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내에서 노후 파산을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연금 외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수명이 길어지면서 파산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일본 공영방송 NHK는 이라는 주제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에 따르면 600만 명에 육박하는 독거노인 중 약 300만 명이 기초연금으로 살고 있었다. 돈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하루 1000원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전기가 끊기고 대인 관계도 끊겼다.
문제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파산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방송은 ‘장수는 악몽’이라며 방송에 담지 못한 내용을 ‘노후 파산’이라는 책으로도 출간했다.
일본에서 ‘노후 파산’이라는 말이 대중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한 건 이 방송 이후부터다. 생활 보호 기준보다 낮은 수입으로 생활하는 고령자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됐다.
현재 일본의 고령자는 일본 경제 성장기에 경제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도 있고, 연금도 있고, 60세 정년까지 은퇴 염려 없이 일했다. 그런데도 왜 노후 파산이 지속해서 문제가 되는 걸까?
내각부의 '2022년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고령자 가구는 약 2500만이다. 그 중 독거노인은 670만 명에 이른다. 2명 이상이 생활하는 고령자 가구 중 57만 가구와 독거노인 중 33만 명은 예금도 없이 생활하고 있다.
종합 정보 사이트 SGO는 위 통계를 바탕으로 약 225만 명의 고령자 가구가 돈이 없고 음식을 살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고령자 가구의 절반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파산 사건 및 개인 재생 사건 기록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파산채무자는 2002년 약 17%에서 2020년 약 26%로 증가했다. 50세 이상 파산채무자까지 포함하면 약 47%에 이른다. 파산의 원인으로는 생활고(62%), 의료비(23%), 실업(18%) 등이 꼽혔다.
고령의 생활 보호 대상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생활 보호 수급자 중 60세 이상은 60.4%에 이른다.
연금 외 수입이 끊긴 상태로 오래 살면서 몸이 아프게 되면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결과다. 게다가 ‘누구나’ 파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는 "고성장기에 60세까지 염려 없이 회사에 다니고 월 200만 원에 가까운 연금을 받는 일본인데, 어째서 노후파산이 심각해진 건지 들여다봤다. 퇴직연금 제도가 없는 중소기업을 다녔거나, 자영업, 농업종사자 등 연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우리나라의 기초연금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일본의 국민연금은 후생연금이라고 부른다)으로만 생활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우리나라의 기초연금) 최대 수령 가능 금액은 65만 원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파산에 이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대표는 "집 한 채씩은 다 가지고 있는 연령대이기도 한데,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낮아진데다, 오래된 집이라 팔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라며 "오죽하면 일본 언론에서 이제는 부동산(不動產)이 아니라 부동산(負動產) 시대가 왔다고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일본경제신문은 독거노인이 고독사 하거나 자녀가 상속받지 않아 빈 채 방치되고 있는 빈집이 많아지면 결국 마이너스 동산 시대가 올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도, 고소득자도 노후 파산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고소득자의 경우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이 많고 정부 정책 등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노후 파산의 원인으로는 △노후에 사용할 저축액이 적다 △의료비와 개호비용이 증가한다 △생활 수준을 낮추지 못한다 △주택담보대출 등 주거비 부담이 크다 △자녀 교육비 부담이 크다 △황혼이혼이 늘어난다 △사기 피해에 쉽게 노출된다 등이 꼽힌다.
이에 일본에서는 정년 전부터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후 파산의 원인으로 꼽히는 위 7가지를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연금 등으로 노후 수입원을 확보하고, 노후에 쓸 수 있는 저축을 꾸준히 해야 한다. 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 상환을 서두르고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조기 건강검진 등으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또한 정부는 지자체에 지역포괄 지원센터, 자립 지원 상담 창구, 생활 보호 제도, 생활 곤궁자 자립 지원 상담 제도 등을 마련했고, 파산에 이르지 않도록 고령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것을 당부했다.
언제부턴가 마을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귀해졌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0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멸위험 지역은 총 119개로 전체 시·군·구의 52%에 이른다. 태어나는 아이는 줄고, 고령자는 늘고 있다. 지역 소멸을 해결하려면 인구를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인구 감소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조영태 인구정책연구센터장(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말이다. 100년 역사를 지닌 공주기독교박물관 공간에서 미래가 정해졌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보는 느낌이었다.
8월 31일 퍼즐랩과 써드에이지가 주관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한 ‘2023 제민천 포럼X재도전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가 모여 인구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지역이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뤄졌다.
국내 인구학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영태 센터장이 이날 행사에 참여한 건 큰 의미가 있다. 지역에서 인구 감소에 대응할 실마리를 봤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인구’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간다면 지역 소멸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컬’이라는 지역 공간과 ‘생활 인구’라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활 인구는 서울시가 2018년 제시한 새로운 인구 모델로, 출퇴근·관광·의료·등하교 등을 목적으로 지역에 오고 가는 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행사가 열린 공주는 생활 인구와 정주 인구가 점차 늘어나는 지역이다. 공주는 2022년부터 전입자 수가 전출자 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3년(8월 기준)에는 청년 인구수가 감소에서 증가로 돌아섰다. 공주 원도심에서 커뮤니티 기반 지역관리회사 퍼즐랩을 운영하는 권오상 대표는 “아주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전입자가 늘어나고 청년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실마리”라고 했다.
권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2021~2022년 2년 동안 1212명의 청년이 공주를 경험했다. 올해는 행정안전부 ‘2023 재도전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돼 ‘마을생활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있다. 중장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살이 프로그램이다. 특히 중장년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정작 지역에 내려와 마을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는 경험을 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생활 튜토리얼’은 지역과의 관계 맺음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내가 이 지역에 와서 산다면 어떤 생활이 이어질까’ 상상해보고 실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권 대표는 “중장년의 경우 커리어, 취향, 경험을 가지고 지역을 이동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지역에 온다는 건 마치 하나의 세계가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며 “지역에 필요한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분들이 실제로 자신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지역만 이동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았다”고 말했다. 반드시 지역에 정착하지 않더라도 도시와 지역을 오가며 그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중장년의 연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권오상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라면서 “현업에서 전문성을 쌓았지만 반복되는 업무가 지루하신 분,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팀으로 일할 수 있는 분, 은퇴 후 나의 재능으로 봉사하고 싶은 분들은 지역에서의 삶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장년의 지역 생활을 응원했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정부는 노인 주거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 주거 정책은 저소득층 중심이며, 고령자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한계가 지적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약 697만 명이 노년기에 진입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새로운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조성이 그 해답으로 꼽힌다.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2월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 중 ‘고령친화적 주거환경 조성’은 고령친화적 주택 공급 확대, 고령친화 커뮤니티 확산을 위한 기반 마련, 고령자의 교통 복지 기반 구축, 총 3개의 추진 과제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고령친화 커뮤니티 확산을 위한 기반 마련은 베이비부머를 위한 주거 정책의 일환으로 ‘(가칭)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모형 개발 및 시범 조성 추진을 포함하고 있다.
K-CCRC는 Korean-version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로서, 베이비부머가 이주하여 지역의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며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단지 모형을 말한다. 기존 거주지에서 계속 거주하는 의미의 AIP(Aging In Place)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 더 큰 차원의 공동체 속에서 거주하는 AIC의 개념을 담고 있다.
K-CCRC는 다섯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수도권 대도시 베이비부머(베이비부머의 48.3%가 수도권 거주)가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 △이주한 베이비부머가 지역사회 및 지역의 자원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지역의 다양한 세대 및 연령층과 교류하는 것 △ 지역에서도 의료·돌봄 등 복합 서비스를 계속해서 제공 받는 것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LH 산하 연구기관인 토지주택연구원은 2021년부터 후속 방안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해 ‘초고령사회 선제적 대응을 위한 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K-CCRC) 조성에 관한 기초 연구’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전국적으로 산재한 시니어타운을 포함한 노인복지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고령자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과 웰플러스주택, 고령친화주택이 CCRC에 해당하지만, 순수하게 K-CCRC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생애활약마을 사업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소개했다. 도쿄권을 비롯한 각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가 그들의 희망에 따라 지방이나 지역의 도심지구나 중심 시가지에 이주하고, 지역 주민이나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면서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보내며, 필요에 따라 의료·개호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베이비부머 74.9% “K-CCRC 이주 의향 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지난 6월에는 ‘초고령사회 대응 K-CCRC(한국판 은퇴자복합단지)의 정책 추진과 계획 모형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행했다. 베이비부머 74.9%가 K-CCRC 이주 의향이 있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수도권 거주 베이비부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남녀 각 500명, 전기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와 후기 베이비부머(1965~1974년생) 각 500명, 거주 지역은 서울과 서울 외 수도권(비서울) 각 500명이 응답했다.
응답자의 87.6%는 공동주택에 거주했으며, 거주 유형은 자가가 71.1%, 임대가 28.9%로 나타났다. 월평균 소득은 약 500만 원이었으며, 72.5%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였다. 자산 규모는 가구당 평균 자산 5.47억 원보다 훨씬 많은 평균 8.35억 원이다. 학력과 소득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의 중산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은퇴 후 또는 가까운 미래에 비수도권 지역에 K-CCRC가 조성된다면 이주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물음에 응답자의 74.9%가 이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은퇴 후 안정된 노후생활’ 22.6%, ‘고령자를 위한 여러 복지시설’ 21.2%, ‘안전한 고령친화 생활공간’ 18.6% 순으로 나타났다. 이주 시기는 은퇴 후 연금 수익이 보장되는 시점인 ‘노인연금수령 연령 65세 이후’가 55.9%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K-CCRC 이주 의향이 없는 25.1% 251명에게 이유를 묻자 36.3%가 ‘의료복지서비스 시설 여건’이라고 꼽았다. 그 뒤를 ‘일자리 마련 및 취업 지원 여건’ 15.9%, ‘대중교통 접근성 여건’ 13.5% 등이 이었다. 이러한 이주 저해 요인이 개선된다면 이주 의향이 없는 251명 중 22.7%인 약 57명은 이주하겠다고 답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K-CCRC의 방향을 도출했다. 먼저, 대상은 고령자뿐만 아니라 중장년, 청년, 아동 양육 가구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인구감소율과 고령화율이 높고, 고령친화 시설 공급률과 고령자 경제활동 및 일자리 지원율 그리고 의료 자원 공급률이 낮은 지역들이 적합하다. 입지는 지역사회와 연계 또는 교류에 용이한 도심 또는 도심 근교이어야 한다.
시설 구성은 독립주거, 돌봄주거, 돌봄시설, 돌봄병원, 주간돌봄센터(재가센터), 어린이돌봄센터(어린이집), 입주민지원센터로 이루어질 수 있다. 추가 시설로 고령자의 경제 활동을 위한 취업지원센터(민간 및 공공일자리), 지역사회 교류를 위한 여가·문화·체육시설, 생활편의시설 등이 포함되면 좋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이러한 시설들은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반드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체계 또는 사회관계망 내에서 작동하도록 입주민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초기의 계획대로 K-CCRC 조성을 통해 초고령사회와 지역 불균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착취는 선진국형 사회문제 중 하나다. 고령자가 많고 연금 제도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금융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 사실을 숨기거나 자신이 금융착취를 당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노인 파산으로 이끄는 금융착취에 대해 알아봤다.
#사례1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가고 있는 70대 A씨는 몸이 불편해지면서 은행 방문이 어려워졌다. 그러자 아들 B씨는 통장 관리와 현금 인출을 돕겠다고 나섰다. 어느 날 자동이체 등록을 해둔 공과금이 연체됐다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당황한 A씨는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의 기초생활수급비는 매달 아들 B씨의 통장으로 자동이체되고 있었다.
#사례2 무릎 수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진 80대 C씨는 혼자 살고 있어 간병인 서비스를 신청했다. 딸처럼 어려운 일도 마다 않고 정성껏 자신을 돌봐주는 간병인 D씨가 고맙고 신뢰감이 높아지자, C씨는 장보기, 생활비 관리, 금융기관 방문 등을 맡겼다. 자연스럽게 통장과 인감을 맡겼는데, 어느 날 C씨의 자녀는 C씨의 통장 잔고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간병인 D씨가 전 재산을 가져간 것. 하지만 D씨는 “허락을 받고 정당하게 쓴 돈”이라며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다.
선진국에서는 노인 금융착취에 대해 사회적·개인적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금융착취에 대한 조사나 대응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포괄적으로 경제적 학대에 대한 조사만 이뤄지고 있다. 경제적 학대는 가까운 사람을 사칭해 재산을 빼앗는 것, 보이스피싱, 강제적인 방문판매나 텔레마케팅 등 매우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금융착취는 노인의 재산과 권리를 빼앗는 행위를 말한다. 가족·지인 등 다른 사람이 당사자의 허락 없이 의도적으로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행위다. 그리고 이것이 직접적으로 당사자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상황을 일컫는다.
금융착취는 신뢰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로 발생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재산은 내 재산’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고, 부모 역시 자녀와의 경제적 독립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녀를 책임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금융착취가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조차 갖지 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에는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849만 명 중 약 2만 5000명이 ‘경제적 학대’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지만 그중 신고를 한 사람은 431명에 불과하다. 또한 가해자는 아들(60.4%), 딸(10.8%), 배우자(9.4%), 가족이 아닌 타인(5.8%)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80대에서 가장 많은 금융착취가 발생했으며,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이뤄졌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고령층의 경우 질병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고 금융거래 관련 정보 습득이 어려워 가족·지인·간병인 등에 의한 금융착취에 노출되기 쉽다”면서 “금융착취는 새로운 장수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착취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본인 허락 없이 임금, 연금, 임대료, 재산 등을 가로챈 경우 △본인 허락 없이 저축, 주식 등을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사용한 경우 △본인 허락 없이 본인 명의의 은행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 사용한 경우 △본인 허락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빌린 돈을 갚지 않은 경우다.
오영환 사무총장은 금융착취로부터 고령층을 보호하려면 고령자 스스로 방어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금융착취 예방 교육을 받아야겠지만, 금융회사의 주체적인 보호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노인학대’ 중 하나로 ‘경제적 학대’를 정의하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복지 영역에서 이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갑작스럽거나 비정상적인 예금 출금, 이체, ATM을 통한 반복적인 예금 출금, 관계가 없는 해외 수취인과의 자금이체·송금, 가족·친인척·간병인 등의 노인 고객을 대리한 금융 거래는 전형적인 금융착취 모습”이라면서 “이를 파악하고 조치할 수 있는 곳은 금융기관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수입이 줄어들고 생활비를 절약하는 노인의 경제활동은 지출 현황이 대부분 일정한 편이다. 평소 동네 슈퍼마켓이나 약국에서 지출되던 것이 어느 날 자동차나 명품 가방 구매로 이어진다면 갑작스럽게 다른 소비 형태를 띤 셈이다. 오 사무총장은 금융기관에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면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보호자에게 알릴 수 있어 금융착취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금융착취에 관한 모니터링 시스템, 상담 혹은 신고 창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오 사무총장은 “고령층의 금융 생활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금융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지만, 아직까지는 금융착취에 대한 금융기관의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짚으면서 고령층뿐 아니라 금융기관 직원에게도 금융착취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착취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전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착취는 주로 가족・지인 등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추후 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미리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장이나 도장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넘겨주면 안 된다. 만약 부득이하게 통장 관리를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면 사용 내역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이 나빠져 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경우에는 각종 대금이 자동이체되도록 설정해두자.
또한 금융권에서 보이스피싱 등을 막기 위해 일정 금액을 설정하고 그 이상 인출 시 거래를 정지하는 서비스나, 사전 등록 보호자에게 통보하는 통장 관리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다.
돈을 빌려준다면 반드시 빌려준 금액, 빌려간 사람 이름, 빌려준 날짜를 기록해둬야 한다. 특히 가족 사이에서 생활고를 이유로 휴대폰 요금이나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돈을 자의로 준 것인지 타의로 빼앗긴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록을 남겨두는 게 도움이 된다.
재산에 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공증인이나 변호사 등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문서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뒤 진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금융착취가 발생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초기에 대처하도록 하자.
만성 콩팥병은 3개월 이상 콩팥에 손상이 있거나 콩팥 기능이 저하된 상태의 질환을 말한다. 6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9%를 차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장 기능이 저하되며, 고령자의 대표적인 만성 질환인 고혈압, 당뇨병 등이 신장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에 대한 궁금증을 김소연·권순효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신장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콩팥에는 사구체라는 혈액 여과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며 걸러진 노폐물은 소변으로 배출된다. 만성 콩팥병(만성 신부전증)은 콩팥이 여러 이유로 지속적으로 손상을 받아서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을 말한다. 주요 원인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이 꼽힌다. 고혈압으로 혈관이 손상되면 콩팥에 이상이 생기며, 당뇨병으로 혈액 속에 당이 많으면 신장 조직에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성 콩팥병은 ‘많고 비싼 병’으로 통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17년 20만 3978명에서 2021년 27만 7252명으로 5년 새 36% 증가했다. 국내 성인 7명 중 1명은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만성 콩팥병 진료 환자 수 및 진료비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849만 원이었다. 진료비가 높은 이유는 ‘투석’과 관련 있다.
만성 콩팥병은 진행 상태에 따라 1~5기로 구분한다. 초기 1~2기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물 치료와 철저한 관리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사구체 여과율 60% 미만의 3기에 이르러야 증상이 나타나는 편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단계인 5기는 ‘말기 신부전’이라고 하며, 투석 치료나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 시기에는 5년 생존율도 약 61.5%로 떨어지는데, 이는 일부 암의 5년 생존율보다 더 낮은 수치다. 이에 따라 조기 발견이 중요하며, 건강한 습관으로 병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
Q. 부종과 같이 뒤늦게 나타나는 만성 콩팥병의 증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자신이 당뇨 환자라면 만성 콩팥병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A.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지만,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피곤함, 집중력 저하, 식욕부진, 수면장애, 발목 부종, 야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신이 붓는 증상은 신장과 심장, 간 등의 질환이 있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당뇨병 환자 3~4명 중 1명에게 만성 콩팥병이 생기고, 말기 신부전 환자 2명 중 1명은 당뇨병이 원인일 정도로 당뇨병 환자와 신장 합병증은 관련이 깊습니다. 적절한 식이·운동·약물요법을 통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해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정기적인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로 신장 합병증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형 당뇨가 있는 사람은 최소 1년에 한 번씩 소변 알부민뇨 검사와 혈액에서 추정하는 사구체여과율 검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Q. 5기 환자의 경우 5년 사망률이 암보다 높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위험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5기 말기 신부전 환자들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은 심혈관 질환입니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는 당뇨, 고혈압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심혈관 질환 위험인자인 요독증, 혈관 석회화, 대사성 산증을 가지고 있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10~30배 높습니다.
Q. 신장이식 수술은 위험성과 부작용이 잇따를 것 같습니다. 현재 의료진이 이식 수술을 권장하는지, 반대로 지양하는지 추세가 궁금합니다.
A.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는 신장이식이나 투석 같은 신 대체요법을 시행합니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신장이식을 받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장이식이 투석에 비해 장점이 많습니다. 거의 정상 신장 기능을 가지게 되어 투석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는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으며, 조혈 호르몬, 활성화 비타민 같은 호르몬이 만들어집니다. 투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거의 정상적인 식사와 생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식할 신장을 제공받기가 쉽지 않으며, 수술에 대한 정신적・육체적・경제적 부담이 있습니다. 또한 이식 후 거부반응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이로 인해 감염이나 암 같은 면역억제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식을 준비하기에 앞서 이식의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신장 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데, 이 상태에서 물을 과다하게 마시면 혈액량, 체액량이 늘어 폐부종이나 부종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무조건 수분 섭취를 제한하면 오히려 탈수로 인한 신장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만성 콩팥병 단계와 소변량 등을 살펴보고 주치의와 상의해 적정 수분 섭취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을 예방하기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만성 콩팥병의 원인이 되는 당뇨, 고혈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활 습관 개선과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혈당 및 혈압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배는 반드시 끊고 술은 하루에 한두 잔 이하로 줄이는 것을 독려합니다. 더불어 만성 콩팥병 환자는 충분한 열량과 적당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며, 염분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또한 포타슘(칼륨)과 인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다만 이와 같은 식이요법은 증상 악화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질환 자체를 고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둬야겠습니다.
카페, 영화관, 식당가에는 키오스크뿐 아니라 테이블 오더, QR 결제, 테이블링,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예약 등 다양한 방식의 비대면 주문·결제 서비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르는 물가와 부족한 인력 탓이다. 디지털화로 예약, 주문, 결제까지 고객이 직접 하면서 사장님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지만, 아직 디지털 기기가 어려운 고령자에게는 외식 문턱이 또 한 단계 높아졌다.
#도심의 한 카페
67세 김영수(가명) 씨는 아내와 카페에 들어와 15분째 난항을 겪고 있다. 키오스크 자체가 낯선 데다 화면 속 그림과 글씨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아서다. 겨우 따뜻한 원두커피처럼 보이는 그림을 선택해 결제하기를 눌렀는데, 진행이 안 된다. 주변에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Shot(샷) 추가’ 버튼이 보인다. 샷이 뭔지 모르겠지만, 추가 금액을 내야 하는 것 같아 ‘선택 안 함’을 눌렀다. 이제 아내가 마실 커피를 추가해야 하는데, 산 넘어 산이다. 아내는 뒤로 이어진 줄을 보더니 “그냥 한 잔만 시켜요. 난 안 마실게요”라고 작게 속삭였다.
#유명한 빵집 앞
60세 박정남(가명) 씨는 오랜만에 집에 찾아올 딸을 위해 빵을 사러 왔다. 워낙 유명한 가게라 줄 서는 걸 알기에 오픈 30분 전에 도착했다. 가게 주변에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줄을 서 있지 않아 의아했지만, ‘온 순서대로 눈치껏 들어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10시, 가게 영업 시작이다. 직원이 나와 “1번 손님부터 입장하세요”라고 말했다. 번호 대기표를 받아야 했던 모양이다! 황급히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무슨 앱으로 예약해야 한단다. 도움을 받아 겨우 앱을 설치했지만, 다음은 회원가입이다. 아무래도 빵을 사긴 그른 것 같았다.
지난 한 달간 방문한 카페, 식당, 빵집에서 기자가 만난 고령자는 공통적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키오스크, 테이블 오더, 테이블링 등은 고령자에게 여전히 생소한 디지털 기기다. 기기별로 사용법이 달라 새로운 가게에 갈 때마다 매번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의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이용하다 주문을 포기한 사람은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많아졌다. 40대는 17.3%지만, 60대는 77.9%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많아질수록 외식 비중은 크게 줄어드는 모양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소비 행태조사’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이 30대 이하의 외식 비중은 83.5%, 40대는 87.8%였으나, 70대의 경우 46.3%로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속도 높이는 요식업계 디지털화
요식업계의 디지털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이 요식업계로 들어왔다. 여기에 최근 높아진 물가와 인력난으로 사람을 대체할 키오스크, 테이블 오더, 서빙 로봇, 음식 제조 로봇 등이 등장했다.
키오스크는 이제 대중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요식업 곳곳에 녹아 있다. 그렇다 보니 능숙하게 키오스크를 활용하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여전히 키오스크 앞에 서면 긴장되는 고령자도 적지 않다. 키오스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글씨가 너무 작고 조작 화면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테이블 오더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키오스크와 비교하자면 자리에 앉아 주문하는 것이니 잘 모르더라도 이것저것 눌러보며 기계를 살펴볼 시간적 여유는 있다. 하지만 역시 글씨가 작거나 외래어가 익숙하지 않아 그림을 보고 고르게 된다.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에서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결제다. IC 카드로 결제가 한 번에 안 되었을 때 대부분의 고령자는 당황한다. 기계와 소통되지 않아 ‘IC 카드로 결제해달라’는 음성을 듣지 못하고 마그넷을 긁거나, ‘IC 카드 인식에 실패했다’는 음성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카드를 꽂아 결제를 시도하는 식이다. 또 할부나 개별 결제를 하고 싶어도 결제 기기를 이용해본 적이 없어 결국 직원을 찾아야 한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은 접근 기회조차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QR 코드, 애플리케이션, 네이버 예약 등은 고령자에게 불친절한 시스템이다. ‘노년기 정보 활용 현황 및 디지털 소외 해소 방안 모색’ 논문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고령자가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 정보 활용에서 중요한 ‘필요한 앱 설치 및 이용’ 비율은 청년층 88.7%, 중장년층 79.7%, 노년층 28.8%로 격차가 확대됐다.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해서 원하는 가게를 찾아 예약해야 하는데, 결국 자녀가 대신 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마저도 대신 해줄 가족이나 지인이 없으면 예약 전문 식당은 방문 자체도 쉽지 않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응 방법으로 키오스크 활용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사회 추세라고 봐야 한다”면서 “과도기라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어르신들이 이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혼자 살거나 두 분이 생활하는 분들은 외식이 어려워지거나 고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기기를 이용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됐다는 자괴감도 느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심리적 허들까지, 산 넘어 산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서 가장 불편해하는 점은 심리적 위축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 작아지는 기분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고령자의 자기 효능감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기 효능감이란 목표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유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고령자의 디지털 소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면서 “기기에 대한 접근성이나 유용성 문제도 있지만,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필요성을 충분히 못 느끼거나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자들은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며, 쉽게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져 스스로를 탓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고 했다. 유 교수는 ‘고령자의 심리적 요인을 고려한 키오스크 사용경험 개선 제안’ 연구에서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의 심리가 키오스크 이용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연구 결과를 보면 사회 분위기상 키오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또래가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 등의 사회적 특성 요인과 혁신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 키오스크를 쓰며 개인이 느끼는 자기 효능감이 키오스크라는 기술 수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키오스크 이용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고령자들은 지속적인 기술 수용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많은 고령자가 키오스크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유은 교수는 그 원인 중 하나로 교육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디서 하는지 잘 모른다’, ‘멀리 가야 하는 것이 싫다’는 고령자 응답이 있었고, 교육을 받았더라도 ‘교육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것. 유 교수는 향후 키오스크에 관한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오스크 기기 자체의 사용성, 고령자를 돕는 인적 자원, 주변·사회의 인식 개선이다. 유 교수는 “키오스크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고령자의 심리를 고려한 시스템적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고령 친화적 디자인이 반영된 키오스크 기기 자체의 사용성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또 교육이나 도우미를 통해 기술 불안을 극복하고 고령자 스스로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성공 경험을 쌓는 것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줄서기 경험 개선, 매장 내 환경 개선,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을 통해 고령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 압박감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순둘 교수도 다양한 측면의 변화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니 고령자도 ‘나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배우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사회는 어르신들이 디지털에 익숙해지고 극복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해야 한다. 식당, 은행 같은 현장에서도 도우미를 두는 등 적극적으로 고령자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한 듯 교육부는 ‘2023년 성인 문해교육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사용법, 식당 키오스크, 은행 계좌이체 등 일상에서 필수적인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비대면 디지털화는 누군가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심리적 허들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리함을 모두가 누릴 수 있으려면, 디지털 변화 속도를 따라가고자 하는 이들을 기다려주고 공감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금융사기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0·50대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2019년 약 3400억 원에 달했다. 60대 이상의 같은 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약 1760억 원이다. 2019년과 2020년 40대 이상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총 약 7700억 원에 이른다.
노후에 금융사기로 재산을 다 잃게 되면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심적 피해도 상당하다. 고령층을 대상으로는 금융 사기뿐 아니라 경제적 학대도 위험 요소다. 80대 부모의 연금을 독립하지 못한 50대 자녀가 가져가는 예도 있고, 요양원 원장이나 요양보호사가 치매에 걸린 고령자의 예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은퇴 후 준비 없이 창업했다가 받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폐업하면서 자산 압류에 처하는 사례도 있다. 대출 사기에 휘말려 압류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여러 이유로 자산이 압류되면 노후 생활이 빈곤해지는 악순환에 들어설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압류방지 방법들과 금융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알아두자.
◆압류방지통장
1. 국민연금 안심 통장
국민연금은 법적으로 압류를 못 하게 되어있지만, 국민연금을 받아서 일반 통장에 넣어두면 연금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다. 통장에 압류가 들어온다면 연금이라는 걸 소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게 국민연금 안심 통장이다. 분할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 반환일시금을 입금할 수 있고 일반 자금은 입금할 수 없다. 한 번에 이체할 수 있는 금액은 최저 생계비 수준인 185만 원까지다. 출금할 때는 일반 통장과 같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2022년 6월 기준 안심 통장 가입자는 약 32만 명이다.
2. 행복지킴이통장
행복지킴이 통장은 수급자 전용 압류방지 통장이다.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수급금 등만 입금할 수 있다. 야외 육체노동이 많아 질병이 잦은 농민을 위한 정책보험 ‘농업인NH안전보험’의 보험금도 행복지킴이 통장으로 입금 가능하다.
주민센터에서 수급자 증명서를 발급받고, 은행에 방문해 행복지킴이통장을 개설하면 된다. 이후 주민센터에 해당 통장을 수급금 입금계좌로 변경하면 된다. 농업인NH안전보험으로 행복지킴이통장을 개설하고 싶다면 보험가입내역확인서나 보험증권을 챙겨야 한다.
구직급여‧연장급여‧구직촉진수당 등의 압류를 방지하는 실업급여 지킴이통장도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해당 통장을 행복지킴이통장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3. 주택연금 지킴이통장
주택연금을 받고 있다면 주택연금 지킴이통장으로 185만 원까지 압류를 방지할 수 있다. 185만 원 이상 연금을 받는다면 185만 원은 지킴이통장으로, 초과금액은 일반계좌로 나누어 지급해준다.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를 방문하거나 유선으로 ‘주택연금 전용계좌 이용 대상 확인서’를 발급한 뒤 주택연금을 받는 계좌의 은행 영업점에서 개설할 수 있다. 입금액은 한도가 있지만 잔액은 한도 없이 유지할 수 있고 출금 및 이체도 자유롭다.
4. 농지연금 지킴이통장
농민이라면 농지연금 전용 지킴이통장이 있다. 농지연금 제도는 고령 농가의 소득 안전망 확보를 위해 영농 경력이 5년 이상이고 만 65세 이상인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로 받는 연금이다. 농지연금 지킴이통장은 NH농협은행이나 지역 농·축협에서 가입할 수 있다.
농지연금 신규가입자는 압류방지통장 개설 후 농지연금에 가입하면서 해당 통장으로 연금 수급을 신청하면 되고, 기존 농지연금 가입자는 통장 개설 후 한국농어촌공사에 계좌 변경을 요청하면 된다. 안심통장과 마찬가지로 185만 원까지 입금할 수 있다.
5. 기타 압류 방지 통장
위 네 가지 통장 외에도 ▲실업급여 지킴이통장(구직급여‧연장급여‧구직촉진수당 등) ▲공무원연금 평생 안심통장(공무원 연금 수급자) ▲국방부 압류방지 통장(장병급여 안심통장) ▲희망지킴이통장(산재보상 수급자) ▲노란우산공제(자영업자·소상공인) ▲임금채권 전용통장(사업주 대신 국가가 지급하는 체불임금 압류방지) 등이 있다.
또한 퇴직금도 압류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퇴직연금 통장으로 잘 알려진 IRP 계좌를 활용하면 된다. 퇴직금을 일반 통장으로 받으면 압류 위험이 있지만 IRP 통장에 넣어둔 퇴직금은 압류할 수 없다.
◆금융사기 예방 서비스
6. 지정인 알림서비스
카드 대출 금융사기가 걱정된다면 지정인 알림서비스를 신청하자. 고령자의 신용카드 대출 상품 이용 내역이 가족이나 사전 지정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안내된다.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고령자가 가입 가능하다. 대면으로 신규카드 발급할 때 가입할 수 있으며, 발급 후에 개별 가입도 가능하다. 다만 알림서비스에 가입할 때 알림을 받도록 지정한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만약 지정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알림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7. 대리청구인 지정
치매로 인해 보험금 수령이 걱정될 때는 대리청구인 지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험 수익자가 치매, 의식 불명, 중대한 질병 등으로 직접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을 때를 위한 서비스다. 대리청구인이 대리로 보험금 신청을 할 수 있다. 대리청구인은 치매보험, 자동찿보험, 질병·상해보험 등 다양한 생명·손해보험에 적용된다. 치매보험의 경우 계약을 체결할 때 원칙적으로 대리청구인을 지정하도록 되어있다. 다만 서비스 적용 가능 상품이나 지정대리청구인의 범위는 보험회사별로 다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또 대리청구인에게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서 피보험자(보험 가입자)가 의사능력을 회복해 보험금을 다시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이미 보험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재지급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따라서 대리청구인은 믿을만한 사람으로 신중하게 지정하도록 하자.
8. 보이스피싱지킴이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지킴이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보이스피싱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보이스피싱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내한다. 다양한 보이스피싱 사례들도 소개한다. 사전에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한편, 만약 피해가 있었다면 신고와 함께 해결 방법들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에서는 금융사기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은 무료로 들을 수 있으니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보고 사전에 금융사기 예방교육을 받아두는 것도 좋겠다.
흔히 '실버 택배'라고 불리는 지하철 택배는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하는 이들은 이 직업을 어떻게 바라볼까? 2010년부터 시작해 13년 동안 지하철 택배를 해오면서 배송일지를 기록한 택배원이 있다. 조용문(83) 택배원을 만나 그의 일과를 들어봤다.
지하철 택배원의 하루
조용문 씨가 택배 일을 시작한 것은 지자체의 디지털 수업이 도움됐다. 2010년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자를 대상으로 한 모집 공고를 보고 지하철 택배원 모집에 지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조용문 택배원은 8시 10분에 집에서 출발해 9시 반까지 종로3가역에 도착한다. 액세서리를 주로 배송하기 때문에 보석류 액세서리 상가가 즐비한 종로3가역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택배 회사에 출근했다는 문자를 보낸 후 주문을 기다리는 것이다. 택배 회사로부터 물품 수령 장소와 연락처가 적힌 문자를 받으면 접수했다는 문자를 보낸 후 바로 이동한다. 물품을 수령할 때, 배송을 마쳤을 때도 회사에 바로 보고를 남긴다. 한 개의 물품을 배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배송이 끝나면 다시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앉아서 다음 목적지를 기다린다. 일주일에 5일 근무하면서 이러한 일상을 반복한다.
그는 노인 지하철 택배에는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품을 픽업하고 사무실이나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서류나 액세서리를 전달하는 등 일반 배송을 주로 하고 있다. 의류 배송을 하게 되면 소비자한테 옷을 전달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는 이전에 백화점 배송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백화점 배송은 두 곳의 백화점을 오고 가며 여러 개의 쇼핑백을 들고 배달해야 하는 업무예요. 수익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지만, 고가의 상품이 분실되면 택배원이 책임져야 할 부담 금액도 커지죠. 택배를 시작하던 초창기에 11만 원 상당의 의류를 배상한 적이 있었어요. 무거운 쇼핑백들을 한가득 들고 하나씩 전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를 놓쳤죠. 백화점 배송은 수익이 높아도 여러모로 운반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수입, 체력과 건강 상태가 결정
일반적으로 노인 지하철 택배 요금은 한 건당 7000원에서 8000원 정도다. 며칠이나 걸리는 일반 택배보다는 비싸지만, 퀵서비스만큼 빠르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다. 보통 배송원이 배정받는 배달은 하루에 4~5건 정도. 배송료에서 택배회사의 수수료 33%를 뺀 나머지가 배송원의 몫이다. 배송원 상당수가 고령자라서, 체력이나 건강 정도에 따라 수입은 달라진다.
조용문 택배원은 13년 동안 지하철 택배를 하면서 무릎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그는 무릎에 연골 주사를 맞으면서 택배를 하고 있다. “물품 배송을 재촉할 때가 종종 있어요. 시간이 얼마 없을 때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 해요. 그래도 제시간에 도착하면 뿌듯하죠.”
그는 평소 출근할 때 아내가 만들어 준 김밥이나 떡을 챙겨온다. “점심은 항상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택배 일을 할 때는 언제 주문이 올지 몰라요. 그래서 비교적 간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때에 따라서 다양하게 먹는 편이에요.” 이날 그의 점심은 약밥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그는 내복을 껴입고 모자를 쓴다. 지하철 내부의 에어컨 바람은 차갑기 때문이다. 그는 더운 날씨보다 폭우를 더 걱정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물건들을 챙깁니다. 시간에 맞게 배송하려면 날씨에 상관없이 바삐 움직여야 해요.”
13년간 택배일지를 써온 이유
그는 지하철 택배라는 직업이 돈벌이 이상의 즐거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매일 쓰고 있는 블로그를 꼽았다. “매일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만나는 고객들은 블로그의 소재가 됩니다. 일상을 글로 엮어 성실하게 게재하고 있어요. 용돈을 버는 것도 생활에 도움이 되지만, 생활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즐거워요.”
그는 IMF 시절인 1997년에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기억도 점차 사라져갔다. “당시에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어요. 제가 예전에 있었던 기억을 잘 못하니까요. 치료하면서 나아진 것도 있지만, 지하철 택배를 시작하고 많이 건강해졌어요. 여러 사람도 만나고 계속 걷다 보니 활력이 생긴 것 같아요.” 그는 소중한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조용문 씨의 블로그의 방문자는 최대 수천 명에 이른다.
지하철 택배를 하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의 블로그에 나온 배송 일지를 보면 가게 주인부터 외국인, 어린이 등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어린이의 손에 들린 작품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거나 배송하면서 직원에게 말을 거는 등 활발한 소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이 일자리를 신청하는 목적 중 하나는 사회활동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2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사업을 신청한 가장 높은 이유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였고 그다음으로 많았던 이유가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조용문 택배원은 물품을 전달할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지하철 택배를 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힘들기는 해도 꾸준히 블로그에 배송 일지를 쓰니까 나름 이 일에 자부심이 있어요. 활력이 생기니 마음도 건강해졌죠. 자서전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는데 곧 제 책이 출간될 예정이에요.”
조용문 택배원은 오후 5시에 일을 마치고 블로그 일기를 쓴다.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지나온 풍경과 거리에 있는 조각상 등 평소에 빠르게 지나치면 놓칠 법한 것들이 담겨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30장 이상의 사진 중에 베스트 컷을 고르고, 생각을 적어 내려간다. 그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블로그 일지에도 도움이 된다며 미소를 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 조용문 택배원은 지하철 승강장으로 돌아와 앞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속 배달! 짜장면 한 그릇도 정성스럽게 배달해드립니다.’ 한때 중국집 전단지에는 이런 홍보 글귀가 자주 쓰였다. 그러나 배달 앱과 대행업체 등이 성행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은 ‘배달료를 추가 지불해야 한 집만 가는 신속 배달’이 가능하고, ‘최소 주문 금액을 채워야 짜장면 한 그릇’도 받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마저도 배달 앱을 문제없이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예전보다 수고와 값을 더 치르는 건 분명한 듯한데, 과연 우리 집 문 앞에는 ‘정성스러운 배달음식’이 놓여 있는 걸까?
배달 주문량이 급속도로 증가한 건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식당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배달로나마 외식을 즐기게 된 것. 지난해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신한카드 이용 기준으로 주요 배달 앱 4개 업체의 이용 건수와 이용액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보다 각각 206%와 240% 급증했다. 같은 리포트에서 배달 앱의 연령대별 이용 비중을 보면 40대와 50대는 2019년 전체의 15%와 4%에 그쳤지만, 2년 뒤 24%와 7%로 늘어났다. 이와 비슷한 결과를 두고 배달업계에 중장년이 큰손으로 떠올랐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전체 중장년 인구 대비 사용자 비중은 미지수다.
한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2019 배달음식, 배달 앱(어플) 관련 U&A 조사’ 결과를 보면 20~30대의 경우 약 60%가 배달 앱 이용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반면, 40~50대는 약 44%로 절반을 밑돌았다. 아울러 ‘나에게 배달 앱은 꼭 필요하다’ 항목에서 20~30대는 2명 중 1명꼴로 ‘그렇다’고 반응했지만, 40~50대는 4명 중 1명만이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에게 배달 앱 이용을 추천하는가’를 묻는 항목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종합해보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장년의 비율은 이전보다 증가했더라도, 만족도 측면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이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편리성, 가격, 품질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봄 직하다. 흥미로운 건 이 세 가지 요소가 배달 서비스를 선호하는 이유와도 상충된다는 점이다.
메뉴 고르다 한 세월, 라면이나 먹고 말지!
“여기 OO빌라 △△호인데요, 짜장면 하나요.” 과거 배달 주문을 할 때면 이렇게 사는 곳 주소와 메뉴만 말하면 상황이 끝났다. 번지수 없이 건물명만으로도 소통되거나, 단골이라면 ‘누구네 집’ 정도로 알아채는 사장님도 있었다. 배달 앱 서비스 초반에만 하더라도 중장년들은 ‘직접 전화를 안 했는데 배달이 잘 올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한 주소와 연락처, 미리 계산까지 해두기 때문에 주문 오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과거 주소를 틀리거나 연락처가 없어서, 배달을 갔는데 현금이 부족해서 등의 이유로 종종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배달 앱 접근이나 주문 상황에서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배달 앱 사용자 1위로 알려진 ‘배달의민족’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0 모바일 앱 접근성 실태조사’에서 국내 다운로드 상위 300대 앱 중 점수 38.9점을 받아 꼴찌인 300위를 기록했다. 해당 연구는 고령자와 장애인의 앱 접근성을 파악하는 척도로 쓰인 만큼, 중장년 배달 앱 사용자의 불편함이 드러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요즘은 배달의민족이 아닌 다른 배달 앱에서도 주문이 만만찮다는 걸 느낀다. 기본적인 메뉴 고르기부터 난항이다. 메뉴가 적은 가게라면 수월하지만, 음식 종류가 많고 선택사항이 많은 곳일수록 손가락은 화면을 스크롤하기 바쁘다. 가령 강남에 있는 한 도시락 전문점의 경우 앱에 등록된 메뉴 가짓수만 90여 개에 이른다. 이 수많은 메뉴 중 겨우 하나 고르고 나면 다음 화면에 추가선택 항목이 나온다. 주로 토핑이나 맛, 사이드 메뉴 등을 고르게 하기 위함인데, 이 또한 기본 메뉴 못지않게 줄줄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세세하게 챙기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나, 앱 주문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에게는 불편함과 피로함만 더해질 뿐이다.
이에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간혹 젊은이들도 앱 주문을 번거롭게 여기거나 힘들어하더라. 중장년은 오죽할까. 밥하기 싫어 편하게 먹으려다 앱 설치부터 주문, 결제까지 고충을 겪다 보면 ‘그냥 라면이나 먹고 말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는 키오스크나 테이블 오더는 좀 더 접근성이 쉽고,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용이하다. 그에 반해 배달 앱은 혼자 해내려다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비싼 배달료 부담, 괜한 낭비라는 죄책감 들기도
과거엔 배달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배달 대행업체가 등장하면서 음식값과 별개로 배달료가 책정되기 시작했다. 통상 배달 앱에 가게마다 게재된 배달료의 경우 대행업체가 제시하는 금액을 가게 사장님과 소비자가 나눠 내는 격이다. 가게 사정에 따라 사장님이 전액 배달료를 부담하기도 하고, 적당히 나누거나, 오롯이 소비자가 내야 하는경우도 있다.
사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배달직원을 두려면 부담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고,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다. 직원을 고용하면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고,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이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배달 대행업체를 이용하면 이러한 부담을 더는 동시에 물리적 한계도 덜해진다. 가령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주문량이 폭주한다고 할 때, 배달직원 한 명이 처리할 수 있는 배달 건수는 많지 않다. 이에 반해 대행업체를 쓰면 제한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배달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업체들이 배달대행을 선호하고, 이에 따른 배달료가 부과되는 것은 일부분 이해하나 최근 도가 지나치다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다. 심한 경우 배달료가 1만 원을 넘는 곳도 있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설문조사를 보면 ‘배달 앱 이용 가격이 합리적이냐’는 질문에 75.5%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배달료에 할인 혜택을 두기도 하는데, 내용을 자세히 보면 주문 금액에 따라 달라진다. 많이 주문할수록 배달료를 인하해준다는 것인데, 이러나저러나 전체 금액이 부담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최소 주문 금액이라는 기준도 통과해야 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1인 식사 메뉴 하나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따라서 1인 가구거나 혼자 식사해야 할 때는 음료나 불필요한 메뉴를 추가해가며 금액을 채우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치솟는 배달료 문제에 대해 이은희 교수는 같은 경제적 부담이라도 젊은 세대와 중장년이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이들은 편리함을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고 여기지만,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들은 자신이 게을러서, 낭비가 심해서 불필요한 돈을 낸다는 죄책감을 갖는 듯하다”며 “가령 10분이면 걸어갈 거리의 가게에 직접 가서 먹거나 포장해오면 몇 천 원은 아낀다는 절약 정신을 발휘하는 분들도 있다. 한편으론 이런 성향이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배달음식을 계속 선호하다 보면 바깥 활동이 덜해지면서 사회성이나 체력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굳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이러한 서비스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요즘은 배달 앱에 ‘포장’ 기능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운동 삼아 직접 오가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편리한 배달음식, 위생과 안전도 고려해봐야
배달음식의 특성상 매장에서 갓 나온 음식 만큼의 상태를 기대하긴 어렵다. 팅팅 불어버린 면, 눅눅해진 튀김, 식어버린 국물도 어느 정도 감수한다. 처음 주문하는 곳이라면 맛이 떨어져도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배달음식의 품질이다. 실제 고객들이 작성하는 리뷰 페이지를 보면 적나라하게 이물질 사진을 올리거나, 불량한 식재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종종 보인다. 이는 식당의 이미지도 나빠질뿐더러, 배달음식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소비자의 이러한 염려는 기우가 아니다.
실제 배달음식점에 대한 식품위생 관련 적발 건수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배달음식점 대상 단속 결과 식품위생과 관련해 적발한 건수는 2019년 94건에서 2020년 1200건으로 무려 12.7배로 늘어났다. 아울러 식약처 ‘배달 앱 이물 통보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배달음식에서 이물이 검출돼 신고된 건수는 2019년 810건에서 2021년 6월 말 기준 2874건으로 255% 급증했다. 가장 많이 나온 이물은 머리카락, 벌레, 금속, 비닐, 플라스틱 순이다.
지난해 열린 국민생활 과학기술포럼 ‘코로나 시대, 배달음식과 국민건강’에서 함선옥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배달음식의 식품안전 이슈를 발표했다. 함 교수는 “배달 앱에서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배달음식 업체 10곳을 무작위로 조사했더니, 그중 6곳이 위생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주방 내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배달음식점 대상 맞춤 규제가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배달원들이 사용하는 배달용 박스를 살펴보면 관리되지 않아 비위생적인 상태가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한 규정도 필요해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전향숙 국민생활과학자문단 먹거리안전분과위원장(중앙대학교 교수)은 같은 포럼에서 “배달음식이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현재 우리 배달식품의 섭취는 맛, 가격, 편리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이제는 배달식품이 영양학적으로 충분한가, 위생 상태는 양호한가, 포장 용기의 문제점은 없는가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때”라며 배달음식의 영양 및 품질 등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수년 전 실버 생활체육에 지각변동이 감지됐다. 곧이어 ‘파크골프가 인기’라는 말이 전국 곳곳에서 들려왔다. 반짝 흥행이 아니었다. 파크골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이 되면서 아예 실버 생활체육 주요 종목으로 부상했다. 인근 공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어서. 단지 그뿐일까? 현장에서 들은 파크골프의 진짜 인기 이유는 꽤 흥미롭다.
양평교 초입에 들어서며 걱정이 앞섰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성 장맛비가 예고돼 있었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었지만, 먹구름과 대기를 감도는 꿉꿉함은 양평교 아래 오가는 이 하나 없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영등포 파크골프장’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야말로 ‘줄 서서’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 영등포 파크골프장을 찾는 이는 500여 명. 영등포구파크골프협회 ‘사랑클럽’ 회원 A씨가 전한 인기는 그 이상이다. “파크골프가 정말 인기예요. 말도 못 해요. 체감상으로 매년 두 배씩 느는 것 같아요. 이거 봐요, 치려고 밀려 있는 거!”
영등포뿐만 아니다. 파크골프는 일대 붐을 맞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이 그 방증이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2020년 4만 5000여 명 수준이던 회원은 2022년 10만 명을 넘어섰다. 2023년 6월 기준으로는 12만 명을 돌파했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즐기는 동호인쪾비동호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대략 40만~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983년 일본 홋카이도 마쿠베쓰 강가에서 시작된 파크골프는 도심 속 공원이나 유휴부지에서 즐기는 게임이라고 해서 ‘공원 골프’(PARK GOLF)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는 2000년 경남 진주에 위치한 노인복지시설 상락원에 6홀이 들어서며 처음 소개됐다. 실버 세대 생활체육 핵심 종목으로 부상한 건 수년 사이다. 2022년 9월 발표된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스포츠 빅데이터 인사이트’ 제13호에 따르면 현재 실버 세대 생활체육 유행은 ‘게이트볼에서 파크골프로 전환’되고 있다.
현장은 클럽 한 개와 공 한 개, 그리고 티만 있으면 누구나 인근에서 즐길 수 있는 파크골프의 편의성과 접근성에 열광한다. 몇 천 원이면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비용도 현실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사랑클럽’ 회원 A씨는 “파크골프가 노인들에겐 최적의 운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운동 여러 가지 해봤지만, 이보다 좋은 운동은 없습니다. 접근하기 좋고, 이용료 저렴하고, 잔디 밟으면서 많이 걷고요.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어요? 고작해야 산책하는 건데, 산책은 지루해서 오래 못 해요. 근데 파크골프는 3시간이고 4시간이고 하죠!” 옆에서 듣고 있던 회원 B씨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장점이 정말 많아요.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아요.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게 삶의 활력이 돼요.”
파크골프가 사랑받는 주요 요인 중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종주국 일본의 파크골프협회는 파크골프가 퍼진 요인에 대해 “경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을 들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일반 골프장은 1번 홀에서 티업하면 다른 팀을 만날 수 없지만 파크골프는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에 교류가 이뤄지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랑클럽’은 회원 60여 명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회원 C씨의 말이다. “하면 할수록 재밌어요. 파크골프를 접하고 사람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자주 보니까 빨리 친해졌지요. 한번 어울리면 아침에 만나서 저녁까지 있다 가기도 합니다. 그게 너무 재밌어요.”
여기에 ‘한국판’ 파크골프만의 매력이 더해졌다. 경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파크골프는 하프 9홀(파33) 1라운드 18홀(파66)로 진행된다. 파3 네 개, 파4 네 개, 파5 한 개로 기본 제원은 일본과 같다. 차이는 한 홀의 거리다. 위험 방지, 연령이나 남녀 차이에 의한 핸디캡 최소화 등을 위해 거리를 100m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일본과 국내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9홀까지 연장 길이가 500m지만, 국내는 790m까지 가능하다. 파5 홀의 경우 일본은 60~100m, 국내는 100~150m다. 현재 국내는 대개 최장 거리인 150m를 선택하는 추세다.
이경호 대한파크골프협회 사무처장은 “국내 파크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한 요소”로 이를 지목한다. “일본은 ‘놀이’이고 우리는 ‘생활 스포츠’, 나아가 ‘경기’에 가깝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80대 이상이 파크골퍼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우린 연장 길이가 기니까 보다 젊은 세대가 많이 유입됐습니다.”이 사무처장은 배우기 쉬운 점도 파크골프 인구 증가 원인으로 꼽았다. “파크골프는 6개월 정도 열심히 하면 3년, 5년 배운 사람과 대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스포츠는 10년 이상 해야 우승할 수 있어요. 1~2년 바짝 해서는 대회 정상을 꿈꾸기 어렵지요. 그런데 파크골프는 노력 여하에 따라 6개월~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춰지는 운동입니다. 전국 투어를 다니는 분들도 그 수가 상당합니다.”
파크골프는 ‘경기’로 자리 잡고 있다. 대회 규모로 확인된다. 국내 대회 상금이 3000만 원까지 오른 상황이다. 경제 효과는 현장에서 먼저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산천어축제를 연이어 취소했던 강원도 화천군은 파크골프 대회를 유치해 특수를 누렸다. 약 한 달간 이어진 대회에 1500여 명의 선수단과 가족이 방문해 지역 음식점, 숙박업소는 물론 편의점과 카페까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이경호 사무처장은 “경제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말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파크골프장에도 라이가 있어요?’입니다.(웃음) 당연히 있지요. 다 다르고 각각의 특색이 있습니다. 대회 당일 처음 가서는 성적을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통 연습하러 현장에 일주일 전이나 열흘 전에 가서 현지에 체류하며 꽤 많은 비용을 씁니다. 1억 원을 투자해서 대회를 치른다고 하면, 그 열 배 이상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대회에 나가는 선수만 해도 500~600명입니다. 그 지역에 머물면서 쓰는 돈은 엄청납니다. 지자체에서 계속 유치 신청이 들어오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파크골퍼들에게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클럽’ 회원들은 스포츠로 자리 잡은 파크골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고는 못 삽니다. 대회 나가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해요. 진짜 장난 아니에요!(웃음)”
현장은 단기적 경제 효과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파크골프가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2007년에 이미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장수 국가군으로 진입했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이다. 고령자의 진료비, 의료비는 당면한 문제다. 통계청이 2022년 9월 발표한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진료비는 475만 9000원, 1인당 본인 부담 의료비는 110만 6000원에 달한다. 전체 인구 대비 각각 2.8배, 2.7배 수준이다. 반면 생활체육 참여자의 1인당 연관 의료비는 비참여자 대비 절반가량에 그친다. 생활체육 참여만으로 의료 비용 감소에 직접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은 파크골프가 현재 최일선에 있는 운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랑클럽’ 회원 A씨의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노인들이 집에만 있으면 자식이고 며느리고 손주고 누가 좋아하겠어요? 우리도 다 압니다. 근데 파크골프장에 나오면 운동하고, 여기서 만난 친구들끼리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고, 때론 반주하기도 하고, 내내 놀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는 피곤해서 바로 잡니다.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합니다. 아프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할까 봐요.(웃음) 또 실제로도 아프면 못 합니다. 그러니까 파크골프를 하기 위해서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요. 본인 건강하지, 가정의 평화 가져오지, 종국에는 사회적 비용 안 들지. 파크골프는 삼박자를 다 갖춘 운동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