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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외레순 해협의 매력 도시, 스웨덴 헬싱보리
- ‘외레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웨덴 헬싱보리와 덴마크 헬싱괴르가 인접해 있다. 뱃길로 고작 7km.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배들에게서 선박 통행세를 거둬들이던 황금의 도시. 서로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싸움을 벌이던 곳.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도시이지만 매력은 폴폴 넘친다.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북스테후데가 처음 오르간 연주를 했던 성모교회 스웨덴 남서부 말뫼후스 주 북부의 항구도시인 헬싱보리. 느릿느릿 여유롭게 쿨라가탄(Kullagatan) 쇼핑가를 배회한다. 골목은 넓지만 길지 않고 골목 숫자도 많지 않아 길 헷갈릴 일도 없다. 다행히 하늘은 맑고 햇살도 따뜻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양식의 멋진 생마리 교회(St. Mary)에서 발길을 멈춘다. 100년(1350~1450년경)에 걸쳐 만들어진 이 교회는 단아하면서도 멋스럽다. 경내에는 아름다운 제단이 있고 바닥에는 16~17세기의 무덤 석판이 흩어져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창문으로는 옅은 햇살이 스며든다. 2층 발코니에 걸친 듯한 두 개의 오르간 파이프가 시야에 들어온다. 17세기, 청년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모습이 아련히 스쳐간다. 청년 때는 헬싱보리(1657~1658), 그 후에는 헬싱괴르(1660~1668), 31세부터는 독일 뤼벡에서 40년 넘게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북스테후데는 헨델, 바흐 등 후기 바로크 거장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705년, 20세 청년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곡에 매료당해 아른슈타인에서 뤼벡까지 400마일을 걸어 그를 만나러 갔고 그곳에서 3개월간 머무른다. 당시 북스테후데는 68세의 고령으로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단, 자신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북스테후데의 딸을 본 바흐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북스테후데의 딸은 엄청난 박색이었다고 한다. 헬싱보리의 위대한 영웅 ‘망누스 스텐보크’ 중앙광장으로 나가 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시 청사를 본다. 네오-고딕 형식으로 지은 시 청사 건물엔 63m의 탑이 있고 매일 차임벨이 연주된다. 1967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건축물이다. 시 청사 앞에는 헬싱보리의 전쟁 영웅인 망누스 스텐보크(Magnus Stenbock, 1665~1717)의 말 탄 동상이 있다. 보기만 해도 위상이 느껴지는 스텐보크는 헬싱보리 전투(1710년 2월 28일~3월 5일)에서 덴마크를 물리치고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중앙거리를 벗어나 체르난(Ka˙˙rnan) 요새를 향해 오른다. 오르는 길목에 거인 골리앗의 목을 잘라 짓누르고 있는 다윗상이 있다. 헬싱괴르를 째려보면서 ‘넘보면 죽는다’고 위협하는 느낌의 모습이다. 성벽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짙은 가을색이 내린 요새에 탑 한 기(높이 35m, 폭 15m)가 우뚝 서 있다. 원래 14개였으나 전투 때 다 부서졌다고 한다. 체르난 요새는 덴마크령일 때인 1310년에 짓기 시작해 1320년에 완성된 감시탑, 방어탑이다. 19세기에 개·보수해 원형을 복원했고 1967년에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둔커 기업가, 웃손 건축가,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을 만나다 요새를 비껴나 외레순 해협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방파제처럼 길게 이어지는 위티 다리의 이름이 재미있다. 세계적인 조각가 칼 밀레스(Carl MIlles, 1875~1955)가 만든 긴 석조물 꼭대기의 천사 조각상을 고개를 외로 꼬고, 눈을 치켜뜨고 쳐다본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둔커문화센터(Dunkerskulturhus, www.dunkerskulturhus.se)도 기웃거린다. 이 문화센터는 전시, 공연, 연주회 등이 열리는 종합예술센터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한 요른 웃손(Jorn Utzon, 1918~2008)의 아들인 킴 웃손(Kim Utzon, 1957~현재)의 작품. 웃손 집안은 3대가 유명한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둔커하우스는 헬싱보리의 기업가이자 사업가인 헨리 둔커(1870~1962) 가의 소유다. 둔커 일가는 고무공장을 1981년에 짓고 고무장화를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헬싱보리 대극장(1921년 개장) 앞에서 만난, 해학이 넘치는 햄릿 돌조각 표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길 건너의 대극장을 바라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 1918~2007) 감독을 생각한다. 1944년, 26세의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이 극장의 전임 연출가가 된다. 그의 첫 직장이었다. 당시 말뫼후스에 새 극장이 생기면서 헬싱보리 극장은 존폐위기 상황. 그는 부임해서 시나리오 을 썼는데 영화화됐다. 다음해(1945년)는 라는 작품을 첫 연출했다. 2년간 머무르는 동안 그의 역량은 충분히 인정받았다. 보조금은 되돌아왔고 그는 본격 영화감독이 되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영화인들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작품들. 그가 머물렀던 집, 담벼락 사진 속의 젊은 감독은 예리한 눈빛이었다. ◇ Travel Tip! 가는 방법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운항하는 직항이 없다. 핀란드 헬싱키와 서울 간 직항노선은 있다. 헬싱키를 경유해 페리 여객선을 타고 스톡홀름을 기점으로 헬싱보리까지 이동하면 된다. 헬싱보리에서 스칸드라인을 타면 5분 만에 덴마크 헬싱괴르에 도착한다. 스칸드라인은 매시간 20분 운항된다. 현지 교통 도시가 작아서 도보로 다니면 된다. 통화 정보: 스웨덴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지만, 유로화가 아닌 스웨덴 크로나(SEK)를 공식 통화로 사용한다. 현지 은행이나 ATM을 이용하면 된다. 맛집과 주류 헬싱괴르 마리 성당 주변이나 쿨라가탄 거리의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스웨덴은 주류 숍이 따로 있는 것도 특색. 코파르베리(Kopparberg, 사과맥주, 7%)가 맛있다. 언어 공용어는 스페인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잘한다. 헬싱괴르 여행 정보사이트 www.helsingborg.se 주변 연계 여행지 구스타프 아돌프(Gustav Adolf, 1882~1973) 6세와 첫 번째 왕비인 ‘코넛 공녀 마거릿(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1882~1920)’이 사랑한 여름 궁전인 소피에로 궁전이 있다. 소피에로 궁전은 오스카르(Oscar, 1829~1907) 2세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받았다. 아돌프 6세와 마거릿은 식물에 관심이 많아 궁전을 영국식 정원으로 가꿔 ‘스웨덴 정원 꾸미기’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소피에로 궁전은 현재 카페로 이용되고 있으며 헬싱보리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 2016-11-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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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중세 모습 그대로, 루마니아 브란성
- 흡혈귀로 알려진 드라큘라는 실존 인물이다. 동유럽의 루마니아 중부 아르제슈주 쿠르데아르제슈 시에는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Bran) 성’이 있다. 루마니아 여행자들은 ‘브란성’을 빼놓지 않고 찾는다. 루마니아 당국에서도 이미 소설,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드라큘라’를 이용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에서는 역사에 기록된 공인 영웅이다. 그 영웅은 어떻게 흡혈귀로 변신했을까? 동화 속에 나옴직한 멋진 고성, ‘브란 성’ 여느 관광지가 그렇듯이 브란성 입구에는 드라큘라와 관련된 기념품 상점이 줄지어 있고 여행객들로 북적댄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가파른 언덕 위에 서 있는 고성을 만난다. 계단 초입에 감시탑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관람하게 되어 있다. 뾰족한 성 탑과 지중해풍의 지붕 벽돌이 에워싸고 있는 멋진 성이다. 건물은 시대가 흐르면서 새로운 건축양식이 추가되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실내는 좁은 계단을 따라 층별로 전시관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사는 듯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드라큘라 사진 대신, 어여쁜 왕비, 공주 사진이 눈길을 잡아끈다. 쇠창살, 철도끼 등 중세시대 고문기구 등도 있지만 몸서리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박물관에 진열된 물건일 뿐이다. 드라큘라라는 선입견을 갖고 ‘으스스’할 준비를 하고 성을 방문하지만 실제로는 동화 속에 나옴직한 멋진 고성이다. 그렇다면 이 성은 실제로 드라큘라와 연관이 있을까? 브란성은 독일 기사단의 요새(1212년)로 만들어졌다. 15~16세기에는 트란실바니아와 왈라키아 공국을 잇는 연결지 역할을 하면서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헝가리 왕국을 지키는 관문이 되었다. 그 무렵 드라큘라가 이 성에 잠시 머문 것(1450년대)은 사실이지만 그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아니다. 이후 이 성은 루마니아 공국들의 통일에 기여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 드 여왕에게 헌정(1920년)되었고, 낭만적인 여름 궁전으로 바뀌었다. 여왕이 죽은 후 일레아나 공주가 성을 물려받았으나 루마니아가 공산권이 되면서 후손들은 성 소유권을 박탈(1948년) 당했다. 그 이후 브란성은 방치돼 파손됐다. 루마니아 정부가 1956년 국가 문화재로 지정, 개보수를 거침에 따라 중세역사미술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2006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손이 성의 소유권을 되찾았다. 그 후손은 지금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는데 후손들은 흡혈귀 성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에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드라큘라 백작이 흡혈귀가 된 속사정 그렇다면 루마니아의 실존 인물이자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한 영웅이었던 드라큘라가 왜 흡혈귀가 되었을까? 드라큘라가 흡혈귀가 된 것은 아일랜드의 소설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 1847~1912)가 쓴 소설 때문이다. 스토커는 ‘드라큘라의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괴기소설을 썼고 크게 명성을 떨쳤다. 우리는 역사를 똑바로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다. 드라큘라의 일대기를 들여다보자. 드라큘라(1431~1476)의 아버지는 신성 로마 제국의 드래곤 기사단 소속인 왈라키아 공 블라드 드라큘(Vlad Dracul) 2세다. 아버지가 용의 기사단의 단원이었기에 사용된 문장(紋章)이 ‘드라큘’이다. 루마니아어인 드라쿨(Drakulić)은 용(또는 악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몰다비아 공국의 공녀 크네아지아다. 드라큘라는 트란실바니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시기쇼아라(Sighişoara)에서 태어났다. 현재 그곳에는 생가가 변형된 채로 남아 있다. 드라큘라가 태어난 시기쇼아라는 그 당시 루마니아인이 아닌 게르만족 후손인 색슨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12세기에 이곳으로 이주한 색슨족은 철옹성 같은 성벽을 쌓고 상권을 장악했다. 루마니아 현지민들은 들어가 살 수 없었지만 당시 드라큘라의 아버지는 이들과 무역 협정을 맺고 도시 내부에 살 수 있었다. 형제는 형(미르체아), 본인(블라드), 남동생(라두) 3남이었다. 드라큘라는 어릴적(11살 경) 오스만 제국에 동생(4살)과 함께 볼모로 보내졌다. 드라큘라는 오스만 제국의 황태자인 메흐메트(훗날 메흐메트 2세가 된다)와 그의 아버지 무라드 2세에게 잔혹한 일을 많이 당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을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다른 종족에 의해 암살(1447년, 드라큘라 16살 경)되었고 형은 뜨거운 인두에 눈을 잃고 생매장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드라큘라는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가 된다. 아버지 블라드 드라큘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고 왈라키아 타르고비스테(Targoviste)를 수도로 삼는다. 포로들을 꼬챙이에 꽂아 죽여 하지만 사회는 불안정했고 영주 자리는 늘 위태로웠다. 툭하면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공작을 죽여 버리는 하극상은 끊이질 않았다. 드라큘라는 왕궁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고 나서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정적인 보야르(boyar, 당시 최상층의 귀족) 계급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었다. 부활절 날(1457년), 그들을 왕궁으로 초대, “지난 50년간 몇 명의 군주를 모셨냐‘고 질문했지만 너무 많이 갈아치워 그들의 답변을 못하자 전부 다 죽였다. 대략 500명 정도가 말뚝에 박혀 처형되었다. 그의 처형 방법이 하도 잔혹해 체페시(Ţepeş, 가시, 또는 꼬챙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들을 다른 방법으로 이용했다. 브란성 근처 산정에 포에나리 요새를 축조할 때 보야르 계급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을 인부로 이용했다. 이 포에나리 요새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다. 이어 드라큘라는 색슨족에게 전면전을 통보한다. 이 길을 상업로로 이용하려면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고 명한다. 하지만 색슨족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블라드의 정적들을 지원했다. 드라큘라는 군대를 이끌고 색슨족의 거점도시였던 브라쇼브(Brasov)로 진격했다.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 많은 포로들을 다 꼬챙이에 꽂아 죽였고 그대로 방치했다. 드라큘라가 그곳에서 식사를 해야 할 정도로 너무 많은 숫자였다. 드라큘라의 피의 장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시탐탐 서방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과도 전쟁을 결심한다. 오스만제국의 사절단이 왔을 때, 터번을 벗지 않자 군주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 그 자리에서 터번 쓴 머리에 못을 박아 죽였다. 1461년, 오스만과 왈라카이는 전면 전쟁에 들어갔다. 이듬해(1462년)에 2000명이 넘는 포로를 잡았다. 그 포로들 전부 코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3배 이상의 군대를 끌고 쳐들어 왔고 드라큘라는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전세는 몰리기 시작한다. 포에나리 성으로 숨어 들어갔으나 장기적인 전투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부인은 성벽에서 떨어져 자살했고 수많은 수하 장군들을 잃었다. 드라큘라는 편자(말발굽형의 쇠붙이)를 역 방향으로 이용해 겨우 탈출한다. 하지만 오스만 군과 맞서 싸우다 술탄의 친위부대 예니체리들의 총칼에 무릎을 꿇고 목이 잘렸다. 향년 45세. 서기 1476년의 일이었다. 루마니아의 주요한 여행지들 유럽 발칸 반도에서도 동유럽 쪽에 위치한 루마니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낯선 여행지다.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를 반대하는 1989년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공산국가라는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 수도 부쿠레슈티(Bucureşti)는 기대 이상으로 볼거리가 많다.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라 칭하던 개선문,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로 알려진 국회의사당(1984년) 등 공산당 정권이 만든 유명 건축물들. 그것 말고도 도심 속에 남아 있는 옛 모습은 여행객들을 충분히 매료시킨다. 또 ‘시나이아(Sinaia)’, 브라쇼브와 시기쇼아라를 구경하는 재미를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시나이아는 ‘카르파티아(Carpathian)의 진주’라 불린다. 왕가의 여름 별궁인 펠레쉬(Peles, 루마니아 국보 1호), 펠리쇼르 성이 인기다. 또 시기쇼아라에는 드라큘라가 태어나 4살까지 살았던 생가가 있다. 그것 뿐 아니라 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 등, 올드 타운은 마치 중세를 옮겨 놓은 듯하다. 이 도시의 역사지구는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좀더 사실적으로 알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를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Travel Tip! 항공편 직항은 아직 없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항으로 이동하면 된다. 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각지를 경유해 가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 카타르항공을 이용해 도하를 거쳐 부쿠레슈티로 갈 수 있다. 도하까지 약 10시간, 부쿠레슈티까지 약 5시간 걸린다. 현지교통 수도 부큐레슈티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그 외 시외 이동은 열차, 버스 등으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브란성을 가려면 부큐레슈티에서 열차를 이용해 브라쇼브로 가야 한다. 브라쇼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2, 16번 버스를 타고 Stadionul Tineretului에서 하차 후 브란성 가는 버스(40분 소요)를 타면 된다. 시기쇼아라는 브라쇼브에서 버스나 열차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음식정보 음식이 제법 맛이 좋다. 루마니아식 족발인 치올란(Ciolan)이 있다. 그 외 옥수수를 재료로 이용한 음식, 다진 돼지고기를 포도잎으로 싼 사르말레 등이 있다. 루마니아 전통 도넛인 파파나스(Papanas)도 있다. 특히 부큐레슈티에서는 전통 깊은 건축물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구시가지 왕궁 옆에 있는 마눅 여인숙(hanul lui manuc, 1808년)은 200년 전통을 자랑한다. 또 1879년에 오픈한 카루 쿠 베레(Caru cu Bere)는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홀이다. 원래는 왕족의 만찬장소였던 이곳은 차우셰스쿠의 큰아들이 자주 파티를 열던 곳이란다. 현재도 레스토랑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매우 흥미롭다. 루마니아 문화 루마니아 민속 예술, 전통음악과 춤, 목공예, 도자기 공예, 건축, 뜨개질, 자수, 보석가공 등 여러 문화유산들이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그 원형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예술뿐 아니라 과학과 학문에 있어서도 루마니아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스포츠 중에서는 체조를 빼놓을 수 없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당시 15세의 나이로 참가해 체조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은 나디아 코마네치(Nadia Comaneci)가 아직도 유명하다. 루마니아가 체조에 강한 이유는 신 식초 성분이 많은 음식을 즐기는 그들의 식생활도 한몫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미인들이 아주 많다. 화폐정보 레이(LEI)를 쓴다. 1유로가 4.4레이 정도다. 환전할 필요 없이 ATM기를 이용하면 된다. 주류 정보 포도주(VIN), 추이카(TUICA)라는 특유의 과실 증류주가 유명한데 자두가 좋다. 포도주는 아주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이미 서구에서 크게 사랑받고 있다. 루마니아 포도주 박람회(VIN-EXPO)가 열린다. 그 외 보드카, 위스키, 럼, 다양한 맥주 등이 생산되고 있다. 포도주는 겨울철에는 데워 먹는 특징이 있다. ‘뜨거운 포도주(Vin fiert)’는 겨울 추위나 감기 등을 이기기 위한 민간요법이다. 숙박 정보 가격이 비싸지 않고 시설이 좋은 편이다. 유명한 숙박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시니어 포인트 수도는 걸어서 다니거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도시 간 이동은 시설이 열악한 편이다. 서두르지 말고, 관광도시마다 1~2일 정도 지내면서 천천히 여행을 즐기는 것이 키 포인트다. 물가가 싼 편이라서 원하는 음식과 술은 멋진 레스토랑을 골라 먹도록 하자. 싼값에 기념품을 사오는 것도 방법이다. 관광지는 생각보다 눈요기를 할 곳들이 아주 많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6-06-0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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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에게 카톡으로 용돈 보내고, 자녀 그리고 며느리와 사위에게 커피 쿠폰을 쏴라!
- 새로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자극을 주는 것과 같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스마트폰으로 통화만 하는 게 아니라 손주에게 카카오톡으로 용돈도 주고 자녀들에게 커피 쿠폰 하나 보내는 센스를 발휘해 보면 어떨까? 글 유장휴 (소통기업 AG브릿지 대표/전략명함 코디네이터) ◇지갑을 대신하는 모바일 지갑 예전에는 물건을 살 때 현금을 사용했는데 요즘은 현금보다 카드를 더 많이 사용한다. 최근에는 이와 더불어 모바일을 통해 결제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가 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이 생일에 카카오톡(카톡)으로 생일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확인해보니 친구가 보낸 카톡에 커피 모바일 쿠폰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받은 모바일 쿠폰은 카페에 가서 휴대폰 속 쿠폰만 보여주면 돈을 내지 않고 커피를 살 수 있다. 이분은 모바일 쿠폰을 받은 게 처음이기도 하고, 신기해서 사용법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자신도 친구에게 모바일 쿠폰을 보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모바일 쿠폰은 모바일 지갑과 연결되어 있어 최근에는 카톡을 통해 송금도 하고 커피 쿠폰도 살 수 있다. ◇ 통장 계좌번호를 몰라도 돈을 보낸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모임에 나가서 회비를 내려고 하는데 현금이 없어 옆 사람에게 빌려서 내는 것 말이다. 이렇게 빌린 돈을 돌려주려면 만나서 현금을 주거나 계좌로 이체해 주기도 하는데, 적은 금액이라면 빌려준 사람이 안 받는다며 극구 사양할 때도 있다. 빌려준 사람이 계좌번호도 알려주지 않을 경우 난감해지고 찜찜한 것은 빌린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몰라도 보내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은 최근 은행과 손을 잡고 ‘뱅크월렛카카오’라는 것을 만들었다. 카톡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으면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물론 모바일 뱅킹과 달리 소액 거래용이다. ◇카카오톡으로 용돈을 준다 지난 설에 지인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정이 있어 설날 내려오지 못한 손자에게 세뱃돈을 주고 싶은데 줄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장번호 물어보는 것도 낯간지럽고, 그때 카톡 송금이 생각났다고 한다. 손자하고는 카톡으로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통장번호를 몰라도 카톡만 있으면 송금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녀에게 사용법을 물어서 결국 카톡으로 세뱃돈 보내기에 성공했단다. 물론 다음에 만나서 주거나 자식을 통해서 줘도 되는데 왠지 설날에 주고 싶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서 보냈는데 반응은 최고였다고. 멀리서 세뱃돈을 받아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카톡으로 보내는 방법을 어떻게 알았냐는 둥, 원래부터 사용했냐는 둥, 손자의 대단하다는 감탄과 질문에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모바일 지갑 ‘뱅크월렛카카오(뱅카)’ 사용하기 모바일 지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카드사나 은행에서 모바일 지갑을 별도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중 하나인 카카오톡과 은행이 연결된 ‘뱅크월렛카카오’는 모바일 지갑이다. 시중 12개 은행과 연결되어 있어서 은행 계좌를 연결해 돈을 충전해 놓으면 친구나 가족에게 카톡으로도 보내고, 편의점 같은 곳에서 물건도 구매하고 은행 ATM기에서 스마트폰만으로 현금을 찾을 수 있다. 단, 금융거래라서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충전금액도 제한해 놓고, 하루에 보낼 수 있는 최대 금액도 10만원으로 정해 놓았다. 카카오톡 모바일 지갑을 사용하려면 먼저 어플을 설치해야 한다. 어플을 다운받는 Play스토어나, 앱스토어에 접속해서 ‘뱅크월렛카카오’를 검색해서 설치할 수 있다. 설치가 됐다면 돈을 충전해놔야 꺼내 쓸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본인 확인과 은행 연결을 거쳐야 한다. 다음은 자주 이용하는 은행을 선택하고 본인 확인에 필요한 공인인증서, 보안카드번호를 입력하는 단계가 있다.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는 처음에 등록할 때만 필요하다. 거래하고 있는 은행을 선택하고 충전에 필요한 비밀번호 설정하면, 뱅크월렛카카오를 사용할 준비가 끝난다. ◇자녀에게 힘내라고 커피 모바일쿠폰 선물 모바일 쿠폰은 저렴한 금액으로 큰마음을 센스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비싼 모바일 쿠폰도 있지만 커피나 도넛 같은 쿠폰은 저렴하다. 친구 생일 때 선물 사기는 부담스럽고 말로 때우기에는 서운할 것 같을 때 저렴한 도넛 모바일 쿠폰을 보내 성의를 표시하는 것은 어떨까. 간혹 아내나 남편에게 뜬금없이 모바일 쿠폰과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기분 좋은 이벤트가 되기도 할 것이다. 모바일 쿠폰은 다양한 곳에서 살 수 있는데 역시나 결제가 번거롭다.
- 2015-05-1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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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앤라이프] 100세 시대 맞춤 금융상품은?
- 100세의 이칭은 ‘상수(上壽)’다. 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란 의미다. 인간의 수명 중 최상의 수명이란 뜻도 담겨 있다. 의학의 힘으로 젊음까지 되돌릴 수 있게 돼 기원지수(期願之壽)이던 100세는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100세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까. 최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은퇴준비 점수는 57점에 불과하다. 관계, 건강, 활동 등 모든 분야에서 ‘부족’하다는 얘기다. 특히 연금 가입자가 전체 40%에 불과해 경제적 노후준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준비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란 얘기는 옛말이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늦었다. 따라서 하루라도 더 빨리 시작해야 한다. 은행들이 베이비부머의 효율적 자산관리를 위해 선보이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서 팁(Tip)을 얻어 보자. 우선 45세 이상 고객에게 최적화된 NH농협은행의 ‘내생애아름다운정기예·적금’은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상품에 가입하면 각각 0.2%포인트 우대금리를 준다. 상속, 세무, 재테크 등 자산관리는 물론 최고 600만원의 장례준비금을 지급한다. 가입 6개월 이후 가족의 애경사가 발생하면 기본금리로 긴급자금도 인출해준다. KB국민은행의 ‘KB골든라이프예금’은 소득 공백기에 대비할 수 있는 상품이다. 퇴직금·부동산 매매대금 등의 목돈을 예치한 후 매달 원리금 형태로 나눠 받을 수 있다. KB골든라이프적금’은 은퇴 후 공적연금을 받기 전까지 대비할 수 있는 가교형 상품이다. 최장 9년간 장기 적립으로 목돈을 마련하고 원리금 형태로 나눠 수령할 수 있다. 두 상품 모두 은퇴 계획에 맞춰 일정기간 거치 후 원금과 이자를 매월 균등 수령하거나 가입 후 즉시 원금과 이자를 매월 나눠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의 ‘청춘100세금융패키지’는 은퇴자금을 준비, 운용, 수시입출금 등 목적별로 나눠 연금, 적금, 펀드 등 각종 금융상품을 일목요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상품이다. 주택을 담보로 한 주택연금대출과 연금을 소득으로 인정하는 신용대출인 연금수급권자대출도 별도로 구성해 긴급자금 걱정을 줄였다. 아울러 많이 이용하는 업종에 대해 최고 7%까지 포인트로 환급해 주는 ‘우리V포인트카드-청춘100세’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신한은행 ‘뉴라이프연금예금’은 최장 50년까지 연금수령기간을 지정할 수 있어 연금 효과도 크다. 기존 개인연금 또는 연금신탁과 달리 설정한 금리 주기 동안 확정 이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예상수령금액을 미리 알 수 있어 효과적 자금설계가 가능하다. 중도에 해지하더라도 원금손실의 위험이 없어 목돈이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도 불이익 없이 인출할 수 있다. 하나은행의 ‘행복연금통장’은 매월 연금이체 시 각종 수수료 면제 혜택을 준다. 특히 하나은행은 업계 최초로 은퇴설계 브랜드 행복디자인을 론칭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시니어들의 은퇴 플랫폼을 마련했다. 외환은행의 ‘해피니어패키지’는 전자금융수수료 및 모든 은행 ATM수수료가 면제되는 ‘해피니어통장’, 헬스케어 서비스가 특화된 ‘해피니어카드’, 연금식 분할 실행이 가능한 ‘해피니어모기지론’으로 구성돼 있다. 통장과 카드, 모기지론, 부가서비스를 한 데 묶어 자산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상품이다. 마지막으로 IBK기업은행의 ‘IBK꽃보다청춘통장’은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은 60대 이상 은퇴·노년층에 특화된 상품이다. 여행상품 10% 할인을 비롯해 여행자보험 무료 가입, 국제 긴급의료서비스, 외국통화 환전 수수료 50% 감면 등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 2014-02-26 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