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한류의 열풍이 있기까지, 나라를 잃은 환난 속에서도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깃든 한의학의 발전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숨은 영웅들이 있다. 자생한방병원은 항일투쟁과 한의학 발전에 평생 헌신한 한의사이자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의 선친인 청파 신광렬 선생(이명 신호, 신현표)의 일대기를 다룬 ‘달이 즈믄 바람에’가 출간됐다고 4일 밝혔다.
청파 신광렬 선생은 1930년 3·1운동 11주년 기념 만세운동 참여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뒤 만주에 광생의원을 개원하고 8년 동안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가 치료에 힘썼다. 이후 숙부인 신홍균 선생(이명 신흘, 신굴)과 협력하며 항일연합군부대에 독립운동 군수품과 자금을 조달하는 등 구국 활동에 발 벗고 나섰다.
해방 후에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청파한의원을 개원해 낙후된 농어촌 지역의 의료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민족 의학인 한의학을 되살리는 것에 사명감이 있었으며, 아픈 이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긍휼지심(矜恤之心)’ 정신과 의술이 아닌 인술을 펼쳐야 한다는 유지를 남기고 1980년 작고했다. 그리고 그간의 공헌과 업적이 인정돼 지난해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 서훈을 받았다.
이번 평전은 장남 신준식 박사가 신광렬 선생으로부터 들은 증언과 신광렬 선생이 집필한 ‘월남유서’, ‘청파험방요결’을 기초로 한 생생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작성됐다. 또한 차남인 자생의료재단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잠실자생한방병원장)이 3년 동안 중국 연변자치주 정부 자료실에서 수집한 자료와 일본 육군성 특별도서관에서 찾은 문헌, 사진 등 다양한 자료도 활용돼 신광렬 선생의 일대기를 더욱 생동감 있게 스토리텔링 한다.
총 1부와 2부로 구성된 ‘달이 즈믄 바람에’는 신광렬 선생뿐만이 아닌 그의 독립운동 활동에 큰 영향을 준 신홍균 선생의 업적도 다룬다. 독립군 ‘대진단’의 단장이자 한의 군의관이었던 신홍균 선생은 3대 독립군 대첩 중 하나인 ‘대전자령전투’에서 검은버섯(목이버섯)을 발견해 병사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사기를 올리는 등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2020년 11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았다.
신광렬 선생의 작고 후 신준식 박사는 1990년 자생한방병원의 전신인 자생한의원 개원부터 현재까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선대의 유지를 굳건히 이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국내 최대 공익한방의료재단인 재단법인 자생의료재단도 설립해 국가유공자와 후손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도움이 필요한 사회 곳곳에 따듯한 손길을 전하고 있다.
저자인 신상성 작가는 “신광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달이 즈믄 바람에’를 통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의사들의 독립운동 사실과 그 가족들이 겪은 고초를 파노라마 필름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했다”며 “시대가 변하며 점점 잊혀지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뜨거운 정신이 이번 평전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네의 인상주의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을 처음 본 당대 사람들은 ‘예술이 아니다’, ‘낙서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시간이 흐른 뒤 대중은 그들을 ‘창시자’라 일컬었고, 작품들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이들은 저마다 산통을 겪는다. 그리고 여기, 모바일 아트로 미술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남자가 있다. 국내 최초 모바일 아티스트 정병길(69) 씨다.
어떠한 창조적 본능이나 이끌림 같았다. 정병길 씨가 그림을 그린 까닭 말이다. 학창 시절 다른 숙제는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그림이나 공작(工作) 과제는 눈을 반짝이며 해냈다. 슥슥 휙휙 그렸다 하면 사생대회 1등은 떼놓은 당상. 뛰어난 실력에 담임선생님이 미대를 권유한 적도 있었다. 물론 뜻이 없진 않았지만, 당시엔 다른 꿈이 더 앞섰다. 우장춘 박사처럼 훌륭한 육종학자가 되어 농촌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버렸다.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세가 기운 탓이었다. 원하는 전공보다는 장학금을 주는 농협대학을 택했고, 곧장 밥벌이를 시작했다. 30여 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화실까지 마련해가며 붓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이란 목표로 하는 꿈보다는 오래 지니고픈 로망이었기에 쉬이 접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도 여느 직장인처럼 인생 1막을 정리할 때가 다가왔다.
“농협 지점장까지 하다가 2010년에 은퇴했어요.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그만두고도 2~3년 더 일할 자리를 마련해줬거든요.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텐데, 당장 몇 년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눈 한번 질끈 감고 일자리를 사양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써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저성장 양극화 시대에, 그것도 무명인이 문예활동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여긴 게 큰 착오였죠.”
박수 받은 창직, 현실은 맨땅에 헤딩
정병길 씨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재주도 남달랐다. 당초 그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해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은퇴 후 1년 동안 칩거하며 쓴 글을 ‘내 아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2년 뒤엔 두 번째 책 ‘이젠 아빠를 부탁해’를 펴냈다.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그림으로는 ‘상하이아트페어’, ‘대한민국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개인전도 열며 초석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그 역시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유명 작가가 아니니 결국 홍보 문제다 싶더군요. 신문 광고도 몇 번 냈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죠. SNS를 배워 직접 홍보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관련 강의를 듣다 만난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이 모바일 미술 앱을 소개해줬습니다. 태블릿 PC에 떠듬떠듬 그려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당시 강사에게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여줬더니, 모바일 미술을 업(業)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그게 창직의 신호탄이 된 셈이죠.”
‘모바일 미술’(아트)이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된 그림 앱을 이용해 창작한 미술이나 예술을 말한다. 물감, 붓, 캔버스나 이젤 등이 필요 없고, 그 덕분에 별도로 화실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이나 SNS상에 작품을 게시하거나, 출판물에 사용하기도 하고, 캔버스나 종이 등에 출력해 유화나 수채화처럼 전시할 수도 있다. 그런 모바일 미술이 정병길 씨에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친김에 정보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입소문을 탄 장르였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했다. “옳거니!” 창조적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렇게 개척자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모바일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선생님도 없었어요. 거의 독학으로 기법을 습득하고 펜업(삼성전자 그림 공유 서비스) 도움을 받았죠. 작품을 만들어 뭔가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 분야를 알리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SNS에 강좌 정보를 올렸더니 수요가 꽤 있더군요. ‘그러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섰죠.”
그렇게 ‘모바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탄생시켜 이를 개념화하고, 강좌와 전시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시대가 발전하며 모바일 미술용 앱과 플랫폼이 더욱 다양해졌고, 관련 툴(Tool)이나 출력 기술이 정교해지며 이 분야는 상승세를 탔다. 혹자는 찰나의 아이디어가 운때 맞았다 여길지라도, 이는 나름의 안목을 갖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얻은 선물과 같다. 그 성과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이라는 결실도 얻었다.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척자의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에요. 미술계는 기득권의 장벽이 높고 굳건하니까요. 그런데 과거 예술 분야 개척자들을 보면, 대부분 목숨 걸어가며 단초를 마련하잖아요. 저는 아직 모바일 미술 때문에 목숨까지 건 적은 없지만, 돈은 참 많이 까먹었습니다.(웃음) 노후에 도움 되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리스크가 될까봐 걱정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와닿더라고요.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전하긴 해도 뭔가 즐거움이 없잖아요. 그거야말로 노후 리스크죠. 그래서 기왕 시작한 거 최대한 부딪혀보려 합니다.”
‘NFT, 줌’ 신기술과 만나는 모바일 아트
현재로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보단 투자하며 판로를 개척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차 모바일 아티스트가 촉망받는 직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과제인 셈이다. 현재 작품을 판매하거나 저작권료로 얻는 소득은 높지 않다. 그보다는 학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과 직업을 알리는 강의를 통한 수입이 주가 된다. 여타 예술처럼 경매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평가받아 높은 금액이 책정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생소한 분야인 데다, 작품의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가령 일반적인 경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지만,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그림 파일을 종이나 다른 소재에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바일 미술의 가치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까?
“판화 역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잖아요. 대신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고, 찍는 순서대로 숫자 표기와 서명을 남기죠. 가령 판화 아래 1/10이라고 표기돼 있다면, 10개 찍은 작품 중 첫 번째 에디션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판화의 개념으로 가치를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또 실크스크린 판화는 판면의 구멍에 잉크를 넣어 찍는데, 이 기법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죠.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작품이라도 툴을 이용해 색이나 요소를 수정하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쉽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는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개념을 접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근래 디지털 수집품 거래가 활발해지며, 이러한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구로 NFT가 사용되고 있다. 미술 시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추세다. 모바일 미술 작품의 경우 파일 형태로 저장돼 NFT로의 변환이 용이하다. 정병길 씨 역시 이러한 장점을 살려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집중한 아이템은 바로 ‘줌’(Zoom,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주로 방과후교실이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모바일 미술을 가르쳤는데,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줌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첩하게 태세 전환을 하고 기술을 익힌 그는 이제 줌에 관해서도 반전문가가 됐다. 최근 2년 사이 ‘줌을 알려줌’, ‘줌 활용을 알려줌’이라는 줌 활용서를 두 권이나 펴냈으니 말이다. 물론 줌 역시 모바일 미술과의 접점을 꾀하고 있는 그다.
“제 목적은 모바일 미술의 매력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건데, 그동안 시공간의 제약이 많았거든요. 특히 섬이나 농어촌에 사시는 어르신처럼, 문화 수혜 격차를 겪는 지역민에게 줌으로 모바일 미술을 전파하려고 해요. 또 그런 분들도 모바일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줌 전시회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꼭 전에 없던 무언가를 해야만 창의적인 건 아니에요.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접목하느냐에 따라 창작과 창직이 가능하다고 봐요.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신기술과 잘 연결 지으면 누구든 저처럼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정병길 씨는 2020년 설립한 모바일아티스트협동조합을 통해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고, 장차 자격증 발급 절차 등도 논의해볼 방침이다. 그런 그가 모바일 아티스트로서 갖는 최종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모바일 아티스트가 가장 많은 나라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 어쩌면 자칫 거대한 포부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BTS(방탄소년단)를 비롯해 가수들의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곳곳에 노래방이 즐비한 나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일상에 스며든 예술이 결국 거대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노래방에서 노래하듯 모바일을 통해 손쉽게 미술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우리 동네 가수처럼, 우리 모두 저마다 작은 예술가가 되는 거죠.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 예술 감수성을 깨우고 자유롭게 표현해야 삶이 풍요로워져요. 많은 중장년이 모바일 아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중에도 그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20초 남짓한 짤막한 순간에도 무언가를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을 무위(無爲)로 흘려보낸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 또한 목표라 답한다. 어딜 가든 획 하나라도 긋고 오는 게 목표라고. 그 말을 들으니 수많은 획이 켜켜이 모여 언젠가 미술계에 큰 획을 긋게 될 정병길 씨의 모습이 더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는 시간. 하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조급함이 없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아직 인생은 늦지 않았으니까.
“모지스 할머니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내놓은 작품만 1600점이 넘는다고 해요. 그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렸다고 하고요. 그분의 삶은 제게도 큰 영감과 희망을 줍니다. 제가 힘을 얻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말을 독자분들께 공유하고 싶네요. 여러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피딩족(경제적 여유가 있고, 육아를 즐기며, 활동적이고, 헌신적인 조부모), 헬리콥터 그랜마·그랜파(손주의 교육부터 패션까지 챙기는 조부모) 등 황혼육아 관련 신조어들이 등장하며 그야말로 할류열풍(손주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조부모)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과연 이러한 흐름은 중장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은 ‘적당한 돌봄’의 경우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체력 저하나 여가 축소, 노후 재정 문제, 자녀와의 갈등 등 부정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외 조부모 육아 실태조사를 통해 ‘금빛’ 황혼육아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
ㆍ조사 기간 : 2022년 7월 29일~8월 4일 ㆍ조사 대상 : 손주를 돌보는 55~69세 조부모 302명
ㆍ조사 기관 : 한국리서치 ㆍ조사 방법 : 온라인 설문 ㆍ표본 오차 : 신뢰수준 95.0%, ±5.64%
서울, 경기, 인천 거주 만 55세 이상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을 대상으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이번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가 맞벌이 자녀를 돕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육아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로 74.8%는 "맞벌이 자년를 돕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평균 주 3회 이상, 하루 6.8시간, 1년 이상 손주를 돌보고 있었다. 응답자 중 70.4%는 코로나19 사태로 육아 부담이 더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벌어진 맞벌이 부부 자녀 돌봄 공백을 조부모 세대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조부모 육아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양상도 달라진 모습이다. '남아선호사상'이나 '친손주만 내 핏줄'이라는 뿌리박힌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손주의 성별은 남자 48.7%, 여자 51.3%로 유사했고, 응답자 중 94.6%는 육아 참여에 성별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또, 손주와의 관계는 외가(67.2%)가 친가(32.8%)보다 2배가량 높았으며, 5명 중 1명은 할아버지가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경혜 서울대 명예교수는 “과거엔 ‘친손주’라는 의식이 강해 외가보다 친가에서 아이를 맡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다. 부계 중심에서 최근 양계로 바뀐 시대 흐름과 더불어, 주 양육자인 엄마 입장에서 더 교류가 편한 친정 쪽에 육아를 부탁하는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주 돌봄 시간과 주기 등에 대해 “결국 황혼육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손주의 연령(발달단계)과 양육보조자의 유무 등이다. 유아기 손주의 경우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반면 손이 많이 가 다른 시기보다 육아가 더 힘들 수 있다. 게다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독박육아라면 그 고충은 더 심해진다. 최근에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많이 사라지며 할아버지의 육아 참여가 늘었다. 그렇게 곁에서 함께 돕는 이가 있느냐, 또 얼마나 돕느냐에 따라 육아의 질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20 도쿄패럴림픽 개회식,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우리 선수단 모습에서 한국의 자부심과 아름다움이 뿜어 나왔다. 은은한 분홍빛의 훈색 저고리 자켓과 대님바지, 호랑이 문양과 금빛 동정까지, 유니폼 곳곳에 우리 전통의 멋스러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수단 단복은 전통적인 기존 스타일에 편안함을 더했다.
최근 한복은 전통한복과 개량한복으로 단순하게 나뉘던 과거와 달리, 신(新) 한복, 패션 한복, 모던 한복 등 다양한 이름과 디자인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이 중 시니어들을 사로잡는 키워드는 바로 ‘생활한복’이다.
생활한복은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한복을 재해석했다. 한복이 대중화하고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비단저고리 대신 한복셔츠와 한복자켓을, 긴 속치마 대신 허리치마와 원피스로 부담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최근 생활한복이 패션계와 의류산업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생활한복? 개량한복과 뭐가 달라?
‘생활한복’은 이전부터 ‘개량한복’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생활한복과 개량한복은 전통한복을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바꿔 입는 한복이라는 점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용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근대화를 맞이해 한복의 실용성과 변화를 강조하면서 ‘개량한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개량’이라는 용어는 ‘나쁜 점을 보완해서 고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개량한복이라는 단어는 ‘뭔가가 나빠서 고친 한복’이라는 의미를 담게 된다. 개량한복의 출발점인 전통한복은 불편함이 있을 뿐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량한복’은 지양해야 하는 용어로 인식됐다.
‘생활한복’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다가 1996년 12월 문화체육부가 ‘한복입기’를 추진하면서 공식용어로 지정했다. 생활 속에서 편하게 입도록 한 한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상복으로 생활화하는 '생활한복'
최근 생활한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끈 대표적인 대중스타는 총 23개의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다. 이 그룹은 지난 2018년 발표한 ‘아이돌’(IDOL) 뮤직비디오에서 전통 기와 무늬를 새겨 넣은 퓨전한복을 의상으로 선택했다. 이후에도 멤버 슈가의 솔로곡 ‘대취타’의 뮤직비디오, 2020년 9월 출연한 미국 NBC 인기 프로그램 ‘지미 팰런쇼’에서도 한복을 선보이며 한국의 멋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화려한 무대의상으로 쓴 한복 외에도 일상에서 생활한복을 입으면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19년 멤버 정국은 일본 오사카 공연을 위해 출국 시 생활한복을 입고 공항에 나타났다. 수많은 취재진들 앞에서 ‘사복패션’으로 생활한복을 선보이며, 한국 전통의상의 편리함과 멋을 전 세계에 홍보한 셈이다.
지난 8월 24일 2020 도쿄패럴림픽 개막식에서는 우리 선수단이 한복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면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올림픽 역사에서 처음 선보인 한복 유니폼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단복은 우리 선수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한복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날에만 입는 ‘행사복’의 특성이 강하다. 그런데 최근 생활한복은 이런 개념을 넘어 실제 일상에 가까워지며 친숙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교육부는 지난 2019년 2월부터 업무협약(MOU) 체결해 ‘한국교복 보급 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2020년에는 강진 작천중학교와 예천 대창중학교 등 16개 학교 2300여 명이 한복교복을 입었다.
또 문체부와 한복진흥센터는 한복의 생활화와 시장성을 넓히기 위해 지난 2020년부터 한복근무복을 개발했다. 문체부는 지난 5~6월에 문화역서울284 아르티오에서 한복근무복 전시회를 개최하고, 한복근무복으로 한복 생활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복근무복은 일반 국민 또는 관광객과 만날 기회가 많은 문화예술기관에 시범적으로 먼저 보급하고 있다. 이후 여행업·숙박업 등 근무복을 통해 한국적 이미지를 알릴 수 있는 기관과 단체 등과 협업해 순차적으로 보급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떠오르는 생활한복, 인기 비결은?
생활한복 대표 브랜드 ‘돌실나이’의 김남희 대표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생활한복에 대한 뜨거운 인기 이유로 ‘K-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꼽았다.
K-팝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가 세계로 확산하며 K-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한국인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한국 문화를 세계적으로 더 알리려는 바람에서 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더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향력이 큰 한류스타들의 한복착용은 더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인터넷 검색 추이를 나타내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6월 말 기준 전 세계 ‘한복(Hanbok)’을 키워드로 검색한 횟수가 최근 1년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유명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선보인 ‘How You Like That’이 발매된 직후다. 블랙핑크의 한복 착용이 평균적으로 45점에 불과했던 검색 점수를 100점까지 급증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정국의 생활한복 패션 역시 파격적인 연쇄효과를 일으켰다. 정국이 입은 생활한복 브랜드 ‘지장사’는 정국의 공항패션이 공개된 이후 공식 온라인 쇼핑몰 서버가 다운됐으며, 한 달 이상 배송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연이은 ‘동북공정’ 논란도 생활한복 열풍에 영향을 미쳤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자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추진한 역사, 문화 왜곡 연구 프로젝트다. 중국 정부는 한국 고대사와 한국 고유 문화를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편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며, 지속적인 논란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20년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한 인플루언서가 “한복이 중국 한족의 전통의상인 ‘한푸’를 베꼈다”는 주장을 펼쳐 공분을 일으켰다. 이어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 전통 문화에는 명나라 양식의 유물이 남아 있으며, 의류 문화 유물은 중국과 같다”며 “이것이 한복의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며 한복을 중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논리를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0년 방영된 중국 명나라 배경의 한 중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갓과 망건을 쓰고 나왔다. 같은 해 중국에서 제작한 모바일 게임에서는 한복을 중국 전통 의복이라 소개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이러한 동북공정은 국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에 더 큰 불을 지폈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지난 6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대형 전광판에 김영진(차이킴) 한복 디자이너가 제작한 한복이 담긴 광고를 띄웠다.
이 같은 중국의 부당한 논리로부터 ‘K-컬처’를 지키고 한복 알리기에 대중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내 누리꾼들은 SNS에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는 ‘#한복챌린지’를 잇따라 올리며, 한복이 한국 고유 문화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대중의 이러한 관심은 국내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최초로 생활한복을 출시한 ‘스파오’의 신제품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인 와디즈에 따르면 스파오의 생활한복은 펀딩 목표치의 1만7000%에 달하는 펀딩액을 받을 정도로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생활한복은 업계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돌실나이의 김 대표는 “국가 경쟁력은 우리 문화에 대한 정체성과 애정이 뚜렷할 때 생긴다”고 말했다. 생활한복이 대중의 관심이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뛰어 넘어, 우리 문화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정체성을 담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있을 만큼 떡볶이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궁중의 격식 있는 명절 요리에서 서민의 음식이 되기까지 변화의 뼈대에는 서민의 삶과 문화가 함께했다. 대한민국과 더불어 산전수전을 겪으며 변화하고, 더 나아가 세계에서 사랑을 받는 K떡볶이. 떡볶이의 역사와 함께한 시니어들의 추억을 따라 K떡볶이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떡볶이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돼 지금은 수많은 떡볶이 가게가 존재한다. 바야흐로 떡볶이 전성시대다. 한 음식 메뉴가 프랜차이즈화하며 크게 확장됐다는 사실은 시장성과 경제성이 충분하다고 평가됐음을 의미한다.
2010년대 초반 등장한 배달 서비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배달 앱에서 상위 메뉴에 항상 떡볶이가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떡볶이 수요는 2020년에 2019년보다 15%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변화 덕에 골목 안쪽에 속속 숨어있던 떡볶이 가게들이 이제는 대로변에 당당히 자리잡았다. 작은 동네에 있는 영세 가게에서 거대한 비즈니스로 성장한 셈이다.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요즘 떡볶이’
떡볶이가 간식에서 요리로 거듭나고 있다. 고추장뿐 아니라 크림과 로제, 마라 같은 다양한 소스로 맛을 내고, 풍성한 재료와 식감을 살려주는 사이드 메뉴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로제 열풍’이 불면서 떡볶이 프랜차이즈들이 앞다퉈 로제 떡볶이를 출시했다.
로제소스는 토마토소스에 크림을 섞은 것으로, 분홍빛을 띠고 있어 프랑스어로 '핑크빛'을 뜻하는 ‘로제(Rose)’라는 이름이 붙었다.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 두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며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로제 소스에 토마토 대신 고추장을 넣는다. 우리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국식 로제’인 셈이다. 로제 떡볶이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까지 사로잡으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로제 떡볶이에서 시작된 로제 열풍은 로제 찜닭, 로제 닭발, 로제 돈가스처럼 다양한 파생 메뉴를 탄생시켰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SNS(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서는 로제 시리즈 ‘먹방(먹는 방송)’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떡볶이로 시작한 ‘K로제’, 인기 비결은?
로제의 유행은 지난 1~2년간 식품업계를 휩쓴 중국식 매운맛 ‘마라(麻辣)’의 연장선에 있다. 맵고 짠 맛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는 더 자극적인 맛을 찾고 있다. 하지만 마라 맛은 호불호가 갈린다. 특유의 이국적인 향 때문에 아예 못 먹는 사람도 있다.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는 “한국식 로제 소스의 기본 바탕은 고추장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한국식 로제는 비교적 호불호가 적다. 크림의 유지방이 고추장·고춧가루의 매운맛을 완화해 주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끼하지도 않아서다. 하얀 크림소스보다는 한국인의 대중적인 입맛에 더 잘 맞는다.
53세 A 씨는 “딸이 요즘 유행하는 떡볶이라며 하도 같이 먹자고 해서 먹어봤다. 화사한 장밋빛이라 일단 눈이 즐거웠다. 고추장의 매콤한 맛에 우유와 생크림의 고소함이 더해져 살짝 달콤한 맛도 느껴졌다. 마치 서양 요리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밝혔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이유 중 하나다. 떡볶이처럼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한식에 사용할 수 있다. SNS에서는 농심 신라면을 활용한 ‘로제 신라면 레시피’가 화제다. 신라면에 우유나 생크림, 고추장을 살짝 넣어서 끓이는 조리법이다. 일반 가정 집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만한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떡볶이를 시작으로 유행한 로제 소스는 여러 음식에 활용되며 세대를 뛰어넘고 있다. 떡볶이가 새로운 음식 유행마저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떡볶이가 국민 음식을 넘어 최근 한류 인기를 타고 세계적인 음식으로도 발돋움하고 있다. 더 다양한 맛과 식감으로 해외 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넷플릭스에 접속하면 종종 알파벳 ‘N’이 붙은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의미하는 표시다. 본사의 순자본을 투자해 제작된 콘텐츠인 만큼 해외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시니어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새로운 모습으로 넷플릭스에 나타났다. 그것도 6개국 버전으로, 알파벳 ‘N’을 달고 말이다. 국내 원작을 세계판으로 확장해 넷플릭스에서 선보이는 것은 거의 최초다. 이 이례적인 협업의 배경은 무엇일까? 시리즈의 총연출을 맡은 진모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Q. ‘님아’ 6개국 버전이 탄생한 계기는?
2015년에 ‘님아’ 원작이 LA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타고, 현지에서 개봉했어요. 당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책임자가 영화를 봤나 봐요. 2017년 컨퍼런스 콜이 왔더라고요. 원작을 감명 깊게 보았다며 ‘님아’의 전 세계 버전을 만들고, 원작자로서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죠.
Q. 넷플릭스와 ‘K-다큐’의 협업이 이례적이다.
원작을 제작할 때도 해외 개봉을 염두에 뒀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의 관객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원작이 전 세계 버전으로 탄생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요즘 한류 열풍으로 국내 드라마나 영화가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되는 경우는 있지만, 다큐멘터리와 손잡은 선례는 드무니까요. 또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는 한 가지 소재를 시리즈화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일종의 금기랄까요? ‘우려먹네’ 하는 시선이 좀 있거든요. ‘어벤저스’는 아무리 우려먹어도 인기가 많은데 말이죠.(웃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원작을 교본 삼아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일은 흥미로운 시도였죠.
Q. 출연자 선정 기준이 있다면?
수십 년 동안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루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니어 부부가 기준이었어요. 이 기준을 바탕으로 각국 감독님들과 출연자를 결정하는데, 브라질 감독님께서 동성 커플을 제안하시더라고요. ‘부부’(夫婦) 콘셉트다 보니 여러 논의가 오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영어 제목은 ‘Six Stories of True Love’(6개의 진실한 사랑)이거든요. 성별을 넘어 오랜 시간 사랑한 ‘커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해 출연을 결정했어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니어 커플은?
스페인 편이 원작 부부와 다른 듯 닮은 구석이 많아서 기억에 남아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올리브 농사를 짓는 부부죠. 원작 부부처럼 고령에도 서로에게 헌신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러다 노화가 찾아오면서 각종 어려움을 맞이하고, 잘못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죠. 그 역경을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더라고요. 사랑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와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Q. 6개국 커플에 공통점이 있다면?
남편이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아요. 성격이 부드럽고 다정하죠. 흔히 말해 ‘지고 산다’고 하는데, 사실 이 말도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관점이에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식의 시혜적인 태도가 반영된 말이거든요. ‘님아’ 시리즈의 남편들은 지고 산다기보다 아내와의 관계가 그 자체로 평등해요. 동성 커플도 마찬가지죠. 평등한 소통과 적당한 유머가 오랜 세월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Q. 작품을 본 시니어 커플이 느꼈으면 하는 바는?
작품을 보며 배우자와 비교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대방에게 완벽한 인격체가 되기를 요구하기보다는 ‘나는 상대방에게 그러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부처님, 예수님 같은 사람을 만나도 자신이 그 복을 받을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거든요. 무엇보다 작품 속 커플의 모습을 정답처럼 여기기보다는 참고할 만한 사랑의 교과서나 나침반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사랑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다큐멘터리 시리즈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장르 다큐멘터리 총괄제작 진모영
컨설팅 프로듀서 김선아 제공 넷플릭스
경제 성장이 절실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앞만 보고 달렸더니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한 마리로 불렸다. 고도성장을 과시하듯 연이어 열린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전쟁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낸 듯 우리나라가 함박웃음 짓던 그때. 우리를 동경하던 대륙의 청년이 있었다. 한국의 발전상이 그저 궁금했을 뿐 저 먼 미래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눈 맑은 청년. 훗날 그는 한류 문화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한류를 파는 중국인, 중국 온라인 패션 기업 한두이서(韓都衣舍) 두정국(杜廷國) 부회장을 만났다.
한류 때문에 하루가 바쁜 사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빡빡합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직접 상담하다가 돌아갑니다.”
한국에 오면 주로 뭐하냐는 질문에 재미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 패션계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온라인 기업 한두이서그룹주식유한공사(이하 한두이서) 공동 창업자이자 부회장의 서울 일정이 야박할 정도로 쉴 틈이 없다. “그저 일만 하다 간다”는 넋두리가 여운처럼 슬며시 깔린다. 알고 보면 사정이 딱하지도 않다. 한국에 오기 위해 이용하는 중국 칭다오 류팅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한 시간 거리. 중국 내 출장보다 가까워 당일 출입국이 가능할 정도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두정국 부회장에게 대한민국 서울은 나쁘지 않은 업무 장소다.
“한국 분들이랑 짧게 몇 마디 정도 대화하면 제가 한국 사람인 줄 알더라고요. 얘기가 깊어지면요? 그때는 중국놈으로 알아챕니다!(웃음)”
중국 사람을 낮춰 부르는 표현도 넉살 좋게 쓰는 것을 보면 한국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두정국 부회장은 한국 기업과 한두이서 사이 소통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며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최근 한국 콘텐츠 회사와의 만남은 물론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패션 업체와의 선약으로 한국 방문이 부쩍 잦아졌다.
시니어 패션도 한류다
한두이서(韓都衣舍)는 ‘한국 옷을 파는 집’이란 뜻이다. 2006년 온라인 전문회사로 창립해 2년 뒤인 2008년 본격적인 한류 패션 전문 쇼핑몰로 새 단장했다. 중국 온라인 패션 업계 1위 자리를 꿰찰 만큼 성장가도를 달리는 중.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지 스튜디오에서 한국인 모델을 기용해 촬영한 이미지로 한두이서 홈페이지(handu.com)를 채우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이 죄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친근함이 묻어난다. 한두이서가 특히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이유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 전지현, 지창욱, 박신혜 등을 피팅 모델로 발탁했다는 점. 배우 전지현은 지금도 한두이서를 대표하는 모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출에서도 한두이서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룹 내 자체 브랜드 16개 중 하나인 ‘H스타일’은 이용 회원만 1700만 명, 연간 매출은 우리 돈으로 3500억 원이 넘는다.
한두이서 홈페이지에는 매일 한류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유아, 어린이, 시니어 브랜드에 이르는 제품들이 각각 100개 이상 업데이트된다. 특히 ‘H스타일’ 못지않게 시니어 패션 브랜드의 활약도 눈부시다.
“4, 5년 전에 꽃중년 여성을 겨냥한 한류 스타일의 브랜드 디큐나(Dequanna)를 런칭했습니다. 젊은 중국 여성 패션이 한국과 큰 차이가 안 나는 반면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중년 패션은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그것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탤런트 윤해영 씨가 ‘디큐나’ 홍보모델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큐나의 실제 구매자는 누구일까? 바로 H스타일에서 옷을 사 입는 시니어의 자녀들이다.
“스스로 옷을 사 입는 시니어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구매합니다. 우리 메인 브랜드인 ‘H스타일’ 회원만 1700만 명이고 한두이서몰 전체 회원이 4000만 명입니다. ‘H스타일’에 들어왔다가 ‘디큐나’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입는 옷에도 눈이 가는 것이죠.”
현재 중국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시니어 패션 브랜드 중에서 ‘디큐나’가 1위라고 두정국 부회장은 말했다. 1위가 아니면 배우 윤해영을 어떻게 쓰겠냐며 시원하게 웃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류를 알아보다
두정국 부회장이 배우 윤해영을 설명하면서 MBC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 나왔던 배우라고 소개해서 적잖이 놀랐다. 1990년대 후반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이지만 한류 드라마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 그렇다면 한류 전문가 느낌이 물씬 나는 두정국 부회장은 언제부터 한국을, 한류를 직감한 것일까?
“한국을 알게 된 건 한류 열풍이 불기 아주 오래전 전부터죠.”
이웃 나라 한국의 성장이 궁금했던 두정국 부회장은 한국을 알고 싶은 마음에 1993년 산둥대학교 외국어학원 한국어학과에 진학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어학과가 신설됐으니 한국어를 배운 첫 번째 세대다. 한류 전문가로서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뭔가 멀리 봐서 전공을 결정한 거라기보다는 한국의 빠른 성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운 것이 운명이었던 것이죠. 마침 우리 회사 조영광(趙迎光) 회장님도 같은 학과, 같은 반 출신입니다. 유학덕(劉學德) 한국지사장은 기숙사 룸메이트였고요.”
한국어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됐다.
“1980~90년대, 중국에서는 홍콩류나 일본류가 있었습니다. 오래가지 못했어요. 인기가 좀 생기나 싶었는데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국어를 전공한 저와 회장님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문화는 다른 나라의 유행과 달리 침투력이 강했습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정부도 국가 정책으로 문화 관련 사업에 투자를 많이 했고요. 유행이 오래갈 것으로 판단했고 사업 콘텐츠로 삼기로 했습니다.”
한류 패션을 지탱하는 것은 한류 문화라고 두정국 부회장은 목소리에 힘을 줘 강조하면서, 한류 패션은 한류 문화, 드라마, 연극, 영화 등으로 시작해 패션으로 뻗어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스타에 대한 친근함도 중국 스타와 비교되는 점이었다고.
“중국 일반인에게 연예인이란 거리감이 있고 숭배해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한류 문화로 알게 된 한국 연예인은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뭐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대상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노래도 잘하고, 잘 노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는 만큼 한류 패션도 생명력이 있다고 판단했죠. 결국 우리의 판단이 맞았음이 증명되고 있잖아요. 2003년쯤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15년이 지났는데 한류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한류 스타일로 패션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그 노력의 결과로 중국에서 제일가는 온라인 패션 브랜드로 한두이서는 성장했다. 현재는 한류 패션을 넘어서 뷰티와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투명 경영이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든다
두정국 부회장에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마음 관리에 꽤 엄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5년 전부터 철저하게 채식을 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든 도를 닦는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행동하고 사고한다. 두정국 부회장은 본인의 생각이 회사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두이서의 비전은 사원들과 외부 파트너가 꿈을 성취하고 실현하는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임원진과 함께 많은 토론을 거친 부분입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꿈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 문화는 협동으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궁극적으로 직원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면 회사는 자연스럽게 성장합니다. 직원들이 부자가 되면 회사는 더 큰 부자가 되는 거잖아요. 직원이 다 실패하면 회사도 물론 무너지고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주 일가의 갑질과 관련한 이야기가 새어나와 두정국 부회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경쟁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부작용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오래 사업을 하고 싶다면 투명 경영을 해야 합니다. 저희는 대내외적인 투명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모두가 좀 솔직해야죠.”
한두이서는 수직적인 상하관계를 지양한다. 대신 작은 조직체를 많이 만들어서 개별적으로 일을 하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실적이 좋은 팀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이때 원인을 파악해 팀원을 다른 조직으로 분산 배치하거나 개인 실력 차에 따라 조직에 기여하게 한다.
“이것도 자연의 법칙입니다. 순환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는 온라인 시장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두이서는 회사 내 조직이나 관련 외부 업체가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줍니다. 물류, IT, 생산, 홍보 등 다양한 시스템을 지원합니다. 사내 자체 브랜드이든 파트너 업체이든 모두 한두이서의 시스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회사 연혁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빠르게 업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온라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이런 조직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온라인에서는 이런 식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발전 흐름을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
한두이서의 장기적인 목적 중 하나가 빅데이터 자료를 기반으로 한두이서 내부 조직을 포함해 함께 일하는 업체가 더욱 편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성장 중이거나 온라인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교육도 제공하고 온라인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빅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갖췄기 때문에 한두이서가 중국 내 규모가 가장 큰 온라인 브랜드 그룹이 됐다고 두정국 부회장은 설명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업체와 협약식이 있었다.
“우수한 한국 패션 브랜드의 중국 진출을 돕는 것도 우리 일입니다. 오늘은 임블리(부건FNC)와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나라마다 온라인 시장의 규칙이 다릅니다. 무턱대고 진출하면 실패율이 높습니다. 임블리가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회사일지 몰라도 중국 시장에서는 쉽지 않을 겁니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거예요.”
끝으로 한류를 파는 두정국 부회장에게 한류의 수명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냐고 물었다. 뉴웨이브란 이름으로 왔다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타이완류, 일본류, 홍콩류는 늘 있었다.
“제가 50년은 더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 겁니다. 한류의 유통기한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본류나 홍콩류보다는 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류 문화 기반이 이미 잘 닦여 있으니까요. 한류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한류 패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할 것 같습니다.(웃음)”
여행, 사진, 시낭송… 프로급 취미로 쌓은 내공
배우 양미경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덕대학교로 갔다. 배우이자 교수인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몇 번의 약속시간과 장소를 조정해가며 어렵게 만났다. 게다가 그녀는 인터뷰를 싫어해서 8년 만에 처음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이봉규로서는 행운을 잡은 것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8년 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배우는 시크릿(secret)이 있어야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양미경은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사진 촬영은 미리 드라마 촬영 장소에서 따로 해두었지만 연예인들이 인터뷰할 때는 대체로 화장을 하고 세련된 의상을 입기 마련인데 그녀는 마치 방금 운동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온 사람 같았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짐작이 갔다. 바쁘기도 해서 그렇지만 양미경은 촬영 때만 화장을 하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화장을 안 하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녀는 “평상시 내가 소중하니까 피부도 아끼고 화장하는 시간도 아낀다”고 대답하면서 “사극을 하다 보면 가체(加髢)가 무겁고 장시간 정수리 부분을 눌러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할 때는 원형탈모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부연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지금도 TV조선의 주말 사극인 ‘대군-사랑을 그리다’를 한참 찍고 있기에 무거운 가체와 의상, 그리고 분장에 몸이 얼마나 피로할까? 특히 ‘대군’에서도 대비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장식이 더 많고 가체도 더 무거울 것으로 짐작된다.
‘대군’에서 양미경이 맡은 대비 심 씨는 왕자들의 모후로서 조용하고 덕이 있다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궐내 각 처소에 정보원을 심어 치열한 내전 정치를 하는 전략가의 면모가 감춰져 있다.
양미경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가 대비 역할에 딱 어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깊숙이 숨겨진 그녀의 눈빛에서 나오는 내공은 후덕함으로 포장된 정치 9단의 대비 심 씨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대군’은 5월 초에 끝날 예정인데 양미경의 종편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
양미경은 1983년 KBS 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했고 이후 2년간 단역에 출연하다가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 조연을 맡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단아한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사극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3년 한류 열풍을 일으킨 ‘대장금’에선 장금의 스승인 한 상궁으로 열연해서 그해 연기대상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다. 이후 ‘왕과 나’, ‘해를 품은 달’ 등 사극에서 내공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사극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시간의 숨결을 느낀다”면서 시적 표현을 하는 양미경의 단아한 모습이 야구모자와 트레이닝복을 뚫고 나올 기세다.
양미경은 그래서 사극이 좋고, 사극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현재는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작 출연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배우와 교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럼 배우를 하죠!”라고 말하는 그녀. 양미경은 배우로서도 교수로서도 완벽한 프로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련한 연구에 열중한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예술의 성지를 찾는다. 특히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고향에서 그의 대표작 ‘갈매기’를 공연할 때를 잊지 못한다. 체호프의 고향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인 문학으로 격상시킨 체호프가 살았기 때문에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체호프는 ‘멜리호보’에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양미경이 좋아하는 ‘갈매기’를 비롯해 ‘나의 인생’, ‘사할린 섬’, ‘6호실’, ‘사랑에 대하여’ 등이 바로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의 성지가 됐다. 예술가들의 얘기와 여행 얘기로 잔뜩 신이 난 양미경은 화제를 프랑스로 또 금방 옮긴다.
그녀는 화가 고흐를 특히 좋아해서 고흐 마을을 꼭 간다고 말하며 표정이 금방 상기된다. 파리에서 약간 떨어진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Sur-Oise)는 고흐가 18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흐가 인생 말기에 살았던 자그마한 마을이다.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여관(Auberge-Ravoux)’도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고흐는 이곳 2층에서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파
그녀는 예술의 성지뿐만 아니라 자연이 아름다운 아프리카, 몽골, 인도 등도 여행한다. 배우와 교수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여행도 자주 한다. 얼마 전 입춘에 속초와 설악산을 다녀온 그녀는 눈 덮인 산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안 할 거냐?”고 따져 물었더니 “배우 안 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어진 게 감사하긴 하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지만 평생 배우로 살아왔기에 다소 민망한 듯 “남은 인생 배우활동을 충실하게 할 것이다. 배우는 죽을 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봉규는 “교수보다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배우가 좋지만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것 같았다. 흑백 필름을 구입해 직접 인화를 할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다. 그녀가 배우로서 감성을 유지해나가는 배경에는 이 같은 취미생활이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 하나의 프로급 취미생활 시낭송
이같은 연기에 도움이 되는 프로급 취미생활은 또 있다. 바로 시낭송이다. 멋모르고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해서 즐긴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서예전에서 양미경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이해인 수녀의 시 ‘우정일기’와 ‘차를 마셔요, 우리’를 낭송했다. 2006년에는 시낭송을 포함한 음악앨범도 냈다.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그대에게 가는 길, 양미경입니다’에서 소개한 곡 중 신승훈이 노래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주제가를 비롯해서, 자신이 특히 좋아했던 남자 가수들의 발라드 13곡과 직접 낭송한 3편의 시를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일본에서 먼저 발매되었는데 초기에 수입 물량이 품절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녀는 이 같은 음반 작업을 국내외 팬서비스 차원에서 했음을 밝힌 적이 있다.
그녀는 앨범 작업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작가와 프로듀서와 함께 좋은 음악을 선곡하면서 방송을 했지만, 무언가 한 가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사랑하는 팬들과 조용히 지지해준 국내의 30대와 40대 팬들을 위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쁜 와중에도 팬들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지극정성이다. 인터뷰 도중 교수 라운지에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왔다. 단아하고 내공 깊은 양미경과 여행, 예술 등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중이라 그의 노래가 마치 우리를 위한 BGM(background music)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격조 있는 대화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열중하느라 저만큼 떨어진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를 의식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더니. “나 여기 있어~” 한다. 양미경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대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비비안 리)이 튀어나온 듯했다. 이봉규는 애슐리(레슬리 하워드)로 양미경과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레트 버틀러(클라크 케이블)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에 출연해 사랑스럽고 쾌활한 모습을 보이는 배우 추자현의 남편, 중국 배우 우효광은 ‘우블리’로 불리며 시청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운전사’에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송강호와 함께 주연으로 나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등 외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미국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시청자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릴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외국에서 K-Pop 열풍을 고조시키고 있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레이는 중국 멤버이고, 트와이스의 9명 멤버 중 대만 멤버 쯔위와 일본 멤버 모모, 사나, 미나 등 4명이 외국인 멤버다.
최근 한국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에 출연하는 외국인 배우가 급증하고 한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가수가 늘고 있다. 방송·영화의 외국인 연예인과 외국인 출연은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부상했고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 활동은 대중음악계의 대세가 됐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공연 무대의 일회성 출연에서 벗어나 아이돌 그룹의 지속적 활동과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장기간 출연을 위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연예인도 늘고 있다. 또한,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도 급증하고 샘 해밍턴, 후지타 사유리, 샘 오취리 등 방송 출연을 통해 유명인 대열에 합류하는 외국인도 등장하고 있다.
1970~1980년대에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과 외국인 배우, 가수의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추석 등 명절에 ‘외국인 노래자랑’ 같은 특집 프로그램이나 내한한 외국인 스타의 예능 프로그램 단발성 특별 출연을 통해서다.
1990년대 들어 국제결혼과 직장 근무 등으로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 중 일부가 KBS1 ‘아침마당’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과 한국 문화·생활에 대한 소감을 들려줬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독일 출신 귀화 한국인 이참, 미국 출신 로버트 할리, 프랑스 출신 이다 도시 등은 눈길을 끌어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도 얼굴을 내밀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한류가 본격화하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는 국내 방송과 대중문화계에 진출한 외국인 연예인과 외국인이 증가했다. 중국, 독일, 미국 등 외국 미혼 여성이 출연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KBS2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돼 큰 인기를 끈 것을 계기로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붐을 이뤘다. 또한 KBS2 ‘개그콘서트’의 샘 해밍턴을 비롯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요즘 시청자와 만나는 SBS ‘내 방 안내서’, JTBC ‘비정상회담’, MBC 에브리원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KBS1 ‘이웃집 찰스’, JTBC ‘나의 외사친’, tvN의 ‘서울메이트’처럼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으며 ‘동상이몽2’의 중국 배우 우효광, KBS1 ‘이웃집 찰스’의 일본인 사유리,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호주 출신 샘 해밍턴 등 외국인 출연자가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외국인 배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봉준호 감독 ‘옥자’의 할리우드 스타 틸다 스윈튼, 홍상수 감독 ‘다른 나라에서’의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 나홍진 감독 ‘곡성’의 일본 연기자 쿠니무라 준, 김태용 감독 ‘만추’의 중국 스타 탕웨이, 허진호 감독 ‘위험한 관계’의 중국 배우 장백지, 장훈 감독 ‘택시운전사’의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미국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처럼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하는 외국인 연기자가 많아졌다.
또한 일본 배우 ‘엽기적인 그녀2’의 후지이 미나, MBC ‘구가의 서’, SBS ‘추적자’의 오타니 료헤이처럼 아예 활동무대를 한국으로 옮겨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지속해서 출연하는 외국인 연예인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가수 역시 급증하고 있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아이돌 그룹 멤버 중 10%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K-Pop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걸 그룹 트와이스의 9명 멤버 중 대만인 멤버 쯔위와 일본인 멤버 모모, 사나, 미나 등 4명이 외국인 멤버다. 또한 2PM의 태국인 멤버 닉쿤, 에프엑스의 중국인 멤버 빅토리아, 미국인 멤버 엠버, 엑소의 중국인 멤버 레이, 우주소녀의 중국인 멤버 성소·선의·미기,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와 뉴질랜드인 멤버 로제, 갓세븐의 홍콩인 잭슨, 태국인 뱀뱀, 미국인 마크 등 수많은 외국인이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하며 스타로 부상했다.
방송, 영화, 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계에 진출한 외국인 연예인이 늘어나고 외국인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한류로 인해 한국 대중문화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 연예계에 진출해 쌓은 경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자국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려는 외국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를 비롯한 연예인이 되기 위해 한국을 찾아 연예기획사의 오디션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외국인 수는 엄청나다.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의 국내외 오디션에는 수천 명의 외국인이 참여한다.
외국인을 기용해 한류를 확산하려는 연예기획사, 드라마 제작사 등 대중문화 콘텐츠 관련 업체의 의도도 외국인과 외국인 연예인 출연 프로그램, 영화, 드라마, 음반의 증가를 가져왔다. 모모 등 일본 멤버가 3명이나 있는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태국인 닉쿤이 멤버로 있는 2PM은 태국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등 외국인 멤버가 있는 아이돌 그룹이나 외국인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한류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드러내면서 외국인의 한국 연예계 진출이 붐을 이루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급증도 외국인 방송 출연과 외국인 참여 프로그램 증가의 한 원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1만 명에 달한다. 2006년 53만 명이었던 외국인 인구가 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국내 거주 외국인이 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방송 등 대중문화에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외국인 연예인의 국내 방송과 대중문화계 진출 붐은 대중문화의 지평을 확대하고 한류 진작(振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화 차이, 한국어 부족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엑소를 탈퇴한 중국인 멤버 크리스·루한·타오처럼 소속 계약이나 수입 배분, 대우 등으로 연예기획사를 대상으로 한 외국인 멤버의 법적 소송이나 갈등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외국인 연예인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아지고 있다.
2017년 정유년의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올해는 국정농단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 5월 9일 조기 대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하는 등 격변의 한 해였다. 대중문화계 역시 세월호 특별법 서명, 야당 후보 지지 등의 이유로 송강호, 정우성, 김혜수 등 수많은 연예인을 포함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김여진, 문성근, 김미화, 김제동, 김규리 등 82명의 연예인을 좌파 연예인으로 규정해 여론 조작, 방송계 퇴출 등을 시도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보고서가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또한 사드로 촉발된 중국 당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으로 대중문화 산업계가 직격탄을 맞는 등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2017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유행을 선도한 대중문화 트렌드와 키워드는 무엇일까. 우선 영화계에선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져 흥행에 성공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다. 한국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 병자호란 당시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을 소재로 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 2007년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결의안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용수 할머니의 가슴 아픈 실화를 모티브로 한 , 일제 강점기 일본 하시마 섬에 강제 동원된 800여 명의 조선인 참상을 다룬 ,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으로 가 항일운동에 매진했던 독립운동가 박열을 전면에 내세운 , 198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는 등 청년기의 김구 선생을 다룬 등 많은 영화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뤄 눈길을 끌었다. 가 12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로는 15번째 1000만 영화로 등극하는 등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룬 실화 영화들이 흥행도 호조를 보였다.
올해 방송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 등 검사나 변호사, 재벌 등 권력과 자본의 탐욕과 비리를 다루거나 · 등 언론계를 조명한 작품들과 을 비롯한 갑질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화제가 됐다는 점이다. 이들 드라마는 지도층의 부패가 심각하고 갑질이 심화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대중문화계의 큰손으로 등장한 20~40대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남자 스타들이 압도적 흥행 성적을 거둔 것도 2017년 대중문화계를 지배한 트렌드 중 하나다. 12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송강호 주연의 , 718만 명이 본 현빈, 유해진 주연의 를 비롯해 ··· 등 올해 들어 흥행 상위를 차지하는 영화들이 한결같이 남자 주연 영화였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케이블 TV 드라마 사상 최초로 20%대를 돌파한 공유 주연의 (tvN), 28% 시청률을 기록한 지성 주연의 (SBS), 20%대를 유지한 남궁민 주연의 (KBS2) 등 성공한 드라마 모두 남자 주연 작품이다.
대중의 관심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은 (SBS), (MBC에브리원), (JTBC), (JTBC2), (JTBC), (OLIVE), (KBS1), (TV조선) 등 외국인 출연 예능과 (채널A), ·(tvN), ·(TV조선), ·(E채널), ···(SBS), (KBS2), (KBS드라마), (MBN) 등 연예인의 남편, 아내, 자녀, 부모 등이 출연한 연예인 가족 예능이 대세를 이뤘다. 또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는 ‘욜로(YOLO)’와 혼술·혼밥 등 급증하고 있는 ‘1인 가구’의 문화가 예능 키워드로 등장해 (SBS)에서부터 (MBN)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활용됐다.
2017년 대중음악계는 신세대 가수와 아이돌 그룹의 1970~1990년대 히트곡 리메이크 열풍이 강타했다. 양희은이 1991년에 불러 인기를 얻은 ‘가을 아침’과 1970년대 정미조가 불러 히트한 ‘개여울’이 올해 아이유의 노래로 재탄생해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유는 9월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2’에서 정미조의 ‘개여울’,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등 1970~1990년대 히트곡을 완성도 높게 리메이크해 큰 관심을 모았다.
걸 그룹 마마무의 솔라도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등을 리메이크한 앨범을 발표해 젊은층뿐만 아니라 50~60대 중장년층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올해 대중음악계를 관통한 리메이크 트렌드는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명곡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효과가 높아 대중음악의 수용층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세대 간 이해의 접점을 확대했다.
1996년 H.O.T. 데뷔를 시작으로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990년대 중·후반 본격화한 아이돌 그룹 시대는 2000년대 들어 2PM,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2세대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세대 교체가 됐다. 올해 들어 원더걸스, 씨스타 등 많은 아이돌 그룹이 해체되고 소녀시대의 멤버 서현이 탈퇴하는 등 2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퇴장했다. 올해는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여자친구, 블랙핑크 등 2015년 전후로 데뷔한 3세대 아이돌 그룹이 국내 음악계를 평정하고 K팝 한류를 이끄는 주체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연예계에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큰 사랑을 받던 스타들이 숨져 대중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KBS2 주말극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중견 스타 김영애가 췌장암으로 66년간의 삶을 마무리했다. 46년간 연기자 생활도 끝나는 순간이었다.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천생 배우였던 김영애는 20세에 연기를 시작해 , , , , , , , 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감동을 줬다.
와 사극 등에서 보인 강렬한 카리스마 연기에서 영화 의 일상적 연기까지 스펙트럼 넓은 연기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기쁨을 준 중견 배우 윤소정은 패혈증으로 6월 16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73년의 삶 중 연기자로 살아온 세월이 55년에 이를 정도로 윤소정에게 있어 배우라는 직업은 삶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7년 동안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화면에서 빛나는 조연 연기와 사투리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중견 배우 김지영도 폐암으로 2월 19일 79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2017년 10월 30일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빼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김주혁은 선 굵은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김무생의 아들로 1998년 SBS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드라마 , , , , 영화 , , 등 수많은 작품에 주연으로 나서 아버지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20년간의 배우생활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나이는 4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