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미국 고전을 즐겨 읽던 사람이라면 김욱동이라는 ‘옮긴이’가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는 ‘노인과 바다’, ‘위대한 개츠비’, ‘허클베리 핀의 모험’, ‘주홍 글자’ 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비롯해 ‘앵무새 죽이기’, ‘그리스인 조르바’ 등 대표적인 영·미 문학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2013년 은퇴 후에도 번역가이자 영문학자로서 번역서와 문학 연구서를 출간해온 그는 신간 ‘번역가의 길’을 통해 번역 이론의 지평을 또 한 번 넓히고 있다.
진짜 사람처럼 맥락을 이해하고 대화한다는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가 영어로 쓰고, 인공지능 번역기 ‘파파고’가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 최근 출간됐다. 삶을 행복하게 꾸리는 방법에 관한 자기계발서다. 집필, 번역, 교정·교열, 편집 과정을 거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0시간. 기획부터 출간까지 걸린 총 시간은 7일에 불과하다. AI 기술, 기계 번역이 산업을 넘어 사회 전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가 빠지지 않고 포함된다.
“번역가는 정말 없어지고 말까요?”
원로 번역가인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를 만나 물었다. 어쩌면 실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입을 뗐다. “기계 번역은 문법 구조가 복잡하거나 상황과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문장, 중의적 표현이나 문장, 신조어나 고유명사 같은 낱말을 번역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미묘한 감정을 다루는 문학 번역에서는 더더욱 사람을 능가할 수 없죠.”
김 교수는 기계 번역의 한계를 증명한 사례로 2017년 열린 인공지능 번역기와 인간 번역가들 간의 대결을 꼽았다. 구글, 파파고, 시스트란은 ‘The dog was rude to the blanket’(강아지가 담요에 실례를 했다)이라는 문장을 ‘강아지가 이불에 예의가 없었다’고 바꿨다. 번역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일어나는 결과다. “가령 구글로 ‘나 말리지 마’라는 문장을 영어 번역하면 어처구니없이 ‘Don´t dry me’가 나와요. 옷을 말리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고유명사는 이보다 더 심각해요. 경남 진주를 입력하면 ‘Gyeongnam Pearl’로 나오기도 해요. 바다의 보석 진주라니, 황당하죠.”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가 번역한 작품이 처음 활자로 찍혀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이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 미국 소설가 맥스 슐먼의 단편소설 ‘사랑은 오류’를 번역해 교내 잡지에 실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호루라기’에 관한 일화를 번역해 당시 월간 교양 잡지 ‘샘터’에 싣기도 했다. 어린 시절 프랭클린이 호루라기를 실제 값보다 네 배나 비싸게 샀던 일을 회고하며 쓴 글이다. 이때까지도 그는 영문학자가 되려 했으나, 부실하게 중역한 작품을 새롭게 바꿔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번역가의 길을 택했다.
이제는 번역계에서 이름난 김 교수지만, 번역을 하면 할수록 ‘번역’과 ‘반역’ 사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단다. 정확한 의미 전달과 동시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독성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번역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드높은 이상일지 몰라도 번역가는 ‘차선’을 향해야 합니다. 번역가는 육지와 육지 사이에 가로놓인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룻배를 젓는 뱃사공이 없다면 한 육지에 머물 수밖에 없듯이 번역가가 없다면 한 나라의 문학은 민족 문학의 울타리에 갇혀 있게 되겠죠. 우리가 침묵하며 변방에 살지 않고 다른 나라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사는 건 다름 아닌 번역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의 감수성을 옮기다
그는 번역에도 ‘소비기한’이 있다고 말한다. 번역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받기 때문에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은 기존의 번역을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한 시대에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던 작품도 다른 시대에서는 그러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별에 관한 번역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냥 ‘교사’, ‘검사’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여교사’, ‘여검사’라는 말을 사용하는 거죠. 과거에는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중 남성이 여성보다 월등히 많아 생겨난 단어라고 해도, 현재는 그 비율이 뒤집어져 ‘남교사’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여교사’라는 말이 여전히 자연스레 쓰이는 걸 보면 그만큼 언어에 남성 중심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어요. 시대를 거듭할수록 독자의 감수성도 바뀌니, 번역가들도 능동적인 태도를 취해야죠.”
책은 독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긴다. 은퇴 후에도 김 교수는 독자에게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고자 매일 개인 사무실에 나가 번역과 저술 작업을 하고 책을 읽는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거르지 않는다. 번역가는 낱말의 넓이를 키우고 깊이를 더해야 하며, 언어 감각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폭넓은 독서만큼 다양한 낱말을 익힐 방법은 없습니다. 대신 책의 내용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한 번쯤 저자의 의견을 의심하며 비판적 사고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권이라도 천천히 내용을 음미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 참 많죠. 지금까지 해온 만큼 앞으로도 오래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제빵의 빵자도 몰랐는데, 제빵 일을 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박승희(74) 씨는 경기도 성남시 ‘마망 베이커리&카페’(이하 ‘마망’)의 창업 멤버이자 터줏대감이다. ‘마망’은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 일자리) 민간형 사업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2005년부터 성남시와 수정노인종합복지관이 공동으로 운영하며,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04년 박승희 씨는 거주 지역에 빵집이 생긴다는 소식과 함께 ‘베이킹을 배워보라’는 딸의 제안을 들었다. 빵에 관심은 없었지만, 취미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박 씨는 빵집을 찾아갔다. 그 빵집이 바로 지금의 ‘마망’이다. 박승희 씨는 “베이커리 이름인 ‘마망’도 딸이 지어줬다.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마망’에서는 제빵 일 희망자에게 성남시 근로자종합복지관을 소개해줬다. 제빵·제과 교육을 듣고 자격증도 취득할 것을 권했다. 박승희 씨는 제과기능사 자격증은 2005년 8월, 제빵기능사 자격증은 2006년 4월 각각 취득했다. 이에 대해 “필기시험은 책을 사서 공부했고,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실기시험은 제과기능사는 한 번에 붙었는데, 제빵기능사는 두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제빵기능사 첫 번째 시험을 볼 때는 과제가 버터톱식빵이었어요. 빵이 봉긋하게 올라와야 하는데 주저앉아서 떨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시험을 볼 때는 시간이 많이 촉박했어요.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최선을 다해서 빵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빵을 끝까지 익혀서 꺼내놓고 나왔더니 합격했습니다. 그때 임신한 분이 저와 끝까지 남아 있었는데, 그분도 합격하셨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그렇게 박승희 씨는 본격적으로 ‘마망’의 제빵사가 됐다. 어떤 빵이 가장 자신 있냐고 묻자 “우리 매장에서는 단과자빵인 소보로빵, 단팥빵이 인기가 많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그는 “‘마망’의 진짜 제빵사는 젊은 강사님”이라고 표현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장이다 보니 강사가 전체적인 관리·감독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로 강사님이 빵 반죽을 합니다. 1차 발효가 되면, 엄마(근로자)들이 빵을 만들어 발효실에 갖다놓는 것까지 하죠. 이후 빵을 굽는 것은 강사님이 하시고, 포장은 엄마들이 합니다. 우리는 60세 이상부터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년까지 직원 중에 90세 넘은 분이 있었고, 지금은 제일 나이 많은 분이 83세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깜빡깜빡하잖아요. 그래도 빵 레시피가 큰 글씨로 써 있고, 강사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박승희 씨는 베이커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초기에는 빵이 안 팔려서 만든 사람들이 사가곤 했다. 그렇게 열악한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되고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마망’이 장학금 지원사업을 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70대 나이까지 즐겁게 일하고 있어 행복하다.
“저는 빵 만드는 게 재밌고 즐거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했겠죠? 제가 만든 빵을 손님들이 먹고 ‘맛있다’고 하면 소소한 보람을 느낍니다. 또 제 일의 장점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고, 근무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노인 일자리 사업이기 때문에 저는 ‘마망’에서 하루 5시간만 일하고, 한 달에 많아야 11번 출근해요. 60세 이상 분들에게 노인 일자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라고 추천합니다!”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는 저서 ‘바이오필리아’ (Biophilia)를 통해 ‘녹색갈증’에 대해 언급했다. 녹색갈증이란 자연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 또는 본능을 일컫는다. 그에 의하면 자연을 가까이할 때 인간은 행복과 평안을 느끼지만, 반대의 경우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생긴다. 삭막한 도시, 각박한 일상 속 사람들이 반려식물을 찾는 이유도 그러하다.
도움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김광진 농업연구관·이형석 농업연구사, 박신애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바이오힐링융합학과 식물매개치료 전공교수
녹색식물을 향한 갈증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더해졌다.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 추이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해 2021년 정점을 찍었다. 김광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관은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야외 활동이 제약되며, 실내에서도 자연을 느끼고 식물을 가꾸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와 더불어 스마트 기술이 접목된 실내 재배기나 원예 장비들이 다양하게 개발됐고, 반려식물병원·식물호텔 등 관련 서비스가 생겨나 반려식물 시장이 급격히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올해 2월 경기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반려식물’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경기도 반려식물 활성화 및 산업 지원 조례안) 방성환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반려식물을 키우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반려식물에 대한 국민적 수요와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관련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조례안의 취지를 밝혔다.
◇ 노후 일상에 생기 더하는 반려식물
조례안에 따르면 반려식물이란 ‘가정 및 회사 등 실내외에서 쉽게 기를 수 있고, 식용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인간과 짝이 되어 교감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고자 기르는 식물’을 의미한다. 생겨난 지 오래되지 않은 용어라 구체적인 정의는 전문가나 기관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서적 교감’이 핵심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올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반려식물 관련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도 반려식물을 기르는 목적이 ‘정서적 교감 및 안정을 위해서’라고 답한 이가 과반수였다. 연령대별 분포를 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이러한 목적성은 점차 증가한다.(△30대 52.1% △40대 54.4% △50대 56.2% △60대 이상 57.9%) 응답자들은 반려식물을 기르며 나타난 심리적 효과로 ‘정서적 안정’(76.9%)을 우선으로 꼽았다. 이어 ‘행복감 증가’(73.1%), ‘우울감 감소’(68.4%), ‘희망이 생김’(56.4%) 등 긍정적 효과를 드러냈다.
한국정원디자인학회지에 실린 ‘반려식물이 도시에 거주하는 여성 독거노인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2020) 조사에서는 사례자의 94.6%는 ‘반려식물이 정서적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78.8%는 ‘반려식물과 대화하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있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22 반려식물 보급사업 결과 보고’에서도 참여자의 94.1%가 반려식물을 키우며 생활에 활력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에 참여한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식물 먼저 쳐다보고 잎사귀를 닦아주며 아기처럼 매일매일 자라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반려식물 덕에 외롭지 않고 가꾸는 재미가 있다”, “혼자 살면서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꽃이 피는 순간 기쁨을 느낀다” 등 반려식물을 통해 긍정적으로 달라진 삶을 이야기했다.
◇다양한 질환에 접목되는 식물매개치료
과거에는 단순 취미나 실내 공기 정화 등을 위해 화분을 샀다면, 이제는 내면의 긍정적 효과까지 생각해 반려식물을 들이는 모습이다. 정서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자칫 원예를 정적인 활동으로 여기기도 한다. 동물처럼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 식물의 특성도 이러한 오해를 부추긴다. 그러나 정성껏 화분을 길러본 이들이라면 알 테다. 인간이 대신 손발이 되어 더 바삐 움직여야만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음을 말이다. 때맞춰 물을 주고, 양지로 화분을 옮기고, 이따금 가지치기와 분갈이도 하는 등 지속적인 신체 활동이 뒤따른다. 화초가 많거나 화분이 크다면 더 강한 체력이 요구된다. 이렇듯 심신에 모두 이롭게 작용하는 덕분에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반려식물이 쓰일 때도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원예치료(치유)라고 한다.
박신애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바이오힐링융합학과 식물매개치료 전공교수는 “식물을 매개로 한 치료는 무해(無害)하고 부작용이 없는 게 장점”이라며 “최근에는 뇌졸중, 우울증, 갱년기 장애 등 다양한 질환에 원예치료를 접목한다. 미국,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과 원예치료를 결합한 형태의 처방도 이뤄진다. 병원 내 원예치료사를 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저서 ‘몸과 마음을 살리는 녹색의 힘, 식물 치유’를 통해 밝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원 가꾸기에 참여한 노인들의 경우, 인지 능력과 연관된 수치(BDNF, 뇌유래신경영양인자)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반면 그렇지 않은 노인들은 되레 수치가 감소했다. 또 자녀의 독립과 갱년기 등으로 우울증 발병률이 높은 50~60세 여성에게 식물매개치료의 신체적·심리적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났다. 이들은 치료를 통해 자기 정체성이 향상됐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던 60대 여성은 원예 활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며 극찬하기도 했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질환 개선을 목적으로 반려식물을 키워봐야겠다 싶을 수 있다. 박 교수는 “개인이 반려식물을 기르는 것만으로는 질환 개선 면에서 극적인 효과를 보긴 어렵다. 치료 목적이라면 전문 복지원예사(구 원예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단번에 효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오랜 시간 반려식물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건강해지며 질환을 예방·개선할 수 있다. 이제는 식물을 통한 새로운 개념의 헬스케어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아침을 깨우며 커피를 마시듯 녹색 생기를 충전하고, 잠들기 전 식물과 교감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등 매일매일 수시로 힐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반려식물 주목적은 교감, 건강은 덤
반려식물은 직·간접적으로 우리 몸을 이롭게 하지만, 건강 증진만을 목적으로 하면 그저 수단에 그치기 십상이다. 결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서적 교감. 최근에는 건강 증진을 위해 기르는 식물을 ‘헬스케어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같은 종의 식물이 될 수도 있고 장기적인 효과는 비슷할 수 있으나, 목적은 건강(헬스케어식물)과 교감(반려식물)으로 분명히 나뉜다. 이형석 농업연구사는 “헬스케어식물이란 재배 과정에서 느끼는 환경 변화를 통해 소비자의 신체적·심리적 건강 유지와 증진을 도모하는 식물체를 말한다. 2021년부터 개념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건강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종에 따라서는 섭취함으로써 그 효과가 더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먹는 작물은 반려식물이 될 수 없을까? (건강에 이로운) 공기정화식물은 반려식물로 두면 안 되나? 이 연구사는 “생각의 순서를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며 “가령 공기정화식물을 반려식물로 삼아도 되느냐보다 반려식물로 삼은 식물 중에 공기 정화 효과를 지닌 것도 있다는 식이다. 교감이 우선이지만 그 식물이 지닌 본연의 기능이나 특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효능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이다. 다만 반려식물은 인문학적인 요소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따라서 반려식물을 고를 때는 객관적인 효과보다는 주관적인 효과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식물의 어떤 반응에 내가 교감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다. 이 연구사는 “어떤 식물이 공기 정화에 효과적이냐고 물어보면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반려식물을 추천하긴 어렵다. 개인마다 느끼는 교감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생육 과정이 잘 보일 때 교감이 잘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 또한 천차만별이다. 키가 빨리 자라는 걸 기준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잎이 많이 나고 무성해지는 것에 반응하는 이도 있고, 매일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통해 교감하려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고 유행하는 식물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특별히 여길 식물이 적합하다”고 했다.
반려식물과 더 오래 함께하려면
애지중지 교감하며 키운 반려식물이 시들거나 죽는다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다시 식물 들이는 일을 주저하게 만든다. 박신애 교수는 “식물 키우기를 꺼려하는 분들을 보면 대개 물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꾸준히 잊지 않고 잘 주기도 어렵지만, 식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이나 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마트 농가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ICT(정보통신기술)와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식물 재배기나 관련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졌다. 기술의 힘을 빌려 반려식물을 키우더라도 교감을 통한 긍정적 효과는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실패보다는 성공의 경험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형석 농업연구사는 “주변에 식물을 권하면 ‘내가 키우면 다 죽더라’며 고사하는 이가 많다. 혼자서 감(感)에 의존해 키우는 경우에 그러하다. 식물이 좋아하는 빛과 물의 양을 때맞춰 제공하는 제품도 있고, 사진으로 병충해 상태를 진단하는 서비스도 나왔다.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받으면 누구나 건강하게 반려식물을 키울 수 있다. 관리도 마찬가지지만 교감에 대해서도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 없다. 식물은 꼭 적극적인 관심을 준다고 해서 잘 자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한 생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때때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막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다. 2월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는 160만 명을 달성했다. 실제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이행된 건수는 26만 건을 넘어섰다. 이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진 것을 의미하는 데, 안락사와 존엄사를 합법화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 국민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지난 2018년 2월 4일 시행됐다.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 있다고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의사가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이행하는 경우, 환자 본인의 의사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불명이거나 충분한 의사 표현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 가족 2인 이상에게 일치하는 진술을 받고,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논의해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등록자 수가 160만 명을 넘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19세 이상이면 작성 가능하며,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작성하면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유보 또는 중단에 관한 의사를 남겨 놓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 의사가 작성한다. 말기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인지 여부는 해당 환자를 직접 진료한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인이 동일하게 판단한다.
국민 10명 중 8명, 연명의료 원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과 연명의료결정제도 참여 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예정이다.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국민 모두가 생애 마무리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정착되고 나아가 확산되도록 더욱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향 정책관은 “최근 행복한 노년기와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만큼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더욱 알려 많은 국민이 제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더라도 생명 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를 받을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81.7%가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 중 45%는 ‘절대 받지 않겠다’, 36.7%는 ‘받지 않을 것 같다’고 나타났다.
노인 세대의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반대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85.6%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매우 반대하는 강력한 의견이 46.0%에 달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노인은 4.7%에 불과했다.
조력 존엄사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는 모두 불법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 중 스스로의 의사로 조력 존엄사를 희망하는 경우, 결정 기구를 거쳐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력 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존엄사는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약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별된다. 안락사는 의사가 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연명치료 중단 등을 포괄한다.
조력 존엄사에 대해 여론은 대체로 찬성 쪽이다. 개정안 발의 후 한국리서치가 국내 성인 1000명에게 조력 존엄사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18%였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의 찬성 비율이 86%로 가장 높았다.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자기 결정권 보장’(25%),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등이 꼽혔다. 조력 존엄사 입법화 반대 이유로는 ‘생명존중’이라는 응답이 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악용과 남용의 위험’(27%), ‘자기 결정권 침해’(15%) 등이 뒤따랐다.
의료계에서는 조력 존엄사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며 거센 비판을 가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는 법안이 발의 되자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 이전에 존엄한 돌봄의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의 확충,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의 뒷받침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웰다잉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으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소규모 안락사’라고 부른다.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다만 부정적인 우려를 낳지 않도록 사회적인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단순히 요양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요양보호사, 수급자 모두가 존중받는 선순환을 만든다. 더 많은 시니어가 주체적으로 살며, 결국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시니어 케어 요양 기업 ‘케어링’의 목표다.
케어링은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을 돌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내 가족을 돌보고 정부 지원을 받는 가족요양,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 및 방문목욕, 건강관리·치매 예방 등 간호를 지원하는 방문간호, 욕창 매트리스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복지용구 커머스, 케어링 고객이라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공동구매 커머스,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무료로 돕는 등급신청 대행, 주야간보호센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 설립 후 2020년 매출 20억 원을 달성, 복지용구 및 방문간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2021년에는 매출 110억 원을 달성했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최고브랜드대상의 ‘방문요양 서비스’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에는 소셜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부터
케어링의 성장은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케어링 직원과 돌봄 종사자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만족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수급자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 믿는 점이 케어링의 성장 포인트다. 김태성 케어링 대표가 말하는 ‘존중의 선순환’이라는 가치다.
케어링의 돌봄 서비스는 수급자와 요양보호사 혹은 간호사의 1:1 매칭에 공을 들인다. 방문요양의 경우 이용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요양보호사를 케어링이 매칭하면 가정에 직접 방문해 대화를 나누며 성향이 맞는지 살핀다. 일종의 면접인 셈. 2023년 1월 기준 케어링 이용자는 8358명, 요양보호사는 약 2만 7000명이다.
케어링은 가족요양이라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직계 가족을 요양하고 급여도 받을 수 있는 제도지만 많은 요양보호사들이 모르고 있었다. 또한 방문요양 시급 1만 3750원, 방문목욕 시급 2만 200원으로 최고 수준의 시급을 제공하고 있다. 퇴직금 제도도 운영하며 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한다. 올해 3월에는 요양보호사 감사 축제로 ‘제1회 케어링 요양보호 사랑해 축제’를 연다.
케어링이 요양보호사의 처우에 신경 쓰는 만큼 이들의 만족도도 높다. 남춘화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가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매달 확인해주고, 센터와 교류가 잘되는 게 좋다”고 전했다. 김은숙 요양보호사는 “현실적으로 가족요양 시급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케어링의 요양보호사 대기인력으로 등록하려면 홈페이지나 전화 상담으로 신청할 수 있다. 원하는 지역 근처에서 일자리가 생길 경우 문자로 알림을 보내준다. 매칭이 완료되면 센터에 고용되어 시간제로 일하게 된다.
조용욱 케어링 운영총괄 이사는 “요양은 수급자에 따라 정말 다양한 상황에 놓여 있어 다양한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개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잘 맞는 요양보호사가 함께하는 것이 방문요양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는 요양보호사를 위한 멤버십 제도나 커뮤니티 등도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시니어가 모여 사는 마을
최근 케어링이 집중하는 분야는 공동구매와 커뮤니티케어 센터를 운영하는 일이다. 돌봄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기저귀, 건강식, 물티슈 등 고정적으로 필요한 물품이 생긴다. 거동이 불편하면 직접 구매하러 나가기도 어렵고, 온라인 구매도 쉽지 않다. 그래서 케어링은 공동구매라는 커머스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 최저가보다 더 저렴하게 필요 물품을 판매한다.
커뮤니티케어는 주야간보호센터를 말한다. ‘어르신 유치원’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르신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식사도 함께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이 센터를 구심점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서로가 돌볼 수 있는 요양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목표도 있다. 현재 부산에 4개의 지점을 오픈했으며, 4년 안에 전국에 100개 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케어링은 고령자의 생활 주기에 맞게 거주지를 리모델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은퇴 후 시니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자 한다. 일본과 미국에는 시니어 배리어프리 주택 단지가 있다. 김 대표는 15만 명이 모여 사는 미국 플로리다주 시니어타운을 직접 다녀왔다. 그는 “몸이 아프기 전에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레저나 친목 활동을 함께하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케어링이 이런 비즈니스까지 확장되도록 할 것”이라고 향후 목표를 설명했다.
케어링은 방문요양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종합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2022년 8월 30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케어링은 데이케어센터를 늘리고, IT를 통한 돌봄 서비스 향상, 시니어 구인·구직 앱 서비스, 요양보호사 교육원 확장 등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치솟는 난방비로 인해 소비자들의 공공요금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당 평균 난방비(지역난방·중앙난방 기준)는 2021년 12월 334원에서 지난해 12월 514원으로 53.9% 올랐다. 지역별로는 세종(1075원)의 난방비가 같은 기간 55.6% 상승하며 ㎡당 1000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경기(848원), 서울(767원), 인천(675원), 대전(638원), 충북(515원), 대구(396원) 등의 순으로 ㎡당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
주택용·영업용 가스 요금 자체도 1년 전에 비해 1.5배 이상 올랐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용 도시가스 사용량은 8555만GJ(기가줄)로, 2021년 12월(7673만GJ) 대비 11.5% 증가했다. 지난해 가스 도매요금은 주택용 기준으로 네 차례(4·5·7·10월)에 걸쳐 38.4% 올랐다. 산업부는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실질 난방요금이 2021년 12월과 견줘 작년 12월에 1.54배 오른 것으로 추산했다.
에너지바우처, 28일까지 신청
이에 정부는 ‘난방비 폭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을 위해 ‘에너지바우처(사용권)’ 확대 지원 대책을 내놨다. 에너지바우처는 취약계층에 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LPG, 연탄 등 구입 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산업부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게 기존 난방비 대책의 최대 지원 금액인 59만 2000원(에너지바우처 대상 생계·의료 수급자)까지 상향 지원한다. 동절기 4개월간(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의 가스요금 할인을 통해 이뤄진다.
에너지바우처를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에는 기존 가스요금 할인으로 지원받는 14만 4000원에 44만 8000원의 가스요금을 추가로 할인해준다. 에너지바우처를 받지 못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생계·의료급여형 수급자에게는 기존 가스요금 할인으로 지원받는 28만 8000원에 30만 4000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주거형 수급자는 기존 14만 4000원에 44만 8000원을, 교육형 수급자는 기존 7만 2000원에 52만 원을 가스요금으로 추가 할인해줄 방침이다.
에너지바우처는 생계급여·의료급여·주거급여·교육급여 수급자 가운데 본인이나 세대원이 △노인(1957년 이전 출생자) △영유아(2016년 이후 출생자) △장애인 △임산부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중증난치질환자 △한부모가족 △소년소녀가정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 주민등록상 거주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나 복지로 누리집을 통해 2월 28일까지 신청하면 된다.
혜택은 고지서를 통한 요금 자동 차감 또는 국민행복카드 사용을 통해 받을 수 있다. 국민행복카드는 보건복지부 17종의 국가 바우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통합카드로 전기, 도시가스의 경우 각 에너지공급사(한전, 도시가스사)에 직접 카드 결제해 사용이 가능하고, 등유, 연탄, LPG의 경우 에너지바우처 가맹점(판매소)에서 바우처 사용기간 안에 결제하면 된다.
보일러 교체 시 보조금 지급
이 밖에 노후화된 가정용 보일러를 친환경 보일러로 교체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반 가구는 10만 원, 저소득층은 60만 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저소득층에서 특정 제품(경동나비엔, 귀뚜라미)을 선택하면 해당 보일러 제조·판매사에서 자부담액을 지원하기 때문에 무상으로 교체할 수 있다. 저소득층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 가족 등이 해당한다.
친환경 보일러는 열효율이 92% 이상으로 노후 보일러 대비 약 12% 정도 높아 연료비 절감에 도움을 준다. 환경부는 친환경 보일러로 교체할 경우, 지난 1월 도시가스 요금을 기준으로 1대당 연료비가 연간 최대 44만 원이 절약된다고 설명했다. 보조금은 ‘가정용 보일러 인증 시스템’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관할 시군구 환경부서에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보일러 판매자의 대리 신청도 가능하다.
한편, 올겨울 강력한 한파가 연일 이어지면서 동상이나 저체온증 등 한랭(寒冷)질환 환자가 지난겨울보다 65.9% 증가했다. 질병관리청의 ‘2022-2023절기 한랭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한랭질환 신고 환자 중 절반가량(52%)은 65세 이상 고령자였으며, 저체온증이 83%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질병청은 “고령자와 어린이는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어 보온을 유지하고, 갑작스러운 추위 노출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은 물론 사회복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천사’로 불린다. 가족이 아닌 남, 특히 장애인을 돌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이에 고충이 따르지만 장점도 많은 직업이다. 일하면서 얻는 보람이 크고 수입도 생긴다는 점이 장점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은퇴 이후 시니어에 특히 추천된다.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할 것 같은 장애인 활동지원사. 정확히 무슨 일을 할까. 먼저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 등의 이유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한 장애인의 가정에 방문해 일상생활을 보조하고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력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에서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신체·가사·사회활동을 지원한다. 신체 활동 지원은 개인위생 관리, 신체 기능 유지 증진, 식사 도움, 실내 이동 도움 등을 말한다. 가사활동은 청소 및 주변 정돈, 세탁, 취사 등, 사회활동은 등하교 및 출퇴근 지원, 외출 시 동행 등이 포함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중장년 추천 이유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될 수 있다. 국가 자격증이 있거나 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다만 직업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국가 자격증 도입을 시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된다. 보통 교육은 4~5일, 현장 실습은 2~3일이 소요된다. 표준교육은 40시간으로 5일간 8시간 받으면 된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32시간만 교육 받으면 된다.
활동지원사 교육에서는 장애의 이해부터 활동지원사가 하는 일에 대해 폭넓게 알려준다. 보조기, 장애인의 재난 대처 및 감염병 관리, 응급상황 대처법까지 교육한다. 실습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교육 이수 후 현장실습을 무조건 해야 하는데, 10시간을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실습을 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한다. 기관 처지에서는 실습생이 포화 상태로 모두 받아주기 힘든 상황이다. 즉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기본적인 소양이 필요하며, 예기치 못한 일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 목욕, 용변, 옷 입히기 등을 모두 돌봐야 하는 만큼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직업이다. 중증장애인을 상대하기는 특히 어렵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젊은 세대보다는 중장년층에게 추천된다. 힘든 일도 마다치 않고 과거 아이를 양육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중장년층에게 적합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전남 유일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된 쌍봉종합사회복지관 마혜란 팀장은 “정년 퇴임을 하고 나면 우울감을 느끼기 쉬운데,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사회생활을 함으로써 생활에 윤택함도 얻을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소득도 발생한다”고 중장년층에게 추천하는 이유를 말했다.
마혜란 팀장은 “우리 기관은 장애인 맞춤형으로 활동지원사를 연결해주고 있다”면서 “매칭 된 후 양쪽 분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 또한 행복을 느낀다. 에너지를 얻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전했다.
쌍봉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김혜숙(63) 씨는 “활동지원사와 이용자(장애인)는 사람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부분을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잘 대응해줘서 일하는 데 불편함을 덜어준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처우 개선될까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요양보호사와 비슷한 직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두 직업은 차이가 크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을, 요양보호사는 노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더욱이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요양보호사와 다르게 처우 개선을 위한 조례나 기본 계획이 없는 상황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국가에서 급여를 지급한다. 먼저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고용한 기관은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이후 기관에서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일한 시간에 맞춰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시급은 1만4805원이다. 그러나 소속 기관이 25%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이에 수수료를 제하면 실수령 시급은 약 1만1000원이다. 공휴일 및 야간의 경우 1만6000원 안팎의 시급 수령이 가능하다.
장애인을 케어하는 일은 많은 힘과 스트레스가 따르는데 이에 비하면 높은 시급은 아니다. 더욱이 오랜 시간 근무가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평균적으로 하루 3~8시간 일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업무량이나 업무 난이도에 따른 급여 차이가 없고,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해고 가능성이 큰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되는 부분이다.
종합해 보면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사회봉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얻는 보람과 성취감이 크다. 직업의 전망 역시 밝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고 있고, 올해부터 장애인 활동지원사 서비스가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는 동시에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염원하는 처우 개선 역시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올해부터 달라지는 점은 무엇일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65세 미만 노인성 질환자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자는 지난해 13만5000명에서 14만6000명으로 늘어났다.
기존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하는 65세 미만의 장애인은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애인 돌봄의 사각지대를 완화하기 위해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장기요양법으로 정하는 24가지 노인성 질병이 있는 65세 미만의 등록 장애인도 활동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당 단가는 1만4800원에서 1만5570원으로 5.2% 인상됐다. 최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에게 추가로 지급하는 수가인 가산급여도 확대된다. 보건복지부는 “활동지원사 임금 수준을 올려 제공 인력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노화를 겪는 몸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노인의 나라에서 돌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돌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OECD는 2040년 우리나라가 2040년에 세계에서 요양 서비스 인력이 가장 부족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치를 냈다.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 벌어진 일인데, OECD는 2040년까지 노인돌봄인력을 140% 이상 충원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게다가 노인 스스로가 대표적인 노인돌봄시설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장기요양기관 입소를 원치 않는다. 노인 스스로가 지역 사회를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다양한 통계자료로 검증된 사실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83.8%가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살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그간 맺어 온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정서적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에 주목한다. 서울연구원의 도시사회연구실 연구위원들은 책 ‘노인을 위한 동네-고령친화 지역사회 만들기’에서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고령친화사회’의 열쇠가 노인의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동네에 있다고 말한다. 지역사회 안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노인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
그러나 저자들이 책에서 짚었듯, “하나의 정책만으로 오랜 시간 고성장 산업화에 맞춰 형성되어 온 우리 도시와 동네가 금세 노인도 행복한 삶터로 바뀔 수 없다.” 노인이 집을 떠나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삶의 직접적 공간이 되는 지역사회가 ‘노인이 살기 좋은 동네’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
이에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은 취약계층인 고령층을 위해 어떤 지역사회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차례는 미국이다.
WHO 기준 맞춰 운용, 뉴욕‧포틀랜드 참고해야
세계보건기구(WHO)는 노인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대해 일찍이 관심을 표한 바 있다. WHO는 2006년부터 ‘고령친화도시’ 프로젝트를 시행해오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세계적 문제로 대두된 고령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도시에서 거주하는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교통, 주거, 사회참여 등 8개 영역, 84개 세부항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부합하는 지역에 고령친화도시 인증을 부여한다. 지난해 말 기준 51개국, 1445개 도시가 가입해 상호 교류 중이며, 국내에는 서울 도봉구, 영등포구, 마포구, 전라북도 완주군 등 40개 지자체가 가입 완료된 상태다.
지난 2007년 ‘고령친화 뉴욕’ 정책을 발표한 뉴욕시는 201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령친화도시에 가입했다. 이에 걸맞게 뉴욕은 고령자에게 친절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고령친화 안전도로조성사업을 통해 버스정류장의 휴식시설을 늘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택시 바우처를 개발하는 식이다. 또한 고령자 커뮤니티 지원 사업을 통해, 고령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고령친화지구’로 지정하고 교통 편의나 사회적 교류 활동 등을 지원한다.
포틀랜드의 사례도 눈여겨 봄직하다. 2006년 미국에서 최초로 WHO 글로벌 고령친화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도시로, 현재까지도 주택, 교통, 디자인 등 물리적 환경에 중점을 두고 보다 고령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 정책을 펴고 있다. 지역사회 내 50세 이상 중장년이 어린이를 가르치는 튜터링 자원봉사 프로그램 역시 성과를 내고 있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중장년 튜터 97%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 중 57%가 읽기 쓰기 능력이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주택 수리비 지원하고 대중교통 시설 정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국제사회보장리뷰’ 2022 가을호에 실린 ‘미국의 고령친화 지역사회 정책’ 연구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도 WHO의 기준에 근거해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노인이 거주하는 집 안의 위험 요소를 줄이고, 주택의 안전 및 기능을 향상함과 동시에 주택을 소유한 저소득층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연 3천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한다. 프로그램은 화장실의 미끄럼을 방지하고 단차를 제거하거나, 안전바‧손잡이를 설치하고, 보조의자나 가정용 리프트를 두는 식으로 진행된다.
집을 수리할 금액을 마련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금전적인 지원도 있다. 농무부는 △거주지 중위소득 50% 미만이며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실거주자이고 △62세 이상 노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대출금 상환이 어려운 자는 최대 1만 달러, 대출 받을 자격이 인정된 노인은 대출금 4만 달러를 합쳐 최대 5만 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노인 대상 교통 지원 프로그램은 ‘미국노인법’(Older Americans Act)에 기초한다. 고령자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에 의한 노인 교통 지원 프로그램은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통수단이 부족한 지역의 비영리기관에 예산을 지원한다. 예산은 교통수단의 유지‧보수, 휠체어 관련 장비 구매, 대중교통 운행 시간표와 같은 정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분야에 쓰인다.
이러한 교통 지원 프로그램은 노인을 돌보는 가족 요양인도 이용할 수 있다. 미국노인법의 ‘가족 요양인지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외에도 가족 요양인에게 상담이나 자조모임, 요양자 훈련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60세 이상 노인이나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를 돌보는 18세 이상의 가족 요양인 혹은 55세 이상의 친척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당연해진 사회, 인터넷 요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비대면 사회 교류를 돕는 곳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2021년 ‘EBB’(Emergency Broadband Benefit)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 노인에게 매달 최대 50달러의 인터넷 요금 할인을 제공했다. 프로그램의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이용자들은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구매할 때 최대 100달러의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미국이지만 한계는 있다. ‘미국의 고령친화 지역사회 정책’ 연구의 저자는 “동‧서부의 큰 도시에만 정책이 몰려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작 시골에 사는 노인들은 지원 프로그램이나 혜택에서 빗겨나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를 대비해야 할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연 매출 2조 원을 바라보는 국내 아웃소싱 기업 1위 삼구아이앤씨. 이곳 총수의 집무실에는 ‘책임대표사원’이라는 독특한 문패가 달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더 인상적이다. 비좁은 방 크기, 드넓은 세계를 담은 지구본, 박스 테이프로 덧붙인 40년 차 사무용 의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주인, 여든의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젊은 기자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며 다가왔다.
“사무실은 한정적인데 내 방을 크게 하면 직원들 공간이 좁아지잖아요. 이만하면 일하는 데 충분합니다. 이 오래된 의자도 아무 문제 없고요.(웃음)”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하 대표)은 자신의 공간을 줄이는 대신 직원들에게 넓은 책상을 놓아줬다. 책상의 크기만큼 생각도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하고도 남는 공간은 휴게실, 드레스룸 등 모두 직원들을 위해 쓰였다. 훗날 여건이 된다면 건물 한 층을 임직원의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보리라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늘 직원의 편의와 행복을 우선으로 여기는 구 대표. 그가 ‘책임대표사원’을 자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들과 달리 신규 채용, 신생 사업 등 새로운 시도에는 변수가 따릅니다. 직원들이 문제가 생기거나,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리스크까지 담당자가 모두 책임지려면 부담이 크겠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일이 잘못될까봐 기회를 주저하는 상황도 생길 테고요. 때문에 다른 일은 다 전결해도 딱 두 가지, 사람을 뽑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직접 결재합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최종 승인자인 내가 책임지게끔 하기 위해서죠. 그렇게 직원들이 다른 걱정 말고 맘 편히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회사 식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구 대표. 그런 그에게 가장 잊지 못할 직원이 있으니, 바로 박복순 여사님(삼구아이앤씨에서 청소 용역을 담당하는 여직원을 부르는 명칭)이다. 수십 년 전 일임에도 그 이름 석 자만큼이나 각인된 일화가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저도 현장에서 청소를 했어요. 하루는 고객사와 약속한 시간 안에 일을 못 마치겠더라고요. 함께하는 여사님들을 채근하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박복순 여사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사장님, 뜨는 해는 잡을 수 있는데, 지는 해는 못 잡아요. 이럴 거면 더 일찍 나오라고 하셨어야죠.’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래, 마감 시간은 우리가 못 바꿔도 시작 시간을 앞당길 순 있지!’ 인생에 빗대본다면 지는 해를 맞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뜨는 해를 맞는 시간은 자기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잖아요. 여사님의 한마디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일로 구 대표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형편 탓에 새벽일을 하며 아침을 허투루 보낸 적 없는 그였지만, 그날 이후 하루를 관조하는 자세가 사뭇 달라졌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조찬회와 대학 CEO 강의 등에 참여하며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두루 익혔다. 나태해지는 날이면 새벽 4시부터 일터에 나가 있을 여사님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뜨는 해를 앞당긴 덕분일까, 구 대표는 언젠가 찾아올 ‘지는 해’, 즉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이미 주변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묘비 하나 남기지 말라 당부했다. 다만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노라 말한다. 이는 여한 없는 삶을 살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구 대표가 중년 이후 해온 도전들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56세에 스키, 65세 할리데이비슨 면허 취득, 69세에 승마, 70세에 수상스키, 71세에 비행기 조종, 74세에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 트레킹 완주 등. 젊은이도 시도하기 어려운 도전들임에도 그는 망설임이 없다. 더 정확히는 망설일 수가 없다.
“예순이라서? 칠순이라서? 그렇게 늦었다고 한탄하고 미루다 100세가 되면요? 그때라도 할 걸 후회하지 않을까요? 건강이 허락하고, 즐길 만한 여건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해야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위험한 거 하다 잘못되면 어쩔거냐 그래요. 이 나이에 다치는 게 더 두렵지,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다쳐서 운 나쁘면 병원에 누워 연명하는 신세가 되니까요. 올해 여든에는 미국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스카이점프를 해볼 겁니다. 그리고 85세가 되면 뉴질랜드에 가서 밀포드사운드 트레킹에 재도전할 거예요. 현재 세계 최고령 완주자가 84세라고 하더군요. 그 기록 한번 깨보렵니다.”
고령 인력 위해 불태운 노년 학구열
구자관 대표가 레포츠 분야에만 도전을 일궈온 것은 아니다. 61세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해 64세에 졸업장을 땄고, 66세에는 서강대 경제대학원에 입학해 68세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단순히 학력을 쌓기 위한 흐름으로 보이겠지만, 그에겐 남다른 목표가 있었다.
“삼구아이앤씨는 다른 회사에 비해 중장년이 적지 않은 편이죠. 50~60대는 물론 70대도 꽤 있으니까요. 이분들을 접하다 보니, 다가올 백세시대에 고령 인력이 중요해지겠다 싶더군요. 평균 수명이 70세 전후였던 시절에야 60세에 은퇴하고도 그럭저럭 여생 즐기다 갈 만했겠지만, 요즘처럼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 시대에는 일 없이 버티기 어렵죠. 그런 고민과 메시지를 나누고 싶은데, 그냥 말하는 것보다 논문을 내면 더 힘을 실을 수 있겠더라고요. 후속 연구도 이뤄질 수 있고요. 근데 논문을 쓰려면 대학원에 가야 하고, 그전에 대학을 나와야 하잖아요. 당시 고졸 학력이 전부였던 터라, 예순 넘어 긴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었죠.”
보통은 학업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논문의 주제와 방향을 정하는데, 구 대표는 그 반대였던 셈이다. 어렵사리 졸업 시험을 통과했고, 손꼽아 기다리던 논문 작업에 착수했다. 최근에야 한국이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그가 고민을 시작한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학계의 움직임은 저조했다. 연구할 표본이나 참고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 난항을 겪던 차, 구 대표는 직원들에게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애초에 논문도 우리 회사 고령 직원들을 생각해 시작한 것이니, 결국 그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면 되겠더라고요. 먼저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설문조사를 계획했죠. 당시 담당 교수들이 우려했어요. 보통 답변 회수율이 10%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요. 요즘처럼 모바일을 활용하던 때도 아니니까요. 설문지를 꾸려 삼구아이앤씨에 다녔거나 다니는 70대분들에게 드렸는데, 600장 중 540장이 회수됐어요. 그것도 일주일 만에요. 덕분에 논문을 잘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나왔지만, 직원들과 함께 만든 결과라 말하고 싶어요.”
구 대표가 내놓은 ‘고령화 사회의 고령 인력 취업에 관한 연구’는 서강대 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우수논문상까지 받을 정도로 호평을 얻었다. 그는 당시 논문을 통해 임금피크제 및 건강 나이를 기준으로 한 정년제 도입 등을 이야기했다.
“근래 들어 정년 나이나 생산연령(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을 높이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기서 나아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개인의 건강 나이를 기준으로 노동력을 평가했으면 해요. 가령 내 나이가 팔십인데, 지금도 밖에 나가 땅도 파고 청소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나이라도 그게 어려운 분들이 있잖아요. 물론 그들에게도 단순노동 등 적합한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복지랍시고 그냥 돈을 주는 것보다는 소일거리라도 주고 소득을 얻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꼭 돈의 효용만을 따져서는 아니에요. 노인 스스로 일하고 노후를 개척할 때 자긍심과 보람을 얻을 수 있어요. 출퇴근을 하면 일상에 루틴과 활력이 생기고, 그렇게 노인의 심신이 건강해지면 역으로 복지비용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봐요.”
1등을 넘어 일류를 꿈꾸다
인터뷰 당일 아침 팔굽혀펴기 50개, 제자리뛰기 600개를 하고 나왔다는 구 대표. 논문에서 밝혔듯 자신 역시 고령 인력으로서 건강 나이 관리에 힘쓰는 모습이다.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뜻일 테다. 홀로 양동이와 걸레를 들고 다니며 식당 화장실을 닦던 청년이 4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업계 1위 기업의 총수가 됐다. 자수성가를 이룬 그에게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
“여느 기업가처럼 한때는 업계 1위가 되는 게 꿈이었죠. 그런데 2018년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고 그 꿈을 이룬 순간 목표를 재설정했습니다. 1등이 아닌 일류가 되자고 말이죠. 숫자로 정해지는 1등은 우리가 부진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일류가 지닌 품격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그 목표는 기업의 문화, 정신, 자세, 사회적 역할, 국가적 책임 등 모든 것을 아울러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구 대표는 30여 년 전부터 매년 회사의 경영지침을 새롭게 정한다. 2022년은 ‘한즉자주 수즉자거’(旱則資舟 水則資車)였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말로, 가뭄이 들 때 배를 준비하고 홍수가 나면 수레를 준비하라는 뜻이다. 올해의 경기 침체를 예견한 듯, 삼구아이앤씨 식구들은 그 지침에 따라 위기에 대비하는 한 해를 보냈다. 인터뷰 당시 2023년의 경영지침을 고민 중이었다. 내일 죽더라도 모레 일어날 일을 오늘 대비하겠다는 구 대표. 그런 그가 자신의 은퇴 시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궁금했다.
“요즘 하는 일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크죠. 나이 들었다고 그마저도 안 하고 은퇴한다? 그럼 아마 제 삶이 금세 망가질 것 같아요. 선친께서 말씀하시길 노인 근력 좋은 것과 겨울 날씨는 믿지 말랬어요. 그만큼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죠. 만약 내가 내일 없더라도 직원들은 출근을 하고 회사는 돌아가야 하잖아요.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들이 이곳에서 오래오래 미래를 설계하도록 토대를 만들어줘야죠. 그러려면 한시가 바쁜데 은퇴를 생각할 새가 어디 있어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자관이 세상 떠났대, 그런데 다음 날 삼구아이앤씨에 아무 문제도 없대. 그때야 비로소 제가 은퇴하는 날입니다.”
빈곤한 노인에게 장수는 악몽과 같다. 돈이 먼저 죽고 인간이 더 오래 사는 것, 이는 곧 파산이다. 살아 있는 한 돈의 생명력을 꺼뜨리지 않는 게 100세 시대의 과제가 됐다. 빈곤 없는 삶을 위해 염두에 둘 노후 리스크에 대해 알아보자.
도움말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은퇴 후에는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전에 저축해둔 자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현역 시절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부족하지 않게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막연히 돈을 모으기보다는 예상액을 계산해보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
노후 자금, 얼마나 있어야 빈곤 면할까?
국민연금연구원(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들은 부부 기준 매달 적정 노후 생활비로 평균 268만 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 금액으로 부부 노후 생활비를 계산하면, 은퇴 후 20년의 경우 6억 4300만 원, 30년의 경우 9억 6500만 원이다. 여기서 변수가 있다. 은퇴 후 사망 시점까지 계속 같은 금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은퇴 직후에는 생활비 수준이 비슷하지만, 점차 활동성이 감소하며 지출도 줄어든다. 김은혜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60세 은퇴를 가정할 경우 70세까지는 기존 활동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가정해 노후 생활비를 100% 적용한다. 70~80세는 70%를, 80세 이후에는 50%를 적용하면 알맞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계산하면 은퇴 후 30년간 필요한 부부 노후 생활비는 7억 800만 원까지 떨어진다. 앞서 계산한 금액보다 2억 5700만 원이 적게 드는 셈이다.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노후 자금을 헤아려보면 현재 얼마가 부족한지, 얼마나 아껴 써야 할지 등을 점검해볼 수 있다. 만약 평균 노후 생활비 책정이 어렵다면, 은퇴 전 생활비의 70% 정도를 보면 된다.
필요 노후 자금을 다 마련했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방심했다간 자금 고갈을, 심하게는 파산까지 이르게 하는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융 사기나 창업 실패 등 특별한 사건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예상외로 병원비나 자녀 부양 등 평범한 것들이 복병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 자녀 리스크 - ‘집 사달라’ 자녀에 허리 휘는 부모
통계청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인구 314만 명(7.5%)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 청년실업 등으로 2030세대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은퇴 후 성인 자녀를 부양하는 부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진행한 설문조사(2021년 50~65세 5115명 대상) 중 ‘자녀 지원에 대한 계획’ 항목에서 ‘결혼까지 지원하겠다’는 응답자는 3명 중 1명꼴로, 전체 중 비율이 가장 높았다. ‘주택 마련까지’(27.6%), ‘취업 전까지’(20.5%), ‘학업 마칠 때까지’(10.7%) 등이 뒤를 이었고, ‘평생 지원하겠다’는 응답자는 3.4%였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2021 결혼비용보고서’를 보면 신혼부부의 총 결혼 비용은 평균 2억 3618만 원에 달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택(1억 9271만 원, 81.6%)이며, 그밖에 예식, 예물·예단, 혼수, 신혼여행 등에 4347만 원이 들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많은 부모가 결혼 비용 지원을 외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추세를 고려할 때 부모의 지원 없이 자녀 세대가 주택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나라 부모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자녀의 주택을 마련해주고 싶어 한다. 다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원하다 보면 안정된 은퇴 생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다시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는 상황으로 돌아온다. 자녀 지원금은 반드시 은퇴자산과 분리된 별도 자금으로 관리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 배우자 리스크 - 경제적·정신적 빈곤 부르는 ‘황혼이혼’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동거 기간별 이혼 건수를 보면, 3쌍 중 1쌍 이상(38.7%)이 20년 이상 살아온 중장년 부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 전체 이혼 건수 가운데 황혼이혼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 통계에서도 60대 이상 남녀의 이혼상담 비율이 10년 전과 비교해 여성은 2.8배, 남성은 3.2배 증가했다. 배우자와의 갈등 또는 개인의 욕구 실현 등을 위해 황혼이혼을 결정했더라도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꼭 따져봐야 한다. 이는 단순히 당장 오가는 위자료 문제만이 아니다. 이혼 시 부부가 공유했을 주택이나 노후 생활비 등을 절반으로(또는 그 이하)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1인 가구가 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간병 문제나 고독사 위험 등까지 고려하면 황혼이혼은 다방면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김은혜 수석연구원은 “황혼이혼을 원하는 쪽은 여성이 많은 편이다. 남편의 경우 갑작스러운 이혼과 더불어 퇴직이라는 환경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치명적이다. 배우자와 재산을 분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도 분할 수령해야 한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반대할 수는 없지만, 노후 자산 배분에 대해 잘 점검해보길 바란다. 가급적 황혼이혼 상황이 오지 않도록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의료비 리스크 - 65세 이후 진료비 3배 껑충
건강하게 신체 활동이 가능한 나이를 ‘건강수명’이라 한다. 기대수명에서 건강수명을 뺀 시간을 ‘유병 기간’이라 볼 수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유병 기간은 11.6년, 남성은 9년이다. 10년가량은 의료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은퇴 전에는 의료비의 중요성을 인식했더라도 그 정도를 체감하긴 어렵다. 의료비는 대개 70세 이후 본격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기존 수준으로 의료비를 책정해둔다면 예상치 못한 금액에 노후 자금이 흔들릴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통계(2018)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건강보험상 1인당 진료비는 연평균 448만 7000원으로, 전체 평균(152만 6000원)과 비교할 때 약 3배 더 많다. 전체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진다. 통계청 2020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계지출 중 보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대 6.2%에서 80대 17%까지 3배 가까이 올랐다.
건강보험통계(2019)에서 연간 1인당 진료비가 가장 많은 질환은 만성 신장병으로 837만 4104원이다. 그 다음은 악성 신생물(암)로 동일 기준 495만 4804원이 든다. 치매의 경우 연간 관리 비용이 2072만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직접 의료비에서 건강보험 평균 보장률 64.2%를 제외해도 1362만 원이다. 이는 2019년 기준 60세 이상 노인 가구주의 연간 소득(4151만 원)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중증 치매일 경우 관리 비용은 3249만 원으로, 최경도 치매 1513만 원 대비 2배 이상 높다. 가족 내 치매 환자가 생긴다면 월평균 소득이 낮은 노부부 가구에겐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 간병비와 보험료 리스크 - 암·치매 오랜 간병이 파산 우려
진료비나 치료비 등 의료비 외에 최근 화두로 떠오른 항목은 ‘간병비’다. 암이나 치매는 오랜 기간 간병이 필요한데, 사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매일 10만~15만 원의 간병비를 내야 한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가족 간병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 역으로 고정 수입이 사라지며 노후 자금이 고갈되는 ‘간병파산’을 겪을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간병할 가족이 없다면 간병보험이나 간병인 배상책임보험 등을 알아보는 게 좋다.
퇴직 후에는 급여에서 공제되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 만 59세까지 내는 국민연금과 달리 건강보험료는 평생 납부한다. 직장에서는 건강보험료를 회사와 반반 나눠 냈지만, 퇴직 후엔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전액 본인 부담이다. 가족 중 직장가입자가 있고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면 피부양자로 등재해 면제받는 것이 유리하다. 퇴직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건강보험료가 올랐다면 ‘직장가입자 임의 계속가입’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귀농·귀촌 등으로 농어촌에 거주하거나 관련업에 종사하는 경우에도 50% 경감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를 모의 계산해보고 이에 따른 전략을 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