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수이자 방송인 서유석이 발표한 노래,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입니다. ‘나이 듦’을 솔직담백하게, 때로는 풍자와 해학으로 묘사한 노래 중간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아름다운 시절이 정말 소중했던 시간이라고 되새깁니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라던 세상 떠나신 아버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는 그의 고백은 노래가 끝나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여섯 번째 마음 미장공 이야기는 ‘검버섯 핀 바나나’로 시작합니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에 등산 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수요일에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가집
(중략)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하게 했는가?
세상은 삼십 년간 나를 속였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놀려대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나 볼 거야
(후략)
검버섯 핀 바나나
지난 어버이날 부모님 뵈러 갔을 때입니다.
“어느 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데 바나나 껍질이 거뭇거뭇하게 된 걸 통째로 버렸지 뭐니? 그 귀한 걸….”
그게 너무 아까워 어머니는 경로당에 가져가서 어르신들과 같이 드셨다는 겁니다. 바나나. 지금은 사시사철 가장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과일로 전락했지만 어린 시절 얼마나 귀한 과일이었나요. 한 다발은커녕 낱개 하나도 먹기 어려워 부잣집 아이들 먹는 것 바라보며 군침만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에야 귀하든 아니든 어머니 입장에서는 먹는 걸 버린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거죠. 한편으론 이제 늙고 병들어 쓸모없어졌다고 버림받는 자신을 보는 양 서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 얘길 들으면서 제가 몇 해 전 쓴 시가 떠올랐습니다.
검버섯 핀 바나나
샛노란 바나나 한 다발
하얗고 단단한 속살
며칠 지나 남겨진 세 송이
그새 늙어 검버섯 점점이
어떻게 이별할까 궁리 끝에
우유 붓고 보들보들 살점 썰어
드륵드륵 클클클클
바나나 셰이크로 안녕히
숨 거두기 전 가장 달콤했던 이여
바나나는 익을수록,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에 더 가까울수록 진가를 발휘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순간, 비록 겉모습은 시커멓고 말라비틀어졌지만 더 아름답고 더 찬란하고 더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설익었을 때는 설탕이나 시럽, 꿀처럼 단맛을 첨가해야 바나나 음료가 제값을 겨우 합니다. 무르익지 않으면 떫고 신맛이 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성숙하지 않은 시절엔 뭘 넣어도 부족한 맛이 납니다. 깊이 농익었을 나이엔 이것저것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윽하고 충분하고 깊습니다.
노인은 살아 있는 박물관
노인, 어르신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살아 있는 박물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습니다. 그만큼 어르신들이 드리워주는 그늘, 아낌없이 나누는 지혜와 경험, 그 울타리는 박물관 하나를 꽉 채울 만큼 큽니다. 우리 속담에도 ‘일 못 하는 늙은이, 쥐 못 잡는 고양이도 있으면 낫다’, ‘늙은 고양이랑 늙은이는 없으면 옆집에서 꾸어 와서라도 모시는 게 좋다’란 말이 있습니다. 비록 젊을 때처럼 팔팔하게 역할은 못 하더라도 언제든 의지하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겉으로는 쓸모없을 듯 보여도 나름대로 쓸 데가 있기 마련입니다. 바나나만 하더라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가장 달콤하다는 게 우리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님을 뵈러 가서 잠깐 들었던 이야기가 시 한 편으로 연결되었네요. 그분들이 저희에게 음으로 양으로 큰 기운과 가르침을 주신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찬밥을 대하는 자세
봄이 완연해지더니 계절은 이제 초여름으로 향해 갑니다. 이럴 때 유독 신경 써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밥과 반찬입니다. 쉬이 상하고 금방 맛이 갑니다. 기껏 지은 밥이며 된장찌개, 고등어조림이 상할라치면 만든 사람 속도 무척 상합니다. 재료가 아까운 건 물론이고 장 보고 다듬고 만든 정성에 마음이 참 쓰리고 아픕니다. 저는 이렇게 먹다 남은 찬밥을 모았다가 누룽지를 만듭니다. 버리지 않고 고쳐 쓰는 부모님, 할머니 마음을 닮고 싶어서입니다.
찬밥이 누룽지가 되는 과정은 절묘합니다. 적당히 태워 생긴 탄소 입자는 날카롭지 않아서 세포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몸속 독소를 흡착, 분해해 씻어낸다고 합니다. 누룽지는 자신을 태워 훌륭한 영양제이자 해독제로 변신합니다. 전날 과음으로 힘들 때나 소화가 안 될 때 누룽지 끓여 먹으라는 어른들 말씀이 매우 일리 있었네요. 다만 성질을 누그리지 않으면 누룽지 만드는 일이 화를 돋우는 참사가 되기도 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냉장고 안 찬밥을 모아
누룽지를 만듭니다.
급한 마음에
미처 다 눋지 못한 밥알들
주걱으로 긁을라치면
손목도 시리고
모양도 죄다 흐트러집니다.
진득이 기다리면 될걸
조금만 더 참으면 될걸
날 선 마음 누그리고
모난 마음 둥글리고
먼 산 한 번 바라보고
강아지 눈 맞춰
잘 잤니 인사하고
솥뚜껑 열어
누우렇게 고운 빛깔
얼굴 반쪽 내민
누룽지 만났습니다.
(‘혼자 술 마시는 여자’ 178~179쪽)
묵은지 유감(遺憾)
‘먹방’, ‘쿡(Cook)방’이 개인방송 채널까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벌써 여러 해입니다. 더욱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느 때보다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면서 의식주(衣食住)가 아닌 ‘식의주’(食衣住) 시대가 왔나 봅니다. 다종다양한 요리 방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식재료가 바로 ‘묵은지’입니다. 오랫동안 숙성되어 푹 익은 김장김치를 일컫는 묵은지. 요리에 재능이나 관심이 없거나 요리할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는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운명이기 십상입니다. 발효음식 특유의 역한 군내와 물컹한 식감까지, 김치냉장고 속 골칫거리에 불과하니까요.
할머니와 묵은지
하얀 곰팡이가 다닥다닥 피어올라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은 묵은지 한 포기라도 버리지 않고 흐르는 물에 몇 번이고 빨아서 김치만두로, 비지찌개로 새롭게 만들어주시던 우리 할머니. 거북이 등가죽처럼 거친 손으로 맛난 음식을 뚝딱 해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묵은지라도 그 감별 기준은 버릴 것인가 쓸 것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먹을 것인가, 아니면 속을 털어내고 깨끗이 빨아서 먹을 것인가 이 두 가지였습니다. 취사선택이 아니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잘 쓸 것인가입니다.
누룽지와 묵은지 닮은 마음
좋은 것, 쉽고 편한 것, 화려한 것만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함부로 대하거나 버렸던 것은 아닐까. ‘살림살이’한다는 주부가 정작 살리는 일이 아닌 버리는 일, 죽이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해왔던 것은 아닐까. 낡았다고, 싫증 났다고 홀대했던 것은 아닐까 되묻습니다. ‘나이 듦’, ‘늙음’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였던 것은 아닌지 자꾸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또 배웁니다. 검버섯 핀 바나나, 자신을 태워 누룽지로 승화한 찬밥, 곰삭은 묵은지처럼 익을수록 깊고 달콤하고 구수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합니다.
“시어머님 간병을 번갈아 할 수 없으니까 정말 애가 타고, 일주일 넘게 혼자 맡아 하시는 형님께는 너무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60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던 지난 3월 중순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시어머니가 입원한 B씨. 큰동서와 번갈아 간병을 할 요량으로 PCR 검사를 하려는데 본인이 코로나19 확진 후 격리 해제한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가족까지 급박하게 대처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고통과 역할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어떤 가족은 자녀가 시간을 내어 찾아와도 요양원에 격리된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식에 조문도 받을 수 없었다. 방역 단계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예약한 결혼식장과 날짜는 번번이 바뀌고 연기되다가 예비 신랑 신부와 그 가족은 끝내 갈등 속에 파투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가족, 친구, 동료, 이웃과 사회를 갈라놓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지침은 심리적 거리마저 소원하게 해 인간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마스크의 역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강제했던 실외 마스크 착용이 5월 2일부터 해제되었다. 혹시나 하고 청계천으로 산책 나선 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스크 벗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그리고 다음 날 외출할 때도 거리나 공원, 버스정류장, 지하철 등에서 마스크와 함께했다. 지난 2년 남짓 마스크에 길들여져, 규제가 이제는 생활의 도구가 된 것일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겨준 불편함과 제한이 안전과 건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준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2020년 첫 발병부터 지금까지 온 세상을 휩쓴 코로나19라는 역병(疫病)이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이 되면서, 그동안 단절되고 막혔던 부분을 어떻게 복구하고 대처해나갈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가족의 재발견
2021년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연령대별 행복도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코로나19 기간 중 SNS를 활용한 노년층의 행복도가 젊은 세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대면하는 활동이 왕성했던 청년층은 행복도가 떨어진 것과 달리 비대면이더라도 가족과 유대를 잃지 않았던 노년층은 행복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신이 가진 인맥 안에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열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2020년 조사를 바탕으로 발간한 ‘대한민국 행복지도 2021-코로나19 특집호’에서도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더욱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년층이 젊은 세대보다 감정을 잘 다스리고 삶의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도 행복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밝혀졌다.
인간관계에서 폭은 줄이되 깊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족 간 대화가 늘어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사례도 많이 발견된다. 예전 같으면 퇴직한 아버지나, 취업 준비하는 자녀나 밖으로 돌기 바빠 ‘빈 둥지 증후군’인 어머니의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부모 역시 MZ세대 자식이 얼마나 따로국밥 불통인지 화병이 났을 텐데, 코로나19 덕분에 온 가족이 서로를 지켜보고 관찰할 시간이 생기면서 ‘많이 힘들지?’ 물어봐 줄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자기를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펴볼 특별한 시간을 주었다. 또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접촉 아니어도 언제나 접속 중
긴 코로나19 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점점 비대면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SNS나 메신저, 원격 화상회의 장치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때로는 폭넓게 때로는 깊숙한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영유아부터 청장년 대상 활동뿐 아니라 시니어 관련 교육, 봉사, 인지치료 등에도 비대면 화상 방식이 선호되는 추세다. 변화에 앞질러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곳도 눈에 띈다. 인천을 지역 기반으로 치매 예방 및 인지 교육을 펼치는 한국시니어교육센터의 경우, 예전처럼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로 직접 찾아가는 대신 매주 일정한 시간에 원격 화상강의 방식을 이용해 어르신들을 만나 소통하고 있다. 비대면 화상 프로그램 시행 초기에는 방역과 안전을 내세웠지만, 2년 남짓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면서 장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방역 기준이 완화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통을 병행할 수 있으니 그 효과와 만족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상의 소중함과 연결 : ‘딥 콘택트’(Deep Contact)
코로나19 이전 우리는 잘 차려입고 꾸미고 시간을 들여 어딘가로 이동해서 누군가를 만나 사교와 업무를 수행해왔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 대화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돌이켜보자.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며 대부분의 만남이 비대면, 재택(혹은 특정 장소가 아닌 카페나 대중교통 등)으로 바뀌면서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인간관계에서 고립과 단절을 가져와 고통으로 다가왔던 사람들도 어느덧 방역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여기저기 걸쳐놓고 집중하지 못했던 관계는 과감히 정리하고 자신에게 소중한 관계에 깊이 몰입하는 ‘딥 콘택트’의 시대가 주목받는 까닭이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다가 몸이 무너진 순간, 마치 파노라마처럼 빛을 봤다.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했을 때부터 ‘내 삶은 덤’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매일 아침 400만 명에게 편지를 쓰며 꿈 너머 꿈을 꾸자고 이야기하게 된 계기다. 푸른 나무가 우거진 깊은 산속 맑은 옹달샘에서 명상을 전파하고 있는 고도원(70)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지금, 멈춰보세요! 들리나요?”
고 이사장의 말에 순간 숨을 참았다. 3초 정도 주변 모든 사물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마음에 고요함이 깃든다. 그때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소리에는 내가 놓친 것들이 담겨 있다. 영감을 얻는 순간이다.
이유 없는 감사 ‘명상’
고도원 이사장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담당비서관이던 시절, 추천 도서에서 발췌한 구절과 함께 짧은 글을 적어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이름으로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의 글을 받아보는 독자가 100만 명이 넘어가자 2004년에는 아침편지문화재단을 세웠다. 고 이사장의 글을 받아보는 독자는 이제 약 400만 명에 이른다. 2010년에는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을 열고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템플스테이처럼 옹달샘을 찾아 머무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다.
“명상은 스스로 성찰하고 사색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궁극적인 목표는 이유 없이 감사하는 거죠. 삶에서 우주의 본질 같은 것이랄까요. 명상을 통해 사랑과 감사를 회복하는 거예요.”
명상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먼저 긴장을 풀고 몸을 이완한다. 이완의 방법으로 주로 사용되는 게 호흡이다. 천천히 걷는 것도, 길게 심호흡하는 것도, 느리게 춤을 추는 것도,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이완의 방법일 수 있다. 몸이 이완됐다면 하나에 몰입한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 지금 마시고 있는 차, 어딘가를 향하는 내 걸음, 무엇이든 몰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다 명상이 될 수 있어요. 청소할 때, 설거지할 때도 몰입할 수 있죠. 집중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하는 거고, 몰입은 집중한 줄도 모르게 놀이처럼 되는 거예요. 무엇보다 이 과정에 ‘기쁨’이 있어야 하죠.”
몰입을 잘했다면 마지막으로 변화의 단계가 온다.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다.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 몸이 회복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정화된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를 성찰하면서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몸의 근육을 키울 때도 처음에는 1kg을 들었다면 다음에는 2kg, 5kg 무게를 늘려가잖아요. 정신도 그래요. 상처나 외로움을 견뎌내는 연습을 계속하면 마음 근육이 단단해지고 면역력이 생겨요.”
멈춤은 하나의 과정일 뿐
명상을 하려면 일단 멈춰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완하고 몰입하려면 자연에 가깝고 조용한 곳이 좋다. 하지만 우리는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에 산다.
“거실이나 베란다에 식물을 두어보세요. 정 없으면 그냥 한 공간을 설정해두어도 돼요. 이곳은 내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해두는 거죠. 시끄럽거나 빛이 센 곳보다는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좋겠죠. 이런 장소를 찾고 명상을 위한 환경을 설정하는 행위 자체도 즐거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차를 마시면서, 이 시간이 주어져 감사하다고 느낀다면 이것도 좋은 멈춤의 장소가 되고 도구가 되는 거죠.”
조용한 장소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순간, 머릿속이 시끄러워지곤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떠오르거나, 미처 해결하지 못한 걱정들이 몰려온다. 상념(想念)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멈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종을 치는 거예요. 밥을 먹다가 종을 치면 그대로 멈춰요. 그럼 맛이 느껴질 거예요. 머릿속으로 종을 쳤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 하던 행위를 멈춰보세요. 존재했지만 내가 소란해서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들릴 겁니다.”
고 이사장은 상념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상념이 떠오르는 그 순간마저 경험이 된다. 그는 상념을 메모지에 적어서 던져둔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함이다. 어느 순간 잡념이 사라지는 걸 느낄 때, 그 고요함에서 오는 희열을 얻는다. 멈춤은 나를 비우는 하나의 ‘과정’이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시대
고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외로움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2년은 고 이사장에게도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힐링 산업은 대면을 해야만 하는데, 모든 게 멈춰버렸기 때문.
“코로나19가 안겨준 현상 중 하나가 고립감과 외로움이죠.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코로나19를 통해 심화됐을 뿐 이전에도 있던 거예요. 고(故) 이어령 장관이 마지막으로 ‘사실 외로웠다’는 고백을 했어요.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이룬 사람도 느끼는 감정이죠. 영국에는 ‘외로움 장관’이라는 자리도 생겼잖아요. 사회 전반으로 보면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이고, 개인도 외로움을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된 거죠.”
2020년 6월 고 이사장은 ‘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한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 코로나19가 남긴 집단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도 이 후유증을 다룰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코로나19 이전에도 고 이사장은 ‘사회적 치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세월호 유가족, 소방관 배우자 등을 초청해 휴식과 위로의 시간을 마련했다.
“의료 계통 종사자, 학교 선생님, 공직자, 실업 청년 등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아진 거예요. 우리 마음에 어떤 후유증을 남긴 거죠. 우리는 외로움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내면의 근육을 단단히 할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외로움은 마음의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예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라고 봅니다. 그래서 결국은 명상을 다시 강조하게 되네요.(웃음)”
공부하는 중년과 꿈 너머 꿈
머릿속이 소란할 때 내리는 판단과 고요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면 이제 용기를 내야 한다. 고 이사장은 중장년층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자신의 판단과 예지력으로 인생을 전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그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블록체인 아카데미를 준비하는 이유다.
“중년 이후에는 실패를 만회할 시간이 별로 없죠. 그래서 훨씬 깊은 공부가 필요해요. 공부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용기죠. 우리는 사회 흐름을 공부해야 돼요. 블록체인, 가상화폐, 메타버스, AI, ICT(정보통신기술), 새로운 흐름이죠. 이런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어질 수밖에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왜 벌어졌는지, 세상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공부한 것을 토대로 방향 전환을 해야겠죠. 실패하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거고요. 재수 없으면 10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50세에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
고 이사장은 중년의 통찰과 혜안이 사회의 유산이 되기를 바란다. ‘꿈 너머 꿈’을 말하는 이유다. ‘꿈 너머 꿈’은 꿈을 설정할 때부터 꿈을 이룬 뒤 무엇을 할지까지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백만장자가 꿈이라면, 내가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치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자기 성취에서 이타성을 조금 가져보자는 거예요. 나에게도 의미 있고 다른 이에게도 의미 있는 쪽으로 인생 목표를 세워보는 거죠. 그래서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이루지 않아도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 행복하고 위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hibition
◇민속이란 삶이다
일정 7월 5일까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의 가치와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는 특별전 ‘민속이란 삶이다’를 7월 5일까지 연다. 전시는 민속과 관련된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 600여 점을 통해 민속이 근현대에 어떻게 학문으로 자리 잡고 영역을 확장해나갔는지 돌아본다.
전시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아키비스트(기록물 관리 전문가)이자 민속학자 송석하(1904~1948)가 정리한 일제강점기 민속 현지조사 원본 사진카드 486장이 공개됐다. 약 90년 전 북청사자놀음과 봉산탈춤 등을 조사하고 카드별로 명칭과 지역, 날짜를 기록했다. 전시실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추억의 물건들도 민속의 이름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1970~80년대 혹은 1980~90년대 삶의 모습이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그 시기의 민속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됐다. 필름카메라,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 286 컴퓨터, 3.5인치 디스켓 등이다. 온라인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민속 물품도 전시되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한국을 모자의 나라로 각인시킨 갓, 미국 아마존에서 대박 신화를 쓴 영주 호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달고나 등을 만날 수 있다.
◇조미수교와 태극기
일정 7월 7일까지 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조미수교와 태극기’ 특별전을 통해 1882년 작성된 최초의 태극기 도안을 공개했다. 최초의 태극기 도안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 슈펠트 문서에서 찾은 것으로, ‘슈펠트 태극기’로 불린다. 원본은 도서관에 있고, 이 교수가 촬영한 사진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1882년과 1899년에 미국 해군부가 발간한 책 ‘해양국가의 깃발’과 그 안에 실린 태극기 도안도 공개됐다. 특히 1882년 최초의 태극기 도안과 그해 나온 ‘해양국가의 깃발’ 속 태극기가 매우 흡사해 화제를 모았다.
●Book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이어령·열림원)
지난 2월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가장 사적인 고백이 담긴 산문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가 새롭게 출간됐다. 2010년 초판 출간 이후 12년 만이다. 개정판에는 개신교 신앙 고백에 관한 인터뷰를 담은 ‘나는 피조물이었다’가 빠졌다. 1~4부 모두 이어령의 산문으로만 채워졌다. ‘나는 피조물이었다’는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에 담겨 출간될 예정이다.
책에는 이어령 문학의 ‘우물물’이 되어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메멘토 모리’의 배경이 되는 여섯 살 소년 이어령의 고향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1부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서 이어령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2부 ‘이마를 짚는 손’, 3부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에서는 이어령의 사색적이고 섬세한 필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4부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이어령의 문학이 어떠한 과정으로 완성돼왔는지 엿볼 수 있다. 이어령은 어머니부터 외갓집, 고향, 그리고 문학론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감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묵은 글들” 속 또렷하게 남아 있는 향수를 전한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공감을 이끈다.
◇생존자들(캐서린 길디너·라이프앤페이지)
임상심리학자인 저자가 25년간 심리치료를 하며 만난 내담자들 가운데 특별한 네 사람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의 비극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저자는 대화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치유받는데, 그 과정이 감동을 준다.
◇민낯들(오찬호·북트리거)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열두 가지 사건을 담은 책이다. 故 변희수 하사, 故 설리(본명 최진리) 등의 문제적 죽음을 응시하고, 코로나19 팬데믹과 n번방 사건, 세월호 참사, 낙태죄 폐지 등을 되짚으며 한국 사회의 민낯을 폭로한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열린책들)
자존심 센 영국인이 독일을 극찬하는 책이다. 저자는 뼈아픈 과거에서 배운 교훈, 품위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 문화를 존중하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책임지려는 리더십 등 전후 75년간 현대 독일의 놀라운 변화를 분석한다.
●Stage
◇웃는 남자
일정 6월 10일 ~ 8월 22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프랭크 와일드혼
출연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 민영기, 양준모, 신영숙, 김소향, 이수빈, 김승대, 최성원 등
뮤지컬 ‘웃는 남자’는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두 번째 창작 뮤지컬로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8년 월드프리미어와 2020년 재연에 이르기까지,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웃는 남자’는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인물인 그윈플렌의 여정을 통해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지울 수 없는 웃는 얼굴을 가진 채 유랑극단에서 광대 노릇을 하는 관능적인 젊은 청년 그윈플렌 역에는 배우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이 출연한다. 박효신은 2018년 이후 4년 만의 귀환이다. 박은태는 뉴 캐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박강현은 2018년 초연, 2020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까지 함께하게 됐다. 또한 우르수스 역에는 민영기와 양준모, 조시아나 역에는 신영숙과 김소향이 각각 캐스팅돼 기대감을 더한다.
◇번지점프를 하다
일정 6월 22일 ~ 8월 21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심설인
출연 이창용, 조성윤, 레오, 최연우, 이정화, 고은영, 정재환, 렌 등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병헌·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2012년 초연돼 2018년까지 세 시즌을 거쳤다. 아름다운 스토리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극은 국어 교사 서인우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간다. 국문과 대학생 인우는 당돌한 미대생 태희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지만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태희를 간직하고 살던 인우 앞에 그녀와 같은 버릇, 같은 행동을 하는 남학생 현빈이 나타나면서 인우는 혼란에 빠진다.
◇마타하리
일정 5월 28일 ~ 8월 1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권은아
출연 옥주현, 솔라, 김성식, 이홍기, 이창섭, 윤소호, 최민철, 김바울 등
뮤지컬 ‘마타하리’가 5년 만에 돌아온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본명 마그레타 G. 젤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6년 초연과 2017년 재연에 참여한 옥주현이 마타하리 역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이와 함께 마마무 솔라가 뮤지컬 무대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다. 또한 마타하리의 유일한 사랑인 아르망 역은 김성식, 이홍기, 이창섭, 윤소호가 연기한다.
※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사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곳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그곳이 떠오른다.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6월을 앞둔 어느 날,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위로하듯 이팝나무꽃이 흩어져 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슴이 아려지는 그곳에서 김수삼(57) 현충원장을 만났다.
김수삼 원장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행시 4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국방부 군수기획과장, 직무감찰담당관, 기획총괄담당관, 국제군수협력과장, 기획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국립서울현충원도 국방부 소속이다. 김수삼 원장은 지난 1월, 제23대 국립서울현충원장으로 취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별도의 취임식을 치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TV에서 그를 볼 기회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후와 5월 10일 취임식 때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기 때문. 김 원장은 “TV에서 저를 봤다며 반가워하는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현충원장에 취임해 책임감을 느끼고 걱정도 많았는데요. 무사히 치를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거나 당선될 때 현충원을 가장 먼저 찾는 것을 보고 정말로 중요한 곳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국민이나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도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의 중요성을 느끼고 자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을 위한 선열들의 장소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 현충탑에 새겨진 글귀
서울 동작구에 자리한 국립서울현충원은 휴전 2년 후인 1955년 설립된 국군묘지가그 뿌리다. 6·25전쟁에서 전사·순직한 군인들을 안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군인이 아닌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 안장도 가능해졌다. 이어 1996년 국립현충원,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김수삼 원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조국의 독립과 수호, 발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시는 민족의 성역이다. 국난을 극복해온 민족의 얼과 호국 의지, 나라 사랑 정신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총면적은 약 44만 평이며, 네 분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총 18만 7000여 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모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국립대전현충원은 1985년 건립됐고, 국립연천현충원은 2025년 건립을 목표로 준공 중이다. 김 원장은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연천현충원은 모두 같은 위상을 가진 국립묘지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서울, 대전, 연천현충원에 안장되는 대상자를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소속이고, 대전과 연천현충원은 국가보훈처 소속이다.
김수삼 원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이 갖는 역사적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있는 곳의 원장으로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의 소감은 어떨까.
“올해 1월 국립서울현충원장에 취임해 현충탑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를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반기가 다 지나갔네요. 처음 참배를 드릴 때 현충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한편,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느꼈습니다. 제가 당시 다짐한 것이 있어요. 장례와 추모 행사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와 엄중한 코로나19 상황 등에 맞춰 보다 체계적이고 품격 높은 안장 및 참배·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공자 및 유가족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기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김수삼 원장은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설 명절 때 유가족을 대신해 직원이 참배드리고 이를 사진 찍어 전송해주는 ‘설맞이 참배 대행 서비스’를 실시했다. 또한 유가족의 편의를 위해 참배용 사다리 및 참배용 원목 의자를 비치했고,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셔틀버스 운행도 시작했다고.
김 원장은 취임 후 가장 뜻깊었던 일로 지난 4월의 ‘제2충혼당 개관’을 꼽았다. 제1충혼당은 영현 2만 468위를 모신 후 2020년 7월 만장됐다. 제2충혼당은 2018년 착공돼 올해 4월 13일 완공됐다. 제2충혼당에는 3만 2952위를 추가로 안장할 수 있다.
“제2충혼당 건립을 통해 유공자분들을 최고의 시설로 모실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나라 사랑 및 호국 정신을 후대에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제2충혼당 개관식에서 배우 신현준 씨가 사회를 봐주셨고, 가수 진미령 씨가 추모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이곳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유공자의 후손입니다. 행사 며칠 전에 갑자기 부탁드렸는데도 기꺼이 다른 일정을 조정하고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유해 발굴 및 확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사실은 확인됐으나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의 위패가 10만 3000여 위나 있다. 김수삼 원장은 “현재도 이분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유해 발굴 사업이 꾸준히 진행 중이지만 발굴된 유해 중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호국용사는 극소수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에도 134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구한말 의병 활동 및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분들 가운데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이 없는 선열들의 위패다.
그러나 안장되어 있고 유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유가족이 꾸준히 현충원을 찾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그 원인은 거주 지역이 멀어서 일 수도 있고, 가족이 달라지거나 건강 상태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분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때문에 기혼자가 적어 후손이 없거나, 남은 유가족 대부분이 형제나 조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묘역을 찾는 유가족이나 친지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점점 쓸쓸한 묘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선열의 희생에 감사하며 ‘내가 후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쓸쓸한 묘소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죠.”
현충원, 국민 속으로
일반 국민에게 ‘현충원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현충원에 가본 적이 있나?’라고 물어보면, 현충원 근처에 사는 서울시민이나 견학을 가본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현충원을 찾아가 봤다고 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보통 TV를 통해 6월 6일 현충일 행사를 보면서 국립서울현충원을 접한 경우가 대부분일 터. 그렇기 때문에 현충원은 정부 관계자나 유공자의 후손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원래는 국립묘지였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공간이라고 느껴진다.
김수삼 원장 역시 ‘일반인이 현충원에 들어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현충원이 무겁고 어려운 이미지가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호국공원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특히 44만 평의 국립서울현충원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김 원장은 “봄에는 아름다운 수양벚꽃, 여름에는 이팝나무 가로수길, 가을에는 현충원 둘레를 잇는 은행나무길이 아름답다”면서 “이와 더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삼 원장의 말대로 국립서울현충원은 아름답고 뜻깊은 곳이다. 현충원을 걷다 보면 느껴지는 감정도 많을 것.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근무 환경이 좋아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김 원장은 현충원의 명소로 현충천과 현충지를 추천했다.
“현충원에 천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이 많지 않은데요. 현충천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사시사철 다양한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고기들도 많고요. 현충지는 조그마한 연못으로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거나 소위 ‘멍때리기’ 좋은 곳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시기도 하는데요. 심지어 심신을 치유하신 분도 많아 후손들이 감사한 마음에 기증한 의자도 있어요. 저도 점심 식사 후 산책할 때 현충천과 현충지는 거의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수삼 원장은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국립서울현충원은 온라인을 통해 ‘기일 : 기억의 날’(당신을 기억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유공자가 서거한 달에 맞춰 업적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독립유공자 하면 어떤 분들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김구 선생님이나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이분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이 계십니다. 기일 프로젝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신 독립유공자들의 업적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기획했습니다. 한분 한분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5월 21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 경내에서 호국 문예 백일장과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은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김 원장은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이들의 현충원 방문을 뿌듯해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제한됐던 행사를 앞으로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시민들의 참여의 장을 넓히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수삼 원장은 재임 기간의 목표에 대해 “국민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열린 호국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언제나 편안히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호국정신을 배우며 후손들에게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수삼 원장에게 현충원장으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목표를 물었다. 그는 “곧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에 퇴직 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먼저 퇴직하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 건강, 취미, 친구들이 있어야 노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근로소득은 정년까지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퇴직 이후에는 금융소득을 통해 번다는 목표로 퇴직연금, 리츠, 부동산 펀드 등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 사이버 대학이 많아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공부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은 한국어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졸업하면 외국인 학습자를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이 부여됩니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가 코로나19로 장기간 야외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고령자를 대상으로 숲속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숲속 힐링 프로그램은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와 주택관리공단 협업으로 진행되며, 주택관리공단에서 관리 중인 임대주택 고령자 약 300명을 대상으로 5~6월에 걸쳐 운영된다.
주요 내용으로는 ‘숲속 체조’(유명산), ‘오감을 느끼며 걷기’(산음), ‘휴양림 내 계곡 탐방’(대야산), 편백나무 숲 걷기(남해편백) 등의 프로그램이 15개 국립자연휴양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영록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장은 “이번 숲속 힐링 프로그램이 고령자분들에게 심신의 안정과 우울감 해소 등에 많은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며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사회적 가치 구현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관에서 고령자 대상으로 마음 치유를 위한 산림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지난 19일 가평군 경기도잣향기푸른숲에서 공공임대주택 고령자 입주민을 대상으로 ‘산림치유 힐링캠프’ 체험을 진행했다. 하남풍산 국민임대주택 고령자 입주민 20명이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잣향기푸른숲에서 숲길 걷기, 나무와 함께하는 스트레칭, 명상 등을 체험했다.
합천군 농업기술센터는 교통약자가 전동 카트를 타고 황매산군립공원을 관람할 수 있는 ‘나눔카트 투어 프로그램’을 철쭉 개화기간 동안 운영한 바 있다. 70세 이상 고령자 동반 가족 등이 신청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한 담당자는 “철쭉 개화기간에 노모를 모시고 오는 가족들이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까지만 관람하고 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전통카트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흔히 나누던 인사가 귀한 말이라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기에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로 넘쳐나도 우리 집은 무사하겠거니 안심했나 봅니다. 번갈아 가며 식구들이 확진되고, 자가격리 이후 일상 회복까지 몸소 겪으면서 그동안 확진 당사자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합니다. 이 심정을 담아 마음 미장공 다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그러십니다. 너도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요. 엄마의 엄마는 또 그러셨습니다. 너도 시집 가서 꼭 너 같은 새끼 더도 말고 하나만 낳아서 키워보라고. 그래야 엄마 맘을 알 테니까요. 부모 속 썩이던 그때는 모르던 것을 자식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고 나서야 아 그랬지 하고 겨우 알아차립니다.
깻잎 논쟁과 역지사지
몇 년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들려준 중년 가수 부부의 이야기가 일파만파 세대 불문 연일 화제였습니다. 부부와 아내 후배가 같이한 식사 자리. 하필이면 깻잎장아찌를 먹으려는 아내 후배. 때마침 붙어 있는 깻잎.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으로 떼어주는 남편. 사건 자체는 간단한데 논쟁은 그칠 줄 모릅니다. 김 여사 남편 역시 그게 왜 화낼 일이냐고 되묻습니다. 이때다 싶어 김 여사는 예를 들어 조곤조곤 설명합니다.
“여보, 한번 상상해봐요. 우리 부부랑 당신 남자 후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후배랑 셋이 밥을 먹어요. 한창 당신이 신나게 얘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그 후배란 녀석이 내가 쩔쩔매는 깻잎장아찌를 무심히 툭 떼어주는 거예요. 젓가락질 서툰 나를 지켜봤던 거지. 어때요, 기분이?”
입장을 바꾸자 바로 불쾌해진 남편.
“그건 절대 안 되지!”
역지사지, 참 쉽죠?
식사 속도로 보는 역지사지 실험
그런데 역지사지하는 게 정말 쉬울까요? 이 실험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과 천천히 먹는 사람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아니면 연인, 친구, 동료까지. 얼마 전 라디오 사연으로 소개되어 진행자와 초대 손님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식사 속도 문제. 일주일을 정해서 평소와 반대로 해보면 됩니다. 씹는 건지 삼키는 건지 모를 만큼 빨리 먹는 사람은 천천히, 밥알이든 맹물이든 꼭꼭 씹어 먹는 사람은 꿀떡 삼키듯 빨리. 식습관을 바꿔 해보는데, 보통 일주일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루 세 끼면 실험 효과는 충분합니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니까요. 그만큼 남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에 분명합니다.
바꿀 역(易)에 숨어 있는 비밀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이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서 ‘역지사지’ 뜻을 살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핵심은 바꿀 역(易)에 있습니다. 역(易)의 아랫부분인 말 물(勿)의 갑골문에 비밀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릇에 담겨 있는 무언가를 쏟아내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담는 게 역지사지의 바탕입니다. 바꿀 역, 쉬울 이로 읽히는 이 글자(易)가 나아가서는 고치다, 새로워지다, 평안하다, 편안하다, 기쁘다, 기뻐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지(地)는 내가 딛고 있는 땅, 처지, 형편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사(思)는 뇌(腦)를 상징하는 밭 전(田)과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로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 지(之)는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나타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자원(字源)에 따라 풀어보겠습니다.
내 그릇을 비우고, 상대 마음과 생각을 새로 담으면, 나와 당신이 기쁘고 편안해진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당신에 대한 오해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고집이나 아집을 비우고,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새로 담는 것입니다. 맑고 깨끗해진 내 그릇에 새로 담으면 나와 당신이 기쁘고 편안해진다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의 깊은 뜻이 아닐까요.
술과 개는 나의 스승
‘혼자 술 마시는 여자’라는 수필집을 낼 만큼 술을 사랑하던 제가 술을 끊은 경험도 애주가 입장과 그 반대 입장 모두 헤아릴 수 있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던 제가 ‘벼리’라는 푸들을 15년 가까이 키우면서 혐오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모두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주(酒)님과 개님은 제게 역지사지를 뼈저리게 깨우쳐준 특별한 스승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게 되지 않아서 엄청 괴로워하고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또 우리 인간입니다.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다툽니다. 아내와 남편이, 부모와 자식이, 형제자매가, 친구와 동료가, 손님과 주인이. 비단 가정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웃, 사회, 국가 간에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역지사지는 머리와 가슴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상대를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생각이나 입장에 서봐야 합니다. 나 좋을 대로 띄엄띄엄 아는 게 아니라 충분히, 제대로, 정성스레 헤아리는 것입니다.
역지사지 반대말은?
반대말을 살펴보기 전에 역지사지로 사행시 한번 지어볼까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의미는 대동소이합니다. 운을 띄워주세요!
역 - 역으로
지 - 지랄을 해줘야
사 - 사람들이
지 - 지 일인 줄을 안다
역 - 역으로
지 - 지랄해야
사 - 사람은
지 - 지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
진상을 부리는 고객이나 조직에서 갑질을 하는 상사에게 반대 자리에 서보라고 합니다. 그제야 겨우 자신이 저질렀던 지랄(갑질, 진상)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정서적·신체적 학대와 폭력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로 역지사지가 되는 사람이라면 매우 희망적인 부류이긴 합니다. 안타깝게도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을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라 미화하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비난)이라고 합니다. 이제 뇌 영역별로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일 때 어떤 감정과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역지사지’하려면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처지에 자신을 놓는 감정이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고서야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때로는 후회로 마음이 아프고 회한도 몰려옵니다. 철딱서니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화해와 포옹으로 웃음을 되찾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로 가는 과정입니다. 갈등의 골을 사랑으로 메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내로남불’은 자기만 앞세우는 이기심과 자기합리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왜곡된 이중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와 의견에 날을 잔뜩 세우고 방어와 공격에 주력하느라 안절부절못합니다.
세 번째 시즌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TV조선)에 나오는 등장인물 면면이 특히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의 전형이랄 수 있습니다. 아내 몰래 새로운 연인을 만나 이혼한 남자. 전처가 자기보다 어리고 능력 있는 연인을 만나자 질투와 분노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변명과 핑계는 기본에다 갈등 유발자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로지 내 편인지만 가리는 피아식별(彼我識別)에 혈안이 되어, 적이라 여기면 온갖 편법과 꼼수로 심술을 부리고 해코지하기에 급급합니다.
편안함과 기쁨을 되찾는 역지사지
지금 어떤 상처나 고통 속에 계십니까? 상대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결국은 내 마음이 편안하고 기뻐지는 것이 역지사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로 나, 내가 편안하고 기뻐야 내 주변과 상대도 편안하고 기뻐합니다. 인간관계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먼저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먹으면 어느 순간 그 사람도 내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역지사지는 동심(同心),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와 당신이 같은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이 역지사지의 좋은 목표, 도달점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로남불로만 산다면 역지사지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내 마음 그릇에 고인 물은 봄비에 흘려버리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고 친절하게, 공감하면서 보내면 어떨까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다음달 2일부터 30일까지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에 따라 높아지고 있는 국민들의 여행 수요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여행가는 달 캠페인은 국내관광 시장의 빠른 회복을 위해 2014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2주 동안 운영했던 ‘여행주간’의 연장선이다. ‘2022 여행가는 달’은 국내 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여행으로 재생(再生)하기’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많은 기관들이 참여해 국민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혜택을 마련했다.
여행을 떠나는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관 기관과 민간여행업체들이 교통과 숙박, 관광지·시설 등 각 분야에서 특별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교통 부문에서는 고속철도(KTX)와 5개 관광열차 요금을 최대 50%까지 할인받아 이용할 수 있고, 렌터카와 항공, 도시관광(시티투어) 버스도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숙박 부문에서는 7만 원 초과 숙박상품 예약 시 사용할 수 있는 지역별 할인권을 발급한다. 오는 6일부터 9일까지는 행사 참여 8개 지자체(강원, 경기, 경북, 대구, 대전, 부산, 세종, 인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5만 원 특별할인권을 선착순으로 발급하고, 10일부터는 전 지역(서울 제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3만 원 숙박할인권을 발급한다. 국가에서 인증한 한국관광품질인증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국민에게는 50%(5만 원 한도)까지 할인을 제공한다. 강릉, 동해, 삼척, 영월, 울진 등 산불 피해 지역의 조기 회복을 돕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숙박할인권을 발행하는 특별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이 밖에 유원시설과 캠핑장 이용요금 할인, 여행업계와 여행가는 달 참여 기관의 자체 할인 행사 등 다양한 할인 혜택이 준비돼있다. 단, 모든 할인 혜택은 준비된 예산이 소진되면 종료될 예정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체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도 풍성하게 마련했다. 최근 여행 흐름을 반영해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마음 챙김’, 개개인의 여행 취향에 맞춘 ‘나만의 여행’, 지역의 특별한 친환경 관광자원을 활용한 ‘지역특화’ 등 3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여행 프로그램 36개를 운영한다.
참가 신청은 5월 24일부터 ‘여행가는 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받는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외에도 한국관광공사와 참여기관이 선정한 추천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여행가는 달과 연계한 다양한 행사도 이어진다.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2022 내 나라 여행박람회’가 ‘떠나라! 자유롭게! 내 나라로!’를 주제로 열린다. 올해는 여행 정보를 교류하는 것은 물론, 국내 관광업계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여행상품을 직접 사고파는 여행시장(Travel Market)도 함께 운영한다.
6월 16일부터 30일까지는 ‘싱크 어스&어스(Think Earth&Us) 캠페인’을 통해 여행객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친환경 행사와 여행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외 여행가는 달 기간 동안 서해안 걷기길을 연결하는 ‘서해랑길’도 개통할 계획이다. ‘부모님과 여.행.기’(여기서 행복한 기록 남기기) 등 온라인 행사도 개최한다. ‘여행가는 달’ 공식 누리집과 누리소통망 등에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준다.
‘여행가는 달’의 모든 할인 혜택은 사용조건과 판매, 사용기간이 다른 만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할인 혜택과 행사 일정, 참여 방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4일부터 ‘여행가는 달’ 공식 홈페이지와 소통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장호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국장은 “올해 ‘여행가는 달’은 국민들이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국내 여행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예년보다 많은 혜택을 준비했으니, 국민들이 이를 계기로 여행을 다시 일상화하길 기대한다”라며 “다만 아직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만큼 손 씻기와 실내 환기 등 개인별 기본 방역수칙을 준수해 안전하게 국내 여행을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28일 경기도 용인시의 삼성노블카운티 중앙 잔디광장에서 '레크레이션 동물매개치유' 프로그램이 열렸다. 미리 신청받은 16분의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입주민들이 잔디광장을 빙 둘러 앉아 행사를 구경했다.
진행을 맡은 둥글개봉사단은 힐링견 8마리와 방문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먼저 봉사단과 시범견이 각각 원반을 던지면 개가 물어오는 프리스비, 장애물을 넘는 어질리티 등의 독 스포츠 종목들을 선보였다. 이후 체험을 원하는 어르신들이 직접 원반을 날려보고, 힐링견을 이끌어 장애물을 통과하는 등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청한 16명의 어르신들은 2인 1조로 짝을 지어 힐링견들과의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삼성노블카운티 내 치유의 숲길을 걸으며 기념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이웅종 교수를 포함한 봉사단원이 동행하며 어르신들과 힐링견들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수고한 힐링견을 위한 '아로마 마사지' 시간을 마지막으로 이날 행사가 마무리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옥연 어르신은 "보기만 해도 좋은 힐링견들과 함께 활동하니 저절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둥글개 봉사단은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AAA'(Animal Assisted Activity), 즉 동물매개치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람은 동물을 만지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사랑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닌(Oxytoncin)을 분비시킨다는 점을 활용해,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면서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둥글개 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이웅종 연암대학교 동물보호계열 전임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 활동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라며 "거리두기 단계가 모두 풀렸으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과 동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다치거나 아프신 데 없으셨나요? 몸도 마음도 다 편안하셨는지 궁금하고 염려도 됩니다. 이번에 같이 나눌 이야기는 경청입니다. 우리말로는 ‘듣는 힘’. 그냥 들으면 되는 거지 듣는 데 왜 힘이 필요한지, 굳이 힘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듣는 즐거움? 듣는 고통?
몇 년 전 ‘진정한 대화’를 주제로 한 모임에서 스무 명 남짓한 참가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돌아가며 자신이 느낀 것을 나누었습니다. 갑자기 진행자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휴대전화 타이머로 정확히 15분씩 상대방 이야기를 듣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끼어들지 말 것. 눈을 마주 볼 것.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할 것.’ 그 장면에 있었다면 당신은 어땠을까요. 타이머가 작동하기 전 혼잣말을 했습니다. 30분씩 발표도 하는데 그깟 15분을 못 들을까 봐.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웬걸요. 5분이 그렇게 긴 시간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10분은 왜 아직 안 되는지 자꾸 벽시계를 힐끔거렸습니다. 중간에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습니다. 열다섯 시간 같은 15분이 지나고 순서를 바꿨습니다. 또다시 15분이 지나고 나서야 종잡을 수 없는 제 얘기를 들어준 짝꿍이 그렇게 고맙고 귀할 수가 없었습니다.
총명(聰明)은 말귀에서
세상은 온통 말하기, 스피치, 웅변, 감정 표현하기, 의사 전달하기 등 화자(話者)에만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우리는 말하는 사람에만 집중해왔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현란한 말장난에 찬사를 던지고, 임기응변에도 혀를 내두릅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총명하기를 바란다면 말하기보다 듣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말귀를 알아들어야 이해력이 빨라지게 마련입니다.
“대화의 첫 규칙은 듣는 것이다. 말하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용서와 화해로 국가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까지 품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생전에 강조했듯, 듣는 데서 대화와 소통이 시작됩니다. 나아가 듣는 데서 배움이 싹틉니다. 세계 50대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20년 넘도록 컨설팅해온 버나드 페라리(Bernard T, Ferrari)는 이들의 성공 요인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참을성 있는 귀’를 만든 데 있다고 파악했습니다.
마음을 얻는 이청득심(以聽得心)
‘정관의치’(貞觀之治)로 중국 역사에서 황금시대를 펼쳤던 당 태종은 신하 위징(魏懲)의 직언을 명심했다고 합니다. “양쪽 의견을 들으면 밝게 되지만, 한쪽 의견만 들으면 어둡게 됩니다”(兼聽則明 偏聽則暗)라는 말을 흘려듣지 않고 귀에 새겨 덕망 있는 정치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귀를 열어 세상을 밝게 다스렸다는 말은 최근 대통령 선거를 치른 우리에게 절실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돈과 권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일이 지름길이라는 걸 아는 총명한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상향식 소통, 구언(求言)
백성 사랑하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종대왕. 그는 세자 시절부터 학문이 높았고, 아버지 태종의 인정을 받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세종도 현안마다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특히 구언(求言)이라는 제도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여기서 올라온 상소는 승정원을 거치지 않고 임금에게 직접 전달되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거리낌 없이 직언하라는 지도자의 태도는 들을 준비를 충분히 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폭망한 소통이 되지 않으려면
청와대 비서진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과 세상을 연결하기 위해 각계각층 다양한 인물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 만남이 성공했는지 가늠하는 척도는 다름 아닌 ‘누가 말을 많이 했느냐’였습니다. 대통령이 자기 말은 줄이고 그날 참석자들 이야기를 주로 듣는 편이었다면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성공이랍니다. 반대로 주구장창 대통령 혼자 떠들었다면 경직된 분위기에 소통은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 대통령께서 말씀 잘하시대요, 아는 것도 많으시고….”
경청이 두 가지라고요?
경청이란 말을 검색하면 두 가지 한자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경청(傾聽). 내 마음을 가까이 기울이는 게 바로 기울 경(傾)자가 갖고 있는 뜻입니다. 두 번째 경은 공경할 경을 쓰는 경청(敬聽)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들어주는 것,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 모두 뜻은 일맥상통합니다. 두 가지 경청 모두 듣는 힘, 듣는 능력을 말합니다. 귀를 기울여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게 바로 경청입니다. ‘너는 지껄여’ 이런 식으로 귓등으로 듣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경청은 예의를 갖춰서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몸과 마음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듣는 것입니다.
들을 청(聽)에 담겨 있는 속뜻
두 경청이란 말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청(聽)에는 ‘듣다, 들어주다, 판결하다, 결정하다, 다스리다, 받아들이다, 허락하다, 용서하다, 살피다, 밝히다, 기다리다, 따르다, 순종하다, 맡기다’ 등과 함께 ‘마을, 관청’까지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통계청, 산림청, 경찰청, 특허청 하듯이 관청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결정이나 판결을 내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백성이나 주민의 어려움과 민원을 들어주는 게 관청, 마을이 하는 일입니다.
들어준다는 것은 듣는 사람의 에너지도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누군가의 자랑이든 고통이든 그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내 힘과 에너지를 끌어와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딴전을 피웠다간 단박에 들통 나서 말하는 상대가 서운해하거나 토라지기도 합니다. 듣기만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심신이 녹초가 되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나를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손실이나 육체적인 상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엄청나게 기운이 소진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들어준다는 것은 정성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전화 통화할 때나, 얼굴을 마주할 때나, 자녀가 자기 방에서 불렀을 때나, 거실에서 남편이 불렀을 때 가까이 가야 합니다. 여보! 엄마! 불렀을 때 들은 척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청이 아닙니다. 청이라는 건 내가 다가가는 것입니다. 아이 방에 들어가서, 그 사람 옆에 가서, 직접 전화해서 목소리로, 혹은 눈을 마주 보고 들어주는 것이 청입니다.
경청은 용서의 지름길
또 하나 청에 들어 있는 중요한 뜻은 ‘용서하다’입니다. 그 사람의 사정, 입장,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면 그 사람이 했던 어떤 일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容恕)라는 말은 한자가 가리키는 대로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같아지는 것(같을 여 如+마음 심 心)이니까요.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생겼을 때 입장이나 처지를 잘 살피니까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 사람의 형편과 억울함, 서운함을 자세히 살펴서 밝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을 청에는 ‘기다리다’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질이 참 급합니다. 그래서 했어, 안 했어? 갔어, 안 갔어? 잤어, 안 잤어? 빨리 결론을 듣고 싶어 합니다. 지금 행복하다는 거야, 불행하다는 거야? 기다리지 못하고 계속 재촉합니다. 그 사람이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기가 쉽습니다. 저도 많이 그랬으니까요.
경청의 달인
각양각색 새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지저귀며 봄 마중에 한창입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볼까요. 성큼 다가온 봄 내음에 취할지도 모릅니다. 새소리뿐 아니라 강아지나 고양이 소리, 아기 울음소리. 갓난아기는 졸릴 때, 배고플 때, 기저귀가 젖었을 때, 열 오르고 아플 때, 업어달라 할 때, 놀아달라 할 때 내는 소리가 다 다릅니다. 소중히 여기면 상대가 내는 소리에 저절로 귀를 쫑긋하게 됩니다. 어떤 상태인지, 뭐가 불편한지, 왜 울까 궁금해하고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소리를 구별해내고 그 마음을 알아줄 수 있습니다.
당신과 갈등 관계인 사람이든, 자신을 학대하고 방치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든 간에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그 사람의 형편과 사정과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용서할 일이면 용서해주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경청입니다. 들려도 안 들리는 척하지 말고, 못 들은 척하지 말고, 다정하게 살아보면 정말 좋겠습니다. 마음 미장공 네 번째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은 경청의 달인입니다.