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5년 앞둔 정투자(가명) 씨는 그동안 예금과 적금을 중심으로 여윳돈을 운용해왔다. 최근 정 씨는 너도 나도 주식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뒤처지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막상 투자를 시작하려니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던 정 씨가 상담을 요청해왔다.
손실에 대한 ‘본능적 불안감’ 극복 전략
보통 사람들은 투자라고 하면 ‘어디에?’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수익과 동시에 위험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대개 ‘위험’이라고 하면 ‘손실’을 떠올린다. 일부분 맞는 연결이다. 위험 분류 방법 중에 순수위험과 투자위험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순수위험은 손실만 발생하는 위험이다. 질병, 사고, 사망 등이 순수위험의 대표 격이다. 순수위험에 대한 관리는 보험의 영역이다.
투자에서 위험 개념은 보험과 다르다. 투자에서 위험은 손실과 이득 모두를 포함한다. 손실과 이득이 공존하는 위험을 투자위험이라고 한다. 투자에서 위험은 ‘변동성’을 의미한다. 손실이 발생할지 이득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투자 전문가들이 성공적인 투자의 기본 조건으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투자위험 관리다. 투자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기본은 자산배분이다.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이란 적절한 비율로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자산에는 주식, 부동산뿐만 아니라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자산배분을 할 때는 자산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들끼리 적절한 비율로 배분하여 투자해야 한다. 두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낮다는 의미는 두 자산의 가격방향성이 반대라는 의미다. 즉 한 자산이 오르면 한 자산이 내린다는 것이다.
자산배분의 개념을 쉽게 표현한 격언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다. 투자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역시 다양한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목 선정과 매도 타이밍이 투자수익에 영향을 많이 미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90개 이상 연기금의 1974~1983년 실적을 분석한 연구논문 결과를 보면 종목 선정(4.6%)과 매도 타이밍(1.8%)이 아니라 자산배분(93.6%)이 수익률 변동성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한다. 이후 여러 후행 연구들이 이 논문의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람들이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최근 투자업계의 새로운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는 행동경제학(경제학과 심리학이 결합된 학문)에 의하면 인간은 ‘같은 크기라면 이익을 얻을 때 기쁨보다 손실을 입을 때 아픔이 몇 배 더 크다’고 한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생존본능과 깊게 연결된다. 때문에 손실공포는 몇 마디 합리적인 설명으로 쉽게 설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투자자들의 행동은 어떤가?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시장 상승기(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가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많이 들릴 때)에 주식시장에 몰린다. 고점에 가까울수록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진다. 그러다가 하락기(손실의 그림자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가 다가오면 슬슬 몰려오는 손실에 대한 공포감에 싸여 손절매를 감수하고 주식시장을 떠난다.
심지어 투자자금 전체를 잃고 시장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손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이후 주식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여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 투자는 공포와 탐욕 간의 마음전쟁이다.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도 문제지만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지나친 공포도 문제다. 자산배분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을 전략의 기본 목표로 삼는다. 모든 것을 잃지 않고 생존하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다.
분산투자로 줄일 수 있는 위험, 비체계적 위험
자산배분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는 투자 대상 자산의 수가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으로 자산을 배분하더라도 해당 자산의 수가 충분하지 않다면 위험분산의 효과가 적다. 하지만 투자자산만 늘린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위험 중에는 투자 대상 자산 수를 늘림으로써 줄일 수 있는 위험이 있고, 투자 대상 자산 수를 늘린다 해도 줄어들지 않는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국내의 다양한 산업에 분산투자를 하면 각 경기 상황에 따라 잘 되는 산업과 안 되는 사업 간의 투자위험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와 같이 국내 경기 전체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되면 국내 산업에 대한 분산투자는 의미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투자 지역을 국내와 해외로 분산해야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글로벌 위기를 맞으면 이 방법 역시 무용해진다. 이처럼 투자자산을 아무리 분산해도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위험을 ‘체계적 위험’이라고 하고, 투자 대상 수를 충분히 늘림으로써 줄일 수 있는 위험을 ‘비체계적 위험’이라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식을 모두 사면 ‘비체계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이론을 현실화한 것이 ‘인덱스펀드’다. 인덱스펀드에서의 ‘인덱스'(Index)란 ‘지수’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가지수는 증권거래소의 KOSPI200 지수로, 거래소의 대표 종목 200개를 시가 비중에 따라 지수화한 것이다. 주식시장 전체를 가장 잘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인덱스펀드가 KOSPI200 지수를 목표(벤치마크)로 하고 있다.
인덱스펀드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종목에 대한 분산투자를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인덱스펀드 역시 펀드이기 때문에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가 되지 않고,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간접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운용보수가 있다.
소액으로 바로 시작하는 분산투자, ETF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주식에 대한 관심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향하면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상품이 ETF다. ETF(Exchanged Traded Fund)는 특정 지수의 성과를 추적하는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한 펀드다. 즉 인덱스펀드의 장점과 주식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상품이다. ETF를 통하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다양한 자산에 대한 분산투자를 소액으로 할 수 있다. ETF의 장점을 정리하면 이와 같다.
ETF는 별도의 독립상품으로 투자할 수 있지만, 연금계좌에서 투자할 수도 있다. 주의할 점은 DC형이나 IRP와 같은 퇴직연금계좌를 통해 ETF를 투자하려면 수익과 손실이 2배가 되는 레버리지ETF나 추종 지수와 수익률이 반대로 움직이는 인버스ETF는 투자가 안 된다. 그리고 주식형이나 주식 편입 비율이 40%가 넘는 상품에는 퇴직연금자산의 70% 이상 투자할 수 없고, 달러, 금·은, 원자재, 선물 등에 투자하여 위험평가액이 40%를 초과하는 파생상품으로 구성된 ETF에도 투자할 수 없다. 안전한 노후자산 대비라는 퇴직연금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DC형이나 IRP가 아닌 일반 연금저축계좌를 통하면 ETF 투자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연금저축계좌를 통해 ETF를 거래하려면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연금저축펀드 계좌가 있어야 한다. 만약 보유한 연금저축계좌가 연금저축펀드가 아니라면 연금저축펀드로 연금저축계좌를 이전해야 한다. 연금저축계좌의 이전은 가입자가 옮겨갈 금융회사를 통해 처리하면 된다. 연금계좌를 활용한 ETF 투자 시 세제 혜택은 본지 2021년 8월호(Vol. 80)를 참조하면 된다.
ETF의 지난 수익률을 알고 싶다면, 금융소비자정보포털 파인에 접속한 후, ‘보험증권’=> ‘펀드다모아’=> ‘ETF’를 클릭하면 1년 수익률 기준 내림차순으로 각 사별 ETF의 6개월, 1년, 3년의 수익률을 볼 수 있다.
60대 중년의 신동원 씨는 과거와 사뭇 달라진 명절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10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롱을 부리며 장난치던 조카들이 20~30대가 되면서 어른들과의 대화를 피하는 분위기다. 젊은이들이 하도 ‘꼰대’라고 흉본다기에 그렇게 안 보이려고 나름 노력하며 다가가는데도 조카들 반응은 제법 서운하다. 나이 든 사람끼리 앉아 뻔한 대화를 나누기보다 다양한 세대와 어울리며 진솔하게 소통하고 싶은데, 가족인데도 참 어렵기만 하다.
사실 다른 세대와 소통한다는 건 매우 힘든 주제다. 2021년 3월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세대갈등 인식에 관한 질문에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85%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최소 78% 이상의 응답자가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세대갈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 연령대에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세대갈등 극복 전망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세대갈등이 지금보다 심각해질 것이라는 응답은 44%,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응답은 46%로, 10명 중 9명이 현재도 심각한 세대갈등이 앞으로도 비슷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세대가 다르면 상대를 경쟁과 갈등의 대상으로 여긴다. 최근 언론에서는 세대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며 호들갑이다. 그런데 세대갈등은 어느 시대나 있었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늙어가는 과정에서 시대는 계속 발전하고 변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것 같아도 각 연령대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상이 다르고 생각도 달라진다. 이를 독일의 미술사학자 핀터(W. Pinter)는 ‘동시대의 비동시대성’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문제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상이나 취향이 옳고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영국의 유명 소설가 조지 오웰은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세대갈등은 이런 착각에서 시작된다.
소통하려면 ‘워딩’부터 달라야
유난히 다른 세대와의 소통이 어려워 답답해하는 시니어들이 있다. 다른 세대를 탓하기보다 시니어들이 무엇을 피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화법으로 살펴본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과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나 때는 말이야’는 유행어나 다름없다. 2030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다음이 어떻게 될지 뻔해서다. 보통 ‘나 때는 말이야’ 하고 시작되면 상대를 위한 조언보다는 권위와 경험을 내세운 일방적 훈계에 그치기 쉽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과거 경험이 현재나 미래 사회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경험을 문제해결의 한 방법으로 제시하며 부드럽게 얘기하는 게 좋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답정너’ 태도도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미 스스로 답을 정해놓고 질문하는 시니어들이 있다. 이는 질문의 형태를 취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지식을 뽐내는 화법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때는 편견 없이 상대의 대답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요)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주제에 대해 자기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 대화법은 듣는 이를 지치게 한다. 상대가 묻지 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듣는 이의 반응을 고려하며 잘 소통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말을 짧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으로 자신보다 어리고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권위주의적으로 말하는 대화법은 듣는 이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명령형 말이나 강압적인 말투, 일방적인 주장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권위적인 어투’는 취업사이트 ‘사람인’에서 실시한 직장인 비호감 말투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상대와 동일한 인격체로서 대화를 나눌 때 원활한 소통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성적, 연애, 연봉, 결혼과 같은 사적인 주제는 가족 사이에서도 조심해야 할 민감한 주제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친인척끼리 이런 얘기도 못 하나 싶은 시니어도 있겠지만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무례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이는 곧 소통 단절로 이어진다.
한국가정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가족소통 전문가로 활동했던 김대현 소장(현 중년행복연구소 소장)은 등산을 예로 들며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등산을 마치고 내려가는 하산객을 보고 묻는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하산객은 웃으며 거의 다 왔다고 답한다. 이후 한참을 올라도 정상이 보이지 않자 등산객은 거짓말한 하산객이 미워진다. 사실 하산객이 기억하는 등산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왜곡됐다. 하산객의 시간과 등산객의 시간은 서로 다르다. 세대 간 소통이 바로 이와 같다. 한창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과 그 시기를 마치고 여유를 찾은 중년이 느끼는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에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불통이 발생하는 것이다. 김 소장은 세대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이청득심’(以聽得心)을 강조한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말이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쓴소리는 얼마든지 밖에서 듣고 있다. 부모와 집안 어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휴식처가 되어주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분 좋게 세대 간 소통법
다른 세대와 기분 좋게 소통하려면 우선 다른 세대를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예의가 없어”, “산업화 세대는 고리타분해”와 같이 자신의 경험으로 다른 세대를 일반화하면 편견이 생긴다. 같은 세대여도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다. 일반화의 오류는 세대갈등을 조장할 수 있어 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누군가와 소통할 때는 연령대와 상관없이 타인을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뻔한 이야기 같아도 이를 놓치고 마음대로 상대를 평가하며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의 생각과 취향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선한 호기심으로 무례하지 않게 질문한다. 미국의 한 수필가는 “우주가 인류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인류 발전의 큰 원동력이자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에너지가 바로 사랑과 질문의 결합이라는 뜻이다. 이경랑 SP&S컨설팅 대표는 사랑이 결합된 호기심을 ‘선한 호기심’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한 호기심은 무례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애정을 바탕으로 한 선한 호기심은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선한 호기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전제로 한다.말하기 전에 이 질문이 상대에게 불쾌함이나 당혹감을 줄 수 있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또 공감하며 경청한다. ‘공감적 경청’은 나의 사고체계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준거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공감적 경청의 자세는 나와 다른 세대와 대화를 나눌 때 굉장히 중요해지는데, 서로 생각이 달라 불통이 쉽게 일어나서다.
마지막으로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간결한 말만큼 전달력이 좋은 화법은 없다. 말이 길면 오히려 핵심을 잃기 쉽다. 짧고 굵게 내 생각을 전하는 게 좋다.
이렇게 다른 세대와 대화할 때 더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세대별로 경험한 세상과 생각·행동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Z세대의 손주,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고군분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조카, 돈 아깝다며 외식을 한사코 거절하는 베이비붐 세대 어머니. 특정 세대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각 세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따라서 다른 세대와의 무심한 소통은 오해를 야기하고 불통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런데 사실 이런 대화법은 세대를 뛰어넘어 대화 예절에 속한다. 최근 ‘웰에이징’(Well-aging)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살기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의미다. 웰에이징의 방법으로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을 흔히 얘기하지만 신체의 웰에이징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마음과 태도의 웰에이징이다. 나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웰에이징의 시작이다. ‘말’은 사람의 ‘성품’을 드러내는 만큼 상대를 배려하며 품격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시니어의 모습은 진정한 웰에이징을 증명한다.
청년세대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대방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다. 그들은 나이와 지위를 가지고 상대를 아랫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누구나 동등한 입장으로 인정하고 상대와 눈높이를 맞춰 소통한다면 연령대와 관계없이 즐겁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듯, 청년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겸허하고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 추석 동년배끼리 뻔하고 지루한 대화를 나누기 싫다면, 다양한 세대와 공감하며 그들의 눈높이로 소통을 시도해보자.
시니어 빅3의 인플루언서 소통 노하우!
세대갈등의 중심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간의 갈등이 극심해진 현대사회에서 청년들과 원활히 소통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시니어들이 있다. 그들의 비결은 뭘까.
윤여정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태도’
70대 윤여정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의 워너비다. MZ세대를 열광시킨 윤여정의 화법은 직설적이지만 권위적이지 않다. 70대 배우로 높은 위치에 올랐지만 상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또 젊은 세대에게 완성된 어른으로 보이길 원하지도 않아 솔직하고 자유롭다. “젊은 사람이 왜 재미없게 살아? 인생 길지 않아. 그냥 즐겨!” 70년 넘은 인생에서 얻은 자유분방한 태도를 유쾌하게 건넨다. 그의 이야기에는 어른으로서의 권위도, 장황한 잔소리도 없다. 그저 자유롭고 솔직한 자신의 생각, 짧고 명확한 전달력,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가 존재할 뿐이다.
밀라논나(장명숙) ‘닮고 싶은 멘토의 대화법’
70대 유튜버 장명숙은 ‘밀라논나’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MZ세대와 소통한다.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인 그는 패션에 대한 팁 또는 진로, 취업, 결혼 같은 젊은이들의 고민에 조언을 던지며, 2030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인기 비결은 조곤조곤하게 전하는 ‘인생 상담’이다. 이 상담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동안 기성세대가 하던 조언과 차이가 있다. 첫째, 그는 70대의 나이에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고민에도 진심 어린 공감을 전한다. 둘째, 그는 청년 시청자들에게 조언을 전할 때는 물론, 손주뻘의 연예인과 대화를 나눌 때도 언제나 존댓말을 사용한다. 셋째, 그는 사회의 기준보다 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한다. 예컨대 직장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청년에게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직장을 나오라”고 말하며 “내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안 어려운 직장이 있냐”, “나약하게 굴지 마라”처럼 개인의 주체성보다 한국 사회 기준으로 조언하던 기성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백종원 ‘상대를 움직이는 소통법’
요리연구자이자 외식사업가 백종원은 요식업계 최고의 위치에서 업계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조언한다. 자칫하면 ‘꼰대’라고 불릴 수 있는데 그는 MZ세대의 공감과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소통 비법은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의 비책부터 말하기보다 상대의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관찰한다. 둘째, 관찰로 원인을 진단하고 이에 따른 처방을 원포인트로 내린다.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핵심을 짚어 솔루션을 제공한다. 셋째, 권위가 아닌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진심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절대 특권의식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 없다. 예컨대 잘못된 고집을 꺾지 않는 상대와 소통할 때도 권위보다는 요리 대결로 자신의 솔루션을 몸소 입증한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게 이렇게 자학 증상이 깊은 줄 몰랐다. 니체는 사랑이란 정과 망치로 하는 거라고 했다. 돌 안의 형상을 망치와 정으로 쪼고 깨서 오롯이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나의 사랑은 그녀의 날카롭고 거친 정과 망치에 맞아 아예 형체도 없이 부서질 지경이다.
내가 옛 연인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옛 연인’이란 말은 정정하자. 쓰라리고 아프지만 그 말은 쓰지 않기로 하자. 나의 이런 표현이 그녀를 더 질색팔색하게 하니까. 건강한 사랑은 자존감이 우선이어야 한다지만 그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나의 꼬락서니라니.
나는 안정된 직업과 안온한 가정을 가진 중년의 ‘멀쩡한’ 남자다. 지난 사랑의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만 빼고는 관계 맺는 데에도 상식적인 사람이다. 전문직을 갖고 있지만 이게 그녀의 더 큰 밉상을 사게 될 줄이야. “나이 들어서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으니 재미 삼아 날 쫓아다니는 거냐,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나는 살아가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사람이다. 당신처럼 한가하게 사랑 타령이나 할 여유가 없다”며 내게 쏘아붙였던 것이다. 벌침 정도가 아니라 말벌에 쏘인 듯 몸을 가눌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따라다닌 결과가 결국 그런 통박이냐고? 당신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냐고?
전문직 종사자라는 소개는 방금 했고, 객관적으로 봐서 나는 외모도 괜찮은 편이다. 곱상한 얼굴도 얼굴이지만, 60대 중반의 남자로 배 안 나오고 머리 벗겨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본 이상이 아닌가. 성격은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편이다. 그녀를 쫓아다니는 적극성만 빼고는.
소위 ‘꽃미남’이었던 나는 사춘기 때부터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때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예민한 자의식의 시기, 이성에게 인기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시절, 내 매력에 내가 ‘쩔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번 거절당했고 단 한 번도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 없이 무심히 세월만 흘렀다. 그렇게 좌절된 내 사랑은 지금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남들은 집착이라고 했고, 그녀는 스토킹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교회 수련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도 그녀도 새 신자에 속했으니 그룹 내에서 동질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고3이 되어서도 2년 내내 그녀는 시종일관 내게 무관심했다. 그녀 말마따나 우리에겐 어떤 추억 한 자락도 없다. 그러기에 지금 와서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이 들고 세파에 치인 모습도 보이기 싫다며. 인정한다. 그녀와 내가 공유할 추억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무리 속에 있었으니까. 단 한 번 핑곗거리를 만들어 빵집에서 크림빵과 우유를 시켜놓고 마주 앉았지만 그녀는 멀뚱했고 나는 애만 탔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무려 50년 동안 첫사랑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그의 자전적 소설 ‘첫사랑’에서 40대 주인공 블라지미르를 내세워 ‘겨우’ 30년밖에 안 된 사랑에 괴로워했지만 나한테 비하면 약과인 셈이다.
아, 여기서 잠깐, 어쨌거나 당신은 유부남 아니냐고 비난하지는 마시라. 내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으니까. 난 그냥 말을 붙여보고 싶고 만나 차 한잔 하고 싶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봐온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난 50년 동안 그녀는 늘 내 가슴속에서 살았으니까. 참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내 가슴 한편은 늘 시렸고 구멍이 나 있었다.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이. 그 구멍을 내 맘속 그녀의 존재로 채우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는 모범 가장이자 자상한 남편, 애정 많은 아빠였다. 그 사실은 그 공허함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단 뜻도 된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며 이렇다 할 추억거리 하나 없는 우리의 사랑, 아니 나의 사랑을 한심해하며.
10년 전쯤 그녀가 남편과 사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묘하고 정신이 멍했다. 지금까지 1년에 한두 번 정도 나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문자를 보내오다 그녀가 혼자가 되었다는 말에 용기를 낸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10년이나 지나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균열을 가져온 것일까.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응답이 없다가 50년 만에 반응이 왔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문자 메시지로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있겠냐고 했다가 예상대로 된통 구박을 받았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삶에 지치고,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만으로도 골치 아픈 사람이다. 당신처럼 추억에 잠길 새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사귄 적이라도 있냐. 왜 일방적으로 이러냐. 다시는 이런 것 보내지 마라. 또다시 이러면 당신 아내한테 알릴 수도 있다’는 답이 온 것이다. 불쾌감과 노기가 서린 글자 하나하나마다 굳은 표정으로 정과 망치를 들고 내 가슴을 찍고 쪼개는 그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된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저럴지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언제 한 번이라도 그녀 마음 한 귀퉁이나마 차지한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나는 왜 자존심도 없는 찌질한 인간이 되었을까.
그럴 듯한 사회적 위치의 나를 망각한 채 그녀를 향한 마음의 고삐를 어찌하여 50년 동안이나 다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수모를 겪고도, 그녀의 매몰찬 말을 가슴에 비수로 꽂고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이별 후 애도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와 나는 이렇다 할 연인 사이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차이가 없다. 정신의학자이자 죽음 연구자인 퀴블러로스는 죽음에 버금가는 상실의 단계를 이렇게 말한다.
뜻하지 않게 연인과 헤어지거나 버림을 받았을 경우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별은 기정사실이 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분노하게 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이 단계에서 나온 것이라나. 그러다 분노는 슬픔으로 변하고 그(그녀)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부터 한없이 우울하고 깊은 슬픔에 빠지지만, 동시에 떠나보냄의 애도 과정이 완성되면서 삶은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내 사랑에 대한 애도는 어느 단계에서 멈춘 것일까. 부정일까, 분노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아직 한 스텝도 내딛지 못한 것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황혼이혼한 사람들이 그 다음에 뭐하는지 알아? 다른 짝 찾아 또 결혼하더라. 이걸 황혼재혼이라고 하지. 황혼재혼이 황혼이혼만큼 죽죽 늘어나는 것도 모르겠네? 늘그막에 이혼하고 늘그막에 재혼하는 사람이 무지 많다는 말이여. 통계 한번 볼 텨? 아녀, 통계는 좀 있다가 보셔. 처음부터 숫자 늘어놓으면 머리 아파할 사람 많을 테니 객담(客談) 하나 먼저 해주겠어.
재혼하려면 반드시 이혼부터 먼저 해야겠지? 황혼재혼도 마찬가지고. 황혼이혼의 원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게 뭐겠어? ‘결혼’이야. 결혼 안 하면 이혼도 없는 거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여라, 그래야 의견 충돌로 다툴 일이 줄어든다. 같은 취미를 가지지 마라,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 게 좋다. 끼니는 각자 알아서 챙겨 먹어라. TV는 아내 것이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대 더 사라.” 인터넷을 뒤지면 이혼·재혼 전문가들이 ‘황혼이혼 원인과 예방법’이랍시고 이런 걸 가르쳐주는데, 결혼 안 하면 이런 거 알 필요도 없잖아? 그런데 말이야, 이런 절대적 진리 ‘결혼 안 하면 이혼도 안 한다는 진리 따위는 난 몰라’라며 재혼하는 사람, 그것도 황혼재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니 ‘결혼’이라는 것에는 뭔가 마력이 숨어 있는 모양이지? 결혼 경험은 1회, 이혼 경험은 0인 나 같은 사람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모르는 뭐가 있나봐.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서 황혼재혼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지 통계 한번 들여다보자고.
통계청의 ‘인구동향’에 그게 잘 나와 있는데, 요약하면 “한국의 전체 혼인 건수는 줄어드는 데-젊은이들 집 사기 어렵고 아이 키우기 힘드니까 결혼 안 한다잖아-반해 황혼재혼은 늘고 있는 거야. 2020년도 전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전년보다 10.7% 감소했는데, 예순 넘은 할배·할매들의 재혼은 9938건으로 1년 전의 9811건보다 127건, 1.3%가 늘었다는 거지. 작년 전체 혼인 건수가 준 건 코로나19 영향도 컸다고 하는데, 할배·할매들은 인생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코로나19 따위 겁 안 내고 새로운 짝을 찾아 훨훨 날아간 거지. 황혼재혼이 증가한 건 추세적인 거라네. 지난해 황혼재혼 건수 9938건은 4년 전인 2016년의 8229건에 비하면 무려 20.7% 급증한 거라니까 말이야.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결혼이라고 했지? 재혼의 가장 큰 원인은 뭔지 바로 알겠네? 이혼이지. 이혼한 사람이 재혼하는 거잖아. 통계청 ‘인구동향’에는 이런 것도 나와 있어. “올해 1분기 이혼 건수는 2만5206건으로 전년 동기 2만4358건 대비 3.5% 증가했다. 이 중 혼인 지속 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올해 1분기 1만191건으로 전년 동기 8719건 대비 무려 16.9% 늘었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9년 3만8446건과 2020년 3만9671건인 황혼이혼 건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 황혼이혼 건수는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건수 4492건보다 2배 이상 많다.” 세상에, 제 짝이 하는 짓 모든 걸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다니! 자꾸 늘어나고 있다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혼이 정상이 될 것 같군. 물론 이건 농담이고, 제 짝이 싫어도 참고 산 예전 분들 이야기가 생각나네. 그중에 이런 게 있더라고.
저기 경상도 먼 산골 마을 영감님이 아침나절에 할머니가 하시는 게 못마땅해서 집을 나가신 거야. “이메이(이따위) 집구디(집구석)에서 저 할마이(할머니)한테 속 디비지며(터지며) 사느니 죽더라도 나가서 죽을란다”라며 할배가 저고리 소맷자락에 팔을 꿰고 있는데도, 할매는 “아이고, 내 할 말을 누가 하노. 그칸다꼬(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까봐? 나가든동 말든동(나가든 말든), 죽든동 말든동 마음대로 하라캐라(하라고 해라). 내가 나갈라 캤는데 참 잘됐네”라며 할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휑하니 댓돌 위 신발 꿰 신고서 다신 안 돌아올 것처럼 나가신 이 할배가 해 빠지고 막 캄캄해진 저녁쯤 집에 돌아오셨네. 할배의 이런 가출이 자주 있었던 듯 마을 사람이 “할배요, 이번에도 앞산은 못 넘으셨네요? 할배가 언제 앞산 넘어가시나, 여기서 지켜봤는데 할배가 안 보이기에 내사 이번에도 돌아오실 줄 알았지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더니, 할배는 “사나(사내)가 집은 나가도 앞산은 넘어가면 안 되는 게라. 그래하면 진짜 끝장인 게라”라고 겸연쩍게 웃으셨다는 것. 그러면 할머니는? 그 이웃 사람이 “할매요, 할배가 다시는 안 돌아오면 좋겠다 카고는 처마에 등불은 왜 켜놨능교?”라고 물었더니, 할매는 “여자는 남자가 집 나가면 그때부터 기다려야 하는 게라”라고 대답하셨다는 이야기다. (할매는 할배가 출타하시면 집 잘 찾으라고 처마에 등불을 달아놓는 게 수십 년째라는 이야기를 미처 못 했군!)
그런데 이제는 처마에 등불이 아니라 집 전체를 LED등 수십 개로 환히 밝혀놓아도 그 할매에게 다시는 안 돌아가겠다는 할배들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 이혼 상담소를 찾는 할배급 남성들이 늘었다는 게 그 증거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올 3월에 낸 통계를 보면 2020년 상담소를 찾아 이혼 상담을 한 60세 이상 노년은 1154명으로 전체 상담 건수 4139건의 27.2%였는데, 이 중 남성이 426명으로 43.5%나 됐다는 거지. 2010년 10.5%, 2015년 27.2%였던 남성 이혼 상담 비율과 비교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 아닌가? 하지만 고령 남성의 이혼 상담과 이혼이 늘었다고 해도 그들 모두가 황혼재혼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 ‘고령자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지. ‘2019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재혼 건수는 총 4106건인데, 이 중 남자의 재혼 건수는 2759건으로 전년 대비 2.8% 늘어난 데 불과한 반면, 여자의 재혼 건수는 전년 대비 12.1% 늘어났다는 거야. 이런 차이에 대한 설명은 없네. 그렇지만 짐작은 할 수 있지. 이혼하고 나면 남자는 돈이 없게 되지. 돈 없으면 여자들이 관심을 안 갖지.
한 황혼재혼 회사의 전문 상담사는 “재혼 상대를 찾으려는 고령자들은 함께 여행하고 젊어서 하지 못한 취미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찾더라”고 말하던데, 돈 없으면 그게 되겠어? 국외든 국내든 여행 가서 맛집, 멋집 찾아다니며 ‘즐감’하는 인생사진 찍으려면, 한두푼으로 되는 게 아니지. 황혼이혼은 돈 없어도 할 수 있지만, 황혼재혼은 돈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황혼 로맨스’(늘그막이 즐기는 아름다운 성생활 포함)는 대부분 고령 남성에게는 그냥 꿈일 뿐인 거야. 체력도 안 따를걸. 고령 남성의 체력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 해줄 게 있네. 한번 들어봐. 재미있어. 제목은 ‘신혼 시절을 그리워하며.’
할아버지가 막 잠들려는데 할머니가 신혼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신혼 시절이 좋았지요. 그땐 잠자리에 들면 내 손을 잡아주곤 했죠…”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을 뻗어 잠시 손을 잡았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몇 분 지나자 할머니는 또 “그런 다음 키스를 했지요. 아, 참 옛날이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좀 짜증스러웠지만 할머니에게로 몸을 틀어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시 후 할머니는 “그러고는 내 귀를 살짝 깨물어줬는데, 그때가 다시 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이불을 발로 차고는 벌떡 일어났다. “당신 어디 가요?” 할머니가 묻자 할아버지는 “틀니 찾으러 간다, 왜?”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제 마지막 통계 하나를 같이 보자고. 5년 전 영국 통계인데, 이혼한 사람 중 22%가 이혼을 후회했다는군. “이혼하기 전에 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라고 답한 사람이 그중 54%, “그(그녀)와의 기회가 한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42%였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조사를 안 하는지 통계를 찾지 못함.) 아무리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 해도 함부로 할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결혼을 지속시키는 건 서로 가엾어하는 마음’이라는 건 알아? 오래 함께 살면 ‘사랑’이 ‘가엾어하는 마음’이 되는 거라고. 할배가 앞산을 못 넘고, 할매가 처마에 등불 달아놓는 것도 가엾어하는 마음 때문이겠지. 사랑이 식었다고 이혼하려 나서지 마. 가엾은 마음까지 사라졌나, 곰곰 생각해봐. 나는 그렇게 살고 있어. 정말이야. 모르지. 내 짝도 내가 가엾어서 날 데리고 사는지 누가 알겠어?
*‘결혼을 지속시키는 건 가엾어하는 마음’이라는 건 오진영의 새 책 ‘새엄마 육아일기’에서 따옴.
*경상도 할배·할매 이야기는 페이스북에서 본 것을 필자가 약간 각색.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있을 만큼 떡볶이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궁중의 격식 있는 명절 요리에서 서민의 음식이 되기까지 변화의 뼈대에는 서민의 삶과 문화가 함께했다. 대한민국과 더불어 산전수전을 겪으며 변화하고, 더 나아가 세계에서 사랑을 받는 K떡볶이. 떡볶이의 역사와 함께한 시니어들의 추억을 따라 K떡볶이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떡볶이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돼 지금은 수많은 떡볶이 가게가 존재한다. 바야흐로 떡볶이 전성시대다. 한 음식 메뉴가 프랜차이즈화하며 크게 확장됐다는 사실은 시장성과 경제성이 충분하다고 평가됐음을 의미한다.
2010년대 초반 등장한 배달 서비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배달 앱에서 상위 메뉴에 항상 떡볶이가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떡볶이 수요는 2020년에 2019년보다 15%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변화 덕에 골목 안쪽에 속속 숨어있던 떡볶이 가게들이 이제는 대로변에 당당히 자리잡았다. 작은 동네에 있는 영세 가게에서 거대한 비즈니스로 성장한 셈이다.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요즘 떡볶이’
떡볶이가 간식에서 요리로 거듭나고 있다. 고추장뿐 아니라 크림과 로제, 마라 같은 다양한 소스로 맛을 내고, 풍성한 재료와 식감을 살려주는 사이드 메뉴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로제 열풍’이 불면서 떡볶이 프랜차이즈들이 앞다퉈 로제 떡볶이를 출시했다.
로제소스는 토마토소스에 크림을 섞은 것으로, 분홍빛을 띠고 있어 프랑스어로 '핑크빛'을 뜻하는 ‘로제(Rose)’라는 이름이 붙었다.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 두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며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로제 소스에 토마토 대신 고추장을 넣는다. 우리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국식 로제’인 셈이다. 로제 떡볶이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까지 사로잡으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로제 떡볶이에서 시작된 로제 열풍은 로제 찜닭, 로제 닭발, 로제 돈가스처럼 다양한 파생 메뉴를 탄생시켰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SNS(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서는 로제 시리즈 ‘먹방(먹는 방송)’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떡볶이로 시작한 ‘K로제’, 인기 비결은?
로제의 유행은 지난 1~2년간 식품업계를 휩쓴 중국식 매운맛 ‘마라(麻辣)’의 연장선에 있다. 맵고 짠 맛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는 더 자극적인 맛을 찾고 있다. 하지만 마라 맛은 호불호가 갈린다. 특유의 이국적인 향 때문에 아예 못 먹는 사람도 있다.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는 “한국식 로제 소스의 기본 바탕은 고추장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한국식 로제는 비교적 호불호가 적다. 크림의 유지방이 고추장·고춧가루의 매운맛을 완화해 주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끼하지도 않아서다. 하얀 크림소스보다는 한국인의 대중적인 입맛에 더 잘 맞는다.
53세 A 씨는 “딸이 요즘 유행하는 떡볶이라며 하도 같이 먹자고 해서 먹어봤다. 화사한 장밋빛이라 일단 눈이 즐거웠다. 고추장의 매콤한 맛에 우유와 생크림의 고소함이 더해져 살짝 달콤한 맛도 느껴졌다. 마치 서양 요리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밝혔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이유 중 하나다. 떡볶이처럼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한식에 사용할 수 있다. SNS에서는 농심 신라면을 활용한 ‘로제 신라면 레시피’가 화제다. 신라면에 우유나 생크림, 고추장을 살짝 넣어서 끓이는 조리법이다. 일반 가정 집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만한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떡볶이를 시작으로 유행한 로제 소스는 여러 음식에 활용되며 세대를 뛰어넘고 있다. 떡볶이가 새로운 음식 유행마저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떡볶이가 국민 음식을 넘어 최근 한류 인기를 타고 세계적인 음식으로도 발돋움하고 있다. 더 다양한 맛과 식감으로 해외 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1년 비대면이 당연해진 뉴노멀 시대에 이모지(emoji)는 새로운 ‘교감’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적 관계를 원활하게 해 주고, 직장 내 소통이나 마케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가 이모지와 친해져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모지가 사적 관계와 직장 내 소통, 마케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지난 17일 어도비는 한국과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7개국 7000명의 이모지 사용 경험을 조사해 ‘글로벌 이모지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93%가 이모지를 사용할 때 대화 상대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평균치인 88%보다 높은 수치다.
디지털 메시지에 센스 불어넣는 이모지, 알고 쓸수록 좋아
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단어보다 이모지 사용을 선호한다고 답한 한국인은 76%로 세계 평균치 68%보다 많았다. 특히 25~39세 밀레니얼 세대의 3분의 2 정도가 글만 있는 것보다 이모지를 포함한 문자 소통에 더 익숙하다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한국인 응답자의 79%가 이모지를 사용하는 동료에게 더 호감을 느끼고, 75%는 팀 내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에도 이모지가 도움을 준다고 답했다. 본인의 성향과 맞는 이모지를 사용하는 브랜드에 호감을 느끼는 이들은 69%에 달했다.
사람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비언어적 신호를 교환하기 위해 이모지를 활용한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있다. 모바일 메신저를 활용할 때는 대화할 때처럼 눈빛이나 얼굴 표정 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미영 어도비코리아 대표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대세가 된 지금 이모지는 정서적 교감을 이끄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이모지는 앞으로도 세대를 불문하고 디지털 소통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이모지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그림 ‘문자’인 만큼, 의미를 알아야 디지털 세상에서 센스 있게 소통할 수 있다. 자주 쓰지만 예상 밖 의미를 지닌 이모지 몇 가지를 소개한다.
기도와 합장 사이 어딘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이 이모지는 온라인에서 감사하거나 기도할 일이 있을 때 주로 쓴다. 무언가 부탁할 때는 공손함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 이모지가 손뼉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를 형상화한 이미지라는 사실이 미국 필라델피아 ABC6 뉴스 보도로 밝혀졌다. 미국에서도 기도를 의미로 쓰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미국 블로그 사이트 GAWKER의 한 사용자는 ABC 방송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림에는 두 엄지가 서로 맞붙어 있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 하이파이브를 하려면 엄지가 어긋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도를 하기 위해 두 손을 모은 모습과 비슷하므로 이 이모지는 하이파이브가 아니라 ‘기도’ 이모지다. 두 손을 맞댄 이모지를 두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눈막 귀막 입막' 원숭이를 귀엽게만 보면 안 되는 이유
눈과 귀, 입을 가리고 있는 원숭이는 어쩐지 수줍어 보인다. 덕분인지 애교스러운 메시지에 단골로 출연하는 원숭이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다.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고 악한 말을 하지 마라” 라는 유명한 격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
이 격언은 인도와 일본, 바다 건너 미국까지 영향을 미쳤다. 세 마리 원숭이 조각은 20세기를 살았던 마하트마 간디의 유품이었고, 17세기에 지어진 일본 신큐사 정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21세기 미국에 세 원숭이 조각만 종류별로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지역과 시대는 달라도 원숭이 세 마리가 각각 눈과 귀, 입을 가리고 있는 모습은 동일하다. 눈과 입, 귀를 가린 원숭이 이모지를 귀여운 원숭이 그림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빨주노초파남보, 색 따라 달라지는 하트 이모지
집단 지성으로 기능하는 미국판 네이버 지식인 ‘Quora’에는 색상별 하트의 의미와 쓰임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가장 대중적인 빨강 하트는 진정한 사랑을 의미한다. 부부나 연인의 메신저 대화에 적합하다. 반면 파랑 하트는 파란 색상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 탓에 절제된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의미한다. 따라서 연인보다는 친구와의 대화에 쓰는 것이 적절하다.
노랑 하트는 사랑보다 행복과 우정을 담은 표현에 가깝다. 친한 친구나 자식, 손주 등 자주 메시지를 보내는 친밀한 상대에게 사용함을 추천한다. 반면 초록 하트는 질투와 부러움을 의미하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평온함과 평정, 편안함을 나타내는 주황 하트는 한가한 주말 오후에 주고 받는 메시지에 어울린다. 열정과 존경의 의미가 담긴 보라 하트는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순수한 사랑과 신뢰를 나타내는 흰 하트는 나이 들어도 사랑스러운 자식들에게 사용한다. 단 검정 하트는 쓰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픔이나 슬픔, 아이러니를 의미해 블랙 유머와 함께 쓰기 때문이다.
진즉 함께 나누고 싶었다. 미국 PGA 투어 챔피언스(시니어 투어)에서 뛰고 있는 더그 배런(Doug Barron)이 내게 일깨워준 그 교훈을. 무명(無名)임을 한탄하지 말라는 얘기 말이다. 재미있는 사연 같은데 왜 이제야 꺼내느냐고? 음, 여태 사진을 못 구했다. 더그 배런 사진을. 없는 것은 아닌데 쓸 만한 게 없다. 그냥 뱁새 김용준 프로처럼 평범하게 생겼다고 상상하면 된다. 정 궁금한 독자는 검색해보기를.
더그 배런을 처음 본 것은 2019년 8월에 열린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구즈 오픈’ 때다. 나는 그 대회 해설을 맡았다. 대회 마지막 날 서너 홀을 남기고 방송 카메라는 더그 배런과 프레드 커플스(Fred Couples)를 번갈아 비췄다. 그렇다. 그 백전노장 프레드 커플스 말이다. 마스터스를 포함해 PGA 투어에서만 15승을 올리고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도 13승을 올린. 더그 배런은 누구냐고? 알 수가 없었다. 그 대회도 월요 예선(먼데이)을 거쳐 출전한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그런 더그 배런이 세 홀 남기고 한 타 차 선두로 나섰다. 이어지는 16번 홀은 원온(한 번에 그린에 올리는 것)을 할 수 있는 홀이었지만 파로 마쳤다. 이제 17홀과 18홀 두 홀만 남았다. 그러자 프레드 커플스가 드라이빙레인지로 이동했다. 연장전으로 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승 경험이 없는 더그 배런이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해서 연장전으로 가지 않을까’라고 나도 속으로 예상했다. 마지막 날 무려 아홉 타를 줄여놓고 기다리는 프레드 커플스의 얼굴도 오랜만에 살짝 달아올랐다.
17번 홀은 길고 그린 주변도 까다로운 파3. 아차 하면 보기를 할 수도 있었다. 1992년 프로 골퍼가 됐지만 아직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더그 배런이 그 티에 섰다. 그랬다. 그는 완벽한 무명이었다. PGA 투어는 물론이고 콘페리 투어(PGA 2부 투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PGA 투어 시절에는 시드도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다. 번번이 시드를 잃고 큐스쿨을 다시 치렀다. 심지어 최근 7년간은 2부 투어 풀 시드도 얻지 못해 간간이 예선을 치르고서야 나갔다. 그런 그가 만 쉰 살에 PGA 투어 챔피언스에 얼굴을 내민 것은 불과 몇 주 전. 더그 배런이 그 대회 첫날 ‘꽁지머리’ 미구엘 앙헬 히메네스와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칠 때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름 없는 선수가 하루 반짝 성적을 내고 이튿날 리더보드에서 사라지는 일은 허다하지 않은가? 그런데 더그 배런은 조금 달랐다. 이틀째도 선두로 마쳤다. 이틀째 중반 그는 대회 첫 보기를 기록하더니 갑자기 흔들렸다. 나는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그 시점에 낙뢰 탓에 경기가 중단됐다. 당시 공동 선두 히메네스는 샷이 막 살아나고 있었는데. 낙뢰는 폭우를 몰고 오더니 결국 그날은 경기를 재개하지 못했다. 더그 배런은 마지막 날 잔여 경기를 치르고 최종 라운드에 나섰다. 놀랍게도 그는 잔여 경기 때 타수를 줄였다. 전날 흔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지막 날 더그 배런과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선수는 스콧 매캐런과 스콧 파렐이었다. 각각 당시 PGA 투어 챔피언스 상금 랭킹 1위와 4위의 강자였다. 이 두 선수 틈에서 더그 배런은 주눅 든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의 드라이버 티 샷은 번번이 페어웨이를 지켰다. 12번 홀에서 프레드 커플스와 공동 선두가 된 것을 본 뒤로 그의 버디 퍼팅이 두 차례나 살짝 빗나갔다. ‘저러다 무너지는 건가’ 하고 나는 걱정을 했다. 어느 틈에 그를 응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제법 먼 거리 버디 퍼팅 하나를 홀에 떨구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들 보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스스로 확신을 갖는 몸짓이었다. 그렇게 선두에 선 채로 맞은 승부처 17번 홀. 200야드 남짓한 긴 파3에서 그의 아이언 샷은 아주 매끄러웠다. 볼은 한 번 튀고 조금 구르더니 홀에 네댓 발짝 떨어져 멈췄다. 이어진 퍼팅 스트로크가 아주 간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볼은 홀로 떨어졌다. 버디. 2위 커플스와 두 타 차 선두가 됐다. 마지막 홀 티 샷은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깊지 않은 러프에 떨어졌다. 같은 시간 커플스가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철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승부가 난 것이다. 마지막 홀을 파로 마친 배런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더그 배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다가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시니어 투어 데뷔한 지 단 두 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50세 25일’로 PGA 투어 챔피언스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175cm에 77kg으로 다른 시니어 투어 멤버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신체 조건을 딛고 우승을 일궈낸 것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그때까지 무려 27년 넘는 세월 동안 단 1승도 없이 버텨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무명(無名).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어떻게 혹독한 외로움과 빈곤을 견뎌냈을까? 그가 직전까지 투어에서 평생 벌어들인 상금은 그 한 대회 우승 상금보다 적었다. 더그 배런은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도, 또 우승컵을 받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리고 올 시즌(2020~2021)에도 톱10에 여러 번 들면서 상금 랭킹 20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어엿하게 PGA 투어 챔피언스 붙박이 멤버가 된 것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있는 독자라면 더그 배런을 보고 힘을 얻기 바란다. 내가 그에게서 용기를 얻은 것처럼.
길어지는 코로나19로 손주와 만남조차 어려운 요즘이다. 기술이 발달해 영상 통화, 메신저 등 연락할 방법은 많아졌지만, 얼굴을 보고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작은 휴대폰 화면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길을 거닐다 손주 또래의 아이가 눈에 띄면 절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집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적적한 시니어를 위해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꼬마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마틸다 (Matilda, 199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처럼 자식은 부모의 행실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녀만은 예외인 듯하다. ‘마틸다’의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마틸다(마라 윌슨)는 어려서부터 혼자 핫케이크를 만들고,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씩씩한 소녀다. 반면 마틸다의 아버지는 사기꾼에 가까운 중고차 매매업자로 돈밖에 모르고, 어머니는 게임과 사치에 빠져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러던 어느 날 TV나 보라며 책을 빼앗는 아버지에 화가 난 마틸다는 저도 모르게 눈빛으로 TV를 망가뜨리고, 자신도 몰랐던 초능력을 발견한다. 이후 학교에 들어간 마틸다는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자 자신의 초능력으로 못된 어른을 혼내주기 시작한다. 로얄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로얄드 달 특유의 위트와 풍자로 무책임하고 부조리한 어른의 모습을 꼬집는다. 권선징악의 전개를 성실히 따라 극이 진행될수록 사이다를 마신 듯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마틸다의 똘똘한 표정과 야무진 말투가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2. 애니 (Annie, 1982)
“사랑 대신 구박을 받아. 키스 대신 매를 맞아.” 구슬픈 가사와는 달리 씩씩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는 아이들. 이내 분주한 몸짓으로 집안일을 거든다. 그 중심에 애니(아이린 퀸)가 있다. 뮤지컬 영화 ‘애니’는 1933년 공황기, 미국 뉴욕의 아동 보호소에 사는 애니가 친부모를 찾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나온 가사처럼 아이들의 보호소 생활은 녹록지 않다. 보호소 원장이 시키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청소를 해야 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멱살을 잡히기도 한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애니는 친부모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품고 지낸다. 그러던 중 억만장자 워벅스(알버트 피니)가 보호소를 찾아 애니를 양녀로 삼으려 하는데, 친부모가 그리운 애니가 이를 거절하자 얼떨결에 ‘친부모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애니’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애니의 명랑한 태도와 사랑스러움을 극찬한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영화지만, 손주가 더욱 보고 싶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3. 보스 베이비 (The Boss Baby, 2017)
탱탱한 볼살에 솜털 같은 머리카락. 영락없는 아기의 모습인데, 어딘가 이질적이다. 옷은 쫙 빼입은 양복 차림에 표정은 인생 2회 차인 듯 매사가 따분해 보이고, 목소리는 중년 남성처럼 중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 베이비’(알렉 볼드윈)는 ‘베이비’가 아니다. 아기인 척하는 기업의 ‘보스’다. 영화 ‘보스 베이비’는 7살 팀의 집에 베이비 주식회사의 CEO가 경쟁업체인 퍼피 주식회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아기로 위장을 하고 들어오는 이야기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아기 행세를 하다 팀 앞에서만 본래의 성격으로 돌변하는 보스 베이비의 발칙한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형제간의 다툼과 화해, 성공에 대한 열망 등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을 기발하게 표현해 연령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 본의 아니게 한 팀이 되어 투덕거리면서도 우애를 쌓아나가는 두 주인공의 귀여운 동맹이 감동을 자아낸다. 보스 베이비의 귀여운 매력에 홀딱 빠졌다면 넷플릭스 독점 만화인 ‘보스 베이비: 돌아온 보스’를 이어 봐도 좋다.
은퇴 후 딱히 내밀 만한 명함도 없는 인생 후반전에서는 ‘외모’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 악수를 하고 또 명함을 건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명함은 보는 둥 마는 둥 명함 지갑에 쑤셔 넣기 일쑤다. 반면 눈으론 스캔부터 한다.
걸음걸이, 표정, 옷맵시, 액세서리 같은 정보들로 먼저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직 악수도 하기 전이고 통성명도 안 한 상태에서 보이는 그대로 ‘저장’ 버튼부터 누른다. 그의 옷차림과 패션센스 그리고 품어져 나오는 아우라 등이 먼저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한눈에 보여주는 패션코드가 악수보다 먼저인 세상이다. 머지않아 명함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날이 올 것이다.
이미 명함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연락처 파일을 주고받거나 SNS 네트워킹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그럴수록 외모와 패션은 그 중요성이 더해갈 것이다. 요즘에는 줄임말이나 이모티콘으로 말이나 느낌을 간단하게 그러나 꽤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외모와 패션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이모티콘’이다.
사람의 외모를 구성하는 요소 중 으뜸은 아무래도 얼굴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몸매와 옷차림 그리고 구두와 핸드백, 안경, 팔찌 등 액세서리도 무시할 수 없는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성형과 미용, 화장기술까지 나날이 발전하는 요즘, 얼굴 외의 구성 요소들이 결국은 승패(?)를 좌우한다.
“부모님 날 나으시고 원장님 날 빚으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잘 빚은 비슷비슷한 얼굴들은 넘쳐난다. 패션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얼굴이 완벽해도 패션이 꽝이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오히려 옷 잘 입는 스타일 쩌는 얼굴꽝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비싼 옷 안 사도 내가 명품이 돼보자
꼭 명품을 입어야 옷맵시가 나고 외모가 경쟁력을 갖는 게 아니다. 옷맵시가 나면 싼 옷도 비싸 보인다. 유명 브랜드가 정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변신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우선 유명 브랜드에 목매기보단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으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요즘 유행하고 있는 루즈핏 오버핏은 예외다. 신체가 더 이상 자랄 것도 아닌데 왜 자기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단 입고 싶은 것부터 입어라.
남자들의 경우 바지를 제발 질질 끌리게 입지 마라. 과감하게 밑단을 자르자. 복숭아뼈는 감춰놓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소매도 손등을 덮을 정도로 길게 입지 말자. 양말도 무시하지 말자. 양말은 일반적으로 바지의 컬러와 매칭하는 게 좋다. 요즘 진짜 멋쟁이는 아주 튀는 컬러를 매칭하기도 한다. 사시사철 검은색 양말을 고집하는 당신은 매일이 장례식 참석 모드다. 회색이나 감색 양복에는 브라운 컬러의 구두가 제격이다. 검은색 구두는 장례식 참석할 때나 꺼내 신으면 된다. 안경도 이제는 액세서리다. 패션의 완성을 위한 소품으로 안경에 투자하라. 투자 대비 효과 만점이다. 가성비 ‘갑’이다.
아직은 중년 남자들이 어색해하는 팔찌도 시도해봄직하다. 필자의 팔뚝은 시계 대신 팔찌에 양보한 지 오래다. 팔찌로 남성미를 물씬 풍길 수도 있다. 남성들이여, 팔찌나 목걸이를 과감히 시도해보라. 건강 팔찌, 황금 목걸이 같은 건 말고. 겨울철엔 비니도 시도해보자. 당신의 패션 나이가 몰라보게 젊어질 것이다. 어쩌면 길 가다 뒤돌아보는 사람들도 생길지 모른다.
“나이 들수록 외모가 경쟁력이다.” 이 말은 뒤집어보면 “나이가 들면 외모는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슬프다. 결국은 생물학적 늙음과 퇴보는 어쩔 수 없다. 세상 기준의 외모 경쟁력은 차츰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혹자는 진짜 뼈를 깎기까지 한다. 현대의료과학기술 발전의 쾌거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활력, 역동성 등은 아무리 좋은 현대의료과학기술로도 어림없다. 스스로 내면을 바꾸려는 노력과 훈련이 없으면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외모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해야 한다. 결국은 애티튜드부터 바뀌어야 한다. 애티튜드의 변화가 수반되는 내적 충실함이 외모라는 스크린에 자연스레 투영되어 나타나야 비로소 진정한 경쟁력이 있는 외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성 닉 우스터. 필자의 패션 스승(?)이다. 그를 주목했던 이유는 단순히 옷을 잘 입어서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못생겼고 키도 작았기 때문이다. 깊게 패인 주름, 170cm도 안 되는 키와 지나치게 큰 근육형 몸매는 패셔니스타가 되기엔 매우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의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흠모하면서부터 필자의 패션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패션관’이 달라졌다. 용기도 급상승했다. 주위 시선에서도 조금씩 자유스러워졌다. 주변의 반응도 덩달아 점점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조금씩 패션 아이콘이 되어가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주위의 시선을 즐기게까지 되었다.
필자가 주재하던 중국 상하이 패션 업계에선 꽤 유명한 옷 잘 입는 ‘韩国大叔’(한국 아저씨)로 불렸다. 패션 감각만 젊어진 게 아니다. 라이프스타일도 함께 젊어졌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걷기를 생활화하기 위해 지하철 역 두세 정거장은 걸었다. 옷 입는 것도 점점 더 과감해졌다.
수많은 길고 펑퍼짐한 바지들은 테이퍼드핏으로 리폼했다. 필자의 발목은 더 자주 노출되었다. 양말들도 크레파스처럼 갖가지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자의 패션은 차츰 회자되었다. 심지어 필자의 착장을 찍어 여기저기로 퍼 나르는 패션 블로거들까지 생겨났다. 또한 길거리 캐스팅도 되어 TV 광고를 찍는 기적까지 일어났다. 화보 모델로도 데뷔를 했다. 내 자신이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게 좋았다. 행복했다. 그리고 감히 다짐했다. 한국의 닉 우스터가 되겠다고.
당신도 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닉 우스터 워너비 그레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는 직장 은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전에 가보지 않은 길에 자신의 전부를 투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도래한 걸로 간주했다. 그런 그가 귀농을 선택한 건 매력과 환멸이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기이한 대도시를 통쾌하게 벗어난 시골에서 삶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에의 투신이라는 미지의 모험을 통해 자신의 내공을 시험하고 싶었다. 올해로 귀농 7년 차. 허진영(64) 씨의 농장은 그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정신과 육체의 거의 모든 걸 쏟아 부은 결과가 그렇다.]
허진영 씨는 알아주는 눈이 많은 귀농인이다. 강소농(強小農)의 본으로 지역에 회자된다. 고행에 가까운 게 귀농생활이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몰입으로 치고 나갔다. 고전과 시행착오로 허우적거리기 쉬운 게 농사이지만 물 위를 뛰어다니는 물방개처럼 활개를 쳤다. 용의주도! 매사 빈틈없는 숙고와 실행을 숭상하는 자질을 어디서 얻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깐깐하게 돌다리를 두드려 물을 건넜으며, 건널 다리가 없을 경우엔 스스로 다리를 고안해 형세를 호전시키는 재능을 발휘해 귀농의 갖가지 난관을 타파했다. 요컨대 그의 머리는 전략적으로 작동한다. 32년간 일했던 ‘삼성맨’ 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내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이 영민한 사람의 귀농 사전준비는 전혀 평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철저한 준비를 했다. 예컨대 작목 선정을 미리 해뒀는데 장단기 작물을 병행 재배하기로 했다. 귀농 당해에 수확할 수 있는 단기작물로 초석잠이나 복분자, 산딸기를 택해 귀농 1년 전에 미리 심었으며, 최소 이삼 년이 지나야 소득이 발생할 중장기 작물로는 베리 종류나 호두나무 같은 유실수를 선정했다. 이 모든 선택 작물들은 나름의 공부와 분석을 통해 고른 것들이었다.”
신중하게 작목을 선택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농사다.
“실로 그렇더라. 귀농 첫해에 거둔 소득이 예상을 거슬러 형편없이 적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받았던 한 달 치 봉급 수준밖에 되질 않았거든.”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첫 농사였던 만큼 생산량 자체가 미미했다. 게다가 판로가 막연하더군. 고구마, 감자, 고추도 심었지만 수익 발생이 되질 않아 무의미한 걸 알고 다시는 이것들을 재배하지 않기로 했다. 첫해의 성과는 초라했으나 덕분에 공부를 한 셈이고 비전을 세울 수 있었다. 향후의 대책을 수립했으니까.”
실의에 빠지진 않았고?
“쓴맛을 보고서야 한결 정신을 번쩍 차리는 게 사람이지 않던가. 일종의 통과의례로 작은 실패를 했다 여기고 이듬해 농사에 만전을 기했다. 귀농 전에 구상했던 기본 방향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이기도 했지.”
어떤 기본 방향?
“첫째는 다양한 작목을 재배해야겠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엔 많은 강점이 있다. 우선은 노동력을 분산할 수 있어 탄력적이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병충해, 또는 가격폭락 등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부 작물들이 흉작이더라도 피해를 덜 본 일부 작물들이 손실을 보완해주니까.”
둘째는?
“소량생산을 추구하기로 했다. 대량생산을 할 경우 흘려야 할 땀 역시 대량일 수밖에 없지만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렵다. 소량 규모여야 고품질 생산이 가능하고, 이는 고가격 정책의 밑거름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SNS 마케팅이 없으면 승산도 없다
허진영 씨는 귀향으로 귀농을 실현했다. 낳고 자란 산 깊은 벽촌으로 내려가 농사꾼으로 변신한 거다.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을 고향의 홀어머니를 모처럼 살뜰히 봉양하자는 생각도 귀농을 추동했다. 그는 선친이 생시에 농사를 지었던 농토 8000여 평을 다듬고 닦아 ‘산중햇살농장’이라 이름 붙였다. 농장의 반은 호두나무 과수원, 나머지는 갖가지 약용식물들이 생육하는 밭이다. 농장 가운데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산이 절반, 하늘이 절반이다. 그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는 뜬구름은 정처 없어 걸릴 게 없으니 자유로운 나그네임을 알 만하다. 숲속 언덕배기에 오두막 하나 슬쩍 짓고 세월아 네월아, 한가하게 노닥거리기 좋은 풍광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농사에 용무가 많아 농사 외엔 매사 심드렁한 분위기다.
초심자로 농사에 뛰어들었으나 구상도 패기도 짱짱했던 그에게 첫해 농사의 섭섭한 소출은 약진의 발판이었나보다. 이듬해부터 곧바로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으니까.
“다작물 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경제성 높은 약용작물이나 핫이슈 작물을 발굴해 도입했다. 인디언감자라고 들어봤나? 북미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주식이었던 덩굴식물로 천연 자양강장제라 평가되더라. 이게 국내에 막 들어온 시점에서 종자를 구해 심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치매에 좋다는 블랙커런트, 항산화 작용이 빼어나며 당뇨에 좋은 코끼리마늘, 오미자, 슈퍼도라지, 토종 보리똥 등도 재배해 재미를 봤다. 귀농 2년 차에 흑자가 나자 자신감이 솟구치더군.”
모든 작물이 효자 노릇? 그렇다면 당신은 작목 선정의 귀재다.
“유행가만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유행작물의 수명도 짧고 변덕스럽다. 나는 작목별 손익분기점을 계산해 상황이 나쁜 작물은 과감히 버린다. 신속히 대체작물을 찾아 채워 넣는다. 여기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마디로 농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우선은 목표치부터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귀농 시 나는 은퇴 전 삼성에서 받았던 연봉 수준의 농업소득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그걸 4년 만에 달성했지.”
올해 7년 차다. 2020년의 소득액은 얼마였지?
“매출 2억에 순수익 1억3000만 원 정도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하더라. 이른바 ‘강소농’의 기준 소득액은 연매출 1억이다.”
판정패와 케이오패가 드물지 않은 게 귀농이다. 귀농열차를 타고 내달리는 이들을 보면 그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귀농인의 90%가 실패한다. 현상 유지 케이스는 8~9%, 성공하는 농가는 1%에 불과하다.”
그게 정말 믿을 만한 자료라고? 휴, 귀농은 실로 격렬한 레이스군. 실패 요인 중 가장 핵심적인 건 무엇이라 보나?
“단연 판로 문제다. 피땀 흘려 농산품을 생산하고도 판로가 여의치 않아 고심들을 한다. 공판장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곳에 상품을 줄 경우에도 가격을 후려쳐 실속이 없다. 결국은 직거래가 답이다. 내가 농장을 성장시킨 비결이 직거래망 구축에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직거래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았다. SNS 마케팅은 이제 필수다. 귀농을 해서는 반드시 SNS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게 없이는 승산도 없다.”
일 없이 노는 건 불행의 첩경
허진영 씨가 생산한 농산물은 기똥차게 잘 팔려나간다. 대부분 완판을 본다. 인터넷 마케팅 덕분이다. 지인들에게 상처를 줘가며 물건을 팔아치울 필요가 없다. 블로그 덕분이다. 댓글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블로그를 통해 막대한 수효의 직거래 고객을 확보한 덕분이다. 사실 농업인들의 블로그 운영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블로그의 품질은 제각각이다. 허 씨의 블로그는 높은 충실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단순하거나 얄팍하게 상품 홍보에만 주력하지 않는다. 귀농일지에 가까우리만치 귀농 경험담을 소상히 고백한다. 귀농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고난을 이겨내는 결기와 과정을 소박한 글과 사진으로 진솔하게 기록한다. 공감과 신뢰를 자아내는 휴먼 터치로 고객관리에 성공한 셈이다.
“농사꾼들의 화두인 판로 문제를 인터넷 마케팅으로 해결하기 위해 귀농 2년 차부터 블로그를 독학으로 배워 운영했다. 죽기 살기로 블로그에 매달렸다. 전체 노동량의 50%는 농사에, 나머지 50%는 블로그에 쏟았던 거다. 그 결과는 너무도 좋았지. 많을 때는 하루에 7000~8000여 명이 접속한다. 그런 날엔 수백만 원씩 매출이 오르더라.”
이제 순풍을 매단 배처럼 질주를 한다고 보나?
“보람을 느낀다. 귀농 멘토로서도 활동량이 늘어 뿌듯하다. 그런데 일이 너무도 많아 힘겹다. 새벽부터 온갖 노동에 시달리고 밤엔 자정까지 블로그에 매달리다 쓰러져 잔다. 남들은 이런 나를 미쳤다 하더라. 겨울철도 내겐 농한기가 아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갈대나 뽕나무 뿌리, 유근피 등을 채취해 상품을 만들거든. 몸 아플 겨를조차 없다. 가끔 이런 생각한다. 이거 정말 내가 미친 거 아냐?(웃음)”
과중한 일에 속박돼 산다는 회의?
“내겐 이미 퇴직 이전에 모아둔 재산이 꽤 있다. 돈벌이 목적의 귀농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퇴직을 하고 놀면 뭐하나, 일 없이 노는 거야말로 불행의 첩경이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으로 농사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게 새로운 삶이기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공으로 만족감을 얻기에 이르렀지. 하지만 일의 스케일을 키워 더 많은 성취를 하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먼 거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한다.(웃음)”
그의 아내는 서울에 산다. 가끔 내려와 남편을 챙겨주고 후다닥 달아난다. 귀농하자는 얘기를 들은 순간에 사색이 됐던 그녀는 길고도 격렬한 논쟁 끝에 당신 혼자 잘해보세요, 그리 선언하고 서울에 남았다. 여행이나 하며 부부가 오붓하게 인생을 즐길 나이에 웬 귀농 고생살이? 아내의 취지는 충분히 합리적이었으나 허진영 씨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아내의 불만을 잠재울 유일한 길은 보란 듯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또 뛴다. 귀농의 기수로 줄달음친다. 이는 과욕의 산물? 아니면 진취적 기개?
허진영 씨가 주는 귀농 Tip
•인생의 막다른 길에 접어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없으면 귀농하지 마라.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 게 농사다.
•귀농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빈틈없이 실천하자.
•농사로 소득을 얻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고 매사 절약해야 한다.
•농사도 기술이고 과학이다. 많은 정보를 섭렵하자.
•SNS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라. 의외의 성과가 빠르게 도출될 수 있으니.
•작목의 경제성을 과장 선전하는 묘목상의 상술에 현혹되지 말자.
•가장 믿을 만한 농사 조언자는 귀농 선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