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부터 사망자가 신생아보다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4명,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치다. 2030년까지 ‘일하는 인구’가 315만 명 줄어든다. 정부에서 다각도로 대책을 추진하지만 결과는 헛방이다. 인구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해서라고 지적하는 전영수 한양대 교수를 만나, 다양한 사회현상이 왜 인구 변화에 영향을 받는지 혜안을 들어봤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한국의 모든 이슈가 인구로 투영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문제는 산업을 비롯해 우리나라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인구 변화가 만드는 미래는 무차별적이고 뉴노멀이다. 시니어들도 기존의 틀을 모두 버리고, 인구 변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대응해야 한다.”
시니어들은 상대적으로 인구문제는 자신과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액티브 시니어라면 이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전영수(49)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인구문제가 시니어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최근 부동산 급등세도 인구 변화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고 전망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결혼 인구가 줄어 아파트 같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최근 몇 년 동안 2배 이상 오르며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이유로 최근 1, 2인 가구가 크게 늘어난 요인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전 교수는 조금 다르게 설명했다.
팔아야 할 60대가 주택 사면서 부동산 상승 초래
전 교수는 “생애주기가설은 평균수명이 60세이던 시절에 나왔다. 이때는 50세가 넘으면 자산을 이전하고 정리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새로운 투자보다는 자산을 절제하며 관리했고, 위험자산을 사지 않았다. 부동산도 위험자산이기 때문이다. 보통 부동산은 50대에 정점을 찍고 60대부터 정리했다. 이렇게 해서 60대는 전형적인 중고주택 판매자로 공급을 주도했다”라며 생애주기가설이 적용되던 시절에는 60대가 부동산 공급자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생애주기가설(Life cycle hyphothesis)은 현재 소비가 현재 소득뿐만 아니라 평생소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가설이다. 이에 따르면 지금 소득과 모아둔 재산이 적은 20~30대일지라도 나중에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소비한다. 반면 모아둔 재산이 많은 50~60대는 앞으로 들어올 소득이 줄어들 것을 대비해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소비한다.
이어 그는 “그런데 이 생애주기가설이 인구 변화로 완전히 무너졌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주택을 파는 주체가 되었던 60대와 70대가 더 남은 인생을 위해 임대나 투자용으로, 또 거주용으로 주택을 사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통계로도 최근 60세 이상의 아파트 구매자 수 비중은 늘고 20~30대는 준 것으로 확인됐다. 60세 이상 액티브 시니어들이 길어진 미래를 위해 위험자산인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것이다. 중고주택 공급자였던 이들이 수요자로 바뀌었다. 보통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면 가격은 상승한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늦게 젊은 층도 추격 매수에 나섰다. 나중에 천천히 주택을 구매해도 될 사람들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을 하며 주택을 구매했다.
전영수 교수는 “공급이 제한적이라는 특성과 교체 수요도 있었다. 재건축·재개발 문제도, 미스매칭도 있었다”며 “저금리 상황까지 겹치면서 집값을 올릴 다양한 변수가 한꺼번에 몰려 부동산 급등세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인구정책, 완전히 새 판 짜야”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처음 인구가 감소했다. 이에 인구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정부는 올해 초 3기 인구정책 TF를 구성해 관련 주요 과제와 추진 계획을 조금씩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활동 인구를 확대하고자 고령자와 여성, 외국인을 활용하는 인구정책을 준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인구정책에 시니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교수는 “인구문제를 이대로 두면 연금이 줄어 시니어들에게 노후 위기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금 체계는 경제활동 인구가 기존과 같은 수준으로 공급되는 걸 전제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줄면 사회보장 체계가 약해진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저부담고급여에서 고부담저급여로 개혁해야 하고, 건강보험에서 자기부담률도 높아진다. 장기요양보험 수혜 혜택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인구문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전 교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한다”며 “확실한 리더십을 갖고 자원 배분의 의지와 권한을 가진 컨트롤타워가 나와야 한다. 17개 부처의 이해와 전문성, 경험을 잘 섞어 중복되거나 누수·낭비되지 않도록 하며,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만 위원회 수준으로는 역부족인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제대로 확인된 정부는 거의 없었다”며 “정부가 진정성 있는 의지가 있는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 결국 의지를 가진 최고의사결정권자, 청와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1, 2기 인구정책 TF처럼 해서는 달라질 게 없다는 의견이다.
정부의 경제활동 인구 확대 정책에 대해 그는 “경제인구 확보는 출산장려정책을 통해 끊임없이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인식과 환경도 바꿔야 해 매우 어렵다. 효과를 얻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고령자와 여성, 외국인 활용은 좋은 방안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령자 정년 연장,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
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나타나고 있는 인구문제 해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가 저출산 해소, 둘째가 로봇 활용, 셋째가 고령자 정년 연장, 넷째가 외국인 이민제 도입, 다섯째가 전업주부의 경제활동 인구 전환이다.
이 중 저출산 해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하고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 정책이다. 로봇 활용은 전통적인 일자리를 줄일 수 있어 양날의 검으로 논란이 많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고령자와 외국인, 여성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이 중에서도 고령자 정년 연장은 현 상황에서 그나마 효과적이면서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연금 전문가들은 30년 이상 국민연금을 납부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고령 인구가 매년 85만 명씩 20년 동안 등장하면서 국민연금이 빠르게 고갈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를 막으려면 국민연금 납부액을 높이거나 수급액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보험료를 높이면 납부 대상자들이 반발하고, 수급액을 낮추면 고령자들이 반발한다. 이에 고령자들이 더 오래 직장생활을 하며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고, 그만큼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제시된다.
전 교수는 “정년을 65세까지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걸로도 부족하다. 선진국은 67세에서 70세, 정년을 폐지한 나라도 적지 않다”며 “정년을 연장한 만큼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2~5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년 연장이 쉽지는 않다. 청년 세대는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전 교수는 “고령자 일자리와 청년 세대 일자리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라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의지를 갖고 제대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소득 크레바스’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소득 크레바스는 직장에서 은퇴하고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으로, 최근 5060세대의 화두다. 올해 금융권에서 30대와 40대 조기 은퇴가 현실화되고 있다. 40대에 은퇴하면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까지 소득 없는 기간이 20년이 넘어 큰 문제다. 정년 연장을 서두르지 않으면 앞으로 조기 은퇴가 전 직종으로 확산되면서 소득 크레바스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할 가능성이 높다.
전영수 교수는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국제학대학원 교수 및 사회혁신융합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사회적경제위원회) 전문위원, 기재부 협동조합정책심의회 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언론매체에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30년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인 남편, 함께 보내는 시간이 영 답답한 아내. 깊어지는 황혼의 동상이몽,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이를 회복하는 데 그리 대단한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 배우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신혼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다. 아래 사례가 자신의 이야기 같아 ‘뜨끔’했다면, 부부 사이를 개선하는 생활 속 크고 작은 행동 가이드를 실천해보자. 시작이 반이다!
CASE 1
은퇴 증후군 VS 갱년기
김은퇴 35년 일한 대기업에서 퇴직했다. 한동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고생 끝에 얻은 명예와 남부럽지 않은 연봉, 화려한 인간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듯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당신 뒷바라지하느라 내 인생이 끝났다”며 언성을 높이고 잔소리를 한다. 잘나가던 시절이 꿈만 같고 매일이 우울하다.
이홍조 어느 날부터 몸이 자주 홧홧하더니 관절통, 근육통, 불면증까지 전에 없던 증상이 밤마다 괴롭힌다. 한평생 반복된 가사노동에 체력은 점점 떨어져가는데, 남편은 은퇴하고도 하루 종일 누워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의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억울함과 분함, 회한이 사무친다. 밤만 되면 20~30년 전 서운했던 일까지 하나하나 생각나 일일이 따지고 싶은 기분까지 든다.
행복 솔루션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활동을 하던 시절 직장은 밥벌이 수단 그 이상의 개념이었다. 성공의 상징이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였다. 또 오늘날과 달리 ‘워라밸’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당시에는 가족에 소홀할지언정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풍족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가정 평화를 위한 최선이라고 여겼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30~35년간 직장에 헌신하다 은퇴한 이들은 가정과 직장 모두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에 상실감을 느낀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존감 회복이다. 먼저 아내는 앞선 상황을 이해하고 남편의 장점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재취업을 독촉하는 대신 승진한 날, 큰 프로젝트를 성사한 순간,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자식 대학 보낸 때 등 생애 성취 경험을 되짚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며 의욕을 북돋아준다. 회상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아내 또한 그동안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남편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정에 최선을 다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또 남편 역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한 회사의 책임자가 아닌 배우자와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고민해보고, 가정에서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편 남편은 아내가 ‘갱년기’라는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이 진심이 아닌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외면하기보다 이야기를 들어준다. “왜 또 그래”, “당신 그거 병이야. 병원 가” 등의 반응은 전쟁의 총성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표현하는 게 어색하다면 갱년기 증상에 좋은 음식, 영양제 등을 챙겨주며 ‘당신의 상태를 이해한다’는 마음을 슬쩍 내비쳐본다. 나이 들수록 배우자의 건강을 챙기는 것만큼 소중한 애정 표현은 없다.
CASE 2
여가 시간의 동상이몽
강바다 회사 다닐 때부터 쉬는 날마다 낚시를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은퇴 후에는 막연한 불안과 우울함이 찾아올 때마다 종종 바다를 찾는다. 낚싯대를 잡고 머리를 식히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내가 혼자 즐기는 취미 생활에 불평을 토로한다. 운동은 취미가 없는데, 자꾸만 함께할 것을 강요해 잦은 언쟁이 벌어진다.
최운동 은퇴 전 해외 주재원이었던 남편은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았다. 그러다 간혹 시간이 나면 집에서 누워 있거나 홀랑 낚시를 하러 바다로 떠나버렸다. 용기 내 함께 운동할 것을 제안하면 “일 때문에 바빠 그렇다. 퇴직하면 같이 놀러 다니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은퇴하니 이제는 “취미가 다르지 않느냐”는 핑계를 대며 함께하는 시간을 피한다.
행복 솔루션 20~30년 함께 산 부부라도 관심사가 다르면 공통의 취미를 갖기 어렵다. 은퇴 전부터 각자의 여가 시간을 보낸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이가 더 소원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부부끼리 ‘따로 또 같이’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먼저 지난 일주일간 부부가 함께한 시간, 활동, 대화 내용 등을 적어본다. 그 다음 이를 반성의 지표로 삼아 ‘주 3회 저녁 식사 후 산책하기’, ‘주 1회 같이 문화생활 하기’ 등 실천하기 쉬운 부부 생활 강령을 만들어본다. 요일별로 정해도 좋다. 이를테면 월·수·금은 ‘부부 동반의 날’, 화·목·토는 ‘혼자만의 날’을 보내기로 약속한다. 다소 숙제처럼 느껴져도 긴 시간 쌓인 마음의 벽을 서서히 허물고 함께하는 시간을 길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다음 서로의 취미에 발을 들인다. 반드시 같은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데 방점을 둔다. 이를테면 남편이 낚시를 할 때 옆에서 자수를 하거나, 아내가 공원에서 조깅을 하는 동안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상대는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존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본인은 배우자에 대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고 싶다면, 서로의 관심사를 탐색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때 배우자의 관심사를 다 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데이터가 연애 시절에 멈춰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상대방을 알아가던 풋풋한 그때처럼 “당신이 요즘 재미있어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 “당신, 예전에 ○○하는 것 좋아했던 것 같은데 맞아?” 등 호기심 어린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CASE 3
다시 불붙은 경제권 전쟁
박지출 은퇴 전 가정의 경제권은 아내가 책임졌다. 월급은 타는 족족 아내에게 가져다주고, 30년 넘도록 용돈을 받아 썼다.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진 결정이기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과자 한 봉지를 사더라도 아내 눈치를 보느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노년기만큼은 주도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은퇴 후에는 소일거리를 찾아 직접 번 돈으로 골프용품을 사고 소소한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아내가 간섭하려 든다.
오경제 남편이 피땀 흘려 벌어온 돈을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결혼 생활 내내 꼬박꼬박 가계부를 정리하며 재산을 불리는 데 힘썼다. 덕분에 노후 자금에 보탬이 될 건물을 사고, 투자로도 수익을 얻었다. 그래도 자식 결혼 전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남편이 은퇴 후 소일거리를 시작한 뒤부터 벌이를 공개하지 않고 고가의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변한 남편의 태도가 당황스럽다.
행복 솔루션 경제권은 신혼, 황혼을 막론하고 부부 사이 다툼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결혼 생활을 갓 시작한 신혼부부는 경제권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언쟁이 오고 간다면, 황혼 부부의 갈등은 그동안 참아온 불만이 특정 계기로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가정에서 성 역할이 비교적 뚜렷한 베이비붐 세대 부부는 주로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경제권을 관리해, 돈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내 쪽으로 힘이 편중되며 갈등이 빚어진다. 이에 많은 남편이 은퇴를 기점으로 재정 독립을 선언하고, 아내는 달라진 남편의 태도를 비협조적으로 느낀다.
비슷한 상황으로 갈등을 겪는 부부가 있다면 두 사람의 합의를 거쳐 경제권을 교체해보는 것이 좋다. 남편은 가계부 작성, 대금 납부 등 재정 관리를 오롯이 책임지고, 아내는 정해진 용돈으로 한 달간 생활하는 것이다. 역할을 바꾸면 각자가 진 부담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자의 고충을 깨닫고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매달 ‘가계 대화의 날’을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가계 대화의 날에는 가계 자산과 부채, 현금 흐름 등을 공유하고 재테크 계획을 논의한다. 모래시계를 활용하면 발언권을 보다 공평하게 가질 수 있다. 날짜는 매월 말이나 초가 적당하다. 지난 한 달간의 재무 상황을 살펴보며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되 배우자의 잘못을 질책하지 않는다.
도움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100세 시대 노후안전장치 중 하나다. 퇴직연금 유형 중 확정급여형(DB)는 퇴직급여를 미리 정하고 회사에서 이를 지급하기 때문에 가입자 개인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하지만 확정기여형(DC)은 가입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해 투자하기 때문에 관리와 책임이 가입자에게 있다.
최근 DC형 가입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9년 퇴직연금통계 결과’에 따르면 2019년 퇴직연금 가입자 중 DC형 가입자 비율은 48.9%로 절반에 가까웠다. DB형 가입자는 2018년 50%에서 1.7%포인트 감소해 48.3%였고, DC형 가입자는 47%에서 2.0%포인트 늘었다. 2019년을 기점으로 DC형 가입자가 DB형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 2019년 기준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약 637만 명이고, 이 중 DC형 가입자가 311만 명 정도를 차지한다.
이처럼 퇴직연금 가입자와 적립금이 늘고 있다. 하지만 가입자들의 DC형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와 운용지식이 현저하게 떨어져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많은 DC형 가입자들이 적립금을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0년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광 통계’에 따르면 DC형 가입자는 적립금의 83.3%를 원리금보장형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공단이 지난해 5월 말 기준으로 적립금의 51%를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는 ‘2021 대한민국 직장인 연금이해력 측정과 분석’에서 직장인들의 연금이해력을 측정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설문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DC형 가입자들은 퇴직연금 운용 규정에 대한 지식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DC형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투자한도, 투자가능 상품 관련 문항 정답률이 각각 17.3%, 28.1%로 매우 저조했다.
DC형 가입자들이 퇴직연금으로 투자할 때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적립금의 70%를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예금 위주로 자산을 운용하는 시니어들이라면 퇴직연금으로 투자에 나서기가 어렵고 두려울 수 있다. 투자를 해보려고 해도 지식이 적은 상태에서 투자를 잘못해 노후자금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투자 자체를 꺼리게 된다. 별도로 투자만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별도로 투자 연습을 하기 어려운 시니어에게 유용한 도구가 있다. 바로 투자 시뮬레이션이다. 재무설계 관련 학회인 한국FP학회에서 최근 논문을 통해 ‘투자 시뮬레이션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퇴직연금 관리 역량을 길러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연구에서는 2006년부터 2019년까지의 국내외 주식·채권 시장의 주요 지표를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투자 시뮬레이션을 경험한 응답자 중 자체 질문지를 통해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대로 이해한 231명과 투자 시뮬레이션을 경험하지 않은 응답자 237명을 포함해 468명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투자 시뮬레이션을 경험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가입자 본인이 가장 쉽게 투자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모의투자 프로그램 이용이다. 모의투자는 거의 모든 증권사가 제공하고 있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증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모의투자를 신청하고 아이디를 만들면 모의투자가 가능해진다. 공인인증서 없이 신청할 수 있어 실제 증권계좌를 만드는 것보다 간단하다.
모의투자에서 적용되는 수수료와 제세금은 보통 실제 투자보다 높게 적용한다. 그러다보니 종목 선택부터 매수·매도까지 꼼꼼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다만 모의투자와 실제투자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100만 원을 실제로 투자하면 해당 금액에 거래에 반영되지만 모의투자에서는 거래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노후가 빈곤해질 수도 있고 풍요로워질 수도 있다. 퇴직연금을 잘 운용하기 위해선 퇴직연금과 금융자산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투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니어들이 퇴직연금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편은 60대, 아내는 50대인 권 씨 부부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 이외에는 대부분의 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권 씨 부부의 금융자산 중에는 다른 가정에 비해 보험 상품 비중이 높은 편이다. 최근 TV 방송과 유튜브 등을 통해 ‘죖보험 리모델링’ 개념을 알게 된 권 씨 부부는 보험 점검 및 보험 리모델링 상담을 신청해왔다.
당시에는 꼭 필요해서 가입한 보험이 세월이 지나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경우가 있다. 반대로 예전에는 덜 중요했던 위험이 지금은 필요해지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 없었던 상품이 제도 및 트렌드 변화에 따라 새롭게 출시되기도 한다. 새로운 상황에 맞게 보험 상품 구조를 변경하다 보면 기존 보험을 해약 혹은 감액(부분해약)하거나 새로운 보험에 가입한다. 이처럼 보험 가입의 구조나 기능 개선을 통해 위험관리의 가치를 올리는 행위를 보험 리모델링이라고 한다.
기존 가입 보험의 숨은 기능을 활용한 보험 리모델링
권 씨 부부는 결혼 후 부부가 사망 시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커버하기 위해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현재 권 씨 부부의 자녀는 독립했고 가정경제 상황은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하더라도 남은 배우자가 여생을 보내는 데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다. 사망보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권 씨 부부는 질병, 특히 치매에 대한 보장에 관심을 가졌다.
보험 분석 결과 권 씨 부부가 가입한 종신보험은 ‘타인의 항상 간호가 필요한 경우’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상품이었다. 자산 증식 시뮬레이션 결과 권 씨 부부는 상속세 납부가 예상되었다. 종신보험은 사망의 원인에 관계없이 언제 사망하든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사망 시점이 곧 상속 개시 시점인 점을 고려하여 권 씨 부부는 종신보험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제반 사항을 고려한 권 씨 부부는 종신보험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종신보험 상세 내용은 2021년 5월 발간 본지 VOL. 77 참고)
노후 대비용 자산으로 보험사 저축성 보험을 선호하는 권 씨 부부는 최근에 납입 완료된 보험의 보험료만큼 연금보험 신규 가입을 검토했다. 권 씨 부부의 기존 저축성 보험 분석 결과 ‘보험료 추가납입’ 기능이 있었다. 보험료 추가납입 기능은 납입하기로 한 전체보험료 혹은 기납입 보험료의 2~3배를 기존 보험에 추가로 납입하는 기능이다. 보험료 추가납입의 가장 큰 장점은 신계약비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다. 신규 보험에 가입하면 납입 보험료에 신계약비가 포함된다. 그만큼 적립되는 ‘순보험료’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향후 연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보험료 추가납입의 또 다른 장점은 기존 보험 계약의 혜택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축성 보험은 계약 후 10년 이상 유지하면 보험차익(=이자소득)이 비과세된다. 보험차익이 비과세되면 이자소득세만큼 실질수익률을 올릴 수 있고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도 제외된다. 권 씨 부부가 가입한 저축성 보험은 모두 계약 후 10년이 넘었고 추가납입 기능과 함께 중도인출 기능까지 갖춘 상품이다. 금융자산이 많은 권 씨 부부는 유동성과 절세 기능을 고려하여 저축성 보험 신규 가입 대신 기존 보험에 추가납입을 결정했다.
권 씨 부부는 나이 들어 다치면 회복이 더딘 점을 염려하여 상해보험 추가가입을 검토했다. 보험 분석 결과 권 씨 부부가 가입한 실손보험은 가입 당시에 판매되던 상해 관련 특약을 계약 시점 이후에 추가로 부가할 수 있었다. 권 씨 부부는 상해보험 신규 가입 대신 특약 추가로 보험 리모델링을 마무리했다. 보험 리모델링을 무조건 기존 보험 해약 후 신규 가입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권 씨 부부처럼 기존 보험이 갖고 있는 기능을 활용한 보험 리모델링도 가능하다. 따라서 보험 리모델링을 할 때는 우선 기존 상품의 보장 내역부터 분석해봐야 한다. 찾고 있는 보장 내용이 기존 상품에 숨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보험 상품은 주계약이나 특약의 이름이 같아도 가입 시점이나 보험사에 따라 보장하는 세부 내용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드시 사업방법서나 약관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만약 약관 등을 분실했다면 해당 보험사 홈페이지나 콜센터를 통해 구할 수 있다.
경제적 손실 규모를 고려한 보험 리모델링
보험 리모델링은 변화된 상황에 맞춰 위험관리 전략을 점검하고 다시 수립하는 것이다. 위험관리 전략은 위험의 평가부터 시작하며, 위험 처리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마무리된다. 보험 가입은 위험 처리 방법 중 하나다. 먼저 위험의 평가부터 알아보자. 위험의 평가는 위험 발생 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손실 규모에 따라 치명적 위험, 중요한 위험, 일반적 위험으로 분류한다.
ㆍ치명적 위험 개인이나 가정을 파산으로 이끌 수 있을 정도의 손실위험.
ㆍ중요한 위험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외부로부터 자금을 차입해야 할 정도의 손실위험.
ㆍ일반적 위험 현재의 소득이나 자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손실위험.
보험료 납입의 여유가 있다면 모든 위험을 관리하면 좋지만,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치명적 위험, 중요한 위험, 일반적 위험의 순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보험은 위험 발생 시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배우자나 부모의 사망 시 보험은 유가족의 상실감과 슬픔을 보상해주지는 못하지만 경제적 책임을 보상한다. 가족에 대한 부양책임이 한창일 때 가장의 사망은 남은 가족에게 치명적 위험이지만, 부양책임이 모두 끝났을 때는 오히려 오래 사는 위험이 치명적 위험이 될 수 있다. 치명적 위험의 종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입한 보험이 치명적 위험을 보장하지 않거나 부족하다면 보험 리모델링을 고려해야 한다.
통합적 위험 처리 방법을 통한 보험 리모델링
위험의 평가가 끝나면 해당 위험의 위험 처리 방법을 선택한다. 위험 처리 방법을 선택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위험을 보험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보험 리모델링 시에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위험 처리 방법은 크게 위험재무와 위험통제로 나뉜다. 위험재무는 돈으로 위험을 처리하는 방법인데 위험이전과 위험보유로 구성된다. 위험이전은 돈을 들여 위험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보험이 대표적이다. 고객은 보험료 납부를 통해 위험 처리 책임을 보험사로 전가한다. 대신 보험사는 모든 위험을 인수하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 위험 처리 비용은 스스로 준비한 자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위험 처리 방법을 위험보유라고 한다. 보험사가 위험을 인수하지 않는 주요 이유는 손해율 때문이다. 손해율이 너무 높으면 보험료가 너무 비싸 상품을 출시해도 시장성이 없다.
치매를 예로 들어보자.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치매 발병률은 높아진다. 당연히 보험 소비자들의 치매보험 가입 니즈는 높다. 고객의 니즈를 충분히 충족시킬 정도로 치매보험의 보험금액을 높이면 보험료는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판매되고 있는 치매보험의 보험가입금액 한도는 실제 의료비를 충당하기엔 부족한 수준이다. 즉 치매보험 이외에 치매에 대한 별도의 위험 처리 방법이 필요하다. 이럴 때 위험보유가 적절한 위험 처리 방법에 해당한다.
위험보유를 통해 위험 처리를 하는 또 다른 경우는 현재의 소득이나 자산 수준으로 위험 처리를 하는 데 부담이 안 되는 경우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위험 처리 방법으로 위험보유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저축 등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 자금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 위험이 중요한 위험이 될 수 있고, 더 확대되어 치명적 위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위험재무와 달리 위험통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위험통제는 위험축소와 위험회피로 구성된다. 위험축소는 위험의 빈도 및 심각성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의료비 발생에 대비한 위험축소 방법은 금연, 절주, 운동 등을 통한 건강관리다. 위험회피는 위험 발생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을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사고가 걱정된다면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위험회피의 방법이다.
현실에서 위험 처리는 대부분 4가지 위험 처리 방법을 모두 통합적으로 활용한다. 자동차 운전으로 인한 위험에 대한 통합적 위험 처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보험 가입을 통해 위험이전을 한다. ‘자기부담금’ 제도 활용은 위험보유다. 안전운전과 교통법규 준수는 위험축소다. 상황에 따라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위험회피다.
권 씨 부부가 치매로 인한 장기간병 비용에 대비하여 통합적으로 실행한 위험 처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기가입 종신보험 및 장기요양보험료 납입 유지와 소액의 치매보험 추가가입으로 위험이전을 했다. 금융자산 중 일부를 요양기관 입소 및 간병 비용 용도로 별도 분류하여 위험보유를 했다.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을 키우는 활동을 통해 위험축소를 하기로 했다. 부부 모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함으로써 위험회피를 했다. 치료 효과와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명치료 중단의 뜻을 미리 밝혀놓는 것은 개인과 가족의 신체적·정신적·관계적·경제적 손실에 대한 위험 처리 방법이 될 수 있다.
노후 생활비는 곧 의료비라는 말이 있다. 수명이 길어진 것은 축복임에 틀림없지만, 준비되지 않은 장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해 연간 단위로 위험관리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 해 동안 부산시 인구 규모가 주식 투자자로 새롭게 진입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식 투자가 처음인 사람들이 지난해 기준 300만 명에 달한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 탄탄한 미래를 그리기 위해 재테크는 필수다. 아무리 절약하고 열심히 저축해도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노후 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시니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대 주식 투자자는 1인당 주식 1억 724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1억 원을 돌파한 것이다. 60대가 보유한 주식 잔액은 1인당 1억 1647만 원, 70대 이상은 1억 7168만 원에 달했다.
또, 미래에셋증권이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동학 개미’ 121만 6600명 중 52.8%가 5060세대에 해당했다.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는 50대 이상 시니어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주식 투자 이외에도 새롭게 떠오르는 재테크 방법들이 있다. 시니어들은 주식 투자 대신 어떤 재테크를 하고 있을까?
주식·부동산 대신 나무 키우며 힐링하는 ‘나무 재테크’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나무 재테크'에 대한 시니어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는 하는데, 알고 보니 나무 재테크를 통한 수익만 해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다.
나무 재테크는 나무를 키워 시장의 수요만큼 키운 뒤 차익을 보고 파는 투자 방법이다. 최근 부동산이나 주식 재테크가 예전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대체 수단으로 제시됐다.
나무 재테크를 하려면 최소 5년은 봐야 한다. 그러면 적지 않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인기 있는 품종을 잘만 고르면 일정 기간이 지나 배 이상의 수익도 낼 수 있다. 약 4000원에 에메랄드 그린 묘종을 사서 4년 정도 키우면 품질에 따라 3만~4만5000원에 판매할 수 있다.
묘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씨를 뿌려 모종을 길러 팔거나 다육 식물 등 작은 화분을 만들어 파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식물로 재테크에 도전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인지 은퇴자 또는 귀농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에게 좋은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빌딩 숲 미세먼지 자욱한 도심에서 벗어나 진짜 숲에서 친환경적인 생활을 즐기고 이익도 얻는 ‘일거양득’ 재테크인 셈이다.
다만 환상을 갖고 함부로 뛰어드는 것은 금물이다. 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토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무리하게 토지를 매입하거나 분석 없이 처음부터 과하게 비싼 묘목을 사들여서는 안 된다. 먼저 이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뒤 토지를 매입하거나 빌려서 본인이 잘 관리할 수 있는 식물을 선택하며 추진해야 한다.
샤테크(샤넬+재테크)? 샤넬 가방으로도 돈 벌 수 있다
최근 국내 명품 소비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실제 시니어들의 명품 구매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3~5월 15%에 머물렀던 G마켓과 옥션 5060세대 구매 품목 비중은 2020년 21%까지 올랐다. 매출 비중은 23%에서 25%로 늘었는데, 특히 수입 명품 구매액이 1년 새 24% 급증했다.
최근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인 샤넬 제품을 구매하려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까지 생기며 과열 양상을 보인다. 명품 업체들은 1년에도 4~5차례 가격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구매 제한까지 둔다. 샤넬 클래식 라인은 1인당 1년에 한 개 제품만 살 수 있다. 돈을 지불한다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제품을 구매한 뒤 비싸게 되파는 ‘리셀’ 가격은 더욱 치솟고 있다.
명품 업체들이 계속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명품은 오늘 가격이 제일 싸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샤테크(샤넬+재테크)’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이는 희소성이 큰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구한 뒤 바로 되팔기만 해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차익을 낼 수 있어 5060세대에서도 명품 구매가 하나의 자산 관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상화폐, 돌풍인가 광풍인가
최근 시니어들 사이에서 가상화폐 광풍을 일고 있다. 요즘 주식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가상화폐는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하면 계속하게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는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2030세대는 물론 5060세대까지 뛰어들 정도로 대세 투자상품으로 성장했다. 요즘 시니어들은 젊은이들을 크게 뛰어넘는 시드머니(종잣돈)를 가상화폐 시장에 붓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이해는 젊은이들보다 부족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투자 경험과 든든한 자본력이 밑천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가상 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50대 이상 이용자는 작년 10월 7만6765명에서, 올 4월엔 70만1018명으로 6개월 새 10배 수준이 됐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코인 시장에 뛰어든 장년층은 젊은이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단타 매매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올해 1분기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서 50대와 60대의 매매 횟수는 각각 326번, 292번으로 20대(226번)보다 많았다. 하지만 변동성이 매우 큰 가상화폐에 투기했다가 노후자금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특징이 있으며 코인 열풍에 투자 사기 사건도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근 노후관리에서 상속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시니어 금융 상품이 등장했다. 은행은 나이가 들어 아플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금융 상품과 서비스, 보험업계는 건강 보험 만기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100세 상한을 잇달아 깨고 있다. 액티브시니어를 비롯해 시니어들이 금융시장에서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시니어 금융상품도 진화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지난 14일 내놓은 '하나 Living Trust'는 자산운용기능에 노후관리와 상속 기능까지 추가했다. 통장으로 자산을 굴리다 병을 얻으면 노후관리도 받고, 사후에는 상속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 상품이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질 때를 대비해 자녀 중 한 명을 지급청구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지급청구대리인으로 지정되면 계좌주가 아니라도 맡겨놓은 돈을 찾을 수 있다. 보이스피싱이나 치매로 인한 착오송금을 예방하기 위해 한 달 인출 한도액도 설정할 수 있다.
특정 자산을 상속하고 증여할 수 있는 신탁 상품도 있다. KB국민은행이 내놓은 'KB위대한유산 신탁'은 매달 소액씩 금에 투자해 시니어에게는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 시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증여나 상속을 할 때는 금 실물과 현금 지급 중 선택할 수 있다.
지역 기반 상호금융인 ‘신협’은 시니어 세대 특화 금융상품인 ‘어부바효(孝)예탁금’을 내놓았다. ‘어부바효(孝)예탁금’ 상품은 섬세한 건강 관리가 필요한 시니어들을 위해 대형병원 진료 예약 대행, 치매 검사, 간호사 병원 동행, 간병 서비스 제휴 같은 헬스케어서비스를 제공한다. 월 2회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해 알려주는 전화, 문자 안부 서비스도 포함된다.
다만 기초연금수급자 또는 기초연금수급자의 자녀만 가입할 수 있다. 가입자인 자녀의 연 소득이 5000만 원 이하여야 한다.
보험사들은 가입연령을 확대한 상품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1일 유병자는 물론 고령자도 두 가지 질문만 통과하면 가입할 수 있는 ‘두개만묻는NH건강보험’을 출시했다. 갱신형, 무배당 상품이다. 암, 뇌질환, 심장질환 보험금을 105세까지 보장하는 특약을 결합할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 마지노선으로 알려진 100세 기준을 깬 상품이다.
이 상품은 3개월 이내 입원이나 수술, 추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없고, 5년 이내 암·간경화·협심증·심근경색·뇌졸중을 진단받거나 입원·수술한 기록이 없다면 가입할 수 있다.
오렌지라이프는 지난해 3월에 '종신 만기'로 계약할 수 있는 '오렌지 큐브 종합건강상해보험'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80세나 100세로 제한된 기존 상품과 달리 만기가 제한이 없어 가입자가 150세까지 살 경우 만기가 150세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 주계약은 상해보험이지만 암과 뇌출혈, 급성심근경색, 뇌혈관질환, 허혈성심장질환, 골절깁스, 입원특약, 수술보장특약 같은 시니어에게 필요한 다양한 특약을 결합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는 삼성생명이 지난 9일 기존 ‘GI(일반 질병, General Illness)플러스종신보험’보다 보장을 넓히고 가입연령을 확대한 ‘건강종신보험 대장금’을 출시했다. 기존 상품보다 가입 연령이 6년 이상 늘어 기본형인 1종은 만 15세부터 51세까지, 기본형보다 보험료가 적은 대신 해지 환급금도 적은 2종은 만 15세부터 60세까지 가입할 수 있다.
주보험에만 가입해도 시니어가 많이 앓는 질병인 일명 ‘3대 GI’인 암, 뇌출혈, 급성심근경색 진단을 보장한다. 중증 만성 간 질환, 중증 만성 폐 질환, 광상동맥우회술 등 18대 질병·수술과 장기요양상태(LTC) 1·2등급 등 주요 보장 22개를 종신까지 보장한다.
미래에셋생명이 올해 3월 내놓은 '헬스케어 암보험'도 있다. '헬스케어 암보험'은 암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처럼 나이 들면 걸리기 쉬운 질병에 대해서 진단과 수술, 입원을 보장하는 특약까지 가입할 수 있다. 또 가입 시 원할 경우 종신까지 보장한다.
KB손해보험의 'KB건강보험과건강하게사는이야기'와 'KB암보험과건강하게사는이야기'는 질병 진단비를 110세까지 보장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금융계가 시니어 수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이 시니어 세대에 대한 연구를 더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시니어 대상 서비스와 특화 상품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입사동기와 퇴직연금 계좌를 서로 비교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주로 투자한 A씨와 달리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동료는 A씨보다 적립금이 1000만 원 이상 많았다. A씨는 퇴직연금을 너무 방치해둔 것 같아 우울해졌다.
우리나라에는 A씨 같은 사례가 많다. DC형과 개인형 IRP는 가입자가 투자를 통해 부족한 은퇴자금을 보완하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대부분 원금보장형 상품 같은 저수익 자산에 투자한다. 원금보장형 상품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반면, 실적배당형 상품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지 않은 사례가 많아서다. 그런데 최근 국내 경제 발전과 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에 실적배당형 상품을 얼마나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세계 주요국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 ‘401K’는 2019년 말 기준 주식형 펀드 59%, 혼합형 펀드 28%, 채권형 펀드 11%, 단기금융펀드(MMF) 2%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주식 비중만 따지면 60~70% 정도다. 흔히 60% 이상이 주식에 투자된 펀드를 주식형 펀드, 60% 이상이 채권에 투자된 펀드를 채권형 펀드라고 한다. 혼합형 펀드는 주식과 채권을 혼합한 펀드다.
글로벌 금융기업 UBS에서 확인한 영국의 퇴직연금 역시 자국 주식 16%, 해외 주식 29%로 위험자산 비중만 45%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지난해 5월 말 기준 국내 주식 17%, 해외 주식 22%이다. 헤지 펀드 같은 대체투자 12%까지 합치면 위험자산 비중만 51%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퇴직연금 운영 상황은 이와 조금 다르다.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지난해 말 국내 퇴직연금 운용현황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은 수익률 10.67%를 기록했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DC형과 개인형 IRP가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DC형 퇴직연금에서 실적배당형 비중은 16.7%, IRP도 26.7%로 낮은 수준이다. 실적배당형 상품이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어도 절대적인 비중이 작아서 가입자가 수령할 퇴직연금이 크게 늘지 않은 셈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채권형 펀드 13조9000억 원, 주식형 펀드 8조6000억 원이다. 더구나 DB형을 제외하면 실제 DC형과 IRP의 주식형 펀드 평가금액은 약 7조9000억 원이다. DC형·IRP 총 평가액 101조6000억 원 중 8%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한 직장인의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금이 1억 원이 있다고 가정하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한 금액이 800만 원 미만인 셈이다.
투자로 수익을 내서 퇴직연금을 불리고자 한다면 주요 선진국 퇴직연금과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투자전략을 따를 필요가 있다. 무작정 주식 비중을 늘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보통 젊었을 때는 손실을 봐도 다시 일하면 되기 때문에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간다. 하지만 노후 자산으로 투자할 때는 안정성도 중요해진다. 적합한 비중을 찾기 위해선 연금시장에서 인기 있는 펀드인 ‘TDF(Target Date Fund)’를 참고하면 좋다.
TDF는 은퇴 시점을 설정해놓고 초기에는 위험 자산 비중을 높였다가 점차 줄이면서 관리하는 자산배분형 펀드다. 모든 TDF는 이름에 연도가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2040년이 은퇴 시점인 사람에게는 이름에 ‘2040’이 포함된 TDF펀드 비중을 높이는 것이 적합하다.
투자 상품을 직접 선택할 때는 안정적 상품인 ‘상장지수펀드(ETF, Exchange Traded Fund)’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은 장기투자로 시장수익률을 달성해야 한다. 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두려움도 문제지만 시장수익률을 초과 달성하려고 하면 원금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ETF는 기초 지수 성과를 따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퇴직연금으로 투자하기에 알맞은 상품이다.
ETF는 코스피와 나스닥 같은 주가 지수의 성과를 따라가는 펀드를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한 상품이다. 적게는 10개 내외, 많게는 400개가 넘는 회사 주식으로 구성된 '묶음 상품'이다. 개별 회사에 악재가 발생해도 크게 요동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최근에는 IRP 계좌를 활용한 해외 ETF 투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나스닥 100ETF, 중국 전기차 ETF 등이 대표적이다. IRP 계좌로 해외 ETF에 투자하면 절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ETF에 대해서는 증권사 일반 계좌와 IRP 계좌 모두 매매차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반면 해외 ETF를 증권사 일반 계좌로 매매하면 차익에 15.4% 세금을 부과한다. IRP 계좌로 해외 ETF를 매매하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IRP 계좌를 통한 해외 ETF 투자가 느는 추세다.
투자 가능 상품도 다양하다. IRP는 예금과 금리형 보험 등 원금 보장 상품뿐 아니라 ETF와 실적배당 보험, 상장지수증권(ETN), 리츠(REITs) 같은 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다.
다만 해외 거래소에 상장된 ‘역외 ETF’는 IRP 계좌로 투자할 수 없다. 주가 지수의 2배 수익을 내거나 2배 손실을 보는 레버리지 ETF, 기초지수가 떨어지면 수익을 내는 인버스 ETF에도 투자할 수 없다. 위험자산 비중이 70% 이내로 제한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2020년 노인들은 소득이 2008년에 비해 2배 이상 늘면서 경제적 자립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노인도 2배 이상 늘었으며, 만족스럽게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인 비율도 오르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정보화 기기 이용률 격차도 커 문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보건복지부가 노인 가족과 사회적 관계, 건강과 경제 상태, 여가와 사회활동 등을 조사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3년마다 실시하는 이 조사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전국 969개 조사 지역에서 만 65세 이상인 노인 1만97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근로소득 4배, 사업소득 2배 늘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2020년 노인들의 연간 개인 소득은 1158만 원으로 2008년 700만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올랐다. 소득원을 살펴보면 근로소득이 2008년 6.5%에서 2020년 24.1%로 4배 정도로, 사업소득은 6.9%에서 11.0%로 2배 가깝게 늘었다. 반면 사적이전소득이 46.5%에서 13.9%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공적이전소득은 28.4%에서 27.5%로 소폭 감소했다.
사적이전소득은 가족이나 친인척 등으로부터 받는 생계비 보조금을, 공적이전소득은 노령연금과 기초연금 등을 말한다. 2008년에는 절반 정도의 노인들이 자녀나 친인척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2020년에는 10명 중 1명 정도로 줄어든 대신,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이 4명 중 1으로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율도 2008년 30%에서 2020년 36.9%로 증가했다. 65세에서 69세까지는 절반 이상인 55.1%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73.9%의 노인들이 일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로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라고 대답해 10명 중 7명이 생계 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직업은 단순노무직이 48.7%로 가장 많았고, 농어업 13.5%, 서비스근로자 12.2%, 고위임원직관리자 8.8%, 판매종사자 4.7% 순이었다. 특히 10명 중 1명 정도가 기업에서 대표나 고위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노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국민들의 자신 비율에서 부동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노인들은 특히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가구 대부분인 96.6%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금액 기준으로는 가구 평균 2억6182만 원이었다. 또 금융자산을 보유한 비율은 77.8%로 평균 3212만 원을, 기타 자산으로 1120만 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동산이 자산에서 86.8%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성이 심했다. 반면 노인 4명 중 1명꼴로 빚을 지고 있었는데, 평균 금액은 1892만 원이었다.
노인들의 주택 소유 현황은 자가 비율이 79.8%로 10명 중 8명이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48.4%, 단독주택 35.3%, 연립과 다세대주택 15.1%, 기타 1.2% 순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 처음으로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노인들의 아파트 거주 비율도 젊은 사람들과 비슷한 것으로 분석된다.
간강한 노인 늘고, 우울한 노인 줄고
노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노인은 2008년 24.4%에서 2020년 49.3%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건강이 좋지 않다고 응답한 19.9%보다도 2배가 넘는 비율을 나타냈다.
또 우울 증상을 보이는 노인 비율은 꾸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우울감을 보이는 노인 비율은 13.5%로, 2008년 30.8%, 2017년 21.1%보다 크게 줄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노인 74.1%는 노인에 대한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또 노후와 생애 말기에 찾아올 좋은 죽음(웰다잉)에 대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0.6%로 가장 많았다. 이런 맥락에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임종과정 기간만 연장하는 연명의료에 대해 85.6%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은 2008년 81.3%에서 2020년 84.0%로 소폭 증가했으며, 노인 1인당 1.9개의 만성질병을 앓고 있었다. 이중 고혈압이 56.8%로 가장 높았고, 당뇨병 24.2%, 고지혈증 17.1%, 골관절염 또는 류머티즘관절염 16.5%, 요통과 좌골신경통 10.0%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취미나 여가 활동을 꼽는 노인 비율이 37.7%로, 경제활동 25.4%, 친목 활동 19.3%보다 높았다. 노인 단독가구는 2008년 66.8%에서 2020년 78.2%로 증가한 반면,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 가구는 2008년 27.6%에서 2020년 20.1%로 계속 줄고 있다. 자녀와 함께 사는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도 2008년 32.5%에서 2020년 12.8%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한편 65~69세 노인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등 정보화 기기 사용 역량도 높아지고 있었다. 비교적 연령대가 낮은 65~69세 노인들은 문자 주고 받기 외에도 40.8%가 SNS, 25.2%가 금융기능을 이용하며 비교적 높은 정보화 기기 사용 역량을 보였다.
하지만 70세 이상부터는 SNS 이용률과 금융거래서비스 이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여전히 노인들은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정보화 기기 이용에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감정평가사 시험에서 최고령 합격자가 탄생했다. 최기성 감정평가사(67)로, 합격 당시 나이는 65세였다. 그는 그해 11월 삼일감정평가법인에 입사했다. 실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으로 오래 일했던 그. 직무상 대통령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미소조차 잘 짓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감정평가사로서 현장에 나가 감정평가를 하고, 영업을 하고, 연신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인다. 2년 차에 접어든 새내기 감정평가사를 만났다.
최기성 감정평가사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7시였다. 그때도 삼일감정평가법인 사무실에는 여전히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여러 감정평가사들의 책상 사이로 그의 자리와 뒷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한창 업무 중이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기자를 만나러 오는 와중에도 동료 평가사와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바빠 보였다. 주변의 다른 직원들은 언뜻 보아도 그보다 한참은 어린 듯했다. 그 속에서도 그는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에게서 나이에 따른 이질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새내기가 되다
그는 감정평가사 실무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수습 생활을 갓 마치고 인터뷰 날부터 사인 권한이 생겼다. 그날 처음으로 평가서에 자신의 사인을 했다. 보람이 남다른 하루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 일을 마저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 자정께에 퇴근했단다. 요즘 일이 많아졌다고. 의뢰받은 일을 기한에 맞추어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많을 때는 이처럼 야근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시에 퇴근한다. 한 달에 야근하는 횟수는 절반 정도. 인터뷰 날에는 강북구 우이동과 수유동에 있는 현장 두 곳에 다녀왔단다. 그야말로 한창 현역이자 전성기를 살고 있는 이의 모습, 갓 수습 딱지를 뗀 새내기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는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희를 목전에 둔 터라 체력에 무리는 없을까 싶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받쳐주는 편이라,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부진 그의 체격을 보니 마음은 물론 몸에도 견고하게 쌓인 내공이 보였다.
오히려 그는 감정평가사로 일하며 ‘워라밸’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주말도 없이 일했다.
“대통령이 오더를 내리면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서 원장님한테 보고하고, 원장님은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일했죠. 남북 행사 있으면 통일부랑 같이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유일한 틈이 토요일 오전 일찍 골프 한 번 치는 거예요. 그렇게 스트레스 풀고 들어와서 일하고, 일요일도 일하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고 휴가나 여가는 생각도 못 했죠. 지금은 일이 있으면 며칠 밤을 새서라도 기한에 맞춰 납품해야 하지만, 일 없으면 정시에 퇴근하고 굉장히 자유로워요. 주말에도 쉬고.”
그는 성공적인 공직 생활을 했다. 198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가정보원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1급 관리관에 해당하는 실장까지 오르고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표로 참여하는 등 요직을 거쳤다. 퇴직 후에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주식회사, 국가 안보 관련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원의 이사직을 역임했다.
전 직장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된 그에게 고충을 물으니, 첫째로 꼽은 게 오피스 프로그램이었다.
“엑셀이나 워드를 전에는 다루지 않았어요. 여기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평가서를 만드는 게 기본이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고유 프로그램들이 있으니까 익히는 데 되게 힘들었어요. 공직 시절에는 만들어진 보고서를 검토하고 사인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제가 직접 다 작성하죠. 모르면 선배들한테 물어가며 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워드 엄청 잘해요. 회사 결정되고 나서 유튜브 보면서 연습하긴 했는데, 실무는 또 다르더라고요. 직접 부딪히고 시행착오 거치면서 하나씩 발전해나갔죠. 거기서 오는 성취욕도 있었고요. 지금은 웬만한 건 다 합니다.”
오랜 공직 경험이 주는 장점도 있다. 온갖 일을 다 겪었으니 웬만한 일엔 떨지도 않고 담담하다. 사회 초년생보다는 사람 대하는 기술도 노련하고, 평생 일하면서 보고서와 씨름했기 때문에 평가서를 보는 눈도 깊다. 단지 워드 프로그램 같은 고유한 틀에 익숙해지기까지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사람 관계다. 젊은 직원들과는 다르게 탄탄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회사에서도 그런 인맥을 활용하길 기대한다. 그렇기에 그의 경력을 감안해 고문 직함을 주었다.
“우리처럼 나이 들어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인맥이 제일 큰 장점이에요. 회사에서 장년층 직원을 뽑는 것은 일도 일이지만 영업적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일을 따오기도 하면서 제 역할을 해내는 거죠. 그래도 쉽지는 않습니다. 옛날하고 다른 측면이 있어요. 부탁하기도 쉽지 않고요. 불공평한 레이스라고 할까, 그런 걸 요즘은 다들 싫어하니까요. 저 자신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하죠. 사회 친구들이 은행 같은 곳들 소개해줘서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상태예요.”
그는 공직에 있을 때 오직 국가를 위해서 일했다. 국가 안보와 국익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지금 있는 곳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그는 두 조직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에 대해 평가하기 때문에 객관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해요.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준 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국가 경제하고도 연관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담보 평가만 해도 이해관계인이 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과 금융기관이죠. 우리가 평가를 잘못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으면 그 영향이 개인뿐 아니라 은행에도 미치고, 그게 국가 경제에까지 영향을 줘요. 과대평가를 하면 경제 질서를 흔들 수 있거든요. 그만큼 공공성이 가미된 일이에요.”
그가 몸담고 있는 삼일감정평가법인 역시 공정성을 지키며 신뢰받는 곳이다. 철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부실한 감정평가를 미연에 방지한다.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15개 공시전문평가법인 중 하나로, 부동산 감정평가뿐만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기업 가치평가, 무형자산 평가, 공적 평가 등에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종합 부동산 서비스 회사다.
나를 바꾸는 시간
그는 ‘슈퍼 갑’으로 수십 년을 살다 이제는 ‘슈퍼 을’이 되었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머리 숙여본 적 없어요. 대통령이 와도 고개만 까딱하는 문화였어요. 아쉬운 게 없었어요. 남한테 부탁할 이유도 없었고요. 그런데 여기는 수주를 해야 되잖아요. 젊은 사람들한테 고개 숙이고 들어가서 영업도 해야 하고. 완전히 을이에요.”
어깨 힘을 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내도 항상 “당신은 슈퍼 을이니 그런 자세로 대처해라”고 조언한단다.
“그 물을 빼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상처받기도 하고. 저도 나이가 있는데, 제가 존대를 했는데 상대가 얕보면 기분이 나빴죠. 마음 삭여가면서 일해서 지금은 많이 순화됐어요.”
체질과 습관을 바꾸고, 냉대에 마음 아프던 시간을 감내하면서 사는 그를 보며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는 지난 공직 생활만으로도 경제적인 노후 대책은 이미 완비했다. 이 일을 생계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충까지 참아가면서 하는 이유는 뭘까?
“제가 퇴직할 땐 골프 치고, 등산 가고, 그런 생활을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그런데 아내가 이 일에 도전해보라고 권했어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남은 인생이 수십 년인데 아무 일도 없이 그렇게 사는 게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옛날보다 평균 수명이 늘었잖아요.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80~90세는 거뜬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단언한다. 일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사회생활인데 내 위치에 맞게 스스로 행동을 조절해야죠. 제가 고위직 출신이라고 어깨에 힘주면 밖에서 누가 알아주나요? 내가 숙여줘야 저쪽도 마음을 열죠. 그래서 지금은 아내 말 잘 들었다 싶어요. 아침에 가방 들고 출근하는 행복이 말도 못 해요. 남들은 다 오늘 뭐하지 하는데, 저는 맡겨진 일 하면서 활기차게 살잖아요. 사회적인 고충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병아리가 어미닭이 되기까지의 과정 중 하나니까 전혀 개의치 않아요. 감정평가사는 변호사나 변리사와 맞먹는 전문직이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고, 지금이라도 내 사무소를 개업할 수 있어요. 최고의 직업이죠.”
그는 인생을 통틀어 고시에 두 번 합격했다. 행정고시와 감정평가사 시험. 두 시험 공부할 때를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가 기억력이다.
“행시 준비할 때는 젊은 시절이라 머리가 좋았죠. 한데 지금은 기억력이 안 따라줘요. 공부하고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서 답을 못 쓰겠더라고요. 애 많이 먹었죠.”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고시촌에서 명운을 건 심정으로 전력투구하며 공부했다. 반면 감정평가사 준비는 달랐다.
“친구들과의 골프, 자전거 라이딩, 저녁 약속을 다 마다하기엔 삶이 너무 황폐해지는 듯했어요. 먹고살 게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틈틈이 공부하다 보니 준비 시간이 길어졌죠.”
6년이라는 긴 수험 생활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패혈증에 걸려 8개월을 투병하기도 했다.
“아내가 후회를 많이 하더라고요. 가만있던 사람 괜히 들쑤셔서 고생시켰다고요. 공부 좀 잘할 줄 알고 해보라 그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던 거죠. 게다가 패혈증까지 걸렸으니까요. 치사율이 50%인 질병이에요. 낫고 나니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기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생각은 한 적 없었다.
“만약 내가 죽거든 공부하던 책 같이 넣어서 태워달라고 했어요. 중간에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한이 돼요. 또 포기한다고 달리 할 것도 없었고요. 끝까지 가기로 맘먹었지요. 그러니까 결국 결실을 맺었죠. 포기를 안 하면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제 철학이에요.”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
함께 일하는 평가사들은 모두 그보다 한참 연배가 낮다. 나이가 많아도 40~50대. 함께 입사한 동기는 36세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노하우가 있을까?
“마음을 열어놓아야 돼요. 나이 들수록 아집이 생겨요. 몸에 밴 습관이 있어서요. 항상 오픈 마인드로, 낮은 자세로.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다가와요. 내가 나이 들었다고, 왕년에 어땠다고 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있으면 아무도 접근 안 하죠. 그럼 저만 손해예요. 외롭고. 그래서 항상 젊은 사람들 말을 많이 경청해요. 또 저는 말 안 놓고 깍듯이 대해요. 그리고 선배들한테 많이 의존해요.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면 다들 친절하게 잘 알려주세요. 이따금 실수하면 대신 잡아내서 고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항상 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러죠.”
그는 슬하에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은 20대, 아들은 30대로 한창 직장 생활 중이다. 자신들과 다름없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보며 무척 좋아한단다.
“공부할 땐 둘이 의견이 달랐어요. 아들은 제가 혹시 공부하다 잘못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만하길 바랐고요, 딸은 ‘아빠, 공부 안 하면 뭐하실 거예요. 계속하세요’ 했어요. 요즘은 둘 다 너무 좋아해요. 대화도 잘 통하고요. 저도 젊은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사니까 딸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요. 딸이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 얘기해주니까 도움 많이 받죠.”
그에게 자극받아 함께 도전한 친구도 있다. 그보다 여덟 살 어린 행시 동기가 자신도 도전해도 되겠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흔쾌히 하라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저는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어요. 이 친구한테는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도와줬죠. 친구는 작년에 합격해서 지금 법인에 다니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그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새 삶을 찾아 나선 이가 많다. 그에게 도전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더 길어질 거예요.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는데, 퇴직하고 나면 앞으로 그만큼이 또 남는 거예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거죠.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든, 취미를 발전시키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죠.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도전해야 해요. 그래서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기자를 바깥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는 매너가 좋았다. 연신 미소를 띠며 일상적인 대화와 소소한 칭찬을 건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가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떤 노고가 있었을지 가늠되어 새삼 특별하게 와 닿았다. 우여곡절도 겪었고 고충도 있지만 새 직업을 갖게 된 기쁨, 아침에 출근해 일할 곳이 있다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그. 2년 차 새내기 최기성 감정평가사의 앞날을 응원한다.
일 년 중 두 농작물을 한 농장에서 재배하는 농법을 2모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여름에 벼를 재배해 가을에 수확하고, 그 자리에 보리를 봄까지 재배하는 것이다. 기후가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는 3모작도 가능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은퇴를 기점으로 새로운 인생 농사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구자삼(72) 전 수원과학대 교수는 증권업계에서 첫 인생 농사를 짓고, 퇴직 후 대학교수로 2모작을 했다. 한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해외에 자문관으로 파견되어 3모작을 했고, 이제는 4모작을 거두려 한다.
구자삼 전 교수는 현역 시절 증권업에 종사했다. 대우증권에서 런던 현지법인 사장, 국제본부장을 역임했고, 투자신탁회사 대표로도 일했다. 55세에는 증권계에서 은퇴하고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학위를 취득한 뒤 수원과학대 교수가 되었다. 65세에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후에는 코이카(KOIKA), 나이파(NIPA)의 해외 중장기 자문단으로 미얀마, 몽골에 파견되어 개발도상국 정책 자문을 했다.
“미얀마 사가잉협동대학에 파견되었을 때가 66세, 몽골 금융감독원에 파견되었을 때가 69세였어요. 은퇴해도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져 감사했지요. 미얀마에서 열정적인 현지 교수들을 보면서 1970년대 힘들고 어렵던 시절의 나를 보는 듯했어요. 그래서 더욱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더라고요.”
이 나라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니 애정이 커졌다. 자신이 주재하는 세미나를 통해 한 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뿌듯하고 보람이 컸다. 그는 이를 통해 깨달았다. 은퇴 후에는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줄 때 기쁨이 더 큰 듯하다고. 이렇게 3모작을 마친 그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며 인생 4모작을 시작했다.
은퇴자 맞춤형 자산 운용 방안의 필요성을 느끼다
“은퇴한 60~70대의 자산 운용 방안에 관해 책을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저와 은퇴자들의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요.”
그는 ‘개인 재무설계의 이해’, ‘100세 시대의 재무설계와 자산관리’라는 책을 공저했다. 대학 교재용 이론서였다. 이 책들을 쓰면서 은퇴와 삶에 관해 깊이 생각했다. 일반인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풀어 쓴, 은퇴자의 자산 운용에 도움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은퇴 후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려면 경제적 자유가 밑바탕이 되어야 해요. 금리가 1% 내외인 상황에서 자산 운용에 걱정이 많은 분들, 실제로 증권 투자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더라고요. 요즘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투자도 활성화되어 있고요. 경험이 적은 은퇴자들이 위험 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요. 수익과 리스크 요인을 이해하고 투자해야 안전하거든요. 책을 써서 이들을 위한 자산 운용 방안을 안내해보려 해요.”
그는 은퇴자의 투자는 현직자의 투자와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금융에는 ‘리스크 앤드 리워드’(Risk and Reward)라는 말이 있다. 리스크를 많이 감수할수록 이익이 커진다는 의미다. 은퇴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은퇴자는 손해를 크게 보면 안 돼요. 그건 곧 많이 벌 수도 없다는 뜻이에요. 투자 규모는 전체 자산에서 10~20%가 적당하다고 봐요. 위험 없이 얻는 수익은 적어요. 조금 벌어도 돼요. 손해를 보더라도 미미하게, 이익은 적더라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해요.”
최근 주식 시장에는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어서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식 투자에 나선다. 그는 이 현상을 보면서도 은퇴자를 위한 올바른 투자 정보의 필요성을 느꼈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 급성장기에서 최근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주식 사이클이 변화하면서 늘 부의 재편이 있었어요. 이것은 돈의 흐름의 결과예요. 주식은 위험 자산이에요. 이를 다룰 줄 아는 나름의 전문 지식과 사이클 이해가 필요하지요. 투자 열풍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를 쌓을 좋은 기회지만, 어떤 사람은 그냥 투기라고 생각해 기회를 놓치지요. 잘못하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것도 현실이에요. 최근의 주식 열풍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발생할 기회이자 트렌드일 뿐입니다. 투자 경험과 통찰력만이 해답을 줄 거예요. 이를 이해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은퇴자들에게 보탬이 될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당신을 찾는 이들이 있다
그는 은퇴가 인생의 가을이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겪는 변화지만, 은퇴에 다소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생각만 하다가 실제로 닥치면 당황하기 일쑤. 그는 은퇴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맞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퇴 후의 삶을 소풍이라 여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가길 권했다.
“은퇴 후의 삶을 품격 있게 이어나가려면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해요. 세상일에 계속 관심을 갖고, 변화를 읽고, 그에 대응하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해요. 눈을 감아버리면 다가올 미래가 보이지 않고, 행동할 수 없어요. ‘잘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 자체가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가 깨어 있기 위해 실천하는 일이 주식 투자다. 세상 물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주식 가격은 세상의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형성되고,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등락이 결정돼요. 나이가 들수록 정보 교환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을 체감하기 어려운데, 주식 투자가 뉴스를 빨리 이해하고 세상사를 읽는 데 도움이 돼요.”
은퇴 후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권했다.
“은퇴자가 하려는 분야는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기 마련이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관점을 바꾸면 기회가 있다는 게 제 믿음이에요. 국내가 아니라 개발도상국 같은 해외에서 찾으면 쉬워요. 그들은 우리나라가 1990년대 중후반에 하던 일을 지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뭘 하면 돈을 벌지 딱 보여요. 옛날에 다 한 거니까요. 그러니 쉽게 일거리를 찾고 적응할 수 있지요. 또는 일정 수준의 보수를 받지 않고, 봉사 차원에서 전문적인 일을 해주면 환영받을 거예요. 상대방이 내 일에 만족하면 그다음 기회가 와요. 현재에는 없는 직업이나 분야를 새로 만드는, 이른바 ‘창직’을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 역시 은퇴 전후 달라진 점을 일의 목적과 보상 측면에서 꼽았다. 국제 부문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는 점은 같다. 다만 증권업계에 종사할 때는 주로 선진국에서 더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경쟁하며 일했지만, 은퇴 후에는 보수나 수익은 접어두고 개발도상국에서 봉사 차원으로 일했다.
그는 은퇴자들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꼭 하고 싶고 열정이 있는 일을 한두 가지만 찾아보길 권했다. 그걸 정하고 준비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하라는 격려도 전했다.
“보통 1~2년은 새 길을 찾으려고 열심히 해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발견하지 못하면 대개는 포기하더라고요. 계속 찾으면 기회가 온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면서 자꾸 기회를 찾아보세요.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어딘가에는 열심히 일한 당신을 기다리는 곳이 있어요.”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빈곤을 벗어나 이만큼 살아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도울 차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계획하는 4모작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하려 한다.
“은퇴 후 제 삶이 도전의 연속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저 나를 도와준 손길에 보답하기 위해서 한 거예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봉사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열과 성을 다해 할 생각입니다.”
한때 ‘대우맨’이었던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말을 몸소 실천하며 산다. 국내에서,해외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하려고 늘 준비하고, 기회를 찾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으면 주저 없이 찾아갔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찾으면 기회가 있다”는 그의 말에 신뢰가 갔다.
그는 해외에서 한 번쯤 더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남미나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고 싶다고.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해외 활동이 중지된 상황.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지난날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했고, 눈빛은 반짝였다. 여느 청년보다 더 젊고 생기 있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자, 멈추지 않는 자, 기회를 찾고 취하는 자,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자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