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을에 인천 공항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붉은색 식물이 바다를 뒤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염생식물인데, 바닷가와 염수호, 암염지대 등 소금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퉁퉁마디, 칠면초, 나문재, 해홍나물, 해송나물 등이 있다.
이들이 붉은색을 띠는 것은 어째서일까? 염색식물 이외에도 붉은색 식물이 제법 있다. 가을에 붉게 물든다고 이름 붙인 붉나무는 잎이 새빨갛다. 그런데 그 열매의 한약재 이름이 염부자(鹽膚子)다. 열매 껍질에 소금이 있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내륙에서 소금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붉나무 열매 껍질에서 소금을 얻었고, 간수가 아닌 붉나무 열매를 이용해 두부를 만들었다.
고마리나 여뀌는 물이 아주 많은 환경에서 자란다. 그런데 물이 말라버리면 고마리나 여뀌는 붉게 물들어버린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고마리, 여뀌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물을 더 끌어당기려고 노력한다. 물을 끌어당기려면 자신의 염도가 높아야 한다. 사막에서 소금이 필요한 이유는 인체 내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다.
단풍은 왜 붉게 물드는 걸까? 식물생태학에서는 단풍의 붉은색이 해로운 자외선을 막고, 나뭇잎 세포가 가을 추위에 쉽게 얼지 않도록 보호하는 부동제 역할을 하며, 곤충의 침입을 방지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약한 짠맛[微鹹]이 부동제 역할을 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고구마의 싹은 붉다. 담쟁이덩굴, 단풍의 싹도 붉고, 작약의 싹도 붉다. 이외에도 많은 식물의 싹이 붉다. 왜 붉을까? 죽염 창시자인 인산 김일훈 선생은 저서 에서 “만물은 염분의 힘으로 생겨난다. 특히 봄에 초목의 새싹이 돋고 잎이 피며 꽃이 만발할 때, 지구상의 염분은 대량으로 소모된다”라고 했다. 아이들도 자랄 때 미네랄이 많이 필요한데, 미네랄이 부족하면 성장통을 앓기도 한다. 식물의 싹도 급속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미네랄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네랄은 대부분 염분에서 공급된다. 염분이 많은 것은 붉어진다.
해조류는 모두 약한 짠맛을 지니고 있다. 녹조류, 갈조류, 홍조류 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 사는 홍조류의 짠맛이 가장 강하다. 일반 식물을 바닷가에 심어놓으면 바닷물에 수분을 빼앗겨 말라죽어버린다. 염생식물은 스스로 약한 짠맛을 지니어 생존하도록 진화했다. 염생식물이 붉은 것은 약간 짜기 때문이다. 바닷가 선원들도 소금기 섞인 해풍을 자주 맞아 얼굴 붉다. 여름 휴가철에 바닷가에서 며칠만 있어도 피부가 붉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붉은색은 약간 짠맛이 함유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한의학에서 설명하는 두 가지 짠맛은 강한 짠맛과 약한 짠맛이다. 강한 짠맛은 혈압을 높이며 머리로 열을 솟구치게 한다. 천일염, 정제소금이 강한 짠맛이다. 많이 짜고 끝 맛은 쓰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다가 바닷물을 잘못 들이키면 목이 칼칼해지고 마르면서 물이 당긴다. 바로 강한 짠맛 때문이다. 약한 짠맛은 짭짜름하면서 끝 맛이 달고 입에 침이 고인다. 죽염, 퉁퉁마디 등의 해조류와 죽염의 맛이며, 조개탕과 사골국의 짠맛이 약한 짠맛이다. 강한 짠맛은 머리에 열이 치솟게 하고 혈압을 올리지만, 생명체 속 약한 짠맛은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려주고 대변을 잘 나가게 한다.
약한 짠맛은 가래를 삭게 하고 단단하게 뭉친 것을 눅여준다. 그래서 과음 후 목소리가 거칠어지면서 가래가 생길 때 조개탕을 끓여먹는 것이다. 조개껍질에서 우러난 약한 짠맛은 가래를 제거해준다. 또 목에 생긴 멍울을 포함한 전신의 종기, 종양을 눅여주는 효과도 있다.
약한 짠맛은 끝맛이 달달해서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데 이 침은 인체의 구성 물질인 정(精), 기(氣), 신(神), 혈(血)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 인공조미료는 달지만 끝 맛이 텁텁하거나 쓰며, 먹고 나면 물이 당긴다. 천연조미료나 잘 발효된 된장은 끝 맛이 달고 구수하다. 끝 맛이 달아야 몸을 근본적으로 보하면서 살찌지 않게 한다. 천일염의 끝 맛이 쓴 것은 간수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천일염을 몇 년 묵혀 간수를 빼내면 쓴맛이 덜해지는 것이다. 아홉 번을 구워 만들어내는 죽염은 고온에서 구울수록 짠맛이 덜해지고 끝 맛이 달달해진다.
약한 짠맛은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어 성인병(고혈압, 당뇨, 통풍, 콜레스테롤 혈증 등) 환자, 육류를 많이 먹어서 피가 탁한 사람, 자꾸 머리로 열이 치솟는 사람, 편도선·임파선·갑상선 등 목이 잘 붓는 사람에게 좋다. 특히 현대인들은 음식 과다 섭취로 성인병이 많기 때문에 염생식물, 홍조류가 더더욱 필요하다. 만성피로도 피가 맑지 못해 발생하므로 염생식물, 홍조류로 다스리면 좋다. 변비를 치료해줘 얼굴과 피부가 고와지고, 염증도 빨리 가라앉혀 관절염, 기관지염, 위염, 피부 질환 등에 좋다. 새살도 빨리 돋아나오게 해준다. 그러나 아무리 몸에 좋아도 적당히 먹어야 하며, 콩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염생식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함초(鹹草)라고 불리는 ‘퉁퉁마디’다. 일본의 본초 집대성자인 패원익헌(貝原益軒) 선생은 저서에서 “함초는 불로장수의 축복받은 약초”라고 했다. 함초는 염생식물 중에서도 염분에 대한 내성이 가장 강한데, 담수에 담그면 살지 못한다. 함초는 바닷가 염전 주위에 살면서 소금기 많은 토양과의 수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스스로 염분을 많이 빨아들인다. 염분과 함께 들어온 물 때문에 마디는 퉁퉁하다. 바닷물을 빨아들인 후에는 광합성 작용으로 물기는 증발시키고 각종 미네랄 성분은 축적해서 삼투압을 유지한다. 즉 함초는 미네랄과 수분을 머금으려는 본능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약효로 나타난다.
물로 몸을 치료하는 물 요법에서는 물에 약간의 소금(토판염이나 죽염)을 타서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먹으면 인체의 말초에 있는 세포까지 물 공급이 원활해지는데, 물 공급이 원활해지면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져 덜 피로해진다. 함초는 말초 세포에 미네랄과 수분이 흡수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식물이다. 따라서 피부가 촉촉해지고, 대장도 촉촉해져 변비가 치료되며, 눈과 손발에도 피가 잘 돌게 된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최근 방송된 건강 프로그램에서 동갑내기 여성 탤런트 L과 전직 스타 농구선수 H의 ‘뼈 나이’를 비교한 적이 있다. 골밀도를 주로 비교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창 뼈가 건강한 나이에 운동을 많이 한 H는 4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20대의 뼈 나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반면, 같은 나이의 L은 뼈 나이가 60대로 측정되면서 무려 40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다. L은 거의 골다공증 위험 수준이었다. L은 왜 이렇게 뼈가 급격히 노화된 것일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픈 그녀의 병력 때문이다. 한창 나이에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질환을 앓았던 그녀는 후유증 때문에 몸의 절반에 마비가 왔고,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과다 투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이 무리한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작용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끝내 고관절이 괴사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인공관절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방송활동을 다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처럼 스테로이드제를 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데, 왜 스테로이드제는 그렇게 심각한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일까?
스테로이드 호르몬제가 신약으로 처음 선보였을 때 인류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그 효과를 극찬했다. 기존의 소염제로는 염증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효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염증과 알레르기를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 효과는 분명 축복이었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는 항염증, 면역억제, 혈관수축 등의 효과를 가져오는데, 광범위한 질환에 사용된다. 접촉성 피부염, 아토피성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건선, 수포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피부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염증이 생길 경우, 혈관을 통해 염증의 원인 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혈관을 급격하게 수축시키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필수적인 질병들이 그 대상이다. 심지어 난임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시험관 시술에서도 많은 의사가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 착상 전에 산모의 몸 안에 있을 수 있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면역력을 약간 저하시켜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착상에 실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스테로이드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악용되는 일도 빈번하다. 즉 식품에 스테로이드를 섞어 팔면서 효과를 과장하는 것이다. 주로 노인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수법인데, 이런 수법으로 연간 10억여 원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떴다방도 많다. 식품이라 부작용도 없고, 먹기만 하면 관절염이고 통증이 싹 낫는다고 광고하면서 심지어 만병통치약처럼 과장하는 일도 많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 등지에서 관절에 특효약이라면서 지네가루를 담은 캡슐을 팔기도 하는데, 스테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함유된 내용물도 많다. 현혹된 구매자들이 주변에 참 좋은 식품이라며 소개하는 일도 많은데, 그 결과는 참혹하다. 면역력이 억제되면서 고혈압, 당뇨병, 백내장, 골다공증 등의 발생이 거꾸로 급습하는 것이다.
사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외용제로 스테로이드를 자꾸 쓰다 보면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되는 것은 다반사다. 근골격계가 현저히 약해지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번 시도한 주부가 척추 압박골절을 겪은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눈꺼풀이나 눈 주위에 잘못 바를 경우 백내장이나 녹내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함유된 안약을 오랫동안 사용하던 청년이 녹내장 발생으로 실명 위험에 처한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도 금단증상을 일으킨다. 금단증상은 주로 중독성 약물을 복용하다 강제로 끊었을 경우 발생하기 때문에 마약과 관련이 높은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의 30세 여성은 3세 때부터 아토피성 습진에 걸린 피부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스테로이드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자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생으로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 그녀는 커다란 고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바로 일명 레드스킨 신드롬(Red Skin Syndrome, RSS)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 금단증상(Topical Steroid Withdrawal, TSW)이다. 그녀는 벗겨진 피부에 이물질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피부 드레싱을 해야 했고, 하루에 거의 20시간 이상을 욕조의 물에 몸을 담그고 피부를 진정시켜야 했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까지 겪었다. 국부성 스테로이드 중독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증세는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사용을 중단할 경우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또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할 경우 직장과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다.
따라서 장기간의 스테로이드 사용은 결국 심각한 부작용이라는 굴레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테로이드의 효과와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외로 답이 간단하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를 때는 가능한 한 얇고 정확하게 바르고, 자신이 스테로이드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해왔는지에 대해 처방의사에게 알려줘야 한다. 또 스테로이드 복용을 장기화하지 않도록 하고,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양을 늘리지 않는 등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면 된다. 많은 환자가 스테로이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 부작용 피해에 노출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 최혁재(崔爀在) 경희의료원 한약물연구소 부소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한 의사의 말이 기억난다. 수술은 의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환자에게는 평생 한 번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그 수술이 만약 내 혈육에게 장기를 받는 이식수술이라면 어떨까. 아마 더욱 잊을 수 없는 아픔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술이 두 번 반복된다면? 더욱이 그 대상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마치 통속적인 비극 드라마 같아 보이지만 현실이고, 비극도 아니다. 바로 경희의료원에서 만난 변은옥(邊銀玉·53)씨의 이야기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경희의료원 신장내과 임천규(任天奎·63) 교수는 처음 변은옥씨를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당시 그는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 중 한 명이었다. 그때는 눈앞의 환자가 어떤 일들을 겪을지, 30년간 자신이 계속 돌봐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변은옥씨가 처음 왔을 때는 스물한 살의 꽃다운 나이였죠. 젊은 미혼 여성인데도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았던 것이 기억나요. 악성 고혈압이었어요. 검진을 해보니 이미 신장기능이 약 15%정도밖에 기능하지 않았어요. 신장염에 의한 만성콩팥병이었어요. 사구체신염으로 부르는 이 병은 젊은이들이 잘 걸리는 병이죠. 보통은 급성으로 나타났다가 낫는데, 만성으로 진행되면 골치 아파지죠.”
변씨가 경희대를 찾은 것은 1984년 9월이다. 사실 그녀는 다른 병원을 먼저 들렀다 왔다고 했다.
“서대문구청에 취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혈압이 너무 높다고 이상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근처에 있는 큰 병원을 갔는데 신장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는 것이 낫겠다 싶어 생각한 곳이 삼촌이 수술받았던 이곳이었어요. 임천규 교수님을 그때 처음 뵈었는데, 마음이 편안하도록 말씀도 잘해주시고, 용기를 낼 수 있게 응원해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요.”
처음 병원을 다닐 때만 해도 변씨는 몸의 이상을 크게 자각하진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점점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이명이 들리는 등 상태가 나빠지면서 실감이 났다고. 당시에는 잘 알려진 병이 아니어서, 주위에선 어차피 살 가망이 적지 않겠냐며 수술을 말리는 사람도 있었단다.
꽃다운 처녀에게는 힘든 수술
이식수술이 처음부터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사실 효과로 따지면 신장이식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수술을 주저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임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수술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었어요. 몸에 칼을 대버리면 흉터도 남고, 혼삿길도 영영 막혀버린다는 인식이 있었죠. 게다가 기증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어요. 요즘은 그래도 뇌사자 장기기증이 제도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인식도 좋아져서 기증자를 찾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당시는 남에게 신장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그것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자 투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투석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변씨는 이야기했다.
“결핵이 있어서 그것을 치료해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결핵이 나을 때까지 6개월을 투석했는데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니었어요. 투석을 하고 나면 몸이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몸에 힘이 다 빠져버리죠.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어요.”
혈액 투석에 대해 임천규 교수는 “사실 혈액 투석은 정상적인 신장기능의 10~15% 정도만 대신할 수 있어요.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꼬박꼬박 투석을 받는다 해도, 혈액 속 노폐물은 늘 80% 이상 쌓여 있다는 얘기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독만 제거하는 셈이에요. 신장이식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어 투석을 평생을 해야 하니 환자 입장에선 무척 번거롭고 힘들죠. 특히 젊은 여성에게는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내 딸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결심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너 죽는 꼴은 못 본다.”
변씨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건강한 신장이 두 개나 있는데, 당신 딸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선언한 것. 그렇게 이식수술은 결정됐다. 1986년 6월 9일이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던 시기. 그녀도 그녀 나름의 치열한 투쟁의 시기를 수술대 위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모두의 기대대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변씨는 당시를 “수술을 마치고 나서 눈이 떠지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어요. 엄마의 것이 내 몸속에 있다는 느낌,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복잡한 감정이었죠”라고 회고했다.
사실 변씨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병을 심하게 앓았고, 몸에는 커다란 생채기까지 있었다. 아이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감히 남편으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엔 예외가 없는 것인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는 제 상태가 이 모양이니까 데릴사위라도 들일 생각까지 하셨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나 1년 연애를 했는데, 제 사정에 대해 모두 이해해줬어요. 애가 생기지 않아도 좋다고까지 얘기해줘서 결혼을 결심했죠.”
그리고 그 결실로 아들 김영수(金泳洙·26)씨를 얻는다.
30년 만에 다가온 또 다른 시련
평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볕이 좋은 날엔 빨래를 해서 널고, 점심 설거지를 끝내면 저녁 메뉴를 걱정했다. 모임에 나가 수다도 떨고, 특별히 기분 좋은 날엔 술도 약간 입에 댔다. 아들은 경찰을 꿈꿀 정도로 바르고 강직했으며 가족이 의지할 수 있는 집안의 기둥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또다시 탈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궁이 말썽이었다. 결국 5년 전 자궁을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때 출혈이 많았던 탓일까. 신장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결국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임 교수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투석이었다.
“또다시 투석을 받아야 한다니 끔찍했죠. 하지만 다시 이식수술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1월에 투석을 위한 동정맥류수술을 하고 나서, 4월부터 투석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30년 전보다는 장비가 좋아져서 좀 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반대로 저혈압이 오고 몸이 빠르게 무너져버리더라고요.”
이 과정을 편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한 사람이 있다. 이젠 성인이 된 아들 영수씨다. 그는 어머니의 간호를 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의 인터뷰를 곁에서 말없이 바라만 보던 그에게 질문을 하자 다소 상기된다. 젊은 혈기와는 다른 뜨거운 무엇이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환자인 어머니의 모습이 익숙했어요. 계속 봐왔으니까요. 그때부터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처럼 나도 어머니에게 신장을 드려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요. 다만 시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죠. 하지만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다짐이라 문제가 생기고 나서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전혀 고민도 없었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신장이식 기증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술 후기도 보고, 이식수술에 대해 직접 공부하면서 전혀 겁낼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랑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더라고요. 어머니 건강이 회복되시면 봄에 제주도에 같이 다녀오려고요.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요.”
네 개의 신장이 준 꿈과 희망
신장이식은 고장 난 오일필터를 교체하는 자동차 정비와는 다르다. 수명을 다한 부품은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지만, 신장이식은 원래의 신장을 떼어버리지 않는다. 기증받은 신장을 몸에 더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임천규 교수는 변씨의 경우 어머니의 것을 받았다가 다시 아들의 신장을 받았으니 4개의 신장을 몸에 지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장이식은 기본적으로 수명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씨의 경우는 이식 환자들 중에서도 오래 사용한 편이에요. 게다가 나이든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받은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죠. 두 번 신장이식을 받는 케이스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이식을 받고 싶어도 몇 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신장이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부분은 이식의 거부반응을 줄이는 면역억제제가 좋아져서 꼭 기증자가 가족일 필요도 없고 혈액형이 같을 필요도 없어요. 심지어 수혈이 불가능한 혈액형끼리도 신장이식은 가능해요.”
현재 대한고혈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 교수는 고혈압 환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고혈압은 신장질환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고혈압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신장의 소금배설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혈압이 높은 편이라면 신장을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식 환자들은 늘 불안하게 사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무조건 재미있게 살고, 걱정하지 말고, 약만 제때 드신다면 몸은 나아질 겁니다.”
처음 신장이식을 받은 지 딱 30년이 되는 해인 2016년 9월 21일, 변씨는 두 번째 신장이식을 위해 수술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였다. 결국 아들의 성화에 그리고 투석의 고단함이라는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 결정을 내린 뒤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변씨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지러 왔는데, 꺼내기가 쉽지 않다. 아들의 신장을 받은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 가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어요. 가족이라고 모두 신장을 선뜻 내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투석실에 앉아 있으면 자식을 원망하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보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먼저 수술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권해줘서 새 삶을 얻을 수 있었어요. 수술을 여러 번 했는데도 별 탈 없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느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분을 위해서 좋을 일 많이 하고 살 겁니다.”
58년 개띠인 필자는 사십대로 접어드는 해에 IMF를 당했다. 그때까지 잘나가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가 한순간에 파산 상태로 접어들었다. 가족과 빚만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직원들 월급은 고사하고 당장 끼니를 이어갈 생활비도 없는 상태에서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폭음을 하고 다녔다. 대인관계도 다 끊었다. 어느 순간 고혈압, 불면증, 공황장애, 폐쇄공포, 감각마비 등 여러 가지 심각한 증세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감각이 마비되어 음식을 먹을 수가 없고 잠을 못 자는 날도 이어졌다. 가상의 공포가 밀려오고 폐쇄공포증으로 지하철도 탈 수 없었다.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술과 담배를 놓지 못했다. 포기 상태의 생활이었다.
그렇게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정신적 안정을 취하면서 나빠졌던 몸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갔다. 그러나 일이 없어도 쉴 수가 없었다. 일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매일 출근했다. 사무실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지낸 날이 많았다. 필자의 사십대는 암흑의 터널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터널을 엉금엉금 기어 나와 보니 오십대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어느 정도 빚도 정리했고 다행히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문득문득 불면증과 공황장애 중세를 일으키곤 했다. 언제부턴가 100세 시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베이비부머는 앞으로 30~40년을 더 살아야 하고 운 나쁘면 100세를 넘길 수도 있는데 노후 자금이 준비되어 있느냐는 우울한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사회 전체를 우울 모드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문제제기만 하고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오십대가 되면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니 첨단세계에 너무 뒤떨어져 있었다. 필자는 이메일 사용법도 몰라 직원들이 대신 보내주고 받았고 강의교안도 직원들이 다 만들어줬다.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소위 컴맹 상태로 살아왔던 것이다. 일 외에는 취미생활도 없었고 가족과의 소통도 거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위한 경제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비전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속 빈 강정처럼 허전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은 치유가 필요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다.
오랜 세월 놓고 있던 붓을 다시 들었다.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진다. 목공예도 배웠다. 몰입하는 시간은 일상을 잊게 한다.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은 미술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노래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업무나 강의준비 등에 필요한 컴퓨터도 마스터했다. 필요한 것은 배우고 잊고 있던 취미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무엇보다 사진을 가까이 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식물원이나 수목원, 고궁, 유적지 등을 찾아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사진으로 남겨두기 위해 여행도 자주 한다. 사십대의 혹독한 시련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필자는 아직도 일에 파묻혀 살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지만 8세부터는 경기도 수원에서…” 자랐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이 나와버린다. 그럼 한결같이 “수원이 제2의 고향이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필자는 그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낯선 서울생활에 조금씩 적응했고 직장생활과 결혼생활도 서울에서 시작했다. 작은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 단출한 필자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홀가분함이란!
몇 달을 편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다 보니, 수원에 혼자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자꾸 눈에 밟혀오기 시작했다. 더하기 빼기 열심히 해가며 고민을 했다. 팔십 중반이 넘으셨으니 혼자 생활을 하실 수 있는 기운이 있으셔도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만한 연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필자를 괴롭혔다. 조심스럽게 옆에서 살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예상했던 대로 절대 걱정 말라 하신다. 그러나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자꾸 넘어지고 다치셔서 필자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감기도 자주 들고 고혈압도 염려가 되었다. 어느 여름, 며칠을 누워 일어나지 못하며 지내시는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의논을 했고 드디어 어머니 곁살이를 하기 위해 수원으로 이사했다.
모녀 관계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보다 더 어렵다는 주위의 말들을 무시하고 약간의 짐을 싸서 이사했다. 친정어머니 곁살이를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 다짐한 것들을 되새겼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필자의 마음 판에 적어놓고 되풀이해서 읽으며 수양하듯 지냈다. 어머니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서로 익숙하고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지만 필자가 결혼해서 따로 떨어져 사는 동안 몸에 밴 또 다른 가족문화가 있었다. 그걸 서로가 배려하고 이해해가며 극복해야 했다.
그래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집과 고집의 범벅은 정말 맛이 없었다. 내 맛과 네 맛의 상이한 맛들이 늘 독이었다. 툭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어머니의 고집에 필자는 모든 것을 어머니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을 바꿨다. 이제부터 무조건 웃는 거다! 그리고 잘 관찰하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나니 필자가 보였다. 거기에는 어머니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는 필자가 있었다. 멋진 발견이었다. 필자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근사한 필자만의 브라보 시니어로서의 발돋움을 위해, 친정어머니를 아주 좋은 모델로 삼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지, 이렇게 실천하면 이웃들이 즐거워하겠네, 이런 말투와 행동은 버리자 등등.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연습을 했다. 어머니와 갈등이 있어도 고운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또 서로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친정어머니를 내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이웃 어르신 대하듯 행동했다. 모녀지간이라는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에서 벗어나 조금은 감정을 덜어내고 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어머니 곁살이를 통해 일반적인 관념의 틀에서 빠져나오자 아름다운 시니어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고 행복이 오리라는 확신도 섰다. 그러다 보니 비로소 필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유도 생겨났다. 이제 필자는 모든 면에서 골고루 멋지게 커져가는 가꿈 나무를 심게 되었다. 어머니의 곁살이는 ‘나 가꿈 나무’의 영양분으로 최고다!
50대 후반까지도 인생을 헛되이 살아왔음을 이제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송나라 때 학자인 주신중(朱新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생계(生計).
둘째 병마나 부정으로부터 몸을 보전하기 위한 신계(身計).
셋째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기 위한 가계(家計).
넷째 멋지고 보람 있게 늙기 위한 노계(老計).
다섯째 아름다운 죽음을 맞기 위한 사계(死計).
이 중 60대에 들어선 후에야 그나마 겨우 챙기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인 신계인데, 이미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 기회가 있는 분들을 위한 참고사항으로 자세하게 글로 남기고 싶다. 50대 중반부터 고혈압과 당뇨 증세가 나타났으며, 60대에 들어서면서 시력도 점차 나빠지고, 청력도 한쪽 귀가 난청으로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난처한 경우가 가끔 생기곤 하며, 치아도 못쓰게 된 이가 많아 임플란트 시술로 시간과 돈을 꽤 들여야만 하는 실정이다.
고혈압과 당뇨는 젊어서부터 술을 좋아해서 과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40대 이후 회사의 간부로 근무하면서 술 접대를 하거나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늦게까지 폭음과 폭식을 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술을 좋아하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지나친 과음은 삼가고 있다. 40~50대 때 1년에 한두 번은 술자리 후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의식을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최근 10여 년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안경을 두 개씩이나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진 원인은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무렵 약 4년 동안 매주 주말마다 울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주로 오후 시간대 고속버스를 이용하면서 버스 안의 흐린 불빛에 의존해 오랜 시간 책을 본 것이 주원인으로 짐작된다. 요즘에는 흔들리는 차 속에서는 가능한 한 장시간 독서는 안 하고 있다. 약 한 달 보름 전에 노안과 난시 교정까지 치료된다는 다초점 렌즈를 삽입한 백내장 수술을 받고 밝은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있다.
귀가 나빠진 원인으로는 30대 초반 기업체에 종사할 때, 일본어 회화를 공부한다고 출퇴근 시 등 시간만 나면 리시버를 귓속에 꽂고 일본어 회화 테이프를 자주 들었던 때문인 듯하다. 귀에서 이명 현상이 생겨 울산의 종합병원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으나 확실한 원인이 파악이 안 되고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진단 하에 거의 방치된 상태로 지냈다. 5년 전에 약 400만원 정도 들여 보청기를 구매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사용하고 있지만 번거롭고 효과도 별로 좋지 않아 여전히 애로사항이 많다.
치아가 나빠진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 겨우 한 번 이를 닦고 이런 나쁜 습관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먹은 후에는 무조건 이를 닦아야 한다고 알고 실천했으나, 이미 많은 치아가 심한 손상을 입은 후라서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사후 약방문이 돼버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바보 같은 습관으로,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생활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없고 주변으로부터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은 필자가 약 10년 전부터 꾸준히 시행해오고 있는 새벽 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선후배와 동년배인 장·노년 분들께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1. 이목구비와 두피 마사지
2. 복부, 발, 발바닥 마사지
3. 괄약근 및 회 음부 근육 운동
4. 전신 관절, 척추 근육 이완 운동
이런 운동을 새벽 6시부터 약 40~60분 동안 매일 꾸준히 해오고 있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챙기는 법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는 PPT로 만들어져 있어 원하는 분께는 개인적으로 나눠드릴 수 있다.
지난 7월 16일 SBS 는 졸피뎀 부작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 이후 수면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무조건적인 공포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 콘텐츠 제휴사인 비온뒤(aftertherain.kr)를 통해 아주대병원 홍창형 교수의 특별기고를 받았다. -편집자 주-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졸피뎀’이 자살충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 방송된 이후 외래에서 수면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의 문의가 많아졌습니다. “제가 먹는 약은 안전한가요? 혹시 자살 충동을 유발하나요?”, “세상에 안전한 약은 없습니다. 이 약은 이런 저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 생기면 즉시 보고해 주세요. 그렇지만 정해진 용법대로 복용하시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아직까지 일반적인 상황에서 졸피뎀이 자살 충동을 유발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고혈압·당뇨병 약을 비롯해서 어떤 약이든 안전한 약은 없습니다. 원래 수면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안 먹을 수만 있으면 안 먹는 게 좋습니다. 수면제는 깨어 있는 사람을 강제로 잠재우는 약이니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수면제들은 약을 먹어도 쉽게 잠이 들지 않고, 잠을 깨도 오전 내내 몽롱한 상태로 지내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2007년 FDA에서 승인된 졸피뎀은 기존 수면제보다 수면유도 효과가 빨라서 먹자마자 20분 만에 잠이 들고, 반감기가 2~3시간으로 짧아 아침에 일어날 때 멍한 느낌이 적어서 불면증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환자는 약을 먹고 나서 가수면 상태로 빠져 의식이 없는 상태로 걸어 다니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밤중에 있었던 일을 아침에 기억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면장애를 진료하지 않는 의사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처방해야 하고, 처방할 때도 반드시 부작용에 대해 잘 설명하고,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도 계속 모니터링을 해야 합니다.
의학논문 검색엔진을 이용하여 살펴보면 지난 10년간 졸피뎀과 자살과의 연관성을 발표한 논문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논문은 2016년 3월 대만 의사가 발표한 환자-대조군 연구(case-control study)로 2002년부터 20011년까지 10년 동안 자살로 사망한 사람 2206명과 일반인 99만 6650명을 비교한 연구입니다. 저자들이 주장한 내용의 결론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아도 졸피뎀을 복용한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살 또는 자살시도가 2배 더 많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일 상용량의 9배 미만은 1.9배, 9~17배는 2.1배, 18배 이상은 2.8배 자살 및 자살시도의 위험이 높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논문은 1일 상용량의 2배, 3배로 나눠서 분석하지 않았을까요? 졸피뎀은 하루에 1알씩만 복용하는 약입니다. 졸피뎀을 하루에 2알 먹는 경우도 극히 드문 일이라서 외래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데 매일같이 9알, 18알씩 먹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또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물론 졸피뎀이 자살충동과 관련이 있다는 의학적 증거가 명확해지면 반드시 경고문구가 주의사항에 포함되어야 하고 의사 및 환자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보다 많은 근거가 필요해 보입니다.
졸피뎀은 아플 때 먹는 진통제와 비슷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진통제는 통증을 사라지게 합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통증이 지속됩니다. 불면증도 원인에 따른 치료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불면증이 3주 이상 지속된다면 원인을 잘 찾고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 진료과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만일 우울증이 원인이 되어서 생긴 불면이라면 상담치료를 받거나 중독과 내성이 생기지 않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이 더 근원적인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잔다면 통증치료가 더 우선되어야 합니다.
>> 홍창형(洪彰亨)
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노화과학협동과정 박사 노화과학 전공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
경희대한방병원 이재동 척추관절센터장은 비만이 관절염을 유발하는 원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오랜 기간 연구를 해왔다. 살찐 형태에 따라 상체 비만, 하체 비만, 전신 비만 등 세 가지로 구분해 각 체질에 맞는 다이어트법을 알아보자. 한의학적 관점에서의 체형별 비만관리 핵심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
1. 중년 다이어트의 중요성 2. 체형별 다이어트 생활습관 3. 체형별 다이어트 식이요법 4. 체형별 다이어트 운동요법
‘뱃살쯤이야’ 혹은 ‘살쪄도 건강하기만 한데’라며 배나 옆구리에 한가득인 살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많다. 건강한 비만이란 없다.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뇌경색, 천식 등의 질병 발병률은 물론 사망률(20%)도 높인다.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부터 운동으로 관리해야 한다.
운동은 건강한 사람이든 병에 걸린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특히 관절염 환자는 움직이지 않을 경우 뼈로부터 칼슘이 빠져 나가 골다공증에 걸리기도 하고 근육의 힘이 빠지고 관절의 유연성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운동이 더욱 중요하다.
관절의 경직을 막기 위해 ‘관절의 운동범위’를 매일매일 움직여 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을 유연성운동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매일 하루에 30분 이상의 과격하지 않은 운동을 하고 조깅이나 농구, 심한 에어로빅보다는 자전거 타기, 체조, 수영 등이 적당하다.
전신 비만
전신 비만은 순환기능이 떨어져 대사능력이 약해지면서 전신에 불순물이 쌓이는 체질로, 무엇보다 몸을 많이 움직여 대사능력을 높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큰 힘 들이지 않으면서 평소에 할 수 있는 운동은 몸통 돌리기 (우리 몸의 70%는 물이기 때문에 몸통 돌리기를 일명 ‘물통 돌리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이다.
전신 비만에 좋은 ‘몸통 돌리기 운동’
다리를 붙이고 차렷 자세로 서서 팔은 자연스럽게 내려트린다.
골반을 좌우로 돌려주면 골반 위의 몸통이 좌우로 회전을 하게 된다.
몸통회전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려트린 팔도 원심력에 의해 좌우로 회전하게 된다.
이외에도 러닝머신이나 줄넘기 같은 운동과 함께 1주일에 2시간 정도의 근력운동을 병행해 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며 조깅이나 등산도 좋다. 족욕, 사우나 등으로 순환을 좋게 해 주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상체 비만
상체 비만은 비뇨생식기능이 떨어져 기운이 위로 올라가면서 상체는 비대해지고 하체는 가늘어지는 체질이기 때문에 평소 하체운동을 통해 기를 아래로 끌어내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할 수 있는 추천운동은 발뒤꿈치 자극 운동이다.
상체 비만에 좋은 ‘발뒤꿈치 자극 운동’
발을 11자로 놓고 차렷 자세로 서서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한다.
번의 방법을 하면서 들어 올린 뒤 공중에서 양쪽 발뒤꿈치를 가볍게 부딪치고 바닥으로 내려 준다.
번의 방법을 하면서 내려올 때 발뒤꿈치를 땅바닥에 쿵하고 부딪치면서 내려도 좋다.
이외에도 명상이나 단전호흡을 통해 기를 아래로 내려 주고 또한 오랜 시간 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하체 단련을 위해 천천히 걷기나 자전거 타기 등도 도움이 된다.
하체 비만
하체 비만은 소화기가 약해 섭취한 음식물이 100% 다 소화되지 않고 복부에 쌓이기 때문에 복부와 하체가 비만해지는 체질로, 추천할 운동은 배꼽 당기기 운동이다
하체비만에 좋은 ‘배꼽 당기기 운동’
자연스럽게 배꼽을 힘껏 등쪽으로 당기면서 숨을 내쉰다.
당긴 배꼽을 풀어 주면서 숨을 들이마신다.
이렇게 배꼽을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셨다 하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이 되면서 위장과 복근이 강화되고 복부지방이 연소된다.
하체 비만은 소화기능이 약해 에너지 생성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기력을 떨어뜨려 대사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따라서 조금 빠르게 걷거나 요가, 단전호흡, 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이 좋다.
부위별 지방을 줄이기 위한 운동
목운동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어깨는 들어 올리지 말고 머리를 앞으로, 뒤로, 오른쪽, 왼쪽으로 굽혀 각각 2~3초 동안 자세를 유지한다.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개선하고 앞뒤로의 움직임을 도와주며 흉곽팽창과 어깨의 운동성을 좋게 한다.
어깨운동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 견갑골을 가운데로 민다. 5초간 힘을 유지한다. 깍지를 끼고 바로 서서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린다. 5초간 힘을 유지했다가 천천히 팔을 내린다. 흉곽의 움직임을 좋게 하고 어깨 뭉침을 덜어 준다.
무릎운동
벽에서 두 걸음 떨어져 서서 손을 벽에 댄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양쪽 발뒤꿈치를 바닥에 대고 종아리 근육이 펴지는 느낌이 들도록 무릎관절을 곧게 펴고 엉덩이를 벽쪽으로 민다(10초간 유지 후 힘을 뺀다). 무릎관절 주위 근육을 튼튼히 하고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에 힘을 길러줄 수 있다.
발목운동
발가락을 바닥에 대고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다. 힘을 주어 유지한 후 다시 발바닥을 아래로 내린다. 발목관절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회전하는 것을 반복한다. 발목관절의 유연성을 길러 준다.
에 “고지대 사람은 장수하고 저지대 사람은 수명이 짧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세계의 장수 마을은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 일본 알프스의 나가노 현(長野縣) 같은 고산지대나 일본 오키나와(沖繩), 전북 순창군, 제주도 등 해안가에 있다.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은 해발 6000m가 넘는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소량은 16.5%, 습도 50%로 건강에 좋은 조건이다.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은 해발 4000~5000m의 카프카스 산맥으로 이어진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지역을 말한다.
일본의 나가노현은 일본 지역 중 남자가 가장 장수하는 지방이고, 2000~3000m 고산으로 둘러싸여 ‘일본의 지붕’이라 불린다.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은 일본 지역 중 여자가 가장 장수하는 지방이고, 따뜻한 해안가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서울대 조사에서 해발 200~600m의 산간 지대와 해안가에 장수 마을이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장수하시는 분들을 조사해 보면 남성 장수자는 강원도 산간 마을에 많고, 여성 장수자는 전남 해안가에 많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 역시 장수 마을인데, 평균 해발 700m의 산악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르데냐의 산악지역인 누오로에서는 100만 명당 244명이 100세 이상이다. 그리고 남성 장수자가 여성 장수자보다 많다. 높은 산골에 가서 하룻밤을 자면 남자들은 새벽 발기가 더 잘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남성들에게는 산이 맞고, 여성들에게는 바닷가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음양의 이치가 바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조깅을 하면 가슴을 움직여 거친 숨을 내쉬는 데 반해, 등산을 하면 아랫배를 움직이며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산을 오르다 보면 산소가 엷어지면서 숨이 가빠지는데, 우리 몸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흉식호흡에서 복식호흡으로 바꾼다. 아랫배가 후끈해지는 복식호흡은 단전호흡이나 단전에 뜸을 뜬 효과를 내서, 머리는 시원하게 하고 아랫배는 뜨겁게 한다. 기본적으로 상열하한(上熱下寒)증을 치료한다.
티베트 수도인 라사로 여행 간 적이 있다. 처음 며칠은 고산 반응으로 머리가 아프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차만 타면 멀미와 구토... 그런데 움직이지 않던 아랫배가 며칠 지나면서 저절로 들쑥날쑥 복식호흡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고산 반응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때 위장의 연동운동 또한 활발해지며 소화도 호전되었다.
‘신선 仙’자가 ‘산[山]’에 ‘사람[人]’이 붙어 있는 모양을 한 것은 등산과 고산지대 생활이 복식호흡을 도와서 도 닦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네팔의 셰르파족과 구르카 용병이 고산에서도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은 고산에 적응해서 복식호흡이 잘 되어 폐활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고차원 티베트 불교가 융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산이란 일교차와 바람이 심한 곳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사람은 북극곰처럼 피부가 야물고 단단해야 한다. 천지운기에서는 “중국의 서북지방은 지대가 높고 건조한데, 그 곳 사람들은 추워서 병이 들어도 대부분 땀이 없다”고 했다. 고산 지역 사람들은 주로 붓고 뭉치는 병이 생기며, 땀을 내거나 설사시켜서 치료한다.
고산 지역 사람들은 피부가 단단해져서 몸의 근본 구성 요소인 정액[精], 기운[氣], 정신[神], 피[血]가 잘 갈무리되어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고산에는 항암 효과가 뛰어난 약초가 많다. 중국 육상선수단 ‘마군단’과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늘 복용해서 유명해진 동충하초, 티베트의 4대 약재라고 하는 홍경천, 설련화, 남미 고산의 아가리쿠스 등이 있다. 곡기생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겨우살이도 높은 산의 참나무 윗부분에 기생한다. 이들은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산소를 잘 빨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세포의 산소 결핍증인 암을 치료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사람 또한 고산에서는 산소를 더 잘 빨아들이도록 변화하기 때문에, 암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등산을 하면 산소 흡취력을 높여줘서 도시 생활에만 익숙해져 약해진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워 준다.
해안가도 장수 마을이 많다. 일본 오키나와, 우리나라 전북 순창군과 제주도가 그렇다.
해안가에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짜고 강한 해풍을 맞고 산다. 짠맛은 생명체 속의 물을 빼앗아서 말라죽게 하고, 강한 바람도 생명체 속의 물을 증발시켜 말라죽게 한다. 해안가 식물들은 이런 생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바람을 이기고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동백나무처럼 잎 표면이 코팅 처리(큐티클 층)되어 있거나, 수분을 많이 머금기 위해 다육식물로 변하거나, 퉁퉁마디처럼 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염분을 머금고 있다.
사람도 비슷하게 해풍에 대응한다. 해안가 식물이 물을 빼앗기지 않도록 진화하듯, 해안가 마을 사람들은 정액[精], 기운[氣], 정신[神], 피[血]를 잘 갈무리하도록 진화한다. 그래서 피부가 더 억세지는 것이다.
해조류(미역, 김, 파래, 톳, 다시마)가 물을 정화하는 힘은 인체 내에서는 피를 정화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해조류는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항산화 물질이 많아 LDL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은 높이며, 고혈압을 내리고, 미네랄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식이섬유가 많아 대변을 잘 보게 해서 독소를 배출한다. 그래서 해조류는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 일본 오키나와와 전남 바닷가, 제주도가 장수 마을로 유명한 것도 해조류의 영향이 크다.
고산과 해안가가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수는 없다. 그렇게 척박한 곳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것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약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고, 강한 사람들만 살아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고산에서 적응하기 전에 병이 심해질 수 있고, 피부가 약한 사람은 해안가에 적응하기 전에 해풍과 자외선에 큰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고산과 해안가가 장수에 좋다는 것은 어느 정도 면역력, 적응력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예방 주사가 좋지만, 너무 약한 사람에게는 무리이듯이 말이다.
따라서 해발 고도를 완만히 높여 가거나, 해풍이 적당한 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좋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한때 필자의 별명은 스테미나 여사였다. 다들 춥다고 웅크릴 때 필자는 추위를 안 탔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몇 날 며칠 여행을 가도 피곤하다거나 지칠 줄을 모르니 친구들이 부럽다며 그렇게 불러주었다. 그래서 필자도 필자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으며 살았다. 엄마 아버지와 윗대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혈압이 높았으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항상 들었지만, 집안 내력인 고혈압만 조심하면 다른 건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종합 건강검진을 받고 놀랐다. 걱정해야 할 부분이 세 개쯤 나왔는데 그중에 혈당이 있다. 혈당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거라 당황스러웠다. 몇 년 전까진 항상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내어 검사해도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준치보다 높게 나왔고 당뇨라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필자가 당뇨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겁이 났다.
당뇨라면 발가락이 썩어 잘라내야 하고 눈도 멀게 한다는 무서운 질병이 아닌가? 주위 사람에게 여기저기 연락하여 우는소리를 했더니 필자 수치쯤 되는 당뇨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좋아진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래서 가까운 산에도 틈나는 대로 오르고 걷기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이요법은 그리 만만치 않다. 워낙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당뇨로 인한 증상이 보이지 않으니 음식 조절을 잘할 수가 없다.먹고 싶은 대로 먹으며 막연히 그냥 좋아져서 혈당수치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바람을 가졌다.
어떤 드라마에서 혈당이 높은 남편에게 아내가 음식을 제한하는 걸 보았다. 과일도 한두 쪽만 주고 당근 등 생채소만 먹으라고 한다. 과일이라면 수박도 반 통 정도는 먹어야 하고 포도나 복숭아도 한두 개로는 안 되는 필자의 식성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광경이다. 저 사람은 필자보다 훨씬 수치가 높은 사람일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걱정스러움을 없앨 수가 없었다.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 해도 될는지 아니면 약 처방을 받아야 할지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야 하는데 몹시 나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병원 가기가 겁이 났다. 인터넷 쇼핑을 하던 중 혈당체크기 광고가 있어서 주문했다. 일단 집에서 체크해 보기로 한 것인데 받아보니 설명서가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대강 그림에 나와 있는 대로 맞춰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내기는 했는데 혈당 계에 에러라고 떴다.
기계치라서 조립을 잘못한 걸까? 애꿎은 피만 나오게 하고 성공을 못 했다.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했지만, 손끝도 좀 아픈 것 같고 또 찌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아픈 건 아닌데 병원에서 간호사가 찔러 줄 때와 내가 찌르는 건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
병원에 가서 상담하니 무슨 큰일이나 난 듯 검사하라는 게 많았다. 뇨 교육도 받았고 하루에 먹어야 할 음식량도 알려주었는데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 심각성을 못 느끼나 보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안과로 연계해 몇십 만 원 드는 검사도 받았다. 필수 단계라 한다. 그후 계속 약 처방을 받으며 살고 있다. 절이 잘 되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또 음식 조절은 잘 안 하게 되었다.
식도락은 빼놓을 수 없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약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아직도 스테미너 여사라는 별명을 들어도 될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