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이 열리면 바로 달려간다는 의미의 오픈런(Open Run) 현상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전 세대에 퍼지고 있다. 이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개장 전부터 문 앞에서 밤을 새우고,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명품, 디저트, 컵 등 종류도 다양하다. 클릭 한 번에 제품이 집 앞까지 배송되는 시대에 왜 이토록 특정 제품에 열광하는 걸까?
결제하기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다음 날 원하는 물건이 집 앞으로 온다. 심지어 빠른 배송을 강조하는 유통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긴 덕에 ‘분 단위’ 배송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제 당일 배송이나 새벽 배송보다 더 빨리도 가능하다. 심지어 1시간 안에도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이토록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최근 ‘오픈런’ 현상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오픈런은 말 그대로 매장이 오픈(open)하면, 바로 달려가야(Run)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 백화점 앞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개장을 기다리는 쇼핑객 행렬이 백화점 외벽을 따라 늘어선다. 올해 들어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이 잇달아 가격을 올리며 더 비싸지기 전에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의 매수 심리를 부추겨서다.
시간, 장소, 종류 가리지 않아
오픈런 현상은 명품 브랜드를 넘어 다회용 컵, 디저트 등 종류를 불문하고 일어난다. 지난 9월 스타벅스가 단 하루, 음료를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 컵에 제공하는 ‘리유저블 컵 데이’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에 고객들이 개점 전부터 대기하는 오픈런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매장에서는 꼼수를 써서 한 번에 많은 양의 커피를 사는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상품은 조기 매진됐고, 음료 주문 시 무료로 제공되는 컵이지만 개당 2500~3000원 수준으로 중고매장에서 거래됐다.
‘핫’하고 ‘힙’하다는 장소들은 점점 접근조차 어려워진다. 11월 13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에 있는 유명 도넛 가게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20·30대로 보이는 이들은 빵을 맛보려 긴 시간을 대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매장 앞에서 마주친 직원은 엄청난 인파가 익숙하다는 듯 길게 늘어선 줄을 정리하고, “거리두기 때문에 조금씩만 떨어져서 대기해주세요” 같은 말을 쉼 없이 반복했다.
직장인 박민근(27) 씨는 “오랜 시간 기다려서 뭔가 사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친구가 서울 간 김에 사다달라고 하도 부탁해서 집에 돌아가기 전에 사러 왔다”고 전했다. 대학생 김지혜(23) 씨는 “나 빼고 다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SNS에 인증샷이 넘치는 유명한 곳이라 너무 궁금해서 와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도넛 가게 이름을 검색해보면 12만 개 정도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도넛을 사는 과정부터 구매 후까지 쉴 틈 없이 사진을 찍었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바로 SNS에 사진을 게시했다. 꿀팁이나 빠른 손, 줄 서서 기다리는 인내를 겸비해 얻은 ‘영광의 증표’인 셈이다.
득템력 인정받고 성취감 느껴
긴 시간 줄을 서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언뜻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며,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는 줄을 서서 무언가를 얻는 행위도 하나의 놀이 문화다. 또한 미래보다는 현재를, 가격보다는 취향을 중시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많다. 당장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알람까지 맞춰두며 접전을 벌여도 행복하다. 자신이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든 찾아가는 것이다.
이 치열한 희소가치 게임은 욕망이라는 에너지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희소성 있는 물건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 얻었을 때 오는 희열감, 자랑하고 싶은 과시욕, 타인이 그것을 부러워할 때 오는 우월감 등을 총망라한다. 실제로 물건을 획득한 이들은 SNS에 인증 사진을 게시해 과시하고, ‘득템력’(원하는 아이템을 얻는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게시물 하단에는 부러움을 표하는 댓글들이 이어진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픈런이 “남들과는 다른, 새롭고 개성 있는 아이템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MZ세대의 욕망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라며 “구하기 힘든 물건일수록 소유욕을 자극하고, 이를 얻었을 때 성취욕과 과시욕, 우월감이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SNS가 오픈런 과열 양상을 자극하기 좋은 플랫폼”이라며 “실제로 그다지 맛있거나 특별하지 않은 곳인데도 SNS 바람을 한번 타면 그쪽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어 마케팅 수단으로도 자주 이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MZ의 밀레니얼 세대는 1981~1995년생, Z세대는 1996년 이후 출생자들을 일컫는다. MZ세대에 대한 분석과 견해는 넘쳐나는데 모두 남의 이야기였다. MZ세대를 이해하고 싶다면서, 정작 MZ세대의 이야기는 없었다. 1992년생 고광열은 그래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성 언론의 기사, 연구기관 보고서, 국내외 논문, MZ세대를 다룬 책들까지. 자료를 끌어모은 뒤 주변 밀레니얼 친구, Z세대 동생을 붙잡고 물었다. “너네 정말 이렇게 생각해?”
회식은 싫다. 점심 회식도 예외가 아니다. 일의 마무리를 위해 퇴근 시간 후 30분~1시간 정도의 초과근무는 ‘무료봉사’로 여겨 질색한다. 먹고살기 위해 사회생활을 한다만 회사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나와 친구들 사이의 나는 엄연히 다름을 선포하고, 1년에 한 번뿐인 친구의 생일에 교통정리 경광봉이나 멜로디언 줄 같은 쓸데없는 것들을 선물한다. 주식, 가상화폐 코인 수익률을 신경 쓴다지만 저축만 고집하는 부류도 많다. 공유주택(셰어하우스)과 차량 구독 서비스는 소유하지 못해 고르는 차선책이다.
책 ‘MZ세대 트렌드 코드’의 서술 방식은 가차 없다. 그들이 회식을 좋아하게 만들 방법은 없다고 단정 짓고, 회사의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너를 착취하겠다’와 동일하게 여기는 심리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럼에도 MZ세대 고광열은 MZ세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MZ세대를 이해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기성세대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진출한 1990년대생이 경제력을 갖고, 근무 중인 회사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일하는 요즘이다. 미우나 고우나 고객이요, 부하직원이며, 이 세상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요즘 것들 아닌가.
MZ, 왜 그렇게 생각해?
그는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워라밸(Work-life Balance)’, ‘현재 중심’, ‘거리두기’ 세 가지를 꼽았다. 이 중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은 1990년대생 사회 초년병이 늘어나면서 주목받았다. MZ세대에게는 회사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 정시 퇴근이 당연하고, 회식은 개인 시간을 잡아먹는 숙적이며, 회사 사람들과는 필요에 의해 함께하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되기 싫어한다. 그의 회사생활 또한 이해 안 되는 것들투성이였다. 그 역시 잦은 회의와 회식, 기저에 깔린 과도한 집단주의가 불편했다.
다들 군말 없이 하던 일들이 왜 MZ세대에게만 불편 요소로 전락한 걸까. 그는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가 온라인의 발달로 인한 수평적 사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 활용이 자연스러운 MZ세대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접하면서 기성세대와의 정보 격차가 줄어들고, 나이와 경력이 주는 정보 권력 역시 희미해진 것이다. 농촌사회에서 연로자(年老者)를 원로(元老)로 우대한 이유 역시 축적된 정보와 경력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 활용이 능숙한 ‘디지털 원주민’ 젊은 세대가 정보력 우위를 점하는 추세다.
수평적 사고를 가진 MZ세대는 회사와 단순히 돈과 능력을 주고받는 상호 계약 관계를 맺었다고 여긴다. 제공한 만큼 돌려받는 것이 공정하므로 회사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느끼면 퇴사한다. 그 역시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공기업이나 공단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40대나 50대 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하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날아드는 질문은 가볍고 단순하다. 젊은 사람들이 정말 코인을 많이 하느냐, ‘쓸데없는 선물 주고받기’를 실제로 하느냐 같은 것들이다.
“궁금해하시는 것들은 대체로 기사에서 일반화하는 것들이에요. 20대 전부가 코인을 한다는 둥, 공유하는 것을 좋아해서 공유주택을 선호한다는 둥 설명하는 그런 글들이요.”
그가 MZ세대를 대표해 같은 세대를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도 여기에 있다. 신세대를 이해하려는 기성세대의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 여겼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을 모아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진짜 이렇게 생각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압도적이었어요. 저만 이상하다고 생각한 게 아니더라고요.”
MZ세대가 쓰는 같은 세대 이야기라 더 수월하리라 판단했다. 게다가 당시 마케팅 업무를 맡았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책 내용에도 마케팅 분야의 접근법이 녹아들었다. 마케팅은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해 그들이 원하는 걸 파악하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성세대가 MZ세대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것, 신입사원 MZ세대의 뇌 구조와 트렌드, 문화를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탄생했다.
지금, 나, 돌고 돌아 워라밸
현재에 집중하는 성향 역시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먹고살기 위해서 사회생활은 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회사가 ‘이 정도는 해주겠지’ 하는 기대도 없다. 미래가 불확실한 국민연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기성세대가 보기에 영 쓸데없는 것에 흥청망청 돈을 쓰기도 한다.
“1990년대생이 현재만을 생각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돼요. 청년들의 성향은 보통 기성세대가 만든 세상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거든요.” 성장사회는 겪어본 적도 없고, 사회 전반적으로 기회가 적다 못해 없는 수준. 기회의 부재는 포기로 이어진다.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 구도에서 1990년대생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성향이 개인주의로 발현하는 흐름 역시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는 엄연히 다르다고 그는 못 박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생 75.2%가 타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신경 쓴다고 답했다. 63.1%가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고 불호나 거절 표현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만큼 존중받기를 원할 뿐이다.
돌고 돌아 워라밸이다. 영화 취향이 다른 애인에게도 함께 보길 강요하지 않고 ‘혼영’(혼자 영화 보기)을 택한다.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집단주의와 단체생활을 상대적으로 꺼린다. ‘모두 다 함께’를 강조하는 집단에서는 소외되거나 희생되는 사람이 반드시 생기며 불가피한 비효율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어서다.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한 회사보다 자신의 삶을 챙기는 자세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 가지 키워드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어요. 모두에게 맞아떨어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하나씩 떼어서 너도 이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거의 다 그렇다고 대답할걸요?”
각 세대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 마음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책에서도, 연단에 서서도 이 점을 꼭 짚고 넘어간다. ‘요즘 애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정도로 그냥 받아들이기를 추천하는 그의 조언은 퍽 현실적이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는 MZ세대에게 일을 맡길 땐 이직 시 경력 증명에 도움 될 것이라고 설명해야 효과적이고, 맥락 없고 선을 넘나드는 B급 감성 유머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재 개그’를 남발하거나 선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식이다. 일반화는 금물이니 그의 조언이 불문율도 아니다. 까다롭고 별나지만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참고했던 자료 중 MZ세대를 ‘바람직한 몬스터’에 빗댄 분석이 기억에 남아요. 진화심리학 용어로, 과거와 전혀 다른 특질을 갖지만 결국 사회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내는 개체를 뜻하죠. 별나지만 결국엔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낼 세대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등산은 시니어의 대표적인 취미 중 하나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먼 거리에 있는 높은 산 대신 근교의 낮은 산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또한 헬스장과 같은 실내 체육시설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산의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다. 이른바 산스장(산+헬스장) 문화가 꽃피고 있다. 중년들 사이에서 삶의 활력소로 불리는 산스장의 매력에 대해 살펴본다.
산스장은 산에 있는 헬스장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산 정상 및 중턱에 있는 공용 운동시설이다. 산스장에는 공중걷기, 파도타기 등 공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야외 운동기구와 더불어 일반적인 헬스장에서 볼 수 있는 벤치 프레스 등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있다. 헬스장 영업 중지와 더불어 실내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른바 ‘산스장’이란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산의 곳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등산과 더불어 헬스를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산스장의 장점 중 하나는 지리적 접근성이다. 일반적으로 산스장은 해발이 낮고 접근성이 높은 도심권 내의 산에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남산의 장충체육회 건물 옆 산스장은 도보 10분 내외에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가까운 지하철역은 도보 20분 내외에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근거리의 도심에서 운동과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야외 운동기구 시설은 현재 개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1일 1회 소독과 소독제 비치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곳을 안전한 체육활동 장소로 여기고 있었다. 산스장에 가려면 등산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코로나19 이후 등산을 일상의 탈출구이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행위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등산 선호 이유로 안전성을 꼽은 이들이 61.5%에 달했다. 10년째 산스장을 이용 중이라는 60대 시니어 김명숙(가명, 이하 모두 가명) 씨는 “코로나19 이후 헬스장과 같은 실내 체육시설은 사람의 접촉도 신경 쓰이고 밀폐된 곳이라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데, 산은 거리두기가 가능해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니어의 산스장 라이프
산스장은 이전부터 시니어의 주 무대였다. 실제로 서울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0·60대 시민의 50~70%는 공원 및 산의 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었다. 동작구 국사봉 산스장 인근에 사는 70대 주민 이숙희 씨는 “지금처럼 야외 운동기구가 잘 갖춰지기 훨씬 전부터 다녔다”고 말하며 “코로나19 이후 여행도 못 가고, 실내 생활이 길어진 탓에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더욱 자주 들르고 있다”라고 밝혔다.
산스장을 즐기는 시니어의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첫 번째 유형은 운동보다 산책에 목적이 있었다. 운동복 차림이 아닌 가벼운 나들이 차림을 하고 가족 단위로 산스장을 방문했다. 10대 자녀와 함께 산 정상에 처음 올라온 50대 유영자 씨는 “동네 뒷산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경사가 가파른 탓에 올라오느라 힘들었지만 비교적 시간은 짧게 걸렸다. 정상에 이런 운동시설이 있어서 놀랐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두 번째 유형은 오롯이 등산만 즐기는 이들이다. 산의 정상에 있는 산스장에는 알록달록한 등산복과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등산스틱까지 챙겨온 이들도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지리산 등 해발이 높은 산에 자주 올랐다는 시니어 김명수 씨는 “코로나19와 더불어 관절 등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 장거리에 있는 높은 산 대신 동네의 뒷산을 찾고 있다”라고 말하며 “안전사고도 대비하고 등산하는 기분을 내고 싶어서 등산스틱을 챙겨왔다”라고 밝혔다.
세 번째 유형은 자연 감상과 함께 운동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다. 실내 생활이 길어지면서 헬스장과 같은 실내 체육시설보다는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있고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되는 산스장을 선호했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산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시니어 심영수 씨는 “헬스장보다 운동기구는 적지만, 신선한 공기와 사시사철 변하는 산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하며 “올라오는 코스가 다양해서 컨디션에 따라 등산 코스를 조절할 수 있고, 헬스장처럼 영업시간 제한이 있지 않아서, 언제든 올 수 있어 좋다”라고 설명했다.
이 유형의 특징은 혼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산스장 내에서 시니어들끼리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동호회처럼 회비를 걷거나 시간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아침, 점심, 저녁 중 겹치는 시간대끼리 자연스럽게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동년배들답게 관심사가 비슷해서 쉽게 곧잘 어울렸다. 운동 중 쉬는 시간에는 장기를 두거나, 병원 및 염색약 등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했다. 또한 기구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며 알려주는 이들도 있었다.
강도와 빈도 조절
산스장은 심리적 개선 효과도 있지만, 시니어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노인의 규칙적인 운동을 방해하는 요소로 부상 우려, 운동 지식 부족, 건강 상실과 질병, 운동 동기 부족, 시간·기회 부족, 그리고 경제 여건을 꼽았다. 운동의 긍정적 기능을 알고 있어도 기회가 부족하거나 경제적 제약이 발생한다면 지속적인 수행이 어렵다. 하지만 산스장은 시·공간적 제약이 없고, 경제적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만 있다면 노인에게 좋은 운동 장소다.
양상훈 세한대학교 스포츠건강관리학과 교수는 “야외 운동기구는 악력을 사용해야 하므로 노인의 근력을 늘리는 데 효과적인 운동기구다. 다만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장시간 이용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기구 자체가 하중을 조정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운동 강도와 빈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용관·원영신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 연구팀은 야외 운동기구의 건강 증진 기능을 증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1.5시간의 운동을 일주일에 세 번씩 총 6주간 참여한 노인들의 체력 및 신체 기능이 증진되었으며, 인슐린 저항성과 염증지표가 개선되는 등 당뇨병 예방 효과가 입증됐다. 암의 발병과 관련 있는 염증 물질 케메린(Chemerin)의 혈중 농도도 낮아졌다. 전 교수는 “자신의 체력 상태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한 번에 30분 정도 운동을 주 5일 진행해도 동일한 운동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운동에 처음 참여하는 노인의 경우 하루 20분 미만으로 시작해 점차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운동을 통한 부상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전사고 예방하려면
아무리 운동 효과가 좋다고 할지라도 안전사고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0 전국 공공체육시설 현황’에 따르면 설치된 야외 운동기구는 약 13만 개에 달한다. 매년 6000대 이상 설치하지만, 제품 안정성이 일부 미흡해 손가락·목·발 등 신체 끼임, 미끄러짐 등의 안전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했다. 햇빛·눈·비 등에 노출되고 제품 노후화로 인한 사고 우려도 지적되어, 제품 안전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매년 50~70건의 야외 운동기구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연령별로 나누면 ‘10대 이하 및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대다수(94.3%)를 차지한다. 사고 원인은 ‘부딪힘’(41.5%)이 가장 많았고, 이어 ‘미끄러짐·넘어짐’(28.3%), ‘눌림·끼임’(15.1%), ‘추락’(13.2%) 등의 순이었다. 실제로 71세 남자 노인이 산에 설치된 1m 높이의 운동기구에서 뒤로 추락해 후두부에 찰과상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올해 7월부터 관련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야외 운동기구가 안전 확인 품목으로 지정됐다. 국가통합인증마크가 부착된 제품만 시장에 출시되면서 안전사고 예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한 산스장에 오를 때 낙상사고도 조심해야 한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처리한 산악 구조 출동은 총 1397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4% 증가했다. 특히 지난 3월 기준 50·60대는 전체 구조 인원의 47.7%를 차지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고령자나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사람은 무리하거나 혼자 산행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간단한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푼 후에 올라가는 것을 권장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이 시작되면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29일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일상회복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1차 개편에 생업시설 운영제한 완화, 2차 개편에 대규모 행사 허용, 3차 개편에 사적 모임 제한을 해제한다는 계획이다. 한 단계를 4주간 운영한 뒤 평가 기간 2주를 걸쳐 중대본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결정한다.
현재 진행 중인 1차 개편 단계에서는 유흥시설을 제외한 다중이용시설에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진다. 사적 모임 인원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수도권은 10명, 비수도권은 12명까지다. 다만 식당과 카페에 한해 백신 미 접종자는 4명 이하만 모일 수 있다.
위드코로나가 시행되지만 은행 영업시간 단축은 당분간 그대로 진행된다. 금융권은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으므로 영업점 영업시간은 오전 9시 30분 ~ 오후 3시 30분까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고령층 보호 조치는 계속
일상회복을 위한 단계를 밟으면서도 고령층 보호에는 힘쓸 전망이다. 경로당, 노인복지관 등 고령층의 모임에 따른 위험이 있는 곳들은 백신 접종 완료자만 출입이 허용된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도 백신 접종자만 접촉 면회가 허용된다.
아울러 고위험군, 고령층에 대한 백신 추가 접종도 추진된다. 10월부터 면역이 낮은 이들과 60세 이상 고령층,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해 추가접종을 시행 중이다. 보건복지부 계획에 따르면 11월 중에는 돌파 감염과 중증사망 위험을 고려해 50대 대상으로도 추가 접종을 시행할 계획이다.
추가적인 감염이 발생하더라도 재택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경구용 치료제도 도입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MSD 사와 20만 명분 구매계약을 맺었고, 10월에는 화이자와 7만 명분 선 구매 약관을 체결했다. 보건복지부는 다국적 제약회사 임상 진행 상황과 관련 기관의 승인 여부를 관찰해 13만 4000명분 선 구매 계약을 확정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위드코로나 이행계획에 따르면 새로 도입될 경구용 치료제는 기저질환 및 고령 등 고위험 요인을 가진 코로나19 경증·중증 환자에 처방될 예정이며, 이후 확진자 발생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가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생활 위한 소비할인권 지원
정부는 오랜 거리 두기로 피로감이 누적됐을 시민들을 위해 각종 문화생활을 지원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 영화, 전시, 숙박, 여행, 프로스포츠, 실내체육시설 등 7개 분야에 대한 소비할인권을 지원한다. 이 중 영화와 프로스포츠는 고령자 전용 할인쿠폰을 따로 발급하고 있다.
영화 관람 시 6000원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한다. 할인권은 영화관 경로 우대 할인과 중복할 수 있다. 다만 중복 할인받더라도 1000원 이상은 결제해야 한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홈페이지, 모바일 앱에 로그인한 후 이벤트 게시물로 들어가면 쿠폰을 내려받을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역 단관극장에서도 할인권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요일, 모든 시간에 쓸 수 있으나 2D 영화에만 적용된다.
프로스포츠는 4개 종목(축구·야구·농구·배구) 티켓 50%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관련 게시물이 있다. 해당 게시물에 접속하면 할인쿠폰 발급처로 이동할 수 있다. 1회 이용 시 최대 7000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할인권은 3회차에 걸쳐 발행한다. 11월 1일 ~ 11월 15일까지가 1회차, 11월 16일 ~ 12월 5일까지가 2회차, 12월 6일 ~ 12월 31일까지 3회차다. 회차당 2매씩 총 6매를 발급받을 수 있다.
요양원에 대한 시니어의 거부감은 대단하다. 요양보험 급여를 유지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한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카톡방을 떠돈다. 특히 코로나19는 이런 거부감을 더 키웠다. 정부의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서야 지난 추석 첫 면회가 이뤄졌다. 이에 들어가면 가족들 보기 어렵다는 선입견까지 생겼다. 요양 서비스 업계도 이런 사회적 인식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소비자의 욕구에 맞는 요양 서비스의 개발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곳이 휴앤락요양원이다.
사실 요양원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운영 비용에 있다. 요양원의 수익 구조는 장기요양보험에서 지급하는 80%의 급여와 20%의 비급여로 유지된다. 환자 1인당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 요양원들은 서비스를 개선해 수익을 높이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저 어떻게 하면 지출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에만 고민이 집중됐다. 임금이나 고용 비용은 매년 상승하는데, 그 인상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다.
관리 위주 요양 서비스 개선돼야
사전 예방보다는 처벌이나 징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관리감독제도도 문제다. 안전사고나 민원이 발생하면 엄중한 책임이 따르다 보니 입소자의 산책 등 활동에 인색해진다. 낙상 등 사고에 따른 비용 지출도 만만치 않다. 결국 치료보다는 안전, 회복보다는 현상유지에만 애쓰게 된다. 가뜩이나 가족과 떨어져 제한된 시설에서 답답한 생활을 해야 하는 입소자 입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불만들이 요양 서비스 업계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거쳐 눈덩이처럼 구르다 보면 카톡방의 가짜 뉴스가 되어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장기요양보험제도에 기대기에는 우리 사회 구조가 너무나 기형적인 고령화 사회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신체활동 능력 상실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를 800만 명에서 10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정부의 요양 서비스 정책에 대한 과감한 예산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학 연구진 개발한 프로그램이 강점
‘휴앤락요양원’의 가장 큰 특징은 산학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에 있다. 휴앤락 자체가 단국대학교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단국상의원의 브랜드이다 보니 단국대학교에서 학술적으로 연구한 인지교육과 운동역학의 최신 기술과 다양한 시도가 녹아 있다. 휴앤락요양원은 이를 ‘스마트 교육 콘텐츠’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교육받을 수 있는 요양원이 되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스스로를 ‘평생교육 요양원’이라고 표현한다.
휴앤락요양원의 스마트 인지 프로그램은 요양원 입소자 어르신에게 치매 단계별 맞춤형 인지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매의 정도에 따라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증상의 발전을 최소화한다. 어르신들의 병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 프로그램은 단국대학교 교수진과 시니어 교육 전문기업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치매 단계 등 환자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이 1000여 가지나 된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어르신의 인지 활동 능력의 정도를 감안한 교구제도 새롭게 개발했다. 산학협력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단국대학교와 함께 인지 프로그램을 개발한 기업 관계자는 “어르신의 인지 단계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치매 진도를 완화하고 인간적 삶을 영위하게 해드리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역학에 기반한 돌봄 프로그램도 휴앤락요양원의 또 다른 강점이다. 운동역학 물리치료 전공인 스포츠대학 교수진이 스마트 운동교육 전문기업과 협업하여 요양원의 중증도 어르신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한 손원호 단국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어르신들의 운동 정도와 방법에 따라 근육 퇴화를 막는 것은 물론 상실된 근력기능을 회복해드릴 수 있다”며, “요양원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운동역학으로 신체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말했다.
IT 기술 접목으로 브랜드화 가능케
휴앤락요양원의 스마트 교육 콘텐츠는 여러 IT 기술과 접목된다. 미술, 공예, 퍼즐 등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은 영상으로 제작돼, 온라인을 통해 요양원의 대형 화면에 전달된다. 현장에선 입소자 어르신들이 ‘보고 만지며’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은 신체기능 활성화를 위해 제기차기 등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동작 중심으로 운동역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모션 캡처와 같은 첨단 기술도 활용된다. 이런 IT 기술과의 접목은 휴앤락요양원의 ‘브랜드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들이 업계에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휴앤락요양원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학 브랜드로서 브랜드 공유 시스템을 적용했다. 휴앤락요양원이 대규모 투자와 전문성을 통해 요양원 시스템과 매뉴얼을 공급하고 대학 브랜드를 제공하면, 요양원 업계가 개별 창업 형태에서 시스템 창업으로 한 단계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문성과 투자 면에서 개별 브랜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사회복지 사업의 진행 주체로서 교육기관인 대학의 특성과도 맞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매년 6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만 65세 고령인구로 편입되고 있다. 이들은 노인이기를 거부하며 계속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노인으로 규정해 모두 은퇴시켜 골방으로 몰아넣는다. 뛰어난 역량을 갖춘 베이비부머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으로 편입되고 있는 베이비부머를 포함해 시니어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노년학 전문가인 한경혜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그 해법을 들어봤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그 나라에 대한 입국 비자를 받고 태어난다. 그런데 그 나라에 입국하기 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막상 입국하면 그때 비로소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당황하게 된다. 그 나라는 ‘노년기’라는 나라다.”
한경혜 교수는 베이비부머를 비롯해 많은 시니어들이 ‘노인’이라 불리게 됐을 때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로 노인을 타자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언급하면서, 메리 파이퍼의 ‘또 다른 나라’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설명했다.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워낙 부정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노인, 나이 듦과 거리두기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자신이 노인으로 분류되는 시점이 되면 뒤늦게 적응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차별적 문화를 바꾸는 것이 베이비부머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한 교수는 노년학과 가족학 전문가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연구자다. 그는 “나이 듦은 개인의 내적 변화뿐 아니라 개인 간의 상호작용 과정”이라며 “나이가 들어 만 65세가 되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라 불리거나 분류되는 걸 거부한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노인들이 자신은 ‘저 노인네들’과 다르다는 언급을 자주 한다. 젊고 활기차게 살기를 희망하고, 그러기 위해서 운동하고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자신을 노인으로 대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노인이라는 나라에 이미 입국했고 이를 부정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이 참석하는 모임에 가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상당히 높다. 놀라운 점은 노인들도 이렇게 대답한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특히 65세에서 75세에 이르는 프라임타임에 있는 초기 노인들은 노인으로 불리거나 묶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어떤 연령 집단보다 노인은 개인차 커
한경혜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어서 노인 집단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며 “그러다 보니 노인들과 자신을 경계 짓고, 중장년들도 노인이 아니라고 손사래 친다. 80 넘은 노인들도 자신만은 다른 노인들과 다르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노인을 위한 상품이 시장에 등장해도 실질 소비자인 노인들이 거부해 시니어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노인이기를 원하지 않으니 노인이라는 타이틀을 건 상품이 잘 팔릴 리 만무하다. 실제로 국내 시니어 시장은 10년 넘게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실질적인 성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마케팅을 위해 액티브 시니어나 오팔세대 같은 긍정적인 용어를 만들어 기존의 노인 이미지와 차별화해 시니어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 교수는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액티브 시니어와 오팔세대 같은 성공한 노인 집단이나 노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마케팅 용어도 결국 한계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단순히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뿌리 깊다는 점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노인을 획일적인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노인 집단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인 집단 내에서도 젊은 노인, 고령 노인 등 연령에 따른 차이가 있고, 학력과 삶의 경험 등 수많은 차이점이 가져오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노인 집단은 다른 어떤 연령 집단보다 개인차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노인층이 적극적 소비자로서 스스로 드러내기를 주도한다면, 시니어 시장이 본격화되고 상당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노년학에서 대상으로 삼는 노인은 복지가 필요한 일반적인 시니어와 성공적인 노년을 만들어가는 액티브 시니어로 나뉜다. 한 교수는 “최근까지 노년학은 노년의 어려움, 노인 문제에 집중해서 연구되고 담론이 만들어진 경향이 있다”며 “높은 노인 빈곤률이나 황혼이혼 증가, 치매와 간병의 어려움 등 사회문제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 커지고, 노인 인구 증가를 사회적 부담으로 보는 시각이 강화될 우려가 크다. 나이 듦의 긍정적 측면, 노인을 사회적 자원으로 활성화하는 방안 등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령 구분 사회를 세대 통합 사회로
그런데 이런 변화를 모색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시니어들에게 너무 폐쇄적이고, 기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다. 한경혜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가진 뛰어난 인적 자원을 생각하면 이들을 활용할 방법이 나와야 한다”며 “시니어들을 역(易)연령보다 기능적 연령으로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 연령에 따라 구분하는 사회를 이제는 연령 통합 사회, 세대 통합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어난 생일에 따라 달력이 결정하는 역연령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진 신체 연령이나 재능 등 실제 의미 있게 작동하는 기능적 연령으로 시니어를 개인마다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최근 노년기에 편입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가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베이비부머는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학력이 높다는 점에서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을 뿐 아니라 그 수도 많다.
한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집단이 함께 노년기에 진입해 생애 후반기 경로를 개척한다는 점에서 흔히 선구자라 불린다”며 “이들이 어떻게 노년기를 보내느냐가 노인, 노년에 대한 앞으로의 문화를 이끌 동인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또 그는 “전쟁 후 경제적 활성화가 이뤄지는 시기에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낸 베이비부머는 이런 면에서 운도 좋았고, 또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의 열매도 누린 집단”이라며 “액티브하지 못한 동년배들을 위해 시민의식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발전을 주도하며 사회경제적 과실을 따먹은 베이비부머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민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는 베이비부머 자신의 노년기 삶의 질, 행복과의 관련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사회적 변화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직장과 자녀 등 평생을 바친 삶의 중요한 축이 노년의 삶에서는 빛이 바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려고 그렇게 애쓰며 살았나’, ‘내 삶의 보람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은퇴하고 나이를 먹었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진다”며 노년기 의식의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노후 준비와 건강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다. 하지만 고령층으로 갈수록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활동이 그 해답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한경혜 교수는 최근 오픈한 ‘노년학 제3의 공간’ 연구소를 중심으로 노인, 노년기에 대한 연구를 즐겁게 이어갈 예정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나 편견은 노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탓이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탄탄한 연구를 통해 노인의 적확한 실상을 보여주려는 목적의식을 근저에 두고 있다. 한 교수와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이들이 노년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 한국에서 노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그의 바람처럼 베이비부머가 적극적으로 시민 참여에 나서고 노인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꿔, 국내에서도 시니어 시장이 꽃 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경혜 교수는 최근 노년기에 편입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가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학력이 높은 액티브 시니어로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올해 만 65세인 A씨는 실외 운동 마니아다. 친구들과 산에 오르거나 근처 근린공원의 배드민턴장을 찾아 배드민턴을 즐겨 한다. 운동에 대한 열정은 코로나도 막을 수 없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니 때 되면 찾아오는 추위가 두렵다. 길 곳곳이 얼어 빙판길에 넘어지면 다치기 십상인 데다 새벽 운동이라도 나설라치면 앓고 있는 고혈압과 당뇨가 악화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출과 운동을 완전히 그만둘 수는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실내운동시설이다.
마침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따르면 오는 11월 1일부터 모든 다중이용시설의 시간제한이 완화된다.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을 시간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시설 내 샤워장도 이용 가능하다. 다만 시설 이용자는 접종완료를 증명하거나 미접종자의 경우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지참해야 한다. 물론 실내시설이니 여전히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점점 추워지는 요즘, 시니어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실내체육시설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
다양한 종목 즐기며 커뮤니티의 기능까지, 종합복지관과 국민체육센터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다면 시립종합복지관을 찾아가보자. 노인종합복지관에는 각 자치구 거주민들을 위한 건강관리실과 다양한 운동시설이 구비돼있다. 탁구와 당구, 포켓볼 등 장년층에게 인기 많은 운동들 위주로 마련돼있다. 뿐만 아니라 구민들 대상으로 진행하는 문화·여가 프로그램이나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시니어 커뮤니티의 기능도 수행한다.
대부분이 구민들에게 개방된 시설이지만,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서대문구의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의 웰빙운동실은 서울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 모두 이용 가능하다. 각 지역의 복지관에 직접 연락하면 더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울시를 벗어난 지역에는 국민체육센터가 있다. 지자체의 도시관리공사가 운영하는 국민체육센터는 지역 주민의 생활체육과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마련돼,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매년 시행한 안전점검결과가 공개된다. 양호 등급을 받은 시설은 이용자에게 위해‧위험을 발생시킬 요소가 없는 상태로, 안전시설로 분류된다.
고양국민체육센터는 2년 연속 양호 등급을 받았다. 헬스장, 체력측정실, 배드민턴과 실내구기 종목이 가능한 다목적체육관 외에 실외 테니스장, 무료 주차장을 갖춘 시설이다. 현재는 배드민턴과 수용, 탁구, 헬스 등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및 이용 제한이 걸려있는 현재는 고양시민 회원에 한해 대관 및 유료로 일일 입장만 가능하다.
11월부터는 탈의실과 샤워실도 이용할 수 있다. 기존에는 고양시민이 아닌 타 지역에 거주하는 회원들도 이용할 수 있었으나 코로나 이후로 이용이 막혀있었는데, 월말에 발표될 정부 지침에 따라 변경된 이용 규정이 안내될 예정이다. 관계자는 “추후 단계적 일상회복이 이뤄질 경우 타지역 회원도 이용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광명국민체육센터 역시 2년 연속으로 양호 등급을 받았다. 유료 주차장과 샤워실, 탈의실, 장애인 프로그램이 마련된 이곳에서는 배드민턴, 탁구, 수영, 에어로빅 등의 운동이 가능하다. 배드민턴과 탁구는 수시로 일일입장권을 구매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만 65세 이상 어르신은 이용 요금의 50%를 할인받을 수 있다. 단 광명시민이 아닌 관외 사용자는 이용요금의 30% 할증이 붙는다.
다만 아직까지는 샤워실과 탈의실 이용 및 타지역 회원 사용 여부가 불투명하다. 관계자는 “오는 금요일 정부 지침에 따라 사용 여부가 확정될 것”이라며 “변동되는 사항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재하고 있으니 공지 확인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종목·지도 검색하고 싶다면 ‘체육시설알리미’
현재 방문 가능한 게이트볼, 배드민턴, 테니스 등 특정 종목 시설을 찾고 싶다면 ‘체육시설알리미’ 홈페이지를 활용해보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리하는 체육시설알리미에는 체육관, 종합체육시설업, 간이운동장 등 전국의 체육시설들이 모두 등록되어 있다. 홈페이지 내 ‘시설 검색’ 기능을 이용해 골프, 수영, 테니스, 댄스, 배드민턴 등 특정 종목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시설 현황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집 근처 체육시설을 찾을 때는 체육시설알리미의 ‘지도 검색’ 기능이 유용하다. 이용자의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체육시설 정보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사용자의 위치 파악 기능이 켜져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상세 검색’을 통해 지역을 특정하거나 이용자의 성별, 셔틀버스, 체육지도사 등 필요시설 조건을 충족하는 시설들을 확인 가능하다. 최근 1년 내 안전점검 완료시설, 스포츠강좌 이용권 이용가능 시설, 장애인 스포츠 강좌 이용권 이용 가능 시설 등 원하는 조건에 해당하는 시설만 검색할 수 있다.
그저 푹 빠져서 즐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의 격한 취미생활일 경우 부부라면 대부분 다른 한쪽에서는 뜯어말리는 걸 본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30년 넘도록 부부가 수집한 2만여 점의 예스러운 부엌세간이 전시된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김홍선 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애초에 우리는 아내가 더 앞장섰지요. 이런 취미로 말년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내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니까요. 하하... 이것 봐, 지금 고생은 나만 하잖아요."
고생이라고 말했지만 젊었던 시절의 취미로 이제는 느긋하게 누리는 부엌 전시관 앞에서 김포 덕포진의 가을 숲을 바라보는 그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장안평, 인사동, 황학동은 물론이고 직장 출장길에서도 찾아갔었고, 소문 따라 지방으로 쫓아가고 미친 듯이 모았거든. 점점 늘어나면서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해 왔지요. 그러다가 자꾸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지. 처음엔 지금의 이 건물을 지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짓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창고에 보관하느라 지출되는 창고비용이 은행 이자와 별다르지 않아서 지었습니다.
사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들 중엔 부자도 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살면서 돈이 생기면 사러 다닙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못 말려요. 마약은 격리라도 시킬 테지만 이런 취미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제 그거 샀어야 하는데 하면서 꿈에도 나타나는 통에 미친다니까요."
담백하고 따뜻한 언어 외할머니
그렇게 모아지고 쌓인 2만여 점의 생활용품들이 박물관 1층을 빼곡히 채웠다. 우리네 외할머니의 부엌에 있었음직한 무쇠솥부터 채반, 술을 내리던 소주고리, 맷돌, 도무지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생활도구들이 방대하다.
"이건 도둑시루라고 하지, 시어머니가 무서우니까 몰래 먹으려고 요렇게 만들어진 떡시루인데... " 설명만으로도 재미있다. 귀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통, 김치 양념 가는 돌확이나 자배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호미와 가래, 갖가지 모양의 무쇠화로, 디딜방아, 맷돌과 어처구니, 주꾸미랑 문어 잡는 도구, 양푼, 참빗,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두레반의 정다움... 도구들과 연결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지방 특색이나 용도별 삶의 형태에 따른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다.
"연가라고 아는가" 묻기에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흥얼댔더니 '연기의 집'이라며 투구처럼 생긴 옹기를 가리킨다. 이름 한 번 이쁘다. 그 틈에서 꽤 큰 장독 옆구리를 한 땀 한 땀 꿰맨 모습이 지금으로선 새로운 디자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에 꿰매서 썼던 장독의 세월을 그려본다. 천년 이상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옹관, 물때가 끼지 않는 숨 쉬는 옛 옹기의 현상, 은행잎으로 섬세한 무늬를 놓은 토기 장인들의 섬세함, 옹기장이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었다.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만나기 어려운 아주 오래 전의 생활용품 전시장 속에 덕지덕지 외할머니의 일생이 담겨있었다. 정겹다. 조상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부엌세간들 속에서 속정 깊은 외할머니를 그려보고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부엌 세간들이 품어낸 세월의 가치
"이곳에 온지는 5~6년 됐나? 서울 사직동 한옥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서울과 덕포진을 오가고 있어요. 원래 마당의 정원 관리는 아내가 하기 때문에 바삐 오가죠. 올해는 덩굴장미를 많이 심어서 텃밭을 많이 점령했어요. 이쪽에 덕포진 진지가 있고 강도 보이고 풍광이 좋아요. 평화누리길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카페로 용도 전환을 하라고, 요리교실로 활성화하라고 갖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그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찾아오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이 짐작된다. 젊은 시절의 취미가 노후에 소일할 일이 되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례가 있을까만 교류와 관계성의 현실이 배제되면 재미가 덜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주어야 할 텐데 무심함에 때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자부심만은 만만찮다.
"차라리 사람들 말대로 이 건물에 카페를 하거나 임대를 주면 더 여유로울 텐데 이건 개인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지역이나 국가에서 해야지. 박물관이라고 어디서 지원이 있는 줄 아는데 지가 좋아서 하는 걸 어디서 도와줄 리가 있나. 팔아야 뭐가 나올까 지금은 생기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무리 좋은 문화 콘텐츠라도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민속박물관에 가면 전시된 물건은 다 양반 위주지 여기처럼 서민들 용품은 별로 없거든요.
공유 부엌의 사용도 가능
전시관 2층은 음식 체험실이다. 잘 갖추어진 조리대와 넓은 홀은 쿠킹클래스의 현장이란 게 단박에 연상된다. 이곳 체험실은 공유 부엌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그동안 강사를 초빙해서 전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 김장철엔 김장 담그기, 제철음식으로 감자전이나 호박요리, 샌드위치나 떡볶이, 중국을 비롯 동남아 요리 등 시대와 나라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 왔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주춤했으나 경기도 김포시 보조사업으로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도 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밥상이 주는 위로와 화합으로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물론 평소에도 함께 한 끼 식사를 하며 쉼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엔 박물관 마당에서 로컬푸드 장마당이 열리곤 했다. 지역주민들이 가꾼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무료 요리교실이 열렸었다. 가족요리대회, 어린이 요리교실 등이 때때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젠 한적하다. 알고 보면 따뜻한 놀이마당이란 걸 아는 사람만 안다.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건네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이어질 겨울의 멋을 슬그머니 자랑한다. 박물관 주변의 자연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 늘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멋도 공유한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이런 풍경을 내다보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도 제공된다는 것.
“방역 수칙 강화로 모임들이 편치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우리 친구가 주말이면 놀러 와요. 다른데 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조리실도 있고 마당에 가마솥도 걸려 있고 야외 천막 텐트도 있으니 여기서 마음껏 쉬며 먹고 숲에도 들고 시간 보내기 좋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
“가끔씩 때가 되면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요. 여행 관련 모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몇 명씩 모여서 먹을 것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해 먹고 함께 모여 토론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편히 놀다가 갑니다. 3층엔 카페 공간도 있으니까."
외할머니 부엌의 느릿한 정서에 잠기다
하루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곳이 공유 부엌의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소액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각자 먹을 재료만 사 와서 요리도 하며 느릿한 템포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외할머니의 부엌, 방학이면 놀러 갔던 외가댁의 편안한 정취를 맛보고 싶을 때 떠올릴 만하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로컬푸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부엌 조리대엔 대부분 텃밭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들이다. 단호박은 박물관 옆 채마밭에서 자란 수확물이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수제비와 단호박전은 다시 한번 찾아가 맛보고 싶게 한다.
외할머니 부엌의 푸근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의 소리를 그는 날마다 듣는다. 인적이 드문 박물관 들꽃 정원에 나와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지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도시에서 맛보지 못할 평온한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있을지. 뚝 떨어진 김포의 덕포진 숲길 옆 외할머니 부엌의 김홍선 관장은 자발적 유배와도 같은 잔잔한 사색의 시간에 묻혀 산다.
슬픈 일일수록 알리고 나눠야 한다는 핑계로 허례허식만 늘어난 우리나라 장례·추모 문화가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변화하고 있다. 감염 우려로 인해 접객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추모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80.9%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소모적인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장례 준비 및 절차에 따른 경제적 부담, 추모보다 접객에 치우친 문화 등 관례에 얽매여 피로감이 쌓인 데 따른 응답으로 해석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는 복합장례 공간 ‘채비’를 마련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삼일장을 간소화한 ‘1일 가족장’과 빈소 임대료·식대를 없앤 ‘무빈소 가족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1일 가족장은 채비에 빈소를 차려 하루 동안 직계존비속을 비롯한 친인척을 초대해 고인을 기리고 추억을 나눈다. 무빈소 가족장은 일회성 추모식을 진행한 후 장례를 마무리한다.
고인이 운명한 직후부터 부고하고 빈소가 차려지면 정신없이 조문받기에 치우친 장례식 대신 오롯이 가족들끼리 진심으로 지나간 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김기혁 채비 홍보팀장은 “코로나19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의식은 간소하게 하고 추모와 애도가 중심이 되는 고인 중심의 장례식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며 “국내 상조 회사가 이익을 독식하는 불합리한 구조의 개선을 위해 장례용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공동 구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상조 회사와는 달리 불필요한 품목을 제외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추모·성묘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623개의 국내 장사시설에선 코로나19에 따라 성묘객의 안전을 위해 온라인 성묘·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진흥원이 위탁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누리집을 통해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유족들이 직접 고인에 대한 온라인 추모관을 만들고, 차례상·분향·헌화·사진첩 등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가상현실(VR) 조문·추모관 서비스 업체 별다락은 3D 모델링으로 만든 샘플 조문·추모관을 자체 누리집에서 선보였다. 별다락은 코로나19로 인해 조문조차 꺼려진 상황에서 누구나 빈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무빈소 온라인 장례식을 기획했다. 박수인 별다락 대표이사는 “장례 이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납골당 예약과 방문이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고자 서비스를 만들었다”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이어 “현재 부고장 서비스와 함께 메타버스 추모관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선 안정적인 3D 화면으로 추모관을 볼 수 있게 구축하고, 이후 가상공간 안에서 아바타가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문물 설명서]
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휴가’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산책 삼아 울긋불긋 단풍진 숲속을 거닐거나 서재에서 여유롭게 책 읽는 시간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에서의 골프 라운딩, 땀 흘리며 오르는 등산길을 그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스포츠케이션’을 떠난 MZ세대다.
쉴 때도 운동할래요
스포츠케이션은 스포츠(Sports)에 휴가(Vacation)를 더한 신조어다. 휴가지에서 운동이나 액티비티 활동을 즐기는 경우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스포츠케이션에 포함되지 않는다. 스포츠케이션은 휴가보다 운동을 우선시하며, 운동을 위해 휴가지와 숙소를 선택하고 일정, 예산까지 모두 운동에 맞춰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한 휴식보다 액티비티나 스포츠를 위한 휴가를 즐기는 MZ세대가 늘고 있다.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이 지난 6월 MZ세대 4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휴가지에서 ‘액티비티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이는 무려 72.4%에 달했다. 또한 응답자의 28.8%가 휴가 계획을 세울 때 ‘액티비티 등 즐길거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답했다.
스포츠케이션이 급부상한 배경에는 팬데믹이 있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고, 여럿이 모이기 어려워서다. 실제로도 골프와 헬스, 등산, 자전거 타기 등 혼자나 적은 인문이 즐기는 스포츠 종목이 인기다.
여기에 MZ세대만의 특징이 더해져 스포츠케이션이 탄생했다. 건강과 자기관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세대적 특성이 휴가와 맞닿은 것. 이들은 무기력해지기 쉬운 코로나 시국에도 자신만의 운동 습관을 만들고 공유하는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의 줄임말), 이른 아침 일어나 운동하는 ‘미라클 모닝’을 유행시킨 주역이다.
호텔업계는 ‘호트’(호텔+트레이닝의 신조어)로 화답했다. 호텔 투숙객은 요가, PT, 필라테스, 농구, 카트 라이딩 등의 운동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올여름 호캉스를 다녀온 A씨(26)는 “휴가 기간에 매일 호텔 내 헬스장을 이용했는데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MZ세대의 휴가를 책임지다
골프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시간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MZ세대가 상대적으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적은 운동인 골프로 눈을 돌린 것이다. 오상엽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4050세대의 전유물이던 골프 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이들은 시니어의 고급 사교장이나 다름없던 골프장을 ‘핫플’(핫 플레이스)로 만들었다. 사업이나 친목 도모를 위해 골프를 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건강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운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골프웨어와 아이템으로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며 즐긴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또한 골프장에서의 일상뿐 아니라 휴가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유튜브 브이로그로 공유 한다. 실제로 ‘#골린이’ 해시태그는 인스타그램에만 9월 기준 53만7000건이 등록됐다.
골린이(골프+어린이의 신조어)들은 골프 여행을 휴가 방식으로 선택했다. 운동하면서 멋진 풍경을 즐기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킬 수 있어서다. 인천 영종도, 남해, 거제도 등 골프장이 전국 각지에 분포돼 있어 휴가지의 선택 폭이 넓은 점도 매력적이다. 이동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스크린 골프 펜션’까지 등장 했다. 이승찬 아체로 빌라&골프 대표는 “장년층 고객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이 펜션을 찾고 있다”며 “1997년생 고객이 친구들과 방문하거나, 젊은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호텔들도 자체 스크린 골프 시설 이용권이나 골프용품 등을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 다른 5060세대 전유물인 등산에도 스포츠케이션 바람이 불고 있다. MZ세대 등산객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롯데백화점 올해 상반기 아웃도어 상품 매출에서 2030세대 고객의 매출 신장률이 31%를 기록했다. 인스타그램에 ‘#등린이’ 해시태그가 23만7000개나 등록됐다는 사실 또한 인기를 입증한다.
등린이(등산+어린이의 신조어)들은 주말과 휴가철을 가리지 않고 산에 오른다. 산악회 대신 등산 크루나 등산클럽을 꾸리고 게임하듯 ‘명산 100 챌린지’에 참여해 배지를 모은다. 등산 후 기록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것은 물론, SNS 해시태그나 등산 커뮤니티를 통해 직접 다녀온 등산 코스, 주변 맛집 등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기도 한다. 비닐봉투를 챙겨 쓰레기를 줍는 ‘클린 산행’으로 건강, 휴식, 환경까지 챙기는 ‘일석삼조’ 효과도 누린다. 등산 콘텐츠 크리에이터 조초록은 “거들떠도 안 보던 산을 올여름엔 10번이나 갔다”며 “MZ세대에게 등산은 체력도 기르고 ‘인생샷’을 건질 수 있어 매력적인 취미”라고 말했다.
스포츠케이션은 ‘요즘 젊은 애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장년층 건강관리에서 운동의 중요성은 말하기도 입 아픈 수준이다. 재밌게 건강관리를 하고 싶거나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마냥 누워 있기 질린다면, 올가을 등린이 아들, 골린이 딸과 함께 스포츠케이션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