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갑내기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난 뒤 한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과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려는지 한껏 흥이 올라 있었다.
청진동 피맛골을 출발해 종로3가에 이를 무렵 양측 도로변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구수한 멸치국물 맛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잔만 더하자는 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냄비우동을 안주삼아 회포를 나누다 자정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지만 어떻게 집을 찾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늦게까지 마신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아침나절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즐기며 여유 있는 게으름으로 창문 밖 멀리 비쳐지는 남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긴 호흡을 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언뜻 오래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작은바
람 하나가 떠올랐다. '삶에 대한 가치'였다.
이제껏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숨 가쁘게 매달려온 삶을 살아왔지만,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행복했고 즐거웠던 지난 수십 년간의 '직장'은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 늘 나와 함께 있었다.
자신은 누구인가? 한가문의 후손으로서 책임과 한가문의 장자으로서의 조상님들에 대한 도리, 한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자문(自問)해 보고 향후 후대(後代)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치와 보람이 담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가보(家寶)를 마련키로 마음먹었다.
며칠이 지난 오후 어느 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먼지 쌓인 서재를 정리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도서와 선친(先親)이 남겨주신 한지(韓紙)로 만들어진 해묵은 고서적과 더불어 누런색으로 찌든 표지의 몇 권의 족보가 한쪽 모서리에 꽂혀있음이 눈에 띄었다.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며 책장을 넘기자 선대 조상님들께서 기다렸다는 듯 반가움으로 맞이해 주시는 느낌이었다.
시조가 누구시며, 몇몇 대의 조부님의 함자(銜字), 업적, 몇 대손이라는 말들은 소싯적 부모님으로 부터 훈육삼아 들어온 터라 때가 되면 알려려니, 아니면 나중에 알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귀담아 듣지 않고 지나쳐 버리고, 3대 조상님만 봉향하여 온 터였다. 때문에 5대조 고조(高祖) 이상의
선조님들의 유적과 계위 마져 알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살아온 것이 현실이지만, 바꿔보면 자신에 대한 뿌리마져 알지 못하고 살았다는 자책과 더불어 이를 기회로 족보(族譜)와 유적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장서의 족보를 들여 보는 순간, 편집특성상 어려운 한문과 한자로 만들어지고, 여러 권과 도표로 연결된 세계(世系)연결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시조부터 직계선조 마저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책머리와 한 줄씩 부재만 읽고 해석함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됨을 알고, 우선 전권(全卷)의 편집형태를 살핀 후 장시간에 걸친 노력으로 성씨(姓氏)의 사성(賜姓)과 관향(貫鄕). 득성(得性)을
하게 된 역사와 유래, 그리고 더불어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님의 탄생연혁 및 선조님의 세계(世系). 파계(派系). 직계(直系). 문중(門中)을 우선 파악했다. 전국 각 지역에 흩어진 선조님들의 묘향(墓享), 유적(遺蹟), 업적(業績), 유작(遺作)을 알기 쉽게 요약 정리해 후손 계승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포(鮑) 한마리와 한잔의 술로나마 참배(參拜) 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먼저, 우리고향 영천의 유래와 성씨(姓氏), 사성(賜姓)에 대한 유래를 접하면서 절야화(切也火)라는 인상적인 생소한 단어가 있음에 궁금증을 더하게 되었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밤에 피어나는 야생화가 아닌가 싶었지만, 경북 영천시의 옛 신라시대 지역 군(郡)명이 변천되었음을 이번 족보탐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건치연혁(建置沿革) 본신라(本新羅) 절야화군(切也火郡)이였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임고(臨臯)로 개칭하였고, 고려초 도동(道同)과 임천(臨川) 이현(二縣)을 합해 영천(永川)으로 개칭하였으며, 역(域)은 고울부(高鬱府)라고 하였고, 조선조 태종13년에 영천군으로 이름을 정했다.
군(郡)명이 절야화, 임고, 영주(永州), 익양(益陽), 영양(永陽), 고울, 영천군에서 지금의 영천시로 변천돼 왔던 것. 우리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감회와 아울러 ○씨(氏)의 득성 유래와 시조님의 탄
생 연혁을 알게 되었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래를 살펴보면 ○씨(氏)의 선본(先本)은 신라 양산부(楊山府) 사람으로 유리왕 9년(서기 32년) 봄에 육부이름을 개칭하고 이로 인해 사성 할 때 양산부 대인에게 제일성 (第一姓)을 ○라하여 여기서 ○씨가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문헌이 전하지 못하였지만 이때 우리 ○○
○씨(氏)의 시조가 탄생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아울러 문헌자료를 찾고 찾아 전국에 흩어진 선대 조상님들의 묘향(묘 소재지)을 찾았을 때는 안타까운 일면도 있었지만 당시의 족적(足跡)을 미루어 볼 때 나라를 위해 활약하신 흔적을 엿 볼 수 있었으며, 우리 조상님들께서 남기신 국보급 유물과 주요 명소에 위치한 정감 스러운 서원(書院)과 아름다운 고택(古宅) 풍경, 군신(君臣)간 충절이 담긴 유명 시작(詩作), 조선조 4대 병란 때 의사(義士)활동과 임진왜란의 구갑선도(龜甲船圖: 거북선설계도), 천체성좌(星座)를 연구한 혼천의(渾天
儀) 신기옥형(璿璣玉衡), 수군절제사를 겸임 후 좌군총제로서 경상도병
마절제사(慶尙道兵馬節制使)의 활약상의 유적을 찾았을 때 후손으로서 가슴 벅찬 감회를 느꼈다.
시조(2000년: 서기32) 부터에 현재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수록된 족보, 문헌상 방대한 유적을 찾기란 어려웠지만 6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앞서 서술한 선조님들의 득성 연혁, 사성유래, 시조-중시조 탄생, 세계.파계.세손연계, 유적을 우선 파악했다. 하지만 직계 선조님들에 대한 구체적인 세계 계위, 함자, 묘소재지, 향사일, 업적, 유적 등은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달리보면, 자신의 부모님과 한없이 가까워지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헌신과 노력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시간을 통해 성숙하게 익어가는 인생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은 그 얼마나 많은 희생과 배려로 위대하게 완성되어 있는가.
부르면 부를수록 사무치는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라는 그 이름을 기억하며 위안과 용기를 얻는 삶 속에서 소중한 존재를 다시 기억하자는 뜻으로 본지에서 만드는 「어머니」 코너는 그러한 위대한 어머니들의 삶과 의미를 돌아봄으로써 삶의 의미를 다시 묻고자 한다. 그 첫 시작은 권오준 포스코 차기 회장의 어머니 정수생 씨(1994년 별세)다.
◆어머니의 깊은 혜안과 맑은 지혜로움으로 꽃핀 5남매
긴 진통을 앓던 포스코의 차기 회장에 권오준 기술부문장이 내정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권 차기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포스코에 입사해 연구개발 분야에서 정진했다. 또 포스코가 세계최초로 개발한 최첨단 파이낵스 신공법과 고부가가치 자동차 강판 등의 개발 주역을 맡았다. 한마디로 포스코에 뼈를 묻은 묵직한 기술전문가로서 위기에 처한 포스코를 구해내야 하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당신들은 헐벗어도 자식만큼은 반듯하게 키우려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희생적인 자녀사랑과 교육열이야말로 디지털 강국 코리아를 이룬 저력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권 내정자가 국민에게 존경받는 포스코를 만들고 글로벌 초일류 철강회사로 발돋움시킬 최고의 리더자로 성공하기까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너희들은 굉장한 사람이 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될거야’가 아닌 ‘된다’라는 확신으로 마음속에 단단한 심지를 심어 주셨다.
재경 영주 향우회 관계자는 경북여고를 나온 어머니는 자녀의 기를 살려주고 재능을 키워주실 줄 아는 교육적 혜안을 가지신 분이셨다고 기억했다. 자식들의 타고 난 재능을 키울려고 했던 맹모의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셨던 것.
“유학 간 아들이나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식들을 위해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것 좋아하셨습니다. 양계장 하실 때도 계란을 반듯한 걸로 골라 광주리에 담아 서울로 들고 가셨지요. 당신은 안먹고 안 입고 아껴서 쥐포, 오징어, 무말랭이, 백김치, 고추찜 등을 보내는,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아릿하고 따뜻한 넘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어머니를 잘 알던 고향의 한 어르신은 이렇게 회고했다.
끝없는 자식 사랑과 세상사는 법을 가르쳐주려는 어머님는 위대한 유산을 남기셨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5남매의 안타까운 효심에 고향 어르신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몰랐던 이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육개장, 콩가루 칼국수(안동국시),뼈다귀 곰국을 기억하는 권 내정자를 비롯 5남매들은 정작 어머니 정 씨가 좋아했던 음식이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어머니에 관한 회고에서 5남매만을 위해서만 맛있는 것을 해줬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선 알려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정 씨는 그러면서도 아이들 공부에까지 신경 썼다. 매번 자식들 숙제를 점검하던 정 씨는 자식들이 숙제에 대해 잘 몰라 하면 자식들보다도 자신이 더 분해했다. 모르는 자식에게 집을 나가라고 하고 책을 집어 던지기도 했고 아궁이로 가져가 책을 태우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되자 자식들은 울면서 어머니에게 매달렸고 한 번 울고 난 다음에는 묘할 정도로 공부가 잘 되곤 했다. 자식들의 학습열과 집중력을 위해 정 씨가 선택해야 했던 일종의 ‘쇼크 요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 5남매에게 보내주신 가장 큰 선물은 기도였다. 매일 밤 주무시기 전에 엄마는 꼭 정화수를 그릇에 가득 떠 놓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엄마에게 뭘 기도하셨냐고 물었더니 웃으셨다. 너들 잘 되는 거 말고 뭐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기도가 희망이었던 분이었고 그 기도는 어머니가 준 가장 큰 축복이었다.”
어머니는 많은 일을 했지만 서울에 가 있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기엔 돈은 항상 모자랐다. 등록금을 낼 때면 어김없이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정 씨는 때가 되면 남편을 닦달하여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하곤 했다. 그렇게 해놓지 않으면 남편은 자식들이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학교를 다니는 줄 알 거라는 게 정 씨의 우려였다. 그리고 5남매들은 자신들의 학교 생활이 부모님의 노력과 헌신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다.
◆자식들에게 보내주신 큰 선물 '기도'…경북 영주 출신 모두 서울사대부고 나와
권 차기 회장이 대두되면서 자연스럽게 권 차기 회장의 가족이 화제가 됐다. 큰 누나 권원주 씨는 이화여대 약대를 나와 약국을 경영중이며, 큰형 권오성 씨는 외대 출신으로 무역업을 하고 있다. 권 차기 회장의 첫째 동생 권오진 씨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병원을 운영중이며, 둘째 동생 권오용 씨는 고려대 정외과를 나와 전경련 홍보실장, 금호아시아나그룹 홍보전무, KTB 경영기획실 상무, SK그룹 홍보담당 사장 등을 역임한 후 현재 효성그룹에서 상임고문으로 재직중이다. 권 차기 회장의 남매들은 모두 서울사대부고 16회, 18회, 20회, 24회, 26회 동문으로 서울대 연대 고대를 잇는 스카이대와 이대 외대 등의 명문대학을 나와 각계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2008년 부친상을 당했을 때 포스코 기술연구소장 전무를 맡고 있던 권 차기 회장은 부고란에 자신의 신분을 ‘회사원’으로 적도록 했다. 포스코 전무의 부친상 부고가 나갔을 경우, 협력사 등에서 조문을 와야 하는 부담을 느낀다는 점을 고려해 배려한 것이다.
이처럼 권 차기 회장은 남들에게 나서는 것을 꺼려한다. 동생 권오용 고문은 “형님은 꼼꼼한 성격에 기술인이기 때문에 기술로만 보여주면 될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강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어머니 정수생 씨의 헌신
성공한 자식들의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기 마련이다. 권 차기 회장 5남매(4남 1녀)의 어머니 정수생 씨 또한 그런 위대한 어머니의 그림을 그리기에 충분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였다.
선친 권영건 씨는 본래 양반가문으로 70년대 초반까지 고향인 영주에서 대규모 제재소를 경영해 상당한 재력을 쌓았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에 몰려 사업이 기울었다. 그러나 가세가 어려워졌어도 자식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5남매 모두를 상경시키는 교육열을 보였다. 정 씨는 그러한 남편의 의지와 자식들의 미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남다른 고생을 해야 했다.
5남매에게는 전형적인 엄친자모(嚴親慈母)형의 부모님이었다. ‘健全/道義/勤儉’이라는 가훈을 직접 지어주신 아버지는 무섭기는 해도 풍류를 아는 여유가 있었다. 어머니 역시 자애롭기는 하셔도 결코 원칙에 벗어나는 적은 없었다. 비록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부모는 당시 큰 도시에서 아이들을 교육시켜야겠다는 믿음이 강하신 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돈이 문제였다. 자식들 유학 비용을 위해 정 씨는 서울에서 스테인리스 식기를 구매하여 영주에 가서 팔았다. 집 마당 한 켠에는 300마리 정도 되는 닭을 키웠다. 그 옆에는 돼지도 길렀다. 밤에도 불을 켜고 사료를 줘야 했다. 돼지야 먹던 걸 그냥 갔다 던지면 그만이었지만 닭은 사료를 사와 으깨서 나눠줘야 했다. 또 다른 벌이였던 하숙과 전세 관리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채를 하숙과 전세를 위해 내주고 정 씨를 비롯한 5남매 가족들은 사랑방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방에서는 꽃장사를 했다. 하굣길에 여학생들은 사랑방 창문을 통해 꽃을 사가곤 했다. 그 모든 것이 어머니 정 씨의 몫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제야 알게 되서…”
어머니!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너무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서울여자대학교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작 중에서
권 고문이 평소에 좋아하는 시인 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그의 그리움과 후회가 넘쳐난다. 이 절절한 그리움에 대한 동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고생 끝에 하나씩 이뤄지던 자식들의 성공을 지켜 본 정 씨는 1994년에 71세의 나이로 운명하셨다.
5남매의 어머니 정 씨의 삶의 가치와 자식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 이 땅의 어머니들의 삶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바쳤고 그렇게 성공한 자식에게서 얻는 기쁨으로 모든 것을 감내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무제한적인 사랑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머니는 5남매를 존중했다. 어머니 스스로의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는 것을 5남매는 뒤늦게 안다.
오는 3월 18일이면 어머니 기일이라 다 같이 모여 형제간의 깊은 우애를 다지는 시간을 함께 하기에 벌써부터 권오준 차기회장 내정자의 취임식에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축복 담긴 기도가 기다려진다. 권 차기회장 내정자는 3월 14일 정기주총 통과 뒤 이사회 승인을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캬, 좋~다!” 여행 중 기울이는 술 한잔엔 남다른 여유가 있다. 이보다 더 편안할 수 있을까. 여행의 흥을 돋우는 데는 역시 술이 빠질 수 없다. 특히 전통주는 그 지방의 전통과 문화를 한잔 술에 담아내고 있어 애주가들의 여행에는 필수다.
경기 포천을 여행한다면 이동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동면 도평리 백운산(해발 904m) 아래 자리한 이동막걸리 양조장은 인근 직판매장에서 도토리묵·손두부 등과 함께 효모가 살아있는 생막걸리 맛을 볼 수 있는 서민적 공간이다.
충남 서천군에는 소곡주가 유명하다. 현존하는 한국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로 연한 미색이 나고 단맛이 돌면서 끈적거림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술의 재료가 되는 잡곡의 냄새가 전혀 없는 최고급 찹쌀로 빚어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든다.
충북 충주에는 중원 청명주가 있다. 찹쌀과 밀 누룩으로 만든 술로 깊은 곡주 향과 맑은 황금빛이 특징이다. 조선 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이 즐겨 마셨다고 알려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긴 것을 1986년 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에서 여러 대에 걸쳐 터를 닦고 살아온 김영기 옹이 집안에 전하는 향전록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지금은 그의 아들 김영섭 씨가 4대째 술을 빚고 있다.
전북 완주군에는 송화백일주가 있다. 수도승들이 고산병 예방을 목적으로 즐겨 마셨다는 곡차(穀茶)에서 유례를 찾을 수 있는 송화백일주는 송홧가루, 솔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찹쌀, 백미, 보리 등 다양한 재료로 빚은 밑술을 증류해 얻는 증류식 소주다. 송홧가루의 황금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송화백일주는 38도라는 도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것이 장점이다.
전남 해남에는 조선 임금이 구중궁궐에서 마셨다는 술이 있다. 해남 진양주다. 2011년 프랑스 OECD 회의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만찬주로 선정됐을 만큼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해남 진양주는 순수하게 찹쌀과 누룩으로 빚었지만, 꿀을 섞은 듯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경북 영주를 대표하는 전통주는 오정주다. 솔잎, 구기자, 천문동, 백출, 황정 등 기운을 북돋는 한약재가 들어간다. 제주에도 전통주가 있다. 오메기술이다. 제주에서는 좁쌀막걸리라 불리며 제대로 즐기려면 성읍민속마을에 가야한다. 무속신앙이 성행하던 옛 제주도에서 사시사철 당신(堂神)에게 제사를 드리며 따르던 술이다.
그밖에 강원 홍천에서는 전통 누룩과 홍천에서 나는 찹쌀, 단호박으로 빚은 동몽과 같은 재료로 빚는 만강에 비친 달이 유명하다.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한잔 술에 담은 전통주가 여행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술 하잔이 담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여행하며 알아가면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