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지를 앞에 두고 잠깐 서 있었다. 천보산 기슭 아래 들판처럼 광활한 면적 위로 겨울이 지나가는 중이다. 조선 시대 최대 규모 사찰이던 회암사가 있던 곳, 회암사 절터에는 군데군데 아직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그늘이 드리운 땅에는 녹지 않은 눈이 제법 하얗다. 여전히 쨍한 찬 기운을 제대로 맛본다. 머릿속이 시원하게 헹구어지는 느낌이다.
치유의 궁궐 회암사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딛고 있었던가. 그 옛날 건물만 262칸이었다던 조선시대 사찰 회암사가 있었던 회암사지에는 찬 공기를 실은 바람이 가끔씩 지나간다. 당시 승려만도 3000여 명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하니, 지금이어도 엄청난데 그 시절 대찰의 면모를 가히 짐작해볼 만하다.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 14-1번지 일원, 천보산이 둘러싼 ‘회암사지’ 절터는 역사 속에서 잊혔던 곳이다. 그러다 1997년 이후 지속적인 발굴 조사와 작업 과정에서 사찰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위상을 알 수 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절터의 제1권역부터 제2, 제3… 권역의 상세한 안내판이 여기저기 친절하다. 회암사지 사리탑은 물론이고 연못지와 우물지, 화장실 터까지 규모를 상상하고도 남을 만하다. 현재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 있지만 천보산 아래쪽 계곡을 메워 계단식 석축을 쌓아 건물 구역을 조성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구역별 건물지도 발견되었다. 회암사지를 둘러보다 보면 거대한 석축과 반듯반듯하게 배치되었을 건축 형상에서 품격이 느껴진다. 당대의 석공들이나 장인들이 이 절에 들인 공력조차 느껴질 정도이니 당시의 면모가 감히 가늠된다.
화암사지 중심에서 벗어나 산기슭 바로 아래에 위치한 회암사지 부도탑,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으로 추정하는데 사리탑(舍利塔)은 대체로 온전하게 남아 있어 귀중한 석조 유물로 전해진다. 특히 조선시대 부도 양식으로 건립된 사리탑 중에서 정교함과 화려한 조각 문양으로 수작이라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조형물이다.
사리탑 앞에서 너른 회암사지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서니 멀리 도심의 높은 건물과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를 두고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최대의 왕실 사찰이었던 회암사지는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1만여 평의 회암사지를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거대한 규모와 불교 문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회암사지를 내려오는 길목에 세워진, 회암사를 찾는 태조의 행차 장면 모형에서 이곳의 위상을 또 한 번 느낀다.
문화재 간직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지에서 발굴·출토된 유물들을 전시 중인 박물관이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유물 전시 및 교육을 비롯해 쉼터 역할도 하는 등 친화적인 분위기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듯한 지역민들이 방문자센터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 대규모 절터 옆의 박물관이 주민들과 친근하게 이어진 모습이 보기 좋다. 박물관 안에서는 옛 복장을 한 아이들이 놀이하듯 교육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지공·나옹·무학의 천년 고찰 회암사(檜岩寺)
회암사지에서 고개를 들어 보면 멀리 회암사 일주문이 보인다. 자동차로 5분쯤 달려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천보산회암사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 옆으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 삼대 화상 수행성지라는 팻말이 조그맣게 세워져 있다. 현재의 회암사는 옛 회암사의 삼대 화상 묘탑(廟塔)을 지키기 위한 작은 암자 터에 세워진 공간이라는 설명도 있다. 삼대 화상의 묘탑과 가람을 수호하고 수행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회암사다.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장대했던 대규모 사찰이 폐사되고 초석만 남아 있던 곳이었다. 200년 동안 엄청나게 번성했던 회암사는 그 시절 전국을 다니다가 만나는 승려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대부분 회암사에서 왔다고 할 만큼 승려 수가 많았다고 전한다. 이제는 지공·나옹·무학 세 승려의 부도와 비(碑)를 중수하면서 옛터의 오른쪽에 작은 절을 지어 회암사의 절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사찰이 넓진 않아도 천년의 문화유산이 숨 쉬는 듯 따뜻하고 고색창연하다. 대웅전 마당 옆으로 난 산길을 몇 걸음 옮기면 지공선사의 부도 및 석등, 나옹과 무학의 사리탑이 나란히 앉혀져 있는 언덕이 있다. 비탈진 사찰을 천천히 오르면서 그분들의 수행 향기를 느껴볼 만하다.
현재 회암사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맑은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시간은 진정 힐링일 것이다. 절의 격이 느껴지는 산사에서 마음을 열고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수 있다면 선물 같은 시간이 될 듯하다.
역사·문화 도시 양주에서는 또한 이 지역 출신 예술가들을 위한 기획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권율장군묘역이 있는 권율로를 달리다 보면 두 개의 미술관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이 도로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기획 전시도 진행하는 중이다.
화가 장욱진과 조각가 민복진의 예술 속으로
장욱진 화가의 그림 내용은 우선 가족이다. 그리고 나무, 새, 아이 등 일상의 소재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그 속에는 자연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본질이 담겼다.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장욱진의 미술관은 조각상이 전시된 공원을 지나서 들어간다.
전시장을 돌다 보면 그림마다 가족이 등장한다. “나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가족을 통해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라고 했듯이. 이렇듯 전시장의 그림마다 화가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영상을 통해 그의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심플하다”는 화가의 말처럼 자연 속에서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특히 미술관 건물은 화가의 그림을 모티브로 설계된 새하얗고 독특한 구성의 건축으로 눈길을 끈다. 2014년 김수근건축상을 받기도 했다.
건너편의 민복진미술관은 입장 티켓 한 장으로 장욱진미술관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1층의 기획 전시를 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민복진 조각가의 현대 조각이 가득 차 있다.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조각 작품과 빛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역시 가족과 어머니와 인류에 대한 사랑이 주제다.
돌아오는 길에 장흥면 방향으로 위치한 간이역 일영역을 거쳐서 오는 건 어떨지. 마침 노을이 내리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폐역이 된 일영역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 알려졌는데, 이제는 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아련한 레트로 감성의 폐역을 거쳐 오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다.
당일 코스로 역사와 문화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경기도 양주의 하루는 풍성하다. 꽃잎이 날리는 봄·가을의 나리공원이나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출렁다리, 양주 별산대 놀이마당, 수목원이나 아트파크의 즐거움을 누릴 계절도 있다. 봄을 앞둔 시절에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림과 조각 작품의 예술에 깊이 빠져보는 것, 참 감사할 따름이다.
피규어, 프라모델, 인형 등 수집을 취미로 가진 키덜트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철없어 보이고, 쓸데없이 돈만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키덜트의 수집 활동은 단순히 모으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수집을 통해 누군가는 과거를 향수하고, 누군가는 삶의 활력을 얻는다. 천안에 사는 허지연 씨는 수집한 인형을 전시하는 ‘엄마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허 씨에게 엄마놀이터는 힐링 공간이다.
천안에 있는 엄마놀이터. 외관은 평범해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형이 사는 세상이 펼쳐진다. 1960년대 빈티지 인형부터 바비, 한국 인형 연지까지 2500개 이상의 인형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인형의 국적도 다양하다.
엄마놀이터는 하루에 두 팀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1만 원이다. 보통 네이버 블로그(ID : 우유둘맘)를 통해 손님을 받는다. 인형은 수집·전시용이며 판매되지 않는다. 허지연 씨는 전시관장이자 큐레이터로서 손님에게 두 시간 넘게 인형에 대해 설명해준다.
인형 수집가 넘어 큐레이터로
허지연 씨는 인형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쁜 인형을 하나둘 모으다 보니 현재에 이르렀다. 8년 전 바비 플라워 클래스를 들은 것이 계기였다. 바비 플라워란 조화를 이용해 바비 인형의 드레스와 액세서리 등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손길을 거쳐 더욱 예뻐지는 바비 인형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허지연 씨의 플라워 작업이 이어지면서 바비 인형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허 씨의 남편은 인형을 모을 공간을 따로 마련해줬다. 그러자 그는 인형을 본격적으로 모으고 싶어 빈티지 인형으로 수집 영역을 넓혔다.
“저는 원래 수집을 좋아했어요. 인형 전에는 크리스 베어를 모았죠. 돈이 많아서 수집하는 것은 아니에요. 워낙 예쁜 것을 좋아하고, 남한테 피해 안 주는 선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전 운동화도 짝짝이로 신어요. 인형 수집도 그 일환이죠.”
허지연 씨가 인형을 모으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인형을 출시된 상태 그대로 복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인형의 역사와 스토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보를 찾아본 뒤 인형에게 옷을 되돌려주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주기도 한다. 인형 진열도 콘셉트에 맞춰 되어 있는데, 작은 소품에도 손길이 묻어난다. 그 모든 과정이 허지연 씨에게 즐거움과 뿌듯함을 안겨준다.
“어떤 인형을 구하면 특징, 원래 있던 액세서리 등을 다 알아봐요. 1960년대 빈티지 인형은 관련 정보가 담긴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사서 공부하죠. 제가 또 기억력이 좋거든요. 손님들에게 인형의 이름, 출시 국가와 연도 등 정보를 줄줄이 설명해드립니다.”
허지연 씨는 자신에 대해 “키덜트보다는 인형 큐레이터에 가까운 것 같다. 넓은 개념으로 보면 키덜트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그는 “인형은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그렇지만 인형 놀이를 하거나 인형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형과 함께하는 1억 기부 목표
엄마놀이터는 허 씨에게 혼자 소소하게 노는 공간이었다. ‘엄마놀이터’라는 이름은 아이들이 지어줬다. 처음에 작은 공간이 생겼을 때, 아이들이 “엄마도 놀이터가 생겼네. 엄마가 좋아하는 인형이랑 재밌게 놀아”라고 말했다고.
“엄마놀이터 자체가 저에게는 힐링이에요. 아무 구애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집과 가까워서 매일 오는 편이에요. 우리 인형 애들 잘 있나 얼굴만 보고 가기도 하고요. 한 시간 동안 멍만 때리다 집에 갈 때도 있어요. 제 공간이 생기니까 밖에 덜 나가게 되고 찻값도 절약하게 됐죠.”
허지연 씨가 엄마놀이터 방문객을 하루에 딱 두 팀만 받는 이유도 그 연장선이다. 수입을 목적으로 엄마놀이터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세 아들의 엄마이자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받은 입장료를 임대료로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사실 어림도 없죠. 임대료는 남편이 내줍니다. 제가 임대료를 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어요. 저는 아이들한테 사교육을 안 시키고 제가 다 가르쳐요. 임대료는 저의 휴식 값이죠.”
허지연 씨는 어린 시절부터 하던 기부와 봉사활동을 인형과 결합했다. 입장료 기부는 물론 기부금이 필요할 때는 인형을 팔아서 돈을 모은다. 아동시설에 인형을 기부하기도 한다. 최종 목표는 죽기 전까지 1억 원을 기부하는 것이다. 그는 “남한테 뭔가를 줄 수 있을 때 제일 부자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허지연 씨는 앞으로 10년 뒤까지 엄마놀이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인형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4050대에 예상치 못하게 인형에 푹 빠졌던 것처럼 60대에는 글이라는 새로운 일에 빠져보고 싶다.
“제가 알기로 엄마놀이터는 국내에서 유일무이하게 인형 종류가 많은 전시관이에요. 앞으로는 인형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게끔 진열하고 싶어요. 10년 뒤에는 애들을 보내줄 생각이 있어요. 그때가 되면 애들의 가치가 더 오를 게 분명하지만 구입한 가격 그대로 보내줄 거예요. 인형을 팔아서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저는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습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30대, 40대, 50대의 나이와 관계없이 ‘어른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키덜트라 불리는 집단이 그 예다. 한국 사회 속 ‘어른’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 그저 좋아하는 놀이를 소비하고 즐기며 삶의 활력을 찾는다. 과거에는 철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이제 어느 분야에 푹 빠진 ‘덕혈구’ 흐르는 덕후들의 세상이 됐다.
서울시 서초구 국제전자상가(국전) 9층은 여러 개의 가게가 구역을 나누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드래곤볼, 짱구, 포켓몬 등 온갖 캐릭터 모형(피규어)부터 게임기, 프라모델, 가챠(캡슐 뽑기), 코스프레 의상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9층의 한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 A 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캐릭터 상품은 인기가 많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취향으로 치부됐던 것 같다”며 “자녀 혹은 손주에게 선물한다는 핑계를 대거나, 아내 몰래 조금씩 피규어를 모으고 있다고 이실직고하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그래도 비교적 개인의 취향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내가 50대 키덜트라 그런지 취향이 비슷한 동년배 고객을 만나면 더욱 반갑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방방곡곡 ‘키덜트 명소’로 통하는 곳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 용산구의 레고(조립 블록) 매장에서 만난 47세 직장인 B 씨는 “퇴근길에 매장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건졌을 땐 조립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며 “회사 업무 부담이 커져 스트레스가 쌓이고,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애매한 위치가 돼 씁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블록을 조립하면서 머리를 비운다”고 말했다.
중년, 키덜트가 되다
키덜트는 추억 속 동심의 세계를 성인이 된 후에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소설, 패션, 장난감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뚜렷한 소비 성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이 키덜트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1990년대 추억의 만화 ‘포켓몬스터’를 좋아했던 아이가 자라 키덜트가 됐다고 하자. 어엿한 사회인이 된 후 경제활동을 하면서 포켓몬빵, 피카츄 열쇠고리 등 관련 상품들을 사 모으거나 직접 경험해보며 취미로 발전시켰을 테다. 성인이 된 후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를 구입했다가 얼떨결에 본인이 즐기는 경우도 있다.
50세 주부 C씨는 “딸이 포켓몬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에 빠져서 구해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시간 날 때마다 편의점을 돌아다닌다”며 “처음엔 스티커에 왜 그렇게 다들 진심일까 싶었는데, 계속 모으다 보니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른이 돼 살다 보면 주변 사람과 조건에 머무르고, 갖고 있던 꿈도 타협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값싼 스티커에 즐거움을 느끼고 움직이는 나를 보면 ‘어릴 적 마음과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비대면 사회의 반작용
일부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 마음껏 못 해본 게 한이 돼서’ 장난감이나 게임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심리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 영상에서 키덜트가 늘어나는 이유로 ‘비대면 시대에 따른 촉각의 불충족’을 꼽았다. 영화 ‘퍼펙트 센스’를 예로 들어보자. ‘퍼펙트 센스’는 어느 날 전 세계 곳곳에서 원인도 모른 채 감각이 하나씩 마비되는 이상 현상으로 고통을 겪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순서대로 잃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감각을 잃는 순서의 의미다. 네 가지 감각이 사라진 상황에서 영화는 끝을 맺지만, 김 교수는 “인간에게서 사라졌을 때 가장 괴로운 감각이자 원초적으로 가장 중요한 감각은 촉각”이라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면서 촉각은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감각이 됐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덕에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보고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보고 듣는 간접경험의 창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직접 만지며 체험할 기회는 현저히 줄었다. 때문에 즉각적으로 만지며 놀 수 있는 상품이 주목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두둑한 지갑과 함께 돌아온 X세대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년이 된 X세대가 키덜트 문화 확산의 기폭제라고 말했다.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로, 현재 40대 전후 세대를 말한다. X세대 안에는 ‘영포티(Young Forty)’도 포함된다. 영포티는 나이에 비해 젊은 삶을 사는 40대를 지칭한다.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당시 국민의 3분의 2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의식했을 정도다. X세대는 경제·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특별히 없는 상태에서 성인이 됐기 때문에 에너지가 자기 내면으로 향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 교수는 “결혼하고 아기를 안 낳아도 덜 이상하고, 이혼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게 지금 40대”라면서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희생하던 이전 40대와는 달리 트렌드에 밝고 자신을 위한 소비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영포티를 중심으로 키덜트 시장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치해 보이지만 꼭 필요해
여전히 키덜트가 ‘나이에 맞지 않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다.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추상적인 나를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을 원한다”며 “나이가 들수록 생산적이지 않은 물건을 소비하고 놀이를 즐기며 일상생활의 돌파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상 깊은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거나, 비슷한 디자인임에도 유명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옷을 더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생산적인 취미처럼 보이더라도, 즐기는 과정 자체가 생산적인 자기계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핀란드 투르쿠대 인문학부가 브라이스 인형(머리 스타일과 화장, 홍채 색, 의복 등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사람 형태 인형)을 갖고 노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자들은 인형 놀이를 매개로 새로운 취미 생활에 입문하거나 이전에 없던 능력을 기르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했다. 인형에게 입힐 옷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이라는 새 취미를 갖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타인과 사회적 교류를 하는 셈이다.
이은희 교수는 대한민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취미 활동에 제약이 됐다고 꼬집었다. ‘40대면 직장에서는 부장 정도일 테고, 아이는 둘 정도 있어야지’, ‘60대면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살되, 점잖은 행동으로 젊은 세대의 본보기가 돼야 해’ 등의 잣대 말이다. 그는 키덜트 산업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키덜트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원인을 ‘사회·문화적 차이’로 봤다. “사회적 나이를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타인의 즐길 권리를 무시할 수 없는 데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골프·여행·등산과 다를 바 없는 분야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지난 18일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입원 치료로 귀성길에 오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설 맞이 행사’를 진행했다고 19일 밝혔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코로나19 유행시기를 제외하고 매 명절마다 입원 스트레스로 인한 환자들의 명절증후군을 해소하고자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천자생한방병원 4층 휴게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입원환자 및 가족을 비롯한 병원 의료진, 임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서로 쾌유를 위한 덕담을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날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윷놀이, 투호 등의 민속놀이와 함께 어묵, 식혜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마련했다. 또한 행사 경품으로 건강기능식품, 식료품 등도 다양하게 준비해 참여 열기를 한껏 돋웠다.
이날 윷놀이는 개인전 방식으로 진행돼 참가자가 도착지에 무사히 도착하길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윷놀이 판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투호 경기장에는 화살을 던지기 전 숨을 가다듬는 환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또한 경품 증정을 위한 추억의 병뚜껑 게임과 뽑기 게임에도 남녀노소 많은 참여 인원이 몰렸다.
행사에 참여한 한미희(63) 환자는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행사를 즐기며 긍정적인 에너지는 배로 늘고 통증은 반으로 줄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천자생한방병원 우인 병원장은 “설 맞이 행사를 통해 원내 모든 분들이 웃고 즐기며 힘찬 새해를 시작하시길 바란다”며 “다음 명절에는 환자분들이 각자 고향에서 건강하실 수 있도록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인천 지역 유일 한방척추 전문병원으로서 추나요법,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 한방통합치료를 통해 허리·목디스크, 퇴행성관절염 등 척추·관절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료서비스와 환자 안전보장 시스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의료기관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고 새 인생을 펼치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나이 들면 무얼 하면서 살까? 어떻게 해야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김은주, 박유하 부부는 은퇴 전부터 이어진 오랜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살고 있는 주택 지하에 자리 잡은 모모책방으로 말이다.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사람들은 모모책방에 모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한다. 늦은 시간까지 필사를 하거나, 외국 드라마 ‘빨간머리 앤’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한다. 수업을 이끄는 강사는 물론 도봉동 이웃 주민이다.
모모책방에서는 번개모임이 잦다. 김은주 씨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그의 동생이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모모책방 밴드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소식을 올린다. 곧 관람을 희망하는 이웃들이 각자 간식을 챙겨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빔프로젝트를 내리고 책방이 어두워지면 모모책방은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흥미로운 마을공동체 사업에 응모하거나 새로운 활동을 기획할 때에도 주민들은 자연스레 모모책방을 찾는다.
문화 갈증 채우는 동네 책방
모모책방을 탄생시킨 김은주, 박유하 부부는 인생 후반부 계획을 세우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점프업5060 공고를 발견했다. 미래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해결해줄 프로그램이라고 판단해 지원을 결정했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 수료할 때쯤에 맞춰 모모책방의 문을 열었으니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책방을 사업 아이템으로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제 오랜 꿈이 서점을 여는 것이었고, 마을 문화공간에 대한 높은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도봉구의 문화공간 인프라는 창동에만 몰려 있어요. 도봉동 주민들이 집 주변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곳이 없죠. 책방을 비롯한 문화공간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어요.”
걸림돌은 단 하나, 공간이었다. 책방을 열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때에 이웃의 한마디가 해결책이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의 지하층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지 않고도 마을 책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묘수였다. 그렇게 모모책방은 2019년 12월 도봉동 주택단지 한가운데, 부부가 거주하는 주택 지하에 자리 잡았다.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만 정작 마주한 건 코로나19 대유행이란 이름의 터널이었다. 부부는 넋 놓고 앉아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스마트 기기 조작이 서툴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 홀로 있어야 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돌봤다. 적은 인원이라도 모여 책방에서 비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왔다. 부모를 대신해 숙제나 준비물, 가정통신문 같은 학급 전달 사항을 읽어줬다. 김은주 씨와 그의 동생은 심리학을 전공한 지식을 살려 ‘점심 도시락’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점심을 함께하며 종일 붙어 지내야 했던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살폈다.
위기 속에서 탄생한 고향
김은주 씨는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모모책방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정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날 불쑥 찾아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어주는 문화공간. 그게 바로 김은주, 박유하 부부가 생각하는 모모책방의 지향점이다. 이는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던 목표다. 어떻게 해야 실현할 수 있을지 막막하던 차에 되레 악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나 할까.
책방에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들이 가득하다. 모두 김은주 씨와 그의 동생이 전공을 살려 선정했다. 이외에도 필사나 컬러링 키트를 구비해뒀다. 흉흉한 세상에 쫓겨 책방으로 찾아든 사람들이 마음을 돌보게끔 하기 위해서다. 도봉동 주민들은 갑갑한 집을 벗어나 책방에서 글씨를 끄적이고 책을 뒤적이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뛰어놀기 좋아할 나이에 집에만 있어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더욱 답답한 시간이었을 터. 코로나19 시국에 유일한 놀이방이었던 책방은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줬다.
“고향이란 단순히 과거에 살던 동네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공유하는 추억이나 문화가 있어야 충족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책방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고향을 돌려주자’였어요. 요즘 아이들은 태어난 동네, 살던 동네, 학교 다닐 때쯤 이사 간 동네가 다 다르잖아요. 이웃 간 왕래도 없죠. 개인적으로 그 점이 안쓰러웠는데, 책방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모모책방과 마을 아이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하교하던 길에 신발 끈이 풀어졌으니 묶어달라며 불쑥 책방을 찾고, 학교에서 그렸다는 동네 지도에는 모모책방이 ‘우리 동네 명소’로 표시돼 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책방에 찾아올 때, 책방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부부는 큰 보람을 느낀다.
모모책방의 사업 목표는 ‘적정 수준의 적자를 유지하기’다. 지금도 서적 판매로는 책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 모델만 운영하고 있다. 수익을 내는 데에만 급급하다 이웃들이 모모책방을 찾으려던 발걸음을 망설이게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 책방의 공간을 활용해 유튜브를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역시 고개를 저었다. 하나의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한 뒤 편집하고 채널을 관리하는 동안 책방과 마을에 소홀해지기 싫어서다.
모모책방은 앞으로도 돈은 적게 벌더라도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선택해나갈 것이다. 큰길가 대신 주택가 안쪽에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두고 있는 동네 책방. 모모책방은 아이들에게 고향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경기도 안산이냐, 서울 마포냐, 단원 김홍도의 고향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고증이 없어 미지수다. 그런데 단원이 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단서가 있다. 안산은 18세기 조선 예원(藝苑)의 총수였던 표암 강세황이 30여 년을 머문 고장이다. 표암의 시문집 ‘표암유고’에 단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가령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일찍이 맺어진 표암과 단원의 사제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단원을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 일컬은 이도 표암이었다. 정황이 이러니 안산 사람들은 뿌듯하다. 안산의 풍토와 풍정이 표암의 가르침과 함께 단원을 거목으로 길러냈다고 보기에. 안산시가 김홍도미술관을 만든 연유가 완연하다.
김홍도미술관은 안산시 외곽 노적봉 기슭에 있다. 야산 치맛자락을 거머쥔 형국이다. 노적봉 산책과 미술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입지다. 건물은 모두 네 동. 현대미술전이 펼쳐지는 1•2관, 단원콘텐츠관인 3관, 그리고 아동들을 위한 상상미술공장으로 구성했다. 너른 뜰엔 조각 작품도 많다. 전체적으로 독특할 것 없는 구색이지만 미술 작품으로 얼마든지 활갯짓할 수 있는 공간이라 훤칠하다. 뒷산의 수목들은 제법 울창해 조연으로 손색없다. 산기(山氣)를 싣고 스쳐가는 청명한 바람과, 연달아 착륙하는 햇살의 대열도 도회를 벗어난 관람객에겐 반가운 작품이다. 미술관 입구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단원콘텐츠관으로 들어간다. 이렇다 할 꾸밈과 치레 없이 간결한 전시관이다. 김홍도미술관의 핵심 공간이다. 단원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기획한 콘텐츠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년 김홍도, 노적봉에서 세상을 담다’전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안산에 있었던 단원이라는 이름의 숲과 서호(西湖) 바다를 모티브로 한 전람회로, 단원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안산의 옛 풍경을 상상해보게 하는 전시회다. 어물 장수나 고기잡이 풍속을 그린 단원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단원이 교유한 표암, 심사정, 최북의 작품도 있다. 단원의 예술 정신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낸 애니메이션과 미디어아트도 등장해 볼거리를 확대했다. 안산의 고지도를 전시한 건 관객을 과거의 안산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일 테다.
흥미롭기론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다. 아집도? 아집은 아회(雅會)와 같은 말로 묵객들이 모여 시와 술을 나누며 노니는 야유회다. 그걸 그린 게 아집도다. 즉 ‘균와’라는 산골짝에 화가 여럿이 모여 소풍을 즐기는 광경을 그린 게 ‘균와아집도’다. 때는 1763년 4월. 봇물처럼 터진 춘색이 영롱해 어지러웠으리라. 봄꽃 필 때 묵객은 유난한 ‘심쿵’으로 설렌다. 산야에서 작당해 꽃과 더불어 한잔 아니 마실 수 없다. 모인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그림 상단 오른편에 쓰인 발문에 다 나온다. 보자.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 강세황이다. 그 곁엔 어린 김덕형이 있다. 담뱃대를 물고 앉은 이는 현재 심사정이다. 차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이는 호생관 최북이며, 퉁소를 부는 사람은 단원 김홍도다.’
등장인물 모두 안산과 연이 깊었더란다. 다들 일세를 풍미한 거장이다. ‘균와아집도’는 조선 후기 묵객들의 놀이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원이 퉁소를 불고, 강세황이 거문고를 탔으니 고급스러운 피크닉이다.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그린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이채로워 우뚝하다. 학자이자 서화가인 허필이 쓴 발문의 귀띔에 따르면 그림의 전체 구도를 잡은 건 표암이다. 능란한 필치로 휘늘어진 솔과 옹골찬 바위를 그려 담황색을 입힌 건 심사정과 최북이다. 당시 19세였던 단원은 가는 붓을 날렵한 속필로 휘저어 인물들을 묘사했다. 10대 청년이던 단원이 대가들과 어울려 붓을 적셨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단원의 예술적 기량이 일찍부터 수승한 것이었음을 알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전시장에 나온 작품 전부가 영인본이라는 점이다. 애초 단원의 진본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으나 빗나갔다. 단원의 현존하는 그림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파악하기 어려운 개인 소장 작품을 빼더라도 300점이 넘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이 다수를 소장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신선의 무리를 그린 ‘군선도 병풍’(群仙圖 屛風, 국보 제139호)을 소장했다. 안산시도 7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김홍도미술관이 2년마다 펼치는 진본 기획전을 통해 공개된다. 2021년엔 ‘표암과 단원’전을 열어 진본들을 전시했다. 진본 가운데 ‘공원춘효도’는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의 풍속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료(史料)로 평가된다.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려
단원 김홍도는 조선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이름을 들날린 화가다. 그의 돛을 밀어준 건 표암이었다. 인생의 눈을 트이게 하고 예술의 길을 열어준 이가 표암이었다. 단원을 궁중 화가로 천거한 이도 표암인데 단원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표암이 괜한 선심을 베풀었으랴. 그는 일찌감치 단원의 됨됨이와 천재성을 발견했다. 단원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용을 보았다. 표암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써 단원을 극찬했다.
‘단원의 화풍은 새로워 개벽을 이룰 정도다.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저마다 부르짖었다. 그림을 구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단원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모자라 단원에 대해 아는 게 드물다. 그럼에도 김홍도미술관을 관람하며 그의 아우라가 허공에 감도는 것 같은 환(幻)을 느낀다. 전시작이 많지 않아 단원이 항해한 예술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을 맛보긴 어렵다. 다만 단원의 옷깃에 살랑대는 실바람 한 오라기를 움켜쥔 느낌이다. 생각나는 건 언젠가 화첩에서 본 단원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불러일으킨 쓸쓸한 정취다.
주상관매라, 배 위에서 매화를 보다! 단원은 매화 마니아였다. 매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매화를 가슴에 담았으니 생애엔 매향이 난분분? 단원은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주상관매도’의 매화는 어이 아득한 허공에 떠 우련한가. 백일몽처럼,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렸다. 천길 벼랑에 걸린 매화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엔 강물이 있지만, 뿌연 안개처럼 경계 없이 흐릿하게 그려 천하가 아득하다. 강기슭에 멈춘 조각배에 비스듬히 앉아 매화를 지켜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엔 우수가 실려 있다. 초연하다기보다 쓸쓸한 기색이 여실하다. 노경이란 외로워 매화마저 무상감을 돋운다는 걸까? 이 그림은 단원의 노년기 작품이다. 이상을 좇는 열정보다 허무의 성분이 커진 시절에 그렸다.
말년의 단원은 곤궁했다. 정조가 붕어하면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됐다. 가세가 기울어 고달프게 살았다. 단원의 종신(終身)은 미스터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전해오는 게 없다. 작품이야 불멸! 그가 그림 안에 가둔 자연과 인간사의 총량은 장강(長江)과 맞먹는다.
대중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와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 둘은 사제지간이었다. 마티스는 일찍이 피카소의 천재성을 읽어 지지와 조언을 했고, 피카소는 마티스를 평생 따랐다.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 이 조선의 커플 역시 사제지간으로, 예술적 동지로, 지음(知音)으로 평생 교유했다.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의 얘기는 이렇다.
“복 중의 복은 인연 복이라 하는데, 단원이 표암 강세황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으니까. 작품 하나를 완성하면 단원은 흔히 표암에게 먼저 보여줬고, 표암은 강평을 해주었다.”
단원이 표암으로부터 화풍의 영향도 받았나?
“단원이 그 누군가에게 화풍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흔적은 없는 걸로 알려졌다. 표암은 정신적 스승으로서 단원을 북돋았던 셈이다. 단원은 천재였다. 게다가 못 말릴 노력파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거다.”
단원은 풍속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사회의식도 호감을 산다.
“안산시가 소장한 단원의 진본 7점 중 하나인 ‘공원춘효도’에도 사회의식이 드러난다. 과거제도에 만연한 부정행위를 풍자한 그림이니까. 단원의 풍속화는 30대 초반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 그러나 단원의 작품 스펙트럼은 훨씬 드넓다.”
표암과 더불어 정조 임금 역시 막강한 스폰서 역할을 함으로써 단원의 순항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단원이 표암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됐다고 보더라. 그런데 단원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본 정조가 대단한 후원을 했다.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단원이 주장하도록 하라’고 할 정도였다. 궁중 화가로서 단원은 일종의 공공그림을 그렸으나 퇴근 뒤엔 자기 그림을 그렸다. 단원의 집 문간엔 그림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었다고 한다.”
단원의 성향을 알 만한 일화가 있다면?
“풍류에도 일가견 있는 단원이었다. 특히 매화 사랑이 지극했다. 언젠가 한번은 단원의 그림을 원하는 이가 찾아와 작품값으로 3000전을 내놓고 갔다. 단원은 그중 2000전으로 매화를 사고, 800전으로는 술을 사 친구들과 매화를 즐기며 대작했다. ‘매화음’(梅花飮)이라는 이름의 술자리였다. 결국 남은 돈은 200전뿐이었는데, 이걸로 쌀과 장작을 사 집에 들였으나 하루 땟거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인(中人, 양반과 평민의 중간 계급) 출신인 단원의 신분 상승 욕구도 정진의 발판이었던 것 같은데.
“선비가 되고 싶은 마음, 선비정신의 정상에 선 삶을 갈망하며 끝없이 노력했다. 말년에 그린 ‘포의풍류도’에 이와 같은 지향이 드러난다. 문방사우와 악기 등 갖가지 기물과 선비의 모습 등을 그린 작품이다.”
‘포의풍류도’에는 이런 화제를 붙였다.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 살지만,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시가나 읊조리며 살고자 한다.’ 단원의 유토피아가 구현된 그림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말년은 고단했다.
“정조가 별세하면서 단원의 고난이 시작됐다. 아들의 월사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으니까. 그러나 선비다운 태도는 끝까지 지니고 살았다. 이게 단원의 빛나는 정신이지 않을까?”
2022년도 역시 다사다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국민MC 송해도 세상을 떠났다. 10월 29일에는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는 연말을 맞아 중장년 관련 2022년 10대 뉴스를 꼽아봤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공식 취임했다. 1960년생인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의 첫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대통령실 이전 논란, 이태원 참사 등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4개 여론조사기관 공동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잘하고 있다’(매우+잘함)라는 긍정적 평가는 34%를 차지했다. ‘잘못하고 있다’(매우+못함)라는 부정적 평가는 56%였다. 특히 60대(52% 대 44%), 70대 이상(61% 대 26%)에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중장년층의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확인케 했다.
◇노인 일자리 축소 논란
정부는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을 시행, 만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8월 2023년도 예산안이 공개됐는데, 노인 일자리 수는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은 82만 2000개였다.
그중에서도 정부는 공공형 일자리를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로 대폭 축소했다.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층 노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노인빈곤율 심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 일자리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공공형 일자리는 줄였지만,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는 3만 8000개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일요일 아침마다 들리던 송해의 힘찬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국민 MC’ 송해가 지난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백세 인생의 아이콘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 송해의 사망은 대한민국에 슬픔을 안겼다.
송해는 1988년부터 34년간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국내 최장수 MC를 넘어 지난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송해의 후임으로 김신영이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유독 슬픈 소식이 많았다. KBS ‘가족오락관’을 25년간 진행한 또 다른 ‘국민 MC’ 허참과 ‘원조 월드 스타’ 배우 강수연도 세상을 떠났다. 해외의 유명인들도 세상을 떠나 별이 되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피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동산 시장 급락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하던 부동산이 꺾였다. 올해 들어서만 부동산 가격이 10% 이상 급락했다. 과거 부동산 침체기와 달리 매매·전세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서울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마저 줄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전세 가격 10% 하락 시 4만 가구가, 40% 급락 시 13만 가구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부동산 규제 정책을 마련했다. 8·12%로 설정된 다주택자 대상 취득세 중과세율은 4·6%로 완화한다. 내년 5월까지 한시 유예 중인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조치는 일단 1년 연장한 후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찾기로 했다.
◇고독사 증가
한국의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고독사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더욱이 고독사 10명 중 5명은 50· 60대의 중년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는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고독사 사망자는 지난해 3378명으로 2017년 2412명보다 40.0% 증가했다.
노년층보다 50·60대 중장년층 남성의 고독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0대가 1001명(29.6%)으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981건(29.0%)으로 뒤를 이었다. 50·60대 중장년층이 60% 가까이(58.6%) 차지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사망자는 고연령층일수록 많지만 고독사는 50대~6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50대 남성은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지 못하며 실직·이혼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희망퇴직 시작
금리 인상으로 올해 큰 실적을 거둔 시중 은행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적극적인 감원에 나섰다. 최대 5억 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내년 초까지 약 2000명의 은행원이 짐을 쌀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은행은 한 번 들어가면 정년까지 다닌다는 이른바 ‘철밥통’ 직장으로 여겨졌다. 디지털 전환 바람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앱 비대면 서비스 이용객이 늘면서 인력 효율화를 노려야 하는 은행의 상황과 핀테크 기업 등 인터넷 은행으로 이직하고 싶어하는 은행원들의 바람이 맞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현상은 은행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2023년에는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황동혁 감독), 남우주연상(이정재)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작품이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도 상을 받은 것도 모두 최초였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문화의 새 역사를 썼다.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가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K-컬처의 위상이 더욱 드높아졌다.
◇ 이태원 10·29 참사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악몽 같은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한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 총 158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2~30대 젊은이들로, 어린 자녀를 둔 중장년들을 더욱 비통케 만들었다.
10·29 참사는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대응 태도를 보이면서, 영정 없는 분향소, 뒤집힌 근조 리본, 희생자 표현 사용 금지, 마약 부검 등 다양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희생자의 이름과 영정이 공개된 합동 분향소는 참사 후 한 달이 넘은 지난 14일에야 차려졌다. 현재는 분향소 설치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 항의의 대상이 되면서 조롱과 멸시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누리호 발사 성공
올해 우리나라는 7대 우주 강국으로 우뚝섰다. 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도 8월 5일 발사에 성공, 달 궤도에 안착했다.
누리호 프로젝트는 2010년 3월 시작돼 2022년 6월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장장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총예산 1조 9572억 원이 투입됐다. 누리호의 성공 뒤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 250명의 피, 땀, 눈물이 서린 노력이 있었다.
성공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기주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은 “2002년 나로호 사업을 시작으로 항공우주연구원이 되었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나로호, 누리호 발사체 개발을 하면서 연구·개발하는 모든 것이 우리나라 우주 개척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자긍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다”면서 감격의 소감을 본지에 전한 바 있다.
◇월드컵 16강 진출
‘2022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친 국민을 위로해줬다. 이번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려 경기가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진행됐지만 많은 국민은 경기를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이번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2002년 월드컵에 비교할만하다. 그때의 추억을 안은 중장년층은 특히 열광했다.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축구 강국을 이기고 얻은 성과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입증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거나 수려한 산세에 파묻혀 보았다면 한나절쯤 호젓하게 고즈넉해보는 시간도 가져볼 만하다. 더구나 깊어가는 계절에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는 울창한 숲은 가슴속 깊이 풍성함을 준다. 지리산은 전남과 전북, 경남의 5개 시군에 걸쳐진 거대하게 넓은 면적의 웅장한 산이다. 이번에는 그중에서 전북 남원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있는 고을 남원. 남원에는 오래된 마을마다 아름드리 당산나무는 물론이고 곳곳에서 아름다운 숲을 본다. 여행길에 한나절 쉬어가기, 계절 따라 쉬어갈 이유가 달리 있겠지만 지리산 아래 남원골의 숲은 마을과 함께 있어서 따뜻한 정취를 전한다. 숲을 찾아가는 테마 여행이라고나 할까.
남원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멀리 들판 속에 섬처럼 숲이 자리 잡은 게 보인다. 100여 그루의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 서어나무숲은 그렇게 산과 들과 마을에 깃들듯 존재감을 보여준다.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 조화가 아름답다. 아름답기로는 올해의 아름다운 숲으로 산림청이 실시하는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기도 했다. (산림청이 (사) 생명의 숲 국민운동 • 유한킴벌리(주)와 공동으로 2000년부터 우리 생활 주변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어 알리기 위한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는 숲이 가진 경제, 환경, 문화 자원적 가치를 깨닫고, 숲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목적이다)
지리산 운봉 자락의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으로 가는 길은 들판을 달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가 마을 골목쯤에서 멈췄다. 마을 속 논과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쭈뼛거리며 이곳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그럼 걸어가 보지 뭐 하고 조금 걸었다. 골목을 걷다가 보니 주민이신 할머니께서 마당에 앉아 혼자서 콩 타작을 하고 계셨다. 곁에 가서 나도 쪼그리고 앉아 서어나무숲을 물어보니 "아이고, 길을 잘 못 들었네, 저 짝으로 람천 둑길로 차를 몰고 가면 서어나무숲 쪽 가는 길이 있는데 기왕 여기로 왔으니 걸어서 요기로 넘어가 봐요"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뒷문과도 같은 곳으로 넘어가니 계절의 청취가 가득 고여 있는 숲이 거기 있다.
빼곡한 서어나무숲의 세상이다. 숲에 바람이 불어 쏟아지듯 낙엽이 우수수 날린다. 발아래로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나무의 뿌리발육이 드러나 있다. 숲속에 들어 친구들과 숲 놀이를 하는 사람들, 두 손 꼭 잡은 다정한 부부의 모습, 그 숲의 풍경이 된다. 나무의 줄기가 튼튼하여 근육질과 같다는 의미로 근육질 나무라고도 불리는 서어나무. 여름엔 숲 그늘이 15℃ 안팎으로 주민들과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 힐링을 제공하는 남원의 핫플이다. 숲에서 멀리 바라보면 지리산의 서북 능선이 흐른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에 속하는 마을이고 바래봉 둘레길의 출발지이다.
이백면 닭뫼마을 숲
서어나무숲을 나와 20분쯤 달리면 닭뫼마을이 나온다. 알을 품고 있는 닭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닭뫼마을은 1455년 단종 왕위찬탈 반대로 낙향한 순흥 안씨 조상이 이 마을을 이루며 만든 숲이다.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최고다. 들판의 강한 북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섬진강 지류의 범람으로 인한 재난예방의 기능도 겸하는데 이런 숲을 비보림이라고 한다.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이 숲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신성시한다고 전한다. 조상들의 지혜가 스민 마을 오솔길의 고즈넉함이 힐링을 불러온다. 느릅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 등으로 70여 그루의 수목들이 주변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는 듯한 정경이 느긋하고 푸근하다. 둑길 위로 거대한 나무들의 행렬이 아름다운 닭뫼마을 숲이다. 남원시에서 동쪽으로 지리산 허브밸리로 가는 방향으로 있다. 남원시 이백면 닭뫼마을 숲이 우수상인 공존상에 선정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남원 용성고등학교 숲
찾아가기 쉬운 남원 시내의 용성고등학교에도 아름다운 숲이 있다. 숲이 있는 학교로 매일 다니는 학생들은 그 아름다움이 그저 당연한 듯하다. 숲이 어느 쪽인가 물어보니, 숲요? 하더니 아, 저거요? 한다. 새롭게 조성되었거나 인공적 멋이 아닌 오랜 세월을 견뎌온 천혜의 자연과 사람의 보존 노력으로 나이 많은 나무들이 입구 한쪽에 숲을 이루고 있다. 푸른 노송과 삼나무, 메타세쿼이아... 봄이면 벚나무가 눈부시다고 한다. 숲이 있는 학교로 근처의 주생초등학교도 있다. 생명력 넘치는 나무와 숲이 있는 학교에서 여유와 창의성을 배우며 숲과 더불어 성장하는 아이들의 인성은 훗날 나무를 닮아가지 않을까 싶다. (2006년 아름다운 숲 제7회 우수상 용성고등학교 숲, 장려상 주생초등학교 숲)
자연과 공존하는 지리산 기슭 평지 사찰 실상사(實相寺)
가을의 지리산을 생각하며 실상사도 떠올리게 된다. 흔히들 사찰은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산 위로 올라가는 위치에 자리 잡는 게 흔한 예이다. 실상사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지리산 기슭의 평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일단 절에 찾아들기 쉽다. 돌장승이 버티고 있는 입구를 지나 천왕문을 들어서면 곧장 사찰 내부에 들어선다. 이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경내로 입장하는 경험도 특별하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이 창건한 사찰이며 사적이다. 전북 남원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의 말사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이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실상사는 지리산 평화연대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인드라망 공동체. 모든 실상이 연결된 유기적 공동체라는 걸 가치로 창립되어 실상사를 중심으로 대안적 살림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또한 국보와 보물이 많은 사찰이면서 생태화장실로도 유명하다. 요즈음의 좋은 화장지나 비데와는 사뭇 다른 생태뒷간이라니 무슨 말일까 할 것이다. 휴지나 물 대신 톱밥 뒤처리로 청결을 유지하고 배설물 발효 후 퇴비로 사용하는 생태적 순환 원리의 구현을 실천하는 일이다.
넓은 평지에 펼쳐진 오랜 건축의 멋을 일단 한눈에 둘러본다. 띄엄띄엄 아담한 전각들과 석등 사이로 웅장한 삼층석탑과 보광전의 고즈넉함에 차분해진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와 경내의 나뭇잎을 날리는 걸 보니 계절이 깊어지고 있다. 실상사는 남원의 황금들판 한가운데 나지막한 담장으로 두르고 묵직하고 자비로운 기운을 퍼뜨리는 듯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승방 문고리에는 밭으로 나간 스님의 적삼 위로 실상사에서만 받아볼 수 있는 햇볕을 들이붓는다.
계절이 끝나가는 오래된 나무들이 절 마당을 내려다보고 지리산이 사찰을 에워싼 모습이 든든하다. 뒤편 텃밭 주변으로 노래처럼 국화꽃 저버린 겨울 뜨락에 /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인생에서 온전히 나로 사는 순간은 언제일까.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 할머니… 삶의 대부분은 가족의 이름 뒤에 자신을 수식해왔다. 예순셋 나이에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난 후에야 ‘박영혜’라는 이름을 앞세우게 됐다. 홀로 우뚝 서 오롯이 자신을 마주한 뒤에야 깨달았다. 가족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이 아닌, 가족 안에 놓여 있어야 ‘완전한’ 내가 된다는 것을.
박영혜 감독이 대중에 얼굴을 알린 건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였다. 아들인 배우 이태성과 손주 한승 군이 출연하며 덩달아 유명세를 탄 것이다. 한동안 ‘이태성 엄마’, ‘한승이 할머니’로 불리던 그는 영화감독 데뷔 소식과 함께 프로그램 패널을 하차했다. 당시 예순이 넘은 나이에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지만, 이후 행보는 놀라웠다. 첫 작품 ‘짜장면 고맙습니다’가 50여 개 국내외 영화제 초청작 선정에 이어 40여 개에 달하는 트로피를 거머쥔 것. 개봉 후 영화의 성과를 공유한 박 감독의 SNS 프로필은 쉴 틈 없이 바뀌었고, 현재도 기록은 경신되고 있다. 데뷔작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이 믿기지 않는다는 박 감독이다.
“꿈만 같은 일이 매일 벌어지고 있어요. 내 얘기가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주변에서 영화감독 ‘데뷔’했다고 말하는데, 그것도 실감이 안 나요. 마치 대단한 일을 해낸 듯 보이잖아요. 그저 ‘인생에서 또 하나의 경험을 했구나’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많이들 인정해주시고 호평해주셔서 조금씩 성과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아련히 피어오른 용기, 도전으로 불태우다
세간에는 박영혜 개인보다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로 알려졌기에 그가 영화감독이 된 정황을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짜장면 고맙습니다’는 신성훈 영화감독과의 공동 작업물이다. 신 감독이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 영화 관련 이력이 전무한, 그것도 어머니 연배인 박 감독에게 손을 내민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애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실제 주인공인 최종만·정명숙 부부는 제가 오래전부터 봉사를 통해 인연을 이어왔는데요. 신 감독이 이분들의 사연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 제 역할이 필요하다더군요. 실화 소재 작품은 그 이야기에 관련된 사람이 스태프로 참여해야 진정성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면서요.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데 마음속에 아련한 용기가 피어오르더라고요. ‘그래, 한번 해보자’ 하고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전까지 영화감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꿈도 아니었어요.”
꿈꿔온 일은 아니라 했지만, 지나온 삶을 듣노라면 그리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무용을 전공한 박 감독은 결혼 후엔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다 다시 전공을 살려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심각한 허리 통증 때문에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크리스천인 그는 기도로 심신을 치유해나갔다. 차츰 종교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 박 감독은 ‘선교무용’을 접했다.
“단순히 찬양만 하는 게 아니라 무대 예술로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활동이에요. 전공도 살릴 겸 한동안 선교무용을 하다가 손주가 태어나고 다시 육아의 길로 접어들었죠. 한승이 키우면서 구연동화랑 마술을 배웠는데, 정말 재미있어하더라고요. 내가 줄 수 있는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선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마구마구’라는 매직아동극단을 만들었습니다. 마술 퍼포먼스에 동화 줄거리를 입혀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해나갔죠. 주로 장애아동 어린이집이나 복지시설 등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아이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마구마구의 대표였던 박 감독은 무대를 올리기까지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극본을 위한 글쓰기부터 무대 연출, 음악 선정, 소품과 의상 준비 등을 직접 해내며 한땀 한땀 정성껏 공연을 완성시켰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해온 극단 활동은 영화감독이 되는 데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 잠재된 능력에 그치지 않고 세상 밖으로 표출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성향도 한몫했다. 차분한 외모와 달리 모험과 도전을 즐긴다는 그다.
“예전에 카세트 같은 게 고장 나면 무작정 드라이버 갖다가 뜯어봐야 직성이 풀렸어요. 밖에서 맛있는 거 먹고 오면 꼭 직접 만들어보고, 뭐든 새롭게 해보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심지어 난타 자격증도 있답니다.(웃음) 그렇게 무모한 제게도 영화감독은 크나큰 도전이었죠.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족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남편의 격려에 용기가 많이 생겼어요.”
감독으로 인생 2막, 반쪽 가면이라도 즐거워
박 감독과의 인터뷰 중 현장 한쪽에 놓인 여러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가면은 그리스어로 ‘페르소나’인데, 최근 여러 사회적 가면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현상을 일컬어 ‘멀티페르소나’라고 한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이자 이제는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가면을 얻게 된 그의 상황이 오버랩됐다. 박 감독 역시 공감했고, 이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가면을 소품 삼아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가면을 고르라 주문하자, 반쪽짜리 가면이 그의 손에 들렸다.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내가 아내이고 엄마이고 할머니라는 사실은 변함없어요. 평범한 주부로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가정의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탈바꿈하는 건 쉽지 않죠. 저 말고도 인생 2막을 사는 많은 중년 여성이 그럴 거라고 봐요. 그런 점에서 아직은 온전히 변신할 수 없기에 반쪽 가면을 골랐어요. 그렇다고 서글픈 건 절대 아니에요. 박영혜 감독으로 내 이름이 타이틀이 되는 것도 의미 있지만, 태성이 엄마, 한승이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여전히 기분 좋고 행복하니까요. 또 그 모든 것이 합쳐졌을 때 완전한 ‘나’라고 볼 수 있고요.”
아직은 ‘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단다. 영화 촬영 초반만 해도 누군가 “박 감독님” 하고 부르면 자신인지 모르고 딴청을 피우곤 했다. 그런 그가 처음 자신의 새 가면을 체감한 건 영화 편집 막바지쯤이었다.
“시나리오 쓰고 촬영할 때만 해도 내가 감독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영상들이 하나둘 모이고 편집되면서 작품의 형체가 갖춰져가니 그나마 와 닿았죠. 나중에 최종본이 나왔을 때 집에서 가족끼리 첫 시사회를 했는데, 좀 더 실감 나더라고요. 그 후 영화관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작품을 마주하니, 아 내가 감독이 되긴 했구나 싶었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마중물로 관객과 소통한다.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잘 보여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자 재능이라 하겠다. ‘짜장면 고맙습니다’는 장애인 인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로맨스 장르로 풀어냈다. 박 감독은 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더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실화가 바탕이긴 했지만, 장애인이 처한 상황이나 그들의 사랑을 어떤 기교나 과장 없이 진솔하게 담는 데 충실했다. 그의 노력과 진심은 다행히 관객들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었다.
“부산가치봄영화제에서 배리어프리 영화(시·청각 등 장애와 무관하게 누구나 감상하도록 자막과 화면 해설 등을 더해 제작한 영화)로 상영했는데, 그날 장애인 관객이 많았어요. 영화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분들이 계시니 더 떨리더라고요. 유심히 살펴보니 상영하는 동안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동시에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당사자들이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뿌듯했죠. 상영을 마치고 한 관객께서 자신의 감상평을 시로 적어주셨는데 저 또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통한 소통의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깨달았죠.”
후회보다는 차라리 실패가 낫다
관객이 적어준 시의 제목은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하여’다. 시에는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세상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인생 후반전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한 박 감독에게도 울림을 주는 내용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에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혹시 시니어 소재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눈을 반짝이며 화답하는 박 감독이다.
“왜 없겠어요. 우리 중장년들이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들 있잖아요.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자치기 등을 주제로 잡아 뭔가 해보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당장 영화까지는 무리이고, 짤막한 글들을 써두었다가 나중에 옴니버스(여러 에피소드를 한데 묶은 영화)나 시리즈로 연출해보면 어떨까 해요.”
첫 영화도 잘된 데다, 아이디어도 좋고 열정도 있다. 차기작 제안도 들어왔다. 모든 조건이 그를 감독의 삶으로 강하게 충동질하지만, 그는 오히려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체력 고갈.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 줄곧 말해왔지만, 젊은 스태프도 힘들어하는 영화 작업을 수개월간 매진하다보니 몸무게가 9kg이나 빠졌단다. 당분간은 외적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내면의 허기도 달래볼 계획이다.
“지금의 감독 박영혜를 있게 한 건 마구마구 극단 활동이 컸다고 봐요.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는데, 다시 시작해볼 참입니다. 영화감독으로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도 좋지만, 예전에 작은 무대에서 봉사하며 느낀 기쁨과는 맛이 또 다르더라고요. 뭔가 내 안의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게 느껴지죠. 그렇게 내적 에너지가 충만해져야 영화든 글이든 다시 꽃피울 수 있다 생각해요.”
서두르지 않고 한발 한발 꾸준히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박 감독. 그는 끝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네요. 연말이 오면 이런저런 후회가 들곤 하죠. 그런데 인생 말년에도 그런 후회가 들면 큰일이잖아요. 너무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하고 싶다’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의 중간에 있으면 결국 아무 것도 못 하거든요.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보세요. 안 하면 후회할 거고, 해서 안 돼봐야 실패인데, 후회보다는 실패가 낫지 않을까요? 어느 쪽이 됐든 경험이라는 산물이 인생을 충만하게 해줄 테니까요. 용기를 내서 내년에는 꼭 도전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독일은 아이를 키우는 할머니, 임산부, 한부모가정 아이, 독거노인 등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복합 공간 ‘마더센터’를 운영한다. 고립되기 쉬운 주민들을 위한 공용 공간을 마련해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서로 품앗이 육아를 실천한다. 국내에도 독일을 참고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독일 마더센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전반적인 시설 관리 및 운영, 각종 프로그램 진행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봉사로 이뤄진다. 봉사자들은 ‘누구나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센터에 기여하려 한다. 노인이 아이에게 옛 노래를 기타로 연주해주거나, 은퇴한 간호사가 의료 정보를 공유한다. 손주를 키우는 할아버지, 미혼모 등 센터를 찾은 다양한 양육자들은 공용 공간에 모여 서로 육아 정보를 나누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국내에도 독일 마더센터를 참고해 우리 사회에 맞게 변모한 ‘한국형 마더센터’들이 있다. 바로 서울 관악구 행복마을 마더센터,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다.
한국 사회에 발맞춘 마더센터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는 2013년 여성단체 춘천여성회에 의해 설립됐다. 육아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양육자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사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최근에는 ‘우리봄내동동’ 사업을 통해 마을의 아이와 어른이 한데 어울려 더욱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활 기반을 공유하는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 역량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아이를 둔 엄마들로 시작된 모임이지만 아빠, 할머니, 주변 이웃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행복마을 마더센터는 2017년 개소했다. 박명희 행복마을마더센터협동조합 이사장에 따르면 과거 신림동은 서울 지역 중 비교적 집값이 저렴해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이 많이 거주했다. 높은 인구 밀집도에 비해 아이를 위한 문화 공간이 부족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비영리단체 회원들이 힘을 모았다.
카페 시설 운영을 중심으로, 시에서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이나 공동육아지원 사업 등에 지원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카페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 트램펄린 시설, 주민들이 기부한 장난감과 놀이기구가 비치돼 있다. 요일별로 열리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아이들은 기본, 양육자라면 대부분 1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수강할 수 있다. 아이를 동반한 어른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들은 아이 성장 발달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한다.
모두가 함께하는 열린 공간
마더센터는 일반 키즈카페나 실내 놀이터와는 다르다. 우선 민간 시설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더불어 센터를 찾은 양육자들이 단순히 공간과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도록 한다. ‘내 아이’와 ‘우리 엄마’가 시설을 이용하는 형태가 아니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고, 손뼉 치며 등을 맞대는 등 체조를 한다. 구성원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자연스레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수업 이후에도 마더센터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 다음 카페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서로 고충을 나누고 육아 물품을 무료로 나눈다. 실제로 마더센터는 아이와 양육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만 한국형 마더센터를 어떻게 모델화하고 자리 잡아갈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 마더센터가 꾸준히 회자됐지만 그 이상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박명희 이사장은 “한국도 육아종합지원센터를 비롯해 각 지자체가 저출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기관을 운영하고 있어, 독일이 훨씬 선진화돼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며 “대신 한국은 서로 다른 기관이 각개전투하는 느낌이 있어 민·관의 협력 형태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가족관계 변화, 인식 개선도 필요해
우리나라는 나이에 맞춰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학교에 간다. 보육 시설과 교육 과정이 마련돼 있어도 부모의 경제 활동으로 인해 돌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은 6시지만, 엄마 아빠가 초과근무를 하느라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는 경우가 그 예다. 비용이 부담스러워 다른 민간 시설에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보통 그 공백을 조부모가 메운다. 기관과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내 아이는 우리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육아 부담이 가중된다면 조부모로 주 양육자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게다가 현대 사회로 올수록 혼인과 혈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점점 옛말이 됐다. 입양 가정, 재혼 가정, 조손 가정, 한부모가정 등 기준이 모호해졌다.
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 이사장은 “과거에는 여성에게 육아 책임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엄마들을 중심으로 단체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가족의 형태가 많이 다양해졌다”며 “독일과 같이 마더센터에 오는 사람들의 범위를 엄마로만 한정해놓고 있진 않으니 부담 없이 찾아오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마더센터에서 ‘내 가족’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제2의 가족’을 만나 지역사회의 화합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