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기금형 연금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2022년 처음으로 기금형 연금제도가 도입된 만큼, 짚어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 높여라
2015년 12월 퇴직연금이 처음 도입된 이후 2020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52.4%가 퇴직연금에 가입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퇴직연금 규모는 2022년 기준 336조 원에 이른다. 2032년이면 860조 원으로 약 2.5배 증가할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제도별로는 DB형이 같은 기간 192조 원에서 398조 원으로, DC형이 86조 원에서 222조 원으로, IRP가 58조 원에서 239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퇴직연금 규모는 매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퇴직연금 수익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2020년 기준 2% 수준이다. 최근 5년, 최근 10년 수익률은 각 1.96%, 2.39%에 불과하다. 게다가 퇴직연금은 연금으로서 기능해 노후 안전망으로 사용되기보다 일시금 수령이 많고, 아직도 근로자의 절반가량은 퇴직연금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제안됐다. 앞서 [연금 가이드] 시리즈로 살펴본 것처럼, 선진국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기금형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노사의 참여가 더 활발해질 수 있고, 자산운용 전문성도 높일 수 있다.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원금보장보다는 수급권 보호를 강화하고 이를 운영하는 수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의 AIJ 사건이 핵심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 기금형 도입을 추진했다. DB형과 DC형을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운영하는 방안이었는데,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이후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되었고, 2022년부터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 옵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제도, 적립금운영위원회 등이 시행되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해당 법이 개정되면서 기금형 운영과 관련해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 시행 △적립금운용위원회 구성 의무화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이하 중퇴기금)는 3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 가입할 수 있는 제도다. DC형처럼 사용자가 근로자의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을 매년 해당 근로자의 퇴직연금계좌로 납부하고 근로자가 퇴직하면 받게 되는 구조다. 기존의 DC형과 다른 점은 근로자 본인이 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과 외부 전문기관이 적립금을 운용하게 된다. 정부는 기금 운용 규모가 커지면 수익률도 높아지고 수수료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KIRI는 중퇴기금 도입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시장 지배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사업장에서 30인 미만 사업장이 92.4%에 달하고 근로자 비중으로는 전체 근로자의 40%에 해당한다”면서 “중퇴기금을 독점 운용하고 집합투자운용이 가능해 공공성 등을 고려할 때 근로복지공단 시장지배력은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또한 “근로복지공단 운영 특성상 운용관리업무만 수행하고 자산관리업무 등의 운용은 금융회사에 위탁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단과 금융권의 상생도 기대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로 DB형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300명 이상 기업은 적립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할 의무가 생겼다. 그동안에는 사용자가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했는데,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운영한다는 지적이 있어 합리적으로 운용하면서 수익률도 높일 수 있도록 적립금운용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적립금운용위원회는 5~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연 1회 이상 개최해야 하고, 목표수익률 설정, 자산배분 등 적립금 운용에 관한 사항, 적립금운용계획서, 재정안정화계획서 등을 심의·의결한다. 만약 최소적립비율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장이라면 적립금운용위원회에 근로자대표, 퇴직연금 관련 부서장, 퇴직연금 전문가를 각 1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거나 적립금운용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기금형 도입 초읽기
KIRI는 “중퇴기금과 적립금운용위원회 제도 도입으로 사업장 규모별, 가입자 특성별로 구분된 기금형은 이미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보편적 의미의 기금형이 도입될지는 논의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보편적 기금형 도입이 되더라도 시장 변화는 오래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영국 등의 사례에 비춰보면 DC형에 기금형이 도입된 것은 가입자 관점에서 지금처럼 별도의 운용지시를 내려야 하므로 계약형과 다른 차이가 없다. KIRI는 “집합투자운용이 병행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실적배당형 투자 성향이 강해지면서 펀드 수수료 등으로 비용이 증가할 수 있어 수수료 체계도 정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DB형의 경우 퇴직연금과 운용수익률이 근로자에게는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기금형 제도로 바꾸는 데 있어 근로자의 동의를 얻을 요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자산운용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해 그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주로 운영했던 사용자로서도 기금형을 도입하는 데는 신중할 수 있다.
KIRI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무엇보다 수급권보호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금형을 운영하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다 보면 투자 리스크도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PBGC나 영국의 PPF에 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DC형 예금자 보호 수준이 5000만 원이지만 생애 자산을 보호하려면 예금보상 한도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도 활발해져야 한다. KIRI는 “사업자 범위를 온라인뱅크, 자산운용사 등으로 확대해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지배구조가 등장하면 계약형과 경쟁을 통해 퇴직연금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호주 사례처럼 퇴직연금 기금 간 경쟁이 활발해지도록 다양한 형태의 기금형 도입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퇴기금과 적립금운용위원회 도입으로 기금형 성격이 강화된 만큼 제도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수탁자 책임과 권한을 명확하게 할 필요도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에서 수탁자는 근로자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자신의 재량으로 운영·관리하게 되므로 그 역할과 책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KIRI는 “기금형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탁자보증보험과 수탁자책임보험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제 막 기금형이 도입된 상황이다. 미국, 영국, 호주처럼 보편적인 기금형의 도입은 아니지만,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금융기관으로 퇴직연금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있다. 조직 내부에서 연금심의위원회, 자산운용전략위원회, 투자심의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인공제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2021년 기준 7.7% 수준이다.
KIRI는 “연금심의위원회를 둬 자산 배분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낸 것으로 평가된다”면서도 “연금심의위원회는 기금형의 특징이지만 국내에서는 계약형 제도 내에서 추진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좀 더 보편적으로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고 자리 잡으려면, 이번에 도입된 중퇴기금과 적립금운용위원회 그리고 과거부터 운영해온 연금심의위원회 같은 기금형 특성을 갖는 제도들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떤 평가를 받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처럼 기금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금형이 잘 안착해 고령자의 노후 안전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본도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이 풍족하지 않아 60대에도 일하고자 하는 노인이 많다. 은퇴를 앞둔 이들은 재고용과 재취업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 일본의 시니어들은 제2의 직업을 어떻게 찾고 있을까?
구인 검색 엔진 인디드(Indeed)가 실시한 ‘시니어 세대의 취업에 관한 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70대’ 키워드 일 검색 수가 2017년 대비 53.7배 증가했다. 70대보다는 증가 폭이 크지 않았지만 ‘60대’ 일 검색 수도 같은 기간 7.9배 증가했다. 70~74세의 취업률은 2018년 이미 30%를 넘겼다. 75세 이상의 취업률은 10% 미만이지만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고령자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데 일할 곳은 많지 않아 재고용과 재취업 어느 쪽이 유리한지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재고용과 재취업은 어떻게 다를까
재고용은 정년까지 일한 기업에 다시 고용되어 일하는 형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기업의 약 80%가 60세를 정년으로 하고, 약 70%가 재고용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같은 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익숙한 환경에서 하던 일을 할 수 있다. 퇴직을 하고 다시 고용되는 형태로, 퇴직금을 받아 목돈이 생긴다.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는 후생연금도 유지되어 연금 수령액이 늘어난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재고용은 대부분의 기업(약 80%)이 계속고용 상한을 65세까지로 두기 때문에 5년 이후의 일자리를 또 고민해야 한다. 급여 수준도 현직에서 받던 임금의 80% 미만 수준으로 내려간다.
재취업은 일하던 회사를 퇴직하고 다른 회사로 취직하는 것을 말한다. 재취업은 정년 이후 바뀌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새로운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 삶에 활기를 느끼는 시니어도 많다. 고용 상한 연령이 없는 기업에 취직하거나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면 평생 일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정년퇴직 후 다른 기업으로의 재취업 기회가 적고,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퇴직 후 일할 수 있는 기간과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따져보려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야 한다. 멘션 서포터(멘션 관리원이 쉬는 날 대신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를 운영하는 회사 우에르네스(うぇるねす)는 재고용과 재취업 중 자신에게 더 유리한 선택을 하려면 세 가지를 우선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정년이 오기 전부터 구인구직란을 살핀다. 둘째, 타협점을 명확히 한다. 아무리 정년 후 일자리가 구하기 어렵다고 해도 자신이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셋째, 은퇴 후 생활을 위해 연금 외에 필요한 수입이 얼마인지 계산해 그만한 수입을 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늘어나는 지원 제도
일본 정부는 정년 후 고령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제도를 실시한다. 후생노동성은 ‘헬로워크’라는 기관을 운영한다. 전국에 300개 지점이 있으며 ‘생애 현역 지원 창구’를 통해 65세 이상 시니어를 지원하고 있다. 기업 일자리를 소개하거나 이력서 쓰는 법, 면접 준비하는 법 등을 무료로 가르쳐준다.
도도부현 지사의 지정을 받은 공익 사단법인 ‘실버 인재 센터’도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을 제공한다.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일보다는 임시 혹은 단기 일자리를 연결한다. 따라서 안정적인 근무처보다 사회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고령자가 이용하기에 적합하다.
금전적 지원도 이어진다. 정년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급여 수준이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용보험 급부금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 고령자의 재고용과 재취업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60세에 정년퇴직한 뒤에도 계속 일을 하면 고용보험 급부금을 받을 수 있는데, 재고용과 재취업 때 받는 종류가 다르다. 같은 회사에 재고용됐을 경우 현직에서 받던 임금보다 75% 이하로 임금이 책정되었을 때 ‘고연령 고용계속 기본급여금’을 받을 수 있다. 60세부터 65세까지 5년간 지원받을 수 있다. 지급 한도는 2022년 8월 기준 36만 4595엔(약 350만 원)이다.
재취업을 할 경우에는 실업 기간 중 기본(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면 일정 요건에 따라 ‘고연령 재취업 급부금’ 또는 ‘재취업 수당’을 받을 수 있다. 1년 또는 2년 한정으로 지급된다. 둘 중 하나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100세 시대에 70대에도 일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리커런트(Recurrent) 교육과 리스킬링(Re-skilling)도 주목받고 있다. 리커런트 교육은 회복 교육이라는 뜻으로 업무 능력과 커리어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다.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 문부과학성 등이 교육을 받고자 하는 근로자들의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리스킬링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내각이 새롭게 추진하는 전직 교육 서비스다. 기업과 산업간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지침을 올해 6월까지 발표할 계획이다. 또한 향후 5년간 리스킬링 지원에 약 1조 엔을 투입할 예정이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이번에는 일본의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본다. 일본은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많지 않다. 한때 활성화되었던 기금형 제도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AIJ 사건 등에 따라 선호도가 낮아지면서 가입이 감소하는 추세다.
자리 잡지 못한 퇴직연금제도
일본은 종신고용과 연공급여 체계 등 기존의 고용 방식에서 능력과 실력 위주의 고용방식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거쳤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경제 성장기를 거쳐 저성장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퇴직연금 개혁을 진행했기에 우리나라가 참고할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일본의 퇴직연금제도는 1960년대 도입된 후생연금기금(EPF), 세제적격 퇴직연금제도(TPP), 2000년대 초 도입된 확정급부기업연금(DBP), 확정갹출연금(DCP)로 나뉜다. EPF는 후생연금보험법에 따라 후생노동성의 인가를 통해 기업이 법인형태로 연기금을 설치하는 DB형(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다. TPP는 세제적격 요건을 충족한 계약을 국세청장이 승인하는 형태로, 사업주가 금융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며 역시 DB형 제도다.
DBP는 DB형을 가져가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기금형과 규약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기금형은 후생연금기금 구조와 동일하며 규약형은 기업이 스스로 동의와 승인 절차를 거쳐 수탁자(은행, 증권, 보험사 등)와 계약해 운용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DCP는 규약형으로만 운영되며 미국의 401k를 참고한 기업형과 우리나라 개인형 퇴직연금을 참고한 개인형으로 나뉜다.
EPF는 2014년부터 신규 가입을 금지했으며, 올해 폐지된다. TPP는 2012년에 폐지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퇴직연금제도지만 이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일본 인사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종업원 50인 이상 기업의 퇴직급여제도 도입률은 91.9%다. 이 중에서 퇴직금제도를 운용하는 기업은 복수응답 기준 91.2%지만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45.8%에 불과하다. 퇴직금제도는 대부분 기업이 도입했지만 연금의 형태가 아니라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기업이 절반에 이른다는 의미다.
퇴직연금제도는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먼저 시작됐는데 해당 국가들은 '신탁'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혀 있었기에 퇴직연금으로 백만장자가 된다는 사례들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신탁이 활발하지 않은 일본은 다른 국가들처럼 연금 관련 제도들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없었다. 기금형 제도, 퇴직연금 제도, 디폴트 옵션 모두 실패 사례로 꼽힌다. 기금형 연금제도와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도 실패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일본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에서 퇴직연금제도 개혁은 여전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연기금 연쇄 파산의 비극
일본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퇴직연금 가입률은 25%이며 근로자 가입률은 37.7%다. 퇴직연금 자산 규모는 2020년 기준 98조 8000억 엔이다. TPP와 EPF는 감소하는 추세고 DBP와 DCP가 2020년 기준 각각 67조 5000억 엔, 16조 3000억 엔 규모를 이뤘다. 기금형만 따로 보자면 EPF가 15조 엔 수준(2001년에는 57조 엔 규모였다)이며 DBP 기금형은 따로 통계를 내지 않아 알 수 없다.
KIRI는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기금형 가입자 수는 DBP와 EPF의 DB형 가입자 중 약 52%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EPF에서 이탈한 가입자들이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며 “2020년 기준으로 DBP 기금형과 규약형 도입률이 각각 19.5%, 41.9%로 기금형 도입률이 낮다”고 분석했다.
기금형 도입률이 감소한 이유에 대해서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자산운용 실패로 인한 EPF의 부실화, AIJ 퇴직연금기금 사기 사건에 따른 EPF 폐지 등으로 기금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KIRI의 분석처럼 일본의 기금형 제도가 감소한 데는 AIJ 퇴직연금기금 사기 사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2년 운용회사가 자금을 불법 투자해 가입자의 은퇴 자산이 사라지고 연기금이 연쇄 파산한 사건이다. 당시 AIJ투자자문사(이하 AIJ)에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맡긴 퇴직연금기금(EPF) 자산을 AIJ가 파생금융상품 등 대체상품에 불법 투자했다가 원금의 90%를 잃었다. 84개의 EPF 연기금과 약 88만 명의 중소기업 가입자가 맡긴 연금자산 1458억 엔 중 1377억 엔이 사라졌다. 이에 AIJ에 운용을 맡긴 퇴직연금기금이 연쇄 파산했고, 은퇴자금을 맡긴 가입자들이 노후 파산을 직면해야 했다.
시사점은 ‘관리 감독의 중요성’이다. 앞서 살펴본 미국, 호주, 영국은 모두 수급권보호와 수탁자 규제를 강하게 하고 있었다. KIRI는 “후생노동성과 금융청으로 나뉘어 있었던 연기금 감독 기관의 협력체계 부재와 역할 분담의 불투명, 감독 당국 정보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며 “연기금 대부분이 비전문가에 의해 자산운용 등의 주요 의사결정을 수행했고, 위험자산 비중 확대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 정부는 수급권 보호와 수탁자 규제 강화를 위해 후생노동성의 자산운용 방법을 개선했고, 사후감시 기능 강화를 위해 퇴직연금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금융청의 금융상품거래법규 개정 등을 시행했다.
원금 까먹는 디폴트 옵션?
미국이나 호주가 퇴직연금으로 백만장자를 꿈꾸게 한데는 디폴트 옵션의 도입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일본은 디폴트 옵션 정착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19년에는 퇴직연금 자산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우리나라에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할 당시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이 ‘원금 보장형’ 상품을 두느냐 마냐다. 당시 연금 가입자의 자금 보호를 위해 원금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일본처럼 디폴트 옵션을 선택할 때 ‘예금’이라는 선택사항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퇴직연금을 어떻게 굴려 수익률을 낼 건지 선택하는 제도인 디폴트 옵션에서 ‘예금처럼 둔다’는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다. 원금 보장을 원하는 가입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측면도 있겠으나,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이유가 ‘수익률을 높여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일본 정부는 2016년 확정기여연금법 개정을 통해 디폴트 옵션 제도 안착을 다시 시도했다. 법 개정 전까지는 신규 가입자의 디폴트 옵션 선택 비율이 15% 수준이었으며, DB형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96% 이상이 디폴트 옵션으로 ‘원금보장형’ 상품을 지정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연금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DBP 자산은 기금형과 규약형 모두 원리금 보장형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디폴트 옵션에서 장기투자에 적합한 상품을 지정하도록 디폴트 옵션의 정성적 기준과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 교육에 중점을 둔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다.
송 씨는 부동산 중심으로 노후 대비를 해왔다. 작년부터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인해 현금흐름에 차질이 생긴 송 씨는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를 고민하던 중 노후 현금흐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국민연금 수급 금액을 늘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
2022년 10월 국민연금공단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자는 622만 명이다. 노령연금 최고 월 수급 금액은 249만 원이며, 노령연금 수급 최고령자는 94세다. 가장 오랫동안 연금을 받는 사람은 29.8년째 연금을 수령 중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이 기록들은 계속 갱신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별로 보험료 납부 방식이 다른데, 이를 조절해 국민연금 수령액을 늘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국민연금 가입자 구분
국민연금 가입자는 사업장가입자, 지역가입자, 임의가입자, 임의계속가입자로 구분한다. 사업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대상 연령은 만 18세 이상 60세 미만이지만 임의가입자와 임의계속가입자는 60세 이상도 가능하다.
가입자별 기준소득월액 및 보험료
기준소득월액은 실제 소득총액에서 비과세 소득을 제외한 금액을 말한다. 국민연금 사업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전원(납부예외자 제외)의 평균소득월액의 3년간 평균액이 변동하는 비율을 반영하여 매년 3월 말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며, 해당 연도 7월부터 1년간 적용한다. 2022년 7월 1일부터 2023년 6월 30일까지 적용할 기준소득월액은 최저 35만 원에서 최고 553만 원이다. 가입자의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국민연금보험료 납부 기준이 되는 소득월액은 553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
국민연금보험료는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에 연금보험료율을 곱하여 산정한다. 국민연금보험료의 보험요율은 9%다. 사업장가입자는 9%의 보험료를 사용자와 근로자가 4.5%씩 반반 부담한다. 지역가입자·임의가입자·임의계속가입자는 보험료를 본인이 전액 부담한다.
반환일시금 반납제도
반환일시금은 60세 도달, 사망, 국적상실, 국외이주 사유로 더 이상 국민연금 가입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고 연금 수급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경우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급여다. 주의해야 할 점은 반환일시금은 수급권이 발생한 날로부터 5년 안에 청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지급받을 수 없다. 5년이 지나면 일시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권리는 소멸되지만 향후 연금 지급 사유가 발생할 때에는 소멸분도 포함하여 연금으로 지급된다. 2018년 1월 25일 이후 지급연령 도달 사유 반환일시금 소멸시효는 10년으로 연장되었다.
반환일시금을 받은 경우라도 가입자 자격을 다시 취득한 자가 종전에 수령한 반환일시금에 소정의 이자를 가산하여 반납할 경우 가입 기간을 복원해주는 것이 반환일시금 반납제도다. 이는 연금 혜택을 확대하고자 하는 쥐지로 시행하고 있으며, 강제사항은 아니다. 반납금은 전액을 일시에 납부하거나, 금액이 클 경우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다.
국민연금에서 받는 연금액은 가입 기간에 비례해서 늘어난다.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가 되었을 때부터 꾸준히 국민연금보험료를 납부했다면 연금보험료 추후납부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 가입자였지만 사업 중단, 실직, 전업주부 등의 사유로 국민연금 가입 적용 제외 기간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추납제도를 활용하면 연금액을 늘릴 수 있다. 추납 대상 기간 한도는 최대 10년이다. 추납 대상 보험료로 납부해야 할 금액은 추후납부를 신청한 날이 속하는 달의 연금보험료에 추납하고자 하는 기간의 월수를 곱한 금액으로 산정한다. 다만 임의가입자가 추납보험료를 신청할 경우, 추납보험료 산정을 위한 연금보험료 상한은 A값(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3년간 평균 소득월액, 2023년 A값은 286만 1091원)의 9%를 초과할 수 없다. 추납보험료는 전액을 일시에 납부하거나, 금액이 클 경우 월 단위 최대 60회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다.
평균수명 증가와 자산시장 불투명성 증가로 안정적인 노후 현금흐름 확보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갈수록 연금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종신토록 연금을 지급하고, 본인 사후에는 유족연금까지 지급하는 공적 연금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이번에는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본다. 호주 퇴직연금 계좌 보유자는 근로자 수보다도 많으며, 대형 기금을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연금 백만장자 만든 ‘슈퍼애뉴에이션’
호주에 연금계좌 잔액이 백만 달러가 넘는 ‘연금 백만장자’가 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잔액이 100만 호주달러(약 8억 7000만 원) 이상인 퇴직연금 계좌는 2만 677개로 2015년 대비 약 8배 증가했다.
1992년 7월 도입한 퇴직연금 상품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은 연 8% 수익률을 내며 근로자들의 은퇴 후 안전망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월 소득 450호주달러 이하의 소득을 얻는 근로자, 18세 미만의 비정규 근로자, 65세 이상 근로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의무적으로 슈퍼애뉴에이션에 가입을 해야 한다. 또한 근로자 가입이 원칙이지만, 기금에 따라서 배우자 명의로도 가입할 수 있다.
호주 퇴직연금의 특징은 기초연금을 보완하기 위한 상품으로서 사용자(고용주) 부담률을 지속해서 인상했다는 점이다. 처음 도입했을 때는 고용주가 월급의 3%를 의무적으로 근로자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야 했는데, 2022년에는 10.5%까지 높아졌다. 오는 2025년에는 12%까지 오른다.
다양한 기금 선택권 보장, 규모의 경제 이뤄
호주의 퇴직연금은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공적기금이 있다. 정부기관 공무원과 공공부문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으며, 가입 후 공공부문 일자리를 그만두더라도 기여금은 계속 낼 수 있다.
다음으로 가장 보편적인 기업형 기금이 있다. 슈퍼애뉴에이션의 원형으로, 기업이 자체적으로 기금을 설립한다. 여러 기업의 퇴직연금을 묶어서 운영할 수 있고, 가입자는 다른 기금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특정 산업에 속한 근로자가 가입할 수 있는 산업형 기금이 있다. 다만, 현재는 근로자가 아닌 일반인도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소매형 기금도 있다. 이 상품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금융자문서비스 비용을 내면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관리기금이 있다. 최대 6명까지 가입할 수 있고, 가입자가 직접 기금 설립, 운영 등 모든 부분을 책임진다. 이 상품은 주로 가족 단위로 가입이 이뤄지며, 주로 부유층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KIRI(보험연구원)는 호주 퇴직연금에 대해 “기금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점이 특징”이라면서 “기금 투자수익률 및 수수료는 기금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규모의 경제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대형기금 중심으로 운영되면서도, 금융회사를 수탁자로 포함해 소비자가 개인의 선호에 맞게 다양한 기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물론 근로자라면 슈퍼애뉴에이션에 자동으로 가입이 되겠지만, 동시에 산업형과 소매형 기금에 중복 가입도 할 수 있다. 2021년 기준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규모는 3조 3100억 원 호주달러 수준이다. 2017년 대비 33.8% 증가했다.
이렇게 다양한 기금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금의 활발한 합병 활동 때문이다. KIRI는 “감소세가 가장 두드러진 기업형 기금 개수는 2004년 1088개에서 2021년 14개까지 급감했다”면서 “기업형 기금 적립금은 소매형이나 산업형 기금으로 이전되었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운영관리비는 낮아지는 대신 투자상품 옵션이 많고 운용전문가가 많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기금 간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의 연금 수익률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호주금융감독원(APRA)는 매년 일정 수준 이하의 수익률을 내는 수탁법인을 발표한다. 2021년부터는 최하위 수익률을 낸 곳은 시장에서 퇴출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퇴직연금으로 재테크를?
호주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확정기여형(DC형) 기금형 중심으로 운영된다. 2020년 DC형 계좌 수는 약 2200만 개로 자기관리기금을 뺀 퇴직연금 계좌 중 95%를 차지하고 있다. 적립금 기준으로는 약 79%가 DC형이다. 계약형인 퇴직저축계좌(RSA) 상품이 있지만, 호주 퇴직연금 시장에서 이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대형 기금을 중심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퇴직연금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민이 많다. 호주 국세청(ATO)에 따르면 2020년 퇴직연금 계좌를 보유한 호주 국민은 약 1700만 명으로 근로자 수(1291만 명)보다 많았다. ‘퇴직’ 연금이지만 근로자 수보다도 많은 계좌가 운영될 수 있는 건 앞서 언급했듯 여러 상품을 중복으로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자가 아니어도 소매형이나 산업형 기금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ATO에 따르면 퇴직연금 계좌를 1개만 보유한 사람은 1260만 명이고, 2개 이상의 퇴직연금 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약 450만 명이다.
호주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8.5%를 기록했다. 유형별로 보면 2021년 기준 최근 10년 투자수익률은 산업형이 8.6%, 공적 기금이 8.1%, 기업형이 7.5%, 소매형이 6.8% 수익률을 보였다. KIRI는 “산업형 기금의 중장기 투자수익률이 다른 퇴직연금 기금에 비해 높은 것은 기금 규모가 클수록 규모의 경제가 작용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높은 투자수익률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호주 퇴직연금 수익률이 계속 높아질 수 있었던 건 2013년 6월 도입된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의 역할이 컸다. 수탁회사들이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절하게 자산을 배분하면서 수익률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슈퍼애뉴에이션 가입자의 약 80%가 디폴트 옵션을 이용하고 있다.
2021년 호주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은 70% 이상이 주식, 채권 등의 금융자산에 투자되고 있다. 부동산 등의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미만이다. 자산은 해외주식 28%, 호주주식 23%, 호주채권 10%, 해외채권 8%, 부동산 8% 등 다양한 자산으로 분산투자되고 있다.
수익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수수료는 낮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0년 기준 수수료를 보면 공적 기금이 0.5%, 기업형과 산업형이 0.6%, 소매형이 0.8%다. 자기관리기금의 수수료는 1.2% 수준으로 가장 높다. KIRI는 “가입자 수와 기금 규모가 작으면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지 않아 수수료 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빵의 빵자도 몰랐는데, 제빵 일을 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박승희(74) 씨는 경기도 성남시 ‘마망 베이커리&카페’(이하 ‘마망’)의 창업 멤버이자 터줏대감이다. ‘마망’은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 일자리) 민간형 사업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2005년부터 성남시와 수정노인종합복지관이 공동으로 운영하며,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04년 박승희 씨는 거주 지역에 빵집이 생긴다는 소식과 함께 ‘베이킹을 배워보라’는 딸의 제안을 들었다. 빵에 관심은 없었지만, 취미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박 씨는 빵집을 찾아갔다. 그 빵집이 바로 지금의 ‘마망’이다. 박승희 씨는 “베이커리 이름인 ‘마망’도 딸이 지어줬다.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마망’에서는 제빵 일 희망자에게 성남시 근로자종합복지관을 소개해줬다. 제빵·제과 교육을 듣고 자격증도 취득할 것을 권했다. 박승희 씨는 제과기능사 자격증은 2005년 8월, 제빵기능사 자격증은 2006년 4월 각각 취득했다. 이에 대해 “필기시험은 책을 사서 공부했고,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실기시험은 제과기능사는 한 번에 붙었는데, 제빵기능사는 두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제빵기능사 첫 번째 시험을 볼 때는 과제가 버터톱식빵이었어요. 빵이 봉긋하게 올라와야 하는데 주저앉아서 떨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시험을 볼 때는 시간이 많이 촉박했어요.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최선을 다해서 빵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빵을 끝까지 익혀서 꺼내놓고 나왔더니 합격했습니다. 그때 임신한 분이 저와 끝까지 남아 있었는데, 그분도 합격하셨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그렇게 박승희 씨는 본격적으로 ‘마망’의 제빵사가 됐다. 어떤 빵이 가장 자신 있냐고 묻자 “우리 매장에서는 단과자빵인 소보로빵, 단팥빵이 인기가 많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그는 “‘마망’의 진짜 제빵사는 젊은 강사님”이라고 표현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장이다 보니 강사가 전체적인 관리·감독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로 강사님이 빵 반죽을 합니다. 1차 발효가 되면, 엄마(근로자)들이 빵을 만들어 발효실에 갖다놓는 것까지 하죠. 이후 빵을 굽는 것은 강사님이 하시고, 포장은 엄마들이 합니다. 우리는 60세 이상부터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년까지 직원 중에 90세 넘은 분이 있었고, 지금은 제일 나이 많은 분이 83세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깜빡깜빡하잖아요. 그래도 빵 레시피가 큰 글씨로 써 있고, 강사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박승희 씨는 베이커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초기에는 빵이 안 팔려서 만든 사람들이 사가곤 했다. 그렇게 열악한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되고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마망’이 장학금 지원사업을 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70대 나이까지 즐겁게 일하고 있어 행복하다.
“저는 빵 만드는 게 재밌고 즐거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했겠죠? 제가 만든 빵을 손님들이 먹고 ‘맛있다’고 하면 소소한 보람을 느낍니다. 또 제 일의 장점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고, 근무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노인 일자리 사업이기 때문에 저는 ‘마망’에서 하루 5시간만 일하고, 한 달에 많아야 11번 출근해요. 60세 이상 분들에게 노인 일자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라고 추천합니다!”
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동자들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즉, 중장년에겐 퇴직 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질 제2의 직업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월 취·창업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중장년 유망 직업에 대해 조사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니어가 알아야 할 유망 직업을 하나씩 소개해나가려 한다. 그 두 번째 순서로 ‘기업재난관리자’에 대해 알아봤다.
◇ 기업재난관리자, 왜 유망할까?
정부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을 만들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기업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의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에서 10억 원 이하의 벌금까지 강력한 처벌이 이뤄진다. 기업의 발전과 매출 증가도 중요하지만 근로자의 안전과 국민들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지키게끔 한 것이다. 이렇듯 근로자의 안전을 강조하게 되면서 ‘기업재난관리자’가 유망 직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후 많은 산업분야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에 많은 기업에서 기업재난관리자를 채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실제 사고를 예방하거나 잘 수습하기 위해 재난관리자의 역할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
재난은 예측불허로 일어나 자칫 기업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난 발생 시 사고 대응 및 2차 피해 방지는 물론 사업이 지속 운영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기업재난관리자’는 이렇듯 기업에 닥친 각종 재난을 비롯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련의 기획 및 대응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상세 업무로는 실무자 활동, 리스크 평가, 교육 및 훈련 계획 수립, 시스템의 지속적 개선을 위한 운영, 재해 경감 활동 계획 수립을 위한 컨설팅, 재해 경감 우수기업 인증평가 활동 등이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함께할 미래, for 5060 신직업’ 보고서를 통해 “기업 차원에서는 재난이 발생하였더라도 기업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고 경영과 업무가 원활히 진행돼야 한다. 재난 발생은 비단 기업 내의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제적인 대응과 체계적인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는 재난의 범위가 사이버보안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예방과 대응 전략도 고도화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기업재난관리자를 유망 직업으로 꼽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재난관리자는 업계에서 약 300여 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은 “많은 산업 분야에 중대재해 처벌법이 적용되며 앞으로는 더 많은 기업재난관리자가 필요할 것”이라 내다봤다. 고용노동부 ‘2020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실내에서 업무가 이뤄져 작업 강도 또한 가벼운 편이며, 직업 숙련 기간은 2~4년 정도다. 직접적으로 재난 현장에서 작업하는 인력이 아닌, 자료 수집 및 데이터를 통한 계획 수립 등을 수행하므로 체력에 대한 우려가 있는 중장년도 도전해볼 만하다.
기업재난관리자의 상세 업무
1) 기업을 분석하여 목표와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재난관리정책과 법적 요구사항을 정립
2) 기업의 핵심 업무를 파악하기 위한 업무영향분석(BIA) 수행
3) 기업의 위험 식별·분석 및 물리적·기술적·시설적·경영적 취약성 평가와 발생 빈도, 영향의 크기 분석을 통해 핵심리스크 산정
4) 기업의 주요 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작성 및 운영
5) 기업의 재난(사고)대응체계와 사업연속성 확보계획 수립
6) 수립된 재난(사고)대응체계와 사업연속성 확보계획에 대한 모의훈련 계획, 수행 및 평가
7) 기업의 재해경감활동 및 사업연속성 절차에 관한 모니터링 및 평가, 내부감사
8) 기업의 재해경감활동에 관한 지속적 개선과 문화 확산에 관한 업무 수행
◇ 기업재난관리자, 나도 될 수 있을까?
기업재난관리자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국가자격인 ‘기업재난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유사 국가자격증으로는 ‘산업안전기사’, 민각자격에는 ‘재난관리사’, ‘재난 안전지도사’, ‘재난안전관리사’ 등이 있다. 기업재난관리사(국가자격)의 경우 기업재난경감협회에서 위탁 시행하며, 대한안전교육협회, 한국방재협회, 한국산업관계연구원, 한국재난안전기술원 등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10개 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
기업재난관리자 시험 및 교육 과정은 크게 세 분야(△재해경감활동 실무분야 △재해경감활동 계획 수립 대행분야 △우수기업인증 평가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맞는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해당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교육은 관련 분야 종사를 희망하는 이라면 누구나 시청 가능하다. 즉, 시험 응시 자격 역시 특별한 제한이 없다는 얘기다. 재난안전시설과, 재난건설(토목)안전과, 재난안전시스템학과, 재난소방과 등 관련 학과를 나왔거나 사내에서 재난 및 안전 관리 담당 업무를 맡고 있다면 유리하거나 유용할 수 있다.
먼저 재해경감활동 실무분야에서는 기업에서 재해경감활동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이 이뤄진다. 교육과정이 유사한 재해경감활동 수립대행분야에서는 기업의 재해경감활동 계획 수립을 대행한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우수기업인증 평가분야의 경우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평가를 대행할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한다. 교육 및 시험 과목에서도 다른 두 분야에서 다루는 실무와 다른, 인증제도의 이해 및 심사 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처음부터 세 분야에 모두 응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순서상으로는 실무분야 취득 후 대행분야에 응시 가능하고, 대행분야까지 취득해야 평가분야에 응시할 수 있다(관련 교육 이수 필수). 주로 실무분야의 경우 현재 기업 내에서 안전, 리스크 관리 직군에 있거나 채용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응시한다. 컨설턴트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면 대행분야 또는 평가분야가 적합하다.
올해 시험은 실무분야 4회(상반기 1회, 하반기 3회), 대행분야 2회(상반기 1회, 하반기 1회), 인증분야 2회(하반기 2회)로 예정돼 있다. 관련 기관에서도 이에 발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으니, 목표로 하는 시험 일정에 따라 등록해두면 좋다. 교육 기간은 기관과 분야에 따라 일주일~한 달 내외로 진행된다. 가장 빠른 시험이 4~5월에 진행 예정이니, 관심이 있다면 서둘러 교육 과정을 살펴보길 권한다.
기업재난관리사 시험 위탁 기관인 재해경감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성수 숭실대학교 교수는 “시험 합격자의 70%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현재까지 응시자 추이는 변동 없이 꾸준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추후 응시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합격률은 실무분야 70~80%, 대행분야 10~20%, 인증분야 70~80% 정도다. 합격 인원으로 보면 실무분야는 약 1200명, 재해분야는 약 150명, 인증분야는 70여 명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장년은 대체로 은퇴를 앞두고 많이 취득한다. 장치산업, 생산, 기계, 건축·토목, 금융 등 업종별 특성이나 재무회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 초년생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층이 유리하다고 본다. 아직 취업시장 활성화가 덜 되었지만, 법 제정 등으로 인한 수요에 따라 점차 활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영국의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본고장이자, 가장 복잡한 연금 개혁 과정을 거친 나라다.
퇴직연금 전문 운용 공공기관 NEST
영국 퇴직연금의 특징 중 하나는 국민연금처럼 퇴직연금을 전문으로 운용하는 공공기관이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는 2008년 퇴직연금법을 제정하고 2012년 퇴직연금 전문 운용 공공기관인 국가퇴직연금신탁(NEST, National Employment Savings Trust)을 도입했다.
NEST는 일반 DB·DC형 퇴직연금과는 별개로 운영된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보험료율 4%, 3%를 내면 정부가 소득세 일부를 근로자의 연금계좌에 환급해주는 형태다. 일반 DB·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는 자동으로 NEST에 가입된다. 가입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면 가입 후 해지가 가능하다.
퇴직연금 가입자 약 2300만 명 중 절반가량은 NEST를 이용하고 있다. 2015년 200만 명이었던 NEST 가입자는 2022년 1분기 기준 1110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4억 2000만 파운드(약 6671억 원)였던 NEST 운용자산은 241억 파운드(약 38조 원)가 됐다. 또한 NEST는 분기, 연간 보고서를 통해 투자 비중과 종목을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2012년 46.5% 수준이었던 전체 퇴직연금 근로자 가입률은 2021년 79.4%로 올랐다. 퇴직연금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질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는 데는 역시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NEST 가입자의 99%는 영국의 디폴트 옵션 상품인 RDF(우리나라의 TDF)를 이용한다. RDF2040 기준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9.9%에 달한다.
RDF는 30년을 기준으로 4단계에 걸쳐 운영된다. 1단계에서는 약 5년간 기여금을 쌓고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2단계에서는 약 15년간 물가상승률에 3%포인트 이상 수익률 달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주식 투자 비중이 가장 높다. 3단계에서는 10년간 채권 비중을 늘려 안정을 추구한다. 4단계는 은퇴 후 단계로 투자자가 퇴직연금을 한 번에 찾거나, 사망 시까지 연금 형태로 받는 것 중 선택할 수 있다.
저소득층 가입 유도한 낮은 수수료
NEST의 연간 운용 수수료는 0.5%다. 저소득층의 퇴직연금 가입을 늘리기 위해 낮은 수수료 정책을 유지한 것. 또한 영국 정부는 2001년 중저소득층 근로자를 위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한 DC형 연금인 ‘스테이크홀더 연금’을 별도로 만들기도 했다. 이에 30%가 넘던 영국의 노인빈곤율은 절반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 기조를 따라 다른 퇴직연금 수수료도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고 있다. 2020년 기준 DC형과 기금형 평균 수수료는 0.48%, 0.49%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DC형 퇴직연금 수수료를 최대 0.75%까지만 받을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KIRI(보험연구원)는 “퇴직연금 수수료가 낮을 수 있는 것은 FCA(Financial Conduct Authority)가 퇴직연금에 자동 가입된 사람에게 신규 컨설턴트 비용을 부과하지 못 하게 했기 때문”이라면서 영국의 퇴직연금 운용 수수료가 낮은 것은 “정부의 적극적 수수료 규제와 함께 저소득층의 퇴직연금 가입을 확대하기 위한 NEST의 낮은 수수료 정책 등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자동 가입, 낮은 운용 수수료, 높은 수익률 등에 힘입어 퇴직연금 납부자는 DC 기금형이 2016년 388만 명에서 947만 명으로 늘었으며, DC 계약형은 417만 명에서 536만 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DB 기금형은 125만 명에서 50.5만 명으로 줄었다. 1998년 퇴직연금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았던 DB형에서 DC형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KIRI는 “2016년~2021년 동안 제도 수는 감소하고 가입자 수는 증가해 기금의 대형화 추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금형과 계약형의 공존, 대세는 DC형
영국의 퇴직연금은 기금형이 우위에 있지만, 계약형이 공존한다. 기금형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모두 선택할 수 있지만, 계약형은 DC형만 있다.
영국의 퇴직연금은 기금형이 강세를 보인다. 동일직장 내 구성원들이 단체로 가입하는 그룹 개인연금, 스테이크홀더, 일반 개인연금의 경우 기금형과 계약형 중 선택할 수 있는데, 12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DC 기금형을 주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는 2만 8360개의 퇴직연금 기금이 있으며, 이 중 94%가 12인 미만의 소규모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DC 기금형의 특징은 여러 펀드를 조합한 상품인 조합형 펀드(PIV)에 주로 투자한다는 점이다. 2021년 4분기 기준 DC형 퇴직연금의 PIV 투자는 2230억 파운드, 직접투자는 190억 파운드로 PIV 비중이 96% 수준을 보였다. 한편 계약형의 평균 가입자 수가 기금형보다 큰 것은 비용을 이유로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이 계약형을 활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 외에 대표적인 영국 퇴직연금 기금형으로는 통합기금형(Master Trust)이 있다. 여러 회사의 퇴직연금을 하나의 운용 주체에 위탁하는 것인데, 2017년부터 시행했다. 영국에는 37개의 통합기금이 있으며, 가입자는 1600만 명, 자산은 360억 파운드(약 57조 원) 규모다.
수급권 보호는 이중, 관리·감독도 철저히
영국도 미국처럼 퇴직연금이 자리 잡는 데에 수급권을 보호하고 연금 운용을 관리·감독하는 제도가 한몫했다. 영국의 수급권 보호는 이중으로 설계되어 있다.
영국은 2004년 연금법을 통해 수급권보호를 위한 FAS(Financial assistance Scheme)를 설립했다. FAS는 DC형 제도와 2005년 4월 이전에 설립된 DB형 제도를 보장한다. 2005년 4월 이후 설립된 DB형 제도는 연금보호기금(PPF, Pension Protection Fund)에서 보장한다. 세금으로 운영하던 FAS는 2016년 폐지되었고, 이제는 우리나라의 예금자 보호제도와 유사한 FSCS(Financial services Compensation Scheme)가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PPF는 2021년 기준 939개의 연금제도를 인수해 361억 파운드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PPF는 DB형 펀드의 부족분을 지급해주는 펀드로 27만 명 이상의 근로자와 퇴직자를 보호하고 있다.
영국 퇴직연금 관리·감독은 연금노동부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2004년 연금법에 따라 2005년 설립된 연금감독청(TPR, The Pension Regulator)은 신탁형 퇴직연금 규제, 수탁자 역할과 의무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하고 있다. FCA는 금융회사의 영업행위를 감독하는 기관으로, 2007년 이후 DC형 퇴직연금을 제공하는 사업자와 판매업자를 규제하고 있다.
이런 수급권 보호와 더불어 운용위원회와 각종 자문 기관이 영국 퇴직연금 시장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DC 계약형은 기금형의 기금운용위원회에 해당하는 ‘독립운용위원회’(IGC)를 설치해야 한다. IGC는 운용 주체인 사업자가 연금 가입자에게 비용에 맞는 편익을 제공했는지, 투자상품이 적절한지 등을 평가한다. 또한 자문 기관들은 NEST를 포함해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연금 운용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본다. 기금형 연금으로 ‘평범한 근로자도 은퇴하면 백만장자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401K’ 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신탁 핵심인 기금형 퇴직연금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주로 계약형으로 이뤄져 있다. 기업이나 근로자가 은행, 보험,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구조다. 하지만 미국, 호주 등 연금 관리 선진국은 퇴직연금이 주로 기금형으로 이뤄져 있다. 기금형은 전문 위탁기관과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처럼 별도 조직이 운용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여러 사업장이 참여하는 연합형 퇴직연금 기금 등도 가능해진다.
또한 기금형은 수탁법인 즉, 대리인(기금)으로 기금운용위원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위원회가 노사의 의견을 반영해 기금을 직접 혹은 위탁해 운영한다. 계약형은 운용과 자산관리 모두 외부 금융회사에 위탁하면 금융감독원이 관리·감독한다. 반면 기금형은 운용 업무는 수탁법인이 직접 하거나 위탁하고, 자산관리 업무는 위탁하는 구조다. 자산운용지침서인 투자원칙보고서를 작성해 운영하며 관리·감독은 고용노동부가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약형과 기금형의 차이는 운용위원회가 있는지에 따른다고 볼 수 있으나, 계약형에서도 적립금운용위원회와 같이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때에 따라 혼합형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기금형 제도를 운용하지만, 계약형을 따로 규제하고 있지는 않다. KIRI는 보고서에서 “선진국에서 두 지배구조는 공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법적으로 계약형만 가능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퇴직연금 주체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어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기금형 퇴직연금은 다시 신탁형과 보험형으로 나뉘고 어느 유형이든 지명수탁자를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 지명수탁자는 기금 운영과 관리에 책임을 지는 관리자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금융 상품 선택하는 DC형 늘어
퇴직연금에 기여금을 내는 미국의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2019년 기준 9810만 명에 이른다. 자산 규모는 2019년 기준 10조 달러 이상이다. DB형(확정급여형)이 3조 2744억 달러, DC형(확정기여형)은 7조 4326억 달러 수준으로 나타났다. KIRI는 “평생 노후를 보장하는 형태로 DB형을 운영하다가 최근 산업구조와 경기 변화 등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고자 DC형으로 전환 중”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퇴직연금은 회사가 기금을 만들어서 퇴직연금 관리회사, 자산운용사, 보험회사 등 금융회사와 협업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DB형은 기금이 자산을 전적으로 운용하고, DC형은 가입자의 운용 지시에 따라 기금이 운용하되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운용상품을 선별해 제시한다. DC형 금융상품은 주로 뮤추얼펀드, 국공채, 원리금 보장형 상품 등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디폴트 옵션은 DC형에서 적용되는 것으로 가입자가 연금을 방치할 경우, 사전에 동의한 대로 전문기관에서 사전에 정한 상품으로 운용하는 ‘사전지정운용’ 제도다. DC형 비중이 높아서인지 미국 퇴직연금은 자산운용을 주식, TDF(타깃데이트펀드) 등 고수익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특징이 있다. 2018년 기준 401K의 자산 배분은 전체 5.2조 달러 중 약 63%인 3.3조 달러가 뮤추얼 펀드에 투자되고 있었다. 또한 전체 뮤추얼펀드 중 58%가 주식형 펀드에 투자되고 있다. KIRI는 “20년 장기로 보면 DB형이 DC형보다 조금 더 수익률이 높았지만, 10년 이내 평균 수익률에서는 DC형이 조금 더 높았다”며 두 제도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평가했다.
자동으로 가입되는 연금 ‘401K’
미국의 은퇴자들이 노후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미국의 DC형, 일명 ‘401K’로 퇴직연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401K 백만장자’를 목표로 투자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투자 과정을 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렇게 DC형 연금이 발전하게 된 데는 여러 법 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 제정된 ERISA법(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은 DC형 발전의 계기가 됐다. DC형 퇴직연금을 401K라고 부르는 것은 ERISA법 401조 K항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세액공제 역시 DC형의 성장을 이끌었다. 1978년 제정된 미국 내국세입법은 401K에 가입하면 소득세 이연 및 연간 1만 4000달러 한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기업이 근로자의 401K에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면 법인세를 공제해주기도 했다.
2006년 제정한 연금보호법은 DC형 성장에 불을 붙여 퇴직연금 가입액이 늘고 운용 수익률도 높아지는 결과를 냈다. 연금보호법은 모든 근로자가 자동으로 401K에 가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근로자가 가입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일단 자동가입 후 탈퇴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 이를 해지하는 근로자가 많지 않아 정책 효과가 컸다고 분석한다.
연금보호법에서는 근로자의 임금 인상에 따라 적립률도 올라가는 ‘자동인상 제도’도 도입했다. ‘SMarT: Save More Tomorrow’라고 불리는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근로자들의 적립률은 3년 뒤 약 4배 정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2005년 2조 3930억 달러였던 퇴직연금 자산은 2019년 말 7조 달러가 넘는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여기에 디폴트 옵션으로 자동 투자까지 이뤄지면서 수익률에서도 성과를 보였다. 자산운용사 뱅가드에 따르면 2020년 401K의 평균 수익률은 15.1%이며, 5개년 누적 수익률은 11%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시와 보호 정책도 강하게
미국 퇴직연금의 특징은 감시기능과 수급권보호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퇴직연금 운영을 자율에 맡기는 형태에서 지명·신탁수탁자가 의무를 위반할 경우를 대비해 연금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서 작용한다.
먼저 근로자와 고용주, 소유자와 연금사업자 사이 이익 충돌 방지를 위해 연금계리사 등 제삼자 감시기능장치를 두고 있다. 책임준비금 등 연금 수리에 있어서 연금계리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ERISA법(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에서는 “등록연금계리사 합동위원회에 등록된 연금계리사를 고용해 매년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1974년 DB형 퇴직연금 가입자 보호를 위해 연금지급보증공사를 연방정부 기관으로 설치했다. 기업이 파산 등으로 인해 퇴직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 공사에서 지급하도록 한 제도다. 수탁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수탁자보증보험과 수탁자책임보험을 ERISA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탁자보증보험은 수탁자가 의무 이행에 불성실했을 때 연기금과 연금수급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수탁자책임보험은 수탁자의 과실, 태만뿐 아니라 일반적인 행위에 의해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도 보험 가입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가입 여부는 자율이다.
올해 퇴직 예정인 손 씨는 퇴직 후 재취업 등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원하고 있다. 또한 손 씨는 현재 가입 중인 연금계좌의 적립금을 연금으로 수령하지 않고 납입을 계속하며 세액공제 혜택을 보려고 한다. 손 씨는 2023년부터 퇴직소득세와 개인연금 관련 등 제도 변화가 많다는 뉴스를 보고 상담을 신청해왔다.
퇴직소득공제 확대
퇴직급여에 대한 세금은 퇴직소득금액에서 퇴직소득공제와 환산급여공제를 적용해 과세표준을 구한 다음 과세표준 금액별 세율을 곱해 환산 산출세액을 계산하고, 이를 근속연수로 나누어 최종 퇴직소득세를 산출한다.
근속연수 20년에 퇴직소득금액이 1억 원인 손 씨가 올해 퇴직한다면 퇴직소득공제되는 금액은 4000만 원(1500만 원+250만 원X(20년-10년))이고 납부해야 할 퇴직소득세는 112만 원이다. 만약 같은 조건(20년 근속, 퇴직소득금액 1억 원)으로 손 씨가 작년에 퇴직했다면 퇴직소득공제는 1200만 원이고 퇴직소득세는 268만 원이었을 것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적용되는 퇴직소득공제가 대폭 확대됨에 따라 퇴직소득세 절세 규모 역시 증가했다. 바뀐 퇴직소득공제는 2023년 1월 1일 이후 퇴직자부터 적용한다.
연금계좌 세제혜택 확대
세액공제받을 수 있는 연금계좌(DC, IRP, 연금저축) 납입 한도가 늘어났다. 작년까지 세액공제받는 연금계좌 납입액은 50세를 기준으로 한도가 달랐다. 50세 미만이면 연금저축 연간 400만 원, IRP까지 합하면 연간 700만 원까지, 50세 이상이면 연금저축 연간 600만 원, IRP까지 합하면 연간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총급여 1억 2000만 원(종합소득금액 1억 원) 초과자는 연령에 관계없이 연금저축 연간 300만 원, IRP까지 합하면 연간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했다.
올해부터는 연령 및 총급여 1억 2000만 원(종합소득금액 1억 원) 초과 기준이 없어졌다. 2023년 1월 1일부터 연금계좌 납입분은 연령과 소득에 관계없이 연금저축 연간 600만 원, IRP까지 합하면 연간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소득에 따른 세액공제율(15% 혹은 12%)은 기존에는 총급여 5500만 원(종합소득금액 4000만 원) 이하이면 납입액의 15%를, 총급여 5500만 원(종합소득금액 4000만 원) 초과자이면 납입액의 12%였다. 올해부터는 세액공제율 적용 종합소득금액 기준이 4000만 원에서 4500만 원으로 상향되었다.
연금계좌 납입 시 세제혜택 확대와 연금계좌 수령 시 세제혜택도 추가되었다. 기존까지 연금계좌에서 수령하는 금액 중 연간 1200만 원을 초과하는 연금소득(공적연금은 제외된 금액)은 연금소득 전액을 다른 소득과 종합과세했다. 올해부터는 연금소득 1200만 원을 넘더라도 분리과세(세율 15%)를 선택할 수 있다.
부동산 관련 세제 완화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세부담의 적정화 취지로 과세표준 12억 원 이하 및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폐지했다.
전년도 주택분 세액 대비 일정 비율 초과분에 대해서 과세 제외하는 ‘세부담 상한’의 경우 기존에는 2주택자의 경우 150%, 3주택 이상(조정대상지역 2주택 포함)의 경우 300%이던 것을 올해부터 150%로 일원화했다. 다만 법인의 경우 상한선이 없는 것은 변함이 없다. 또한 1세대 1주택자의 경우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금액을 공시가격 11억 원(기존)에서 12억 원으로, 개인이 보유한 1세대 1주택 외의 일반주택의 경우 기본공제금액을 공시가격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상향하여 세부담을 완화했다.
1세대 1주택 임대소득 과세대상 고가주택은 기준시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인상했다.
대출규제 단계적 완화
기존에는 규제지역 내 LTV(주택담보인정비율) 한도가 20~50%로 제약되었으나 규제지역 내 LTV 한도가 50%로 상향 단일화되었다. 또한 1월 5일부터 서울의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와 용산을 제외하고 전국이 규제지역에서 해제됨으로써 나머지 지역의 LTV가 70%까지 완화되었다. 2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과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도 허용된다. 규제지역 완화에 발맞춰 서민·실수요자(부부 합산소득 9000만 원 이하, 주택가격 9억 원 이하, 무주택)의 대출한도를 4억 원에서 6억 원으로 인상했다. 하지만 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인 DSR 규제는 현행(은행권 40%, 비은행권 50%)대로 유지한다. 참고로 DSR 계산에 사용되는 총부채엔 전세자금대출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 일반신용대출, 자동차할부대출, 카드론 등이 포함된다.
서민·중산층 세부담 완화
근로자의 식사비 부담 완화를 위해 식대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한도를 현행 월 10만 원에서 월 20만 원까지 확대한다. 그리고 소득세 하위 2개 과세표준 구간을 상향 조정했다.
양도소득세 이월과세 기간 확대
배우자·직계존비속 등 특수관계자로부터 증여받은 자산을 양도하는 경우 증여자의 취득가액을 적용해서 양도차익을 계산하여 과세하는 양도소득세 이월과세를 기존에는 증여일로부터 5년 이내 기간의 양도 시에 적용했다. 그런데 2023년 1월 1일 이후 증여받아 양도하는 자산의 경우에는 양도소득세 이월과세 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한다. 이는 특수관계자 간 증여를 통한 양도소득세 회피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취지다.
바뀐 제도를 꼼꼼히 살펴 소중한 노후 자금 설계에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