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리 볍씨와 생명문화도시
생명문화도시 청주라고 말한다. 지역마다 일컫는 상징적 수식어가 있듯 이곳은 명칭마다 생명이 함께하는 걸 본다. 청주시 청정자연의 푸르름을 뜻하는 ‘생이’와 미래창조의 빛을 머금고 있는 ‘명이’가 결합된 캐릭터로 생명과 창조의 도시 청주를 상징한다. 이렇듯 청주에서 생명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공원도 생명누리공원이고, 정자는 생명정이다. 생명과학단지는 바이오 산업 전문으로 첨단의료 복합단지다. 가을이면 청원생명축제가 열린다. 생명과 연결된 것 중에 당연히 먹는 것이 빠질 수 없다. 청원 생명쌀은 전국 최초로 15년 연속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인정받은 고품질 쌀이다. 이제 대한항공 기내식 밥으로도 공급되어 전 세계인이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최근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밥은 한국인의 일상과 아주 밀접하다. 인사나 만남의 경우에도 꼭 밥이 등장한다. 밥은 먹었니, 밥 한번 먹자… 이런 밥. 밥 이전 벼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일 거라는 주장 관련 근거가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됐다. 2003년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국제적 검증 끝에 거의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고, 고고학자 콜린 렌프류도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했다고 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충북 옥산의 소로리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 농경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국토 중심지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충북 청주는 생명문화의 고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부근의 오창읍엔 쌀의 일생과 역사를 알려주는 단아한 한옥의 벼전시체험관과 미래지농촌테마공원이 있다. 이곳에 소로리의 유적인 볍씨가 소개되어 눈여겨볼 만하다. 옛날 옛적 벼농사를 지었던 우리 땅에서 출토된 소로리 볍씨 59알로 한반도 고대국가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다니,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알고 먹는다면 밥맛이 다를 터.
올 초에 세상을 떠난 이 시대의 문화 지성이라 일컫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청주를 사랑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생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것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와 함께 청주가 세계적인 생명문화도시라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했다. 더불어 친환경 두꺼비 생태공원과 가로수길, 초정 약수 등의 문화 원형을 분석하며 가치 발굴에 관심을 보였다. 또한 청주의 한 무덤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젓가락이 출토되었는데, 쌀과 젓가락은 생명문화의 원형이라며 지구촌 유일의 생명문화도시 청주에서 젓가락 페스티벌을 열도록 제안도 했다. 청주를 향한 깊은 애정으로 그는 청주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간 김에 오창호수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예전에는 청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했던 오창이었다. 이젠 길이 달라졌고 교통수단도 좋아져서 드라이브 삼아 자동차로 20분 정도 휘익 달리면 된다. 핫한 카페나 맛집은 물론, 자연친화적 생태놀이터와 등산로가 건강한 시간을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하루를 누릴 만한 문화휴식공원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호수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저수지 준설공사로 물을 모두 뺀 상태였지만, 물을 가득 채워 호수에서 뿜어내는 분수가 솟아오르면 가슴 후련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옛날 문전옥답에 물 대주던 방죽이 지금은 멋진 호수가 되어 현대인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휴식처로 변모했다.
세종대왕이 가끔 쉬던 곳에 나도 간다, 초정행궁
또 한 군데 들러볼 곳으로 초정행궁이 있다. 청주나 오창에서 20분 정도 거리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 끝에 늘 초정약수의 눈병 치료가 따라 나오곤 한다. 바로 그곳 초정이다. 과거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행차하여 머물며 한글 창제를 마무리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초해서 조성되었다. 옛 임금의 행궁이나 이전 대통령들의 전용 휴양지(청남대)로 청주를 택했던 걸 보면 사색과 휴식의 환경에 적당한 도시였구나 싶다.
초정 행궁마을은 도심에서 뚝 떨어져 아늑하다. 조선시대 옛 거리를 걷듯 한옥마을을 느릿하게 거닐다가 투호를 던지거나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에 참여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독서당에서 책을 읽다 전통찻집에서 보약처럼 진한 대추차 한잔 마시는 것도 좋은 시간이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물론 초정리에 갔으니 세계 3대 광천수로 탄산과 칼슘,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한 초정약수를 느껴볼 일. 한동안 코로나19의 여파로 중단되었던 초정원탕 행각에서는 야외 족욕체험장이 개방 운영되고 있다. 땅속 깊은 화강암층에서 퐁퐁 솟아나는 광천수로 이색 체험까지 알차게 챙겨보자. 한옥 스테이는 예약 필수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조용한 공감
청주는 그동안 진입로의 가로수길이나 도심을 둘러싼 상당산성과 중심부를 흐르는 무심천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육거리 전통시장은 더 말할 게 없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면서도 빠뜨리면 섭섭할 중앙공원도 청주의 역사 속 중심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청주 중앙공원이 이제는 탑골공원처럼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괜히 중앙공원(中央公園)이 아니다. 전국 각 지역마다 하나씩 있음직한 중앙공원은 그 지역을 대표한다. 이름 그대로 센트럴파크다. 한쪽 코너에는 시민극장이 있었다. 청주 극단인들의 연극도 올리던 곳이었다. 유형문화재인 목조 2층의 누각과 구석구석 유적들은 제각각 옛이야기들을 품었다. 무엇보다 천년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전설을 지닌 채 계절마다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중앙공원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금은 쫄쫄 호떡이 유명하지만 그 이전엔 할머니의 빈대떡이 유명했다. 그 옆으로 50년이 훌쩍 넘은 공원당 우동은 특히 청주를 떠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약속 장소로 정하기 좋은 곳.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공원당에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점포다. 도시가 사람을 품어주는 맛이 있고 따뜻하다. 이젠 어딜 가나 나타나는 거대한 관광 콘텐츠, 덕후들의 핫플이나 힙하다는 맛집 풍경 인증샷은 지겹다. 어느 여행지를 말할 때 ‘노잼’이나 ‘핵잼’ 타령으로 섣부르게 구분 짓는 이들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그 골목을 나와 바로 보이는 용두사지 철당간. 시내 중심에 우뚝 서 있지만 늘 그 자리에 있으니 다들 무심한 듯 지나간다. 고려시대의 귀중한 문화유적이라 여행자들이 찾아와 올려다보곤 한다. 바로 앞으로 청주극장과 현대극장이 기역자로 거의 붙어 있었다. 학생들의 단체 영화 관람이 있는 날은 그 앞이 교복 입은 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은 영플라자 뭐 그런 것들이 새 옷 입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성안길이 된 본정통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핫한 거리다. 입구부터 시네마 거리다. 청주가 의외로 영화관이 많았고 유명 연예인이나 문화예술인을 다수 배출했다는 사실, 또한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촬영된 곳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가깝고 역사와 현재가 고루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가 꽤 있다는 것. ‘제빵왕 김탁구’의 수암골은 이미 성지가 된 지 오래고, ‘태양의 후예’, ‘덕혜옹주’, ‘은교’, ‘베테랑’, ‘국가대표’, ‘프리즌’…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청주를 떠나기 전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갈 때마다 들르지만 이번엔 시간이 늦었다. 그렇지만 미술관 앞마당에 서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릿하다. 오래전 담배공장이었던 곳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근대문화유산 동부창고,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눈앞에서 조금씩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미술관 광장에서 바라보는 코끝 찡한 저녁노을, 운이 좋았다.
‘귀농’은 익숙하지만 ‘귀어’는 생소할 수 있다. 더불어 귀어를 하면 어부가 된다고만 생각하는 도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편견과 달리 어촌 관광과 해양 레저 사업을 통해 주목받은 마을이 있다. 타고난 자연환경과 지역민의 어업이 잘 녹아든 결과다. 출신 구분 없이 마을을 향한 귀어인과 어촌 주민의 애정이 모여 탄생한 새로운 매력의 어촌, ‘궁평 어촌체험마을’을 소개한다.
현대 사회가 빠르게 산업화되면서 대도시와 공업 지역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됐다. 반면 농·어촌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최근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인생 2막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농촌으로 돌아가는 귀농뿐 아니라 어촌과 어항을 찾아가는 귀어인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귀어·귀촌을 하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 어업뿐 아니라 양식장에서 전복·미역·김을 길러 파는 양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소금 사업, 수산물 가공업도 있다. 더 나아가 직접 어업을 하지 않고 어촌 관광, 해양 레저 사업 등의 3차 산업으로 자리 잡는 방법도 있다. 2015년 화성 궁평리로 귀어한 김문호 체험 사무장과 ‘궁평 어촌체험마을’이 바로 그 예다.
궁평 어촌체험마을은 아름다운 일몰과 갈매기, 싱싱한 먹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어린이를 위한 체험 활동이 많아서인지 가족 단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전국 어촌체험 휴양마을 운영실태 평가’에서 우수마을로, 7월에는 ‘이달의 어촌 안심 여행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을의 체험 분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귀어인과 어촌 주민들의 협력 덕이다. 갯벌 체험뿐이었던 프로그램은 낚시, 페달보트, 모터보트 등으로 점점 확대됐다. 도시 사람들이 바다에 놀러 왔을 때 좋은 기억만 갖고 돌아가길 바라며, 궁평항의 상황에 맞춰 개발했다.
궁평리를 서해안 명소로 만든 체험 프로그램
●갯벌 생태 체험
궁평 어촌체험마을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어장 황폐화를 막기 위해 갯벌을 3등분해 차례로 개방하고 있다. 1년 동안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한 다음, 2년 동안 쉬게 해 갯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방식이다. 덕분에 언제나 잘 보전된 서해안의 갯벌을 만끽할 수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어도 당황하지 마시라. 마을에서 장화와 호미, 장갑, 바구니 대여가 가능하다. 바지락, 동죽, 농게, 소라게, 민챙이 등을 실컷 구경하고, 진흙을 매만지며 신나게 갯벌 탐구를 마친 후 손발을 씻어낼 세면장도 마련돼 있다.
●모터보트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즐길 수 있는 궁평항 모터보트는 김문호 체험 사무장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김 사무장은 모터보트 운영을 위해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 면허도 취득했다. 안전을 위해 파도와 바람 상태를 보고, 체험 시작 전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는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 후 가족, 연인들이 차례로 보트에 앉으면 모터보트가 출발한다. 물살을 가로지르며 바람을 맞다 보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페달보트
페달보트는 노를 젓지 않고 발로 페달을 밟으며 타는 작은 놀잇배다. 광장의 분수대 공간을 활용한 페달보트장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바닷물을 끌어올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을 뺐다 채우기를 반복한다. 물은 30cm 정도로 얕게 받아 물놀이 사고에 대비했다. 부모들은 꺄르르 웃음소리를 내는 아이의 사진을 연신 찍기 바쁘다.
●어린이 낚시
궁평 어촌체험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갯벌 체험은 썰물 때 외에는 할 수 없어 시간을 맞춰 방문하거나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밀물 때 즐길 수 있을 체험을 개발한 것이 ‘낚시’였고, 이후 ‘어린이 낚시’로 이름을 바꿨다. 어린이 낚시라고 하나 아이뿐 아니라 부모들까지 합세해 체험에 나선다. 직접 고기를 낚는 성취감도 있겠지만, 한 마리만 낚아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날 것이다.
●아르고 체험
궁평항을 찾은 손님 대부분이 좋아하는 이색 체험이다. 아르고는 지상과 수상에서 모두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차로, 작은 탱크와 같은 생김새여서 탑승 전부터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우렁찬 엔진 배기음과 함께 자유자재로 달리는 아르고 위에서 마을 주변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잊은 채 신나는 함성이 절로 나온다. 웬만한 놀이기구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아르고의 박진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달고나 만들기
겨울 바다는 놀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겨울 궁평항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달고나 만들기 체험은 해마다 좋은 반응을 불러왔다. 김 사무장에 따르면 호황일 때는 하루에 1500여 명이 달고나 체험 부스를 다녀갔다. 체험 초창기에는 손님들을 위해 입이 마르도록 일일이 제조법을 알려줬는데, 새까맣게 태운 달고나를 보며 더욱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곤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올겨울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힘입어 더 잘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언덕을 오르면 무슨 일이 기다릴까. 종로구의 그 골목으로 접어들면 거대한 고목이 중심을 잡고 있다. 권율 도원수 집터의 은행나무다. 여름이면 주변을 시원하게 할 만큼 초록이 울창하고 가을이면 온 동네에 노란 은행잎이 흩날린다는 이야기다. 오래전 살던 집을 찾기 위한 단서로 붉은 벽돌집과 바로 이 큰 나무가 있는 은행나무골 1번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딜쿠샤의 역사를 언덕 위의 은행나무는 지금껏 지키고 있었다.
거의 100년 전 개인의 공간이 당시와 거의 흡사하게 복원되었다. 딜쿠샤는 그 시절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던 저택으로 3.1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AP통신 특파원 고 앨버트W.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메리L.테일러(Mary Linley Taylor)부부가 살던 집이다.
두 외국인 부부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이 우리의 오묘한 역사의 흔적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이야기가 깃든 딜쿠샤는 그 시절의 디테일한 분위기와 일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탈바꿈되어 공개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탄광 개발을 위해 아버지와 한국을 찾은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출장차 일본에 갔다가 운명의 여인 메리를 만난다. 영국 출신 배우 메리와 1917년 인도에서 결혼을 하고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한양도성을 산책하다가 은행나무골로 불리던 행촌동(杏村洞)의 은행나무에 반한 메리가 이곳에 집을 짓고 싶어 한 것이 딜쿠샤의 시작이었다.
1923년에 정초석을 세우고 1년 만에 완성된 딜쿠샤(Dilkusha). 이국적인 이름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 희망, 이상향'을 뜻한다. 부부는 인도에서 딜쿠샤라는 궁전을 보고 그들의 스위트홈이 완성되면 딜쿠샤라 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한국에서 정착해 살면서 창 밖으로 은행나무가 보이는 딜쿠샤에 살게 된 부부는 고통스럽고 혼란했던 시기의 한국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기업인이자 연합통신 특파원으로 고종의 장례식 취재를 의뢰받았던 테일러는 기사 내용에 3.1 운동을 추가하게 된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마침 아들 브루스가 태어난다. 메리는 출산 직후 세브란스 병원 창문을 통해서 고종의 장례 행렬을 보았다고 했다. 이때 병원에 왔던 테일러는 갓 태어난 아들 브루스의 침대 밑에 숨겨진 종이 뭉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기미독립선언문이었다. 이것을 동생 윌리엄의 구두 뒤축에 숨겨서 도쿄에 가서 타전했고 마침내 뉴욕타임스에 3.1 운동 기사가 실리게 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테일러에 의해서 제암리 학살사건을 비롯해서 3.1일 운동을 제압하기 위한 일제의 각종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금광사업과 특파원으로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 테일러 부부는 점차 조선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위기가 찾아왔고 테일러는 구금되고 메리도 가택연금 상태가 되어 결국은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이 땅을 떠나게 된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캘리포니아에 상륙한 테일러는 줄곧 한국행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 메리는 한국을 사랑한 남편의 뜻에 따라 테일러의 유해를 가지고 그해 한국을 찾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딜쿠샤에도 들렀다. 앨버트 테일러는 현재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아버지와 함께 잠들어 있다.
이토록 다사다난했던 역사 속의 사실을 이들이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을 사랑했고 위험 속에서도 한국을 위한 일을 서슴지 않았던 앨버트 테일러, 마지막 안식처로 한국에서 잠들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테일러와 메리 부부의 딜쿠샤가 잊혀 가던 중 아들 브루스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을 찾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소유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국가 소유가 되었지만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릴 만큼 방치되었던 집, 한국 전쟁 후 집 없는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딜쿠샤의 공간을 쪼개서 살았다고 한다. 2006년 66년 만에 딜쿠샤를 찾은 부르스는 이것을 보고 그동안 어려운 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어 감사해했다고 전한다.
이후 서울시는 딜쿠샤의 복원 및 재현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특히 메리는 다재다능해서 글과 그림이 뛰어나 남겨진 많은 그림과 기록이 전시되었고 그녀의 기록이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테일러 씨의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딜쿠샤 관련 자료 1026건을 기증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복원 작업 끝에 역사전시관으로 재탄생되어 2021 3월에 개관에 이르렀다. (2017년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
1층과 2층의 전시장은 그들이 살던 1920년대의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파티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던 1층은 거실 내부를 상세히 재현했다. 부부의 결혼과 입국, 한국생활을 보여준다. 메리의 그림이나 호박 목걸이 이야기도 전시되었다. 테일러가 메리에게 청혼할 때 준 호박 목걸이는 미국으로 추방되어 살면서 한국에서 살던 기억을 바탕으로 쓴 책의 제목이 '호박 목걸이'다. 그리고 금광 사진이나 금강산 여행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긴 것들, 벽난로…. 모두 그들의 숨결이 깃든 추억들이다.
2층에는 테일러 부부가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다. 영상으로 딜쿠샤의 복원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전시물 중에는 메리가 한국의 주변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가 인상적이었고 테일러의 언론활동 모습도 남겨져 있다. 한국의 병풍이나 고려청자, 램프나 테이블 등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집안이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수많은 시간들을 견뎌낸 널찍한 거실의 창문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온다. 당시에는 언덕 꼭대기 집이어서 멀리 지나가는 기차가 보이고 남산과 한강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는데 지금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가로막혀있다. 다만 옆의 창문을 통해서 은행나무의 풍경은 고스란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딜쿠샤는 종로구 사직터널 오른쪽 축댓길로 오르면 언덕 위의 2층 붉은 벽돌집이다. 이제는 복원되어 겉모습이 살짝 새것 느낌이 들긴 하지만 1923년부터 추방되던 1942년까지 테일러와 메리 부부 가족이 살던 100년 전의 테일러가(家)이다.
◇ 가는 길: 서울의 서대문역이나 독립문역에서 나와, 김구(金九) 선생의 사저였던 경교장(京橋莊)을 거쳐 돈의 박물관을 지나면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이 나타난다. 행촌 성곽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변을 오가는 이들의 여유로운 산책길이다. 월암근린공원에서 곧바로 나타나는 홍파동 언덕배기의 홍난파 가옥을 지나면 저 앞으로 400년이 넘는 수령의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은행나무에 마음을 빼앗겨 집터를 선택한 메리의 시선으로 나무를 바라보기도 하며 발걸음을 하다 보면 “DILKUSHA 1923” 명판이 새겨진 붉은 벽돌집 딜쿠샤가 맞아준다.
◇ 딜쿠샤 방문은 사전예약제로 진행한다.
- 예약 방법 :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검색 → 딜쿠샤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10226112026774583
- 문의 : 딜쿠샤 전시관(070-4126-8853)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다음달 2일부터 30일까지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에 따라 높아지고 있는 국민들의 여행 수요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여행가는 달 캠페인은 국내관광 시장의 빠른 회복을 위해 2014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2주 동안 운영했던 ‘여행주간’의 연장선이다. ‘2022 여행가는 달’은 국내 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여행으로 재생(再生)하기’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많은 기관들이 참여해 국민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혜택을 마련했다.
여행을 떠나는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관 기관과 민간여행업체들이 교통과 숙박, 관광지·시설 등 각 분야에서 특별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교통 부문에서는 고속철도(KTX)와 5개 관광열차 요금을 최대 50%까지 할인받아 이용할 수 있고, 렌터카와 항공, 도시관광(시티투어) 버스도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숙박 부문에서는 7만 원 초과 숙박상품 예약 시 사용할 수 있는 지역별 할인권을 발급한다. 오는 6일부터 9일까지는 행사 참여 8개 지자체(강원, 경기, 경북, 대구, 대전, 부산, 세종, 인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5만 원 특별할인권을 선착순으로 발급하고, 10일부터는 전 지역(서울 제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3만 원 숙박할인권을 발급한다. 국가에서 인증한 한국관광품질인증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국민에게는 50%(5만 원 한도)까지 할인을 제공한다. 강릉, 동해, 삼척, 영월, 울진 등 산불 피해 지역의 조기 회복을 돕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숙박할인권을 발행하는 특별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이 밖에 유원시설과 캠핑장 이용요금 할인, 여행업계와 여행가는 달 참여 기관의 자체 할인 행사 등 다양한 할인 혜택이 준비돼있다. 단, 모든 할인 혜택은 준비된 예산이 소진되면 종료될 예정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체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도 풍성하게 마련했다. 최근 여행 흐름을 반영해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마음 챙김’, 개개인의 여행 취향에 맞춘 ‘나만의 여행’, 지역의 특별한 친환경 관광자원을 활용한 ‘지역특화’ 등 3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여행 프로그램 36개를 운영한다.
참가 신청은 5월 24일부터 ‘여행가는 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받는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외에도 한국관광공사와 참여기관이 선정한 추천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여행가는 달과 연계한 다양한 행사도 이어진다.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2022 내 나라 여행박람회’가 ‘떠나라! 자유롭게! 내 나라로!’를 주제로 열린다. 올해는 여행 정보를 교류하는 것은 물론, 국내 관광업계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여행상품을 직접 사고파는 여행시장(Travel Market)도 함께 운영한다.
6월 16일부터 30일까지는 ‘싱크 어스&어스(Think Earth&Us) 캠페인’을 통해 여행객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친환경 행사와 여행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외 여행가는 달 기간 동안 서해안 걷기길을 연결하는 ‘서해랑길’도 개통할 계획이다. ‘부모님과 여.행.기’(여기서 행복한 기록 남기기) 등 온라인 행사도 개최한다. ‘여행가는 달’ 공식 누리집과 누리소통망 등에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준다.
‘여행가는 달’의 모든 할인 혜택은 사용조건과 판매, 사용기간이 다른 만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할인 혜택과 행사 일정, 참여 방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4일부터 ‘여행가는 달’ 공식 홈페이지와 소통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장호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국장은 “올해 ‘여행가는 달’은 국민들이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국내 여행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예년보다 많은 혜택을 준비했으니, 국민들이 이를 계기로 여행을 다시 일상화하길 기대한다”라며 “다만 아직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만큼 손 씻기와 실내 환기 등 개인별 기본 방역수칙을 준수해 안전하게 국내 여행을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은 5월 학교 전면등교 이후 야외활동과 방과 후 활동 등 밀집·밀접하는 단체 생활이 활발해짐에 따라 관련 감염병 발생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당부했다.
질병청은 코로나19 유행 동안 전 세계적으로 감소했던 홍역, 인플루엔자 등 호흡기감염병이 해외에서 전년 대비 증가하고 있음을 보고 받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의 경우 홍역은 2020년 3월 이후 환자가 없었고, 인플루엔자는 지난달 2021-2022절기 처음으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검출, 해외입국 사례임을 확인했다. 지난 4월 27일 세계보건기구(WHO) 및 유니세프(UNICEF)는 1~2월 홍역 환자 발생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9% 급증했으며 유행 발생 위험도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봄·가을철에 유행하던 수두, 유행성이하선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침방울(비말), 콧물 등 호흡기 분비물을 통해 단체 생활 중에 감염되기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 수두는 학기 중 (3~6월, 10~12월)에 환자 발생이 증가하고, 집단 발생 시 학교와 학원·모임 등을 통해 전파돼 유행 기간이 장기화되고 규모가 커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질병청에 따르면 수두 환자는 2016년 5만4060명에서 2018년 9만6467명으로 늘었다. 연령별로는 3살에서 6살 사이 유아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하지만, 20세 이상 성인 수두 환자가 2016년 2916명에서 2018년 4577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정은경 질병관리청 청장은 “실내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야외활동 후에 올바른 손씻기를 생활화하여 주실 것과, 학생들은 증상 발생시 등교·등원을 하지 않고 즉시 의료기관에 내원해 적절한 치료를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왕궁리 유적지로 들어가면서 ‘여유롭다’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유적지든 공원이든 시설물로 가득가득 채워지고 볼거리가 많음을 보여주려는 듯한 복잡한 풍경이 늘 아쉬웠던 터다. 널찍한 익산의 왕궁리 옛터엔 휑한 여백의 미가 팍팍, 신선한 바람 맞으며 헐렁한 여유감으로 벅차기까지 하다. 물씬한 황량함이 어쩐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그 넓은 터에 혼자 온 듯한 여행자 두 사람만이 각자 이쪽저쪽에서 뚝 떨어져 호젓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유난스러운 유적지의 시스템이 있을 법한데 여긴 그렇지도 않다. 딱히 꾸며진 모습 없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널널한 풍경이 된 역사 속을 걷는다. 관람 동선 안내문이 있지만 이 넓은 공간을 그냥 발걸음 닿는 대로 자유롭게 오가면 된다. 입구에서 호위하듯 고목이 숲을 이룬 길을 산책하듯 홀린 듯 걸으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맛,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멀리서도 홀로 오롯한 왕궁리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포토존 프레임 안으로 바라보는 석탑 또한 기품 있다. 오랜 세월 너른 터에 우뚝 서서 품격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왕궁터를 돌아보건대 세련되고 웅장했을 백제 옛터다. 끊임없는 보존 노력으로 이제는 풍경이 된 역사 속에 서본다.
주변으로 몇 개의 건물터, 금당터가 자리를 지키고, 왕궁 둘레를 감아 도는 길에 단을 높인 대형 배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왕이 휴식하던 후원과 공방, 화장실까지 옛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조성했다는 설명서를 읽으니 그 시절 장인들의 디테일한 기술이 놀랍다. 이런 길을 따라 궁궐과 정원의 멋을 누렸을 백제 시대의 영화를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고 상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주, 부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로 당당히 자리 잡은 후에도 여전히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년 넘는 역사 속의 백제 문화유산은 무궁무진할 터.
왕궁리 유적 옛터에 내리는 노을을 보러 저녁 시간에 다시 와볼 생각이었는데 딴전 피우다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일몰이든 일출이든 천년이 훨씬 넘는 왕궁터가 배경이 되어준다면 그 풍경은 더 말할 게 없을 듯하다. 푸른 하늘과 늦가을 왕궁리의 조화가 이렇게나 멋진데, 날씨 따라 변화하는 백제 옛터 왕궁리의 사계는 또 어떨까.
미륵사지 석탑이 품은 이야기
왕궁리 유적지에서 미륵사지 석탑까지는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정문에 들기 전에 ‘미륵사지 미디어아트 쇼’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게 뭐지’ 하면서 보고 있는데 이 지역 주민인 듯한 분이 지나다가 얼마 전에 진행된 행사라면서 참 볼 만한 쇼였다고 말해준다. 미륵사지 석탑 동·서쪽에 프로젝션 매핑 및 드론을 이용해서 다양한 빛과 형상을 표현하고 음악을 활용한 종합 미디어 쇼로 구현된 행사였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익산 지역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석탑의 가치 확산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 들면서부터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너른 대지에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미륵사지 석탑, 백제 시대 최대 사찰이던 미륵사지는 국보 제11호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절반 이상이 붕괴된 모습이다. 그동안 꾸준히 보강하고 섬세한 복원 작업을 해온 결과, 지금은 미완의 6층 석탑으로 우뚝 서 있다. 복원 작업 중 해체 수리하면서 내부에서 사리장엄구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현재 내부는 입장할 수 없다.
우리의 기술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옛 석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해 들어가 보았더니 시원하다. 그 서늘함이 그 옛날의 기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길 양옆의 연못이 차분하다. 연못 속으로 비치는 석탑의 반영이 오랜 세월 속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거길 지나 미륵사지 앞마당에는 동·서 방향으로 당간지주 두 기가 서 있다. 다가가 보니 생각보다 매우 크다.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당간은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놓는 돌기둥이다.
미륵사지 주변으로는 큼직한 돌이나 파편들이 몇 군데 자리 잡고 있는데 석탑의 노반 덮기 돌이라고 한다. 동원 금당터가 있고 몇 군데 터마다 목탑이나 석탑이 있었지만 화재로 사라지기도 하고 지금은 이렇게 기단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젊은 커플이 내 사진 속에 몇 번씩 담긴 걸 보았다. 널찍널찍한 터에 스며 있는 역사적 사실을 꼼꼼히 살피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참 예쁘구나 했다. 한적한 미륵사지 터를 돌며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그저 그림이다. 백제 유적지의 풍경 속에서 그들만의 하루는 참 멋진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일까.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가족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렇게 가족과 나들이하며 우리의 문화유산을 접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특히 백제 무왕의 흔적이 가득한 익산의 모습을 보려면 이곳 미륵사지를 빠뜨릴 수 없다.
한옥마을에서 호젓하게 하루
익산으로 떠나면서 그곳의 숙소를 검색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어찌된 게 이 시기에 빈방이 없다고 나오는 곳도 제법 있다. 시내를 벗어난 곳의 숙소를 클릭해보았더니 한옥 숙소가 있다. 이름도 낯선 ‘함라’라는 곳에 위치했다. 일단 통화를 해보았다.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익산시에서 20~30분 정도 달려 해질 무렵에 도착한 ‘함라마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조용하다. 체크인하고 밖으로 나와해 저무는마을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농촌 지형을 그대로 살린 울퉁불퉁 돌담길의 자연스러움, 토담에 매달린 주먹만 한 호박과 노란 호박꽃, 가을을 알리는 담쟁이들의 뒤엉킴…. 알고 보니 토석담이 주를 이루는 함라마을의 이런 토담, 돌담, 화초담 등의 전통 담장이 등록문화재 제263호라고 한다.
그리고 시·도문화재로 지정된 함라 삼부자집의 조해영 고가, 김안규 가옥, 이배원 가옥 사랑채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전통적 경관이 볼 만한 곳이다.
함라 삼부자가 베푼 인심은 호남을 대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노잣돈까지 얻어 갔다는데, 당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들이었다고 전한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아무도 없는 마당에 서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정원의 꽃들이 선명하다. 풀잎에 아침 이슬이 송송송… 잔디 마당을 걸으니 운동화가 촉촉해진다. 관리동 어르신이 지나가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며 이 먼 데까지 뭐하러왔냐신다.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이라니까, “조용하기로야 예가 절간이지 뭐” 하신다. 더러 시끄러울 수도 있을 테지만 하루 있는 동안 정말이지 한 점 소음이 없었다.
마을 바로 위쪽으로 함라향교가 마을을 품듯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조선 세종 19년에 세워진 함라향교는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느낌이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였지만 여전히 실용적인 향교로 건재한 채 지금껏 이어져오는 듯했다. 어르신도 말하신다. “이게 우리 아버지 때도 있었던 향교지요. 그때도 지내던 제를 지금까지 빠짐없이 이렇게 지냅니다.” 점잖고 선한 인상으로 꼭 존대어를 하신다.
한옥 숙소엔 도문대작이라는 식당이 있다. 허균(許筠)이 함열 유배 시절인 광해군 3년, 전국 팔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해 정리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저술했다고 한다. 함열관아 객사터 가까운 곳이 허균 선생의 유배 생활공간이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곳 함라 숙소의 식당 이름이 ‘도문대작’이다. 정이 넘치는 마을분들이 차려주신 수수한 한 상으로 흐믓했던 아침 시간이다.
그냥 시내의 흔한 숙소에서 묵었다면, 따끈한 온돌의 맛도 모르고 덜컹거리는이중 창호문여닫이도 못 해봤을 것이다. 아침 이슬 촉촉한 담장이 이어진 멋진 아침 산책도, 새벽 정원의 이슬도, 정다운 아침밥상도, 점잖으신 향교 어르신도 못 뵈었을 텐데. 교외로 조금 더 달려가서 묵은 조용한 한옥마을의 하루가 기억 속에 이렇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호젓해보기의 진수, 익산 여행은 확실한 힐링이었다.
지금은 방송 종료되었지만 '간이역'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자그마한 소도심을 지나는 기차역의 아련함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추억처럼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간이역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였다고 한다. 이제 간이역은 시간 속의 이야기가 켜켜이 스민 폐역이 되어 아날로그 감성을 소환한다. 오랜 시간 기차가 달리지 않아 녹슨 철길은 때론 사색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잔잔한 풍경 속에서 인생 샷을 담아내는 곳이 되었다.
남원의 구 서도역은 전라선 기차역이었다. 1934년에 역무원 배치를 시작해서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로 역사(驛舍)를 신축 이전했던 서도역이 차츰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폐역이 된 것은 10여 년 전 일이다. 그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자리에 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 그리고 겨울이 흐르고 있는 중이다.
193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구 서도역 목조건물의 간이역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근래 들어 영화 동주, 미스터 선샤인, 해어화 등의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뮤직비디오 촬영과 유명 모델들의 화보 촬영으로 부쩍 재조명받고 있는 곳이다. 사실 서도역은 그 이전에 최명희의 소설 '혼불'이 시작되는 장면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둔 채 그 자리를 지킨 덕에 문학적 공간이 되기도 하고 시대적 묘사에 무리 없이 잘 어울린다.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 서도역이라는 하트 표지판을 지나 역 내부로 들어가 본다. 역 대합실에는 그 시절 삶의 애환을 함께 했던 기차역의 이야기를 필름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 초이 복장과 촬영장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들여다보면서 드라마와 영화의 추억이 스멀스멀할 것이다. 대합실 밖으로 나가면 역시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고애신과 행랑아범, 함안댁이 걸어 나오고 철로 목조 위에 앉은 구동매가 아기씨와 나누던 대화, 이렇게 다시 뵙습니다. 아기씨. 이 새벽 기차역에서... 절에 다녀오는 길이네. 그들의 당당하거나 애잔했던 눈빛. 이곳이었구나... 드라마의 힘은 아주 세다.
그 옆 서도역 역사관의 옛 책을 한번 뒤적이고 풍금도 눌러보고 나오니 젊은 커플들의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방향을 돌렸다. 서도역이 소설 혼불의 첫 배경이다 보니 작품 속의 내용을 표현한 정크 아트 길이 이어져 있었다. 덕분에 잠깐 작품 속의 몇 줄씩을 읽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차가 다니지 않아서 마음 놓고 이리저리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오래전 기차가 멈춘 녹슨 기찻길은 직선과 곡선과 원형의 철길이 독특한 곳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등나무의 짧은 터널 옆에는 흰색으로 잘 단장된 역무원 관사가 있다. 그 옆의 역장 관사는 영화 동주의 하숙집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1930년대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살려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가옥으로 영화 촬영은 물론이고 체험학습도 하는 곳이다.
요즘 들어 옛 모습에 손을 대어 때 빼고 광낸 모습으로 변신시키는 생경함에 종종 놀랄 때가 있다. 적어도 구 서도역의 겉모습은 약 90년 전 모습을 살려둔 듯해서 정겹다. 서도역은 전라선이 신설되어 이전할 때 철거계획이었다고 한다. 이때 남원시에서 서도역을 매입하고 보수하여 지금의 고즈넉한 아날로그 감성의 문화공원이 된 것이다. 옛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철도 관련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몫 역시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기차역, 고요한 이른 아침 운해가 몽글몽글하면 간이역과 더 잘 어울린다. 철길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 많은 고목은 전라선 완공 당시 심었던 벚나무들이다. 눈부신 봄날의 서도역이 미리 그려진다. 바삐 걷다가 잠깐 다리를 쉬는 곳처럼 구 서도역은 남도 여행길에 빠뜨리면 서운할 그런 곳이다.
☞Info 구 서도역
♤주소: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길 32. 구 서도역영상촬영장.
♤문의처: ☎063-620-6165
♤교통: 남원역에서 523 버스가 하루 4회 운행. 대중교통 접근 불편. 택시나 자동차 이용이 편리하다.
♤휴무일 없이 연중무휴 방문 가능. 주변 1.4km 거리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최명희 작가의 숨결을 담다. 혼불 문학관
구 서도역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달리면 5분 거리에 혼불 문학관이 있다. '그다지 쾌청한 날은 아니었다'라고 시작되는 대하소설 ‘혼불’의 첫머리와는 달리 하늘은 푸르고 문학관은 평온하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1940년대 몰락해 가는 남원의 양반가 종부 3대(代)와 그들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최명희의 소설 '혼불'.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문학관이 자리했다.
돌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잔디마당이 방문객들에게 쉼을 안긴다. 문학관 내부에는 작가의 생전의 모습이 군데군데서 맞는다. 작가의 집필실로 재현된 방에는 유품으로 작품 일지와 만년필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펼쳐진 육필원고를 들여다보노라니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숙연해진다. 실내를 빙 돌다 보면 소설 속의 장면들을 디테일한 사진이나 모형으로 전시된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들여놓게 한다. 그리고 작가와 친분이 있는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도 어느덧 누렇게 색이 바래가는 채로 보여주고 있다.
방송작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작가의 면밀한 내면이 스친다.
"너는 노트북 컴퓨터를 배워 이제 글씨는 안 쓰겠는데...... 나는 경향신문에 만년필을 쓰는 기쁨, 이라는 글을 썼단다. 나는 참 더딘 사람이다. 지난번에 말한 책도 이제야 부치고 내 살아온 생에 대한 자각도 이제 생기니 장자의 말이 절감이 된다. 行年 五十而知 四十九非. 나이 오십에 이르러서야 마흔아홉 가지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혹은 안다, 는 이 한 절, 요즘은 이 말을 정말 깊이 생각해, 나의 非들. 얼음장처럼 가슴이 서늘해지지. 하지만 오십에 새 눈(芽)이 트이지 않았다면 어찌 四十九非를 말할 수 있으며 새 눈(眼)이 뜨이지 않았다면 제 그릇됨을 볼 수 있으랴... 그 芽와 眼이 새 희망을 준다."
약 6,000평의 문학관 건너편의 꽃심관이라는 한옥 쉼터에는 사랑실과 누마루가 있다. 건물 모퉁이의 정자에 올라 혼불문학관을 바라보며 소설 속 삶의 한 자락을 느껴볼 만하다. 살아생전 우리말을 사랑하던 작가 최명희 작가의 혼불. 작품의 어휘 하나하나 직접 취재하고 토속어를 찾아서 우리 문화의 정신을 문학 속에서 형상화했다고 한다. 혼불 속의 청호저수지 주변으로 울타리처럼 둘러있는 솟대들은 길게 목을 빼고 노봉마을을 건너다보는 듯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기억 속의 간이역을 찾아 사람들이 온다.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문학관에 들어 이 땅에 서린 삶의 한 자락을 가슴에 품는다. 전라도 남원고을에 가면 이렇게 쉬엄쉬엄 산책하듯 둘러볼 곳들이 기다리고 있다.
☞Info 혼불문학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안길 52.(입장료 무료)
♤문의처 :☎ 063-620-5744~46
♤운영시간 평일 : 09:00~18:00(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 휴관) 하절기(7월~8월) 09:00~18:00 동절기(11월 ~ 2월) 09:00~17:00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이고 캐롤 음악이 들려오더니 결국 성탄절이 돌아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떠들썩한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집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족들과 보내는 오붓한 성탄절도 충분히 따뜻하고 즐겁다. 이번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집콕’ 크리스마스를 풍성하게 채워줄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
크리스마스에 로맨스를 빼기는 아쉽다. 매해 크리스마스부터 연말연시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정통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통한다. 2003년 처음으로 개봉한 후 2013년과 2015년, 2017년, 2019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12월 23일에 재개봉했다. ‘러브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부부간의 사랑부터 남매간의 사랑, 영국수상과 직원의 사랑, 소설가와 가정부의 사랑,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등 저마다의 사랑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따뜻하게 그려낸다.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키이라 나이틀리 등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이 전하는 여덟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다양한 사연을 담은 만큼 모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꼽힌다.
영화에 삽입된 OST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Christmas is all around’를 시작으로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 노라 존스의 ‘Turn me on’,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1998년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 멜로영화 중 손꼽히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정원’은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여름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햇살처럼 불쑥 찾아온 그녀는 정원의 마지막 여름을 함께한다. 뜨거운 태양의 한여름에서부터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시한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를 제작한 허진호 감독이 가수 김광석의 활짝 웃고 있는 영정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허 감독은 “생활에서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더 빛나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영화가 그려내는 90년대의 아담하고 소박한 아날로그적인 배경은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빽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1985)
크리스마스에 로맨스 영화가 지겹다면, SF 장르의 ‘빽 투 더 퓨쳐’를 추천한다. 시간여행과 그에 따른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다. 1985년부터 1990년에 걸쳐 총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됐는데, 개봉 당시 전 세계 무려 9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흥행작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별 볼 일 없는 가족사를 가진 소년이 기상천외한 시간 여행을 하면서 개인의 역사를 바꾸고 뒤틀린 미래를 바로잡으려는 모험극으로, ‘시간 여행’이라는 모든 세대가 흥미로워 할 주제 안에 역사, 연애, 가족 등의 요소를 유려한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중장년층에게는 지금은 없어진 유년의 놀이동산에 지금의 자녀와 노니는 기분을 선사한다. 당시 상상하던 미래의 패션과 지금의 패션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
차 한잔 마실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뜻일까. 용암정 별서(別墅)엔 별반 있는 게 없다. 물가에 정자 하나 세우고 끝! 조선의 별서치고 이보다 가뿐한 구성이 다시없다. 별서란 요즘 말로 ‘세컨드 하우스’다. 상주하는 살림집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지은 별장으로, 사교와 공부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었다. 그래 일쑤 멋 부려 꾸몄다. 연못을 파거나 정원을 꾸리고, 객실을 보태기도 했다. 용암정은 다르다. 치레를 극구 삼갔다. 은자의 심중은 허허롭다. 차 몇 잔이면 하루가 가득 찬다. 그러니 정자 외에 무엇을 덧붙일 것인가.
용암정은 거창의 경승지인 위천(渭川) 중에서도 빼어나다는 요수천 계곡에 있다. 예로부터 신선이 살 만한 동천이라 이름난 골이다. 가을이 깊어 물가에 서린 고적한 정취가 짙다. 숲에선 단풍이 곱게 무르익다 못해 어느덧 잎잎이 지상으로 추락한다. 발길에 밟히는 마른 낙엽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짠해 정이 간다. 접때는 은성한 초록 잎이었던 게 순식간에 저물다니. 이게 잎사귀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나. 목숨 가진 것들 모두 머잖아 시들 수밖에 없다. 나날이 조락으로 가는 길이다. 가을은 이렇게 문득 삶의 순리를 바라보게 한다. 낭만과 여행을 즐기기에 제격인 계절이지만 그 뒷면엔 서러운 게 있다.
용암정으로도 낙엽이 분분히 흩날려 내린다. 고요한 눈길을 매달고 하늘하늘 내려오는 낙엽들. 스산하다기보다 애틋한 정경이라 가슴을 파고든다. 물가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늦가을의 정자 하나. 이는 어쩌면 내향적 풍경의 절정이다. 거기엔 뭔가 사람을 위무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그대여, 지친 마음을 여기에서 내려놓아라, 야윈 등을 기둥에 기대고 까짓것 세상 근심일랑 헹구어라. 정자가 그리 속삭이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정자란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한 전위적 시설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안는 시(詩)이자 추상화다. 하기야 정자를 폼 잡자고 지었으랴. 허영으로 지었으랴. 마른 멸치대가리처럼 누추한 게 삶일망정 마음을 돋워 생기를 얻을 방편으로 지은 공간일 것이다. 정자에 올라 자연으로 진입, 뿔과 발톱이 없어도 야성으로 생동하는 초목을 닮고자 지은 ‘정신의 집’일 테다.
용암정은 향촌의 선비 임석형(林碩馨, 1751~1816)이 지은 별서다. 그는 행실과 학문이 빼어나 당세는 물론 후세까지 추앙받았다더라. 그의 가문에는 벼슬길에 오르기보다 초야에 묻히기를 좋아하는 풍조가 대대로 이어졌다. 청빈을 삶의 꽃으로 삼았던가 보다. 임석형 역시 가풍의 영향을 받아 출세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백수로 살았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과 권세라면 껌뻑 넘어가는 게 사람이다. 임석형은 여기에서 예외였다. 취직을 한 바 없어 생계는 팍팍했겠지만 배포는 태산이었나? 그는 적게 먹고도 유유하게 노니는 재능을 발휘했다. 일러 안빈낙도다. 생의 절반쯤을 백수로 살며 찬연한 족적을 남긴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조선의 인걸들 중엔 궁색한 호구에도 아랑곳없는 뚝심으로 기차게 활갯짓한 아웃사이더가 많았다. 임석형이 바로 이 늠름한 계보에 속한다. 그는 숲을 소요하는 낙을 최상으로 쳤다. 용암정을 지어놓고 읊조린 노래가 이랬다. ‘이곳에 만약 학을 탄 나그네가 찾아온다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숲에서 늙으리라.’
숲 사이 계곡으로는 물이 흐른다. 덕유산과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합쳐진 물길로 수정처럼 맑다. 깊디깊은 산골짝 물도 아닌 것이 티 없이 순수하니 희한하다. 여름철엔 여기서 텀벙, 저기서 풍덩, 물놀이하는 이들이 숱하다. 늦가을의 물은 차가워 물빛조차 푸르다. 파란 유리를 얹어놓은 듯이. 물 위로는 당싯당싯 낙엽이 떠내려간다. 물 아래는 숫제 낙원이다. 크리스털로 세공한 양 투명한 물고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풍처럼 몰려다닌다. ‘초사’(楚辭)에서 어부가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는다.’ 청정한 물에서 담백한 처신의 방법을 읽은 셈이다. 임석형이 청명한 물을 그윽이 관조할 수 있는 냇가에 정자를 지은 이유가 또렷해진다.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 요란한 소동을 청류로 빗자루 삼아 쓸어냈을 테다. 그런 뒤에야 풍류도 옹골찬 법이다.
물만이 용암정의 뜻과 멋을 돋우는 건 아니다. 보라! 희디흰 기암괴석이 지천으로 널브러져 한바탕 경연을 벌이는 게 아닌가. 물에 발목을 담근 바위들. 바위의 무릎을 베고 누운 소(沼). 바위벼랑을 쏜살처럼 내닫는 물살의 아우성. 이를 일러 임석형은 ‘하늘의 작품’이라 했다. 이곳을 ‘별유천지’라 일컬었다. 물과 바위의 컬래버레이션은 늘 성황리에 펼쳐지게 마련이다. 옛 선비, 자그만 정자 하나 짓고 볼 것 다 봤다. 큰돈 안 들이고 놀 것 다 놀았다. 풍류란 돈으로 살 수 없다. 주저앉은 생각을 탓할망정 주머니 사정 핑계될 일이 아니다.
답사 Tip
위천변엔 호젓한 오솔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다시 경승을 만날 수 있다. 용암정 위쪽에는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와 강선정이, 아래쪽으로는 요수정과 수승대가 있다.
숲에 들면 차분해진다. 그리고 푸근하다. 나무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은혜롭다. 더 바랄 것 없이 관대해지기까지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밀린 숙제 하듯 허둥대며 떠밀려온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느긋하고 풍요해지는 마음이다. 걷기만 해도 지지고 볶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하다. 차분해지고 감사함이 생겨난다. 숲이 주는 고마움, 풍성하게 누린 날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리 온 것 같진 않았다. 고갯길을 넘고 간간히 조붓한 길을 주춤주춤 달리기도 했지만 자동차는 어느새 나남수목원 앞에 다달았다. 나남수목원은 한평생 책을 만들며 살아온 사람의 인생을 전해주는 숲이다. 경기도 포천의 산비탈에 '세상에서 가장 큰 책, 나남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숲에 들었다.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에 수목원의 검둥개가 꼬리를 흔들며 앞장선다. 느릿느릿 두리번거리면서 사진도 찍느라 늦장 부리면 가다가 뒤돌아서 한참씩 멈춰서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일루 와요, 나만 따라오면 된다니까' 하는 표정이다. '알았어,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수목원의 개와 노닐며 한적한 숲길을 걸었다.
책과 나무의 숲에 살다
‘나와 남이 어울려 사는 우리’라는 포부를 담고 시작한 나남출판사의 조상호 회장이 2008년부터 일군 나남 수목원. 포천의 왕방산 산자락에 20여만 평의 땅에 만들어낸 숲이다. 이런 숲을 개인이 가꾸다니... 언감생심 부러워할 수조차 없지만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이 생각만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짐작이 된다. 적어도 고된 노동과 긴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수목원의 아름다움은 역시 아침 무렵이다. 숲 사이로 유난히 도드라지는 빛이 눈부시다. 온누리에 아침빛을 받은 숲의 투명함 또한 참 이쁘다. 숲길에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자연스럽게 무더기를 이루어 피어났고 꽈리꽃의 붉은빛이 선명하다. 산책로 옆으로 5리쯤 된다는 실개천이 촉촉하게 흐른다. 숲길을 걸으면서 와, 좋구나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굽이진 산속이다 보니 여타 수목원처럼 주변과 입구에 음식점이나 카페도 없다. 내부에 놀이 공간이나 즐길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흔한 포토존이나 무슨 촬영지였다는 표지판도 없다. 인위적 기교 없이 수수한 숲은 마냥 자연스럽다. 온전히 숲을 받는 느낌이다. 그저 숲이기만 한 게 이렇게나 고맙구나 싶다.
책 박물관으로 이르는 길의 연못에 푸른 하늘이 풍덩 빠져 있다. 연못 앞에서 세찬 바람에 머리를 날리는 듯한 여자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짐바브웨이의 조각가 Witness Bonjisi의 A Windy Day라는 작품이라는데 그 풍경 속에서 잘 어울린다.
수목원 중턱쯤에 있는 책 박물관에 오르니 딱 그 자리가 제 자리인양 앉혀져 숲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이 편안하고 멋스럽다. 안이 훤히 보이는 3층 건물에 가을볕이 에워싸고 숲이 둘러있다. 숲지기인 조상호 회장이 나남출판사를 통해서 평생 만들어 낸 책이 담겨있는 곳이다. 그리고 책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책 박물관, 이 또한 책의 숲이다. 나남출판사에서 40년간 3500여 권의 책을 펴낸 숲지기 조상호 회장이 직접 심은 나무가 10만여 그루라 했다. 이젠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라 일컫는 나무를 키우는 일에 파묻혀 있으니 더 할 일이 있을지.
서가 벽면에는 몇 해 전 나남출판 40주년 기념으로 펴낸 조상호 회장의 '숲에 산다' 포스터가 멋지게 붙어 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책과 나무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나남에서 펴낸 책으로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책으로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등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이러한 것들을 들여다볼만한 공간이다. 특히 3층에는 책과 인연인 된 사람들이 모여 서가를 채워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숲과 책에 둘러싸인 날의 행복
북카페는 널찍하고 시원하게 트여서 그저 여유롭다. 한적한 실내엔 군데군데의 책장이 인테리어 몫을 다한다. 세미나룸인 듯한 아늑한 공간도 따로 있어서 의미 있는 모임을 계획할만하다. 북카페 안과 테라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데크에 앉아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1층 북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숲, 눈앞에 꽉 찬 짙푸른 숲이 압도한다. 숲이 주는 힐링, 세상 더 할 말을 잊는다. 숲을 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초록빛에 왜 그리 환호하지?" 그럴 리가, 생생한 자연의 색감만으로 눈앞에 있으니 감동이 아닐지. 가을 색으로 물들면 또 그것으로 미칠 듯 반할 것이다. 나남 수목원 저편의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의 풍경은 또 어떨지 상상해 보게 된다. 숲을 앞에 두고 보니 철마다 달라지는 나남 숲의 풍경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실이다.
북카페의 직원에게 조회장님에 관해 궁금해 했더니 지금 마침 숲에서 수목 전지작업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직접 나무를 가꾸고 관리하느라 늘 바쁘시다며 숲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 연락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벌써 산 능선을 훌쩍 넘어가서 너무 멀리 계시어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것이다. 괜찮다.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숲 속에서 나무를 가꾸는 숲지기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일, 전망 좋은 인수전과 자작나무 숲을 지나 언덕을 올라 산을 넘어가 더 많은 숲을 보는 일을 남겨두는 것, 어찌 한두 번으로 숲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길 다시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었다.
그냥 숲과 책에 둘러싸인 채, 서늘한 마젠타 빛으로 가득 채운 레몬 블루베리 에이드 한잔 앞에 놓고 나니 세상 더 바랄 게 없다. 감성도 깊어지는 시절이다. 이 계절에 이만한 여행 없다는 생각에 숲을 찾은 자신에게 뿌듯하다.
◎가볼 만 한 곳 1. 술이 익어가는 느린 마을, 산사원
포천에 가면 술 익는 마을 산사원을 빠뜨릴 수 없다. 이 계절의 따사로운 햇볕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두 팔 벌려 안아도 모자랄 커다란 술독 500여 개에 내려앉은 햇살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쏟아지는 볕을 받으며 술이 익어가는 포천 산사원의 세월랑에 들면 느긋하게 계절의 풍류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술독 사이를 걸으며 저만치 한시름 밀어내고 술 향기만으로도 취하고픈 시절이다.
포천의 느린 마을 양조장 배상면주가는 입구에 술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그곳을 지나 '느린 마을'이라는 문패가 높이 매달린 정원으로 먼저 마음이 간다. 약 4천 평 규모의 산사원에는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술항아리 행렬들이 맞아주고 있다. 전통주들의 숙성 공간 '세월랑'이다. 한 켠의 풀밭 근처 '줄행랑'에는 그 옛날 술이 만들어지던 모습과 술통을 매달고 배달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산사원 저편으로 펼쳐진 너른 정원에는 소쇄원의 광풍각을 본뜬 취선각이 마주 보인다. 건너편으로 2층 석조 누각이 멋스러운 우곡루, 바로 옆으로 경주 포석정과 같은 유상곡수가 있으나 코로나19가 방문자의 만고 시름 잊고 취해도 좋을 한나절 풍류를 온통 막아버린다. 그리고 전통술에 빠질 수 없는 부재료 누룩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부안당. 누룩의 미생물을 이용해서 술의 주원료 쌀과 곡류를 분해해서 알코올을 생성하는 과정. 한 줄기 빛으로 술의 향기와 맛을 내는 부안당의 누룩을 비춘다.
이제 그 과정들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술을 빚어낸 우곡 배상면 선생의 양조 철학을 살피고 우리 술의 역사를 풀어낸 박물관에서 술 문화의 면면을 살피는 시간이다. 전통주의 규제가 심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고유의 술을 살리기 위한 그 분만의 노력을 본다. '백번을 시도하고 천 번을 고쳐라' 누룩 왕으로 불리던 배상면 선생의 기록실에서 술을 향한 일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볼 만 한 곳 2. 허브 마을에서 만난 산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허브아일랜드 위로 푸른 하늘이 빼꼼하다. 지중해식 건축이 얼핏 이국적이다. 허브 정원, 허브 식물박물관, 허브힐링센터... 무수한 허브 이야기로 가득한 '어쨌든 완전히 허브나라에 들어왔습니다'... 하는 듯하다.
언덕 위 스카이 허브팜에 오르면 핑크 뮬리로 핑크 핑크 하다. 잔털처럼 피어나 너른 산 아래 밭에 함께 모여 뭉쳐있는 핑크빛 물결의 군락들, 핑크 뮬리는 개화기간이 길다. 아직도 산속에 갇힌 듯 조용히 피어나 환하다. 숨차게 올라 땀 식히며 핑크 뮬리에 담뿍 빠져볼 수 있다.
이곳은 허브관광농장으로써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것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볼거리는 물론이고 갖가지 체험과 먹고 자고 사색하고 힐링하는 것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서울을 떠나 멀리 산속으로 들어오니 강원도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곳은 경기도 포천이다. 허브 숲에 드니 심리적으로 온몸이 이완되는 듯한 느낌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곳이다. 쭉 돌아보고 나오기 전에 허브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면 숨겨진 듯 나타나는 곳, 거기 산타마을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