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귀가 닳도록 듣던 말이다. 세월이 갈수록 이 말이 실감 나는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강건한 정신,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것인가. 건전한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 화두를 놓고 심혈관 세계적 권위자로서 대중을 위한 건강전도사로도 활약 중인 엄융의(73)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봤다. 대학로에 있는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영국 출장에서 돌아와 전작 ‘내 몸 공부’에 이은 후속작을 집필 중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엔 ‘온 세상 천지가 헬스 클럽이다’란 문장에서 커서가 반짝이고 있었다.
심혈관 분야의 권위자이신데, 요즘 일반인을 위한 강연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건강 전도사로 나선 동기가 있으신지요.
“한마디로 내 몸을 알자는 것입니다. 건강 정보는 넘치는데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선 몰라요. 발에 신발을 맞춰야 하는데, 신발에 발을 맞추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심장이나 혈관 건강에 좋은 식품, 심지어는 약 이름까지 줄줄 꿰면서 그것들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잖아요. 아무리 많은 건강 정보를 알고 있어도 자신의 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건강은 ‘내 몸 스스로 알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는 “육체적 건강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의 건강을 짐작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도스토옙스키나 마르셀 프루스트가 대표적인 경우. 간질병을 앓고 있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에서 보통 사람은 알 수 없는 간질의 전조증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내면 의식의 흐름을 추구한 것은 신병인 천식의 영향도 크다. 천식 발작으로 고생한 그는 외출하기가 힘들어 실내 생활을 주로 하며 내면에 집중했다. 모두 자신의 지병을 수용, 강점으로 역전시킨 경우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작가의 건강을 유추할 수 있군요. 혹시 사람을 처음 만나실 때 상대의 건강 상태 등을 유의해 살피십니까.
“그런 직업병은 없습니다. 다만 술, 특히 와인을 잘하게 생겼나, 아닌가는 꼭 봅니다.(웃음) 제가 와인을 즐기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프렌치 패러독스를 언급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기름진 것을 자주 먹고 담배도 많이 피는데 미국, 북구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심장질환이 걸리는 비율이 낮은 것은 지중해식 식생활 때문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매일 적당량의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뇌졸중에도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평소 식습관과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젊은 제자들과 와인 담화를 나누는 게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신세대 제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시는지요.
“저는 제 동료, 동년배들보다 제자들,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재미있어요. 제가 그들과 어울리는 비결은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것이지요. 훈계하기보다 그들의 관심사, 와인에 얽힌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우리 집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지트예요.”
지난해 출간하신 저서 ‘내 몸 공부’는 서울대학교 비자연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셨던 교양강의를 기본으로 저술한 것이지요. 강의 당시에도 파격적 평가방식으로 화제였다고 들었습니다.
“평가를 내 방식대로 했어요. 출석, 시험은 각각 25%로 하고 나머지는 ‘우리 몸의 이해’를 자신의 전공과 연결해 자유 형식으로 제출하라고 했지요. 에세이든, 음악이든, 무용, 미술작품이든…. 단 자신의 주장을 담으라는 게 제 요구사항이었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제한 범위를 정해주면 잘하는데요. 오히려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몰라 해요. 늘 밑줄 좍, 별 세 개의 참고서식 요약정리, 받아쓰기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이지요. 대학은 내 주장을 펼치는 연습을 하는 곳이란 게 제 신조입니다."
그는 연구실에 놓여 있는 손 모양의 조각상을 가리켰다. “강의 때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이라며 “창의성 부족을 탓하기보다 자극하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님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 외에 사회적 건강을 함께 강조하십니다.
“사회적 건강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 지표는 배려지수입니다. 정신과 육체처럼 개인과 사회의 건강도 분리되지 않아요. 사회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개인이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 경쟁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분노조절장애는 비교-경쟁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객관성이란 명목 하에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다른 항목은 배제하고, 인정을 안 해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실력으로 인정되니 모두 한줄서기, 1등만 하려고 목을 매게 되는 것이지요. 내 뜻대로 이기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우울증, 사회적으로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사회적 건강 회복 운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엄 교수는 선진국에서 어린이들에게 팀 스포츠, 청년들에겐 오페어(Au-Pair) 제도를 활발히 시행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딸이 영국에서 워킹맘으로서 직장과 가정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오페어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페어 제도는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일정량의 급여를 받고, 자유시간에는 어학공부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도 점수따기 경쟁보다 이 같은 폭넓은 사회경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사회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말하는 대로는 실행하고, 하는 대로는 실행하지 말라”는 시쳇말이 있지요. 교수님이 직접 행하시는 건강 습관이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 방식에 맞춰 마음 편하게 사는 겁니다. 저는 의학 통념이나 유행을 무조건 따르지 않아요. 진리라기보다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한시적 학설이니까요. 먼저 나를 알고자 하고, 나에게 직접 실험해보는 편입니다. 평균적인 인간의 리듬은 말 그대로 평균이니까요. 내가 거기에 반드시 속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유행이나 학설이 내 몸에 맞나 실험해보고 관찰하는 게 내 기본 신조예요. 가령 예전에 ‘아침형 인간’ 바람이 불지 않았습니까. 저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에요. 새벽 두세 시까지도 너끈히 일하지만 아침엔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헌 나라의 노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아침형 종달새 스타일에 맞춰 생활하는 실험을 해보니 나랑 영 맞지 않더군요. 그래서 내 올빼미 스타일대로 살기로 했지요. 나를 관찰하고 거기에 맞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것이 건강 비결입니다.”
엄 교수는 스마트 밴드를 팔목에 차고 있었다. 이를 통해 깊은 잠, 얕은 잠을 몇 시간 잤는지, 심장박동수를 체크해 그에 따른 생체리듬을 읽고, 자신의 건강상태는 물론 라이프스타일도 조정한단다. 이외에 그가 실천하는 건강 습관은 걷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되도록 앉지 않으며, 목적지보다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중년 이상이 되면 영양제든 뭐든 약을 한 움큼씩 복용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모든 약은 기본적으로 독입니다. 한 가지 증상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기관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요. 자연식과 균형 잡힌 식단으로 치유하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음식은 가공이 안 된 것일수록 몸에 좋고요. 접시에 담겼을 때 원래의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음식일수록 몸에 좋습니다.”
그는 “한국의 의사들이 지나치게 복잡한 검사와 약, 주사 위주의 처방에 의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의료수가 시스템, 보험 체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이요법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은 수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모두 불행을 겪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청·장년기 이후의 건강관리는 예전과 달라야 하는지요. 특히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건강에도 내려놓기가 필요합니다. ‘건강 과신하지 말라,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장년기 이후 건강 적신호가 울리는 사람은 두주불사의 타고난 건강체질파입니다. 이들은 젊었을 때의 건강을 과신하기 쉬워요. 오히려 한두 가지 지병을 안고 사는 사람이 건강한 것은 평소 주의를 하고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만보계를 갖고 걷더라도 참여자 비교 순위를 체크하며 경쟁에서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어요. 피트니스 클럽에서 트레드밀을 뛸 때도 옆 사람의 속도를 따라 하려고 하거나 더 빠른 속도로 뛰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경쟁심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쉽습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기 스타일, 페이스, 리듬을 알고 즐기세요.”
교수님은 50대 중반부터 기러기 부부 생활을 시작, 1년 반 정도를 떨어져 사시는데 어떠십니까.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집사람과도 그렇습니다.(웃음)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50대 중반에 애 다 키워놓고 영국 유학을 가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 해보라’고 찬성했지요. 우리 부부가 45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원만히 해온 비결은 ‘덜 간섭하기’예요. 부부 갈등은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는 데서 옵니다. 우린 체질, 습관, 성향이 다르지만 최대한 존중하려고 해요. 제가 주례사를 할 때 늘 강조하는 것도 ‘상대를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지 말라’입니다.”
교수님은 황우석 교수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활동을 같이하셨죠. 또 지금은 정계에 있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스승이기도 하셨고요. 이들의 부침(浮沈)을 보면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황 교수, 안 대표 모두 재능 있는 인물인데요. 황우석 교수는 능력보다 너무 많이 나갔어요. 자신의 관리 범위를 벗어났는데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몰랐다고나 할까요.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학문 분야는 적절히 위임해야 합니다. 그걸 못 한 게 문제였어요. 안철수 전 대표도 기대가 되는 제자였지요. 학계에 딱 적합한 사람인데… 생각이나 꿈이 커도 현실이 잘 따라주지 않을 때 기다리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진득함, 그게 아쉽지요. 너무 빨리, 높이 가고자 하기보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즐기며 가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인생 의미이자 재미입니다.”
공자는 일흔의 나이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다. 종심(從心)은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지도, 나의 기분에 휘둘리지도 않는 중심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음을 풀어놓지도(방심, 放心), 잡아놓지도(조심, 操心) 않고 고삐를 늦췄다 당겼다 조절할 수 있는 경지…. 엄융의 교수의 인생 키워드는 종심과 통한다. 새로 보는(see) 내 몸,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새 봄맞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리더의 언어병법’, ‘성공하는 CEO의 습관’, ‘하이터치 리더’, ‘용인술, 사람을 쓰는 법’ 등이 있다.
“58년 개띠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첫마디다. 개띠의 당당함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세월이 그 한마디에 포함되어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아기가 많이 태어났는데 그 절정기가 1958년이다. 개띠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뺑뺑이 추첨으로 배정받아 들어갔다. 58년 개띠라는 말은 사회 여러 방면에서 이전 세대와 차별되고, 이후 세대와도 분명하게 구분되어 생긴 용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운동장에 가득했다. 교실이 모자라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었다. 필자는 비 오는 날 잠시 낮잠을 잤다가 오후반 등교가 늦어 엉엉 운 적도 있다. 그 시절은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가난한 집 아이가 꽤 많았다. 대부분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직했고, 여자들은 식모살이를 했다. 그러나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은 과외도 했다. 필자는 학교가 너무 멀어 쌀 두 가마니를 주고 친척집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 펜팔을 했다. 단양 골짜기에 사는 소년에게 줄곧 편지를 써댔다. 엄마가 공부에 지장이 있다며 편지가 오면 아궁이에 집어넣곤 했다. 그 일로 엄마에게 대들던 사춘기가 떠오른다. 펜팔은 얼굴도 모르는 누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누군가에게 솔직한 말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에 사는 준이라는 소년에게 편지질을 했는데 아침이 오면 지난밤에 쓴 편지가 너무 유치해서 박박 찢어버릴 때가 많았다. 저 별은 나의 별, 이 별은 너의 별. 별과 달을 자주 글 소재로 써먹었다. 편지를 자주 쓰다 보니 글 솜씨가 좋아져 친구들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고 옥수수와 고구마를 얻어먹기도 했다.
당시 수학여행을 가면 다른 학교 남학생들이 주소가 적힌 쪽지를 여학생들에게 던졌다. 누구를 지정해서 쓴 쪽지가 아니라 줍는 사람이 그 쪽지의 임자.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필자가 아는 사람 중에도 있다. 그 부부는 딸이 “엄마 아빠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 하고 물어볼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한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누가 뒤를 바짝 따라오며 말했다. 누군가 필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게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왜 이러세요” 하며 튕겼다. 예전에는 대부분 남자가 프러포즈를 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스무 살 봄, 이종사촌과 잘 알던 그는 계속 필자를 따라다녔다. ROTC 복장을 하고 자주 필자 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 시절은 주로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다. 돈이 없을 때는 전당포에 손목시계를 맡기기도 했다. 주로 만나는 장소는 다방이었고, 커피 한 잔을 시켜 둘이서 나눠 먹기도 했다. 가끔 이종사촌 커플과도 만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필자는 예술을 좋아했다. 한눈에 그에게 반해서가 아니라 외로움 때문에 가까워진 것도 같다. 만남은 운명이다. 필자는 말라버린 우물가에 누워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그 순간이 그 낯선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그가 속내의를 사서 아버지를 찾아왔던 일, 아버지와의 어색한 만남, 죄책감에 당황스러워하던 그의 표정. 아버지는 서너 달 후 뇌졸중이 와서 길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돌아가셨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필자는 숙명으로 결혼을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판돈으로, 대우에서 나온 컬러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샀다. 컬러텔레비전은 그 해 혼수품으로 처음 나온 제품이었다. 시어머니는 밤색 모직코트 옷감을 혼수함에 넣어주었다, 양장점에 가서 모직바지와 코트를 맞춰 입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남아 옅은 밤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을 가야 하는데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었다. 그 시절의 결혼 예복은 긴 소매 옷, 앞이 막힌 구두가 상례였다. 신혼여행을 안 가면 남들 보는 눈도 있고 후회도 될 것 같아 아산 현충사로 갔다. 하룻밤 있었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 날의 쓸쓸함이여! 그때 그 얇은 마음이 얼마나 외로움에 떨었을까.
결혼을 후회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다.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필자는 늘 동생들에게 모범이 돼야 했다. 지금은 홀가분하다. 58년 개띠 인생. 이제부터는 자존감 회복에 중점을 두고 싶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사랑하자. 그래야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더불어 살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퇴직하자마자 필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난 뒤 대신 부엌일을 돕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또 워낙에 먹는 걸 즐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건강과 영양에 관한 책, 요리책, TV 요리 프로그램도 즐겨 보는 편이다. 특별한 맛을 내거나 예쁘게 장식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좋은 재료를 찾아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것에는 관심이 많다. 요리책을 보는 이유도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리책 레시피대로 하는 요리는 거의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요리와 레시피를 보면서 자신의 입맛과 취향, 또 먹어주는 필자의 입맛도 생각하며 음식을 상상하고 만드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음식 재료들은 대체로 평범하다. 주로 제철에 나는 재료를 좋아하는데 생굴은 남해의 굴 생산자한테 직접 전화로 주문한다. 방송국 근무 시절 알아두었던 연락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택배로 재료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린애들이 장난감 배달을 기다리듯 외출도 안 하고 기다린다. 택배가 도착하면 바로 손질해서 먹고 재료를 이용해 각종 요리를 한다.
자신이 만든 요리가 환상적인 맛을 보여줄 때 남편은 흥분(?)한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순간에는 다른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필자가 잠깐 화제를 돌리면 대답도 하지 않고 딴소리를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이 한 요리를 먹으면서 “어제 누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서 화제를 꺼내면 “그런데 이거 진짜 맛있지?” 하며 동문서답을 한다.
요리도 물론 '능력'에 속한다. TV에서 하는 요리 대결을 걸 보면 같은 시간, 같은 노력이 주어져도 결과물의 차이가 크게 난다. 요리도 외국어를 잘하거나 글쓰기를 잘하는 것처럼 타고난 재능과 감각이 필수다. 우선 재능과 감각이 있고 거기에 취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요리에서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성을 있어야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많은 사람이 요리를 취미로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은퇴한 남자들은 도전해볼 만하다. 요새는 먹방에서도 요리하는 남자를 섹시남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과거처럼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하지도 않는다. 우선 밥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아주 특별하게 요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새로운 삶을 맛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가족은 6·25 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이다. 저의 시부모님은 일제 강점기 시절 동경 유학 생활 중에 만나서 당시로서는 드문 연애 결혼을 하셨다. 시어머님은 3남 1녀를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시던 중 6.25 전쟁의 발생으로 시아버님이 납치 되신 것이다.
어머님은 6·25당시 34살의 젊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셔서 갖은 고생을 하시면서 자제분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키셨다. 어머님은 저의 결혼 후 평생 우리랑 함께 사시다가 5년전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얼마 전 6·25를 맞아서 정부로부터 를 받고 남편은 많은 감회에 젖었다. 남편은 아버님의 납치 후 직장 생활 초기에는 혹시라도 이북의 아버님과 접촉할까봐 출장 허가도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던 필자는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때는 지금처럼 건강 프로그램도 별로 없어 뇌졸중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회복은 했으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몸이 불편한 상태이다. 내가 쓰러지자 가정 생활은 즉시 엉망이 되었고 또 남편은 곧 정년 퇴직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모 방송국에서 30 년 넘게 근무하고 정년 퇴직을 한 남편의 퇴직금은 그 때로서는 많은 금액이었다. 그 때는 퇴직금도 미래가 어떨지 모른다며 매달 지급되는 연금으로 받지 않고 일시불로 받던 시대였다. 그리고 당시엔 은행의 이자도 상당히 높아서 이자로만 살아도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또 그 때만 해도 장수 시대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은퇴 후의 생활 준비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어떻게 퇴직금을 관리 해야할 줄도 몰랐다. 그 때는 지금 유행하는 ‘은퇴 이후의 재무 설계’ 같은 말은 존재 하지도 않았다.
남편이 할 일을 못 찾아 힘들어 하던 어느 날 필자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은 주례 협회에서 직업적 주례사를 모집한다는 걸 보고 남편 몰래 응모를 했다. 남편이 방송국에서 방송 경험이 있으니 주례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실제로 주례 경험도 많았기에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남편 대신 응모 서류를 보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을 할 정도로 궁핍하진 않았지만 하루 하루 똑같은 무료한 생활로 시간 보내는 남편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나름대로 활력을 줄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합격 통지를 받고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말을 했더니 엄청 화를 내면서 누굴 뭘로 보냐며 자기를 무시 했다고 몇 달 동안 나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면 남이 자길 얼마나 궁하게 보겠냐며 자긴 앞으로 돈을 버는 일은 절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는 거였다. 사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 출근만 하면 하루 종일 온통 내 세상이었는데 갑자기 하루 종일 붙어 있기가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의 단순한 생각이 남편을 화나게 만든 것이었다. 요즘은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요령이 생겨, 퇴직 초기처럼 싸우지도 않고 서로 각자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필자를 보면 대견한 생각이 든다.
귓가의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했다. 함께 탄 구급대원은 쉴 새 없이 무언가 물었지만 너무나 혼란스러워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시끄러운 구급차의 신호음을 비집고 들리는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 했다. 그저 가족이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뿐이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만난 김해임(金海任·57)씨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과 몇 달 전인 6월 6일의 일이다.
해임씨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우려가 앞섰던 것은 당연한 걱정이었다. 뇌출혈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는 대부분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라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일이다. 당연히 뇌와 관련한 장애가 생겼다면 인터뷰 진행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각오를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김해임씨의 모습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의외였다. 그의 이런 건강한 모습 뒤에는 마치 드라마 속 우연처럼 기적을 만들어낸 몇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수영에 한창 재미 붙였는데…”
김해임씨가 수영을 시작한 것은 사건이 벌어지기 6일 전의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남편과 친오빠를 두 달 간격으로 하늘로 보내야 했다.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올봄에는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는 일로 진절머리를 앓기도 했다. 즐거운 일은 조금도 찾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럴 때 친언니가 권한 것이 수영이었다.
“수영에 푹 빠져 있었던 언니가 권하더라고요. 나이 먹을수록 체력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들고, 운동을 좀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수영이 딱 맞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까운 동네 문화체육센터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죠. 올해 6월 1일부터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사달이 난 것은 며칠 후인 현충일이었다. 그 전날까지 전조증상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다음 날 수영 수업이 기대될 뿐이었다. 수영패드를 쥐기는 했지만 물에 떠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다.
“콧속에 물이 들어가면 좀 찡하잖아요. 그날은 그렇게 찡한 기분이 수영 시작하자마자 들더라고요. 물을 들이마시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냥 이상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팠어요. 수영장 안전요원에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심각성을 느꼈는지 바로 119에 신고하겠다고 했어요. 이 정도 일로 구급차를 불러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안 가 뒷목이 너무 아팠어요. 그 이후로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죠.”
보기 드물게 운 좋은 환자
김씨를 치료한 인천성모병원 신경외과의 장동규(張東奎·44) 교수는 “정말 운 좋은 환자”라고 말했다.
“이렇게 치료 결과가 좋고 후유증이 없는 뇌출혈 환자는 보기 드물어요. 빠른 대처가 환자를 살린 셈이에요. 119에 신고가 접수된 것이 오후 3시쯤이고, 병원에 도착한 것이 3시 30분이었어요. 증상이 나타난 지 30분 만에 의료진이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초기 대응이 신속했던 거죠. 또 하나 운이 좋았던 부분은 환자의 출혈량이에요. 뇌출혈의 위험도를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출혈량인데 환자의 출혈량은 매우 적었어요. 여러모로 행운이었습니다. 처치가 늦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장 교수가 설명하는 김씨의 정확한 병명은 내경동맥박리로 인한 뇌지주막하출혈. 쉽게 설명하면 뇌의 우측 내경동맥 일부분이 찢겨 피가 혈관 밖으로 새어나간 것이다. 자발성 뇌출혈은 주로 고혈압에 의해 자발적으로 터지는 자발성 뇌내출혈과 뇌지주막하출혈 등으로 나뉘며, 뇌지주막하 출혈은 뇌동맥류의 파열에 의한 경우와 혈관이 찢어지는 뇌동맥박리에 의한 경우로 나뉜다. 물론 모두 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 중에서도 뇌동맥박리로 인한 출혈의 경우 출혈량이 많으면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뇌지주막하출혈 환자 중 내경동맥박리에 의한 뇌출혈 환자는 0.3% 미만일 정도로 흔치 않다.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약간의 출혈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없었어요. 뇌혈관조영술을 통해 찢어진 부위가 의심되는 부위가 있었지만 뚜렷하지 않아, 일단 환자의 혈압을 안정시키고 나서 이틀 후인 6월 8일에 뇌혈관조영술을 다시 시도했어요. 혈관 모양이 변화된 것이 확인돼 뇌동맥박리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이라고 확진하고 스텐트 삽입술을 진행했습니다. 더 이상 출혈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요.”
혈관용 스텐트는 금속으로 된 원통형의 그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스텐트는 제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며칠 후 확인해본 결과 혈관의 모습이 기대와는 달랐다. 가성동맥류라고 부르는, 피로 찬 주머니가 혈관 밖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재출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치가 필요했다.
1m 퍼팅, 하지만 홀컵이 3mm라면
장 교수는 코일색전술이라는 치료법을 선택했다. 피가 고이지 않도록 주머니에 백금으로 만들어진 아주 얇은 실을 타래처럼 꼬일 때까지 삽입하는 방법이다. 백금사가 자리를 잡으면 피가 응고돼 더 이상 터질 염려가 없는 작은 혹으로 남게 된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시술 방법이 매우 까다롭다. 허벅지에 있는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했다가 피가 고여 있는 부위까지 미세 카테터를 병변부위까지 삽입하고, 백금사를 넣는 방법이다. 스텐트 삽입술과 비슷하지만 난이도가 훨씬 높다.
허벅지에서 뇌동맥까지 거리는 약 1m 남짓. 일반적인 골프의 퍼팅이라면 초심자도 도전해볼 만한 거리이지만, 이 수술의 목적지는 108mm 홀컵과는 완전히 달랐다. 혈관에 튀어나온 부위는 높이가 1.45mm, 너비가 2.9mm로 여드름 크기에 불과했다. 1m 밖에서 얇은 실을 여드름 안에 넣어야 했다. 게다가 터지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시술은 6월 22일에 이뤄졌다.
“아무래도 긴장이 많이 됐죠. 코일색전술은 3mm 이상의 환부에 시술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카테터가 들어가다 출혈이 생길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생명 살려
다시 김씨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로 돌아가보자. 김씨가 완벽에 가깝게 생명을 살리고 몸을 회복할 수 있었던 그날, 또 하나의 비밀이 있었다. 김씨가 응급실에 도착하고 나서 의료진이 치료를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악다구니에 가깝게 절규하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씨의 언니 김해자(金海子)씨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 자매를 공포로 몰았던 것의 바탕에는 집안의 가족력이 있었다. 자매의 어머니와 큰언니도 뇌혈관이 막히는 병인 뇌경색을 앓았다. 지난해 친오빠도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자매는 당시 병원에서 좀 더 서둘러줬다면 오빠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생 해임씨마저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지켜본 해자씨는 극도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진이 서두르고 있었는데도 해자씨는 다급하게 외쳐댔다. 1분 1초가 억겁 같았다. 해임씨는 응급실에 실려와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는데도 언니의 그 모습을 또렷이 봤다고 했다.
“저도 머리가 아파오자 돌아가신 오빠 생각이 났는데, 언니도 마찬가지였겠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고 해요. 저도 두려웠고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가려는 구급차를 규모가 큰 이곳으로 돌린 것도 언니였어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큰 병원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골든타임 맹신하면 안 돼
그렇다면 뇌출혈은 왜 발생하는 걸까. 장 교수는 그 원인을 기본적인 데서 찾았다.
“혈관성 질환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고혈압이에요. 혈압이 높으면 혈관에 문제가 생기기 쉽죠. 특히 나이가 들면 특별한 질환이 없어도 혈압이 오를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한두 해 전의 검사결과로 안심하고 자신의 건강을 맹신하곤 하는데, 혈압이 오르는 이유는 다양해요. 그러므로 자주, 정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거나, 흡연 및 기름진 식습관으로 인한 고지혈증도 고혈압의 원인이 됩니다. 신장과 같은 장기의 이상으로도 혈압이 오를 수도 있고, 운동 부족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밖에 장 교수가 지목한 원인은 바로 가족력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가족력이 있다면 본인의 상태도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 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빠른 대처라고 했다.
“흔히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시간 전까지 오면 언제든 괜찮다는 뜻은 아니에요. 한시라도 빨리 와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해요. 빠른 시간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부분 후유증이 남게 돼요. 너무 늦거나 상황이 심각하면 환자를 살릴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매초마다 뇌세포는 죽어가고 있다고 여겨야 해요.”
장 교수가 말하는 후유증이란 우리가 흔히 중풍(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다. 뇌졸중은 뇌출혈과 뇌경색을 아울러 표현하는 말이다. 후유증에는 전신의 한쪽만 마비되는 편마비나 언어장애, 삼키는 데 문제가 생기는 연하장애, 혈관성 치매 등이 있고, 심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 보행장애가 오면 이동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주님이 내게 기회주신 것
김씨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크게 걱정한 사람들 중에는 그의 학생들도 있다. 매주 하루씩 부광노인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의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학생들이 병실로 달려와 안부를 물었다. SNS 메신저에는 쾌유를 비는 기원들로 가득했다. 또 그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로 병실이 가득 차기도 했다고.
병실에 방문했던 지인들이 멀쩡히 대화하고 행동하는 그를 보고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것도 병원에서의 좋은 기억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교회 지인분들은 저 때문에 두 번이나 놀랐다고 해요. 처음엔 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놀랐고, 또 한 번은 퇴원해서 교회를 나갔을 때 너무나 멀쩡한 제 모습에 또 놀라신 거죠.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노인대학 강의도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고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 것과 마찬가지니까 한 사람의 몫을 더 하며 살아야겠죠.”
치매 환자의 증가는 국가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치매 국가책임제의 시동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고, 치매 환자 관리는 이미 정부기관을 통해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중앙치매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환자 수를 살펴보면, 9월 현재 65세 이상 노인 약 711만 명 중 치매 환자는 10%가 넘는 72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치매 환자 하면 대부분 알츠하이머병을 떠올리지만 치매의 한 종류인 혈관성 치매 역시 적지 않다. 전체 치매 환자 중 16.5%인 약 12만 명이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다. 혈관성 치매의 문제 중 하나는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金希珍·46) 교수를 통해 혈관성 치매의 위험성을 알아봤다.
“시니어들이 혈관성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김희진 교수가 질환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만큼 중요한 얘기라는 뜻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아직 100% 예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또한 발병하면 병의 진전을 미루는 것이 주된 치료법이고 완치법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예방이 가능한 치매예요. 관심 갖고 건강관리를 해나간다면 혈관성 치매를 막을 수 있습니다.”
혈관성 치매가 예방 가능한 이유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혈관성 치매의 발병 원인은 뇌혈관의 기능 이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중풍’이라고 부르는 뇌졸중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혈관성 치매는 뇌출혈이 생겨 발생하는 출혈성 뇌혈관 질환과 뇌혈관이 막혀 뇌세포가 죽는 허혈성 뇌혈관 질환, 즉 ‘뇌경색’ 으로 나뉜다. 전체 환자 중 허혈성 뇌질환이 약 80% 정도로 흔하고, 출혈성 질환은 20% 정도다.
이러한 질환들은 대부분 뇌세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혈관이 막혀 혈액 공급이 안 되거나 출혈이 발생하면 뇌세포는 피해를 입는다. 이런 이유로 뇌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장애가 오는 질환을 혈관성 치매라고 부른다.
“뇌졸중은 대부분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만 조절하면 예방이 됩니다. 혈관이 터지는 것도 막히는 것도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니까요. 다만 혈압이나 혈당을 관리할 때 중년과 노년은 그 기준 수치를 다르게 해야 해요. 혈압은 나이 들어가면서 다소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중년의 기준에 너무 철저하게 맞추려다 저혈압 증상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출혈성 혈관성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혈압을 낮춰 뇌출혈을 예방하고, 허혈성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통해 혈전으로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병
혈관성 치매의 또 다른 특징은 갑작스러운 발병이다. 특히 뇌출혈이 발생할 경우 급격하게 뇌기능이 나빠져 말 그대로 갑자기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경과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어느 날 갑자기’라고 표현해요. 느닷없이 저림이나 따가움, 운동장애가 온다면 뇌출혈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한쪽만 증상이 나타나는 편마비는 강력히 의심해야 해요. 언어장애가 나타나거나 시야가 좁아지거나 복시, 두통, 보행장애가 나타나도 마찬가지예요. 주저 말고 119에 전화하셔야 합니다. 보통 골든타임을 3~4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빠를수록 좋아요.”
뇌졸중은 발병 초기에 제대로 치료만 해주면 상당 부분 회복이 가능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출혈이나 허혈성 뇌경색으로 인해 일부 뇌세포가 죽게 돼도 주변의 다른 뇌세포가 그 기능을 대신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작은 뇌혈관이 서서히 막혀서 오는 피질하 혈관성 치매는 천천히 발병하는 대신 회복이 어렵다.
“의외로 젊은 사람에게서 발병하기도 해요.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고 우울감이 오면서 무기력해지는 특징이 있어요. 집 안에만 있으려 하고요. 배뇨기능에 문제가 생겨 자주 소변을 보면서 오줌싸개가 되기도 해요.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피질하 혈관성 치매는 MRI 촬영 등 진단을 통해 알아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노인성 질환으로 치부해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해요.”
혈관성 치매 역시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만약 가족력이 있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가족 노력에 따라 차도 달라져
김 교수는 혈관성 치매의 발병에서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성격이 변한다든가 무기력해지는 등의 사소한 변화를 최초 증상으로 의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어요. 또 혈관성 치매는 혈류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가족의 독려가 필요해요.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지역 주간보호센터를 통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가족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환자는 요양원에 갈 정도까지 악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식생활도 매우 중요하다.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단 조절이 필수적인데,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채소는 매일 먹어야 한다. 붉은 고기는 가급적 멀리하고, 생선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먹을 것을 권한다. 큰 생선은 중금속 축적이 많기 때문에 이로 인한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꽁치나 고등어 같은 DHA나 EPA를 많이 포함해 뇌에 좋은 등푸른 작은 생선이 좋다. 올리브 오일과 해산물을 풍부히 섭취하는 지중해식 식단도 좋다. 물도 매일 충분히(하루 6잔 정도) 마셔야 한다. 물론 담배는 끊어야 하고, 술을 마실 경우 하루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 이렇게 까다롭게 식단 조절을 하는 이유는 병의 원인인 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의 조절을 위해서다.
“통계적으로 60세 이상의 노년기에는 마른 체형이 치매가 잘 오는 편이에요. 그러므로 원칙을 지키면서 잘 먹는 것이 중요해요. 맛있게 잘 드셔야 해요. 치매 판정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철저한 식단 관리 보다는 골고루 잘 먹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혈관성 치매가 오면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좋은 것을 먹어도 대부분 배설되고 말거든요. 환자가 싫어해도 골고루 잘 먹도록 가족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병이 깊어진 상태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살펴야 한다. 치매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 대부분은 그 자리를 일시적으로 피하라는 조언도 하지만, 환자가 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함께 생활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됩니다. 공격적이거나 화를 내는 건 배변 문제일 때도 많아요. 오래 배변을 못해 답답한 상태인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인 거죠. 이럴 땐 배를 만져보면 알아요.”
김 교수는 가족이 환자 상황에 따라 세세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의가 절대적이라고 조언한다.
“신경과 의사들은 치매 환자들이 공격성을 보여도 겁내거나 물러서지 않아요. 늘 겪는 일이니까요. 대부분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어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치매 치료의 근본적인 목표는 환자가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봄에 받은 생애전환기건강진단결과에 대한 상담이었다.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였다.”면서 경계선을 넘나든 두어 가지 건강지표를 지적하였다. 보관하고 있는 지난 몇 년 동안의
국가건강검진결과를 살폈다. 세월이 흘러도 보험공단의 건강목표가 변동되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학계에서는 건강목표의 개선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의 실정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 되었다. 사회에서는 지표기준을 병원ㆍ의사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많은 체질량지수를 비롯하여 혈압ㆍ당뇨ㆍ고지혈증 대사증후군도 건강목표가 변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날씬했던 몸매는 나이가 들면서 풍만해진다. 장년을 지나 노년기에 들면 다시 야위어 간다. ‘만물이 생성ㆍ소멸하는 우주의 이치’다.
힘은 사그라지고 키도 점점 줄어든다. 몸도 가벼워지지만 그 속도가 키의 그것을 따르지 못할 뿐이다. 몸 상태는 나빠지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체질량지수는 수치상으로는 조금씩 오른 상태다.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게 되는 지점이다. 국가검진을 신뢰하기 위하여 나이에 따라 건강지표를 바꿔야 하는 이유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건강 걱정이 앞선다. 날마다 체중계에 오르고 피를 뽑아서 당뇨 체크를 하고 혈압을 잰다. 이제는 심근경색, 뇌졸중 등 돌연사도 혈압과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접한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있다. 국가적 차원 연구개발로 돌연사 원인을 찾아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위암환자에게 한두 잔의 막걸리가 좋다는 소식도 들었다. 암환자에게 금기시 되었던 음주문제다. 필자가 대장암 확진을 받았을 때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술 한 잔도 못한다면 너무 삭막할 것 같다‘고 의사에 말했었다. ”적당한 음주는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막걸리 한사발로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얼마 전 암학교 5년을 졸업하였다.
국가검진에서 흡연과 음주는 공공의 감시대상이다. 필자는 20년 전에 금연에 성공하였다. 그후로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우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과거흡연을 문제로 지적한고 있다. 금연하고 몇 년을 지나야 하는가. 음주를 보자. 알콜 분해 능력에 따라 개인별 음주량 차이가 많다. 맥주 한모금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 상당량을 들이켜도 까딱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평가기준은 같다.
보험공단은 국민건강을 관리하면서 데이터도 많이 축적하였다. 건강지표를 나이에 따라 20ㆍ50ㆍ60대 등 세대별로 세분화하거나 소년ㆍ청년ㆍ장년으로 구분하여 설정할 필요가 있다. 자기 몸에 맞는 목표가 필요하다. 보험공단이 정한 획일적인 목표가 아닌 적어도 나이별 건강지표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국민은 그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국민건강복지에 감사한다. 대한국민의 긍지를 갖는 대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건강지표 나이에 맞게 바꾸라’고 촉구하면 지나칠까.
얼마 전 신문에 보도 된 바에 의하면 성수동에 있는 서울 공기 오염의 원인이라고 말이 많은 삼표 레미콘 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 곳에 현재 있는 서울의 숲이 확장 되어 들어선다고 한다.
서울의 숲은 필자가 살고 있는 청구동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이다.
필자는 결혼 후 강남의 반포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아들을 결혼 시키고, 수 년 전에 우연히 강북의 약수역 근처인 청구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항공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들의 직장이 김포 공항 근처라 공항 가까운 목동에 집을 마련 해주고 우린 옛날 어릴 때 살던 장충동과 가까운 이 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보니 우선 서울의 중심인 중구이기 때문에 국립극장이나, 덕수궁, 경복궁 등의 문화재가 집과 아주 가까워서 만약의 경우 택시를 타게 되어도 돈 만원 정도면 해결이 된다. 또 광화문이 가까워 세종 문화회관의 공연도 가기가 편해서, 교통의 불편으로 악마의 장소로 불리는 예술의 전당의 공연보다 훨씬 쉽게 즐길 수 있다. 또 남산 공원이나 장충단 공원도 가까워 답답한 날에는 drive를 즐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이다.. 동대문 의류 시장이 가까워 옷 값이 싸고, 과일 야채도 재래 시장이 멀지 않고 저소득 층 상대라 강남에 비해 너무 싸고, 물건도 아주 싱싱하고 좋다.
또 의류 시장에 납품하는 의류 수선 점이 많아 수선비가 싸서 몸이 불어서 못 입는 옷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수선할 수 있다. 또 최근에 젊은이들의 뜨거운 장소로 뜨고 있는 이태원의 경리단 길이나 서울의 Central park 라고 불리는 연남동의 ‘연트랄 파크’의 이름난 중국 요리 집도 자동차로 가면 멀지 않아 어렵지 않게 가서 외식도 즐길 수 있다.
또 날씨 좋은 가을 날에는 가끔 뚝섬 역 가까이에 있는 서울 숲에 가서 산책을 즐기는데 너무 넓어서 한 바퀴 돌려면 휠체어를 타야만 한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애인이 되었고 후유증으로 지금도 몸의 한쪽이 불편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먼 거리는 혼자서 걷지 못하고 올해 77세인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물론 집안 살림은 거의 남편이 맡아서 하고 또 하루에 3시간 씩 오는 도우미 아줌마에게도 많은 의지를 한다.
한때 홍콩 감독 허안화(1947년~)에 관한 국내 평가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실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주는, 높낮이가 심한 연출자”였다. 그러나 필자는 (1997)과 같은 범작에서도 실망한 적이 없다. 서극, 담가명 등과 함께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안화는 진중한 사회파 드라마에서부터 액션, 시대극, 멜로를 아우르며 홍콩과 홍콩인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저력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모녀의 20년 세월을 그린 (1990), 치매 노인을 둔 가정 이야기를 맏며느리 중심으로 그린 (1995), 매염방의 연기로 영원히 기억될 (2002)만으로도 그가 영화계에 남긴 선물과 성취는 이미 넘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류라는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인 허안화가 마지막 연출작으로 생각했던 (2011)는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얻었다. 이로 인해 허안화의 은퇴 심경을 번복하게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처음 소개된 는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제48회 금마장영화제 감독상 등을 받았고 2012년 제84회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부문 홍콩 영화로 선정되었다.
는 단 한 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 그래서 절정도 극적 엔딩도 없는 담백한 영화다. 그렇다고 지지부진하고 무의미한 일상 묘사에만 머무는 심심하고 지루한, 소위 예술 영화인 체하는 작품도 아니다. , , 과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의 삶과 인간관계를 깊이 사색할 수 있는, 그러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수채화 같은 영화다. 겸손하고 진지한 현실 응시와 표현력이 영화의 미덕임을 확인케 하는 작품인 것이다. 이런 영화를 계속 내놓는 허안화의 뚝심과 이 같은 소재에 제작비를 대는 홍콩 영화계의 인프라가 존경스럽고 부럽다.
는 홍콩의 최고 스타 류더화(유덕화)가 제작을 자처하고 시나리오에 감동받아 주연까지 요청한 작품이다. 홍콩 누아르의 청춘 아이콘에서 진지한 소품에 돈을 대는 제작자로 성숙한 류더화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윤발, 양조위, 여명, 양가휘 등 홍콩 남성 스타들은 어쩐 일인지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데, 특히 1961년생인 류더화는 대학생 역할을 맡아도 빠져들 만큼 늙은 티가 나지 않는다. 에어컨 수리기사로 오인받을 정도로 허름한 잠바와 배낭 차림으로 나오는 에서도, 노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2012)에서는 조연으로 잠깐 출연하는 등 역할의 크고 작음을 문제 삼지 않는 류더화 같은 스타 제작자가 있어 홍콩 영화계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는 시리즈와 등을 제작한 홍콩의 유명 영화 프로듀서 로저 리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했으며, 로저 리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식구만을 가족으로 여기는 편협한 사고가 고령화 사회의 걸림돌이 될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혼자 홍콩에 남은 영화 프로듀서 로저 리 (류더화 분)는 잦은 중국 출장 등으로 바쁘게 산다. 그런 그를 돌보는 것은 60여 년 전부터 그의 집에서 일해온 늙은 가정부 타오지에(예더셴 분)뿐.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타오지에는 로저의 짐이 될 수 없다며 요양원을 고집한다. 자기 집안 식구를 4대나 모셨으며 자신을 키워주기도 했던 타오지에를 보러 이따금 요양원을 찾는 로저와 양아들 노릇을 해주는 그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는 타오지에와의 이심전심. 그리고 두 사람 눈에 비친 요양원 노인들의 일상.
출장에서 돌아와도 이렇다 할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타오지에가 자신의 식성에 맞춰 요리해주는 각종 해산물 요리와 우설 찜을 먹기만 하는 로저. 그는 먼지 하나 없이 집 안을 쓸고 닦는 타오지에를 늘 제자리에 있는 가스레인지 혹은 청소기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는 그의 무심한 성격에서 기인했던 것일 뿐, 타오지에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로저는 따뜻한 본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관절을 못 쓰게 된 나이에 이르기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로저의 가족을 돌봐온 타오지에에겐 로저 가족과의 관계가 전부다. 노인병원에서 잠시 외출 나온 타오지에는 그동안 보관해온 소중한 물건들을 로저에게 보여준다. 그녀가 평생 간직해온 것은 로저와 함께 찍은 옛날 흑백 사진, 로저가 아기 때 입었던 옷과 장난감, 그리고 자신의 첫 월급봉투 등이었다.
자신과 함께 시부모를 봉양해준 타오지에를 병문안하러 온 로저의 어머니는 로저와 단둘이 지내게 되었을 때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무조건 베풀기만 했던 타오지에의 행동과는 대조되는 행위였다. 즉 로저에게 타오지에라는 존재는 어머니보다 더 가까운,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이해해주는 또 다른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는 로저가 누이에게 하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내가 아플 때 타오지에가 나를 돌봐줘 살아났는데, 이제 내가 그녀를 돌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누이는 오빠에게 “어린 시절 유독 오빠만 챙겼던 타오지에가 서운했어. 그러나 나도 타오지에가 키워줬으니 장례식 비용만큼은 내가 부담하게 해줘”라고 말한다.
이처럼 로저의 가족은 타오지에의 헌신에 깊이 감사해하며 그녀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특히 로저는 타오지에가 퇴원해서 살 집은 물론 요양병원 비용까지 알아서 준비한다. 형제의 결혼식 피로연에 타오지에를 데려가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다거나, 자신이 제작한 영화 발표회장에 타오지에를 초청해 그녀에게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모자지간이나 다름없는 로저와 타오지에의 관계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장면은 두 사람 눈에 비친 요양병원 노인들과 직원들의 일상이다. 정초 연휴 때도 병원에 남아 있는 노처녀 최 간호사(진해로 분). 아들에게 전 재산을 준 뒤 버림받았음에도 아들만 기다리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서도 모시러 오는 딸. 깊은 병에 걸린 딸과 그 딸을 보러 오는 어머니는 병원비 걱정 끝에 말없이 사라진다. 타오지에에게 돈을 빌리곤 하는 노인의 에피소드도 가슴 뭉클하다. 빌린 돈으로 젊은 여자를 사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저가 돈 빌려주지 말라고 하자 타오지에는 이렇게 말한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지.”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삽화처럼 간간이 등장할 뿐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의 전 인생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류더화와 예더센을 제외한 요양원 노인들은 비전문 연기자들이며, 요양병원 묘사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유머와 페이소스가 곁들여진 소소하면서도 세심한 묘사가 더해진다.
커튼으로 가림막을 한 조그만 방들이 다닥다닥한 한 서민요양병원 스케치는 에서 여주인공 손 여사의 이모와 이모부의 요양원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는 의 자매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소재와 묘사의 연관이 많아 보이며, 절제된 카메라워크와 단정한 화면구성 또한 그러하다.
1961년생인 류더화와 1947년생인 예더센은 (1985)에서 모자 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이래 여러 차례 모자지간으로 출연한 바 있어, 에서의 호흡이 자연스러웠고 각종 연기상으로 그 보답을 받았다. 1992년 공리가 로 여우주연상을 탄 이래, 예더한은 19년 만에 중국어권 여배우로 두 번째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유명 감독과 배우의 우정 출연도 이야깃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로저가 중국 출장에서 영화 일정을 의논하고 함께 술을 마시는 영화인들로는 , 시리즈의 서극 감독, , 등의 제작자 시남생, , 등으로 유명한 감독이자 배우인 홍금보인데 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중풍’은 ‘풍에 맞는다’는 의미다. 풍은 떨리는 증상, 저리는 증상, 시린 증상을 포함한다.
흔히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뇌 손상이 발생하며 생기는 병이다. 뇌졸중과 비슷하지만, 중풍은 ‘뇌졸중’으로 분류하지 않는 질환도 포함하고 있어 그 범위가 좀 더 넓다. 중풍은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린다. 한 번 발병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얼굴이나 팔, 다리가 저리면서 마비 증상이 오고 말투도 어눌해지는데 심해지면 전신이나 팔, 다리 등 몸의 일부가 마비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환자의 수가 이전보다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인구 100명당 남자는 3.94명, 여자는 2.52명의 중풍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2015년 기준). 하우연한의원 윤정선 원장에게 중풍의 발병 원인과 예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요즘은 이전보다 중풍 환자가 줄어든 것 같은데 맞나요?
요즘은 모두들 건강에 관심이 많아 검진도 자주 하고 미리미리 고혈압 약도 챙겨드시니 중풍 환자들이 예전에 비해 좀 줄어들긴 했죠. 하지만 중풍이 심한 분들이 외부 활동을 잘 안 하셔서 그렇지, 아직도 우리나라의 중풍 발병률은 세계 1위입니다. 성인의 3대 사망 원인 중 빈도수가 가장 높습니다.
중풍의 원인은 뭔가요?
풍은 몸 안에서 생기는 내풍과 외부 환경으로 생기는 외풍으로 구분되는데, 주로 유전에 의한 체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합니다. 혈관의 탄력이 약해지거나 혈액이 탁해지는 것도 유전적인 요인이 있거든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환경적인 요인을 더해 간의 기운이 울체(기혈이 퍼지지 못하고 한곳에 몰려 막혀 있는 증상)되고 그 기운이 오래되면 사지(四肢)가 힘없이 늘어지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며 근육 경련이 자주 일어나는 ‘간열’이 발생하면서 서서히 고혈압 증상이 생기는 거죠. 간열이 심해지면 그다음 단계가 스트레스가 심해 지거나 화를 잘 내게 되는 ‘간화’, 머리가 심하게 어지럽고 팔다리가 땅겨서 잘 걷지 못하는 ‘간풍’으로 진행되면서 풍이 발생합니다.
고혈압 외에 중풍과 연관된 질병이 있나요?
한의학에서는 그동안 고혈압 단계부터 중풍으로 보고 치료를 해왔어요. 최근엔 양방에서 고혈압 약이 손쉽게 처방되고 관리되면서, 뇌경색이나 뇌졸중의 단계를 중풍으로 보고 있어요. 평소 고혈압이 있거나 당뇨가 있어서 말초순환에 장애가 있는 경우 합병증으로 중풍이 올 수 있습니다.
중풍에도 전조증상이 있나요?
근육 떨림이나 손 저림, 순간적으로 한쪽 사지에 힘이 떨어지거나 어지러움, 잦은 두통, 안면 홍조와 뒷목 당김, 불면증 등이 전조증상입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증상들이 전조증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들은 폭풍이 오기 전에 잔가지가 떨리듯 미리 보여주는 증상일 수 있으므로 비슷한 증상이 오면 꼭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봐야 합니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중풍은 한 번 발병이 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후유증이 큽니다. 병이 커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입니다.
전조증상을 느끼면 이미 늦은 상황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고혈압 증상이 있고 위에서 말한 전조증상들이 나타나는 중풍 초기라면 한방 치료가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미 진행이 많이 되었다면 큰 병원에 가서 치료할 것을 권합니다. 한방 치료는 중풍 전조증과 중풍 후유증 치료에 더 적합합니다.
한의원에서는 중풍 검사를 어떻게 하나요?
진맥을 통해 중풍 전조증상을 진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양방과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해요.
양방 MRI 검사 등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진맥을 해보면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죠. 양방 진료를 믿고 치료를 늦추다가 풍을 맞은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방 검사에 이상이 없어도 진맥과 증상으로 중풍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치료를 늦추면 증상이 심해지나요?
대부분 병원 가는 것을 늦춰서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중풍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만성두통, 두통으로 인한 구토, 언어장애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면 절대 치료를 늦추면 안 됩니다. 특히 50세 이상이거나, 뇌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과 흡연자의 경우는 40세 이후부터 뇌질환 관련 건강검진을 1년에 한 번 이상 받아야 합니다.
한의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하나요?
중풍 전조증상이 있으면 중풍환과 사혈요법, 침 등으로 최대한 관리하고 치료 과정에서 증상의 완화가 더디거나 심해지면 양방 치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중풍 재활 치료에서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돕습니다. 양방 재활 치료를 통해 많이 호전되기는 하지만 여기에 한의학 치료를 겸하게 되면 재활시기를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의원에서는 재활을 위해 한약 치료, 침 치료, 재생 치료, 보행특화 치료 등을 해요. 한약 치료를 통해 오장육부와 뇌에 진액을 충분히 공급하고 침 치료를 통해 뇌신경, 척추신경을 활성화시킵니다. 재생 치료는 뇌, 신경, 혈관 등의 재생을 돕습니다.
예방법을 알려주세요.
중풍은 크게 오기 전에 신호를 꼭 보내는데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작은 증상이라도 진료를 통해 예방해야 합니다. 식생활 관리나 금연, 유산소 운동, 체중관리 등 생활습관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짜거나 자극적인 음식, 동물성 지방질이 풍부한 음식들은 피해야 합니다. 기름진 음식은 경락의 순행을 막아 열을 일으켜 중풍이 발생할 확률을 높이거든요. 유산소 운동은 순환기계를 튼튼하게 하고 혈관을 보호해주고 동맥경화의 위험 요인들인 스트레스와 비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비인다중풍(肥人多中風)’이라 해서 비만하고 습이 많은 사람에게 중풍이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어요. 스트레스 관리도 필요합니다. 지나친 감정적 자극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화열(火熱)이 심해져 중풍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야채나 과일은 중풍 발생 위험이 3분의 2로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1년간 금연하면 흡연 때에 비해 중풍 발생 위험이 반으로 감소하고 5년 이상 금연하면 비흡연자와 같은 수준으로 위험도가 줄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