치 아픈 속세의 일에서 해방돼 취미나 삼삼하게 즐기며 휘적휘적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흥청흥청 주야로 신바람 나게 노니는 일에도 대찬 내공이 필요하거니와, 부부의 적성 자체가 ‘놀자’ 과(科)가 아니라서 무위(無爲)란 그들의 소관사항이 아니었으렷다.
귀촌생활을 발랄하게 영위하는 비결
부부는 도시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일로 뛰어들었다. 아내는 천연염색을 또 하나의 배필처럼 감미롭게 맞이했고, 남편은 몸에도 좋고 벌이에도 유망하다는 아로니아 재배에 열애하듯 뜨겁게 뛰어들었다. 말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라는 남편 백씨는, 근로를 숭상하고 농사를 애호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데, 그는 전쟁을 연상시키는 농업 사업 특유의 경쟁에서 낙오될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타고난 근면으로 안착에 이르렀다.
“남편의 농사엔 실패가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천마를 심었다가 실패했고, 왕벚나무를 심었다가 타산을 맞추기는커녕 포클레인으로 다 뽑아냈고요, 검정콩도 심어봤지만 본전도 건지지 못했어요. 이후 옥천군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은 아로니아 재배로 비로소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한때 블루베리의 채산성이 좋았지만 너도나도 덤벼드는 통에 과잉 생산이 돼 이젠 폐업하는 농가가 속출한다고 해요. 아로니아의 수익성은 아직 안정적일까?”
“아로니아도 이미 과잉 생산에다 수입산까지 마구 들어오면서 위기에 직면했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을 생산해 단골 소비자를 확보해야만 해요. 남편이 생산하는 아로니아는 친환경 무농약 인증과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인증’을 받았어요. 덕분에 순항하고 있어요.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전량을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고요.”
“시골살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농사를 권장할 생각은 있나요?”
“농사란 참 힘들어요. 아아,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엔 풀인지 모종인지 구분조차 못해 다 뽑아냈어요. 지금은 남편이 농사를 전담하지만, 남편 역시 고생이 많아요. 초심자라면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해요. 남들 말만 듣고 작물을 선택하는 건 필패의 비결이고요. 처음 몇 해의 부진을 감당하려면 자금력이 있어야 해요.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염색의 경우에도 노동과 시간과 수고가 필요해요.”
“귀촌을 후회하진 않았어요? 도시도 매력적인 삶터인데 공연한 일탈을 했다는 의기소침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는….”
“후회할 정도로 바보스런 선택을 하진 않아야죠. 가장 힘든 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었어요. 남편은 빨리 적응했지만, 저는 너무도 더뎠어요. 혼자 집에 박혀 염색만 했으니까. 이웃들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칫 왕따 당할 상황이었죠. 그래서 태도를 바꿨어요. 마을 아줌마와 할머니들에게 염색을 가르쳐드렸고, 염색한 손수건을 선물했어요. 때론 식사 대접도 했고요. 이후 서로 흐뭇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어요.”
어린애는 볼수록 예쁜 짓을 하지만, 나이를 푸지게 먹어가면서는 미운 짓만 골라 하기 십상이다. 황혼의 광야에 서서, 마음 문고리를 안으로 닫아걸고 나 잘난 멋에만 안주하고서도 귀촌생활을 발랄하게 영위할 비결은 거의 없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아마도 그게 길이겠지.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조수경 ㈜글로벌아너스 대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돈도 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직업이 또 있을까? 앙코르 커리어에서는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취미를 통한 창직이야말로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필자가 운영했던 연세대, 이화여대, 항공대 중장년 아카데미에서도 취미를 통한 창직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중 항공대 ‘드론 활용 창업 과정’에서는 드론(drone)을 취미로 좋아하는 시니어분들이 대거 참여했다. 교육 이후 드론과 연계해 창직을 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로 일을 가져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고 계신다. 하지만 무턱대고 취미를 직업으로 삼았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취미가 수익까지 가져다주는 성공적인 직업으로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취미와 재능은 별개임을 인식하라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타고난 재능을 혼동한다. 내가 춤을 좋아한다고 해서 댄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타고난 재능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돈까지 벌 수 있는 직업을 만들 수 있다.
2.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라
좋아하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취미를 통한 창직의 핵심이다. 좋아하기만 하고 잘할 수 없다면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제대로 파악하라.
3. 열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식과 전문성을 갖춰라
취미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과 그것을 성공적인 직업으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래를 취미 삼아 열정적으로 한다고 해서 다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4. 작게 점진적으로 시작하라
창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것이기에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선 수익이 있는 다른 일을 하면서 작게 점진적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필자가 아는 ‘아더’라는 정신과의사 선생님은 탱고를 너무 좋아해 의사로서 일을 하면서 댄스치유학회도 만들고 탱고 강사도 하면서 점진적으로 접근해 현재는 탱고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5. 경력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라
시니어의 최고 자산은 수십 년간의 경험과 경력이다. 취미를 통한 창직에서도 최대한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례로 항공대 ‘드론 활용 창업 과정’의 교육생이었던 드론활용연구회 유진철 대표는 대안학교 교장으로서의 경력을 활용해 자유학기제와 연계해 드론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교육시장을 잘 알기에 다른 분들보다 빠른 성공이 엿보인다.
6. 고객을 이해하라
비즈니스에 대한 기본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다. 취미로 사진을 하던 은퇴자들이 설립한 장애인 전문 사진관 ‘바라봄 사진관’은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크라우드펀딩이 성공하는 등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장애인인 고객을 잘 이해하고 배려한 것이 성공의 핵심 키다.
7. 시장 공략은 창의적으로 하라
취미를 통해 창직을 하더라도 남들과 똑같이 시장에 접근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으로 틈새시장을 찾아 공략해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필자가 진행한 중장년 아카데미 교육생이었던 ‘미벨의 감성 여행 스토리텔러’ 박미종 대표는 은행 지점장까지 지낸 분인데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스토리가 있는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다.
8. 반 박자만 앞서가라
취미를 통한 창직을 제대로 하려면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에 너무 앞서가면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이라 때로는 고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드론 활용 창업 과정을 할 때도 한국은 드론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였기에 이 부분을 강조했다. 창직을 하려면 5년 정도만 앞서가라. 그렇게 반 박자 앞서갈 때 성공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9. 커뮤니티를 최대한 활용하라
취미를 통한 창직은 커뮤니티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다가 직업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동호회는 취미 교류의 장인 동시에 정보 교류의 장이다. 활발히 교류하다 보면 정보도 얻고 그 커뮤니티 사람들이 고객이 되기도 한다. 종종 창직의 기반도 마련된다.
10. 인내하며 실패를 즐겨라
취미를 통한 창직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어떤 분은 재즈를 너무 좋아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십 년간 투잡으로 공연을 뛰다가 은퇴 후 전업 재즈 가수가 되었다. 이렇게 취미를 통한 창직은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릴 정도로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기에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덧 창직의 길로 들어서 있을 것이다.
취미를 통한 창직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보자. Bravo Your Life!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삶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필자는 어느 날 인생 1막에서 인생 2막으로의 변화에 대응해야 했다. 그리고 ‘용도변경’이라는 적극적인 자기 변신을 통해 활기찬 후반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용도변경’은 필자의 이름 ‘변용도’를 원용해 만든 단어다. 한자의 의미는 다르지만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도(用途)와 한글 표기는 같다. 필자는 이 단어로 가족을 위한 그동안의 헌신적 삶에서 자신을 위한 삶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또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접어두었던 꿈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47세의 조기퇴직, 금융위기 등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용도변경’된 삶을 통해 사진작가, 강사로 거듭나 현재는 인생이모작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손해보험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필자는 이후에도 보험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지금은 평생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스토리를 오늘 들려드리려고 한다.
47세에 용도 폐기되다
필자는 대학교 졸업 직전 고려화재해상보험에 입사해 20년을 다녔고 촉망받는 직장인이었다. 20년 전에는 임원으로서 부산·경남 본부장을 맡았고, 1977년 12월 말에 해임되었다. 회사에서 쓸모가 없는, 즉 용도가 없어진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필자는 이름에 빗대어 ‘용도폐기’되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금융위기(IMF)까지 닥쳐 재취업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밥벌이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창업을 해야 했다. 만화방으로 시작해 부대찌개 음식점까지 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또 다른 일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급여의 많고 적음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월 40만원을 받으며 작은 회사 조경관리사로 취업해 매일 아침 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회사 마당을 쓰는 마당쇠 역할도 했다. 일당을 벌으려 MBC 드라마 의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퇴직 후 10년간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 용도변경된 삶을 살기로 하다
필자의 나이 57세 때 두 친구를 갑자기 잃었다. 모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어느 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했다. 퇴직 후 잡다한 일을 하며 보낸 10년을 되돌아보았다. 분명 열심히 살았으나 세월만 쏜살같이 지나가고 내로라할 만한 성취는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두 친구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았다. 100세 장수시대에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후반 인생을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40, 50년이 될지도 모르는 노후의 긴 시간이었다. 필자와 같은 세대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것은 내 인생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사는 삶이었고, 타인을 위한 용도, 즉 타(他) 용도로 사는 삶이었다. 뒤늦게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주인공으로 내 인생을 살아보자!” 필자는 먹고사느라 오래전에 접어둔 꿈을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은 꿈을 실현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사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은퇴하면 언덕배기에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 꿈과 유사한 사진으로 바꾸었다. 붓 대신 카메라를 든 인생 2막의 길이었다.
60세에 늦깎이 사진작가가 되다
필자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자연과 함께하며 감성을 키웠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수채화를 자주 그렸던 기억이 있다. 사진은 직장에서 홍보 업무와 사보편찬 업무를 담당할 때 흥미를 키웠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60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사진을 배울 용기를 가졌던 것 같다. 2010년 7월, 필자는 고양시 무료사진 교실에 참여했다. 환경은 열악했다. 초보자 솜씨에 카메라 장비 또한 콤팩트 카메라가 전부였다. 함께 공부한 다른 수강생의 고가 카메라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과 형편을 인정하고 사진 실력 향상에만 몰입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3개월 후부터 공인 사진작가 공모전에 도전했다. 공인 사진작가 인증을 받으려면 공모전에 출품해 입선이나 입상으로 일정 점수를 얻어야 했다. 이 목표를 이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일 년에 스물여덟 번 응모해 절반을 낙선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멈추지 않고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1년 9월에 드디어 인증을 받아 공인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도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진을 배운 지 3년째 되던 해 국전에 입선했고 부산일보가 주최한 전국사진대전에 출품한 작품 ‘닭장’이 좋은 심사평으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주관한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사진 부문에서 ‘몰입’이라는 작품이 우수상으로 뽑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러한 결과의 이면에는 사진을 통한 재능기부가 큰 역할을 했다. 좋은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스스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게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었다.
40만장을 찍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2010년 7월부터 지금까지 6년 4개월을 매일같이 사진에 빠져 살았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의 숫자는 무려 40만장에 이른다. 역산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00여 장을 찍어야 나오는 숫자다. 어느 날은 파파라치로 오인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뒤늦은 나이에 도전해 좌절과 고난의 순간도 있었지만 몰입하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24일에는 KBS 1TV 에 사진작가로 출연함으로써 삶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사)은퇴연금협회와 머니투데이 방송이 주최한 ‘The Senior 2016’에 사진 전시 초대를 받아 ‘카메라로 그린 수채화 10선’을 주제로 사진을 전시했다. 판매 목적이 아니었는데 작품 모두가 팔려나가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사진을 바탕으로 명강사에 도전장을 내밀다
카메라를 들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이 짧기만 하다. 이제 사진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되었고 카메라는 필자의 또 다른 친구다. 100세 장수시대가 두렵지 않다. 은퇴 전의 직업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뒤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참 잘 선택한 결과가 됐다. 이후 필자는 사진을 바탕으로 또 다른 영역 확대를 꾀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한 여가관리의 모범적 사례가 되면서 그 경험을 배우려는 퇴직 예정자와 은퇴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62세에 또 다른 분야인 강사 활동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여가설계, 변화관리 강사로 활동을 넓혀나갔다. 이제는 사진작가로서의 활동보다 강사로서의 활동이 더 많아져 기업체와 국가 산하 인력개발원, 대학교의 평생교육원, 사회종합복지관 등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KBS 1TV , SBS라디오 러브에프엠의 프로그램에 3년간 고정 출연, 토마토TV와 머니투데이 방송에서 특강, 한국직업방송 로 출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을 기회로 전환하는 ‘용도변경’의 삶이 성공의 핵심
필자는 사진작가, 강사로서 삶의 보람을 만끽하면서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제2직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전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과거를 내려놓고 현실을 인정하며 몸집 줄이기(다운사이징)로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용도변경’의 생활 방식이 성공의 핵심 역할을 해줬다. 뱀이 고통을 참으면서 허물을 벗어야 살아갈 수 있듯 환경 변화에 대한 꾸준한 자기 변신, 즉 용도변경을 통한 2차 성장은 인생 2막의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라 생각하고 실천한 결과다.
베풀고 나누면서 다 쓰고 가리라
필자의 오늘은 많은 사람의 도움과 은혜로 이루어졌다. 이제 그 은혜에 보은할 할 때라 여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경험과 지혜를 베풀고 나누는 사회공헌을 위해 또 다른 용도변경, 즉 ‘공(公)용도’를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의 하나로 두 권의 책, 와 를 출간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가보지 않은 길도 많음을 느낀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며 도전을 멈추지 않으리라. 필자의 소소한 경험담이 같은 길을 가려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