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문화공간 취재를 다니면서 한 번쯤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8월호의 문화공간을 성수동 카페거리로 선정하면서 이곳과 인연이 깊다는 분과 함께했다. 최근에 등단한 신인 수필가이자 전 아쿠아리움 부사장 손웅익 동년기자다. 화학냄새 진동하던 공장지대에서 카페거리로 탈바꿈한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카페거리. 멋진 남자와 함께한 커피 향 가득한 거리 데이트에는 옛 추억도 함께 있었다.
성수동 거리를 걷다
성수동이 일반인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수제화 장인들의 구두를 판매하는 성수수제화타운(SSST)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다. 지하철과 버스 등 광고판을 통해 성수동이 어떤 곳인가를 인식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제화산업은 1950~1960년대 서울역 근처 염천교(서울시 중구 의주로 2가)에서 시작했다. 1970~1980년대 일명 ‘싸롱화’ 전성기였던 명동시대를 거쳐 1990년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싸롱화 수요가 줄면서 서울 안에서 비교적 땅값이 낮았던 성수동으로 구두 관련 공장들이 이동했다. 그리고 버려졌던 옛 공장과 창고가 새로운 문화 공간과 카페로 단장을 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향기를 나누는, 문화예술이 흐르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서울의 두물머리, 성수동 옛이야기
한양대 건축과 77학번 출신인 손웅익씨에게 성수동은 각별하다. 한양대 시절 화양동과 성수동을 지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발전상을 보며 살았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줄곧 공장지대였던 성수동. 이곳에는 건축과 시절 학내 모임인 공간연구회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방문했다.
“바로 위 선배 학번에 부자가 많아서 아파트에 전세 얻어서 작업실로 썼어요. 지금은 없어졌어요. 그런데 건축작업보다는 선배들이 카드게임하시면 라면 끓이고 그랬던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성수동이 한강 본류와 중랑천이 합쳐지는 양주의 두물머리 같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성수동은 성수대교와 영동대교 사이 지역과 건대, 세종대, 한양대 지역을 감싸고 있다. 한강 개발 이전에는 장마철 이 지역의 둑이 범람하느냐 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둑이 터지기 직전에 비가 그치곤 했지만 거기 문제가 뭐냐면 중랑천 변에 판자촌이 있었는데 제가 어렸을 때 거기서 살았어요. 집들이 마치 해변에다가 지어놓은 것 같았어요. 비가 오면 집들이 해변에 있는 것처럼 잠겼었죠. 집이 떠내려가면 하룻밤에 집을 한 채씩 지었어요. 블록을 쌓고 서까래는 허접한 나무를 쓰고 기름종이를 붙이고 말이죠. 조세희의 에 나오는 집이 바로 그런 집들입니다. 제가 당시 산 증인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비가 온 만큼 집이 떠내려갔다. 그러면 전기도 없던 시절 횃불을 들고 밤새 집을 지어야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중랑천 상류인 의정부 지역에서 돼지, 닭과 함께 오물이 쓸려 내려오기도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방에 누워서 밖을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보여요. 블록 사이사이 구멍이 뚫려 있었거든요. 그러면 겨울에는 얼마나 또 추웠겠어요. 그런 세월이었습니다.”
■‘모두의 거리’란 이름의 성수동 수제화 거리 인터넷 사이트는 구두거리와 관련한 정보를 비롯해 맛집과 카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seongsushoes.modoo.at
■청계천과 피맛골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 독자여러분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습니다.
이메일로 신청 부탁드립니다. bravo@etoday.co.kr
요즘은 지방에서도 축제가 많이 열리고 전통시장도 많다. 필자는 직업상 지방 행사나 축제를 많이 다니는데 이런 행사를 보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다. 어디를 가나 별 차이가 없고 재미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행사 관계자들이 관광객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두물머리 인근 강변에서 열리는 무슨 마켓이 좋다면서 같이 가자고 채근했다. 뭐가 특별하냐고 물었더니 고구마튀김이 특별해서 꼭 그곳에서 사와야 한단다. ‘아니 얼마나 형편없는 마켓이면 고구마튀김이 특별하지?’ 하며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튀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흥미도 없었고 귀찮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주기적으로 고구마튀김 이야기를 하면서 압박을 해왔다. 쇼핑의 여왕인 아내가 고구마튀김에 집착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바꿨다.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 계속 버티는 건 거의 자폭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필자와 아내는 차를 몰았다. 그러나 양평 방향으로 나가는 차량들이 팔당 댐 훨씬 이전부터 밀려 있었다. 구불구불한 구도로로 나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홱 돌려버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 후환을 걱정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평소 30~40분이면 될 거리를 두 시간이 더 걸려서 도착했다. 오전인데도 강변의 넓은 주차장에는 차가 빼곡했다. 북한강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변에는 텐트가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처음 마주친 사인 판이 멋졌다. 목재로 만든 사인 판에 정감이 가는 글씨체로 마켓을 소개하는 글이 써져 있었다. 디자인에 예민한 필자의 눈에 당연히 그 사인 판이 들어왔다. 첫 번째 마켓은 풋고추, 애호박, 버섯, 피망 등을 진열해두었는데 디스플레이가 아주 예술적이었다. 나무판에 연두색 페인트를 바르고 가게 이름을 멋지게 쓴 게 보였다. 필자는 첫 번째 가게에서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산책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는 텐트 가게가 죽 늘어서 있었다.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각종 농산물, 식품, 도자기, 목공예품, 천연염색 의류, 각종 소품 등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가게마다 특색 있는 이름을 예쁘게 디자인해서 가게 앞에 세워두었고 상품 진열도 아주 예술적이었다. 무엇보다 가게 주인들이 단골을 맞이하듯 친근하게 손님들을 대했다. 아내와 필자는 거의 마지막 가게에서 고구마튀김 세 봉지와 감자튀김 한 봉지를 샀다. 풋고추, 파김치, 토마토, 작은 지갑을 사고 떡볶이, 오뎅, 스테이크 한 조각이 들어간 햄버거도 먹었다. 오랜만에 축제다운 행사를 본 기분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는 지속가능한 전원주택단지 모델을 연구 중이다. 이곳 리버마켓에서 전원주택 단지에 디자인해야 할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주인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필자를 보고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필자는 아내에게 익살스럽게 말했다. “다음 장날에 또 오자!”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안방 한쪽에 ‘생각의 의자’라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자매끼리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왜 화가 났는지, 울어야 했는지 억울한 얘기도 들어주었지만, 이기적인 마음도 내려놓게 다독이며 두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 의자는 빈 채로 덩그마니 앉아 있다.
◇마음 가다듬기
나이가 어른이라고 마음도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의자’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종종 상처 입은 동물처럼 나의 동굴로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서재의 한쪽 구석진 공간에 방석을 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에 잠긴다. 촛불을 밝히면 더 좋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를 주로 생각한다.
그리곤 마음을 좀 가라앉힌 뒤 훌훌 털고 일어나 차를 꺼내 향하는 곳이 있다.
◇고향 같은 곳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 언제나 조용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차를 세우고 강가를 걷는다. 습기 머금은 바람이 마른 폐 속에 자양분처럼 틀고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말없이 일렁이는 강을 바라보고 섰으면 수많은 얘기를 품고도 저렇듯 조용한 강의 의연함과 인내가 느껴진다. 파도에 떠밀리며 자신을 맡길 뿐 무심한 듯, 유심한 듯.
수심에 찬 얼굴을 위로라도 하듯 빛나는 향연을 펼치는 물고기들의 도약은 생동감을 준다. 싱싱한 비늘에서는 쇳소리가 날 것 같다. 수평선은 종종 안개로 뿌옇다.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기분은 더 상큼해진다. 아픈 가슴에서 흘리는 눈물 같아서다.
◇인내와 관용
얼마나 작은 일에 집착하고 마음을 상했는지를 느끼게 된다. 좌절과 실망에도 맞설 힘을 주며 기나긴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인내를 선물처럼 안겨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상한 가슴을 꺼내어 강물에 씻고 바람에 내어 말려 말끔한 기분으로 되돌린다. 속을 비우고 자족하며 흘러가는 것을 잔잔한 눈빛으로 보내주는 관용을 들고 돌아오게 된다. 사람이 태어난 이유는 인내를 배우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배가 고파지기 마련이다. 메뉴 짜느라 냉장고의 문을 몇 번씩 열었다 닫으며 보글거리는 찌개를 상상하곤 한다.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씩씩하게 다시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 사이도 연인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학창 시절부터 만난 오래된 친구부터 사회에서 만났어도 그 누구 못지않게 마음 잘 통하는 친구도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좋은 내 친구, 어쩌다 만났는데 단짝이 된 친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사진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365일, 일만 생각하며 앞만 보고 살았던 금융맨이 퇴직 후 친구들의 여행을 돕는 여행 전문가가 됐다. 일명 ‘동창생 여행 전문가’가 된 정강현(丁康鉉 ·69) 회장. 퇴직 후 서울사대부고 동문 카페에 18회 졸업생들의 여행 모임 ‘여유회’를 만들어 친구들과 여행을 다닌 지도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어디든지 간다는 정 회장. 그가 추진하는 여행에는 항상 20명 이상은 참석한다. 이 놀라운 출석률은 정 회장의 탄탄한 여행 준비 덕분이다. 1만원 정도의 적은 회비로 친구들에게 이야기가 있고 맛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고. 답사는 기본이고 역사가 있는 여행지를 선정하면 꼼꼼하게 공부하고 챙겨서 여행 해설가로도 변신한다. 지난 7월 7일에는 작년 메르스 때문에 일정을 잡았다 가지 못했던 양수리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다녀왔다. 이날 비소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9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내 친구 정강현은 어떤 사람인지 동창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내 친구 정강현은 어떤 친구입니까?
성기정
강현씨는 두말할 것도 없이 멋쟁이예요. 봉사에 앞장서는 사람, 가장 멋진 일을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요. 강현씨 덕에 우리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니까 멋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번에 온 세미원도 예전에 와봤지만 새롭게 단장한 이후 오늘이 처음입니다. 서오능 이런 곳에 갈 때는 역사 공부를 해 와서 친구들한테 설명해 주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하고 다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송남영
동창들이 만나는 것도 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30~40대에는 못 만났어요. 각자 바쁘다보니 그랬습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동문회가 활성화되고. 향수를 찾아간다고나 할까요? 동창회에 간다고 하면 그때 친구들이 좋아요. 강현이가 여유회를 시작하면서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서울성곽 길, 전주한옥마을 등 뭐 말할 것도 없죠. 그리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정말 늙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들 너무 애들 같아요. 귀엽다니까요. 50년 전으로 가버리니까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라 마음이 소년, 소녀가 되는 거죠. 목소리도 깔지 않고 서로 앞에서 폼 잡을 일 없고 너무 편합니다.
유경옥
생긴 건 기본이고 멋지고 근사하고 박학다식하고 멋있는 친구예요. 같은 학교를 졸업해서 동창으로 있는 것이 정말 행운이죠. 진짜 전문성도 갖추고 정서적인 거, 마음을 건드리는 감성 그리고 따뜻함을 갖췄어요. 헌신적으로 모임을 위해서 리드를 잘 하세요. 계획적으로 그야말로 여유 있고 즐겁게요. 오늘 보신 것처럼 우리 상태를 보아 가면서 여행 계획을 짜는데 정말 존경스러워요.
김혜자
정강현은 리더십 강하고, 봉사도 잘하고, 정말 사실이 그래요. 이 나이에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고 좋지도 않은 길을 가면서 설명도 해주고 말입니다. 보통 노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니까 하는 거죠. 강현이는 여행을 할 때 꼭 그곳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해오는데 대충 알아서 말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자기 말로 표현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여행 가이드 이상으로 저희에게 알려주죠. 한번은 부부동반으로 몽골의 갈매기섬이라는 곳에 갔었어요. 여기는 사람이 혼자 가면 갈매기들이 공격해요. 그런 곳을 혼자 뚫고 갔다 돌아 나올 때 배가 고장이 났는데 기지국이 많이 없어 연락이 안 되는 일도 있었어요. 그렇게 위험한 상황을 겪고도 다음에 또 보면 그런 오지 같은 데를 데리고 가더라고요. 이 친구 아니면 저희가 또 어떻게 그런 곳에 가보겠어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감격해서 잘 따라 다니는 거예요.
서울사대부고 동창 대표 잉꼬 부부 장재숙·하지환 부부
저 친구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이 나이에 앞장서서 희생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이렇게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강현이도 나름대로 바쁜 사람이거든요.
희생정신이 있는 겁니다. 이 많은 친구들을 위해 사전 답사하고, 열차 시간까지 챙기는 거 보면 너무 감사하지요. 서울사대부고 동문 중에서도 우리 18회 동창들이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급성장했다.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섰다. 가장 하찮게 여기던 화장실 문화가 세계 1위 급이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주축 대가 흔들리는 기둥에 이상한 지붕을 얹힌 듯한 불균형이 보인다. 국민 국고가 낭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고국은 엄청 많이 변해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화려하게 단장하고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고급스러운 화장실의 모습이다. 20여 년 전, 지방의 한 정치인으로부터 시작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가 전국으로 파생되었다. 예전에는 뒷방 문화로 하찮게 여기고 뒤쪽에 위치하여 뒷간으로 불리던 것이 새롭게 탄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뒷간이란 사람들의 배설물 처리장으로 냄새가 많이 나고 지저분한 곳이라 사람 사는 생활공간과는 격리되어있었다. 요즈음의 화장실은 용변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손을 씻고 화장하는 다양한 기능으로 어느덧 한나라의 문화 수준 평가의 잣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지방 자체 별로 막대한 국고 거금을 경쟁적으로 고급 화장실 만들기에 쏟아붓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지난겨울, 동네마다 잘 꾸며진 둘레 길을 따라 걷다가 예쁘게 지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달라진 공중화장실의 변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추운 겨울날, 빵빵하게 데워진 화장실이 필자를 반기니 더없이 흐뭇했다.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진 화장실 안 벽면은 편 백 나무로 곱게 단장이 되어있어, 볼일을 보면서도 이리저리 눈이 휘 동그래졌다. 더구나 일반 가정집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고급 비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평 세미 원을 가는 길목에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피아노 화장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필자는 엊그제 두물머리로 향하던 중에 호기심으로 그곳에 잠깐 들렀다. 하수처리장이라고 쓰여있는 입구에서 주차를 했다. 내리는 순간부터 이상한 오물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잘 정돈된 환경에는 실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용히 흐르는 계곡물 위로 정수 처리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적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여름의 찌는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그 광경에 시선을 멈추었으나 물살과 함께 퍼져오는 하수구 냄새는 기분을 망가트렸다. 하수처리장 위에도 그랜드피아노의 외형으로 멋진 화장실을 연출했다. 건물 꼭대기 옥상 위로는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어 상징적인 지붕을 만들어 냈다.
처리장 건물 앞, 작은 건물에도 피아노 의자 형태가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 기가 막힌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호기심도 많고 볼일도 있기에 2층 화장실로 오르려니 계단에 건반이 놓여있다. 층계를 밟는 순간 한음이 흐른다. 올라가는 대로 피아노 건반처럼 리듬 소리를 내는 것이다.
밟을수록 신나는 음악이 되어 크게 울려 퍼졌다. 한순간에 쾌쾌한 냄새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아담하고 예쁘게 가꿔진 식물 화단이 보인다. 잠시 쉬어가는 벤치와 아가들 수유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어딘가 구조가 어색해 보인다. 잘 꾸며진 고급스러운 세면대에서 손만 대충 닦고는 그냥 내려왔다. 어쨌든 화장실이라 오래 머무르기가 찜찜했다.
화장실이란 더럽고 부정한 것 같은 냄새로 일단은 청결 상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나는 듯해 서둘러 내려오는데 잘 가라고 또 인사를 한다. 계단 층계가 건반이 되어 밟는 대로 음계 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었다. 위대한 창조의 힘, 사람의 작은 아이디어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힐 링을 주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대로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놀라운 발상에 잠시 스쳐가는 곳이었다. 더러운 냄새로 버려진 곳을 사람 발길을 이끌며 멋지게 피아노가 있는 풍경으로 그려낸 것은 실로 감탄할 만 했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 화장실 문화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석구석 손대야 할 곳이 너무나 많은데 특별히 화장실에 낭비가 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개개인에게 어쩌면 필요한지도 모르지만 과연, 외출해서 그것도 공중화장실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대를 쓰는지는 의심스럽다. 그 비싼 금액은 도대체 어디서 충당이 되는지라는 의문점도 생긴다. 결국은 국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 창고가 이리저리 세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이리저리 몸살을 앓고 있다. 지 자체마다 독립적 행정으로 저마다 지역의 발전을 과시하는 난 개발이 우후죽순 벌떼를 쑤셔 놓은듯하다. 여기저기 공사판에 난장판은 주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통행은 물론 차선도 가로막는다. 그나마 잘 꾸며진 둘레 길로 향하는 길가에도 미세먼지가 남발하고, 사람들 얼굴에는 온통 가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가장 선진국인 미국에도 화장실은 깨끗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족하다. 거금을 들여 멋지게 꾸미기보다는 철저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 한국은 시간이 걸려 사용되는 비대가 줄 서서 기다리는 공중 화장실에 거의 설치되어있다. 마치 허술한 집에 화려하게만 꾸며진 화장실의 겉치레를 연상케 한다. 물론 서로가 앞다투어 먼저 이루어낸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가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미흡한 것들과 잘 어우러져, 보다 멋지고 훌륭한 나라, 기둥이 튼튼한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언젠가 멋진 ‘피아노 화장실’ 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들려올 것이다.
※추위 때문일까. 몸과 마음이 자꾸 움츠러든다. 그렇다고 실내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마음을 따스한 온기로 채워줄 감성여행지를 찾아가자. 여유롭게 강변을 거닐며 겨울 낭만을 맘껏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두 강줄기를 품에 안은 ‘두물머리’
양평 두물머리는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북한강과 태백산 금대봉 기슭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예서 몸을 섞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 수 백 km에 이르는 멀고도 험한 길을 흘러온 두 강물이 아무렇지 않은 듯 어우러져 한몸이 된다. 예로부터 따뜻하고 여유로운 성질을 가진 남한강은 ‘암물’이요, 차갑고 거친 북한강은 ‘숫물’이라 했다. 태생부터 다른 두 물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그 오묘한 조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나루터였다. 조선시대 한강의 4대 나루터 중 하나로 물길을 따라 한양을 오가던 이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나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표석만 쓸쓸하게 세워져 있다. 하지만 강변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그 명성은 여전한 모습이다. 그 시절 주막에 둘러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길손들이 그랬듯,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에는 우리네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듯하다.
두물머리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웅장한 풍채의 느티나무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당당하게 서있는 이 나무는 두물머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도당할배’라 부른다. 원래 ‘도당할매’와 함께 있었지만,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할매나무는 수몰되고 할배나무 혼자 남게 되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위풍당당한 할배나무는 고요하고 아늑한 경치와 조화를 이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두물머리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빼어난 풍경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마치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 착각할 정도다.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조선시대 이건필의 ‘두강승유도’와 겸재 정선의 ‘독백탄’으로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 내려올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이러한 연유로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고, 사진작가나 동호회의 출사 장소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다온광장은 소원쉼터에서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나온다. 다온광장에는 한강8경 중 제1경을 알리는 ‘두물경’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바닥에는 1750년대에 제작한 해동지도 광주부 지도와 정약용이 두물머리를 보며 읊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두물경 뒤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 되어 한강을 이루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감동이 차오른다.
사실 두물머리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단지 고즈넉한 풍경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에 담아올 것이 참 많다.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두물머리는 언제 찾아가더라도 만족스러울 만한 곳이다. 낭만적인 감성을 살며시 건드려 놓는 옛 나루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근사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정원
이제 세미원으로 가자. 세미원은 늪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곳으로, 두물머리 산책길에 함께 둘러보면 좋다. 두물머리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길은 조금 특별하다. 배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를 재현한 것이다. 254m 구간에 52척의 목선으로 만든 이 다리는 정조의 효심과 정약용 선생의 지혜를 기리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배다리를 설계한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근처에 있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깃발이 나부끼는 배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관수세심 관화미심)’는 뜻이 담겨 있는 곳이다. 마음을 씻어내라는 의미를 담아 빨래판 모양으로 조성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일 년 내내 수련을 볼 수 있는 세계수련관, 화가 모네의 정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웠던 유상곡수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본떠 만든 세한정 등의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세미원은 자연 속에 담긴 참뜻을 배울 수 있는 정원이다.
돌아서는 길,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음을 느낀다. 그저 강물을 따라 느긋하게 걸었을 뿐인데 말이다.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풍경 속에서 겨울의 낭만을 오롯이 느끼고 가는 듯하다. 커피향처럼 은은하게 스며든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여행가이드
- 두물머리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97
△관람시간 제한 없음
△입장료 무료
△주차비 무료(공영주차장, 교각주차장) / 2,000원(사설주차장)
- 세미원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문의 031-775-1834 / www.semiwon.or.kr
△관람시간 3월~10월 09:00~18:00 / 11월~2월 09:00~17:00
△관람료 성인 4,000원 / 어린이, 청소년, 65세 이상 2,000원
△휴무 매주 월요일
경기도에서 드라마와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두물머리.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든든한 쉼터로 400년동안 굳건히 지키고 있다.
※봄이 되면 만개한 꽃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면 남한강 강물 위에 떠 있는 달빛을 보며 사색에 잠긴다. 가을이 되면 남한강변에 시장을 열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반상회를 열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한다. 경기도 양평의 미래마을이다. 자신이 정한 이름 ‘감사하우스’의 안남섭(61)씨가 사는 법이다. 외로움에 사무칠 줄 알았던 그의 전원생활. 이제는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이라 인생이 즐겁다. 10년의 독일 주재원 생활을 청산하고, 17년 전에 시작된 그의 행복한 전원생활에 대해 들어본다.
서울에서 남한강을 따라 액셀을 밟는다. 회색의 높은 빌딩은 사라지고 시야가 탁 트일 때 즈음 상쾌한 바람을 맞은 자동차 창문도 하얗게 변한다. 서울에서 전투태세로 무장돼 있던 몸과 마음도 이곳 경기도 양평에 이르자 이내 무장해제되는 기분이다.
양평의 두물머리를 지나 청국장의 구수한 향이 풍기는 음식점들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그 길의 초입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아낙네를 보니 미래마을은 그 길에서 꽤나 멀리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깨고 언덕 하나를 넘자 이국적인 풍경의 마을이 나타났다. 안데르센 하우스, 대박이네, 라일락집, 감사하우스 등 집집마다 붙어 있는 집 이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햇빛에 반사해 금빛을 발산하는 남한강, 깔끔하게 정비된 조경과 전원주택이 조화를 이룬 마을. 미래 마을이다.
지금이야 유럽의 한 마을에 온 것과 같이 이국적인 정취를 뽐내는 곳이지만, 안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던 17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을 짓고, 꽃을 심고 마을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자 점점 전원마을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꽃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화 마을이 됐다. 안씨의 삶의 질과 행복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전원생활을 택한 이유
34세에 시작한 독일 주재원 생활. 10년간 이어진 그 생활 속에서 여권에 찍힌 국가의 도장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세계 74개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삶의 콘텐츠를 경험한 안씨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웃과 단절된 도시 생활이 아닌 함께하는 전원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다양한 삶과 문화를 경험한 덕분인지 꽃이 많은 마을의 풍경과 주택의 모습은 유난히 외국의 어떤 모습들과 닮아 있었다.
“유럽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었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꽃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마을을 네덜란드의 한 마을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마을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뿐만 아니에요. 뭔가 자연친화적인 집을 만들기 위해 새집을 모티브로 집을 지었어요. 자연은 손대지 않고, 경사지에 집을 지어 붕 떠 있는 집을 만들었어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고, 자연과 인간이 만나도록 말입니다.”
안씨가 전원생활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자는 것이었다. 도시 생활, 직장 생활에 젖어 자신을 돌아볼 수 없게 돼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삶에서 정말 행복한 일인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즉,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씨는 나홀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는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과 소유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성취를 이뤄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남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사색하고, 실천해보고, 제 마음에 집중하니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이 보이더군요.”
◇아내를 위한 카푸치노와 전원생활의 맛
매일 아침 안씨는 아내 이화경(60)씨에게 손수 만든 카푸치노를 대접(?)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주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또 주위에서 그것들을 채우는 날들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행복해진다는 것. 그래서 아내를 위한 카푸치노는 그에게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이 됐다. 누가 커피 한 잔의 여유라 했던가? 카푸치노로 하나 된 부부의 대화는 여유롭지만 그 무엇보다 진지하고, 미래지향적이다.
그들의 전원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이웃이다. 이 부부의 전원생활에서 이웃은 그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그들이 더욱 이웃에게 투자하고,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웃이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웃이 주는 행복은 거창하지 않고 꽤나 소박하다. 함께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삶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1년에 4번 열리는 반상회를 통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포트락(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는 것)파티를 열어 일상을 충만하게 하는 것 말이다. 이곳 미래마을에서는 품앗이도 하나의 일상이다. 산귀래 문학상 시상을 하는 수필가 박수주씨의 행사를 도와주면, 박씨는 안씨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직접 심은 꽃을 대주기도 한다.
마을 한 곳에 모여 한 달에 두 번 차 모임을 갖는 화정다락회도 벌써 10년이나 됐다. 대한민국 다도의 원로격인 신운학 선생의 다실 화심정은 차도를 배우려는 미래마을 이웃들로 북새통이다.
가을 남한강변은 끼와 재능 발산의 장이다. 문호리 리버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피자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팔도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웃음꽃을 만개시키는 것. 그 구수하고 사람 냄새나는 전원생활의 맛에 17년째 중독되고 있는 안씨 부부다. 안씨는 이제 이웃을 빼 놓고는 양평 생활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번에는 옆집에서 급하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아저씨가 쓰러졌다면서 말이죠. 자식들은 멀리 있고 도움을 청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저희 집이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정말 이웃이 사촌인 이웃사촌이 된 것이죠.”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에게
안씨는 전원생활을 통해 정신적인 것과 대인관계의 부분에서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좋은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원생활 신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웃에 대한 투자는 성공적인 전원생활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아마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외로움일 거예요.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에는 집집마다 담이 낮다보니 사소한 것부터 나누고, 얘기하고, 상의하니까 외로움이 점점 사라지게 됐어요. 사소한 것부터 주변과 나누니, 그 행복이 고스란히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홀로되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외로움’이라는 근심을 피하려 하지 말고 맞서라는 뜻이다.
안씨는 자신이 전원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즐거운 홀로서기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때 즐겁게 지내기 위한 사색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아내에게 카푸치노 타주기도 그 일환이었다. 사색의 시간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바로 실행하는 것. 그것이 홀로서면서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남이 무엇을 해주기 전에 제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돼요. 남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보단 홀로 생각하며 행복해지는 것이죠. 사람이라는 게 주면 바로 오는 게 있잖아요. 물질적인 것이든 안 그렇든 말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 중 ‘사랑에 붕 뜬 장학회’라고 해서 주위에 해외로 가는 아이들에게 100달러씩 장학금을 줬는데요. 이것이 꽤 보람 있더라고요. 이 돈을 쓸 때 제 생각하면서 고맙게 느끼겠죠. 그 마음이면 충분해요.”
◇‘후두염’엔 ‘감기주사’
안씨는 미래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후두염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아! 여기서 후두염은 후두에 염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안씨가 말하는 ‘후두염’은 후회, 두려움, 염려를 줄인 것이다. 하루가 바쁘고, 돈에 쫓기다 보니 엄습하는 ‘후두염’에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전원생활을 통한 ‘감기주사’처방이 ‘후두염’을 다스리는 특효약이라고 말했다.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안씨가 말하는 감기주사다.
“여기에서 평정심을 찾으니 여유가 생기면서 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보이더군요. 그것이 전원생활이 준 선물인 거죠.”
맥아더 스쿨 정은상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또 다른 행운의 하나였다. 짧은 90분이었지만 그 분의 한마디가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였다.
“노인 계층이야말로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다. 이걸 보고 배운 분들로부터 ‘진즉 이것을 익히지 못했을까’ 하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비록 인터넷을 하고 컴퓨터와도 익숙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교장선생님 말씀으로 스마트폰이 과거의 어느 IT기기보다 노인 친화적이고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며 보여 주신 여러 가지 활용 기술에 그날부터 스마트폰 만지기에 빠지게 되었다. 아내로부터도 갑자기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고 핀잔을 듣지만 새로 배운 사진 꾸미기 방법과 옛날 음악을 무한정 들을 수 있는 어플을 깔아 주었더니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오늘도 강의 주제는 가족 간의 관계 중요성이 테마였고 그 가운데 특히 며느리, 사위 등 새로이 가족이 된 사람들과의 소통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거론되었다. 휴식시간에 여러 선생님들과 가족 소통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의 경험을 얘기해 주었더니 모두들 깜짝 놀라는 것이 있었다. 바로 SNS를 통한 소통 말이다. 웬만한 사람들도 카톡은 하기 때문에 카톡을 통한 대화라면 별로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페이스 북이나 트위트 까지는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실제 있었던 가족 밴드를 통한 며느리, 사위와의 소통을 설명해 주었더니 생각보다 깊은 관심이 뒤따랐다.
지난주에 며느리 생일이 있었다. 아들이 생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목요일 지하철에서 아들이 밴드에 올린 점심 초대장을 보고 즉석에서 ‘아들아 고맙다. 내일 보자.’ 하고 댓글을 달아 주었다. 금요일이 현충일이어서 모처럼의 연휴를 어떻게 지낼까를 생각하던 때에 아들의 초대는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들 내외, 딸 내외 및 손자 3명을 한꺼번에 보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 즐거움이 내포되어 있어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전 가족이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가서 산책도 하고 내친 김에 저녁식사까지 하는 등 부모로서 모처럼 즐거운 가족 나들이에 행복했던 하루였고 오래 남을 기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손자들의 뛰노는 모습을 보니 미국영화 ‘흐르는 강물 처럼’이 생각나면서 저 놈들이 잘 자라서 또 어른이 되고 두 물이 하나가 되어 1000만 시민들의 젖줄이 되듯이 그저 풍요로움에 마음 지칠 줄 모른 하루였다.
이러한 만남을 요즘 IT 언어로 보면 OFF Line 모임이라 한다면 소위 ON Line 모임은 이튿날 내내 가족 밴드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장면, 다함께 식사하는 장면,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경치 등등 사진 하나하나가 다 차례로 밴드에 등재가 되고 그 때마다 가족 각자의 느낌이 그대로 댓글로 공유되는 그야말로 SNS 천국이라 할 만하다. 특히나 우리 가족에 맨 나중 합류한 사랑하는 우리 며느리 지향이가 “모든 가족이 같이 모이고, 자신의 딸을 모두가 예뻐 해준데 대해 감사하고 행복하다” 는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새삼 우리 가족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족의 소통이란 이런 것이고 가족의 소중함 또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좋은 연휴가 되었다.
늘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반 쯤 숙이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야 SNS 예찬은 새삼스러울 것 도 없겠으나 나이 든 세대에게는 스마튼 폰의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며느리와도 소통한다는 나의 주장에 신기해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트 등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유용한 어플 등을 잘 파악하여 실생활에 활용할 경우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만이 아니라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더 이상 외로운 노후가 아니라 자식들과 혹은, 생각이 통하는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인류 역사상 가히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시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그런 소통의 필요성을 깨우치게 해 주었던 정은상 교장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아울러 인생2막의 출발점에 선 액티브 시니어를 꿈뚜는 많은 분들께도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과 정보 획득을 강력히 추천 드리고 싶다.
-한국산업은행
-한주통산 이사
-세종공업 상무(슬로바키아 사장)
얼굴에 뽀얗게 발라보는 동동 그리모(크림), 굴렁쇠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는 서커스, 승용차에 연결된 끈을 입으로 물고 끌어 보는 차력 시범….
23일 오후 1시께 매월 3일과 8일로 끝나는 3·8장인 양평 물맑은 시장(양평전통시장)을 찾은 수백명의 인파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적 장날로 되돌아 온 것 같은 행복에 한껏 젖어 있었다.
양평군이 중소기업청과 한국철도공사 수도권 서부본부 등과 공동으로 주최하고 양평 물맑은 시장 상인번영회가 주관한 ‘ITX-청춘열차’ 양평시장 방문 이벤트에 모두 500여명의 도시인들이 몰렸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한 이번 행사에서 열차는 이날 오전 8시 수원역을 출발, 안양역을 경유한 뒤 오전 9시50분께 양수역에 도착했다.
‘향수의 전통시장’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이벤트에서 탐방객들은 양평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에서 쿠폰인 엽전을 구입한 뒤 수학여행 온 어린이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장을 보기도 하고 친환경 농촌먹거리와 주말 직거래장터, 즉석에서 바비큐 그릴에 다양한 구이요리 체험 등을 즐겼다.
며느리와 어린 손주들과 함께 장터를 찾은 한남희씨(57·서울 영등포구 대방동)는 “서울에서 불과 반시간 남짓한 거리에 이처럼 1960년대 장날이 서는 광경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양평 전통시장에서 양평의 대표적이 관광 명소인 용문산관광지로 발길을 옮겼으며 지난해 세계 100대 정원에 선정된 세미원과 두물머리 등지를 둘러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주웅 군 지역경제과장은 “중소기업청과 한국철도공사가 주관하고 있는 ‘팔도장터 관광열차’와 별도로 양평을 방문하는 최대 잠재 고객들인 수도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양평 재방문을 목적으로 ‘ITX-청춘열차’를 기획하게 됐다”며 “양평시장번영회와 함께 이번 이벤트를 양평전통시장 만의 특화된 고유의 축제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상인 주도의 행사 추진을 통해 시장 자생력도 강화, 수도권 최고의 전통시장으로 거듭 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일보 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