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나는 섬 여행이다. 여름 무렵 사람이 몰려드는 섬과 달리 겨울 섬에서는 세상의 소음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시야를 얻는다. 신안은 섬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무수한 섬과 바다로 둘러싸였다. 도심에서 뚝 떨어진 신안 섬마을은 고즈넉하다. 시간이 정지된 듯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자연과 함께 잘 가꾸어진 섬의 다채로운 색채가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무려 1004개의 섬이 존재하는 신안이다. 밀물과 썰물과는 상관없이 흙과 식물이 물 위로 존재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데, 신안군은 1004라는 이름으로 섬을 알렸다. 실제로는 72개의 유인도와 953개의 무인도가 있다고 전한다. 신안섬 가는 길은 늘씬하게 긴 천사(1004)대교가 아득할 뻔한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미 도시화된 큰 섬과 달리 넓지 않은 각각의 작은 섬이 가까이 연결되어 있어 유연하게 코스를 이어갈 수 있는 자유로움 또한 좋다.
목포에서 신안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를 건너면 신안갯벌 세계유산 등재라는 묵직한 석재 안내판이 맞아준다. 길 양옆의 바다는 드넓은 갯벌을 이룬다. 습지보호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는,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내려다보는 겨울 하늘이 푸르다.
압해읍의 노을해변 쪽으로 가다 보면 애기동백으로 뒤덮인 1004섬 분재정원과 저녁노을미술관이 나타난다. 이곳을 둘러보고 해변으로 잠깐 내려가 보자. 신안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서 신안의 해상 영웅 수달장군상 저편으로 펼쳐진 드넓은 갯벌을 볼 수 있다. 이곳은 갯벌낙지 맨손어업 전통 기술과 문화 계승을 위한 국가 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압해도에서 천사대교가 연결해준 섬은 암태도와 팔금도, 안좌도와 자은도, 그리고 수많은 섬이 바다 위로 봉긋봉긋 평화롭게 떠 있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암태도가 나타난다. 곧바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있으니 잠깐 들러보자.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비호를 받던 땅 주인들에게 소작인들이 맞서 승리한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무엇보다 기동삼거리 동백꽃 파마의 노부부 벽화는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얼핏 볼 때는 파마머리를 한 노부부인데, 다가가 보면 담벼락 안에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절묘하게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고 정겨운 벽화 덕에 천사대교 개통과 함께 암태도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평생을 사이좋게 잘 살아온 노부부의 얼굴이다. 인자하고 편안한 모습이 서로 닮아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끌었을 것 같다.
자은도, 무한의 다리와 1004뮤지엄파크의 해변
암태도에서 은암대교를 거치면 자은도다. 해수욕장이 많은 자은도에는 백길해변과 분계해변의 노송 군락과 백사장이 눈부시고, 일몰로 이름난 둔장해변도 있다. 섬 북쪽에 위치한 둔장해변의 볼거리는 목교인 ‘무한의 다리’다. 신안섬을 상징하는 의미로 다리 길이도 1004m다. 다리 입구 안내석에 ‘Ponte dell Infinito’라 새겨져 있듯이 섬의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이름이다.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박은선 작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다리 위를 걷는 이를 양옆에서 둥글게 감싸주는 듯한 곡선의 난간이 독특하다. 구리도와 할미도까지 천천히 걸어도 20분 남짓이어서 바다 위를 걷는 산책 코스로 적당하다.
물이 제법 빠져나간 다리를 걸으면 암석으로 이루어진 구리도가 눈앞에 있고, 금실 좋은 노부부의 전설이 담긴 할미도로 이어진다.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섬에 나가 애타게 기다리던 할머니의 그리움은 돌로 변했다는,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이야기처럼 바다를 향한 할미바위의 뒷모습이 아릿하다.
이번엔 자은도 서쪽 해변에 볼거리 푸짐한 ‘1004뮤지엄파크’가 기다린다. 천사대교에서 시작한다면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다. 하나의 섬에 하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립하는 ‘1도(島) 1뮤지엄’이라는 신안군의 야심 찬 프로젝트를 여기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청정 자연인 이곳에 7000여 점의 조개껍데기와 표본을 전시한 세계조개박물관, 신비롭고 아기자기한 수석미술관과 수석정원, 사계절 각기 다른 꽃을 피우는 새우란전시관, 연구센터 등이 어우러져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바다를 앞에 둔 거대한 신안섬의 예술과 자연을 한 군데서 여유롭게 즐겨볼 만하다.
섬을 느끼고 섬의 질감을 누리는 일은 역시 바다가 아닌가. 해변으로 나가는 길에 높은 모래 언덕이 눈앞을 막는다. 고운 모래에 밀리며 느려지는 발걸음이 오히려 마음을 느긋하게 해준다. 모래섬 언덕 위에 얹은 피아노가 푸른 바다의 파도와 하늘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낮은 무음과도 같은 바람과 섬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헝클어진 머릿속을 헹궈내는 일, 해변의 고둥 조형물이 자연스러운 여기가 최적이다.
푸른 바다를 보며 꿈꾼 화가 김환기 고택
암태도에서 팔금도를 지나 안좌도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길목의 보라색 다리가 퍼플섬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그전에 시원한 푸른색 지붕이 마을 가득하다. 푸른빛의 화가 김환기의 읍동마을 옛집이 이렇게 맞아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화가다. 안좌면 마을 안쪽에 위치한 옛집의 안채와 화실을 돌아보면서 방학이면 내려와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의 옛 모습을 떠올려본다. 화면 가득 푸른빛으로 채운 작가의 감수성은 고향의 푸른 바다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예술가의 정갈한 목조 기와집이 조용히 자리한 작은 섬. 김환기 화백의 옛 시절과 그림을 향한 열정을 인문학적으로 느껴볼 기회다. 화가의 작품 세계와 그의 곁을 지켰던 김향안 여사와의 사랑과 예술혼의 바탕이 여기에 있었다. 현재 김환기 고택은 해체 보수공사 중으로, 1월 중순 마무리 예정이라는 공사 안내가 있었다.
보랏빛 세상, 퍼플섬
안좌도를 가장 핫한 섬으로 이끈 것은 ‘퍼플’이다. 안좌면의 작은 섬 박지도에 도착하니 눈앞이 온통 보랏빛이다. 할머니들이 쉬고 있는 정자의 지붕도, 표지판이나 안내 광고판도, 공중전화 부스도, 동네 길의 바닥도,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섬 쓰레기를 버리는 차량까지 모두 보라색이다. 정말 동화 속 같은 퍼플섬이다.
일단 길게 이어지는 목교인 퍼플교를 건너봐야 한다. 안좌도 두리마을에서 박지도까지, 그리고 반월도까지 총 1460m로 이어진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바가지를 닮았다는 섬 박지도가 있다. 해안 산책로와 퍼플 숲길을 따라 봄과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 정원이 눈부시고, 가을과 겨울 초반에는 키 작은 아스타꽃이 여행자들을 사로잡는다. 퍼플교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바람의 언덕과 다시 이어지는 반월도까지 한 바퀴 빙 돌다 보면 그저 보랏빛 세상이다. 퍼플섬 입장료는 5000원이며, 보라색 옷을 착용했다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요트 이야기, 숙소와 맛집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1004섬 세일링 요트 투어가 있으니 이용해볼 만하다. 요트 투어는 오도항을 출발해 천사대교를 지나는 1시간 정도의 코스로, 하얀 요트와 푸른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가 멋지다. 기본 투어, 낙조 투어, 야경 투어 중에 선택하면 된다. 살다가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자신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안 맛집은 각 섬마을마다 수산물 메뉴가 지천이다. 신안섬을 달리다 암태도 도로변에서 만난 ‘신안맛집’은 가성비 좋은 회덮밥이 푸짐하다. 목포 하당로의 ‘어문당’은 큼직한 화덕에서 구워내는 신선한 생선구이가 일품이며 호불호가 없는 식당이다. 숙소는 섬에서 묵어도 좋고, 목포에 숙소를 두고 목포 도심과 신안섬 여행을 병행해도 좋다. 목포의 ‘누스테이 목포’는 집이나 회사가 아닌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형태의 워케이션이 가능한 숙소다. 평소의 일상을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잘 갖추어진 단독 2층의 감성 숙소로, 목포항과 유달산, 목포 도심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보리마당로에 위치한다.
오롯한 섬이었다. 세상의 변화로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뭍이 되어 자동차로 이어진다. 전북 부안의 계화도를 향해 달리는 새벽길에 정적만 가득하다. 도로 양옆의 들판은 어둠 속에서 박하 향기보다 짙은 기운을 뿜어내고, 새해의 쨍한 새벽 공기는 차창에 서릿발을 만들어낸다. 어스레한 불빛 저편으로 광활한 농경지와 갈대숲이 함께하고 물 빠진 갯벌도 드러난다.
광복 이후 최대의 간척 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는 계화도(界火島). 한때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식량 자급을 위한 1호 간척공사로 인접한 부안군 동진면과 방조제로 연결되었다. 바닷가에 둑을 쌓고 고인 물을 빼내니 섬은 곡창지대로 변했다. 농경지 조성이 활기를 띠고 쌀이 생산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의 계화미(米)를 브랜드화하기도 했다. 계화마을은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각종 조류가 서식하고, 겨울철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지내기도 한다. 여전히 계화도라 불리는 섬마을에서 이제는 빼어난 운치의 새해 해맞이를 한다.
계화마을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소박하다. 들어서자마자 바다를 막은 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소나무 행렬이 잔잔한 반영을 이루며 맞는다. 간척지와 마을 사이의 좁고 긴 물길의 계화조류지는 1km에 이르는 방풍림 소나무를 품었다. 언제나 온갖 철새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검푸른 새벽하늘의 구름과 수면 위로는 물결의 잔상이 신비롭다. 마을을 마주 보는 방죽의 고요함으로 차분해진다.
차츰 주변의 어둠이 옅어지고 이윽고 하늘 저편으로 불그스레한 기운이 번진다. 해 뜨기 직전의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살짝 바람이 불면서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숨죽이며 정지된 시선은 생동감 있는 자연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짧은 순간 고요한 세상을 뒤덮은 매직이다. 단조로운 듯 반듯한 제방 위 소나무 사이를 헤치고 세상을 일깨우는 아침 해의 운치는 계화리 작은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바다 수평선 위에서 솟아오르는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렇게 장엄한 해맞이를 하고 새로운 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왔다.
눈부신 겨울 서정, 변산해수욕장
해돋이의 위엄으로 얻은 에너지를 장착하고 아침 햇살 반짝이는 해안길을 달린다. 조금 전 일출의 여운을 지닌 채 만난 변산해수욕장은 온 누리가 환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서는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은 노을밖에 없네’라고 했건만, 하루를 시작하면서부터 일출의 장엄함을 이미 보여주었고, 밀물과 썰물의 변산해수욕장 앞에선 희고 고운 모래가 눈앞에 펼쳐진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하늘을 실컷 볼 수 있는 철 지난 바닷가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두 눈에 꾹꾹 담는다. 송림으로 둘러싸인 백사장과 조화를 이루며 평온하게 휴식의 시간을 안겨주는 여름과는 다른 매력을 풍기는 겨울 바다다.
아득한 전설 속으로, 채석강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물속에 잠겨서 지금에 이르렀다. 파도에 씻기고 기온과 압력의 변화에 따라 형성된 비경을 변산 격포리에 가면 마주 보게 된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채석강’이다.
자연이 만들어온 억겁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흔히 공룡을 떠올린다. 지질학적으로 공룡 시대보다는 비교적 짧은 약 7000만 년 전부터 형성되어온 채석강의 퇴적암이다. 지금도 암석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자연 속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켜켜이 쌓이고 겹겹이 맞물린 퇴적암 앞에 서면 그동안 자연이 이끌어온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변화무쌍한 파도의 침식을 받으며 쌓아 올린 퇴적암층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문득 아득한 전설 속의 인물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물이 가득 차오른 채석강은 층층의 아찔한 해안 절벽과 먼 바다의 풍경으로 아련하다. 이윽고 물이 빠져나가고 드러난 바닥의 넓은 암반 위로 간간이 파도가 훑다 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 위로 온전히 드러낸 채석강의 비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들과 분주히 해식동굴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오간다. 외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참고로 격포항 물때를 확인하고 간조 시간 1~2시간 전후로 방문하는 게 좋다.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절집, 내소사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 현판의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약 600m에 이르는 사철 푸른 전나무 숲길이 사랑받는 내소사. 마치 절 마당에 닿을 때까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마련된 듯한 전나무 숲길이다. 명품 치유의 숲길로도 알려져 있다. 침엽수 특유의 맑고 그윽한 향이 경건함과 마음의 안정을 주는 통과의례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소사는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기세 좋게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과, 일주문 앞과 천왕문 뒤의 당산나무인 천년의 느티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목적이 되기도 한다. 전나무 숲이 끝나면 벚나무길과 요사채 옆의 보리수와 산수유, 그리고 피안교부터 천왕문 가는 길의 단풍터널이 또한 그렇다. 계절마다 은은하게 자연 속에 푹 잠긴 내소사는 특히 눈 내린 설경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으뜸이다.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우리가 보아야 할 곳 중에 내소사를 꼽았다. 자연을 닮은 모습이 조화를 잘 이룬 사찰이라고 했다. 특히 대웅보전의 솟을연꽃살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수백 년을 견뎌낸 나뭇결이 자연 그대로의 색감을 보여주어 눈여겨볼 만하다.
내소사 안에서는 무엇이든 자연스럽다. 절 마당에서 둘러보는 능가산의 산세가 낯선 느낌 없이 편안하다. 무채색의 사찰 색감이 고고하고 정갈하다. 도회인들에게 주는 한적함으로 유달리 힐링을 얻는다. 복잡한 세상에서 수습되지 못한 마음이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이곳에 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절 이름(來蘇) 때문인지 새해 들어 찾아가 보기에 걸맞은 절집이다.
곰소염전의 겨울
염전의 소금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봄부터 가을까지다. 변산반도를 돌아보면서 철이 지났다고 곰소염전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요즘 후쿠시마 원전 방류 문제로 소금 이야기가 분분한데, 천혜의 땅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곰소염전은 겨울이 되어 쉬는 중이다. 한때 전통 소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궁(宮)에 진상까지 했다는 곰소염전이다. 지금은 퇴락하여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품질은 최상으로 평가받는다. 군데군데 염부들이 염전을 손질하고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고, 건너편 산이 염전 속으로 들어와 반영을 이룬다. 부근의 곰소항으로 가면 곰소젓갈단지에서 질 좋은 젓갈을 구입하고, 감칠맛 나는 젓갈정식을 맛볼 수 있다.
자연의 집,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에서 머물다
채석강에서 자동차로 5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은 국립공원공단의 체류형 생태관광 시설이다. 숙소 창밖으로 서해의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호젓한 자연 속 숙소에서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고, 노을이나 별을 볼 수도 있다. 2023년 7월에 개원해서 내부 시설이나 집기 등이 깔끔하고, 저렴한 이용료까지 금상첨화다. 숙소를 보유한 본관 건물과 언덕 위 자연의 집이라는 독채 객실의 풍광이나 환경 또한 수준급이다. ‘숲나들e’에서 예약하는 전국 자연휴양림과는 달리 이곳은 국립공원 생태탐방원 홈페이지에서 매월 1일 예약이 시작된다. 생태 프로그램을 필수로 예약해야만 객실 예약이 가능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보기 좋다. 비경이 펼쳐져서가 아니다. 새파란 하늘과 금빛으로 일렁거리는 가을 논,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초록 산….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이지만 안락감을 불러일으키며 눈에 살갑게 다가온다. 여긴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다. 오가는 이도, 차량도 드물어 종일 고즈넉한 시골에, 조막만 한 동네에 모던한 카페라니. 대체 무슨 묘한 역발상에 이끌려 차린 찻집일까? 다들 눈을 끔벅거리며 의아해하기 십상이다. 카페 주인은 2020년에 이 지역으로 귀촌한 이지영(66, ‘카페 산이다’ 대표)이다. 지난 5월 개업했다. 그러니까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장사는 잘되나? 잘된다. 이지영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호조다.
이지영에게 시골은 낯설지 않다. 그는 서울에서 주로 살았지만 한때 남편과 함께 전북 무주군으로 내려가 시골살이를 했다. 부부가 합심해 산골에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서였다. 남편 김경남 목사는 교장직을 맡았고, 이지영은 조역처럼 뒤에서 거들었으며 때로는 농부처럼 논밭에서 일했다. 그러다 불운이 닥쳤다. 2019년 김경남 목사가 심혈관 질환으로 타계한 것. 이지영의 고통이 자심해 더 이상 무주에 머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에 사는 자식들은 어머니를 불러들여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지영은 오랫동안 해온 일을 지속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본을 드나드는 걸로 전환점을 삼았다. 일본은 그에게 익숙한 나라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란 사회운동이다. 그는 일찍이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섰던 김경남 목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노동, 인권, 복지 분야 활동가로 활약했다. 일본 여성 활동가들과 연대해 위안부 문제나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일본을 빈번히 드나들었던 거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가로막혀 일본행이 어려워졌고, 그는 숙고 끝에 이곳 괴산 땅을 정처로 삼아 무주에 이은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숱하게 생긴 좋은 인연들
“괴산 소수면엔 귀촌을 원하는 지인들의 공동체 단지가 이미 마련돼 있어 이주가 쉬웠다. 집터에다 집을 짓기만 하면 됐으니까.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김경남 목사가 만든 ‘들꽃마을 협동조합’ 멤버들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로, 귀촌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둘 이곳에 내려왔다. 현재 11가구가 거주한다. 앞으로 더 늘어나 30가구가 모여 살게 될 것이다. 난 3번 타자로 입주했다.”
공동체라면 입주자마다 지켜야 할 기본 룰이 있겠지?
“하나가 있다. 집에 대문과 담장을 설치하지 말자는 거. 나머지는 다 자유롭다.”
귀촌 직후엔 어떤 일을 했나? 살아온 이력으로 보면 산골에 홀로 산다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낼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바쁘게 살았다. 그게 성향에 맞는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공동체에 먼저 들어온 아낙들이 있어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더라.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넌 이제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웃음) 그들과 함께 텃밭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는 했다.”
사별의 아픔은 깊은 곳에 새겨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짝을 잃은 상심은 대부분 오래간다.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고, 원망도 생기고, 심란한 게 있긴 했다. 반면 뭔가 새로운 기분에 들썩이기도 했다. 왜 사람에게는 이런 거 있지 않나? 혼자 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여행가방 하나 들고 떠돌이처럼 살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떠돌이 대신 텃밭을 택했다? 처음엔 텃밭 농사를 즐길 만하지만 시간이 가면 귀찮아질 수 있다. 늘 풀을 뽑아야 하니까.(웃음)
“내겐 여전히 즐겁다.(웃음) 지난봄엔 강낭콩 씨앗 3000원어치를 사다 심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수확이 나와 놀랐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도 남더라. 야, 이거야말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구나! 속으로 찬탄했다. 그런데 텃밭 농사는 일상의 일부일 뿐 내겐 더 분주한 스케줄이 있었다
어떤 일을 했기에?
“평생학습매니저 자격증을 딴 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학습과 상담 활동을 했다.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를 통한 공부 역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노인대학 어르신들까지, 2년여 동안 참 많은 이들에게 강의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괴산 전역을 샅샅이 알게 되었고. 더 즐거웠던 건 좋은 인연이 숱하게 생겼다는 데 있다.”
노력으로도 쉬 얻을 수 없는 게 좋은 인연이다. 그러나 이지영에겐 인연이 자주 맺어진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후원을 받은 덕분일까? 아니면 타고난 사교성으로 상대를 일거에 무장 해제시키나? 그의 얘긴 이렇다. “내겐 왠지 사람이 잘 꼬인다.” 괴산뿐만이 아니라 좋은 지인들이 멀고 가까운 곳에 원래 많단다. 그는 24평짜리 집에 산다. 집 앞으로 냇물이 흘러 졸졸졸 명랑하게 노래한다. 기분이 밝아지는 집이다. 하지만 그는 좀 후회스럽다. 왜 더 작은 집을 짓지 않았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급적 단순하게, 가급적 소박하게, 가급적 실용적으로 살자 했건만 다소 오버해서 집을 지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집엔 작은 방이 여럿이다. 화장실도 두 개다. 이건 지인들의 방문을 고려한 구성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좋은 배려가 좋은 삶의 비결이라고 여기는 이지영의 신념이 반영된 집인 셈이다.
그는 귀촌의 날들을 웃음과 함께 느긋하게 누리고 있다. 이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타자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선의로 자연스럽게 거둔 결실일지도 모른다. 그가 카페를 차려 단기간에 일군 안정적인 상황도 평소의 좋은 인간관계가 데리고 온 행운의 산물일 테다. 지인이 측근이 되고, 조력자가 되는 법이며, 그들은 어떤 일에든 관심과 지지를 보내 힘을 실어주지 않던가. 그런데 카페를 차린 연유가 궁금하다.
“이곳 소수면 소재지엔 지난날 다방이 네댓 개나 있었다지만 주민 수가 급감하면서 다 사라졌다. 그렇다면 뭔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만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카페 운영을 구상했다. 나에게도 좋고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마침 한 식품회사 건물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오래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중심에 둔 건 아니었나?
“수입원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장사가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기대를 걸진 않았다. 뭐든 머리 싸매고 궁리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모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잘 돌아가지 않더라.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처음 두어 달에 그친 부진이었을 뿐이다. 뜻밖에도 손님이 늘면서 석 달째부터 수익이 늘기 시작했다. 빠르게 자리 잡은 셈이다.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난 현재는 직원 두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소수면 인구는 겨우 2000여 명에 불과하다. 괴산군청 소재지는 멀리 있고, 인근에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어떤 이들이 카페에 오나?
“대부분 면내 주민들이다. 동네 중년과 노년들이 찾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다. 요즘은 읍내나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입소문이 나는 것 같다. 얼마 전엔 시골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한 청년이 혼자 들어와 노트북을 펼치고 커피를 마시더라. 그건 내게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웃음) 머잖아 청년들을 자주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도 들었다.”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여
이지영은 카페의 매력과 개성을 돋워 문화공간으로 가꿔나갈 참이다. 시골 사람들도 문화 향유 욕구가 강하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이미 두 차례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영화 상영을 위한 스크린도 설치했다. 미술 전시회나 북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지역민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공예품 등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채널로 카페를 개방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판이 커질 조짐이 완연하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이루고 함께 걸어가는 일의 기쁨을 추구하는 이지영은 카페의 활력에 힘입어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귀촌 생활에 만족을 느낀다. 만족은커녕 귀촌을 통해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까지 있지만 그는 차원이 다르다.
시골에 적응하지 못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귀촌인들도 있다. 원주민과 불화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아 고통을 겪기도 한다.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자세를 좀 낮추면 된다. 내가 먼저 낮추면 상대방도 낮추게 마련이다. 이건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던가? 내 경험으로 보면 시골의 인심엔 여전히 순박성이 깔려 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 단순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게 시골이다.”
독신 여성의 귀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위험요소가 적지 않은데.
“상황을 헤쳐나갈 강한 의지가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러나 심사숙고하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지인이 있는 곳으로, 또는 친구나 선후배와 동반 귀촌을 하는 게 한결 안전하다.”
물신을 주님으로 섬기는 세상이다. 이건 시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흔히 소박한 시골살이를 권장하지만, 믿을 만한 자금력이 없을 경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적은 소유로도 좋은 시골 생활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뭘까.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라든가,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서적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난 물질이든 욕망이든 덜 가지고자 했다. 그게 정직하게 사는 방법이라 믿는다. 내겐 오랫동안 통장과 휴대폰이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아이들은 ‘대책 없이 사는 엄마’라며 걱정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아하, 내가 너무 허당으로 살았나? 이건 좀 그렇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웃음) 하지만 이미 몸에 붙은 생활방식이다. 적게 가진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능력도 생긴 것 같고.”
이미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기 위해 진땀 빼다가 무너지는 게 인생이다. ‘모름지기 소박한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는 게 어떤가?’ 이지영의 얘기를 난 그런 제안으로 들었다.
이지영이 주는 귀농•귀촌 Tip
•낭만적인 전원생활에 관한 동경은 버려라. 시골 역시 냉정한 삶의 현장이다.
•귀농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풍부한 자금력과 강인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귀농보다 귀촌을 하는 게 현명하다.
•귀농•귀촌지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후보지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해야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한 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시골살이의 물정부터 익히는 게 필요하다.
•귀농•귀촌에 따른 사전준비는 철저할수록 정착이 쉬워진다. 특히 귀농의 경우엔 농산물 유통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게 중요하다.
•시골 생활은 당당한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철원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멀지도 않다. 알고 보면 생각난 김에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DMZ가 인접해 있고, 겸재 정선의 화폭에 담긴 폭포가 지금도 쏟아져 내린다. 아득한 옛날 후고구려의 궁예 이야기와 임꺽정의 무대였던 지역임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먼 곳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거리다. 다가갈수록 북녘을 눈앞에 둔 철원평야는 황금 들녘이다. 절벽에 매달린 한탄강 협곡의 주상절리길은 스릴 넘치게 아찔하다. 전쟁을 대비하고 군부대 포사격 훈련장이었던 땅엔 백만 송이가 넘는 평화의 꽃을 피워 올렸다. 이 땅의 최북단 철원의 풍성한 가을이 마냥 아름답다.
마음을 두드리는 평원의 가을가을을 마음에 담기에 이 땅의 드넓은 평야만 한 곳이 있을까. 누렇게 물든 대자연과 넓은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철원 소이산은 다른 지역보다 가을이 먼저 시작된다. 새벽부터 분주히 달려서 도착한 소이산 주변으로 운무가 가득하다.
소이산은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금방 오를 것 같은 높이지만 제법 가파르다. 20여 분 숨차게 오른 소이산 전망대는 본래 군부대 주둔지였던 곳이다. 지금은 오르막 길목의 평화마루공원에서 공원과 지질 명소를 안내한다. 오래전의 미군 막사와 초소는 녹슨 채 허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근처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인 봉수대오름길로 이어지는 코스도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자마자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에 비로소 가을을 흠뻑 맞는다. 황금빛 너른 들녘의 놀라운 풍광이 전망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산야는 거대하다. 무한한 대지와 하늘, 철원 북쪽의 평강고원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다.
철원평야에 오름처럼 우뚝 솟은 소이산은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는 봉수대가 위치했던 곳이다. 철원의 역사와 함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 너머엔 비무장지대가 있다. 맑은 날에는 북한 주민들의 움직임도 보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DMZ 건너편 철의 삼각지대를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분단이란 현실이 만들어낸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최북단 철원은 가을이 일찍 찾아와 추수도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 9월 초부터 시작해 10월이 되면 조생종 벼들은 일찌감치 수확을 끝낸다. 이미 추수를 한 논과 벼가 익은 상태에 따라 논마다 채도 대비가 다양하다. 끝없이 넓은 패턴의 선과 면의 들판은 한 편의 작품 같다.
철원평야에서 생산되는 오대쌀은 우리에게 유명하다. 무엇보다 용암 대지와 현무암의 풍화로 비옥한 토양을 자랑한다. 청정환경에서 생산되는 쌀의 질과 밥맛을 결정하는 천혜의 기후 조건 또한 으뜸이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패하고 철원평야를 빼앗겨 김일성이 슬퍼했다는 게 괜한 얘기가 아닌 듯하다. 철원오대쌀은 지역 특산물로 국내 최초로 브랜드화한 이름이다.
소이산을 내려오는 길 양쪽으로 아침 이슬을 매달고 있는 가을 들꽃들이 예쁘다. 깊은 산속에서 피어나 유난히 색감이 선명하고 맑다. 쾌청한 숲길에서 절로 힐링된다. 소이산을 내려오니 막 운행이 시작된 모노레일이 지나가고 있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편치 않은 교통 약자라면 소이산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된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왕복 1.8km 거리다.
주변에 노동당사가 있어 가볼 만하다.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였으나 이후 전쟁의 크나큰 상흔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다.
평화의 꽃을 피워 올리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이 이슬뿐일까. 소이산 전망대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철원 고석정 꽃밭에선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강원도 북단에 이토록 넓은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니, 꽃 따라 봄가을로 여행 올 만하다. 입구에서부터 짙은 빨강과 다홍, 노랑으로 화려한 융단처럼 펼쳐진다. 꽃 이름이 촛불맨드라미다. 바로 옆으로 고향 마을에서 본 듯한 백일홍이 제각각의 색깔로 꽃밭 가득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마음껏 즐기는 꽃마당이다.
꽃밭 넓이가 자그마치 23만 1000㎡라고 한다. 축구장 서른 개가 넘는 규모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도 한참 걸린다. 맨드라미를 시작으로 백일홍, 천일홍, 메밀꽃, 해바라기, 장미, 코스모스, 가우라, 버베나, 핑크뮬리, 댑싸리, 억새 등 종류별로 가을꽃이 활짝 피어 눈부시다. 봄 시즌에는 노란 유채꽃이나 수레국화, 안개초 등이 피어난다. 꽃길을 걷다 보면 때론 연못이 나타나고 넓은 잔디광장이 나온다. 어린 왕자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와 풍차가 볼거리를 더하는데, 일몰 풍경과 꽃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편안하게 꽃구경을 하고 싶다면 꽃밭을 한 바퀴 도는 깡통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고석정 꽃밭은 애초에 군부대 포병 훈련장이었다. 과거 Y진지라 불리던 곳이 철원 지역의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변신했다. 포성이 울리던 허허벌판에 평화의 꽃을 피워 올렸다. 철원이 안보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무한히 넓은 꽃밭에서 계절별로 꽃의 물결을 볼 수 있다.
수직 벼랑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주상절리
철원의 주상절리는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위치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분출한 마그마가 서서히 식으면서 현무암이 되었고,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협곡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바위들이 수직의 벼랑을 이룬 비경을 그동안은 배를 타고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찔한 절벽에 선반처럼 매단 3.6km의 잔도(棧道)가 마련되었다. 일명 한탄강 하늘길로 불리는 잔도 덕분에 빼어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까이에서 생생히 만날 수 있다.
트레킹의 출발점은 두 군데다. 순담 게이트와 드르니마을 게이트가 있는데 대부분 순담매표소에서 출발한다. 참고로 드르니는 애초에 양지바른 마을에서 유래되었는데, 궁예가 고려 왕건으로부터 피신할 때 ‘들른’ 마을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전한다. 철원 여행을 하다 보면 유난히 궁예와 연관된 명칭을 자주 본다. ‘말등소’라는 소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길 때 빠졌던 소(沼)로, 말이 너무 힘들어 똥을 쌌다 하여 말똥소라고도 한다. 트레킹을 마치고 시작점으로 다시 갈 경우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현재는 주말에만 운행한다.
잔도는 걷기에 따라 다르지만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나라에 잔도가 몇 군데 있지만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는 그 절정이다. 한탄강 협곡 절벽 20~30m 높이 벼랑길에 매달린 잔도를 걸으면서 깎아지른 수직 절벽의 위용에 놀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반원형 전망대는 아찔함의 최고점이다.
틈틈이 쉼터가 나타나니 잠깐씩 쉬면서 절경에 잠겨봐도 좋다. 쪽빛소쉼터, 맷돌랑쉼터, 돌단풍쉼터, 드르니쉼터 등 이름도 예쁘다. 자주 나타나는 13개의 출렁다리마다 지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김새와 위치 등에 따라 돌개구멍교, 한여울교, 선돌교, 수평절리교, 단층교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잔도 위를 걷다 보면 신나고 짜릿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간이 허공을 걷듯 공포감이 드는 구간도 지나야 하고, 가파른 계단을 몇 번씩 만나게 된다. 나중에는 기진맥진할 수도 있으니 적당한 체력 조절이 필요하다. 감동과 스릴, 억겁이 빚어낸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철원 주상절리길이다.
‘지역 문화유산 순례기’는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다양한 지역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지역N문화는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역문화원이 함께 발굴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서비스하는 지역문화포털입니다. 기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역N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북적이는 부산역 역사를 빠져나온다. 역 광장을 가득 채운 건 가을 햇살이다. 그것은 체로 거른 듯 맑아 상큼하다. 발길에 절로 탄력이 붙는다. 부산역 맞은편 초량동 골목엔 ‘이바구길’이 있다. 부산 동구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옛날 동네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통해 동네의 근현대 문화와 풍속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이바구길 초입엔 ‘구 백제병원’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근대건조물’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서양식 건물이다. 그런데 외관이 범상치 않아 도드라진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지은 건물이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멀쩡한 외모를 유지한 게 아닌가. 100년 풍상에 시달린 건축이라면 보통 낡은 기미를 풍기게 마련이다. 시들고 삭은 기색으로 시간의 횡포를 웅변하거나 고색창연한 운치를 돋우기 십상이다. 그러나 애초 워낙에 잘 지은 덕분일까, 이 4층짜리 적벽돌집 외형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당대의 첨단 건축 기법을 통해 등장한 건물인 걸 직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부는? 아쉽게도 원형을 많이 잃었다. 1972년에 발생한 화재로 많은 것이 잿더미로 스러졌다. 외부와 달리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한 탓에 피해가 컸다. 이후의 보수 작업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건물주는 원형을 복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벽면과 바닥의 형태는 물론 천장을 도배한 그을음까지 그대로 놔두었다. 기본이 원체 튼실해 뼈대까지 손볼 필요는 없었다. 이를테면 벽체 거죽이 얼마나 단단한지 콘크리트못 하나 박아 넣을 수 없었다니 말 다했다. 현재 이 빈티지한 건물 1층엔 카페가 있다. 묵은 세월이 새겨 넣은 신비감까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재생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투박함과 묵직함에 예술적 디테일, 나아가 건물 역사의 스케일까지 가세해 민감한 이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2층엔 창비출판사가 차린 복합문화공간 ‘창비 부산’이 있다.
저 옛날의 백제병원은 외과의사 최용해가 지은 대형 사립병원이었다. 그런데 건물의 용도 변화 여정이 다채로워 흥미롭다. 개업 5년이 지난 1932년, 최용해는 기묘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일본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그러면서 건물은 동양척식회사로 넘어갔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이름의 청요릿집이 들어섰다. 중일전쟁이 터지면서는 일본군 장교 숙소로 쓰였다. 해방 직후엔 부산 치안사령부 건물로, 1950년엔 중국 임시대사관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엔 개인에게 불하되면서 예식장으로 바뀌었다. 이후의 양상은 생략하더라도 어지러울 지경으로 변동이 잦았던 걸 알 만하다. 말하자면 ‘구 백제병원’은 부산의 사회사와 풍속사가 압축파일처럼 내장된 건물이다. 따라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 모든 게 변한다는 걸, 흘러가고 지나간다는 걸, 세상에서 나그네 아닌 게 없다는 걸 일깨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승도 추락도, 기쁨도 슬픔도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이련만, 고정불변의 것으로 바라보는 착시와 오해를 교정하라 묵시하는 곳일 수도 있다.
아슬아슬한 ‘168계단’이 품은 사연
이바구길을 따라 이제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을 움켜쥐고 빼곡히 들어앉은 집들이 보인다. 간혹 새집도 섞여 있지만, 주로 자그맣고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간신히 숨을 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은 삶의 변방이었다.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천신만고한 생활이 펼쳐졌던 곳이다. 의지가지없던 피란민들은 이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피란민뿐이랴. 부두 노동자, 자갈치시장 일꾼, 공장 근로자, 영세상인 등 중심부에서 소외된 서민들이 초량동에서 비지땀을 쏟으며 간절한 삶을 꾸렸다. 이바구길은 이렇게 유적처럼 남은 과거사의 명암과 요철을 이바구하는 길이다. 동네에 고인 문화적 요소를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가시적으로 재구성한 문화재생 테마길이다.
볼거리는 충분히 많다. 발목 잡힌 듯 딱 멈추게 되는 건 ‘168계단’ 앞에서다. 좁고 길고 가파르기 짝이 없다. 허공에 펼친 사다리처럼 아슬아슬한 계단이다. 산동네 사람들은 이 험악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면제받지 못한 채 생활을 도모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 아래 있었던 우물물을 퍼 나른 루트였으며, 노동의 피로를 한잔 술로 달래고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의 발길에 닳고 닳은 계단길이었다. 희망을 품고 고역을 감수했던 주민들의 일상이 계단에 비쳐 먹먹하다.
‘168계단’ 옆에는 ‘김민부 전망대’가 있다. 부산에서 출생해 31세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공간이다. 그의 시는 빼어났으나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거의 잊힌 시인이 됐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자로 알려진 게 고작이다. 일찍이 김민부 시의 천재성을 증언한 논자들이 다수였지만 정작 그는 궁핍에 시달렸다. 시는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높이 날았으나 종단엔 실존의 비애로 무너졌다. ‘김민부 전망대’에 오르거든 그의 이름을 가슴으로 한번 호명해볼 일이다. 참으로 반가운 건 부산에서 ‘김민부 문학제’가 연례행사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속세란 더러 경박하지만 야박한 것만도 아니다. ‘168계단’을 거쳐 언덕 중턱에 이르면 ‘유치환의 우체통’을 만날 수 있다. 부산 동구에서 살다 타계한 유치환 시인을 추모하며 만들었다. 마음에 둔 이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과거나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여도 좋겠다.
발길은 이제 ‘문화공감 수정’에 닿는다. 일제가 조선 침탈의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엔 일본식 가옥이 여럿 있다. ‘문화공감 수정’은 개중 번듯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전통 목조주택이다. 창호 문양 같은 세부 장식의 다양성,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급변하는 실내 공간 구성이 특징적이다. 한옥과 달리 복도 공간을 정교하면서 활달하게 구사한 대목 역시 일식의 전형이다. 이모저모 본때 있게 지은 집이다. 관리 상태도 최상이다. 전국에 적산가옥(敵産家屋, 자기 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 소유의 집)이 남아 있지만 이곳처럼 잘 보존된 집이 드물다고 한다.
1943년에 지어진 이 집은 해방 뒤 한국 사람에게 불하된 뒤 ‘정란각’이라는 고급 요정으로 쓰였다. 2007년에 이르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적산가옥을 쳐다보기조차 싫어했다.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로 인식해 철거나 개조를 능사로 삼았다. 그러나 적산가옥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그럼 일본 정부가 반색하지 않을까? 침략의 증거물이 사라지니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가 겹으로 엉겨 있는 ‘문화공감 수정’은 캄캄했던 전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이곳 내부는 기능성과 미학으로 빼어나다. 온통 유리창을 낸 전면으로 들이치는 정원 풍경도 수려하다. 한때 이곳은 카페 공간으로 소비되었다. ‘인스타 핫플’로 유명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상징성이 흐려졌는데, 2021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역사 전시공간으로 전환했다. 옳은 결정이다.
정정숙 부산동구문화원 원장대행
“부산 동구는 부산 문화의 본산지다”
‘부산 동구를 알면 부산 전체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지역사와 문화 측면에서 동구에 유형・무형의 많은 자산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동구엔 인적・물적 유입은 물론 문화 교류의 통로인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다. 정정숙 문화원장대행은 이와 같은 정황을 근거로 ‘동구가 부산의 뿌리 역할을 했다’고 본다.
“동구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래 명실상부한 부산의 관문으로 기능했다. 부산역 역시 문화자산을 축적하는 문물의 유입 경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동구의 문화가 성장했으며, 여기에서 나온 에너지는 부산 전역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확산됐다. 동구의 문화는 한마디로 부산 문화의 본산이자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이라는 지명 자체가 동구에 있는 증산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동구의 문화 파워를 대표하는 공간을 꼽는다면?
“동구의 히스토리를 고스란히 담은 문화재생 테마 골목길인 ‘이바구길’이다. 이 길은 부산시가 2011년부터 추진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탄생했는데, 매우 재미있고 매력적인 곳이다. 꼬불꼬불 연달아 이어지는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만날 수 있는 풍경과 명소마다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다. 길을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그러다 문득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바구길 인근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연계해 답사하면 한층 즐겁다.”
31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김민부 문학제’가 부산에서 운영되고 있어 반가웠다.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시피 한 이름이라서.
“김민부 시인은 우리 동구의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혼을 기리기 위해 이바구길에 ‘김민부 전망대’를 조성했지만 미흡하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공간 확장이나 시인을 재조명하는 문학 행사 활성화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부산동구문화원이 추진하는 역점 사업을 소개해달라.
“우리는 25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민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특히 ‘노래교실’이 인기다. 무려 5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해 노래를 즐긴다. 옛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역시 반응이 좋다.”
예술 프로젝트 ‘꿈의 오케스트라 부산’을 운영하는 목적과 성과도 궁금하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체부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국가 사업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펼쳐진다.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동구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불우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한국형 모델이다. 음악의 힘으로 사회에 희망을 부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단원은 오디션을 통해 뽑은 초2부터 고2까지 60명, 음악감독 1명, 강사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성과는 매우 크다. 정기 연주회와 작은 연주회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음악을 즐기며 밝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라 다행스럽다. 이 아이들 중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나올 수도 있을 테고.”
단양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북도다. 하지만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동쪽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남쪽으로 경상북도 예천군과 문경시, 서쪽으로 충청북도 제천시와 접해 있어서 주변과 연계한 여행을 계획할 때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단양의 자연은 짓누르던 일상의 무게를 날려버리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단양의 깊은 산과 계곡이 주는 힐링이 더할 나위 없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자연 속에서 한시름 내려놓고 푹 쉴 수 있는 푸근함 그 자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가게 주인이나 지나가는 분들 모두 선량하고 친절해서,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인 듯 느끼게 해주었다.
태풍, 시루섬의 기적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나 순항만 이어질 수 있을까. 지난여름의 장마와 더위, 그리고 무시무시한 태풍은 평온했던 일상을 바꿔놓고 사라졌다. 이처럼 해마다 맞닥뜨리는 장마와 태풍으로 무수한 아픔이 기억 속에 남겨진다. 1972년 8월 이곳 단양의 남한강 유역에 위치한 시루섬 마을에도 태풍이 강타했다.
당시 2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던 시루섬을 삼킨 태풍 ‘베티’. 남한강의 갑작스러운 범람이 시작되자 마을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빗줄기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모두 피신했다. 높이 6m, 지름 5m짜리 물탱크에 올라선 마을 주민은 198명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 팔짱을 낀 채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고립된 상태로 14시간을 버텼다. 이때 엄마가 안고 있던 백일이 지난 아기가 압박에 못 이겨 끝내 숨을 거뒀다. 사람들이 동요하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처지여서 혼자만 슬픔을 삼키던 아기 엄마의 이야기를 시루섬은 기억한다.
어쩌면 살아남기 어려울 수도 있었던 14시간의 절박한 사투였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서로 손을 잡고 버텨낸 협동·단결·인내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단양군에서는 시루섬의 기적을 콘텐츠화했다. 이제는 시루섬의 차분해진 자연 속에서 되짚어보는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현재를 본다. 부근에 이끼터널과 수양개빛터널, 잔도길과 만천하스카이워크가 있다. 느림보 강물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보며 조용히 자연을 즐겨볼 산책 코스다.
신선이 노닐던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이어서 단양 8경 중 제1경인 하선암, 제2경인 중선암, 제3경인 상선암을 돌아볼 차례다. 자동차로 달리면 바로바로 이어져 있어서 느긋하게 단양의 비경을 구경할 수 있다. 조약돌 탑이 즐비한 하선암 계곡의 느릿한 물 흐름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이 마냥 여유롭기만 하다. 출렁다리가 이어져 있는 중선암 숲은 고요하다. 출렁다리 앞 벤치에 앉아 가게 주인과 단양의 자연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하기도 하고 중선암을 찾는 이들과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참 쉴 수도 있으니, 이 아니 느긋할 수가.
중선암에서 상선암으로 가는 길목에 특이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 길 옆으로 소형 동물 옹벽 탈출 시설이다. 도로 건설 등으로 많은 소형 동물이 측구 등에 빠져 죽기도 한다. 이때 소형 동물의 탈출이 어려워, 배수관에 경사로를 설치하여 소형 동물의 탈출을 도와주는 시설이다. 도로를 횡단하는 동물이 높은 옹벽에 막혀 탈출하지 못해 로드킬당한 모습을 가끔 본 적 있다. 이렇게 섬세하고 친절한 인공 구조물이라니, 고마울 따름이다.
상선암 계곡에서 마을로 오르면 집집마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빨갛게 잘 마르고 있다. 이런 태양초라면 김치도 맛있고 어떤 요리든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옆 마당의 평상에 고사리, 다래순, 오미자 진액, 취나물 등을 소쿠리에 담아놓고 가격을 적어놓았다. 3000원, 5000원… 이른바 무인 상점이다. 시골 분들의 정성이 담긴 식재료 맛은 남다를 듯하다. 지나던 마을 어르신이 앞산을 바라보면서 예부터 신선이 머물렀다는 전설의 상선암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신다. 덕분에 단양의 산천에 얽힌 구수한 이야기도 듣는다. 자신이 사는 곳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들려줄 수 있는 자부심은 매우 멋지다.
오랜 시간 속의 풍경, 사인암
단원 김홍도가 이곳 겹겹의 격자무늬인 사인암을 그리려고 붓을 잡고 1년여를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절경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배경을 이룬다. 사인암은 약 50m 높이의 멋진 바위 아래 남조천이라는 못이 함께하고 있어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도 치고 물고기도 잡는다. 거기에 산 정상의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단양 8경 중 4경에 속한다.
바로 옆으로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 청련암을 둘러보아야 한다. 청련암은 사인암과 맞닿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속리산의 말사다. 팔작지붕 구조의 극락 칠성각이 차분히 맞는다. 무엇보다 사인암 뒤편 암반지대 사이의 삼성각이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계단 옆으로 많은 이들의 염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단양 도담삼봉(島潭三峰)의 풍류
단양 여행 중이라면 도담삼봉은 기본 코스인 양 당연히 들를 곳으로 생각한다. 많이 알려져 있고 몇 번씩 보았던 곳이어도 단양 시내에서 가까워 다시 한번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 남한강이 휘도는 곳에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반영을 이루어 그 형상만으로도 눈에 담아둘 만하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이곳을 사랑했다 하니, 옛 시절의 풍류도 떠올려본다. 도담삼봉 하류의 석문까지 돌아보고, 여유롭다면 유람선과 모터보트의 즐거움도 챙겨보자.
참고로 단양팔경은 단양군의 8군데 명승지로, 단양을 중심으로 12km 내외에 모두 자리 잡고 있다.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 석문이다.
구경(九景)시장의 마늘 맛 이야기
숙소로 가는 길에 단양 구경시장을 지나칠 수 없다. 단양팔경에 이은 아홉 번째 볼거리라는 뜻의 구경(九景)시장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구경시장은 상가건물형의 중형 시장으로, 장날은 매월 1일과 6일이다. 길 건너 맞은편에 주차장이 있다. 시장 근처에 드니 마늘 냄새가 확 풍긴다. 마늘로 유명한 단양임을 절로 실감한다. 입구부터 마늘이 주렁주렁, 마늘순대, 마늘만두, 마늘닭강정, 마늘빵, 마늘전병 등 끝도 없는 마늘 먹거리다. 몇 군데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이루고 있다.
숙소, 소선암 자연휴양림으로
자연휴양림은 각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PC나 모바일 앱으로 ‘숲나들e’ 사이트에서 예약 가능하다. 비용이 대체로 저렴해 매월 예약창이 열리면 재빨리 예약해야 한다. 각기 차이는 있지만 신청 시 경쟁률이 높다.
단양 선암계곡 가장자리에 자리한 소선암 자연휴양림은 숲속의 집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산중이어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속세를 벗어나는 기분이다. 자연의 풍경 속에 잠겨 마음껏 몸에 생기를 집어넣을 기회다.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은 자연스럽게 숲 놀이터와 물놀이장이 된다. 휴양림 안에 두악산 등산로가 연결되었고, 유아숲체험관과 목재체험관도 있다. 숲 내부의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며 평온하게 이곳에서만 시간을 보내도 문제없다.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으며 고요한 숲에 푹 잠겼다.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과 어울리는 감성적인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체실 비치에서(2018)
【티빙, 웨이브, 넷플릭스 시청 가능】
가을 극장가에서 많은 관객이 찾았던 작품.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헤어지게 된 두 인물의 사연과 감정선이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리틀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5)
【티빙, 웨이브, 넷플릭스 시청 가능】
이치코는 요리와 얽힌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가을의 모습이 농촌 생활의 로망을 더하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2022)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아내 세연의 마지막 생일선물은 첫사랑을 찾는 것. 남편 진봉은 아내와 함께 여정을 떠난다. 가을 풍경 속에서 시작되는 둘만의 추억여행.
한창나이 선녀님(2021)
【티빙, 웨이브 시청 가능】
강원도의 가을 풍경이 그려지는 영화. 가축도 기르고, 나무에 올라 감도 따고, 시내도 나가는 어느 선녀님. 새집을 지으면서 하루는 더 바빠진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왓챠 시청 가능】
뉴욕의 가을, 성격도 취향도 다른 두 사람이 재회했다. 둘은 과연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사방 천지로 빛이 뿌려진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일상은 늘 촘촘하다. 이럴 때 가뿐히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잘 찾아왔다고 스스로 흐뭇해지는 길 위에 서본다. 굳이 계획을 세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가볍게 나서거나, 편안히 자동차 핸들을 돌려서 잠깐만 달리면 닿는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곳, 기분 좋게 훌쩍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광교다.
수원은 당연히 익숙한 도시인데 같은 지역권의 광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낯설지는 않은데 옆 도시에 비해 어쩐지 새것 느낌이다. 신상품이라는 뜻의 신조어, 이른바 신상 또는 ‘새삥’ 같달까. 수원이 18세기 조선의 신도시라면 수원시 영통구에 속하는 광교는 21세기에 조성된 또 다른 신도시다.
광교가 특별한 것은 도시의 녹지율이 41.7%에 달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 안에 엄청난 넓이의 호수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쾌적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는 걸 부러워할 만하다. 인구밀도도 국내 신도시 중에서 최저다. 광교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호수공원이 도심을 따라 연결돼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가 되고 있다. 도서관, 호수, 수목원, 박물관, 미술관, 감성 맛집까지 일상과 이어진다. 그들이 가꾸어나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정감 어린 골목길도 아름다운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초점을 문화 기능에 맞추어서인 듯하다.
독서 캠핑을 아시나요, 알싸한 숲속 도서관 책뜰
요즘 각기 다른 레저 활동의 이름으로 호캉스나 차박, 차크닉 등의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독서 캠핑 또는 북캉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을이면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호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떨까. 광교푸른숲도서관에 가면 정말 이런 곳이 있다.
광교푸른숲도서관은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푸른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비탈의 기울어진 숲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숲 사이에 입체감 있게 설계된 열린 공간 형태의 도서관은 외부와 내부 모두 예쁘다. 푸른숲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한데, ‘푸른숲 책뜰’이라는 독서 캠핑장 콘셉트의 독서 힐링 공간이 특별하다.
도서관 옆의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어 오르는 길은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 그 언덕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 동의 독립적인 공간 ‘책뜰’이 앉혀졌다. 백리향, 산수국, 바람꽃, 물봉선, 금강초롱(장애인 우선 예약). 각 캐빈마다 붙여져 있는 이름은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계절 꽃인데 시민들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드니 초록 이끼로 덮인 굵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비한 트리하우스 느낌이다. 책뜰 주변을 알싸한 숲 내음과 푸른 기운이 감싼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3~4평 정도 공간에 편안한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엔 책 받침대 하나, 옆쪽으로 안내 자료와 책이 꽂힌 서가가 전부다. 창문을 열면 아담한 전용 테라스도 있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빈백 체어에 깊숙이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런 호사라니. 비로소 크게 숨을 쉬고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사계절 언제나 책을 읽든 숲멍을 하든 오롯하게 사치스러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시간의 이용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독서와 힐링의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소풍 나온 만족감과 함께 충분한 사색과 쉼을 주는 3시간이다. 여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정원 문화, 영흥수목원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의 도심 속에 숲과 연결된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숲속 산책로가 구현되었다. ‘더 살아 있는 정원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온실 앞의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 아열대 식물을 주제로 꾸며진 온실에는 망고 열매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수목원 입구의 책마루였다. 이 지역의 식물이나 정원 도구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나면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마루에 그냥 앉아 책을 읽는다. 숲과 책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공간이다.
광교 도심을 한눈에, 프라이부르크 전망대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몇 걸음 숲으로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면 도서관 뒤편으로 우뚝 선 탑이 보인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Freiburg Observatory). 세계적인 환경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전망대와 같은 형태라고 한다. 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의미를 더하는 전망대다.
건물 10층 정도인 33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광교 도심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카페, 전시관, 쉼터, 전망대가 이어진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으로 내려다보이는 원천호수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압도적이다. 전망대 밑에는 ‘풀빛누리 광교 생태환경체험교육관’이 있어서 환경을 살피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호수공원 주변 산책길에서는 자작나무 쉼터와 하늘정원, 수초섬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호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운치 있는 자연 생태 속으로, 신대호수
광교호수공원 중앙에 조성된 공원 산책로는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였던 신대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이어진다. 도심 속 호수공원을 잇는 순환 보행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누린다. 신대호수 쪽 수변 보행 데크에 들어서 둑방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연꽃이 피어나고 뿔논병아리가 노니는 곳이 나타난다. 이처럼 습지식물과 야생 조류들이 살아 있는 생태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낀 이른 새벽의 몽환적 풍경과 해 질 무렵의 노을 풍경이 더없이 멋진 신대호수는 모든 시민의 생활 속 휴식 공간이다.
광교박물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실내에서 즐겨볼 만한 곳으로는 광교박물관이 있다. 광교의 역사와 도시 변천사를 알려주고 다양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던 소강 민관식 님의 이야기와 올림픽을 비롯해 한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유명 선수들의 기증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아 광교 옆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다. 광교중앙역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전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부분 무료 관람이다.
광교푸른숲도서관 책뜰 이용 방법
대상 수원시도서관 관외대출회원(정회원) 이용 인원 최대 4명 운영시간 1회 09:30~12:30 2회 14:00~17:00 / 3시간 예약 신청 수원시도서관 홈페이지(www.suwonlib.go.kr) ‘푸른숲 책뜰’ 예약 기간 매월 1일 10시부터 선착순 이용료 1만 원
동해를 끼고 있는 동해시의 인상은 밝다. 시원한 눈매를 가진 사람을 바라볼 때처럼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해변 도시다. 바다는 어쩌면 동해시의 모태이거나 모성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로 생존을 이어온 게 아닌가. 수려한 바다 풍경만으로도 동해시는 복 받은 땅이다. 저 웅장한 만경창파를 보라.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보라. 푸르디푸르러 아찔하다. 이 바다에선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그래 동해시를 찾아드는 여행자가 숱하다. 그들은 드넓은 바다를 가슴에 담는다. 태초의 일순을 보여주듯이 장엄한 일출을 감상한다. 일출 명소는 촛대바위로 유명한 북평동 추암 일원이다. 해돋이 장소 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곳이다.
추암해변에선 기암괴석들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펼쳐지고 있다. 능파대(凌波臺)라 부르는 바위 군락이 해안 경관을 북돋워 절경을 연출하는 게 아닌가. 가히 자연이 펼치는 예술제전이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바람에 닳고 파도에 깎인 바위들의 묘한 형상이라니. 자연에 속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능파대 역시 사람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자연의 재능을 웅변한다. 이처럼 빼어난 능파대는 조선이 낳은 걸출한 화가 단원 김홍도의 화첩에도 등장한다. 단원은 금강산과 관동팔경 지역을 여행하며 명승 60폭을 그려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을 만들었다. 거기에 능파대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 한 점이 포함돼 현존한다. ‘능파’(凌波)란 ‘물결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가인(佳人)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능파대란 그렇다면 미인의 섬려한 거동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 풍경을 보는 안목에 서정과 낭만이 서려 있다. 조선의 정치가 한명회가 그 이름을 지어 붙였다.
능파대 곁엔 정자가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정자다. 자그마하고 덤덤한 모습이라 정자 앞에 서서 바라보면서도 정작 눈에 쏙 들어오지 않을 수 있는 건물이다. 멋스럽기보다 예사롭다. 그 무슨 미학적 작위를 구태여 구사하지 않은 집이다. 하지만 유서 깊은 해변 정자다. 고려 말 공민왕 때인 1361년에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건립했다. 이후 화재로 스러진 걸 조선 중기인 1530년에 7대손 심언광이 중건했으며, 1794년에 또다시 지어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
해암정은 작은 규모만큼이나 구조도 간명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해 팔작지붕을 얹었다. 들어 올릴 수 있는 창호 문을 단 정면을 제외한 3면엔 모두 판문을 설치했다. 이채로운 건 처마 아래 걸린 현판이 세 개나 된다는 점이다. 가운데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우암 송시열이 능란하게 붓을 휘저어 쓴 해서체 편액이 있다. 우암이 예송논쟁에서 패하고 함경도로 귀양 가는 길에 들러 쓴 글이란다. 오른편엔 심동로의 18대손 심지황이 쓴 전서체 편액이 걸려 있다. 왼편엔 해암정 뒤편 능파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종소리에 빗대어 ‘석종람’(石鍾襤)이라 쓴 해서체 현판이 보인다. 이건 송강 정철이 쓴 것이라 하나 정확하진 않다. 정자 내부 벽면엔 시판과 기문 다수가 걸려 있다. 세상의 꿍꿍이로부터 등 돌리고 해변에서 독락(獨樂)하는 심동로의 지향을 알아채거나 교감하는 글들이 시판에 섞여 있다.
심동로는 해암정과 더불어 노년을 한가하게 지냈다. 창망한 바다가 부여하는 위안과 풍류를 낙으로 삼았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건 권문세족의 쉰밥 냄새나는 아귀다툼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괜히 바닷가에 바짝 붙여 정자를 지었겠나? 능파대에서 들끓는 파도 소리를 울타리 삼아 속세의 소음과 두절하고 싶은 심정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일찍이 신라의 고독한 천재 최치원은 가야산의 물소리를 방패 삼아 세상 잡음을 물리치고 은거했다. 심동로의 심회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정치판의 이전투구는 저질러놓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 난 해변에서 노닐겠어! 그런 심사이지 않았을까. 그는 공민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령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에 공민왕은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렇게 동으로 돌아온 노인은 즐겨 해변을 소요하며 음풍농월로 회포를 풀었다. 이런 그를 일러 사람들은 ‘동해 바닷가의 선옹’(仙翁)이라 일컬었다지. 해암정을 지을 즈음에 쓴 심동로의 문장이 있다. ‘갈매기와 더불어 바닷가에서 늙으니/ 일생의 행적이 바람결 같구나/ 부귀공명이야 다 헛된 것/ 매미 껍질 벗듯이 일찍이 관직을 버렸네’
감성충전소 ‘논골담길 벽화마을’
이제 묵호동으로 간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동해시의 자연경관은 두루 빼어나다. 곳곳에 고유한 승경과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 그런데 묵호엔 묵호의 인간사와 사회사, 문화와 풍속, 빛과 그늘을 한눈에 더듬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묵호의 유난한 ‘달동네’였던 언덕배기 마을을 2010년부터 시작한 문화재생사업으로 본때 있게 살려낸 곳이다. 이미 ‘전국구 명소’로 부상했다. 동해시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주로 논골담길로 쏠려 기존 명소들이 예전과 다르게 썰렁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초라하고 침침했던 언덕배기 마을에 와락 생기가 감돌다니.
묵호는 1960~1970년대 한때 번영을 누렸다. 묵호 사람들의 생존 기반이었던 묵호항의 성황 덕분이었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항구로, 국제무역항으로, 명태와 오징어 등속이 흔전만전 유통되는 어항으로 이름을 날렸다. 화주(貨主)와 외항 선원, 어부, 잡역부 등 갖가지 인력이 집중됐다. 그러면서 경제 효과가 파급돼 ‘강아지조차 지폐를 입에 물고 돌아다닌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이 좁은 바닥에 극장이 네 개나 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이 저물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바다에서 잡히는 게 드물어지면서 묵호항의 전성시대가 곤두박질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러잖아도 내동 궁색했던 달동네의 형편은 더욱 나빠져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삶은 이어지는 것.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끌어안고 애면글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떠날 길 없는 사람들은 남아 운명의 횡포에 맞설 수밖에 없는 것. 이렇게 지역의 변천에 따라 달동네 사람들이 껴안고 살았던 애환, 그리고 그 궤적과 사연을 재료로 삼아 예술을 입히고 문화 요소를 돋우어 볼 것 많고 찍을 것 많고 느낄 것 많은 이색 여행지구로 부활한 게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이 마을의 골목길은 넥타이처럼 좁고 가랑잎처럼 허름하다. 다닥다닥 밀집한 집들은 하나같이 작고 허술하다. 삶의 파란만장이 한눈에 읽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문화자원을 투입하자 달라졌다. 면밀한 의도로 기획된 다양한 형태의 벽화, 사진, 낙서, 디자인, 공예를 깨알처럼 섬세한 디테일로 흩뿌리자 급변했다. 감성충전소로 변신했다. 언덕 저 아래로 눈길을 던지면 거기에 눈부시게 푸른 동해 바다가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노멀 크러시와 뉴트로를 즐기는 이들에겐 한결 적합한 답사지다. 그 무엇보다 문화재생의 힘과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마을이다.
오종식 동해문화원장
올가을 ‘2023 지역문화박람회 in 동해’를 펼친다
동해시는 1980년에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북평 권역은 전통적으로 농경이 성행했다. 반면 묵호 권역에서는 어업을 중심으로 한 상업이 번성했다. 따라서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질감이 있었지만 40여 년의 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해시의 특질에 대한 오종식 동해문화원장의 생각은 이렇다.
“두 권역의 상이점이 섞여 융화되면서 풍부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갖추게 되었다. 바다와 항만을 모체로 한 어로 문화와 해양 문화가 여실한 한편, 과거부터 이어진 농경 문화와 유교 문화, 그리고 불교 문화 역시 지역 정신의 축을 이루고 있다.”
동해시의 대표 문화자원을 꼽는다면?
“동해시의 모산인 두타산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그리고 여기에서 행해지는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를 꼽고 싶다. 천지간의 모든 영혼을 달래고 삼라만상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로, 이념 대립과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가는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매년 가을 삼화사에서 사흘간 공개 행사로 거행된다.”
동해문화원을 이끌며 그간 펼쳐온 주요 사업을 소개해달라.
“‘동해학기록센터’를 설립, 동해시의 역사와 문화 관련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했다. 청소년을 위한 지역 역사 교재 ‘세상의 아침을 여는 동해시’ 출간과 북카페 ‘소담채’ 조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동해문화원이 ‘논골담길’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더라.
“그렇다. 우리 문화원의 조연섭 사무국장이 2010년에 ‘논골담길’을 기획하면서 사업이 개시됐는데, 동해시는 물론 마을 주민과 문화 인력이 동참해 진척시켰다.”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답사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새롭고 흥미로워서.
“‘논골담길’은 이미 동해시 최고의 명소로 부상했다. 도시 문화재생의 모범 사례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주차난이 문제점으로 대두됐을 정도다. 소외된 ‘달동네’였지만 감성마을로 변모시킨 성과가 이렇게 크다. 동해 바다와 동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도 매우 빼어난 곳이다.”
올가을엔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는 ‘지역문화박람회 in 동해’가 동해시에서 열린다지? 어떤 구상과 준비를 하고 있나?
“10월 20일부터 3일간, 동해와 ‘논골담길’이 바라보이는 천연의 무대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공원’에서 펼쳐진다. 주제는 ‘K-컬처, 뿌리를 만나다’로 설정했다. 지역 문화의 가치를 조명하고 미래 비전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는 물론 바다불꽃쇼, 대동한마당, 대한민국 팔도 명인전 등 갖가지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이 문화박람회에 전국 231개 문화원도 참여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성대한 문화축제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