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세먼지 주의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를 자주 받는다. 연일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예보하는 가운데, 노약자와 기저질환자(호흡기질환, 심뇌혈관질환, 천식)의 경우 건강보호에 더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세먼지는 피부와 눈, 코, 인후 점막뿐만 아니라 호흡기와 혈관을 통해 인체 곳곳에 자극을 준다. 특히 폐렴, 폐암, 뇌졸중, 심장질환, 천식 등의 질병을 악화하고, 노년층의 경우 호흡기질환, 심혈관 질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안하는 ‘미세먼지 대비 건강보호 수칙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주거지역의 미세먼지 예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미세먼지 농도가 나쁠 시, 외출 자제하기
기저질환자의 경우, 기존 치료를 잘 유지하기
의사와 상의하여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식약처 인증) 착용하기
증상 악화 시 의사 진료받기
특히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호흡곤란, 두통 등의 발생한다면 마스크를 즉시 벗고 의사와 상담 후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저질환자의 경우 무엇보다 미세먼지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바깥 활동을 줄이고, 창문을 닫은 채 실내에서 지낼 것을 권한다. 아울러 다음 수칙을 건강관리에 참고하자.
# 호흡기질환자
꼭 외출을 해야 할 경우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는 구제약물을 반드시 소지한다. 호흡곤란, 가래, 기침 등 증상이 악화되면 바로 병원으로 간다. 부적절한 마스크 착용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니, 의사와 상의 후 알맞게 착용한다.
# 천식환자
외출 시에는 천식 증상 완화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미세먼지가 높은 날이 지나도 한동안 그 영향이 지속되므로, 평소 하던 천식 치료를 더욱 철저하게 유지한다. 비염 등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 미세먼지의 영향이 클 수 있으니 필요시 의사와 상담한다. 기침, 호흡곤란, 쌕쌕거림 등 천식 증상과 최대호기유속을 측정해 천식 수첩에 꼼꼼히 기록해둔다.
# 심혈관질환자
심장 및 뇌혈관 질환자는 장시간 힘든 육체활동을 줄인다. 기존 질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되 실내에서는 공기청정기 등을 사용한다. 물을 적당히 마시는 것은 몸 밖으로 노폐물을 내보내는 효과가 있어 도움이 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인천성모병원과 함께 ‘백세 건강 챙기는 가정용 의료기 백배 활용법’을 연재합니다. 시니어가 흔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의료기를 제대로 알고 쓸 수 있도록, 재미있는 영상과 함께 찾아갑니다. 영상은 네이버TV 브라보 마이 라이프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감수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출연 안지현 인천성모병원 간호사
“무슨 저주쯤으로 생각해요.” 어느 내과 전문의의 하소연. 고혈압은 약물로 조절해야 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혈압을 낮추기 위해 약을 먹는다는 것은 매일 아침 이를 닦고 일과를 시작하듯 고혈압 환자에겐 일상이 된다. 그러나 ‘평생’ 고혈압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것에 보통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약 때문에 몸이 더 망가지진 않을까, 다른 의존증이 생기진 않을까, 혹시 제약회사의 음모는 아닐까 하는 의문들. 의사들이 미신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혈압은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이나 약물을 통해 적정 혈압으로 낮추지 않으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 주변에 고혈압 환자가 많아 흔한 병이라고 해서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뇌졸중이나 심혈관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신장도 고장 낸다. 신장병은 고혈압을 유발하지만 반대로 고혈압도 신장에 이상을 일으킨다. 또 안과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만병의 원인.
혈압이 높다고 하면 보통 뒷목을 잡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상당히 혈압이 높은데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제대로 혈압계를 통해 본인의 혈압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정용 혈압계
한때는 외산 제품에 의존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국산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정용 혈압계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기본적으로 가정용 혈압계라고 해도 그 원리는 우리가 병원에서 보아왔던 수동 ‘수은혈압측정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팔에 커프(공기주머니가 들어간 완장 형태의 도구)를 감고 공기를 집어넣었다 빼는 과정에서 혈관에 압력을 가하면서 혈압을 측정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팔에 제대로 커프를 감는 것. 심장과 같은 높이에 감아야 하며, 제품마다 커프의 앞·뒤·위·아래가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지켜야 정확한 혈압을 잴 수 있다. 체중감소 등으로 팔의 근육이 쇠약해져 팔둘레의 길이가 어린이 수준으로 줄었다면 성인용 혈압계로 측정 시 실제보다 과도하게 낮은 혈압으로 측정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적절한 커프의 크기를 추천받아 사용해야한다. 또 정기적으로 측정할 땐 매번 같은 시간대에 측정해야 정확한 혈압의 비교가 가능하다. 현재 시중에서 팔리는 혈압계는 5만~20만 원 선.
▶측정방법
a 혈압을 재기 전에 최소 5분 이상 안정을 취한다. 혈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흡연 또는 카페인 섭취 시에는 적어도 30분 이상 지나 측정한다.
b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서 등을 기대 앉는다. 이때 다리는 꼬고 앉지 않아야 한다(다리를 꼬고 앉으면 수축기 혈압이 10mmHg까지 상승 가능).
c 제조사의 권장 사항에 맞게 커프를 감는다. 높이는 심장과 같은 위치로 한다.
d 전원을 켜고 측정 버튼을 누른다.
e 측정 중에는 말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말을 하면 10~15mmHg까지 차이 가능).
f 동일한 방법으로 2회 측정한다.
병원용 혈압계
병원용 혈압계는 사용이 훨씬 간단하다. 정해진 위치에 팔꿈치가 닿도록 집어 넣은 다음 측정 버튼만 누르면 그만이다. 결과값이 부정확하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현재는 병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정확해졌다.
병원용 혈압계 역시 주의사항은 혈압에 영향을 줄 만한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다. 5분 이상 안정을 취한 뒤 측정한다. 병원용 혈압계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에 의자 위치에 따라 자세가 부정확하게 되기 쉬운데, 의자의 높이를 적절하게 맞추고 지나치게 앞으로 몸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복부비만이 있는 경우 앞으로 숙이면 복압이 높아져 혈압이 상승할 수 있다. 식사를 했다면 한시간 이상 지난 후 측정하는 것이 정확하다. 추운 곳에 오래 있었다면 30분 정도 기다렸다 측정하고, 두꺼운 옷은 탈의하고 측정한다.
▶측정방법
a 혈압을 재기 전에 최소 10분 이상 안정을 취한다. 혈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흡연, 알코올 또는 카페인 섭취는 하지 않는다. 식사한 후에는 1시간 지나서 측정한다.
b 몸은 최대한 혈압계 가까이 붙인다. 상체는 숙이지 않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의자 위치를 조정한다.
c 다리는 꼬지 않고 발은 평평하게 유지한다.
d 정해진 위치까지 충분히 팔꿈치를 넣은 후 측정 버튼을 누른다.
흔히 중풍으로 불리는 뇌졸중은 중장년의 대표적 혈관질환 중 하나. 특히 겨울철만 되면 더욱 속을 썩인다. 보이지 않는 뇌 속에서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데다, 후유증에 고생하는 주변의 사례를 보면 불안감은 배가된다. 게다가 ‘골든타임’, 즉 발병 후 적당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낭패라는 사실은 더욱 시니어를 옥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전문의들은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고 말한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신경과 서권덕(徐權德·40) 교수를 통해 뇌졸중에 대해 알아봤다.
뇌졸중은 대표적인 노인성 혈관질환 중 하나. 잘 알려진 것처럼 뇌졸중의 원인은 뇌혈관이 막혀 생기는 뇌경색과 뇌혈관이 터져 발생하는 뇌출혈로 구분된다. 원인은 다르지만 둘 다 뇌세포에 영향을 줘 증상을 나타나게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나이가 많을수록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특히 남성이 여성보다 높게 발병한다고 서 교수는 설명한다.
“혈관질환이다 보니 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등 동반 질환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만약 이 병들을 앓고 계시다면 특별히 조심해야 해요. 특히 고령자의 경우 부정맥도 원인이 됩니다. 맥박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면 심장에서 혈액이 원활하게 내려가지 못해 엉기면서 피떡(혈전)이 생겨요. 이것이 뇌혈관을 막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뇌경색이 발생하면 혈액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뇌세포는 죽어버립니다. 또 흡연과 음주는 뇌졸중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특히 담배는 치명적인데요, 남성에게서 뇌졸중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도 흡연과 음주 영향 때문이라고 봅니다.”
뇌경색 골든타임은 6시간
뇌혈관이 막히는 것과 터지는 것 중 어떤 상황이 더 위험할까? 흔히 생각하기에는 뇌출혈이 심각해 보이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뇌경색이다. 서 교수가 말하는 뇌경색의 골든타임은 6시간. 그 이상 지체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서 교수는 이야기한다.
“뇌경색 환자가 병원에 오면 혈전용해제를 쓰거나 혈전제거시술을 통해 막힌 혈관을 뚫습니다. 그런데 6시간이 지나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혈액 공급이 안 된 뇌세포 조직은 기능을 멈춰버리기 때문에 이후 혈액을 공급한다고 해서 뇌세포가 살아나진 않거든요. 치료가 빨라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뇌세포가 죽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죠.”
이에 반해 뇌출혈은 의료진이 대응할 시간이 있는 편. 물론 외상에 의한 뇌출혈은 예외다. 발병 빈도로 보면 8대 2 정도로 뇌경색이 많은 편이다. 결국 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타나는 자각증세에 빨리 대처하는 것이 방법이다.
“혈관이 좁아져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눈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하죠. 또 눈앞이 뿌옇게 보이고 의식도 흐려집니다. 그러다 혈관이 막히면 안면마비가 오고 말이 어눌해져요. 술 마신 것처럼 발음도 부정확해지고, 책 한 권 못 들 정도로 팔에 힘도 없어지죠. 뇌출혈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두통의 강도가 높아요. 이럴 때는 지체하지 말고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뇌세포 죽으면 재생 안 돼
뇌졸중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후유증이다.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서 교수는 “후유증은 사람마다 달라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뇌의 어느 부위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문제가 생겼느냐, 즉 뇌의 어디에 손상을 입었는가에 따라 그 증상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왼쪽 뇌의 언어를 관장하는 부위가 손상되면 말을 못하기도 하고, 아예 말을 이해 못하는 수준이 되기도 해요. 또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혈관성 치매로 발전하기도 하죠. 또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고요. 문제는 이렇게 뇌손상이 생기면 회복이 어렵다는 겁니다. 손상된 뇌세포의 주변 세포가 역할을 대신해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어요. 재활이나 훈련도 이런 차원인데 무척 더디고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도 육체적 마비는 재활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인지능력은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것에 목표를 둘 정도다. 특히 고령의 환자일수록 회복은 더 더디다. 문제는 또 있다. 조기에 치료해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해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는 것. 서 교수는 “발병을 통해 뇌가 영향을 받았다면 당장은 괜찮아도 장기적으로 치매 등 뇌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예방에 도움되는 뇌 CT와 MRI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예방이다. 발병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건강관리에 힘쓰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문제는 혈관이니까요. 혈관에 영향을 주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관리에 힘써야 해요. 그리고 담배와 과음도 피해야 하고요. 특히 담배는 치명적입니다. 최근엔 전자담배를 많이 피우며 안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상식입니다. 전자담배 역시 혈관에 해롭습니다. 절대 안심하면 안 됩니다.”
좋은 소식도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뇌·뇌혈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후속조치다. 덕분에 환자 부담은 66만 원에서 18만 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서 교수는 “환자 부담이 가벼운 컴퓨터 단층 촬영(CT)만으로도 충분히 뇌혈관 상태를 확인할 수 있지만, 뇌 MRI도 보험이 되면서 사전에 예방할 방법이 많아진 셈이죠. 환자 부담이 적어진 만큼 정기적으로 검진을 통해 혈관 건강을 확인하시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서 교수의 마지막 당부는 바로 응급실 사용이다. 증상이 의심돼 병원을 찾게 되면 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부탁이다.
“증상이 나타나면 손을 따거나 청심환 같은 약을 먹이면서 시간을 지체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의식이 없는 경우에 음식을 무리하게 넣으면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 심각한 폐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병원으로 바로 오셨음에도 외래에 접수해 차례를 기다리며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러지 마시고 꼭 응급실로 가서 상황을 이야기해주세요. 소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합니다.”
겨울 칼바람이 맵차게 몰아치는 산골이다. 마을의 품은 널찍해 헌칠한 맛을 풍긴다. 산비탈 따라 층층이 들어선 주택들. 집집마다 시원하게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할 게다. 가구 수는 50여 호. 90%가 귀촌이나 귀농을 한 가구다. 햐, 귀촌 귀농 바람은 바야흐로 거센 조류를 닮아간다. 마을 이장은 김종웅(76) 씨. 그는 이 마을에 입장한 1호 귀농인이다. 김 씨의 이주 이후, 그의 소개나 추천에 이끌려 이곳으로 덩달아 귀촌한 지인들도 많다고.
귀농 이전, 김종웅 씨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특별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무난하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서울에서 살다간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겠는걸!” 그런 투의 독백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절절하게 치올라 목으로 터져 나오는 걸 깨닫고서였다. 몽둥이를 높이 쳐든 빚쟁이들에게 주야로 쫓겨서가 아니었다. 위험한 사상을 유포하거나 발칙한 범죄를 자행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선량한 소시민의 노릇을 다하며 살아왔노라 자부하는 인물이다. 사적으로 원한을 사거나 공공의 적으로 몰릴 행장 따위를 눈곱만치라도 지은 바가 없었기에.
그렇다면 뭣 땜에? 단순하고도 절박한 이유 하나가 있었다. 몸이 자지러지는 적색경보를 울렸던 것. 심혈관질환을 가지고 있었던 김 씨는 어느 날 졸도를 해 응급실 신세를 졌더란다. 뇌졸중이었다지. 다행히 위기를 잘 넘기긴 했으나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쯤에서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면 하나밖에 없는 명줄을 졸지에 놓칠 수도 있는 상황임을 직시하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던 것 같다. “옳다구나, 시골로 가자!” 여러 밤을 잠 못 이루고 눈을 끔벅이며 심오한 연구를 하다 어느 아침에 내린 결론이 그랬다. 얘기를 들어볼까.
“아이쿠, 이러다가 나 죽겠구나, 칠십도 안 된 나이에 그럴 순 없지, 설령 죽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산골에서 죽자, 과수 농사를 지어 좋아하는 과일이나 실컷 따먹다가 죽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시골에 살다 보니 건강이 엄청 좋아지더라고. 그 무엇보다 서울에서 받고 살았던 스트레스라는 게 사라진 덕분이라 봐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먹거리도 도움이 됐겠죠. 귀농으로 얻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건강 회복은 가장 크게 얻은 선물입니다.”
사람의 몸뚱이는 내남없이 조만간 땅에 묻혀 한 줌 풋거름으로 돌아간다. 그러하니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남은 시간을 선용해야 한다. 김 씨는 산골을 요번 인생 최후의 근사한 정처로 점찍은 뒤 미련 없이 서울생활을 청산했다. 미련이 남을 만큼 화려하거나 열광할 만한 서울생활도 아니었다. 근면과 성실을 인생의 교사로 여기고 오로지 바지런히 일하고 또 일했을 뿐이다. 그로써 처자를 어엿하게 건사하고, 아울러 건전한 세상과 명랑 사회 건설에 암암리에 이바지했던, 그지없이 평범하고 떳떳한 서울살이였다.
일 중독이 행복한 에고이스트
김 씨는 오랫동안 전파상을 운영했다. 전파상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부터 자동차 정비일을 했다. 그의 별명은 맥가이버. 드라이버 하나면 뭐든 뚝딱 뜯어 고치고 헤집어 살려낸다. “누가 뭐래도 난 유능한 전자 기술자야!” 그런 자부심으로 자신의 직분에 충성과 충실을 다했던 모양이다. 도대체가 방황이나 일탈은 물론, 시련과 굴곡이 없는 인생이었다는 거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신비할 지경이지만, 운명의 신은 보디가드처럼 그를 각별히 수호해 이 살벌한 세상의 파랑을 사뿐히 건널 수 있도록 도운 것 같다.
그런 김 씨에게 귀농이란 어쩌면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도전이거나 반전일 게다. 그는 아내 방성녀(71) 여사에게 ‘고지식한 남정네’라는 소리를 넌덜머리나도록 숱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고 보면, 조용하고 점잖은, 좀 딱딱한 이 남자의 돌연한 산골 이주란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도봉산으로 이사 간 것만큼이나 신기하고 기발한 행보라 할 수밖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난제를 기어이 풀어야만 할 특유의 사정이 그만큼 절박했겠지. ‘건강 회복’이라는 미션 말이다.
“전파상이 호경기일 땐 수입도 짭짤했어요. 하루에 쌀 두세 가마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렸으니까. 그것참, 그 당시 재테크에 눈떴다면 꽤나 재미를 봤을 테지만, 그런 재주, 도통 없었기에 그저 저축이나 부지런히 했어요. 서울을 뜨려고 자산을 정리해 보니 7억 정도의 자금력이 되더라고. 이것의 절반가량을 귀농 비용으로 썼어요. 농토 구입과 집짓기에 필요한 자금으로.”
“귀농하신 지 9년이 지났죠? 일흔 나이를 목전에 두고서 농사를 택하셨어요. 그게 무모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최대치로 몸을 쓰는 게 농사라서. 게다가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는데.”
“제가 천성적으로 일을 좋아해요.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가장 즐거운가, 어느 날 제가 조용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직 일이 좋아 일에 사는 사람이더라고요. 서울에서도 열심히 일했지만, 서울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골에선 더욱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되더라고요. 농사는 제게 적격이거든요. 게다가 과일을 좋아해 과수원을 하고 있으니 일석이조라 할까.”
“오직 일을 좋아한다는 말씀, 얼른 곧이들리질 않아요.(웃음) 일보다 더 즐거운 것들이 많은 게 인생이지 않나요?”
“집사람이 저를 두고 말하길, 너무나도 부지런한 사람, 불쌍할 정도로 일만 아는 남자, 놀아본 적이 없어 노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남자라 합니다. 그러나 어쩌나? 저는 일에서 성취감을 느껴요. 아마도 일종의 일 중독자이겠으나 저는 그게 만족스러워요.”
“과수원의 수익성은 어때요?”
“지금은 사과농사를 하지만 몇몇 작목을 두루 경험해봤어요. 매번 신통치 않더라고. 농사 기술 자체가 서툴기도 했지만 판로가 늘 문제였어요. 현재는 사이버 판매망을 구축해 그럭저럭 무난하게 굴러갑니다. 부부 두 사람의 인건비 정도 건지는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행운이지 않겠어요? 이 늙은 나이에 일하고 싶은 만큼 실컷 일할 수 있다는 건 농사가 주는 최상의 즐거움이고요.”
사람이 너무 한가하면 수상한 생각이 몰려든다. 그러나 오직 일벌레로만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는 동물이다. 휴식과 놀이도 일종의 생필품이지 않겠는가. 저 명랑하고도 흥겨운 옛날 유행가가 외쳐대듯이, 우리는 틈틈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며, 늙어서도 짬짬이 잘 놀아야만 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단지 노동에만 매몰된 인간은 짐승보다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씨는 일을 숭상하기를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아니한 채 살아왔다.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왕림해 뭐라 고상한 조언을 해도 자신의 소신을 수정할 용의가 전혀 없는 인물이다. 서울에서도 그랬듯이, 지지구재재구 귀여운 새들이 종일 노래를 하는 목가적인 전원에 내려와서도 그는 자신에게 일의 대가(大家)라는 임명장을 수여하고서 쾌재를 부른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오직 자신의 일을 위해 고용한 사람의 집 안팎은 먼지 한 점 없이 청결하다. 농장일을 마쳤더라도 밤늦게까지 외등을 밝혀 마당을 쓸고 닦고 다듬어야 직성이 풀려 비로소 발 뻗고 편한 잠을 자는 사람! 일테면 하늘이 와지끈 무너진다는 특급 뉴스가 들려온다 하더라도 오늘 할 일은 기어이 오늘 당장 완수하는 사람! 그의 아내 방성녀 여사의 증언이 그렇다. 아내는, 이런 일벌레 남편과 사는 일이 때로 끔찍하지 않을까? 숨 막히지 않을까? 이쯤에서 잠깐 방 여사님의 얘기를 들어보자.
“한마디로 일에 미친 양반이에요. 죽기 전엔 못 고칠 버릇이라 봐요. 귀농할 땐 이제 좀 즐기며 부부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했지만, 이미 몸에 밴 습성이 안 바뀝디다. 한잔합시다, 하면 안 해! 놀러갑시다, 하면 싫어! 개미처럼 일하고 다람쥐처럼 굴레 속에서 빙빙 도는 인생이지요. 건전하고 씩씩한 남편이지만 일 중독을 행복으로 여기는 에고이스트예요. 무엇으로 어떻게 이 양반을 뜯어말릴꼬? 남편으로서도 일이 오직 즐거울 리 있으랴, 하는 생각에 새삼 연민을 느끼기도 해요. 언젠간 저 양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 맺히더라고요. 아, 당신, 힘들어하는구나, 덧없이 흐르는 노년을 아쉬워하는구나. 둘이서 껴안고 함께 엉엉 울었어요. 그러면 뭐하나? 이튿날이면 다시 일벌레로 돌아가는걸.(웃음)”
한 달 생활비는 50만 원
일의 대가 김종웅 씨의 일 종목은 농장일과 가사에 그치지 않는다. 귀농 이후 뒤늦게 독학한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괴산군청 사이버 기자로 맹활약을 해왔다. 충북 도지사가 임명한 충북 귀농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게다가 마을 이장까지 맡아 동분서주! 76세 노인이 후루룩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니 가히 장관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노구에다 청년의 정신을 이식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귀촌·귀농인들은 흔히 동네 이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만 정착이 빠르다고 널리 알려졌다. 이장을 마을의 절대 권력자로 보는 눈들도 있지 않던가. 하나, 김 씨의 생각은 다르다.
“이장의 횡포나 전횡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게 다 옛날 얘기예요. 요즘 이장들은 엄청 심한 시집살이를 합니다. 마을 심부름꾼일 따름이에요. 업무도 너무 많아요. 공무원 일의 절반쯤은 도맡아 하니까. 활동비 20만 원이 나오지만, 무척 힘이 들고 내 시간 빼앗기고, 봉사정신이 아니고선 감당하기 쉽지 않을 거라.”
“봉사정신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고충이 많겠죠?”
“전엔 원주민과 귀촌·귀농인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잦았어요. 그걸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일, 그게 이장 몫이라 여기고 나름 애썼어요. 지금은 원주민 비율이 확 줄어 텃세 같은 걸 부릴 세력 자체가 거의 사라졌지만.”
“아마도 이 마을에 전무후무한 일꾼 이장이 납셨다고 정평이 났을 듯.”
“깐깐한 이장이기도 해요. 시골사람들은 흔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태우는데요, 전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질 못하겠더라고. 속으로 꾹꾹 누르고 참노라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쓰시죠?”
“도시에서보다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귀농의 장점입니다. 우리 부부는 한 달 평균 50만 원쯤 쓰며 살아요. 그 이상 지출할 때도 있지만, 남아도는 달도 많았어요.”
“앗! 겨우 50만 원?”
“돈 들어갈 게 없습디다. 먹거리는 거의 자급자족을 해요. 술, 담배 안 하지, 외식 안 하지, 불가피한 외출 외엔 틀어박혀 일만 하지, 뭐 돈 들게 있을까나. 약간의 부식비, 공과금, 차량 유류비 정도만 해결하면 되니까. 애당초 집사람이랑 50만 원으로 살자 다짐하고 귀농했는데 자연스럽게 실행되더라고.”
눈치 빠른 독자라면 뒤에 이어진 김 씨의 언설을 이미 미루어 짐작하리라. 돈보다 귀한 가치, 돈 주고 살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의 요소에 관한 견고한 철학의 표명이 있었으니, 그건 일에 관한 예찬이 아니면 달리 무엇일 수 있으랴.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 질문을 거창하게 해보았다. 열심히 사시는 당신에게 남모를 회한이 있다면 그건 뭐냐고. 한참을 생각하다 들려준 답은 뜻밖에도 정감에 찬 것이었다.
“허무하게 늙어가는 아내를 농장에 내놓아 얼굴을 그을리게 만든 것. 그 하나예요.”
김종웅 씨가 들려주는 귀농 준비 Tip
•비빌 만한 언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게 현명하다. 인척이든 지인이든 연고가 있을 경우엔 적응이 빠르고 외로움을 덜 수 있으니까.
•시골에서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리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의 자금력은 필수다.
•원만한 처세를 하지 않을 경우 원주민들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다분히 보수적인 시골 풍토를 이해, 충돌만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어디로 귀촌할까, 오랜 궁리 없이 지리산을 대번에 꾹 점찍었다.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단다. 젊은 시절에 수시로 오르내렸던 산이다. 귀촌 행보는 수학처럼 치밀하고 탑을 쌓듯 공들여 더뎠으나, 마음은 설레어 일찌감치 지리산으로 흘러갔던가보다. 지금, 정부흥(67) 씨의 산중 살림은 순조로워 잡티나 잡념이 없다. 인생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게 아닌가.
처음엔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흔히 들었다지. 정부흥 씨는 임야 1만8000평을 사들여 일을 개시했다. 이 거창한 행세에 쓴소리들이 난무했던 모양이다. 외지고 으슥하고 가파른 산 덩어리여서다. 긴 고행이 빤히 보여서다. 그러나 기꺼이 자청한 고행은 고행이 아니라 순행(順行)이다. 절박한 눈으로 뒤를 돌아본 정 씨는 도시에서의 지난 생이 오히려 고행에 가까웠음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어라? 나를 목줄 채워 끌고 다닌 도시를 벗어나겠다는 데 왜들 난리람! 아마도 그쯤의 생각과 각오가 머릿속을 굴렀을 게다.
정 씨는 전남대학교 자원공학과를 나온 공학 박사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2012년에 퇴직했다. 임야는 은퇴 이전에 이미 사뒀다. 수시로 터를 드나들며 정을 붙였다. 귀촌 마스터플랜을 근사하게 준비하고서 임야에 길을 닦고, 기반공사를 하고, 임시 거처를 지었다. 퇴직 후에는 완전한 이주를 하고 본집을 거하게 지었다. 크고 너른, 반듯하고 웅장한 그의 거처는 이제 숲속 대궐에 가깝다. 부부 단둘이 살기엔 너무 방대한 규모로 보이지만 정 씨의 꿈과 이상이 실린 공간이다. 그의 수완과 통과 너름새가 비치는 구색이다.
터에 들어선 품목들이 크고 많으니 해온 일, 헤쳐나온 시련이 산더미였을 것이다. 신역도 신산(辛酸)도 자심했을 테지. 그러나 그는 일에 신명을 냈더란다. 오지게 터진 일복에 심취할 절호의 찬스를 만났다는 투로. 그렇다면 그는 근력 짱짱한 장한(壯漢)? 실은 정반대다. 지병을 달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50대 후반쯤 당뇨병 여파로 들이친 풍을 맞아 반신마비에 빠졌고, 강철 같은 의지로 마비에서 탈출했으나 여전한 당뇨는 신중히 관리하며 지내왔다. 지리산으로 가자, 그게 살길이다! 그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산중으로 귀촌했다. 몸이 망가졌으니 흐느껴 나온 생각들이 많았을 게다. 마음의 비장한 물결에 젖어 한탄을 거두고 속으로 다진 것도 많았을 테지. 그럴 즈음 지리산이 그를 호명했고, 그는 득달같이 응했던 모양이다. 이 불운하고도 야무진 사람의 눈은 단춧구멍처럼 간신히 째졌을 뿐이지만, 얼굴엔 자주 홍소(哄笑)가 출렁거린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스트레스 많은 정신노동의 연속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두주불사가 잦았어요. 결국 몸을 망쳐 당뇨와 뇌졸중이 겹치는 지경까지 갔던 겁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극심한 시련이었죠. 5년여에 걸친 재활치료로 다행히 반신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도시에서 살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귀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어요.”
“귀촌이, 산골생활이 건강을 호전시킨 셈인가요? 귀촌을 통해 중병을 고쳤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두 가지 요인에 힘입어 건강을 도모할 수 있었어요. 하나는 아내의 헌신적인 조력입니다. 까다로운 식이요법을 아내 덕분에 철저하게 행해왔으니까. 생명의 은인이랄까, 그런 아내에게 제가 꼼짝을 못합니다.(웃음) 또 하나의 요인은 귀촌을 해서 만난 좋은 자연환경이에요. 숲길을 날마다 걸었어요. 배수진을 치고, 즉 목숨을 걸고, 운동 아니면 죽음이다, 라는 각오로 줄기차게 걸었죠.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당뇨병이 있지만 내 몸 안에 들어온 평생 친구라 생각하며 관리하는 중이에요.”
“이 너른 터전과 다수의 건조물, 숲과 텃밭, 이런 것들을 어떻게 능히 짓고 가꾸고 관리해왔죠? 온전치 않은 건강으로 말이죠.”
“젊음과 자금력, 이 둘의 추진력이었어요.”
“인생의 하오에 젊음이라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이 산골에 들어온 초기엔 엄청 젊었던 것 같아요. 하늘을 잡고 도리뱅뱅이질을 쳤죠. 무모하긴 했어요. 그거 아세요? 저희 같은 연구원들의 특질이 뭐냐면, 항상 도전한다는 거.”
끊이지 않았던 사건 사고
그가 도전한 종목은 여럿이다. 귀촌의 성공 모델을 본때 있게 실현하겠다는 것, 몸을 아끼기보다 닳도록 써 건강을 살리겠다는 것, 자연과 호형호제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겠다는 것, 오누이처럼 부부가 다정하게 잘 늙어 여생을 동행하겠다는 것. 가련하고 허무한 게 인생사이지만 선한 지향이 뚜렷한 사람의 발길엔 정채(精彩)가 서린다. 안간힘을 다하면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그는 열렬한 활보로 귀촌의 나날들에 생기를 부여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정 씨는 거의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해왔다. 울울한 숲을 파헤치는 토목공사를 주도했다. 귀촌을 위해 미리 배워둔 목공기술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목공실을 만들어 수많은 목재를 손수 자르고 깎고 다듬었다. 3차원 건축설계 소프트웨어를 활용, 60평과 40평짜리 두 채의 집 설계도 직접 해치웠다. 건축 공사도 업자에게 도급을 주지 않고 직영했다. 이 많은 일들을 해내는 중에 사고도 많았다지. 요상하게 줄줄이 이어진 사건기록을 들어보시라.
“귀촌 초기, 사건 사고들이 끊이질 않았어요. 한번은 석축을 쌓다가 바윗돌에 깔렸는데, 발목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집디다. 덕분에 반년 동안 깁스를 했고, 1년 반 정도 재활치료를 받았죠. 포클레인 작업 중 전복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기도 했어요. 예초기로 풀을 베다 벌집을 건드려 벌떼의 집중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응급실에 실려가 누울 수밖에 없었고요. 하하핫! 아내에게도 역시 사고가 많았어요. 집사람이 소형 덤프트럭을 몰아요. 어느 날 언덕에서 트럭이 뒤집혀 굴렀어요. 해충과 독충에게 시달리는 건 소소한 일상이었죠. 아내는 독사에게도 물렸어요. 응급실에 달려가 해독주사를 맞고 위험을 면했죠.”
“아이쿠, 괜히 산골에 왔어, 돌아가야겠어, 그런 회의는 없었나요?”
“모든 사고들이 알고 보면 다 인재(人災)였어요. 숙달 과정으로, 필수적인 시행착오로 여겼어요. 요령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요. 회의나 후회는 조금치도 없었고요. 산골살이는 오래 묵은 꿈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아내들은 귀촌에 흥미를 못 느껴요. 고생길이 훤히 보여서죠. 잘난 당신이나 혼자 내려가소서! 그런 소리 나오기 십상이죠.”
“산골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정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죠. 조용한 자연 속에서 과연 즐겁게 살아갈 소양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 저나 아내는 그런 면에서 시골과 적성이 맞았어요. 그러나 아내가 귀촌을 선뜻 동의하진 않았어요. 지역 선정에 반영할 네 가지 조건을 겁디다.”
“어떤?”
“대학병원 수준의 병원이 15분 안짝 거리에 있는 곳, 평소 늘 해왔던 요가를 계속할 수 있는 요가원이 있는 곳, 수필가로서 독서를 좋아하는 아내가 쉽게 찾아갈 도서관이 있는 곳, 항상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 이렇게 네 가지였어요. 이곳 구례군은 갖가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아내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지역이죠.
저절로 생긴 수입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경관이 후련하고 수려하다. 노고단을 중심으로 어깨를 겯고 일렁이는 능선 마루로 파란 하늘 자락이 겹쳐진다. 빼어난 뷰! 동향으로 앉은 집이니 새벽이면 침실 창으로 햇살이 두근대며 들이칠 게다. 집 뒤 숲엔 편백나무 수림이 조성돼 있고, 숲 사이로는 구불구불 휘어지는 산책로와 정자를 꾸며뒀다. 뭐 하나 빈틈도 결함도 없어 보이는 입지이자 장원(莊園)이자 저택이다. 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정 씨는 서울에 있었던 아파트 두 채를 처분했다.
이제는 수고롭게 돈 버는 일은 작별이야. 부부는 그렇게 합의하고 내려왔다. 그러나 돈이 저절로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뜻밖의 수익이란다.
“저희 임야 안에 고로쇠나무들이 다수 있어요. 봄철이면 수액을 받는데, 이걸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 약간의 노동이 필요한 채취 작업을 해 연간 1000만 원쯤 수익을 올립니다. 비워두었던 아래채 2층집에서도 수입이 발생할 걸 미처 몰랐어요. 1층은 월세를 주고, 2층은 민박 손님을 받았더니 해마다 100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오더라고요. 가끔 귀촌인 상대의 목공 강의를 통해서도 약간의 강사료가 들어옵니다. 이렇게 모아지는 자금은 해외여행 경비로 씁니다.”
이래저래 이젠 순풍에 미끄러지는 돛배처럼 순항이다. 지루하진 않을까? 그렇잖아도 함께 오래 살아온 부부가 새삼 24시간을 늘 같이 지내야만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귀차니즘’이 풍선처럼 부푸는 건 아닐까?
“제가 집사람에게 독불장군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요. 간간이 마찰이 없을 리 없죠. 대판 다투고 난 뒤 아내가 잠시 가출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름의 독립적인 생활방식을 찾게 됐어요. 오전엔 같이 텃밭이나 마당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함께 산책을 하지만 저녁식사 후엔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 각자의 일을 합니다. 아내는 1층에서, 저는 2층에서.”
“귀촌인들은 흔히 조언해요. 가급적 집을 작게 지어라! 작은 집이라야 유지 관리가 쉽다는 얘기죠. 선생께서 집을 크게 지은 이유는 뭐죠?”
“내 손으로 한 번은 집다운 집을 제대로 짓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자손들이 찾아오면 맘껏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도 싶었고. 하지만 바람직한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곤 해요. 우리 둘 가운데 하나만 남을 날이 머잖아 찾아올 텐데, 그땐 혼자서 이 너른 집과 터를 어떻게 간수할꼬, 그런 염려도 생기고.”
“산골살이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죠?”
“계절마다 달마다 날마다 다변하는 자연을 느끼며 배우며 사는 즐거움이 으뜸입니다. 몸이 녹아나는 혹독한 노동의 날들도 즐거웠어요. 건강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었으니까. 뭔가 떳떳하다는, 죄짓지 않고 산다는 기분 역시 노동을 통해 실감했어요. 노동에 휴식을 가미한 생활방식을 취하면서는 만족감이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인생의 정점에 올라섰다는 행복감이 커요. 그러나 모자란 사람일 뿐이죠. 자연은 저토록 온전한데 나는 틀려먹었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 가르치는 ‘공(空)’을 마음속으로 늘 되뇌이고…. 한 마리 배추벌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걸 또한 기억하려 하고….”
세상의 탐욕과 광기가 침범 못할 이 고요한 산중. 몸 낮춰 마음을 평온으로 채운다면 고요마저 열락(悅樂)이겠지.
정부흥 씨가 주는 귀촌 Tip
•사전에 시골생활을 체험하자. 한두 달로는 부족하다. 최소한 1년 정도는 월세 집이라도 얻어 살며 물정을 파악하는 게 좋다.
•집을 지을 경우 사전에 집짓기 교육을 받아두는 게 좋다. 건축은 업자에게 맡기지 말고 직영을 하자. 건축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대신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귀촌생활에 텃밭은 필수다. 그래야 적당한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고, 깨끗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인천성모병원과 함께 ‘백세 건강 챙기는 가정용 의료기 백배 활용법’을 연재합니다. 시니어가 흔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의료기를 제대로 알고 쓸 수 있도록, 재미있는 영상과 함께 찾아갑니다. 영상은 네이버TV 브라보 마이 라이프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감수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출연 안지현 인천성모병원 간호사
당뇨병은 성인병의 대표 주자로 꼽힐 만큼 흔한 병이다. 2040년까지 전 세계 인구의 유병률이 6억 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포도당을 연소하는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당뇨병을 1형, 인슐린 저항성(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세포가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하는 것)이 떨어지는 상태를 2형이라고 부른다. 성인이 되어 발병하는 경우는 대부분 2형으로 보면 된다. 제2형 당뇨는 식생활의 서구화에 따른 고열량, 고지방, 고단백의 식단과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췌장 수술, 감염, 약제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당뇨병을 무서운 병이라 말하는 이유는 합병증 때문. 건강검진 기회가 늘고 의료기관 이용이 쉬워지면서 과거처럼 혈당의 심한 상승으로 혼수상태에 이르는 급성 합병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수명 연장으로 오랜 시간 당뇨를 앓게 되면서 만성적인 합병증의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당뇨 환자는 혈관내피의 손상으로 동맥경화증이 쉽게 동반되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합병증이 올 수 있다. 또 실명의 주요 원인이 되는 망막병증이나 통증, 저림 증세가 나타나는 신경병증 같은 미세혈관의 합병증 역시 삶의 질을 심하게 저하시킨다. 당뇨병성 족부병증(일명 당뇨발)도 당뇨 환자가 주의해야 하는 합병증이다. 혈당이 70mg/dl 이하로 감소될 경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저혈당도 만성합병증 못지않게 중요하다.
당뇨병을 관리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혈당을 꾸준히 점검하는 것이다. 식단 관리와 함께 혈당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환자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식은땀, 떨림, 가슴 두근거림, 배고픔, 구역, 구토, 복통, 어지러움, 두통, 짜증, 집중력 장애, 시력 변화 등 저혈당 증상을 경험할 때 곧바로 혈당을 측정해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가족 중 노년기 당뇨환자가 있다면 자가혈당측정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대한당뇨병학회(www.diabetes.or.kr) 사이트를 방문하면 식생활 관리에 대한 안내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혈당계란?
혈당을 측정하는 혈당계의 원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바늘로 손끝을 따 피를 낸 뒤 측정지에 묻혀 혈당을 측정하는 방식. 그러나 제품의 품질에 따라 측정 결과가 부정확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검증된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개인용 혈당 측정 시스템의 최소 성능 요구사항을 담은 국제 규격인 ISO 15197을 발간했는데, 기기가 이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가정용 혈당계로 혈당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채혈침 등 여러 소모성 재료가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혈당 측정, 인슐린 투약을 위한 소모성 재료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혈당 측정은 식전 공복 혈당과 식사한 지 2시간 후에 식후 혈당을 재면 된다.
혈당계 구성
a 채혈기(채혈침)
혈당을 검사할 수 있도록 피를 나오게 해주는 주사침이다. 시중 제품 대부분이 펜 타입으로 되어 있다. 스프링 바늘을 순간적으로 밀어 올리면 상처가 나면서 피가 나온다.
b 혈당계 본체
혈당 검사지에 묻은 혈액을 바탕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장비다. 최근에는 혈당 측정 결과를 저장해 혈당 관리를 돕는 기능이 추가됐다.
c 혈당 검사지
혈당계 본체에 삽입돼 있으며 혈당을 측정하는 데 소모되는 일회용 검사지다. 혈액이 닿는 부분이 오염되면 혈당 측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또 의약품처럼 유통기한이 있어 확인 후 구매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것보다는 적정 수량을 자주 구매하는 것이 좋다.
측정 방법
a 손을 깨끗이 씻고 말린다. 팔을 심장 아래로 위치시켜 손의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한다.
b 채혈기 뚜껑을 열고, 일회용 채혈침을 장착한 뒤 뚜껑을 닫고 장전한다. 다이얼을 조작해 개인에 따른 채혈 깊이를 조절한다.
c 혈당계 전원을 켜고, 혈당 측정 검사지를 넣는다. 이때 측정 검사지의 채혈 방향과 기기 삽입 방향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한다. 혈당계에 따라 측정 검사지를 넣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켜지는 제품도 있다.
d 채혈할 손가락 끝을 일회용 알코올 솜으로 닦고, 채혈기를 댄 뒤 버튼을 눌러 주사침이 손끝을 찌르게 한다. 손가락 중심보다는 양측 끝부분을 찌르는 게 통증이 덜하다.
e 손가락에 충분한 핏방울이 맺히면 측정 검사지 끝에 대고 측정을 시작한다. 이때 피가 부족하다고 피를 더 짜내면 안 된다. 차라리 다시 채혈하는 게 낫다.
f 기기에 따라 측정 결과 저장도 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더 효과적인 혈당 관리가 가능해진다.
엄마 친구 집 대문을 열다
7월의 뜨거운 열기조차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사무친 그리움을 안고 고향 순창으로 갔다. 얼마 전 뇌졸중이 재발되어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한적한 골목길을 거닐다 어느 집 앞에 멈춰 섰다. 엄마의 오랜 친구 정봉애(89) 씨가 사는 집 앞. 한참을 서성이다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네 엄마가 왼손은 마비됐어도 삶의 의지가 강해 몇 년은 더 살 줄 알았더니, 너무 갑자기 가버렸구나.” 등을 토닥이며 아픈 내 마음을 위로해주셨다. 50년 지기인 두 분은 젊은 시절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가 되어서 보니 어릴 적 가정 환경이 신기하게 비슷했다. 소학교 시절 정봉애 씨는 남원에서, 엄마는 순창에서 우등생이었던 것도 비슷했는데, 같은 상급학교에 지원했다 세월 탓에 좌절한 경험은 아예 똑같았다. 이런 인연으로 두 분은 우정을 돈독히 쌓아왔다. 나이 들어서는 각자 자신이 사는 동네 노인회관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게이트볼 선수로 여러 대회에 출전도 했다. 또 게이트볼 심판 자격증을 따서 심판을 본 것 등등 두 분은 닮은 점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이번 만남으로 엄마 친구였던 그녀가 시인으로 등단을 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가 편찮으신 동안 소식을 잘 듣지 못했는데 이런 축하할 일이 생겼다.
독서를 좋아하던 소녀의 꿈
2014년 월간 ‘문학공간’을 통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했다. 엄마와 원불교 교당을 같이 다니고, 동갑계모임을 하는 등 그저 평범한 우리네 어머니로만 알았는데 이토록 멋진 시인이 되어 있을 줄이야!
6월에는 첫 시집인 ‘잊지 못하리’가 출간됐다. 더욱이 전북관광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 시집을 출간했다고. 이 말은 작가로 인정받아 당당하게 낸 소중한 시집이란 뜻이다. 같은 달 말에는 순창문인협회 주최로 시집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우리 나이로 구순. 100세를 10년 앞둔 정봉애 시인의 새로운 인생에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정봉애 씨, 아니 정봉애 시인은 어쩌다 시를 쓰게 됐을까? 문득 시를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 여쭸다. 1929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정 시인은 비교적 부유한 집 막내딸로 귀하게 자랐고, 아홉 살에 사립 소학교에 들어가 열다섯 살에 졸업했다.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희망하던 공주사범학교 서류전형 합격도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렇게 똑똑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칼바람 불던 세월 탓에 학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학자였던 부친이 딸의 상급학교 진학을 완강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혹여 딸아이가 위안부로 징집될까 부친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간절한 꿈을 접고 정 시인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전북 순창군 유등면 8남매가 사는 작은 농가의 맏며느리로 들어갔다. 슬하에 7남매를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틈틈이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동생 친구인 동네 청년들한테 부탁해서 소설, 시, 월간지 가릴 것 없이 책이란 책은 모조리 구해다 읽었지. 시어머니가 호롱불 기름 닳는다고 불 끄고 자라 하면 치마로 문을 가리고 읽었어. 그렇게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지다 보면 시집살이의 고단함도 저만치 날아가곤 했어.(웃음)”
정 시인의 문학적 기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 시절에도 그렇게 책을 읽었다니 새삼 참 멋져 보인다.
“많이 배우지도 못한 사람이 시 쓸 생각이나 했겠나. 2006년에 평생을 같이했던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적적한 마음에 그저 끄적끄적 메모를 해댔지. 그런 습관이 나중에 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
맘에 드는 것은 행동에 옮긴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적극적인 성격의 정 시인. 어느 날 순창에서 발행하는 지역신문 ‘열린순창’을 꼼꼼하게 읽다가 무척 마음에 드는 필진을 발견하고 곧바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 머시냐 저기… 박모 씨 글이 하도 좋아서 그 필진과 인사를 한번 나누고 싶은디. 연락처 좀 알려줄라요?’ 내가 그랬어!”
그 일을 계기로 이 재밌는 할머니(?)의 이모저모를 살피던 신문사 직원이 시 창작 공부를 한번 해보라며, 순창여성회관에서 진행하는 ‘시 창작 교실’을 소개해주었다. 글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스스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 정 시인은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시 창작 교실을 노크했다.
“첫 시간에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40, 50대 젊은 친구들이 모여 있더만. 속으로 깜짝 놀랐어. 퇴직하고 나이 지긋한 심심한 양반들이나 있겠거니 생각했거든.”
그래도 기죽지 않았다는 정 시인. 젊은이들 틈에 용감하게 자리 잡고 앉았단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도전정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공공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각종 인문학 강좌는 모두 섭렵하다시피 했다고. 특히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시 창작’ 수업을 좋아해 매주 무척 기다렸다고 한다.
“시 창작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 선생님이 내준 숙제 꼬박꼬박 하고, 꾸준히 다니다 보니 이런 좋은 결실을 보게 된 것 같아.”
시인 정봉애로 살다
정 시인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요가와 스트레칭을 하고 7시에 아침식사를 마치면 외출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 서예, 시창작, 시낭송, 게이트볼 등 그날그날 정해진 일정을 소화한다. 오후 5시 반쯤에는 귀가해서 신문 보고, 시 다듬고, TV 뉴스 잠깐 시청한 뒤, 9시 조금 넘어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런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도 정 시인에게는 단 하나 예외적인 것이 있는데, 자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새벽 1시가 됐든 2시가 됐든 벌떡 일어나 곧바로 메모하는 것이다. 시에 대한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다. 솟구치는 그녀의 시심은 아주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기도 했다. 작년 11월, 순창읍 일품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할 때 정 시인은 순창평화의소녀상건립군민추진위원회로부터 자작시 낭송 요청을 받았다. 당황스러워 “다른 훌륭한 시인도 많은데 왜 나에게 하라는 거냐”며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동시대를 살아온 정 시인이 적임자라며 거듭 요청을 해왔다.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결국 시인이라는 사명감 하나로 밤을 새워 작품을 완성했다. 정 시인은 같은 또래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친구’라 부르며 ‘친구여 편히 쉬시라’는 제목의 자작시를 작년 12월 ’평화의 소녀상‘ 건립 행사 때 낭송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내 사랑, 잊지 못하리
여담으로, 시집 제목을 왜 ‘잊지 못하리’로 했나 여쭸다.
“나는 그냥 ‘노인네 넋두리’로 하자 했는데, 내가 쓴 시가 그런 제목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더만.(웃음)”
할 수 없이 주변에서 권유하는 대로 ‘잊지 못하리’로 제목을 막상 붙여놓고 보니 아주 마음에 든다며 천진스레 웃으신다. 123편의 서정시를 모아 엮은 정 시인의 첫 시집 ‘잊지 못하리’는 정 시인의 요청을 받아 노인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큼지막한 글씨로 인쇄돼 정감을 준다.
“내 소소한 일상을 보고 느낀 대로 적어 다듬었을 뿐인데, 노인네 넋두리로 치부하지 않고 주변에서들 공감해주니 어찌 이리 고마울 수 있을까.”
90세 넘은 나이에 시 쓰기를 시작해 일본 열도를 감동시킨 100세 시인 ‘시바타 도요’가 롤 모델이라고 했다. 정 시인은 ‘시바타 도요’처럼 100세가 되기 전에 두 번째 시집을 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한다.
“시는 이제 영원한 내 친구, 시 쓰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앞으로도 쉬지 않고 끈기 있게 계속 쓸 참이여.”
정 시인의 하루는 요즘 더 바빠졌다. 시집 발간 후 여기저기서, 심지어 멀리 미국에서도 축하인사를 보내와 정신없을 정도라고.
“내가 요즘 심심할 겨를도 없이 호강을 많이 한다우. 여기저기 크고 작은 행사에서 모셔가지, 젊은 동호회 회원들이 수시로 전화해 드라이브시켜주고 맛있는 밥 먹으러 다니지, 아주 행복혀.”
90세 인생이 이리도 즐거울 수 있을까. 정 시인은 문자는 물론 컴퓨터와 카카오톡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안다. 카톡 프로필 란에 ‘매일매일 싱그럽고 화려하게ㅋㅋ’라는 멘트가 놀랍다. 열정은 사람을 늙지 않게 만드나보다. 이 나이에 뭘 하나, 세상 다 산 듯 정신줄 놓고 있던 게으른 내 영혼에 90세 시니어 시인은 섬광처럼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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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하리 - 정봉애
이토록 보고픔 어찌하오리까
고요 속에 아른아른 아린 그리움
어찌하오리까
가슴 깊이 젖어드는 끈끈한 정
어찌하오리까
마디마디 묻어나는 님의 향기
어찌하오리까
이왕에 가버린 사랑
어찌하오리까
정봉애 시인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 60년 넘게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온 남편이 병환으로 세상을 뜨자 하늘이 무너진 듯 온 세상 슬픔이 다 몰려왔다고. 6·25동란 때 오빠들과 부모님을 모두 잃은 정 시인에게 남편은 오빠 같고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내 나이 78세 때 82세 남편이 가버렸지. 다들 살 만큼 살았다고 말들을 하더라만, 남편만 의지하고 살았던 나는 그 허전한 마음을 어디에도 둘 데가 없더라고.”
저녁이면 남편과 오순도순 술 한 잔씩 반주로 나누며 밥 먹던 소소한 행복. 첫 잔을 꼭 먼저 따라주던 다정했던 그 사람. 이 시 ‘잊지 못하리’는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정 시인의 애틋한 심정이 아리게 담겨 있다.
갱년기나 폐경을 앞둔 중년 여성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은 무엇일까? 국립보건연구원은 지난해 이들에게 직접 묻고 그 결과를 내놨는데 골다공증이 암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폐경증후군과 뇌졸중이 뒤를 이었다. 여성들이 골다공증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뼈가 부서지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 길이 없고, 흔히 걸릴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몸을 더 오래 사용해야 하는 요즘 액티브 시니어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여의도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백인운(白寅運·44) 교수와 함께 골다공증에 대해 알아봤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똑~ 소리가 나면서 부러지는 거예요. 그것도 허리뼈가. 체중에 의해 척추 압박골절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상상만 해도 두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뼈가 부러질 수 있다니. 하지만 백 교수는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멀쩡하게 진료실에 걸어 들어온 할머니가 척추 압박골절 상태였던 적이 있었어요. 모두 깜짝 놀랐죠.”
여성은 폐경이 주요 원인
골다공증은 말 그대로 뼛속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뼈가 약해져 쉽게 골절이 되는 질환을 의미한다. 노인 골절의 대표적 원인으로 고령화 사회에서는 특히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골 조직, 그러니까 뼈는 조골세포와 파골세포를 통해 3~4개월 주기로 생성됐다가 사라져요. 나이에 따라 뼈의 양이 달라지는데 일생 중에 30세 전후가 골량이 최대치인 시기예요. 그 나이를 넘어서면 점점 생성보다 흡수가 많아져 뼈가 약해지는데 그 정도가 유독 심해지면 골다공증이 되는 거죠.”
골다공증은 여성에게 훨씬 많이 나타난다. 50세 이상인 경우 남성은 10% 정도 발병하는 반면, 여성은 40%에 이른다. 이에 대해 백 교수는 여성호르몬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노화로 인한 노인성 골다공증 외에 여성은 갱년기에 나타나는 폐경 후 골다공증도 발생해요. 여성호르몬이 뼈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폐경과 함께 호르몬 생성이 줄면서 뼈흡수가 급속히 진행되어 뼈가 약해지는 거죠.”
이외에도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다른 질환으로 발생하는 증상을 2차성 골다공증이라 하는데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위나 장 혹은 난소 절제술을 받았거나 거식증, 폭식증 등으로 인한 무월경증이 있는 경우, 영양소 흡수장애나 부갑상선 기능항진증, 갑상선 기능항진증, 만성신부전증, 류마티스 관절염이 있는 경우에도 골다공증이 나타날 수 있어요. 또 스테로이드나 갑상선 호르몬, 일부 항암제를 투여받는 환자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잦은 흡연과 음주 같은 생활습관도 매우 위험합니다.”
자각 없어 더 무서운 병
골다공증이 무서운 것은 환자 스스로가 눈치 챌 수 있는 신호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병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느 날 몸의 어딘가가 부러지면서 알게 된다. 실제로 환자 본인이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고 인지하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고. 또 치료를 받는 환자는 10% 내외 정도다.
“미리 검사를 받는 것이 좋아요. 보통 여성은 65세 이상일 때, 남성은 70세 이상일 때 검사를 받으라 권고하고 있지만, 아주 건강한 상태일 때의 이야기예요. 내과적 질환 등 위험 요소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조기에 검사하는 게 좋아요. 만약 이 과정에서 정도가 약한 골감소증이 발견되었다면 2년에 한 번, 골다공증이 확진되면 1년에 한 번은 검사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어요.”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골밀도 검사가 그것. 흔히 병원에서 촬영하는 CT처럼 검사 과정도 단순하고 한두 시간만 기다리면 검사 결과도 알 수 있다.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한 대상자는 5만 원 이하의 검사비만 지불하면 된다. 문제는 뼈가 부러지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고관절이다.
“보통 많이 부러지는 부위는 척추, 손목, 고관절이지만 골반이나 갈비뼈 골절도 흔해요.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고관절 골절이죠. 사망률이 24%에 달해요. 고관절 골절은 수술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폐색전증이나 폐렴, 욕창 같은 합병증이 나타나서 위험해집니다. 고령자는 더욱 그렇고요.”
골절이 발생해 병의 존재를 알게 되어도 쉽지는 않다. 일반인에 비해 뼈의 양과 질이 낮기 때문에 치료가 더디기 때문이다. 뼈가 약해 부러진 부위가 치료 과정이나 치료 후에 또 부러질 수도 있다. 온몸이 유리그릇처럼 다루기 조심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방·치료하려면 생활습관 바꿔야
백 교수는 골다공증은 예방만큼 좋은 치료가 없다고 강조한다.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약으로 극적인 효과를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뼈가 가장 많이 생성되는 30대에 되도록 많이 생성되도록 만드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 이후에도 뼈 생성을 유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칼슘과 비타민D, 단백질을 균형 있게 섭취하고,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는 것이죠. 운동도 중요해요. 운동은 뼈를 자극해 뼈 생성을 돕기도 하고, 근육과 균형 감각을 강화시켜 낙상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니까요. 골다공증에는 수영보다는 걷기 같은, 체중이 몸에 전달되는 운동이 좋아요. 다만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시니어에게는 걷기를 추천합니다. 걷기를 오래하면 햇볕을 쬐는 시간이 늘어나 비타민D 생성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비타민D는 먹는 약이나 주사를 권하기도 한다. 장에서 칼슘을 흡수하는 것을 돕고 뼈의 무기질 침착을 증진시키는 비타민D를 음식이나 햇볕을 통해 얻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 비타민D가 풍부한 음식에는 보통 생선이나 달걀노른자, 버섯 등이 꼽히고,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하루 비타민D 섭취량은 400IU다. 칼슘은 1000~1500mg이다. 또 발에 걸리는 물건을 치우고, 조명을 밝게 하는 등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낙상이나 이로 인한 골절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으로 꼽힌다.
신약 보험 적용으로 부담 덜어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과 함께 선택되는 치료법은 약물 치료다. 비스포스네이트 계열로 대표되는 골흡수억제제는 골다공증 치료에 가장 중심이 되는 약이다. 그러나 간혹 턱관절 괴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며, 오래 먹으면 골흡수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골형성도 억제하는 부작용이 생겨 다른 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경구제제의 경우 먹는 방법도 까다롭다. 많은 물과 함께 먹어야 하고, 복용 후에는 30분 동안눕지 않도록 한다. 식도에 약이 걸리면 궤양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장에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날짜를 맞춰 먹어야 하는데 시니어는 깜빡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아예 약 먹기를 포기하는 환자도 있다.
최근에는 골다공증 치료 효과로 주목받고 있는 부갑상선호르몬과 RANKL 단일클론항체 제제가 2016년과 2017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약물치료는 좀 더 쉬워졌다. 부갑상선호르몬은 인슐린처럼 집에서 하루 한 번 주사를 놓으면 되고, RANKL 단일클론항체 제제는 6개월에 한 번 피하 주사로 맞으면 된다. 다만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골흡수억제제로 1년 이상 치료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백 교수는 골다공증은 결국 예방이 제일이라고 강조한다.
“병원에 올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뼈 상태를 확인해두시는 것이 좋아요. 정기적인 운동도 잊지 마시고요.”
나는 장애인이다. 10여 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후유증으로 인해 장애인이 됐다. 장애인을 위한 정부 복지 정책이 있어서 그 덕을 몇 가지 보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1년에 한 번 컴퓨터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는 '장애인을 위한 무료 방문 교육'이다. 지난달에 내 순서가 돼서 교육을 받았다. 평소 모르면서도 그냥 지나간 것을 쭉 적어 놓았다가 질문하니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교육 마지막 날 선생님이 페이스북(facebook.com)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심심할 때 해 보라고 했다.
가입하고 테스트를 하니 어떤 미국 남자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접속이 됐다. 나이와 직업을 서로 소개하는데 난 물론 73세 할머니이고 상대방은 무척 흥미로웠다. 50세 후반 남성이었는데 열 살짜리 남자 아들을 둔 이혼남이었다. 첫 부인은 중국 여성이었는데 마약을 하는 바람에 이혼했다고 한다. 난 공연히 안타까운 생각으로 흥미를 갖게 되어 사진도 몇 개 교환했다. 직업은 외과 의사고 미군이 주둔하는 이집트 부대에서 의사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도 했다. 몇 달 후 제대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한국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잘 나온 사진을 한 장 보내며 말이다.
그 말이 오고 간 후, 날짜가 지나자 안쓰러운 얘기를 꺼냈다. 보육원에서 자라다 부잣집으로 입양됐다고 말이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지만, 평생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난 한 번도 상대방을 의심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페이스북 메신저로 문자가 왔다. 자기가 얼마 있으면 제대한다고 했다. 며칠 후 부대장과 면담이 끝나면 일종의 공로금 같은 것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그 돈으로 한국에서 집을 사고 재혼도 하고 싶다는 거였다. 난 심심하던 차에 재혼 신랑 깜(?) 사진을 또래의 조카딸에게 보여줬다. 이런 일도 있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떠벌렸다. 조카의 친구 하나가 관심도 보였다. 지난 일요일 아들이 왔길래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눴다. 신랑감의 사진이랑 내가 나눈 문자를 보여줬다. 아들이 깔깔 웃으며 “이거 완전 거짓말”이라며 당장 친구 차단하라고 했다. 모든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꾸민 것 같다는 아들의 이야기. 읽어 보니 하버드 졸업생이 쓸법한 영어도 아니고 사진도 합성일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무슨 목적으로 나 같은 할머니에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심심풀이일 수도 있고, 심하면 나의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 사기에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애고 놀라라!
개인 방송 중 진행자가 갑자기 8층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지막지한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러한 사건의 근저에는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우울증이란 질환이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항우울제 소비량은 꼴찌 수준일 만큼 우울증 치료에 인색하다. 2015년에 28개국 중 27위였다. 이런 상황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울증을 방치하면 중병만큼이나 무섭다. 한양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노성원(盧聖元·46) 교수를 통해 우울증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여성이 주의해야 할 질환 중 우울증이 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발병률이 높기 때문이다. 남성의 2배 정도 된다. 노성원 교수는 남녀 간 우울증 발생의 차이가 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은 월경을 통해 매달 호르몬의 변화를 큰 폭으로 겪게 되니까요. 또 출산 역시 엄청난 호르몬 변화를 가져오고, 폐경 전후에도 마찬가지죠. 심각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생리전 증후군이나 산후우울증, 갱년기우울증 모두 호르몬의 변화가 원인인 우울증 일종이라 보면 됩니다.”
노 교수는 여성이 삶에서 겪는 스트레스 역시 우울증이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목한다. 출산과 육아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갈등 중심에 서 있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맞벌이 등으로 사회참여 폭까지 넓어지면서 스트레스의 종류와 양이 모두 늘었다는 것이다.
중년의 우울증에는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또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상실이다. 상실로 인한 대표적인 우울증으로는 빈둥지증후군이 있다. 자녀가 모두 독립하고 집이 텅 비면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또 친구나 친지들이 아프거나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무릎이나 허리 등 활동에 제약을 받는 질환에 걸려도 상실감은 찾아온다. 은퇴로 인한 사회적 지위나 직장의 상실도 마찬가지.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영향이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갑상선암 수술 후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거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이 뇌에 영향을 주면서 우울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만큼 우울증은 원인이 다양한 병이다.
치매와 우울증 구분 방법은?
전문의들은 우울증에 맞닥뜨릴 때 나타나는 증상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가장 큰 증상은 기분의 변화다. 의욕이 사라지고 축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생리적으로도 변화가 나타난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식욕도 사라진다. 그러다 사고의 변화까지 일으킨다. 모든 사안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이 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할 경우 허무망상이 심해지면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인지능력 저하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흔히 말하는 ‘총기’가 사라진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흔히 치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를 잘하면 명의로 평가받기도 하죠. 치매가 치료된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러나 치매로 인한 인지능력 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은 다소 다릅니다. 치매의 경우는 본인이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떠올리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그런 노력을 귀찮아하고 포기해버려요.”
우울증으로 인해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몸의 통증이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나타내는 데 적극적인 서구권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울증 증상도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노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표현에 서툴잖아요. 특히 남성들은 더하죠. 가면성 우울증은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우울증 환자인 경우를 말해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이상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픈데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해봐도 도통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우울증일 수 있다고 의심해봐야 할 때는 언제일까. 노 교수는 평소에 비해 모든 것이 귀찮고, 우울하고, 입맛도 떨어진 것 같으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재미있게 보던 TV 드라마가 재미가 없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봐도 웃기지 않고,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주제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우울증은 외형적인 변화도 일으킨다. 즉 행동이 느려지고, 외출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정되어 있던 약속까지 취소하면서 두문불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며칠 그러다 말지만, 2주 이상 이와 같은 증상이 지속되면 발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치료는 인내심을 갖고 임해야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할까. 잘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의 대표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 치료다.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주면 우울증 증상이 개선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약물을 통해 보충해준다. 약물 치료를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약물 성분도 아니고 복용 방법도 아니다. 바로 끈기와 인내다.
“우울증 치료제는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려면 2~3주 정도 지나야 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복용해야 해요. 또 치료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드셔야 합니다. 치료 중간에 약을 끊어도 변화가 아주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 전에 이런 부분을 반드시 강조합니다.”
약물 치료 외에 전기나 자기로 뇌를 자극해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우울증이 심해 당장 극단적 선택을 할 우려가 있는 환자, 약물 치료가 어려운 임산부 혹은 고령의 환자들에게 사용한다. 일주일에 2~3회씩 2~3개월 동안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치료 효과는 높은 편이다. 마취 후 시술하기 때문에 통증 염려도 없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자주 걸어라”
우울증처럼 환자들이 의학적인 치료 외의 방법에 매달리는 병은 많지 않다. 그만큼 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크고, 주변에 알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교수는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이 도움될 것 같지만 우울증 환자에겐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곳에서 나만 비참하다 생각되면 증세만 심해질 뿐이니까요. 술과 담배 역시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만 나타날 뿐입니다. 치료 없는 상담도 큰 도움이 안 돼요.”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주변의 조언이다. 의지가 문제라거나 정신 차리라는 등의 충고는 병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섣부른 위로도 마찬가지. 우울증 환자가 주변에 있다면 그저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노 교수는 조언한다.
우울증을 예방하거나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걷기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걷기는 가벼운 우울증에 좋다. 의료계에서 인정한 거의 유일한 자가치료 방법이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우울증 관련 서적을 읽어본다면 스스로의 증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