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평균수명이 늘어 100세 시대로 진입하면서 기나긴 은퇴 후의 시간관리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사실 이런 사태가 인류 초유의 일인데다 미처 대비할 시간도 없이 들이닥쳐 대부분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고 있다.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놀고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쉽게 판단이 안 선다.
우리보다 고령사회에 먼저 들어선 일본은 이미 적응기간을 거쳐 60~70대 노동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역시 계속 일을 하는 게 맞는 방향인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아직 고령사회에 대한 대책이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우선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하고 청년실업 문제 때문에 일자리 구하러 다니기도 왠지 눈치가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조기은퇴하고 아직 건강한 몸인 시니어들은 틈새 일거리인 재능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 필자가 취재하고 있는 서울시나 기타 지자체 혹은 복지 관련 단체들에 소속된 재능기부 모임은 한둘이 아니다.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시니어들은 대체로 즐거워하고 하는 일에 만족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재능기부는 ‘일거리’일 뿐이지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재능기부는 매우 아름다운 일이며 칭찬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근에 출간된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의 은 이와 유사한 ‘무보수 노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시니어들의 생존 문제와 결부되어 우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자 노동’이란 오스트리아의 사회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주장한 개념으로 현대인들이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예컨대 ‘셀프’라는 미명하에 매장 곳곳에서 유행하는 노동을 이른다. IT의 발달로 이런 식의 노동 봉사는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대형 레스토랑의 샐러드 바에서 직접 음식을 담고, 공항의 터치스크린 키오스크에서 셀프 탑승 수속을 밟고, 극장에선 티켓 자동발매기 앞에 줄을 선다. 이전에는 매장이나 창구 직원이 처리했던 일들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마치 생활이 더욱 편리해지고 소비자에게 자율을 선사하는 듯 포장하지만, 결국은 기업의 인건비 절감이 목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햄버거 먹고 스스로 치우는 순간 일자리 하나가 날아간다는 뜻이다.
오늘날 일자리가 줄어들고 많은 젊은이가 실업으로 고통받는 이면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재능기부가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아주 선한 마음으로 베푸는 행위가 비슷한 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어느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세상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뉴욕의 작은 나비 날갯짓이 북경의 태풍을 몰아오듯 모든 사회 현상은 촘촘한 인과관계로 얽혀 있다. 나이 들었다는 게 뭔가. 이런 세상사를 폭넓게 보는 지혜가 아닌가. 즐겁게 재능기부를 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팔다리는 물론 얼굴에까지 뜨듯한 오줌이 그대로 튀어요. 얼굴은 똥, 오줌 범벅이 돼도 ‘똥은 흙, 오줌은 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이때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때거든요.” 7개월 동안 돼지의 생활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박찬원(朴贊元·72) 사진작가가 겪은 일이다. 그는 돼지만 사진을 찍어서 ‘사진작가는 미친놈이다, 아니면 내가 전생에 돼지였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단다. 확실한 것은, 그가 사진에 미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제2 인생의 즐거움과 사진예술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들어본다. 글 사진 김영순 기자 kys0701@
이제는 사진작가라고 불러야 한다. 과거에는 사장, 한때는 교수라고 불렸던 이다. 바로 박찬원 사진작가의 이야기다.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대표, 삼성그룹 부사장을 지내면서 전 세계로 뻗은 거대한 재벌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로 일했고, 코리아나화장품 사장을 끝으로 기업에서 은퇴한 후에는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교육자로서의 삶도 겪어 봤다. 그러나 40년을 직장인으로 산 그가 인생 후반전에 도착한 곳은 사진이라는 예술이었다. 그는 지난 6, 7월에 걸쳐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포’와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두 번의 ‘돼지’ 테마 전시회를 마친 뒤였다. 지난 8월에는 12일간 종로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숨 젖 잠’이라는 초대전도 열었다.
“원래 초대전을 여는 걸 사진 배우기 시작한 10년째인 2018년에 계획했는데 기회가 일찍 왔어요. 문래동에 위치한 대안공간 이포가 원래 실험적인 젊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인데 내 작품을 보고 좋다고 해서 열게 됐죠.”
‘예술은 돈이다’라고 이야기한 피카소의 말이 생각났다. 박 작가한테 전시 작품에 ‘빨간딱지’ 가 붙어 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전문 사진가라면 작품이 판매되어야 하죠. 처음 판매되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2011년 코엑스 CEO 특별전으로 기성 작가들과 호주에서 사진전을 열었을 때에요.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구매한 그분께 정말 감사했고 부담도 느꼈어요. 아마추어는 전시만 하면 되지만 프로는 팔려야 하죠. 작가와의 친분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좋아야 사는 거잖아요. 나중에 누가 샀는지 알아보지 말 걸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품이 팔리고 보니 진짜 작가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웃음)”
작가는 작품이 판매될 때 비로소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누드 사진을 계기로 사진예술에 눈 뜨다
박 작가와 사진과의 인연은 올해로 8년째다. 2008년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강연을 듣다가 미술과 사진을 배우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미술과 사진 둘 다 지금도 꾸준히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시 ‘본업’은 사진이다.
“처음부터 사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이 가르쳤는데 하루에 인물, 풍경, 누드, 종합으로 테마 하나씩을 세 시간에 걸쳐 네 번 찍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세 번째 날인 누드 사진을 찍은 날, 내가 대상을 받았어요. 그때 썼던 카메라들이 모두 삼성 카메라였는데, 조세현 작가가 제 걸 보더니 ‘이건 카메라 광고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사진이 누드의 실루엣만 찍은 건데, 저는 마케팅 쪽을 했기 때문에 보는 눈은 좀 있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곳에 가서 엎드려서 찍었는데 성공적이었던 거죠. 그때 ‘야, 이거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박 작가는 이때 때로는 초보도 프로 못지않은 명작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인생 자체가 작품 같은 박찬원
박 작가는 코리아나화장품에서 은퇴하고 성균관대에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마케팅을 강의하게 됐다. 그런데 하다 보니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젊은 박사들은 경력을 위해서 강의를 맡는 게 중요한데 나는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 내가 할 자리가 아니구나’ 싶어서 한 3년 하고 나서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2010년에 상명대 예술디자인 대학원에 멋모르고 지원했죠. 그러면서 고생 엄청 했어요.”
사진을 배우러 들어갔는데, 정작 대학원에선 사진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기술은 이미 대학교에서 배웠다고 생각하고 예술가가 되는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여전히 초보였던 그로서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러한 훈련 덕분에 예술,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고 말한다. 인생 후반기의 보람을 느끼는 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쓰는 언어, 노는 물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간 고생한 것이 아까워 졸업하자마자 라는 책도 썼다. 이제 박 작가의 목표는 영원한 현역이다.
“사진작가를 업으로 가는 건 정해졌습니다. 제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는 게 목표예요.”
작품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위한 100일 촬영
박 작가는 하나의 주제에 100일 촬영을 목표로 작업하는 순수 사진가로 ‘생명의 의미’를 담았다. 현재 작품 세계의 주요 테마는 ‘돼지’와 ‘염전’이다. 얼마 전에 쟁쟁한 기성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던 테마도 ‘돼지’를 소재로 한 ‘꿀 젖 잠’이라는 제목이었다. 각각 ‘꿀’은 돼지가 내는 소리, ‘젖’은 돼지의 젖, ‘잠’은 돼지의 영혼을 사진으로 잡아내고자 한 시도다.
‘돼지’ 테마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촬영할 수 있는 곳을 섭외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그것도 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겨우 섭외한 양돈장에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매주 2박3일씩을 현장에서 먹고 자며 촬영했다.
“똥 냄새 엄청나죠. 지금도 자동차 트렁크를 열면 그 냄새가 날 정도예요. 젖 사진을 찍을 때는 얼굴에 똥이 다 묻어요. 그리고 돼지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긴장해서 오줌을 싸고요. 그런데 돼지가 오줌을 싸면 움직이지 않아서,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어요. 상황이 이런데 막상 사진을 찍을 때면 냄새가 안 납니다. 의식을 못하는 거죠.”
100일 촬영하기를 한다고 했을 때, 2주에 한 번 간다고 하면 2년이 걸리고 1주에 한 번 가면 1년이 걸리는 긴 시간이다. 당연히 사진 촬영 때문에 다른 모임은 일절 참석할 수 없게 된다. 얼마나 사진에 올인하여 새로운 즐거움을 갖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막상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얼마 안 걸려요. 나머지는 다 생각하는 시간이죠. 그 시간이 주제가 구체화되는 지점입니다.”
3년 동안 염전 사진을 찍었다 소금밭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염전 안에는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 있더라고요. 처음으로 빛을 느낀 곳이기도 합니다. 바닷물이 노구(老軀)를 끌고 찾아와 햇볕에 몸을 맡기면 육신은 소금으로 남아 생명의 물질이 되고, 영혼은 수증기가 돼 다른 세상으로 날아갑니다.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공간이죠. 나비, 하루살이, 거미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어요. 눈을 뜨고 마음을 여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듯했어요.”
박 작가에게 염전은 성지와도 같다. 처음으로 사진다운 사진을 찍었고 많은 고민을, 많은 생각을 했던 곳이다.
날것 그대로, ‘생명’을 사진에 담는다
어디를 가나 그는 연장자다. 전문작가도 사진을 정리할 나이 65세에 사진을 시작했다. 아랫사람보다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나이가 많다고 대접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체력의 한계, 감각의 한계가 핸디캡이 될까 봐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과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 최근 사진들은 리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 기술적인 부분까지 직접 다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박 작가는 리터치(보정)를 잘 못하고,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어쩌면 그러니 제 작품을 어설프지만 인정해 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리터치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보면 다 알거든요.”
가공이 거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사진. 그래서인지 박 작가의 사진에는 유난히 담백한 맛이 있다. 그것은 다큐로서의 시선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게 그냥 찍는 게 아니고 사람과 사귀어야 하고 동물하고도 사귀어야 하고 그런 것들을 해야만 개념도 잡히는 거죠.”
박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궁극적인 지점은 ‘생명’이다. 다음 테마는 비밀이지만 역시 그가 추구하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결정됐다고 하며 10월 부터 착수한다.
“작품 사진이 좋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간결했다.
“즐기면서 찍을 때 좋은 사진이 나오고, 힘을 빼고 작업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진리예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우리 집사람은 수채화를 그려요. 그러니 호흡이 딱 맞아요. 저도 처음에 대학원을 갈 적에 그림으로 가느냐 사진으로 가느냐 고민이 많았는데, 그림은 앉아서 하니까 건강에 도움이 안 될 것처럼 보였어요. 반면 사진은 움직이면서 찍으니까 활동적이어서 그쪽을 선택한 것도 있죠. 지금은 더 건강해진 느낌이에요.”
상당수의 시니어들은 뭔가를 새롭게 하려고 해도 늦게 시작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있다. 그래서 감히 못하는 경우 많다. 그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의외로 나이든 예술가들이 자기 명성만 가지고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젊은 친구들은 장래가 두려워서 방향을 잘 못 잡고 몰입을 잘 못하죠. 난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고 다른 일이 없으니까 필요한 건 용기였죠.(웃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박 작가 혼자 히죽 웃는다. 제2 인생도 용감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영원한 현역을 다짐하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가져야 할 것은 용기를 내는 것이라는 걸 재차 강조했다. 자신도 주변에 추천은 많이 해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기를 못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하는데 취미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나이 들어 자기 자신의 역량이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관점도 거기에 있었다.
“호기심, 그리고 노력인 거 같아요. 그림도 사진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재능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제가 찍는 정도의 사진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시도를 안 하는 거라고 봅니다.”
다소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때가 언제인지 물어 봤다. 그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예상한 그대로였다.
“바로 지금이지! 즐거워!”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 박찬원 작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2018년은 사진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예요. 10년간 사진 공부를 하고, 10년간 사진가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을 잡았어요. 우리 나이 65세에 사진 공부를 시작했고, 75세에 나만의 작품으로 데뷔전을 하고 85세에 마지막 사진전과 사진 책을 발간할 작정입니다.”
저는 옷 입는 데는 잠방이입니다. 무신경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걸치고 나왔다가 푸른색 양복 하의에 노란색 스포츠 양말 차림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이 차림이 괴상망측하단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온종일 돌아다녔다는 겁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아내로부터 “패션 테러리스트”란 핀잔도 듣고서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보다 연배가 위인 시니어들도 옷에 신경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기획기사 ‘내가 패셔니스트, 패셔니스타- 나만의 코디법’ 데스크를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다음은 박혜경 동년기자님이 쓰신 ‘나는 아직 패셔니스타일까’ 내용입니다.
“필자도 좀 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유행은 다 따라 해 보았다. 그래서 젊은 시절 미니를 화끈하게 입고 명동에 갔다가 명동파출소에 잡혀간 적이 있다. (중략) 아직 딱딱한 정장보다는 자유롭고 예쁜 옷이 좋다. 끈만 달려 어깨가 드러나는 원피스도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박 동년기자님처럼 사실 패셔니스트, 패셔티니타가 되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강신영 동년기자님의 기사 ‘댄스가 패셔니스트로 만들어주다’를 보면 기자님은 나비넥타이로 변신을 시도하신다고 합니다.
“남자가 ‘패셔니스트’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중략) 그러나 필자는 댄스스포츠를 일찍이 시작한 덕에 옷도 그렇게 맞춰 입다 보니 종종 ‘패셔니스트’ 소리를 듣는다. (중략) 20여 년 전 댄스스포츠를 처음 시작할 때 호텔에서 파티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지도 강사는 남자들에게 나비넥타이를 매게 했다. (중략) 연말 파티 등 특별히 드레스 코드가 정해지지 않은 모임에서도 나비넥타이는 위력을 발휘한다.”
외국 시니어들 보면 참 부럽습니다. 대담한 스타일의 옷을 아주 자연스럽게 입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때깔 납니다. 육미승 동년기자님의 ‘외국처럼 우리 시니어도 화끈한 코디를’은 이런 의미에서 한국 시니어들에 걸쭉한 된장 국물 같은 진한 여운을 줍니다.
“1970년대에 영국에 갔다가 알아낸 것은 호호 할머니가 돼도 매니큐어 짙게 칠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다이애나비처럼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에 예쁜 꽃 모자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략) (시니어도) 아주 눈에 나지 않는 한 인형처럼 곱상하게 차려입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시니어인 동년기자님들이 패션에 쏟는 열정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푸른색 양복 하의에 노란색 스포츠 양말 차림으로 ’패션 테러리스트’가 됐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파란색 티셔츠에 파란색 면바지의 깔 맞춤입니다. 오늘도 집에 가면 아내한테 “깔 맞춤 테러리스트”란 핀잔을 듣지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하나 약속드립니다. 이제는 더는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겠습니다. 아침에 거울 한 번 보고 나오겠습니다. 동년기자들처럼 패셔니스트, 패셔니스타는 못될망정 이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남자가 ‘패셔니스트’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부지런한 발발이 아내 덕분에 유난히 여러 가지 옷을 바꿔 입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거기서 거기이다. 그러나 필자는 댄스스포츠를 일찍이 시작한 덕에 옷도 그렇게 맞춰 입다 보니 종종 ‘패셔니스트’ 소리를 듣는다.
◇나비넥타이가 익숙해지다
20여 년 전 댄스스포츠를 처음 시작할 때 호텔에서 파티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지도 강사는 남자들에게 나비넥타이를 매게 했다. 일반 넥타이는 안 된다고 했다. 나비넥타이가 없는 사람들은 아예 입장을 안 시키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나비넥타이를 파는 곳이 많지 않아서 사놓고 입구에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나비넥타이를 매고 돌아다니면 호텔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우리가 호텔 직원인 줄 알고 이것저것 묻기도 해서 더 어색해했다. 그러나 일단 나비넥타이를 매니 점차 이런 불편함이 가셨다. 해외에 출장을 다녀올 때는 나비넥타이를 일부러 사 오는 수고도 마다치 않았다.
사실 나비넥타이는 남자 댄서의 패션 아이템 중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오묘한 물건이다. 검은색 턱시도와 흰색 드레스 셔츠는 남들과 다를 것이 없는 반면 나비넥타이는 칼라도 다르게 맬 수 있고 모양도 독특하게 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댄스스포츠 강의를 여러 군데 다니는데 강의 갈 때는 항상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강단에 선다. 수강생과 강사가 패션에서 차이가 나야 수강생의 존경심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댄스스포츠 강사는 특히 춤꾼의 냄새가 나야 한다. 일반 넥타이로는 그런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없다.
연말 파티 등 특별히 드레스 코드가 정해지지 않은 모임에서도 나비넥타이는 위력을 발휘한다. 남들은 일반 넥타이나 캐주얼 복장을 하고 오지만 나비넥타이를 매면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부피도 작고 여간해서는 구겨지지 않으므로 휴대도 간편해서 좋다.
나비넥타이는 드레스 셔츠 가게에서 사면 5만 원 내외로 비싼 편이다. 그러나 서울 동대문 두타빌딩 뒤 동화 상가에 가면 하나에 2000~3000원이면 장만할 수 있다.
◇머플러를 두른다.
머플러는 여자들에게는 흔한 패션 아이템이지만 남자들이 패션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겨울철에는 당연히 남자들도 머플러를 두르고 다니지만 보온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겉옷과 함께 대충 두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머플러는 목에 휘감아야 멋있다. 남자용 머플러는 색깔이 다양하지 않으므로 여자들 머플러 중에서 화려하지 않은 타입의 머플러를 고르면 된다.
◇조끼 패션도 좋다
어디 나갈 때 양복 상의를 갖춰 입자니 직장인 같고 티셔츠 차림으로 가자니 패션에 개념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될 때가 있다. 이럴 때 훌륭한 패션 아이템이 조끼다. 조끼엔 마력이 있다. 입으면 단박에 세련됨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바뀐다. 다만 망사 형태의 조끼는 낚시하러 다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패션으로 입는 조끼라면 여러 형태의 조끼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필자 경우는 정장에 받쳐 입는 조끼도 많지만 캐주얼로 입을 수 있는 조끼도 많다. 주로 이월상품이나 중고 의류를 파는 곳에 가면 다양한 조끼를 살 수 있다.
남자의 계절 가을.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엔 홀로 고독을 휘어 감고 앉아 위스키 한 잔을 즐겨보는 것 어떤가. 그렇다면 여심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레스토랑보다는 투박하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제격이겠다. 남심을 사로잡는 뉴 아메리칸 다이닝 ‘보타이드버틀러’를 소개한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나비넥타이를 한 집사’라는 뜻의 ‘보타이드버틀러(Bowtie de Butler)’는 빈티지하면서도 중후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체스판 무늬 바닥부터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 바 테이블 옆에서 나오는 무성영화까지 레스토랑 곳곳에서 묻어나는 흑백의 조화가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자극한다. 화려함보다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보타이드버틀러만의 분위기는 20대 여성 고객 위주의 맛집과는 차별화된 이곳만의 매력이다. 실제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도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인테리어 분위기는 남성 취향이지만, 음식 맛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보타이드버틀러는 1980년대 뉴욕에 이주민들이 몰리며 여러 나라의 식재료와 레시피가 어우러지며 탄생한 뉴 ‘아메리칸 다이닝’을 선보인다. 혼자 가볍게 식사와 와인을 즐기러 오는 중년 남성부터 기념일을 맞이한 커플, 가족 모임이나 회식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까지 누가 오더라도 나름의 멋과 맛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무채색 배경이 주를 이루는 보타이드버틀러에서 가장 색감이 두드러지는 것은 키친과 마주한 에머럴드색 소파다. 소파 바로 위의 빈티지한 창문과 함께 어우러져 오픈된 주방에 활력과 빛을 더한다. 보타이드버틀러의 윤영기 총괄셰프는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엄선하여 최선을 다한 정찬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보통 고객들이 오시면 여러 메뉴를 시켜서 나누어 먹곤 하죠.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한 가지 음식에 대해 온전히 다 느끼긴 어렵기 때문에 늘 아쉬워요. 한 분이 오셔서 한 가지 음식을 드시더라도 충분히 풍미를 느끼고 든든하게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어요”라며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겨볼 것을 조언했다.
보타이드버틀러는 다양한 코스와 단품 메뉴, 주류를 제공한다. 런치 코스는 3만 9000원이고, 총 4가지로 구성된 디너 코스는 메뉴에 따라 4만 5000원, 6만 3000원, 8만 9000원, 10만원이다. 스파클링, 레드, 화이트 등 수십 여 가지 와인은 물론, 간단하게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튜브형 와인도 판매하고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 버번 위스키, 블렌디드 위스키 등 다양한 위스키와 코냑, 보드카, 데킬라 등도 즐길 수 있어 도수가 높은 주류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주소 서울 강남구 청담동 84-20
영업 시간 12:00~15:00, 18:00~22:00 /일요일 휴무
예약 및 문의 02-3443-6643, www.bowtiedebutler.com
주차 유료 발레 서비스(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