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 17개 지자체의 지원으로 추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에 함께할 13기 신규 이야기할머니를 모집한다. 1월 18일부터 2월 22일까지, 만 56~74세 대한민국 국적 여성이라면 응시 가능하다. 우대사항으로 ‘고정된 직업이 없는 이’에게 가산점을 부여해, 제2직업을 꿈꾸는 시니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사업에 관심 있는 이들이 궁금해 할 점들을 질의응답 형태로 알아봤다.
자료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Q. 이야기할머니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A. 이야기할머니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후 한국국학진흥원이 제공하는 교재 속 이야기를 한 주에 한 편씩 외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들려주는 활동을 한다. 동화구연과는 달리 과장된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고, 옛날 할머니가 손주에게 했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다.
Q. 선발은 지역별 인원이 정해져 있나?
A. 지자체별로 선발인원이 정해져 있다. 단, 지원자가 없거나 적임자가 없는 기초지자체는 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Q. ‘응시자격’에서 ‘고정된 직업이 없는 분’은 무슨 뜻인가?
A. 자원봉사자로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에 전념하도록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고, 본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증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을 우대하여 선발한다는 의미다.
Q. 서류심사 불합격 기준은 무엇인가?
A. 다음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는 불합격 처리된다.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주민등록초본, 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하시지 않은 경우 △사진을 미첨부한 경우 △지정된 지원서 양식을 임의로 변경한 경우(반드시 단면 출력 작성) △서명이 누락된 경우(개인정보이용동의서) △마감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경우
Q. 관련 경력 증명서류는 별도로 제출해야 하나?
A.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선발 공고문에 명기된 서류(응시지원서, 자기소개서, 개인정보이용동의서, 주민등록초본)만 제출하면 된다. 이 외에 제출하는 서류는 전형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Q. 면접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이뤄지나?
A. 서울, 원주,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제주에서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 장소는 지원서에 기재된 주소지를 기준으로 확정된다. 공지된 면접일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변경이 불가하며, 정해진 면접시작 20분 이후에 도착하면 면접을 볼 수 없다. 가령 10시 면접일 때 10시 20분 도착은 면접 가능, 10시 21분 이후 도착은 면접 불가.
Q. 신규교육은 어떤 것인가?
A. 이야기할머니로서 기본소양을 갖추기 위한 교육이다. 합격을 하면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에 방문해 2박 3일간 기본소양 교육을 받는다. 교통편과 숙식은 제공된다.
Q. 월례교육은 어떤 것인가?
A. 신규교육 후 매월 1차례 진행되는 구연 실습교육으로 지정된 이야기를 암기하여 직접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가정 아래 진행하는 교육이다. 월례교육 장소는 기본적으로 면접을 봤던 지역에서 월 1회씩 총 6회로 진행되며 중식은 제공되지 않는다. 제주지역은 광주·부산·서울 중 한곳을 선택하여 월례교육을 받아야 한다.
Q. 교육 및 실습 시 수당이 지급되나?
A. 월례교육 1회당 3만 원(연간 6회), 현장활동 실습 수당 1회당 4만 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Q. 교육만 수료하면 활동할 수 있나?
A. 월례교육 과정에서 이야기 구연 실습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월례교육 6회 중 3회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며, 평가 받은 점수가 기준 점수(70점) 이상인 경우에만 수료할 수 있다. 활동 전 사전교육을 받은 후 유아교육기관에 파견돼 활동을 하게 된다.
귀농생활이 힘들 것을 미리 충분히 알았으나 단단히 각오할 것까진 없었단다. 도시의 아파트를 벗어나는 해방감이 컸거니와, 시골에서 자라며 쌓인 경험과 정서를 밑천으로 삼은 귀농이라 날아오르듯 가뿐한 행보였다. 그리고 즐거운 귀농의 나날이 이어졌다. 살다 보니 구름인 양 물인 양 걸림 없이 한 세상 흐르기에 좋은 게 시골인 걸 알았나보다. 김영남(56, 옥천 풀잎체험농원) 씨는 이렇게 정든 시골에서 활개를 친다. 그저 매양 웃으며 산다. 웃지 않고 산다면 이 무슨 인생 낭비? 그리 여기는 것 같다.
영남 씨의 귀농은 우연한 계기로 촉발되었다. 남들처럼 뜸 들여 면밀한 계획을 세우거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귀농지를 물색하는 식의 사전 작업을 면제해준 선연(善緣)이 그를 방문했던 것이다. 대전의 한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를 수발하다 옆 병상의 어떤 할머니까지 덩달아 수발한 게 귀농의 연줄이 될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일이 있고 가만 있어도 술술 풀리는 일이 있으니 인생이란 기묘한 게임이다. 영남 씨는 할머니와의 인연을 복이라 친다. 그렇다면 이 복은 하늘이 내렸나? 영남 씨의 갸륵한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세사의 인과(因果)는 대략 오차 없이 행진하는 법이다.
“퇴원을 한 할머니께서 당신의 시골집에 놀러오라 청하시더라. 병원에서 정들어 양어머니로 삼아 섬겼던 터라 막역한 관계 형성이 됐던 거였다. 해서, 남편과 함께 놀러갔더니 마을의 느낌이 무척 좋아 거기에 아예 살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게다가 양어머니가 빈집을 추천해줬다. 뭐를 따지고 잴 게 없었다. 살던 대전의 아파트 등 부동산을 서둘러 팔아 자금을 만들었고, 그 빈집을 사 허물고 황토 집을 나름 멋지게 지었다. 일사천리로 단숨에 귀농했던 거다. 2016년의 일이었다.”
농원 규모가 엄청나다. 이 너른 언덕배기 토지를 어떻게 확보했지?
“시부모님이 남편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전답과 임야로 이루어진 1만8000평짜리 터로 이 가운데
1만 평을 과수원으로 개간해 운영한다. 복숭아도 꽤 많이 심었지만 사과 재배에 주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농원 일대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팔짝팔짝 뛰더라. 정작 나는 풍경을 즐길 시간 여유조차 없는데.(웃음) 귀농, 이거 정말 장난 아니다.”
우연하고도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귀농이었구나.
“그런 셈이다. 계획적이었다면 남편의 직장생활부터 청산했겠지만 그러질 않았다. 시골에 내려와서도 남편은 한동안 대전으로 출퇴근을 했다. 1년 이상 직장 일을 계속하다 그만뒀거든.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옆집 주민과 마찰이 빚어져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동네에서 아예 내놓은 기인이었다. 결국은 여생을 눌러 살고자 공들여 잘 지은 집에서 2년여를 살다 현재의 이곳으로 이사를 했지.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이곳은 풍광부터 평온하다. 산자락에 안긴 집이라 호젓하고. 이런 터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이사를 결심했던 때에 나온 매물이었다. 처음에 살던 집과 지척이지만 모든 여건이 더 좋았다. 기도원으로 쓰던 2층집이었다. 부지 2000평에 전답도 딸려 있어 금상첨화였다. ‘야, 여기가 낙원이구나, 이제 본격적인 귀농생활로 고고싱이다!’ 내가 그렇게 외쳤던 거다.(웃음)”
드디어 농사를 시작했나?
“농사를 해본들 보람이 있겠나? 내가 원래 농사라는 직업엔 회의적이었다. 시골 출신으로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지. 그러나 남편은 농사에 뛰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복숭아대학을 다니는 등 농업에 관심을 가져봤지만 그건 나의 일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농사는 남편이 짓고,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많았다. 뭐든 맘먹고 덤벼들면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쳤지. 문제는 최적의 일을 찾아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식용곤충농장이 적합해 보여 산업곤충 공부를 좀 해봤지만 비전이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이런저런 모색을 하다 그냥 적성과 능력에 맞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
어떤 답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다육식물과 야생화를 즐기는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다육식물 전문 농원을 만들기로 했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맛있게 담그는 사람으로 알려졌으니 장류 사업을 병행해도 무난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기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래 일단은 카페를 차려 생활비를 벌기로 하고 2층 공간을 개조해 찻집을 차렸다. 내겐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었다.”
그의 카페엔 특별한 게 있다
허세와 뻥 없는 겸허함으로 내 실력에 맞춰 사는 일. 그걸 지혜라 일컫지만 지지고 볶는 세파에 흔들리다 보면 과욕과 과속을 일삼다 표류하기 십상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해내는 인생은 꽃길이다. 그러나 정작 가시밭길을 헤매다 종 치기 쉬운 게 인생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영남 씨,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자신부터 기쁘게 하는 쪽으로 일을 구상했던 것 같다. 후미진 산기슭에 웬 카페인가 싶지만 개업 1년 남짓이 지난 현재 어지간히 자리가 잡혔다. 잘 돌아간다.
농원 전체의 담백하고 조촐한 풍색과 마찬가지로 카페 역시 소박하게 꾸몄다. 조화나 그림 액자, 소쿠리, 또는 특별할 것 없는 빈티지 장식품들로 공간을 치장해 동네 사랑방처럼 따사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래서인가, 인근 읍내 주민들이 찾아들어 단골 노릇을 한다. 멀리 대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사뭇 독특하거나 매력적인 공간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순탄하단다. 이 카페엔 뭔가 특별한 게 있나보다. 뭘까.
“손님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우선은 찻값이 착해 좋다고들 한다. 차와 함께 제공되는 군것질거리로도 호감을 산다. 푸짐하게 내놓거든. 요즘 같은 철엔 군고구마와 군밤, 옥수수 튀밥을 한꺼번에 제공한다. 이렇게 퍼주고 남는 게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지만, 이 외진 산골짝을 찾아주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 뿐이지. 난 스스로 선택한 일이면 무조건 즐기는 태도로 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즐거워지더라.”
날이면 날마다 손님들을 맞이해 신경 써야 하는 게 찻집 일이다. 은근히 감정 소모가 많을 것 같다.
“난 센치한 멋과 분위기를 추구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전혀 아니다. 사교적이랄까, 긍정적이랄까, 내겐 그런 기질이 충만해 있다. 때로 아줌마들과 어울려 앉아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 일에 만족스럽다.”
코로나로 불황이 자심하다. 찻집에서 나오는 월수입을 말해줄 수 있을까?
“평균 순소득 250만 원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부부 둘의 생활비로는 부족하지 않다. 그래도 남편에겐 좀 미안하다. 그간 농원 조성을 위해 내가 많은 자금을 쏟아 부었거든.”
당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남편은 자동차 회사 쉐보레에서 판금 기술자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농장 운영이나 카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력의 소유자라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모든 걸 주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나? 남편에게 선언한 약속이 있다. ‘걱정 말라, 반드시 수익이 창출되는 농원으로 키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겠다!’ 하하하!”
아직은 불쏘시개 지피는 단계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도 목소리도 쾌활하다 못해 화통하다. 말방울 쩌렁거리는 것 같다. 그건 오래된 습이다. 잘 이해할 수 없는 게 인간사라지만 낙관과 긍정으로 매사를 접수하면 넘지 못할 벽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밝은 천성도 한몫 거들어 잘 웃게 하는 안면근육을 발육시켰다. 그의 어려서부터의 꿈은 가수였다. 결혼을 하고서도 버리지 않은 꿈이었으나 남편의 반대로 포기했단다.
“남편이 뒷바라지를 해줬다면 지금쯤 유명 가수는 아니라도 밤무대 가수 정도로는 뛰고 있을 게 틀림없다.(웃음) 애석하게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노래강사 자격증을 따 대전에서 갖가지 봉사활동을 했다. 웃음치료사로도 맹활약을 했다. 그거 아시나? 웃음치료사가 얼마나 좋은 건지를. 남들을 행복하게 하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 너무 좋더라. 인생이 바뀌더라. 매사에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하거든.”
우울의 늪에 빠질 뻔한 시절도 있었다.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사투를 했던 것인데 긍정심을 약 삼아 완치했다. 이후 삶이 한결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삶의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인생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걸 실증해보이기 위해 귀농의 나날들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웃음으로 떠나보낸다.
농장을 둘러볼까. 집 뒤편 경사지에 비닐하우스 석 동이 있다. 하우스 하나에선 다육이 화분들이 도란거린다. 영남 씨는 이 땅딸보 식물들이 향후 농원의 성장 주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을 믿는다. 특용작물을 시험 재배하는 하우스도 있다. 닭과 칠면조와 토끼를 기르는 하우스도 재미있다. 국화를 군락으로 조성한 산책로 맨 위편 평탄지엔 언제 보아도 푸근한 인상으로 무상의 보시를 하는 항아리 200여 개가 놓여 있다. 한판 야무지게 된장 사업에 뛰어들 것을 예고하는 풍경이다. 찜질방과 민박용 객실도 지어놨다. 아직은 불쏘시개를 지피는 단계이지만 영남 씨는 복합농원으로 키워나갈 포부에 부풀어 있다.
“친구들은 나를 두고 이미 성공한 귀농인이라 한다. 나를 보고 귀농을 따라 한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귀농인의 귀감이 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목적 지점에 도달하고 싶다. 마을 이장 선거에도 나갈 참이다. 왜냐고? 이장의 선의와 노력만으로도 마을 공동체의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김영남 씨가 주는 귀농 Tip
•반드시 부부가 함께 귀농하자. 농촌에선 원주민들과의 소통 등 아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다.
•농업정책자금에 관심을 가져라. 크고 작은 각종 지원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니까.
•귀농하기 전에 각 지역에 있는 귀촌귀농단체의 총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자. 그게 가장 신빙성 있는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길이다.
‘난타’의 제작자이자 공연 연출가,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까지 인생의 화려한 2막을 그려온 배우 송승환이 연극 ‘더 드레서’로 돌아왔다. 연극으로 무대에 서는 건 2011년 ‘갈매기’ 이후 9년 만이다. ‘더 드레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전쟁통 속에서 공연을 올려야 하는 한 극단 대표이자 노배우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주인공이 걸어온 삶의 길이 자신의 인생을 닮은 것 같아 이 작품을 택했다. 아역배우에서 중견배우로, 이제는 노역배우로 인생 3막을 열어갈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랜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소감은?
연극은 방송이나 영화처럼 편집이 없어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온전히 보여줄 수 있지요. 그래서 더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관객과 자주 만나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제 내가 ‘노역배우’로 활동할 수 있겠다 싶은 순간 만난 작품이에요. 극작가 로날드 하우드는 워낙 훌륭한 작가죠. 여러 작품을 두고 고민했는데, ‘더 드레서’는 일단 제 삶과 가장 많이 닮은 이야기 같았어요. 극중 ‘선생’은 한 극단을 책임지는 대표이자 배우입니다. 저 역시 제작자이자 배우의 삶을 살고 있잖아요. 여러 가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어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노배우’ 역을 연기하며 느낀 점은?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노인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노역을 제대로 연기해보는 게 처음이라 스스로도 기대감이 큽니다.
특별히 와 닿았던 대사가 있다면?
배우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배우는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거야”라는 대사가 와 닿았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영상 기록이 남지만, 연극은 현장 예술이기 때문에 작품을 목격한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잖아요. 요즘 공연을 영상화하자는 얘기도 많은데, 저는 ‘생선회를 통조림에 넣은 것과 같다’고 비유해요. 연극은 관객과의 호흡과 소통을 통해 완성되는 거니까요.
작품 외에 준비 중인 일은?
최근 이순재 선생님, 오현경 선생님, 김영옥 선생님을 뵈었어요. 요즘 준비 중인 유튜브 방송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 촬영 때문이었죠. 이 방송은 제가 원로 배우 선생님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인데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브로 만들고 싶어서 기획한 채널이에요.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은?
사적인 자리에서 선생님들의 그 시절 방송, 영화, 공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재미있어요. 방송국에서 거의 생방송으로 드라마를 촬영하던 때의 이야기는 그분들이 아니면 들을 수 없죠. 지금까지 세 분을 뵈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배우 선생님들을 만날 예정인데, 언젠간 제 이야기로 끝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앞서 배우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많이 존경스럽고, 배울 점도 많은데요. 저도 그렇게 제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지금까지 배우로 살아오며,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자세가 바뀌진 않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상대 배우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태도는 깊어진 것 같아요. 그렇게 쌓여가는 연륜을 받아들이면서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꾸준히 연기하고, 공연 제작하면서 재밌는 일을 할 겁니다.
연극 '더 드레서'
일정 2021년 1월 3일까지 장소 정동극장
연출 장유정 출연 송승환, 안재욱, 오만석, 정재은 등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할리우드 원조 꽃미남’ 하면 빠질 수 없는 배우들이다. 지금은 중년 배우로서 중후한 멋을 뽐내고 있지만, 30여 년 전 이들은 만화책을 찢고 나온듯한 외모로 전 세계 여심을 사로잡은 전적이 있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이 세 배우의 ‘리즈 시절’(전성기)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탑건(Top Gun, 1986)
해군 최신 전투기 F-14기를 모는 조종사 ‘매버릭 대위’(톰 크루즈)는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탑건’ 훈련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매버릭은 생도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항공물리학 전문가 ‘찰리’(켈리 맥길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달콤한 나날도 잠시, 어느 날 비행 훈련 도중 매버릭이 몰던 전투기의 엔진이 고장 나고, 탈출을 시도하던 친구 ‘구즈’가 목숨을 잃는다. 구즈의 죽음에 충격에 빠진 매버릭은 사고 트라우마로 인해 조종사의 꿈을 포기할 위기에 놓인다.
영화 ‘탑건’은 전투기 조종사를 꿈꾸는 청년들의 사랑과 열정을 그린 영화로, 실제 항공모함과 전투기, 현역 군인, 조종사 등을 동원해 현실감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당시 신인이었던 톰 크루즈는 이 영화로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며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부상했다. 항공 점퍼를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오토바이를 모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2.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 1994)
‘윌리엄 러드로우 대령’(안소니 홉킨스)은 퇴역 후 몬타나의 한 목장에서 세 아들 ‘알프레드’(에이단 퀸), ‘트리스탠’(브래드 피트), ‘새뮤얼’(헨리 토마스)과 함께 산다. 어느 날 유학길에 올랐던 새뮤얼은 약혼녀 ‘수잔나’(줄리아 오몬드)를 가족에게 소개하고, 알프레드와 트리스탠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새뮤얼은 적군의 총에 목숨을 잃는다. 약혼자를 잃은 수잔나는 돌아갈 채비를 하다 트리스탠과 재회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려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한편 알프레도 역시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며 세 사람 간 얽히고설킨 관계는 더욱 헝클어져 간다.
짐 해리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가을의 전설’은 평화롭던 한 가족이 사랑과 욕망으로 몰락해나가는 내용이다. 따라서 영화의 원제를 ‘가을(fall)’ 대신 ‘추락(fall)’이라는 뜻의 동음이의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야성적인 매력의 ‘트리스탄’을 연기하며 목선까지 내려오는 금발과 우수에 찬 눈동자로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3. 타이타닉(Titanic, 1997)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도박으로 세계 최고의 선박 타이타닉호의 3등석 탑승권을 따낸다. 막강한 재력의 약혼자와 함께 1등석에 탑승한 ‘로즈’(케인트 윈슬렛)는 사랑 없는 결혼에 비관하며, 배 위에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잭은 극적으로 로즈를 구해내고, 두 사람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잭과 로즈의 관계가 깊어지는 동안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두 사람을 실은 배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영화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4일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3시간 10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명연기가 긴 여운을 이끌어낸다. ‘리즈 시절’의 대명사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눈부신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 (정재환 저·생각정원)
방송인 출신 역사학자 정재환이 조선어학회의 투쟁사를 살펴본다. 일제 치하 말과 글을 빼앗긴 민족의 상황과 이에 맞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조명한다.
내 손 안의 작은 미술관 (김인철 저·양문)
19세기 인상주의를 연 화가 25인의 명화를 한 권으로 감상한다.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처럼 그림 소개뿐 아니라 화가의 삶과 교우 관계 등 생생한 일화까지 함께 제공한다.
건강수명 100세 (김혜성 저·파라사이언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된 '내 안의 우주' 시리즈의 저자 김혜성 박사의 신간. 건강수명이 줄어드는 원인을 파헤치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저·마음산책)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 로맹 가리의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연'이라는 상징물로 표현한 작품이다.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최성연 저·위즈덤하우스)
50대 고학력자 여성이 ‘고졸’로 이력서를 고쳐 쓰고 1년간 미화원으로 일한 이야기를 담는다. 미화 일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 비합리적인 청소 노동자의 현실 등을 진솔하게 전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홍유진 저·시공사)
차박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북. 차박 관련 용어부터 차종, 예산, 장비 등 기초적인 정보와 차박 성지 및 주변 여행지까지 안내한다. 부록으로 ‘차박캠핑족’의 생생한 인터뷰도 실려 있다.
● Exhibition
◇퓰리처상 사진전
일정 10월 18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 사진전이 6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1942년부터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까지 총 134점의 수상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사진 부문에서 수상한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의 작품도 공개된다. 제3전시실에서는 201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도중 사망한 여성 종군기자 안야 니드링하우스를 기념하는 특별전을 진행한다. 수상작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필름과 퓰리처상 주요 수상작을 미디어 아트로 구성한 영상 콘텐츠도 제공한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일정 9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진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공모사업의 결과 보고전이다. 전시에 참여한 ‘강남버그’와 ‘SQC’는 디자이너, 건축가, 연구자로 구성된 팀으로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창작자들 간 협업을 지원하는 사업 취지에 따라 선발됐다. 이번 전시에서 강남버그는 ‘천하제일 뎃생대회’, ‘강남버스’ 등 강남의 과거와 현재를 표현한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쟁점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SQC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밀려난 종로3가 소수자를 ‘도시퀴어’라 명명하며 이들의 문제에 주목한다.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
일정 9월 27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신규 지정된 국보·보물을 공개한다. 국보 제151-1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을 비롯해 총 83건 196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를 지키다’, ‘예술을 펼치다’, ‘염원을 담다’ 등 총 3부로 구성돼 각각 기록유산과 예술품, 불교 문화재를 소개한다. 전시실 입구에서 보여주는 국보와 보물에 대한 전문가와 시민들의 인터뷰와 영상은 문화유산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전시장을 찾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서 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온라인 전시도 진행한다.
◇명상 Mindfulness
일정 9월 27일까지 장소 피크닉
‘코로나블루’를 겪는 현대인들을 위한 맞춤형 전시. 명상이 주는 힘과 의미를 회화, 영상, 공간디자인 등 총 8점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설명한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대만 작가 차웨이 차이,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타츠오 등 실제로 수행을 실천하는 각 분야 예술인들이 전시에 참여한다.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나선형 구조의 설치작품 ‘느리게 걷기’, 공간 전체를 주황빛으로 연출한 작품 ‘공간’ 등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해 관람객들이 작품보다는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 Stage
◇캣츠
일정 9월 9일~11월 8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트레버 넌 출연 조아나 암필, 앨리스 배트, 헤이든 바움 등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T.S. 엘리엇의 우화집이 원작이다. ‘젤리클 축제’에 모인 고양이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초연 40주년을 기념해 세계적인 디바 ‘조아나 암필’, 한국인이 사랑하는 월드스타 ‘브래드 리틀’ 등 최고의 기량을 갖춘 배우들이 함께한다. 2017년 한국 뮤지컬 사상 최초 200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진행되는 첫 공연이다.
◇킹키부츠
일정 11월 1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연출 조광화 출연 이석훈, 박은태, 김지우 등
팝 가수 신디 로퍼가 작사·작곡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폐업 위기에 처한 구두공장을 살리기 위해 여장 남자용 부츠 판매에 뛰어든 두 남자의 도전기를 담았다. 1980년대 영국 W.J. 브룩스 공장의 실제 성공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리퀴리
일정 9월 27일까지 장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태형 출연 김소향, 옥주현, 김히어라 등
과학자 ‘마리퀴리’의 삶을 각색한 팩션 뮤지컬로 리튬 발견이라는 업적 뒤에 가려진 인간 마리퀴리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렸다. 초연 당시 5인조였던 라이브 밴드를 7인조로 보강해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 Movie
◇오! 문희
개봉 9월 2일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정세교 출연 나문희, 이희준, 최원영, 박지영 등
평화로운 농촌마을, 뺑소니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 ‘문희’와 그의 아들 ‘두원’이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관록이 빛나는 나문희와 리얼리티 연기의 대가 이희준의 호흡이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59년 연기 인생 최초로 액션에 도전한 나문희는 나무에 오르고 트랙터로 논두렁을 달리는 등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선보여 기대를 모은다. 정세교 감독이 나문희를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쓴 만큼 ‘문희’가 나문희의 ‘인생 캐릭터’로 새롭게 등극할지 주목된다.
◇카일라스 가는 길
개봉 9월 3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정형민 출연 이춘숙
80대 최고령 오지탐험가 이춘숙 씨의 ‘카일라스’ 순례 여정기를 담은 로드무비다. 자연을 거닐며 인생을 돌아보고 다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 씨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개봉 9월 예정 장르 액션 감독 매튜 본 출연 랄프 파인즈, 해리스 딕킨슨 등
킹스맨 시리즈의 프리퀄 영화로 베일에 싸여 있던 킹스맨의 기원을 밝힌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전쟁을 모의하는 폭군과 범죄자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 Book
◇나는 당신이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주홍 저·비타북스)
대한민국 치매 주치의 박주홍 박사가 치매 예방에 좋은 생활 루틴을 제안한다. 컴퓨터를 배우며 치매를 늦춘 할머니, 꾸준한 산책으로 기억력이 개선된 환자 등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뇌 활성화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8개 지압법과 31가지 부위별 뇌 강화 운동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소설여행 (김유정 저·나무나무)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발리 등 소설 속 도시를 향해 떠난 작가의 에세이. 17곳의 여행지 소개와 더불어 소설의 의미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코로나가 시장을 바꾼다 (이준영 저·21세기북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인 이준영 교수가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소비 트렌드를 7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홈코노미’, ‘로컬리즘’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 소비 지형을 조망한다.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빅터 프랭클 저·청아출판사)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1946년 오스트리아의 한 시민대학에서 했던 강연을 책으로 옮겼다. 고난 속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속리산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 즐겨 찾는 여행 코스 중 하나였다. 법주사를 가려면 꼬불꼬불 12고개 길인 ‘말티재’를 넘어야 한다. 마치 용이 꿈틀대듯 휘어져 돌아가는 길이다.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 길을 타고 돌 때면 ‘와’ 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다. 그 말티재를 넘어 법주사 가는 길에 높은 벼슬을 가진 명물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 소나무’다.
‘정이품송’(正二品松)으로 불린 유래는 이렇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가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처진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가지에 걸린다”라고 말하니,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올려 왕이 지나가도록 했다 한다. 세조는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정이품(현재 장관급)의 벼슬을 내렸다. 이때부터 이 소나무를 ‘정이품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귀한 소나무에 문제가 생겼다. 600년 넘게 살다 보니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솔잎혹파리와 각종 해충, 그리고 낙뢰와 돌풍 등으로 가지가 부러져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 소나무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9년 4월 3일 이 장자목을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 심게 되었다.
* 장자목 탄생 과정
2001년 봄, ‘정이품송 혈통 보전을 위한 혼례식’을 거행했다. 속리산 정이품송을 부계로 한 혈통 계승이다.
⓵ 어미나무 간택: 전국에서 선발된 425개체 중 가장 뛰어난 강원도 삼척의 5개체를 선정하였다.
⓶ 인공교배: 화분채취와 가루받이(2001년 4~5월) → 수정(2002년 5월) → 종자채취(2002년 10월) → 파종(2003년 3월)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9년 4월 드디어 장자목을 서울올림픽의 상징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 옮겨 심었다.
● 식수 당시 모습: 수령 7년생, 높이 1.3m, 근원경 3.97cm
● 장자목 탄생: 아비나무 정이품송(충북 속리산)과 어미나무(강원도 삼척의 5개체)의 인공 교배
* 현재의 장자목 모습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의 장자목의 모습은 귀한 혈통답게 당당하고 기품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찾는 공원이 올림픽공원이다.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틀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자랑스럽게 후손들에게 물려줄 민족의 성지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정이품송 장자목이 그 기개를 펼치고 민족의 번창을 지켜볼 것이다. 아비나무 정이품송이 그랬던 것처럼 대대손손 자라 몇천 년이라도 우리 민족과 함께할 것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그 명맥을 이어주길 염원한다. 대전 정부청사와 청와대 외 몇 군데에도 나누어 심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이품송의 장자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가까이 볼 수 있어 반갑다.
에르메스, 루이비통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 ‘샤넬’(Chanel)을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의 고급스런 디자인이 떠오른다. 하지만 샤넬이 여성을 과거의 정형화된 여성미로부터 해방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00~1910년대 유럽 여성의 옷은 중세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류층은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모자를 썼다. 여전히 전통 코르셋을 착용하는 여성도 있었다. 하류층 여성의 의복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편안하지 않으면 럭셔리 아니다”
“럭셔리는 편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럭셔리가 아니다.” 여성복의 표준을 바꾼 가브리엘 샤넬의 모토다. 여성들이 왜 비실용적이고, 쓸모없는 복장을 고수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낀 그녀는 스포티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현대 여성복 ‘샤넬 슈트’를 만들었다. 이 디자인은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이 화려한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가 됐다. 샤넬은 주머니가 달린 재킷과 여성용 바지도 제작했다.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인 샤넬 스타일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패션문화 바꾼 ‘리틀 블랙 드레스’
1926년 선보인 ‘리틀 블랙 드레스’는 패션문화를 바꾼 옷이다. 지금 보면 활동하기 편한 평범한 검은색 미니 드레스일 뿐인데, 그 명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검은색은 장례식에서나 입는 불길한 색이었다. 하지만 샤넬이 “변하지 않는 가치를 상징하는 검은색은 고전 그 자체”라며 자신의 옷에 과감히 사용한 뒤로 대중적인 패션이 됐다. 패션지 ‘보그’는 리틀 블랙 드레스를 포드의 대량생산 자동차 모델 T에 비유해 ‘샤넬의 포드’라고 불렀다. 훗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지방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고 연기해 패션 아이콘의 위치를 재확인해줬다.
◇실용적이고 우아한 ‘트위드 재킷’
‘트위드 재킷’은 1920년대에 출시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패션계를 떠나 있었던 가브리엘 샤넬이 1954년 복귀하며 리뉴얼해 유명해졌다. 트위드 재킷은 디자인 자체가 실용적이며 고전적인 우아함을 갖춘 덕분에 현재도 흉내 낸 옷이 많을 정도로 하나의 스타일이 됐다. 하지만 샤넬이 이 디자인을 들고 패션계에 돌아왔을 때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진부하고 고루하다며 온갖 혹평을 퍼부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패션의 혁명이라고 평가해 그녀의 디자인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린 작품이 됐다.
◇반향 불러온 매혹적인 향기 ‘N˚5’
1920년대 초 가브리엘 샤넬은 자신의 이름을 건 향수를 만들기 위해 일랑일랑, 자스민, 장미 등 온갖 고품질의 재료를 집어넣었으나 향기가 너무 강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 유명 조향사인 에른스트 보가 발명한 인공향 알데하이드를 더하면서 N˚5가 탄생됐다. 알데하이드는 화학약품 냄새가 났지만 꽃향기와 조화된 향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시도인 데다, 그저 다섯 번째 샘플이었기 때문에 N˚5란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반응은 엄청났다. 할리우드 배우 마릴린 먼로가 인터뷰에서 “침대에서 뭘 입고 주무세요?”라는 질문에 “샤넬 N˚5를 입는다”고 말한 일화는 꽤 유명하다.
◇샤넬을 대표하는 럭셔리한 가방들
‘클래식 백’은 어깨에 메는 최초의 가방으로 유명하다. 1955년 2월에 처음으로 만들어져 ‘2.55’라고 불린다. 손잡이도 당시에는 쓰지 않던 금속 재질로 만들었다. 잠금장치 부분은 마드무아젤 락을 사용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샤넬 로고의 락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 ‘보이 백’은 권총 주머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재질은 기본적인 소가죽과 양가죽 외에도 파이톤, 스팅레이(가오리), 데님, 트위드 등 다양하다. 한국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샤넬 가방이다. ‘빈티지 백’은 2005년 칼 라거펠드가 2.55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원래 모양대로 만든 가방이다. 겉에 샤넬 로고가 없는 게 특징이다.
◇샤넬이 공들인 사업 ‘화장품·시계’
샤넬 화장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제품은 빨간색 립스틱이다. 립스틱 외에 메이크업베이스인 ‘르 블랑’도 유명하다. 샤넬 제품에는 대부분 특유의 복숭아 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명 ‘복숭아향 메베(메이크업 베이스)’라고 불린다. 홀리데이 컬렉션으로 출시되는 리미티드 하이라이터 등도 꽤 인기가 많다. 시계 사업은 엄청난 투자와 노력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예술 책임자 자크 엘루가 7년의 준비 끝에 디자인한 ‘J12’는 이제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J12는 12m급 J클래스 요트경기에서 이름을 따온 스포츠 워치다. 샤넬의 컬러 코드인 블랙 혹은 화이트로 출시되고 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오랜만에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전하며,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 별 생각이 다 들고 옛 친구들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지네! 이제는 다들 70이 다 되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다는 생각에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전에 본 프로필 사진은 옛날 친구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세월의 흔적이 너무나 우리의 마음에 쓸쓸함만 맴돌게 하는구만! 허긴 나도 늙어 머리는 올 백이고 살은 돼지처럼 쪄서 80키로가 넘어. 옛날의 날씬하던 철수는 아니지.”
철수가 날씬했었나? 카톡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80kg이 넘는 ‘돼지’의 모습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긴 많이 흘렀구나, 이런 생각만 하게 됐다.
철수는 내 초등학교 짝꿍이다. 나는 임철순, 갸는 임철수. 한자로 성은 다르지만 ‘ㄴ’ 하나 차이인 우리는 충남 공주군(지금은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2구 되찬이, 동네도 한동네다. 마을에 들어서면 철수네 집을 지나야 우리 집에 닿는데,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나이는 철수가 한 살 더 많다. 그러니 벌써 올해 칠순이다.
이렇게 이름도 비슷하고 사는 곳도 같은 녀석들을 선생님은 무슨 맘을 먹고 한 책상에 앉혔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음악 시간에 자기는 절대로 노래를 하지 않고 “여기 다시 불러” 그러면서 풍금만 치던 분이다. 장난삼아 둘을 일부러 짝 지웠을 리 없다. 아마도 순전히 가나다순이었나 보다.
그 선생님을 내가 전병선이라고 했더니 철수가 전병석이라고 바로잡아주었다. 섭섭한 게 있어서 이름을 확실히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그런 일이 있으면 더 정확하게 기억하게 되지. 철수는 군인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을 때 “늬들 춥지? 추우면 산에다 불 놔.” 이렇게 썼다가 그 선생님한테 뒤지게 혼난 일이 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고, 다른 일이 더 있었나보다.
철수와 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 갈라진 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간혹 내가 고향에 가면 얼굴을 보긴 했지만 긴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이번에 알고 보니 철수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해서 큰애가 45세, 작은애가 42세에 손자녀가 넷이나 되는 완전 할아버지였다. 한동안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별 걱정 없이 대전의 그 집에서만 30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철수의 누나도 인근에 살고 있다니 우애가 여전히 좋은가보다. *누나 이야기는 다음 글 참고.
https://blog.naver.com/fusedtree/70085320452
내가 남들의 말[言]꼬리나 붙잡고 늘어지며 살 때, 철수는 열차 기관사로 30여 년간 철마의 말[馬]머리를 돌리며 살았다. 지금 큰돈은 없지만 그냥 놀러 다니고 건강에만 신경 쓰며 노년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 “참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전도서 12장 13절)라고 한 성경의 교훈대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서로 건강 이야기, 병 자랑을 하다가 “나는 지금도 약을 술에 타서 마신다”고 했더니 철수는 “전에 나도 유조차로 한 대 분량은 마셨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쩌다 취하지 않을 정도로 소주 반병 정도만 마신다고 한다.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에서 창조주를 섬기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름의 순 자 때문에 어려서 기집애 이름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그 ‘ㄴ’이 좋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전공)도 ‘니은 이야기’라는 글에서 니은은 따듯하면서도 오래 계속되는 느낌을 주는 소리인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을 나타내는 말에 니은이 많이 쓰이는 것은 사람도 이렇게 따뜻하게 오래 지속되어야 함을 은연중에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 중에 이철순이라는 유명 인사가 있다. 양평 군립미술관장을 거친 문화행정가인데, 만날 적마다 나는 “어려서 미음도 못 먹고 자란 사람”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러니까 내 이름에는 니은도 있고 미음도 있는 것이다(장하다!).
철수는 “코로나 끝나면 언제 시간 한번 내서 만나자”고 했다. 좋지. 근데 그놈의, 아니 요놈의 코로나가 언제나 끝나나? 여섯 살 먹은 아이가 “코로나는 맨날 밖에서 노는데 나는 왜 못 나가?”라고 외치며 흐느꼈다던데, 그 아이 마음이 정말 잘 이해된다. 철수는 “건강에 한층 더 신경 써서 건강을 유지하며 행복한 노년이 되길 바랄게~~~!”라고 인사를 마무리했다. 나도 철수가 늘 그렇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영어로 “The same to you!”다. 이게 말이 되나? 되겠지, 뭐.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6월 1일에서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는 올해 6회 화봉학술문화상 수상자인 김영복 케이옥션 고문의 ‘서여기인’(書如其人)전이 열렸다. 수상자의 소장 고서 100점을 전시하게 돼 있는 제도에 따라 그가 선보인 것은 추사 글씨와 각종 희귀본 족보 등이다. 당파별로 혼맥(婚脈) 관리를 위해 작성한 ‘잠영보’(簪纓譜)와 혼맥을 정리한 ‘인척보’(姻戚譜), 원수 집안의 목록을 묶은 ‘수혐보’(讐嫌譜) 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나는 가서 보지 못했지만 뒤늦게 수혐보에 관심을 갖게 돼 좀 알아보았다. 수혐은 원수처럼 미워한다는 말이다. 표지에 ‘수혐록’(讐嫌錄)(필사본 1책)이라고 씌어 있는 이 고서는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원수 집안의 계보를 수록한 책이다. 당쟁과 사화로 피해를 본 가문이 사건의 전말과 배후 인물을 정리해 그 집안과 혼인을 금하는 것은 물론 후손들이 잊지 않게 하려고 제작했다. 노론계 집안에서 만든 듯 남인과 소론계 집안이 거의 수록돼 있다.
오랜 세월 척진 집안을 혐가(嫌家)·수가(讐家)라고 부르면서 대를 이어 혼인은 물론 교류도 하지 못하게 해온 세혐(世嫌)의 원인은 당쟁이나 사화만이 아니었다. 조상을 모욕했다는 시비와 묫자리를 둘러싼 산송(山訟), 학문상의 견해차가 감정싸움으로 비화한 경우 등 다양하다. 기록으로는 남기지 않았지만 구전돼온 ‘블랙리스트’도 있다.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가문의 산송은 1614년에 시작돼 400년 가까이 지난 2006년에야 해결됐다.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윤관(尹瓘, ?~1111) 장군의 파주 묘역 바로 뒤에 청송 심씨가 묘를 쓰면서 빚어진 분규는 영조까지 친히 나서 중재하고 귀양 보내고 했으나 해결되지 않았다. 통혼은 물론 교류도 하지 않던 두 문중은 2005년 8월 청송 심씨 종중 묘 19기와 신도비 등을 파평 윤씨 문중이 제공하는 땅으로 이장키로 합의하고, 이듬해 4월 합의 사실을 공개했다. 이들은 합의서에서 “조상을 바로 섬기려는 신념에 의한 것이었으나 세상에는 자칫 곡해될 우려가 있어 대승적인 결정으로 400년간의 갈등을 해소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의 대립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의 회니시비(懷尼是非)에서 비롯됐다. 회니시비는 우암의 집이 회덕(지금의 대전 읍내동)이고 명재의 집이 니성(지금의 논산시 노성면)이어서 생긴 말이다. 당초 사제관계였던 두 사람은 명재가 부탁한 아버지의 묘갈명을 우암이 성의 없이 쓴 데다 고인을 비난하기까지 해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다. 둘의 대립은 급기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서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지금도 두 가문은 불편한 관계인 것 같다.
우암을 송자(宋子)라고 부르면서 거의 성인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노론에 의해 권력을 잃은 남인의 근거지인 경상도에서는 성인은커녕 사람대접도 하지 않았다. 개에게 노론의 영수 우암의 이름을 붙여 ‘시열’이라고 부르며 발로 차고 괴롭히기도 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창애(蒼厓)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원래 친한 사이였지만, 연암이 창애의 문장을 인정하지 않고 비웃은 데다 1802년에 일어난 포천의 묫자리 분규로 인해 두 집안이 원수가 되고 말았다.
연암의 차남 박종채(朴宗采, 1780~1835)는 아버지의 행장을 기록한 ‘과정록’(過庭錄)에서 두 집안의 시비는 전적으로 젊었을 때 연암이 창애의 문장을 인정하지 않은 데 앙심을 품은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자는 우리 집안 백대의 원수다[此吾家百世之讐]”라고 써놓았다. 반남 박씨 집안과 기계 유씨 집안은 1871년에야 극적 화해를 했다. 홍문관 대제학이었던 연암의 손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창애의 5대손인 유길준(兪吉濬, 1856~1914, ‘서유견문’의 저자)을 집으로 불러 화목하게 지내기로 한 것이다. 유길준은 당시 향시(鄕試, 지방 과거시험)에서 장원한 15세 소년이었다.
다른 가문에 대한 수혐은 자기 가문의 정체성과 자존감, 단결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국가·사회적으로는 큰 적폐이며 손실,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붕당정치의 폐해가 얼마나 컸던가. 지금도 증오와 배제의 정치는 여전하지만, 이런 개인들의 사사로운 원한 말고 옳은 것을 위한 의분과 공적 증오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어린 딸이 “국가 원수가 뭐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원수야?”라고 묻자 아빠가 “아니, 국가 원수가 아니라 국가의 원수야”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옳지 않은 일을 거듭 행하고 수치를 모르면서 자리나 탐내며 자기들끼리 공정하지 못한 짓을 자행하는 자들은 사실 다 국가의 원수다. 요즘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잡것들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자들과 그런 자들의 행위를 원수처럼 공명정대하게 증오하는 게 필요하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의 시 ‘일월’을 옮겨 읽으며 그의 메시지를 다시 새긴다.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쏘냐.
머언 미개(未開)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삼가 애련(愛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意)에 짐승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