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머금은 배우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중년부터 황혼까지, 연기의 참맛을 드러낼 배우들이 봄맞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신구(78), 손숙(70), 유인촌(63), 조재현(49) 배종옥(50) 등이 그 대표적 예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 신구와 연극계 원로 손숙이 뭉쳤다. 지난해 초연 이후 호평이 이어졌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3월 2일~30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가 앙코르 공연을 연 것이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로 분하는 신구는 부쩍 노쇠한 얼굴과 흰머리로 등장한다. 거친 호흡과 손끝의 떨림, 내뱉는 숨소리와 함께 촉촉이 젖어 있는 듯 흐린 초점을 한 신구의 눈은 관객의 감정을 빨아들인다. 그의 아내 홍매를 연기하는 손숙은 아픈 남편 옆에서 무심한 듯 살뜰히 수발을 들며 감정선을 쉼 없이 오르내린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부모 자식 간의 사건과 가족의 기억이 맞물리는 지점을 섬세하게 풀어나가며 깊은 울림을 준다. 신구는 “작가가 대본을 워낙 정교하게 써서 따라가느라 애를 썼다”며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환자의 증상을 조사하고 작가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며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간성혼수에 대해) 찾아보고 표현할 것이 있으면 더욱 표현하고자 한다”고 열의를 내비쳤다.
배종옥(50), 조재현(49), 정은표(48), 박철민(48)이 출연해 드러내는 50대 중년 남녀의 사랑은 무엇일까. 위트를 잃지 않는 가운데,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이 작품은 바로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3월 1일~4월 27일, 서울 수현재씨어터)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대학 교수인 정민과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 연옥은 목요일마다 비겁함, 역사, 죽음에 대해 토론한다.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50대 두 남녀는 사랑과 이별, 갈등과 화해, 애정과 증오를 표출해, 미묘한 남녀 갈등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재현은 인기 행진을 이어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50대뿐 아니라, 젊은층부터 70대 노인 관객까지 많이 찾아와 놀랐다”며 “더 폭넓은 세대를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창작극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누적 관객수 5만명을 돌파했다.
무대로 돌아온 전 문화부 장관 유인촌 역시 눈길을 끈다. 그는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을 전하는 ‘톨스토이의 홀스또메르’(2월 28일~3월 30일, 서울 CGV신한카드아트홀)를 택했다. 변종인 얼룩빼기 말로 태어난 홀스또메르는 진면목을 알아본 세르홉스키 공작(김명수, 서태화)에 의해 촉망 받는 경주마로 거듭난다. 늙고 병들자, 마시장에 팔리고 거세까지 당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홀스또메르의 입을 빌려 희로애락 속 인생의 화두를 던진다. 수많은 공연을 거쳐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주로 해오던 이경미(53), 김선경(46)은 홀스또메르의 첫 사랑 암말 바조프리하 역과 세르홉스키 공작의 연인 그리고 그를 배신하고 달아나는 여인 마치에 역, 그리고 마리 역까지 1인 3역을 소화한다. 이들은 장면 사이사이 쉴 틈 없이 등장한다. 젊은 앙상블 배우들과 함께 속속 종횡무진하는 이들 중년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관객들은 한결같이 연륜과 진정성이 담겨 있는 중견, 원로 연기자들의 연극은 대사 한마디, 작은 표정 변화 하나도 오롯이 관객의 가슴에 전달돼 감동을 많이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희준의 연극 복귀작 '나와 할아버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와 할아버지는 멋진 멜로드라마를 쓰고 싶은, 혈기만 왕성한 공연대본작가 준희가 외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 나서는데 동행하게 되면서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대면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희준은 대본작가 '준희' 역을 맡았다. 전쟁통에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 나서는 외할아버지와 동행하며 상상할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대면하게 된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연출을 맡은 민준호가 실제로 자신과 할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한 연극이다. 사실적 묘사와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감동과 생동감을 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4월 2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와 할아버지' 이희준 소식에 네티즌은 "나와 할아버지, 이거 꼭 보고싶은 연극" "나와 할아버지, 이희준 나오는 날로 꼭 가서 봐야지" "나와 할아버지, 진짜 재밌다던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팝과 오페라의 합성어인 팝페라로 하나 된 목소리를 내는 부부가 눈길을 끌고 있다.
테너 주세페 김과 소프라노 구미코 김이 주인공. 이들은 ‘듀오아임’이란 이름의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인문학을 음악으로 녹여내는 작업으로 국내 크로스오버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각의 무대에 오르는 부부 성악가는 많지만 함께 호흡을 맞추는 팝페라 부부는 국내 유일하다.
주세페 김은 대학에서 산업심리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을 다니다 뒤늦게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 특이한 케이스다.
주세페 김은 “군 제대 후 복학한 26살 때 음악과 관련된 예술심리에 관심을 두게 됐다”면서 “인문학을 음악에 접목하면 어떨까 싶어 직장을 그만두고 음대로 편입해 졸업한 후 1994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 팝페라 테너가 됐다”고 걸어온 길을 설명했다.
그는 1998년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인 일본인 아내를 만나 5개월 만에 결혼해 팝페라 그룹을 만들었다.
듀오아임이라는 팀명은 두 명이라는 ‘듀오’와 ‘음악 속 사랑’(Amore In Musica)을 결합해 만들었다.
이들은 이미 유학 시절 제작한 첫 음반이 ‘2002년 베네룩스 국제 송 엑스포’에서 작곡상과 대본상, 편곡상을 수상하며 성악의 고장 이탈리아의 마에스트로들에게도 “동양의 부부애가 음악으로 승화됐다”는 찬사를 받은 실력파 뮤지션이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친 부부는 2002년 말께 한국행을 선택한다. 귀국 후 화성국제연극제 개막식 등 많은 행사에서 ‘오페라의 유령’ 등을 비롯한 크로스오버 팝 음악을 부부듀오 버전으로 남편 주세페 김이 직접 편곡하고 함께 노래하면서 정통 클래식에서 크로스오버 팝페라로의 전환을 준비하게 된다.
한국적 창작 팝페라 음악을 준비하던 주세페 김은 2011년 이상백 시인의 시 ‘아리랑 아리요’를 시작으로 11곡의 창작 팝페라 곡을 작곡했다.
구상 시인의 시 ‘적군묘지 앞에서’를 영어 록발라드로 작곡한 ‘An enemy’s graveyard’,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옥중서한을 소재로 한 ‘아들아 아들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말의 꿈’ 등이 그의 창작곡이다.
그는 “K-POP과 같은 유행을 타는 장르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제는 지속 가능한 한국의 인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방법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팝페라 노래가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부부는 오는 14일 코우스 공연에 이어 4월 10일 국립중앙박물관 용극장에서도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