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서울미술관의 숨겨진 역사 ‘모던 로즈’ 전
- 단풍과 함께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는 가을의 정취를 담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모던 로즈’ 전이다. 이 전시가 특별한 것은 미술관 자체의 역사를 미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와 겹치는 기구한 과정이 분야별로 놀랍게 재현되어 있다. 전시는 지난달 15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다. 전시회 이름이 ‘모던 로즈’인 것은 구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이 건물의 정원에 있던 300그루의 장미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장미는 엄밀히 말하면 ‘모던 로즈’다. 굳이 모던 로즈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원래 유럽의 장미는 ‘올드 장미’로 여름에만 피는 꽃인데 동양의 사철 피는 월계화와 접목하여 오늘날의 장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 벨기에 영사관 마당의 모던 로즈는 영사관 운명만큼 기구하다. 일제강점기에 영사관이 매각되면서 장미는 조선호텔로 팔려 ‘로즈 가든’이 되었다. 마침 이때 이 로즈 가든을 거닐던 사업가 이근무 씨는 이 장미를 바라보며 서양식 백화점 경영을 꿈꿨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 기록이 당시 ‘삼천리’라는 잡지에 실려 지금도 남아 있다. 처음 회현동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은 도시개발로 지금 있는 사당동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현기증 나는 시대의 변화와 속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코너가 김익현 작가의 ‘나노미터의 세계’이다. 영사관의 시대적 변화와 물리적인 변천을 현대의 반도체 기술과 컴퓨터의 기록과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을 통해 아날로그적 변화를 디지털로 변용해 표현한다. 1903년 지은 벨기에 영사관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벨기에 특유의 블루 타일 등 거의 모든 건축자재를 본국에서 배에 실어 가져왔다. 그리스 로마식 기둥과 장식 등은 그 시대를 떠올리며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여기서 신고전주의 의복 오브제 소재로 창안한 작품이 곽이브 작가의 ‘셀프 페인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로마 문양 천으로 만든 클라미스, 키톤을 걸치고 감상함으로써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김영글 작가의 ‘파란 나라’는 벨기에 만화 캐릭터인 스머프가 근현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의 시선으로 표현하며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한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또 있다. 레고를 연상시키는 금혜원 작가의 ‘변칙 조립’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퍼즐 조각들의 해체 이동 재건 과정에서 색다른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상한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며 은연중에 남서울미술관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 또 다른 작품은 고재욱 작가의 ‘작품처럼 보이는’이다. 대부분의 인류는 사라지고 AI가 지배하는 세계다. 2551년 그들은 인류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며 남서울미술관에 주목한다. 그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며 AI들은 인류에게 미술관은 왜 필요했는지를 상상한다는 설정이다. 그들도 설치물들을 미술 작품으로 판단하지만, 과연 그것이 미술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조형물을 설치해 역설적으로 ‘현재의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AI들이 이러한 건축이나 작품을 만든 인류를 존경하며 그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힘쓰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건물 귀퉁이 요소요소에 숨겨진 아름다운 문양과 독특한 건축 양식을 하나의 연극 무대로 구상한 이종건 작가의 ‘어느 무대’도 상상력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의 압권은 40년 만에 공개된 미술관의 다락방이다. 건축할 때 생긴 귀퉁이 돌이나 이전할 때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장식들이 보관된 한 편 굴뚝에는 임흥순 작가의 ‘노스탤지어’가 상영된다. 이곳은 하루에 한 번 오후 4시에 인터넷으로 예약한 5명만 들어갈 수 있다. 다 보고나니 질곡의 삶을 보내며 잘 견뎌낸 남서울미술관이 어느새 의인화되어 존경하고 싶어진다. 함께 늙어가는 동료처럼 느껴져 가는 가을 바라보며 스산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 2019-11-12 09:53
-
- ‘하나뿐인 내편’ 정재순, 인생 연기를 남기다
- 주말 저녁,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저 배우가 엄청 즐기고 있구나! 한참 나이 어린 배역에게 ‘아버지’나 ‘오빠’를 연발했다. 심심하면 욕설에 머리채를 끄잡는데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명희야, 원혁이 번호 땄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106부작의 마지막 대사도 그녀 몫이었다. 지금까지 드라마 속에서 무던하게 녹아 있던 그녀. 이번만은 달랐다. 지난 3월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귀여운(?) 치매 환자 박금병 역으로 사랑받은 배우 정재순(鄭在順·72)을 두고 하는 소리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그녀를 마주보는 순간 멈칫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가 나른하면서도 우아하게 무대로 걸어오는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팔랑팔랑 손을 흔들면서 명희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박병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정숙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는 배우 정재순. 캐릭터 변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남다른 연기를 보여줬던 ‘하나뿐인 내편’이 그녀 인생에 있어 대단한 도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배역과 관련해 얘기를 들었을 때 극중에서 치매가 그렇게 큰 소재는 아니었어요. 그냥 약간 병세가 있다 하는 정도였죠. 그동안 치매 앓는 역은 안 해봤는데 어떡하지? 그래도 이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모르겠다! 해보자! 그랬던 거죠.” 새 드라마를 시작하면 늘 하던 대로 마음먹었을 뿐인데 시청자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치매 증상이 심해져 극중 손주며느리 도란(유이 역)을 친구 ‘명희’로, 그의 아버지(최수종 역)를 ‘강기사 오빠’로 부르면 부를수록, 며느리(차화연 역)와 둘째 손주며느리(윤진이 역)에게 욕을 하면 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제가 극중에서 욕할 때 사람들이 참 찰지다고 그러대요? 제가 나쁜 년, 첩년 하고 말할 때요. 저도 상상 못했고 작가님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야기 전개를 하다 보니 여건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그런데 자꾸 촬영 분량이 많아지더라고요.(웃음)” 말 그대로 배우 정재순의 재발견이었다. 올해로 데뷔 51년 차. 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로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거목과도 같은 중견배우였다. 긴 세월 각인되어온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해냈으니 박금병이 더욱 사랑받았던 것은 아닐까. 정재순은 딴생각 안 하고 배역을 즐겼다고 했다.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치매 환자라는 배역 설정 때문에 오만 가지를 다 해봤거든요.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도 해보고요. 배우로서도 찾기 힘든 캐릭터였어요. 카타르시스도 느꼈고요. 특히 머리끄덩이를 있는 대로 낚아채잖아요.(웃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군요. 치매 증세가 나올 때 특히 나쁜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도 마음껏 하고 말이죠.” 극중 박금병의 인기는 인터넷을 치면 확인된다. 정재순의 이름을 검색창에 치면 드라마에서 착장한 귀걸이며 사용한 안경테, 옷 등의 브랜드를 알 수 있을 정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젊은 시절을 주로 기억하는 치매이다 보니 빨간 립스틱에 화려한 색감의 옷도 입고, 짧은 점퍼에 토끼 머리띠는 물론 시니어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니크로스백도 수차례 바꿔 멨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 후배 연기자들에게 애교 부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하나뿐인 내편’에 출연하면서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평생 들어도 차고 넘칠 만큼 들었어요. 귀엽대요. 제가요. 저는 원래 재미없는 사람인데요.(웃음) 배우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순간순간 다른 인생을 살기 때문에 내 삶에도 도움이 되고요.” 그렇다고 그녀가 박금병 같은 강한 캐릭터 연기를 처음 해본 것은 아니다. KBS1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새엄마 역할을 했고,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배우 송승환과 연상연하 부부로 연기한 적 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박금병이 인기나 화제성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녀는 최근 드라마와 캐릭터의 인기에 힘입어 KBS2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투게더’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살면서 처음 나가봤어요. 우리 집안에 예능 PD가 있는데 출연 제의가 와도 안 나간다고 했거든요. 매니저 등쌀에 못 이겨 결국 나갔네요. 유재석 씨가 능력자더라고요. 나같이 재미없는 사람 앉혀놓고 잘 이끌더군요. 그날 ‘해피투게더’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하더라고요.” 데뷔 51년 차, 나를 돌아보다 스타 탄생 비화에 종종 등장하는 스토리. 정재순도 친구 따라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얼떨결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1968년 TBC 8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미술대학교 지원도 못하게 했는데 탤런트를 하겠다니, 부모님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지원군이 정재순 옆에 있었다. “저는 그때 대학 재수를 하면서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대가 심해서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당시 남자친구였던 제 남편의 부모님이 제가 탤런트 된 걸 너무 좋아하셨어요. 밀어줬다기보다는 ‘괜찮다’ 이 정도요? 그때 시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시댁에서 바람날 여자는 안방에 앉혀놔도 막을 수 없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힘과 용기를 내 방송사에 갔는데 세상에 아유…. 막상 닥쳐보니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끼도 없더라고요.” 간단히 말해 얼굴이 예뻐서 합격한 케이스였다. “괜찮은 여자 탤런트가 들어왔다고 방송사에 소문은 났는데 연기를 시켜도 뭘 할 줄도 모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였거든요. 야외 촬영은 너무 싫었어요. 스튜디오 촬영은 얼마든지 했고요. 사람들이 와서 지켜보고 있으면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박금병이 같은 역할도 하고. 약간 뻔뻔해졌다고나 할까?”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갔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연기자는 생각도 안 해본 직업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뭘 잘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면서 방송사를 다니던 시절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흐른 거죠. 51년 동안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너무 아쉬워요. 이번에 ‘하나뿐인 내편’은 기억에 남겠죠.” 기다림이 만들어 준 또 다른 이름 화가 남들이 기억하는 작품이 많은 것보다 오랜 시간 기복 없이 꾸준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온 것 자체가 더 대단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연기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선택받는 직업이잖아요. 매년 꾸준하게 몇 작품씩 들어와야 하는데 들쭉날쭉했어요. 그래서 그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중고등학교 시절 그림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아왔지만 부모님 반대로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림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물감을 사 모으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수채화를 그리다가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은사를 찾아가서 배웠는데 체계적으로 공부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책도 찾아보고 공부도 하면서 미술공모전이 있으면 열심히 작품을 냈습니다. 미술계 유명한 공모전에는 거의 다 출품했던 것 같아요. 1991년에 첫 개인전을 할 때까지 응모했죠.” 그녀의 첫 개인전은 당대 히트작이었던 MBC 주말연속극 ‘배반의 장미’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극중에서 제 배역은 속 썩이는 남편을 둔 재벌가 며느리였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였는데 ‘배반의 장미’를 집필하신 김수현 선생님이 제가 전부터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극이 끝날 때쯤, 전시회가 있다는 걸 아시고 전시회 신(scene)을 만들어주셨어요. 그 드라마에 나왔던 전시회 장면은 제 개인전 모습이었어요. 정말 감사했죠. 어느 연기자가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겠어요.” 화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느새 그녀는 미술계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삶과 화가로서의 삶은 그 성격이 판이했다. “저는 연기와 그림을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림은 혼자서 작업해도 되지만 드라마는 40~50명이 같이 어우러져서 일하잖아요. 1996년도에 네 번째 전시회를 할 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때 한꺼번에 세 작품을 소화하는 중에 전시 스케줄까지 잡혔었거든요. 그 뒤 5년간은 드라마에만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개인전을 연건 12년 만이었죠.” 요즘은 그림 활동을 안 하다시피 하니 화가 정재순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색하다. 그래도 마음이 힘들던 시절에 자신을 위로해줬던 것은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시니어도 시간이 많다고 무료하게 지낼 게 아니라 취미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좋더라고요. 드라마를 하면서 힘든 게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 힘든 세월 동안 그림이 있었으니까 많이 위로를 받은 거죠. 그리고 또 드라마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도 보여드리고 있잖아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림은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있지만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자꾸 소홀해지는 것을 느낀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말이다. “옛날같이 체력이 안 따라줘요. 예전에는 드라마와 그림을 같이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쉽지 않아요. 저는 비구상화를 그려요. 마음이 캔버스에 드러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담아낼지 고민이 없으면 절대 그림을 그릴 수 없어요. 뭘 그릴까 계속해서 고민을 해도 작품이 나올까 말까예요. 누구도 함께할 수 없죠.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건 굉장히 행복하고 자유스러운 거예요.” 박금병이 때문에 김장도 못했다 한참을 드라마와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슬쩍 흘러갔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고. 나긋하게 깔리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작년 말에 박금병이 역 하느라고 처음으로 김장을 못했어요. 살면서 거른 적이 없거든요. 매년 수산시장에서 젓갈이며 생선이며 사서 온 정성을 다해 담갔는데,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별미인데 참 아쉽네. 이번에 대사도 많고 스케줄도 빡빡했거든요. 그런데 김장을 안 하니까 여기저기서 주셔서 김치가 되게 많아요. 그래도 박금병이도 잘되고 드라마도 잘돼서 좋습니다.” 인터뷰 초반에는 몰랐는데 살림이며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에게서 발랄한 목소리의 박금병이 느껴졌다. 이제 드라마도 끝났으니 다시 정재순으로 돌아올 시간. 가발을 벗고 단장을 했는데 영 어색하다며 머리를 매만진다. “생각해보니 정식으로 할머니 역할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엄마였다가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되는 역은 많았는데. 거기다가 치매 환자 연기까지 했잖아요.” 매일이 새로운 연기자 제대로 연기했다는 만족감을 준 배역을 묻자 주저 없이 “이거. 박금병!”이라고 대답하는 정재순. “저는 연기자를 그냥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연기할 때 충실하게 살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직업 정신으로요.(웃음) 부족함도 많고 잘 모르니까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새로웠던 거죠.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좀 부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우선 성격 강한 박금병이랑 헤어졌으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은 뭐든지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원칙이니까 또 열심히 해야겠죠.” 앞으로 배우로서 바람이 있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100세 시대잖아요. 시니어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치매 연기 같은 거 말고. 힘과 용기와 아름다움과 즐거운 취미활동 같은 것들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화가로서 시간이 허락되면 내년쯤 전시회를 가져볼까 해요. 전시회 열면 초대할게요.” 인터뷰를 마치고 정재순이 곧바로 향한 곳은 ‘하나뿐인 내편’의 종방연 현장이었다. 플래시 세례 속을 ‘강기사 오빠’인 최수종 팔짱을 끼고 걷는 정재순을 인터넷 뉴스로 접했다. 데뷔 51년 만에 인생 배역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수 있었던 그녀만의 힘, 주어진 일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었다.
- 2019-04-16 08:44
-
- 예술의전당, 시니어를 위한 연극 워크숍 개최
- “Bravo, Your Life! 당신의 인생을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어보세요! 연극이 처음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열린 마음과 도전의식만 있으면 됩니다.” 평소에 연기, 연극에 관심이 있던 시니어라면 주목해보자. 예술의전당은 주한영국문화원과 공동으로 시니어를 위한 연극 워크숍 ‘드라마 같은 내 인생’을 3월 2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최한다. 이번 워크숍은 주한영국문화원이 추진 중인 ‘창의적 나이 듦(Creative Aging)’ 프로젝트의 하나로 영국 맨체스터의 로열 익스체인지 극장 시니어 극단의 책임자이자 연출가인 앤드류 베리(Andrew Barry)의 지도로 진행된다. '드라마 같은 내 인생'은 6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며, 참가자는 개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고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창조하여 연극적 요소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참가비는 3만 원이며 20명 소수 인원으로 진행된다.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 2019-03-20 17:28
-
- ‘눈이 부시게’ 속 ‘홍보관’, 주의하세요
- ‘국민 엄마’ 김혜자를 비롯해 정영숙, 장미자, 정진각, 전무송 등 대한민국 대표 시니어 배우의 활약이 돋보이는 월화극 ‘눈이 부시게’가 종영 3회를 앞두고 전국 기준 7.7%의 높은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을 기록했다. 11일 방영된 9회에서 사채 빚에 시달리던 김희원이 샤넬 할머니의 보험금 수혜자인 이준하를 폭행하고 위기에 빠뜨리는 장면이 공개돼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좋은 형으로만 알았던 김희원의 본색과 함께 ‘효자홍보관’의 실체 또한 드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드라마 초반부터 중요한 무대였던 효자홍보관은 지금까지 있었던 시니어 대상 사기 피해를 떠오르게 했다. 극 중 효자홍보관은 종이접기도 하고 노래와 율동을 하는 ‘노치원(노인들의 유치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건강식품을 비싸게 파는가 하면,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한 뒤 중간에 돈을 가로채는 등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것. 이런 사건은 드라마 밖 현실에서 시니어들 대상으로 자주 발생한다. 의료상품 사기뿐만 아니라 금융사기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회장 윤덕홍)가 금융사기 피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피해 사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 교육을 대신 하기도 한다. 금융사기 예방 교육연극 '네놈 목소리'의 첫 장면이 바로 홍보관. 주름을 없앤다는 '다리미 크림'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입했다가 사기당하는 시니어의 모습이 그려진다. 홍보관이 극 중에서 전반적인 금융사기 피해 현장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시니어들이 사기피해를 입는 곳이기에 작품 속에 녹여냈다. 작년 3월 금융위원회의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받은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는 작년 한 해 약 7000여 명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금융사기 피해 교육을 해왔다. 오영환 사무총장은 “올해는 이보다 더 많은 시니어들에게 교육을 이어나갈 예정”이라면서 “금융사기 예방교육 2만5000명, 디지털 금융교육 6000명, 은퇴자산 관리와 생애설계 교육 2500명 등 약 3만 명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 2019-03-12 20:00
-
- 3월 문화캘린더
- 따뜻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3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일시 3월 5~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박영수, 신상언, 김도빈 등 서울예술단의 대표작 ‘윤동주, 달을 쏘다.’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완성도 높은 무대로 돌아온다. 시인 윤동주의 치열했던 삶과 예술을 담아낸 뮤지컬로 비극의 시대에 써내려간 그의 시(詩)들이 노래와 춤으로 어우러져 감동을 선사한다. (행사) 2019 광양매화축제 일시 3월 8~17일 장소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매화마을 일원 전라남도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광양매화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축제다. 새하얀 눈처럼 만발한 매화와 아름다운 섬진강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산책로를 걸으며 백(白)매화뿐만 아니라 홍(紅)색, 청(靑)색 다양한 매화의 색과 향기에 취해보자. 인근 청매실농원에서 광양의 특산품인 새콤달콤한 매실도 맛볼 수 있다. (클래식) 송영훈의 클래식 큐레이터, 낭만에 대하여 일시 3월 10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해설가 및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이신규 등 클래식 음악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공연이다. 음악과 미술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대한민국 대표 첼리스트 송영훈이 이해하기 쉬운 해설과 수준 높은 연주로 풀어낸다. 차세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연주로 낭만시대와 인상주의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일시 3월 15일~5월 12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출연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등 까칠한 성격의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와 꿈을 찾아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소통으로 풀어가는 주인공들은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2017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내공을 자랑하는 배우 이순재와 신구가 ‘앙리’ 역을 맡았다. ‘콘스탄스’ 역에는 권유리,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되어 색다른 분위기가 기대된다. (행사) 제20회 구례산수유꽃축제 일시 3월 16~24일 장소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원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지리산에서 봄의 정취와 시원한 고로쇠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꽃축제다. 행사장에서 산수유꽃으로 만든 먹거리를 맛볼 수 있으며, 산수유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공연도 펼쳐진다. (오케스트라) 노다메 칸타빌레 인 클래식 일시 3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일본과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이 드라마 속 정통 클래식이 오케스트라로 찾아온다.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인 KBS ‘내일도 칸타빌레’의 연주 대역을 맡은 피아니스트 이현진과 풀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즐길 수 있다.
- 2019-03-04 08:32
-
- 세대공감 코미디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3월 막 올라
- 2월 26일 오후 2시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연출 이해재)’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연출을 맡은 이해재와 배우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김대령, 조달환, 김은희, 유지수가 참석해 작품을 소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Ivan Calbérac)의 작품으로 2012년 프랑스에서 초연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와 까칠하지만 진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할아버지 '앙리'가 동거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서사로 2017년 국내 초연에서도 유료 객석 점유율 92%를 기록, 3만 관객을 돌파했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이순재와 신구가 '앙리' 역을 맡았다. '앙리'와 티격태격하며 꿈을 찾아가는 대학생 '콘스탄스'역에는 권유리와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 되었다. 초연에서는 김슬기와 박소담이 콘스탄스 역에 캐스팅 되어 상큼하고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신구는 "처음엔 그들을 대체할 배우가 또 있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권유리와 채수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브라운관과 연극 무대를 오가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채수빈은 "초연 당시 슬기 언니와 신구 선생님이 연기한 공연을 관람하며 역할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참 예쁘고 탐나는 연극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앵콜 공연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좋다"며 출연 소감을 전했다. 소녀시대로 가요계에서도 활약 중인 권유리는 이번 작품이 연극계 첫 데뷔작이다. 중앙대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녀는 "대학로를 오갈 때마다 연극무대에 서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대선배님들과 한 무대에 서게 되어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소녀시대 멤버들도 권유리의 첫 연극 도전에 많은 응원을 보내줬다. 특별히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 이순재, 신구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소녀시대 멤버 써니는 "우리 할아버지들 잘 부탁한다"며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이순재는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상당히 짜임새 있는 작품"이라며 "세대 간의 충돌에서 오는 재미도 있지만 결국 '앙리'와 '콘스탄스'가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 감동을 주고, 전 세대의 공감을 끌어 낸다"고 말했다. 아버지인 '앙리'와 오랜 갈등을 겪고 있는 아들 '폴'역을 맡은 배우 조달환은 "이번 공연이 많은 분에게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 막강한 캐스팅 군단으로 무장한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가 지난 초연에 이어 흥행신화를 갱신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3월 15일부터 5월 12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 2019-02-27 17:26
-
- 2월 문화캘린더
- 설 명절 연휴가 이어지는 2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파가니니 일시 2월 15일~3월 31일 장소 세종M씨어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비운의 대가로 남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 등을 재편곡해 매력적인 ‘록클래식’으로 선보인다. (오페라)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즈 내한공연 일시 2월 19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설적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발굴한 천재 아티스트 ‘마르첼로 알바레즈’.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석권한 그의 첫 내한공연이다. ‘카르멘’, ‘팔리아치’, ‘투란도트’ 등 총 13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100분간 오페라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 (클래식)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세드릭 티베르기엥 듀오 일시 2월 21일 장소 LG아트센터 영국의 대표 신문 ‘타임스’가 ‘음악계를 평정할 듀오’라며 극찬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와 피아니스트 세드릭 티베르기엥. 이들의 합주로 낭만주의 실내악 명곡인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들을 수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일시 2월 22일~3월 23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 양희경, 이수미, 김한, 오정택, 정원조 등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 원작이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돈을 받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 아줌마’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차별과 약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수작이다. (콘서트) 미스터션샤인 OST 오케스트라 콘서트 일시 2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출연 안두현, 이현진, 송민제, 이신규 20세기 초 조선 의병들의 의와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각종 차트를 휩쓴 미스터션샤인 OST가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뮤직비디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드라마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 2월 27일 장르 다큐멘터리 출연 강금연, 곽두조, 박금분 등 인생 팔십 줄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욜로(YOLO)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경북 칠곡에 사는 ‘평균 86세’ 꽃다운 청춘들이 배움의 즐거움에 빠져 인생을 재밌게 사는 비법을 전수한다.
- 2019-01-31 09:53
-
- 황진이 삶을 꿈꾸는 전직 광고쟁이 신강균
- 오래전 재미있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란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침대’라고 답한 것.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고 강조했던 인기 광고 영향이었다. 아이들의 이유 있는 오답에 어른들 또한 웃으면서 수긍하고 말았다는 미담이었다. 이 희대의 사건(?)을 빚어낸 주인공을 만났다. 걸어온 길이 한국 광고계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아깝지 않은 이 사람, 신강균(申橿均·67). 은퇴했다는데 매일 시간을 쪼개야 하는 연예인급 스케줄에 인터뷰 시간 맞추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속내 먼저 털고 인터뷰로 들어갔다. 60대 과즙미가 뿜뿜 터지는 사람 사진에서 느껴지는 저 중후함을 보라. 이제 막 은퇴 3년 차에 접어든 사람. 산책을 하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사색을 즐길 것만 같은가? 오산이다. 인생 뭐 있나. 생기발랄 여기저기 안 걸친 데가 없다. 그래서 별명이 걸침이다. 시낭송은 기본이요, 판소리도 모자라 남도와 경기민요를 오간 지도 7, 8년쯤. 요리하는 요시남(요리하는 시니어 남자), 가야금, 대금, 피리, 댄스, 캘리그래피 등이 취미이자 요즘 하는 일이다. 카카오톡 프로필은 자화상, 배경화면은 길게 뻗은 고속도로 중앙선에서 발랄하게(?) 뛰어오른 모습이다. ‘지금이 좋다’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기에 물었다. 그래서 지금이 좋으십니까? “벨기에 학자 말에 인생의 행복 곡선이 U자 모양으로 됐답디다. U자에서 제일 밑이 30, 40대래요. 밥벌이도 해야 하고 자식들도 키워야 하니까. 행복감이 다시 회복되는 게 60대 이후라던데 김형석 교수님도 ‘백년을 살아보니’에 쓰셨더군요. 나도 지나고 보니까 지금이 딱 좋아요. 왜? 일의 터널에 있다가 빠져나와 나만의 시절을 사니까요. 지금 내 시간이 온전하게 딱 생긴 겁니다. 그렇죠?” 거절 받을 용기, No는 Yes의 신호 신강균 씨의 공식적인 이력은 광고대행사 오리콤에 입사해 기획이사까지 지낸 22년, 그리고 한세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생활 18년이 전부다. 얘기를 듣다 보니 번외 이력 하나가 더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들다는, 영어로 된 백과사전 영업사원을 했어요. 경영대학원 다닐 때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짜고짜 팔아야 했다. 당시 영업지역장이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 그가 지역을 정해주면 청계천이든 탄광촌이든 사람이 있는 곳이면 달려가 영업을 했다. “무조건 일대일이었어요. 영어 새카맣게 모르는 노동자들에게도 팔았어요.(웃음) 영어로 된 명함 주고 가면 ‘뭐야 이게?’ 하는 반응이었죠. 열 번째 가면 ‘고생하쇼’, 스무 번째 가면 ‘물이나 한잔 들고 가슈’ 했죠. 거절당하는 훈련을 했던 거예요. 세일즈의 기본은 거절. 그러나 ‘노’는 ‘예스’의 또 다른 신호입니다.” 못 팔면 버스비가 없어 영등포에서 청량리까지 걸어서 귀가했다. 두 군데만 더 가보자 하고 약국에 들렀다가 백과사전을 팔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이 광고계에 입문해서도 큰 자산이 됐단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지갑을 열 것인가 고민하고 설득의 방법을 배우던 시간이었다. 광고계를 들었다 놨다 하던 시절 “광고회사도 내 발로 찾아 들어갔어요. 그때 광고계 대가이셨던 신인섭 씨를 찾아가 광고일을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죠. 학구적인 곳이라면서 오리콤을 추천해주시더군요. 그래서 오리콤으로 갔죠. 안내데스크에서 내가 여기 들어와야 하는데 누구를 만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차장급을 만나게 해줬어요. 결국 국장까지 대면했습니다. 마침 두 달 후에 경력 사원을 뽑는다기에 응시했죠. 대학원 졸업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던 때였거든요.” 광고계에 발을 들인 신강균은 신나고 강렬하게, 균형 잡힌 광고를 쏟아냈다.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OB라거의 ‘라라라’, 대우전자 ‘봉세탁기’ CF 등 한국 광고계에 길이 남을 작업을 했다. 특히 침대를 가구의 영역을 넘어 과학과 건강으로 해석해낸 에이스침대 광고는 사회적 인식 전환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당시 가구회사에서 침대를 생산하다 보니 침대 전문회사가 하향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사할 때 가구 바꾸면서 침대를 세트로 바꾸는 거지. 침대 회사에서 봤을 때 환장할 일이죠.” 에이스의 침대공학연구소에 가보니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쇠공을 침대 스프링 위에 8만 번 떨어뜨리며 연구를 하고 있었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몇 mm가 줄어도 폐기처분했다. 이 모습을 보고 난 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 카피가 탄생했다. 말 그대로 광고계를 휘젓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칸 광고제 동사자상을 받은 것은 물론 런던광고페스티벌에서도 그의 이름이 불렸다. 한국광고대상은 안방 드나들 듯하며 받았다. 인생은 3·7제다 지금도 광고주 앞에서 발표한 뒤 깨지는 꿈을 종종 꾼다는 신강균. 일에만 미쳐 살았으니 어디 소홀한 데도 있지 않았을까? “내 신조가 3·7제입니다. 인생의 70%는 열심히 일하면서 조직에 충실하고 30%는 자기계발하자. 회사로 치면 자기만의 기획실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 사람이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는 겁니다.”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전날 술을 새벽까지 마셨어도 어김없이 일어나 영어학원에서 공부하고 회사에 갔다. “8시 반에 시간 맞춰 출근하면 끌려가는 기분인데 내가 하고 싶은 걸 앞서 하고 가면 자발적으로 나가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오늘 가서 뭔가 배워야지. 설득에 있어서도 자발성이 중요하거든요. 자발성 욕구를 자극하는 거요. 저를 위한 취미도 많이 했어요. 사물놀이도 하고 말이죠.” 주말이 되면 회사 일은 접고 무조건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빠였다. 텐트를 가지고 홍도로 선유도로 해외로 이곳저곳 참 많이도 다녔다. 대학교수 시절에도 제자들과 각종 연수를 함께하면서 눈높이 교육을 했다. 취업률 성과 말고 제대로 성장하고 자생할 수 있는 제자 양성에 집중했다. 가르쳤던 학생의 70%는 광고계에서 일하고 있을 정도이니 나름 제자 농사는 잘 지은 셈. “제자들이 지금도 술 사달라며 연락하는데 내가 바빠서 스케줄을 못 잡아요.(웃음)” 맞벌이 부부의 진정한 은퇴식 세계일주 작년 2월 교직에서 물러난 아내와 7개월여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온 신강균. 정년퇴임한 아내가 쓸쓸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돼 먼저 퇴임한 신강균이 다양한 취미생활에 매진하면서도 여행 준비를 해놓았다. “작년 3월 9일에 딱 출발했어요. 캠핑 텐트 가지고요. 프랑스 파리에서 120일 정도 차를 빌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전역을 돌았어요. 그다음엔 배로 건너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스위스에서 트레킹하고요. 주로 산으로 들로 걸어 다녔어요.” 매일 5시간 이상 산을 오르고 캠핑장에서 텐트치고 밥 해먹어가며 여행했다. “호텔에서 거의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호텔은 100달러 이상 비용이 드는데 캠핑장은 20달러면 샤워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호텔에 가면 손님인데 캠핑장에서는 우리가 주인입니다. 왜 비싼 돈 주고 손님 노릇을 해요.” 인생 목표는 황진이처럼 살기 신강균이 부부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도전한 것은 바로 영화다. 서울대학교 총연극회 후배인 배우 정진영이 직접 쓰고 연출한 독립영화에 캐스팅돼 꽤 많은 분량을 소화하며 영화 연기에 도전했다. 이번 기회에 영화판에도 기웃거려볼까 생각한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황진이가 제 목표예요. 시·서·화·창(詩·書·畵·唱) 그리고 악기, 무용까지 다 하는 것이죠. 인생은 한 번뿐이고 아침에 눈을 뜨는 자체가 늘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까닥 잘못하면 너무 오래 살 수도 있어요.(웃음) 일본에서 100세 노인한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물었대요.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면 일흔 살에 30년 계획을 세웠을 텐데’라고 했답니다. 저는요, 30년 계획은 욕심인 것 같고 20년 계획은 세워뒀습니다.”
- 2019-01-11 09:15
-
- 1월의 문화행사
- (전시) 로메로 브리토 : Color of Wonderland 일정 1월 3일~3월 10일 장소 3·15아트센터 제1, 2전시실 팝아티스트 로메로 브리토의 회화와 조각, 영상미디어 등 총 100여 점의 작품을 공개한다. 밝은 색상을 많이 사용하는 그의 작품에는 유쾌한 에너지가 담겨 있어 ‘힐링 아트’라는 애칭이 따르고 있다. (축제) 화천산천어축제 일정 1월 5~27일 장소 강원도 화천군 일원 5년 연속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꼽힌 화천산천어축제가 개막한다. 올해는 산천어 수상낚시, 루어낚시, 밤낚시 등의 산천어 체험과 눈썰매, 봅슬레이, 얼음축구 등으로 구성된 눈·얼음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뮤지컬) 라이온 킹 일정 1월 9일~3월 28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출연 느세파 핏젱, 캘빈 그랜들링, 데이션 영 등 한국에서 원어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라이온 킹’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원, 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가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그린 북 개봉 1월 10일 장르 드라마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등 천재 피아니스트와 망나니 매니저가 투어를 다니며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며 작품상 등 골든글로브 5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공연) 레젼드 마술쇼 일정 1월 17~25일 장소 공연하닭 출연 김준표 마술사 김준표가 진행하는 ‘레젼드 마술쇼’는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의 근거리 마술 공연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술을 마시면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 50분간 믿기지 않는 마술의 세계에 푹 빠져보자. (연극) 오이디푸스 일정 1월 29일~2월 24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출연 황정민, 배해선, 남명렬 등 연극,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무대로 옮겼다. 배우 황정민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 ‘오이디푸스’로 변신해 기대를 모은다.
- 2018-12-28 08:51
-
- 12월의 문화행사
- (전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일정 12월 4일~2019년 3월 3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미국,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국외 5개국과 한국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의 미술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문화재 총 390여 점이 출품된다.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일정 12월 6일~2019년 1월 27일 장소 아트원씨어터 1관 출연 이순재, 박인환, 손숙, 정영숙 등 강풀 웹툰을 원작으로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대학로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우유 배달을 하는 ‘김만석’과 파지를 줍는 ‘송이뿐’,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는 ‘장군봉’과 기억을 잃어버린 ‘조순이’가 서로 인연을 맺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베테랑 연기자 이순재, 박인환, 정영숙 등이 출연한다. (축제) 보성차밭빛축제 일정 12월 14일~2019년 1월 13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일원 차밭 빛물결, 은하수 터널, 빛 산책로, 디지털 차나무, 차밭 파사드 등 아름답게 꾸며진 빛 조형물이 보성의 겨울밤을 장식한다. 주말에는 불쇼, 불꽃, 음악, 레이저 조명이 어우러진 불꽃 공연, 실내정원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공연, 해외특별 공연 등이 진행된다. 또 소망카드 달기, 문화장터 등의 상설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영화) 스윙키즈 개봉 12월 19일 출연 도경수, 박혜수, 자레드 그라임스 등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 탭댄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오합지졸 댄스단 ‘스윙키즈’의 탄생기를 그렸다. 종군기자 베르너 비숍이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됐다. (뮤지컬) 마리 퀴리 일정 12월 22일~2019년 1월 6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김소향, 임강희, 박영수, 조풍래 등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는 방사능 연구를 통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는 등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라듐의 유해성을 알게 된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작품에 담았다.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일정 12월 28일~2019년 3월 31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입체미술 운동의 탄생 배경에서 소멸까지의 흐름을 연대기적 서술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근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등 유명 작가의 진품 명화 9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 2018-12-03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