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 나만의 아지트 대공개] 두물머리

기사입력 2016-09-05 14:52 기사수정 2016-09-05 14:52

▲잔잔한 두물머리. (이경숙 동년기자)
▲잔잔한 두물머리. (이경숙 동년기자)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안방 한쪽에 ‘생각의 의자’라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자매끼리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왜 화가 났는지, 울어야 했는지 억울한 얘기도 들어주었지만, 이기적인 마음도 내려놓게 다독이며 두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 의자는 빈 채로 덩그마니 앉아 있다.

◇마음 가다듬기

나이가 어른이라고 마음도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의자’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종종 상처 입은 동물처럼 나의 동굴로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서재의 한쪽 구석진 공간에 방석을 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에 잠긴다. 촛불을 밝히면 더 좋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를 주로 생각한다.

그리곤 마음을 좀 가라앉힌 뒤 훌훌 털고 일어나 차를 꺼내 향하는 곳이 있다.

◇고향 같은 곳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 언제나 조용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차를 세우고 강가를 걷는다. 습기 머금은 바람이 마른 폐 속에 자양분처럼 틀고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말없이 일렁이는 강을 바라보고 섰으면 수많은 얘기를 품고도 저렇듯 조용한 강의 의연함과 인내가 느껴진다. 파도에 떠밀리며 자신을 맡길 뿐 무심한 듯, 유심한 듯.

수심에 찬 얼굴을 위로라도 하듯 빛나는 향연을 펼치는 물고기들의 도약은 생동감을 준다. 싱싱한 비늘에서는 쇳소리가 날 것 같다. 수평선은 종종 안개로 뿌옇다.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기분은 더 상큼해진다. 아픈 가슴에서 흘리는 눈물 같아서다.

◇인내와 관용

얼마나 작은 일에 집착하고 마음을 상했는지를 느끼게 된다. 좌절과 실망에도 맞설 힘을 주며 기나긴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인내를 선물처럼 안겨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상한 가슴을 꺼내어 강물에 씻고 바람에 내어 말려 말끔한 기분으로 되돌린다. 속을 비우고 자족하며 흘러가는 것을 잔잔한 눈빛으로 보내주는 관용을 들고 돌아오게 된다. 사람이 태어난 이유는 인내를 배우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배가 고파지기 마련이다. 메뉴 짜느라 냉장고의 문을 몇 번씩 열었다 닫으며 보글거리는 찌개를 상상하곤 한다.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씩씩하게 다시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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