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유리문 가까이 고개를 낮춰 눈을 들이밀었을 때 그녀의 얼굴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깜짝 놀라 몸이 뒤로 밀렸다. 점심시간.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손맛 좋기로 소문난 동네 맛집으로 고민 없이 향했다. 가을볕 맞으며 맛난 된장찌개 삭삭 긁어 나눠 먹고는 그녀의 별로 들어가 향 깊은 커피를 마주하고 앉았다. 음악소리가 나뭇결을 타고 전해지는 문화살롱 ‘아리랑’ 안. 그곳에서 노래하는 예술가 최은진(崔銀眞·58)의 지나온 인생과 살아갈 날의 이야기 실타래를 조금이나마 풀어봤다.
“문화쟁이들은 나 모르면 간첩이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옆에 예술인 최은진의 문화공간 ‘아리랑’이 있다. 사람들이 익히 알 만한 설명이라면 말 많고 탈 많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의 주요 무대가 바로 아리랑이다. 낮에는 손님 받을 생각 없는 듯 늘어지고 한산한 모습이다. 밤이 되면 그녀의 별 ‘아리랑’에서는 따뜻한 불빛 아래 술잔이 오간다. 기분이 좀 오른다 싶으면 최은진의 노랫가락에 흠뻑 젖을 수도 있다. 화가, 글 쓰는 작가, 건축가, 교수 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이들은 성지마냥 이곳을 찾는다.
“예술가들 많이 오죠. ‘평범’이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인들이 많이 와요.”
최은진의 인생 스토리를 다룬 한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만요 가수로만 소개한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능이 많다. 타고난 음색은 노래 분위기에 따라 아이 목소리도 됐다가 농염한 재즈가수도 된다. 옛 가요에 세련미와 특별함을 더해 사랑받고 있다.
인천 출신인 최은진은 초등학교때 인생 최초로 듣게 된 ‘흑자청춘(1966년·정원 노래)’ 한 곡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동춘 서커스단 공연 모습을 보고는 교내 체조부에 입단해 활동했다. 20대에는 영혼에 대한 갈증으로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의 길도 꿈꿨다. 지금은 동서양 모든 종교와 철학적 경계를 뛰어넘어 정신세계에 관한 공부와 수행, 묵상하는 삶을 산다. 젊은 시절연극배우로서도 두각을 보여 각종 무대에 올랐다. 그 후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1999년 현대방송 슈퍼보이스 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타면서 매스컴 앞에 섰다. 그때 최은진 나이 마흔. 예인의 길을 걷고자 신중하게 진로를 고민하면서 우리의 음악 아리랑과 인연을 맺었다.
아리랑에 정착하다
“젊지도 않은 나이에 방송사에서 시키는 거 하는 게 싫었어요. 대신 재즈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뉴욕으로 유학을 가려고 마음을 굳혔어요. 그때 우리 아들이 어리니 한 5년만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제 앞에 아리랑이 다가왔어요. 오케스트라 협주로 된 아리랑을 듣고 눈물을 잔뜩 쏟아냈습니다. 이게 내 운명인가보다. 아리랑도 결국 재즈잖아요. 우리만의 소울이 깃든 재즈요. 2003년에 나운규 탄생 100주년 음반 ‘다시 찾은 아리랑’을 낸 것이 새로운 삶의 시초가 됐습니다.”
진정한 음악을 찾아 뉴욕에 가고자 했다. 알고 보니 영혼이 깃든 음악의 본질은 최은진 자신이 서 있는 토양에도 있었다.
“이생에서 정체성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아리랑을 하러 세상에 왔구나. 아리랑 음반을 내고 나서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마이크랑 스피커도 가져다 놓고요. 여기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더니… 희한해요. 사람 구경 못하던 거리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저기 가면 옛날 목소리 나는 여자가 있다면서요.”
아리랑에 무슨 애환이 있기에 최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는 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언젠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국제교류 아리랑 축제에 초청돼 갔어요. 그때가 추석쯤이었는데 아리랑 요양원이라는 곳에서 위문공연을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목화밭에서 그렇게나 많이 고생하셨답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나도 모르게 입구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공연을 못할 뻔했어요. 너무 울어가지고요. 일주일 전쯤 소록도에 갔을 때도 화장장 근처에서 비슷한 경험을 또 했죠. 교감이 되는 거죠. 그 당시 힘들었던 사람들의 삶이 저에게 그대로 오는 거예요. 나도 조금은 특별한 별인 셈이죠.”
다가오는 영혼들의 울림이 있기에 곡마다 정성과 마음을 담아낸다. 2010년에는 지극정성의 보답처럼 2집 음반 ‘풍각쟁이 은진’이 1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인기를 얻었다.
“‘오빠는 풍각쟁이(1938)’를 리메이크한 앨범을 냈어요. 처음에 음반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줄 서서 구입했다더군요. 서점에 가서 모르는 척하고 물어봤죠.(웃음) 인터넷도 안 하고 매일 이곳에 있으니 알 수 있겠어요? 마니아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었대요. 이 여자가 누구냐고요.”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강산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부른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도 그녀의 왕팬을 자처했다. 그렇게 최은진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소문을 타고 흘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에게도 알려졌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치가 세션과 프로듀싱을 담당하면서 그녀의 두 번째 음악 작업에 힘을 보탰다.
진정한 레트로 음반 ‘헌법재판소’
최근 최은진은 엄청난 시도를 감행했다. 아리랑 소리꾼 혹은 조금 현대적인 느낌으로 편곡된 옛 곡을 부르던 것과 차원이 다른 음악 장르에 도전한 것. 바로 옛 가요를 1980~90년 대 인기를 끌었던 일렉트로닉 스타일로 재해석한 세 번째 앨범 ‘헌법재판소’다.
아들 또래인 젊은 음악가와 작업을 하고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그녀의 이전 음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같은 사람이 불렀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파격 그 자체다. 시니어가 노래방에 가서 18번으로 잘 부르는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1960)’과 백년설의 ‘아주까리 수첩(1942)’은 젊은 세대의 숨을 불어넣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으로 거듭났다. 원곡을 즐겨듣던 시니어에게는 신선함을, 곡을 전혀 모르는 세대에게는 새로운 음악으로 느껴질 만하다. 지난 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진화하는 레트로 열풍의 기류에 최은진의 새 앨범도 합류했다.
“정말 현대적으로 만든 거예요. 나이어린 음악인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새로운 걸 배우는 거죠. 젊은 세대도 저하고 음악을 만들면서 배우는 게 있었을 겁니다. 옛날 정서를 무시하고 과정 없는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요즘은 ‘아리랑’ 문을 여는 일 외에는 새 앨범 홍보 쇼케이스 무대에 선다. 12월 1일에는 홍대 더스텀프에서 새 앨범을 소개하고 알리는 쇼케이스를 열어 성황을 이뤘다.
“처음에는 ‘아우! 전자악기 반주에 맞춰 어떻게 노래하지?’ 그랬는데 들을수록 좋아요. 이게 정서에 맞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작사, 작곡한 음악도 수록했고요.”
군대 간 아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양구’는 최은진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는 노래인데 여성들은 무덤덤하게 듣는 반면 남성들은 곡을 듣자마자 “엄마 보고 싶다”를 연발한단다.
삶의 씻김, 문화살롱 ‘아리랑’
3집 타이틀곡인 ‘헌법재판소’는 이노경이 쓴 곡에 최은진이 가사를 붙였다. ‘아리랑’에서 만나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써내려간, 모든 세대를 위로하고 싶어 만든 곡이다.
“사람들이 술 한잔 마시면 그렇게들 울어요.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낸단 말이죠. 대부분 다 울어. 그러면 나도 울고. 저마다의 인생에는 어마어마한 일이 많잖아요. 위로가 필요한 모두를 위해 썼어요. 해우소라는 말 있잖아요. 내가 볼 때 이 집은 울다가 웃다가 위로받는 집이야.(웃음)”
어떤 것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뭘 하든 이렇게 가는 거지 뭐”라고 답한다. 그냥 매일을 사는 것. 시상이 떠오르면 적고 악상이 떠오르면 함께 작업하는 음악인들과 얘기하면 된단다.
“그 젊은 친구들 밴드 이름도 만들었어요. 대열차강도밴드래요.(웃음)”
무엇보다 공연에 힘을 좀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무대가 늘 그리운 천생 무대 체질 그녀다. 세상을 위한 조언이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머리 말고 가슴을 써야 해요. 그래야 바로 연결될 수 있죠. 소통 말입니다. 그러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후배들에게 고독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요. 오늘 인터뷰 때문에 산책을 못했는데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려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걸까. 헌법재판소 옆. 땅거미가 지면 작은 별 하나가 떠오른다. 위로받고 싶은 이들이 호주머니에 손 넣고 한 명, 두 명 들어와 착석. 위로가 필요한 당신들을 위해 오늘밤도 아리랑의 문은 열린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브라보!”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을 나눌 때 느꼈던 진한 가족애와 혈육의 뿌듯함이 DNA에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마솥 누룽지, 지겹던 보리밥,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래기죽도 각자의 추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그것만 먹으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만화방 주인은 청년이었다. 가끔 내게 만화방을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 보고 싶은 신간 만화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만화방 앞에는 약간의 학용품이 놓여 있어 그것도 팔아야 했다. 그날도 만화방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보니 군인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얼마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게 몰두할 만큼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만화방엔 안데르센 동화책도 많았다. 울적할 때면, 나는 동물들과 숲속 방앗간 짚 덤불에서 자던 소녀를 떠올리곤 했다. 샘물을 마시고 동물들과 대화하던 맑고 밝은 소녀가 아직도 가슴속에 있다. 지칠 때면 그 소녀가 가만히 내 창을 두드린다.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말이 있다. “동네 다 쓸고 다닐 거니?” 어깨는 각이 지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딱 맞고 바지통은 아주 넓은 디자인이었다. 그 시절엔 사실 유행이 일률적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향을 주장할 만큼 당당하지도, 식견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개성을 개인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좀 멋쟁이다 싶으면 일제히 미니스커트, 일제히 맥시스커트를 입는 그런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달랑대는 조명등이 달려 있거나, 촛불을 켜는 낭만적인 카페도 많았다. 종종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20대는 늘 무엇인가에 취해 있었다. 쉽게 흥분하고 자주 슬펐던 우리들의 20대. 끝도 없는 논쟁으로 밤을 새우고, 모든 게 다 진지하기만 했던 시절.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랑 얘기를 쉼 없이 되풀이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모두 정의의 순교자라도 되고 싶어 했다.
미팅 땐 생맥줏집, 볼링장, 극장엘 갔다. 애프터 미팅은 카페에서 만나 주로 비원이나 경복궁, 덕수궁을 걸었다. 가난한 젊은 커플들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추억들에 젖어보기 위해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복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자니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그리움이라도 불러와 옛 필름들을 다시 돌려보고, 식어버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데워보려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 윤종국 동년기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엄청 좋아한다. 난 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러나 머리는 크다. 표준 사이즈로 옷을 고르면 거의 맞는 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있다. 30여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먼저 알려준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청계6·7가에 있었고, 지금은 동묘(동대문구) 일대에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레트로를 본다. 내게는 수만 가지 물건이 레트로 대상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간다. 내 작은 체구를 잘 알기에 어울리는 옷도 찾아본다. 손에 주로 들리는 옷은 복고풍의 외투다. 벼룩시장에서 입수한 옷은 꼭 수선 집을 거친다. 그래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없는 게 없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곳은 또 아니다. 내게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다. 레트로를 사랑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레트로인이 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복고풍 옷을 하나 발견했다 치자. 구매의사가 있을 경우 먼저 입어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초보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구매자 몸에 어울린다 싶으면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매기기는 벼룩시장 주인들만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먼저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흥정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설사 맘에 들더라도 그 맘을 들키면 절대 안 된다. 그래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또 하나의 팁. 다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하다가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을 들고 슬쩍 “이건 얼마죠?” 하고 물으면 점포 주인은 대부분 낮은 가격을 부른다. 이것이 지혜롭게 레트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 딸아이가 벼룩시장이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그날 지나다 발견한 물건은 흙이 묻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신을 만해서 단돈 5000원에 손에 넣었다. 집에 와서 닦고 손질해보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고가 브랜드 신발이었다. 딸아이가 좋아라 했다. 내가 벼룩시장 마니아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 그날이었다.
한 달 전 큰손주의 생일이 있었다. 그날을 위해 몇 번이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맸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신제품도 생각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녀석의 발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전국, 특히 서울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내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슬쩍 사라져버렸다.
벼룩시장을 갔던 날, 다행히 손주에게 맞을 것 같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발견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일단 가격부터 묻고 사이즈를 확인한 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손주 발 사이즈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주인의 눈치도 살폈다. 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대화를 나눈 뒤 주인과 흥정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이런 요령을 터득해야 비로소 벼룩시장의 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비하니 새 물건보다 더 정감이 갔다.
손주 생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건네주며 “지금은 키가 부쩍부쩍 크는 나이니까 일단 이것으로 먼저 타는 연습을 하자”라고 말했다.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런지 손주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나는 손주바보 할아버지에서 멋진 할아버지로 거듭났다.
옛것들에서 한 수 배우며 사는 삶 육미승 동년기자
“넌 조금만 더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뭔가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 말은, 내 패션이나 생각 그리고 사는 방법이 자기들과는 전연 다르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레트로가 내 생활이니….
특히 패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옷을 살 때 겉옷은 지금 당장 유행을 타는 것들 중 나중에도 입을 수 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옷들은 옷장 문을 열어 예전에 신나게 입고 즐겼던 옷들에서 선택한다. 그날의 모임 콘셉트에 맞고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짐이 없는 은은한 멋을 지닌 그런 의상을 즐기는 거다. 나는 옛것을 너무 좋아한다. 옛것들 버리지 않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를 보고 “어머 얘, 너무 잘 어울린다아~’ 하고 해주는 말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회상하고 추억에 빠지는 시간은 천천히 꼼꼼하게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인연이 끝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음 한구석에 감춰두고 있다. 어느 날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 감상하는 게 내 취미다. 나는 옛것들은 대부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가끔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사마의 같은 중국의 책사들에게 한 수 배우길 희망한다. 그 놀라운 생각의 회로를 닮아보려고 혼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젊은이들. 그 두뇌를 못 따라가는 나는 느린 사고방식이 편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보질 못했다.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내 모습이다. 져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할 때도 나를 뺀 모든 관계자들이 편한 쪽으로 해답을 구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를 길들이며 살아왔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지인들은 불똥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져도 “이게 뭐지?” 하며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며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린다. 특히 답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끝까지 기다린다. 엉망으로 뒤섞여버린 물을 가만히 두면 침전물들이 여러 층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맨 위로 올라온다. 내 앞의 문제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마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듯 저절로 아주 유효하고 명쾌한 답이 나온다. 그 신기함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진가라고 믿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교도 좋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더 많은 답을 찾는다. 레트로는 내 단짝이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복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패션,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레트로는 ‘마음의 휴식’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1980년. 그 해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건축과 학생들 중 건축설계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회원들은 매년 몇 달씩 동아리방에서 합숙을 하며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식사는 2학년생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회원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만든 밥은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식사로 몇 달 합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건강이 나빠졌다. 1980년의 교정은 봄부터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수업도 대부분 휴강이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건축과 동아리 회원들은 밤낮으로 모여 작품전을 준비했다. 대체로 밤에 설계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데모하러 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최고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저녁에 가끔 학교 앞으로 나가 막걸리도 한잔씩 했다.
그날도 4학년 동기들은 동아리방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4학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는 학교 교문 근처 문방구점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봤다. 당시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었다. 그런데 선발대회 중에 화면 아래쪽으로 대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자막 뉴스가 떴다. 합숙 중이었던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어느새 장갑차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1980년 5월 15일이었다. 17일에는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5월 18일.
그 해 우리가 준비했던 5월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집회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회원들 집에서 만나 작품전 준비를 했고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해서 내 임기 중에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또 왔고 어느 날 술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고량주를 마시면서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 12월 22일 이었다. 우리는 컬러로 텔레비전을 보면 중국 영화처럼 피가 난무하는 장면은 너무 살벌할 것 같다는 둥, 연예인들이 옷을 더 화려하게 입을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추측성 대화를 나눴다. 그날 그렇게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종료되었고 내 학창 시절도 저물어갔다.
얼마 전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다. 오래전에 갔던 로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흑백 화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흑백이라서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유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컬러 사진이 보편화하기 전의 흑백 사진들은 그 분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로움이 있다. 흑백 사진을 손에 들면 사진을 찍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듯하다. 흑백이라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복잡하고 바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색과 형태 그리고 자극적인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파도를 견디려니 모든 감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흑백은 잠시나마 여백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눈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특히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는 한 폭의 수묵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는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다. 안개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놓은 수묵화는 화려한 가을날의 유화 같은 풍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그 여백은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시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요즘 펜화 스케치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검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 원본의 컬러와 비교하면 흑백이 가진 깊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라도 흑백의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흑백은 레트로다. 나는 레트로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역시나 시월이 가기 직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노래를 들었다. 시월 끝 날에 의미를 두기보다 말일까지 처리해야 할 각종 고지서에 신경쓰다보니 어느덧 11월이 훌쩍 넘어갔다.
요즘 대전과 충남지역에서 마을공동체 붐이 한창이라 대전시 주관으로 공동체를 소개하는 책자 발간 작업에 참여하며 글을 쓰고 있다. 벌써 이것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역에 들를 때마다 일행과 밥을 먹고 나면 자연스레 카페를 가곤 한다. 차 한 잔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땅한 데가 카페만한 곳이 없다.
일상에 스며든 카페. 요즘은 마을 원주민이 떠난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인테리어로 꾸민 카페가 눈에 띈다. 정원에 방치된 측백나무, 향나무를 카페 분위기와 어울리게 활용한다. 또 농협창고가 카페로 변한 곳이 있다. 천장이 높아 한결 탁 트인 느낌이다. 칸막이 없이 널찍한 홀에 외국항아리, 중국침대, 수를 놓은 크고 작은 쿠션들이 판매를 겸하기도 한다.
시골 한옥을 개조해 두 부부가 몇 년 동안 공들여 만든 카페에도 간 적이 있다. 때마침 이슬비가 잠잠히 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지는 곳곳마다 내 유년이 소환된 착각이 들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하루 종일이라도 멍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단아하고 정갈함에 감탄하며 화장실에 들렀을 때, 나는 잠시 신발을 벗어야하나 망설였다. 화장실을 나오기 전에 신발바닥 자국을 휴지로 닦았다. 주인이 내 얘기를 듣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신발신고 들어가는 화장실이라고.
어느 날에는 2층 카페에서 마당 모퉁이에 앙증맞은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주택에 살던 내 기억에 그곳은 화장실 혹은 창고로 쓰였을 법한 공간이다. 아마도 카페 분위기를 살리고자 소품을 놓았을 게다. 카페 옆으로 오래된 집의 담에는 녹슨 철조망이 자리 잡았다.
시월이 지나 계절은 어느덧 초겨울을 향하고 있다. 따뜻한 커피가 놓인 자리에 스스럼없는 친구와 마주하고 싶은 밤. 한때는 가까운 앞집 옆집과 ‘우리 집에 커피 마시러 와~’라는 말을 하며 살 때도 있었다. 아이가 같은 또래면 엄마들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카페가 자꾸 생기는 것은 내 집을 개방하지 않으려는 환경이 탓일까.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믹스커피를 나눠 마시며 수다를 떨던 내 또래 이웃은 지금 어디 있을까.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카페는 복고를 되살리며 나를 유혹한다.
중장년 세대가 떠올리는 추억의 뉴스는 아마 ‘대한늬우스’일 것이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요즘 뉴스는 최첨단 기술 덕분에 시각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앵커의 말투와 톤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런 시대의 흐름에 역주행하며 7080 레트로 뉴스를 제작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스파-크 뉴우스’의 이화원(19), 정광석(33), 배욱진(34) 씨다.
서울문화재단이 각 분야 영상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만들어가는 온라인 방송국 ‘스팍TV’. 매주 요일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일상 속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공한다. 그중 한 주의 시작, 월요일마다 독자들을 만나는 ‘스파-크 뉴우스’ 채널. 정갈한 2대 8 가르마에 금테잠자리안경을 쓴 앵커 배간지의 투박한 외모와 멘트가 압권이다.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레트로풍 뉴스를 기획한 이화원 PD는 이제 갓 미성년자 딱지를 뗀 대학 새내기. 셋 중 막내이지만 팀장을 맡아 기획을 비롯한 영상 편집 등을 총괄하고 있다. 1999년생인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시절, 그야말로 기억조차 없는 옛 감성에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은 다들 차별화된 것을 추구하잖아요. 다른 것, 그 다른 것과는 또 다른 것, 그렇게 계속 다른 무언가를 찾는데 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뭘 해도 크게 차별화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과거를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미래가 새로운 것처럼, 1970~80년대의 모습도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인 거죠. 이미 그 시절을 살아온 어른들에겐 진부할지 모르지만, 저에겐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30~40년 전 뉴스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 비율을 4대 3으로 맞추고, 화질이나 음질을 일부러 탁하게 떨어뜨려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앵커 배간지의 멘트와 비주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과거 뉴스 영상을 보고 스타일을 연구했고, 재래시장에서 옷과 소품을 골라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앵커로 활약 중인 배욱진(배간지) 씨는 “삐까뻔쩍한 것들을 보면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듯하다”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평소 낡고 오래된 것들에 관심이 깊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취향만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레트로 열풍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촬영 때 쓰려고 동묘와 황학동 시장에서 1980~90년대 트레이닝복이나 ‘88올림픽’ 로고가 있는 옷들을 사려고 보니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이미 힙스터(hipster, 유행을 좇는 사람)들 사이에서 핫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거죠. 그런 트렌드 덕분에 젊은 친구들도 저희 영상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저 옛것을 따라 한다고 해서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을 표현할 수는 없다. 낡았지만 신선하고, 익숙하지만 흥미롭고, 촌스러우면서도 요즘 말로 ‘힙’(hip)한, 복합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관건. 배욱진 씨는 “단순히 오래된 것의 복원이 아닌 패러디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레트로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아예 원본 그 자체를 따라 하는 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한 번 재해석하거나 살짝 비틀어보려 했죠. 예를 들어 옛날 영상이나 광고에서 요즘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보면 굉장히 원색적이거나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할 만한 내용이에요. 그런 부분을 능청스럽게 소화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주려 했어요.”
세 사람의 고민 끝에 탄생한 ‘스파-크 뉴우스’는 올해 6월 첫선을 보이며 독특한 설정으로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셈이다. 촬영을 담당하는 정광석 감독은 거듭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런데 앞으로 저희 콘텐츠에 독자들이 익숙해지면 초반에 느꼈던 참신함이 점점 사라질까봐 걱정이에요. 뉴스 진행 자체가 옛날 방식이라 다소 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거든요. 리포터 영상을 더하거나 청군 백군 머리띠 하고 가을운동회처럼 야외촬영도 해서 넣어볼까 합니다.”
잠시 화제를 전환해 중장년에게 권하고 싶은 레트로 핫 플레이스를 알려 달라고 하자 입을 모아 ‘을지로 커피한약방’을 꼽았다. 배욱진 씨는 “다른 레트로 공간은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해 지나치게 트렌디한 느낌이 강한데, 이곳은 자연스러운 레트로 감성이 묻어나는 곳”이라며 중장년 방문객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광석 감독도 한마디 덧붙였다.
“커피한약방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부모 세대(중장년)가 방문하면 커피값을 받지 않는 이벤트를 하는 날도 있는데, 그만큼 윗세대가 이러한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그런 점에 공감하고, 많은 중장년분들이 저희 뉴스를 통해 정보도 알아 가시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리셨으면 해요.”
레트로에 열광하는 현대인, 과연 그 열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스파-크 뉴우스’의 간판 앵커 배간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파리의 황금기는 30년 전이었어’, ‘파리의 황금기는 그때(과거)였어’라는 식의 대사가 계속 나와요. 그렇게 계속 현대를 살면서도 전 세대를 그리워하는 거죠. 우리가 현재의 과거를 그리워하듯, 미래엔 또 그때의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거예요. 자기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과거의 어떤 풍요로움을 상상하고 갈망하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 아닐까요?”
누구나 한 번쯤은 과거를 떠올리거나 생각한다. 이처럼 추억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레트로 아이템 일곱 가지를 소개한다.
1 게임기
1980~90년대를 풍미한 콘솔게임기(패밀리 컴퓨터, NES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슈퍼 패미컴 등)를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 재출시한 복각판 게임기. 기존의 게임팩은 사용할 수 없지만 수십여 종의 고전 게임이 내장되어 있어 추억 속 게임을 다시 만날 수 있다.
2 키보드
오늘날 부피가 큰 타자기를 들고 다니면서 글을 쓴다는 건 다소 무모(?)해보일지도. 대신 타자기의 감성을 똑 닮은 물건이 있으니, 바로 무선 또는 유선으로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키보드다. 동그란 키캡, 줄바꿈 레버 등 언뜻 보면 타자기로 착각할 만하다.
3 문구류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 ‘바른생활’에 단골로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를 연상하게 하는 ‘바른생활’ 문구류 시리즈. 수첩, 편지지, 공책, 메모지 등 다양한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련미는 없고 유치하지만 원초적 재미를 즐기는 ‘B급 감성’을 노렸다.
4 스피커
이제는 놀러 갈 때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피커. 공원, 바닷가 등 야외에서 즐기는 한잔 술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은 술맛을 배로 돋워준다. 레트로 디자인이라고 성능이 떨어질 거란 걱정은 금물. 음질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블루투스, 라디오 기능도 갖추고 있다.
5 수화기
각 가정에 하나씩 있었던 전화기가 휴대폰의 보급으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화면만 살짝 터치하면 통화가 가능한 요즘과는 다르게 수화기를 들어 올려야만 통화할 수 있었던 예전 감성을 다시 느끼고자 휴대폰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화기가 등장했다.
6 레트로 컵
찻장 속 어딘가 처박혀 있을 것만 같은, 1980~90년대 음료 업체들이 제공한 판촉용 유리컵이 인기다. 최근 중고시장에서 1만~2만 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유리컵 디자인은 투박한 글씨체의 오래된 로고가 포인트다. ‘레트로 컵’ 또는 ‘빈티지 컵’ 등으로 불린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가 들어간 컵은 ‘희귀템(희귀+아이템)’ 중 하나라고.
7 스탠드
자기 전까지 손에서 때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두운 곳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지속적으로 볼 경우 시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그동안 깔끔한 디자인의 스탠드가 유행이었다면 레트로 열풍에 맞춰 복고풍 스탠드를 침대 옆에 하나 놓아보는 건 어떨까.
레트로는 단순히 오래된, 옛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50년째 장사를 이어온 노포와 1970년대 인테리어로 새로 문을 연 식당. 전자는 전통이라 말하고, 후자가 ‘레트로’라 하겠다. 이러한 레트로 콘셉트의 가게들은 중장년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자녀와 함께 데이트 즐기기 좋은 레트로 핫 플레이스를 소개한다.
◇ 익선동 한옥섬을 한눈에 ‘낙원장’
옹기종기 기와지붕 아래 레트로풍 맛집과 아틀리에가 즐비한 익선동 거리. 부티크호텔 ‘낙원장’에서는 골목을 가득 메운 한옥 150채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지어졌던 ‘그린필드’라는 낡은 여관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매입,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해 탄생시킨 공간이다. 클래식한 건물 외관과 달리 세련되고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가 레트로 플레이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객실은 일반뷰와 한옥뷰, 프리미엄 한옥뷰 총 3단계로 나뉜다. 그중 LP플레이어가 있는 한옥뷰 룸을 선택하면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선동 풍경과 함께 LP음악까지 만끽할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5 숙박비 평일(일~목) 7만~9만 원, 주말(금~토) 9만~11만 원
◇ 아날로그 선율에 빠지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PLASTIC)’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사라져가는 음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음악체험형 공간이다.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소재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 왼편으로는 턴테이블이 놓인 긴 탁자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선정한 200장의 LP명반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는 클래식, 재즈&소울,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LP음반 9000여 장과 다양한 음향장비를 전시, 판매한다. 2층은 1만6000장에 달하는 CD와 더불어 음악감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공간으로 꾸며져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이용시간 화~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8:00 (현대카드 미소지자도 입장 가능)
◇ 한국·태국의 퓨전 레트로 맛집 ‘동남아’
태국요리전문점 ‘동남아’의 입구.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낡은 검푸른색 철문을 활짝 열면 레드벨벳 커튼과 이국적인 샹들리에가 맞이한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 오묘한 식당은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옥을 개조한 실내는 태국 연회장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로, 동남아 여행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표현했단다. 메인 홀 외에 공간을 다양하게 나누었는데, 룸마다 강렬한 색감의 독특한 벽지가 눈길을 끈다. 특히 대중탕 욕조(?)를 연상케 하는 앞마당의 테이블은 겨울철 식사를 즐기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기 메뉴인 꽃게와 커리로 맛을 낸 ‘뿌빳 퐁 커리’와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타이’ 등 현지 셰프가 요리한 다양한 오리지널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3-6 이용시간 매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5:30~17:00(주말 제외)
◇ 도도한 모던걸의 화려한 외출 ‘경성의복’
익선동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개화기풍의 원피스와 정장을 입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궁 일대에서 한복 체험을 하듯, 이곳에서는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레트로 감성을 한껏 즐기는 것이 트렌드. ‘경성의복’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복고 의상과 셀프 촬영을 위한 포토존이 구비돼 있다. 고풍스러운 원피스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모던걸이 되어 거리를 누벼보는 것 어떨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56 2층 이용시간 매일 10:00~20:00
가격 의상대여(의상·장신구·모자·기타소품) 3시간 3만 원/6시간 4만 원/하루 4만5000원/1박2일 5만 원
◇ 딸과 데이트하는 날엔 ‘경양식 1920’
1980년대 전후, 가족외식 하면 떠오르는 경양식집을 테마로 한 레스토랑 ‘경양식 1920’. 레트로 거리로 유명해진 인선동 골목에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와 함께 올 수 있는 외식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꾸미고 추억의 메뉴들을 불러왔다. 24시간 숙성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실제 방문한 고객들을 살펴봐도 젊은 연인부터 엄마와 딸,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사이드 메뉴로는 1980년대 경양식집에서 맛보던 수프와 멕시칸 사라다(샐러드)를 선보인다. 특별한 날에는 하우스 와인 한 잔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17-30 이용시간 평일 12:00~22:00, 주말 11:00~22:00, 브레이크타임 15:00~17:00(주말 제외)
◇ 뒹굴뒹굴 잠시 쉬어가는 ‘만홧가게’
과거 만화잡지 ‘챔프(CHAMP)’를 비롯해 ‘우주소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과 그래픽노블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 방문한다면 런치스페셜(라면·즉석밥·계란·김치/단무지+만화 1시간, 6000원)로 이용해보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33-7 영업시간 11:00~23:00 가격 1인 기준 10분당 500원, 좌석(주말 및 공휴일) 2000원
동년기자가 직접 다녀온 레트로 핫 플레이스
◇ 최원국 동년기자/ 돌고 도는 레트로 액티비티 ‘자이언트 롤러장’
부천의 레트로 명소 ‘자이언트 롤러장’.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인파가 붐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부천의 ‘자이언트 롤러장’이 유명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복고풍에 맞춰 추억의 이름을 다시 불러왔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부천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30년 전 롤러를 타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아이들과 많이 찾는 듯하다. 롤러장의 경쾌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DJ가 있어 음악에 맞춰 롤러를 타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곳곳에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을 이용하면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의 낭만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니어라면 친구 또는 아이들과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위치 경기도 부천시 장말로 376 지하 1층 1일 입장료 성인 1만1000원, 유아~고등학생 9000원 영업시간 평일 12:00~22:00(무제한 이용), 주말 10:00~22:00(3시간 이용)
◇ 윤영애 동년기자/ 시간이 머무는 곳, 우유 카페 ‘희다’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하얀 3층집, 카페 희다. 낮은 계단을 테라스 삼아 나무 소반에 왕골방석이 놓인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젠가 분명 와본 듯 너무나 친숙한 느낌!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냄새도 나는 듯하다. 높다란 1인용 앤티크 의자, 사각밥상 테이블, 양은 개다리소반, 자개문양 화장대와 거울, 낡은 찬장과 괘종시계까지. 곳곳을 돌아보며 낡은 물건들에게 속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 있다가 여기로 왔니?’ 메뉴를 보니 우유가 주다. 기본 우유에 커피, 홍차, 말차, 페퍼민트, 미숫가루까지 6가지다. 사이드 메뉴로 옥춘당 때때사탕과 큼직한 레몬 마들렌도 있다.
프런트의 젊은이에게 주문을 하고 대표님이 누구시냐 물으니 본인이란다. 긴 생머리가 멋진 나두리 대표 역시 작년 7월 오픈 이래 가장 연로한 리포터가 왔다며 빙긋 웃는다. 주고객은 복고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고, 우연히 동반한 부모님이 친구들과 다시 와서 단골이 된단다. 대부분의 물건은 나 대표 할머니가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때문에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다”는 고객의 평이 가장 맘에 든단다.
느슨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이 콘셉트였다는 나 대표의 의도는 조용한 음악과 소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갓 씌운 백열등, 도자기, 왕골바구니, 낡은 찬장 속 오래된 커피 잔과 유리컵까지 모든 것이 눈에 익어 정겹다.
‘희다’는 기쁘다[喜]와 많다[多], 즉 기쁨이 넘치는 곳 혹은 우유의 하얀 빛깔을 뜻한다. 오래됨과 잘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카페 한편에 ‘검다’라는 글자가 쓰인 화분을 가리키니, 개업 후 “희다인지, 검다인지 카페는 잘돼가냐?” 했다던 아버님의 조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창밖 현관 옆에는 ‘웃다’라는 이름의 화분도 있다. 잠시 후 혼자 들어온 고객은 동네 주민이라며 아이를 기다리다 들렀는데 편안하고 조용하다면서 레트로풍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흡족해한다.
바람 불고 서늘한 가을의 어느 날, 논현동 도심 한복판에서 어릴 적 시골집을 본 듯하다. 500㎖의 대용량 미숫가루우유는 인심만큼 넉넉하다. 남겨온 때때사탕을 구순 노모에게 드리니 어디서 이런 사탕을 사왔냐며 좋아라 하신다. 시간이 멈춘 나만의 비밀 아지트에 다녀온 것처럼 왠지 마음이 따시다.
위치 서울시 서초구 주흥15길 16-4층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어딘가 처박아뒀던 먼지 쌓인 앨범 속 장면이 총천연색 화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 같다. 통바지에 브랜드 이름이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풋풋한 젊은이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먹거리가 편의점 한편에 자리 잡았다. 돌고 돈다는 유행은 조금씩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그 시대를 대변해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어릴 적 유행과 흡사하지만 뭔가 새롭다. ‘복고(復古)’라는 말 대신 ‘레트로(retro·복고)’란 용어로 바꿔 부른 지도 오래다. 친숙한 듯 아닌 듯 우리 시대 레트로 열풍. 뭔가 달라진 옷[衣], 먹거리[食] 그리고 생활공간 [宙]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패션계는 한마디로 힙트로·뉴트로·영트로
“맨 처음 옷을 이렇게 입을 때 복고 패션이라기보다는 유행하는 와이드 팬츠(통바지)나 데님재킷 정도를 따라서 사서 입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가 요즘 입는 옷을 아빠가 보시더니 본인이 어릴 때 입었던 옷이랑 똑같다고 예전에 입으셨던 것을 주셨어요. 진짜 요즘 유행하는 거랑 너무 비슷해요. 그런데 1990년대 패션이랑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요! 예전에는 통나무처럼 바지가 컸다면, 지금은 슬림하고 길어 보이게 입는 추세랄까요?”
은평문화재단에서 시민연극 연습이 한창인 한규열(21) 군은 요즘 스타일대로 깔맞춤(?)을 하고 다닌다. 통이 살짝 큰 바지에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바지는 허리춤까지 올려 단정하게 허리띠를 두르고 티셔츠는 바지 안에 넣어 입는다. 가끔은 티셔츠 앞부분만 바지 안에 넣은 뒤 살짝 옷을 밖으로 잡아당겨 느낌을 살린다. 말해놓고 보니 1990년대에 즐기던 스타일 아닌가. 199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 보기에 그저 신기한 젊은이 패션이 아닐 수 없다. 예전과 엇비슷한 모습에 웃음이 나지만 정작 선뜻 선택하지는 않는다.
패션계야말로 작년 초부터 시작된 레트로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1990년대 유행했던 패션이 1980년대에서 2000년 초반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혹은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다. 부모 세대가 20대에 향유했던 패션을 지금의 스타일로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움직임이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다 보니 레트로 패션을 의미하는 다양한 신조어도 탄생했다. 개성 있고 신선함을 표현하는 신조어 ‘힙하다’의 ‘힙(hip)’과 레트로(retro)를 결합한 단어 ‘힙트로’, 젊은이(young)를 붙여 ‘영트로’, 새롭다(new)를 더해 ‘뉴트로’라 부른다. 지루한 ‘복고 패션’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새로운 세대가 추억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유레카가 이 시대 레트로 열풍이다.
코듀로이, 체크 그리고 호피
폐기처분한 줄 알았더니 전설의 코듀로이가 레트로 바람을 타고 돌아왔다. 일명 ‘골덴’으로 불리는 코듀로이가 포근한 느낌과 함께 내구성이 뛰어나 최고의 한파가 예고된 올겨울 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코듀로이는 물론 벨벳과 스웨이드, 트위드(두꺼운 실로 직조해 무게감이 느껴지는 원단), 플란넬(부드럽고 가벼운 모직원단) 등 편안한 캐주얼 분위기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원단도 이번 겨울을 대표하는 소재다. LF의 김현진, 김은정 디자인 실장은 남녀 인기 색상과 관련해 “뚜렷한 구분 없이 밤색과 빨강, 노랑 계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강렬하고 도발적인 빨간색 계통을 의외의 인기 색상으로 꼽았다. 남성의 경우 붉은 계열에 벨트가 있는 트렌치코트처럼 레드로 포인트를 준 스타일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여성의 경우 레트로 여파로 ‘웨스턴 스타일’이 뜰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카우보이 복장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1980년대에도 큰 인기였다. 술 장식 조끼, 부츠컷 청바지 등이 대표 아이템으로 사랑받을 전망이다. 올겨울 남성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체크무늬다. 체크는 유행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늘 인기가 있지만 이번 시즌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클래식한 느낌의 체크부터 다채로운 컬러가 섞인 개성 있는 체크까지 다양하다. 패션 포인트로 체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옷 전체를 체크로 맞춘 슈트 패션도 곧 거리에서 볼 수 있을 예정.
여성 패션은 더욱더 과감하고 재미있는 무늬가 거리를 수놓을 전망이다. 특히 호피무늬의 인기가 눈에 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 분석에 따르면 호피 패션이 올 하반기 패션 트렌드를 대표하는 패턴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 11번가 사이트 내 ‘호피’ 아이템 검색 횟수는 무려 15배 이상 급증했다. 11번가 하원지 MD는 “예전에는 다소 과한 패션으로 여겨졌던 호피무늬 패션이 요즘에는 한층 밝은 색상의 패턴이나 실크, 시폰 소재에 더해지면서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호피무늬는 스카프나 가방, 구두 등 한 가지 아이템만으로도 강렬한 포인트를 줄 수 있어 남녀 모두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레트로를 입다
숏패딩과 빅로고 재등판
평창동계올림픽 영향으로 발목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롱패딩이 지난겨울 유행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허리에서 마무리되는 짧은 점퍼가 대세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의 ‘레트로 두두느 다운 다운재킷’이 옛 인기 상품 소환 패션 중 하나다. 1980년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다운재킷 ‘듀벳’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제작한 의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덕다운 점퍼가 바람을 일으키면서 강렬한 색감의 짧은 기장의 점퍼가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스톰, 겟유스트, 닉스, 잠뱅이 등 데님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세련된 느낌의 무채색 구스다운 점퍼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가 끝나갈 무렵 퇴물 취급받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구스다운 점퍼가 20년 만에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되어 숏패딩으로 돌아왔다.
이와 함께 대놓고 “나는 누구요!”라고 말하듯 브랜드 이름이 제품에 크게 박힌 이른바 빅로고 패션도 레트로 바람을 타고 있다. 브랜드 이름을 옷이나 가방, 모자 등에 크게 새기거나 예전에 비해 사이즈가 적당히 작아진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랑받았던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도 옛 느낌을 살려 빅로고 패션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다. 굳이 빅로고를 새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명품 브랜드도 빅로고 패션 대열에 합류해 레트로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개성 있고 신선함을 표현하는 신조어 ‘힙하다’의 ‘힙(hip)’과 레트로(retro)를 결합한 단어 ‘힙트로’, 젊은이(young)를 붙여 ‘영트로’, 새롭다(new)를 더해 ‘뉴트로’라 부른다. 지루한 ‘복고 패션’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새로운 세대가 추억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유레카가 이 시대 레트로 열풍이다.
레트로를 먹다
곁에 있었지만 레트로였다!
패션을 넘어 옛 먹거리에 대한 향수 또한 레트로 열풍으로 번졌다. 인기의 일등공신은 단연
2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이다. 시청자들은 매회 쏟아진 음료, 초콜릿, 과자 등을 보면서 옛 감성을 느끼고 맛에 대한 기억도 제대로 자극받았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저거 한번 다시 먹어보고 싶다’ 했던 것들이 실제로 상품 출시로 이어져 레트로 호황을 반짝 누린 바 있다. 추억 속 먹거리가 슈퍼와 편의점에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74년 첫 출시돼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가 드라마 인기와 함께 ‘1988에디션’으로 등장했다. 추억의 빙그레 로고와 서체가 부착된 것만으로도 너도나도 열광했다. 인기에 구애받지 않던 스테디셀러인 바나나맛우유가 다시 사랑을 받고 회자된 계기였다.
갈배사이다 그리고 따봉!
해태htd의 ‘갈아만든 배(이하 갈배)’의 경우 숙취 해소 효과가 입증되면서 눈에 띄는 레트로 전략 상품이 됐다. ‘갈배’가 숙취에 좋다는 입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2015년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실험을 통해 ‘갈배’가 두통 완화에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갈배’는 작년 말 숙취해소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올 3월에는 탄산이 추가된 ‘갈배 사이다’로 재탄생했다. 진일보하는 레트로 상품의 전형이 1996년 등장한 ‘갈아만든 배’라 할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 사상 최고로 인정받는 광고가 있다. 오렌지를 따는 브라질 농장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따봉(Esta bom)’이라 말하면 주위 사람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던 ‘델몬트 오렌지 주스’ 광고다. 델몬트라는 이름보다 따봉이 강렬했던 나머지 1989년 따봉주스가 출시되기도 했다. CU편의점에 등장한 롯데의 ‘따봉 제주감귤’이다. 복고 느낌에 친근감이 더해져 자꾸 손이 가는 음료다. CU 상품기획 관계자는 “복고가 촌스러움에서 벗어나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1980~90년대 감성을 즐기는 젊은 세대와 어릴 적 향수에 젖어 있는 40~50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0월에 종영한 인기 드라마 ‘미스터선샤인’(tvN)에 등장한 ‘불란셔 제빵소’의 빵은 파리바게트 PPL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울러 ‘#불란셔제빵’과 관련한 ㅍ단순 검색만 SNS상에서 4000건이 훨씬 넘었다.
레트로를 살다
옛날옛적풍 요즘 냉장고
1980년대 안방에 모셨던 190ℓ 냉장고를 1990년대에 500ℓ 냉장고로 바꿨을 때 진짜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900ℓ 양문형 냉장고도 부족하다. 전자레인지 또한 오븐기능을 비롯해 눌러야 할 버튼이 너무 많다. 갈수록 대형화되고 복잡해지는 가전제품 시장에도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 대우전자가 선보인 레트로 디자인 ‘더 클래식’ 시리즈의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는 가전제품의 초기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욜로, 미니멀리즘을 삶의 주제로 받아들이는 세대에게 ‘가치소비’에 대한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작지만 고급스러움은 유지하고 유행에도 뒤지지 않는 스타일로 틈새시장에서 주목받는 상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더 클래식 시리즈는 120ℓ, 80ℓ급 소형 인테리어 냉장고다. 크림화이트, 민트그린 두 가지 색상으로 라운드형 도어와 프레임을 통해 ‘레트로’ 느낌을 살렸다. 동급 대비 약 30% 비싼 가격에도 독보적 디자인으로 올해 월평균 판매량 1500대 이상을 유지하며 레트로의 인기를 증명했다. 전자레인지 또한 크림화이트 색상에 은색 손잡이와 조그 다이얼, 라운드형 디스플레이로 소비자의 마음을 녹였다. 레트로를 표방한 ‘더 클래식’ 시리즈 대우전자 관계자는 “경기불황에도 자기만족과 개념 소비를 원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레트로 디자인 미니 가전들이 인기”라며 “레트로 디자인에 프리미엄 기능을 추가한 제품개발을 주도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시대보다 옛 감성 공유
큰 가구에서부터 작은 소품 하나까지 매일 사용하는 리빙 제품들은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실용성까지 겸비해야 하기에 꽤 까다로운 선택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앤티크’란 이름으로 레트로 감성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매번 대세 상품은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구점에는 도시적인 느낌의 가죽소파 등이 즐비했다. 최근에는 레트로 인기 덕에 따뜻한 감성의 패브릭과 나뭇결이 적절히 살아 조화된 가구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창고에 쌓여 찾기 힘들었던 레트로 가구가 자주 눈에 띄는 걸 보면 유행은 유행이다. 인테리어 전문 브랜드 ‘까사미아’의 쇼핑몰 사이트도 요 몇 년 사이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운 감성의 리빙 상품으로 대체됐다.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헤링본 패턴을 이용한 침대 시트와 카펫 등이 눈에 띄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북유럽 등지에서 전해져온 스타일이다. 나라마다 복고 스타일이 다르지만 유독 가구나 인테리어에서 북유럽 혹은 스칸디나비아의 오래된 스타일이 레트로 기본이 됐다.
이는 나무가 많은 북유럽 일대에서 유명 가구 디자이너가 등장해 다양한 스타일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양질의 원목이 수입되고 있어 적당한 가격에 레트로 감성을 즐길 수 있다. 레트로 가구 하면 ‘북유럽 스타일’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꼭 이 스타일만이 레트로라 할 수는 없다. 만약 한국의 레트로 가구가 인기였다면 고가의 자개장, 저가의 비키니장, 실용적인 철제가구, 19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등나무 가구가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레트로 유행에서 있어 가구만큼은 20년 전의 한국 스타일이 소환되지 않았다. 패션이나 음료, 가전 등에서 이전 세대 제품들이 다시 불려나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까사미아 개발 팀장은 “골동품 느낌보다는 앤티크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잃지 않는 디자인이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레트로 놀이가 쉬웠어요!
옷만큼이나 패션에 민감한 주방식기도 레트로 열풍이다. 물방울무늬와 나뭇가지 형태의 접시 등 1980년대 후반 우리네 식탁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디자인이 다시 등장했다. 까사미아는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의 웅장함과 섬세한 패턴을 담아낸 ‘알함브라 양식기’ 6종을 내놓았다. 제품별로 화이트, 진한 남색, 연한 하늘색이 고급스러운 무늬와 함께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중고시장도 부쩍 바쁜 눈치다. 각 가정 찬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법한 디자인의 컵과 식기 등이 중고시장에서 인기다. SNS상에는 ‘할머니 찬장에서 찾은 컵’이라며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 소장은 레트로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대해, 앞에서도 언급했듯 “핵심 축에는 20대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처음부터 경험치에 대한 소비욕구가 굉장히 커서 흔하고 비싼 물건보다 희소한 물건을 갈망했다. 기업도 업계 불황 혹은 새로운 답을 찾지 못할 때 증명된 과거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레트로를 활용해왔는데 잠재적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 소비욕구와 맞물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P플레이어, 검정 교복, 불량 식품, 필름 카메라, 만화 잡지 등 ‘레트로(retro)’는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문화적 소품이나 콘텐츠를 지칭한다. 예능과 다큐는 물론 영화, 드라마에서도 이런 소품이나 콘텐츠를 마치 레트로의 본질적인 것인 양 부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지나치게 지엽적이다. 그것들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인 코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사치일 수도 있겠다. 레트로가 제대로 복권(復權)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복고는 온갖 비난과 폄하를 당해왔다. 특히 고성장기에는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한때 레트로는 단순 복고로 여겨져 세 가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런 시선을 밟고 나가야 레트로의 본질에 닿을 것이다. 우선 문화 지체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복고는 취향과 선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다고 진단되었다. 복고 소재를 다루는 문화 콘텐츠의 경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답습하고 우려먹기 식으로 제작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하나는 현실 도피로 보는 시선이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과거로 퇴행한다는 비판이었다. 이 때문에 정신병리학적 측면의 진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미래 전망이 불투명할 때 매번 복고 열풍이 일어난다는 규정이었다. 마지막은 복고를 일시적 트렌드로 보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복고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복고는 항구적이다. 다만 시기와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 1970~80년대 문화가 1990년대로 이동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줬다. 얼마 안 있으면 2000년대가 레트로의 시공간으로 등장할 것이다.
레트로에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본질적인 맥락은 복고풍에 있다. 즉 복고 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레트로가 단순히 옛날에 사용하거나 즐겼던 대상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에 쓰던 물건이나 즐기던 문화 활동이 다시 등장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똑같은 음악이나 옷, 가구가 아닌 과거의 스타일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옛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차별화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 세대에 레트로는 재발견의 대상이다. 필름 카메라와 현상 사진은 새롭게 재발견되어 개인 취향이 된다. 그런데 필름 카메라는 단순히 옛날에 쓰던 물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디지털의 장점을 결합시켜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준다. 궁궐이나 한옥마을에서 입는 한복도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젊은 세대가 입는 한복은 기성세대가 입던 한복보다 더 화려하고 블링블링하다. 중년 세대에게 레트로는 추억이다. 그것도 아름답고 애틋함을 자아내게 만드는 황금 같은 기억들을 담고 있다. 친숙한 것들은 인지심리학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지 않아도 되어 뇌의 활동이 거의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레트로는 자기진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중년 이후의 세대가 복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청춘기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을 데려와 현재의 시간과 융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라도 추억과 향수의 대상은 재창조되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재발견과 중년 세대의 추억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뉴트로(new-tro)다. 이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향유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거 스타일로 보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기성 세대에게는 익숙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이러한 뉴트로 제품은 새 것이면서도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빈티지한 느낌을 하나의 스타일로 가전제품, 가구, 포장지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유행, 즉 뉴트로 트렌드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물품이나 콘텐츠에서만 생겨나는 게 아니다. 뭔가 보편적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트로’라는 신조어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는 리메이크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일반 생활용품에만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나 음악작품의 리메이크는 과거의 콘텐츠를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이다. 이때 레트로는 새로운 창조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세대 교감과 통합의 매개 역할도 한다. ‘불후의 명곡’이나 ‘히든 싱어’에 나오는 노래들은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작품으로 자리매김됐다. 이것들은 더 이상 낡은 것이 아니고 새로운 유행의 시작이다.
중년 세대만이 친숙하게 생각할 것 같은 복고는 레트로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레트로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어준다. 또한 가벼운 트렌드가 아닌 깊이와 품격을 지닌 고급문화를 알게 해준다. 신구 세대의 만남이 레트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 간의 문화적 갈등은 줄고 미래지향적 흐름이 존재하게 된다. 레트로는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분명 젊은 세대의 감각과 융합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
다만, 한국의 레트로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 창조되지 않는 면이 있다. 대중매체와 대기업이 대형 마케팅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레트로의 창조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유명 장소, 유행 콘텐츠를 따라 하거나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레트로 스타일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레트로의 생명력이 세대 간을 가로질러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