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소설을 읽다 사랑에 빠져버린 첫 작품이 바로 다. 푸르른 무밭하며 실개천 돌다리길,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소나기처럼 온몸에 녹아들었다. 애잔하지만 환상적인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소설 . 의 작가 황순원의 따뜻함을 간직한 그곳에 찾아갔다.
황순원 문학관은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의 2009년 개관과 함께 문을 열었다. 경기도 양평군에 조성된 황순원 문학촌은 소설 를 소재로 문학 테마 공원으로 꾸며졌다. 황순원의 장편소설 을 주제로 한 ‘해와 달의 숲’과 단편소설 의 분위기를 빌린 ‘너와 나만의 길’, ‘고백의 길’, ‘소나기 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개관 이후 우리나라 문학관 중 유료입장객이 가장 많은 문학관으로도 꼽힐 만큼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윤초시네가 이사 간 곳에 황순원 문학관
그렇다면 왜 경기도 양평군에 황순원 문학관이 생긴 것일까? 소설가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평양과 오산에서 짧게 보낸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후 한국전쟁 발발 전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와 서울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23년 6개월 동안 교수생활을 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양평에 적을 둔 적이 없다. 양평이 황순원 문학관의 최적지가 된 이유는 바로 소설 때문이다. 2000년 9월 14일, 세상을 떠나 고향도 연고도 없이 병천 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한 황순원. 경희대학교 제자들은 황순원 문학관을 짓기 위해 뜻을 모았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라는 내용과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가 만난 징검다리 등 소설의 배경과 닮은 곳이 바로 양평이었기에 문학관 자리로 낙점됐다.
황순원 부부, 문학촌 안에서 잠들다
문학관 개관과 함께 황순원의 유골은 이장돼왔다. 2014년 한국 나이 100세로 숨진 동갑내기 부인 양정길씨도 이곳에 함께 안장됐다. 두 사람은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자유연애로 만나 결혼했다. 평양에 살 때부터 교제한 사이로 알려졌는데 황순원은 숭의중학교, 부인 양정길씨는 숭의여중에서 문예반장을 했단다. 1935년 둘은 일본 유학 중에 결혼해 1938년 장남 황동규를 낳았다. 이후 차남 남규, 딸 선혜, 3남 진규를 차례로 얻어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장남인 황동규는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나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했다.
황순원 문단 데뷔는 소설이 아닌 시
황순원이 쓴 작품은 단편소설 104편, 중편소설 1편, 장편소설 7편이다. 놀랍게 시도 104편이나 된다. 사실 황순원은 시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17세 때 문학잡지 에 ‘나의 꿈’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17세 소년의 꿈을 잘 드러냈다는 평을 들었다. 많은 독자가 그를 소설가로만 기억하지만 70세 이후로는 그는 다시 시의 세계로 돌아갔다. 간결하고 단단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순수와 서정미가 돋보이는 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황순원. 깔끔하고 잡문을 일절 쓰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성격과 등단 초기 시작(詩作)의 영향이 역작에 그대로 배인 것이다.
황순원은 한국 근대소설의 대가다. 사람들은 그가 일필휘지하듯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공책을 열 권, 스무 권, 백 권 가까이 쓰면서 교정을 보고 글을 고쳐 완성했다. 교정도 절대 제자들한테 맡기지 않았다. 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그의 초고 공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글을 엄격하게 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황순원은 라는 수상집을 제외하고는 시와 소설만 썼다. 신문 기고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순원의 작품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4·19, 5·16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질곡을 작품 하나하나에 녹여낸 결과다. 그의 작품들은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제작돼 다양한 계층의 공감을 샀다.
서양화가 김환기는 황순원의 작품 , , 의 책 표지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그가 표지 그림을 그려준 작가는 황순원이 유일하다.
소박한 일상이 엿보이는 황순원의 서재
황순원이 마지막까지 작업을 했던 서재를 문학관에 옮겨놓았다. 책상 뒤 병풍은 서예가 평보 서희환(1934∼1998)이 황순원 선생의 작품 제목을 써서 만들었다. 황순원의 문학전집 4권의 글씨도 그가 썼다. 황순원 선생의 제자 황재국(76)이 쓴 미도거진(味道居真)이라는 서예 작품도 눈에 띈다. 이 글에는 ‘도를 맛보게 하고 진실되게 가르쳐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란 뜻이 담겨 있는데 스승에게 고희 기념으로 선물한 것이다. 경희대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갈 때마다 트레이드 마크처럼 입고 다녔던 트렌치코트와 베레모가 서재 왼편에 전시돼 있다. 살아생전에 쓰던 낡은 시계와 면도기 등도 전시돼 있는데 특히 면도기는 1934년부터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절제의 미학은 바로 군더더기 없는 그의 소박한 삶에서 비롯된 것임이 느껴진다.
☞관람 정보
관람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11월~2월), 오전 9시 30분~오후 6시(3월~10월)
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유치원생 무료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산 74(소나기마을길 24)
※가능한 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함.
◇전시(exhibition)
1) 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 이삭줍기 전: 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
일정 3월 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세기 서양미술사를 빛낸 거장들의 명작 130여 점을 만날 기회다. 작품 보존을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고흐의 ‘정오의 휴식’은 오르세미술관 개관 이래 수십 년 동안 유럽 이외 지역으로 반출된 적이 없으나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대여를 허가했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상징주의와 절충주의, 20세기 예술의 다양한 원천 등 5개의 테마로 나누어 각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 간의 대비와 유기성, 예술사의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2)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
일정 3월 26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닉 나이트(Nick Knight)의 국내 첫 사진전이다.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이 돋보이는 닉 나이트 특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 실험을 접목한 패션필름까지 폭넓게 마련돼 있다. 초상사진, 디자이너 모노그래프, 페인팅·폴리틱스, 정물화·케이트 등을 주제로 한 110여 점의 각양각색 작품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선데이 라이브 앤 클래스(SUNDAY LIVE & CLASS)’ 등 유익한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들도 살펴볼 만하다.
◇도서(book)
1) 인생의 발견(시어도어 젤딘 저·어크로스)
21세기의 예언자라 불리는 영국의 철학자 시어도어 젤딘이 유명 인물들의 전기와 철학적 탐색을 통해 발견한 28가지 질문을 담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인간과 삶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해온 저자의 성숙한 지혜와 혜안을 엿볼 수 있다.
2) 브릿마리 여기 있다(프레드릭 배크만 저·다산책방)
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59세 중년 남성 오베와 얼핏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지닌 63세 중년 여성 브릿마리. 누군가의 그늘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삶의 위기를 통해 온전한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렸다.
◇영화(movie)
1)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희귀암에 걸린 26세 청년이 한국인 최초로 49일 만에 뚜르 드 프랑스 풀코스를 완주한 실화를 영화화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체육교사를 꿈꾸었을 정도로 건강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는 뚜르 드 프랑스 완주라는 꿈을 키운다. 3500km 레이스의 마지막 지점인 파리 개선문을 통과하며 꿈을 이룬 순간의 가슴 벅찬 감동이 영화의 포스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봉 1월 12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윤혁 출연 임정하, 전일우, 박형준 등
2)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떠돌이 음악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우연히 만나면서 인생의 희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목처럼 주인공 제임스는 어깨에 고양이 밥을 올리고 거리 이곳저곳에서 기타를 치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따뜻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두 주인공은 2007년에 만나 현재까지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데이비드 허슈펠더 음악 감독과 싱어송라이터 찰리 펑크 등 실력파 제작진이 대거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개봉 1월 4일 장르 드라마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출연 루크 트레더웨이, 루타 게드민타스 등
◇공연(stage)
1) 인간
프랑스의 천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인류 마지막 생존자인 화장품 연구원 라울과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가 ‘인류는 이 우주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재판을 벌이는 2인극이다.
일정 3월 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연출 문삼화 출연 고명환, 오용, 박광현 등
2) 꽃의 비밀
네 명의 아줌마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해 벌이는 사건들을 유쾌하게 그렸다. 장진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코미디 장르의 연극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대명문화공장 연출 장진 출연 배종옥, 소유진, 이청아 등
3)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국 고전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의 비극성에 희극적 요소를 곁들여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2015년 이 작품의 무대에서 유명을 달리한 배우 고 임홍식의 공손저구 역은 중견 배우 정진각이 이어받았다.
일정 1월 18일~2월 12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장두이, 하성광, 정진각 등
4) 아이다(AIDA)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던 해 토니 상과 그래미상 등을 휩쓸었던 명작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이후 5년 만에 막이 오른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두 여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라다메스 장군의 사랑을 노래한다.
일정 3월 11일까지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키스 배튼, 박칼린 출연 윤공주, 아이비 등
◇ Exhibition
1) 태양의 화가 반 고흐: 빛, 색채 그리고 영혼 전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apM CUEX홀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새롭게 연출한 전시다. 고흐의 수작들을 디지털 영상 기술과 접목한 최첨단 전시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인상파와의 교류, 대자연, 고흐의 방, 동양의 색채, 초상, 동생 테오와의 편지 등 8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와치아웃 시스템을 이용한 멀티채널과 1만 픽셀 이상의 초대형 화면의 이머시브(Immersive) 시네마 등을 마련했다.
2)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 전(CHOI SUNU’S FAVORITE)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학자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그가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들을 글과 함께 소개한다. 평생 한국의 미를 탐색하고 박물관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최순우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다. 1층 통일신라실에서는 돌함과 뼈단지 등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다가 돌아온 문화재를, 2층 서화관에서는 김홍도서첩, 달마도 등을, 3층 조각·공예관에는 반가사유상, 달항아리 등 15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 코디최 개인전 CODY CHOI Color Painting: Frustration is Beautiful
일정 10월 28일~11월 20일 장소 PKM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40)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인 코디최(Cody Choi)의 개인전이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회화와 설치 작업 약 20 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준비를 위한 기금마련 전시라는 점에서 뜻 깊은 자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가이자 문화이론가로서 활동하는 코디최는 현대사회의 문화정체성과 권력관계에 관해 탐구한다. 현시대 다양한 문화가 빚어내는 충돌과 간극에서 태어난 제3의 문화 혹은 혼종문화, 동시대 사회현상에 주목하며 회화·조각·설치 등의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LA 아트센터 칼리지를 졸업한 코디최는 LA 현대미술관,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토탈미술관 등 국내외의 주요전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와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등 유럽에서 순회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20세기 문화 지형도 (2010),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 현대문화에 관한 전문비평서를 출간했다.
◇ Book
1) 초혼 (고은 저 · 창비)
고은 시인의 3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지무(自歌自舞)’ 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2) 보고 시픈 당신에게 (김광자 외 86명 공저 · 한빛비즈)
전국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엮었다. 글자를 익히면서 느끼는 기쁨,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애환 등이 돋보인다. 손글씨의 느낌을 살려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저시력자를 위해 큰 글자로 다시 정리했다.
◇ Movie
1) 기적을 증명한 두 남자 이야기
개봉 11월 3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맷 브라운 출연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 토비 존스 등
인도 빈민가의 한 수학 천재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영국 수학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숫자가 유일한 친구였던 순수한 수학 천재 ‘라마누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그의 열정적인 천재성과 삶의 고뇌 등을 담았다. 라마누잔 역을 맡은 배우 데브 파텔이 해외 유수 언론에서 “실존 인물 라마누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는 등 작품성 못지않게 그의 연기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봉 11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나가이 아키라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 가지씩 없애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 세계적으로 130만부 이상 판매량을 올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다.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라는 포스터 속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선한 스토리 전개로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인생의 행복을 선사한다.
◇ Stage
1) 연극 재공연, 이웃사촌들의 수상한 진실게임
일정 10월 27일~11월 20일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연출 이동선 출연 이황의, 김수보, 리우진, 곽지숙 등
지난 3월 초연돼 뜨겁게 주목받았던 극단 몽씨어터의 (작가 석지윤, 연출 이동선)가 11월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재공연 된다. 연극 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 그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폭소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웃 혹은 사람 간 의심이 한순간에 누구든지 싸이코패스로 몰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각박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예작가 석지윤의 독특한 언어, 이동선 연출가의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씁쓸하면서도 웃음 터지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과 마주하게 한다.
빌라의 고양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간다. 주민들은 벌어지는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대책회의를 연다. 그런데 301호의 혼자 사는 남자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가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싸이코패스를 잡기 위한 평범한 이웃들의 위험하고 묘하게 웃긴 진실게임, 바로 연극이다.
2) 천재 시인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다
일정 11월 5일~1월 22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오세혁 출연 강필석, 오종혁,이상이, 정인지, 최주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던보이였던 시인 백석의 시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의 시 노랫말로 표현했다.
3) 꿈과 희망을 위해 링 위에 서다
일정 11월 1일~1월 1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송창의, 신구, 김진태, 김지우 등
영화 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시합 장면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그려내며 2014년 토니어워드와 드라마데스크어워드에서 무대디자인상을 받았다.
4) 고모와 조카의 예측 불허 동거
일정 11월 22일~12월 11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구태환 출연 하성광, 정영숙
세상을 곧 떠날 것 같다는 고모의 편지 하나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가는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인생 첫 2인극 도전이라는 중견 배우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다.
5)인간의 죄의식과 예술가의 고뇌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김동수 출연 남명렬, 이명호, 박지일, 김병철, 손성호 등
1995년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정찬의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같은 해 11월 첫 공연한 이래로 상업성이 짙은 작품들이 주목받는 공연계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통의 밀도를 담아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입가에 미소 짓게 하는 어린 시절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아래 작은 도랑이 흐르는 포근한 동네…. 막내 오빠와 그 친구들이랑 논밭 사이를 선머슴처럼 마구 뛰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시절…. 그랬다. 하늘이 유난히도 파래 눈부시던, 아름다운 경남 진주시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극히 온화하시고 자상하신 아버지와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강하신 어머니께서는 육 남매를 두셨는데, 필자는 그중 다섯 오빠를 둔 막내이자 고명딸로 태어났다. 공무원이신 아버지 덕분으로 필자 가족은 관사에서 생활했다. 관사에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아담한 텃밭이 있어 여러 가지 농작물을 가꾸며 필자의 정서를 포근하게 살찌워 갈 수 있었다. 그 텃밭 옆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물은 유난히도 차가워 여름날 오빠들의 뜨거운 몸을 식히는 데에 일등 공신이 됐고, 여러 과일을 담가 식힌 뒤 먹기도 좋았다. 과일 접시를 한가운데 두고 온 가족이 평상에 둘러앉아 여름밤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들은 아직도 필자를 미소 짓게 한다.
◇ 교사의 꿈을 꾸기까지의 청소년기
당시 필자가 입학한 진주사범학교부속초등학교는 교복이 있었는데, 입학 당시 엄마는 손수 교복을 지어 입혀 주셨다. 감색 교복은 필자가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교복에 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은 모습이있지만 ‘이제 나도 어엿한 학생’이란 생각에 교복 입을 때마다 행복감에 져졌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 나시면서, 초등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서울로 전학하게 됐다. 전입한 서울초등학교의 친구들은 경상도 말씨를 쓰는 필자를 신기해하며 놀렸고, 이 때문에 점점 말이 없는 아이, 폭넓은 친구들의 사귐이 없는 소심한 아이로 변해 갔다.
그러던 중 6학년 때 담임으로 박병직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그 선생님께서는 나의 부족한 점을 잘 파악하셨고, 또 그 부족한 점을 채워 주시기 위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며 애써 주셨던 고마운 분이셨다. 그분은 내가 성년이 돼 38년 가까운 세월을 교단에 서 있을 수 있도록 첫 디딤돌이 돼 주신 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의 진학은, 학업 성적이 남달리 월등하지도 못했고, 또 당시 멀미가 심해 버스 통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걸어서 등하교할 수 있는 가까운 중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입시가 있었는데, 그 입시에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 하나가 있다. 입시 과목은 국어, 산수였는데, 시험을 마친 필자는 공중전화기로 달려가 아버지께 전화했다. 아버지께서는 수고했다면서 대뜸 산수 시험 문제 하나를 거론하시며, 답을 무엇이라고 썼느냐 하시기에 ‘12’라고 말씀드렸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수화기를 드신 채 직원들에게 대견한 딸이라 자랑하시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내 귀에 들려 왔다. 그 날 밤, 당신의 막내딸이 어려운 산수 문제 하나를 맞춘 것이 그리도 신이 나셔서 한턱내셨단다. 별로 뛰어나지도, 그리고 내세울 것도 없는 이 막내딸을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키가 제법 큰 중학생 딸을 초등학생 때와 다름없이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곧잘 여기저기 다니시기를 즐겨 하셨다. 자상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나를 대하실 때 한층 더 엄하셨다. 그것은 막내인 데다가 고명딸이고, 아버지의 절대적인 애정까지 받아 혹 남들로부터 버릇없이 키웠다는 소리를 들으실까 봐 내심 걱정이 많으셨던 것이다. 그땐 정말 철부지였었기에 한때 ‘내 엄마는 혹시 계모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으로 홀로 심히 고민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중학교 2학년 6월 필자는 일생에서 가장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토록 자상하셨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고혈압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땐 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었고, 그 충격으로 필자는 다시 말이 적은 아이가 됐다.
196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여고 시절이 시작됐다. 13년 위인 나의 큰오빠는 다섯 동생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채워 주셨다. 특히 큰올케의 뒷바라지는 나에게 아무 부족함을 느끼지 않게 해 주셨다. 대대로 내려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우리 가족은 서로 양보하고 사랑할 줄 아는 형제들이라는 것을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육 남매를 여자 혼자의 몸으로 자식들을 건강하게 키우시고 올바르게 가르치시느라 그 어느 어머니보다 피땀 흘리시며 사셨던 어머니. 지금도 애틋한 그리움으로 코끝이 시큰해 온다.
나의 신앙생활도 이때 많이 성장했다. 성장한 신앙심과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하다 보니, 중학교와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감사가 넘쳤고 생기가 충만했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 임원 활동도 하게 됐다. 특히 교단에 서서 후진 양성에 젊음을 불태우리라는 인생의 꿈을 찾으면서 구체적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한 여고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나의 대학생활 및 교직 생활
필자는 대학 입시 예비고사는 무난히 합격하였으나, 대학 입시에서는 낙방의 고배를 마셔 후기 대학으로 진학하게 됐다. 진학한 대학은 사범대학으로서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학교였다.
대학 생활은 순조로웠다. 신입생 시절부터 학보사 기자로 선발돼 적극적이고 활달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고, 교수님과 선배들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보다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나로 성장하게 하였다.
대학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뜨거운 열정으로 학과 연극제에서 두 번의 주연으로서 무대에 선 일과 학과의 전 학년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진행을 맡았던 것이다. 비록 낙선은 했지만 학생회 후보로 출마한 일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자의 가슴 어디에 그러한 열정이 숨죽이고 있다가 폭발했는지 자신도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 4학년 때, 최선을 다해 순위고사(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해야만 했다. 꿈꾸어 오던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무난히 시험에 합격한 후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3월부터 교직 발령이 나 곧바로 교단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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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퇴직하기까지 아홉 개의 학교를 거치면서 약 38년이라는 짧지 않은 교직에 몸을 담았다. 돌이켜 보면, 교직 생활 중에 받은 표창(교육장, 교육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등)들은 내게 더욱 잘하라는 격려와 지지가 돼 힘이 드는 줄 모르고 참으로 신명 나게 교육의 현장을 즐겼다.
49세의 나이로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을 논하고, 젊은 교사들과 교육을 고민하며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던 것과 나 자신이 대학원생으로서의 열정과 낭만을 맘껏 즐겼던 2년간의 그 시간도 참 아름답고 소중했다. 그간의 많은 학생, 학부모, 교사 들과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많은 일이 지금도 파노라마로 스친다.
◇ 교단을 떠난 후 ‘오늘’지난 2012년 8월, 약 38년간 교단을 지키다가 깊은 번뇌를 거쳐 명예퇴직을 결심하였다. 명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세 가지.
첫째, 인생 후반전에 훌쩍 접어드니, 그간 바쁜 생활로 곁에 있는 사람의 눈과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음이 불현듯 아쉬웠다. 먼저 남편과 마주 보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하고 싶었고, 아름답고 좋은 계절에 사람과 자연을 여유롭게 만나고 싶었다.
둘째, 크리스천으로서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기도회에도 참여하고 싶었다.
셋째, 세태의 변화로 평생 천직이라 생각했던 교직에 깊은 회의가 찾아들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스스로 한계를 만났는데, 그것을 뚫고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했던가. 퇴직 후 필자는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기쁨을 느끼며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언제나 남편과 함께 마주 앉아 하고, 신앙의 성장을 위해 성경공부 등을 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고, 새벽기도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회 될 때마다 임산부와 어린 친구들에게 태교동화와 구연동화를 들려주고 있으며, 동년기자단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바삐 지내고 있는 요즘이다.
또한 나의 든든한 언덕이 돼 주는 후원자이자 조력자인 남편, 그리고 언제나 제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주고, 때론 조언과 정보제공을 아끼지 않는 딸, 사위, 아들, 며느리,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단지 세 손주가 있어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거나, 성인이 돼 가끔 만나 식사하며 차 마시고, 세상살이 이야기를 하며 같이 늙어가고 있는 제자들이 곁에 있기에 참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필자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소풍’을 마치는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이타적 삶을 살아갈 것을 자신에 주문해 본다.
1953년 부산에서 떠난 환도열차가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014년 서울에 도착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점은 바뀌지만 주인공 이지순은 20대 모습 그대로 남편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90세 노인이 되어버린 것. 낯선 남편과 변해버린 서울의 모습에 혼돈을 느낀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극의 연출과 극본을 맡은 장우재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품 탄생 배경
몇 해 전 아는 선생님과 낙산에 올라가 대학로를 내려다보면서 옛날 개천이 흘렀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6·25 때 환도열차라는 게 있었고, 휴전이 되어 그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길이 안 좋으니 열차가 중간에 가다 서다 했다고 해요. 다들 서울로 돌아가면 뭘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솥 걸고 밥도 해먹으며 소풍처럼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문득 ‘6·25 때 열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만들고 싶었던 서울이 현재 우리가 사는 서울의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모티브가 되었죠.
2014년 초연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야기가 간결해졌다’와 ‘훨씬 더 다이내믹해졌다’입니다. 덕분에 마치 열차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더 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제이슨의 캐릭터가 초연과 달라졌는데요. 이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저 역시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1953년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설정을 하게 된 이유
작품을 쓰기 전 중국 단둥(丹東)에 가서 북한 식당에 들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안내원들을 보면서 말씨나 몸을 쓰는 태가 참 곱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의 내용은 첨단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였죠. 그 이질감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우리 어머니 세대가 나이를 먹지 않고 고스란히 처녀로 남아 현재에 나타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작품 구성에 투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으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점
볼거리보다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연극의 힘이 본래 그것이라 생각하고요. 이야기들이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관객이 어디까지가 이야기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분간 못 할 정도로 빠져들다가 문득 다시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지점들을 고민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언제 동화시키고 언제 이화시킬 것인지 매번 찾고 있죠.
중·장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
과거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아, 우리 저랬지’하는 공감과 함께 문득 ‘그것은 낡고 신파였지’라고 생각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과거는 그렇게 오래된 것일까요? 우리는 정말 저 멀리 나간 것일까요? 나이를 먹으면 시간과 인생을 통으로 보는 맛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신비롭습니다.
공연 연극 일정 3월 22일~4월 17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장우재 출연 김정민, 윤상화, 이주원, 김용준, 안병식, 강선애 등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정말 보람 있어요. 강의하면서 젊은이들의 열정과 신세대의 문화코드를 배우기도 하지요.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해 강단에 서는 것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드라마, 영화, 연극무대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견 연기자 이순재의 또 다른 직업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다.
대학가는 3월 입학식과 함께 활기찬 새 학기가 시작된다. 최근 들어 대학 캠퍼스에 교수나 강사로 나선 연예인들의 모습이 크게 늘었다. 방송, 연예, 연극, 영화, 음악 등 연예인 지망생이 급증하면서 대학교들이 경쟁적으로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학생 수를 늘려 대학 강단에 서는 연예인들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방송, 연예, 연극, 영화 관련 학과에선 풍부한 현장 경험과 실무가 중요하므로 학생들이 연예인 교수를 선호한다. 또한, 연예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전문성, 대중적 인지도가 대학교 홍보나 학생 모집에 큰 도움이 돼 유명 연예인을 교수로 임용하는 대학이 증가하고 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 대학 강의를 병행하다 전업 교수로 돌아선 김동수 동덕여대 모델학과 교수 같은 경우도 있지만 강단에 서는 연예인 대부분은 연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 강의를 하는 연기자, 가수, 개그맨, 방송인, 모델 등은 석좌교수, 정교수에서부터 초빙교수, 객원교수, 특임교수, 강사 등 다양한 형태로 강의하고 있다. 출강하는 곳도 4년제 대학에서부터 전문대학, 특수 직업학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다.
생생한 현장이야기 학생들 좋아해
이순재는 세종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20년 넘게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연기론을 강의하고 있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정교수로 있는 중견 연기자 장미희도 지난 1998년부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순재나 장미희처럼 대학 강단에 서는 연기자들이 적지 않다. 중견 배우 최란은 한서대 교수를 거쳐 2015년 2학기부터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연기 세미나’ 과목을 강의한다. 드라마와 연극무대에서 정교한 연기력을 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정보석은 수원여대 연극영상과 부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스타 연기자 고현정은 2014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겸임교수로 위촉돼 매체 연기 과목을 강의하고,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탤런트 배종옥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최불암 유인촌 유동근 서인석 노주현 정동환 이인혜 명세빈 이영하 류승룡 이범수 김성령 남성진 등 많은 연기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현재는 강의하고 있지 않지만, 한때 김희애처럼 교수로 재직하며 대학 강단과 인연을 맺었던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
정보석은 “연기자 교수들은 연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실기 강의를 하는 데 유리하다. 연예계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전달하고 조언도 해줘 학생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한, 최란은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학생들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산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가수와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 급증하면서 각종 대학의 실용음악과와 뮤지컬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가수와 뮤지컬 배우들도 크게 늘었다.
가수 장혜진은 지난 2009년 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전임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혜진은 “전임교수로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수로 활동하고 있기에 가수 지망생인 학생들의 강의 참석률이 매우 높다. 실기뿐만 아니라 이론도 철저히 지도한다”고 강조했다.
가수 옥주현은 겸임교수 자격으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실용음악과에서 강의한 바 있으며 현재 동서울대학 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뮤지컬을 지도하고 있다. 가수 김연우는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인순이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실용음악학부에서 강의하고, 바비킴은 서울예술전문학교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겸 감독인 박칼린은 호원대학교 방송연예학부의 뮤지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 대학 강단에 서는 가수로는 송대관 김경호 알리 등이 있다.
개그맨들의 대학 강단 진출 바람도 거세다. 개그맨 이윤석은 서울예술전문학교 방송연예학부 학과장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이봉원, 김한석은 한국방송예술진흥원에서 개그맨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희극 연기론을 강의하고 있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다큐 예능의 1인자 김병만은 백제예술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로, 개그맨 박준형은 경인여자대학 방송연예과에서 강사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남희석 이영자 김미연 김수용 등도 대학 강단에 서는 개그맨으로 유명하다.
방송인, 모델, 쇼호스트 역시 속속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아나운서로 활동한 뒤 성신여대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던 손석희 JTBC 사장처럼 아나운서 중에는 대학 강의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KBS 등에서 명진행자로 활동하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이금희는 모교인 숙명여대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MBC 아나운서 출신인 김경화는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임성민 문지애 박혜진 서현진 김병찬 김성경 등이 아나운서 출신으로 대학 강의를 하는 방송인이다.
일부 연예인 교수들 부실강의로 문제
김동수 동덕여대 모델학과 교수처럼 모델 출신 대학 강사, 교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모델 박둘선은 한국예술원 모델과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한국모델협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향기는 대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유난희를 비롯한 쇼호스트들 역시 대학의 방송학과나 쇼호스트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이처럼 연예인들이 대학 강단에 서는 이유는 자신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등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들이 대학 강의를 하면서 공부와 연구를 통해 새로운 정보와 지식, 이론을 습득해 연기나 무대에 적용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도 대학 강단에 서는 이유다. 이 밖에 대학 강의가 연예인의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도 대학에 진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서인석은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연기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게 된다. 연기와 대학 강의를 병행하는 것은 힘들지만, 대학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공부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연예인 교수들이 탄탄한 실기 실력과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학생들에게 유익한 강의를 해 학생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일부 연예인 교수들은 부실한 강의 등 문제점도 드러내고 있다. 시간강사, 겸임교수, 초빙교수, 전임교수, 정교수 등 각종 형태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연예인 중 일부가 방송연예 활동과 강의를 병행하는 관계로 잦은 수업 결강, 부실한 수업 내용, 신변잡기로 일관하는 강의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유명한 연예인 교수 수업을 신청했다가 강의 내용이 부실해 실망을 표하기도 한다. 새 학기에 강단에 서는 연예인 교수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내실 있는 강의로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경북 경산의 대경대학 방송학과 학과장으로 방송 MC 진행 실기, TV 예능 화법, 코멘트론, 아이디어 개발론 등을 강의한 바 있고 요즘에는 특강 형태로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개그맨 남희석은 “대학 강단에 설 때 학생들이 정말 수강을 잘했다는 말이 나오도록 강의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나 한 사람이 잘못하면 연예인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된다. 연예인들은 대학 강단에 서는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유럽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의 겨울은 아주 길다. 겨울이 일찍 찾아들고 오후 3시만 되어도 어둠컴컴해지는 추운 나라. 추워서 핀란드 사우나를 일상으로 즐기는 이 나라는 한겨울이면 산타클로스, 요정, 루돌프, 오로라, 이글루 등으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그것보다 더 재밌는 것은 헬싱키~스톡홀름을 잇는 실자라인 크루즈 여행이다.
800년간 스웨덴·러시아 지배받아
핀란드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항구도시로 한반도의 약 1.5배 크기다. 유럽 중에서도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며, 잘살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1914년까지는 약 100년이나 러시아의 속국으로 살았다. 아직도 핀란드에 입국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 지배를 받기 전, 12세기부터 1809년까지 약 700년 동안이나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스웨덴의 지배시절 러시아와의 잦은 전쟁으로 핀란드는 황폐했다.
이후 러시아가 핀란드를 장악하자 알렉산드르 1세는 스웨덴이 세운 수도 투르쿠(Turku)를 싫어해 1812년 러시아에 가까운 헬싱키로 수도를 옮겼다. 이때부터 헬싱키는 급속히 성장했다. 1904년, 러시아 총독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보브리코프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러시아가 러일 전쟁(1904~1905)에서 패배함으로써 강압정책이 다소 완화되었다. 러일 전쟁 패전 이후 러시아 국내 정세가 불안한 상황을 이용해 1906년에 입법기관을 민주적인 단원제 의회로 개혁했다. 그러니까 핀란드가 속국에서 벗어난 것은 110년이 조금 넘어났을 뿐이다.
헬싱키 랜드 마크는 원로원 광장
헬싱키 시내 여행은 어렵지 않다. 걷거나 트램을 타면 된다. 헬싱키의 가장 중심부는 원로원 광장(세네트 광장, Helsinki Senate Square)이다. 스웨덴의 지배가 끝나고 러시아의 속박이 시작된 1818년부터 30여 년에 걸쳐 독일 건축가 카를 루트비히 엥겔(Carl Ludvig Engel)에 의해 이 광장이 조성된다. 넓은 광장에는 약 40만개의 화강암 포석이 깔려 있고 중앙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Aleksandr II)의 동상이 있다. 핀란드를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해 의회의 구성과 핀란드어 사용을 허용했던 황제다. 이곳에 핀란드를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인 루터란 대성당(Tuormiokirkko)이 있다. 왕궁 스타일로 지은 이 건물은 바다에서 바라볼 때 한층 더 아름답다.
그 주변에는 사우멘 판키(Suomen Pankki, 1812년 설립)라는 중앙은행이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은행이다. 건물 앞에는 핀란드의 민족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철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요한 빌헬름 스넬만(1806~1881)의 동상이 있다.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핀란드의 독자적인 화폐 발행(1860)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앞 1891년에 귀족의 집으로 건립된 사아티탈로는 현재 핀란드 정부기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려한 건축 양식이 눈길을 끈다.
또 카우파토리(Kaupatori) 광장 앞쪽으로는 대통령관저 및 집무실, 헬싱키 시청, 스웨덴 대사관이 있다. 대통령관저 및 집무실은 근위병이 보초를 서지 않으면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다. 바닷가 옆 길을 따라 가면 러시아 정교회인 우스펜스키 성당(Uspenskin Cathedral)이다. 이 성당은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1868년, 러시아 건축가 알렉세이 고르노스타예프(Aleksei Gornostaev)가 19세기에 비잔틴 슬라브 양식으로 세운 곳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교회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그리스도와 12사도의 그림, 돔탑, 파이프오르간 등이 있다. 안온한 느낌이 드는 성당 내부다.
영화 에서 주인공들이 순록고기를 사러 간 하카니에미 마켓(Hakaniemi Market)도 걸어갈만한 거리다. 2층짜리 벽돌건물 안에는 식품코너 말고도 아울렛과 구제숍, 공예품 숍이 있다.
헬싱키 중앙역 주변 볼거리 가득
헬싱키 중앙역 주변에도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중앙역사의 건물이 예사롭지 않다. 공모전에서 우승한 핀란드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Eliel Saarinen, 1873~1950)이 설계해 1919년에 완공된 역사다. 아르누보 양식이 가미된 적갈색 화강암 건물로 정문의 멋진 대형 아치와 높이 49미터의 시계탑, 벽면에는 램프를 들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19개의 승강장을 갖추고 있는 초고속 열차 노선인 펜돌리노(Pendolino)를 비롯해 다양한 등급의 열차가 있다. 역사 지하에는 헬싱키 지하철, 라우타티엔토리 역(1982년 완공)이 있다.
중앙역 주변으로도 멋진 건축물이 즐비하다. 그중 1902년에 개관한 핀란드 국립극장의 건축물이 눈길을 끌어 당긴다. 건축가 온니 타르야네(Onni Tarjanne)가 설계했으며, 당대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국가적 낭만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국립극장의 시작은 핀란드 극장(1872년 설립)에서 비롯되었다. 핀란드에 설립된 최초의 핀란드어(Suomi) 연극 전문 극장이었다.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의 오랜 지배에 저항하는 핀란드 민족주의 문화운동의 일환이었다. 1954년과 1976년에 소극장 시설이 추가되었다. 855석 규모의 대극장과 2개의 소극장, 스튜디오, 회의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영화거장 카우리스마키 흔적없어 아쉬워
극장 앞에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작가 알렉시스 키비(Aleksis Kivi)의 동상이 있다. 알렉시스 키비는 누르미야르비 출생으로 가난한 시골 양복점 아들로 태어났다. 헬싱키 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도 중퇴하고 일생 동안 심장병과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다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겨우 10년간의 창작활동밖에 하지 않았지만, 핀란드 문학의 창시자로 인정받고있다. 그의 작품은 핀란드 문학사상 최초의 고전이 되었다. 대표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소설 가 있다. 핀란드에서는 다음으로 치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필자는 핀란드의 영화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aki)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길 바랐다. 국내 영화 마니아들은 이 감독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는 칸영화제를 비롯 많은 상을 휩쓸었다. 그 외에도 가 있고 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그만의 특유의 스타일이 존재한다. 인물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듯 대화가 없는 장면이 부지기수다. 얼굴이 익숙한 유명 배우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작품속에는 카티 오우티넨(Kati Outinen)이라는 여배우가 등장한다. 결코 예쁘지 않고, 차라리 못생긴 편에 드는 이 여배우는 감독과 늘 함께 한다. 비록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으나 그가 숨쉬고 있는 이 도시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그 외에도 주변에는 아테네움 미술관,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나무로 만든 캄피(Kamppi)교회도 주목할 만하고 암석교회(Temppeliaukio Kirkko)도 유명하다.
또 국립박물관(Kansallismuseo)과 핀란디아 홀(Finlandia Hall), 올림픽 스타디움도 관광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또 유명한 관광지가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s Park)이다. 민족음악파인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를 기리기 위해 만든, 600개의 철제 파이프로 제작한 기념비가 있다.
실자리안 나이트 클럽 체험 잊지 못해
여행의 백미는 헬싱키~스톡홀름으로 떠나는 선상 여행이다. 오후 3시 30분 경, 올림피아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몰려 든다. 실자라인(siljaline) 여객선은 어마어마한 크기다. 1991년에 건조한 이 배는 약 6만 톤으로 선상에서의 높이만도 6층이다. 자동차 400대와 버스 60대를 탑재 할 수 있으며 탑승인원은 3000명에 육박한다. 2002년에 새롭게 리모델링한 배다. 배 안으로 들어서면 신천지다. 3인조 젊은 클래식 밴드가 연주하면서 환영한다. 일반 식당 여러 개, 뷔페 식당, 면세점, 옷가게, 바와 가라오케, 카지노, 나이트클럽, 사우나 등. 오후 5시에 출발한 배는 그 다음날 오전 9시 30분경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한다. 이 선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험은 나이트 클럽이다. 환히 불이 켜진 무대에서는 올드 팝송이 울려 퍼진다. 목소리가 흐느적거리는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 이럽션(Eruption)의 노래지만 우리나라 가수 방미가 불렀던 ‘원 웨이 티켓’, 일본인들이 많이 타는지 일본 노래도 부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다 노년층이다. 플로어에서는 나이든 커플이 춤을 춘다. 넓은 무대에 새로운 무희와 가수가 등장하면 조명은 더 화려해진다. 밤이 깊어가도 클럽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발산되는 곳. 분명코 어느 누구라도 이 크루즈 여행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Travel Tip!
항공편 핀에어(www.finnair.com/kr)가 인천~헬싱키 구간에 직항 편을 운항 중이다. 소요시간은 약 9시간 30분으로, 오전 10시 20분에 인천에서 출발하면, 당일 오후 2시에 헬싱키에 도착한다.
현지교통 핀란드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된다.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운행 시각이 정확하며 열차 환승도 편리하다.
예약사이트 www.tallinksilja.com, 한국사이트: www.siljaline.co.kr
통화 유로 전압 220v
언어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공용어, 어디서든 거의 영어로 대화 가능.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서머타임 적용 시에는 6시간 느리다.
기온 헬싱키는 12월~3월 평균 기온이 영하 5도를 웃돈다. 때로는 4월 초까지 눈이 내리기도 하며 매서운 바람이 불기도 한다.
물가 헬싱키의 물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의 국가들 중 가장 낮다. 특히 헬싱키 카드와 ‘가족 요금 제도(Family Tickets)’는 핀란드 배낭여행의 부담을 줄여주는 좋은 제도다.
쇼핑 정보 헬싱키의 주요 쇼핑지역은 에스플라나디 공원, 알렉산터린카, 구시가지 등이며 상점은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음식 정보 헬싱키 에스플라나디 광장과 원로원 광장 근처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다. 헬싱키 마켓광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살미아키(salmiakki)라는 투명한 검은색의 단단한 젤리가 나름 유명. 단, 특유의 암모니아 향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숙박 정보 요금과 운영기간이 시즌마다 천차만별이다. 단 헬싱키의 호스텔은 시트비를 따로 받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주변 볼거리 시간이 많다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라플란드(Lapland) 이발로(ivalo)나 산타 마을 로바니에미(Rovaniemi)를 찾아도 좋을 것이다. 그 외 사우나의 본고장에서 리얼 사우나 체험도 해 봄직하다. 핀란드에는 약 250만여 개의 사우나가 있다고 한다. 사우나 카페, 사우나 바, 사우나 아일랜드, 사우나 버스 그리고 심지어 곤돌라 사우나까지 있다.
글·사진 이신화(의 저자, www.sinhwada.com)
1990년대 중반 CF 스타였던 CEO가 있었다. 바로 신홍순 컬처마케팅그룹(CMG) 고문이 그 사람이다. 당시 LG패션 사장이었던 신 고문은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20여 년 동안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이자 전문 공연 기획자, 미술 컬렉터, 패션 경영 교육자, 전 예술의전당 사장 등등 신 고문의 삶은 문화와 예술로 채워진 드문 경영인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신홍순(申弘淳) CMG 고문은 1941년생, 올해로 74세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 그 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직업인 동시에 유희의 영역에서 살아 왔기 때문일까. 그는 음악과 미술은 기업에 있으면서도 항상 같이 가고자 했던 분야라고 말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을 이끄셨던 고(故) 임원식의 친구였던 선친께서 미술과 음악을 좋아해서 컬렉션도 갖고 계셨지. 선친께서 나이 6~7세부터 연주회나 전시회 등을 자주 데리고 다니셨고, 이후 대학에 와 재즈와 팝 등으로 영역을 넓혔어요. 아내를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 얻게 된 것도 그렇고. 그림은 내가 그리는 것보다 보는 게 좋아서 전시회를 많이 다녀요.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경험이 많은 도움이 돼요.”
신 고문의 선친은 동일방직의 중역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을 기업에서 구매하여 청와대로 보내곤 했다. 그의 선친도 그런 일을 했었고, 그 덕분에 화단에서도 그의 선친이 꽤 알려진 이름이어서 화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런 환경이 신 고문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LG패션 대표이사 시절 갤러리 운영, 미술작품 전시, 재즈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기업이미지를 높이는 ‘패션마케팅’을 펼쳐왔다. “패션 자체가 색상과 디자인 등 예술적인 감각과 마인드가 필요한 분야인 데다 크게 보면 같은 문화산업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패션과 예술은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감성’을 바탕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죠.”
재즈파크, 한국 재즈 역사에 한 획을 긋다
재즈마니아인 신 고문은 제 162회를 맞은 ‘재즈파크’ 콘서트를 1세대 정통재즈에서부터 라틴, 퓨전 재즈 등 2, 3세대에 이르기까지 신구를 아우르며 매회 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유명공연으로 만들어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는 2002년 3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입장료 1000원의 재즈파크 콘서트를 꾸준히 열어온 ‘공연기획자’다. 또한 ‘재즈파크빅밴드’라는 18인조 재즈 빅밴드를 구성, 활동하고 있는 예술단체 매니저이기도 하다. 유열의 재즈파크빅밴드 활동으로 재즈파크빅밴드가 국내 최고의 재즈빅밴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재즈공연을 후원해준 신 고문의 감회는 남다르다.
“재즈 불모지였던 한국에 재즈의 토대를 마련한 재즈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1세대들이 설 변변찮은 무대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무대다운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듣고 재즈 1세대들에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했어요.”
척박한 한국 재즈 환경 속에서 재즈의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이끌어온 ‘재즈파크’가 13살이 됐다. 이는 재즈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재즈 공연을 진행해온 신 고문의 재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결실이다.
“수익을 남기는 공연이 아니라 재즈파크를 통해 재즈인들은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생겼고, 대중에게는 재즈와 소통할 수 있는 가교가 마련됐다는 것이 의미였죠. 또한 재즈파크를 통해 선·후배 재즈 아티스트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팀이 결성되기도 하는 등 침체된 재즈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즐거움이었어요.”
조상의 역사를 정리하며 얻은 삶의 즐거움
신 고문이 최근에 공들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그의 조상, 그의 가계에 대한 연구였다.
“선친이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셔서, 그 나머지 일의 뒷정리를 하는 게 있어요. 아마 한국처럼 족벌이라는 걸 각 성씨들이 갖고 있는 나라가 없을 거예요. 바로 그 조상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죠.”
신 고문은 자신의 가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라는 문인을 꼽았다. 영·정조 시절을 살았던 신광수(1712~1775)는 ‘동방의 백낙천’이라는 평을 받았던 분이다. 신 고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을 쓴 춘원 이광수의 본명은 이보경으로, 그가 필명을 이광수로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신광수의 작품들을 알게 되면서라고 할 정도로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던 문인이었다.
“얼마 전에 평양에서 온 극단이 하는 악극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자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이 석북 선생의 한시 창을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조상을 연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다
신광수라는 걸출한 조상의 발견은 조상의 활동을 시대별로 자료를 취합하여 평전을 만들고 번역을 싣는 작업의 결과였다. 신 고문은 조상의 업적을 정리하는 그 과정에서 조상에 대한 애착을 굉장히 많이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작품 하나하나가 남들과는 다르게 다가오죠. 그리고 자기 조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그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모여서 일 년에 세 번 정도 서로 집안 행사 때 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또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어느 집에서 자료를 가져 와서 ‘1450년대 자료를 보라. 너희 조상하고 우리 조상하고 모여서 회의하고 시도 읊고 쌀도 나누고 했다. 1500년대 이후의 교류는 이미 나왔는데 그 이전 건 처음이다’ 하는 내용이 나오면 그쪽과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셈이죠. 새로운 게 창조되는 기분을 느끼니 자꾸 빠지게 되더군요.”
그런 인연과 인연들이 모여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이벤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석북 신광수 선생의 시로 공연을 열다
“조상의 역사를 되짚어 가면서, 한문을 배우긴 배웠지만 깊이 있게 배운 적은 없어 한학자들이 부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한학자가 250여 명 되는데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학술대회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요. 신광수 선생의 작품들로 음악회를 하자고.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공연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알거든? 어? 그거 얘기가 되네. 돈만 있으면 그 다음 방법은 내가 갈 길을 아니까.”
신광수는 정치적으로 남인이었다. 고향에서 한양에 오긴 했지만 집이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그에게 집을 마련해줬는데 그게 하필 노론이 주로 거주하던 계동이었다.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에서 살다 보니 심심하기도 했던 그는 청계천을 넘어서 명동, 당시에는 저동이라고 불렸던 곳을 다니곤 했다. 지금의 평화방송 빌딩에서부터 한옥마을 쪽으로 하여 회현동을 누비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했던 조상의 기록들을 신 고문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누비고 다녔던 동네가 그쪽이니, 공연 장소는 한국의 집 전통예술극장에서 하자고 했죠. 거기가 국악 공연을 하는 곳인데 200여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인 가곡 예능보유자 김영기 선생을 만났어요. 이런 것 좀 하려는데, 당신이 제일 적임자니 해주십사 부탁을 했죠. ‘당연히 해야죠’라며 얘기가 척척 돌아가더라고. 그래서 하게 됐지.”
자신의 조상의 업적을 발굴하여 그걸 현대에 살아 있는 현상으로 만들어낸다. 신 고문이 말한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는 말을 납득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야말로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가 젊었을 시절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 아니던가.
“나도 젊었을 때는 조상을 알아보는 일에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니 그 윗대에서 알아봐야 할 분들이 새로 생기고, 다른 집안과의 연관도 많이 나왔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집안의 기록들도 연구하게 됐어요.”
고향을 바라보며 울컥했던 시간
신 고문은 조상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에 활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고향과 가까워지더라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모시와 소곡주로 유명한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이다.
“우리 자식들은 고향에 관하여 기억하는 게 없어요. 가서는 수세식 변소가 없다고 난리를 치고 서울로 올라와선 다신 안 가더군(웃음). 조상을 연구하다 보니 고향 현지의 문화원과 교류하게 되고, 마침 문화원장 중에서 우리 집안에 굉장히 관심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문화원에서 책을 발간하는 데 도움도 주시고 날 초청도 하고. 그렇게 가까워지니 군수도 알게 됐어요. 2013년이 서천군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죠. 그래서 600주년 기념행사를 하려는데 제게 총 준비위원장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회의 진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넣고 그랬죠. 그중 금난새씨와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게 있었는데, 오케스트라가 전국에서 300명의 청소년이 모이다 보니 행사하던 날 그 300명의 부모들이 모두 서천에 오더군요.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신 고문은 사람들이 두루 도우며 더불어 사는 그런 모습을 좀 보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점점 심해지는 개인주의에 대한 경계를 그 또한 자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고향과 더욱 가까워진 신 고문의 마음이 향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하는 사업 중에서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라고, 발레나 연극 같은 공연을 영상화하여 보여주는 게 있어요. 그걸 보면 클로스업해서 테크닉까지 보여주고 아주 기가 막히더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걸 문화적 소외계층에 제공하는 거죠. 알아보니까 큰돈이 안 들어도 되겠더라고. 그래서 고향 문화원장에게 가서 내가 후원할 테니 해보고자 했어요. 회관 사용 허가가 떨어졌고 ‘호두까기 인형’을 가져갔죠. 군부대 사병들, 학생, 일반인들이 일과 끝나고 구경하도록 했습니다. 문화원장이 사람이 올까 해서 걱정했는데. 그 영상이 한 시간 반 동안 하는데 소리가 하나도 안 나더군요. 다들 집중해서 보는 거지. 그걸 보면서 울컥하더라고. 보람이 깊었고.”
인생 후반전의 밝은 본보기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멋지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신 고문이 보여주는 모습에는 자신이 꾸준히 쌓아왔던 커리어에서부터 비롯된 것 외의 다른 이유에서 시작되는 부분도 있어 보였다.
“우선 호기심이 많아야 해요. 자신이 일을 좀 만들려고 할 때 일을 찾는 기본은 호기심입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그리고 열정이죠. 그런데 혼자서는 다 할 수 없으니까 그 열정을 원하는 대로 행사하려면 같이 일할 사람을 찾아서 유도해야 해요. 제 친구 중에 대학을 안 다녔는데 한문을 배운 친구가 있어요. 자신의 아버지도 서예를 잘했고. 그 친구가 한문학에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았죠. 성격도 괜찮아서, 나하고 같이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가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하나씩 목표가 주어지면서 달라지더군요. 요즘은 그리 말해요. ‘형 아니었으면 내가 요즘 뭔 보람으로 살았을까.’”
신 고문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바로 인재를 알아보는 눈. 세상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능력과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신 고문은 그들을 알아보고 모아서 도화선으로서, 불을 붙여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득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람을 느껴야 일이 돼요. 나이를 먹으니 그런 쪽으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게 좋더라고요(웃음).”
호기심, 열정 그리고 친구 많은 것이 그가 웰에이징 하며 사는 비결이었다.
글 김성수 문화평론가
연극은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예술이다. 하지만 현대 연극은 배우들의 몸짓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탁월한 희곡은 이미 그 안에 배우들의 대사와 감정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볼 것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질 것인지를 잘 담고 있다.
연극 ‘3월의 눈’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은 절제되어 있다. 아니, 일흔이 넘은 노부부들이기 때문에 몸도 입술도 절제를 강요당한다. 그 빈 구석을 메꾸고 있는 것은 그들과 평생을 함께 한 한옥 고택이다. 연극에서 고택 전체를 다 보여주고 있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무대장치에 불과한 이 세트의 기둥이 빠지고 마루가 뜯겨져 나가는 장면을 볼 때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마음은, 혹은 아버지의 주름살을 더하며 오늘의 자리에 서 있는 자식들은 가슴이 그저 먹먹해진다. 그것은 대사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 장면 앞에서는 그 누구도 말문이 막히고 몸에 기운이 풀려 대사와 행위가 붙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 지극히 성공한 연극적 압축이다. 연극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갈수록 무대는 비워지고, 노부부의 말과 행동도 작아진다. 자기 손때가 묻고 서로의 숨결이 배인 집이 사라진 곳에 남겨진 노부부의 뒷모습은, 어쩌면 베어지고 남은 그루터기 같아 보인다. 하지만 3월에 내리는 눈처럼,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가.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며 움켜잡기보다 비워주는 것이 왜 이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신구, 손숙 두 노배우가 서 있는 것만으로 극장은 이미 일상이 된다. 3월 13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은 죄지은 자식들에게는 참회의 자리이며, 부모들에게, 특히 아버지들에게는 배움의 자리가 될 것이다.
일정: 2015.03.13.~ 03.29.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출연: 신구, 손숙, 김정호, 김정은, 이종무 등
제작: 국립극단
#연극
죽음을 동경하는 열아홉 소년과 자유로운 영혼의 팔순 노인의 범상치 않은 러브 스토리
콜린 히긴스의 소설 를 원작으로, 자살을 꿈꾸며 죽음을 동경하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80세 할머니 ‘모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두 사람 사이의 우정, 사랑을 다뤘다. 소년과 노인의 사랑을 다룬 이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 유발을 위한 엽기적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테마를 다루면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과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되짚어보게 한다.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9일 ~ 2월 28일
가격: VIP 6만원, R석 5만원, S석 3만원
주최: ㈜샘컴퍼니, 국립극장
출연: 박정자, 강하늘, 홍원기, 우현주 등
연출: 양정웅
제작: 돌꽃컴퍼니
문의: 02-6925-5600
#연극
사랑, 그 진실을 찾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불륜’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갈등과 우리사회 ‘사랑’에 대한 본질
“당신은 실수일지 몰라도 나는 운명이에요.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행복해보고 싶어요.”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공연기간: 2014년 12월 31일 ~ 2015년 2월 15일
가격: 지정석 5만원, 자유석 3만5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이다엔터테인먼트
출연: 박원상, 배해선, 홍은희, 최대훈 등 연출 장유정
문의: 02-580-1300
#뮤지컬
전 연령대가즐길 수 있는 영웅이야기
왕위를 둘러싼 끊임없는 음모 속에서, 정의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혁명이 시작된다.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공연기간: 2015년 1월 23일 ~ 3월 29일
가격: VIP석 13만원, R석 11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주최: SBS
출연: 유준상, 서영주, 이건명, 홍경수, 엄기준 등
연출: 왕용범
문의: 02-764-7857~9
#뮤지컬
시간으로 지워지지 않을 명작의위대한 울림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네 연인의 운명과 사랑의 대서사시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9일 ~ 2월 15일
가격: R석 14만원, OP&S석 12만원, A석 8만원, B석 5만원
주최: ㈜쇼미디어그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유)
출연: 바다, 서현, 주진모, 김법래 등
연출: 유희성
문의: 070-4489-9550
#뮤지컬
가혹한 운명, 진실한 사랑을 통한 구원
시대의 운명에 의해 거세당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성공을 이루어낸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이야기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17일 ~ 1월 25일
가격: R석 7만 7000원, S석 5만 5000원, A석 3만 3000원
주최: ㈜HJ컬쳐
출연: 고유진, 루이스초이, 안유진, 이준혁 등
연출: 김민정
문의: 02-588-7708
#뮤지컬 내한공연
1482년, 파리를 뒤흔든 욕망과 사랑 이야기
에스메랄다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의 콰지모도, 집착의 프롤로, 욕망의 페뷔스. 한 여인을 향한 이들의 엇갈린 사랑
장소: 세종문회화관 대극장
공연기간: 2015년 1월 15일 ~ 2월 27일
가격: VIP석 20만원, R석 15만원, S석 12만원, A석 9만원, B석 6만원
주최: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출연: 맷 로랑(Matt Laurent), 리샤르 샤레스트(Richard Charest), 로베르 마리엥(Robert Marien)
연출: 질 마으(Gilles Macheu)
문의: 02-541-6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