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애에 필(feel)이 꽂혀 일생을 바칠 수 있을까? 그러는 사람의 삶은 정녕 아름답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올인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남한산성 만해 한용운 기념관 전보삼 관장이다. 그는 어떻게 한 사람의 삶에 그토록 매료된 걸까? 그 궁금함을 풀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가을이 오는 남한산성을 찾은 건 실로 오래만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와본 지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하기야 서울 살면서 남산에 다녀온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히려 지방 사람들에게 서울 하면 필수 코스가 남산이다. 아마 그들이 나보다 더 자주 찾지 않나 싶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은 주로 산성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음식점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떠난다. 필자도 그럴 심산으로 남한산성을 찾았다가 만해 한용운 기념관 안내판을 보고 둘러보게 됐다. 그러다가 이 기념관이 관이 만든 게 아니라 한 민간인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 욕구가 발동했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았던 소년
전보삼 관장은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했다고 한다.
“강릉 집 근처에 포교당이 있었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그곳에 가서 뭐든 묻곤 했지요. 윤회, 삶과 죽음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스님들 사이에는 강릉 포교당에 가면 당돌한 중학생이 한 놈 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하네요.”
그는 중학교 때 이미 내용도 잘 모르는 ‘반야심경’을 줄줄 읽고 ‘팔만대장경’도 구매해서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생을 바꾼 책,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궁금한 것이 많았던 이 학생에게 어느 날 포교승이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을 던져줬는데, 이 시집이 전 관장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의미를 모르던 반야심경의 내용을 ‘님의 침묵’에 대입해보니 이해가 되었지요. ‘님은 갔습니다’라는 의미가 색즉시공(色卽是空) 아닌가요? 모든 물질적 형상들은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색즉시공이죠.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공즉시색(空卽是色) 아닙니까? 그때부터 ‘님의 침묵’과 만해에 필(feel)이 꽂혔지요.”
*공즉시색(空卽是色):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현상의 하나하나가 그대로 실체라는 말. ‘반야심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만해의 시집을 읽으며 전 관장은 더 깊은 불교 공부를 했고 만해 한용운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만해에 관한 물건들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만해 한용운의 연구에 푹 빠지다
만해에게서 인생의 숭고한 삶의 가치를 깨달은 전 관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실천하리라 약속했다.
“첫째는 만해가 말년을 보냈던 성북동의 심우장을 찾는 일이고, 둘째는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만해의 묘소를 찾아보자 한 것이었지요. 마지막 다짐은 만해의 제자 강석주 스님을 찾아 생전의 만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후 그는 삼청동 칠보사에 기거하는 강석주 스님을 찾아 만해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해의 사상에 더욱 매료된다.
“강석주 스님이 기억하는 만해 스님은 ‘나라 사랑에 있어서 부처 같은 분’이었습니다. 또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독립운동사에서 만해의 업적은 아주 특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3·1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분으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기도 했지요.”
전 관장은 1979년 12월, 만해 묘소를 찾아 주변을 정비하고 상석과 비석을 세워 묘비 제막식을 주도했다. 이뿐만 아니라 1981년 심우장에 기념관을 설립했다. 이로써 그는 스스로에게 한 세 가지 약속을 다 지켜냈다. 1980년 6월에는 ‘한용운 사상연구’를 펴냈고, ‘만해의 사상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1990년에는 성북동에서 남한산성으로 기념관을 옮겼다. 이때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를 팔아 남한산성 근처 땅을 샀고 1998년에는 사재를 털어 현재의 기념관을 재개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념관에는 어떤 것이 있나?
기념관이 소장한 자료 하나하나에는 전 관장의 손때가 묻어 있다. 소장품에는 ‘님의 침묵’ 초간본과 130여 종의 판본이 있고,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 시집도 있다. 이 밖에 만해 친필 유묵과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추서한 건국공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 학술논문, 연구자료 등 3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 자료 수집 비화
만해와 관련된 자료라면 어디든 달려가 자료를 수집한 전 관장은 ‘님의 침묵’ 초간본을 샀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78년 고서 경매장에 처음으로 ‘님의 침묵’ 초간본이 나왔어요. 그러나 이 책은 팔려고 내놓은 것이라기보다 경매장 흥행을 위한 상징적으로 나온 것이었어요. 아예 팔 생각이 없었으므로 시세보다 10배가 더 높은 가격을 붙여놓았어요. 그때 소장자를 알아놓고, 당시 교수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 1년을 모아 50만 원을 주고 구매했지요.”
사설 기념관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전 관장은 또 한 가지 비화를 들려줬다.
“소장품 중에 국가에서 만해 한용운에게 수여한 훈장이 있어요. 원래는 소장자의 집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당시 총무처에 재발급을 의뢰했는데 훈장을 재발급한 사례가 없다는 거예요. 제가 여러 차례 기념관에 전시해 후세에 알릴 거라고 설득한 끝에 재심의가 처음 열렸고 결국 훈장 재발급을 받아냈지요. 훈장 재발급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일이랍니다.”
남한산성으로 기념관을 옮긴 동기
만해 기념관은 만해가 말년을 보낸 성북동 심우장에서 1981년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90년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당시 심우장은 문화운동을 하기에는 좋았지만, 공간이 좁고 외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남한산성이 떠올랐어요. 남한산성은 호국의 성지로 알려져 있고 찾는 사람도 많잖아요. 남한산성을 찾는 이들 중 10%만이라도 기념관에 들러 만해 스님을 알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 몰입한 아름다운 삶
전보삼 관장은 만해라는 한 사상가의 삶에 매료되어 몰입한 사람이다. 사설 기념관을 운영하며 사비로 자료를 수집하고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후세에 알리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앞으로 남은 생의 계획을 묻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해 정신을 선양하고, 만해 정신과 철학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 정신과 사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흰머리가 뒤덮인 전보삼 관장의 생애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만해 기념관에서 열리는 행사
수시로 좋은 전시회 및 행사가 열린다. 10월 30일까지는 전길수 선생이 기증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전길수 선생은 1941년 경남 함양 출신으로 ㈜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평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40여 년 전부터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구룡산인 김용진, 긍석 김진만, 해강 김규진, 위당 이계호, 소하 김익효, 의재 허백련의 작품 등 기운 생동하는 사군자 작품 60여 점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체험 학습장도 운영
체험학습을 통해 만해의 사상과 민족 혼을 일깨우는 학습장이다.
● 만해의 시를 이용한 시화 족자, 시화 등, 시화 부채 만들기 외
● 탁본: 태극기, 만해 영정, 남한산성 고지도 외
● 어린이 활동지: 만해와 역사 여행 등
전보삼 관장 약력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 취득, 신구대학교 교수 정년퇴임.
경기도박물관장(2015~2017년), (사)한국박물관협회회장(2009~2015년) 역임.
현재 (사)한국문학관협회장(2016~).
로하스 연천이라고도 불린다. DMZ가 인접한 청정지역답게 때묻지 않은 가을 햇살이 바삭하다. 그 햇살에 덮인 자연은 렌즈에 필터를 한 겹 더 씌운 듯 깊이 있다. 연천은 구석기부터 고구려시대까지의 성(城)을 비롯한 유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순수한 자연을 누리며 오랜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가능하다. 경기 북부 연천의 가을 들녘, 마음이 풍성해지는 외출이다.
연천 지역에서 고구려 문화유산 흔적은 일상의 풍경이다. 자동차를 타고 연천의 들길을 달리다 보면 나지막한 민둥산처럼 보이는 성이 나타난다.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이다. 연천을 대표하는 고구려 문화유적이다. 임진강변의 높은 절벽 위에 흙을 쌓아 다지고 돌을 높이 올려 성벽을 이룬 천혜의 요새로서 지금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주상절리, 적의 방어기지이자 물자 이동의 상업적 지역이었던 고랑포구, 한탄강과 장진천이 만나는 은대리성의 숲 등 연천은 민통선과 가까운 전방 도시이지만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함께하는 호로고루성
꽃철마다 붐비는 곳이 있듯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물결을 이룬 해바라기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온다. 호로고루성은 독특한 이름만으로도 솔깃한데 언제부터인가 고구려 성벽 아래 펼쳐진 해바라기 밭으로 사람들이 찾아든다. 이제는 북새통의 절정기가 지나고 한가하다. 이미 노란 꽃잎을 떨구고 씨를 내민 해바라기 밭 건너편으로 우뚝 솟아오른 호로고루성, 그 주변으로 한가롭게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린다.
성 위에 올라서 보면 낮게 흐르는 임진강과 연천의 산천이 따스한 가을볕에 덮여 있다. 흙과 돌을 이용해 토성과 석성의 이점을 결합한 축성술이 돋보이는 호로고루는 그 옛날 개성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연천과 개성 간의 거리는 30km 정도. 강 건너편의 개성이 보일 듯 말 듯하다. 든든한 주상절리를 믿고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은 물이 깊지 않아서 예로부터 육상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강을 옆에 둔 호로고루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바라기 밭이 계절을 물씬 전한다. *사적 제467호
고랑포구의 추억
연천은 산을 돌아 들길과 강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호로고루성 들판을 건너 바로 근처의 고랑포구는 한국전쟁 이전엔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다. 전쟁 이후 그 명성은 사라졌지만 지난해 '고랑포구 역사공원'을 개관하면서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역사관 실내엔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의 옛 풍경을 재현해놓았고 체험실과 첨단의 콘텐츠를 설치 전시해서 찾아드는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역사공원 앞마당에 들어서면 ‘레클리스’(Reckless)란 이름의 군마 동상이 눈길을 끈다. 그 앞으로 멀리 임진강변의 고랑포구를 바라보며 강물 따라 흘러간 역사를 그려본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무덤
고랑포구 역사관에 왔으니 바로 옆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 경순왕릉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경주나 개성 어디쯤에 있을 듯한 신라의 왕 무덤이 연천에? 하면서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위탁하고 개성에서 여생을 마친 후 경주로 운구되는 중 고려 조정에서 “왕의 구(軀)는 백 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여 이곳 고랑포리 언덕에 장례를 모셨다고 한다. 민란이 염려되어 임진강도 못 건너고 연천에 머물게 된 비운의 왕릉이다. 경순왕릉은 소박하고 석물의 배치나 종류도 간소하다. 조선시대의 여느 왕릉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두른 산이 있어 제법 위엄 있다. 잠시 넓은 잔디밭과 숲 그늘을 거닐어본다. 역사 저편의 사연을 안고 연천 땅에 묻힌 경순왕의 고뇌를 경건하게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입구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다.
고려 왕조의 역사가 깃든 숭의전(崇義殿)을 아시나요
고려 왕조의 위패가 봉안된 숭의전, 입구의 태조 왕건이 마셨다는 약수터 어수정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홍살문을 지나 5분쯤 천천히 길을 오른다. 마치 오래된 옛 길을 걷는 듯하다. 그 숲길에 간간이 밤이나 도토리가 툭툭 떨어져 떼구루루 구른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고려의 부흥을 이끈 옛 고려 왕조를 향한 충절이 깃든 곳으로 태조 왕건의 위패와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입구의 담장과 기와에서 자라는 푸른 이끼가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고려 왕실을 지켜준 550년 수령의 느티나무 숲 절벽 아래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우거진 숲 사이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사 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힐링 숲, 그 아래 고즈넉하게 흐르는 임진강, 온통 정적만 감도는 경내 한쪽에서는 보도자료 영상을 촬영하는 팀이 보이기도 한다. 고요한 태곳적 숲의 사적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가을볕에 마음이 여유롭다. *평화누리길 1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언덕 강벽 위의 옛 진루, 사적 제468호 당포성
숭의전을 내려와 5분쯤 달리면 삼각형 절벽의 땅 위에 쌓은 당포성이 가을바람 속에 있다. 마치 호로고루성과 쌍둥이 성인 듯 흡사하다. 성의 생김새나 임진강을 옆에 두고 있는 주변 지형도 비슷하다. 나루 위에는 동벽과 전망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당개나루로 불렸다는 옛 포구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시대의 성(城)이 연천에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주상절리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진 주상절리라는 자연적 성벽 위로 흙과 돌로 쌓아 올려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것이다. 성 위로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오롯하게 서 있다. 역사의 한 장면인 듯 바라보았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아름다움, 주상절리
멀리서 바라만 봐도 주상절리를 품은 임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평화롭기만 하다. 화산활동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아 생겨난 기하학적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 그곳엔 긴 시간의 이야기가 켜켜이 스미어 있을 것이다. 천년 요새였던 그 강가에 강태공 한 명 세월을 낚으며 앉아 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은 마냥 다디달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듯 잡초와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주상절리 둑방길도 한적하다.
휴전선과 가까운 민통선 북방지역답게 연천은 철원, 포천 등과 함께 흔히들 말하는 군 전방지역이다. 그 들길과 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삼엄한 전방 군부대를 군데군데 지나치게 된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은 철조망 철책 따라 줄지어 걷는 군부대 장병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이 땅 최북단의 군부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씩씩한 아들들을 한참 바라봤다. 고마운 청춘들.
DMZ와 인접해 있는 연천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임진강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풍부한 수자원과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한 생물 자원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구역이다. 또한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석기인들의 생활 흔적이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세계 고고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인정하는 지역이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 한탄강 하류에 위치한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재인폭포(才人瀑布)의 장관도 빠뜨릴 수 없다.
연천의 하루, 심신이 편안하다. 그 옛날 우리의 오천년 시간 속에서 고구려가 써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어낸 시간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연천의 시골 인심 한 보따리를 차에 실었다. 민통선 청정지역답게 맑은 물,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각종 채소와 과일 등 다양한 농산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그 들녘엔 지금 가을이 풍성하다.
◇영화처럼 맛보기
기왕 연천에 갔으면 북쪽으로 조금 더 달려 군부대 앞의 망향비빔국수를 맛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이 국숫집은 연천에서 군생활을 했던 병사들이라면 거의가 다녀간 집이다. 그런 추억 때문에 일부러 먼 길 달려가 먹는 국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 '강철비'에서 대한민국 외교안보수석과 북한 최정예 요원으로 분한 배우 곽도원과 정우성이 국수를 후루룩 맛있게 먹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국수 위에 올린 상추 한 잎은 '망향의 시그니처'로 불린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 (정재환 저·생각정원)
방송인 출신 역사학자 정재환이 조선어학회의 투쟁사를 살펴본다. 일제 치하 말과 글을 빼앗긴 민족의 상황과 이에 맞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조명한다.
내 손 안의 작은 미술관 (김인철 저·양문)
19세기 인상주의를 연 화가 25인의 명화를 한 권으로 감상한다.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처럼 그림 소개뿐 아니라 화가의 삶과 교우 관계 등 생생한 일화까지 함께 제공한다.
건강수명 100세 (김혜성 저·파라사이언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된 '내 안의 우주' 시리즈의 저자 김혜성 박사의 신간. 건강수명이 줄어드는 원인을 파헤치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저·마음산책)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 로맹 가리의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연'이라는 상징물로 표현한 작품이다.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최성연 저·위즈덤하우스)
50대 고학력자 여성이 ‘고졸’로 이력서를 고쳐 쓰고 1년간 미화원으로 일한 이야기를 담는다. 미화 일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 비합리적인 청소 노동자의 현실 등을 진솔하게 전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홍유진 저·시공사)
차박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북. 차박 관련 용어부터 차종, 예산, 장비 등 기초적인 정보와 차박 성지 및 주변 여행지까지 안내한다. 부록으로 ‘차박캠핑족’의 생생한 인터뷰도 실려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패자의 역사는 폐허 더미에 묻히거나 전설로만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일까? 기를 쓰고 남을 짓밟아 승자로 남고 싶어 하는 이들은 유독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높은 탑을 쌓고 더 큰 영토에 집착하며 영역 표시에 목숨을 건다.
하지만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역사는 승자를 주로 기록하지만 패자에게도 눈길을 준다. 아니 후세의 이야기꾼들은 승자보다 패자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며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태생적으로 아웃사이더 기질을 갖고 태어난 이야기꾼들의 귀는 승자보다 드라마틱한 패자의 삶에 더 솔깃하기 때문이다.
쓸쓸하기만 했던 부여 유적지, 미륵사지 복원으로 옛 영광 되찾아
옛 부여가 지배했던 지역을 여행할 때면 어쩐지 쓸쓸하다. 지금은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 역사 현장들은 남루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웅진백제 시대의 도성이었던 공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1990년 가을. 공주에 가면 으레 그곳에 가야 한다는 일행을 따라 방문한 무령왕릉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역사적인 유적지, 옛 부여의 왕이 묻혀 있는 지하 무덤방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물론 관람객을 차단하는 유리벽이 있었지만 그리 튼튼해 보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론 왕의 무덤을 봤다는 두근거림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역사적 유물 현장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는 것이 너무 위험해 보였다. 결국 1997년경 유리벽에 곰팡이가 생기고 물이 새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공주 무령왕릉을 비롯해 송산리 고분의 석실 관람이 전면 금지됐다. 현재는 모형전시관에서만 그 형태를 유추해볼 수 있다.
미국에서 돌아와 근 26년 만에 다시 공주 송산리 고분을 방문했을 때 무덤방 개방이 전면 금지된 것을 알고 아쉽기는 했지만 이제야 제대로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도굴꾼보다도 더 졸속으로 17시간 만에 유물들을 꺼내 옮겼다는 무령왕릉 발굴은 두고두고 한국 고고학계의 수치이자 치욕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당시 발굴 단장이었던 서울대 고고학과 故 김원룡 박사의 회고록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고구려 유적지는 대부분이 북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비교 대상이 신라밖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백제의 유물들만 유독(?) 수난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도 든다. 사실 경주를 방문할 때 느끼는 깔끔하고 웅장한 박물관이며 유물 단장 상태를 보면 이런 의혹이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의혹을 한순간에 없애주는 곳을 다녀왔다. 익산의 미륵사지 터다.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 조선총독부가 무너지기 전의 미륵사지 석탑을 실측하고 무너져 내린 석탑 뒷면을 콘크리트로 땜질해 세워놓았다.
지난해 4월 말, 몰락한 왕조의 찬란한 유산이 마침내 20년간의 해체와 복원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 준공식을 한다는 기사를 본 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익산 여행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전남 지역을 한 번 훑고 전북을 돌아다녀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차일피일 늦어졌다. 그러던 차에 지난 7월, 전남 장성 필암서원을 취재차 가야 할 일이 생겨, 벼르고 벼르던 익산 여행을 코스에 넣고 일정을 짰다.
미륵사지 동석탑, 일본의 호류지 목탑과 유사해 깜짝 놀라
마침내 익산 미륵사지 터를 방문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 끝자락 주중이라 그런지 찾는 이도 없었다. 고즈넉한 미륵사지 터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복원해놓은 미륵사지 동석탑을 보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석탑이 자꾸 떠올랐다.
2016년 일본 교토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교토 여행 마지막 날, 나라 현의 호류지를 찾아가기 위해 일본 시골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샘솟았다. 호류지에서 봤던 5층 목탑과 그 위의 풍탁까지… 복원해놓은 미륵사지 동석탑의 모습이 호류지에서 봤던 목탑과 형태가 정말 똑같았다.
당시 교토를 건너가기 전 한국에서 경주 여행을 마치고 다음 날 일본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해의 여행은 마치 천년의 시간과 공간이 건너뛴 듯 아주 특별하고 소중했다. 이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미륵사지 터에 복원된 동석탑을 보는 순간 4년 전 뜨거웠던 그해 여름, 찾는 이 없이 적막했던 호류지 사찰 경내의 그 목탑이 불현듯 떠올랐다.
백제와 고구려 장인들이 건너가 전수한 일본 아스카 문명의 꽃 ‘호류지’
일본의 아스카 문명을 꽃피웠던 쇼토쿠 태자에 의해 창건된 호류지(법륭사)는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세계적 불교문화의 보고다. 호류지 본당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호류지의 박물관인 대보장원에는 백제에서 선물했다는 설과 백제의 후예가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대형 목불상 ‘백제관음상’이 보존돼 있다. ‘일본관음상’이 아닌 ‘백제관음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면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가 일본에까지 건너가 꽃을 피웠던 건 분명해 보인다.
호류지의 금당 내 벽화는 고구려 승려 화가인 담징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데, 1945년 화재로 소실됐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소실되기 전 촬영해놓은 사진을 근거로 디지털화된 3D금당벽화를 인터넷에서 감상할 수 있다.
동양 최대 미륵사지 석탑, 해체와 복원 20년 걸려
미륵사지 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감상해야 할 석탑은 당시 모습을 유추해 복원한 동석탑이 아니라 머리 부분과 위의 두세 층이 사선 모양으로 비스듬히 허물어진 서석탑이다. 국보 제11호, 동양의 최대 석탑이다. 20년 동안 일본이 뒷면에 발라놓은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본래 모습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치아 스케일링 기계까지 동원해 콘크리트의 흔적을 말끔하게 벗겨내, 마침내 1910년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일본은 1910년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문화자원을 조사하면서 유독 백제 문화 유적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미륵사지 석탑을 실측하고 빽빽하게 조사 보고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미륵사지 터를 발견하고 조사할 당시 동석탑은 이미 무너져 내려 흔적만 남아 있었고 힘겹게 남아 있던 서석탑도 무너져가는 상태였다고 한다.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된 사리장엄구 등 볼거리 풍성해
일본이 미륵사지 서석탑 뒤에 콘크리트를 발라 세워놓은 것은 자신들의 본류를 조사하고 분석하기 위해서였을까? 국립 익산박물관에는 뒷면이 콘크리트에 쌓인 채 흉물스럽게 숨 쉬고 있던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해 복원하기까지 걸린 20년간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서석탑을 해체하면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와 출토된 유물들도 전시돼 있다.
또한 익산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다큐멘터리(문화유산 채널 K-HERITAGE TV 제작)를 통해,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 등을 촬영한 사진을 보며 백제 문화와 유적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몰락한 왕조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권력과 무상함 깨우치는 곳
7세기 백제의 무왕이 왕비의 청으로 불사를 일으켰다는 미륵사지.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불이 나타나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대규모 사찰 미륵사지는 왕조의 몰락과 함께 오랜 시간 몰락과 소멸의 길을 걷다가 기적적으로 환생했다. 물론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곳을 거닐며 고증에 입각해 해체와 복원을 하며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기 위해 쏟았을 문화재 보존 관련자들의 정성을 느껴본다. 몰락한 왕조의 유물이 이제야 온전히 평가받고 그에 걸맞게 대접받고 있다는 안도감도 든다.
넓이가 5만 평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 절터였다는 미륵사지. 양쪽의 석탑과 가운데 목탑, 가람도 3개나 있었다고 한다. 3탑 3금당의 구조로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했다는 미륵사지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절터 뒤편을 병풍처럼 막아서고 있는 안개 머금은 미륵산 자락과 주춧돌로 옛 영광을 유추해보며 광활한 절터를 걸어봤다.
흔적 없이 사라진 화려한 유물 대신, 세월의 이끼 낀 주춧돌만이 시간의 영겁과 헛되고 헛된 화려함을 누르고 2020년 후손들을 만나 ‘역사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시간 괜찮으시면 편지 한 줄 써주시겠어요?” 2019년 가을, 그렇게 ‘길 위에서 쓰는 편지’가 시작됐다. 삭막한 도시, 바쁜 일상을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택시 안에서 말이다. 기사가 건넨 노트 안에는 그동안 택시를 드나든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사각사각 쓰여나갔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따스한 한 줄에 위로를 주고받는 승객들, 그리고 그들의 메신저를 자처한 택시 기사 명업식(62) 씨. 오늘은 또 누가, 어떤 사연으로 노트를 채워나갈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Q. 뒤늦게 택시 운전 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해오셨고, 지금의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택시 운전을 한 지는 1년 8개월 정도 됐어요. 과거에 축협중앙회의 경제 파트에서 수입 소고기 관련 업무를 했었죠. 그 경험으로 수입 소고기 유통업을 해오다가 일이 좀 잘못돼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마냥 쉬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택시 운전을 시작했죠. 처음 1년은 퇴사를 생각할 만큼 일이 힘들었습니다. 손님들과의 마찰도 스트레스였고, 아무래도 좀 위험부담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더 해보자, 마음을 붙잡으면서 ‘다른 택시와는 다른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가 뭐 없을까?’ 고민하게 된 거죠.
Q. 손님들에게 노트를 건네 편지를 쓰게 하실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앞서 말한 차별화된 서비스로 낸 아이디어였죠. 노트를 준비해서 손님들에게 글을 쓰게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은 예전부터 해오긴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손님 중에 문학을 전공하신 것 같은 분이 타셨어요. 그래서 제 계획을 살짝 말씀드렸더니, 좋다고 하시더군요. 마침 노트의 제목을 정하지 못하던 차라, 그분께 좀 지어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렸죠. 그렇게 강서구에서 종로구까지 가시는 동안 한참 생각하시더니, ‘길 위에서 쓰는 편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분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지으신 박준 시인이시더군요. 덕분에 계기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됐네요.
Q. 요즘 사람들은 낯선 이와의 만남을 다소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죠. 손님들에게 노트를 건네실 때 반응들은 어떤가요?
무조건 노트를 건네기보다는 상황을 살펴보고 응해주실 것 같은 손님에게 몇 분 정도 후에 권유 드려요. 그러면 처음엔 ‘뭐지?’ 하며 망설이다가 앞서 다른 분들이 써놓은 글을 읽으시곤 자신도 쓰겠다고 하시죠. 한 70~80% 정도는 써주십니다. 어떤 분은 짧은 거리를 가시는데 시간이 부족해 글을 못 쓰셨다고 제 번호를 물어 가져가셨어요. 일주일 뒤에 연락이 와서 개포동에서 마곡동을 택시 타고 가시며 글을 써주셨죠. 요금이 계속 올라가는데도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펜을 놓지 않는 분들도 있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요?
한 손님이 생각나네요. 오빠가 둘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신 거예요. 택시를 탄 그날이 제삿날이라 산소를 가신다고 했는데, 편지를 쓰시면서 펑펑 우시더라고요. 사실 그분뿐만 아니라 글을 쓰다가 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뒷좌석에는 휴지를 비치해둬요.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권고사직 당하신 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특히나 요즘은 경기가 많이 어렵잖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손님들도 서로의 사연을 나누며 공감하고, 안쓰러워하고 그런 것 같아요.
Q. 손님들의 편지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처음 1년에 비해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는 거예요. 편지를 쓰는 분마다 감사 인사를 마다치 않고, 이렇게 생각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들 하시는데, 그게 또 저는 감사하고, 보람을 느껴요. 그분들을 통해 용기와 위로도 정말 많이 얻었고요. 무엇보다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정을 나누는 속에서 아직은 좋은 분들이 훨씬 많다는 걸 발견하고 살죠.
Q. 입장을 바꿔 만약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편지를 부탁한다면 어떤 내용을 적으시겠어요?
저도 어느덧 환갑이 지났으니, 내가 살아온 경험담이나 생각을 쓸 것 같아요. 살아보니 욕심을 버리는 게 참 중요하더군요.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고요. 어제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쓰고 싶네요.
Q. 앞으로도 편지를 계속해나가시겠죠? 또 다른 계획이 있나요?
벌써 노트가 7권째입니다. 지금 5권을 엮어 ‘길 위에서 쓰는 편지’가 나왔는데, 아마 그 뒤로 쌓이는 편지들로 또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택시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그동안 미뤄뒀던 서예도 좀 배우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네요. 그동안 일하느라 친구가 화선지를 한 박스를 선물해줬는데, 여태 한 장도 못 썼어요. 그동안 한 장 한 장 채워나간 ‘길 위에서 쓰는 편지’처럼, 은퇴 후에는 그 화선지를 나 장 한 장 채워나가야죠.
Q. 끝으로 그동안 편지를 보내주셨던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론 편지를 써주시면 그때그때 표현은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에요. 덕분에 제 이름 석 자가 실린 책도 나왔으니 얼마나 영광인가요. 제게 이런 행운을 주신 손님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으니 살펴봐 주시고, 또 언제고 다시 모시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한때는 섬진강 상류의 가장 외진 오지마을로 통했다. 그러나 비포장 오솔길이 찻길과 자전거길, 트레킹길로 바뀌면서 한층 개방적인 강촌으로 변했다. 수려한 강물과 다채로운 강변바위들, 오래된 마을들, 깨끗한 산야를 만날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김용택 시인 생가’를 치고 진뫼마을 안통에 닿아 탐승을 시작한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서 날아온 뜬금없는 기별처럼, 문득 가을이 다가와 창밖에 서성거린다. 차가워진 공기에 핼쑥해진 꽃 하나 창가에서 눈짓하는 기분이다. 이럴 때면 길을 나서고 싶다. 하루 여행에의 충동. 이 돌연한 유혹. 이건 꽤 좋더라.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길을 나설 때의 희열보다 더 짜릿한 건 흔치 않다.
먼 길을 달려 내려온 여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뫼마을의 섬진강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강가에서는 바위들이 털버덕 주저앉아 뜻 모를 회의를 한다. 강 둔덕엔 풀과 나무들, 그 너머로는 숲이거나 산이다. 물속에도 나무가 있고 산이 있어 그윽하다. 그림자로 물에 뛰어들어 물구나무선 나무와 산으로 풍경이 한결 유현한 게 아닌가. 실물이 아니면서 실물도 자아내지 못하는 신비감을 야기하는 산 그림자의 재능을 예술로 친다면 이보다 웅장한 초현실주의 예술이 다시없다.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씻어준다는 점에서는 명상 선생이다.
길은 강을 따라 이어진다. 흙을 밟을 수 있는 오솔길이었던 걸 포장을 해 아쉽지만 시야 가득 범람해오는 강과 산으로 가뿐하다. 게다가 이상적인 적막감이라니. 번잡한 생각들 온전히 내려놓고 풍경에 심취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럴 때 마음은 둥근 빵처럼 따뜻하게 부푼다. 좁아터진 마음으로 내가 나를 희롱하는 우행일랑 일단정지다. 실컷 지청구를 들어도 싼 가난한 마음을 산천은 보살처럼 눈감아준다.
저기 강 한가운데 바위 위에 뭔가가 있다. 말뚝처럼 우두커니 서서 수면을 바라보는 허연 새, 왜가리인가? 가까이 가 보자니 이놈의 낚시질이 삼매경이다. 외다리로 미동 없이 선 채 동그란 눈알이 빠져나갈 듯 수면을 노려보며 밥이 될 물고기를 기다린다. 새는 노래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은 걸로 여기지만 사실 온종일 먹이 사냥을 하느라 바쁘다. 풀과 나무도 마찬가지다. 제 몸으로 물 한 줌, 햇빛 한 조각이라도 더 끌어당기려고 쉼 없이 용을 쓴다.
사람인들 다르랴. 먹어야만 살 수 있도록 디자인된 생명체들의 얄궂은 운명을 누구에게 원망하랴. 우리를 손아귀에 틀어쥔 절대적 존재의 계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노자에 따르면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 너희 일은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 툭 그 한마디 던지고 그만이라 했다. 죽는 날까지 왜가리는 오직 혼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슬기로워 혼자서도 끄떡없다. 독존(獨存)의 ‘짱’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 그렇다. 섬약한 가을 노래를 부르는 풀벌레도, 허공을 비행하는 고추잠자리도, 강물에 사는 꼬맹이 피라미도 마찬가지다. 산천에 사는 것들, 저마다 강철처럼 강인해 아름답다. 산천을 바라보는 기쁨은 풍광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산에 강에 거주하는 동식물들이 온몸으로 부르는 생의 짙푸른 합창과 군무에서도 온다.
진뫼마을엔 ‘섬진강 시인’으로 통하는 김용택 시인이 산다. 그는 마을의 산야와 강의 순수를 수호하기 위해 애써왔다.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라고 시로 탕탕 외쳤다. 댐 건설 반대운동에도 앞장서 관철했다. 시인이 달리 시인이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편에 서서, 모든 찍어 누르는 힘들과 맞설 수 있어야 시인이다.
마을 동구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다. 선대들에게 그랬듯 이 나무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의 야외 사랑방이다. 노장들의 준열한 담론이 오가는 회의장이며, 중구난방한 수다로 왁자해지는 사교장이다. 놀이와 오락과 휴식이, 잔치판과 술판이, 간혹은 막춤으로 자지러지는 춤판까지 벌어지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하필이면 왜 정자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의 쓸모 때문만이랴. 정자나무가 마을과 마을 사람을 지켜준다고 믿어서일 게다. 그렇기에 정자나무의 털끝 하나 건들지 않고 살뜰히 섬긴다. 즐기되 존중한다. 아마도 방귀마저 함부로 터뜨리지 않을 것이다. 나무와 마을,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이보다 더 공정하고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 이야말로 진보적인 상생이자 컬래버레이션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본이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미끈한 S라인을 그리며 제 갈 길을 총총히 간다. 굴레를 모르는 행보다. 큰 바위를 만나도 돌아가면 그만이고, 소(沼)가 나오면 쉬엄쉬엄 흐르니 유유하다. 이는 채우지 못한 오욕칠정의 잔해로 뒤엉킨 인간세의 탁류와 얼마나 다른가.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어려움에 봉착하였다고 진리에 어긋난 일을 실행한다면 화가 나에게 미칠 것이니 분수에 맞게 행동할 것이며 경거망동은 피해야 할 일진이다. 힘든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 아는 길도 물어보고 감이 좋으리라.
•84년생 : 방해가 심한 일진이라 상사에게 상의하여 방해를 막아내라.
•72년생 : 관 재만 조심하면 약간의 금전 운이 열리니 들어올 것은 들어온다.
•60년생 : 주식투자는 불길하나 재수는 있으니 내실을 공고히 하라.
•48년생 : 안팎으로 다져나가는데 많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손해를 보리라.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모든 일이 사람 마음먹은 데 달려 있느니 모든 일에 가벼운 마음가짐은 재수를 열어 가는 길이 되리라. 잠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비를 피하듯 처마를 찾을 것이며 비가 그치고 태양이 비추면 도모하던 일에 매진함이 길한 일진이다.
•85년생 : 한 가지 일에 묶여 다른 일까지 어렵게 되니 밀어두고 다음을 기약하라.
•73년생 : 섣불리 건드리면 힘들게 되니 자중함이 어려운 기운을 벗어나리라.
•61년생 : 문서 소송 건이 해결 기미를 보이니 기회를 놓치지 마라.
•49년생 : 막힌 문이 열리듯 침체기를 벗어나는 기운이라 금전 운이 대길하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에 봉착하기 쉽다. 산 넘으면 산이라 강 건너니 또 산이라 또 다른 어려움이 나타날 것이니 미리 대비하라. 알고 가는 길은 어렵더라도 피해 가는 지혜가 있을 것이니 오늘의 일진은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것이 좋을 것이다.
•86년생 : 화마가 문을 두드리니 전기이용을 조심하고 다른 불도 조심하라.
•74년생 : 속태우든 애정 갈등 문제가 다소 풀리나 완전하지는 않으니 노력하라.
•62년생 : 나아가는 기세는 강하나 자금 융통에 많은 신경을 써야 일이 열린다.
•50년생 : 상승한 금전 운에 많이는 생기나 나가는 기운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다사다난한 일진이다. 신경 쓸 일이 많아도 지금은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때이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수습하려다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니 가장 급한 일부터 먼저 해결함이 좋을 괘이다.
•87년생 : 정신이 산만해져 하든 일에 지장이 생기나 곧 좋아지리니 쉬어가라.
•75년생 :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기고 유혹도 많으나 한 우물을 팜이 좋으리라.
•63년생 : 뜬소문이 사람 잡는 것이라 귀가 여리면 큰 손해를 보는 수가 생긴다.
•51년생 : 운세 상승하여 좋은 일은 많으나 한 가지를 취해야 성취하리라.
◈ 용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산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라. 일에 허망함이 많으리라. 오늘의 일진은 마음만 급할 뿐 이루어짐이 적은 운수이다. 분주히 움직여도 실속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니 운기가 불길할 때는 자중함이 길하리라.
•76년생 : 어정쩡한 처세가 일을 망치는 것이라 확실한 판단만이 일을 연다.
•64년생 : 용두사미 같은 날이라 시작은 있고 끝이 안 보이는 수라 조심하라.
•52년생 : 실속 없는 분주함으로 고생만 하는 기운이니 안정함이 길하리라.
•40년생 :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힘드니 무리하게 바라지 않음이 좋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전망은 밝아오는데 기대하는 만큼 안 되고 일이 늦어지는 기운이다. 바라고 소망하던 일이 늦게서야 연락이 오게 되니 미리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지 말라. 운기가 길하면 이루고자 하는 일이 성사하기 쉬울 것이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
•77년생 : 기운이 상승하니 기분은 올라가고 일도 서서히 이루어지리라.
•65년생 : 자금 사정이 풍족해지는 상이라 손만 벌리면 들어오는 수가 있으리라.
•53년생 : 관급 일이 새 기획으로 힘들게 되니 새로운 관계로 개선함이 좋다.
•41년생 :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니 작은 것이라도 정중한 마음으로 받아라.
◈ 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관재 구설 시비가 발동하니 자중하지 않으면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은인자중하는 가운데 불길한 기운도 사라지니, 공사 간에 투쟁이 많으나 시비를 삼감이 어려운 운세를 이겨나가리라.
•78년생 : 바라는 것은 힘이 많이 들고 싸울 일만 생길 것이니 관여치 마라.
•66년생 : 어둠 속에서 헤쳐 나오는 기운이라 잘 움직이면 희망이 보인다.
•54년생 : 큰 실물수가 도래하니 문단속을 잘하여 도둑을 막을 준비를 해라.
•42년생 : 시비 구설만 조심하면 자손들의 경사로 즐거움이 있으리라.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민심이 천심이라 하늘이 동하여 복을 내릴 것이니 심성을 바로 하고 일에 임하면 무슨 일이든 안 되는 것이 없으리라. 오늘의 운수는 과욕을 버리고 자비로운 마음이 복을 받을 것이니 큰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작은 것에 소홀하지 말라.
•79년생 : 과한 욕심만 삼가면 숨은 근심이 해결되고 이성과도 화해된다.
•67년생 : 큰 것에 집착하여 작은 것에 소홀하면 좋은 기운을 망치리라.
•55년생 : 새로운 좋은 자리가 생기거나 아니면 큰 횡재 수를 만나리라.
•43년생 : 꽉 막힌 가운데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니 기력을 찾아 움직여라.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과히 앉아서 천 리를 보는 괘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막힘이 없이 진행될 것이며 결과도 좋을 것이다. 한가로이 누워서도 구만리를 내다보는 격이나 방심하면 물거품이라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80년생 : 좋은 기운이 벋치니 막힘이 없고 희망 가득한 하루가 되리라.
•68년생 : 안일한 생각만 버린다면 안 되는 일이 없고 재수도 길하리라.
•56년생 : 길 성이 안으로 비치니 계획한 대로 얻음이 크나 과신은 금물이다.
•44년생 : 기운은 커 보이나 문서 관계는 때가 아니니 계약은 보류함이 좋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가을볕을 만난 곡식 같은 기운이라 잘만하면 모든 것을 이루리라. 자만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운 맞이를 하는 것이 더욱 길하게 할 것이다. 일진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본 것과도 같도다.
•81년생 : 먼 여행은 삼가라 구설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니 조심하라.
•69년생 : 어려운 일을 귀인이 도와주나 금전 문제는 힘이 드는 일진이다.
•57년생 : 막히던 일이 통기 되고 금전 운도 좋으나 실물 수를 조심해야 한다.
•45년생 : 새로운 발상이 고된 일을 해결해주는 길이 될 것이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격이니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니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이니 만족함이 좋으리라. 과욕을 부리면 길함이 물러 갈 것이니 자중하는 가운데 더욱 길함이 있을 괘이다.
•82년생 : 과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것 많은 것을 바라면 모두 잃는다.
•70년생 : 등에 업은 아기 찾는다고 멀리서 헤매지 말고 가까운 곳을 둘러 보라.
•58년생 : 조금 모자라는 기운이니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46년생 : 조금씩 열어간다는 마음을 가지면 서서히 열리는 상이라.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구설 시비가 발동하니 언쟁과 논쟁은 피함이 길할 것이다. 나에게 이익됨은 없고 구설로 인해 일신에 딱함만이 찾아 들게 한다. 무슨 일이든지 상대와 충돌할 수라. 충돌수를 피함이 상책이로다.
•83년생 : 경쟁 방해가 많아도 정면충돌은 피해야 이득이 있으리라.
•71년생 : 운세는 길하여 들어오는 것은 많으나 싸움을 피해야 하느니라.
•59년생 : 퇴근길에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집으로 직행함이 손해를 안 보는 길이다.
•47년생 : 시비를 청해오는 자가 있어도 상관치 말아야 좋은 하루가 되리라.
여름내 휴가를 못 즐긴 이들이라면 추석 연휴 동안 바캉스를 떠나는 이른바 ‘추캉스’도 고려해볼 만하다. 손주들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워질 객실 패키지와 더불어 추석을 겨냥해 출시된 다양한 프로모션을 소개한다.
파크 하얏트 서울
시그니처 추석 선물 세트 추석을 맞아 그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시그니처 아이템을 모아 선물세트를 선보인다. 코너스톤 시그니처 육류세트(35만 원)를 비롯해, 월악산 벌집 꿀(14만 원), 다문 디저트 플레이트(23만 원), 소믈리에 주류 셀렉션(30만 원, 45만 원), 컴포트 오일 디퓨저 세트(17만 원) 등으로 구성됐다. 추석 당일인 10월 1일까지 호텔 2층 이탈리안 레스토랑 ‘코너스톤’을 통해 예약 및 문의가 가능하다(유선 또는 온라인).
제주신화월드
3대가 즐기는 패밀리 투게더 패키지 독립된 침실 구성으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은 물론 아이, 어른 모두 편히 쉴 수 있는 ‘패밀리 투게더’ 패키지를 마련했다. 3대가 함께하는 추석 여행을 계획한다면 제격이다. ‘스카이 온 파이브 다이닝’ 디너 뷔페, ‘탐모라 찜질방’ 이용권을 비롯해 손주를 위한 키즈 액티비티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12월 30일까지, 55만6000원부터).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추캉스&추석 객실 패키지 명절 연휴 동안 여름휴가의 아쉬움을 가족과 달랠 수 있는 ‘오아시스 레이트 서머 패키지’를 선보인다. 더불어 추석을 겨냥해 호텔을 벗어나지 않고 프라이빗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추석 객실 패키지도 운영한다.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
추석선물&가을 패키지 한가위를 맞아 합리적인 가격의 추석패키지 2종과 ‘명월관’의 보양식 HMR 제품을 선물 세트로 내놓았다. 그밖에 ‘가을이 폴폴’, ‘폴 겟어웨이’, ‘어텀 이스케이프’ 등 취향 존중 가을 패키지 5종도 선보인다.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
추석 음식 패키지 호텔 셰프가 직접 준비한 추석 음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연휴를 즐길 수 있는 패키지를 판매한다. 객실에서 무구며 갈비찜, 궁중잡채, 모둠전, 연잎밥 등 추석음식으로 구성된 고메박스를 함께 제공한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와 사락사락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비슷하게 들려서일까. 아니면 쌀쌀한 날씨,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독서가 그 자체로 운치 있어서일까. 평소에는 바쁜 일상에 독서를 멀리하다가도 가을이 되니 괜히 먼지 쌓인 책장이 눈에 띈다. 한동안 책장 근처를 얼쩡대다 큰 맘 먹고 한 권을 집어 든다. 하지만 지적 욕구로 충만한 마음과는 달리 첫 장을 피는 순간 졸음이 쏟아지고, 하품이 난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이다.
빼곡한 글자 앞에서도 잠들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책과 친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내용에 흥미를 붙여야 한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올 가을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 브라보 독자를 위해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2010)
안정적인 직장과 번듯한 남편까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는 저널리스트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정해진 인생의 행로를 벗어나 계획 없는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로 이어지는 여정 동안 말 그대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내면을 풍요롭게 채워나가는 리즈의 모습을 통해 행복이 그리 복잡하고 거창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할리우드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적인 연기와 더불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 여행지의 아름답고 찬란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 빅피쉬 (Big Fish, 2003)
다니엘 월러스의 원작 소설로, 아들 '윌'(빌리 크루덥)이 병상에 누워있는 노쇠한 아버지 '에드워드'(알버트 피니)의 허풍 가득한 영웅담을 듣고, 아버지가 떠나기 전 그의 진짜 모습을 찾아나가는 내용이다. 젊은 시절 에드워드(이완 맥그리거)의 모험담을 추적하는 윌의 또 다른 여정을 통해 가족 앞에서 영웅인 척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가슴 찡한 진심을 그린다. 괴짜 감독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아 에드워드의 드라마틱한 모험 장면을 환상적이고 동화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촬영 당시 7000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6개의 서커스단, 150여 마리의 동물, 1만 송이의 수선화 등을 투입하는 등 시각적 요소를 극대화 했다.
3. 지니어스 (Genius, 2016)
유력 출판사의 편집자인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가 무명작가 '토머스 울프'(주드 로)의 원고를 보고 그의 가능성을 발견해 세기의 소설가로 키워낸 이야기를 담는다. 오늘날 미국에서 천재 작가로 평가 받는 토마스 울프의 실화 바탕으로, 울프의 4대 장편소설 중 첫 작품 '천사여, 고향을 보라'의 탄생 비화를 그려낸다. 스콧 버그의 책 '맥스 퍼킨스: 천재 편집자'를 원안으로 완성됐다. 연출가 겸 배우인 마이클 그랜디지가 감독을 맡아 1920~30년대 미국 뉴욕을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재현했으며, 콜린 퍼스와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합류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여름이 아무리 비바람과 태풍을 몰고 와 몸부림을 쳐도 가을은 온다. 처서(處暑), 백로(白露)가 지났으니 틀림없다. 뜰 앞 감나무의 감이 그렇고 대추와 밤송이만 봐도 가을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조만간 벼는 누렇게 익어 황금물결로 출렁일 것이다. 푸른 산과 들도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리라. 가을은 이렇게 변화 속에 설렘으로 다가온다. 나는 가을을 특히 좋아한다. 하지만 사계절이 있다는 건 더욱 감사한 일이다. 언젠가 더운 나라에서 온 총각들이 함박눈을 보며 놀라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생전 처음 보는 하얀 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우린 사계절을 통해 온갖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으니 이만저만 축복이 아니다.
가을이 오면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하늘은 푸르고 높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고추잠자리는 높게 떠서 난다. 시원한 대청마루에 다리 쭉 뻗고 책을 읽으면 좋을 계절이다.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러다 나뭇잎이 하나둘 뚝뚝 떨어지면 왠지 모를 쓸쓸함과 우수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인생을 논하고, 삶을 논하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요 사색의 계절이다.
오랜만에 책꽂이에서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꺼내 봤다. ‘가을은’이란 제목이 눈에 띈다. 스님은 가을을 어떻게 느꼈을까?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사필멸(生死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그런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스님 말씀대로 정말 가을은 이상한 계절인가보다. 평소보다 뭔가를 더 생각하게 되고 느낌도 풍부해진다. UN 세계인구전망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세계 인구는 총 77억9500만 명이다. 그중 한국인은 5178만 명이라 한다. 지구촌을 하나의 가족으로 본다면 누군가와의 만남은 78억 명 중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 중 몇 사람이 나와 인연을 맺고 살까? 얼마 전 전라도 지리산으로 며칠 여행을 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없지만,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육십 평생을 이 좁은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았는데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 번이라도 눈웃음을 건넨 사람이라면 참 대단한 인연인 셈이다. 스님 말씀이 무리는 아닌 듯싶다. 이 가을엔 가까운 사람들에게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소중히 생각해야겠다.
법정 스님의 글이 따뜻하게 다가왔다면, 윤동주 시인의 시 ‘가을이 오면’은 살아가는 데 이정표로 삼고 싶을 만큼 큰 울림을 준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인생의 가을이 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문자답하듯 말한다. 그러고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법정 스님이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가슴으로 다가온다. 가을은 이렇게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함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깊은 인연인지 알게 한다. 이 가을에는 풀벌레 소리도 더 귀 기울여 듣고, 모든 이웃에게 따뜻한 눈길을 나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