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그의 손과 눈과 귀는 바삐 움직인다. 손목으로 주전자를 돌리며 커피를 내리고, 필터로 빠져나오는 커피 방울을 눈이 빠지게 지켜본다. 방울이 컵에 또르르 떨어져 쌓이는 소리를 듣는다. 박이추(74) 명장은 지금 커피와 대화 중이다. 커피 생각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그는 가끔 꿈에서도 커피를 만난다.
“이런 제가 비정상이라거나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미치지 않으면 맛있는 커피는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보헤미안박이추커피공장’에서 커피업계의 큰어른 박이추 명장을 만났다. ‘바리스타 1세대’ 1서 3박(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 가운데 유일하게 현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 드립커피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다. 박 명장은 어른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치며 “바리스타 1세대로 불리는데, 짐을 메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부담이 아닌 숙제를 안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박이추 명장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본점에 출근한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쉬는 까닭은 손목과 팔을 우려해서다. 하루에 300잔의 커피를 만든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도 하루 100여 잔을 손님에게 대접한다. 바리스타로 일한 지 40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커피가 탄생했을까. 그럼에도 명장은 아직 커피에 대해 다 깨우치지 못했노라고 겸손한 고백을 한다.
“몸, 마음, 커피가 하나 될 때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실 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죠. 그러나 아직 맛있는 커피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커피가 맛이 없다거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족, 납득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커피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야만 하죠. 내가 발전해야 커피 맛도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 강릉, 그리고 울진
“커피를 배우지 않았다면 목장을 운영하고 있겠죠?” 갑자기 웬 목장이냐 하겠지만, 박이추 명장의 본래 꿈은 낙농인이었다. 재일교포인 그는 1974년 한국으로 와 경기도 포천에서 2만 5000평의 목장을 일궜다. 이후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에서도 소를 키웠지만, 모두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다시금 도시에 살고 싶어져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려면 기술 하나쯤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바로 커피 만드는 방법이다.
“외식 산업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를 배우다가 우연히 커피를 만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커피에 대한 마음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죠. 커피는 커피콩 수확, 로스팅, 핸드드립으로 내리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커피나무를 볼 때가 가장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연을 좋아하나 봅니다. 2018년 라오스에 6000평짜리 커피 농장을 세웠습니다. 보통 3000평에 2000~3000그루를 심는 편입니다. 코로나 후에 못 가봤는데 나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네요.”
1988년 다시 한국에 돌아온 박이추 명장은 서울 혜화동에 ‘가베 보헤미안’을 열었다. 이후 고려대 인근인 안암동으로 옮겨 10년을 보냈다. 믹스커피가 커피의 전부인 줄 알았던 1990년대. 박이추의 핸드드립 커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새롭고 고급스런 커피 맛이 입소문 나면서 카페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 카페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컸지만, 정작 커피 만드는 실력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손님을 만났지만, 서울에서 카페 할 때 만난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강이 좋지 않은 분이었는데, 의사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한 달에 한 번은 저를 찾아왔죠. 그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셨기에 커피 내리는 입장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온전히 커피에 집중하고 싶었고, 바다를 보고 싶었던 박이추 명장은 이번에는 강원도로 내려갔다. 강원도 곳곳을 전전하던 그는 2004년 지금의 본점인 카페를 차리며 강릉에 정착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강릉까지 찾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더해 2009년 강릉 커피축제가 개최되면서 강릉은 현재 커피의 메카가 됐다. 이러한 사연으로 강릉 커피의 원조로 통하는 그는 “저는 그냥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보헤미안박이추커피’는 서울에 두 곳(상암동·여의도), 강릉에 세 군데 있다. 연곡면의 본점, 사천면의 커피공장, 그리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커피를 배운 아들 박태철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경포점. 이처럼 강릉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박 명장은 2025년 경상북도 울진군으로 옮겨갈 계획을 갖고 있다. 그곳도 그가 가면 커피로 유명해질지 모를 일이다.
“강릉은 제게 특별한 곳이고 축복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진으로 가려는 이유는 강릉이 싫어져서가 아니에요. 서울을 떠나왔던 것과 같은 이유로, 사람이 아닌 커피와 대화하고 싶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커피와 가까워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년이면 삼척~ 울진~포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된다고 해서 조금 걱정입니다. 하하.”
행복을 주는 사람
대한민국은 어느새 커피 공화국이 됐다.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전 세계 소비량(152잔)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박이추 명장은 “현대인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 전환도 됩니다. 커피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저는 하루에 커피를 2~3잔 마십니다. 커피 마실 때도 물론 좋지만, 커피 생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로 행복을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제가 만든 커피로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또 행복 아니겠습니까?”
커피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커피 산업이 활성화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커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업계에 뛰어드는 사람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손을 거치는 모든 커피에 애정을 쏟는 박이추 명장이 가장 우려를 표하는 지점이다.
“제게 커피를 배운 제자들도 커피를 돈으로만 볼 때가 있어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 커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마음이 급해져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카페를 열게 되죠. 커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카페를 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페 사장이기 이전에 바리스타로서 커피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죠. 저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위해서 커피를 만듭니다. 그저 주인공인 커피가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니까요.”
로봇 바리스타의 등장에 대해 박 명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커피를 한땀 한땀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사람으로서 허무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AI가 우수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니 신기하다”면서 “맛은 사람만큼 안 날 수 있지만, 일손 해결 등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로봇 바리스타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커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은 마음을 잘못 품은 것이기에 그 점을 질책한 것이라 해석된다.
박이추 명장은 커피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커피를 못 만드는 날은 아마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면서, 앞으로도 커피를 인생의 친구로 두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명장은 어느 책에서 본 ‘맛있는 커피는 당신의 팔자와 운명을 바꾼다’는 문장을 언급하며, “나는 이 말을 믿는다”고 밝혔다. 그 말이 사실이 될 수 있음을 박 명장은 이미 증명하지 않았는가.
시니어 토탈케어 기업 케어닥이 SK디앤디(SK D&D)와 시니어타운을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니어타운 표준 등급 가이드’를 개발, 공개한다고 27일 밝혔다.
케어닥과 SK디앤디는 주거 공간으로서 표준화된 명확한 시니어타운 시설 기준이 미비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장 내 시니어 하우징 상품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실제 소비자들은 시설별로 제각각인 데다 다소 생소한 시니어타운의 용어와 기준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번 등급 가이드 개발은 표준화된 기준을 제공, 상품 선택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평가 기준은 △규모 △프로그램 △입지 △부대시설 △건강관리 △공간디자인 △F&B △IT솔루션 △생활 편의 △기타 평가 등 크게 10가지 항목에 맞춰 구성했다. 서비스 및 공간 평가 세부 지표는 50여 개에 달하며 내외부 시설과 공간 구성은 물론 의료, 돌봄, 제공 프로그램, 편의 서비스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각 지표 별 점수를 더한 최종 점수 합계에 따라 총 7가지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1,2등급 시설은 기본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무료 및 실비 시설이며, 유료 시설인 3등급부터 본격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
등급 가이드 내 기준 및 지표는 현장 실사를 비롯해 실제 시니어 인터뷰, 각 분야 전문가의 첨삭 등을 거쳐 구성했다. 한국시니어타운협회 회장인 박동현 고문 및 케어닥 내 시니어 하우징 전문가들도 가이드 개발에 대거 참여했다. 박동현 고문은 “시니어타운의 서비스 및 품질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가늠할 수 있는 명확한 선택의 기준과 적정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번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진미정 서울대 웰에이징산업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는 “시니어 하우징에 관한 요구 증가에 반해 체계화된 정보는 아직까지 부족한 상황”이라며 “케어닥의 시니어 하우징 표준 등급 가이드 모델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박병선 교수 역시 “케어닥이 개발한 이번 가이드는 현재 증가 중인 시니어타운의 품질을 표준화해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주목도가 높다”는 기대감을 밝혔다.
케어닥은 SK디앤디 등 시니어 하우징 운영 특화 기업들이 참여한 조인트벤처 ‘케어오퍼레이션’과 함께 시니어타운 표준 등급 가이드를 지속적으로 개선,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나아가 향후 국내 시니어타운의 시설 및 서비스 내역, 후기 등 다양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등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위한 관련 서비스 론칭도 예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니어 하우징 업계 선도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시장의 전반적인 품질 향상을 이끌어내겠다는 포부다.
케어닥 박재병 대표이사는 “시니어타운 입주는 사실상 노년기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인 만큼 기존 부동산 소비와 달리 노후 생활의 특성을 고려한 객관적이고 새로운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며 “케어닥의 이번 시니어타운 표준 등급 가이드가 소비자 선택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노후 생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디앤디 김도현 대표는 “시니어 주거 공간을 판단함에 있어 어떤 점을 중시할 것인지 기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향후 케어닥과 케어오퍼레이션을 넘어 시니어 업계 전체의 의견을 함께 가감해 가며 더욱 좋은 가이드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때때로 그의 태도나 인식 변화가 엿보인다. 현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장르는 더 그러하다. 줄곧 정치·사회 이슈를 다뤄온 이마리오(52)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에게도 뚜렷한 변곡점이 포착됐다. 모노톤의 어둑했던 포스터들을 뒤로하고 형형색색 꽃이 만발한 포스터가 등장한 것. ‘갑자기 왜?’라는 의문을 풀러 이 감독이 있는 강원도 삼척으로 향했다. 이내 그곳과 한껏 어우러진 그의 모습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답을 찾았다.
이마리오 감독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더 블랙’ 등을 통해 사회문제를 날 선 시각으로 비춰왔다. 강원도 동해 출신인 이 감독은 대도시 서울에서의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단다. 그중에는 외면하기 힘든 현실, 불편한 진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시한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다큐멘터리를 택했다. 작품을 이어가던 그에게 어느덧 수많은 ‘앎’이 삶의 피로로 다가왔다. 타인과 사회를 비추던 앵글이 스스로를 향하던 순간이었다.
“서울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일손이 늘 모자라잖아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힘들어하는데 차마 ‘나 서울 못 살겠어’라며 도망치듯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마침 강릉에서 미디어센터를 만드는데 함께 준비해달라는 제안이 온 거예요. 굉장히 그럴듯한 핑계가 생긴 덕분에 서울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죠. 막상 ‘그래도 가지 마라’ 붙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요.(웃음) 그렇게 마흔을 앞두고 강릉에 내려왔습니다.”
고향과 가깝고 인맥도 있는 강릉인지라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대도시에서 탈출(?)한 해방감과 자유는 만족감으로 다가왔다. 벌이나 씀씀이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상은 더욱더 풍요로워진 기분이었다.
“대도시 삶과의 차이를 꼽자면 시간과 생활을 주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 속 하나의 부품처럼 무언가에 끌려가는 듯했고, 존재감도 작았죠. 그런데 지역에 살다 보니 내가 삶을 결정하고 컨트롤할 수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전에는 안 됐으니까요. 또 서울에서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그 일을 해낼 사람들이 있었다면, 여긴 인구도 적고 이 분야 전문가도 부족한 편이잖아요. 똑같은 역량을 가지고도 쓰임새가 훨씬 많아진 거죠. 나의 쓸모를 발휘하며 주도적으로 사니 자존감도 높아졌고 삶도 충만해졌어요.”
현실로부터 현실을 바꾸는 다큐멘터리의 힘
일상이 바뀌자 자연스레 시선도 변화했다. 한때는 사회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냉철하게 바라봤지만, 이제는 둥글둥글 온정 어린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다. 다정하고 따뜻한 것들을 자꾸 마주하다 보니 카메라에도 담아보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이 감독의 시선은 강릉의 구도심 명주동의 ‘작은정원’에 머무르게 된다.
“명주동에 ‘작은정원’이라는 이웃 모임이 있는데요. 여기에 최소 40~50년 한 마을에 살았고 서로 30년 넘게 알고 지낸 주민들이 계시거든요. 이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마트폰 사진 촬영 프로그램을 서포트했는데, 그때부터 언니들과의 인연이 시작됐죠.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큐로 담아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3년 정도 수업을 더 이어가다가 영화 제작을 결심했죠.”
그가 언니라 말하는 이들은 평균 나이 75세인, 영화 ‘작은정원’ 주인공들이다. 보통 우리 사회에서 여성 노인들에 대한 호칭은 할머니나 어머니 아니면 어르신, 선생님 정도일 것이다. 초반엔 이들도 그러한 호칭을 썼는데, 어쩐지 거리가 느껴졌고 언니들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러다 누군가 우연히 ‘언니’라 불렀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날부터 명주동 할머니들은 모두의 언니가 되었다. 이제는 촬영 스태프도, 동네 청년들도, 영화를 본 관객들도, 너나 할 거 없이 그들을 언니라 부른다.
“저도 처음엔 어머니뻘이라 언니라는 말이 어색했는데, 막상 입에 붙고 나니 너무 좋더라고요. 관객평 중에 그런 말이 기억에 남아요. 강릉 명주동에 가면 그런 언니들이 있고, 그런 언니들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언니’라고 부를 것만 같다는. 저도 요즘은 관객들을 만나면 그 얘기에 보태 명주동을 한 번씩 들러주시고, 그곳에서 언니들을 보시면 꼭 ‘언니’ 하고 아는 체를 해달라고 권해요. 어떻게 보면 영화 속 이야기가 바로 현실로 접목될 수 있다는 점이 다큐멘터리의 힘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사드리고 싶었다”고 이야기하자, 이 감독은 재차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힘”이라 강조했다. 또 단순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라는 등 감상에 그치지 않고 어떤 다짐이나 실천, 행동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죠. 창작자 입장에서도 그런 과정을 경험하지만 관객에게도 비슷하게 작용한다고 봐요. 또 현실의 상황이나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에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고요. 어떤 분은 영화를 보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하셨대요. 사실 그 정도 반응을 이끈 것만으로도 성공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어떤 계기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카메라에 담긴 ‘진짜 나’와 마주하다
다큐멘터리 창작자는 사건이나 인물에 한층 더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내막이나 내면이 드러나기도 하고, 진실을 발견하거나 해답을 얻기도 한다. 짜인 각본이 없기 때문에 결과를 두고 작업하기보다는, 결과에 다가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감독 또한 자신이 품었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언니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삶을 살 수 있지? 나도 나중에 그들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이토록 깊은 관계를 어떻게 오래 이어왔을까? 그런 궁금증들이 있었는데 촬영을 진행하며 답을 다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언니들이 변화하는 과정이었어요. 구체적인 모습을 그린 건 아니지만,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 같아요.”
이 감독은 이미 그 변화를 확인 바 있다. 당시 선생님 역할을 맡았던 최승철 감독이 수업 초반 언니들의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었는데, 90% 이상이 꽃 사진이었단다. 그랬던 이들이 점차 자신과 서로의 얼굴을 담은 사진들로 채워나가고, 영상 촬영을 배우며 영화 제작까지 뛰어들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언니들은 단편 극영화 ‘우리동네 우체부’를 완성했다. 영화는 2020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시스프렌드상을 받는 기분 좋은 성과도 얻었다. 사실 이러한 대외 평가보다 더 의미 있었던 건 언니들 내면의 긍정적 변화였다. 이 감독이 당초 확신했던 변화가 이변 없이 일어난 것이다.
“초반에는 주름진 얼굴과 굽은 등을 촬영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언니도 계셨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니, 나중엔 직접 배경이나 구도를 제안하기도 하시고, 대사하듯 일부러 이야기도 하시고요.(웃음)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게 보였어요. 한번은 희자 언니가 밭일을 나갔다가 고춧대에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영상을 찍으셨는데 ‘대박!’ 저보다 낫더라고요. 한편으론 이 시대 젊은이로 태어났다면 더 굉장한 일들을 해내셨을 텐데 싶기도 했어요. 물론 언니들도 나이 듦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결국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해가셨죠. 영화에는 언니들의 셀프 영상이 많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면 자신의 외모나 목소리가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잖아요. 처음엔 힘들어하고 어려워하셨는데, 나중엔 그런 외적인 부분도 다 받아들이고 자신의 속내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시더라고요. 그렇게 나이 듦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픔이나 고민과 마주하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변화해가셨죠.”
흔들림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다
아직 언니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우리동네 우체부’에서 감독을 맡았던 춘희 언니는 벌써 다음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고. 이 감독에게도 차기작 계획이 있는지 묻자 “아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올해부터 삼척 도계읍에서 ‘폐광지역 통합 영상미디어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당분간은 이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2025년이 되면 도계읍도 마지막 폐광지역 중 하나가 됩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끝나가는 시점에, 이곳에서 터전을 이뤘던 이들에게 생기는 변화에 주목하려 해요. 이미 폐광지역의 지난 역사를 기록하는 건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하고 있고요. 그보다는 폐광이 되고 난 이후에 달라지는 주민들의 생활이나 내면의 변화를 그리는 작업을 생각 중이에요. 그런 것 외에도 읍 단위 미디어센터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요즘은 그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센터 일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깃거리를 찾아가겠다는 계획이다. 언니들을 만나 ‘작은정원’을 제작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런 고마운 순간이 언제 또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불안하거나 막연하지는 않단다. 때론 흔들리더라도 그 흔들림을 즐기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이 감독이다.
“‘작은정원’ 작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이거예요. 소위 개똥철학 같은 건데,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 삶을 살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거든요. 근데 작품에서도 언니들이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더군요. 물론 아직은 흔들릴 때도 많지만, 언니들을 보면 나이 들었다고 해서 그런 흔들림이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그 흔들림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어요. 인간은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흔들림이 멈춘다면 생명력이 끝나는 단계라고 봐요. 그러니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 그런 흔들림을 즐겨보셨으면 해요. 그렇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이나 가능성의 씨앗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된 2008년을 시작점(100)으로 비교·분석한 결과, 국내 노인들의 ‘돌봄 비용’ 부담과 ‘주거 공백’ 위험도가 15년 전 대비 66지수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시니어 토탈 케어 플랫폼 케어닥이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박병선 국립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함께 국내 65세 이상 노인 돌봄 현황을 분석한 ‘노인돌봄공백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노인장기요양공백, 노인시설공백 등 노인 돌봄에 필요한 비용과 인프라, 자원 현황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통계청 및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돌봄 서비스 관련 자료를 토대로 노인돌봄공백지수를 산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수는 도입 첫해인 2008년(21만 명) 대비 2021년 91만 명으로 336%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전체 노인 인구수 839만 명 중 10.9%이며, 약 89%의 노인이 지원받지 못하는 돌봄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경우 100% 자부담으로 간병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2021년 기준 월평균 간병비는 약 310만 원으로 2008년 대비 51% 상승했다. 보고서는 “2021년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333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간병비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노인의 생애주기에 따라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주거·요양시설에 입소하지 못하는 노인들 역시 2021년 기준 97%(816만 명)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노인주거 및 요양시설은 총 6158개소다. 이는 전체 노인 인구 839만 명의 2.7%인 약 23만 명이 입소할 수 있는 규모로, 실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발생해도 입소 가능한 시설이 없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2008년 대비 2021년 ‘노인돌봄공백지수’는 66지수로 크게 증가해, 725만 명의 노인이 장기요양 서비스도, 돌봄 시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돌봄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의 지원에도 급속도로 늘어가는 노인 인구 속 발생하는 돌봄 부담과 공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셈이다.
케어닥은 이번 노인돌봄공백지수 분석을 시작으로 국내 노인 돌봄의 현황을 파악하고, 국내 상황에 꼭 필요한 돌봄 해법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매년 1회 발표할 예정이다. 노인돌봄공백지수 검수에 참여한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가족학과 진미정 교수는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노인 돌봄의 수요가 증가하고 필요한 형태도 다양해졌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도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마저도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노인돌봄공백지수는 노인 돌봄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얼마나 균형을 이루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며, 유형별·지역별 노인 돌봄 서비스의 실태를 파악하고 서비스 개발과 공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선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케어닥에서 발표한 노인돌봄공백지수는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인 돌봄의 공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노인 돌봄의 현주소이자 돌봄 사각지대의 규모를 보여줄 수 있는 지수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케어닥 박재병 대표는 “노인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대비 돌봄 공백의 부담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국내 현황을 많은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노인돌봄공백지수'를 고안해 선보이게 됐다"며 ”노인 돌봄 공백의 장벽을 더욱 건강하게 넘어서기 위해서는 장기요양등급 수가 제도의 개편 및 적절한 인프라의 확충, 나아가 민간주도형 시니어 주거복지 제도 지원, 요양서비스 민간화 확대 등 민관의 보다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그건 말이지, 마치 이런 것과 같아. 냉장고에 먹을 만한 게 없는 것과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의 차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데도(애인이라고 해도 좋고) 마음이 허전한 것과 혼자 살기 때문에, 옆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공허한 것의 차이란 말이야. 전자는 냉장고 안에 먹고 싶은 게 없는 거고, 후자는 냉장고가 완전히 텅 비어 배고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말이지.”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산 지 15년. 늘 배고픈 사람처럼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제는 지겹기조차 한 나에게 역시나 혼자 사는 친구가 해준 말이다. “너와 나는 냉장고가 비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그러니 남편이, 연인이 옆에 있어도 외롭다든가, 한술 더 떠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냉장고가 그득한데도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서, 입에 맞는 식재료가 없어서 짜증이 난다는 말이지?”라고 응수해주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럴듯한 비유처럼 들린다. 냉장고가 완전히 텅 비어 있을 때와 먹을 만한 것, 내 입에 맞는 것이 없을 때의 차이란 차원이 다른 비교이지 않나. 아예 비교가 불가하거나. 그래서 냉장고가 텅 빈 사람들은 먹을 것 자체를 찾아 허덕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환상 속에서나마 가슴속에 어떤 남자, 어떤 여자를 들여놓게 된다고. 그 친구 말이 그렇게 막연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허기진 마음을 달래는 것은 당연히 무죄이고, 냉장고는 차 있지만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소위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유죄란다.
그러면서 친구가 덧붙였다. 늘 배가 고프니까 먹을 수 없는 것조차 먹을 것인 줄 알고 간혹 마음에 품는 경우도 있다고.
품지 말아야 할 사람을 품은 나
1년 전 나는 과거 결혼할 뻔한 옛 연인을 만났다. SNS를 통해 내가 그 사람을 찾았다. 문득 궁금했고 그 궁금함이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조바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만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선 얼마나 로맨틱한가. 아내와 이혼 후 젊은 시절 자신을 짝사랑하던 여성과 재혼한 운 좋은 50대 남자 이야기를 어느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남자는 적극적으로 그 운명의 여인을 찾아 나섰다고. 20년 전 자기를 좋아해주었다는 인연만으로 용기를 낸 남자. 그 여자가 여전히 자신을 좋아하는지 궁금했고, 좋아한다 해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면(응당 꾸렸을 테고) 아무 의미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무작정 찾아보고 싶었고, 무모한 짓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던 것처럼,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 나섰을 때 기적 또한 찾아온 것이다. 어떤 연유인지 그 여자는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살고 있었고, 비록 재혼이지만 가슴 설레던 풋풋한 시절 짝사랑하던 남자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나 청혼을 해왔으니 ‘Why not?’, 그 청혼을 덥석 받아들여 두 사람은 지금 알콩달콩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기적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저 한 번 보고 싶었고, 인터넷 세상이니 큰 어려움 없이 만날 수 있었던 것뿐이다. 그는 물론 기혼남이었다. 나를 기다리며 결혼하지 않은 기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내 마음은 설렜다.
32년 만이었다. 내가 결혼하던 해가 그와 헤어진 해이니. 결혼의 인연은 따로 있다지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따로 인연이지 않았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나는 결혼하기 3년 전 여행지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 졸업 전에 친구 세 명과 함께 간 2박 3일의 늦가을 강릉 여행이었다. 셋 다 남자 친구가 없었기에 여행지에서 근사한 일이 생겼으면 하는 20대다운 기대와 설렘으로 떠난 여행. 그런데 그 바람대로 여행지에서 대학 졸업반 남학생 세 명을 만난 것이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들이어서 나이는 우리보다 많았지만, 그래서 더 의지가 되고 든든한 면도 있었다. 그중에서 그와 내가 커플로 맺어졌다. ‘커플 탄생’이라고 했지만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고 이후 둘이 사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결혼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 그도 물론 결혼했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내가 다른 남자(15년 전 세상 떠난 남편)와 결혼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 남자는 직장 동료였다. 의상학과를 나온 나는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되었고, 같은 해 입사 동기로 남편을 만났다.
당시 호황기를 타고 야근하는 일이 잦았는데, 마침 집이 같은 방향이라 늦은 밤 퇴근길에 나를 집에 바래다주고 가는 것이 죽은 남편의 또 다른 일상이 되었다. 물론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연인이 있었지만 일이 바쁘던 그 무렵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 틈을 타고 ‘오피스 와이프’라는 말처럼 그가 ‘오피스 연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30년을 뛰어넘어 찾아온 설렘
업무상 실수가 발생한 것은 입사 후 3년을 넘긴 직후였다. 내가 오더를 내는 과정에서 숫자를 잘못 기입하는 바람에 문책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마침 그도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상황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그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나 대신 징계를 당할 각오를 하고 자신이 실수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은 모르게 하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내게는 더 감동적이었다. 그 일로 그와 나 사이엔 비밀이 생기게 되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다행히 징계는 면했고 이후 그와 나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단순히 고마운 마음을 넘어 나는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고, 그 틈을 타서 그는 내게 사랑을 고백해왔다.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한 고백이니 그로서는 모험이자 용기가 필요했을 터. 인연이 되려고 그랬을까. 나는 그의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결과 3년을 사귀던 애인을 배신하게 된 것이다. 물론 결혼을 약속하고 사귄 것은 아니었지만 연애의 배신도 배신이었다. 나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수밖에. 내 마음은 이미 직장 동료에게 기울어져 있었으니.
날벼락을 맞은 건 당시 나의 연인. 그러니까 남편이 죽고 32년 만에 만난 지금 이 사람. 한 가지 현실적 변명을 하자면 그 사람과 나는 동성동본이었다. 당시 동성동본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때였다. 사귀고 있을 때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서로 애를 쓰던 장애물이 헤어지려고 하니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어 수면에 떠올랐다. 저절로 떠오른 게 아니라 내 쪽에서 일부러 밀어 올렸다는 표현이 옳다. 그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오피스 연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나는 물론 옛 연인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그와 함께 있으면 흥겹고 재미있었다. 고된 업무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일상의 지루함과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사람이었다.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내 기질에도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피스 연인을 선택했으니, 업무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일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를 남편과 사별한 후 다시 만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많이 설레었다.
냉장고가 꽉 찬 사람
만남이 1년으로 이어지면서 친구의 ‘냉장고론’을 떠올린다. 그는 유부남, 나는 사별녀. 한때 아무리 사랑했다 해도 우리의 현주소는 이러하며, 그의 냉장고는 채워져 있고 나의 냉장고는 텅 비어 있다. 그에게 나는 별 의미가 아니지만 내게 그는 큰 의미다. 아내가 있는 그는 재미로, 호기심으로 나를 만나는 거겠지만, 혼자인 내게는 그가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서 그만 끝내야 한다. 윤리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두려운 것보다 내가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 두렵다.
재혼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뿐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재혼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기 마련이다. 재혼까지는 아니라 해도 친구로 지낼 정도의 누군가를 사귀기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만남 쪽으로 내 마음이 자꾸만 쏠린다는 것이다. 나의 냉장고는 늘 비어 있으니 지금 이 사람으로 채우고 싶은 강박적 생각을 끊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지인으로부터 곧 누군가를 소개받기로 되어 있다. 소개를 받는다고 맺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소개조차 받고 싶지 않은 게 문제다. 아무 실속도 없고, 실속은커녕 결국 가슴앓이로 끝날 관계, 나만 상처받게 될 인연임을 잘 알면서도.
그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시들하든 무심하든 그는 자신의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냉장고를 비우지 않을 것이며, 꽉 채워진 그 상태 그대로 나를 만나려고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로 질주하는 내 마음을 어찌할까. 이대로 그에게 사로잡혀 그의 노리갯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좀 그러면 어떤가.
해양수산부가 중장년 여성 어업인을 대상으로 특화건강검진 시범 사업을 실시한다.
대상지는 강원도 강릉시, 충청남도 보령시, 전라북도 군산시 등 15개 기초지자체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50세 이상 70세 미만 여성어업인을 대상으로 한다. 대상자는 해당 지자체에 미리 신청한 후 지역별 특화 건강검진 기관에서 2만 원 이하의 자부담만 내면 된다(검진비의 90% 지원).
54~69세는 일반 건강검진에 일부 항목이 포함돼 있어 특화 건강검진 자부담 비용은 1만6200원 정도다. 특히 강원도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 양양군, 속초시, 고성군, 인제군과 충청남도 보령시, 삼척시, 양양군, 속초시, 고성군, 인제군과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경상남도 사천시에 거주하는 여성어업인은 지자체의 지원으로 무료 검진이 가능하다.
2019년 해양수산부 소득복지과의 ‘여성어업인 질환 현황 조사 및 여성어업인 특화 건강검진 도입 방안 연구’에 따르면 여성 어업인의 유병률이 남성어업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어업인의 경우 주로 맨손어업이나 나잠어업에 종사해 남성 어입인에 비해 관절염, 요통 등 근골격계 질환을 갖는 경우가 많다.
작업상 위험 노출도는 남성이 더 높았지만, 여성이 상대적으로 손상, 질병 등에 취약해 유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어업 관련 질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골격계 질환 역시 여성의 질병률이 남성보다 높은 수준(남성 3.1%
2020년 우리나라의 화장률은 전국 평균 90%를 넘어섰다. 일부 시골 지역을 제외하면 대도시 지역은 95% 이상으로, 국민 대부분이 고인을 화장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장이라는 장법은 화장 이후 유해를 봉안 또는 자연장 하기 때문에 2차 장지가 필수적이다. 이번 편은 ‘장례 비용 얼마나 들까’의 마지막으로 화장장 비용과 2차 장지 비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
화장장 비용
화장 비용은 지자체의 복지 성격이 강하다. 한 분의 고인을 화장하는 데 필요한 원가가 33만 원 정도인데 관내 주민들의 화장 비용으로 5만~15만 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고인이 거주하던 주소지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화장장일 경우 적은 비용으로 화장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화장할 경우에는 훨씬 비싸다. 예를 들어 주소지가 서울로 되어 있는 분이 서울시 화장장(서울시립승화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하면 12만 원인데, 성남이나 인천에서 하면 100만 원을 내야 한다.
만약 지자체에서 화장장을 운영하지 않는 경우에는 화장장려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와 국가유공자는 관할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화장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공설 봉안당, 자연장지
화장 이후 유해를 모시는 봉안당과 자연장지 역시 지자체에서 공설로 운영하여 지역민들은 적은 비용으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화장장을 운영하지 않는 안산, 양주, 광명 등에서도 공설 봉안당이나 자연장지를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설이 사설에 비해 시설이 열악한 경우가 있었으나, 근래에는 시설이 많이 좋아져 사설과 차이가 거의 없다. 다만 사설은 봉안당이나 수목장의 위치나 크기를 직접 선택할 수 있지만, 공설은 순서대로 모셔야 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모셔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서울의 경우 공설 자연장(수목장, 잔디장)은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지만, 봉안당은 이미 만장되었기 때문에 국가유공자와 기초생활수급자만 모실 수 있다.
사설 봉안당, 자연장지
사설 봉안당은 서울 공설 봉안당이 만장될 때쯤 서울 근교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서울 외곽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사설 봉안당의 특징은 같은 모양이지만 선호하는 높이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흔히 아파트에서 로열층이라고 하는 것처럼 봉안당에서는 눈높이 쪽을 로열단이라 부르고 가격도 가장 비싸다. 제일 아랫단이나 윗단에 비해 3배 넘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서울 근교 봉안당의 로열단 가격은 일반실 기준으로 600만~800만 원 정도다.
사설 자연장지는 수목장이 유행하면서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산이나 공원 같은 곳에 널찍널찍 심어져 있는 나무에 유해를 모시는 곳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의 사설 수목장지는 공원묘지처럼 작은 나무들을 줄 세워 식재하고 분양하는 방식이다. 쉽게 생각하면 공원묘지에 봉분 대신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형상이다. 공동목, 개인목, 부부목, 가족목 등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을 선택할 수 있으며, 보통 성인 크기의 가족목 분양 가격은 1000만 원이 넘어간다.
이러한 사설 봉안당이나 자연장지의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20~40% 정도의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1000만 원짜리 봉안당을 할인 없이 소개할 경우 400만 원 정도의 리베이트가 발생하는데, 이것을 장지 소개 업체와 장례지도사들이 3:7 정도로 나눠 갖는다.
산골, 해양장
산골은 유골을 뿌리는 장법이다. 산골이 불법이다 아니다 논란이 많은데, 정확히 말하면 불법은 아니다. 우리나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산골에 대한 조항이나 규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뿌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국유지나 타인의 사유지에 허락 없이 뿌리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화장장에는 유택동산이라는 산골장이 있다. 이곳과 개인 사유지에 산골하는 것 외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근래에는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해양장도 유행하고 있다. 인천, 강릉, 부산 등에서 허가받은 업체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해안가에서 5km 이상 떨어진 곳에 부표를 설치해 그곳에 유골을 뿌리는 방식이다. 일본의 경우 해양장이 굉장히 고급스럽고 다양한 의식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해양장은 산골한 후 유족이 원할 경우 간단한 제례의식을 진행하는 정도로 아직 많은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 비용은 50만 원 내외다.
장법을 결정하고 장지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전문가가 조언을 해주느냐는 것이다. 괜찮은 공설 시설에 모실 수 있는 자격이 되더라도 되도록이면 알선 수수료를 주는 곳으로 안내하는 장례업자나 장례지도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가지 쓰지 않고 적절한 장지를 선정할 수 있도록 사전 상담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주춤해지면서 소비자 맞춤 여행 상품이 곳곳 출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농촌진흥청은 국내 여행 활성화와 농촌체험 여행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농촌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상품인 ‘농촌체험 여행지 8선’을 지난 6월 소개했다.
이번 여행상품은 소모임 단위 여행객이 농촌교육농장, 농촌체험농장에서 1박 2일 동안 체험·관광·식사·숙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정으로 설계됐다. 각 농촌교육농장, 농촌체험농장은 지난 4월에 실시한 ‘농촌체험·관광 활성화 프로그램’ 공모에서 선정된 곳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농촌문화, 자연경관, 지역 먹거리 등을 소재로 한 농촌체험 여행에 관심이 높은 40~60대 여성 취향에 맞춰진 점이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여행지 8곳은 △강원 강릉 ‘해품달’ 농장 △강원 횡성 ‘횡성 예다원’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 △전남 화순 ‘화순허브뜨락’ △경북 김천 ‘송알송알 산골이야기’ △경북 안동 ‘토락(土樂)토닥’ △경남 고성 ‘콩이랑 농원’ △제주 서귀포 ‘폴개 협동조합’이다.
△강원 강릉 ‘해품달’ 농장
강원 강릉 ‘해품달’ 농장은 4만 여권의 책으로 꾸며진 실내장식과 야외 조형물이 인상적인 곳이다. 2~4인이 머물 수 있는 쾌적한 숙소와 대형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색 숙소도 마련되어 있다.
맷돌로 직접 커피콩을 갈아 마시는 체험과 뗏목 타기, 농장 산책 등을 할 수 있으며 야간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잔디밭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둘째 날 조식으로 초당순두부가 제공된다. 또한 오죽헌, 주문진 수산시장 등 지역 명소와 가까워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강원 횡성 ‘횡성 예다원’
강원 횡성 ‘횡성 예다원’은 해발 300m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예절교육 지도사이자 차(茶) 연구가인 농장주에게 다도(茶道)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찻잎을 덖어 차를 만드는 제다(製茶)체험, 계절별 전통음식 만들기, 둘레길 걷기 등 체험 거리가 풍성하다. 또한 찜질방 이용, 별 보기 등 심신 힐링을 할 수 있다. 주변 볼거리로는 횡성호수가 있어 산책하기 좋다.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
전북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고창 ‘책마을 해리’는 폐교된 초등학교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 곳이다. 이색적인 도서관들이 많고, ‘읽고 쓰고 펴내는 인생 책 농사’를 주제로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 명소인 선운사, 고창읍성, 상하농원 등과 연계하면 1박 2일 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전남 화순 ‘화순허브뜨락’
전남 화순 ‘화순허브뜨락’ 농장은 약 4000평에 달하는 정원에 꽃과 허브가 가득한 곳으로 안온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둘레길 걷기나 허브 오일·허브 소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로 만든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숙소는 편백나무방, 황토방으로 나뉘어 있다.
△경북 김천 ‘송알송알 산골이야기’
경북 김천 ‘송알송알 산골이야기’ 농장은 500미터 고지의 호젓한 산골에 있다. 산세가 수려해 야영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천연염색 스카프 만들기, 숲속 걷기 후 새송이버섯 수확 체험을 할 수 있다. 김천을 대표하는 수도산 자작나무숲, 사찰 청암사, 용추폭포 같은 지역 명소와 연계하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경북 안동 ‘토락(土樂)토닥’
경북 안동 ‘토락(土樂)토닥’ 농장은 ‘카페형 치유농장’을 지향하는 곳으로 도자기 공예를 체험하며 나만의 접시를 만들 수 있다. 농장주가 요리한 ‘안동한우불고기’에 텃밭에서 딴 쌈 채소를 곁들이는 저녁 식사가 별미다. 밤에는 사과나무 장작으로 만든 모닥불 주위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도보로 낙동강 산책길, 마애솔숲공원을 갈 수 있고, 차로 15분만 이동하면 하회마을, 병산서원 등 지역명소에 갈 수 있다.
△경남 고성 ‘콩이랑 농원’
경남 고성 ‘콩이랑농원’은 1000개가 넘는 항아리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 진풍경인 곳이다. 콩으로 만든 다양한 전통 장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고추장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농장 인근에는 영부저수지 산책길, 민간정원인 그레이스 정원 수목원, 상족암 군립공원 등 다양한 걷기 여행길이 있다.
△제주 서귀포 ‘폴개 협동조합’
제주 서귀포 ‘폴개(뻘이 있는 갯벌이라는 제주 방언) 협동조합’은 제주 귀농인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제주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들의 제주살이 이야기를 도움말 삼아 농장에서 머무는 동안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유기농 블루베리 수확, 생화로 꽃다발 또는 꽃모자 만들기, 농장 주변 산책길 걷기, 잔디밭에서 밤하늘 보기 등을 할 수 있다. 아침 식사는 농장에서 준비한 소풍 도시락을 가지고 정원에 나가 먹을 수 있다.
각 여행상품 예약은 여행플랫폼 ‘노는법(nonunbub.com)’ 누리집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할 수 있다. 올해 11월 말까지 상품가격의 약 50퍼센트를 할인하는 특가 행사를 진행한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과 박정화 과장은 “코로나19 이후 삼삼오오 모여 자연 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누리고 싶은 소비자들의 경향을 반영해 농촌여행 상품을 공모하게 됐다”라며 “상품개발은 지방자치단체, 예약은 새싹기업 여행플랫폼에서 맡아 진행하는 이번 여행상품이 정부-지자체-민간이 협력해 만든 농촌여행 우수사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다음달 2일부터 30일까지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에 따라 높아지고 있는 국민들의 여행 수요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여행가는 달 캠페인은 국내관광 시장의 빠른 회복을 위해 2014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2주 동안 운영했던 ‘여행주간’의 연장선이다. ‘2022 여행가는 달’은 국내 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여행으로 재생(再生)하기’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많은 기관들이 참여해 국민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혜택을 마련했다.
여행을 떠나는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관 기관과 민간여행업체들이 교통과 숙박, 관광지·시설 등 각 분야에서 특별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교통 부문에서는 고속철도(KTX)와 5개 관광열차 요금을 최대 50%까지 할인받아 이용할 수 있고, 렌터카와 항공, 도시관광(시티투어) 버스도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숙박 부문에서는 7만 원 초과 숙박상품 예약 시 사용할 수 있는 지역별 할인권을 발급한다. 오는 6일부터 9일까지는 행사 참여 8개 지자체(강원, 경기, 경북, 대구, 대전, 부산, 세종, 인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5만 원 특별할인권을 선착순으로 발급하고, 10일부터는 전 지역(서울 제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3만 원 숙박할인권을 발급한다. 국가에서 인증한 한국관광품질인증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국민에게는 50%(5만 원 한도)까지 할인을 제공한다. 강릉, 동해, 삼척, 영월, 울진 등 산불 피해 지역의 조기 회복을 돕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숙박할인권을 발행하는 특별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이 밖에 유원시설과 캠핑장 이용요금 할인, 여행업계와 여행가는 달 참여 기관의 자체 할인 행사 등 다양한 할인 혜택이 준비돼있다. 단, 모든 할인 혜택은 준비된 예산이 소진되면 종료될 예정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체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도 풍성하게 마련했다. 최근 여행 흐름을 반영해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마음 챙김’, 개개인의 여행 취향에 맞춘 ‘나만의 여행’, 지역의 특별한 친환경 관광자원을 활용한 ‘지역특화’ 등 3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여행 프로그램 36개를 운영한다.
참가 신청은 5월 24일부터 ‘여행가는 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받는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외에도 한국관광공사와 참여기관이 선정한 추천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여행가는 달과 연계한 다양한 행사도 이어진다.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2022 내 나라 여행박람회’가 ‘떠나라! 자유롭게! 내 나라로!’를 주제로 열린다. 올해는 여행 정보를 교류하는 것은 물론, 국내 관광업계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여행상품을 직접 사고파는 여행시장(Travel Market)도 함께 운영한다.
6월 16일부터 30일까지는 ‘싱크 어스&어스(Think Earth&Us) 캠페인’을 통해 여행객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친환경 행사와 여행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외 여행가는 달 기간 동안 서해안 걷기길을 연결하는 ‘서해랑길’도 개통할 계획이다. ‘부모님과 여.행.기’(여기서 행복한 기록 남기기) 등 온라인 행사도 개최한다. ‘여행가는 달’ 공식 누리집과 누리소통망 등에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준다.
‘여행가는 달’의 모든 할인 혜택은 사용조건과 판매, 사용기간이 다른 만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할인 혜택과 행사 일정, 참여 방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4일부터 ‘여행가는 달’ 공식 홈페이지와 소통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장호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국장은 “올해 ‘여행가는 달’은 국민들이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국내 여행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예년보다 많은 혜택을 준비했으니, 국민들이 이를 계기로 여행을 다시 일상화하길 기대한다”라며 “다만 아직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만큼 손 씻기와 실내 환기 등 개인별 기본 방역수칙을 준수해 안전하게 국내 여행을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강수연과 시인 김지하가 세상을 떠났다. 잇단 문화계의 비보에 대중은 큰 슬픔에 빠졌다.
강수연은 지난 7일 향년 55세로 별세했다. 지난 5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강수연의 영결식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임권택·배창호·임상수·정지영 감독, 안성기·김지미·박정자·손숙·박중훈 배우 등이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4세 때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강수연은 영화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1987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 타이틀을 최초로 거머쥐었다. 삭발을 하며 연기혼을 보여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에는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공전의 인기를 누렸고, 그해 강수연은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고인은 ‘써클’(2003), ‘한반도’(2006), ‘주리’(2013) 등 영화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작품 활동이 거의 없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이’는 고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 시인은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빈소는 연세대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씨(작가)와 차남 세희 씨(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학관 관장)가 있다.
1941년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한 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꼽혔다.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으며,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과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을 발표하며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외에도 고인의 대표 저서로 ‘생명’, ‘애린’, ‘황토’, ‘대설(大設)’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시인을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