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가 홍상수 감독의 눈에 띄어 데뷔한 배우 조은숙. 일이 천직이라고 느끼는 그는 배우가 될 운명이었다.
“점점 연기가 치열하다고 느껴지고, 잘하고 싶어져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진심이구나를 느꼈어요.”
조은숙은 MBC ‘하늘의 인연’에서 가슴으로 낳은 딸을 품은 엄마 나정임 역을 연기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 많다.
“내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는 내가 낳은 또 다른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끝나도 그 캐릭터는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현실에서는 세 딸의 엄마인 조은숙은 가족을 산소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의미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꽃길만 걸어요’라는 표현을 지양해요. 꽃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군가 돌을 치웠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돌을 치워주는, 지혜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도전하는 배우 조은숙은 찰나의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과거를 후회해도 그게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To. 브라보 독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꼭 도전해보세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년 여러분, 늘 응원합니다!”
지방 소멸 대응책으로 지역을 오가는 ‘생활인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공주기독교박물관에서 진행된 ‘2023 제민천 포럼×재도전프로젝트’에서는 지역 소멸 대응 방안으로 생활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번 ‘2023 제민천 포럼×재도전프로젝트’는 중장년층과 지역의 관계성 및 관련 현안에 관한 토론의 장으로서 사업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열렸다.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성과와 시행착오 등을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서 주관하는 ‘2023 재도전프로젝트’는 중장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지역에 맞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지역 살이 재도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날 행사는 인구 감소, 지방 소멸, 중장년, 지역 살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발표를 진행한 1부 프로그램과 재도전프로젝트 사례 발표와 공주 지역 살이 프로그램을 체험해보는 2부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생활인구는 서울시가 2018년 제시한 새로운 인구 모델이다. 출퇴근, 관광, 의료, 등하교 등을 목적으로 지역을 찾는 인구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이날 행사에 모인 전문가들과 참가자들은 인구 감소시대에는 더 이상 지역 이주가 지방 소멸 대응책이 될 수 없으며, 지역에 생활권을 두는 생활인구를 늘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지방 소멸 대책 ‘생활인구’에 주목
기조 강연은 ‘인구감소라는 정해진 미래, 로컬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조영태 서울대학교 교수(인구정책연구센터장)가 맡았다.
조영태 교수는 “인구의 흐름은 정해진 미래이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대응하며 미래를 바꿔가야 한다”면서 “로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해진 미래를 바꾸려면 ‘인구’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며, 지역의 공간 구조가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지역의 인구를 늘리는 데 목표를 두기보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 것에 대비하고 현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도시의 개발과 발전에 도시 설계 초점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도시의 공간을 재구조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주 인구뿐 아니라 지역을 오가는 생활인구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국토를 균형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로컬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생활인구를 고려한 공공정책과 지역에 필요한 것을 탐구해 바꿔나가는 민간기업(특히 스타트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영태 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가 ‘시니어와 지역, 새로운 길 탐색’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이보람 대표는 “신중년들이야말로 지역에서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수도권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데는 많은 허들이 있지만, 지역에서 태어나 수도권으로 이주했던 신중년은 청년보다 지역에 대한 친밀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요즘 신중년은 자신을 위한 소비도 적극적으로 하지만, 자신을 위한 생활을 찾아본다. 건강이 중요한 은퇴 후 인생 3막을 보내기에 지역이 적합할 수 있다”면서 “지역은 넓고 할 일은 정말 많다”고 전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지역에서의 생활이나 비즈니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지역의 좋은 사례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윤정미 충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소멸 실태와 대응 정책’을 발표했다. 윤정미 연구위원은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생활인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워케이션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재택근무를 경험하자 네이버와 같은 IT 기업을 시작으로 유통 회사들도 직원들의 워케이션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윤 연구위원은 워케이션 수요를 늘려 생활인구로 연결하려면 “아이가 있는 부모 근로자들의 자녀 동반 가능 워케이션을 고민할 필요가 있고, 지역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소개할 것인가도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찾는 인생 2막, 중장년 반응 뜨거워
이날 행사의 2부 프로그램에서는 이선영 씨앗 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의 완주 재도전프로젝트 사례와 권오상 주식회사 퍼즐랩 대표의 공주 재도전프로젝트 사례 발표, 노재정 협동조합 주인 이사장의 부여 재도전프로젝트 소개가 이어졌다.
완주와 공주 재도전프로젝트는 지역에 먼저 정착한 또래 중장년과의 만남과 현장 체험 등을 제공하고 참가자의 지역 살이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는 장으로 구성됐다. 중요한 점은 농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델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장년들의 가장 큰 수확은 ‘소속감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을 공감하는 또래가 생겼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지역에 또래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것.
이선영 대표는 “본인이 지역사회에 가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고 말했을 때 중장년의 경우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공감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지역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층이 서로 만나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처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연대 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오상 대표는 “본인이 생활하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라면서 “행안부의 재도전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과 청년의 재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장년층의 지역 살이에 대한 관심과 몰입도가 무척 좋았다”면서 “도시에서 가지고 있는 본인의 커리어나 관계망,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을 도시에서 지역으로 이동해 어떻게 하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고민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귀농귀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지역 이주를 고민하는 중장년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평가다.
권 대표는 “청년들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중장년들은 한 사람의 세계가 지역으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면서 “여러 지역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중장년의 세계와 지역을 연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현업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쌓았지만, 현재 업무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중장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팀으로 협력할 수 있는 중장년 △은퇴하고 나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지역에서 더욱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노재정 협동조합 주인 이사장은 곧 진행될 부여의 재도전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결국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누구와 무엇을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역에 다녀간 사람들이 커뮤니티 자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로 지역의 혁신성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를 느끼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외부에서 오는 분들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배우 조은숙(53)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어느 순간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배우가 된 그는 데뷔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남들 다 겪는다는 무명 시절도 없었다. 그러나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도 늘 가슴속에 자리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진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를 지녀 동네에서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소녀 조은숙. 연예인을 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정작 그는 네모 상자 텔레비전 속에 출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막 흔든 적이 있어요. 그 안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 사람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얼마나 싫었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는데, 다 재미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연기는 정말 할수록 재밌어요. 결국에는 배우가 될 운명이었을까요? 신기한 일이죠.”
텔레비전 일화만 봐도 조은숙은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다. 그 감수성을 글로 풀었고, 미모 칭찬만큼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어느 날 지인이 연출한 연극을 보러 갔다가 극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다. 그게 이어져 몇 번 무대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홍상수 감독의 눈에 띄었다. 그 계기로 1996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출연한 조은숙은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 1997년 ‘제20회 황금촬영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배우를 꿈꾼 적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된 거죠. 무명 시절도 없었고요. 갑자기 얼굴이 알려진 셈인데,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어요.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죠. 연기라는 게 얼마나 치열해요. 너무 긴박하게 촬영이 진행될 때는 덩달아 쫓기면서 연기하게 되는데, 집에 돌아가면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스스로한테 너무 화가 나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구나,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진심이구나를 느꼈습니다.”
‘하늘의 인연’으로 고민 해소
“지금까지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가령 불편한 옷을 입고 있으면 아무리 예뻐 보이려고 해도 어색하잖아요. 그렇다고 하면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은 거죠.”
조은숙이 최근까지 품고 있던 고민이다. 연기 활동은 오래 했지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KBS 2TV ‘야망의 전설’을 포함해 다수의 작품에서 비련의 여인 역할을 소화했고, KBS 2TV ‘내 딸 서영이’, ‘별이 되어 빛나리’ 등에서는 사연 있는 악녀로 분했다. MBC ‘세 친구’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맡은 것이 그나마 자신의 실제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까칠하다거나 말수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 의외로 털털하다며 놀라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허당기가 많고 소녀 같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새우깡이랍니다. 계속 챙겨줘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예요.(웃음)”
이러한 고민에 한창 빠져 있을 때 MBC 일일 드라마 ‘하늘의 인연’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조은숙이 맡은 나정임은 모든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캐릭터인데, 산장 화재 사고로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처럼 된 상태다. 가끔씩 기억이 돌아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그는 복수의 핵심 열쇠로 활약할 것을 기대케 한다.
“제가 성격이 어리바리하다 보니 실제 나와 비슷하면서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죠. 어딘가 모자란 바보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나정임을 연기하면서 제가 갖고 있던 고민이 조금은 해소됐죠. 그동안 KBS 드라마 위주로 출연해서 MBC 드라마 출연은 오랜만이었어요. 처음에는 낯을 가렸는데, 금세 제 실제 성격이 나오더라고요. 스태프분들이 ‘그냥 평상시대로 연기하면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가 자연스럽게 잘 나오고, 재밌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모성애 넘치는 엄마
‘하늘의 인연’의 나정임이 이전 캐릭터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또 있다. 바로 가슴으로 낳은 딸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조은숙은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 누군가의 고모나 이모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기혼 캐릭터라고 해도 남편은 있어도 자녀는 없었다. 실제 세 딸의 엄마이기도 한 조은숙은 나정임의 모성애에 매우 공감하며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하늘의 인연’을 찍으면서 SNS로 좋은 반응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고아로 자란 분인데 저의 SNS에 ‘상처를 치유받았습니다’라고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거죠. 지금도 그분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또 결혼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고아나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당시 만났던 한 친구가 SNS로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감동적이고 감사했어요.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은숙이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은 또 있다. 아니, 매우 많다. 바로 그동안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들이다. 조은숙은 “내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는 내가 낳은 또 다른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끝나면 나는 떨어져 나가지만, 그 캐릭터는 살아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애정을 전했다.
그럼에도 친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2005년 광고기획사 대표인 박덕균 씨와 결혼한 조은숙은 슬하에 세 딸을 두고 있다. “가족은 산소 같은 존재다. 산소의 소중함을 평소에는 못 느끼지만 산소가 없으면 죽지 않나”라고 표현한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세 딸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자랑은 물론 교육, 가치관 등에 대해 얘기했는데, 천생 엄마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원래 아이를 셋 낳고 싶었는데, 신기하게 그렇게 됐죠. 아이들이 다 다르게 생겼고, 매력도 다 달라요. 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줄 거예요. 엄마를 따라 연예인을 하는 것도 찬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이타적인 사람이에요. 아이들한테도 항상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죠.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고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꽃길만 걸어요’라는 표현을 지양해요. 그 꽃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군가 돌을 치워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우리 아이들이 그 돌을 치워주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꿈 찾는 중년
조은숙은 2012년 ‘초콜릿 복근’을 공개해 ‘몸짱 스타’로 화제를 모았다. 셋째를 출산하고 3개월 만에 20kg을 감량하고 얻은 식스팩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넘었는데 그는 여전히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매일 근력 위주 운동을 즐기면서 한 덕분이다.
“몸매 관리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정도의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점도 없어요. 그냥 운동을 좋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젊은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촬영할 때 주얼리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담을 곳이 없었는데 마침 한 번도 안 쓴 쓰레기통이 있어서 거기에 주얼리를 담았죠. 그랬더니 그 쓰레기통이 보석함이 된 거에요. 반대로 보석함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통이 되겠죠. 그때부터 살면서 나에게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예체능에 능통한 조은숙은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배우는 늘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미국 액팅 스쿨에서 공부하기’라고 밝혔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고 남들한테 밀린다는 생각에 갈급했다. 연기에 관한 책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연기가 그 안에 갇혀버린 때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극복 중인 단계에 있는데, 미국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연기하던 때가 그립다”라고 설명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제 꿈이 배우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배우가 인생의 끝일지, 또 다른 뭐가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저는 여전히 꿈이 뭔지 찾고 싶고, 그래서 계속 뭔가를 배우려는 것 같아요. 저의 또 다른 버킷리스트는 대형 오토바이 타기예요. 자격증은 취득했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타고 싶어요. 연기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조은숙은 주어진 삶을, 찰나의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시간 아까운 일이다. “지난 과거를 후회할 때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게 최선이고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차피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배우는 최상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우연히 하게 된 일이지만 즐기면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조은숙은 배우가 되어 지금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 같다.
“중년의 시기에 힘들고 외롭고 헛헛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벌써 이렇게 살아왔나 싶고, 지나간 세월이 너무 아쉬울 테니까요. 후회되는 순간도 많겠죠.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최선이고 최상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나간 날은 돌아오지 않아요.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꼭 도전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중년 여러분, 늘 응원합니다!”
●Exhibition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국립한국문학관(이하 한국문학관)이 주최한 전시로, 삼국시대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여신’, ‘여왕과 왕후’, ‘신비로운 여인’ 등 여러 유형의 여성상을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1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에서는 단군신화 속 웅녀,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 유화 등 건국 설화 속 어머니의 모습을 만나본다. 2부 ‘운명을 개척하다’에서는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삼국통일에 기여한 문희 등 삼국시대 여성들의 진취적인 목소리를 들어본다. 3부 ‘낯선 존재와 만나다’에서는 수로 부인, 처용의 아내 등 현실 세계를 넘어 낯선 존재와 조우했던 신비로운 여성들을 통해 고전문학의 상상력을 엿본다. 4부 ‘이야기를 남기다’에서는 한국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역옹패설’ 등 중요한 문학 원본 자료와 향가 및 설화를 모티브로 재해석한 근현대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문정희 한국문학관장은 “고대 사회 여성의 힘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2025년 개관될 한국문학관의 중요한 컬렉션을 엿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회화 아닌(Not Paingtings)
일정 10월 9일까지 장소 대구미술관
‘모던 라이프’(2021년), ‘나를 만나는 계절’(2022년)을 잇는 대구미술관의 소장품 기획전이다. 미술과 기술 매체의 만남이 가지고 온 미술 형식의 새로운 변화를 살펴본다. 개관 준비기부터 현재까지 수집한 작품 중 비디오 매체의 특성을 탐색한 미디어아트 초기 작품, 동시대 예술가의 뉴미디어, 사진작품 등 34점을 ‘확장하는 눈’, ‘펼쳐진 시간’, ‘경계 없는 세계’의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조명한다. 최근 현대미술의 동향 또한 소개한다. 이강소, 박현기, 김구림 등의 대구 작가들과 백남준, 김순기, 김해민 등으로 계승돼온 국내 미디어 1세대 작가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대 작가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Stage
◇벤허
일정 9월 2일 ~ 11월 19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왕용범
출연 박은태, 신성록, 규현, 이지훈, 박민성, 서경수, 윤공주, 이정화, 최지혜 등
뮤지컬 ‘벤허’는 루 윌러스가 1880년 발표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유다 벤허’라는 한 남성의 삶을 통해 고난과 역경, 사랑과 헌신 등 숭고한 휴먼 스토리를 담았다. 역동적인 액션, 홀로그램을 활용한 무대 영상, 전차 경주 장면 등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세 번째 시즌에는 뮤지컬 ‘마타하리’, ‘웃는 남자’ 등 대작을 빚어낸 EMK가 제작에 나서 높은 완성도를 예고한다. 벤허 역에는 박은태, 신성록, 규현이 캐스팅됐으며, 메셀라 역은 이지훈, 박민성, 서경수가 연기한다. 에스더 역은 윤공주, 이정화, 최지혜 등이 함께한다.
◇삼총사
일정 9월 15일 ~ 11월 19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연출 신성우·강봉훈
출연 박장현, 후이, 렌, 유태양, 민규, 이건명, 최대철, 김형균 등
뮤지컬 ‘삼총사’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2004년 체코에서 처음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전설적인 총사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았다. 국내에서는 2009년 초연 이후 꾸준히 공연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는 9번째 시즌으로 초연부터 배우로 참여해온 신성우와 강봉훈 연출이 공동 연출을 맡는다. 달타냥 역에는 박장현, 후이(펜타곤), 렌, 유태양(SF9), 민규(DKZ)가 캐스팅됐다.
◇렛미플라이
일정 9월 26일 ~ 12월 10일
장소 예스24 스테이지 1관
연출 이대웅
출연 박보검, 안지환, 신재범, 김태한, 김도빈, 이형훈, 윤공주, 최수진, 방진의 등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3개 부문을 석권하며 2022년 최고의 창작 뮤지컬로 꼽힌 ‘렛미플라이’가 돌아온다. 1969년 보름달이 밝게 빛나던 어느 날 밤, 라디오 주파수의 영향으로 70살 할아버지가 된 남원이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미래 탐사 작업에 돌입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은 배우 박보검이 청년 남원 역할에 합류해 기대를 모은다. 데뷔 후 12년 만에 뮤지컬에 첫 도전한 그는 연기 스펙트럼을 한 단계 넓힐 예정이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바야흐로 ‘밀키트 전성시대’다. 지난 4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소비자 1000명 중 89.5%는 밀키트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었다. 대한민국 10명 중 9명이 밀키트를 사 먹었다는 의미다. 특히 50대에서 구매 경향이 가장 높았는데, 그 이유는 ‘식사 준비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63%)로 나타났다. 정말 대중의 인식대로 밀키트는 간편하고 요리하기 쉬울까. 요리에 일가견 있는 독자들과 밀키트 요리를 함께 해보고, 장단점과 주의점 등을 짚어봤다. 다만 여기서 나온 의견이 정답은 아니기에 참고 정도만 하길 바란다.
밀키트 요리 비교 체험은 7월 14일, 인천 부평구 ‘조리기능장 요리조리 쿠킹클래스’에서 진행됐다. 손미자 원장과 함께 전현진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한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박선의·강경희 씨가 중년을 대표해 요리에 나섰다. 메뉴는 총 4종으로 밀키트 대표 브랜드 제품으로 선정했으며, 한식, 중식, 양식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참가자 4명의 밀키트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다. ‘밀키트를 만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4명 모두 ‘있다’고 답했다. 손미자 원장과 전현진 교수는 요리 연구 목적으로 밀키트를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년 여성인 박선의 씨와 강경희 씨는 자녀 양육과 살림을 맡아 밀키트를 사 먹는다고 밝혔다. 주기는 박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강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이었다.
박선의 씨는 재료가 많이 필요한 짬뽕을 구입해 먹어봤을 때 만족감이 높았다고 말했다. 강경희 씨 역시 재료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월남쌈과 밀푀유나베를 주로 구입해 먹는 편으로, 밀키트에 대한 만족도가 4명 중에서 가장 높았다. 강 씨는 “전처리(요리하기 전 채소를 다듬고 자르는 일)가 되어 있어 조리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가 적어서 좋다”고 밀키트의 장점을 얘기했다.
또한 박선의 씨와 강경희 씨는 “주변 지인들을 생각해 보면, 바쁜 워킹맘이 밀키트를 자주 이용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요리하기 피곤하고 번거로운 상황에서 밀키트가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손미자 원장은 “지금은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씩 밀키트 이용에 도전해보는 것 같다. 식재료비가 너무 많이 오른 상황에서 비용도 절감되고, 시간도 절약되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따른다. 다만 밀키트를 고를 때 젊은 층은 끼니 해결이 주목적이고, 중년층은 맛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추잡채와 꽃빵’부터 ‘소고기두부전골’까지
이날 요리해본 밀키트 4종은 마이셰프의 ‘고추잡채와 꽃빵’, 프레시지의 ‘바질크림 빠네파스타’, 피코크의 ‘감바스 알 아히요’, CJ 쿡킷의 ‘소고기두부전골’이다. 각각의 레시피대로 조리한 후 시식하면서 그 과정에서 느낀 점, 밀키트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식인 ‘고추잡채와 꽃빵’을 조리한 강경희 씨는 “재료 손질을 하나하나 다 해야 해서 번거로울 수 있지만, 직접 요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뿌듯했다”며 소감을 얘기했다. 손미자 원장은 “소스를 한 번에 넣지 말고 나눠서 넣으면 간이 더 잘 배고 향미가 풍부해진다”고 팁을 전했다. 맛은 식당에서 먹는 것과 비슷했는데, 전현진 교수는 “일반 소비자는 기억 속 맛과 비슷하면 맛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지의 ‘바질크림 빠네파스타’(양식)는 ‘귀찮아서 대충 해 먹었다’는 온라인 후기가 입증하듯 재료 손질부터 마지막 플레이팅 작업까지 손이 많이 갔다. 더불어 조리를 담당한 박선의 씨는 ‘짠맛’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파스타 양이 많은 것은 좋았지만, 동봉된 허브솔트를 2/3 정도밖에 안 썼는데도 짭짤하다. 보통은 허브솔트를 다 쓸 텐데, 그러면 너무 짤 것 같다”면서 좀 더 자세한 레시피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피코크의 ‘감바스 알 아히요’(양식)는 탱글탱글하고 신선한 새우가 많이 들어 있어 좋은 평을 받았다. 박선의 씨는 “처음에 새우 손질할 때 물총 제거를 해야 하는데, 요리에 관심이 없거나 레시피를 꼼꼼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것 같다”며 느낀 점을 말했다. 그 외의 조리 과정은 양식답게 쉬운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식인 CJ 쿡킷의 ‘소고기두부전골’은 두부를 제외한 재료가 모두 잘라져 있다. 즉 두부만 자르면 재료 준비가 끝난다. 조리 과정 자체는 재료를 넣고 끓이면 되니까 어렵지 않았지만, 정성이 요구되는 음식이었다.
더불어 손미자 원장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냄비에 재료를 예쁘게 담는 방법을 알려줬다. 중심부에 고기를 담고 두부를 감싸듯 놓아 꽃을 만들고, 테두리에는 흰색과 초록색 채소를 번갈아 놓는 것이다. 손 원장은 “요즘은 SNS를 활용하는 분이 많아 음식 데커레이션이 중요해졌다. 귀찮아하지 않고 많이 따라 하신다”고 말했다.
표준 레시피 마련, 염분 주의해야
“‘기호에 따라’는 어느 정도인가요? 요리할 때 가장 어렵게 느껴졌어요!”
‘일일 밀키트 요리사’ 박선의 씨와 강경희 씨는 전반적인 조리 과정은 쉬웠으나 ‘기호에 따라’라는 표현은 난해했다고 토로했다. 꼭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밀키트는 레시피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기호에 따라’는 정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웠다는 의견이었다.
전현진 교수는 “초보자일수록 정확한 레시피가 없으면 어려워한다. 각 밀키트에 ‘표준 레시피’를 기재해줬으면 좋겠다. 표준 레시피란 이대로 요리하면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소금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표준 레시피’, ‘짜게 먹고 싶은 경우’, ‘담백하게 먹고 싶은 경우’ 등이 적혀 있으면 소비자가 느끼기에 밀키트의 장점이 보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미자 원장은 밀키트에 염분 함량이 높은 것을 우려하며, ‘저염식’ 식사가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손 원장은 “밀키트의 소스나 양념에는 조미료 MSG(글루탐산나트륨)가 많은 편이다. 밀키트를 자주 먹어서 짜고 단 음식에 중독되면 살도 찌고 고혈압·당뇨병 등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밀키트의 염분 성분 문제는 공론화되어 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4개 제품군(감바스 알 아히요 제품군 22개, 부대찌개 33개, 불고기전골 23개, 짬뽕 22개)의 총 100개 제품의 영양성분을 분석한 결과, 51개 제품에서 1인분 나트륨 함량이 세계보건기구(WTO) 1일 나트륨 섭취 기준치(2000㎎)를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1일 기준치를 두 배 이상 초과했다. 소비자단체는 밀키트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 체험을 통해 밀키트에서 소스 또는 양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맛을 좌우하기도 하고, 염분이 많아 우리 몸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밀키트를 조리할 때 자신의 입맛이나 건강을 생각하며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 결국 기호에 따르라는 말인데, 그 기준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사회 전반의 흐름도 엿볼 수 있다. 밀키트 업체는 이러한 분위기를 고려해 친환경적인 밀키트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쳇바퀴 돌 듯 반복하는 생활이 가끔은 어딘가에 눌리고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우리 영혼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라던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쳇바퀴 자국을 닦아낼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세영(41) 전시 디자이너는 신간 ‘예술이 필요한 시간’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전한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선화예술고등학교 미술부에서 예술의 기반을 닦았다.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실내건축으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서양건축사, 건축과 문화, 색채학 등을 가르치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해 다시 조합하는 큐레이팅 인턴으로 일했다. 현재는 미술관의 전시 기획에 참여해 전시 목적, 원작자의 의도, 공간 구조, 설치물의 위치, 관람객의 예상 동선 등을 파악하고 내용이 직관적으로 전달되도록 방향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서울시립미술관, 평창동에 새로 생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리움미술관에서 올가을 열릴 전시를 준비 중이다.
“학창 시절 학교 입구에 크게 쓰인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는 문구가 등교할 때마다 마음을 울렸어요. 예술학교에 다니던 저에게 세계는 예술이었고 예술은 곧 세계였죠. 매 순간 더 넓고 근사한 곳으로 이끌었거든요. 예술이 있다면 삶은 언제나 재밌고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시 분야는 예술과 호흡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선택했어요.”
전시 디자인의 세계
‘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관람객들은 보통 작가와 큐레이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공간이 작품의 배경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다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전시 디자이너다. 관객들이 전시장의 작품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조명, 동선, 진열 위치 등을 구성한다. 이세영 디자이너는 모든 작품이 소외되지 않고 가치를 투명하게 드러내면서, 공간의 구조가 관람객의 감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전시 디자인이 ‘잘’ 됐다고 말한다. 그와 서울시립미술관이 협업한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가 대표적이다.
이 전시는 1900년대 초 미국 현대미술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65년 화업을 보여준다. 오래된 나무 바닥과 높낮이가 다른 천장은 어두운 색상으로 마감하고, 희게 색칠한 가벽을 활용했다.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등 작가의 발길이 닿는 장소마다 변하는 화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물론 전시 하나에 수많은 의도와 전략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이 관여하기 때문에 전시 디자인이 디자이너만의 고유한 역할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전시를 오픈할 때마다 그 안에서 곧잘 제 역할을 발견할 수 있죠. 그리고 그게 과연 최선이었는지 다시 확인해요. 8월 20일까지 진행하는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과 10년 가까이 협업하고 있는데, 같은 공간을 각기 다른 콘텐츠를 위해 디자인한다는 행위가 감사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서소문 본관과 북서울미술관의 규모와 세부 특징은 이제 눈감고도 알 수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고유한 온도, 작가의 서사에 따라 매번 다른 형식을 만들어가는 거죠.”
예술을 곱씹는 방법
그는 미술관이 방문객에게 늘 가깝고 친근한 장소로 여겨지길 바란다. 미술관을 찾는 이들의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의미 있는 시간 속에 예술이라는 가치가 함께하는 즐거움을 얻었으면 해서다. 저서 ‘예술이 필요한 시간’은 그가 방문한 세계 여러 나라 전시 공간에 관한 감상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소개한 에세이다. 읽는 사람들이 예술 애호가의 기억을 따라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예술을 위한 시간은 길고 여유로울수록 좋습니다. 미술관에 가서 들인 시간만큼 작가의 생애와 의도, 그림의 기법을 모두 파악하고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자칫 전시회 관람은 체력 들여 공부해야 하는 행위가 돼버려요. 거창하지 않게, 그저 가볍게 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보이지 않던 요소들이 눈에 띌 겁니다. 자기만의 해석도 덧붙여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재미이지 않을까요.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더 많은 분이 예술로부터 위로받고 내면의 가치와 교감했으면 좋겠습니다.”
●Exhibition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
일정 10월 12일까지 장소 스페이스K 서울
SF 영화를 보는 기분도 들고, KBS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국계 캐나다인 작가 제이디 차(Zadie Xa)의 국내 첫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한국인 어머니가 들려준 전래동화를 통해 한국의 샤머니즘에 흥미를 느꼈고, 마고할미나 바리공주 등 설화 속 인물, 구미호 같은 요괴 캐릭터를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세계가 담긴 작품 33점을 만날 수 있다.제이디 차의 작품에는 여성,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뭇 남성을 홀리는 존재로 통하는 구미호마저 할머니다. 작가에게 할머니는 지혜와 통찰을 겸비한 존재다. 더불어 마고할미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신이고, 삼신할매는 인간의 탄생에 관여하는 신이다. 다양한 반인반수 캐릭터도 작품 속에 많이 나온다. 인간과 여우, 까마귀, 갈매기 등 동물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는 서로 다른 종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헤더윅 스튜디오 : 감성을 빚다
일정 9월 6일까지
장소 문화역서울284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는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세기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감성 디자인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모습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디자인 작품 30점을 만날 수 있다. 그를 대표하는 프로젝트인 중국 상하이엑스포의 ‘UK 파빌리온’,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 영국 런던 ‘2층 버스’와 서울 한강 노들섬 재개발 프로젝트 ‘사운드스케이프’ 등이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또한 드로잉과 스케치 노트부터 실제 제작된 3D 프린트와 시제품들이 함께한다. 더욱이 이번 전시는 한영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로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Stage
◇레베카
일정 8월 19일~11월 19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류정한, 민영기, 에녹, 테이, 신영숙, 옥주현, 리사, 장은아, 김보경, 이지혜, 이지수, 웬디 등
뮤지컬 ‘레베카’가 10주년 공연을 한다. 대프니 듀 모리에 소설과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 맨덜리 저택에 얽힌 비밀을 그린다. 한국에서는 2013년 초연을 올렸고, 2019년 여섯 번째 시즌까지 누적 관람객 95만명을 기록한 메가 스테디셀러다.
10주년 공연답게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초연 이후 전 시즌에 출연한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은 이번에도 함께하며 명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레베카’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인물 옥주현 또한 댄버스 부인 역을 연기한다. 레드벨벳 웬디는 나(I) 캐릭터를 연기하며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프리다
일정 8월 1일~10월 15일
장소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연출 추정화
출연 김소향, 알리, 김히어라, 전수미, 리사, 스테파니, 임정희 등
서양화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생애를 액자 형식으로 풀어낸 쇼 뮤지컬 ‘프리다’는 지난해 초연 당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극은 프리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 ‘더 라스트 나이트 쇼’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았다. 삶을 짓누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환희로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프리다의 이야기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초연에서 ‘프리다 그 자체’라는 극찬을 받은 김소향과 함께 가수 알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해 인기를 끈 김히어라가 프리다 역할을 맡는다.
◇곤 투모로우
일정 8월 10일 ~ 10월 22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이수인
출연 강필석, 최재웅, 고훈정, 조형균, 김재범, 신성민, 백형훈, 윤소호 등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갑신정변이라는 근대 개혁운동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피신한 김옥균의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갑신정변부터 한일합병까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순간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는 관객에게 가슴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1년 반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김옥균’, ‘한정훈’, ‘고종’ 등 주요 인물들과 조연 역할에 초・재연을 함께했던 출연진들과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하면서 더욱 뜨거워진 무대를 예고하고 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새어나오는 ‘새 신랑’, 배우 심형탁(45). 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결혼 후 한층 강화됐다. 그런 심형탁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호의적이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저는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솔직한 사람 같다”면서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에 솔직할 뿐”이란다.
심형탁은 “좌우명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대를 계속해서 좋아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이 되면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숨기는 사람이 많은데, 심형탁은 달랐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 덕후(마니아)라고 당당하게 공개했다. 현재는 아내 히라이 사야(이하 사야)에게 무한 애정을 쏟으며, “이렇게 예쁜 사람은 세상에 없다”면서 팔불출 같은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꾼이 아닐까.
“‘덕후’ 문화는 굉장히 중요해요. 덕후가 세상을 움직이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도라에몽 캐릭터를 좋아했어요. 당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소개되기 전이라 ‘동짜몽’으로 불리던 해적판 만화만 있었습니다. 전 그걸 구해서 읽곤 했어요. 도라에몽은 미래에서 온 로봇으로 진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진구에게 저를 투영해서 도라에몽이 저를 도와줬으면 했던 거죠. 그런데 도라에몽이 진짜 저를 도와줬고, 그걸 넘어 선물을 줬어요. 대중적으로 제 이름 석 자를 알리게 해줬고, 이슬이(진구 여자친구)보다 더 예쁜 사야를 만날 수 있게 해줬죠. 도라에몽의 선물인 사야와 함께 잘 살아간다면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능형 배우로 성공하기까지
건장한 체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심형탁은 모델 출신이다. 1997년 ‘신원 SIEG 모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모델로 데뷔한 그는 직접 에이전시를 뛰어다녀 일자리를 얻어냈고,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는 심형탁은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키가 정말 작았어요. 지금도 기억하는 게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50cm가 안 됐고, 1번이었어요. 그저 작다는 이유로 무시와 괴롭힘을 좀 많이 당했죠. 키가 확 큰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였어요. 그런데 덩치만 컸지 마음은 그대로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걸 극복한 건 일에 대한 의지 하나였습니다. 모델 활동을 하고 싶어서 운동을 했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붙고 성격도 많이 달라진 거죠.”
모델 활동을 하면서 연기에 관심이 생긴 심형탁은 수원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배우 전문 기획사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하게 됐다. 2001년 SBS ‘남과 여-우리 다이어트할까요?’가 그의 데뷔작이다. 벌써 23년 차 배우가 된 심형탁은 “배우로 이루고 싶은 것이 아직 많아서 늘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출연작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tvN ‘식샤를 합시다’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으로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아본 작품입니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저를 일일드라마 배우라고 인식했는데, 그 드라마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을 느꼈어요. 그래서 제 배우 인생에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KBS 2TV ‘브레인’의 완벽주의자 캐릭터, MBC ‘천 번의 입맞춤’에서 찌질한 남편 역할을 한 것도 좋았어요.”
심형탁은 예능 출연으로 더 유명해졌다. 2014년 KBS 2TV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MBC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에서 도라에몽을 비롯한 애니메이션과 피규어 등을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으로 대중적 호감을 얻었다. 그 스스로 “나의 배우 인생은 도라에몽 덕후를 밝히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기도. 이러한 상황에서 ‘예능형 배우’로 통하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요즘 배우들은 드라마나 예능 중 한 가지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모두 가능한 ‘멀티 엔터테이너’(이하 멀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멀티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물론 배우에게 예능 활동은 장·단점이 따를 수밖에 없죠. 연기하는 제 모습을 본 사람들이 ‘도라에몽이 보인다’고 하기도 하고, 주로 코믹한 역할을 제안하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장점도 있습니다. OCN ‘타임즈’(2021년 방영)에서 악역을 연기했는데, ‘심형탁이 저런 연기도 가능해?’ 하면서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예능에서 보이는 것과 정반대 모습이 통한 거죠. 결국 제가 연기를 잘해야 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느끼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도라에몽의 선물, 아내 사야
심형탁이 아내 사야에 대해서 ‘도라에몽이 준 선물’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두 사람의 운명적인 첫 만남과 관련이 깊다. 심형탁은 촬영차 일본의 도라에몽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유명 완구회사 직원인 사야는 그날 현장 총괄책임자를 맡았다. 첫눈에 사야에게 반한 그는 운명의 짝임을 직감했다.
“사야가 원래 그날 선배하고 같이 나왔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처음으로 혼자 일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만약 그날 선배가 나왔다면, 일본의 선후배 문화가 철저하기 때문에 저는 사야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 제가 도라에몽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도라에몽 박물관을 가지 않았다면, 사야의 선배가 그날 나왔다면, 우리는 연결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저와 사야는 정말 몇십만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만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심형탁은 무려 8개월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야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포기를 모르는 그를 보고 사야의 닫혔던 마음도 열렸다. 열여덟 살 연하의 미모의 아내를 얻은 비결이다. 심형탁과 사야는 4년의 연애 기간을 거쳤고, 7월 8일 일본에서 웨딩마치를 울렸다. 한국에서는 8월 20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혼인신고는 진작에 마친 부부는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다. 심형탁은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한국에 온 아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어른들이 ‘결혼하고 느끼는 행복은 다르다’고 하잖아요. 그 말의 의미를 체감하면서, 사야와 함께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도 사실 가끔씩 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화가 나다가도 아내의 얼굴을 보면 화가 싹 풀리더라고요. 하하. 그뿐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잘 풀려고 노력하죠. 저희 부부의 시급한 목표는 2세를 갖는 거예요.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많아서 마음이 좀 급합니다. 사야는 3명, 저는 2명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해요. 그리고 사야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줄 생각입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어서 그쪽으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결혼으로 여는 제3의 인생
심형탁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았다. 그런 그가 40대 나이에, 그것도 일본인과 결혼할 줄 누가 알았을까. ‘결혼을 꼭 해야만 할까’라는 입장에서 ‘결혼전파자’가 됐다.
“제 나이대가 되면 결혼을 포기하시는 분도 많을 텐데, 그분들께 말하고 싶어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결혼 생각이 없었던 저도 사야를 보자마자 ‘저 사람하고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정한 사랑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주변에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 있을 수도 있죠. 물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혼을 안 할 수도 있지만, 할 의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늘 청년 같은 모습이지만 스스로 ‘중년’이라고 말하는 심형탁. 특히 사야를 만난 후 자신의 인생을 ‘제3의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제1의 인생은 배우가 되기 전까지, 제2의 인생은 사야를 만나기 전까지 배우로 활동한 시기라고 정의 내렸다. 새 신랑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중년으로서 새롭게 펼쳐질 ‘제3의 인생’. 심형탁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꿈꾼다. 기분 좋은 부담감이 설렘으로 전해져온다.
“예전에는 중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이 든 느낌이었잖아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몇 살부터 몇 살까지가 중년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브래드 피트, 산드라 블록 등을 보면 중년인데도 멋진 삶을 살고 있잖아요. 삶의 방향을 잘 잡아서 살아나가면, 중년의 시기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중년이 되어도 남들이 봤을 때 ‘저 사람처럼 힘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활기찬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좋은 가장이 되어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1동료와 담소를 나누는데 고등학생 두 자녀의 걱정이 크다. 고3 아들은 키가 훤칠해서 일찌감치 남자승무원이 되겠다고 진로를 정했다. 자신감이 있는지 열심히 놀러 다닌다고 했다. 반면 고1 딸은 하고 싶은 게 없다며 늘 시무룩하며 공부에 열심인데 성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농담이겠지만 가끔 공부도 지치고, 장래 희망도 없고, 자기 적성이 뭔지 몰라 종종 죽고 싶다고 푸념을 한다고 한다.
#2어느 날 진료실에 55세 남자 환자가 찾아왔다. 이유는 의욕이 없고 늘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매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하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회사 임원으로 삶의 안정을 이룬 상태였지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회사를 갈 의욕도 없다고 했다. 특히 1년 전 흔히 말하는 오십견이 오면서 정형외과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는데, 그 이후로 피로감이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노인들의 지혜를 모아 정리한 노년 연구들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일생을 추적해서 행복과 건강에 대한 비결을 찾는 연구도 있다. 그런 과학적인 연구들뿐만 아니라 실존 철학자들은 인간 본질과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이 모두를 통합해보면 인생은 두 단계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집단 속에서 경쟁하는 인생 전반기와 나머지 하나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홀로 고뇌하는 삶의 후반기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도 가치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난다고 말한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찾아야 하는 과업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일단은 안정적으로 살아남아야 의미를 일굴 기회를 가질 수 있기에 부모의 보호 아래서 자립의 훈련을 받는다. 학교란 안정적인 생존을 가르치는 훈련기관이며, 현대사회에서 적자생존의 경쟁은 성적을 통해 가름 짓는다.
타고난 신체로 도전해 볼 수 있는 진로를 찾은 동료의 아들은 마치 쉽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은 냥 한시름 놓은 듯하다. 반면 아직 자기 진로를 정하지 못한 딸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짓눌린 듯 보인다. 인생이 어디 호락호락할까. 당장 눈앞의 길이 풀리건, 막히건 막상 세상살이를 겪으면 매일이 불확실이고 생존이란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앞날의 불확실함이란 우리 인생 그 자체다. 은퇴를 5년 앞둔 중년 남성은 생존의 안정을 이뤘으나, 이제 노화에 대한 불안에 휘둘리는 듯하다. 오십견은 단순한 어깨의 통증을 넘어 그의 삶의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왔음을 깨닫게 했다.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자각은 마치 어느 날 깨어보니 차가운 아침 공기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 미처 대비하지 못한 서운함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생존 경쟁을 위한 정보와 기술들이 넘쳐난다. 현대인들은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 정보부터 취업과 결혼, 출산, 육아, 부동산과 주식까지 경제적 안정과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삶의 성공이라 믿으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아무리 생존 경쟁에서 성공을 거둬도 우리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삶의 덧없음을 메워주진 못한다. 죽음에 대한 사색은 물질적 성공보다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국 인생의 결말이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자신의 죽음 앞에서 덤덤히 만족을 고백할지 아니면 공포에 몸부림칠지 둘로 나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은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다. 열심히 경쟁해 생존해야 하는 전반전과 그리고 삶의 의미를 위해 고독하게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실존의 후반전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계단은 중년까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삶의 후반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지혜를 나누지도, 깊이 있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도 늘 육아와 부동산, 재테크에 대한 프로그램은 넘치지만, 노년의 삶의 만족과 죽음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는 부정하다는 듯 다루지를 않는다. 생존에 성공했다면 이제 어떤 의미를 남길지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철학자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실존이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시기까지 숱한 삶의 격변 속에서 생존이 우선 가치였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결여된 것은 인생 후반기 삶의 의미를 일구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실존의 문화다. 당신은 준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