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유람일지: 유(儒)를 여행하다
일정 4월 21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에서 만나는 충청 유교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고택’, ‘서원’, ‘구곡’(九曲)으로 나눠 소개한다. 집, 학교, 자연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고 자란 선비의 삶의 궤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1부 ‘고택유람’은 충청도 명문가인 파평 윤씨 가문의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한다. 윤증의 초상 초본, 문중의 교육 공간인 종학당의 디오라마(실물 축소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2부 ‘서원유람’에서는 충청도 유일의 유네스코 등재 서원인 돈암서원을 통해 배움과 실천을 지향한 선비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예학을 정립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그리고 송준길, 송시열은 서원의 대표 선비로 꼽힌다. 3부 ‘구곡유람’에서는 율곡 이이의 정신적 이상향이자 선비들이 자연에 은둔하며 학문을 수양했던 공간인 ‘구곡’을 디지털 화폭에 담아낸 수묵 미디어아트 영상을 전시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선비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정신, 일상의 가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자연을 품은 풍류 등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힐링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제길 : 빛 사이 색
일정 5월 12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평생 ‘빛’을 쫓으며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우제길(1942~) 작가의 회고전.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은 ‘빛’을 주제로 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의 과도기적 작품을 살펴본다. 2부 ‘어둠에서 찾은 빛’에서는 절단된 면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빛 작품들과 어두운 배경에 작가 특유의 직선이 강조된 대작들을 소개한다. 3부 ‘새로운 조형의 빛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구도가 다양해지고 밝은 색채가 등장하며 확장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4부 ‘색채의 빛’은 원색의 빛을 다양한 실험적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5부 ‘지지 않는 빛’에서는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Book
◇어른의 말습관(김진이·다른상상)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은 반감을 사고, 어떤 사람은 호감을 얻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하기’의 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경인방송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진이는 책 ‘어른의 말습관’을 통해 성숙하게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어른답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말할 줄 알고, 그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관계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말투만 바꾼다고, 기술만 답습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과 패턴, 즉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고 바꿔야 한다. 노력만이 말습관을 기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책에서는 서투른 언어를 다듬어 말하는 법, 각각의 상황과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말과 태도를 장착하는 법,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춰나가며 내 세계를 확장하는 법, 부정적 말의 패턴을 소거하는 법, 감정을 차분히 다스려 담백한 말로 갈무리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자기 말의 주인이 되어 일, 관계, 인생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자.
◇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김옥림·미래문화사)
‘가슴이 뛰는 한 영원한 청춘’이라는 시인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위험하고 매혹적인 제로 이야기(찰스 세이프·DKJS)
제로(0)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철학, 종교, 수학, 물리학의 근간이다. 저자는 0의 출현, 억압, 성장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시니어를 위한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조진화·임지윤·포레스트북스)
디지털 전문 강사인 모녀가 합심해 만들었다. 스마트폰·키오스크 사용법 등 부모님이 알았으면 하는 디지털 정보 10가지를 안내한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4월 4일 ~ 4월 2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민정
출연 정보석, 박혁권, 하희라, 유선
연극 ‘러브레터’는 30개 언어로 공연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밀도 높은 2인극이 특징으로, 무대에는 50년 동안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앤디와 멜리사만 존재한다. 글을 사랑하는 모범생 앤디 역은 정보석과 박혁권이 맡아 연기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멜리사 역에는 초연 당시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하희라와 함께 유선이 캐스팅됐다. 제작사 측은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베테랑 배우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랑과 이별, 그 무수한 사연들도 디지털 기기의 버튼 하나로 정리되는 요즘, 잊고 있었던 우리의 순수성을 깨워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친정엄마
일정 4월 20일 ~ 5월 26일
장소 서울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이효춘, 신이현, 선예, 김도현, 박장현 등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친정엄마’는 2004년 원작소설 출간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뮤지컬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진수로 통하며, 실력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번 시즌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 봉란 역에 김수미와 이효춘이 캐스팅됐다. 김수미는 초연부터 봉란 역을 연기하고 있으며, 이효춘은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다 이내 사랑을 깨닫게 되는 딸 미영 역은 신이현이 지난 시즌에 이어 연기하며,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새롭게 합류했다.
◇클로저
일정 4월 23일 ~ 7월 14일
장소 플러스씨어터
연출 김지호
출연 이상윤, 진서연, 김다흰, 이진희, 최석진, 유현석, 안소희, 김주연
연극 ‘클로저’는 1997년 초연 이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으며, 200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극은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라는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공연은 8년 만인 가운데,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가 연극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앨리스 역을 맡은 그는 “연극이라는 무대와 관객들과의 교감에 긴장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이 있다”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지역 문화유산 순례기’는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다양한 지역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지역N문화는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역문화원이 함께 발굴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서비스하는 지역문화포털입니다. 기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역N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암민속마을은 충남 아산시 송악면 설화산 자락에 있는 옛날 마을이다. 일부러 꾸며 만든 눈요기용 민속 마을이 아니다. 단장이야 좀 했지만 겉치레에 흐르지 않았다. 이곳은 500년간 이어진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지금도 일부 후손들이 산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즐비해 이색적이며, 하나같이 묵은 시간의 잔영이 더께로 쌓여 고색창연한 마을이다.
마을 길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일 없이 거듭 휘어져 나직한 선율처럼 포근하다. 느린 걸음으로 걷기에 좋은 골목길이다. 발길이 느려지면 풍경이 한결 세밀해져 살갑게 다가온다. 첫눈에 정겨운 건 돌담길이다. 집과 집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마을 사이사이로 흘러가는 돌담길 길이는 자그마치 5.3km에 이른다. 외암마을의 시그니처 구조물이라 할 만하다. 예로부터 외암은 ‘삼다(三多) 마을’로 통했다. 양반이 많고, 양반들의 글 읽는 소리가 흔하며, 돌이 유독 많다는 건데, 땅을 파면 온통 돌투성이 지질이란다. 따라서 돌담은 자연스러운 귀결로 등장했다. 이는 어쩌면 주민들이 집단으로 창작한 환경미술에 가깝다. 그 이미지는 수더분하나 아름다우며, 기법은 소박하지만 능란한 것이니까. 돌담길은 미로처럼 얽혀 퍼져나간다. 길 끝이란 없다. 끊길 듯하다가도 다시 이어진다. 마치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떠돌이 인생의 상징처럼.
신창댁에서 객을 싣고 시동을 건 돌담길은 온 마을을 감고 휘돌며 덩실한 양반 고택들과 조촐한 초가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주요 반가(班家)들은 대체로 마을 안길 북쪽에 있다. 이곳은 일반 민가들이 들어앉은 남쪽보다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다. 그래 마을을 보듬은 설화산으로부터 내려오는 계류의 범람을 피할 수 있다. 즉 주거 여건이 좋은 심층부다. 종가, 사당, 송화댁, 참판댁 등 상류층 가옥들이 주로 여기에 산재한다. 개중 핵심은 건재(建齋) 이상익(1848~1897)이 1869년에 지은 건재고택이다.
건재고택은 우람하면서도 정교한 구조를 지닌 집이다. 떡 벌어진 행랑채 중앙에 자리한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마당과 사랑채가 있고, 그 뒤편에 정갈하고 수려한 구색으로 돋보이는 안채가 있다. 건재고택이 유명한 건 사랑채 앞마당에 조성한 정원 때문이다. 조선의 옛집들을 보면 크거나 작거나 사랑채 마당을 거의 여백으로 남겨둔 걸 알 수 있다. 조경이라야 그저 소나무나 배롱나무 두어 그루 심거나 자그만 화단을 만든 게 고작이다. 옛사람들은 마당에 굳이 나무를 잔뜩 심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집으로 들이치는 산야의 경관을 만끽하며 내면에 자연을 들여놓는 걸 즐겼을 뿐이다. 이와 같은 전통 미학을 차경(借景, ‘풍경을 빌려온다’는 뜻)이라 한다.
그런데 건재고택의 사랑채 마당엔 수목이 빼곡하다. 용트림처럼 절묘하게 비틀린 채 생동하는 노송을 비롯해 갖가지 정원수를 보라. 화려한 정원이다. 괴석과 석조 장식물에 정자까지 다양한 조경 요소를 조밀하게 배치하기도 했다. 당최 여백이 없어 답답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허공으로 펼쳐진 나무들의 가지로 인해 한낮에도 어둑하다. 전통 범례를 초월한 이 정원의 이질성은 오히려 묘한 미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미태의 레이스를 펼치는 나무들의 모습에 무슨 결함이 있으랴. 뭔가 웅숭깊은 맛을 자아내는 이곳에서 신령스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 정원을 전문가들은 대체로 일본식 조경 방법을 따른 것으로 본다. 조선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공간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집 마당 가운데 나무를 심은 것은 방에 나무를 심은 것과 같다’며 평가절하하는 견해도 있다. 사랑채와 대문이 일직선상에 놓인 바람에 집안의 기(氣)가 빠져나갈 수 있어 비보(裨補) 용도로 나무들을 심었다는 얘기도 있다.
건재고택에선 추사 김정희를 살짝 만날 수 있어 매력을 더한다. 추사체로 쓴 현판과 주련 다수가 걸려 있어 문기(文氣)가 풍긴다. 이 집은 추사의 두 번째 부인 예안 이씨의 친정이다. 이런 인연으로 추사가 글씨를 남겼다. 낙관이 박힌 추사의 친필은 5점 정도로 파악된다. 건재고택엔 오랫동안 빗장이 걸려 있었다. 개인 소유였던 데다 소유권 소송 문제 등이 겹쳐 문을 닫아뒀던 것. 그러다가 2019년 아산시가 인수한 이후 요즘은 하루 두 차례 일정한 시간에 개방한다.
맹사성 고택은 최고(最古) 민간 주택
건재고택 뒤편 저만치엔 참판댁이 있다. 건재고택과 함께 외암리를 대표하는 집이다. 현재 종손 일가가 산다. 여느 빈집과 달리 사람의 온기로 숨을 쉬는 집이다. 규모로나 구조로나 완연한 대갓집이다. 참판 벼슬을 지낸 퇴호 이정렬(1868~1950)의 고택으로 고종이 하사한 집이다. 고종이 왜? 이정렬은 똑 부러지는 기개로 할 말 다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야욕 저지를 탄원하는 상소를 거듭 올렸다. 하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이정렬은 말 등에 거꾸로 올라타고 대궐에 들어가는 진기한 시위를 했다. 조회를 주관하던 고종이 경악할 수밖에. 이 통렬한 장면에 대해 황성신문은 이렇게 썼다. ‘아침 햇살에 봉황이 울었다.’ 이정렬은 종단엔 ‘나라 망하는 꼴은 차마 못 보겠다’며 벼슬을 던지고 낙향했다. 이후의 생활은 매우 곤궁했다지. 그걸 안 고종이 먹고살 만한 재산을 보냈으나 세 차례나 사양하며 돌려보냈고, 이번엔 고종이 낙선재의 축소판쯤 되는 집을 지어줬는데 그게 지금의 참판댁이다. 이 집의 처마엔 금색으로 ‘퇴호거사’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퇴호는 고종이 이정렬에게 내린 별호다. 현판은 고종의 아들 영왕이 9세 때 썼다. 이정렬의 못 말릴 결기와 고종의 대범한 풍모가 겹으로 환히 비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발길은 이제 설화산 너머 배방읍 중리에 있는 맹씨행단(孟氏杏壇)에 닿는다. 조선의 명재상이자 청백리의 표상인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고택이 있는 곳이다. 이 집의 주인은 본래 고려 말의 무신 최영 장군이었다. 한편 맹사성은 최영의 손녀사위였다. 이런 연고로 최영이 맹사성에게 집을 물려줬다. 집의 형상은 그지없이 조촐하다. 물질에 무심한 청백리의 살림집답게 단출하다.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으스러진 게 많은 집이기도 하다. 덩달아 보수와 변형도 잦았다. 엄밀한 분석을 할 경우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복화반 정도가 이 옛집에 남은 원 구조물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고려 말에 지어진 집이라는 사실엔 하자가 없다. 우리나라에 남은 최고(最古)의 민간 주택으로 간주되는 집이다.
맹사성은 황희와 함께 세종조의 황금기를 쌍두마차처럼 이끌었던 주역이다. 정치인다운 기량은 물론 청렴결백으로 당대의 사표가 된 인물이다. 그의 말년 생활은 소박해, 이를테면 집에서 기르던 소를 타고 돌아다니는 정도에서 자족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겸손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허름한 이가 방문할 때에도 반드시 예를 갖추어 맞이했다. 매사 목에 힘을 주는 법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고결한 인품이 흔하던가? 저마다 꿍꿍이와 내숭을 장착하고 각축을 일삼는 게 속세다. 맹사성의 성정은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고 한다. 그의 온유한 정신은 세상의 어둠을 감쌀 수 있는 치마폭 같은 것이었다.
정종호 온양문화원 원장
“락페스티벌 펼쳐 성황 이뤄”
아산시는 1995년 1월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근래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형 산업체들이 입주하면서 지역사회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지역문화를 향유하는 인구도 늘어났다. “문화원이 해야 할 역할이 많아졌다. 책임감도 느낀다.” 이는 정종호 온양문화원 원장의 얘기다.
“아산시 인구가 38만여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유입이 많았다. 아산에서 출생한 2세대도 많은데, 그들은 아산의 미래를 짊어질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 문화원은 아동이나 청소년은 물론 젊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반응은 매우 좋다. ‘전통놀이와 내 고장 알기’ 같은 프로그램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의 위력에 눌려 퇴색하기 쉬운 게 전통문화다. 옛것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보나?
“현대적인 문화를 즐기는 경향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지역의 옛것에 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한 문화재 탐사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하고 있다. 이 역시 참여도가 높다.”
아산은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요즘도 온천에 사람들이 몰려드나?
“아산시 온양지구의 온천은 백제 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실 온천 역할을 할 만큼 유명했다. 1980년대엔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후 생활상의 변화에 따라 한동안 온천의 인기가 저하됐지만 서울-아산 간 전철이 개통되면서 상황이 개선됐다. 전국의 어느 온천 지역보다 양질의 수질을 공급한다는 점도 이 지역 온천의 강점이다.”
요즘 아산시에서 부각된 문화 이슈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온천 문화의 보고인 ‘온양행궁’의 복원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아산 시민의 숙원이자 지역 발전을 위한 핵심 사업이다. 그러나 재원 문제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온양문화원이 추진한 중점 사업과 성과엔 어떤 게 있나?
“신정호수공원을 신정호 아트밸리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 최고의 명품 공원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미 문화예술과 생태가 어우러진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온양문화원은 ‘락페스티벌 달그락’을 주관하기도 한다. 지난 8월에 열린 행사엔 노브레인, 육중완밴드, 크라잉넛 등 21개 팀이 참가해 열띤 공연을 펼치며 성황을 이루었다. 전국 최고의 페스티벌로 키워나갈 참이다.”
요즘은 문화원마다 전통문화 보존 활동에서 나아가 한결 트렌디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문화원이라 하면 흔히 옛날 문화를 축으로 삼아 활동하는 걸로 오해한다. 사실 문화원은 이미 변화했으며, 변신에 더욱 가속을 붙이고 있다. 현대 문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온양문화원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프로그램을 다수 개발했다. 타 문화원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잦다.”
사방 천지로 빛이 뿌려진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일상은 늘 촘촘하다. 이럴 때 가뿐히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잘 찾아왔다고 스스로 흐뭇해지는 길 위에 서본다. 굳이 계획을 세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가볍게 나서거나, 편안히 자동차 핸들을 돌려서 잠깐만 달리면 닿는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곳, 기분 좋게 훌쩍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광교다.
수원은 당연히 익숙한 도시인데 같은 지역권의 광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낯설지는 않은데 옆 도시에 비해 어쩐지 새것 느낌이다. 신상품이라는 뜻의 신조어, 이른바 신상 또는 ‘새삥’ 같달까. 수원이 18세기 조선의 신도시라면 수원시 영통구에 속하는 광교는 21세기에 조성된 또 다른 신도시다.
광교가 특별한 것은 도시의 녹지율이 41.7%에 달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 안에 엄청난 넓이의 호수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쾌적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는 걸 부러워할 만하다. 인구밀도도 국내 신도시 중에서 최저다. 광교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호수공원이 도심을 따라 연결돼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가 되고 있다. 도서관, 호수, 수목원, 박물관, 미술관, 감성 맛집까지 일상과 이어진다. 그들이 가꾸어나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정감 어린 골목길도 아름다운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초점을 문화 기능에 맞추어서인 듯하다.
독서 캠핑을 아시나요, 알싸한 숲속 도서관 책뜰
요즘 각기 다른 레저 활동의 이름으로 호캉스나 차박, 차크닉 등의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독서 캠핑 또는 북캉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을이면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호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떨까. 광교푸른숲도서관에 가면 정말 이런 곳이 있다.
광교푸른숲도서관은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푸른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비탈의 기울어진 숲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숲 사이에 입체감 있게 설계된 열린 공간 형태의 도서관은 외부와 내부 모두 예쁘다. 푸른숲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한데, ‘푸른숲 책뜰’이라는 독서 캠핑장 콘셉트의 독서 힐링 공간이 특별하다.
도서관 옆의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어 오르는 길은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 그 언덕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 동의 독립적인 공간 ‘책뜰’이 앉혀졌다. 백리향, 산수국, 바람꽃, 물봉선, 금강초롱(장애인 우선 예약). 각 캐빈마다 붙여져 있는 이름은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계절 꽃인데 시민들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드니 초록 이끼로 덮인 굵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비한 트리하우스 느낌이다. 책뜰 주변을 알싸한 숲 내음과 푸른 기운이 감싼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3~4평 정도 공간에 편안한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엔 책 받침대 하나, 옆쪽으로 안내 자료와 책이 꽂힌 서가가 전부다. 창문을 열면 아담한 전용 테라스도 있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빈백 체어에 깊숙이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런 호사라니. 비로소 크게 숨을 쉬고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사계절 언제나 책을 읽든 숲멍을 하든 오롯하게 사치스러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시간의 이용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독서와 힐링의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소풍 나온 만족감과 함께 충분한 사색과 쉼을 주는 3시간이다. 여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정원 문화, 영흥수목원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의 도심 속에 숲과 연결된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숲속 산책로가 구현되었다. ‘더 살아 있는 정원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온실 앞의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 아열대 식물을 주제로 꾸며진 온실에는 망고 열매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수목원 입구의 책마루였다. 이 지역의 식물이나 정원 도구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나면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마루에 그냥 앉아 책을 읽는다. 숲과 책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공간이다.
광교 도심을 한눈에, 프라이부르크 전망대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몇 걸음 숲으로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면 도서관 뒤편으로 우뚝 선 탑이 보인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Freiburg Observatory). 세계적인 환경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전망대와 같은 형태라고 한다. 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의미를 더하는 전망대다.
건물 10층 정도인 33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광교 도심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카페, 전시관, 쉼터, 전망대가 이어진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으로 내려다보이는 원천호수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압도적이다. 전망대 밑에는 ‘풀빛누리 광교 생태환경체험교육관’이 있어서 환경을 살피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호수공원 주변 산책길에서는 자작나무 쉼터와 하늘정원, 수초섬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호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운치 있는 자연 생태 속으로, 신대호수
광교호수공원 중앙에 조성된 공원 산책로는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였던 신대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이어진다. 도심 속 호수공원을 잇는 순환 보행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누린다. 신대호수 쪽 수변 보행 데크에 들어서 둑방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연꽃이 피어나고 뿔논병아리가 노니는 곳이 나타난다. 이처럼 습지식물과 야생 조류들이 살아 있는 생태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낀 이른 새벽의 몽환적 풍경과 해 질 무렵의 노을 풍경이 더없이 멋진 신대호수는 모든 시민의 생활 속 휴식 공간이다.
광교박물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실내에서 즐겨볼 만한 곳으로는 광교박물관이 있다. 광교의 역사와 도시 변천사를 알려주고 다양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던 소강 민관식 님의 이야기와 올림픽을 비롯해 한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유명 선수들의 기증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아 광교 옆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다. 광교중앙역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전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부분 무료 관람이다.
광교푸른숲도서관 책뜰 이용 방법
대상 수원시도서관 관외대출회원(정회원) 이용 인원 최대 4명 운영시간 1회 09:30~12:30 2회 14:00~17:00 / 3시간 예약 신청 수원시도서관 홈페이지(www.suwonlib.go.kr) ‘푸른숲 책뜰’ 예약 기간 매월 1일 10시부터 선착순 이용료 1만 원
회암사지를 앞에 두고 잠깐 서 있었다. 천보산 기슭 아래 들판처럼 광활한 면적 위로 겨울이 지나가는 중이다. 조선 시대 최대 규모 사찰이던 회암사가 있던 곳, 회암사 절터에는 군데군데 아직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그늘이 드리운 땅에는 녹지 않은 눈이 제법 하얗다. 여전히 쨍한 찬 기운을 제대로 맛본다. 머릿속이 시원하게 헹구어지는 느낌이다.
치유의 궁궐 회암사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딛고 있었던가. 그 옛날 건물만 262칸이었다던 조선시대 사찰 회암사가 있었던 회암사지에는 찬 공기를 실은 바람이 가끔씩 지나간다. 당시 승려만도 3000여 명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하니, 지금이어도 엄청난데 그 시절 대찰의 면모를 가히 짐작해볼 만하다.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 14-1번지 일원, 천보산이 둘러싼 ‘회암사지’ 절터는 역사 속에서 잊혔던 곳이다. 그러다 1997년 이후 지속적인 발굴 조사와 작업 과정에서 사찰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위상을 알 수 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절터의 제1권역부터 제2, 제3… 권역의 상세한 안내판이 여기저기 친절하다. 회암사지 사리탑은 물론이고 연못지와 우물지, 화장실 터까지 규모를 상상하고도 남을 만하다. 현재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 있지만 천보산 아래쪽 계곡을 메워 계단식 석축을 쌓아 건물 구역을 조성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구역별 건물지도 발견되었다. 회암사지를 둘러보다 보면 거대한 석축과 반듯반듯하게 배치되었을 건축 형상에서 품격이 느껴진다. 당대의 석공들이나 장인들이 이 절에 들인 공력조차 느껴질 정도이니 당시의 면모가 감히 가늠된다.
화암사지 중심에서 벗어나 산기슭 바로 아래에 위치한 회암사지 부도탑,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으로 추정하는데 사리탑(舍利塔)은 대체로 온전하게 남아 있어 귀중한 석조 유물로 전해진다. 특히 조선시대 부도 양식으로 건립된 사리탑 중에서 정교함과 화려한 조각 문양으로 수작이라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조형물이다.
사리탑 앞에서 너른 회암사지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서니 멀리 도심의 높은 건물과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를 두고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최대의 왕실 사찰이었던 회암사지는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1만여 평의 회암사지를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거대한 규모와 불교 문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회암사지를 내려오는 길목에 세워진, 회암사를 찾는 태조의 행차 장면 모형에서 이곳의 위상을 또 한 번 느낀다.
문화재 간직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지에서 발굴·출토된 유물들을 전시 중인 박물관이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유물 전시 및 교육을 비롯해 쉼터 역할도 하는 등 친화적인 분위기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듯한 지역민들이 방문자센터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 대규모 절터 옆의 박물관이 주민들과 친근하게 이어진 모습이 보기 좋다. 박물관 안에서는 옛 복장을 한 아이들이 놀이하듯 교육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지공·나옹·무학의 천년 고찰 회암사(檜岩寺)
회암사지에서 고개를 들어 보면 멀리 회암사 일주문이 보인다. 자동차로 5분쯤 달려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천보산회암사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 옆으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 삼대 화상 수행성지라는 팻말이 조그맣게 세워져 있다. 현재의 회암사는 옛 회암사의 삼대 화상 묘탑(廟塔)을 지키기 위한 작은 암자 터에 세워진 공간이라는 설명도 있다. 삼대 화상의 묘탑과 가람을 수호하고 수행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회암사다.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장대했던 대규모 사찰이 폐사되고 초석만 남아 있던 곳이었다. 200년 동안 엄청나게 번성했던 회암사는 그 시절 전국을 다니다가 만나는 승려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대부분 회암사에서 왔다고 할 만큼 승려 수가 많았다고 전한다. 이제는 지공·나옹·무학 세 승려의 부도와 비(碑)를 중수하면서 옛터의 오른쪽에 작은 절을 지어 회암사의 절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사찰이 넓진 않아도 천년의 문화유산이 숨 쉬는 듯 따뜻하고 고색창연하다. 대웅전 마당 옆으로 난 산길을 몇 걸음 옮기면 지공선사의 부도 및 석등, 나옹과 무학의 사리탑이 나란히 앉혀져 있는 언덕이 있다. 비탈진 사찰을 천천히 오르면서 그분들의 수행 향기를 느껴볼 만하다.
현재 회암사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맑은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시간은 진정 힐링일 것이다. 절의 격이 느껴지는 산사에서 마음을 열고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수 있다면 선물 같은 시간이 될 듯하다.
역사·문화 도시 양주에서는 또한 이 지역 출신 예술가들을 위한 기획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권율장군묘역이 있는 권율로를 달리다 보면 두 개의 미술관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이 도로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기획 전시도 진행하는 중이다.
화가 장욱진과 조각가 민복진의 예술 속으로
장욱진 화가의 그림 내용은 우선 가족이다. 그리고 나무, 새, 아이 등 일상의 소재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그 속에는 자연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본질이 담겼다.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장욱진의 미술관은 조각상이 전시된 공원을 지나서 들어간다.
전시장을 돌다 보면 그림마다 가족이 등장한다. “나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가족을 통해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라고 했듯이. 이렇듯 전시장의 그림마다 화가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영상을 통해 그의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심플하다”는 화가의 말처럼 자연 속에서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특히 미술관 건물은 화가의 그림을 모티브로 설계된 새하얗고 독특한 구성의 건축으로 눈길을 끈다. 2014년 김수근건축상을 받기도 했다.
건너편의 민복진미술관은 입장 티켓 한 장으로 장욱진미술관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1층의 기획 전시를 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민복진 조각가의 현대 조각이 가득 차 있다.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조각 작품과 빛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역시 가족과 어머니와 인류에 대한 사랑이 주제다.
돌아오는 길에 장흥면 방향으로 위치한 간이역 일영역을 거쳐서 오는 건 어떨지. 마침 노을이 내리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폐역이 된 일영역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 알려졌는데, 이제는 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아련한 레트로 감성의 폐역을 거쳐 오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다.
당일 코스로 역사와 문화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경기도 양주의 하루는 풍성하다. 꽃잎이 날리는 봄·가을의 나리공원이나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출렁다리, 양주 별산대 놀이마당, 수목원이나 아트파크의 즐거움을 누릴 계절도 있다. 봄을 앞둔 시절에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림과 조각 작품의 예술에 깊이 빠져보는 것, 참 감사할 따름이다.
●Exhibition
◇프리다 칼로 사진전 : 삶의 초상
일정 3월 26일까지 장소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멕시코의 국보’로 불리는 세계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오리지널 사진전이다. 프리다 칼로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담은 20여 사진작가의 147점의 작품과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그동안 작품으로만 보았던 프리다 칼로의 삶 자체를 만날 수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프리다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가 1911년에 찍은 ‘4살의 프리다 칼로’와 니콜라스 머레이가 1939년에 찍은 붉은 레보소(Rebozo)를 걸친 ‘프리다 칼로’, 레오 마티즈가 1941년에 찍은 ‘태양 아래 프리다’ 시리즈가 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는 독일계 사진작가였다. 6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와 사춘기 시절에 전차 교통사고로 생긴 장애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 강렬한 색채로 담아낸 자화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날, 혜화문에서는
일정 3월 12일까지 장소 한양도성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은 2017년부터 매년 도성의 여덟 성문을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어왔다. 올해는 여섯 번째 전시로 혜화문의 역할과 변화상을 소개한다. 전시는 ‘혜화문을 열다’와 ‘그날, 혜화문’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혜화문을 열다’에서는 홍화문으로 건설돼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와 도성 문으로서의 역할, 임진왜란 이후의 중건까지 조선시대 혜화문의 역사와 위상을 소개한다. 옛 혜화문의 모습을 묘사한 겸재 정선의 ‘동소문도’를 포함해 관련 유물도 볼 수 있다. ‘그날, 혜화문’에서는 18세기 기록에 등장하는 일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감상 가능하다.
●Stage
◇아마데우스
일정 2월 12일~4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이지나
출연 김재범, 김종구, 차지연, 문유강, 전성우, 이재균, 최우혁 등
연극 ‘아마데우스’가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2018년 초연됐고, 2020년 재연 무대를 거쳤다. ‘아마데우스’는 18세기 비엔나를 배경으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그를 질투한 살리에리의 고뇌와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1984년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재연 당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김재범과 차지연이 다시 살리에리 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김종구와 문유강이 새롭게 합류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역에는 전성우, 이재균, 최우혁이 캐스팅됐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 더 라스트
일정 3월 4일~5월 7일
장소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연출 추정화
출연 김찬호, 오종혁, 백인태, 이창민, 서동진 등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2016년 초연 후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북한 특수공작원 3인방이 남한 달동네에 잠입해 동네 바보, 가수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북한 엘리트 요원 원류환 역에는 오종혁, 백인태, 김찬호가 출연하며, 북한 고위층 간부의 아들 리해랑 역으로 서동진과 2AM의 이창민이 무대에 오른다. 최연소 남파 요원 리해진 역에는 그룹 빅톤의 임세준, DKZ의 민규, 조용휘, 차이도가 출연한다.
◇루쓰
일정 3월 5일~4월 2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김다현
출연 선예, 정지아, 김다현, 이지훈 등
원더걸스 출신 가수 선예의 첫 뮤지컬 도전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루쓰’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한 창작 뮤지컬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구약 성경 ‘룻기’를 원작으로 한다. 극은 사랑을 통해 삶의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는 이방인 여자 루쓰의 일생을 조명한다. 특히 성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이라고 할 수 있는 루쓰와 보아스의 사랑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를 통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힐링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강화도 바다가 보인다. 썰물에 쓸린 오후의 싯누런 바다가 개펄 너머에서 굼실거린다. 쏟아지는 가랑비가 따가운 양 잔등을 실룩이며 수평선엔 오선지에 매달린 음표처럼 즐거운, 점점이 흩어진 작은 섬들. 섬에 왔으니 해안도로를 달려 해변 풍경부터 눈길에 쓸어 담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목적지는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해든뮤지움이지만 한동안 해변에서 해찰한다. 바다도 보고, 미술관도 보고. 흥취가 겹일 테니 애초 그러려 했다. 다시 말하자면 해든뮤지움은 바다를 덤으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미술관이다.
해든뮤지움은 야트막한 야산 자락에 있다. 숲 가장자리에 있다. 그래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이 사위에서 범람한다. 푸르기는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너른 야외 정원 역시 초록을 흩뿌리고 있으니. 미술관 건물은 외견상 주역이 아니다. 절반 이상 지하로 스며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의 풍경은 다소 휑한 맛을 풍긴다. 그래서 좀 고즈넉하나, 사실은 군더더기 없이 시원해 첫눈에 수려하다.
이와 같은 풍광은 그저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면밀한 구상과 지향을 오롯이 구현한 결과물이니까. 설계 콘셉트 자체가 모든 구조물이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부터 있었던 자연스러운 지형을 뭉개거나 변형하는 걸 최대한 자제했다. 해든뮤지움을 보며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나오시마 섬에 지은 지중미술관을 연상하는 이들이 있다. 지하에 미술관 건물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불쑥 솟은 건축을 할 경우 주변 풍경을 망칠 수밖에 없다. 과격한 인위로는 자연을 제압하는 결례를 범하기 마련이다. 해든뮤지움은 차라리 겸손하게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군사용 벙커도 아닌 것이, 은밀한 마약 제조 공장도 아닌 것이 마냥 땅속에 폭 파묻힌다면 어떻게 흥미를 주겠는가? 이 미술관은 지형을 기술적으로 활용해 통유리창을 벽면 일부에 설치함으로써 숨통을 틔웠다. 유리창을 통해 빛을 끌어들여 전시장에 공급한다. 투명한 유리벽으로 외부의 숲 경관을 끌어들인다. 모르긴 몰라도 난이도 높은 건축 기법이 적용되었을 테다. 개관한 해인 2013년, 이 미술관은 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한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뽑혔다. 설계자는 건축가 배대용. 자연환경을 고려해달라는 설립자의 주문을 고스란히 반영한 설계로 예술품에 맞먹을 미술관을 귀결한 그의 변은 이렇다. “미술관의 속성을 유지하면서, 자연 파괴 없이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건물 설계에 중점을 두었다.”
경사로를 따라 지하 1층에 있는 미술관 입구로 내려간다. 출입문 앞에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 ‘HOPE’가 있다. ‘H’, ‘O’, ‘P’, ‘E’ 4개의 알파벳을 사각형 격자 모양으로 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딱히 뜯어볼 것도 없이 밋밋해 보인다. 단순한 알파벳 조형이다. 그나마 특징이 있다면 ‘O’자를 살짝 기울여 따분함을 다소 누그러뜨렸다는 점일 뿐이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이와 유사한 작품 ‘LOVE’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 팝아트의 거장으로 부상했다. 남들이 안 하거나 못 하는 걸 하라! 평범한 걸 비틀어 비범해 보이게 하라! 이건 팝아트의 본령이다. 인디애나는 누구나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으로,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던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영예가 온전하지는 못했다. 상업주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세상 떠날 때까지 붙어 다녔으니까.
거울로 산야를 끌어들여
6개로 이루어진 전시장 전관에서는 ‘메타·화양연화전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김창겸, 이이남, 장 샤오타오 등 6인의 미디어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기획전이다. 이 시대 한국의 미디어 아트가 매우 전위적인 행진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전시회이기도. 미술관 중정엔 베르나르 브네의 ‘두 개의 불확실한 선’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9년 전 개관한 이래 해든뮤지움은 일반 관람객은 물론 미술 전문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기획전을 다수 펼쳤다. 개관전인 ‘현대미술의 거장’전은 설립자 박춘순 관장의 컬렉션을 내건 전시회였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망라돼 호응을 끌어냈다. 2018년에 치른 ‘샤갈’전 역시 대형 전시회였다. 몽환적인 색채와 비현실적 공간 구성으로 샤갈의 진품 다수를 전시해 커다란 반향을 야기했다.
이제 미술관을 나와 정원을 거닌다. 탁 트인 정원이라 저만치의 숲도, 저 위의 하늘도, 구름도, 새소리도 사뭇 가깝게 다가온다. 이 충만한 자연은 모든 진리의 압축 파일이다. 상처투성이 마음을, 초라한 생각을 어루만져주는 자비의 손길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치유의 정원? 이름이 붙어 있다. ‘미러가든’이다. 이는 해든뮤지움의 시그니처 구조물이다. 미감을 살려 배치한 초대형 거울 여러 점이 단박에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어 맨다.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이색이다. ‘거울 셀카’의 촬영 명소다.
맑은 거울 앞으로 다가가자 누군가 거울 속에서 멈칫거린다. 바로 나 자신이다. 별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별것 아닌 몰골로 거울 속에 있다. 나의 이미지를 객관화하고, 심지어 속내까지 투명하게 까발리는 거울의 불심검문에 켕길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성찰 능력은 거울이 만들어지면서 한결 발육했을지도 모른다. 해든뮤지움은 거울 벽이 끌어들이는 자연 풍경을 보라고, 자연의 일부인 나를 보라고 거울을 조성했지만, 사람들은 대개 반짝이는 거울 앞에서 사진 찍기를 즐긴다. 행복은 그런 여흥의 언저리에 감도는 법이다.
거울 벽 앞에는 브론즈 조각 한 점이 놓여 있다. 머리와 두 팔이 잘려나간 상반신을 조형한 데다, 비스듬히 기운 품새라 처연해 보이지만 웅장한 맛을 풍긴다. 빨아들이듯 눈길을 당기는 작품이다. 폴란드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이카루스의 토르소’다. 이카루스는 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으나 밀랍이 녹아내려 지상으로 추락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해서 ‘이카루스의 날개’는 흔히 광활한 자유를 갈구하지만 결국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빗댄 은유로 쓰인다.
미토라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작업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삶의 드라마를 친숙한 형상으로 빚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카루스의 토르소’는 비루한 삶에 휘둘리면서도 날아보고 싶은 열망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재미있는 건, 등짝에 조형해 붙인 메두사의 머리 위에 이카루스의 날개가 자그맣게 달려 있다는 점. 메두사로부터 이렇게 페가수스가 태어난다. 페가수스는 이제 곧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를 것 같고. 숨은 그림처럼 실린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다. 해든뮤지움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경주(58)는 자타 공인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 지도 벌써 약 40년. 강산이 네 번 바뀐 시간에도 무대 위의 남경주는 나이 들지 않았다. 한결같은 에너지를 자랑한다. 비결을 묻자 그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화려한 무대를 벗어나 마주한 진짜 남경주는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특히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랑꾼임을 알게 됐다.
“제가 오랫동안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해요. 좋아하는 일을 만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질린 적도 없고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하나 더 말해보자면 창조적인 습관을 잘 길러놓았고, 늘 호기심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혼한 후부터 제 삶의 원동력인 가족도 한몫 하고요.”
남경주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1982년 연극 ‘보이체크’로 공연계에 입문했다. 뮤지컬 데뷔는 서울시립가무단 시절인 1984년 출연한 뮤지컬 ‘포기와 베스’다. 이어 그는 데뷔 초 뮤지컬 ‘가스펠’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1990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90년대 당시 남경주의 인기는 여느 아이돌 부럽지 않았다. 꽃미남 외모에 연기력까지 겸비한 그를 보고자 공연장에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팬클럽까지 생겼다.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였다는 평을 받은 남경주는 최정원과 함께 ‘뮤지컬 1세대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저는 1세대가 아니라 1.5세대”라고 생각을 밝혔다.
“항상 저는 1세대가 아니라고 해요. 우리 형님(남경읍)도 계시고, 형님 위에 선배님들도 계시죠.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을 최초로 했던 그분들이 1세대인 거죠. 뮤지컬 대중화 1세대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우리 후배들이 2세대고, 저는 1.5세대라고 생각해요. 비유를 해보자면 저는 밭을 일궜고, 후배들이 비옥해진 토양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선배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매우 크죠.”
벌써 네 번째, ‘넥스트 투 노멀’
대배우인 남경주에게도 코로나19의 충격은 컸다. 처음 겪어보는 일의 연속이었다. 예정된 공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1년 넘게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직업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은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였다.
“코로나19로 배우들은 자의식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는데 풍경이 생소했어요. 관객들이 띄어 앉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반응이 잘 느껴지지 않는 거죠. 그러다 보니 연기에 몰입되지 않고 어렵더라고요. 우리가 뭔가 잘못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고요.”
남경주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무대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그는 이번 달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관객과 만난다. ‘넥스트 투 노멀’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는 이번이 네 번째 시즌으로 7년 만의 귀환이다. 초연부터 ‘넥스트 투 노멀’에 출연하고 있는 남경주는 “보통 뮤지컬과 달리 이 작품은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라면서 “우울한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표현한,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차별점을 짚었다.
남경주는 극 중 아빠 댄 역할을 맡았다. 그의 아내 다이애나는 과거의 상처로 신경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딸 나탈리는 아픈 엄마로 인해 가족에게 소외감을 느낀다. 댄은 아내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헌신하는데, 정작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한다.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외로운 캐릭터다.
“저도 꽤 가정적인 편이에요. 그래서 제 자신에게서 댄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내가 병이 있는 아내와 같이 산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많이 했죠. 댄이 한시도 아내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극 중 댄의 아내인 다이애나 역은 배우 박칼린과 최정원이 연기한다. 남경주는 박칼린과 초연 때부터 부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남경주와 최정원은 두말하면 입 아픈 뮤지컬계 콤비다. 남경주가 느낀 박칼린과 최정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칼린 씨는 처음부터 같이했으니까 서로 교감, 호흡이 잘 맞죠. 그리고 저는 칼린 씨가 다이애나 역할의 연기 장인이라고 생각해요. 연기하면서 저도 도움을 많이 받죠. 정원 씨는 이 작품이 처음이어서 아직은 힘들어해요. 그래서 저를 많이 믿고 있고, 저도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죠.”
가족은 나의 힘
남경주는 ‘넥스트 투 노멀’이 ‘가족 힐링 뮤지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역시 연기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저는 가족의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가정 안의 문제가 뭔지, 가족한테 가장 필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죠. 공연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펑펑 울면서 힐링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남경주는 이번 시즌에 특히 감정이입을 하면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 이유는 남경주의 딸과 극 중 딸 나탈리의 나이가 비슷하기 때문. 남경주는 2005년 팬으로 만난 연인과 결혼했고, 2008년 딸을 품에 안았다. 남경주는 아빠로서 자신에 대해 “한없이 다정한 딸바보”라고 자평했다.
“우리 딸내미는 제가 조금만 엄하게 얘기해도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엄한 얘기는 엄마가 담당하고, 저는 늘 응원해주려고 해요. 딸이 부탁하는 것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요. 딸은 발레 전공으로 예술중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새벽에 집에서 일찍 나가고 방과 후에는 또 학원에 가서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하죠.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알고 보니 남경주도 초등학생 시절 체조를 했다고. 그는 중학생 때 키가 부쩍 크는 바람에 체조를 그만두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고 밝혔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음악도 좋아했던 터라 밴드부 활동을 하고, 고고장에도 자주 놀러 다녔다고 한다.
이후 고등학생이 된 남경주는 마음을 다잡고, 미대 진학을 목표로 미술 공부를 했다. 그러나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로 전공을 바꿨다. 배우로서 넘치는 끼를 막을 수 없었다. 형인 배우 남경읍의 영향도 컸다. 당시 대학생인 남경읍이 연기하는 모습에 매료된 그는 형을 따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 남경주에게 남경읍은 어떤 존재일까.
“어릴 때는 형님이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어요. 많이 삐뚤어질 뻔한 절 잡아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제가 배우 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형님은 미숙한 제가 연기할 수 있게 영감을 준 존재이고, 늘 제 삶의 구심점이 되어준 분이에요. 요즘은 형과 친구처럼 지내요. 자주 만나서 공연 얘기도 하고 일상 얘기도 하죠.”
5남매 중 남경읍은 첫째, 남경주는 셋째다. 남경주는 “둘째 형은 목공 일을 했고, 남동생은 미대를 졸업했다. 막내 여동생은 승무원이다”라고 설명했다.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다. 그러면서 남경주는 “어머니가 고생하며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셨다”고 말했다. 약사였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2017년 당시에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계셨어요. 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연락이 와서 공연을 마치고 병원에 갔는데 이미 눈을 감으신 후였죠.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거예요. 그때 정말 목 놓아 울었어요. 어머니께서 고생하셨던 게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 그래도 생전에 어머니께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안겨드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형이 문화예술계에서 자리 잡은 공로로 상을 받으신 거니까 어머니가 뿌듯해하셨죠.”
슬럼프 극복 후 롱런하기까지
앞서 말한 대로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은 남경주의 젊은 날은 화려했다. 인기가 많다 보니 여러 방송과 공연에서 남경주를 찾았고, 그의 피로는 쌓여갔다. 이에 남경주는 1997년 돌연 ‘굿바이 남경주’ 콘서트를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제 몸은 하나인데 부르는 곳이 너무 많았어요. 쇼 프로그램 MC, 라디오 DJ 등 방송 활동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 조금 넘게 공백기를 갖고 미국에서 공연도 많이 보고 잘 쉬고 돌아왔죠. 무대가 그립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 미국 유학은 재충전의 시간이 됐다. 남경주의 진짜 슬럼프는 40대 진입을 앞두고 찾아왔다. “이제 더 이상 젊은 주인공 역을 하기 쉽지 않은 나이가 된 거죠.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주인공만 하던 사람에게 아빠 역할, 조연 역할 제의가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더라고요. 힘이 많이 빠졌어요.”
그때 남경주에게 찾아온 작품이 바로 원조 로맨틱 뮤지컬 ‘아이 러브 유’다. 2004년 초연한 ‘아이 러브 유’는 중형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으로 1200회 공연을 돌파하며 5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작품이다.
남경주는 첫 시즌 594회를 포함해 2009년 앙코르까지, 총 830회 무대에 올랐다. 남경주라는 존재감이 재확인된 작품이다. 그 스스로도 ‘아이 러브 유’를 인생작으로 꼽았다. 더욱이 남경주는 이 시기에 공연 중 프러포즈를 했고, 결혼에도 골인했다.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아이 러브 유’는 에피소드 20개를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뮤지컬이에요. 배우 4명이 60명이 넘는 인물을 연기하죠.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하면서 연기 변신을 했고, 자존감도 되찾았어요. 결혼이라는 좋은 일도 치렀고요. 당시 슬럼프를 잘 극복한 덕분에 지금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 러브 유’ 최장 공연 외에도 남경주가 남긴 기록은 많다. 그는 199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뮤지컬 ‘그리스 록큰롤’로 인기상을 받았다. 남경주는 “뮤지컬 배우가 인기상을 받은 것은 최초였다. 그 이후에도 연극 쪽은 수상자가 있었지만 뮤지컬 배우가 수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1997년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인기스타상, 2019년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브로드웨이 42번가’, ‘노트르담 드 파리’, ‘위키드’, ‘시카고’, ‘빅피쉬’ 등이 꼽힌다.
수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롤모델로 꼽는 남경주. 그는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2014년부터 교단에 선 그는 현재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남경주는 “뮤지컬 배우는 노래, 연기, 춤 3박자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얘기해요.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장 좋은 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노래를 아름답게 잘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솔직하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공인으로서 책임, 의무감을 갖고 후배한테 좋은 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광대’ 남경주의 롱런에는 이유가 있었다. 관객의 고마움을 아는, 성실한 배우라는 사실이 그의 특별함이었다. 남경주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가정과 내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 배우는 정년이 없기 때문에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살까,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일까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독자분들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함께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행복은 내가 많이 갖는 게 아니라 남들을 웃게 만들고 나눌 때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Exhibition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
일정 4월 3일까지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스페인 초현실주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국내 최초 대규모 회고전이 이달 20일까지 열린다. 달리의 유화 및 삽화, 대형 설치작품, 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진 등의 걸작 140여 점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레플리카(복제품)가 아닌 ‘진짜 원화 작품’ 전시다.
전시는 아홉 개 섹션으로 나눴으며, 달리의 유년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조명했다. 또한 달리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과 개인적인 순간들도 함께 소개한다.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달리의 부모는 그를 ‘죽은 형의 환생’으로 여겼다. 온전히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달리는 정신분열 증상을 겪었고 괴짜가 됐다. 진짜 그를 봐준 사람은 아내 갈라뿐이었다. 달리는 평생 그녀만을 사랑했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 피카소, 심지어 돈보다도 갈라를 더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 달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갈라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달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기억의 지속’은 없다. 그 아쉬움은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1931), ‘시간의 속도’(1931), ‘무제 : 맑은 날씨의 지속’(1932) 등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일정 3월 27일까지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최근 관람해 화제를 모은 전시다.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는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Shoah)의 작가, 죽음의 작가라 불린다. 볼탕스키는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사진과 설치미술, 사운드, 조명 등으로 집단의 역사와 기억, 애도와 추모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평생 ‘죽음’을 주제로 다뤄온 작가는 전시 제목 ‘4.4’도 직접 지었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44년’을 뜻하는 동시에 인생을 4단계로 나눌 때 ‘생의 마지막 단계’를 뜻하기도 한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들인 이 전시가 그의 예술 여정의 마침표가 됐다.
●Book
◇뇌과학자의 엄마, 치매에 걸리다(온조 아야코·지호)
일본의 뇌과학자 온조 아야코의 어머니는 예순다섯의 이른 나이에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는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딸에게는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고 죄책감마저 든다.
이에 저자는 치매로 고통받는 이들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점점 모든 것을 잃어가는 엄마를 2년 반에 걸쳐 관찰했다. 매일의 사건, 기분, 감정 전부를 기록했다. 특히 ‘기억을 잃으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 걸까’, ‘치매에 걸리면 사람다움을 잃는가’와 같은 의문에 두려움을 느끼며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저자는 치매란 어떤 뇌질환이고, 망상·배회·공격성 등 정신행동 증상은 왜 나타나는지 뇌과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연구 논문을 근거로 풀어냈다. 그리고 문제 예방법으로 ‘기억 메워주기’, ‘산책하기’와 같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저자는 엄마가 요리할 때 기억을 상기시켜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도왔고, 아버지는 아내와 산책을 했다. 이는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진 못했지만 얼굴에 미소를 되찾게 했다. 더불어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기억은 잃어가지만 감정이 남아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치매에 걸렸어도 결국 감정이 건재한 이상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고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태리 아파트먼트(마시모 그라멜리니·시월이일)
현재로부터 60년 후인 2080년 12월이 배경인 소설이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들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는 미래에서 보면 현 상황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를 독자에게 건넨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박영서·들녘)
저자는 ‘조선은 복지 국가’였다고 주장하며 조선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 백성을 구휼하려는 통치자의 의지는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는 목표로 축약된다. 저자는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 즉 인(仁)이라고 분석한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알렉상드르 스테른·윌북)
1978년생 파리지앵인 작가 알렉상드르 스테른은 미식가로서 세계를 돌며 희귀한 맛을 찾아 대중에게 알려왔다. 이 책은 세계 5대륙 155개국에서 골라 모은 700가지 맛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 음식은 김치·홍어·소주·번데기·호떡·팥빙수 등을 추천했다.
●Stage
◇또! 오해영
일정 3월 9일 ~ 5월 29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
연출한은결
출연 손호영, 장동우, 재윤, 레이나, 양서윤, 길하은, 허순미 등
2020년 초연된 뮤지컬 ‘또! 오해영’이 돌아온다. 이 뮤지컬은 2016년 방영된 에릭·서현진 주연 동명의 tvN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오해영이라는 동명이인의 두 여자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도경의 오해에서 시작된 로맨스를 그린다.
특히 뮤지컬 ‘또! 오해영’은 두 오해영이 가진 결핍을 채워주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성장 스토리로 재구성, 응원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힐링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또한 벤의 ‘꿈처럼’, 정승환의 ‘너였다면’ 등 기존 원작의 OST는 물론 신곡을 추가해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박도경’ 역에 초연에 이어 손호영이 참여하며, 새롭게 장동우, 재윤(SF9)이 합류한다. 박도경은 외모도 능력도 완벽하지만 까칠한 성격에 예민함까지 가진 남자다. 마음이 가는 일은 절대 멈추지 않는 씩씩한 보통 여자 ‘오해영’ 역에는 레이나, 양서윤, 길하은이 함께한다.
◇잃어버린 얼굴 1895
일정 3월 5일 ~ 3월 20일
장소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차지연, 하은서, 김용한, 최인형, 이동규, 윤태호, 이혜수 등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의 미스터리한 삶에 픽션을 더해 재탄생한 작품이다. 기존 작품과 달리 명성황후가 여성으로서 느낀 아픔과 슬픔, 인간으로서 가진 고민과 욕망에 집중해 그의 삶을 그려낸다.
더불어 연극, 음악, 무용이 혼합된 서울예술단만의 독창적 장르인 창작가무극의 정수를 맛볼 수 있으며, 2013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명성황후 역에 배우 차지연이 다시 돌아오며, 새로운 황후로 서울예술단 단원 하은서가 합류해 기대감을 높였다.
◇리지
일정 3월 24일 ~ 6월 12일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김태형
출연 전성민, 유리아, 이소정, 김려원, 여은, 제이민, 김수연, 연정 등
여성 4인조 록 뮤지컬 ‘리지’가 초연 2년 만에 돌아온다. 미국의 미제 사건 ‘리지 보든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892년 성공한 장의사 앤드류 보든과 그의 부인 에비가 집 안에서 잔인하게 도끼로 살해되면서 둘째 딸 리지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재판을 통해 숨겨진 비밀과 진실이 드러난다. 초연 당시 지루할 틈 없는 전개와 6인조 라이브 밴드의 파워풀한 록 기반 넘버, 여성 캐릭터들 간의 연대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번에는 우주소녀 연정이 리지의 친구 앨리스 역을 맡아 뮤지컬에 첫 도전해 기대를 모은다.
그의 깍두기라는 표현에 내심 놀랐다.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 3500회 넘게 무대에 섰고, 미국과 영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유학파 출신이다. 자존심 높은 성악가가 후배들의 공연에 ‘깍두기’를 자처하다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강마루(59)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와 관객을 만나고, 노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1등! 강마루.”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까까머리 중학생은 어리둥절했다. 그간 그의 노래 실력을 칭찬해준 것은 학교 음악 성적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성가경연대회에서 1등이라니. 그것도 충남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말이다. 강마루 교수는 “성악의 길에 발을 내디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내가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죠. 물론 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성적이 좋긴 했지만, 그 정도 아이는 한 반에 하나씩 있잖아요. 당시만 해도 지역이나 교회마다 ‘가곡의 밤’이나 ‘성가의 밤’ 같은 행사가 많아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훌륭한 노래를 들으며 자란 것이 자양분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까까머리 중학생 성악가를 꿈꾸다
그날로 중학생 강마루의 미래는 성악가가 되었다. 음대 진학을 목표로 한 수험생 생활은 한양대 입학으로 결실을 맺었다. 장학금 덕분에 등록금 걱정도 없었다. 이후 그는 미국행을 선택한다. 성악가로 활약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고 강 교수는 이야기했다.
“당시 성악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해외 경험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죠. 그리고 성악은 결국 서양 음악이니까, 그들은 어떻게 노래하는지, 발성은 어떤 식인지 현장에서 듣고 배우고 싶었어요. 물론 세계적인 무대에 서고 싶다는 야망도 있었고요. 한편으론 운이 좋게도 수업료를 면제받아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죠.”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으로 꼽히는 메네스 음대(Mannes School of Music)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살인적인 뉴욕의 물가는 가난한 유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을 강요했다. 강 교수는 “안 해본 것이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 같은 알바는 기본이고, 불러주는 무대에는 무조건 올랐다. 무대의 수준이나 어떤 관객이 오는지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다양한 무대에 올랐어요. 크고 작은 공연뿐만 아니라 한인 교회 성가대 지휘도 하고, 레슨도 하러 다녔죠. 생활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조건 해야 했거든요. 덕분에 미국에서 공부는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어요. 이후 영국 런던 테임스밸리 대학원에서의 수학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인생을 바꾼 노래 ‘슬픈 전쟁’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의 유학 시절을 “마치 아이를 품은 산모와 같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기대에 찼던, 현실은 괴롭지만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디에서나 차별을 겪어야 했어요. 한편으론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죠. 실력으로 보여주고 이겨내면서 한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해낼 수밖에 없었어요.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것을 이겨내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유학을 다녀와 한국에서 만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와 경원대와 협성대 강단에 서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을 막 시작한 무렵, 그는 예기치 못했던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된 노래, ‘슬픈 전쟁’과의 만남이다. 1996년 가요계에선 낯설었던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만남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선 “발라드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사실 노래를 부른 최진경 씨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당시 앨범 준비하던 제작자와 인연이 있었는데, 고음이 가능한 바리톤을 찾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선뜻 나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게는 숙명 같은 일이었어요.”
이 노래는 그에게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라는 칭호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안겨줬다. 물론 보수적인 성악계에선 그를 향한 비뚤어진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 대한 그의 생각은 크로스오버나 팝페라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클래식이라는 장르는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렵잖아요. 일단 기본적인 공부가 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분야니까요. 그러다 보니 소수만 즐길 수 있는 관상용 도자기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았어요. 그에 반해 제 음악은 그 안에 김치도 담고 찌개도 담는 생활용 그릇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죠. 좀 부딪히고 상처가 나더라도 모든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는 그릇이요. 저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문제되지 않았어요.”
실패작 된 최고의 명작
그러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후학 양성을 위해 의욕을 갖고 나섰던 대학 설립은 결국 경제적 부담만 안겨줬다. 이후 의욕을 갖고 진행한 1집 활동은 매니저의 횡령으로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1집 ‘산책’을 준비할 때 너무 행복했어요. 1년간 공들여 준비하고, 제작에만 세 달이 걸렸죠. 세션으로 기타의 함춘호, 드럼에 신석철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죠. 곡도 너무 좋았는데, 많이 아쉬워요.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잊혔으니까요. 그래도 너무나 좋은 곡이라 언젠가는 ‘역주행’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그리고 9년 만에 발매한 2집은 의외의 선택으로 화제를 모았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곡 ‘동반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성악계 일부에서 ‘딴따라’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태진아 씨가 흔쾌히 곡 사용을 허락해줘서 타이틀곡으로 부를 수 있었죠. 그저 신나는 전통가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사를 음미해보면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노랫말을 갖고 있어요. 원곡의 ‘출신성분’ 같은 것은 제게 중요치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삶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에요. ‘동반자’는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어서 제게 수많은 무대를 선사해준 고마운 곡이에요. 주변에서 “왜 태진아냐”며 폄하하는 분도 많았지만, 그분의 창법이 갖는 매력이 있고, 둘이 함께 선 무대가 많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화합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달려오던 그의 무대는 잠시 멈춰야 했다. 많은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등장은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잠시 멈춘 사이 그동안 저의 활동을 되돌아보았죠. 음악인으로 살아오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음악이 나를 정화시키고 힐링을 주어야 하는데, 삶의 수단으로만 남용한 것은 아닌지 반성했어요.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위로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분은 저랑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11월 30일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을 전해준 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모처럼 관객 앞에 설 수 있었다. 한국경제TV의 팝페라 페스티벌 무대였다. 그가 설립한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조직한 성악 그룹 ‘더 텐테너스 그룹’과 함께 공연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30~40대 테너 10명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 그는 3년간 공을 들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그룹은 해외에선 활동이 활발하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11월 공연에선 관객들이 박수는 가능했지만 환호성은 지르지 못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방역수칙 때문이죠. 무대에 서는 입장에선 김 빠진 사이다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누구나 열망하고 바라는 소망을 잊고 있었던 거죠.”
더 텐테너스 그룹에 대해서는 “성악계의 BTS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음악대학 강사 이상의 자리에서 활약할 수 있는 해외파 출신 테너들로 구성된 성악 그룹으로, 갈수록 설 무대가 좁아지는 후배들을 위해 강 교수가 기획한 작품이다. 후배 위해 깍두기 되고파 강 교수는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꾀하고 있다. 대중이 성악이라는 어려운 장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마스터스 성악 최고위과정’은 벌써 21기가 되었을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고 있고, ‘노블레스 최고위과정’이나 ‘와인인문학 최고위과정’도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이 꿈이었지만 이루지 못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의 염원을 담아 한 분씩 가르치다 보니 정규 과정이 되었어요. 처음엔 예상치 못했던 일이죠.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모니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람을 느껴요.”
그가 최근에 설립한 공연장 ‘하다 아트홀’도 같은 맥락이다. 2020년 10월부터 준비한 장소가 지난해 11월 결실을 맺었다. 하다 아트홀은 후배들에게 공연할 장소를 제공하고, 한국예술문화재단의 교육 장소로도 활용하기 위해 만든 공연장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사회적 관계를 만들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잖아요. 인간의 본질이 유희라는 점에 기초하는 인간관인데, 저 역시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먹고 놀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가 되길 희망해요. 모두가 ‘놀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노는 사람은 찾기 어렵잖아요. 술밖에 모르는 우리 현대인에게 인문학에 기반한 다양한 ‘노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해요.”
하다 아트홀이라 이름 지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박정희 씨다. 노래를 하고 공부를 하는 다양한 행위의 산실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라고.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하다 은퇴한 박정희 씨는 현재 수만 명의 팔로어를 자랑하는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강 교수는 “저희 공식 유튜브 채널보다 팔로어가 많아 샘이 날 정도”라면서도, “아내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서 유튜브 채널 운영 등 여러 활동에 대한 다양한 조언에 늘 귀 기울이며 산다”며 웃었다. 가수 강마루로서의 계획은 어떨까? 그는 불쑥 깍두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팝페라 가수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이제 저도 신체적인 상황이 젊을 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져요. 앞으로는 제 무대에 대한 욕심만 챙기며 후배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후배들이 성장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팝페라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되고, 가수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하고 있어요. 전 그저 ‘깍두기’로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무대에 서서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생활을 마지막 그날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그게 제 희망입니다.”
왕궁리 유적지로 들어가면서 ‘여유롭다’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유적지든 공원이든 시설물로 가득가득 채워지고 볼거리가 많음을 보여주려는 듯한 복잡한 풍경이 늘 아쉬웠던 터다. 널찍한 익산의 왕궁리 옛터엔 휑한 여백의 미가 팍팍, 신선한 바람 맞으며 헐렁한 여유감으로 벅차기까지 하다. 물씬한 황량함이 어쩐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그 넓은 터에 혼자 온 듯한 여행자 두 사람만이 각자 이쪽저쪽에서 뚝 떨어져 호젓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유난스러운 유적지의 시스템이 있을 법한데 여긴 그렇지도 않다. 딱히 꾸며진 모습 없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널널한 풍경이 된 역사 속을 걷는다. 관람 동선 안내문이 있지만 이 넓은 공간을 그냥 발걸음 닿는 대로 자유롭게 오가면 된다. 입구에서 호위하듯 고목이 숲을 이룬 길을 산책하듯 홀린 듯 걸으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맛,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멀리서도 홀로 오롯한 왕궁리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포토존 프레임 안으로 바라보는 석탑 또한 기품 있다. 오랜 세월 너른 터에 우뚝 서서 품격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왕궁터를 돌아보건대 세련되고 웅장했을 백제 옛터다. 끊임없는 보존 노력으로 이제는 풍경이 된 역사 속에 서본다.
주변으로 몇 개의 건물터, 금당터가 자리를 지키고, 왕궁 둘레를 감아 도는 길에 단을 높인 대형 배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왕이 휴식하던 후원과 공방, 화장실까지 옛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조성했다는 설명서를 읽으니 그 시절 장인들의 디테일한 기술이 놀랍다. 이런 길을 따라 궁궐과 정원의 멋을 누렸을 백제 시대의 영화를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고 상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주, 부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로 당당히 자리 잡은 후에도 여전히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년 넘는 역사 속의 백제 문화유산은 무궁무진할 터.
왕궁리 유적 옛터에 내리는 노을을 보러 저녁 시간에 다시 와볼 생각이었는데 딴전 피우다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일몰이든 일출이든 천년이 훨씬 넘는 왕궁터가 배경이 되어준다면 그 풍경은 더 말할 게 없을 듯하다. 푸른 하늘과 늦가을 왕궁리의 조화가 이렇게나 멋진데, 날씨 따라 변화하는 백제 옛터 왕궁리의 사계는 또 어떨까.
미륵사지 석탑이 품은 이야기
왕궁리 유적지에서 미륵사지 석탑까지는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정문에 들기 전에 ‘미륵사지 미디어아트 쇼’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게 뭐지’ 하면서 보고 있는데 이 지역 주민인 듯한 분이 지나다가 얼마 전에 진행된 행사라면서 참 볼 만한 쇼였다고 말해준다. 미륵사지 석탑 동·서쪽에 프로젝션 매핑 및 드론을 이용해서 다양한 빛과 형상을 표현하고 음악을 활용한 종합 미디어 쇼로 구현된 행사였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익산 지역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석탑의 가치 확산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 들면서부터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너른 대지에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미륵사지 석탑, 백제 시대 최대 사찰이던 미륵사지는 국보 제11호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절반 이상이 붕괴된 모습이다. 그동안 꾸준히 보강하고 섬세한 복원 작업을 해온 결과, 지금은 미완의 6층 석탑으로 우뚝 서 있다. 복원 작업 중 해체 수리하면서 내부에서 사리장엄구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현재 내부는 입장할 수 없다.
우리의 기술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옛 석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해 들어가 보았더니 시원하다. 그 서늘함이 그 옛날의 기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길 양옆의 연못이 차분하다. 연못 속으로 비치는 석탑의 반영이 오랜 세월 속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거길 지나 미륵사지 앞마당에는 동·서 방향으로 당간지주 두 기가 서 있다. 다가가 보니 생각보다 매우 크다.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당간은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놓는 돌기둥이다.
미륵사지 주변으로는 큼직한 돌이나 파편들이 몇 군데 자리 잡고 있는데 석탑의 노반 덮기 돌이라고 한다. 동원 금당터가 있고 몇 군데 터마다 목탑이나 석탑이 있었지만 화재로 사라지기도 하고 지금은 이렇게 기단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젊은 커플이 내 사진 속에 몇 번씩 담긴 걸 보았다. 널찍널찍한 터에 스며 있는 역사적 사실을 꼼꼼히 살피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참 예쁘구나 했다. 한적한 미륵사지 터를 돌며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그저 그림이다. 백제 유적지의 풍경 속에서 그들만의 하루는 참 멋진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일까.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가족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렇게 가족과 나들이하며 우리의 문화유산을 접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특히 백제 무왕의 흔적이 가득한 익산의 모습을 보려면 이곳 미륵사지를 빠뜨릴 수 없다.
한옥마을에서 호젓하게 하루
익산으로 떠나면서 그곳의 숙소를 검색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어찌된 게 이 시기에 빈방이 없다고 나오는 곳도 제법 있다. 시내를 벗어난 곳의 숙소를 클릭해보았더니 한옥 숙소가 있다. 이름도 낯선 ‘함라’라는 곳에 위치했다. 일단 통화를 해보았다.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익산시에서 20~30분 정도 달려 해질 무렵에 도착한 ‘함라마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조용하다. 체크인하고 밖으로 나와해 저무는마을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농촌 지형을 그대로 살린 울퉁불퉁 돌담길의 자연스러움, 토담에 매달린 주먹만 한 호박과 노란 호박꽃, 가을을 알리는 담쟁이들의 뒤엉킴…. 알고 보니 토석담이 주를 이루는 함라마을의 이런 토담, 돌담, 화초담 등의 전통 담장이 등록문화재 제263호라고 한다.
그리고 시·도문화재로 지정된 함라 삼부자집의 조해영 고가, 김안규 가옥, 이배원 가옥 사랑채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전통적 경관이 볼 만한 곳이다.
함라 삼부자가 베푼 인심은 호남을 대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노잣돈까지 얻어 갔다는데, 당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들이었다고 전한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아무도 없는 마당에 서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정원의 꽃들이 선명하다. 풀잎에 아침 이슬이 송송송… 잔디 마당을 걸으니 운동화가 촉촉해진다. 관리동 어르신이 지나가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며 이 먼 데까지 뭐하러왔냐신다.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이라니까, “조용하기로야 예가 절간이지 뭐” 하신다. 더러 시끄러울 수도 있을 테지만 하루 있는 동안 정말이지 한 점 소음이 없었다.
마을 바로 위쪽으로 함라향교가 마을을 품듯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조선 세종 19년에 세워진 함라향교는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느낌이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였지만 여전히 실용적인 향교로 건재한 채 지금껏 이어져오는 듯했다. 어르신도 말하신다. “이게 우리 아버지 때도 있었던 향교지요. 그때도 지내던 제를 지금까지 빠짐없이 이렇게 지냅니다.” 점잖고 선한 인상으로 꼭 존대어를 하신다.
한옥 숙소엔 도문대작이라는 식당이 있다. 허균(許筠)이 함열 유배 시절인 광해군 3년, 전국 팔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해 정리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저술했다고 한다. 함열관아 객사터 가까운 곳이 허균 선생의 유배 생활공간이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곳 함라 숙소의 식당 이름이 ‘도문대작’이다. 정이 넘치는 마을분들이 차려주신 수수한 한 상으로 흐믓했던 아침 시간이다.
그냥 시내의 흔한 숙소에서 묵었다면, 따끈한 온돌의 맛도 모르고 덜컹거리는이중 창호문여닫이도 못 해봤을 것이다. 아침 이슬 촉촉한 담장이 이어진 멋진 아침 산책도, 새벽 정원의 이슬도, 정다운 아침밥상도, 점잖으신 향교 어르신도 못 뵈었을 텐데. 교외로 조금 더 달려가서 묵은 조용한 한옥마을의 하루가 기억 속에 이렇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호젓해보기의 진수, 익산 여행은 확실한 힐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