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사람들이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이유들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가스실 문으로 끌려들어 가며 하던 말이 있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놓친 것이 못내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뜬금없이 류시화 님의 글 중에 라는 글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이럴 때 딱 맞는 비유의 글은 아니지만 굳이 끼워 맞춰본다. 또한 포기하거나 미루기의 증세가 느껴질 때면 이 글이 떠올라 조바심을 부채질을 한다.
10여 년 전쯤 프라하 여행 중에 뾰족 지붕 아래 전망 좋은 꼭대기 층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다. 아침이면 함께 투숙한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면서 그날의 계획을 꺼내놓으며 정보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늦은 밤에 하나 둘 귀가하면 필스너 맥주 한 잔씩 마시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여행지에서의 열린 마음들이 거리낌 없는 정보가 되고 공감하는 동지애가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 중학교 교사였던 젊은 여행자가 그 날 인접국인 드레스덴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두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를 보내고 온 이야기였다. 혼자 차분히 느끼며 다닌 그녀의 드레스덴 이야기가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잠깐 우리도 거기 가볼까 갈등을 했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뮌헨으로 넘어갈 일정이 있어서 그곳엘 가질 못했다.
그 후 그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간간히 드레스덴이 생각났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그쪽을 다시 가기가 어디 뭐 쉬운가. 그때가 좋은 기회였는데...
간 김에 그때 하루쯤 시간 만들어 다녀왔으면 좋았을걸.
아무래도 그때 갔어야 했어.
그런 아쉬움의 여파인지 아들이 유럽 여행 중에 들른 드레스덴의 사진을 어느 날 밤 스무 장이 넘게 보내와 자다 말고 일어나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안달을 했나 하는 생각에 언제부턴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 역시 기억하고 있었고 이번 여행에 드레스덴을 집어넣었다. 프라하에서 Flix bus로 드레스덴까지 1시간 55분 걸린다. 물론 국경을 넘으니까 티켓과 함께 여권 검사를 한다. 유럽의 들판을 달리고 숲길을 스치는 풍경은 덤이다.
마치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 결국 왔어야 할 곳에 온 듯한 기분으로 드레스덴 중앙역 앞에서 내렸다. 역 뒤편에서 내린 줄도 모르고 숙소 쪽으로 향하다가 '어? 이 길이 아닌걸?'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현지인 인듯한 부부가 우리 지도를 들여다보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한참 걸어서 예약된 숙소 앞까지 우릴 데려다 놓고 그들은 후딱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간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다. 그 부부의 등 뒤에 대고 우리말로 '감사합니다아~' 크게 외쳤더니 돌아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미소가 기분좋다. 드레스덴 여행의 예감이 좋다.
신기하게도 시작부터 모든 순간들이 거리낌이 없다.
발걸음을 옮기면 마침 그것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앞으로 걸어가는 길에 공기의 저항조차 없이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배가 고파서 골목을 돌아서면 맛있는 음식점이 있을 거란 예감이 적중했다. 다리를 쉬고 싶으면 멋진 풍경이 눈앞에 있는 벤치가 나타났다. 이 무슨 신비한 조화인가. 언제까지 이럴 것인지 모르겠지만 드레스덴의 은혜를 마음껏 믿어본다.
머리와 마음을 텅 비워가지고 온 내게 이 도시의 충만한 햇빛과 에너지와 고고한 문화를 채우는 시간은 피곤하도록 길어져도 좋다. 구시가지의 돌길에 내딛는 내 발걸음 소리가 어느 날 역사가 될 거라는 당치도 않은 상상을 하면서.
어째서 낯설지 않은 걸까.
엘베강을 바라보며 오랜 전통의 미술대학이 세워진 것도, 그 강변의 행위 예술가들도, 긴 세월의 든든함 아우구스투스 다리, 폭격에 허물어진 교회 벽돌 하나하나 시민들에게 번호를 부여해서 보관했다가 재건에 사용하던 그 마음이 담긴 교회도 모두 자연스럽게 조화롭다. 온 도시가 2차 대전의 공습으로 불타고 무너져 내렸어도 그 거뭇한 색감조차도 생소하지 않다.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도시 자체가 가슴으로 다가온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엘베강은 마치 내가 본 듯한 그 옛날의 강처럼 흐른다. 괴테가 즐겨 산책하며 유럽의 발코니라 일컬었음을 나도 인정하기로 한다. 거길 걷다 보면 그 시가지를 오가는 사람들이 풍경이 된다.
독일의 피렌체라 불릴 만큼 각종 문화유산에서 고풍스러움의 멋이 도시를 채우고 있었다. 왕궁이나 대성당, 오페라하우스나 마차가 다니는 골목길에 스며들어본다는 것은 심장이 두근대는 걸 느끼는 시간이다. 어딜 돌아보아도 감각적인 바로크 건축물들의 위용이 도시의 멋과 고고함에 흠뻑 빠뜨린다.
요하네스 왕 청동 기마상 앞 광장에서 BTS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던 젊은 청춘들을 보며 어쩐지 가슴 뭉클. 오옷... 이쁘신 우리의 bts~. 길 가다가 갈증 나면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며 이 도시를 넓은 눈으로 둘러본다. 거리의 아티스트가 벌이는 전위 예술도 인상적이었고, 가던 길 멈춰 서서 들었던 숄로스 광장의 털보 악사의 연주도 기억난다. 특히 밤 산책길이 이쁘고 편안했던 시간.
독일 라이프치히 남동쪽으로 마이센과 피르나 사이에 있는 엘베 강 유역에 있는 작센 주의 주도 드레스덴. 게르만의 식민에 의하여 1200년 이전에 성(城)이 구축되고 1206년에 도시가 되었다.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했다. 독일의 도시중 외곽으로 멀리 떨어진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슬라브어(語)로 숲 속의 사람이란 뜻의 드레스덴(Dresden), '평야의 삼림 거주민'을 뜻하기도 하는데 드레즈단이라는 슬라브족 촌락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옛 동독의 古都,
도시가 오가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 크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쁜 뮌츠 골목도, 강변을 바라보는 나란한 벤치들도, 노란색 트램도, 소소하게 품격을 느끼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다닐 수만 있어도 좋은 곳, 이 도시가 폼나니까 그 속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아름답다. 그들의 눈빛은 따뜻하다. 그냥 다녀도 가슴 벅찬데 게다가 마냥 관대해지기까지 한다. 드레스덴은 더없이 은혜로웠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잊을만하면 떠들어댈 만했다. 그리고 오고야 말았다.
▲드레스덴의 맛
독일에는 감자요리가 여러 가지 있다. 그 중에 노천카페에서 먹었던 뢰스티는 우리의 감자채전과 흡사하다. 그 위에 소스와 잘게 썬 베이컨이나 샐러리 등을 뿌리고 채소를 듬뿍 얹어서 먹기 때문에 식후에도 가벼운 느낌이 좋다.
특히 구운 토마토와 콩 요리를 많이 먹었는데 잘 익은 토마토 맛의 풍부함은 최고다. 그리고 드레스덴에 왔으니 흑맥주 한잔쯤 빠뜨릴 수 없다.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봄은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유리병 안에 갇힌 거처럼 봄의 향기를 못 맡고 있지만 자연이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어김없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봄꽃의 꽃망울이 터질 때 두근거리는 울림을 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설렘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싱그러운 자극으로 나에게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린다.
올해는 직접 봄을 찾아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대로 지난 시간 교감했던 봄을 기억과 되새김질을 통해 복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곳 중 유독 한 곳에 여러 차례 발길이 갔던 흔적이 눈에 띠었다. 경상남도 하동이다.
내 추억 속의 하동은 봄을 찾다 돌아오니 마당 건너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봄이 보였던 곳이다. 그때부터 거의 해마다 봄이 올 즈음이면 그곳에 갔었다.
부담 없이 살짝 눈이 부시게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깊고 높은 어둠의 고요 속에 수줍은 듯 빛나는 별천지,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살살 간지럽히는 자연의 향기들이 봄을 말했다. 그렇게 따스하게 토닥여주는 자연이 좋았다.
더군다나 하동에는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평사리가 있다. 그곳은 나에게 사유와 성찰을 위한 최고의 보약이 되는 공간이다. 평사리 땅에 서면 인간의 삶과 인간의 삶이 엮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마음을 챙길 수 있었다.
이미 드라마로도 여러 번 방송되어 잘 알려졌다시피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까지 우리 민족 고난의 역사를 최씨 일가 중심으로 이야기한 박경리의 장편대하소설이다. 무려 25년 동안의 집필 과정을 거쳐 전체 20권으로 완간됐다.
소설이 특히 나에게 줬던 커다란 울림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에는 700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에 관한 보편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책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상처, 아픔에 대해 상상해 보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졌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내 삶의 온도와 빛깔과 향기도 바뀌었다. 내가 아닌 관점에서 현상과 감정을 보는 훈련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부터 봄철의 평사리에 가면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을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선물 받았다. 소설 ‘토지’는 봄비처럼 촉촉하게 가슴을 적시며 내 안의 빛과 소금이 되어준 작품이다.
평사리에는 2001년 드라마 세트장으로 사용한 최참판댁과 초가집들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봄 그곳에 갔을 때 최 참판 댁 앞마당에 서서 멀리 보이는 섬진강을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한 굽이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을 보니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봉순이의 일생이 떠올랐다. 장터를 가기 위해 강둑을 걸어가는 이용의 모습을, 해방 소식을 듣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강둑을 걸어오는 장연학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사랑채를 끼고 돌아 집 뒤편으로 가면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조병수의 아픔이 담겨 있는 대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서 그의 인생에 대해 느끼고, 이해하는 사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토지’는 사람들의 인생 모습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역경을 극복한 사실로만 국한 시키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극한의 고통과 고독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삶의 가치에 대해서까지 확장시켜 말하고 있다.
그 양의 방대함만큼이나 인간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인생이야기가 담겨 있는 심연이다. 양에 눈길을 주지 말고, 용기 내어 읽어보길 권한다.
이제 봄이 살살 수를 놓고 있다. 이 봄기운으로 유리벽을 허물어 내고, 내 인생의 소중한 보물인 인연들과 함께 봄날의 설렘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2020년도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만큼이나 자기 인생도 스스로 매니지먼트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가지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의 모습을 알아야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가 더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낸 ‘트렌드 코리아 2020’을 읽었다. 책에서 이야기한 여러 트렌드 중에서도 ‘공간의 재탄생, 카멜레존’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성수동은 변해 있었고, 변해 가는 중
지난해 우리 사회에 나타났던 도심의 낡은 시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선해 새로운 공간으로, 새롭게 만든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서는 공간을 재해석하고, 체험형 성격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업종들을 모아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트렌드라고 예측했다.
책에서 언급한 여러 사례 중 서울 성수동에 있는 ‘성수연방’을 찾아갔다. 내 기억 속의 성수동은 사각형 모양의 2층으로 된 건물과 마당을 가진 영세한 공장들, 구두가 가득 진열된 쇼윈도의 수제화 점포들이 밀집해 있는 주거, 공업 지역이었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내린 후 만난 ‘성수이로 길’은 기억의 성수동과 달랐다. 여전히 많은 소규모 공장과 차량 정비공장, 공장 창고, 수제화 점포들이 대세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에 있는 거리의 을씨년스러움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달라질 정도로 해일이 몰려와 거리를 바꿔놓은 것은 아니었다. 옛것의 낡음을 재해석해서 탈바꿈시킨 몇몇 공간과 건물들이 길의 풍경을 바꾸는 중이었다.
창고의 외벽을 그대로 살린 채 투박스러운 나무로 꾸민 카페는 세상살이에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의 날 선 경계심을 조금씩 늦춰 주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가 어려운 그림 전시장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했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의 캔버스가 되어버린 골목길 어귀의 담장 스페이스는 자꾸 눈길을 끌었다.
길 건너편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공간의 세련된 음식점들이 계속해서 나를 유혹했다.
이제 ‘성수이로 길’에서는 뉴욕 브루클린(Brooklyn)의 향기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억지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 천천히 바라볼 수 있어 더 많은 시간의 모습이 보였다. 길을 걸을 때 어깨에 살포시 내려온 겨울 햇살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켰다.
삶 속에서 나를 안아주는 길. 그런 길을 또 하나 찾은 2월의 오후였다.
화학공장에서 변한 ‘성수연방’의 모습
‘성수연방’은 화학공장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성수동의 랜드마크가 된 이곳은 ‘ㄷ’자 모양의 3층 건물이 양옆으로 서 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의 1층 공간은 정원과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건물 2층 양 끝에는 건물을 서로 연결해 주는 통로가 있다. 새로운 트렌드의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을 구성하는 각 공간을 소개한다.
띵굴마켓(Thinggool)
Better day, Better living가 컨셉인 라이프스타일 편집 숍이다. 각종 주방용품부터 생활용품, 음식까지 각 카테고리의 상품들을 예쁘게 잘 정리 해놓았다. 가격과 디자인 모두 실용성을 추구하는 매장이나 편집 매장의 특성상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전시된 제품과 인테리어를 보면서 일상생활을 꾸밀 상상을 한다면 행복해질 것이다.
인덱스(index caramel): 수제 캐러멜 판매 매장. 설탕 대신 100% 사탕수수 등 천연재료로 자연스런 단맛을 내는 12가지 캐러멜을 판매하는 매장.
리카리카(likalika): 반려동물 토탈라이프 스타일 제품 판매 매장. 반려동물과 관련된 음식, 봉제품 등 판매.
샤오쟌: 구아바오 등 대만식 음식 전문점
창화당: 만두, 튀김, 떡볶이를 판매하는 익선동 맛집으로 유명한 곳
JAFA 브루어리: 소규모 맥주 제조 시설을 갖춘 브루어리, 도수가 가볍고 마시기 쉬운 독일식 맥주를 지향해 만든다. 품질이 검증된 재료로 한정된 수량만을 생산한다.
아크앤북: 전문 큐레이션에 의해 취급 도서와 관련 제품을 선정해서 판매하는 편집형 서점이다. 현재 전국에 4개 매장이 오픈되어 영업 중이다. 성수연방의 카테고리 콘셉트는 마일(Mile 책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 1마일: 평소 독자가 늘 곁에 두고 보는 책과 소품들
- 10마일: 생활 관련 도서와 집을 나설 때 드는 물건들
- 100마일: 국내 여행, 문학 관련 책. 밖에 나가서 놀고, 쉬고 싶을 때 사용하는 가볍고 단순한 소품들
- 1000마일: 해외 여행 관련 책과 소품, 가방들,기타 미술 등 전문 서적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 외에 액세서리, 캐리어, 일상 소품과 자체 브랜드인 ‘로우로우(RAW ROW)’의 잡화도 취급하고 있다.
존 쿡 델리 미트: 오픈형 공장 형태로 매장을 꾸민 육가공 식품 전문회사. 햄, 소시지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판매하며, 제조 생산 과정을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다. 플레트 메뉴를 취식할 수 있는 테이블도 구비되어 있으며, 소시지 제조 클래스 수업도 진행한다.
천상가옥: 명실공히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인 예쁜 카페. 투명한 천장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압권이다.
창밖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겨울밤에 따뜻한 솜이불 속으로 몸을 담그는 순간 느껴지는 행복감. 그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겨울 여행의 맛이다. 뻔한 새해맞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겨울 여행에 갈증을 느꼈다. 그때 하나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는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황금빛 방울처럼 딸랑딸랑 울리던 곳…”
레몬 향 실린 따스한 바람과 지중해가 반사한 겨울 햇살이 내 영혼을 포근하게 적셔줄 것 같았다. 오렌지빛 겨울 노을을 가슴 속에 슬그머니 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크레타섬’이다.
겨울에 만난 크레타 섬
크레타(Creta) 섬은 그리스 본토와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각각 300km 떨어진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다. 그리스에서 다섯 번째 큰 섬으로 제주도 면적의 4.5배 크기다. 아테네의 피레우스(Piraeus) 항구에서 밤 페리선을 타고 크레타 섬으로 향했다. 밭이랑을 세우듯 하얗게 물이랑을 일으키는 파도를 밤새도록 넘어 이른 새벽에 크레타의 이라클리온(Heraklion) 항구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겨울은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과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지만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겨울바람이다. 살갗을 쓰다듬어주는 바람이 피부에 착착 달라붙었다.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나왔다. “아! 바람 좋다.” 잠시 후 새벽 여명과 함께 나타난 야자수와 파릇파릇한 나무들은 멀리 동쪽에서 찾아온 여행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라클리온의 중심지는 베니젤로(Venizelos)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 있는 1600년대에 만든 사자분수를 중심으로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주변에 있다. 비수기여서인지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광장 주변은 물론 골목길에 있는 작은 카페와 바까지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가 어두워진 후에서야 이렇게 나타나는지 놀라웠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밤이 하얗게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긴 겨울밤 내내 공감과 소통을 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중해의 겨울밤은 하얀색 이야기의 성(城)이다.
겨울 석양을 맞이하기 위해 바닷가 길을 걸었다. 해안가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예쁜 카페 거리가 아니라 황갈색 바위의 방파제 길을 걸었다. 길 중간에서 1500년대에 만들어진 ‘베네치아 요새’를 만났다. 크레타 섬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지어진 군사시설이다. 겨울 지중해는 해 질 녘 주황색 하늘을 나에게 선사하지 않았다. 아마 겨울이 오면 여름을 기다리는 섬사람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에게 선사하기 위해서 참았을 것이다. 방파제에 앉아 한숨을 쉬며 파도로 해변을 핥는 겨울 바다를 지켜보았다. 바다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바다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포근함이 밀려왔다.
미노스 문명의 크레타 섬, 크노소스 궁전
크레타 섬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준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였다. 시내에 있는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는 놀라울 정도로 발달한 청동기 시대 미노스 문명의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으로 갔다. 겨울이라 관광객도 거의 없이 한산해서 여유롭게 궁전을 둘러볼 수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그리스 전설 속의 반은 인간, 반은 황소였던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미로 같은 건물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만한 규모와 구조였다. 서로 연결된 방이 무려 1,400개라고 한다.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궁전에 얽힌 인물과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꿰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만나다
크레타섬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을 꼽는다면 화가 ‘엘그레꼬’, 가수 ‘나나 무스끄리’와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뽑을 수 있다.
이라클리온을 둘러싼 성벽 위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가 있다. “최후의 유혹”이라는 작품으로 인해 그리스정교회와 로마가톨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기 때문에 공동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성벽 위에 있었다. 바람 부는 성벽 위, 그의 묘는 소박했다. 묘비의 글처럼 죽어서도 욕심내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평한 돌과 묘석 그리고 나무 십자가 그것이 모두였다. 묘비에는 그의 소설에서 따온 유명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자유롭게 삶을 즐기라는 그의 외침이 바람에 실려 귓가를 맴돌았다. 자유를 갈망하며 거칠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지금의 자리가 그의 영원한 안식처로 선택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리면 조금 떨어진 곳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문학의 동료이자 사랑을 알려 준 두 번째 부인 엘리니의 묘가 있다. 그녀의 묘 역시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묘 주변을 둘러볼 때 벤치에 앉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파리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르(Ferr)’였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공부했었다는 그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크레타 섬을 정말 좋아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의 문학과 그의 외침 ‘자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롭지 못해서 더 자유를 열망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과 시간, 사연이 오가는 겨울의 항구
크레타 섬에서 이라클리온 다음으로 큰 도시는 하니아(Chania)다. 이곳 역시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았었다.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작은 예쁜 항구다. 하니아는 이라클리온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3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하니아로 가는 도로는 해변을 따라가는 풍경이 아름다운 길이다. 가는 내내 올리브 나무가 지천에 깔려있는 구릉지들이 바다와 함께 길옆으로 함께 달린다. 크레타 섬에는 30,000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올리브 관련 상품들이 특산품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었다.
하니아 베네치아 항구의 작은 카페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지중해의 겨울 햇살이 내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항구는 배만 오가는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과 시간, 사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안에 나의 시간도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외면해 왔는지 크고 작은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조르바의 말처럼 매사를 정밀하게 재는 저울 한 벌을 내 안에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저울을 버릴 때다. 필요한 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 지중해 섬 여행 정보 Tip (아테네에서 크레타 섬 가는 방법 중심으로)
-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페리를 타면 된다. ‘미노안 라인’과 ‘블루 스타 페리’ 두 개 노선이 있으며 크레타 섬까지는 9시간 정도 걸린다.
- 피레우스(Pireaus) 역까지는 지하철(Metro) M1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 피레우스 항구 입구에는 배를 타는 각 게이트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
- 예약서를 페리 타는 게이트(Exit)에 있는 부스에서 탑승권으로 교환하면 된다. 혹은 직접 구매해도 된다.
▪ 미노안 라인 예약 홈페이지 www.ferries.gr/
▪ 블루 스타 페리 예약 홈페이지 www.bluestarferries.com
※ 크레타 섬 외에 산토리니 등 다른 섬을 가기 위한 예약과 승선도 동일한 방법으로 하면 된다.
※ 겨울철에는 숙박비, 렌트비 등 모든 요금이 절반 정도로 싼 편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으면 배가 출항을 못 해 발이 묶여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겨울철 지중해 섬 여행은 반드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정이어야 한다.
△ 크레타 섬 추천 먹거리
베니젤로 광장 꼬치구이 전문점
그 섬에 서면 느리게 출렁이는 시간을 본다. 느릿한 바람 속에서 태고와 현재가 넘실거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가을이면 풍성한 갈대와 억새꽃이 군락을 이루어 눈부신 곳 ,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무인도 비내섬에서 알싸한 겨울을 맛보는 건 자신에게 때 묻지 않은 겨울을 선물하는 시간이다.
억새꽃 피어나던 섬으로 떠나는 겨울여행
충주에서 앙성면의 비내섬까지는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남한강 줄기와 함께 어우러진 섬이 보이고 벌써부터 가슴이 탁 트인다. 입구의 섬을 향한 다리를 건너서면 바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구 형식의 99만 2천㎡(약 30만 평)의 광활한 무인도가 펼쳐진다. 울퉁불퉁한 길에는 요즘 어디든 놓인 그 흔한 인위적인 데크길이나 여행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문도 없다. 초입의 길 옆에 비내쉼터 하나 있을 뿐이다. 오지(奧地)와도 같은 비내섬의 자갈밭과 흙길을 따라 억새의 숲에 파묻힐 일만 남았다.
인적이 드물다. 한적함이 어울리는 섬이다. 언제까지나 덜 알려져서 늘 이랬으면 싶다. 숨겨놓고 나만 알고 싶은 곳, 그 섬에 들면 금방 자연 속으로 푹 잠기는 자신을 본다. 억새 사이로 난 부드러운 흙길에 사람의 발자국과 자동차 바퀴 흔적이 있다. 드넓은 갈대숲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취하는 조용한 휴식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갈대와 억새꽃이 만발한 가을에 비해 겨울 들판에 서면 자연스럽게 차분함을 장착시켜 준다. 그 사이로 군데군데 서 있는 버드나무 뒤로 섬을 휘감아 도는 남한강 줄기가 흐른다. 산이나 들에서 주로 자라는 억새와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가 이곳에서는 사이좋게 공생을 한다. 사람들의 손 타지 않은 이런 풍경 덕분에 드라마 사극이나 사색적인 배경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엔 이곳 비내섬과 이 지역의 탄금호 무지개길에서 촬영된 배우 현빈과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방송되고 있는 중이다.
비내는 갈대와 나무가 무성해서 비어(베어) 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큰 장마가 지는 바람에 내(川)가 변했다 해서 비내라고 불린다는 말도 있다. 갈대숲을 지나던 마을 어르신이 “예서 뭐 볼게 있어서 이렇게 왔남? 하면서 가던 길을 익숙하게 지나가신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갈대와 억새가 무리를 이루어 일렁인다. 그 너머로 강변을 끼고 나지막한 산과 들이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멀리 몇 채의 시골집과 다 따낸 휑한 사과밭이 겨울 속에 오롯하다. 모든 것을 비운 사람의 멋을 떠올리며 꽃도 잎도 열매도 떨군 겨울 풍경을 본다. 우리 기억 속의 유년기의 마을 풍경처럼 아련하다. 이 모든 것이 제각각 따로 분리되어 보이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 순하고 평화로운 정취로 눈에 들어온다.
발길 닿는 대로 옮기다
이토록 때 묻지 않은 이 섬에는 생태자원이 풍부하다. 람사르 습지 보호지역으로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지자체의 입장이다. 생물의 다양성과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서식·도래 지역, 지형·지질학적 가치를 위해 환경부에 비내늪의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건의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군사 훈련과 캠핑 차량 통행 등에 따른 훼손이 아직 남아있는 문제로 알려져 있다.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헤매듯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끝없이 호젓하다. 바스락거리며 흔들리는 억새 수풀 사이에서 길을 잃고 싶다는 생각조차 든다. 천천히 걷다 보면 간간이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나 곤충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숲의 정적을 깬다. 이곳이 계절마다 찾아오는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비내섬 갈대밭의 자연은 우주만물이 공생하는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신경림 시인은 ‘갈대’를 이렇게 노래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한겨울이다. 실내에서만 옹송거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경직되기 쉽다. 하루 코스로 훌쩍 떠나볼 수 있는 곳 충주 비내섬을 향해 달려보자. 그 섬의 억새 수풀 속에 서서 아스라한 태고의 겨울바람 소리를 들어보라. 뒤엉킨 머릿속이 은은하게 평정된다. 그리고 차분한 겨울 추억의 결을 하나 더 보태는 날이다.
-비내섬 : 충북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412
△가볼 만한 곳
충주 ‘중앙탑’
비내섬에서 자동차로 20분쯤 거리에 중원 탑평리 칠층 석탑(일명 중앙탑)이 있다. 넓은 잔디밭에 사적공원(史跡公園)이 멋지게 조성되어 산책을 하거나 휴식공간으로 더없이 좋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국보 6호 중앙탑이 시원하게 우뚝 선 공원엔 예술적 조각 작품들을 비롯해서 야외음악당, 음악분수대, 향토민속자료관 등 볼거리가 많다. 호수 쪽으로 걷기 좋은 코스 탄금호 무지개다리가 있고, 호수 저 편에 [대한민국 중심고을 충주(CHUNG JU KOREA)]이란 글자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이 나라의 중간 지점이다.
탑 주변을 벗어나면 그 옆으로 한옥이 보인다. 의상 대여소 '입고 놀까'는 중앙탑공원에서 인싸 되기 놀이마당이다. 이미 sns상에서 핫플레이스로 이슈가 되고 있다. 거길 나오기 전에 술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세계무술공원이 있다.
*중앙탑: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남한강 물길의 중심 목계나루, 그리고 종댕이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그 옛날 남한강 수운을 따라 물류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던 충주가 전국 동서남북 교통의 요지가 되는 역할을 했던 엄정면 쪽의 목계나루터. 오늘날 그 가치를 살리고자 복합 문화공간이 형성되었고 목계나루의 옛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다.
*목계나루: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산35-8
그리고 산책 코스로 좋은 충주호 종댕이길은 1~3코스로 30분에서 4시간까지의 코스의 트레킹이 가능한 행복한 둘레길이다. 2코스의 조망대에서는 해맞이를 할 수 있고 출렁다리도 있다.
*충주공용버스터미널 농업기술센터 정류장에서 514번(용관,시외버스터미널), 515번(터미널,국민은행) 버스 타고 마즈막재 삼거리 주차장 하차.
그 외에도 시내 중심의 충주 호암저수지, 관아공원은 물론이고, 잘 알려진 탄금대와 이화령을 지나 멋스러운 한지박물관과 주변의 문경까지 냅다 달려 볼 수 있다. 하루나 이틀쯤 선비의 풍류가 흐르는 곳 충주에서 겨울여행을 즐긴다면 정감 어린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충주의 맛
뭐니 뭐니 해도 사과를 빼놓고는 충주의 맛을 이야기할 수 없다. 충주의 사과 작가로 유명한 강병미 화가는 말한다. 대학교 때부터 사과를 그리다 보니 운명처럼 사과의 고장 충주에 와서 살게 되었고 이곳에서 사과 그림 작업은 당연한 일상이라고.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와 농업회사법인 페트라가 공동 개발한 사과빵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하면 오븐에서 직접 구워 식혀서 포장해 준다. 호두과자에는 호두가 들어있듯 사과 빵에는 당연히 충주 사과가 들어간다. 부드러운 빵 속에 상큼한 사과 필링이 입안 가득 퍼지는 맛, 따뜻할 때 더 맛있다.
*애플스토리 : 충북 충주시 지현동 963
(충주휴게소, 수안보 휴게소, 주암휴게소, 수안보 상록호텔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가을에 수확한 사과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도록 저장도 하지만, 충주에서는 다양한 제품으로도 나온다. 사과 한과, 사과 손약과, 사과 강정 외에도 사과 국수와 주스나 와인 등이 있다. 충주 버스터미널 안에 충청북도 우수 판매전시장이 있어서 귀갓길에 구입할 수 있다.
맛있는 한 끼
올갱이(다슬기)요리는 주로 충주와 괴산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다. 푸르스름한 올갱이국이 일품이다. 그리고 충주 부근으로 드라이브 삼아 나가면 그 산에서 나는 산채비빔밥집이 많다. 직접 발효한 효소를 넣은 양념장과 청포묵을 넣은 비빔밥의 맛.
만일 여유있게 하루나 이틀쯤 머문다면 숙소는 비내길에서 20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앙성 탄산온천지역이 있다. 수안보 온천도 멀지 않아서 온천욕을 하며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겨울여행의 알찬 마무리다.
조선왕릉은 문화유산으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20기가 남아있다. 이 가운데 능은 42기, 원이 14기, 묘가 64기이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은 왕세자,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의 무덤을 말한다. 그 외 왕족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히 보존된 것은 세계에 그 유래를 찾기가 힘들다. 2019년도 저물어가는 12월 가까이 있는 서오릉을 찾았다. 삶과 죽음, 역사 이야기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봤다.
홍릉을 통해 본 영조의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이었을까?
천한 신분인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열등의식은 그의 개인적인 삶에 한계를 지우는 원인이 되었다. 배다른 형을 세자로 둔 왕자였지만 금수저가 아니라 차라리 흙수저에 가까웠다. 성장기도 궐 밖의 사가(私家)에서 지냈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조선의 21대 왕이 된 이가 영조다.
그는 어려서 궐 밖에서 지낸 경험으로 인해 백성을 위한 정치와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많이 알려진 탕평책(비록 실패했지만)과 균역법은 그의 대표적 업적이다.
그 밖에도 쌀이 부족하면 일시적으로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고, 가혹한 형벌을 없애기도 했다.
영민한 군주였지만 그는 콤플렉스로 인해 개인적으로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다. 먼저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다. 오로지 왕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만 집중한 외골수였다. 일례로 경연을 자주 열었다. 왕위에 있는 동안 역대 최고인 3458회를 기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학문 실력을 자랑하기도 하고 신하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밖으로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는 철저하게 조선의 왕이라는 신분에 얽매였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왕이라는 신분이 고난을 견디게 하는 자부심이 아니라 권력을 소유하는 기준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비인 정성왕후에 대해서도 첫날밤에 소박을 놓기까지 했다. 그 이유가 어이없다. 첫날 밤 연잉군(왕이 되기 전 영조의 호칭)이 말하길 “그대는 손이 참으로 곱소”하였다. 이에 대해 정성왕후는 “소첩이 궂은일을 하지 않아 그런 듯하옵니다.” 딱 한 마디 대답했다. 이 말에 그는 궂은일을 많이 했던 자기 어머니 손을 떠올리며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그녀는 죽는 날까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 정도면 거의 병 수준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국의 왕비로서 끝까지 체통을 잃지 않았다. 남편에게 평생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비와 자식 간의 관계로 인해 마음의 병까지 얻은 그녀가 죽은 후 자리를 잡은 곳이 서오릉에 있는 ‘홍릉’이다. 홍릉은 조선의 능 중 유일하게 한쪽이 비어있다. 원래 영조는 자신이 사망하면 비워둔 오른쪽 자리에 함께 묻혀 쌍릉으로 조성하길 원했다. 하지만 정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조는 왜 영조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오렌지빛 주황색을 띤 겨울 햇살이 능과 마주 보고 있는 산 정상을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영조의 콤플렉스와 열등의식은 자신의 친아들인 사도세자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3살 때 글을 쓰고 읽을 정도로 영특한 이 선(사도세자의 이름)은 태어난 다음 해 세자로 책봉된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영조는 아들이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이 선은 무예에 관심이 많고 능통했다. 영조는 자기 뜻대로 행하지 않는 아들에게 점점 더 심하게 압박을 가했고,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신병까지 생겼다. 결국, 우리가 잘 아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참변에까지 이른다. 사도세자는 홍역을 앓으면서도 사흘 동안 눈 위에 엎드려 영조에게 잘못을 빈 적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영조의 이런 혹독함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는 자식과 공감, 소통한 것이 아니라 소외, 단절한 것은 아니었나.
홍릉 주변을 걸으며 영조를 생각하니 가까이 있는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와 공감에 대해 반성하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바라보며 또 다른 나를 통해 지나온 삶에 대해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끊임없이 더 좋은 삶, 더 따뜻한 삶을 향해 노력하는 아름다운 삶의 길을 걷고 싶다.
서오릉은 치유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공간
서오릉에는 5개의 능과 2개의 원, 1개의 묘가 있다. 서울의 서쪽인 이곳에 처음으로 조성된 능은 세조의 큰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추 존 덕종과 그의 비 소혜왕후가 있는 경릉이다. 세조는 그가 지은 죄 때문인지 아들이 두 명이나 20세 때 죽었다.
두 번째 능 역시 세조의 둘째 아들인 제8대 예종과 두 번째 부인인 안순왕후의 능이다. 세 번째 능은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능이다. 네 번째 능은 제19대 숙종과 그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에 이야기한 홍릉이 있다.
이번에 돌아본 서오릉은 단순하게 역사적 가치만을 지닌 공간이 아니었다. 51만여 평에 이르는 서어나무 길과 소나무 길이 있는 녹지대는 사색과 사유의 공간이었다. 소나무 향이 흐르는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삶과 죽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찰나에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살아있음의 경험’임을 깨닫게 되고, 살아있음의 황홀함이 느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행복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서오릉은 치유의 공간이었다.
또 그곳의 자연에서는 봄을 위해 동토에 새싹을 피우는 자연을 만날 수도 있었다. 티 없이 화사한 자연의 미소가 거기에 있었다.
△교통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 은평구청 방향에서 광역버스(9701),일반 버스(702A,B)
3호선 원당역 3번 출구에서 광역버스 (9701)
6호선 구산역 1번 출구에서 광역버스 (9701)
6호선 응암역 2번 출구에서 일반버스 (701A, 702B)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2019년 9월 서오릉 앞길이 정비를 끝내고 6차선 대로로 새롭게 길을 열었다. 전 보다 접근성이 아주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요즘 서오릉이 서울 근교의 새롭게 떠오르는 먹방의 성지가 되고 있다.
△가볼 만한 식당
⁕ 대가왕 쭈꾸미
대한민국 요리 명장이 요리하는 곳으로 소문난 이곳의 요리와 메뉴는 퓨전이다. 불 주꾸미의 경우 불맛의 향을 살리면서도 숙주의 아삭함과 파향으로 느끼함을 잡아준 별미다. 식사 후 정원에서 커피도 가능하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07-8
⁕경성빵공장
주인이 말하는 비법은 신선한 재료와 당일 생산, 당일 판매뿐이다. 그런데도 빵 마니아들에게는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TEL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406-20
△TIP 정보
⁕ 탕평책: 당쟁(영조 때는 노론과 소론)을 막기 위해 정치 세력 간에 균형을 꾀하려 한 정책.
⁕ 균역법: 백성들의 3가지 세금(토지, 특산물, 노동력)중 노동력에 해당하는 군역(군복무) 은 당시 베 2필로 대신할 수 있었는데, 이를 베 1필로 줄이는 대신 지주나 왕족에게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게 한 제도.
⁕ 경연: 왕과 신하가 유교적인 이상정치를 추구하는 장으로서, 왕이 학문에 애쓰는 것을 드러내는 자리.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부산역에 도착했다. 위쪽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부산은 아직 초겨울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부산역 옆 돼지국밥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은 초량이바구길에서 시래깃국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걷기 코스
부산역 ▶ 옛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 남선창고 터 ▶ 동구 인물사 담장 (초량초등학교) ▶ 이바구정거장 ▶ 168도시락국 ▶ 168계단과 168모노레일 ▶ 전망대 ▶ 이바구놀이터와 6·25막걸리 ▶ 이바구충전소 ▶ 당산 ▶ 이바구공작소 ▶ 장기려더나눔센터 ▶ 스카이웨이전망대 ▶ 유치환의 우체통
부산의 산동네와 산복도로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뒤, 최후 방어선이었던 부산이 피란수도가 되었다.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왔다. 전쟁 전 40여 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산지인 부산은 폭증한 인구를 수용할 만한 땅이 부족했다. 피란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에서 가까운 산동네로 몰려들었다. 산비탈을 깎아 판잣집을 짓고 부두 노동자로, 자갈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산동네에 정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동네가 지금의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영도 흰여울마을,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 등이다.
부산에 산동네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산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생겼다. 실핏줄처럼 산동네를 연결하며 부산의 상징이 되었다. 부산 동구에서 산복도로가 처음 개통된 초량동에 부산의 근대 역사를 담은 ‘초량이바구길’을 조성했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까꼬막이 천지삐까리’ 초량이바구길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짧은 코스이지만, 부산말로 “까꼬막(오르막길)이 천지삐까리다(아주 많다).” 급경사 계단에는 모노레일이 있으니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산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첫 목적지인 옛 백제병원에 도착한다. 백제병원은 1927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종합병원이었다. 폐원된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1층에 카페 브라운핸즈백제가 입점했다. 근대 건축물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 1900년에 지은 부산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 터와 부산 동구의 근현대사와 인물을 소개한 초량초등학교(1937년 개교) 담장을 지나면, 이내 이바구정거장이 나타난다. 이바구정거장은 초량이바구길의 안내소로서 캐리어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바구정거장 옆에 있는 바람개비로 장식한 계단에서 본격적인 까꼬막 여행이 시작된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 168모노레일
바람개비계단 끝에서 분식집처럼 생긴 168도시락국 식당이 반긴다.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하면, 달걀부침을 얹은 양철 도시락과 진한 멸치 육수 맛이 일품인 시래깃국을 맛볼 수 있다. 시래깃국을 들이마시다시피 하니, 주방을 지키던 할머니가 빈 국그릇을 가득 채워준다. 배불리 먹은 밥값은 단돈 5000원.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168도시락국 식당을 비롯해, 이바구놀이터(영진어묵&공감카페), 6·25막걸리,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충전소, 커뮤니티 센터인 이바구공작소 등에는 동구 지역 시니어가 근무한다.
168도시락국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사 45˚의 168계단이 기다린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도 2016년, 계단 옆에 무료 모노레일이 생겼다. 운행거리는 약 60m. 모노레일에 함께 탄 아주머니가 168계단을 가리키더니 “이 계단이 부두 노동자들이 일하러 갈 때 다녔던 지름길이라. 계단 밑에 있는 우물도 봤지요? 할매들이 이 계단으로 물 뜨러 다녔는데, 한 계단 오르고 한 번 쉬고, 고생이 말도 몬했다꼬. 모노레일이 생겨서 얼매나 좋은지 몰라요. 여름에도 시원코. 저짝 아래 함 보소. 갱치가 울매나 좋은지”라며 추억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바구길 최고 전망은 이곳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전망대로 이어진다. 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초량동 주택가와 멀리로는 황령산, 해운대 마린시티,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노레일 승강장 옆에 있는 이바구놀이터도 전망대만큼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이곳은 야경 감상에 최적화된 장소다. 통통하고 쫄깃한 부산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을 먹으며 야경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인정 넘치는 시니어 직원들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음식이 식을세라 살뜰히 살피기도 한다. 이바구놀이터 맞은편 6·25막걸리에서는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 대신 계단을 추천한다. 걸어 내려가면서 빵집, 아트숍, 카페, 갤러리, 추억의 물건을 파는 다락방장난감BOX, 김민부 전망대에 들를 수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사한 이가 바로 시인 김민부다. 전망대와 마주보고 있는 이바구충전소를 지나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복도로와 만난다.
부산에서만 가능한 산복도로 투어
산복도로 턱밑에 자리한 이바구공작소는 방문객 안내센터 겸 주민커뮤니티센터다. 이곳에 근무하는 시니어 문화해설사에게 초량의 근현대사를 들을 수 있다. 이바구공작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장기려더나눔센터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데 일생을 헌신한 의사이며, 의료보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장기려더나눔센터에서 유치환의 우체통으로 가는 길에 산복도로를 지나다 보면,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띈다. 도로 폭이 좁아 건물 옥상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한쪽 차바퀴를 들어 주차하는 ‘개구리 주차’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가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은 부산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2층 시인의 방에서 엽서를 써 3층 전망대에 설치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유치환의 우체통 앞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초량차이나타운
1884년 초량에 청국 영사관이 설치된 뒤, 중국 상인들이 점포를 겸한 주택가를 형성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3년 중국 상해시와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해 상해문을 건립하는 등 상해 거리를 조성했다. 고기만둣집인 신발원이 유명하다. 차이나타운 일부 구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어선 텍사스 거리가 있다. 두 곳이 한길로 이어져 있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동구 중앙대로 196번길 8.
밀면과 돼지국밥
부산에 여행 와서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 부산역 근처에 있는 초량밀면과 본전돼지국밥이 소문난 식당이다. 밀면은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원조 물자로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을 대체할 음식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돼지국밥도 피란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이용해 국을 끓인 것이 시초라 한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싼 재료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만든 피란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량밀면 동구 중앙대로 225, 본전돼지국밥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3-8.
돼지갈비와 돼지불백거리
초량은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직후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초량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초량 육거리 부산고등학교 앞에 돼지불고기백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정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매콤한 돼지불고기가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싼값에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초량돼지갈비골목 은하갈비 동구 초량중로 86, 초량불백거리 원조불백 동구 초량로 36.
초량1941
초량1941은 초량동 산복도로 위에 자리한 우유 전문 카페다. 1941년 지어진 일본 적산가옥을 개조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눈길을 끈다. 커피와 말차우유, 홍차우유, 커피바닐라우유, 동백우유 등 다양한 병우유를 판다. 고소하고 진한 우유와 쫀쫀한 생크림 속에 과일을 콕콕 박아 만든 과일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동구 망양로.
여행 정보
➊ 찾아가는 길 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에서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또는 ‘이바구길모노레일’ 방면으로 이동
➋ 이바구자전거 시니어 도슨트(문화재 해설사)가 운전하는 전동 자전거에 타고 초량이바구길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도슨트가 이바구길의 명소 소개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산역 분수대 옆에서 출발/ 10시, 11시, 12시, 13시, 14시, 15시 출발. 예약 070-8224-0122/요금 어른 1만 원. 초등학생 7000원(미취학 아동 무료) 우천 시 운행하지 않음
➌ 이바구버스투어 가이드와 동행하는 이바구버스 투어 상품도 있다. 요금 어른 1만6000원, 초등학생 9000원
드디어 도착한 봄, 봄바람 속 향기와 함께 매력적인 중년의 당신을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준비한 선물!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에 시니어 세대공감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애독자 500분을 선착순 무료 초청합니다. 다채로운 공연과 알찬 건강 강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성황리에 개최한 데 힘입어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는 봄꽃이 만개하는 4월 23일 월요일, 오후 2시에 열립니다. 장소는 7호선과 3호선 고속터미널역 바로 앞에 위치한 쉐라톤 서울 팔레스 강남호텔입니다.
강연의 첫 주자로 대한민국 대표 철학자이자 올해 99세를 맞이한 김형석 교수님이 강단에 서십니다. ‘백세시대 건강하다는 것의 의미’라는 주제로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그야말로 한 세기에 걸친 역사를 체험하신 분입니다. 현재까지도 저서를 출간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열정적인 강연자이십니다. 아흔아홉 현역 철학자의 건강론과 만나실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헬스콘서트의 메인 무대는 대한민국 명의 세 분이 책임지십니다. 가볍게 여겨선 안 되는 여성 3대 질환과 호르몬 관련 건강 강좌를 펼칩니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경수 교수와 여의도성모병원 나혜란 교수, 항노화비만센터 안지현 원장이 각각 ‘10년을 젊게 사는 법’과 ‘중년 여성의 우울증’, 그리고 ‘중년 여성의 비만’ 등에 대해 명쾌하고 담백한 강의를 들려주실 계획입니다.
멋진 공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의 대표 아이콘인 가수 양수경과 임수정이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노래로 시니어의 봄날을 응원합니다.
또한 봄나들이 떠나듯 화려한 드레스 코드의 뉴시니어라이프 소속 모델 30여 명이 품격 있는 런웨이 무대를 펼칩니다.
국악인 권태경의 우리 소리와 가락도 만나보십시오.
당뇨병 예방 활동을 펴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뇨인 공익단체 한국당뇨협회가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를 후원해줍니다. 오벨리스크 투어, 올인원바이오, 겔라비트 등 기업에서 푸짐한 경품을 증정해줍니다. 또한 전 출연진이 재능기부 차원에서 노(no) 개런티로 참여합니다. 시니어에게 보건·문화예술의 기회를 제공하는 브라보 헬스콘서트는 새로운 기부 모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봄날이면 꽃잎들이 우리들을 축복하듯이 내려앉습니다.
당싯당싯 꽃잎이 춤춥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준비한 행복한 공간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에 꽃보다 더 예쁘게 단장하고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국민 드라마 의 바르디바른 둘째 아들 용식,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무대에서 빛나는 베테랑 연극인, 그리고 막말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어느새 올해 67세를 맞이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렇듯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매스컴의 요란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연극인으로 돌아간 그는 OBS의 대담 프로그램 MC를 맡아 3년째 드라이빙하고 있다. 광대로서, 그리고 뼛속까지 순간예술인임을 자각한 유인촌과의 만남 뒤로 생각보다 진중한 얘기가 있었다.
유인촌은 자신이 맡은 OBS 의 방향성이 최근의 방송 트렌드와는 다르게 진중한 점이 좋다고 한다. 뭐든지 예능화되는 요즘 TV 프로그램들과 비교하면 그가 과거에 진행자로서 인기를 얻었던 에 가까운 느낌이다.
“요즘 방송은 장점보다는 단점을 드러내고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만은 정말 좋은 점, 장점, 들어서 감동할 수 있는 점을 중심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물론 그렇다 보니 방송이 원하는 자극은 없어요. 그러나 보고 나면 따뜻해져요. 다행히 OBS가 그걸 지켜주고 있습니다. 매주 다른 분을 만나기에 그분들에게 보고 배우는 게 많아요.
1년에 50여 명을 만나니 지금까지 150여 명을 만난 셈이죠.”
그는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지만 특히 이어령 박사,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을 꼽았다.
“이어령 선생은 첫 방송에 모셨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죠.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은 과거에 김영삼 정부 시절에 교육부 장관을 하셨던 분인데 인생 스토리가 너무 놀라웠어요. 한국전쟁 전에 걸어서 월남한 뒤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시다가 검정고시로 서울대 철학과를 입학한 분이죠.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은 김안과를 만드신 분인데, 지금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까지 연구할 게 생겼다
유인촌을 의 영원한 둘째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어느새 67세라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제가 공직에서 나와 다시 연극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지금이 전성기다.”
유인촌에게 전성기라는 개념은 철저히 연극인 유인촌으로서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연극에서의 시간은 보통 삶의 시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영상은 젊은 사람들이 잘할 수 있지만 무대는 달라요. 희곡 작품 자체가 일상이 아니라 어렵거든요. 그런 것들이 소화되고 공감대를 가질 수 있으려면 남자는 40이 넘어야 해요. 그 전에는 아기 같아요. 사실 40대까지는 대학생 역할을 했었어요. 성인 남자의 역할은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어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 전성기’라고 얘기한 거죠.”
그것이 4년 전 얘기. 지금 유인촌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개인으로서 하려 했던 일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동안 했던 걸 모두 지우고 연기자로서 새로운 뭔가를 다시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기 외의 다른 사업이라든지 기관장이라든지 말고요. 순수하게 내가 배우로 뭘 한다고 하면 그동안 쭉 쌓아왔던 걸로는 다 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배우 훈련입니다. 발성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연극인 유인촌이 발성부터 다시 배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겉으로만 보였던 거라면 이제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우리만의 전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양복을 입고 있어도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전통의 멋이나 깊이를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제부터 그런 연구를 시작하고 정리해 죽을 때까지 할 계획입니다. 수련하는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는 기회 주고파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그는 올해부터 의미와 가치에 중점을 둔 계획을 여러 가지 세우고 있다.
“사실 극장도 내가 퇴직하고 나와서 대관료를 만원 받으며 운영했었어요. 젊은 친구들 하라고. 그걸 3년을 했네요. 올해는 청소년, 특히 소년원과 쉼터에 있는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는 기회를 주기 위해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요. 여름방학 기간에 4박
5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라이딩 투어를 준비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그는 소문난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와 자전거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진 걸까?
“오래전부터 탔죠. 그런데 옛날에는 그냥 설렁설렁 타다가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건 한 15년쯤? 늘 탔지만 취미 내지는 생활처럼 된 건 그 정도 됐죠. 저는 배우를 했잖아요. 연기를 하기 위해 모든 기능적인 걸 다 배워야 했어요. 수영, 자전거, 바이크, 펜싱, 검도,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다 연기할 때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러다 보니 적당히 한 게 아니라 업계에서 알아볼 정도로 했죠. 승마도 장애물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다는 못하고 걷기, 자전거, 수영, 스키, 스노보드 정도만 하고 있죠.”
그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단다. 취미도 운동도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특히 걷기는 그가 여전히 좋아하면서 계속할 수 있는 취미이자 운동이다. 670km를 걸어서 종단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아직도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장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보람을 일깨운 마지막 햄릿
연극인으로서의 성공, 정치인으로서의 논란. ‘개인적으로 할 건 다했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인촌의 삶의 그래프는 급격하다. 그가 ‘내가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였을까?
“작년에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나는 햄릿을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60대 중반 넘어선 사람에게 왕자 역할 하라고 하면 욕먹는다고. 그런데 이해랑연극상 받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없었어요. 윤석화가 전체에서 가장 막내였고 내가 그다음이었으니. 그래서 결국 내가 햄릿 역할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책임감이 느껴졌죠. 다행히 유종의 미를 거뒀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저의 햄릿 역할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내 연기 인생의 전반부가 으로 정리가 됐어요. 그러면서 연기하고 연극하길 참 잘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정의했다. 물질적 계산보다는 명분과 충분한 목적과 필요성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가 세운 극장도 처음에는 한 달에 2500만원씩 빠져나갔는데 그때마다 다른 곳에서 일한 돈으로 메꾸면서 운영했다고 한다. 꼭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저질렀다는 그의 말에서 평소의 신념과 의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일에 더 집중하려고 해요. 주변에 여러 가지가 연관이 되어 있는데 정리하고 있어요. 제게 섭섭한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겠지만 좀 좁히려고요. 이제 와 일을 벌이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연극도 1년이나 2년씩 구상하고 준비해서 하려고 해요. 작년에는 의도치 않게 연극 일이 많았지만, 올해는 쉬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책을 써볼까 합니다.”
나이는 장애가 아니다
“젊다는 것은 젊어서 좋은 거예요. 그것 외에는 크게 장점이 없어요. 그러니까 늙는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에요.”
그는 ‘어차피 늙는 건데 (인생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그가 주연과 연출을 맡았던 연극 중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를 원작으로 한 라는 작품이 있는데, 늙어감에 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유난히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했다.
“제가 를 1997년에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했는데 지금까지 매번 적자였어요. 그러나 작품의 의미나 형식이 너무 좋아서 적자가 나는데도 계속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작품의 대사 중에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 중후하고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라는 말이 나와요. 그 질문을 관객에게 계속하는 거예요.”
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삶을 관조하는 늙은 얼룩말을 맡았던 연기자 유인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간이다.
는 병든 말 ‘홀스또메르’를 통해 인간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화자인 얼룩말은 다양한 역경을 겪은 늙은 말이다. 이 얼룩말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되는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등은 인간사 희로애락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술의 보람과 감동을 알기에 놓을 수 없다
“‘인간은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밟아보지도 않아. 자기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욕해. 내 여자라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와 살아.’ 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어요. 관객 중에 홀스또메르가 말하는 이런 사람이 꼭 있어요. 그 사람은 나와 눈을 못 마주쳐요. 그래서 흥행은 안 되죠(웃음). 하지만 나이 들어 이 연극을 보신 분들은 공연이 끝나도 일어나지를 못해요.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울기도 합니다. 저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근두근해요.”
한번은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고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친구 때문에 를 보게 됐는데 이 연극을 본 후 죽으면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거지. ‘내가 꼭 성공하겠다, 그리고 당신을 후원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어요. 그걸 보면서 예술로서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 편지 하나 때문에 연극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거니까요.”
궁금했다. 유인촌은 어떤 이유로, 어떤 힘으로 연극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이렇게 끌고 올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이 다소 풀리는 순간이었다.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가 같은 작품을 했는데 어떻게 늙어갈지를 왜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렇다. 지금의 유인촌은 그 고민의 결과다. 예술은 사람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고 그 화두를 접한 사람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운동을 하기 싫지만 취미를 갖고 싶으면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게 좋아요. 일본의 단카이 세대들은 동호회가 많이 활성화돼 있어요. 그래서 박물관의 날, 미술관의 날 등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예술을 접합니다. 돈을 모아서 강연회를 열기도 해요. 아주 지적인 취미생활인 거죠. 우리도 할 게 많아요.”
기자가 늘 놓치지 않고 묻는 마지막 질문,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저는 기억되지 않는 게 좋다고. 가족에게도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뿌리라고 말해뒀어요. 광대 팔자라는 게 그런 거예요. 남기지 않는 게 좋다. 연극은 순간예술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거죠. 저는 저를 영상으로 남기는 게 어색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안 했어요. 필름은 50년, 70년 돼도 남는 것이라 부담스럽거든요.”
방송에 나오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몰라서 지하철을 타도 아무 불편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살짝 웃었다.
“사람마다 저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겠죠. 누군가에게는 방송인으로, 누군가에게는 배우로. 그냥 그렇게 각자의 나름대로 가벼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좋겠어요.”
유인촌과 ‘홀스또메르’가 오버랩되면서 옳다 그르다 선을 긋기 전에 인생역정 겪고 마침내 거울 앞에 선 그에게 다시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편협한 생각으로 나눴던 대화, 그끝에 알게 된 건 그가 영원한 연극인이라는 거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패키지 여행’에서 ‘자유 여행’으로 변화해 왔다면 앞으로는 자유 여행에서 ‘가치 여행’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새로운 트렌드를 쫓는 여행가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링켄리브(Link&Leave)의 조은철 대표는 여행이 보편화된 문화로 자리 잡은 지금, 여행 트렌드가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ISG PARIS 그랑제꼴에서 경영을 전공하면서 비즈니스의 꿈을 키운 그는 10여 년 동안의 파리 생활, 뉴욕 교환 학생, 유럽과 중국 주재원을 하며 경험한 4개국 5개 도시에서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행전문가로 거듭나면서 바뀌는 시대를 체험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해외여행의 트렌드를 짚어본다.
대한민국 여가와 문화의 핵심에 ‘여행’ 키워드가 자리 잡은 지는 오래됐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세계 각국에서의 여행 경험이 담긴 블로그들이 넘쳐난다. TV를 켜면 여행을 테마로 삼은 수많은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점가에서 여행을 다루는 콘텐츠는 기본 이상의 세일즈를 보장해주는 아이템으로 공인받고 있다. 또한 몇 년 전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있었던 항공업계에는 수많은 저가 항공사들이 나타나 폭발적인 성장세를 바탕으로 저마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여행이 일상이 되다
이렇듯 여행 트렌드의 수요는 약해지지 않고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가 양적 팽창이었다면 이제는 질적 팽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미국과 일본, 조금 멀리 가면 영국이나 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 정도가 주로 찾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중동의 두바이, 낯설기만 했던 동유럽, 심지어 공산국가였던 중국까지도 친숙한 여행지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의 시야와 경험의 기회가 짧은 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넓어진 것이다.
변화는 여행의 형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흔히 여행 경험은 여행사에서 일정한 프로그램으로 짜서 진행하는 소위 패키지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미 해외여행에 ‘익숙해진’ 신중년들에게는 이러한 기존의 패키지 여행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경험을 원하고 있다.
테마와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만드는 ‘여행 디자이너’
“중년들은 여행에 국한되지 않고 원하는 바가 다양합니다. 힐링, 체험, 문화, 예술, 미식 등 일상에서 충족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여행을 통해 좀 더 원하는 욕구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는 여행에서 니즈를 자각할 정도가 되었다는 점은 그만큼 주체적으로 다양한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조은철 링켄리브 대표는 개인에 따라, 여행 목적에 따라 그들의 니즈는 천차만별이 됐다고 말한다. 사실 링켄리브 자체가 바로 그러한 다양화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여행 플랫폼이다. 링켄리브는 잇다(link)와 떠나다(leave)를 합쳐서 만든 이름으로,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테마와 이야기를 원하는 여행자들을 위한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링켄리브에는 테마에 따른 여행의 스토리와 스케줄을 기획하는 ‘여행 디자이너’가 있다.
“‘여행 디자이너’는 전에 없던 직업입니다. 창작이죠.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여행 기획에 녹이고 싶은 우리의 니즈와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를 점점 자각해서 뚜렷해지는 고객의 니즈를 보았습니다. 이건 제가 4년 전 프랑스 컨설팅 회사에서 하이엔드를 겨냥한 와이너리 투어를 기획하면서부터, 그리고 리서치, 금융과 보험회사에서 BtoBtoC 영업을 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신은 트렌드를 계속 읽으면서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소수를 위한 특별한 여행을 만들다
조은철 대표가 4년 전에 근무했던 프랑스 컨설팅 회사에서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샤또를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서 샤또란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이너리가 아닌 18세기~19세기 귀족들이 별장 용도로 지었던 곳이다. 그는 샤또를 호텔 시설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에서 아키텐 지역의 와인과 힐링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고, 기획 후 협회, 동호회, 금융회사에 판매까지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최초의 여행 디자이너로서 링켄리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링켄리브 여행 플랫폼은 각 분야의 전문가인 여행 디자이너가 콘셉트가 있는 여행을 기획하고 이 콘셉트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각 여행 디자이너는 성별, 연령, 전문 분야, 경험, 성향 등에 따라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기획된 여행은 디자이너가 여행에 있어 가치를 두는 부문에 중점을 두기에, 상품의 타깃 어디언스는 여행 디자이너와 연령, 성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일반 여행 기획보다 매니아적이고 소수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여행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피렌체를 여행할 때, 한 디자이너는 ‘피티워모’라는 패션 박람회와 멋쟁이 남성들의 사진에 관심을 갖고 그를 중심으로 기획을 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디자이너는 ‘메디치 가문의 자취’를 따라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포인트를 두고 여행의 세계를 펼치는 겁니다. 봄과 가을에는 나오시마 건축 여행과 도자기 기행, 여름에는 라벤더 로드와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시간 여행, 그 밖에 시기마다 가는 패션 여행과 캠퍼밴 여행, 디톡스 리트릿 등 모든 여행이 특색과 매력 포인트가 다릅니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듯, 매력을 느끼는 요인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링켄리브와 연결되어 있는 여행 디자이너는 27명. 음악가, 와인플래너, 셰프, 건축가, 작가, PD, 배우, 기자, CEO 등등 다채로운 경력의 여행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여행지들은 도쿄, 발리, 터키에서부터 포르투갈, 아이슬란드에까지 이른다. 그 다양한 직업군을 봤을 때, ‘맞춤형의 특별한 여행’이라는 말에 수긍이 갈 수밖에 없었다.
시니어의 여행은 행복 그 자체가 되어야
시니어들에게 여행은 그동안 힘들었던 자신의 삶에 주는 선물이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조직과 지인을 위해 버텨야 했던 삶에서 그나마 여유가 생긴 시니어는 여행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혹독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길 원한다. 링켄리브가 시니어 여행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시니어들의 욕구가 여행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50대 이후 시니어들에게 여행은 하나의 큰 행복 요소입니다. 가격적인 면보다는 좀 더 잘 쉬고, 잘 먹고 케어받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여행의 중심이 가격에서 가치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가족여행, 친구들과의 여행에 있어서 전문가의 컨설팅 도움이 자신들이 원하는 여행에 더 잘 부합하고 고생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은철 대표가 분석한 시니어들이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니어들이 선호하는 네 가지 여행인 혼자 가는 여행/부부 여행/중년 여성들끼리의 여행/손주와 가는 여행으로 분류하여 각각의 재미를 물어봤다.
“혼자 가는 여행은 여행 속에서 현지인과 한국인을 불문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설렘이 있습니다. 혼자이기에 여정도 내 느낌에 따라 변화가 가능하고 한곳에 머물며 현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도 있죠.”
부부 여행은 함께했던 일상과는 다른 곳에서 서로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여행의 콘셉트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겠지만, 성격의 차이가 강할수록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멋진 풍광이 바라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함께 대화의 꽃을 피운다면 그 동안 잊고 지낸 사랑의 싹이 더욱 피워진다는 것.
“중년 여성들끼리의 여행은 정말 재밌습니다. 그동안 자식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온 날들을 여행으로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위로도 받고 순수했던 젊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싱그러운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주와 함께하는 여행은 정말 특별합니다. 손주와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하며 애정도 싹 틔우고 시간의 제약으로 못했던 인생의 소중한 조언을 ‘새끼 강아지’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삶에서 손주와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한국인 여행자는 변하고 있다
조은철 대표는 우리나라의 여행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로 여행자들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를 들었다.
“우리는 외국을 여행할 때, ‘미안합니다’, 또는 ‘실례지만’이란 말을 쓰는 걸 종종 듣습니다. 해외에서는 눈을 마주치고 웃는 모습도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모든 곳이 그렇진 않으나, 특히 유럽에서는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힌 듯합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범죄의 증거로도 채택되는 한국에선 그런 이타심을 갖기란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 당연히, 나와 내 식구 이외의 사람에 대한 배려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선 여행 에티켓이 좋으신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임에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해맑은 웃음으로 테이블 매너와 공공장소에서 포토 매너 또한 좋아졌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의 여행 에티켓이 점점 나아져 감을 느꼈으며 그들이 국내의 에티켓 문화를 새롭게 바꿔놓는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들었다고 한다. 그 말에는 축적되는 경험을 통해 보다 성숙한 여행자가 되어가는 한국인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러한 변화야말로 기존 여행 패러다임의 대안으로서 가치 여행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