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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회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 11월 8일 열리다
-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건강한 시니어를 위한 사회공헌행사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가 오는 11월 8일 오후 2시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1층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다. 브라보 헬스콘서트는 시니어 공감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학과 문화가 만나는 신개념 문화공연이다. 3회 째를 맞은 ‘브라보! 헬스콘서트’는 지난해 6월 첫번째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4월에는 2회 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행사에선 각각 치매와 여성질환을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고, 매번 300여 명의 중장년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번 행사는 이윤철 前 MBC 아나운서의 사회로 ‘몸(Body), 맘(Heart), 삶(Life)’이라는 주제 아래 1부 초청 강연, 2부 축하 공연으로 나눠 진행한다.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100세로 산다는 것’이라는 강연을 시작으로 자생한방병원 한창 원장의 겨울철 관절 건강관리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겸임교수인 예풍한의원 백태선 원장의 겨울철 혈관 건강관리 등 시니어들의 겨울나기에 유용한 건강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2부 순서에는 평균 나이 75세 낭랑18세 치어리더팀의 치어리딩 공연과 초대가수 신계행의 '가을사랑, 김목경 가수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추억 속 축하 공연으로 이어진다. 푸짐한 경품도 기다리고 있다. 파나소닉 최고급 헤어드라이어, 팔래스 호텔 숙박권 및 식사권, 구두상품권, 연극 ‘진실&거짓’ 관람권 등 1000만원 상당의 경품을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추첨을 통해 제공한다. 이번 행사는 이투데이PNC가 주최하고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위지트, 파워넷, 종근당, 동국제약, 보령제약,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한국고령친화산업포럼, 미러톡톡 등 정성을 모은 후원으로 개최된다.
- 2018-10-3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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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묵칼레에서 고대 로마식 온천욕 즐기기
- 로마인들의 휴양지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다. 목욕을 좋아해 자연 용출장이 있는 곳에 휴양지를 만들었다. 목욕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김없이 볼거리, 즐길거리도 만들었다. 연극이나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극장과 원형 경기장도 만들었다. 로마인들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한 곳은 터키의 파묵칼레다.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부서진 유적 위에 만들어진 온천 수영장에서의 물놀이는 클레오파트라도 부럽지 않다. 거대한 흰 석회암 언덕이 있는 작은 마을 터키 여행을 할 때 파묵칼레(Pamukkale)를 여행 코스에 넣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파묵칼레에 대한 홍보 영상물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곳에서 발산되는 매력을 저버릴 수 없다. 터키 여행 10일 정도 지날 즈음 파묵칼레로 간다. 고국에서 여행 온 후배들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날짜를 정하고, 같은 숙소를 따로 예약하면 된다. 후배들보다 좀 더 일찍 여행을 왔기에 여유 부리며 터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대부분의 터키 여행자들은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로 이동해 파묵칼레로 이동하지만 카시~페티예~달얀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무계획 여행은 이래서 좋다. 달얀에서 파묵칼레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 12배나 영토가 큰 터키이기에 긴 이동거리도 당연지사처럼 생각하게 된다. 달얀에서 승합차처럼 작은 돌무시를 타고 페티예로 나와 오토가르(터미널)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한다. 분명히 파묵칼레로 가는 표를 구입했는데 데니즐리(Denizli)가 종점이다. 돌무시로 바꿔 타고 10km를 더 가야 파묵칼레다. 통일성 없는 터키의 교통법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35℃ 온천수가 변화시킨 석회암 덩어리 파묵칼레는 아주 작은 동네다.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거대한 ‘설산’처럼 보이는 석회암 덩어리가 불쑥 솟아 있다. 편안한 차림으로 마을의 석회암 언덕으로 오른다. 사방팔방 온통 흰빛이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이다. 온천수가 빚어낸 석회암 덩어리를 빗대어 붙인 지명. 석회 성분을 다량 함유한 35℃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를 타고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은 것이다. 석회암 언덕은 보기와 달리 미끄럽지 않다. 따뜻한 물이 흐르고 용액의 흐름을 보여주는 ‘층리’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이 석회 언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그 색이 변한다. 녹은 석회암이 물결 모양을 만들었다. 마치 다랑이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서멀 풀(thermal pools)의 물줄기는 청옥빛이다. 종유석 등은 없지만 딱 석회동굴이 노출되어 있는 형상이다. 서멀 풀은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입욕은 불가하고 맨발로는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한여름에는 수영복 입은 여행자들이 부지기수다. 석회 언덕 정상에 오르면 또 한 번 깜짝 놀란다. 부서진 문화 유적들이 무수하게 흩어져 있고 박물관도 있다. 이곳은 고대 페르가몬(Pergamon) 왕국이 기원이다. 기원전 130년경, 로마인들이 정복해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했다. 고대 로마의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파묵칼레’라는 지명은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가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해 복원했다.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최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원형 극장은 현재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는 아폴로신전이 세워져 있고 세베루스(Severus) 시대에 만들어진 극장도 있다.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 뚜껑이 열려 있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 석관들은 치료와 휴양을 위해 몰려들었던 병자들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곳 또한 고대 도시 유적으로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클레오파트라 온천 수영장에서 물놀이 흩어진 문화 유적지와 박물관을 관람하고 클레오파트라 온천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폐허가 된 유적지에 온천물을 담아 언덕 위에 온천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장엔 나무들을 심어 그리스, 로마식으로 만들었다. 간이 탈의실도 있고 식당도 있다. 물 온도는 35℃로 생각보다 높다. 물속에는 그리스, 로마시대 때의 대리석 기둥이 그대로 잠겨 있어 발밑이 평평하지 않다. 얕은 곳도 있지만 키를 훌쩍 넘는 곳도 있다. 이 온천수는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 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 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와 물을 가져갔는데, 이 물은 양모를 씻고 염색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어쨌든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있던 온천장에서 즐기는 온천욕. 수심이 깊은 곳에서 수영도 하고 밧줄에 매달리기도 하고 물도 먹기도 하면서 두어 시간 놀고 나니 몸이 가뿐해졌다. 클레오파트라도 방문했다고 하니 아무리 바빠도 온천욕은 필히 해야 한다. 파묵칼레는 사실 이게 전부다. 단 이틀 동안 후배들과 함께하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헤어지는 날, 후배는 싸갖고 온 햇반과 깻잎을 건네준다. “선배. 정말 힘들고 외로울 때 이거 먹어. 그러면 아픔이 싹 가신대.” 아끼고 아껴뒀다가 힘들었을 때 꺼내 먹으면서 파묵칼레의 기억을 어찌 떠올리지 않았겠는가? 여행이란 단지 풍치만 보는 게 절대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기억 속의 파묵칼레는 그래서 더 좋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직항이 있다. 이스탄불에서 데니즐리까지 항공으로는 1시간 10분 소요된다.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는 10시간가량 걸린다.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파묵칼레행 미니버스가 운행된다. 이스탄불 ~ 카파도키아 ~ 안탈리아 ~ 파묵칼레 순으로 대부분 여행 코스를 짠다. 음식 정보 파묵칼레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제법 있다. 숙박 정보 파묵칼레 마을은 크지 않다. 대부분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가격은 조식을 포함해 2~3만 원대다. 대부분 수영장도 갖추고 있다. 날씨 정보 터키는 지중해성 기후다. 생각보다 햇살이 따갑다. 4월부터 기온이 풀리고 곧 뜨거워진다. 봄옷을 준비하면 된다. 아침과 저녁은 일교차가 크므로 겉옷을 하나 준비하는 게 좋다. 물가와 화폐 정보 터키 화폐는 터키 리라(Turk Lirasi)다. 물가는 한국보다 싸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파묵칼레 인근에는 또 다른 온천 명승지가 있다. 제2의 파묵칼레로 불리는 카클르크(카크리크) 동굴은 최근에 발견된 종유동굴인데, 광천수가 뿜어져 나온다. 파묵칼레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여행사를 통해 표를 구입해야 한다. 여행사가 두어 곳 있는데 가격 차이가 크다.
- 2018-05-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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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결같이 매일을 사는 청년 시인, 신현득을 만나다
- 큰 창 사이로 봄볕이 드는 넓은 복도 한편. 간이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그는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읽고 있다. 가방 안에는 공부해야 할 읽을거리와 책이 가득해 보인다. 정지한 듯 몰두해 있는 모습, 옛 러시아 영화의 롱테이크 장면처럼 깊고 안정된 정적이 흐른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다물었던 입술이 엷게 미소 짓는다. 아동문학계를 대표하는 현역 동시 시인이자 영원한 선생님 신현득(申鉉得·84). 벚꽃 만발하던 주말 오후의 데이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터뷰 당일 생각보다 날씨가 꽤 추웠다. 봄꽃은 만발한데 새벽녘 눈까지 내렸다. 4월호 층층나무동시모임 취재로 만나 뵀던 신현득 시인을 인터뷰 지면을 통해 다시 모시기로 했다. 신현득 시인은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산 증인이자 스승이기에 얘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신현득 시인이다. “동시는 재미가 있어요. 불가능이 없는 세계입니다. 말하자면 온갖 세상에 있는 것들. 살아 있거나 또는 생명이 없어도 언어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어요. 가령 컵이면 컵이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는 가정 하에 시를 구성합니다. ‘시원한 물이 담겼다’, ‘아이고 시원하다’. 이게 지금 컵이 느끼는 거예요. 뭐가 됐건 행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난 다음에 사유하는 겁니다.” 동시가 뭐냐고 물어보니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한다. 얼굴에 화사한 기운이 도는 것을 보니 이미 마음은 아이로 돌아간 모양이다. 탁자에 놓인 컵을 보다가도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를 보다가도 시상을 이야기한다. 꽃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견을 묻기도 한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심상으로 표현하고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시 시인이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현득 시인은 60여 년의 세월을 동시 짓는 현역 작가로 살고 있다. 물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거르지 않고 있다.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아이도 좋아했어요. 안동사범학교를 나와서 곧바로 초등학교 교사가 됐는데 아이들과 생활하고 늘 보고 듣고 하니까. 노는 모습이 귀엽잖아요. 예쁜 모습을 하나씩 메모하다 보니까 시를 쓰게 됐지. 어린애들, 예술 아니에요? ‘아기는 시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린애들은 말하는 것도 시이고 동작도 시이고 모습도 시이고 그래요. 아이들 모습이 희한해요.” 아동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그에 대한 좋은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등단 이후 10년이 조금 지나 1971년에는 세종아동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금은 이런저런 상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아동문학상 수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글을 쓰는 시인으로 인정을 받는 중요한 지표였던 셈이다. 신현득은 20년 만에 교사를 그만둔 뒤 소년한국일보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단국대, 서울예대, 한양여대 등 대학 강단에서 세계 아동문학사, 한국 아동문학사, 창작론을 가르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신현득은 한국 아동문학계의 큰 물줄기인 소파 방정환과 윤석중 선생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노래’를 비롯해 ‘새 신’, ‘고추 먹고 맴맴’ 등의 노랫말을 지은 윤석중 선생은 신현득 시인에게 가장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고마운 스승이다. “윤석중 선생의 추천으로 신춘문예에 뽑혔어요. 선생 사무실에 자주 다니고 얘기도 많이 듣고요. 수시로 만나 봬면서 많은 공부를 했어요.” 스승을 잘 모신 덕일까? 지금껏 스승과 제자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공부하는 층층나무동시모임이 13년째 이어오니 말이다. 이외에도 동시를 쓰는 시인들 다수가 신현득 시인의 제자임을 자처한다. “나는 싫은데 제자들한테 떠받들리고 있어요. 내 영향을 받아서 시인이 됐다거나 수상을 했다거나 할 때마다 제자들 연락을 받죠. 그럼 축하도 해주고 격려도 하고 그래요. 금년에도 제자 두 사람이 상을 받았어요. 행복을 빌어주죠. 제자들한테 잘해주려고 애는 쓰지만 실제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1분 1초가 바쁜 80대 현역으로 산다 요즘 신현득 시인은 일생일대 중요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본인의 일과 생활, 모든 생각을 정리해놓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60년 동안 신현득이라는 시인이 ‘이렇게 해서 시를 이루어갔다’ 하는 그런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신현득 동시 시법’이라고 가제를 일단 붙여놨어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언제 완성할지는 모르지만 될 수 있으면 금년 내로 완성하려고 합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은 책을 쓰고 싶지만 사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는 신현득 시인. 애초에 세계아동문학사를 한번 써보겠노라고 집필을 시작했는데 생각한 분량의 절반 정도 쓰고서 접어둔 상태다. 밀려오는 원고 청탁과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순간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법보신문에 동시 해설 연재를 하고 있어요. 거기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달라고 했으니까 무한정이지. 대외적으로도 청탁이 많아요. 지금 일곱 군데에서 원고 청탁을 해왔습니다. 문예지 같은 데에서는 작품을 내놓아라, 안 그럼 칼럼을 써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할 일거리를 챙기면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간추립니다. 작품은 지하철에서 구상하고 씁니다. 일기도 꼭 지하철에서 씁니다. 지하철에서 안 쉬어요. 쉬질 않아요. 여유도 없고요.” 그럼 잠은 언제 자냐고 물으니 일하다가 졸리면 잔다고. 안 졸리면 계속 일을 한다고 했다. 이 바쁜 와중에도 문예지를 받아들면 앞에서부터 끝까지 읽고 난 뒤 문예지를 보낸 곳에 꼭 이메일로 잘 봤다고 회신 메시지를 남긴다. 책을 냈다며 보내오는 사람들에게도 모니터링을 해준다 했다. 일상에 동시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벼운 이야기를 해볼까 싶어서 다소 사적인 질문을 해봤다. 가족이랑 주로 뭘 하시는지? 시를 쓰는 것 말고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영화나 연극은 좀 보시는지, 최근에 여행을 해보셨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 취미생활이건 여행이건 “할 시간이 없다”였다. “워커홀릭이시네요”라고 말을 건네니 “나만치 바쁜 사람은 없을 거 같아” 하며 식 웃는다. “나는 딱 한 가지밖에 안 해요. 동시와 관련한 건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니까 몰입합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시를 쓰니까 건강한 겁니다.”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건강이고 자신을 위해 먹는 한약재라고 말했다. 시를 쓰니까 건강도 좋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신현득 시인은 말했다. 언제 쯤 쉬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바쁜 이야기를 쭉 하다 보니 느리던 말투에 속도가 붙어 있었다. 언제쯤 쉬실 것 같냐는 질문에 무덤덤하게 생사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랐다. “아직 생각을 안 해봐서 몰라요. 죽으면 쉬는 거지. 그땐 뭐 더 일할 수 없으니까요. 100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말입니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불교 신자라 윤회사상을 믿으니까요. 이 세상에 났다가 좋은 일 하면 또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여기서 착한 일 하면 또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나쁜 일 하면 지옥에 가고요.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떨 것인가 하는 건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묘비에 쓸 글귀 또한 생각할 틈이 없다고 했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일 해내고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제가 만약 논문을 써야 한다면 글을 쓰기 위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찾아서 정리할 자료들이 많잖아요. 글 쓸 준비는 다 해놓고 내가 쓰지도 않고 죽고 가버리면 낭패잖아요.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내가 다 못해놓고 죽을까봐서 겁이 나요. 지금 제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꼭 필요한 거란 말이죠.” 후세에 작은 것 하나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가 1분 1초가 너무 아까웠음을 이제야 토로한다. 잠 잘 시간까지 아끼고 깨어 있는 매 순간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신현득 시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가 없으면 안 되지. 이 세상에 동심만 있다면 다툼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니 아동문학학회가 있다며 경희대학교로 간다고 했다. 오전에 제자들과 함께하는 동시문학 모임을 끝내고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학회에 간다는 신현득 시인. 학회를 마치면 또 학회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할 거라고 말했다. 운전을 할 줄 아는지 물으니 지금까지 쭉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았다고 했다. 우리 시대에는 자가용을 모는 일이 흔치 않았으니 이렇게 누군가 차를 태워주거나 아니면 대중교통이 내 자가용이라고 말이다. 경희대학교에 가까워질수록 개나리며 벚꽃이 절정의 모습으로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듯 차 안에서 한시도 쉬지 않는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출 때마다 기자에게 줄 자신의 시집에 조심스럽게 사인을 했다. 시상이 떠오를 때는 창밖을 쳐다보며 아이 같은 목소리로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동시를 쓰지 않았다면 신현득 시인은 80여 년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차에서 내려 미소에 존경을 담아 인사를 했다. 돌아서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신현득 시인의 모습을 바라봤다.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 2018-05-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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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문화행사
- 벚꽃이 만발하는 4월, 이달의 추천 전시·공연·행사를 소개한다. 진해군항제 일정 4월 1~10일 장소 중원로터리 및 진해 일대 국내 최대의 벚꽃축제로 손꼽히는 ‘진해군항제’가 개최된다. 벚꽃 명소인 여좌천, 경화역, 진해탑 등에선 36만 그루의 아름다운 왕벚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축제 동안에는 평소 출입이 어려운 해군사관학교, 해군진해기지사령부의 영내 출입이 가능하며 해군복 입기, 요트크루즈 승선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린다. 특히 금요일 저녁과 주말에 개최되는 군악의장페스티벌은 진해군항제에서만 볼 수 있다.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일정 4월 3~8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는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으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앴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들에게 아직도 아름답고 열정을 내뿜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난 6년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민참여형예술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신나는 예술여행 등의 사업에 선정됐다. 돌아온다 일정 4월 5일~5월 6일 장소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 출연 강성진, 정상훈, 김수로, 김곽경희 등 포스터에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연극 ‘돌아온다’는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 집 나간 필리핀 아내를 기다리는 청년, 욕쟁이 할머니 등 후회와 미련이 많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 김수로와 강성진을 필두로 다양한 연극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정상훈, 김로사, 김사울 등이 참여한다. 아드만 애니메이션 – 월레스&그로밋과 친구들 일정 4월 13일~7월 12일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드만 스튜디오’는 영국의 유명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대표작 ‘윌레스와 그로밋’, ‘숀더쉽’, ‘치킨런’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2018 앙상블마티네 개막 4월 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지휘 윤승업 연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모차르트 시리즈를 목관, 현악, 금관, 심포니 총 4가지 테마로 나눴다. 이번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모차르트 작품 중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1악장’이 연주될 예정이다. 사랑해요, 당신 일정 4월 28일~6월 3일 장소 KT&G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출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 연기 베테랑 이순재, 장용이 남편 '한상우' 역을, 정영숙, 오미연이 아내 '주윤애' 역을 맡았다. 연극 '상랑해요, 당신"은 평범했던 부부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면서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렸다.
- 2018-03-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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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의 문화행사 한 눈에
-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보자! 지루함을 날려줄 이달의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에쿠우스 일정 3월 1일~4월 29일 장소 대학로 TOM 1관 출연 장두이, 안석환, 전박찬, 오승훈 등 라틴어로 말[馬]을 뜻하는 ‘에쿠우스’는 17세 소년이 자신이 사랑하던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법정에 선 엽기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기독교인 어머니와 사회주의자 아버지 사이에서 잘못된 사랑과 가치관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소년 ‘알런’과 그를 치료하는 정신과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함께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보여준다. 명성황후 일정 3월 6일~4월 15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출연 김소현, 최현주, 양준모, 손준호 등 1995년 대한민국 초연 이후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뮤지컬 ‘명성황후’.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였던 명성황후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2015년 ‘명성황후’ 20주년 공연에 처음 출연했던 김소현이 다시 ‘조선의 국모’로 분한다. 그의 남편 뮤지컬 배우 손준호가 극 중 명성황후 남편 ‘고종’ 역할로 출연해 기대를 모은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일정 3월 9~18일 장소 강원도 평창, 정선, 강릉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한민국 평창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3월 9일 오후 8시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18일까지 10일간 설상 4종목(알파인 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노보드), 빙상 2종목(아이스하키, 휠체어 컬링) 등 총 6종목을 두고 금빛 사냥을 펼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개봉 3월 14일 장르 멜로, 로맨스 감독 이장훈 출연 소지섭, 손예진 등 1년 후 비가 내리는 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세상을 떠난 아내. 기적처럼 1년 뒤 죽었던 아내가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남편과 아들 앞에 나타나는데…. 판매 부수 100만 부를 기록한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소지섭이 남편 ‘우진’ 역을, 손예진이 아내 ‘수아’ 역을 맡았다. 마마 돈 크라이 일정 3월 23일~7월 1일 장소 아트원씨어터 1관 출연 송용진, 허규, 조형균 등 사랑을 얻기 위해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인간vs불멸의 삶을 끝내고자 하는 뱀파이어. 서로 다른 욕망을 좇는 두 남자의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다뤘다. 다섯 번째 시즌 공연을 앞두고 공개한 뮤직비디오 4편은 온라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2018-03-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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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쎈 영화 전성시대에 숨 좀 돌리고 본 영화 ‘돌아온다’
-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만 해도 다양한 작품이 상영관에 걸렸다. 규모가 크건 작건 작품성이 입소문을 타면 영화관 속으로 관객이 파도처럼 빨려 들어갔다. 멀티플렉스라... 동네 구석구석 들어와 영화 보는 횟수를 늘렸지만 작고 소박한 영화가 설 자리를 빼앗고 말았다.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사람이 갈 곳 없는 지금의 현실. 그런데 이 척박한 영화 환경을 비집고 보석 같은 영화 한편이 개봉했다. 바로 영화 ‘돌아온다’이다. 정말 그 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올까? 영화 ‘돌아온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담다 영화 ‘돌아온다’(감독 허철/제작 꿈길 제작소)는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라고 쓰인 표구가 걸려있는 시골의 한 막걸리 집이 배경이다.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마다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어머니를 찾는 스님과 아들을 찾는 노모, 집 떠난 부인을 기다리는 남자,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모두가 하나같이 막걸리를 들이키는 이유가 있다. 매일 이곳에 모여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한 잔, 두 잔 막걸리 잔을 채우던 어느 날. 묘한 분위기의 주영(손수현)이 비밀을 감추고 나타나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었다 뭉쳤다를 반복한다. 영화 ‘돌아온다’는 원래 연극이 원작이다. 2015년 무대에 올랐던 연극 ‘돌아온다’(원작 선욱현/연출 정범철/극단 필통)가 허철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다. 수차례 공연장에 찾아가 연극을 보는 매 순간마다 눈물이 흘렀다고. 허철 감독은 이런 감정의 소요가 생기는 근원이 뭘까 고민하다 연극‘돌아온다’를 영화화하기에 이르렀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 김유석도 지난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친구인 허철 감독이 내민 ‘돌아온다’의 시나리오를 읽다가 세 번이나 눈물이 터졌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영화 ‘돌아온다’는 2016년 6월에 촬영해 올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어 지난 9월, 제41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일종의 실험극이다 연극‘돌아온다’를 본 관객이 있다면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주인공인 김유석과 손수현 이외 주요 인물이 원작 연극에 출연한 배우라는 점이다. 스님을 연기한 배우 리우진, 노모에 김곽경희, 이황의, 강유미, 정연심 등이 원작에서와 같은 역할로 영화에 등장한다. 연극이 영화화 된 작품이 지금까지 있어 왔지만 원작의 주요 배역을 똑같이 기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덕혜옹주’나 ‘미스사이공’같이 공연 실황을 영화처럼 편집, 제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영상으로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영상에 맞는 배역을 대부분 찾아 나서지만 허철 감독은 연기 잘하는 기존의 배우를 제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파답게 영화에도 잘 녹아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데 연극배우들이 큰공을 세웠다. 두 번째는 배경과 장면을 마치 연극처럼 배치했다는 점이다. 허철 감독의 실험 정신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이야기 대부분은 막걸리 집에서 시작해 다른 시간과 장소 혹은 장면으로 이동한다. 사건이 해결되고 다시 막걸리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이야기로 사건이 번지고 말이다. 혹은 장소를 이동하는 대신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켜 활기를 북돋거나 공간에 새로운 성격을 불어넣기도 한다. 새로운 손님이 오지 않는 막걸리 집은 적막하고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막걸리잔 마주치는 소리와 사람들이 조용조용하는 말소리가 전부. 그런데 이곳에 주영이 들어와 일하면서 SNS에 막걸리집을 홍보한다. 이후 막걸리집이 지역의 맛집으로 소개돼 조용했던 장소가 시장만큼 떠들썩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하나의 무대를 마치 여러 장소처럼 이용하는 연극의 기법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셋째, 이 영화가 연극에서 왔든, 관객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험 정신이 깃들어져 있든 ‘돌아온다’를 보고 나면 최근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후련함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잠시 잊고 있던 순수를 찾은 것과 흡사하다. 혹시 잔혹하게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보기 싫고, 온 몸을 휘감을 듯 한 대형 SF영화에 질린 관객이 있다면 이 겨울, 잔잔한 영화에 젖어드는 것은 어떨까. 끝으로, 영화 ‘돌아온다’의 허철 감독이 극적인 장면에서 카메오 출연을 한다는 스포일러를 남긴다. 아는 사람만의 깨알 재미이니 눈 부릅뜨고 찾아보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 2017-12-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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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라이프] 2017년 정유년 대중문화 트렌드와 스러진 별들
- 2017년 정유년의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올해는 국정농단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 5월 9일 조기 대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하는 등 격변의 한 해였다. 대중문화계 역시 세월호 특별법 서명, 야당 후보 지지 등의 이유로 송강호, 정우성, 김혜수 등 수많은 연예인을 포함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김여진, 문성근, 김미화, 김제동, 김규리 등 82명의 연예인을 좌파 연예인으로 규정해 여론 조작, 방송계 퇴출 등을 시도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보고서가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또한 사드로 촉발된 중국 당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으로 대중문화 산업계가 직격탄을 맞는 등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2017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유행을 선도한 대중문화 트렌드와 키워드는 무엇일까. 우선 영화계에선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져 흥행에 성공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다. 한국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 병자호란 당시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을 소재로 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 2007년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결의안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용수 할머니의 가슴 아픈 실화를 모티브로 한 , 일제 강점기 일본 하시마 섬에 강제 동원된 800여 명의 조선인 참상을 다룬 ,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으로 가 항일운동에 매진했던 독립운동가 박열을 전면에 내세운 , 198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는 등 청년기의 김구 선생을 다룬 등 많은 영화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뤄 눈길을 끌었다. 가 12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로는 15번째 1000만 영화로 등극하는 등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룬 실화 영화들이 흥행도 호조를 보였다. 올해 방송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 등 검사나 변호사, 재벌 등 권력과 자본의 탐욕과 비리를 다루거나 · 등 언론계를 조명한 작품들과 을 비롯한 갑질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화제가 됐다는 점이다. 이들 드라마는 지도층의 부패가 심각하고 갑질이 심화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대중문화계의 큰손으로 등장한 20~40대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남자 스타들이 압도적 흥행 성적을 거둔 것도 2017년 대중문화계를 지배한 트렌드 중 하나다. 12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송강호 주연의 , 718만 명이 본 현빈, 유해진 주연의 를 비롯해 ··· 등 올해 들어 흥행 상위를 차지하는 영화들이 한결같이 남자 주연 영화였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케이블 TV 드라마 사상 최초로 20%대를 돌파한 공유 주연의 (tvN), 28% 시청률을 기록한 지성 주연의 (SBS), 20%대를 유지한 남궁민 주연의 (KBS2) 등 성공한 드라마 모두 남자 주연 작품이다. 대중의 관심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은 (SBS), (MBC에브리원), (JTBC), (JTBC2), (JTBC), (OLIVE), (KBS1), (TV조선) 등 외국인 출연 예능과 (채널A), ·(tvN), ·(TV조선), ·(E채널), ···(SBS), (KBS2), (KBS드라마), (MBN) 등 연예인의 남편, 아내, 자녀, 부모 등이 출연한 연예인 가족 예능이 대세를 이뤘다. 또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는 ‘욜로(YOLO)’와 혼술·혼밥 등 급증하고 있는 ‘1인 가구’의 문화가 예능 키워드로 등장해 (SBS)에서부터 (MBN)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활용됐다. 2017년 대중음악계는 신세대 가수와 아이돌 그룹의 1970~1990년대 히트곡 리메이크 열풍이 강타했다. 양희은이 1991년에 불러 인기를 얻은 ‘가을 아침’과 1970년대 정미조가 불러 히트한 ‘개여울’이 올해 아이유의 노래로 재탄생해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유는 9월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2’에서 정미조의 ‘개여울’,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등 1970~1990년대 히트곡을 완성도 높게 리메이크해 큰 관심을 모았다. 걸 그룹 마마무의 솔라도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등을 리메이크한 앨범을 발표해 젊은층뿐만 아니라 50~60대 중장년층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올해 대중음악계를 관통한 리메이크 트렌드는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명곡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효과가 높아 대중음악의 수용층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세대 간 이해의 접점을 확대했다. 1996년 H.O.T. 데뷔를 시작으로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990년대 중·후반 본격화한 아이돌 그룹 시대는 2000년대 들어 2PM,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2세대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세대 교체가 됐다. 올해 들어 원더걸스, 씨스타 등 많은 아이돌 그룹이 해체되고 소녀시대의 멤버 서현이 탈퇴하는 등 2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퇴장했다. 올해는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여자친구, 블랙핑크 등 2015년 전후로 데뷔한 3세대 아이돌 그룹이 국내 음악계를 평정하고 K팝 한류를 이끄는 주체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연예계에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큰 사랑을 받던 스타들이 숨져 대중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KBS2 주말극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중견 스타 김영애가 췌장암으로 66년간의 삶을 마무리했다. 46년간 연기자 생활도 끝나는 순간이었다.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천생 배우였던 김영애는 20세에 연기를 시작해 , , , , , , , 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감동을 줬다. 와 사극 등에서 보인 강렬한 카리스마 연기에서 영화 의 일상적 연기까지 스펙트럼 넓은 연기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기쁨을 준 중견 배우 윤소정은 패혈증으로 6월 16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73년의 삶 중 연기자로 살아온 세월이 55년에 이를 정도로 윤소정에게 있어 배우라는 직업은 삶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7년 동안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화면에서 빛나는 조연 연기와 사투리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중견 배우 김지영도 폐암으로 2월 19일 79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2017년 10월 30일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빼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김주혁은 선 굵은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김무생의 아들로 1998년 SBS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드라마 , , , , 영화 , , 등 수많은 작품에 주연으로 나서 아버지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20년간의 배우생활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나이는 45세였다.
- 2017-12-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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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돌아온다> 주인공, 배우 김유석 ‘이 남자, 당신 인생에 스며들다’
- 사람이 서로 알아갈 때 인사라는 과정을 통한다. 잠깐 동안의 첫인상. 목소리에서 기운을 느낀다. 표정을 읽는다. 차차 친해진다. 이 모든 과정이 있었나 싶다. 마음은 허락한 적 없는데 친숙하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없다. 반칙처럼 이름도 모르고 “나, 이 사람 알아!”를 외친 사람 손들어보시라. 이제 알 때도 됐다. 그의 이름 석 자 김유석(金有碩), 배우 김유석. 안방극장 터줏대감으로 익숙한 그가 은막(銀幕)에 모습을 드러냈다. 7년 만에… 돌아왔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같은 배우다 친해질 기회를 언제 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친숙하다. 이름 대면 알만 한 배우만큼 참 가깝다. 주위 사람에게도 물어봤다. “배우 김유석을 알아요?” 고개를 갸우뚱함과 동시에 사진을 보여준다. 그러면 안다고 백이면 백 대답한다. 사극에서 봤다던가, 찌질(?)한 연기가 좋았다던가. 연기 경력 20년이 훌쩍 넘은 배우 김유석은 이름보다는 얼굴 자체가 이름이고 또 얼굴인 셈. 사람들 대부분이 “어!” 하며 연예인으로 알아차리지만 세 단계쯤은 거쳐야 저 배우가 누군지 감을 잡는다. “제가 나온 작품을 재밌게 보신 분이 길을 지나다가 어디서 봤죠? 초등학교? 우리 동네? 아! 대학교? 연예인 누구 닮았는데? 그러면 제가 ‘그게 저인데요(웃음)’ 그래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특별하게 눈에 확 띄지는 않는데 뭔가는 있었고. 그렇게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물론 좋죠. 제가 누군지 그 사람이 알고 나면 ‘정말 그 연기 좋았어요’, ‘팬이에요’라고 말씀해주세요.” 배우란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대중 앞에 선 그들은 사랑받기 시작하면 자리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배우 김유석도 같은 과정을 밟으며 살아왔겠지만 집중해보거나 느낀 적이 없다. 그저 어느 샌가 스며서 젖어버렸다. 어디에도 흔치 않다. 안정적이고 기복 없이 늘 있는 배우 말이다. “등산 같아요. 내가 나를 돌이켜보면. 저 위까지 가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밟아서 올라야 하잖아요? 단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쑥 하고 올라간 적 없어요. 그냥 한 발짝, 한 발짝. 그렇게 걷다가 ‘어, 좀 올라왔네’ 그래요. 한참 아래 있던 친구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도 보고 말이죠.” 고등학교 때까지 아무런 꿈이 없던 김유석은 우연히 본 연극 한 편으로 배우가 됐다. 대단한 성공 스토리는 없지만 행복한 삶의 형태 속에서 다른 것 안 하고 원하는 연기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제가 배우를 하면서 한 가지 색깔만 사용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일반적으로 배우를 하면 비슷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 제가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하셨는데 꽤 독특한 연기도 했어요. 대박 난 작품이 없는 게 아쉬운 거죠(웃음)” 영화 , 스크린으로 돌아오다 김유석을 처음 만난 장소는 4월 말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이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허철 감독)가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첫 상견례를 가졌다. 김유석은 TV 탤런트로서 인상이 깊지만 데뷔 초 김기덕과 홍상수의 대표 영화에 출연해 주목 받았다. 2000년대 후반까지 틈틈이 독립영화에 출연하다 한동안 TV 드라마에만 몰두했다. 마지막 영화 이후 7년 만에 선택한, 아니 선택받은(?) 작품이 바로 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허철이와는 사회 친구예요. 지금은 정치를 하지만 민변이던 송호창, 진선미 의원, 한지승 영화 감독 등이랑 어울려 친한데 지승이가 철이를 데리고 왔어요. 10년 전쯤 만나서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극영화를 하겠다는 겁니다. 다큐멘터리를 하던 친구가요. 어떤 연극을 봤는데 5000만원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라더군요.” 허철 감독의 말에 김유석은 그저 친구가 잘되기만을 바랐다. 미국에서 잘나가던 교수 허철이 한국에 와서 갖은 상황 속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고 뚝심 있게 영화 만드는 허철 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네가 영화를 만들면 내가 뭐든지 할게. 필요한 거 있으면 묻지도 말고 시키기만 해. 네가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할게. 그냥 써. 그랬더니 ‘네가 그냥 그걸 해야겠다’ 그러더군요.” 허철 감독은 김유석에게 의 주인공인 변사장 역을 줬다. 이미 감독에게 선택당했던 것이다. 예술은 ‘얘’랑 ‘술’ 먹는 거 사실 김유석에게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다. “예술영화는 이제 그만. 데뷔 초에 예술영화로 시작했더니 정말 대안영화나 독립영화 아이콘처럼 제가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예술은 ‘얘’와 ‘술’ 먹는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좀 더 다양하고 보편적이고 편한 영화, 한마디로 흥행이 되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일단은 시나리오나 좀 보자고 말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진정하고 읽고 또 읽다가 세 번이나 눈물이 터졌다. 순간적인 감정일지 몰라서 다음 날 또 읽었는데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관객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면 영화가 잘될 거란 확신이 생겼다. 개런티에 대한 생각은 애초에 접고 시작했다. “몇천만원으로 영화를 만드는데요, 무슨. 당연히 그래야 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것만도 고마운 거잖아요. 작년 3월에 만나 미팅하고 6월에 촬영 들어갔습니다. 영화 찍는 내내 정말…정말 행복했습니다.” 최근 방송 드라마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사전 제작을 도입했지만 모든 제작 환경이 바뀐 것은 아니다. 대본을 받아 외우기가 바쁘게 빨리 찍어 내보내는 속도전의 연속이다. 줄곧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했던 김유석은 영화 촬영 하는 동안 기운을 얻고 더욱 특별한 경험도 했다. “매번 영화를 할 때마다 느끼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제 나름 영화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 영화 팀이 주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영화 찍는 내내 허철 감독을 다시 알게 됐어요. 영화 현장에서 철이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정석대로 잘 배운 감독님이었습니다. 흔히 보지 않았던 노하우를 쏟아내는 그런 감독이었죠.”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연기 후배들은 김유석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며 입을 모았다. 이에 손사래를 치며 함께한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돌렸다. 이 영화는 연극 를 영화화한 것으로 연극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대부분 주역을 맡았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허철 감독이 연극을 보고 그 배우들과 작품 만들겠다고 시작한 영화잖아요. 내가 아니고 연극배우들이 중심이죠. 연극에도 출연했던 리우진, 정연심, 이황의, 김곽경희, 강유미 같은 배우가 탄탄하게 잡고 있었어요. 내 나이가 조금 많은 관계로…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같이 술 한잔 마시고 그러는 거죠. 제가 슬쩍 낀 건데 이질감 안 느끼고 받아줘서 고맙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는 전회 매진을 기록했고, 영화계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를 가지고 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것도 뜻깊었다. “영화에 대한 마음이 절실했어요. 어느 순간 드라마 방송만 하다 보니 영화가 굉장한 동경의 대상이 돼 있더라고요. 심지어 영화하는 친한 친구도 저를 방송 연기자로만 생각해서 당황한 적이 있어요.” 애써 외면했다. 영화제나 시상식이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좋은 한국 영화가 개봉돼도 찾아보지 않았다. 영화제에도 가지 않았다.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TV로 챙겨봤다. “무명배우 33명의 축하공연이 인상적이었어요. 시상식에 앉아 있는 배우들이 모두 울더라고요. 배우 심정이 다 그런 거 같아요. 충분히 재능 있는 연극배우나, 안정적이지만 뜨지 못한 배우나, 연기를 막 시작한 배우나 각자 위치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오빠냐, 아저씨냐 그것이 문제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특히 한국사람) 상대방 이름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나이에 대해 궁금해한다.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김유석이지만 사실 반백(?)을 넘긴 중년의 남자.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외국인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가 영어로 “My first son is twenty years old(내 큰아들은 스무 살입니다)”라고 했을 때 ‘twenty(스무 살)’란 단어 자체가 해석이 안 됐다. 너무나 젊어 보이는 외모 때문이었다. 오빠로 느껴야 할지, 아저씨라 해야 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오십? 네? 물리적인 나이는 그렇지만 나의 생각과 신체적인 나이는 아닌 거 같아요. 가끔 제 친구들을 보면 놀라요(웃음). 언제부터 그랬냐면 스물일곱 살 때 러시아에 유학 가서 서른두 살에 왔어요. 그리고 서른세 살에 데뷔를 했는데 지금도 그때랑 마음이 똑같아요.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어요. 7년 만에 영화를 했는데 이렇게 세월이 금방 갔나. 큰아들 키가 제 키를 훌쩍 넘었는데 이렇게 애가 컸나 싶죠.” 데뷔 초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이 사실 별로 없다. 신체 중 노화가 빠른 것 중에 목소리가 있다는데 예전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젊은 외모에 중년의 멋이 가미된 정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한다. “젊음을 유지하기보다 잘 늙고 싶은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런 노력 중 하나가 불편한 것은 안 해요. 불편한 사람과 술 안 마셔요. 제가 술을 좋아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랑 술을 먹으면 한두 잔에 취하다 체해요. 물론 피할 수 없을 때는 버텨보지만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아요.” 김유석은 어느 순간 살아온 모습이 고스란히 얼굴에 담기길 바란다고 했다. 여태까지 믿고 살아왔던 삶이나 연기가 퇴색, 변색, 탈색되지 않으면 좋겠단다. “그렇다고 어떻게 늙고 싶은지가 지금 당장의 고민은 아닙니다. 할 게 많아서 그런 고민할 여지가 없거든요. 사람들이 나이 먹다 보면 자기가 바뀌는 모습을 못 느끼더라고요. 나도 저럴까 걱정은 하죠. 편안해지고 옛것 얘기하고 남에게 가르치려 하는 거 말입니다.” 중년의 배우, 나이 앞에 유연해지다 언제쯤 자신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만들어내는 극 중 배역에 녹을 수 있는 여유가 중요하다고 했다. “배우는 자기 나이를 중심으로 위아래 열 살 정도는 연기할 수 있어야 해요. 나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 또한 이번 영화처럼 나이 많은 연기도 가능하고 또 젊은 역할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웃음)” 혹시 인생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 싶어 물어봤다. 지금까지 못해본 캐릭터를 연기해보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단다. 마흔을 넘겨보니 대충이라도 알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해서 이루고 채우는 것만큼 비워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연기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냥 소소하게 놀고 술 마시고 힐링하고 비우는 시간이 필요해요. 비워야 또 무엇이 들어올 수 있어요. 가끔씩 작품이 끝나면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절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오거든요.” 김유석은 배우로서 일상에 대한 호기심,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식지 않길 바란다. “제가 맡는 캐릭터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요.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이 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 보내고 싶습니다.”
- 2017-06-0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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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의 무대 떠난 女스타의 삶과 연기
-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배우인 게 정말 좋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채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숨을 거둔 연기자 김영애의 말이다. 그녀는 KBS2 주말극 50회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66년간 치열하게 수놓았던 지상의 무대를 떠났다. 동시에 46년간의 연기자 삶도 마감했다. 에 함께 출연했던 차인표가 “김영애 선생님은 촬영을 시작할 때 분장실에서 50회 끝날 때까지 살아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목숨 걸고 연기했습니다. 직업을 떠나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다하신 것에 고개가 숙여집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신을 연기자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김영애는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해 에서부터 , , , , , , 그리고 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12년 사극 에 출연할 당시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술한 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 , 등에 출연해 김영애의 대체 불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김영애는 몸이 아파 소리 지르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리에 끈을 조여 매고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죽더라도 연기하며 죽을 것이라는 평소의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연기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기는 내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연기하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다.” 김영애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또 한 명의 중견 연기자가 폐암의 고통 속에서도 연기 열정을 불사르다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2월 19일 7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김지영이다. 그녀는 1960년 영화 로 데뷔한 뒤 수많은 연극,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며 뛰어난 조연 연기를 펼쳤다. 죽기 직전까지 드라마 , 등에 출연했고 병세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차기작을 준비했을 정도로 연기 열정이 남달랐다. 김지영은 57년 동안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화면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비록 식모, 주모, 첩 등 시청자나 관객의 눈길을 끌 만한 멋진 배역은 아니었지만, 김지영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로 승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그녀는 시대극, 사극, 현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 ‘조연 연기의 지존’으로 평가받았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 강원도 등 지역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해 ‘사투리 대사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김지영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나는 연기가 너무 좋아. 나에게 다가온 고통과 불행도 연기할 때는 다 잊을 수 있어. 김지영 인생에 연기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지”라고 말했다. “사망하기 두 달 전 병세가 악화해 호스피스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새로운 작품을 해야 한다며 운동을 하는 등 연기 의지를 드러내셨다. 5월에 새로운 작품을 할 예정이었다. 새 작품 준비를 하다 숨을 거두셨다.” 김지영 가족들의 전언이다. “어머니 여운계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는 죽을 각오로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이라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배우 여운계를 기억해줘 감사하다. 배우 여운계를 사랑해줘 감사하다.” 2009년 5월 22일 폐암으로 숨을 거둔 연기자 여운계의 딸, 차가현씨가 한 말이다. 암세포가 온몸을 덮는 순간에도 연기에 임한 연기자가 바로 여운계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암도 여운계의 뜨겁고 끝없는 연기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2007년 신장암 판정을 받고 SBS 사극 에 출연한 데 이어 수술 후 곧바로 드라마 에 복귀했고 2008년에는 폐암 진단을 받고도 일일극 에 출연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삶 69년 중 48년을 연기자로 살아왔다.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다 1962년 KBS 탤런트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여운계는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왔다. 여운계는 출연 당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기자는 정년이 없어요. 죽는 순간이 정년이지요. 연기자는 연기를 펼치는 마당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말처럼 연기를 하다 생을 마감한 천생 배우였다. “대장암 다 치료됐어요. 드라마 다시 하니까 살 것 같아요. 드라마를 하면 정말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껴요”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던 여배우는 김자옥이다. 대장암 수술 후 작품에 출연했던 김자옥은 얼마 안 돼 암이 폐로 전이된 상황을 알게 됐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2014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 MBC 탤런트 공채 2기로 연기를 시작해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멜로 연기를 펼쳐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 직후 만났던 그녀는 “투병생활 잘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 드라마 출연하면 좋은 글 많이 써줘요”라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암이 폐로 전이된 이후에도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출연 당시 쾌유를 비는 말을 하자 김자옥은 “걱정하지 하지 말아요. 빨리 나아 활동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비록 실천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지만, 김자옥은 죽는 순간까지 연기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암의 고통 속에서도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공포에 굴하지 않고 연기자로서 삶을 선택했던 김영애, 김지영, 여운계, 김자옥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연극 연기의 지평은 확장됐고 연기자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비록 그녀들은 떠났지만, 자신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연기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 2017-05-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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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가족에게 치매가 찾아온다면•••
- 치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가천대 길병원이 제작에 참여한 연극 이 개막했다. 은 치매에 걸린 아내와 아내를 보살피는 남편의 이야기로 치매환자 가족의 갈등과 화합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번 연극은 단순 치매를 주제로 한 공연에서 벗어나 치매 관련 분야 전문가인 가천뇌건강센터 이현 교수가 참여해 전문성을 더했다. 유승봉 프로듀서는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우리 주변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연극을 통해 사람들이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공연에는 베테랑 배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이 출연한다. 치매 아내를 둔 남편을 연기한 배우 이순재는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있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4월 4일 막을 올린 은 5월 28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공연 정보 공연명: 가천대 길병원과 함께하는 연극 공연장소: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러닝타임: 90분 연출: 이재성 출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
- 2017-04-06 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