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한끝 차이이듯 ‘웰다잉’을 위해서는 ‘웰빙’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니어의 웰빙은 대부분 거처가 좌우한다. 노후에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고, 어디에 머무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집 또는 병원, 두 가지 선택지가 전부였지만,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고민하는 ‘웰엔딩’에 관심이 늘면서 ‘실버타운’이 제3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버타운 입주를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실버타운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시대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엔 10여 년, 길어야 20년 정도로 여겨지던 노후의 정의가 30~40년 가까이 늘어났다. 직장에서 몸담은 시간보다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질 좋은 서비스와 시설로 눈을 돌리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30여 년간 ‘열일’ 한 대가로 얻은 경제력이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심리다.
실버타운은 이 같은 액티브 시니어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며 최근 몇 년간 노후의 또 다른 보금자리로 각광받고 있다. 실버산업 전문가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은 “20여 년 전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다르다. 옛날에는 60대만 돼도 ‘인생 다 살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노후를 편안하고 활기차게 보내려는 시니어가 많다. 또 과거에는 실버타운 입주 보증금이 강남 아파트 한 채를 팔아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20년 사이 보증금은 크게 오르지 않은 반면 집값은 10배 가까이 오르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며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 실버타운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마디로 오늘날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이들은 실버타운에 입주할 경제력을 갖췄으며, 노후를 즐길 시간도 충분하다. 문제는 언제, 어떤 실버타운에 들어가느냐다. 포털 사이트에서 ‘실버타운’을 검색하면 각종 노인주거복지시설이 쏟아져 나와 정확한 정보를 추리기 어렵다. 또 노후가 길어진 만큼 어느 연령대에 입주해야 하는지도 새로운 고민거리다. 적절한 시기에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인주거복지시설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노인복지법 제32조에 따르면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을 말하며, 성격에 따라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으로 구분한다. 양로시설은 크게 무료 및 실비, 유료로 나눌 수 있는데,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서비스 외에 기타 부대시설을 유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유료 양로시설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대개 경제력 있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운영해 입소자로부터 비용을 전부 수납하며, 그 특성상 여가 시설, 취미 프로그램, 의료 서비스 등이 특화돼 있다. 비유하자면 유료 양로시설은 시설이 뛰어난 5성급 호텔,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비용이 합리적인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 같은 노인주거복지시설 가운데 고급형 노인복지주택과 소수의 유료 양로시설을 합한 개념을 통상적으로 실버타운이라 부른다. 즉 실버타운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그렇다면 노후 어느 시기에 입주하는 것이 일반적일까. 서울시니어스타워 관계자는 “실버타운 초창기에는 60~65세에 입주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70대 중반에서 80대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가사노동을 할 체력이 되지 않거나 크고 작은 돌봄을 받고 싶을 때 이곳을 찾으신다”라며 “그러나 열에 아홉은 ‘더 일찍 들어올걸’ 하며 후회하신다. 나이가 들수록 동호회나 취미 프로그램, 행사 등을 즐기기에 육체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의 각종 시설을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에 부합하는 연령이 되었을 때 바로 입주하는 것을 권장한다”라고 말했다.
[TIP] 실버타운 입주 시 고려해야 할 4가지
비용 ▶ 가장 먼저 자신이 충당할 수 있는 입주 보증금과 월 생활비를 고려해야 한다. 입주 보증금은 대개 2억~9억 원, 월 생활비는 100만~200만 원 선이다. 같은 실버타운도 평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니, 싱글이라면 가장 많은 세대를 차지하는 평수를 기준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다.
위치 ▶ 실버타운은 위치에 따라 도시형, 근교형, 전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치는 개인의 선호도나 자녀의 거주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다만 수도권 내에 있는 실버타운은 땅값에 따라 입주 보증금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병원 ▶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시니어는 대형병원이 가까운 실버타운이 좋다. 또 ‘너싱홈’(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성격이 결합된 형태)이나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시설)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각 실버타운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좋다.
여가 ▶노후의 질은 여가가 좌우한다. 후보별로 각 절기별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취미 활동, 커뮤니티 센터 등을 알아본 다음 알맞은 곳을 택한다. 단 해당 서비스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육관은 있지만 트레이너의 관리가 허술하고, 동호회가 존재하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으면 ‘보여주기 식’일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램의 활성화 정도를 함께 고려한다.
피해 줄었지만 상담 꼼꼼해야
알맞은 실버타운을 골랐다면 다음은 입주 상담이다. 실버타운 입주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충분한 상담으로 머물 곳을 신중히 선정해야 한다. 특히 입주 보증금 반환 방식을 세밀하게 살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입주 보증금 관련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수년 전 일부 실버타운이 분양 저조, 사업비 부족 등의 이유로 입주민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몇 차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A실버타운은 서비스 불이행, 일방적인 관리비 인상, 보증금 미지급 등 사업자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2017년 시설폐쇄명령을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B실버타운은 2016년 무리하게 사업 분야를 키워나가면서 부도가 발생해 입주민들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사업자가 입주 보증금의 50% 이상을 돌려주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권이나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하는 경우 예외 조항이 적용돼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세권 및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받을 경우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에도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제도에 다각적인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은 “요즘은 시공자나 금융권에서도 사업성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큰 피해 이슈는 없지만, 운영의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차원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입주하려는 실버타운이 운영상 문제가 없고 건실한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전문성과 사회적 신용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파악하기 어려울 땐 식사 체험을 하며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종 계약을 할 때는 보증금 반환 보장 방안과 지급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는지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이 위원장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설만 강조하는 곳보다 시니어에 대한 직원들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곳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보너스 같아”…공동체서 찾는 활력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입주자들의 실제 후기는 어떨까. 대부분 비용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여성 입주자들은 식사 준비를 비롯한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50여 년 운영하던 약국을 닫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나란히 입주한 조명자(77)·조미자(73)·조경희(65) 자매는 “모든 게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세 자매에게 꿈만 같은 일”이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웃음꽃을 피우다 보면 이곳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에 입주한 정태분(78) 씨도 “정성과 영양 가득한 식사와 청소 서비스는 그동안 고생한 인생의 보너스 같아 매일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내 각종 취미 프로그램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3년 간 거주한 배순애(72) 씨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한다. 코스도 다양하고 산책로도 여러 개다. 10년째 취미로 하는 색소폰을 무대에서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이뤄져 심심할 틈이 없다”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모임이 잠정 중단됐지만 남편과 주변 관광지를 돌며 나들이 다니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도 공동체 생활에서만 겪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특히 은퇴 후 외로움을 느끼는 시니어에게 실버타운은 또 다른 만남의 장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이성 간 건강한 교류를 맺는 이들도 있고, 사회복지사 직원과 입주자가 서로 엄마, 아들이라 부르며 모자지간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주임교수는 “같은 실버타운에 입주한 시니어는 서로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고 빈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공감대로 친밀도를 쌓기 쉽다”며 “동호회,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형성해나가는 사회적 관계는 노후의 또 다른 활력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맞는 실버타운은 어디?
전국 40여 곳의 실버타운을 직접 방문해본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이 추천한 실버타운을 세 곳을 소개한다. ✽비용은 1인 기준
TYPE A | 액티브한 도시형 ▶ 서울 ‘더클래식500’
‘소셜 리더를 위한 실버 하우스’라는 슬로건에 알맞게 최상급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우스 키핑, 퍼스널 컨시어즈, 발레파킹 등 호텔식 서비스와 건국대학교병원 교수진으로 구성된 전문의 및 전담 관리팀이 개인별 맞춤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파, 피트니스, 골프연습장, 수영장 등 여가 시설과 각종 문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입주자 중 은퇴 후에도 강연, 컨설팅 등 도시 내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입주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213만 원(식비 26만 원) 문의 02-2218-6000
TYPE B | 편리한 근교형 ▶ 인천 ‘마리스텔라’
성모요양병원, 인천국제성모병원을 가까이에 끼고 있어 응급 시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 단지 내 일반 상가와 푸드 코트 등이 있어 식사의 선택지가 다양하고, 젊은 사람과 어린이 등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 고립감이 덜하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1층 성당에서 매일 미사가 진행되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근교의 호젓함을 모두 느끼고 싶은 시니어에게 알맞다.
입주 보증금 2억4000만~4억 원 월 생활비 142만~196만 원 문의 032-280-1500
TYPE C | 정다운 전원형 ▶ 김제 ‘부영실버아파트’
전국 실버타운 가운데 보증금이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중가 실버타운 수준의 합리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 노인대학과 게이트볼장, 요양병원, 노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서 있어 주변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식사는 복지관 식당에서 저렴하게 해결 가능하다. 여름에 다 같이 모여 문 열어놓고 비빔밥을 해 먹고, 단체로 여행을 떠나는 등 입주민 간 교류가 잦으며 정겨운 분위기다.
입주 보증금 2000만~4000만 원 월 생활비 없음 문의 063-545-0343
“노후에 수입과 지출의 차액이 매달 5만 엔(약 50만 원)만 나도 65세부터 100세까지 30년 동안 2천만 엔(약 2억 원)이 부족할 수 있다.” (일본 금융청 금융심의회)
2019년 6월 일본 금융청이 발표한 보고서가 일본의 시니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돈이 없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 할 수 없고,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의료기술 발달로 ‘100세 시대’를 누리게 된 시니어들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제 장수가 행복한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받은 월평균 노령연금은 53만6000원에 불과했다. 은퇴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시니어는 매달 받는 국민연금으로는 일상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노화로 인해 만성질환을 평균 1.9개나 앓고 있는 시니어는 매달 적지 않은 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달 발표한 ‘2019년 건강보험 주요통계’에서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40만9536원이다. 월평균 노령연금에서 진료비를 제하면 남은 금액은 12만6464원. 아무리 소비가 적은 시니어라고 해도 12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한 달 생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한계는 '2020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일하는 노인 10명 중 7명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은퇴 후에도 아파트 경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어르신 사례를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 고령 질병이자 치료비 부담이 무거운 암을 앓은 시니어들은 더욱 심각하다. 2018년 기준으로 항암 치료를 받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유병자’는 201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의료기술 발달로 암 완치 판정을 받는 환자도 늘었다. 지난해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2014~2018년) 국내 암환자의 일반인 대비 5년 뒤 생존 비율은 70.3%에 달한다.
그러나 암 생존율이 증가함과 동시에 치료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시니어가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 총액이 늘어나는 탓이다. 한화생명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암질환 전체의 평균 치료비는 2877만 원이다. 가장 치료비가 많이 드는 간암은 환자 한 사람당 치료비가 6623만 원이나 필요하다. 은퇴 후 소득이 없는 시니어에게는 특히 치명적이다.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기대수명은 83.3세에 달한다. 59세에 은퇴한 시니어가 평균적으로 24년이 넘는 시기를 적자로 인생을 살며 마감하는 셈이다. 은퇴한 시니어의 노후를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 노인들은 소득이 2008년에 비해 2배 이상 늘면서 경제적 자립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노인도 2배 이상 늘었으며, 만족스럽게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인 비율도 오르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정보화 기기 이용률 격차도 커 문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보건복지부가 노인 가족과 사회적 관계, 건강과 경제 상태, 여가와 사회활동 등을 조사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3년마다 실시하는 이 조사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전국 969개 조사 지역에서 만 65세 이상인 노인 1만97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근로소득 4배, 사업소득 2배 늘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2020년 노인들의 연간 개인 소득은 1158만 원으로 2008년 700만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올랐다. 소득원을 살펴보면 근로소득이 2008년 6.5%에서 2020년 24.1%로 4배 정도로, 사업소득은 6.9%에서 11.0%로 2배 가깝게 늘었다. 반면 사적이전소득이 46.5%에서 13.9%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공적이전소득은 28.4%에서 27.5%로 소폭 감소했다.
사적이전소득은 가족이나 친인척 등으로부터 받는 생계비 보조금을, 공적이전소득은 노령연금과 기초연금 등을 말한다. 2008년에는 절반 정도의 노인들이 자녀나 친인척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2020년에는 10명 중 1명 정도로 줄어든 대신,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이 4명 중 1으로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율도 2008년 30%에서 2020년 36.9%로 증가했다. 65세에서 69세까지는 절반 이상인 55.1%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73.9%의 노인들이 일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로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라고 대답해 10명 중 7명이 생계 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직업은 단순노무직이 48.7%로 가장 많았고, 농어업 13.5%, 서비스근로자 12.2%, 고위임원직관리자 8.8%, 판매종사자 4.7% 순이었다. 특히 10명 중 1명 정도가 기업에서 대표나 고위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노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국민들의 자신 비율에서 부동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노인들은 특히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가구 대부분인 96.6%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금액 기준으로는 가구 평균 2억6182만 원이었다. 또 금융자산을 보유한 비율은 77.8%로 평균 3212만 원을, 기타 자산으로 1120만 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동산이 자산에서 86.8%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성이 심했다. 반면 노인 4명 중 1명꼴로 빚을 지고 있었는데, 평균 금액은 1892만 원이었다.
노인들의 주택 소유 현황은 자가 비율이 79.8%로 10명 중 8명이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48.4%, 단독주택 35.3%, 연립과 다세대주택 15.1%, 기타 1.2% 순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 처음으로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노인들의 아파트 거주 비율도 젊은 사람들과 비슷한 것으로 분석된다.
간강한 노인 늘고, 우울한 노인 줄고
노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노인은 2008년 24.4%에서 2020년 49.3%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건강이 좋지 않다고 응답한 19.9%보다도 2배가 넘는 비율을 나타냈다.
또 우울 증상을 보이는 노인 비율은 꾸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우울감을 보이는 노인 비율은 13.5%로, 2008년 30.8%, 2017년 21.1%보다 크게 줄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노인 74.1%는 노인에 대한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또 노후와 생애 말기에 찾아올 좋은 죽음(웰다잉)에 대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0.6%로 가장 많았다. 이런 맥락에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임종과정 기간만 연장하는 연명의료에 대해 85.6%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은 2008년 81.3%에서 2020년 84.0%로 소폭 증가했으며, 노인 1인당 1.9개의 만성질병을 앓고 있었다. 이중 고혈압이 56.8%로 가장 높았고, 당뇨병 24.2%, 고지혈증 17.1%, 골관절염 또는 류머티즘관절염 16.5%, 요통과 좌골신경통 10.0%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취미나 여가 활동을 꼽는 노인 비율이 37.7%로, 경제활동 25.4%, 친목 활동 19.3%보다 높았다. 노인 단독가구는 2008년 66.8%에서 2020년 78.2%로 증가한 반면,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 가구는 2008년 27.6%에서 2020년 20.1%로 계속 줄고 있다. 자녀와 함께 사는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도 2008년 32.5%에서 2020년 12.8%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한편 65~69세 노인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등 정보화 기기 사용 역량도 높아지고 있었다. 비교적 연령대가 낮은 65~69세 노인들은 문자 주고 받기 외에도 40.8%가 SNS, 25.2%가 금융기능을 이용하며 비교적 높은 정보화 기기 사용 역량을 보였다.
하지만 70세 이상부터는 SNS 이용률과 금융거래서비스 이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여전히 노인들은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정보화 기기 이용에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은 거주의 목적도 있지만, 투자 상품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흔히 투자를 위한 부동산을 수익형 부동산이라 부른다. 정부의 고강도 대책과 저성장,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 수익형 부동산인 오피스 빌딩을 포함해 여러 가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살펴본다.
도움 및 참고 신영리서치센터, KB경영연구소, 부동산114
한국의 자산가들은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부자의 80%는 거주 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자산 규모가 클수록 비중이 증가했다. 30억 원 이상 자산가의 13.6%는 오피스 빌딩을 보유 중인데, 30억 원 미만 자산가들(3.4%)과 비교해서 비중이 훨씬 높았다. KB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여유자금이 많을수록 자산 포트폴리오로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거주 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부동산 정보 플랫폼 ‘부동산플래닛’이 발표한 ‘2020년 전국 부동산 유형별 거래 특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상업·업무용 부동산(상가와 사무실 포함) 매매 거래량은 약 8만1000건으로 2019년과 비교해 8.1% 증가했다. 특히 상가와 사무실은 5.8% 증가에 그쳤지만, 상업·업무용 빌딩은 13.8%나 늘었다. 상업·업무용 빌딩 거래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로, 전국 총 거래량의 23.3%를 차지했다.
오피스 빌딩은 아파텔로 변신 중
상업용 부동산의 대표주자 격인 오피스 빌딩은 코로나19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서울·분당) 오피스 빌딩의 연간 누적 거래 금액은 13조 원에 달했다. 종전 최대 거래 규모인 2019년의 12조3000억 원을 넘어섰다. 연면적을 기준으로 1만 평 이상의 대형 오피스 거래 건수가 2020년에 21건으로 최근 5년간의 거래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오피스 빌딩을 매입 후 오피스텔이나 임대주택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사례가 생겼다. 이른바 ‘컨버전(Conversion) 트렌드’로 불리며 작년 상반기 강남 권역에서 주로 발생했고, 하반기에는 도심 권역과 여의도 권역 및 서울 기타 권역으로 확대됐다. 신영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지난 몇 년 사이 공유 오피스가 주목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이후 노후한 오피스 빌딩을 상대적으로 수익이 괜찮은 오피스텔이나 임대주택 같은 상품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른바 ‘아파텔’이라 불리는 중대형 오피스텔은 매매 가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5㎡ 이상의 중대형 오피스텔은 작년 9월부터 상승세를 유지 중이다. 반면 40㎡ 이하는 같은 기간에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2월의 경우 85㎡ 이상은 0.54% 올랐지만, 40㎡ 이하는 0.09% 떨어졌다. 같은 기간 수도권 지역은 교통 접근성이 좋거나 정주 여건이 양호한 지역에서 꾸준한 수요가 생긴 덕분에 전월 대비 0.09% 상승했다.
아파텔의 장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1년 2월 오피스텔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오피스텔의 소득 수익률이 오피스나 중대형 상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오피스텔의 소득 수익률이 4.7%대에 머물며 다른 상업용 부동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렸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중대형 면적에 대한 수요와 더불어 오피스텔을 통해 임대 수익을 버는 분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비교적 낮은 진입장벽이다. 오피스텔은 집값의 최대 7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아파트보다 분양가도 상대적으로 낮다. 또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아 1순위 청약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지난해 8월 12일 이후 취득한 주거용 오피스텔은 다른 주택을 취득할 때 취득세법상 주택 수에 포함되므로 다주택자면 세금 부담이 클 수도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오피스텔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조정지역 내 주거용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매도 시 주택 수 산정에 포함되므로 꼼꼼히 따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개그맨 전유성(72)이 젊었던 날 친구들과 놀러 간 어느 해변에서의 일. 그가 별안간 바다로 걸어 들어가더란다. 바닷물이 몸에 차오르고 마침내 머리까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놀란 친구들, 그를 건져내기 위해 우르르 물로 달려갔다. 그때 전유성이 머리를 수면 위로 쑥 내밀더니 태연히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선 하는 말이 이랬다. “나 웃겼냐? 바다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 해변에 폭소가 퍼졌더란다.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 온몸을 던져 펼친 해프닝이었으니 웃음 보시치고도 상품(上品)이다. 그런데 이 즉흥 쇼의 성공 요인은 그 액션 자체에 있지 않다. 물귀신 시늉으로 사람을 웃기는 몸짓은 독창적이지 않은 흔한 일이니 말이다. 전유성은 진부하지 않고 언제나 한 걸음 더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다. “바다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는 다분히 서정적인 대사를 읊음으로써 이벤트의 격을 높인 게 아닌가. 그날따라 바다에 참을 수 없는 매혹을 느껴 물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아무려나 그는 친구들을 웃기되 이왕이면 운치와 여운까지 가미한 쇼를 보여주고 싶었을 테다. 그렇다면 아마도 충동적으로 떠올린 각본으로 행위를 하고 대사를 읊조렸던 게 아닐까. 하나의 엽편(葉片) 모노드라마를 순간에 기획해 연출하고 연기했던 셈이다. 그의 삶에 피부처럼 붙은 예능 감각과 순발력을 엿볼 수 있는 예화다.
무덤덤한 일상에 웃음을 배포하고, 상황을 요리해 생기를 돋우는 일에 전유성은 능하다. 기발함과 도발을 밑천으로 삼아 지루한 인생사를 소극(笑劇)으로 끌어올린다. 쉼 없이 산소를 들이마셔 허파를 움직이게 하듯이, 그는 쉼 없이 머리를 회전시켜 개그맨이라는 직분에 부합하는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생산한다. 어디서 뭘 하든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집중력과 재능으로 롱런한다.
전유성은 지리산 근처 남원시 인월면에 산다. 벌써 4년째, 얼추 인월 사람 다 됐다. 그와 마주 앉은 곳은 딸과 사위가 운영하는 찻집 제비카페. 세한의 창밖 저 너머로는 지리산이 수묵화처럼 묵연하다. 많고 많은 곳 중에서 하필 이곳에 몸을 둔 건 지리산이 곁에 있어서다.
“내가 ‘절친’이다. 절하고 친하거든. 옛날에 지리산을 자주 오르기도 했고, 이 산의 절에 있는 스님 한 분과 가까워 지리산을 종종 찾아왔다. 그 인연으로 여기에 산다.”
지리산을 자주 오르겠다.
“아직 올라가진 않았다. 올해엔 제대로 올라볼까 한다. 지리산이 어디로 사라질 것도 아니고 마음 내킬 때 가면 되니까.”
어떤 매체에서 봤는데, 살면서 가장 잘한 걸로 쉬지 않고 일을 해온 거를 꼽았더라. 요즘은 무슨 생각, 무슨 일을 하나?
“코미디 전용 극장 만들 궁리를 자주 한다. 여건이 여의치 않아 지연되고 있지만 어떻게든 추진할 작정이다. 일상생활은 나름 분주하다. 남원 동편제 마을에 가서 창의력 강의도 하고, 우리밀로 빵 만들기도 가르친다. 마술도 가르치고.”
어딜 가나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게 연예인이다. 이게 불편하진 않은가. 메릴린 먼로는 대중의 관심에 너무도 두렵고 외로웠다 하더라. 선생은 어떤가. 개인의 자유를 수시로 침해당할 수 있을 텐데.
“매우 피곤하다.”
몰래카메라가 늘 나를 주시한다는 기분이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피곤하다. 가령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할 때 사람들이 셀카를 막 찍어대던데, 만약 내가 도박장에라도 들어가 앉았다면 턱없는 잡음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저분들의 관심 덕분에 내가 밥을 먹고 산다는 걸 생각하면 고맙지.”
여행을 자주 한다지? 여행지에선 주로 무엇을 즐기나?
“유럽의 오페라극장을 가더라도 오페라보다 극장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더 흥미롭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 저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하며 저렇게 웃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상상을 하며 구경한다.”
사람 구경처럼 재미있는 게 없다지만 보통은 외모나 차림새 감상에 쏠린다. 전유성은 다르다.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남들의 얘기와 생각을 읽으려 집중하며 상상을 펼친다. 그는 상상, 공상, 몽상으로 사고의 외연을 확장해 쓸모 있는 아이디어 채집하기를 습관으로 삼고 사는 것 같다. 타성과 고정관념을 깨고 경계를 넘나들며 감각의 촉을 세운다. 이런 전유성의 유심한 촉수가 한번은 자동차 터널에 꽂혔다.
“남원의 어떤 터널을 통과하는데 밋밋한 터널 입구 전체를 돼지 코 모양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터널 내부에서 울리는 졸음 방지용 사이렌도 돼지가 꿀꿀대는 소리로 바꾸고. 이거 재미있잖아?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지만 별 관심이 없더라고.”
현장에 바로 도입할 만한 아이디어인데?
“당장에 돈 되는 일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공공기관이나 민간이나 마찬가지다. 난 폐탄광촌을 활용해 누구나 스스로 들어갈 수 있는 사설 교도소를 세워도 유망할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스스로 형기를 정하면 된다. 하루든 여러 날이든. 가령 소설이 안 써져 괴로운 소설가는 형기 동안 구상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잘못한 게 많은 사람도 하루쯤 감옥살이를 하며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면 된다. 이곳에서 가끔 참선 강좌가 열리며, 모든 ‘수감자’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반성문을 모아 책으로 내고. 이런 교도소, 어떤가?(웃음)”
이색 교도소로 순식간에 이름날 것 같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에 열광하니까. 교도소 옆엔 ‘출소자’들을 위한 주막집도 만들면 좋겠다. 인생에 달관한 주모가 있는.
“그런데 하려는 사람이 없더라. 돈이 생기는 사업은 아니라고 보는 거다.”
흔히 돈에 목숨을 걸다시피 집착한다. 돈만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돈 없는 노후를 맞이할까 봐 미리 과도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나의 노후 대책은 돈이 아니라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좋은 노후가 어디 있겠나. 특별히 욕심 부리지 않으면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월 100만 원 정도로 무난하게 사는 경우도 있더군.”
그는 인월에서 월세 50만 원짜리 아파트에 산다. 집이야 몸을 눕힐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리 산다. 안으로 너른 사람은 바깥 치레에 도통 관심 없는 법이다.
시골 주민들, 특히 노년층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돈보다 참여가 가능한 문화 공간이다. 그분들도 공연 같은 걸 보고 즐겨야 하지 않겠나. 경로당이나 지어주고 외면하는 건 유기(遺棄) 행위에 가깝다.
“관람은 물론 직접 공연할 수 있는 기회 제공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노인 합창단이나 무용단을 만들어 공연에 나서게 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건 단체 이름부터 재미나게 지어야 한다는 거다. ‘임플란트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들의 합창단’이라거나 ‘며느리가 꼴 보기 싫은 할머니들의 합창단’ 같은 이름이라면 빵 터지지 않겠는가.”
끔찍하게 요상하고 재미없는 세상에서도 가장 끔찍한 건 시골 노인들의 지루하고 고독한 일상이다. 전유성, 이 센스쟁이야말로 그 문제풀이에 일조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던 차, 그의 입에서 기발한 합창단 이름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명란젓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의 합창단’이라는 이름도. ‘소녀시대가 되고 싶은 할머니들의 무용단’이라는 이름도. 시골 노인들을 위한 복안이 이미 내심에 박혀 있다는 표시겠지.
“너무 진지하게 살 거 없다”
남원에 오기 전 그는 경북 청도에 살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다. 코미디 전용 극단 ‘철가방극장’과 야외 음악 공연 프로그램 ‘개나소나 콘서트’를 만들어 10년을 쾌속 질주했다. 덕분에 고즈넉한 청도군이 일약 코미디와 콘서트가 난무하는 지역으로 도약했다. 개그맨으로서, 문화기획자로서 거둔 성취가 참 많았다. 그중 전유성이 가장 기뻤던 건 구경을 와 흥겨이 들썩이던 시골 노인들의 모습이었다고.
“정말 좋아하시더라. 열댓 번씩 공연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썩 괜찮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즐거웠다.”
그랬으나 판이 흐트러졌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시피 군과의 소통에 불협화음이 생겼고, 전유성은 홀연히 청도를 떠났다. 상심이 남았을 것 같지만 그는 훌훌 털었다. 다만 문화를 바라보는 비좁은 시야에 대해서는 보탤 말이 있다.
“문화를 적자와 흑자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형 자산이기 때문이지. 계산을 앞세우는 태도를 버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폭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선생의 인기, 기획력, 추진력은 청도에서 입증됐다. 다른 지자체에서 콜 사인을 보내왔을 것 같은데?
“남원에 온 뒤 몇몇 지자체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고. 그때마다 내가 물었다. ‘1년에 공연을 몇 번이나 보십니까?’ 제대로 본 사람이 없더라고. 이래서야 일이 되겠어? 포기했다. 결국 자력으로 코미디 전용 공연장을 만들 수밖에. 문제는 자금이다. 요새 좀 고민하고 있다. 남의 돈을 뜯어올 재주는 없고.(웃음)”
차를 마시다 그가 소주 한잔을 목으로 털어 넣는다. 전유성은 술꾼이다. 생활에 술이 딱 달라붙었으니 외로움인들 범접 가능하랴. 술이란 무적함대? 때로 인생의 난제들을 척척 해치운다. 전유성을 보면 그게 증명된다. 슬럼프니, 못 채운 오욕칠정의 사무친 서러움이니, 무슨 고뇌니, 우리에게 한없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종목들을 술 한잔으로 거꾸러뜨린다.
“즐거울 때나 고달플 때나 한잔 마시고 잊는다. 날려 보낸다. 난 그게 되더라.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 거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오늘 하루를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 아냐? 그러고도 남는 불편이 있다면 팔자려니 하면 되고. 근데 나 예전처럼은 안 마셔. 건강 문제 때문에 어쩌다 소주 한두 잔 마실 뿐이라고.”
아예 끊어버리진 않고? 선생은 오래 살아 재미없는 세상을 비틀어 웃겨줘야 할 거 아닌가.
“술을 어떻게 끊나? 액체를 어떻게 끊어?(웃음) 담배는 끊었다.”
햐. 그 무슨 금연 비법으로?
“금연을 선언한 뒤 흡연하는 사람들을 마구 욕했다. 그러고서 뻔뻔하게 다시 담배를 피울 순 없잖아?(웃음)”
선생을 ‘아이디어 뱅크’라 한다. 어디서든 반짝거린다고.
“어? 와서 보니 나 아니잖아. 반짝거리지 않잖아?”
겸손하구나, 그리 여겼으나 5초 뒤 다시 생각하니 이게 또 아재 개그다. 내가 유리로 만들어졌냐? 새벽별이냐? 뭐 그런 게 축약된 ‘썰’이지만 거기엔 겸양이 스며 있다.
시퍼런 촉으로 솟은 야산
종교가 인류를 구원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웃음이 종교보다 파워풀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인 빙하를 녹이는 게 웃음이지 않던가. 삶이 멸치대가리처럼 따분한 건 웃음이 말라붙었을 때다. 전유성은 이 진귀한 품목을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는 전문가다. 매사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머리와 행보로 ‘개그의 제국’을 구축했다. 이게 백지 상태에서 그냥 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다독가다. 열 권짜리 ‘구라 삼국지’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써낸 촉과 깡을 보라. 공부인이 아니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지평이다.
“과거엔 개그든 공연이든 잘해 보려고 노력했다. 근데 그건 아마추어 시절에나 필요한 미덕이더라고. ‘잘’하는 것보다 좋은 건 ‘재미있게’ 하는 거거든. 좀 서툴면 어때? 뭐든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어?”
재미있게 살고 싶어도 그게 잘 안 되니 환장할 일이다. 재미라는 샘물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니 그냥 목마르게 사는 거지.
“발상을 전환하자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자는 거다. 가령 그 왜 가수들 공연 시작 때 불꽃 같은 축포를 발사하잖아? 난 뭐든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싫더라고. 그래서 내 공연 때는 시장에서 뻥튀기 기계들을 빌려다 뻥뻥 터뜨렸다.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며 엄청 폭소를 터뜨리더라.”
머리에 서리가 내린 뒤에도 장난기와 유머와 재기가 번뜩인다. 단무지 없는 짜장면을 먹는 것처럼 섭섭한 인생에 고소한 양념을 뿌리는 데 이골이 났다.
“생각의 타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재미있는 ‘거리’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가령 ‘직접 만든 수제 칼국수’라고 써 붙인 말 안 되는 간판을 봤다 치자. 그때 저거보다 재미있는 이름이 없을까 생각해보는 거다. 그러면 뭔가 떠오른다. ‘놀러 온 사람이 시켜 만든 수제 칼국수’라거나, ‘소주가 생각나는 수제 손만두’라거나. 이거 재미있잖아? 장사도 더 잘될걸?”
재미의 출처가 곳곳에 널려 있다는 건가?
“바로 그거다.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면 기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언젠가 마트 입구에 놓인 카트에 이런 문구가 적힌 걸 봤다. ‘정관장 드신 분들은 살살 밀고 가세요!’ 야, 이거 기발하잖아? 기똥찬 광고 문안이잖아?”
강적을 만난 기분이었겠다. 나보다 한 수 위 인간이 있네 하며.(웃음)
“관찰과 생각도 많이 하지만 내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은 일상에서 나온다. 특히나 사람들과의 잡담은 아이디어 공장이지. 잡담에 소재를 하나 올려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저절로 떠오르거든. 요번에 준비하는 책은 이 잡담에 관한 얘기다.”
가제목도 생각해뒀다. ‘다 알 필요 없다. 잡담이나 알고 지내자’로. 어떤 신들은 인간이라는 미증유의 생물이 너무 불어나거나 장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세를 규합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몰라서다. 반란은 왜? 전유성의 사고에 기대자면 인간들이 너무 진지하게, 너무 재미없게 살아서다. 그러니 잡담이나 하고 가자는 거다. 잡담으로 안면 근육을 실룩여 웃음의 파랑이 너울거리게 하자는 거다.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둘. 이 나이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다들 그걸 생각해보거나 의논한다. 치매 역시 관심사다. 전유성에게 물어볼까? 이 두 가지 성가신 문제를.
“무슨 수가 있겠나? 오면 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겠지. 난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엔 별 관심이 없다. 치매? 가족들이야 고생하겠지만, 치매에 걸린 당사자는 아무것도 몰라 고통도 없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웃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지만 그게 쉬울까 보냐. 그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떡할 건가. 농담과 언어유희, 해학과 기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그의 얘기엔 인생과 세상의 문제를 찍어내려는 갈고리가 들어 있어 짭짤하다. 달관한 시늉이 없어 미덥다. 거침이 없어 시원하다. 시퍼런 촉으로 솟은 야산이라 할까 보다. 그 산 언저리에서 귀 호강 한번 잘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전보다 수명은 늘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많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잔병치레도 잦고, 금방 낫던 상처가 더디게 아문다. 은퇴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전념하느라 노후를 위한 대비는 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길라잡이를 소개한다.
도움말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정나라 선임연구원
초(超)수명시대가 도래했다. 기대수명이 대폭 늘었다. 기대수명은 특정 연도에 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다. 2020년 12월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에는 62.3세였지만, 2019년에는 83.3세다. 근 50년 만에 21년이 증가한 것이다. 예전에는 환갑을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 잔치를 크게 열었지만, 최근에는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의미가 퇴색됐다. 그만큼 수명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늘어난 기대수명이 마냥 좋기만 한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20년 12월 통계청은 ‘2017년 국민이전계정’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생애주기적자는 2016년과 비교했을 때 7.1% 증가한 118조2000억 원이었다. 참고로 생애주기적자란 시기를 유년, 장년, 노년으로 구분해 시기별 소비와 노동소득을 토대로 적자를 파악한 지표다.
연령계층별로 살펴보면 유년층(0~14세)과 노년층(65세 이상)은 각각 135조7000억 원과 94조6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와 달리 노동연령층(15~64세)은 112조1000억 원 정도의 흑자가 발생했다. 1인당 생애주기적자를 살펴보면 27세까지는 적자이지만, 28세부터 58세까지는 흑자다. 이후 59세부터 다시 적자가 발생하며, 연령이 올라갈수록 적자폭도 커진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령층에서 적자가 증가하는 것은 59세 이상 연령대에서 노동소득보다 보건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소비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노년층은 노동소득이 노동연령층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데, 수시로 병원에 갈 일이 많아서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소득은 적고 소비는 많아서 적자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PISA로 평생소득 마련하기
노후자금은 도대체 얼마나 필요할까?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자료에 따르면, 부부의 노후기간을 10년으로 가정했을 때 노후자금으로 대략 2억7918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대략 60세에 은퇴해 70세에 사망하는 경우다. 은퇴 후의 생활을 20년으로 가정했을 때 필요한 금액은 5억3242만 원이다. 10년 증가했을 때보다 2배 정도가 더 필요한 것이다. 물론 물가상승률과 운용수익률을 고려한 수치이지만, 실제론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특히 코로나19가 닥친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 많은 노후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설계 금액이 노후 대비를 위한 일종의 가늠자는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노후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까? 공격적인 투자도 좋지만 일단 인생의 마지막까지 안정적으로 자산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젊을 때와 달리 육체적 제약이 있고, 근로 여건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는 노후 소득을 얻는 방법으로 PISA를 제시했다. PISA는 연금(Pension), 보험(Insurance), 안전자산(Safe Asset), 투자자산(Active Asset)을 의미한다.
첫 번째로 연금은 안정적이다. 국민연금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최저생활비와 필요생활비는 필수적인 비용으로 사망 전까지 필요하다. 물가가 상승하면 그만큼 지출이 커진다. 이런 비용은 연금을 통해 대비하는 것이 수월하다. 길고 불확실해진 수명에 대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두 번째는 보험이다. 의료비는 예측할 수가 없다. 중증도에 따라 달라지고, 발병 시기도 예측할 수 없다. 암과 같은 큰 병에 걸리면 많은 지출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따라서 이런 비용은 스스로 준비하기보다는 보험으로 대비하는 것이 낫다.
세 번째는 안전자산이다. 예비자금이나 여유생활비는 정기적인 지출이 아니다. 특정 시점에 필요한 비용들이다. 따라서 위험 부담이 큰 상품보다는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한 것이 낫다. 위험 수준이 아주 낮거나, 중간 정도의 위험이 있는 상품을 준비하면 좋다.
마지막으로 투자자산이다. 잉여자금은 자산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 된다. 말 그대로 남는 돈이라서 손해를 봐도 생활에 위협적인 요소는 아니므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장기로 운용할수록 손실 확률이 낮아져, 기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다음의 사례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자.
Pension, 연금
은퇴자 박(61) 씨는 5년 전 직장에서 퇴직했다. 중소기업에서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고 서울에서 괜찮은 동네의 아파트에서 자가로 거주하고 있다. 걱정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박 씨의 속사정은 다르다. 겉보기와 달리 가진 건 집 한 채뿐이다.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모아두었던 예금은 자식들 결혼시키면서 다 써버렸고, 집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10여 년 전 집을 사면서 보험과 개인연금도 다 깨버린 탓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은 국민연금밖에 없다. 당장 필요한 생활비와 관리비, 건강보험료까지 대출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방법이 필요하다.
Tip 현재 다른 자산이 없는 상황이라면 ‘주택 다운사이징’을 권하고 싶다. 거주하는 주택을 처분해 더 작은 집 또는 외곽 지역에 있는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거주 주택의 가격상승을 기대하고 있다면 전·월세를 주는 것도 임시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사를 하고 남은 자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고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생활비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주택연금 가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Insurance, 보험
은퇴자 이(65) 씨는 10년 전 뇌졸중으로 퇴근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집안 내력인 고혈압으로 큰형, 작은형, 본인까지 3명이나 비슷한 나이에 같은 경험을 했다. 젊을 때 보험을 준비해둔 큰형과 작은형은 진단비를 두둑이 받았지만, 이 씨는 준비해둔 보험이 없었다. 자신의 건강을 너무 과신했던 탓이다. 병원비 마련도 힘들었다. 결국 이 씨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은퇴를 해야 했다. 아내와 딸도 이 씨 병간호에 매달리느라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회복기간을 거쳐 건강이 나아진 지금도, 이 씨는 가끔 “미리 보험을 들어뒀더라면 노후가 조금 달라졌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곤 한다.
Tip 이 씨가 한 가장 큰 실수는 뇌졸중이라는 가족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다.이 씨의 나이가 60대라 해도, 20~30년간의 삶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질병에 또 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후회만 하고 있지 말고 지금이라도 노후를 위해 보험자산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질병을 앓았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씨 같은 경우를 위해 ‘유병자보험’이라는 상품이 나와 있다. 당뇨나 고혈압, 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특화된 보험상품이다. 해당 질병을 제외한 다른 위험에 대해 일반인과 똑같은 보험 혜택이 적용되지만, 보장 범위가 좁고 보험료가 일반 보험보다 비싼 편이다.
Safe Asset, 안전자산
정(60) 씨는 작지만 알찬 식당을 꾸려가고 있는 자영업자다. 그동안 모은 자산도 제법 되고, 내년에는 가게를 정리할 예정이라 노후에 쓸 자금은 어느 정도 마련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꼬박꼬박 부은 덕분에 몇 년 후면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 씨의 가장 큰 고민은 가게를 정리한 자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경우 소중한 노후자금을 잃을까봐 두렵다. 예금으로 묻어두자니 금리가 너무 낮다. 그동안 휴일도 없이 일해서 번 돈인 만큼, 이 자금으로 노후에는 여행도 다니고 여유를 즐기고 싶다. 안정적으로 자금을 지키면서 적당한 수익률을 거둘 수는 없을까?
Tip 정 씨는 노후 대비를 위한 자금을 잘 준비해온 편이다. 연금을 통해 기본적인 생활비가 확보된 만큼, 가게를 정리한 목돈을 잘 운용하면 노후 자산을 불릴 수 있다. 다만 정 씨가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면 배당주나 리츠 같은 ‘중위험·중수익’ 자산을 추천한다. 일반 주식투자만큼 변동성이 크지 않으면서도 예금보다는 수익이 높은 자산이다. 배당주는 매매차익보다는 배당수익을 추구하는 주식을 말하며, 리츠(REITs)는 상가나 오피스 빌딩 등에 투자해 임대료 수익과 지가상승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Active Asset, 투자자산
오(63) 씨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갑작스런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인해 어릴 때 가난에 시달렸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여유자금을 준비하는 편이다. 몇 년 전 사업을 정리하면서 노후자금은 든든하게 마련해두었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준비해둔 연금, 물려받은 땅도 있어 생활 걱정은 없다. 지금 오 씨는 여윳돈을 장기로 투자할 만한 대상을 찾고 있다. 자산을 불려 노후도 여유롭게 보내고, 자녀와 손주에게 상속도 하고 싶다. 이 자금을 가장 현명하게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Tip 오 씨의 경우 노후생활자금 마련보다는 보유한 자산을 잘 불리는 것이 핵심 재무 목표다. 본인이 여유롭게 생활하는 것뿐 아니라 자녀와 손주에게 일정 부분 상속도 하길 바라는 만큼, 자산의 운용기간을 30~40년 이상 장기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자산을 넣어두고 수익이 나면 인출하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운용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55세의 남성 직장인 오 씨.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그의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운영하는 회사다. 오 씨의 작은 희망 중 하나는 회사에서 대학등록금이 지원될 때 두 자녀가 대학을 마치는 것이다. 퇴직금은 10년 전에 중간정산을 하고 새로 적립 중이다. 퇴직연금과 국민연금 이외에 별도로 준비한 개인연금은 없다. 다행히 최근에 아파트 담보대출 상환이 완료되어 저축 여력이 생긴 오 씨는 지금이 원하는 노후생활을 위한 현금흐름을 준비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상담을 요청해왔다.
컨설팅 포인트
퇴직연금유형부터 확인하자.
개인퇴직연금계좌(IRP)를 점검하자.
연금 불입 시 세제 혜택을 누리자.
나의 퇴직연금은 DB형인가? DC형인가?
퇴직연금은 DB형과 DC형으로 운영된다. DB형(Defined Benefits, 확정급여형)은 기존의 퇴직금 제도와 비슷하다. 퇴직연금관리 책임은 회사가 진다. DB형 가입자는 퇴직할 때 퇴직 전 3개월의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적용한 금액을 받게 된다.
DB형은 임금상승률이 높고 안정적인 기업일수록 유리하다. DC형(Defined Contributions, 확정기여형)은 회사가 연봉의 12분의 1 금액을 종업원 개인계좌에 적립해준다. 회사의 책임은 여기까지다. 그 후 운용은 종업원 책임이다. DC형 가입자는 퇴직할 때 매년 연봉의 12분의 1 금액에 대한 운영 손익을 반영한 금액을 퇴직금으로 받는다.
DC형은 임금상승률이 낮거나, 전직이 많은 직종이거나, 퇴직연금의 수익률 관리를 종업원 스스로 할 때 적합하다. 만일 오 씨가 현재 DB형 퇴직연금 가입자이면서 임금피크제를 선택하게 된다면 퇴직 시 평균임금이 낮아질 것에 대비해 DC형으로 전환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
개인퇴직연금계좌 적극 활용하자
개인퇴직연금계좌(IRP, Individ ual Retirement Pension)는 회사를 통해 가입하는 퇴직연금(DB, DC) 외에 추가로 개인이 별도로 자금을 적립할 수 있는 퇴직연금계좌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퇴직금을 IRP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오 씨가 퇴직하면 그동안 적립된 퇴직연금을 IRP계좌로 수령하게 된다. 만약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싶으면 퇴직금 입금 후 IRP를 해지하면 된다.
퇴직금 수령 시에는 퇴직소득세를 납부하는데 이때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게 되면 퇴직소득세를 줄여준다. 절세의 규모는 연금 수령기간에 따라 다르다. 퇴직금을 10년 이하의 기간에 연금으로 수령하게 되면 퇴직소득세에서 30%를 깎아주고 10년을 초과하는 기간에 대해서는 40%를 깎아준다.
예를 들어 오 씨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할 때 납부해야 할 퇴직소득세가 1000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10년간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퇴직소득세는 총 700만 원이다. 이 금액을 연금 수령기간, 즉 10년 동안 나누어 매년 70만 원씩 납부하면 된다. 참고로, 퇴직연금 가입자라 하더라도 55세가 넘은 퇴직자는 IRP가 아닌 통장으로도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다.
연금 불입 시 세제 혜택 누리자
IRP는 퇴직금 수령 용도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추가로 불입할 수도 있다. IRP 불입 시에는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데, 불입 금액 최고 700만 원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액공제 혜택은 연봉 수준에 따라 다르다. 연봉이 5500만 원 이하일 경우 연말정산 시 불입한 금액에 대해 16.5%를 세액공제해준다. 55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의 혜택은 13.2%다. 만약 오 씨가 연봉이 5500만 원을 초과하고 IRP에 연간 700만 원을 불입한다면 연말정산 시 누릴 수 있는 세액공제 혜택은 총 92만4000원이다.
IRP 이외에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연금 상품은 연금저축계좌다. 연금저축계좌와 IRP를 묶어서 연금계좌라고 한다. 연금저축계좌와 IRP의 세제 혜택은 비슷하지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불입 금액의 한도가 다르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연금저축계좌에 불입할 경우에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연간 불입 금액 한도는 연봉 1억2000만 원 이하일 경우 400만 원이다. 1억2000만 원을 초과할 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불입 금액 한도는 300만 원이다. 연봉 5500만 원을 기준으로 하는 세액공제 비율은 IRP와 같다.
오 씨의 경우 IRP와 별도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연금계좌의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한도 금액과 불입할 수 있는 한도 금액은 다르다. 연금계좌, 즉 연금저축계좌와 IRP를 합해서 불입할 수 있는 연간 한도 금액은 1800만 원이며, 이 중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최고 700만 원이다. 만약 오 씨가 IRP에 연간 1800만 원을 불입하면 700만 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만 700만 원을 초과하는 1100만 원에 대해서는 혜택이 없다.
기존에 연금저축계좌를 통해 연간 400만 원의 불입 금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는 사람은 IRP 불입 금액 중 3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된다. 참고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한시적으로 50세 이상의 연금저축계좌 가입자에 대해 불입 금액 600만 원(기존 400만 원+추가 2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또 연금저축계좌에 IRP를 추가로 이용한 사람은 불입 금액 900만 원(기존 700만 원+추가 200만 원)까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부분의 은퇴(준비)자들이 갖는 노후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보유한 은퇴자산의 활용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기인한다. 대표적인 은퇴자산은 연금이다. 실제로 많은 은퇴(준비)자가 자신이 가입했던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연금이 은퇴생활에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확인한 후에 놀란다. 멀어만 보이던 정상에 대해 막연한 걱정을 하기 이전에 지금까지 올라온 높이부터 점검해보는 게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첩경이라고 본다.
“야야, 이제 인생을 즐길 나이에 어쩌자고 고생길을 자청하니?” 이해숙(55, 괴산애플랜드 대표) 씨가 처음 귀농을 결심했을 때 친구들이 했던 말이 이랬다. 이후 9년 세월이 흘렀다. 해숙 씨는 그간 농원을 가꾸고 키우는 일에 모든 열성을 쏟았다. 잠자는 시간 외엔 오로지 일에 폭 파묻혀 살아왔다. 덕분에 이제 어지간히 기반이 잡혔다. 그러나 친구들의 촌평엔 여전히 개탄이 실려 있다. “아이고야 나 못살아, 언제까지 이 고생을 계속하며 살 거야?”
친구들이 보기에 해숙 씨의 전공은 과수 농사라기보다 ‘고생’이다. 고생의 정체를 궁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마침내 고생의 끝에 이르러 득도에 맞먹을 성취감을 맛보고자 하는 인간 유형의 본보기. 남들이 읽는 해숙 씨의 양상이 그쯤? 고생에 치여 나동그라지기는커녕 묵묵한 인내와 투지로 노동의 나날을 견디는 걸 바라보며, 뭔가 이색적인 운명의 농간에 빠진 자의 짠한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해숙 씨는 주변의 감상평에 무심하다. 그녀의 과도한 고생살이가 현재진행형임은 자명한 진실이거니와, 문밖에서 기다리는 일감이 첩첩해 서푼어치 가치도 없는 잡념에 사로잡힐 시간이 없다는 게 아닌가.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게 그녀의 슬로건인가보다. 일하고 또 일하는 노역의 순환으로 점철되는 나날에서 무슨 오붓한 재미를 보랴. 그러나 고생스러운 일을 통한 전진의 실감과 삶의 생동감에 안도하며 그녀는 오늘도 농장에서 동분서주, 날다람쥐처럼 바지런히 내달린다.
애초 귀농을 먼저 제안한 건 동갑내기 남편 심명수 씨였단다. 명수 씨는 서울에 있는 유명 광고기획회사에서 근속했던 인물. 그는 머잖아 닥쳐올 은퇴 이후의 인생 2막을 귀농으로 열어젖히길 결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의사를 타진했고 해숙 씨는 즉각 찬동했다. 세상의 아내들은 대체로 귀촌과 달리 귀농엔 호의적이지 않다. 질색팔색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남정네들은 아내를 구워삶기 위한 설득과 회유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부부 동행의 귀농을 간신히 실현한다. 그러나 해숙 씨는 선뜻 공감했다. 귀농의 어떤 매력을 봤기에?
“내가 시골 출신이다. 시골생활에 충분히 익숙하며 좋은 기억들도 많았지. 결혼 이후 죽 서울에서 살았으나 자주 시골생활이 그립더라. 귀농을 해 된장, 고추장 같은 걸 만들어 팔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노후를 상상하자 호감과 용기가 생기더라고. 귀농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농원 규모가 엄청나다. 이 너른 언덕배기 토지를 어떻게 확보했지?
“시부모님이 남편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전답과 임야로 이루어진 1만8000평짜리 터로 이 가운데 1만 평을 과수원으로 개간해 운영한다. 복숭아도 꽤 많이 심었지만 사과 재배에 주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농원 일대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팔짝팔짝 뛰더라. 정작 나는 풍경을 즐길 시간 여유조차 없는데.(웃음) 귀농, 이거 정말 장난 아니다.”
사과 농사를 선택한 이유는?
“사과 농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남편이 주장해 정했다. 난 원래 장류(醬類) 사업을 하고 싶었거든. 그래, 당신은 그럼 사과를 생산하시오, 난 장을 담그겠소, 그리 절충을 하고 일을 시작했으나 사과 쪽 일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장 담그기를 포기했다.”
처음부터 모든 작업을 손수 처리해왔다고 들었다. 아마도 숲과 묵정밭 일색이었을 터를 이렇게 근사한 과수원으로 바꿔놓다니. 수완이 대단하다.
“최대한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건비를 아껴야 했으니까.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령, 사과나무 전지를 남들에게 맡길 경우 대충 1200만 원쯤의 인건비가 나간다. 이걸 아끼기 위해 자력으로 전지하는 거다. 아이고, 오직 일에 붙들려 산 세월이었다.”
단숨에 도약할 수 없는 게 농사
전지뿐이랴. 초기의 토목공사부터 애환의 연속이었다. 사과나무 묘목 식재부터 적뢰(꽃봉오리 솎아내기), 적화(꽃 따주기), 적과(열매 솎아내기), 거름주기 등등 수확을 보기까지의 모든 과정 어느 하나도 초심자에게 쉬운 게 없었다. 농사 요령을 배우기 위해 농업기술센터 등을 찾아가 배운 곳도 많았고, 쫓아다니며 가르침을 청한 사람도 많았다. 귀농 이전에 책자를 통해 농사 이론을 섭렵했으나 현장의 실제는 이론과 사뭇 다르더란다. 해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바람에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귀농 선배의 조언에 다시 맞붙을 용기를 회복하기도 했다고.
“사과 농사로 성공한 선배의 체험담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농사라는 게 단숨에 도약할 수 없는 직종이라는 것, 초기의 시행착오가 많으면 많을수록 얻어지는 경험이 많아 결국은 성장 자산이 된다는 것, 이처럼 평범한 충고가 절절하게 가슴을 치며 힘을 주더라. 귀농해서 참혹한 실패를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는 걸 알고 새삼 정신을 가다듬기도 했다.”
귀농인들의 현실에 밝을 것 같다. 고전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가?
“대체로 다들 시행착오를 겪는 것 같다. 오랫동안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고비에서 견디지 못하고 추락한다. 작물 선택을 잘못해 갈아엎으며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하고, 판로 측면에서도 흔히들 고뇌한다. 가장 위험한 건 적자 누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는 상황이지. 이래저래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게 농업이라고 본다.”
그러한 농업의 실태를 귀농 이전에 미리 파악해둔 게 있었나?
“만만치 않은 도전일 거라는 짐작은 했지.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충분히 예상했던 거다. 그런데 귀농을 해 실제로 겪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더군. 한마디로 겁 없이 뛰어들었던 셈이다.”
후회한다는 뜻?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살지? 이런 회의는 아직도 가끔 찾아오지만 이건 후회와는 다른 감정이다. 후회가 있었다면 견디지 못했겠지. 자청해서 시작한 귀농이니 모든 시련을 기꺼이 감수하자는 의지만큼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끈질긴 근성, 나에게 그런 건 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몸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점, 그리고 자금난이었다. 자금 문제는 특히나 버거웠다. 농장의 규모가 있어 초기 투자자금이 많이 들어갔거든. 집을 짓는 데에도 큰돈을 썼다. 이 모든 자금을 서울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충당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빠듯해 남편이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농장 유지를 위해 그의 월급이 필요했으니까.”
전략적인 귀농? 스마트한 협업? 해숙 씨 부부는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미리 방책을 강구하고서 귀농에 착수했던 것이다. 아내가 먼저 산골로 들어가 농장을 개척하고, 남편은 서울에 남아 돈벌이를 해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는 게 아닌가. 이 조직적인 분업 시스템은 길게 이어지다가 작년에 이르러서야 종료됐다. 즉 이 부부는 귀농 9년의 세월 중 8년을 주말부부로 지낸 뒤 합류했다. 다시 말하자면 귀농 8년간은 해숙 씨가 사실상 농장을 주도적으로 도맡아 끌어온 셈. 그러하니 그간의 행장이 비범하다 할 수밖에. 그녀의 맹활약엔 경계가 없었을 터이며, 허리가 휠 근로의 양은 상식을 초월할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고, 당나귀 같은 우직한 뚝심으로 넘어선 시련의 수효가 많고 많았을 것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부부싸움할 시간조차 없어
돋보이긴 남편 명수 씨 역시 마찬가지. 그는 서울의 직장에서 일하다가 금요일 밤이면 부리나케 내려왔다. 그리고 토·일요일 양일간 어두워질 때까지 맹렬히 농장일을 하고선, 월요일 새벽에 다시 직장으로 달려가길 8년간 반복했다는 게 아닌가. 무언의 상호충성 동맹이라도 맺었던가. 부부는 레이스를 펼치듯 경쟁적으로 각자의 일에 매진해온 것 같다. 이를 하나의 절경으로 본들 무슨 무리가 있을까. 명수 씨는 요즘도 일하고 또 일하는 게 비법이라는 양 쉼 없이 열일을 한다. 가혹한 근로에 허리디스크를 안고 사는 신세가 됐으나 아랑곳없다. 해숙 씨도 류머티즘 관절염을 갖고 있으니 이 역시 노동의 강도를 반증한다. 농장이 요구하는 노동량의 극대치를 완수하며 살았으니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을 부부가 여기에 있구나. 그렇다면 그 결과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이젠 궤도에 올라섰다고 판단한다. 과수원의 기틀이 완성됐고, 기술력이 늘어 사과 품질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골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이고, 사과 체험 프로그램도 활성화되었다. 해마다 매출이 점진적으로 늘더니 올해는 드디어 흑자 국면에 접어들었다.”
작년까지는 죽 적자를 봤다?
“그렇다. 일반 작물과 다르게 과수 농사는 묘목 식재 뒤 최소 3년 뒤에야 과일을 딸 수 있다. 그간의 부진한 채산성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단순히 적자를 기록했다기보다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투자를 거듭해 기반을 다져온 기간이었으니 이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본다.”
농사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근 10년이 지나고서야 첫 흑자가 나다니 말이다.
“그동안 불안감에 자주 사로잡히곤 했다. 정확한 통계인지는 몰라도 전체 사과 농가의 단 5%만 안정적인 흑자 구조를 누린다는 얘기엔 아찔하더라. 그런데 이거 아시나? 가만히 쪼그려 앉아 고민하고 있을 짬조차 없는 게 농장일이라는 거. 심지어 부부싸움으로 으르렁거릴 시간조차 없더라고.(웃음) 종일 일하고 밤엔 곯아떨어져 잠자느라 여유도 여념도 없이 살았던 거다. 어휴, 주저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일 하루 당신에게 완전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지?
“농장을 비워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당장 해치워야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마음 편히 벗어나겠나. 비가 내리기만 해도 불안해지더라. 일을 멈춰야 하니까. 일을 못하거나 일에 대한 성과가 없으면 난 허탈해 풀이 죽는다.”
마르크스였던가, 일에만 붙들려 사는 인생은 노예와 다름없다고 말한 이. 그러나 이와 같은 ‘썰’을 해숙 씨에게 적용하기엔 좀 무기력하다. 비록 고역스러울망정 그녀는 일이 싫지는 않은 자발적 일벌레이지 않은가. 일 속에 묻혀 있을 때라야 안심을 느낀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런 심리가 이해되는 게 그녀의 목적이 일 자체가 아니라 일로 거둘 수 있는 ‘성과’에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누적되면 비상할 수 있는 것. 해숙 씨는 비상하고 싶다. 도달하고 싶다. 어디에? 튼실한 기업형 관광농원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숙원. 그녀는 이를 기어이 성취하고 싶은 것이다.
“나에겐 성취욕이라는 게 있다. 원하는 걸 반드시 이루어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는 거. 바라건대 농원을 열심히 가꿔 자식 놈들까지 합세한 복합관광농원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간 사과 농사 외에 다른 일들에도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어떤 일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배울 만한 기술은 거의 다 배웠거든. 수제맥주, 퓨전 떡, 빵, 천연식초, 전통주 등등 필요하다 싶은 제조기술은 모두 습득했다. 최근 캠핑장을 조성하고 있으며,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목표를 향해 나름 질주하고 있는 거다.”
당신의 열렬한 노동과 공부에 경이를 느끼지만 굳이 그렇게 자신을 혹사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궁금하다. 복합농원을 일궈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부(富)를 쌓고 싶나?
“돈의 노예로 사는 인생처럼 초라한 게 다시 있을까? 복합농원을 일구려는 이유? 말했지 않나. 난 성취욕이 강한 여자라고.(웃음)”
단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이루고 싶은 건 여하튼 이루고 가겠다는 얘기이겠다. 그러자면 투쟁과도 같은 투신이 필수. 목표 성취를 위해 그녀는 일단 노동을 삶에 입장시킨 대신 종래의 안이한 관습들을 추방했다. 귀농 고생살이도 이쯤이면 내공 쌓기 수업?
이해숙 씨가 주는 귀농 Tip
•사전 계획과 준비에 철저해야 한다.
•귀촌이든 귀농이든 목적을 분명히 정한 뒤 그게 합리적인지를 다시 점검하라.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게 시골생활이니까.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섣불리 대규모 과수 농사에 뛰어들지 말자. 부부가 경작할 수 있는 과수원의 적정 규모는 약 3000평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시골 텃세에 미리 겁먹을 것 없다. 오며가며 인사만 잘해도 교류 물꼬가 트이니까.
•일단 귀농을 했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자. 어떤 식으로든 고비는 오게 마련이고, 시행착오도 결국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걸 유념하라.
시골에 내려가 민박집이나 펜션을 운영하는 이가 많지만 뜻대로 순항하는 사례가 드물다. 이를 모르지 않았던 이정형(60, 희양산토담펜션 대표) 씨는 불운한 운명이 도래한 걸 깨달은 사람처럼 심오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기어이 펜션을 짓겠다고 기세를 돋우는 남편 강인구(66) 씨를 보기 좋게 꺾을 묘한 수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형 씨는 실패했다. 그녀가 아는 인구 씨는 좀 과장하자면 지구인 77억여 명 가운데 가장 끔찍한 옹고집쟁이. 결국은 남편이 이겼다. 정형 씨는 실의와 불안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잉, 이게 웬일? 펜션 사업이 썩 순조롭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정형 씨가 반기를 든 건 펜션 문제에서만은 아니었다. 인구 씨가 귀농을 제안했을 때부터 열렬한 반대운동에 나섰으니까. “혼자 내려가시옵소서!” 처음엔 그리 심드렁히 답하는 걸로 기선 제압을 도모했다. 하지만 애당초 한 번 먹은 뜻을 쉬 굽힐 남편이 아니었다. 지구별에 존재하는 동종 옹고집들의 빛나는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투로, 인구 씨는 불퇴전의 고집을 부려 마침내 아내를 대동하고 귀농을 실현하는 혁혁한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포성이 지축을 흔드는 전쟁은 아닐망정, 나름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전략이 아니고선 승리할 수 없는 게 부부싸움이다. 인구 씨는 그간 축적한 투쟁 자산 혹은 고집의 막강 위세를 총동원해 성공, 어쩌면 가족사에 길이 남을 치적(?)을 세운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인구 씨 입장에선 누구에게나 지지받기 어려운 서푼짜리 생고집을 부린 게 아니었다. 어엿한 합리에 기반을 두고 귀농을 선창했으니까. 반평생 근무했던 주방기구회사에서 은퇴한 그는 ‘어서 오라!’ 속삭이는 시골의 유혹을 물리칠 길이 없었다. 은퇴자의 쓸쓸한 삶의 오후를 견디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저지방우유를 사들고 서울의 여기저기 공원이나 야산을 배회하다 해 저물면 털레털레 귀가하는 나날들. 그는 자신의 모습이 늙은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한심했으며, 마침내 영혼까지를 다한 고뇌와 모색을 하다 고향으로의 귀농을 발상했던 것이다. 외로이 홀로 계신 고향집의 노모님도 모시고, 놀려둔 농토로 일감을 만들고, 아내와 둘이 전원의 낭만도 즐기고, 이래저래 귀농보다 더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노후 대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니, 여기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아내 정형 씨는 왜 귀농에 반기를 번쩍 들었나. 보나마나 생고생할 게 빤해서였다. 날마다 풀이나 뽑다가 손가락 관절염에 걸릴 테고,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허구한 날 올려다보자면 뒷목만 뻐근할 테고, 마트나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대신 죄 지은 것 없이 시골집에 얽매이는 옥살이를 해야 할 게 아닌가. 게다가 모기나 파리 따위 해충은 또 어떻고? 최악의 경우, 집 안으로 스며든 뱀이 소파에 똬리를 틀고 앉아 TV 시청을 하는 엽기적 정경을 목도할 수도 있는 게 시골생활이다. 이래저래 정형 씨는 귀농하자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오만정이 떨어졌던가보다.
“남편에겐 어머님을 모실 수 있는 낙향이자 귀농이라는 좋은 뜻에 의한 결심이었겠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도저히 이길 수 없더라. 결국은 꾹 참고 져줬다. 이런 내가 시골생활 대비 차원에서 준비한 건 운전면허증을 따둔 거 하나였다. 운전을 할 줄 알아야 답답할 때 바람이라도 쏘일 수 있을 거라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펜션 사업 반대
정형 씨 내외가 여기 문경시 가은읍 산골로 귀농한 건 2016년 초. 내려오자마자 남편은 벼농사를 시작하더란다. 벼농사에 덤벼든 속도보다 더 신속하게 착수한 건 펜션 짓기였다. “우리 펜션이나 해보더라고!” 그렇게 툭 던져놓고 산 아래 논의 일부를 터로 다져 건축에 나섰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초고속 질주였다. 이쯤이면 인구 씨의 특기가 고집부리기 맞나? 그게 아니라, 가령 필요하다면 뒷산도 헤딩으로 부수고 나설 슈퍼 울트라급(級) 박력의 보유자라 봐야 하지 않을까. 여하튼 파랗게 질린 정형 씨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금 투쟁 전선에 나섰다.
“이번엔 사생결단을 하고 반대를 했다. 펜션은 무슨? 기어이 저지하고 말리라! 꽤나 독을 품었던 거다. 그러나 또 졌다. 원통하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웃음)”
펜션을 왜 반대했지? 잘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잘될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아무리 날고뛰더라도 자리 잡히기까진 고전할 게 분명해보였던 거다. 게다가 자금 사정도 변변치 않았거든. 건축비 외에 운영비도 많이 들어갈 텐데, 그러고 나면 밥은 뭐로 먹고? 근심과 불안이 아주 많았다.”
부군의 펜션 사업 착수가 충동적인 건 아니었겠지?
“나 몰래 충분히 구상해온 것 같았다. 건축의 초벌 설계까지 직접 해서 설계사무소에 맡긴 걸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펜션에 꽂혔다는 걸 알겠더라. 남편이 뭐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무슨 일을 해서든 가족들 밥은 굶기지 않을 남자다.”
봄에 펜션 건축을 시작해 여름에 오픈했다지? 일사천리로 진도를 뺐구나.
“양가 형제들이 많이 도와줘 일이 순조로웠다. 남편이 건축을 주도하는 사이에 나는 부지 곳곳에 꽃을 부지런히 심었다. 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전에 아파트에 살면서는 꽃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귀농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라곤 개울에 나가 다슬기를 줍거나 꽃을 심는 방법밖엔 없었거든.”
드디어 펜션을 오픈한 뒤엔 어땠나? 손님이 얼마나 오던가?
“처음엔 지인들만 간간이 왔다. 그러다가 차츰 문경 지역을 여행하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말에 좀 들어오더라. 이듬해 3, 4월에도 비슷한 추세였다. 5, 6월엔 거의 찾는 이가 없어 객실이 늘 비었다. 그런데 7월 말쯤부터 2주 동안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방 여덟 개가 다 찼다. 아하, 이게 성수기라는 거구나! 여름 한철 장사로 1년을 먹고사는 게 펜션이라는 얘기가 실감으로 다가오더군. 이후 손님이 꾸준히 늘어 초기의 불안감에서 성큼 벗어날 수 있었다. 상당히 빠른 성장 속도로 자리가 잡혀나간 셈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기대보다 흡족하게 안도할 만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얘기다. 매우 따분한 날들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으나 정반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걸 보며 정형 씨는 비로소 재미와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의 격렬했던 반대 시위의 기억을 내심 멋쩍어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 비수기를 제외하고는 무자비한 불황에 진저리를 칠 일이 없었다는 게 아닌가. 펜션 개업 만 4년이 지난 현재, 해마다 점증한 손님의 수효로 이미 궤도에 올라섰다. 재방(再訪) 비율은 무려 90%. 한 번 찾아왔던 고객 대부분이 다시금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탄탄한 단골층을 형성했으니 귀농 성공사례라 쳐도 무방하겠다.
고객들 위해 심은 배추 500포기
이와 같은 일련의 성취는 거저 굴러들어온 행운의 산물이 아니다. 비결이 무엇일까. 우선 정형 씨네 펜션이 들어앉은 자리의 경관부터가 빼어나다. 낮에는 물론 달빛 부서지는 오밤중에도 장엄한 암봉을 허옇게 드러내는 명산 희양산이 지척에 있어 상서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반딧불과 가재가 서식하는 맑은 개울이 펜션 앞을 흐르니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물에 들어가 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넘실거리는 야산들이 주는 싱그러움과 적당한 적막감 역시 도시에 지친 나그네들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그러나 이 모든 수려한 자연 경관보다 펜션의 쾌조에 더욱 기여한 건 정형 씨 부부의 노력과 수완이다. 인간사의 인과(因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막막했다. 그저 청결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객실 청소를 비롯한 미화 작업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내가 꽃을 많이 심었다. 부지가 넓은 편이라 꽃밭, 꽃길 외에 텃밭 공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유용했다. 거기에 온갖 야채를 심기 시작한 건 손님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그저 우리 집을 찾아준 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고객들에게 야채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내놓고 보니 그 소소한 선의의 표시가 고객의 환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효과를 나타냈다는 걸 알겠더라. 누구나 필요한 만큼 야채를 채취해 가져가도록 했다. 아침이면 방방마다 옥수수나 감자를 쪄 돌리기도 했다. 얼마 전엔 배추 500포기를 심었다. 모두 손님들을 위한 물량이다.”
이 펜션은 작은 놀이동산 같은 구색을 갖추었다. 왜 이렇게 꾸몄지?
“영업을 시작하고 얼마쯤 지나 고객층의 경향에 특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린 자녀를 대동한 30, 40대 부부들이 주로 투숙했으니까. 그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과 시설을 보강했다. 작은 수영장을 만드는 식으로. 텃밭 체험에도 아이들은 신나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장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의 공간으로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도시의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해 한때나마 자연 속에 풀어놓고 싶은 젊은 부모들. 정형 씨는 그들의 니즈에 적극 부응했으며, 그게 펜션의 안정세를 북돋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면 줄수록, 마음을 쓰면 쓸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은 게 인간관계다. 그러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나가던 영업집들이 도중에 망가지는 게 그 욕심 때문이지 않던가.
“초심을 유지하게 위해 자제한다. 돈 냄새 풍기지 않는 영업집을 지향하면서. 우리 부부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일이 고되지만 그저 즐기자. 무리할 거 없다, 그냥 먹고사는 정도에서 만족하자!’ 지금 무난하다고 앞으로도 잘될 거라 방심하지도 않는다.”
어려운 점도 많을 테지?
“좋은 접객을 위해서는 친밀감을 자아내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했는데 내겐 그게 쉽지 않았다. 서비스가 지나쳐 오히려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고민도 많이 했다. 컴맹이었던 내가 뒤늦게 블로그를 배워 펜션 이야기를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아 진땀을 뺐다.”
시골에 내려와 펜션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펜션 사업이란 게 쉽지 않다. 이곳 주변의 펜션들 대부분이 부진하거나 사실상 휴업 상태에 놓여 있다. 권장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어 비교적 수월했지만 투자비도 많이 들고 부대비용도 수시로 발생해 고난에 빠질 수 있다. 오직 돈벌이를 목적으로 뛰어들 경우에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당신은 처음엔 귀농을 결사반대했다. 이젠 귀농에 호의적일까?
“내가 귀농으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여유다. 도시에서와 달리 느긋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으로 좀은 변했거든. 그러나 여자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시골이 도시보다 좋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손발 걷어붙이고 진흙탕에도 뛰어들어야 하는 게 귀농생활이다.”
이왕지사 시작한 일,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몰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한번 가보자. 정형 씨는 그런 심정으로 진력했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고 진지하게 관여했다. 정형 씨 내외가 그간 쏟은 땀의 총량이 몇 톤에 달할지는 저 고매한 희양산 바위봉이 알려나. 그런데 정형 씨의 펜션이 궤도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스스로 선의를 끌어내는 힘에 있는 게 아닐까.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기 이전에 나의 선의로 먼저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능력의 진실. 이는 단지 펜션 운영에만 적용될 공리이랴. 타인을 찍어 누르고서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미신마저 횡행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법일 수 있다. 그나저나 정형 씨는 아직도 단단히 벼르고 있단다. 남편의 고질적인 옹고집을 단 한 번이라도 와지끈 무너뜨리기 위해.
“어휴, 단 20분만 같이 있어도 혈압이 오른다. 선의도 통하지 않더라. 남편 성질이 불이거든. 늘 내가 패하고 마는 거다. 언젠가는 한 번쯤 이기고 말겠다는 결의를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하하.”
정형 씨가 주는 귀농 Tip
•무작정 내려왔다가 시행착오로 고통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미리 귀농·귀촌 교육을 받는 등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자.
•마을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하자. 그게 차라리 원주민들과 더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방법이다.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펜션을 구상한다면 무엇보다 위치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일단은 경관이 좋은 곳이어야 승산이 있다.
•인근의 귀촌·귀농인들과 긴밀히 사귀자. 단 한 사람하고라도 우정을 나눌 경우 시골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크게 덜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 100년 행복연구센터에서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이란 책을 발간했다.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평균 49.5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40대 후반~50대 초반이다.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는 시점까지는 평균 12.5년이 걸린다. 이 상황을 소득 크레바스(crevasse)라고 한다. 크레바스는 히말라야 등정을 하는 산악인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위험 지점을 말한다. 얼음과 얼음 사이에 틈이 벌어져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 수 없는 낭떠러지다. 우리 삶에도 크레바스가 있다.
퇴직은 소득 중단을 의미한다. 매월 들어오던 급여가 어느 날부터 뚝 끊어진다. 가정은 일정한 소득이 들어오지 않으면 고통을 겪는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아도 매달 필요한 기본경비가 있다. 상황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의식주에 들어가는 기본경비는 만만치 않다. 한 달에 두세 번 마트를 갔다 오면 아내는 볼멘소리를 한다. 먹는 데 들어가는 식료품비가 “별로 산 것도 없는데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사계절이 있어 옷도 가끔 사야 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통신비는 또 어떤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각자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필수다. 정부에서 조사한 바로 1인당 생활비는 170만 원이라 한다. 그러니 부부가 생활하려면 월평균 생활비는 최소한 250만 원 이상 되어야 한다. 퇴직자에게 매월 250만 원은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퇴직자의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에만 있지 않다. 돈이 있어도 할 일이 없으면 고통이다. 돈도 없으면서 할 일이 없다는 건 더 지옥이다. 은퇴 후에도 치열한 생활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 때문에 노후의 생을 낭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은퇴 전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자신의 삶도 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마음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 연습이 필요하다. 마인드컨트롤도 하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행복은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고 숨 쉬는 이 공간이 소중하다. 철따라 형형색색 피는 꽃과 향기를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풀벌레 소리와 산새 울음소리도 즐겨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조그만 동산이 하나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고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노랗고 붉게 꽃을 피운다. 가을엔 노란 은행나무 잎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얼마 전 은퇴 기념으로 지리산에 숙소를 얻어 열흘을 지내고 왔다. 조용한 숲속에서 아침을 맞아 커튼을 열자 온갖 새소리가 들렸다.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집 베란다를 열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지리산에서 듣던 새소리가 앞동산에서도 들려오는 것이었다.
“지리산에서는 그렇게 새소리가 잘 들렸는데 여태껏 왜 집에서는 새소리를 듣지 못했지?”
아내가 놀라워했다. 생각해보니 집에서는 그만큼 집중을 못해 듣지 못한 것이었다. 새벽부터 출근하랴 일상에 쫓기다 보니 새소리 들을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좀 내려놓고 새소리도 들어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따라 “행복은 결과보다 과정”이란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