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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보랏빛 꽃다발로 거친 파도를 다독이는, 해국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의 ‘그리움’) 늦가을 철 지난 동해 바닷가를 서성댑니다.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태풍으로 인해, 엄밀히 말하면 주로 일본과 대만 등을 덮치는 태풍의 여파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달려드는 파도를 보면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라는 구절을 읊조리게 됩니다.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고 소리쳐봅니다. 그런데 시인의 말은 다릅니다. 시인은 뭍 같은 임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라고 장탄식을 했지만, 사실 뭍은, 심지어 잡채만 한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리움을 농축하고 농축해서 만든 꽃다발을 안고 온몸을 열어 으르렁대며 달려드는 파도를 환영합니다. 저 멀리 수평선으로부터 달려와 포말을 일으켰다가 사라지곤 하는 파도를 향해 보랏빛 미소를 건넵니다. 보랏빛 미소의 주인공은 바로 ‘바다 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해국(海菊)입니다. 해국은 거센 바닷바람에 날려 온 한 줌 모래흙이 전부인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사시사철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서 온몸을 드러내놓고 살다가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연한 보라색 꽃을 피웁니다. 꽃송이는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리며 지름 3.5~4cm로 제법 큽니다. 대부분 연보라색 꽃이지만 가끔 순백의 꽃송이도 눈에 띕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높이 30~60cm로 자라는 줄기와 그 끝에 달려 있는 잎은 겨울에도 죽지 않습니다. 줄기는 해가 갈수록 굵어지며 심지어 나무처럼 단단해집니다. 겨울에도 잎과 줄기는 반상록 상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제주도 해안가에서는 늦가을 핀 꽃이 그대로 달려 있기도 하고, 더러는 새로 피기도 합니다.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국이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만 분포합니다. 당연히 어느 해국이 원종(原種)인지 궁금해집니다. 영남대 생명과학과 박선주 교수는 해국을 비롯해 독도에서 자라는 식물의 고향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 연구결과의 하나로 2010년 세계유전자은행에 독도 해국의 염기서열을 등록시켜 독도의 자생식물로 국제적 공인을 받았습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독도와 울릉도는 물론 제주도를 비롯해 동·서·남해안 전역에서 해국이 자라고 있으나, 일본의 경우 일본 서해(우리나라로 보면 동해) 지역에만 분포한다”라고 설명합니다. 또 해국의 분포도 및 개체 수 등으로 미뤄볼 때 한국의 해국이 원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박 교수는 조만간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해국과 일본 해국의 유전자 집단 분석 등을 통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찾아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Where is it? 동·서·남해안을 비롯해 제주도·울릉도·독도까지 전국의 해안가가 자생지다. 그러나 강화도나 영종도 등 인천 인근 서해 바닷가에서는 보기 어렵다. 서해안에서는 적어도 영흥도나 안면도까지 내려가야 한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해국을 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은 일출로 유명한 추암 해변인데,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 추암해수욕장으로 가면 된다. 길게 뻗은 모래밭을 따라가다 보면 바위틈에 핀 해국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촛대바위를 바라보는 바위들 사이에 절묘하게 핀 해국(사진-1)은 감탄사를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제주도 전역 및 마라도 개쑥부쟁이 군락 사이에 드문드문 핀 해국(사진-2)도 인상적이다.
- 2016-10-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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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스산한 가을 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꽃 ‘가는잎향유’!
- 자연에 다가갈수록 오감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만추의 계절 무르익은 오곡백과는 우리의 미각을 자극합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은 회색의 건물들에 가로막힌 시각을 되살려 줍니다.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TV와 컴퓨터 등 각종 전자 음향에 지친 청각에 청량한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침저녁 피부를 스치는 선선한 가을바람은 여름 무더위에 무뎌진 촉각을 곤두서게 합니다. 그리고 저 높은 바위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피어난 ‘가는잎향유’는 그 어떤 허브 식물에 못지않은 강한 자연의 향으로 인공의 냄새에 지치고 둔화한 우리의 후각을 다시 일으켜 줍니다. 가을의 스산함을 포개고 또 포개서 농축한 듯 강하디강한 자연의 허브 향을 풍기는 꽃, 계절의 변화를 후각으로 느끼게 하는 꽃, 바로 가는잎향유입니다. 가을이 깊어 감을 절감하는 ‘시월의 어느 날’, 바로 그 어느 날을 닮은 가장 가을다운 꽃이 가는잎향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온갖 세파에서 벗어난 듯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은 한여름 남덕유산 정상에서 만났던 솔나리와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툭하면 생태계를 해하려 드는 인간의 범접을 꺼리는 듯, 절벽 끝에 달라붙어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줄기를 내려다보는 가는잎향유 군락은 누구든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가을의 향 또한 짙어집니다. 해서 사진을 담는 내내 눈이 즐겁고 코가 호강을 하게 만드는 꽃이 바로 가는잎향유이기도 합니다. 폐부까지 파고들 듯 강렬한 천연의 향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산자락에 쌓이는 낙엽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가는잎향유의 젓가락처럼 가는 잎도 연두색에서 홍갈색으로 변하며 손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듯 바싹 말라 가지만, 꽃과 잎 등 높이 50cm 정도의 전초에선 박하 향보다도 진한 천연의 향이 우러나와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런데 가는잎향유의 깊고 강한 허브 향에 취하고 즐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는잎향유 자생지에는 늘 숱한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황홀한 만추의 성찬을 즐깁니다. 그러는 사이 야생화 애호가들은 가는잎향유의 자줏빛 꽃에 취해서, 꽃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벌·나비들의 바쁜 날갯짓에 반해서 넋을 잃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댑니다. 꽃은 물론 깻잎 같은 잎과 줄기가 기름을 머금은 듯 반질반질 윤기가 돌 뿐 아니라 전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해서 꽃향유(香)라 부르는 꿀풀과 향유속 식물의 하나입니다. 마주나는 이파리가 젓가락처럼 길고 가늘다고 해서 가는잎향유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직은 멸종 위기 식물이 아니지만, 서식지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어 각별히 신경 써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우리의 토종 식물 자산입니다. Where is it? 조령산·월악산·속리산 등 충청북도 보은군과 제천시, 경상북도 문경시를 지나는 산악 지대에 자생한다. 특히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주로 자리 잡고 있어,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간 위험한 게 아니어서 야생화 사진 작업에 익숙한 전문가들도 아주 조심하며 다가서는 꽃의 하나다. 문경 새재로 유명한 조령산 절벽 곳곳에 자생하는 가는잎향유가 전망 좋고 꽃 무더기도 풍성해 인기다. 몇 해 전 문경 새재 길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내기 전에는 큰길을 따라 연이어 무더기로 자랐는데, 지금도 새재 길 절개지 일부에서만 만날 수 있다. >>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 (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푸른 행복) 저자.
- 2016-09-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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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야생난의 극치미를 보여주는, 백두산 애기풍선난초
- 높이 2,750m이며, 북위 42도에 위치한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보고’ 백두산. 지난 6월 중순 일주일간 그곳으로 꽃 탐사를 다녀왔습니다. 5월말이 되어야 봄이 시작되고 한여름에도 여기저기에 만년설이 남아 있다는 백두산은 말 그대로였습니다. 6월 중순에도 산정은 물론 드넓은 고원 곳곳에 얼음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수시로 내리는 비는 얼음물처럼 차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이쯤에서 문제 하나 냅니다. 문) 막 눈이 녹는 6월 백두산 깊은 숲에서도 야생난초가 꽃을 피운다? 답) ➀ 맞다 ➁ 틀리다 우문(愚問)에 잠시라도 헷갈렸다면 그 또한 이유 있는 혼동일 수 있습니다. 난초가 대개는 따듯한 온대나 아열대 지역에 서식한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국내에서도 한란과 금자란, 탐라난 등 희귀종을 비롯해 전국 112종의 야생난초 가운데 72%인 81종이 따듯한 남쪽나라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위 문제에 대한 답은 < ➁ 틀리다 >입니다. 야생난초에 차걸이란, 금새우난초, 섬사철란 등과 같이 제주도 등 남부 지역에 자생하는 남방계 난초가 있지만, 털복주머니란과 구름병아리난초, 손바닥난초처럼 설악산은 물론 백두산 등 고위도 · 고산 지역에 사는 북방계 난초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화려하기 그지없는 야생난초를, 야생난초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애기풍선난초를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백두산 지하삼림(地下森林)에서 딱 마주했을 때의 감동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습니다. 백두산에 자생한다고 익히 알았고, 개화 시기를 맞춰 가면 만날 수도 있다지만 과연 대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백두산을 가본 이는 알지만, 폭우나 안개 등 악천후가 찾아오면 수시로 입산이 통제되고, 또 정해진 통로를 벗어나기 어려워 설사 눈에 보이더라도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에 담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순판(脣瓣)이라고 부르는 입술꽃잎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고 해서 애기풍선난초라고 불리는 이 야생난초는 6~15cm의 꽃줄기를 포함해 전초가 20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작습니다. 이번에 지하삼림 안의 50m 이내 숲에서 각각 한 송이씩 모두 세 송이를 보았는데, 두 송이는 꽃색이 뚜렷한 연분홍색이었지만 한 송이는 흰색에 가까웠습니다. 각각의 애기풍선난초에는 제각각 짙은 녹색의 타원형 잎이 한 장씩 달려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순판 위에 3개의 등꽃받침과 2개의 곁꽃잎이 비슷한 형태의 분홍색 긴 가닥(사진)을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속명 Calypso는 그리스어로 ‘은둔’을 뜻하는데, 어두컴컴한 침엽수림에 자생하는 특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풍선난초속에는 4개 변종이 있는데, 그중 일본에 자생하는 것은 풍선난초(Calypso bulbosa var. speciosa)로 러시아와 몽골, 중국, 우리나라 백두산과 자강도 갑산에 자생하는 애기풍선난초와 구분됩니다. 일본 알프스산 해발 700m 이상 산지의 그늘지고 이끼 많은 곳에 자생하는 일본명 ‘호테이란(ホテイラン 布袋蘭)’이라는 풍선난초는 순판 아래까지 길게 튀어나온 2개의 꿀샘(거)으로 애기풍선난초와 구별된다고 합니다. Where is it? 해발 2,670m 천문봉으로 오르는 백두산 북파 코스의 시작점에 있는 지하삼림. 땅 밑으로 깊게 파인 원시림이란 뜻의 이곳엔 길이 2.5km에 이르는 원시림이 펼쳐져 대낮에도 동굴에 들어간 듯 어두컴컴하다. 숲 곳곳에 소나무와 전나무 등 침엽수가 쭉쭉 뻗었고, 그 아래 무성하게 자란 이끼 방석 위에 애기풍선난초가 일면 곱디고운, 일면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 2016-07-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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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폭염 속 온몸 틀어 선홍색 꽃다발 선사하는 타래난초
- 불화살이 쏟아지듯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의 풀밭.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질식할 듯한 폭염 속에서 저 홀로 화사한 선홍색 꽃을 피우는 야생 난초가 있습니다. 자신을 집어삼킬 듯 이글거리는 태양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맞서기에는 힘이 부친 듯, 온몸을 비틀어 마지막 한 방울의 색소까지 짜내어 보는 이를 한눈에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혹적인 꽃다발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소리쳐 외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잡초가 아니라 7월의 야생화, 타래난초’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산으로 들로 우리 꽃을 찾아다니는 이들 중에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 계기로 타래난초와의 만남을 꼽는 이가 여럿 있을 만큼 첫인상이 강렬한 야생 난초입니다. 그런데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타래난초의 매력은 동서의 구분이 없나 봅니다. “나는 지중해를 굽어보는 넓고 기름진 평원에서 이 꽃을 찾았다. 털이 난 늘씬한 자태, 솜털이 보송보송한 줄기에는 꽃들이 나선형으로 줄기를 잡았다. 꽃부리가 하나하나 열리는 품이 마치 항성의 궤도에 키스를 하는 듯하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이브 파칼레(Yves Paccalet)는 란 책에서 타래난초류의 하나인 스피란테스 스피랄리스(Spiranthes spiralis)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을 전하면서 ‘님프의 하얀 젖가슴보다 더 아름다운 난’이라고 극찬합니다. 타래난초의 또 다른 매력은 국내 100여 종의 야생 난초 가운데 보춘화·옥잠난초와 더불어 자생지나 개체 수가 가장 많은 3대 난초로 꼽힌다는 점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높고 깊은 오지의 자생지를 굳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쏟으면 주변에서 만나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는 보편성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6월에서 8월 사이 양지바른 풀밭이나 묘지 근처 잔디밭 등지에서 10~40cm의 꽃대가 올라와 길이 4~6mm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달리는데, 이때 꽃이 배열된 형태가 꽈배기처럼 나선형이어서 타래난초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수십 개의 꽃이 한쪽 방향으로 연이어 달릴 경우 길고 가는 꽃대가 한쪽으로 쏠려 쓰러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나선형 꽃차례를 택했다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그 결과 ‘똬리를 틀 듯 비비 꼬이다’라는 뜻의 ‘타래’라는 우리말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지요. 때문에, 처음 보는 순간 ‘예쁘다. 근데 이름이 뭐지?’ 하고 묻고서 ‘타래난초’라는 대답을 들으면 ‘아! 그럴듯하네’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꽃이 바로 타래난초입니다. 꽃 색은 대체로 붉은색이지만 옅은 분홍색 등으로 다소간의 변이가 있기도 하며, 흰색의 꽃은 아예 흰타래난초라고 따로 불립니다. Where is it? 앞서 설명했듯 전국이 자생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생화가 그렇듯 한번 알아보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흔히 만날 수 있는데 첫 대면이 어렵다. 타래난초 또한 초보자에겐 굉장히 귀하게 여겨지는 야생화다. 때문에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수도권 인근에서 알려진 자생지 중 하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천주교 소화묘원의 잔디밭이다. 인천 무의도 등산로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충북 괴산의 이만봉 아래 ‘분지제’ 제방은 흰타래난초의 자생지로 알려졌다.
- 2016-07-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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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핑크빛 사랑 나누는, 개정향풀
- ‘나이가 들수록 봄이 좋아진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옛 어른들을 기억하게 하려는 듯 ‘모든 게 파릇파릇 새롭게 시작되는 봄이 좋다. 아지랑이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는 봄이 좋다’고 말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들을 갈수록 많이 만나게 됩니다.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나이 든 세대에겐 삶의 기력을 되찾아 주는 효과가 있는 게 확실한가 봅니다. 그렇다고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가는 봄날을 한사코 붙잡아 둘 도리는 없고 그저 가는 세월을, 덧없이 가버린 봄날을 아쉬워하는 6월입니다. 그렇듯 가버린 봄날이 더없이 그리워지는 때 연분홍 봄날의 환희를 다시금 안겨주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바로 ‘개정향풀’입니다. ‘청춘의 연분홍 사랑이여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고 싶은 이들에게 서·남해 바닷가를 찾아가 보라 권합니다. 가서 온 벌판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개정향풀을 만나 눈 깜박할 새 사라져버린 봄날의 생동감을 다시 한 번 느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개정향풀은 크게는 어른 키만큼 자라며 나팔 모양의 손톱만 한 연분홍 꽃이 고깔 형태로 다닥다닥 피는데, 많은 개체가 무리 지어 자생합니다. 10여 년 전 개정향풀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인 학자가 표본을 남긴 이후 잊혔다가 민간 환경단체 회원들에 의해 9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됐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지요. 그 후 서·남해안 여러 곳에도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저 홀로 피고 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정답이겠지요. 그렇듯 큰 키에 비해 꽃은 자잘하기에, 잘 살피지 않으면 개정향풀 꽃의 진가를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름 앞에 붙은 ‘개’는 큰 키와 꽃 모양이 전남 완도와 인천 광역시 대청도 등 서해 섬의 산지에 자생하는, 같은 협죽도과의 정향풀[사진]을 닮은 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예 ‘갯정향풀’로 불린다고 하는 걸 보면 얕잡아 부르는 개(犬)가 아니라, ‘갯가’ 식물이라는 뜻의 ‘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꽃 색은 정향풀은 하늘색, 개정향풀은 연분홍색입니다. 작약이나 투구꽃처럼 오각형 뿔 모양의 씨방이 농익으면 터져 씨가 여기저기로 날려 번식합니다. Where is it? 도감에 따르면 중부 이북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서·남해안 섬에서 만났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오래전 식물학자들이 표본을 채집했다는 충북 단양 경기도 여주, 평택 등 내륙에선 현재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작은 섬 선감도와 안산 시화공단 인근 둔치에서 제법 풍성한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전남 신안 압해도와 강원 삼척, 경북 영덕 등 전국에서 자생지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경우 선감어촌체험마을 초입 수만 평의 논 사이에 작은 수로가 지나고, 그 수로변 100여m 구간에 어른 가슴까지 차오르는 개정향풀 군락지가 있다.
- 2016-06-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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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섬진강변 흩날리던 매화의 환생 매화마름!
- “저 매화 화분에 물 주어라[灌盆梅].” 우리의 옛 선비들이 매화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좋아했는지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마디 말입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라고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이란 문집에 전하고 있습니다. 생전 100여 편이 넘는 매화시를 짓기도 했고, 500년이 지난 현재 1000원권 지폐에 활짝 핀 매화꽃과 함께 초상이 등장할 정도이니 선생의 매화 사랑이 얼마나 유달랐는지 짐작이 가면서, 그런 유언을 남겼을 만하다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梅一生寒不賣香]’에 대한 옛 선비들의 사랑과 연모는 다소간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동소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란 명성답게 제주 등지에서 1월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3월 중순이면 전남 광양과 경남 양산에서 매화축제가 열릴 정도로 만개합니다. 특히 전남 광양과 구례, 경남 하동 일대의 매실나무에 하얗게 꽃이 필 무렵이면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도 봄바람에 휘날린 매화 꽃잎이 물 위에 가득 내려앉은 듯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렇게 섬진강 가에서 흩날리던 매화 꽃잎이 섬진강 물에 어지러이 내려앉았다가 서해 바다를 거쳐 강화도로, 안면도로, 더 멀게는 백령도까지 올라가 모내기 전 물이 찬 논에 하얀 눈이 내린 듯 환생한 게 아닌가 싶은 꽃이 있습니다. 바로 매화마름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강화도를 비롯해 서해안 일대 논이나 수렁 등 여기저기에 잡초처럼 피어나는 꽃입니다. 꽃은 물매화를, 잎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이라고 이름 지은 이 수생식물은 모내기 전 물이 고인 논이나 습지, 연못 등에서 흔하게 만나던 꽃이었습니다. 농약 사용이 보편화하고, 논이 밭이나 과수원 등으로 바뀌면서 그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어, 한동안 한란·나도풍란·광릉요강꽃·섬개야광나무·암매와 함께 환경부 지정 6대 멸종 위기 야생식물(1급)로 보호받다가 몇 해 전에야 2급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지요. 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매화마름을 처음 만났을 때 단번에 떠올린 단어입니다. 물속으로 파고든 뿌리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가닥의 줄기가 거의 수면에 붙어 방사상으로 퍼지고, 그 줄기에서 마디마디마다 꽃자루가 올라와 손톱 크기의 흰 꽃을 무수히 피워냅니다. 그런데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저 물속에 보잘것없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구나 하고 지나치기 십상인데, 꽃자루 끝에 하나씩 달린 1cm 크기의 꽃을 자세히 살펴보고 5장의 꽃잎이 가지런한 매화를 떠올리고 매화마름이라 작명한 그 안목과 재치에 놀라면서 “아, 맞다. 두 달여 전 섬진강 가에서 보았던 매화를 똑 닮았다.”라고 무릎을 칩니다. Where is it? 주로 서해안 지역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강화도에서부터 안면도까지 비교적 자생지의 폭이 넓다. 최근 백령도 등 서해 섬 지역의 논에서도 자생하는 게 확인된 바 있다. 충남 태안군 남면 신원리 곰섬 입구의 논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집단 자생지 2만㎡가 발견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광역시 강화군에도 송해면 당산리 등 여러 곳에 자생지가 있다. 특히 초지대교 건너 길상면 초지리 큰길가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시민유산 1호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3,014㎡)가 있다. 매화마름이 자생하는 초지리의 이 논은 2008년 논 습지로는 세계 최초로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는 역사적인 기록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 2016-05-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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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폭포수의 벗이자, 춘설(春雪)과도 친구인 특산식물 '모데미풀'
- 봄바람 따라 왁자지껄 피어나던 바람꽃들이 어느 순간 기세가 꺾여 눈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4월의 깊은 계곡, 높은 산기슭에선 꽃 걱정 말라는 듯 순백의 탐스러운 꽃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서 방긋방긋 눈인사합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고, 산기슭과 계곡에 두껍게 쌓였던 눈이 녹아 폭포수가 되어 흘러내리는 계곡의 푸른 이끼 곳곳에 달덩이처럼 환한 야생화가 꽃잎을 활짝 열어젖히고 봄날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그렇습니다. 높고 푸른 산속에 눈 녹은 맑은 물이 폭포수가 되어 콸콸 흘러내리고, 그 곁에 한국 특산식물인 모데미풀이 무더기로 피어 ‘산꽃 들꽃’, 우리의 야생화를 찾아 나선 벗들을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한국 특산식물이란 전 세계에서 우리 땅에서만 피고 자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물종의 하나라는 뜻입니다. 1935년 지리산 자락인 운봉의 ‘모뎀골’ 또는 ‘모데미마을’이란 곳에서 일본인 학자 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郞)가 처음 발견해 모데미풀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학명에 오이(Ohwi)란 일본 성이 들어간 이유입니다. 그런데 모뎀골이나 모데미마을이란 동네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꽃이 피어 있던 ‘무덤’을?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모데미’라는 엉뚱한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학명 중 종명 메갈에란티스(Megaleranthis)는 ‘크다’는 뜻의 그리스어 메가스(megas)와 너도바람꽃(Eranthis)의 합성어입니다. 실제로 10~20cm 안팎의 줄기 끝에 흰색의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 잎 5장과 노란 수술을 가진 꽃송이가 하나씩 달리는데, 꽃은 순백의 너도바람꽃을 닮았지만 크기는 2배쯤 됩니다. 첫 발견지인 전북 남원의 ‘운봉금매화’란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영어 이름은 한국 특산식물답게 한글명인 모데미풀(Modemipul)입니다. 다행인 것은 세계적으로는 한국만의 고유종, 한국의 특산식물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만나기 힘들 정도로 매우 희귀하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남으로 제주도 한라산부터 북방한계선으로 알려진 강원도 점봉산까지 폭넓게 분포하는데, 대부분 해발 800m가 넘는 습지나 능선 부근에서 자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산·아고산 지대가 자생지인 특성으로 인해 늦은 봄인 4~5월 개화함에도 불구하고 설중화(雪中花)의 주인공이 되곤 합니다. 산자락 아래에서는 분명 비가 내리지만, 같은 날 같은 산이라도 정상 부근 고지대에서는 눈발이 흩날리기 때문입니다. Where is it? 첫 발견지라는 학술적 기록에도 불구하고 전북 남원 운봉의 지리산 자락에서는 정작 모데미풀을 한 포기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대신 한라산, 설악산, 태백산, 점봉산, 오대산, 광덕산 등 전국적으로 폭넓게 자생지가 확인되고 있는데, 개체 수가 많기로는 소백산과 덕유산이 꼽힌다. 특히 소백산 정상 부근은 한국 최대(한국에만 있으니 세계 최대라는 말도 된다) 규모의 자생지가 펼쳐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야생화 사진작가들이 최고로 꼽는 모데미풀 자생지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 자연휴양림. 졸졸졸 흐르는 계곡 물과 무성한 초록색 이끼, 바위 사이사이에 하얗게 핀 모데미풀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명소다.
- 2016-04-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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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자연의 신비, 생명의 외경을 일깨워주는 '너도바람꽃'
- 어느덧 3월입니다. 통상 3월부터 5월까지를 봄이라고 하지만, 도회지에서 조금만 떨어진 산에 가더라도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에선 매서운 한기가 느껴집니다. 산기슭이나 계곡을 바라봐도 파란 이파리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깡말라 거무튀튀한 낙엽만 잔뜩 쌓였을뿐더러, 자꾸 미끄러지는 게 겨우내 꽁꽁 언 바닥이 채 녹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정말 꽃이 핀 게 맞나요?” 아무래도 꽃이 있을 것 같지 않다며 돌아가자는 성화에 스스로 찾을 때까지 지켜보자던 생각을 접고 낙엽 사이 곳곳을 가리킵니다. 그러자 “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라며 탄성을 쏟아냅니다. “어머나, 세상에! 겨울과 다름없는 날씨에 이토록 작고 가냘픈 꽃이 피었다니…” 그렇습니다. 3월이면 꽁꽁 언 산골짝에 바람이 납니다. ‘너도바람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수십, 수백 송이가 활짝 피어 사방에 가득 찹니다. 덩달아 야생화를 찾아 나선 이들도 처음엔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며 투덜대다가, 어느 순간 하나를 찾더니 곧 지천으로 너도바람꽃이 널렸다며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봄은 발끝에서 온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눈에 보이는 계곡은 아직 얼음투성이이지만, 발밑에선 손톱만 한 너도바람꽃이 봄을 노래합니다. 여리디여린 너도바람꽃이 얼음장 같은 땅바닥을 뚫고 나와 순백의 꽃을 피우는 걸 직접 목도하는 순간 많은 이들이 자연의 신비, 생명에 대한 외경을 체험한 듯 야생화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피는 야생화인 너도바람꽃은 에란티스(Eranthis)란 라틴어 속명 자체가 본래 봄(er)과 꽃(anthos)의 합성어라고 하니, 그 어디서건 겨울잠을 깨우는 봄의 전령사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하는데, 주로 습기가 많은 산 계곡에서 자생합니다. 콩나물 줄기처럼 생긴 꽃대가 올라와 끄트머리에 흰색 꽃을 한 송이씩 피우는데 다 자라야 10~20cm에 불과합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꽃받침 잎이 5~9장 펼쳐지고, 그 안에 수술처럼 보이는 주황색 꽃이 원을 그리듯 빙 둘러납니다. 옅은 분홍색과 흰색의 수술과 암술이 여럿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대개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이 달리는데, 경기도 포천 지장산 계곡에서 꽃대 하나에 꽃이 두 개 달린 ‘쌍둥이’ 너도바람꽃을 여럿 보았습니다. 겨울의 끝이자 새봄의 첫머리에서 만나는 너도바람꽃에선?약자의 연약함보다는 강추위도 폭설도 이겨낸?의연함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비록?작고?가냘파 보이지만, 모진 세파를 이겨낸?강자에게서?느낄 수 있는?단단한 힘이랄까 그런 것 말입니다. 특히 복수초 등의 설중화는 꽃이 핀 다음 살짝?내린 눈으로 만들어지는 데 반해, 너도바람꽃은 두껍게 쌓인?눈을 헤집고 올라온, 진정한 의미의 ‘눈속의 꽃(雪中花)’으로 피어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4월에도 눈이 내리는 경기, 강원의 깊은 산에선 눈 속에 묻혔던 너도바람꽃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경이로운 광경도 만날 수 있습니다. Where is it? 전국 어느 산, 어느 계곡에서도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경기 광주 무갑산, 남양주 천마산, 양수리 예봉산 등지가 유명하다. 특히 무갑산 무갑사 계곡과 예봉산 세정사 계곡, 천마산 팔현계곡이 너도바람꽃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마구잡이로 찾아다니는 발길에, 더 좋은 모델을 찾는다며 여기저기 훑고 다니는 사진작가들의 욕심에 무참히 훼손당하는 너도바람꽃의 비명을 함께 전한다. “지난해 찢긴 얼굴 성형 몇 번 했어/나도 부러진 목에 디스크래/나는 꺾어진 허리가 펴지지 않아 키가 작아졌어/올해는 밟히지 않도록 조심해” 무갑사 스님이 전하는 ‘너도바람꽃의 속이야기’이다.
- 2016-03-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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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소리 높이 외치는 보춘화!
- “자연은 이미 완성되어 있건만 예술가는 또 다른 완성을 꿈꾼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글귀가 이 산 저 산 깊 섶에, 골짜기에, 벼랑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야생화들을 만날 때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너도바람꽃과 변산바람꽃, 복수초 등으로부터 시작해 쑥부쟁이와 구절초, 좀바위솔 등등 늦가을까지 피는 산꽃 들꽃을 쫓아다니며,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과연 이미 완성되어 있는 자연의 미를 제대로 전달하고는 있는지 회의가 들곤 합니다. 예로부터 매화와 국화, 대나무와 함께 4군자의 하나로 꼽혀온 난초,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야생난인 보춘화(報春化)를 대할 때면 그런 생각은 더 깊어집니다. 흔히 춘란(春蘭)이라고 불려온 보춘화는 이름 그대로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을 가진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야생의 모습보다는 예쁜 모양의 도자기 화분에 담긴 모습에 익숙하다 보니, 으레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원예종 식물인 줄 알고 있지만,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는 3~4월 야산에서 피는 야생종 난초입니다. 고급 도자기에 담긴 원예종 난초가 제아무리 우아미를 뽐낸다 한들 겨울의 끄트머리 수북한 낙엽더미 속에서 날렵하게 삐져나온 청초한 초록색 이파리 사이에 연황색 꽃대를 곧추 들고 선 야성적 아름다움에 비할까 싶습니다. 투명한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배경이 되고, 눈부신 햇살이 무성한 잎과 꽃송이에 쏟아지며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자연의 미를 제아무리 고가의 난초인들 감히 흉낸들 낼 수 있으랴…. 오랜 세월 숱한 묵객들이 그려온 난 그림들이 자연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제멋대로 핀 보춘화의 고졸한 풍치에 버금이나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주로 서·남해안 숲에서 자생하는 보춘화는 지역의 특성, 생육 환경 등에 따라 잎이나 꽃 등에서 많은 변이가 발견되는 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변이가 보춘화의 남획과 훼손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변이종의 가치를 높게 사던 일본에 수출할 목적으로 많은 판매상들이 마구잡이로 채취하기 시작했고, 국내 난 동호인들이 변이종 채집에 덩달아 나서면서 서·남해 해안지역에 흔하게 자라던 자생난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글머리에서 밝혔듯 ‘이미 완성되어 있는 자연의 미’를 그저 바라보고 즐기면 되는 것을, 어리석은 인간들이 집으로 가져다 고가의 자기에 담아 더 멋지게 만들어 보겠다고, 저 혼자만 독점하겠다고 헛된 객기를 부리다 ‘야생난 멸종위기’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걸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내용의 ‘세한도’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한겨울에도 늘 푸른 기상을 간직하고 있는 게 어찌 소나무와 잣나무뿐일까요? 하얀 눈으로 덮인 산기슭을 무심히 오고가는 투박한 등산화에 속절없이 짓밟히면서도 송백(松柏) 못지않게 푸르른 잎을 유지하는 풀들이 여럿 있습니다. 보춘화는 물론, 전국의 산에서 비교적 흔하게 보는 감자란도 비록 혹독한 추위에 질린 듯 검푸르지만, 여름철과 진배없이 푸르고 무성한 잎을 유지합니다. 특히 날렵하고 기품 있게 뻗은 잎이 일품인 보춘화는 땅속 알뿌리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고고성을 잉태한 채 한겨울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Where is it? 남부 및 중·서부 해안가, 도서 지역은 곳곳이 보춘화의 자생지이다. 보춘화의 북방 한계선이라고 일컫는 충남 안면도까지만 내려가면 안면도자연휴양림 앞산·뒷산 산책로 주변에서도 야생의 춘란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알려진 곳은 갈수록 개체수가 줄고 있어 풍성한 자생지를 만나려면 더 먼 남쪽이나 섬으로 가야 한다. 전남 고흥 봉래산이나, 가의도 등 남해 및 서해 도서지역에 가면 아직도 손때 묻지 않은 무더기를 볼 수 있다.
- 2016-02-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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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순백의 신부 부케를 똑 닮은 꽃 백서향!
- 가뜩이나 녹지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 겨울이 깊어지면 그야말로 잿빛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나마 눈이라도 내리면 잠시 낭만에 빠져보지만, 촘촘히 늘어선 시멘트 빌딩과 앙상한 겨울나무는 이내 삶의 활기를 앗아가기 일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제주는 보석 같은 섬입니다. 한겨울에도 상록의 싱그러움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라산 정상이 흰 눈으로 덮여 있는 1, 2월에도 중산간 아래 숲과 들에는 동백나무와 종가시나무, 자금우, 백량금과 같은 늘 푸른 나무들이 푸름을 잃지 않고 있고, 동백나무는 물론 매실나무, 수선화는 ‘모든 생장 활동이 멎는 계절’ 겨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붉고 희고 노란 꽃들을 앞다퉈 피워댑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만의 특이한 지형인 곶자왈에서 피는 순백의 백서향(白瑞香)은 ‘제주의 겨울꽃’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단연 돋보입니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이란 노랫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백서향 꽃은 키 1m 안팎의 늘 푸른 활엽 관목 가지 끝에 다닥다닥 달리는데, 그 향기는 온 숲을 뒤덮을 만큼 강렬합니다. 맑은 듯하면서도 강하고, 은은한 듯싶으면서도 깊고 그윽하고, 달콤한 듯하면서도 시원한 백서향 향기를 잊지 못해 매년 제주 숲을 찾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당초 자주색 꽃이 피고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는 중국 원산의 서향(瑞香)에 비해 흰색 꽃이 핀다고 해서 백서향이라고 불렸는데, 둘 다 그 향이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향’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백서향은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 그리고 일본에도 자생하고 있는데 제주에서 자라는 백서향은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M. Kim)이라는 별도의 종으로 봐야 한다는 연구 논문이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제주백서향은 꽃받침통과 열편(꽃잎이 펼쳐진 부분)에 털이 없고 잎이 긴 타원형이며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에서 자생하는 반면, 백서향은 꽃받침 통과 열편에 털이 있고 도피침형 잎을 가지며 남해 해안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두 종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요. 2013년 우리나라 식물분류학회지에 실린 이 논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제주백서향은 우리나라의 고유 식물,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지 끝에 수십 송이씩 달리는 제주백서향은 1월 중순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해 만개하기까지 한 달 넘게 소요됩니다. 백서향이 자생하는 제주 곶자왈은 2월 내내, 아마 늦은 3월까지 긴 기간 찾는 이의 오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힐링의 숲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where is it 백서향은 거제도 등 남해안과 제주도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도 백서향이 자생하는 지역은 특별하다. 숲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 ‘곶’과 자갈을 의미하는 ‘자왈’을 합친 곶자왈이란 독특한 지형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이다. 이른바 용암 숲이 자생지인 셈인데, 제주백서향이 고유종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을 경우 곶자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식물이 된다. 동쪽으로는 동백동산으로 유명한 선흥곶자왈과 김녕곶자왈 일대, 서쪽에서는 저지곶자왈과 안덕곶자왈 일대가 대표적인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2014년 제주시 조사에서도 88개 구역에서 145개체가 확인된 선흥곶자왈은 옛날 백서향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는데, 최근 무단 도채로 인해 개체수가 감소하고 자생지가 크게 좁아지고 있어 강력한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2016-01-28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