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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루바위에서 다시 태어나다
-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필자가 자란 곳은 경남 진해다. 요즘은 행정 구역이 변경되어 과거 진해시에서 마산시, 창원시와 함께 창원시로 합병되어 진해구가 되었다. 군복무를 해군이나 해병대에서 하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진해는 군항도시이자 아주 오래된 계획도시, 그리고 벚꽃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이른 봄만 되면 필자는 진해의 시루바위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표고 653m, 봉우리 높이 10m, 둘레 50m의 크기로 우뚝 솟은 시루바위는 시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나 그 바위가 있는 웅산의 이름을 따라 웅산암(곰메바위)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루봉은 옆의 천자봉과 더불어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천자봉은 중국의 천자 진나라 황제가 장생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가 잠시 쉬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근대에는 명성황후가 세자를 책봉하고 세자의 무병장수를 빌기 위해 ‘웅산신당’을 두어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 빌었는데 이곳도 그중 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외지인들은 가끔 시루봉(바위)과 천자봉을 혼동해 부르기도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무렵 어느 봄날이었다. 혼자 산에 올라 시루바위를 보고는 10m 위가 한없이 궁금해서 인적이 드문 곳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니 길도 험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절벽뿐이어서 바위를 잡고 조심조심 기울기가 약 110도 정도 되는 비탈진 암반을 올라갔다. 젊은 혈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막상 올라가 보니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맑은 날에는 일본의 대마도가 보인다 할 정도로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이어서 혹시 대마도가 보이나 둘러봤지만 잘 보이지 않았었다. 잠시 진해만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가 내려가려고 하니 올라올 때와는 길의 상황이 전혀 달랐다.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인적이 드물어 소리쳐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고 요즘처럼 핸드폰 같은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순간 “아! 여기서 꼼짝없이 굶어 죽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왕 굶어 죽게 되었으니 가만히 앉아 죽는 것보다 올라오던 길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더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자 하면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경사진 곳이라 위에서 보니 밑의 바위는 안 보이고 하늘 위에 그냥 솟아 있는 것 같은 느낌밖에 들지 않아 현기증이 일었다. 포기하려다가 다시 탈출을 위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솟은 바위를 양손으로 잡고 발을 내리니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잘못해서 양손에 힘이 빠지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경사진 곳을 딛고 올라왔으니 철봉하듯 몸을 움직이면 발이 바위 어디엔가 닿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더니 예상대로 발이 바위 끝에 닿았다. 바위를 오를 때처럼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내려왔다. 그때 필자는 다시 세상에 태어난 느낌이 들었다. 진해 시루바위 위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해병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웅산. 해군이나 해병으로 입대하면 최소 한 번쯤은 오르는 산이다. 웅산의 시루바위 그리고 그 옆에 웅장한 모습의 천자봉이 있는 진해는 나를 키워준 자랑스러운 고향이다. 초등학교 교가가 생각난다. “ 높이 솟은 천자봉 병풍을 삼아 굽이치는 푸른 물결 앞에 맑았네. (중략) 문화의 밝은 빛을 갈고 닦아서 누리를 비취어줄 등불이 되자.”
- 2018-05-0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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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보면 후회할 갤러리展, ‘빔 델보예’부터 ‘마르셀 뒤샹’까지…
- 바야흐로 봄이다. 산으로 들로 봄꽃 나들이도 좋지만, 풍성하게 마련된 전시도 즐길 겸 갤러리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올 한 해 눈여겨봐야 할 5가지 미술전시와 더불어 연간 일정을 함께 정리해봤다. ◇ 빔 델보예 개인전 장소 갤러리현대 일정 2월 27일~4월 8일 신개념주의(neo-conceptual) 예술작품들로 주목받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의 국내 첫 전시다. 돼지 몸에 문신을 새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돼지 문신’ 작가로도 불리는 그는 드로잉, 조각, 사진 등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독특한 소재로 구현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문양의 미학적 요소를 사물에 응용한 작품들과 일반적인 형태와 개념의 맥락을 비트는 작품 30여 점을 보여준다. 고딕 양식으로 레이저 커팅한 스틸, 손으로 조각한 타이어, 살라미 햄으로 구성한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작가만의 유머러스한 작품세계와 전통적 요소가 맞물리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빔 델보예 (Wim Delvoye, 1965~) 박제된 돼지의 몸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그려 넣으며 경악과 흥미로움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로 유명해진 빔 델보예는 스위스 팅겔리 미술관(2017),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무담(2016),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2016), 파리 루브르 박물관(2012), 로댕 박물관(2012),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2009), 리옹 현대 미술관(2003), 파리 퐁피두 센터(200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상해비엔날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독창적인 예술관을 펼치고 있다. ◇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장소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일정 5월 6일까지 한국 아방가르드 작가계의 선두주자이자 1970년대 대표 여성 작가인 정강자의 회고전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지난해 7월 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이번 전시는 그의 유고전이자 최초의 회고전이 됐다. 올해 1월 31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월 25일까지)과 천안(5월 6일까지)에서 동시에 개최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을 기리고 그의 50여 년 화업을 미술사적, 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재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작가의 최근작과 더불어 아카이브 자료를 배치해 자신의 삶을 여성상과 자연물, 기하학적 형태에 투영한 작품들을 아울러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강자 (鄭江子, 1942~2017)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후 ‘키스미’(1967)처럼 파격적인 조형작업을 비롯해 ‘투명풍선과 누드’·‘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1970)과 같은 퍼포먼스에도 참여했다. 1960~70년대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도전이 응집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의 일원으로 한국 미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여러 경계와 틀로부터 해방되고자 했으나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작업에 대한 선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 니키 드 생팔 개인전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일정 6월 30일~9월 25일 프랑스 여류 작가 니키 드 생팔의 작품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특별 전시다. 프랑스 파리 스트라빈스키 분수의 공공미술로 잘 알려진 그의 대담성과 순수함을 드러내는 입체조형물 및 회화, 판화 등으로 구성된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그의 후기 입체작품들을 폭넓게 전시할 계획이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여성지 ‘보그’와 ‘엘르’, 사진 주간지 ‘라이프’의 사진 모델로도 등장했을 만큼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슈팅 페인팅’(1961) 등 그의 작품은 페미니즘 성향이 두드러지며 여성을 주제로 한 조형물이 많은 편이다. 그가 만들어낸 뚱뚱한 여성 조각인 ‘니나’ 시리즈를 비롯해 여성의 몸을 과장해 표현한 작품에는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와 고발 의식이 담겨 있다. ◇ 윤석남 개인전 장소 학고재갤러리 일정 9월 예정 2013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I’m Not a Pine Tree)’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윤석남의 개인전이다. 홍콩 아트바젤(세계적인 미술품 아트페어) VIP 책자 전면에 소개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큐레이터들의 극찬을 받은 설치미술 ‘핑크룸’(1998)이 갤러리 한 층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화 기법을 통해 제작한 그의 신작 발표가 예고돼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남 (尹錫男, 1939~)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세’(1919)의 극작가 겸 영화감독인 윤백남의 셋째 딸로 태어나 해방 이전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1954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6남매를 홀로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는 줄곧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40대에 늦깎이 화가로 데뷔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1995), ‘부엌’(1996), ‘허난설헌’(2005) 등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 마르셀 뒤샹 전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정 2018년 12월~2019년 4월 예정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마르셀 뒤샹의 전시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주요 작품 및 아카이브는 물론, 마르셀 뒤샹을 소재로 한 사진, 드로잉,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의 관련 작품까지 총 110여 점을 소개한다. 특히 변기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뒤샹의 대표작 ‘샘’(1917)을 이번 국내 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순회전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프랑스 화가 자크 비용(Jacques Villon, 1875~1963)과 조각가 레이몽 뒤샹 비용(Raymond Duchamp-Villon, 1876~1918)의 동생으로 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입체파의 균열된 형태, 사진과 영화의 스톱 모션 등 자연의 시공간에 관한 지배적 관념을 뒤엎는 아방가르드 회화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2’(1912)는 당시 예술평론가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을 만큼 독특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여성으로 분장하고 찍은 사진 ‘로즈 세라비’(1921),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1923) 등 파격적인 예술세계를 보였으며, 다다이즘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 2018 상반기 전시 일정 3월 '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월 8일~7월 1일 '예술가 (없는) 초상'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3월 20일~5월 20일 김용익 개인전 ‘Endless Drawing’ 국제갤러리 3월 20일~4월 22일 '한국서예사특별전: 명재 윤증'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월 29일~5월 20일 4월 이반 나바로 개인전 'THE MOON IN THE WATER’ 갤러리현대 4월 19일~5월 27일 5월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5월 3일~10월 14일 '강요배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6월 육근병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가제) 아트선재센터 6월 15일~8월 5일 ◇ 2018 하반기 전시 일정 7월 '박이소: 기록과 기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7~12월 예정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월 5일~8월 26일 '이창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7월 예정 8월 '프란시스 알리스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8월 31일~11월 4일 9월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9월 6일~11월 18일 11월 아키 사사모토 ‘항복점(Yield Point)’ 아트선재센터 11월 23일~2019년 1월 13일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 궁중회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1월~2019년 2월 예정 12월 '한국현대미술대가: 한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2월 4일~2019년 3월 10일
- 2018-03-0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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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나들이 어디로 갈까
-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요즘. ‘방콕’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분들 계신가? 부부가 혹은 가족끼리 또는 동성 친구끼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곳, 게다가 ‘먹방’까지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볼까 한다. 경춘선 기차여행[김유정역]_실레마을 이야기길 따라 점순이를 만나다 7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만남의 장, 상봉역. 춘천 가는 기차는 대성리, 가평을 지나 출발한 지 72분 만에 멈춘다. 내린 곳은 근대문학 ‘봄봄’, ‘동백꽃’의 산실, 실레마을이 있는 김유정역. 역사 맞은편으론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산’, 금병산이 포근하게 안아준다. 역사를 빠져나와 약 5분 정도 걸었을까. 버선발로 마중 나온 ‘점순이’를 만난다. “그새 좀 컸는가? 반갑단 말보다 다짜고짜 키부터 재 보는데 잘 봐야 내 겨드랑 밑에서 넘을락 말락. 또 고갤 숙일밖엔 도리가 없다. 딸이 더 자라야 성례를 시켜줄 수 있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일만 시키는 장인,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면서 나를 충동질해대는 점순이, 반발하다가도 끝내 이용만 당하는 나는 정말 어리석은 머슴이던가. 빙장님, 올가을엔 꼭 성례를 시켜줘요.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장인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뒷골 콩밭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로 안 그래도 고즈넉한 잣나무, 소나무 숲 사이 길은 더없이 폭신폭신. 그 순간이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녀들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결코 머물 수 없는 눈웃음의 그녀들이.” 아주 치명적이었던 들병이들 ‘눈웃음 길’을 스치듯 빠져나오면서 그 들병이 꾐에 빠졌던 근식이가 걷던 그 ‘한숨사연 길’을 돌아본다. 오죽하면 자기 집 솥을 훔쳤을까? 세월의 무게만큼 겹겹이 쌓인 잣나무 가지들을 밟고선 심호흡 여러 번에 팔다리도 죽죽 펼쳐본다.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뿜어낸다지 아마. 이윽고 마주한 두 갈림길. 어느 쪽을 택할 텐가? 동백꽃(생강나무) 길 따라 정상도 좋겠고 산골나그네 길 따라 터벅터벅 걸어도 좋겠고. 오늘은 기어코 산골나그네가 병든 남편을 끌고 사라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가볼 텐가? 김유정역 실레마을에선 김유정문학촌을 구경하고 난 다음 둘레길인 ‘실레마을 이야기길’을 반드시 한 바퀴 산책해야 한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그곳, 인쇄박물관이 지척에 있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김유정 선생이 귀향해 야학을 일으켰던 곳, 금병의숙(錦屛義塾)에서의 인증샷도 의미 있겠고 기차카페로 개조된 폐김유정역에서 타임킬링도 가성비 있다. 인근엔 레일바이크 장도 있고. 또 '먹방'도 빠질 수 없으리. 춘천 하면 닭갈비 아닌가? 역전에서 ‘점순네’를 찾으시라. 꽃 피고 새 우는 고궁 산책[창덕궁]_덕혜옹주가 남긴 마지막 메모를 찾아서 4월 어느 날. 마침 하늘빛은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바깥 기운도 그리 차갑지 않다. 어제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아내를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하나? 눈치를 살피는데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잔다. 더 어려운 숙제라고?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반겨주는, 다리품 많이 팔지 않아도 되는,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어떨까. 1405년 태종 때 제2의 왕궁으로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한 곳. 마지막 임금 순종 때까지 약 270여 년간 왕조의 정궁 역할을 한 곳. 그나마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시크릿 가든’인 후원이 있어 자연과의 조화미와 전통의 조경미를 만끽한 적 있으신지. 그러나 오늘의 관심사는 따로 있다. 바로 낙선재! 경복궁의 건청궁이 그러하듯 창덕궁 내 단청을 하지 않은 유일한 곳. 여인의 '비운' 같은 게 서려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말년을 보낸 곳(정확히는 낙선재의 우측 끝에 있는 수강재). 두리번두리번 돌아서 드디어 만난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어쩌면 혼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것일까. 그녀의 마지막 편지(메모)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옹주는 1989년 4월 12일, 향년 77세로 이곳 낙선재에서 운명한다. 새들이 우짖고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이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 올봄에 방문하신다면 한 가지 추가할 곳이 생겼다. 작년 말에 재개관한 창경궁 대온실이 바로 그곳. 후원 쪽으로 가면 이웃한 창경궁과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지척이니 함께 둘러보면 ‘엄지 척’ 장담할 수 있다. 세종마을 도보여행_이 골목 저 골목 헤매기 좋아라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부 지역을 말한다. 경복궁 서편에 있다 하여 북촌에 대비해 ‘서촌’으로 소문난 곳이다.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입구를 나와 대로를 따라 걷노라면 이윽고 우리은행 건물이 나타난다. 도보여행은 여기서부터 ‘딱’이다. 좌측 골목길로 접어들면 세종마을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인 ‘이상의 집(터)’이 나온다. 백부의 권유로 건축과에 입학한 시인은 1929년 3월,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화가의 꿈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고. 얼핏 카페 같은 이곳엔 비밀의 문이 있는데 그곳을 통하면 잠시나마 그와 호흡할 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올라선 다음 이내 날개를 펼쳐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훨훨 날아올라보라. 이걸 놓치고선 여길 다녀갔다 말할 수 없으리. 할머님과 며느님께서 푸근한 미소와 여유로 차근차근 귀엣말하시듯 이곳저곳 소상히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는 헌책방’이 다음 코스다. 고인이 된 창업주 할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부부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상호로 정했다는 곳, 대오서점이다. 분수를 아는 즐거움 정도로 해석되는 가훈 이야기, 다락방 사연, 풍금 이야기, 드라마 ‘상어’의 주인공(손예진과 김남길) 뒷담화(둘은 흥행작 ‘해적’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까지 줄줄 풀어놓으셨는데 그동안 세월이 좀 흘렀나보다. 없던 액세서리 진열대도, 사진 촬영금지 팻말도 보이고 그새 입장료(2500원)도 훌쩍 인상됐다. 오늘따라 주인장도 안보이고 대신 시니어 알바께서 맞이해준다. 가수 아이유가 앨범사진을 찍었다는 상업적 내음 물씬 나는 설명엔 노코멘트할밖에. 좀 걷다 보면 공통으로 생각나는 건 뭐? 때맞춰 신기하게 나타난 곳이 ‘통인시장’이다. ‘골라먹는 맛과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잡도리 쉼터 파라솔 아래에서 ‘셀프’로 즐기기도 편하다. 먼저 1인 5000원 하는 도시락을 구입하면 되는데 엽전 열 냥을 제공하니 하나에 500원인 셈. 그 복잡한 골목길에서 기다랗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박노수미술관을 지나서 수성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기린교를 건너는 상상도 분명 힐링이다. 다리품을 팔아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북한산은 물론 북악산 아래 청와대, 경복궁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 편리한 역세권에 세종대왕, 정철을 비롯해 수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살다 간 흔적이 이리도 집약된 곳 또 어디에 있을까? 종로구에 신청하면 해설사와의 동반 투어도 가능하니 봄날엔 놓치지 마시라. 서촌에 바람이 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봄날은 가고 있다.
- 2018-03-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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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건축물 찾아 떠나는 공주 여행
- 우리에게 근대의 흔적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는 일반적으로 개항의 기점이 된 강화도조약(1876년)에서 광복을 통해 주권을 회복한 1945년까지로 본다. 조용했던 나라 조선에 서양문물이 파도처럼 밀려와 변화와 갈등이 들끓었던 시기. 그 시기의 유산들은 한국전쟁과 경제개발을 거치며 사라졌다. 조용히 걸으며 당시의 건물들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에 공주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백제문화의 중심지로만 알려진 공주의 숨겨진 근대 시대 모습은 어떨지 찾아가보았다. 사실 공주에게 근대 시기는 즐거운 추억이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철도 경부선이 공주를 비켜가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조선시대의 공주는 충주, 청주, 홍주와 함께 충청도의 4대 목(牧)이었고, 임진왜란 후에는 충청감영이 공주로 이전해왔다. 충청도의 제1도시였던 셈이다. 그러다 대전역이 생기면서 산업체와 인구는 대전으로 빠져나갔고, 전라선까지 대전을 거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대화, 산업화와는 조금 비껴나게 되었지만 대신 공주를 위안한 것이 있었다. 종교였다. 근대화의 중심 ‘공주제일교회’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바로 공주제일교회의 존재 때문이다. 공주제일교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2년 김동현 전도사가 초가 1동을 구입한 것이 시초가 된다. 이후 교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예배당이 절실해졌는데, 1909년 우산을 쓴 익명의 후원자가 나타난다. 그의 헌금으로 교회는 새로운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고, 교인들은 후원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이곳을 협산자(挾傘者, 우산을 쓴 사람) 예배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협산자 예배당도 좁아지자, 교인들은 1931년 지금의 ‘문화재 예배당’을 건립한다. 장소는 협산자 예배당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다 문화재 예배당은 한국전쟁에 휘말린다. 폭격으로 일부 벽과 굴뚝만 남긴 채 파괴되었지만 교인들은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대한 결심을 한다. 새 예배당 건립을 위해 이웃해 있던 협산자 예배당을 자재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재건 과정에는 교인들만 참여했다. 1956년의 일이다. 1979년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교회 전면에 배치하는 등의 증축이 이뤄졌다. 역사 속에서 공주제일교회는 종교기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공주 지역의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주요 시설의 건립에 교회와 선교사들이 관여했다. 또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 후인 1919년 4월 1일 공주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는데, 이 독립운동의 한가운데에 공주제일교회의 현석칠 목사와 감리회 공동체가 있었다. 현재 교회 건물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식 명칭도 ‘공주기독교박물관’이 됐다. 2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에는 공주 지역 기독교 역사와 성장 과정, 문화재 예배당 건축사, 독립을 위해 힘쓴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각종 역사적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를 체험하는 ‘공주역사영상관’ 공주제일교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공주역사영상관이 있다. 공주의 역사적 배경이나 당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이 건물은 1920년 충남금융조합연합회 회관으로 건립됐다. 그래서인지 건물 규모에 비해 입구가 웅장하고, 1층의 천장도 높다. 1930년부터 1985년까지는 공주읍사무소로 쓰이다 1986년 공주시로 승격되면서 건물도 ‘시청’으로 승진했다. 1989년 새 건물로 시청이 옮겨가면서 실직했다가, 2010년 공주시의 구도심 활용 계획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1층에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각종 영상 자료와 멀티미디어 장비가 갖춰져 있고, 2층은 역사 속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사진자료실로 꾸며져 있다. 공주역사영상관에서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방향으로 다시 20분 정도 걸어가면 천주교 중동성당이 나온다. 서양의 고딕양식을 따르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이다. 1898년 프랑스 출신 진 베드로 신부가 이곳에 교당을 세우고 교지 전파를 시작하면서 공주에 천주교가 자리 잡게 됐다. 본당과 사제관이 나란히 있는데, 사제관은 현재 교육관으로 사용된다. 199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성당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됐다. 숨겨진 근대 건축물 ‘풀꽃문학관’ 다시 남쪽으로 2km 정도 내려와 영명고등학교 뒤편 언덕 마을로 올라서면 선교사 가옥이 보인다. 3층짜리 건물이다. 미국 감리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머물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는 공주 지역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영명학교의 활동이 시작된 장소로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도 영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다 이화학당으로 편입했다. 이곳은 관리가 잘되는 문화재는 아니지만, 산책 삼아 가볼 만하다. 공주고등학교 정문에서부터 이어진 언덕길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선교사 가옥 옆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선교사 묘역을 만날 수 있다.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선교사 자녀들의 작은 무덤들이 당시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대변해주는 것 같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공주의 근대 건축물 중 하나는 바로 2014년 설립된 풀꽃문학관이다. 시집 로 잘 알려진 나태주(羅泰柱) 시인의 작업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이 과거 헌병대장의 관사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32년에 지어진 건물을 공주시가 사들여 문학관 측에 관리를 위탁했다. 지금은 공주 지역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 2017-12-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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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백운대 오르기
- 북한산 백운대 산행을 위하여 새로 개통한 북한산우이선 경전철을 탔다. 좌로 흔들, 우로 뒤뚱거리면서 무인 경전철은 잘도 달렸다. 사람이 만든 꼬마 전철은 운전원도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도선사 입구 종점이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하였다. 산행인파가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았다. 능선을 따라서 지원센터를 거쳐 하루재에 이르렀다. 가을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산장을 지나서 떠밀리듯 천천히 올랐다. 위문을 지나 정상까지는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오르는 본격적인 등반이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등산객이 뒤엉켜서 정체가 발생하곤 하였다. ‘우측보행’ 누군가 부르짖지만 이내 인파에 묻히고 말았다. 서다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 정상은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웠다. 친구와 품앗이로 기념사진 한장 겨우 남겼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희부옇다.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 같다.맞은편의 깎아지른 듯 인수봉이 울긋불긋 단풍에 둘러싸여 있다. 암벽등반가들이 꽃술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1983년에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78.5㎢에 이른다.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보기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정릉·우이동 등 여러 계곡들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다.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겨진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문화유적과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를 비롯하여 태고사·화계사·문수사·진관사 등 많은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이 세운 진흥왕 순수비의 복사본이 있다. 이는 신라 진흥왕이 세운 순수척경비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진흥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북한산은 백운대(837m)·인수봉(810m)·만경대(800m) 세 봉우리가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데서 유래해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 삼각산이라 불려졌다. 1915년 조선 총독부가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북한산이란 명칭이 공식화됐다. 북한산성 입구로 내려가는 길은 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이었다.
- 2017-11-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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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도깨비들의 신나는 시간여행
- 날씨도 매우 쾌청해서 여행 떠나기 딱 좋은 날이다. 군산은 얼마 전 다녀온 곳이지만 두 번 세 번 가보아도 볼거리와 느낄 점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군산의 밤을 체험하게 되어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찾아보기로 했다. 군산은 한편으로는 슬픈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비옥한 우리 땅에서 나는 곡물과 물자를 자기네 나라로 수탈해 가는 통로로 군산을 발전시켰고 많은 일본인이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일본의 가옥이나 문화가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 근대화의 아픈 역사를 없애지 않고 잘 보존하여 더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다짐한다는 의미로 일본의 잔재인 세관이나 조선은행 등을 근대건축관이나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역사를 보존하고 잊지 않는다는 취지를 가졌다니 멋진 도시이다. 2017년 10월 28일~29일은 군산의 축제로 근대역사박물관과 월명동 일원에 '가을밤, 근대문화유산은 잠들지 않는다' 는 슬로건으로 군산 야행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야밤에 본 문화유산의 모습들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곳곳에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밤 나들이 나온 군산시민의 모습이 매우 화목해 보였다. 여러 곳에서 음악콘서트의 흥겨운 노래가 들리고 광장에선 가족끼리의 투호 게임도 벌어지는 등 축제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근대역사박물관과 구 군산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근대미술관이 된 일본 은행 건물이 아름답게 조명되었다. 뒤쪽으로 군산항의 뜬다리 모습도 예쁜 불빛으로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필자와 친구들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쪽으로 따라서 길 건너 축제 장소로 이동했다. 그쪽에는 잘 보존된 일본식 절인 동국사와 신흥동 일본식 가옥, 그리고 한석규와 심은하의 아름다운 동화 같았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 사진관도 찾아볼 수 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골목마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거리 축제가 진행되고 많은 관광객과 군산시민이 어울려 밤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긴 골목 끝까지 예전에 있던 학교나, 관공서, 병원, 정미소, 경찰서, 주막 등 여러 임시건물을 지어놓고 관광객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벤트도 하는 등 군산시에서 이번 축제에 매우 공들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에선 '소리나무'라는 연주 팀의 고운 선율이 우리를 붙잡아 한동안 몇 곡을 감상하고 박수를 보내주었다. 참으로 낭만적인 밤이다. 일본가옥에 도착하니 실내를 보려면 줄을 서야 했고 긴 줄에도 우리는 기다렸다가 일본가옥의 내부도 돌아볼 수 있었다. 상당한 부잣집이었던 듯 규모가 매우 컸는데 일본인의 생활상도 엿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예전 어렸을 때 우리 외갓집도 일본인의 적산가옥이었다. 패망으로 돌아가는 일본인의 집을 외할아버지께서 매입하셨다는데 그 집은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는 꿈의 동산이었다. 집안 구조도 재미있었지만, 앞쪽의 넓은 정원이 아름다웠다. 일본인 특유의 정원문화로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정도의 동산이 있고 돌다리가 걸쳐진 연못도 있었다. 돌로 만든 거북도 있고 쭉쭉 늘씬하게 피어 있던 보랏빛 난초도 잊히지 않는다. 군산의 일본인 가옥을 보니 옛 외갓집과 많이 닮아 불현듯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군산 야행의 밤이 깊어갔다. 이런 축제로 인해 군산이라는 도시를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떠나기 좋은 가을이다. 모두들 문화가 있는 곳으로 한 번쯤 다녀오기를 권한다.
- 2017-11-0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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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제향날>의 배우 강애심
- 거친 역사와 함께 살아온 작가 채만식의 후기작 이 무대에 오른다. 남편을 잃고 아들의 생사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최씨’. 그를 연기한 배우 강애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연출을 맡은 최용훈씨와는 오래된 친구이자 신뢰하는 동료인데 같이 하자고 해서 무조건 승낙했어요. 사실 작품도 안 보고 결정했죠. 너무 솔직했나요?(하하). 이후에 작품을 읽어보니 1930년대 작품 같지 않게 깔끔하더라고요. 다만 무대 위에서 구현할 때 단순한 구조로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었죠. 다행히 수준 높은 감각과 내공 있는 연출이 더해져 입체적인 작품으로 탄생했어요. 깊이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아 즐겁게 작업하는 중이에요. ‘최씨’는 어떤 인물인가요? 1930년대의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70세 할머니예요. 동학농민운동을 하던 남편을 총칼에 잃고 하나뿐인 아들은 독립운동을 하다 피신해 생사도 모르고 살아가죠. 그 와중에도 굳건히 손자들을 키우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대지와 같은 여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70세의 연륜, 그 시대의 말투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관객과 공감할 수 있도록 ‘최씨’라는 인물에 신경 썼어요. ‘최씨’의 말 중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나요? 남편이 동학농민운동을 하느라 재산을 반이나 날렸는데도 “뭐, 그까짓 재산이야 있으나 마나 하지만…”이라고 말하는 부분과 아들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나머지 재산을 탕진한 와중에도 “다 제가 객지에서 요긴하게 쓰느라 팔아 없앤 것이니까 원통할 것은 없지만…”이라고 말하는 부분이에요. 물질 만능 시대를 살면서 돈에 연연해하지 않고 호탕하게 “그까짓 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멋집니다.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무대 위에서의 작업은 팀과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죠. 관계 속에서 찾아지는 수많은 디테일과 풍부한 감정들, 그리고 배려를 느끼고 알게 하는 게 무대 위의 삶이니까요. 극의 구조상 감정을 나누는 배우는 두 명뿐이어서 호흡도 잘 맞고 별 어려움 없이 즐겁게 연습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머지 배우들도 서로 즐겁게 조언해가며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어떤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연극인가요? 연령층과 상관없이 이 땅에 사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게 하고, 중년층과 노년층에게는 슬픈 역사 속 희생양이 되어서도 자식들을 위해 꿋꿋하게 살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더불어 근대문학의 말맛도 맛깔스럽게 녹아 있어 수준 높은 문학을 접하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장소 백성희장민호 극장 일정 10월 12일~11월 5일 연출 최용훈 출연 강애심, 김용선, 박윤희, 최광일, 백익남, 김정환 등
- 2017-09-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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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만화 역사의 흔적을 만나다 국내외 만화박물관
- 만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지만, 만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나 대우는 지금과 달랐다. 대표적 사례로 1972년에 있었던 정병섭 군 사망사건이 있다. 만화 주인공의 부활을 따라 하다 12세 소년이 숨진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혀 517개 만화대본 업소가 쑥대밭이 됐고 2만 권이 넘는 만화책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렇게 격동기 속 낮았던 만화에 대한 인식으로 당시 주옥같던 작품들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예전 작품을 즐기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운영 중인 몇몇 박물관들은 우리가 추억으로 다시 돌아가기에 충분할 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만화의 모든 것 한국만화박물관 국내에 만화 관련 시설 중 가장 손꼽히는 곳이다. 1998년 설립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산하기관으로서 경기도 부천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만화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손주와 조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실제로 취재가 이뤄진 날에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찾은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총 4개 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상설전시관은 3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근대 만화와 광복 이후의 만화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만화 사료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데 추억의 만화방을 재현한 ‘땡이네 만화가게’와 4D 영화관 등이 인기가 많다. 전시품 중 현존하는 최고(最古) 만화 단행본 , 최장 연재 시사만화 ,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 등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 젊은 만화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기획 전시도 이어지고 있다. 반드시 들러야 할 시설 중 하나는 건물 내에 자리 잡고 있는 만화도서관이다. 26만 권의 국내외 만화 도서와 자료가 소장된 국내 최대 규모의 열람 공간으로 누구나 만화책을 읽고 즐길 수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박물관운영팀 백수진 팀장은 “중장년 세대에게 한국만화박물관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며, 자녀 세대 혹은 손주 세대와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한국만화박물관은 만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로, 과거의 추억과 현재, 미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주소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1 관람시간 10:0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및 그 전날 관람료 5000원 (생후 36개월 미만, 65세 이상 무료) 희귀 자료를 한곳에서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청강만화역사박물관은 2002년 12월 10일 개관한 박물관으로 출판물과 육필 원고 등 국내외 희귀만화 자료 2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국내 만화 관련 학과 중 최고로 손꼽히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과는 학교 박물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박물관 설립을 위해 7년간 관련 자료 수집이 이뤄졌고, 만화의 역사를 개별 작가와 작품 중심으로 전시한 것도 특징이다. 1998년에는 국내 최초의 만화 애니메이션 전문도서관인 만화영상도서관도 개관했다. 청강만화역사박물관의 한혜원 학예사는 “중장년 세대가 처음 접했던 시기의 만화는 단순 오락을 넘어 자신만의 문화를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창구였기에 어떤 세대보다도 만화에 대해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청강만화역사박물관은 중장년 세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우리 만화의 잊힌 고리를 발굴하고 전시함으로써 과거의 만화에서 오늘날의 웹툰까지 살아 숨 쉬는 만화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주소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청강로 162 청강문화산업대학교 3층 관람시간 09:00~17:00 휴관일 토요일, 일요일, 법정공휴일 관람료 무료 ‘춘천’하면 이 곳!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tvN의 에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춘천하면 애니메이션박물관이죠”라고 강조해서 유명세를 탄 장소. 춘천에 자리 잡고 있는 애니메이션박물관은 만화 중에서도 움직이는 만화, 즉 애니메이션만을 중심으로 꾸며진 시설이다. 만화가 동적인 생명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놓았고, 홍길동으로 대표되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준비해놓았다. 바로 옆에 위치한 토이로봇관은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주소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박사로 854 관람시간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정기 휴관) 관람료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 (토이로봇관은 별도 관람권 필요) 100주년 맞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의 애니메이션, 즉 아니메((アニメ)가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역사가 깊은 만큼 그들의 만화 역사와 만화 관련 자료는 우리보다 훨씬 방대하고 관련 시설도 다양하다. 만화 관련 시설 또한 만화를 미술이나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고 만화 시설을 갤러리 혹은 미술관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도 이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일본 도심에선 만화를 즐기고 있는 시니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서점보다 규모가 큰 만화 대여소나 중고만화서점도 눈에 많이 띈다. 일본의 만화박물관은 만화가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화하는 일본 만화산업의 특성상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모호해 일부러 구분 지으려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정부 차원의 만화 시설도 있지만 지브리 미술관이나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 같은 특정 만화제작사에서 자체적으로 설립한 박물관도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내 주요 만화박물관 지브리 미술관 www.ghibli-museum.jp, 교토 국제만화박물관 www.kyotomm.jp, 스기나미 애니메이션 박물관 sam.or.jp, 도쿄 애니메이션 센터 www.animecenter.jp,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 www.toei-anim.co.jp, 기타큐슈시 만화 뮤지엄 www.ktqmm.jp
- 2017-09-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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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하고 세련되고 흥겨운 도시, 세르비아 노비사드
-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북쪽 90km 지점에 있는 ‘노비사드(Novi Sad)’는 세르비아 제2의 도시다. 세르비아어로 ‘새로운 정원’을 뜻하는 도시 명을 가진 노비사드.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통치 시절 때 세르비아인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이뤘다. 도심 메인 광장에는 번성기의 멋진 건축물이 남아 아름답게 빛을 낸다. 거기에 도나우 강변과 페트로바라딘(Petrovaradin) 요새의 어울림은 환상적이다. 현지인들은 참으로 친절하고 순수하다. 누군들 이 도시에 머물고 싶지 않겠는가. 여행 안내소 여직원과 ‘안드리아’의 친절에 감복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역내에 있는 여행안내소의 여자 스태프의 친절은 반할 만하다. 기차역에서 노비사드로 가는 표를 사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내소 부스에서 밖으로까지 나와 반긴다. 이렇게 적극적인 친절은 동유럽 관광지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다. 그녀는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또한 묻지도 않았는데 그날 저녁, 도나우 강변의 보트타기가 무료라는 정보를 알려주며 꼭 예약해야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히 세르비아의 애국자다. 노비사드행 기차는 곧 폐차해야 될 정도로 낡아 보인다. 기차 안팎으로 그려진 그래비티가 어지럽다. 빈자리를 찾아 앉아 있다가 몸을 완전히 돌려 플랫폼에서 잠시 스쳤던 귀여운 청년 ‘안드리아’에게 말을 건다. 기차 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에게 이것저것 여행 정보를 묻는다. 말 튼 김에 수다도 떤다. 노비사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유명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그.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도 가능하단다. 그날은 애인을 만나러 가는 중이란다. 내친 김에 여행 안내소 직원이 말해준 “오늘 유람선이 무료라고 하니 예약 좀 해줄래”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가 기차 안이 시끄러워 안 된다고 해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유람선 타기는 포기한다. 그런데 노비사드역에 내리자마자 보트 회사에 전화를 하고 있다. 결국 정보 착오로 보트타기는 실패했지만 생판 모르는 여행객에게 베푸는 친절함에 감동이 물결친다. 시내버스 타는 곳까지 그를 따라가면서 “버스비 내가 내줄게” 했다. 전화비는 줘야 한다는 한국적 사고의 행동이다. “왜? 뭐하러?”라는 그의 말에 또 감동받는다. 그날 그에게 교훈을 얻는다. 고국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안드리아와 같은 친절을 베풀겠다고 다짐했으니 말이다. 19세기의 문화 부흥을 알려주는 중심 광장 노비사드 극장 거리에 내리자마자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필요할 찰나에 발견한 중국인 가게. 빨간 우산 하나 사들고 노비사드에서 교수로 있다는 젊은 중국 여성을 만나 또 한참 수다를 떨다가 길 건너 성모 승천 교회를 보고 세르비안 국립극장으로 다가선다. 1861년에 세워진 국립극장은 남부 슬라브인들의 첫 번째 극장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연극, 클래식 오페라, 현대 발레 등이 공연되고 노비사드 재즈 축제도 열린다. 몇 걸음 더 걸어 노비사드의 가장 번화한 슬로보데(Slobode, 자유) 거리에 이른다.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웅장한 시청사의 건물 중심부에 뿔 같은 탑(60m)이 불쑥 솟았다. 시청사 말고도 첨탑이 뾰족한 성 마리 성당, 보이보디나 호텔을 비롯해 화려한 건축물들이 주변에 한가득이다. 노비사드의 기원은 7세기경, 남슬라브족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지만 18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때 황금기를 맞는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이 발칸에 진출하자 투르크족의 지배를 거부하는 인근 세르비아인들이 도나우 강을 넘어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일궈낸 영광이다. 매일 축제가 열리는 즈마이 요비아 거리 자유 광장에는 스베토자르 밀레티치(1826~1901)의 청동상이 있다. 작가, 극작가이자 이 도시의 시장(1861년, 1867년)이었던 밀레티치는 노비사드 발전에 큰 역량을 발휘한 위대한 인물. 그의 청동상은 20세기 유고슬라비아의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이반 메슈트로비치(1883~1962)의 작품이다. 이어 즈마이 요비아(Zmaj Jovina) 거리로 들어선다. 길 양쪽으로 쇼핑가, 식당가가 쭉 이어진다. 매일 축제가 열리는 흥겨운 거리라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우선 마음 내키는 식당에 들어가 풍요로운 늦은 조식을 먹고 거리 끝으로 간다. 두나브스카(Dunavska) 광장이다. 비누거품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배시시 웃음 지으며 쳐다보다 요반 요바노비치 드래곤(1833~1904)의 동상을 발견한다. 의사이자 서정시인이었던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 골목을 걸었던 듯하다. 1984년에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된 기념비다. 동상 앞에는 주교 궁전이 있다. 1741년에 만들어진 정교회는 1849년에 폭발해 새로 지었다. 세르비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블라디미르 니콜리치(1857~1922)가 1899년에 지어 1901년에 완공했다. 비잔틴 스타일에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멋진 궁전이지만 아쉽게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메인 타운을 벗어나 도나우 강 쪽으로 향하면 거리는 다소 한적해진다. 이 거리의 외국인 아트 컬렉션 건물 앞에서 또 동상을 만난다. 기자, 정치가, 작가였던 자사 토미치(1856~1922)다. 그는 이 도시의 시장이었던 밀레티치의 사위였다. 부인 밀리카 토미치(1859~1944)를 모함한 상대 정치인(Branik 매거진 편집자)을 찔러 죽여 7년 동안 복역했지만 출옥 후 다시 정치에 출마해 현세에도 위대한 정치인으로 남았다. 동상의 손가락에 끼워진 빨간 반지는 눈이 좋아야만 보게 될 것이다. 이어 도나우 공원과 길거리 시장을 지나 근대 미술관을 보고 도나우 강 앞에 선다. 대교와 부서진 다리 등이 있고 강 너머 야트막한 언덕(40m) 위에는 페트로바라딘 성채가 있다. 그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그래서 ‘도나우 강의 지브롤터(Gibraltar, 스페인의 영국령 반도)’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강변에는 레이드(Raid) 희생자 조각(The Family)이 서 있다. 1942년 1월, 3일(21~23일)간 헝가리의 파시스트들은 세르비안, 유대인, 집시 등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처형했다. 비극적인 역사의 기록을 노비사드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요반 솔다토비치(1920~2005)가 작품(1971년)화했다. 도나우 강변의 페트로바라딘 요새 다리를 건너 페트로바라딘으로 가면 시내 중심가와는 확연히 비교될 만큼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낡은 건물들과 112헥타르(33만8800평)나 되는 요새가 촉촉이 비에 젖었다. 성채는 긴 세월 동안 파괴, 복구, 확장 등의 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렀다. 요새에는 시립 박물관, 시계탑, 카페, 아티스트들의 공방과 작품 숍 등 볼거리가 많다. 창조적인 디자인 숍에서는 기념품을 판매한다. 또 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위해 시침보다 분침을 더 길게 한 시계탑도 볼 만하다. ‘한눈에도 예술가’처럼 보이는 화가 라이코 페트코비치의 아틀리에가 있다. 그 외 조각가 요반 솔다토비치의 기념관도 있다. 이 성채의 지하에는 무덤이 있어서 매년 7월 ‘EXIT 페스티벌’이 열린다. 비에 젖은 성채의 커피숍에 앉아 한참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다시 도시로 되돌아와 유대인 회당도 보고 아인슈타인과 그의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1875~1948)의 기억 접시관도 찾는다. 밀레바는 노비사드에서 멀지 않은 티텔(Titel)에서 태어나 노비사드에서 중등학교(1886년)를 다녔다. 아쉬움이 남는 노비사드 여행이었지만 두말이 필요치 않은 아름다운 도시다. 언젠가는 현지인처럼 이 도시에 머물고 있을 듯하다.
- 2017-08-3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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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 누드화 전시
-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 내 소마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누드화 전시가 있다 하여 가봤다. 8월 11일부터 12월 25일까지란다. 모처럼 갔는데 휴관일이 아닐까 걱정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월30일까지는 휴관일이 없다고 되어 있어 안심하고 가봤다. 소마 미술관은 종종 가봤는데 휴관일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한다. 평소에는 여러 가지 기획전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제법 큰 전시회라고 홍보되어 있었다. 입장료가 성인 1만 3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으로 꽤 비싼 편이다. 경로할인이 6000원이다. 운 좋게 필자가 방문한 날에 이벤트가 열렸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에서 1만 3000원 어치 이상 음료를 팔아주면 1만 3000원짜리 무료 초대권을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입장 티켓을 보여주면 구매한 음료 외 아메리카노 한잔을 무료로 받았다. 테이트 미술관은 영국의 국립 미술관이라고 한다. 거기 소장되어 있던 작품 중 누드화를 테마로 하여 피카소, 드가, 르누아르, 마티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이 한국에 나들이 왔다. 누드화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누드는 19세기~20세기 작품 위주이다. 그전의 그림이나 조각품은 주로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심으로 누드를 등장시켰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누드를 아카데미 교육의 일환으로 채택했고 테마는 역시 고대신화, 성경, 문학 작품 등의 상상의 주제를 사용했다. 이것을 역사적 누드라고 분류했다. 20세기 들어 사적인 누드라 하여 목욕하는 여인, 욕조 안의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근대에 들어 모더니즘 누드라 하여 입체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위라 불리는 방식의 누드가 등장했다. 1920년대~1940년대까지를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대라고 하여 누드를 꿈의 세계와 연관시켜 표현했다. 1950년대는 더욱 발전하여 표현주의 시대라고 한다. 피카소가 등장하고 나서 에로틱 누드 시대가 등장한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여성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그동안 남성 화가가 그리는 여성의 몸에 대항하여 소년부터 시작하여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는 몸의 정치학 시대라 한다. 1980년대 들어서는 누드 장르에 사진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연약한 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누드를 연약한 몸으로 보는 시대 조류이다. 이렇게 8가지로 구분하여 전시실을 배정했다. 테이트 미술전의 하이라이트는 3톤이 넘는 대리석 조각 ‘키스’이다. 로댕 작품이다. 특별 공간에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다. 한 부호의 요청으로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에로틱하다 하여 오랫동안 빛을 못 보던 작품이란다. 조각상의 모델도 불륜 사이라서 이 장면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설명이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여러 예술품의 모델이 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주요 부위를 천으로 가리고 전시하는 등, 우여 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누드라 하면 음탕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웬만한 누드화는 집에 걸어 놓기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이라고 하니 예술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인간의 누드가 가장 아름다운 소재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누드도 모두 숭고하게 보인다. 누드에서 발전하여 남녀의 성교 장면을 스케치 한 작품도 따로 있는데 그 전시실에는 미성년자들은 못 들어가게 통제한다. 인상적인 작품으로, 누드를 말로 풀어 단어를 나열한 작품도 있었다. 이카루스의 죽음을 표현한 작품도 좋았다. 누드 작품 100여점을 보고 났는데 성적인 욕망이 전혀 안 생긴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올림픽공원의 푸른 녹음을 보며 진정시켜야 한다.
- 2017-08-17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