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갔어야 했는데, 드레스덴

기사입력 2020-04-13 11:03 기사수정 2020-04-13 13:45

[여행작가와 떠나는 공감투어]

▲Flix bus로 드레스덴 가는 길(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Flix bus로 드레스덴 가는 길(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사람들이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이유들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가스실 문으로 끌려들어 가며 하던 말이 있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놓친 것이 못내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뜬금없이 류시화 님의 글 중에 <구두가 없어도 인도에 갈 수 있다>라는 글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이럴 때 딱 맞는 비유의 글은 아니지만 굳이 끼워 맞춰본다. 또한 포기하거나 미루기의 증세가 느껴질 때면 이 글이 떠올라 조바심을 부채질을 한다.

▲엘베강을 바라보는 저편에 아우구스투스 다리가 웅장하다(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엘베강을 바라보는 저편에 아우구스투스 다리가 웅장하다(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10여 년 전쯤 프라하 여행 중에 뾰족 지붕 아래 전망 좋은 꼭대기 층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다. 아침이면 함께 투숙한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면서 그날의 계획을 꺼내놓으며 정보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늦은 밤에 하나 둘 귀가하면 필스너 맥주 한 잔씩 마시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여행지에서의 열린 마음들이 거리낌 없는 정보가 되고 공감하는 동지애가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 중학교 교사였던 젊은 여행자가 그 날 인접국인 드레스덴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두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를 보내고 온 이야기였다. 혼자 차분히 느끼며 다닌 그녀의 드레스덴 이야기가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잠깐 우리도 거기 가볼까 갈등을 했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뮌헨으로 넘어갈 일정이 있어서 그곳엘 가질 못했다.

그 후 그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간간히 드레스덴이 생각났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그쪽을 다시 가기가 어디 뭐 쉬운가. 그때가 좋은 기회였는데...

간 김에 그때 하루쯤 시간 만들어 다녀왔으면 좋았을걸.

아무래도 그때 갔어야 했어.

그런 아쉬움의 여파인지 아들이 유럽 여행 중에 들른 드레스덴의 사진을 어느 날 밤 스무 장이 넘게 보내와 자다 말고 일어나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안달을 했나 하는 생각에 언제부턴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 역시 기억하고 있었고 이번 여행에 드레스덴을 집어넣었다. 프라하에서 Flix bus로 드레스덴까지 1시간 55분 걸린다. 물론 국경을 넘으니까 티켓과 함께 여권 검사를 한다. 유럽의 들판을 달리고 숲길을 스치는 풍경은 덤이다.

▲드레스덴 중앙역앞(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드레스덴 중앙역앞(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마치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 결국 왔어야 할 곳에 온 듯한 기분으로 드레스덴 중앙역 앞에서 내렸다. 역 뒤편에서 내린 줄도 모르고 숙소 쪽으로 향하다가 '어? 이 길이 아닌걸?'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현지인 인듯한 부부가 우리 지도를 들여다보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한참 걸어서 예약된 숙소 앞까지 우릴 데려다 놓고 그들은 후딱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간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다. 그 부부의 등 뒤에 대고 우리말로 '감사합니다아~' 크게 외쳤더니 돌아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미소가 기분좋다. 드레스덴 여행의 예감이 좋다.

▲쯔빙거 궁전의 정원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쯔빙거 궁전의 정원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신기하게도 시작부터 모든 순간들이 거리낌이 없다.

발걸음을 옮기면 마침 그것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앞으로 걸어가는 길에 공기의 저항조차 없이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배가 고파서 골목을 돌아서면 맛있는 음식점이 있을 거란 예감이 적중했다. 다리를 쉬고 싶으면 멋진 풍경이 눈앞에 있는 벤치가 나타났다. 이 무슨 신비한 조화인가. 언제까지 이럴 것인지 모르겠지만 드레스덴의 은혜를 마음껏 믿어본다.

머리와 마음을 텅 비워가지고 온 내게 이 도시의 충만한 햇빛과 에너지와 고고한 문화를 채우는 시간은 피곤하도록 길어져도 좋다. 구시가지의 돌길에 내딛는 내 발걸음 소리가 어느 날 역사가 될 거라는 당치도 않은 상상을 하면서.

어째서 낯설지 않은 걸까.

엘베강을 바라보며 오랜 전통의 미술대학이 세워진 것도, 그 강변의 행위 예술가들도, 긴 세월의 든든함 아우구스투스 다리, 폭격에 허물어진 교회 벽돌 하나하나 시민들에게 번호를 부여해서 보관했다가 재건에 사용하던 그 마음이 담긴 교회도 모두 자연스럽게 조화롭다. 온 도시가 2차 대전의 공습으로 불타고 무너져 내렸어도 그 거뭇한 색감조차도 생소하지 않다.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도시 자체가 가슴으로 다가온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거리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브륄의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거리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브륄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엘베강은 마치 내가 본 듯한 그 옛날의 강처럼 흐른다. 괴테가 즐겨 산책하며 유럽의 발코니라 일컬었음을 나도 인정하기로 한다. 거길 걷다 보면 그 시가지를 오가는 사람들이 풍경이 된다.

독일의 피렌체라 불릴 만큼 각종 문화유산에서 고풍스러움의 멋이 도시를 채우고 있었다. 왕궁이나 대성당, 오페라하우스나 마차가 다니는 골목길에 스며들어본다는 것은 심장이 두근대는 걸 느끼는 시간이다. 어딜 돌아보아도 감각적인 바로크 건축물들의 위용이 도시의 멋과 고고함에 흠뻑 빠뜨린다.

▲BTS의 음악이 흐르던 작센왕의 기마상 주변광장(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BTS의 음악이 흐르던 작센왕의 기마상 주변광장(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요하네스 왕 청동 기마상 앞 광장에서 BTS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던 젊은 청춘들을 보며 어쩐지 가슴 뭉클. 오옷... 이쁘신 우리의 bts~. 길 가다가 갈증 나면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며 이 도시를 넓은 눈으로 둘러본다. 거리의 아티스트가 벌이는 전위 예술도 인상적이었고, 가던 길 멈춰 서서 들었던 숄로스 광장의 털보 악사의 연주도 기억난다. 특히 밤 산책길이 이쁘고 편안했던 시간.

▲유유자적 흐르는 엘베강(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유유자적 흐르는 엘베강(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독일 라이프치히 남동쪽으로 마이센과 피르나 사이에 있는 엘베 강 유역에 있는 작센 주의 주도 드레스덴. 게르만의 식민에 의하여 1200년 이전에 성(城)이 구축되고 1206년에 도시가 되었다.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했다. 독일의 도시중 외곽으로 멀리 떨어진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슬라브어(語)로 숲 속의 사람이란 뜻의 드레스덴(Dresden), '평야의 삼림 거주민'을 뜻하기도 하는데 드레즈단이라는 슬라브족 촌락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도시의 고풍스러움이 묻어있는 거리(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오래된 도시의 고풍스러움이 묻어있는 거리(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옛 동독의 古都,

도시가 오가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 크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쁜 뮌츠 골목도, 강변을 바라보는 나란한 벤치들도, 노란색 트램도, 소소하게 품격을 느끼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다닐 수만 있어도 좋은 곳, 이 도시가 폼나니까 그 속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아름답다. 그들의 눈빛은 따뜻하다. 그냥 다녀도 가슴 벅찬데 게다가 마냥 관대해지기까지 한다. 드레스덴은 더없이 은혜로웠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잊을만하면 떠들어댈 만했다. 그리고 오고야 말았다.

▲채소와 베이컨이 듬뿍 얹힌 뢰스티(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채소와 베이컨이 듬뿍 얹힌 뢰스티(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흑맥주 한 잔이 주는 여유(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흑맥주 한 잔이 주는 여유(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드레스덴의 맛

독일에는 감자요리가 여러 가지 있다. 그 중에 노천카페에서 먹었던 뢰스티는 우리의 감자채전과 흡사하다. 그 위에 소스와 잘게 썬 베이컨이나 샐러리 등을 뿌리고 채소를 듬뿍 얹어서 먹기 때문에 식후에도 가벼운 느낌이 좋다.

특히 구운 토마토와 콩 요리를 많이 먹었는데 잘 익은 토마토 맛의 풍부함은 최고다. 그리고 드레스덴에 왔으니 흑맥주 한잔쯤 빠뜨릴 수 없다.

▲토마토 구이와 콩(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토마토 구이와 콩(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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