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8월 6일 귀여운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가의 친할머니는 아가를 위해 한땀한땀 정성들여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아가의 아버지는 감격스러웠다. 내 분신이 생겼다는 신기함이 그런 기분을 들게 만들기도 했지만, 몸도 성치 않은 어머니가 직접 만든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졌다. 사내아이의 아버지 정종현(63)씨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손자의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고 계신 어머니께 죄송스럽고 감사했어요. 당시에는 시어머니에게 선물을 받는 일이 흔치 않았는데, 아내가 배냇저고리를 받고 감동 받은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 저도 ‘이 배냇저고리를 대대로 물려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정씨는 배냇저고리를 둘째 아들 왕순(35)씨에게도 물려 입혔다. 정씨는 이 배냇저고리를 가족 행운의 상징이자 부적으로 여긴다. “배냇저고리를 형제가 물려 입으면 우애가 좋다고 알려졌어요. 또 이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부모한테 효도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죠. 대학 수능시험을 볼 때 품에 안으면 좋은 대학에 합격한다는 말도 있어 지금까지 보관해왔습니다”라는 정씨에 말에는 뿌듯함이 묻어있었다.
1980년에 왕순 씨가 태어나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다. 배냇저고리를 입던 그 갓난아이는 그 사이 동네를 주름잡는 골목대장을 거쳐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왕순 씨의 첫째아들 효준(7)군은 배냇저고리를 입는 세 번째 주인공이다. 왕순 씨는 효준 군이 태어나자 신기함에 안고 또 안아 봤다.
“효준이가 태어났을 때 정말 감격스러워서 만져보고 또 만져봤어요. 내 새끼가 태어났다는 신비스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내가 임신 중 일 때 뱃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만든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배냇저고리와 아내가 만든 배냇저고리를 번갈아 입혔습니다.”
왕순 씨의 둘째 아들 시우(5)군에게도 여지없이 증조할머니 정신의 소산이 입혀졌다. 부적 같은 배냇저고리의 정종현씨 3대에 힘이 닿은 덕분인지 이들은 남다른 가족애를 자랑하고 있다. 정씨가 매일 손자들을 유치원과 어린이 집에 출ㆍ퇴원 시켜줄 정도다.
“손자는 나의 분신이에요.”
정씨는 손자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얘기했다. 그는 손자들이 올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한다.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인 제사나 생일은 빼놓지 않고 손자들을 동행시킨다고 했다.
“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기초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효준이와 시우가 그런 사람으로 커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할아버지로서 전통 방식과 구학(舊學)을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배냇저고리는 정씨 3대의 행복의 상징이다. 정씨는 대대손손 물려 입히기 위해 배냇저고리를 주기적으로 빨래해서 보관했다고 했다. “언젠가 손자들도 저 배냇저고리를 당당히 자식들에게 물려 줄 날이 오겠죠”. 정씨는 지금의 이 행복이 후대까지 이어지길 소망하고 있다.
최근 부모나 교육학자 사이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견해가 나오며 인성과 사회성 교육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모교육전문가인 임영주 신구대학교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는 부모가 변해야 자녀 교육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정 정보화 1위 국가인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과 저출산율 1위 국가다. 청소년 자살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는 정보화시대가 불러온 원자화·다원화라는 암(暗)의 모습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서로 간의 직접적 대면이 아닌 가상현실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생활은 개인 중심으로 옮겨가고 이러한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자라온 아이들의 사회성은 결여될 수밖에 없다.
매년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 역시 소통과 공감 능력 결여라는 사회성 부족이 주원인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아이들의 사회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달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친구가 많거나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사회성이 좋다고 여기기 쉽다는 뜻이다.
임영주 교수는 “진정한 사회성은 배려와 공감의 능력이다. 이는 일방적 가르침이 아닌 부모와 환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 교수에 따르면 많은 부모는 사회성 교육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것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시작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임 교수는 현장교육의 경험을 살려 사회성 교육을 시작했다.
그의 교육은 자녀가 아닌 부모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의 사회성을 결정짓는 것이 부모의 말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부모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자녀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면 부모가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줘도 자녀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녀의 자신감과 무례함을 구별하는 부모가 돼야 한다. 자녀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것이 자녀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는 타인을 배려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아이가 어려서부터 부모를 공경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부모교육연구소 대표이자 EBS 자문위원이다. 저서로 ‘큰소리 내지 않고 우아하게 아들 키우기’, ‘아이의 사회성 부모의 말이 결정한다’ 등이 있으며 현재 KBS 제1라디오 ‘공부가 재미있다’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