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철학 제임스 힐먼 · 청미
융 심리학자인 저자는 나이 듦에 대한 관습적인 생각을 비틀었다. 그는 나이 든 사람을 젊은이의 본보기, 사회의 문화적 기억 및 전통의 전달자로 본다. 나이 듦을 영예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천재들의 기상천외한 두뇌 대결 김은영 · 마음의숲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 칼럼니스트가 썼다. 아인슈타인, 뉴턴 등 천재들은 라이벌과 경쟁하며 현대문명에 발전을 가져왔다. 천재들의 싸움을 읽다 보면 과학 이론과 역사 상식도 알게 된다.
애도 클럽 타일러 페더 · 문학동네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지 10년. 저자는 지난날의 상실을 마주하고 회고록을 썼다. 암 진단과 투병 과정, 장례식과 추모식, 그 후의 일상을 모두 담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 슬픈 사람들을 위로한다.
나는 단단하게 살기로 했다 브래드 스털버그 · 부키
성과 전문가인 저자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부담에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는 동서양의 고대 철학, 과학과 심리학,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전화 주실 줄 알고 기다리다 다시 해요.”
“응… 손님 만나는 중이어서….”
“그랬어요? 그럼 그렇다고 문자라도 주시지… 나는 함께 점심하려고 전화했던 건데.”
“손님과 점심 약속을 했던 터라… 미리 말하지 그랬어?”
“미리 말한다고 약속 잡아주실 것도 아니면서.”
“뭐 어쨌든. 그나저나 잘 지내고?”
“네, 저는 잘 지내요. 조만간 점심 사드리고 싶네요.”
“점심은 무슨. 됐고.”
“그럴 줄 알았어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예의 그 ‘손님’이 화장실을 가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는 바람에 통화가 오히려 길어졌다. 점심 식사 중에 그 여자의 전화가 왔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 손님과의 자리가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핑계 삼아 그 여자의 전화를 따돌리고 싶었을 뿐. 손님이라야 등산을 함께 다니는 동네 지인으로 별 용건 없이 그냥 점심이나 함께하자는 게 다였으니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전화했어?”
“보고 싶으니까 했죠. 얼굴 본 지도 오래됐고.”
“우리가 얼굴 보고 싶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사인가? 아무튼 난 지금 바빠. 그만 끊자고.”
얼굴 보고 싶다며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사이,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이, 껄끄러운 사이. 그렇다, 그녀와 나는 옛 연인 사이다. 눈 씻고 찾으려 들면야 한 자락 추억이야 없지는 않겠지만 그딴 건 찾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수록 씁쓰레함만 남은 관계. 그런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아직도 내게 미련이 있다는 거겠지만, 나는 한마디로 노 생큐!다. 안 그러면 또 뭘 어쩔 건데? 지금 와서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헤어진 지 벌써 3년인데.
사업 실패와 연이은 가정 붕괴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한 100억 정도 가진 재산가다. 굳이 돈을 강조하는 이유는 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다.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 그런 조건 좋은 여자가 내게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얼마나 조건이 좋은 남자길래 그런 잘난 여자가 죽자고 매달리는 거냐고? 나는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렇다고 백수건달이나 제비족은 아닌, 어쨌거나 그녀에게 만만하게 보인 50대 중반 독신남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세 번째 남편감이냐고? 천만에 말씀! 누구 맘대로!
10년 전 나는 사업에 실패했다. 40대 중반이었다. 그 여파로 아내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이던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리자 가족들로부터 보기 좋게 버림을 받았다. 물론 내 잘못이 컸다. 외국 유명 브랜드 의류 수입상을 했던 나는 불황을 맞아 기울어가는 사업체를 정리할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어떻게든 살려보리라 무모한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나를 설득하며 마음 졸이다 못해 인내심이 바닥 난 아내는 반은 홧김에, 반은 살 길을 찾아 미국 친정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가정과 사업체가 박살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는 물론 생이별한 자식들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자살할 궁리만 모색하던 처참한 나날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고통 많은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자살 생각으로 가득 찼다. 1년 후 이혼 서류를 보내온 아내의 요구에 이렇다 할 대꾸나 변명 한마디 없이 응했던 것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탓이었다.
그럼에도 늘그막에 외손주 둘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해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처가의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어쨌거나 두 아이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보다 장래가 밝아진 게 아닌가. 그 와중에 아내는 나에 대한 원망과 일말의 복수심으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를 차단한 것이리라. 나는 나대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서로를 이해하고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고 재기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간간이 들어오는 경영 계통 강연 수입으로 그때그때 생활비를 벌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등산과 마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망한 나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아, 그녀는 사업상 나의 고객이었다. 내가 쫄딱 망한 것을 알고 호감을 표해온 것이었다. 쫄딱 망한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게다가 한 미모하는 이혼녀. 로또 대박과 맞먹는 행운이 아니냐고? 게다가 아내까지 미국으로 내뺀 상황이었으니. 글쎄, 계속 들어보시라.
나도 처음엔 그녀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재기를 꿈꿨다. 그녀를, 아니 그녀의 돈을 통해 회생할 가능성을 탐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도 불쌍한 여자다. 그녀의 인간관계, 특히 남자관계는 늘 돈이 중심이었다. 첫 결혼도 두 집안이 서로 돈을 보고 딸과 아들을 교환했던 것이니 애정 없는 혼인 생활이 평탄할 리 없었고, 결국 남편의 외도로 3년 만에 파탄이 났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그녀 측에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탐냄으로써 이뤄졌다. 20년 연상의 재벌급 홀아비, 그녀로서는 재력적 지위가 급상승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기쁨도 하늘을 찔렀다. 재물에 마음이 꽂힌 사람들은 더 많은 재물을, 권력을 탐하는 부류들은 더 높은 자리를, 인기몰이에 집착하는 자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무한 인기를 갈구하는 법이니. 사람은 저마다 우상을 모시고 살며, 우상 숭배란 맹목적인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미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돈에 집착하고 돈에 갈증이 든 그녀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닌가.
그녀 부부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에너지를 쏟을 곳이라곤 오직 돈에 관계된 것이었기에, 앞뒤 재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되어 많은 돈을 잃고 그만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 두 번째 이혼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만난 것이다. 비록 이혼을 했어도 받은 위자료와 본인 재산 등으로 내게 대줄 수 있는 사업자금은 충분했다.
자, 이런 상황이다. 처음에야 나도 횡재한 기분이었다. 속물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사실이니까. 거처가 마땅찮았던 나는 바로 강남에 있는 그녀의 80평대 아파트로 들어갔고,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됐다. 1년이 지났을 무렵, 한마디로 나는 그녀에게서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오직 돈, 돈, 돈만 알 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돈 타령에, 아마 꿈조차 돈에 대한 것을 꿨으리라.
그녀에게서는 어떤 내면의 향기도, 내적 감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동안 책은 고사하고 글 한 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사색에 잠긴다거나 주변이나 일상에서 감동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자연에 대해서도 교감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아마도 푸른 여름은 만 원권 지폐로, 노란 가을은 오만 원권 지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그녀의 아파트를 나왔다. 들어갈 때도 맨몸, 나올 때도 맨몸. 여전히 집도 절도 없었던 나는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처럼 어느 산자락 빈집에서 한 달가량 몸을 의지해 있었다. 그 후 낯선 소도시로 흘러들어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작은 강연, 독서 모임 등을 이끌면서 내 입을 먹이며 살고 있다.
나와 그녀의 관계에는 환멸만 남고
혹자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내면이니 감수성이니 그딴 게 밥 먹여주냐고. 봉을 잡았으니 빌붙어서 몸이라도 편할 수 있지 않았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단 한번 살아보시라. 입만 열면 돈타령에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 나는 열을 준대도 덧정 없다.
만약 그 여자가 그나마 머리에 든 것이 있는 나를 흠모하여 자신에게는 없는 지성이나 교양을 취해보리라는 갸륵함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환멸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애초에 그런 코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서 무엇을 보고, 내가 가진 어떤 점이 그녀를 끌어당겼을까.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를 자기 재산 증식시켜주고 관리해주는 머슴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디 가서 재산을 불릴지, 하나보다는 둘이 힘이 되니 속된 말로 만만한 나를 ‘꼬붕’으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애초 애정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녀에게 애정 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기나 할까. 내가 아는 한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신뢰나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했으니. 설혹 내게 사업자금을 대주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녀의 이해관계와 연결되는 것에 한해서 허용하는 게 고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녀가 지금도 내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니 불쾌할 수밖에.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지성, 외모, 상식과 자존감을 갖춘 사람이기가 어려울까? 솔직히 그럴 것 같다. 그런 여자들은 남자 또한 엇비슷한 수준에서 만나고 싶어 할 텐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능력 면에서 현저히 기울어져 있으니 두루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여자들만 꼬인다고 할지. 겨우 한 여자 만난 것을 두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냐고? 내가 설마 한 여자만 두고 그러겠나. 그 사이에 두 여자가 더 내게 호감을 표해왔는데 역시 비슷한 여자들이었다. 돈밖에 없고 천박한. 돈 많고 무식한 여자, 돈밖에 모르는 여자들이 꼬이는 것이 내 운명이고 팔자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인생 2막을 손주 육아로 시작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와 각 가족, 그리고 조부모 사이에서 황혼육아는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 ‘황혼육아’와 함께 등장한 신조어를 알아보자!
할마·할빠 손주를 직접 키우는 ‘할머니엄마’와 ‘할아버지아빠’의 줄임말.
학조부모 학부모와 조부모의 합성어.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육아뿐만 아니라 취학 이후 손주의 교육도 맡게 된 조부모를 칭한다.
피딩(FEEDing)족 피딩(FEEDing)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Financial), 육아를 즐기며(Enjoy), 활동적이면서(Energetic), 자녀에게 헌신적인(Devoted)의 줄임말로, 손주를 맡아 돌봐주는 50~70대 조부모를 뜻한다.
에잇 포켓(Eight Pocket)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부모, 친조부모, 외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 등 가족 구성원 8명의 지갑이 열린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주변 지인까지 합세해 아이를 챙기는 ‘텐 포켓’(Ten Pocket)도 등장했다.
할류열풍 손주에게 고가의 장난감, 의류 등을 선물로 사줌으로써 소비 시장에서 주류가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일컫는 신조어다. 구매력 높은 조부모가 최근 육아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양상을 빗댔다.
헬리콥터 그랜마·그랜파 자녀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맴돈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헬리콥터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랜파, 그랜마’의 합성어. 맞벌이로 바쁜 자식 내외를 대신해 손주의 놀이부터 독서, 패션까지 챙기는 트렌디한 조부모를 말한다.
리터루족 돌아온다는 뜻의 ‘리턴’(Return)과 부모에게 의지하는 성인 자식을 일컫는 ‘캥거루족’의 합성어. 출산 후 육아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가거나 인근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표현이다.
맘고리즘 맘(Mom)과 알고리즘(Algorithm)의 합성어로, 여성의 생애주기별로 육아가 반복되면서 평생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표현한 단어.
손주병 자녀를 대신해 조부모가 손자와 손녀를 돌보며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점을 이르는 말.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정호승·창비
대한민국 대표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으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라 더욱 뜻깊다. 시인은 시를 통해 ‘죽음’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비움’을 제시한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신아연·책과나무
신아연 작가가 시한부 독자와 스위스까지 동행한 기록을 담은 철학 에세이다. 독자의 죽음을 배웅하고 돌아온 저자는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으로 뜨거운 우리 사회에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 김영준·김영사
신라면, 요플레, 에비앙 생수 등 인기 제품들은 치열한 경쟁의 생존자다. MBC 유튜브 채널의 인기 콘텐츠 ‘돈슐랭’의 진행자 김영준은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법을 소개한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소담출판사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편 소설이다. 섣달그믐 밤 노인 세 명은 함께 목숨을 끊는데, 이를 계기로 남겨진 자들의 일상도 새롭게 펼쳐진다. 특히 작가의 섬세한 문체가 돋보인다.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 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50대 중년 여성은 가족·직장·친구 등 다양한 인간관계 문제를 떠안고 살아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 문제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며 해결법을 제시한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 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타인의 심리를 읽고 행동하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저자는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저자는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층간소음을 대하는 자세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마음을 좀 바꿔보았거든요. 윗집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짜증만 낼 게 아니라 차라리 그 시간에 도서관 가서 시원한 바람 쐬며 밀린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퇴근하고 나서 집에서 좀 쉴라치면 매번 위층 아이들 콩콩콩 쿵쿵쿵 뛰어다니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는 청취자 사연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옵니다. 분노가 폭발해 인터폰을 누르고 쳐들어갈까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놨던 독서 목록도 챙기고 이참에 은퇴 이후 설계도 할 겸 주택관리사와 노무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마음을 탁 달리 먹었더니 퇴근하는 발걸음이 전처럼 무겁지 않고 한결 가벼워졌다고 고백합니다.
화살의 방향과 성격 유형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나 고통을 당할 때 이웃집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눈앞에 닥친 불행과 갈등을 오로지 자신을 탓하며 자책하고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살의 방향을 외부로 겨눌수록 점점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에너지가 자신을 둘러싸고 사방팔방으로 퍼집니다. 비난과 원망과 책임 전가라는 독화살을 누구에게 쏠지 그 궁리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온통 뾰족한 가시를 두른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까요. 그 화살은 자기 자신에게 향할 때도 마찬가지로 치명적입니다. 화살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해보면서 나는 어떤 유형인지 살펴볼까요.
‘남 탓 형’과 ‘내 탓 형’ 인간
자신에게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남 탓을 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일이 꼬인 것은 그 사람 탓이야’, ‘내가 마마보이가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엄마 탓이지’ 이런 식으로 아내는 남편을, 자식은 부모를 탓합니다. 탓할 사람이 없으면 친구를 탓하거나, 직장 상사를 탓하거나, 아니면 길에서 부딪혔거나 지하철에서 만났던 사람조차 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 자식, 배우자 등 가까운 사람부터 탓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남을 탓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경우를 ‘남 탓 형’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매사에 남 탓을 하는 사람은 정작 자기는 멀쩡합니다.
“나 걔랑 헤어졌어. 내가 찼지. 애가 좀 사이코야. 베풀 줄도 모르고. 수십 번 만나도 밥은커녕 커피 한잔을 안 사더라고, 인색하기 그지없어. 아 시원하다.”
연애가 깨졌어도 상대방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자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굳게 믿는 탓에 스트레스도 별로 받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기분이지 남 사정이나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정신의학에서 인간이 방어기제로 흔히 사용하는 ‘투사’(Projection)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기 외부에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매사 남 탓을 하면 불안과 죄책감에서 잠시나마 피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가 ‘내 탓 형’입니다. 어떤 일이 터질 때마다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겁니다. 모든 일을 무조건 내 탓으로 돌리는 ‘내재화’(Introjection)라는 방어기제도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화살의 방향을 떠올리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겉으로는 착하고 겸손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사건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꾸짖고 벌주고 심판하고 자책하고 자학하는 유형입니다. 분노나 불안을 억눌러놓아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겁’과 ‘오만’ 사이
남 탓을 하는 경우는 한마디로 비겁한 병에 걸린 분들입니다. 자기는 쏙 빼고 다른 사람을 들들 볶는 사람이니까요. 거꾸로 내 탓 형은 오만한 병에 걸린 경우입니다. 자기 자신을 달달 볶는 사람입니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그렇게 행동했으면 안 되는데’, ‘거기서는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자꾸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책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유형입니다. 두 유형 모두 부족하고 실수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자신이 없을 때 그렇습니다. 어떤 선택이나 판단에서 책임을 자신이 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비겁합니다.
어떤 유형이 더 위험할까요?
내 탓 형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자신을 완벽하고 빈틈없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 규정합니다. 거기에서 바로 오판이 시작되고 ‘오만(傲慢) 병’이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높은 기대치에 도달했던 몇몇 순간의 모습만 자기 본모습이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착각과 불행이 쌍두마차로 자신을 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두 가지 유형 모두 상처를 입고 불행한 상황에 놓이는데, 더 심각한 것은 남 탓을 하는 것보다 내 탓을 하는 경우입니다.
남 탓도 종종 해야 합니다!
하지만 남 탓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때가 의외로 참 많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원인이 아닌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인과가 분명해 보이는 문제는 대안을 찾아 자기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문제까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처방전처럼 헛짓거리를 하게 됩니다. 최소한 남 탓이라도 하면 삶을 놓아버리는 극단적 선택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그럽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남 탓은 필수라고요. 남 탓을 열심히 해야 자신이 정신적으로 안정된다고 말입니다. 고칠 수 없는 문제에 자기 탓을 하면 자존감은 추락하고 마음은 갈수록 조급해져 불안과 우울을 달고 살 수 있으니까요.
남 탓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탓은 위험합니다. 자신을 탓하는 병에 걸리면 그 오만함이 어떻게 펼쳐지냐면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 허물에 겉으로는 관대한 척하고 다 품고 배려하는 척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으로는 무시하고 경멸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세운 높은 기대 수준을 타인에게도 부지불식간에 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오만함은 위험천만한 부분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십니까?
탓탓탓 말고 타타타!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요? 이 노래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후략)
‘꽃순이를 아시나요’, ‘은하철도 999’ 주제가를 불렀던 김국환이 1992년 세상에 선보인 노래, ‘타타타’. 마지막에 ‘어허허허허허!’ 웃음소리가 백미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타타타’는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뜻합니다.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진리라고도 하며,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이라고 합니다. 걱정이나 고통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일평생을 살아가는 게 우리입니다. 이 세상을 ‘탓탓탓’ 하지 말고 ‘타타타’ 하면서 살아 볼까요. 편 가르고 고집과 만용을 부리며 대립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삶으로 남은 인생 아름답게 수놓아볼까요. 그럴 때 ‘탓 병’이 치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더위와 습기 탓하지 말고 허허허 웃으며 몸도 맘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마음 미장공 여덟 번째 이야기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지역과 마음이 이어지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마음이 이어지든, 관계인구는 그렇게 지역의 무엇과 엮인다. 열렬한 응원이든, 묵묵한 응원이든 지역에 관심을 갖다가 물들듯이 자연스럽게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들은 또다시 지역의 느슨한 연결자가 된다.
1. 서동민 가가책방 대표
‘언젠가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여느 직장인처럼 서울에서 책을 추천해주는 회사에 다니던 서동민 대표. 독서 모임으로 알고 지내던 권오상 대표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는 소식에 공주에 내려왔다가 이곳에 책방을 열게 됐다. 6개월 동안 공주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2019년 6월 무인 책방 ‘가가책방’을 열었다. 동네 곳곳에 버려진 재료들을 모아 손수 책방을 꾸몄다. 젊은 청년이 무언가를 뚝딱거리자 옆집 무궁화회관 사장님은 ‘밥은 먹고 있느냐’며 식사를 챙겨주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오며 가며 ‘동네 어디에 가면 물건이 있다’고 알려줬다. 알음알음 가가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나만의 비밀 공간이 생긴 기분’이라며 ‘부디 오랫동안 운영해달라’고 편지를 남겼다. 책방을 운영하며 동네 가이드 일을 하던 서 대표는 2021년 2월 ‘마을스테이’의 안내소 역할을 하는 ‘가가상점’을 두 번째로 열었다. 그의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를 통해 공주와 연결된다.
2. 천재박·김현정 부부
천재박 대표는 ‘쌈지농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7년을 일했다. 아내 김현정 대표는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브랜드 제품 기획 일을 오래 했다. 천 대표는 2018년 ‘농부가 우리 사회의 공유 자산’이라는 의미를 담은 ‘어프로젝트’라는 회사를 차렸고, 농업회사법인 ‘어콜렉티브 그레인’을 세워 우리나라의 장을 연구하는 일을 해왔다. 공주가 고향이었던 김 대표는 2018년 아버지 생신 잔치할 곳을 찾다가 봉황재를 우연히 알게 됐고, 원도심에서 하루를 묵었다.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는 원도심에 반해 2020년 봄, 집을 보지도 않고 매물로 나온 한옥집을 매입해 U턴했다. 이곳에서 부부는 우리 곡물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는 카페 ‘곡물집’과 ‘곡물 연구소’를 운영한다. 한 편에는 ‘데시그램북스’라는 책방도 있다. 김 대표의 친구가 운영하는 문학 전문 서점이다. 두 사람은 곡물과 문학이 가진 느슨한 연결 지점을 가지고 ‘식경험디자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 김광호 마을건축가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김광호 마을건축가. 프랑스에서 18년 정도 살다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삼성 계열사의 건축소장으로 일하던 때 ‘전국이 나의 현장이라면 꼭 서울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공주, 부여 등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는데, 도시와 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으면서 1500년이 넘는 역사가 서린 공주가 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세로 접어들면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살아도 짧다’며 삶의 방향을 정리했다. 공주에 살 곳을 알아보다가 100년 역사를 가진 노인회관을 매입했는데, 막상 집으로 사용하려니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를 알게 됐고, 이들이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듣게 됐다. 그들의 가치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김 건축가는 노인회관을 10년 동안 무상 임대해주었다. 지역사회에 내려와 기반을 잡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편하려면 내 주위가 편해야 한다’는 프랑스 친구들의 말을 전하며, 지역사회가 잘되어야 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ㆍ김광호 마을건축가 인터뷰
Q 귀촌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A 아파트는 제외했다. 그러니 신도시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긴 세월 동안 주거지로 검증된 지역을 찾았다. 몇십 세대에 걸쳐 사람이 늘 살던 곳들이다. 집은 오래됐겠지만, 고쳐 살면 되니까. 공주는 역사에 나온 것만 해도 천 년이 넘어가니 딱 좋았다. 공주에서 현재 사람이 더 많이 사는 곳은 북쪽 신도시인데, 과거 수도였던 웅진이라는 곳은 공산성을 끼고 있는 공주 원도심이다. 사실 전원의 조건을 다 갖춘 집이라면, 도심 한복판에서 도시의 편리함도 누리고 전원도 즐기는 게 가장 좋다. 심야에 슬리퍼 신고 편의점에 갈 수 있다는 게 도시의 좋은 점 아닌가.(웃음) 공주나 부여 규모의 지역이라면 전원의 맛도 있으면서 도시가 주는 혜택도 누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생활권이 수도권에도 있으니, 교통이 가장 편한 공주를 택했다.
Q 귀촌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A 건축은 문화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철저히 수도에 모든 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서울을 떠나면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집 앞에 미술관이 있는 곳에서 가질 수 있는 무형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내 나이 60이 되면서 삶의 방향을 정리한 게 있다. 앞으로 길어야 20년 아니겠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살아도 시간 짧겠더라. 아마 젊었으면 쉽게 서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웃음) 나이가 들고 한 분야의 일을 오래 하면 모든 걸 쫓아다니지 않아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방향성도 많이 좁혀질 테고. 그렇다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Q 지역에서 마을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에게 무상임대를 해주었다고 하던데..
A 내가 살 집을 찾다가 노인회관을 소개 받았다. 이 건물을 잘 고쳐봐야겠다 했는데, 막상 내가 원했던 집의 구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집이라는 게 쉽게 사고 팔고 하기가 어렵지 않나. 그러다가 퍼즐랩에 권오상 대표를 알게 됐는데, 이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노인회관이 적합했다. 어차피 나는 쓰지 않을 공간이니 그들이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나도 그 안에서 무언가 해보고자 했다. 지역사회에 내려와 기반을 잡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의 좌충우돌하는 시간이 잘 적립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복지 제도가 잘 되어있는데 열심히 일하고 떼어가는 세금을 보면 그들도 허탈해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편하려면 내 주위가 편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편해야 나도 행복하다.
Q 새로운 지역에 녹아드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먼저 귀촌한 사람으로서 팁을 준다면?
A 조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다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우린 시간이 없지 않나.(웃음) 건축과 비슷하다. 특히 지방에 정착해 활동할 때는 거기에 맞는 정도의 건축, '적정 건축'이라고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설계다. 한정된 예산으로 어디까지 고치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고민하는 거다. 너무 지나치게 다가가고 가까워지는 것 보다, 어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마을 만드는 디렉터형 관계인구
1. 루치아의 뜰
석미경 대표는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11년을 일하다가, 남편이 공주에 있는 대학 교수가 되면서 1995년 공주로 귀촌했다. 차에 관심이 많았던 석 대표는 차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2012년 버려진 한옥을 발견하고 뼈대를 살려 지금의 ‘루치아의 뜰’을 열었다. 공주에 살며 동네 산책을 하다 보니 골목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에는 주민참여 프로젝트로 ‘잠자리가 놀다 간 골목’이라는 도시재생 활동을 제안해 선정됐다.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 운영위원, 공주문화도시 정책위원 활동도 하면서 청년들의 공주 정착을 돕고 있다. 먼저 귀촌한 사람으로서 누군가 공주로 와 무언가를 도전할 때, 묵묵히 지켜보며 그의 시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다.
2. 사회문화예술연구소 오늘
여러 지역에서 도시재생이나 문화기획 일을 하던 임재일 소장은 유독 공주에서 일할 기회가 많았다. 10년 가까이 공주에서 공공미술을 하던 그는 2018년 자연스레 공주로 귀촌했다. 30년 동안 하숙집으로 사용되다 버려진 3층짜리 폐가를 사들여 연구소를 옮겼다.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공주 사람과 이웃 사람을 잇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 ‘대안카페 잇다’도 열었다. 그는 공주 근대문화거리, 하숙테마거리, 제일감리교회 기독교박물관 조성, 국고개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 등 공주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을 기획·실행했다. “주민 300여 명을 인터뷰하고 기록한 내용으로 ‘하숙집의 세 딸’이라는 연극도 기획하고, 문화의 날도 만들었어요. 연구소 내에 ‘공주 정보 자료관’을 만들어 도시재생 과정에서 기록하고 모은 공주의 모든 자료를 전시하고 있죠. 공주로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공주에 대해 알기 위해 조사차 우리 연구실을 한 번은 들러요. 저는 그들에게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죠.” 문화를 통해 공주의 관계인구로 지내다 귀촌한 그는 이제 다른 관계인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ㆍ임재일 소장과의 인터뷰
Q 공주에 유독 귀촌 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A 충청남도에서 대학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이 공주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이 있다 보니 선생님이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교직에 있었거나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은퇴를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있는 듯 하다. 그저 공주가 살기 좋아 오는 사람도 있고. 공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꽤 다양하다.
Q 고향은 세종시(구 연기군)인데, 공주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
A 거리를 조성하거나 환경을 개선하는 공공미술 일을 오래 했다. 특히 지역의 역사 문화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원이 많은 공주에 우연히 초대를 많이 받았다. 공주대학교에서 9~10년 정도 겸임교수 생활도 했고. 지역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하면 건축, 인문학, 미술, 행정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모인다. 자연스럽게 문화 기획을 하게 됐는데,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드니까 마지막으로 정착할 곳을 찾게 됐다. 연기군이 고향이긴 하지만 학창시절을 공주에서 보냈기에 친구들도 다 이곳에 있다.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지금은 문화 소프트웨어,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젊은 친구들과 공주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Q 공주에 이주하려는 이라면 이곳 연구소를 한 번은 꼭 들른다는 데, 그들을 돕는 이유가 있나?
A 재미있으니까.(웃음) 그동안 공주에서 했던 모든 작업물들을 이곳에 모아두었다. 공주 문화 투어를 하면 가이드가 가장 마지막으로 연구소에 들른다. 그럼 나는 작업 기록집들을 펼쳐 공주의 지난 시간을 보여준다. 이주를 하려면 집이 가장 중요한데, 빈집 조사도 했어서 어디에 가면 빈집이 많은지도 알려준다.(웃음) 하던 일이 그렇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많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게 됐다. 나도 공주가 발전되어가는 걸 기대하고 지켜본 것처럼,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도 그들의 기대만큼 성취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Q 기록을 통해 공주와 사람들이 이어지는 듯 하다.
A 과거를 상기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당시의 기억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다. 지금은 현재만 남아있으니 과거 그 자리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 않나. 노인 한 사람이 박물관이라고 하는 것처럼, 누구나 이야기를 가지고 산다. 공주는 백제시대 수도였다 보니 그만큼 이야기가 더 많은 셈이고. 일종의 오픈 뮤지엄처럼.
3. 이미정갤러리
이미정 관장은 공주 토박이다. 귀촌을 한 건 아니지만, 그를 통해 공주와 관계 맺는 사람이 늘었다. 이 관장은 2016년 3월, 그림이 팔리기는커녕 그림 보러 오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여겨지던 공주 원도심에 갤러리를 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지역을 떠나 있던 작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상원, 정영진 등 원로 작가들이 이미정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그림이 팔리면서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정영진 작가는 U턴 했고, 윤상원 작가는 이주를 준비 중이다. 이 관장은 이들을 ‘1986년도 공주의 미래였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월전 귀향’이라는 주제로 공주가 직장이거나, 공주가 고향이지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모았다. “공주의 인구는 줄고 있지만, 공주로 유입되는 인구는 늘고 있어요. 화가일 수도, 감상자일 수도, 소장자일 수도 있겠죠. 열 명이 오면 여덟 명은 공주를 돌아보고 가요. 공주와의 관계가 생기는 거죠. 이전에는 공주 출신 작가들하고만 교감했다면, 이제는 공주에서 일하거나 공주에서 유학하거나 고향이 공주지만 다른 지역에 살거나 공주에 인접한 지역에 있는 작가들까지 연결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타지로 나가는 작가들조차 공주에 반드시 작업실을 두고 두 지역을 오가고자 노력한다. 이미정갤러리를 통해 공주에 살든 살지 않든 생활권을 공주에 두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셈이다.
ㆍ이미정 관장과의 인터뷰
Q 갤러리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갤러리를 여는 건 로망이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30여 년 미술 학원을 운영하고, 대학 강의도 나갔다. 일을 그만 두면서, 전업 화가로 살 것인가 전업 주부로 살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둘 다 어렵더라.(웃음) 갤러리가 수익 사업은 아니지만, 작업실의 연장으로 해볼까 싶었다. 7년째 자리를 지키다 보니 작가들도 모이고, 이 주변으로 작년에 두 개, 올해 두 개 갤러리가 개관하기도 했다.
Q 갤러리 운영뿐 아니라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만든다고 들었다.
A 한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갤러리스트는 대중과 예술가의 중간 역할자다." 원로 작가들이 공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획전을 열거나,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만들고 있다. 이 감영길을 '공주의 인사동'으로 만들어 보자고 행정기관에 제안했다. 작가 한 명에게 행정기관이 지원하는 금액을, 그림을 사는 사람에게 지원금 형태로 주자고 했다.
그래서 공주문화재단에서 '그림 상점로'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때 갤러리로 참여했다. 그림 상점로는 그림 구매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예술가 약 7명을 단순 지원할 금액으로, 1억 4000만 원의 예술품 거래를 만들어냈다. 7~80명 화가의 작품들이 팔린 거다. 올해는 참여 작가도, 작품 수도 더 늘었고 상반기에만 지난해만큼의 거래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공주를 오고가는 사람들은 이 주변을 둘러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게 된다.
Q 젊은 작가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고 하던데..
A 각자의 이유로 언젠가는 공주를 떠날 수도 있지만, 공주와의 관계성을 잃지 않도록 젊은 작가들과 자주 소통한다. '영영 아티스트'라는 20대 화가들의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작가들이 공주에서 개인전을 안 한다. 대전이나 서울처럼 큰 곳으로 간다. 공주를 떠나고 싶어 그런 게 아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림을 놓치지 않도록 도움을 주다 보니, 젊은 작가들이 학업이나 생계로 어쩔 수 없이 공주를 떠나더라도 작업실만큼은 공주에 두려고 하게 되더라. 이곳 감영길에서 누군가 그림을 전시하고, 누군가는 감상하고, 누군가는 소장한다. 그렇다면 예술 생태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Q 이미정갤러리를 중심으로 작가, 관객, 공주가 모두 연결되는 느낌이다.
A 어린 학생들이 갤러리를 자주 온다. 한 학생이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을 하려면 공주로 와야겠네요”라고 했는데, 무척 기특했다. 아이한테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며 아이 손잡고 오는 엄마도 있다. 공주에 갤러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꽤 있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그림을 즐기고, 여러 이유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던 작가들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중간 역할자인 갤러리스트로서 역할을 다 하고 싶다. 앞으로는 공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 공주에서 태어난 사람, 공주에서 일하는 사람 등 공주와 관계 있는 작가들도 연결하려 한다.
◆지역 오가는 더블로컬형 관계인구
1. 퍼즐랩
권오상 대표는 경기관광공사에서 15년 동안 해외 마케팅 일을 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공주에 매력을 느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귀촌했다. 그는 근교인 세종시에 거주하면서 공주 원도심을 살리는 일을 한다. ‘봉황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원도심의 맛집과 볼거리를 안내하다 보니 ‘마을스테이’를 꿈꾸게 됐고, 2019년 퍼즐랩을 창업했다. 2021년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이어 올해도 청년들의 지역 탐구와 정착을 지원하는 ‘자유도’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청년들이 다음 기수에서는 프로그램 스태프로 참여했다가 결국 공주로 귀촌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부 사업을 하기 전에도, 사업이 끝난 후에도 그는 공주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2. 다이얼팩토리
이병성 대표는 서울에서 권오상 대표와 독서 모임을 하던 사이로, ‘봉황재’에 놀러 왔다가 공주에 매료됐다. 그는 12년 동안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교육’을 주제로 독서 모임을 했다.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 ‘공동체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공주 원도심은 그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공주에 코러닝스페이스 ‘와플학당’을 만들고, 청년마을 ‘자유도’를 통해 여러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기획했다. 커뮤니티가 마음에 든 청년들이 공주를 찾아 머무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올해 와플학당을 운영하는 기업 ‘에듀커넥트’를 다이얼팩토리로 리브랜딩하고, 커뮤니티 디자인과 대화 워크숍을 더욱 구체화했다.
큰맘 먹고 시작한 한달살기. 정해진 시간에 정신없이 유명한 장소를 훑는 관광이 아닌, 느리고 여유로운 휴식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부지런히 살아온 이들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하루를 빈둥빈둥 보내는 게 영 익숙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주 생활이 즐겁고 만족스러울까? 급할 건 없다. 우리에게는 30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한달살기는 단순한 여행과는 차이가 있다. 보통 한달살기를 앞둔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한 달 동안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동네 산책을 하다 말을 트게 된 아주머니에게 사는 이야기를 듣거나, 비를 피하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메뉴에 없는 음료를 대접받는 등의 상황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제주 땅에 발을 딛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육지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 할 수 없는 일을 깨알같이 모두 즐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참고해 각종 정보를 샅샅이 뒤지게 되고, 고민과 갈등의 연속에 하루하루가 숙제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이상과는 다른 제주살이에 문득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한달살기가 아니라 그저 한 달간의 패키지 여행이 되는 셈이다. 한달살기에 대한 보상 심리를 바라기보다, ‘여행 테마’를 설정하고 제주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마음의 자유 선물하는 ‘책방 투어’
전자기기와 영상매체가 발달한 후로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늘었다. 독서율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달살기를 명목으로 멀리했던 책을 다시 가까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주에는 소규모 독립 서점, 독특한 색깔을 가진 서점이 많다. 제주만의 지역 감성과 책방지기의 취향이 버무려져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방 특유의 기분 좋은 종이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주는 아늑함은 덤이다.
바라나시 책골목_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횟집 거리 사이, 빈티지한 간판이 눈에 띈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국적인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인도 서적과 세계문학 및 인문학 책이 즐비하다. 이곳은 제주 속 인도, ‘바라나시 책골목’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도시다.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바라나강과 아시강을 합쳐 붙인 지명으로, ‘신성한 물을 차지한다’는 뜻이 있다. 생애 한 번은 가봐야 할 도시로 꼽히며, 일부 여행객은 인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소개하기도 한다.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은 한국에서 인도의 정취를 느끼기 충분한 장소다. 책방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인도식 밀크티인 ‘차이’나 요구르트 ‘라씨’도 맛볼 수 있다.
만춘서점_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흰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삼각형 구조의 내부로 매력을 더했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책들과 LP, 제주의 감성이 흐르는 소품이 가득하다. ‘만춘서점’ 책방지기는 출판·디자인 업계에서 일하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그래서인지 육지 사람이 그리는 제주의 장면을 더욱 잘 옮겨놓은 듯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1인용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어 가기도 좋다.
소심한 책방_오름 다섯 개가 감싸고 있어 유독 고요한 제주의 동쪽 끝 마을, 종달리다. 좁은 골목 안쪽, 돌담 너머에 ‘소심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각각 제주와 서울에 사는 두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모아 만든 공간이다. 소설, 에세이, 여행 등 단행본부터 독립 출판물, 제주 특산품, 문구까지 다채롭게 구비했다. 낮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와 책방에 온도를 더해주고, 밤에는 노란 불빛이 다정하게 채워진다. 때로 소소한 전시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주변에 들를 곳이 많은 관광 지역이 아닌데도 굳이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하나만 꼽기 어렵다.
책약방_‘책약방’은 초록 잎과 나무, 낮고 작은 집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무인으로 운영된다. 사람 대신 책이 지키고, 마을이 지킨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현관 옆에 걸린 작은 의자 위에는 운영자가 추천하는 ‘오늘의 그림책’이 놓여 있다. 비치된 그림 일기장과 100자짜리 작은 원고지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릴레이처럼 이어진 글들을 읽다 보면, 책약방의 진짜 ‘약’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올레길은 제주도의 마을길, 해안도로, 숲속 오솔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을 선정해 개발한 코스다. 2007년 9월 8일 제1코스(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 총 15km)가 개발된 이래, 2012년 11월 제주해녀박물관~종달바당을 잇는 21코스가 개장하면서 올레길 코스는 제주도를 한 바퀴 빙 두르게 됐다. 현재는 제주도 내에 총 23개 코스가 있으며 우도, 가파도, 최근 확장된 추자도 코스를 포함하면 총 27개다. 각 코스는 길이가 대체로 15km이내이며, 평균 소요 시간은 5~6시간 정도다.
제주도 올레길을 한 코스씩 돌다 보면 도내의 모든 코스를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코스도 있어 차를 갖고 있지 않다면 동선과 숙소 계획을 맞춰 짜야 한다. 식사도 매번 사 먹을 수 없으니 간단하게 준비한다. 또한 올레길은 리본을 매달아 길을 안내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혼자 간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통상 날이 저무는 시간인 오후 6시 이후로는 드문드문 표시한 리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길을 잃기 쉽다.
이런 사소한 단점을 보강한 ‘알파캠프’는 트레킹과 관련해 가이드, 교통, 식사, 숙소, 세탁 서비스 등을 모두 제공한다. 더불어 관광객이 한 달 동안 제주의 모든 올레길과 새로 생긴 하영올레길까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토끼반과 거북이반 중 하나를 골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체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보통 중장년층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68세 이선이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그 대신 올레길을 걸어볼 생각으로 알파캠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올레길 코스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숙소 예약도 번거로워 고민하던 차였다. 이 씨는 “차로 여행할 때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가까이 보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제주는 그저 우리나라의 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정겨운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파캠프에는 제주 올레길 코스를 완주하는 ‘제주올레캠프’ 프로그램 외에도 오름이나 한라산, 4대 휴양림, 숲길 등을 다양하게 걷는 ‘제주여행캠프’,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하는 ‘다이어트 캠프’, 오름 전문 캠프인 ‘제주계절캠프’ 등이 있다.
의미 있게, 친환경 한달살기
‘제주도’ 하면 많은 이들이 청정 자연을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해변에는 폐그물, 밧줄, 스티로폼, 플라스틱, 페트병, 장대 등 폐어구와 나무토막이 가득하다. 게다가 언제 번식했는지 모를 파래가 수면에 떠 있거나 바위나 모래사장에 널려 있어 볼썽사납다.
제주도는 수용력을 넘어서는 관광객의 유입으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도는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을 전국 평균의 2배 이상, 관광객이 버리는 생활폐기물은 전체 발생량 가운데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부 관광객은 제주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 없는 제주’를 여행 혹은 한달살기 테마로 설정한다. 제주에 있는 동안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플로깅을 하는 식이다. 플로깅은 간단한 산책이나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혼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지정해 환경 정화를 하거나, 제주 내 여러 봉사단체에서 진행하는 캠페인과 이벤트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 맞는 여행 테마는?
후회 없을 제주도 한달살기를 위해서는 장소 위주로 계획을 짜기보다 나만의 큰 주제나 목표를 정하는 게 좋다. 우선 ‘왜 제주도에 가려고 하는지’를 고민해보자.
1 건강하게 한달살기 ‘하루 한 군데 오름 오르기’, ‘서핑·승마·스쿠버다이빙 등 레포츠 한 종목 배우기’, ‘한 달간 인스턴트식품 끊기’ 등으로 몸을 상쾌하게 만들 수 있다.
2 휴식하며 한달살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면 ‘매일 한 시간씩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동네 반경 5km 안에서 생활해보기’, ‘7시간 이상 수면하기’ 등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3 습관 개선 한달살기 한 달 동안 ‘전자기기 없이 살기’, ‘부정적인 말 하지 않기’,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기’ 등을 시도해 나를 괴롭히는 습관을 개선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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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용정보원이 이달 26일 펴낸 ‘신직업·창직 확산 보고서’에서는 중장년층을 비롯한 청년층, 새로운 비즈니스 개척자, 국가발표신직업종사자 등 네 유형으로 나눠 이들의 특성을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통해 다뤘다. 이들 중 중장년층의 경우 자신의 경험 속에서 아이디어를 발굴, 경력과 인맥을 강점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마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보고서에 나타난 중장년 창직자의 특성을 살펴봤다.
‘창직’이란 창의적 아이디어와 활동을 통해 직업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조부모-손자녀 유대관계 전문가, 사별애도상담원, 노노케어매니저, 독거노인공동주택코디네이터, 고령자맞춤식단개발자 등 고령사회에 발맞춘 신직업들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해당 보고서에 참여한 중장년 창직자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아름다운길여행전문가’, ‘도시농업관리사’, ‘메모리얼스토리텔러’ 등이다.
‘신직업·창직 확산 보고서’에서 다룬 중장년 창직자의 경우 청년 창직자와 달리 기존에 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장기간 근무해본 경험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의 경험은 창직을 성공시키는 노하우로서 영향을 주기도 했고, 전직(前職)과는 별개지만 본인이 흥미가 있던 분야의 일들을 새롭게 개척하여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는 동기로도 작용했다. 이들 대부분은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고, 기존 직업을 통해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경우엔 창직을 통한 생계유지보다는 사회적 기여나 자아 성찰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직으로 다시 찾은 제2의 전성기
중장년 창직자의 경우 창직의 아이템들을 자신들의 삶이나 경험 안에서 포착했다고 밝혔다. 가령 과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애로사항이나 일상에서의 불편함 등을 해소하기 위한 지점을 창직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보고서 참여자 중 메모리얼스토리텔러의 경우 “4년 전 부친의 임종이 임종하셨을 때 조문객을 이제 맞이했는데 오시는 분들이 똑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더라. 어떻게 돌아가셨나? 3일 동안 같은 답변을 했는데 그때 생각한 게 ‘남겨진 것이 거의 없는 고인들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온라인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됐다”며 자신의 창직 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중장년 대상의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나 노사발전재단 등의 창업, 창직 교육을 받고 관련 업종의 기관을 통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고용노동부와 지자체에서 진행되는 창직 사업을 희망제작소, 한국창직협회, 창직교육센터 등의 창직 교육 등 공공·민간 영역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창직을 지원하고 있다.
청년층과의 차별화된 이들 세대의 특징은 과거 경험을 통해 다져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중장년 창직자들이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쌓은 경험과 경력, 인맥 등은 창직 및 홍보 활동에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해당 보고서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들이 신직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동시장에 신직업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독서나 메모 습관,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통찰력, 수많은 지원사업의 정보나 시장의 트렌드에 대한 정보력, 도전정신과 성실성 집요한 탐구심 등을 꼽았다. 또한, 이들은 은퇴할 나이에 다시 찾은 제2의 전성기를 통해 주변 사람, 가족과 고객 등 의미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인정,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으로서의 회복에 큰 만족감을 보였다.
지원책 적은 데다, 잘 알려지지도 않아
물론 제도적인 부분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창직의 경우 창업과 달리 1인 창업의 형태가 많아 정규 고용이 아닌 프로젝트 기반의 고용으로 사업이 운영되고, 이 때문에 국가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지원 기간을 연장하는 데 불리하다. 게다가 창업지원제도는 주로 청년층에 몰려 있고, 지원금 사용처에 있어 대표의 경우 급여 지급이 어려워 생계유지를 위해 또 다른 일자리(또는 아르바이트)를 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중장년 대상의 창직 프로그램 개설 및 홍보 확대 에 대한 요구도 드러냈다.
한 중장년 창직자는 “아이디어 오디션 등 정부에서 하는 것들도 굉장히 많은데도 중장년들의 경우 잘 모르고 지나간다. 그런데 막상 알고 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지원책이나 프로그램 등을 중장년들에게 닿을 수 있게끔 어떻게 홍보를 하느냐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자는 “창직자들 사이에 소통 교류의 장이 전혀 없다. 관련 협회 회장에게 제안도 해봤는데, 비용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듯하다. 이들을 연결하고 연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